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소감,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남겨주세요
강좌명 | 강좌후기 | 글쓴이 | 날짜 | |
---|---|---|---|---|
진짜 주인 되는 <헌법 제대로 읽기> | [진짜 주인 되는 헌법 제대로 읽기] 4강. 시민의 기본적 자유와 권리에 대하여 | 박윤채영 | 2016.10.15 | |
<4강 시민의 기본적 자유와 권리에 대하여>
헌법 제 2장은 제10조에서 39조까지로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곳저곳에서 인용되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익숙한 구절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 내용 및 구성을 살펴볼까요? 2장의 시작, 10조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들지 않으신가요? 이 내용은 헌법 전문의 내용과 매우 유사합니다. 그러니까, 10조는 제2장의 전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국민의 권리와 의무의 기본 정신이자 중심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그 다음은 11조는 이렇습니다.
(1)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2)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 (3)훈장등의 영전은 이를 받은 자에게만 표력이 있고 어떠한 특권도 이에 따르지 아니한다.
11조의 내용의 핵심은 법 앞에 모든 국민은 평등하다는 것입니다. 법치정신의 기본에 대한 내용이면서 국민의 권리와 의무가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 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 사회구조는 어떠한 계급도, 특권도 허락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1조는 10조를 보완해주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앞선 수업에서 배웠듯이 자유와 평등은 충돌이 불가피한 가치입니다. ‘권력도 나의 자유다.’ ‘내 돈 내가 마음대로 쓰겠다는데, 왜 국가가 막아서느냐.’ 등의 주장 앞에서 항상 자유와 평등의 딜레마가 발생하지요. 헌법은 이에 대해 어떠한 자유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유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해보아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하는 걸까요? 같은 죄를 저지르면 항상 같은 형량을 내리는 것이 평등일까요?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냉철함을 유지하며 법의 항목을 따르는 것을 의미하는 걸까요?
그 다음 12조에서 23조까지는 모든 조항 끝에 ‘자유를 가진다.’는 말이 붙습니다. 그리고 24조부터는 ‘권리를 가진다.’는 말이 나오는데, 24조에서 30조는 정부 구성과 정치적 행동에 대한 권리에 대한 내용이고 31조에서 36조까지는 국가에 요구할 권리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어지는 37조는 헌법에 열거 된 국민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예외 상황에 대해서, 38조, 39조는 납세의 의무, 국방의 의부에 대해 명시하고 있습니다. 주목할 점은 12조입니다. 국민의 권리와 의무의 시작이 ‘신체의 자유’라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걸까요? 이 조항은 헌법 조문들 중 가장 긴 내용을 담고도 있습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거겠지요. 신체의 자유는 국가로부터 독립적인 개인을 국가는 존중해야 한다, 국민은 국가에 선행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 뒤에 이어지는 조항들은 신체의 자유에 귀속되는 것들로 거주이전의 자유, 양심의 자유, 직업 선택의 자유 등이 있습니다. 이 내용들은 국가라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자유를 위해 가져야 할 책임과 국가가 국민을 위해 이행해야 할 책무 또한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교육, 근로, 사회보장, 환경, 가정에 대한 국가의 역할에 대한 지침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제15조 모든 국민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가진다.’가 지켜지기 위해서는 국가가 일자리 환경 조성에 힘써야 하며 선발 과정에서의 불합리함, 불평등 또한 관여하고 개선하도록 노력해야 하겠지요. ‘제22조 1항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 2항 저작자·발명가·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를 지키기 위해서 국가는 국민의 학습권이 금전적 상황과 무관하게 평등하도록 보호해야 하고 블랙리스트 따위로 예술 활동의 기회를 제한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법은 무엇인가? 법에 대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악법도 법이다.’ 바로 소크라테스의 말이었지요. 저는 이 말에 대해 주로 악법도 법이니 지키는 것이 마땅한 도리이다, 라는 해석으로 배워왔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의문이 들더군요. 정말 소크라테스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리고 우리의 상황도 같은 것일까? 과거 절대군주 사회에서는 그러한 해석이 맞았을지도 모릅니다. 악법도 법이니 지켜야 하지요. 신의 말씀이니 감히 어길 수 없지요. 그러나 현재의 근대사회에서 법은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절대적이고 선험적인 사회 규칙이 아니라 반대로 권력에 대한 인간의 독점을 방지하고 사회 구성원들을 권리와 의무로 연결시켜 정치 활동의 틀을 제공하면서 역동을 불러일으키지요. 더군다나 민주사회에서 법은 모든 구성원이 법 제정과 수행자로 참여할 가능성을 갖습니다. 