민주주의 관점으로 다시 보는 영미문학

  • 강사

  • 기간

    • 2009. 5. 13 ~ 2009. 6. 3
  • 시간

    • 수요일 총4회
  • 수강료

    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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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세 정보

    19세기와 20세기 초의 영국문학 중에서 고전적인 세 편의 장편소설, 그리고 칠레 태생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작가가 20세기의 마지막 연대에 쓴 희곡 작품들을 골라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이라는 각도에서 새로이 읽어봅니다.

    민주주의는 정의하기 어려운 단어입니다. 민주주의의 실현은 헌법과 법률, 정치적 제도로만
    충분한 것도 아니고, 다수 대중의 민주적 역량과 수준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끊임없는 토론과 싸움을 통해 지켜지고 성장되어야 하며, 이런 이유로 민주주의의
    최종적인 완성을  말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이라는 견지에서 살펴볼 때,
    우리가 이 강좌에서 읽어볼 작품들이 담고 있는 인간 삶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과
    깊이있는 고뇌가 더욱 생생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강사_김명환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1강
    5월 13일
    찰스 디킨즈의 ‘어려운 시절’수
    2강
    5월 20일
    토마스 하디의 ‘이름없는 주드’
    3강
    5월 27일
    D.H.로렌스의 ‘아들과 연인’
    4강
    6월    3일
    아리엘 도르프만 ‘소녀와 죽음’

     

    후기 2

    • 수요영어영문학 감상문입니다.^_^

      2009.6.5 장호두 민주주의 관점으로 다시 보는 영미문학

      지난주 일요일에 두달정도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하던 시험도 끝이 났고, 부푼 가슴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하던 느티나무 아카데미도 어느새 끝이 보이고 있네요.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서 로마서를 읽고 국제정치서적도 읽고, 한국근현대 정치서적도 읽고, 참여사회도 읽고 밥도 먹고 낮잠도 자고, 김정일 다큐멘터리도 보았지요.어제는 참여연대 회원님들과 김명환 교수님과 한시간 가량 인간다운 대화도 할 수 있었구요.
       오래간만에 심신에 여유가 생겨서 그런지, 시험일정으로 좁쌀만해진 마음에 주름이 하나 없어진듯한 기분도 드네요.
      학생의 입장에선 끝이 없는 시험공부와 그로 인해 촉발되는 팽팽한 삶의 긴장과 좌절 한계의 연속으로 인한 끊임없는 허무와 좌절과 도피의 옳지 못한 감정속에 빠지는게 쉽상인것이 되는데..이렇게나마 글을 쓸 수 있고 원하는 시청각 자료를 볼 수 있는 그러한 숨을 쉴 수 있는 moment가 있기 때문에, 다행스레, 인간미를 가지고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어제 영문학 강좌가 끝이 났습니다. 나름 4주동안 열심히 듣는다고는 들었으며, 집에서, 계속해서 19세기 영미문학과 영미시와 영미희곡 그리고 영미문학개론등을 따로 공부했기 때문에, 나름 대학에서 공부하는 영문학에 대해서 어느정도 감을 익힐 수 있던 좋은 경험이었던것 같습니다.

      솔직히 개론서 내의 요약되어진 수 없이 많은 영어영문학 작가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만, 김명환 교수님과 함께 공부할 수 있었던 토마스 하디와 찰스 디킨즈 그리고 디에이치로렌스는 훨씬 이해도 잘 되고 감정이입과 같은 것들도 다른 문학작품보다 훨씬 더 수월할 수 있었던것 같습니다.

      정말 지금에 와서야 절감한 것이지만, 작가가 느끼는 인간의 감정과 관계 대한 철저한 기록과 해석, 그리고 그 기록의 투영과 연계되는 접점위의 나 자신의 벌거벗은 진실을 바라보았을때의 순간적인 깨달음과 자기성찰이 있는 자만이,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네요.

      여짖까지, 정말 무지했단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문학을 접하기 이전까진 그저 신문지상이나 사회과학 서적위에 비문학적인 객관적 자료와 그의 전문가들의 분석적 해석을 통해서만 사회란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되 그의 수렴은 항구 불변(즉 비슷한 circle내에서 순환)되는 듯한 인식의 한계속에서 굉장히 많은 고민을 하였었지요.

      사회는 어째서 자연과학과 비슷하게 실증주의적인 계량화는 가능할 법 하면서도 그것은 곧 100%나 99%와 같은 절대적인 가능성이나 실행률엔 도달하지 못하는 것인가..가 가장 보편적이었고요..

      외에도 현실주의 자유주의 구성주의 마르크스 주의 민주평화론 세계체제론 패권안정론 세력 전이론 등과 같은 수 없이 많은 현상에 대한 해석은 가능하고 그것의 장점과 단점은 알 수 있겠는데, 그것위에 초월하는 힘을 규정하고 있는 무언가의 nuclear source가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다시 이해도 않되지만 플라톤, 푸코나 마르크스나 몽테스키외나 마키아 벨리 임마누엘 칸트 헤겔 로크 루소 홉스 토머스모어..등등등등...등등을 붙잡고 늘어졌었으나, 역시 그것들 사이에도 진리는 없다 였습니다..

      결국엔 모든 것을 프로이드나 라깡의 정신분석학에나 나왔고 미숙하고 어린 지적허영으로 수박 겉핥기 식으로나마 공부한 무의식과 이데올로기적 존재인 수동적 인간과 그러한 인간의 존재를 규멍짖는데 가장 결정적인 촘스키나 라깡의 언어학이나 언어의 분석론 등으로, 사회과학 해석 프레임 결론 을두가지로 내놓게 되었죠..
      라고 마음먹고 다시 사회과학을 공부해도, 역시 그 다변화와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은 언제나 방망이로 휘두르듯 절 구타하더라고요.

      정말, 공부를 하면 할수록 느끼는 한계였는데 분명 역사가 기억하는 그리고 현재가 나타내는 인간의 공간은 무언가의 하나 법칙에 의해 움직입니다(그것은 힘이죠)근데 하나하나 그 구체성과 다양성을 갖기 때문에 완전히 똑같은 것은 없고 그럴때마다 다시 비스무리한 분석을 하는 사회과학 지식인들의 안을 또 한번 답습해 봐도 거기서 거긴데 또 다르고...이것의 연속을 공부하다보면 정말 답답하고 혼란스럽지요..

      지식인들은 저와 같은 한계를 '불안정,불확실,잠재력,다양성,변화가능성,'등으로 얼버부리며 지나가는게 아마도 수천년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또 그 얼버부림의 다른 불완전한 그것의 비판이 계속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뉴턴의 불확실성의 세계나, 양자역학(국제정치이론의 구성주의 정치철학자 알렉산더 웬트가 이를 조금 차용해서 연구를 해 놓았고 재미있길래 공부를 조금 할 수 있었습니다.)에 조금 나왔던 분리될 수 없는 초미세 원자라는 것은 변화가 가능한 것인데, 이것의 변화를 인간은 측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로 인해 이루어지는 구성이나 시스템 혹은 메커니즘은 본질적으로는 완전한 측정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아, ....

      다필요없다..

      세상은 혼돈(chaos)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오직 진리는 성경이다..라고 생각하며 성경을 열심히 읽게 되던 그 찰나에 영어영문학을 통해서 ..저를 처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게 아주 중요한 것이더라고요. 농담이 아닙니다. 진심으로 모든것이 '나'로부터 시작된다는것은 처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겪었던 엄청난 생각의 혼란과 답답함은 결국 나로 시작된단 것이었죠..이거 정말 엄청난 발견이었습니다. 세상을 향해 돌린 눈을 처음으로 나에게로 돌릴 수 있던 기회였으니까요.


      한국과 같이 주입식교육에 응하는 수동적인 학습태도가 요구되는 곳에서는 주관적인 자신을 객관화 시켜서 찬찬히 관찰한다는것은 정말 힘이 든 것입니다. 학생의 입장에서 이것은 정말 당당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문학을 읽더라도 좀 더 고득점의 암기하는 문학을 접할 수 밖에 없게 되며 그 사이에서 기초지식의 토대는 분명 견고해지고 넓어질 수 있겠으나 자신의 것을 발전시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큰 한계를 갖게 되지요. 왜냐하면 그것에 매몰되는 순간, 원래 공부의 목적인 고득점에 장애물이 될 수 있으니 까요.