대의정치란 법 제정과 수행의 역할을 나눈 것으로 법 집행의 합리성을 보장하면서도 견제 가능성을 둔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민주사회에서 법이 악하다면 바뀔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말은 민주사회에서 이렇게 해석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떤 법은 악법이다. 그러니 법을 맹목하지 마라. 법은 변한다.” 하지만 법을 제정하는 것은 매우 복잡한 과정을 필요로 합니다. 최근 통과 된 김영란법만 하더라도 만들어지기까지 몇 해가 걸렸습니다. 그러한 숙고의 과정을 거치더라도 문제는 발생하고 문제제기도 계속 되고 있지요. 이렇게 보면 법은 아주 단단하고 보수적이고 굳건한, 변하지 않을 기둥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법에도 진보는 있습니다. 이국운 선생님은 법 내부에 아주 재밌는 모순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바로 ‘법 창조’와 ‘법 발견’의 다이내믹스입니다. 법 창조는 법 제정을 말하는 것으로 법 제정자의 욕망과 의지의 결합을 중요시 합니다. 법 발견은 법의 해석을 중요시하며 욕망보다는 이성적 법원리와 의지의 결합입니다. 말이 너무 어렵지요. 저의 식대로 쉽게 풀어보자면, 법을 제정한다는 것은 이 사회에서 지켜지도록 하고자하는 어떤 욕망의 발현이며, 법을 해석한다는 것은 그 욕망을 관통하면서도 어떻게 법이 집행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지라는 것이지요. 어떻게 보면 이성과 욕망의 다이내믹스가 아닐까요? 법은 욕망의 의지이기에 진보할 수 있습니다. 사회 변화에 맞추어 사람들의 욕망은 변화하고 때문에 법에 대한 새로운 요구가 나오는 것이지요. 그리고 법은 해석의 여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진보할 수 있습니다. 과거엔 타당했던 법이 현재엔 악법으로 평가될 수도 있고 인식 변화에 맞추어 과거 판례를 뒤집는 사례가 가능한 것이지요. 근대사회에서 이 다이내믹스는 이런 과정으로 진행됩니다. ‘법 창조의 우위-법발견의 요청-법발견의 우위-법창조의 요청’
헌법재판소는 누구인가? 다시 헌법 내용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 수업은 10조와 37조2항을 중점적으로 다루며 진행되었습니다.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제37조 (1)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 (2)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37조 2항은 국가에게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것은 국가가 책임을 다 하지 못했을 때 면죄부의 근거로 쓰여 왔습니다. 선생님은 10조에 대해 ‘마르지 않는 샘’이라 표현하셨고, 37조 2항에 대해서는 ‘마스터키’라고 하셨습니다. 10조를 근거로 한 소송이 끊이지 않고, 37조2항을 근거로 패소하는 국민 또한 끊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판결들은 37조 2항을 근거로 국가에 대한 국민의 소송을 패소 판결 내려왔습니다. 국가의 안전을 위해서 또는 공공복리의 측면을 따졌을 때 ‘그다지 위법은 아니다.’라는 식으로 말이지요 선생님은 ‘헌법 재판관들은 누구인가?’하는 의문을 던지셨습니다. 어딘가 모르게, 자신들은 국민이 아닌 척 헌법의 화자에서 빠져나와, 국가와 권력과 자본의 편에 서고 있지 않는가? 하며 통탄하셨습니다. 법률가들은 자신들이 법의 화자라는 것을 망각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 앞에 선 저 피고인과 내가 같다, 내가 읽고 있는 이 법문 앞에 나는 얼마나 떳떳한가, 이 법을 나는 따르고 싶은가? 이러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법 해석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재벌의 편이 아닌 국민의 편에, 정부의 편이 아닌 정의의 편에 서는 이성을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명한 ‘배심원’으로써의 헌법재판소가 되는 날을 기대합니다. |
||||
99%를 위한 시민경제교실 | [99%를 위한 시민경제교실] 김상조 교수님의 "구조조정의 정치경제학" | 두둥실 | 2016.10.11 | |
2016년 9월 27일 김상조 교수님의 구조조정의 정치경제학 강의가 있었습니다. 국내외의 경제위기 속에서 우리는 이 난국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이며 나아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 교수님의 날카로운 분석과 냉정한 조언으로 본 강의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한 마디로 이렇게 얘기하고 싶습니다. "신뢰의 경제학" 강의 제목에서 언급했듯, 김상조 교수님의 경제학은 정치적인 관점에서 일련의 사건을 분석, 관찰한다는 점을 일단 밝힙니다. 객관적인 사실에서 정치적 힘의 작동을 읽어내고 이를 경제학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위기속의 한국경제를 진단하고 이를 타개할 정치적 제언을 함으로써 한국경제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합니다. 세계는 불확실성이 정상이 되는 시대로 옮아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이상 높은 성장률로 대변되는 경제는 사라지고 있습니다. 또한 예전과 달리 미국의 경제적 위상도 중국으로 말미암아 세계경제의 패권국 지위를 잃었으며 중국이 미국과의 각축을 벌이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나라는 중국과 동남아의 영향 그리고 인구구조의 변화로 인해 불확실성의 세계에서 경제적 위기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성장과 분배측면에서 난관에 봉착하였고 그 결과 성장산업을 위시로 한 경제적 견인차도 보이지 않으며 나아가 불평등 및 양극화의 심화 현상이 두드러져 국내 경제는 IMF의 표현에 따르면 "온탕속의 개구리", 즉 위험한 경제위기 속에 놓여있는 것으로 판단되고 있습니다. 한국경제는 기존 낙수효과 모델로는 지금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낙수효과 모델에 따라 거시적 순화의 단절측면, 산업간 연관관계의 약화측면, 기업규모별 양극화의 심화 현상을 분석하여 보면 수출중심의 국내경제, 낮은 중소기업의 투자비율, 가계의 지속적인 소득비율 하락, 수출유발계수의 하락, 소규모 기업의 양적 팽창, 소규모 기업의 노동흡수증가, 소규모기업의 낮은 임금 및 부가가치는 우리 경제가 현재의 경제구조로써 지속성장을 하기 힘들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필요한 것은 경제민주화이지만 현 정부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기엔 그 의지가 약해 보입니다. 한국경제는 대기업의 역할에 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기업이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재벌의 경제적집중은 이미 여타 기업간 양극화 현상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재벌의 3세 승계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는 기업의 위기를 초래하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이들 재벌기업들은 방만한 운영으로 인해 구조조정 대상으로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구조조정입니다. '구조조정의 과정'이고 '구조조정의 결과물'입니다. 기업은 내적, 외적 조건으로 인해 언제든 구고조정 당할 수 있으며 이는 경제의 순환과정에 나타나는 당연한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구조조정을 통해 국내 경제는 건전하고 투명하며 건강한 체질을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내 구조조정은 합리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도 법적 제도를 제대로 갖추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국책은행으로 떠넘겨진 구조조정 기업은 여론의 감정적 대응과 정부의 온정적이며 미흡한 대처로 인해 필요한 구조조정 절차는 나타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구조조정 기업 근로자들을 기만하는 구조조정 기업 회생절차는 실제 필요한 정책의 실현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김상조 교수님은 구조조정과 개혁과정에서 나타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 특히 경제 사회적 약자에게 더욱 가혹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되며, 이론으로만 대변되는 해결방법 대신절충적이고 유연한 대응방법이 필요하며 동시에 시의적이고 거시적 정책관점에 부합하는 정책을 추구하고 사회안전망의 구축은 장기적이며 신중하게 추구해야 함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자유주의적 시장화를 이끌어 온 IMF마저 구조조정과 경제개혁의 사회적 충격을 유의해야 한다는 관점의 변화는 우리가 직면한 경제위기가 단순히 규제완화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음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경제정책 컨트롤 타워의 시스템화와 리더십의 강화, 다양한 규율수단의 체계적 합리성 제고, 규칙(rule)의 일관되고 예측가능하며 엄정한 집행만이 이 시대의 불확실한 경제상황을 올바르게 이끌수 있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규칙(rule)에 대해 우리 사회는 숙고해야 합니다.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으로 사회이슈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늘상의 문제를 계속해서 반복시키고 있습니다. 예전의 문제가 또다시 언론을 통해 전파됩니다. 신뢰가 사라진 한국 사회에서 개인, 기업 그리고 정부는 규칙(rule)의 부재로 인해 비협조적이며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합니다. 반추하여 보면 한국 사회의 왜곡된 보상구조가 투영된 것으로 이를 규제, 통제하는 매커니즘의 불충분을 의미합니다. 앞선 밝힌대로 일관성,예측가능성, 집행의 담보가 이루어진 규칙(rule)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선 이를 신뢰하고 점증적이며 반복적으로 실천할 상호신뢰의 구성원이 있어야 합니다. 배신행동과 이를 보복하는 배신행동의 끊임없는 반복은 건전한 경제구조를 구축해야 하는 기업과 개인 그리고 정부간 최악의 보상만을 남겨줄 뿐입니다. 먼저 배신하지 않으며, 과거 상대방의 배신행위를 잊으며, 시샘하지 않는 행동은 우리 시대에 필요한 경제 매커니즘의 초석으로 작용하여 올바른 구조조정, 경제개혁 그리고 나아가 건전한 경제구조를 구축하는데 밑바탕이 될 것입니다. 자원활동가 김경태 |
||||
김만권의 정치철학 - 정치철학으로 그리스 비극을 읽다 | [정치철학으로 그리스 비극 읽기](3) 오이디푸스 왕 | 라봉 | 2016.10.10 | |
그리스 비극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이 계시다면 오이디푸스 이야기를 안 들어보신 분은 없을 것 같습니다. 오이디푸스 비극은 이야기가 만들어 진 시대의 관점에서도 충분히 충격적인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언대로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됩니다. 그리고 종래에는 자신의 눈을 스스로 해한 뒤 도시에서 스스로 떠나게 됩니다. 오이디푸스의 비극을 문학적으로만 읽는다면 ‘운명을 피하지 못한 자의 비극적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0월 5일 있었던 김만권 선생님의 강연에서는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를 ‘문학적 관점이 아닌 정치적’ 관점에서 들여다보았습니다. 정치적인 관점에서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는 “누구도 자신이 행한 행위의 결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입니다.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라는 괴물을 해치우고 왕이 된 자”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업적으로 명예로운 자리에 오른 자라고 할지라도, 지난날에 죄가 있으면 그에 대한 응당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입니다. 오이디푸스는 예언을 통해 자신이 미래에 어떤 잘못을 저지를지 알고 있었습니다. 