      하지만, 그냥 이번 강의를 통해서 제대로된 문학을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컨데, 어제 공부한 죽음과 소녀의 빠울리나와 로베르또의 권력에 희생당한 트라우마의 긴장관계등이 만들어내는 갈등관계의 요체내에서 새로이 만들어지는 또다른 권력과 감시 그리고 처벌은 인간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그리고 공교육의 파시즘적인 폭력적 획일화로 인해 상처받았던 저의 자아를 다시한번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게끔 해주었습니다.

      그러니까, 해석과 분석은 맞습니다만, 그것이 저와 관련되어져서 되어졌단 것이지요.그게 중요한 것이지요. 학생의 입장에서 사회과학 공부를 할 때엔 항상 제3자의 암묵적 관중이 되어버리거든요.

      예컨데, 오바마 행정부와 이명박 대통령의 아프가니스탄 한국군 파병문제의 이해관계나 오바마 행정부와 김정일 군사독재체제 그리고 6자회담 당사자들간의 이해관계와 UN의 제재가능성등에 대해서 공부를 할 때엔, 도무지 진실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없기 때문에, 언제나 만들어진 통계자료와 수치 그리고 교수님들의 논문을 읽으면서 역사적이고 이론적인 맥락을 가늠하고 암기하는 식인데,

      영미문학에선 그것이 아니더라고요. 일단 '나'를 주체로 잡은후에 작가가 나오고 작가뒤에 작품이 나오고 작품위에 있는 스토리순으로 주체는 정해지게 되고 어느순간 그들간의 상호관계위에 주인공은 제가 되게 되는데, 이것은 정말 엄청나게 짜릿한 경험이었거든요..

      사회과학 이론과 논문과 정치철학자들을 접하면서 항상 왕따당한다는 느낌..(그들은 그들만의 언어로만 이야기하구나.ㅠㅠ)라고 생각을 하였는데, 문학은 처음으로 절 같이 와서 놀자..-_-..라고 말해준 친구와 같은 느낌이었구요..그러한 문학의 세계에서 정말 처음으로 나와 관련되어 사건을 해석해볼 수 있었던것 같아요.

      그리고 그 해석의 시작이 제가 공부하고 싶어하는 국제관계의 요체와 매우 큰 밀접적인 이해관계를 갖는다는것을 오늘 국제정치학패러다임을 독해하면서 이해하기 난잡했던 오간스키의 세력전이론과 길핀의 패권안정론이 대략 문학처럼 상호이해관계의 욕망의 다양성a뭐 이런걸 상정해두고 읽으니 소설읽히듯이 읽히더군요...

      참 새로운 이해의 방법과 생각의 방법을 배운 좋은 강의였습니다...


      이제부터 항상 문학을 끼고 살아야 겠어요. 하이데거와 아리스토텔레스가 '시'야 말로 인간의 존재를 규명하는 가장 극명한 결과물이라고 하였던게 맞나 기억은 잘 않납니다만, 정말 시와 문학을 통한 자기 성찰과 반성이 없이 사회과학을 공부해봤자 아무것도 없을거란걸 느끼게 되었네요

      일단 주관도 없고 대안도 없는 알기만 하는 사람은 지식인은 될 수 있되 지성인은 절대로 될 수 없을것 같아요.

      지식인은 지식을 발전시킬 수 있지만, 지성인은 지식을 생산할 수도 있다고 생각이 되네요..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그리고 영어영문학을 공부할 수 있는 강의를 기획해 주신 주은경 부원장님과 김명환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정말 열심히 문학공부를 하여야 겠어요. 혼돈으로부터 탈출하는데 아주 좋은 해결책이 될 것 같습니다..인간이 불안정하고 불확실하니 세상도 불안정하고 불확실 하겠지요.........

    • [강좌자료]수요고전세미나

      2009.5.29 느티나무 민주주의 관점으로 다시 보는 영미문학

       

      수요고전세미나 '민주주의 관점으로 보는 영미문학'

      강의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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