오이디푸스는 부친살해와 근친상간이라는 죄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합니다. 죄를 짓지 않기 위한 오이디푸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이디푸스는 한순간의 화 때문에 아버지를 살해하게 되고, 어머니와 근친상간하는 죄를 짓게 됩니다. 결국 오이디푸스는 예언되었던 대로 자신의 현재의 죄(미래의 진실)와 마주하게 되고, 이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두 눈을 찌르고 도시를 떠나게 됩니다. 오이디푸스 이야기도 마찬가지지만 그리스 비극에는 ‘합리주의’가 깔려 있습니다. 그리스 비극에서 주인공들은 최대한 이 비극을 이성적으로 접근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하지만, 끝내 이 비극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고 책임을 지게 됩니다. 정치적인 관점에서 이는 “자신이 절대 의도하지 않았던 행위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라는 교훈을 남깁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이디푸스 이야기 또한 (좀 전의 이야기와는 결이 다르긴 하지만)죄를 짓지 않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죄를 지은 사람은 자신이 저지른 죄(진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함을 시사합니다, 이전에 이야기 했다시피 실제로 오이디푸스는 자신에게 내리는 처벌로 자기 자신의 눈을 찔렀고, 스스로 도시를 떠나게 됩니다. 68혁명 그리고 부친살해 오이디푸스 이야기와 함께 이날 강의의 또 다른 주제는 68혁명 이었습니다. 68운동은 ‘시대를 바꾼 혁명’으로서 종종 부친살해로 설명되곤 합니다. 긍정적으로 봤을 때에는 부친이라는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억압적인 체제에 항거한다는 의미이고, 부정적인 이미지로는 아버지를 ‘죽인다는’ 폭력의 개념으로 설명이 되기도 합니다. 68혁명은 프랑스, 독일, 미국, 일본 그리고 (약간은 결이 다르긴 하지만) 중국의 문화대혁명까지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시민들의 항거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변화’를 위해 ‘폭력’을 사용했고, 이 변화를 위한 폭력 사용의 합당함은 여전히 문제로 남아있습니다. 실제로 68혁명은 당시 장기화 되었던 폭력으로 인해 서구에서는 테러리즘으로 보이기도 했고, 중국에서는 실제 엄청난 살생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폭력으로 변화를 만드는데 성공한 사람들이 자신이 사용했던 폭력의 책임에서 자유로워질 수는 없다는 것 입니다. 결국 이들이 사용한 폭력은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변화라는 이름으로 가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
||||
김만권의 정치철학 - 정치철학으로 그리스 비극을 읽다 | [정치철학으로 그리스 비극 읽기](2) 결박된 프로메테우스 | lyh1999 | 2016.10.2 | |
앞으로의 강의를 개괄한 1강에 이어 2강 시간엔 고대 그리스 비극 첫 작품으로 아이스킬로스의 작품 <결박된 프로메테우스>를 다뤘습니다. 아이스킬로스는 지금까지 작품이 전해져내려오는 비극 작가 중 한명이고,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프로메테우스 이야기를 비극 3부작으로 만들었습니다. 잘 알려진대로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줬다는 이유로 제우스에 의해 바위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여먹히는 형벌을 당합니다.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인 <결박된 프로메테우스>는 바위에 묶인 프로메테우스가 이후 헤라클레스를 낳는 이오와 조우해 제우스의 불길한 미래를 예언하고, 마지막엔 바위 전체가 붕괴해 깔리는 (익숙한) 전개를 그대로 따릅니다. 정치철학적 시각에서 <결박된 프로메테우스>는 '참주정'에 대한 비판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참주정은 (완전히 일치하는 개념은 아니지만) 오늘날 독재정치의 형태로 구현되고 있습니다. 프로메테우스에게 형벌을 가한 제우스는 다른 신들과 인간 위에서 전지전능한 수준으로 힘과 폭력을 휘두르는 참주가 됩니다. 때문에 첫 대목에서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는 같은 혈육인 프로메테우스를 자기 의지에 반하여 바위에 묶게 됩니다. 이때 추상적 개념인 '힘과 폭력'이 무대 위 등장인물로 형상화되어 헤파이스토스에게 제우스의 명령을 따르라고 협박합니다. 정치의 수단이 '말'인 반면 참주가 즐겨 쓰는 수단은 힘과 폭력이며, 연민의 감정이 없고, 권력의 편에 서는 등의 특징이 여기서 드러납니다. 반면 오케아노스처럼 제우스에게는 반대하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프로메테우스에게 제우스에게 복종하라고 설득하는 신도 등장하고, 제우스에게 적극적으로 순종하면서 프로메테우스에게 더 큰 파국을 경고하는 헤르메스 같은 신도 등장합니다. 이들 신들은 참주정치 하에서 지식인들이 취하는 다양한 태도(저항/소극적이고 나약한 순종/노예와 같은 복종 등)를 드러냅니다. 한편 프로메테우스가 만나는 이오는 제우스에게 유혹을 받았으나 헤라의 질투로 인해 먼 길을 떠돌고 있는 중입니다. 이오는 참주가 사랑하는 여자들이 어떤 운명에 처하는지를 보여주는 경우로, 참주의 사랑을 얻은 결과가 다른 이들의 시기와 질투에 시달리는 것임을 경고하는 캐릭터입니다. 또한 비극에 늘 등장하는 코러스들은 이 작품에서 프로메테우스의 사연을 들으면서 그에게 연민을 드러내고, 그의 곁을 끝까지 지키다가 프로메테우스의 비극적 운명을 함께 당하게 됩니다. 이들은 참주의 통치에 공포를 느끼면서도 그에 함께 맞서는 도시의 시민들을 상징합니다. 이 작품에서 참주정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참주정 하에서는 오로지 참주만 자유를 누린다. (2) 모든 사람은 노예다. (3) 참주는 배신을 일삼고 친구를 비롯해 아무도 믿지 못한다. (3) 자의적으로 법과 정의를 행사한다. (5) 정치가 책임에 대한 담론임에도 불구 참주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6) 모두가 자신을 사랑하길 원하고, 프로메테우스 같은 다른 이가 사랑을 받음으로써 자기 권력에 위협이 되는 일을 참지 못한다. (7) 헤파이스토스 같이 참주를 돕고 따르는 자도 위험에 처한다. (8) 참주는 말을 통치 수단으로 쓰지 않으므로 말이 통하지 않고 설득당하지도 않는다. (9) 참주를 따르지 않는 자들에게 고통을 주고 이오 같이 참주가 사랑하는 이들도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공포를 퍼뜨린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 같은 참주에게 저항하는 지식인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자신에게 고통을 가하는 참주에게도 바른 조언을 하는 게 지식인의 역할이라는 것이지요. 이로 인해 지식인은 고난을 자초하고 그가 도운 시민들로부터 외면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역할에 충실헤야 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참주에게 순종할 때 지식인이 처하는 가장 큰 불행이란 자기보다 못한 자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플라톤 역시 그런 지식인의 예입니다. 플라톤의 유명한 '동굴의 비유'에서 먼저 동굴에서 풀려나 태양빛을 본 지식인은 진리를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사물의 그림자만을 보고 있는 동굴 속 사람들에게 사실을 알리려고 동굴로 돌아갑니다. 또한 플라톤은 (민주정이 아니라) 철인 통치를 선호했고,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지배자가 철학을 사랑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실제로 참주 디오니시오스를 찾아가 정치적 충고를 전했다가 분노를 사 노예로 팔리는 신세가 되기도 했습니다. <결박된 프로메테우스> 속 지식인상은 이후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카뮈의 <시지프스 신화>와도 연결됩니다. 죽음을 비켜가려고 했다는 이유로 저승에 끌려간 시지프스는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계속 밀어올리는 형벌을 받습니다. 자기 자신만의 기준을 찾기 위해 산 속 동굴에서 수련하던 차라투스트라는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불화를 빚음에도 사람들의 저잣거리로 돌아가기를 반복합니다. 모두 현상이 바뀌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계속 변화를 만들기 위해 시도하는 인물들입니다. 현재의 문제를 바꾸고자 하는 시도는 대개 '그렇게 해도 소용없다'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회의론에 부딪힙니다. 이는 지금의 민주주의, 국가운영, 시민운동 등에서 종종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결박된 프로메테우스>, 동굴의 비유, 차라투스트라, 시지프스 등을 통해 우리는 '비효율성'의 몰락을 자초하면서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인물들을 보게 됩니다. 이들이 받는 고통은 '무엇을 해야 옳은가'라는 의문을 제기할 때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사건들이며, 나아가 정의가 곧 비극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다는 감상도 갖게 합니다. 또한 '변화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변화를 추구하는 목적 자체를 무너뜨리게 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줍니다. |
||||
99%를 위한 시민경제교실 | [99%를 위한 시민경제교실] 정태인 소장님의 "브렉시트, 세계는 어디로" | 두둥실 | 2016.9.27 | |
2016년 9월 20일 오후 7시 정태인 소장님의 '브렉시트, 세계는 어디로'란 주제로 강연을 하셨습니다. 우선 영국이 EU연합에서 탈퇴하게 된 원인에 대해 짚어주셨습니다. 세계는 경제적으로 장기침체국면에 접어들었고 영국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리고 외적으로 이탈리아 은행의 위기가 덧붙여져 영국은 EU연합으로부터 탈퇴하여 경제적 부흥을 희망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영국은 EU연합으로 인하여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악화일로에 있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릅니다. 영국의 EU분담금, 이민정책, 경제학자의 실물경제이론, 다양한 FTA협정은 영국이 EU를 탈퇴할 경우 이에대한 이익을 기대하기 보다 오히려 손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실과 다른 오해와 편견이 왜 영국을 EU탈퇴로 이끌었을까요? 영국은 오랜 역사를 통해 유럽대륙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마샬플랜과 로마조약, 유럽자유무역지대, 스톡홀름 조약 등 영국은 유럽각국과 경제적 교류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유지하길 힘써왔던 국가입니다. 그러나 경제적 실리 없이 영국이 유럽대륙과의 연합을 추구할리 만무합니다. 소장님은 영국이 EU연합에 가입하게 된 경위로 프랑스 드골 대통령의 사임, 영연방의 경쟁열위, 영국 노동당 윌스에 대한 보수당 히스의 승리, 자유무역지대 모델의 붕괴, 1950년대 영국의 상대적 쇠퇴를 멈출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영합한 결과 EU에 가입하게 된 것이라 판단하였습니다. 영국이 브렉시트를 결정하게 된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근거가 정확하지도 타당하지도 않다는 데 브렉시트 결정의 정당성이 약화됩니다. 복지국가건설, 부당한 EU부담금 등을 이유로 설명못할 정치적 선동과 국민의 잘못된 믿음의 만연은 어떤 연유에서 급속하게 영국 전역을 휩쓸 수 있었을까요? 왜 정치권과 언론은 지속적으로 브렉시트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었을까요? 소장님은 이 대목에서 브렉시트 현상을 치킨게임으로 이해해 보고자 하였습니다. 치킨게임은 협동과 배반의 선택지로 상대방을 압박하는 전략입니다. 영국은 EU탈퇴라는 배반카드를 활용하여 EU연합을 상대로 압박전략을 전개하면, 긍정적인 결과로서 자율성이 확대는 결과를 얻거나 또는 부정적인 결과로서 EU탈퇴가 되어 경제적 외교적 불이익을 받게되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그러나 영국은 EU탈퇴의 손해에 대해 부정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배반카드를 활용한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 결과 브렉시트결정가 결정되었고 영국은 협상에서 실패하였습니다. 국내 정치상황을 활용하여 영국 국민들이 EU탈퇴 결정을 할 수 있음을 제시하며 외교적 압박카드를 활용한 영국의 외교 전략의 참담한 실패입니다. 영국 국민에게 잘못된 정보와 믿음을 심어준 브렉시트를 결정하게끔 만든 정치와 언론의 합작품은 영국 국민에게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런데 EU연합을 생각할 때 한가지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재정통합과 통화통합의 문제이며 재정통합은 한 국가의 주권과 직결되는 측면이 있으며 통화통합은 금융정책에 영향을 주는 측면이 있습니다. EU연합은 통화통합정책을 활용하지만 재정통합 정책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EU연합의 각국은 통화통합 여부를 개별적으로 결정하는데 핀란드와 스웨덴의 경우에서 유로를 쓴 핀란드에 비해 자국의 화폐를 사용하는 스웨덴이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EU연합은 그 태생적 특징으로 인해 지역의 불균등한 발전 및 통화의 집중을 막을 수 없고 잉여와 자본의 편중도 막을 수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EU연합과 탈퇴의 각 국가별 경제적 자율성 측면에서 브렉시트를 다시 한번 점검한다면 영국 탈퇴로 인한 EU연합의 충격도 만만치 않을 것이며 EU연합의 지속적 안정을 위해서는 EU의 경제정책도 다변화될 필요가 있다할 것입니다. 브렉시트는 유럽에서 일어난 국지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세계 각국이 긴밀한 연결망을 유지하고 있는 지금 유럽발 경제충격은 세계 곳곳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정치적 사건인 브렉시트 또한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북아시아에도 상당한 여파를 줄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대응과 전략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브렉시트는 경제적 이슈가 점화되어 정치적 사건으로 발화한 것으로 그 경제적 이슈의 중심에 금융자본의 지배가 있습니다. 금융자본이 세계 전역을 무대로 그 지배한계를 넓혀가는 도중 '사회'의 자기 보호운동과 마찰을 빚은 사건에 브렉시트가 있습니다. 금융자본이 무한에 가까운 속도로 이동하며 주권국가의 경제적 자율성을 잠식하고 해당 국가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며 민주주의를 파괴할 때 몇 주전에 목격했던 브렉시트와 같은 정치적 결단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경제적 트릴레마 이론을 변형한 로드릭의 '국제정치경제의 트릴레마' 이론에 따르면 국가주권vs정치적 민주주의vs초세계화 중 두 가지 만을 달성할 수 있으며, 초세계화와 정치적 민주주의는 글로벌 가버넌스를 국가주권과 정치적 민주주의는 브레튼우즈 타협을 국가주권과 초세계화는 금본위제의 족쇄를 형성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 무엇도 아직 현실세계와는 괴리가 많습니다. 브렉시트로 촉발된 경제적 주권회복과 세계화의 접점은 '얕은 세계화'와 같은 개념일까요? 금융자본의 지배와 같은 세계화 현상에 대해 시대착오적인 반대만이 제시된다면 오늘날 급속한 양극화 및 불평등, 내부자와 외부자 문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타당한 대안과 진정한 토론이 극단적인 정치적 스탠스를 배제시키며 국내의 정치경제적 현안을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국외적으로도 각국의 통화, 경제주권을 보장하는 '얕은 세계화'와 사회권을 강화하는 '세계화의 민주화'는 EU연합의 경험으로 반면교사하여 우리나라가 국제적으로 지향해야할 지침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정태인 소장님의 브렉시트에 관련 기고문을 확인해보세요!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40614 자원활동가 김경태 |
||||
진짜 주인 되는 <헌법 제대로 읽기> | [진짜 주인 되는 <헌법 제대로 읽기>] 3강. 통치구조,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 아무 | 2016.9.27 | |
[진짜 주인 되는 <헌법 제대로 읽기>] 3강 통치구조,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한상희 교수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하여 우리의 헌법이 만들어 지며 국민주권주의를 통치를 위한 기본원리로 하고 있다. 이것은 루소가 말한 것과 같이 국민의 대표들을 선출하는 하루만 나라의 주인이 되고 나머지 기간에는 노예로 사는 것과 같은 형식적 국민주권주의가 아닌 실질적이며 반대의제를 의미한다. 칼 슈미트는 민주제의 반대 의미를 군주제가 아닌 대의제라고 말하며 '군주제'가 대표적인 대의제이기도 하다. 현재 한국도 이 대의제를 통치구조로 사용하고 있는데 그들의 캠페인 동안 표방했던 '공약'들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도 이를 강제할 수 있는 장치가 현재는 전무하다. 국가의 통치기구는 권력을 분할하여 권력집중을 막고 있는데 입법, 행정, 사법으로 분리하며 기관으로는 국회, 대통령, 법원으로 분리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상호불간섭을 원칙으로 하는데 견제와 균형을 위한 장치이다. (예외-대통령은 공무원 임명의 권한을 가지는데 2008년 헌법제판소의 이명박 특검에 대해서 권력분립은 지켜져야 하지만 '특검제도는 법의 공정성 및 사법적 정의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본질적으로 권력통제의 기능을 가진 특검제도의 취지와 기능에 비추어 볼 때, 특검제도의 도입여부를 입법부가 독자적으로 결정하고, 특검 임명에 관한 권한을 헌법기관 간에 분산시키는 것이 권력분립의 원칙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라고 하였다.) 정부형태는 대통령제, 의원내각제, 이원정부제, 분권형 대통령제 등이 있다. 의회로부터 독립되어 의회에 책임지지 않는 대통령과 그의 정부가 행정권력을 담당하는 것을 대통령제라고 하는데 현재 한국은 의회와 행정부가 독립되는 않는 경향을 보이고 지나치게 대통령의 권한이 비대화(폭넓은 임명권, 비상대권, 예산재정권 등)되어 있으며 국가정보원 등의 정보기관이 이를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초기 제헌헌법은 의원내각제를 기초로 하여 만들어졌으나 이는 이승만에 의해 대통령제를 기반으로 하는 헌법으로 수정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양당체제의 영국 수상정부제와 다당체제의 독일 건설적 불신입제 등이 의원내각제에 속한다. 또한 현재의 헌법에서 정부형태에 관련한 법률 제66조는 유신헌법을 지금까지 가져온 것으로써 대통령에게 무한한 책무를 주는 것으로 표기했지만 이는 또 무한한 권리 또한 주는 것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국회는 의회주의를 말하는데 선거에 의하여 선출, 구성된 의회가 국가의 주요정책을 결정하며 공개와 토론의 원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 예로 국회의원이 법안 발의를 하려면 10명의 의원 동의를 얻어야 하고 이를 위원회에 보내서 20명 중 15명의 동의가 있어야 법사위로 보내지는데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공개와 토론 그리고 다수결의 원리가 그대로 작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국회는 위원회와 본회의에서 법안이 결정되는데 위원회는 그 내용을 심사하여 본회의에 상정하며 본회의에서는 내용을 분석하지 않고 찬반 결정을 하는 과정을 말한다. 현재 위원회에서는 청문회 등을 직접 열어서 내용의 본질을 좀 더 심도있고 조사/분석할 수 있는 권한이 없는데 이는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다. 또한 국회는 본회의와 위원회는 공개하여 운영하는데 가장 중요한 양당간사회의(기본적인 내용에 대한 토의)는 공개하지 않으므로 이 또한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다. (*Sunshine Act : 모든 회의에 빛이 들게 하라, 즉 모든 부분을 국민에게 공개하라는 의미이다.) 대통령의 지위를 말할 때 대외적 국가대표자로써 인식할 수 있으며 행정부 수반으로써의 지위를 가질 수있다. 하지만 현재 헌법에서 볼 수 있는 유신의 잔재적 지위는 제거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유고(병 등으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및 궐위(사망 등으로 직무수행을 영원히 하지 못할 때) 시에 이의 직무대행은 국무총리가 권한대행을 하도록 되어 있으나 누가, 어느 시점에서 권한을 이양할지 등에 대한 것을 결정할지는 법률에 존재하지 않는다. 대통령 특권 중 전직 대통령 연금은 재임 시기가 아닌 "지급 당시" 대통령 보수년액의 95%를 지급하게 되어 있다. 대통령의 입법 및 사법권은 대체적으로 법률안제출권과 공포권 및 거부권 등이 있다. 그러나 일반/특별사면권은 법원결정을 침해하는 소지가 다분하다. 대체적으로 일반사면은 어떤 사안에 대해서 사면을 해주는 형식이므로 많은 수의 사람들이 이에 속할 수 있지만(예-2015년 1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의 면허정지를 사면한다) 특별사면은 매우 특수한 경우에 한정하여 한두명의 사면을 말한다. 그러므로 그 개인의 이름이 이에 기록된다.(예-평창올림픽 유치를 위한 이건희 사면) 그리고 일반사면은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특별사면은 동의없이 진행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까지의 사면은 특별사면인데(국회 동의없이) 많은 수의 사람이 이유없이 그 범죄를 사면받았다. 이는 사법부의 법집행에 대한 심각한 권한 침해라고 할 수 있다. 대법원은 제헌헌법 이후 여러차례 개헌이 되고 1972년 유신헌법 때 개정된 사항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는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으로 사법부의 독립을 저해하는 요소이다. 추가적으로 권력의 분립은 지방분권으로도 가능한데 이는 자주조직권, 재정독립, 자주입법권이 부여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도시에 몰려 있는 인구와 지방의 소규모인구를 절대적으로 비교하여 선거하고 의사결정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예-성주의 사드배치 관련해서 성주의 대표 의원은 1명일 때 서울의 조그만 행정구역에 여러명의 의원이 존재할 수도 있기 때문에 지역의 대표성을 말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이는 지방분권화를 하여 수직적 수평적 권력분립이 가능하도록 한다. (또한 사드배치는 국제법상 조약에 해당하므로 국회의 비준동의를 받아야 한다.) 헌법개정은 현재까지 국회가 발의 또는 대통령발의로 이루어졌는데 이는 그들이 그들의 이익을 나눠갖는 방식으로 이용되어 왔다. 그래서 '아일랜드 모델'과 같이 국민들이(또는 국민들의 대표들)이 모여 개정안을 만들어가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는 신자유주의의 노선을 택할 것인지(계속 이어갈 것인지) 아니면 복지국가의 방향으로 선회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국민을 배제한 헌법개정은 있을 수 없으며 국민으로써의 권리이자 의무로 이에 적극 참여해야 할 것이다. 자원활동가 : 박진희 |
||||
경계를 넘나든 사랑, 서구소설이 그린 그녀 | [경계를 넘나든 사랑, 서구소설이 그린 그녀] 1강 - 주홍글자 | 지우맘 | 2016.9.13 | |
책 읽기 좋은 계절에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준비한 소설 강좌 ‘경계를 넘나든 사랑, 서구소설이 그린 그녀’ 1강으로 [주홍글자]를 읽었습니다. 멋진 제목 덕분인지, 고전 중의 고전인 좋은 소설들을 엄선한 덕분인지 꽉 찬 강의실은 열기나 넘쳐났습니다. 특히 남자분들이 여럿 보인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
미국의 19세기 소설가, 허먼 멜빌과 함께 비로소 미국문학의 기틀을 만든 작가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글자’는 아주 흥미로운 책입니다. 소설은 미국의 꿈을 안고 메이플라워 호를 타서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인들의 뉴잉글랜드 사회에서 벌어진 간통 사건을 둘러싼 이야기입니다.
책에서 읽은 인상적인 문구들을 함께 나누는 것으로 강좌가 시작되었습니다. 김명환 선생님의 한시간 남짓 강의를 통해, [주홍글자]가 쓰여진 배경과 당시 미국 사회 그리고 미국 문학의 흐름을 상세히 짚어주었습니다. 소설 속 인물들과 이야기에만 주목했던 우리들은 이러한 배경 이해 덕분에 큰 그림 속에서 소설을 깊이 이해할 수 있었지요.
우리들은 벌어진 사건 자체보다도 네 명의 주인공 인물들에 주목했습니다. 주홍글자를 형벌로 가슴에 달고 살아가야 하는 헤스터 프린(Hester Prynne), 그녀의 불륜 상대인 딤즈데일 목사(Rev.Arther Dimmesdale), 그들의 딸 펄(Pearl), 그리고 헤스터의 전남편 로저 칠링워스(Roger Chillingworth).
저는 헤스터 프린의 모습에서 긍정적이고 선도적인 여성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작가 호손은 그녀가 점차 공동체의 치유자, 조력자, 사회복지를 실현하는 자로 그려, 권위와 높은 권세를 가진 남성들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여성이 공동체의 회복에 적격이라는 메시지를 준다고 보았습니다. 헤스터는 죄와 고통을 겪으면서 단련되고 슬픔의 시간을 거치면서 점차 자신의 가진 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슬픔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해줍니다. 세월이 흐르며 그녀는 치유자이자 멘토가 되었습니다. 다른 분들도 이 부분 말씀하셨지요. 왜 고통받는 여인들이 목사나 신 앞에서가 아닌 죄인 헤스터에게 죄를 고백하는 지에 대해.
헤스터의 가슴에 붙어 있는 글자 A의 의미는 그로 인하여 Adultery (간통)에서, Angel (천사), Able (능력)으로 변해갑니다.
그러나 호손은 초자연적인 몽상적인 스타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동시에 애매하고 모호한 표현들을 중간중간에 쓰고 있어 호손의 여성관이 과연 진보적인지 보수적인지 잘 이해가 안 된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사회 변화를 위해 ‘다른 모든 난관을 극복하면 마지막으로 여성 자신이 보다 더 큰 변화를 겪어야 이런 예비적인 개혁이 득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문장들이 그렇습니다.
수강생들은 네 명의 주인공들 중에서 누가 가장 고통받는가 생각해보았습니다. 한 분은 전에 여성학자 정희진씨가 홍상수, 김민희 커플의 연애로 가장 고통받는 자가 누구인지 질문을 던졌던 것을 빗대어, 소설 속 인물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에 대해 다들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로저 칠링워스라는 분도 있고 딤즈데일 목사라는 분도, 혹은 어린아이인 펄이 가장 고통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었어요.
주홍글자를 가슴 속에만 간직하고 고백하지 못하는 딤즈데일 목사는 너무 약하고 비겁하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특히 헤스터가 칠링워스에 대해 전남편이라는 걸 알렸을 때 헤스터를 비난하지요. 그는 ‘헤스터 당신은 가슴에 숨김없이 주홍글자를 달 수 있어 행복한 거예요’라고 말하기도 하고 ‘오 헤스터 프린 당신은 이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모를 거예요’라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딤즈데일 목사가 그토록 괴로워하며 왜 도망치거나 고백하지 않은지 의아해하는 분도 계셨지요.
한편 펄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펄의 내면이 어떠한지, 왜 펄의 모습을 묘사할 때 왜 늘 자연 (꽃, 물, 하늘)이 등장하는지에 대해 질문이 나왔습니다. 주홍글자의 화려한 현신인 것 같은 펄의 상징도 생각해보았고요.
칠링워스의 변화와 인간됨에 대해서도 동정하는 분들과 비난하는 분들이 다양했습니다. (특히 한 남자분이 남편으로서의 칠링워스를 혹독하게 비난해서 기억에 남습니다. ^^) 저는 칠링워스가 신 앞에 오만한 인간의 과학기술의 맹신의 상징이기도 하다고 여겼습니다. 이성/과학 문명이 신의 질서를 압도할 수 있다는 당시 믿음에 호손은 부정적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너무나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과 질문이 많아서 두시간 반의 강의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네요. 같이 수강하는 제 친구는 나중에 문자가 와서 ‘고전은 파도 파도 끝없이 나오는 샘물 같다’고 너무 재미있는 강의였다는 말을 하더군요. 그렇습니다. 고전의 바다는 그렇게 깊습니다. 다음 시간에 읽을 플로베르 소설 ‘마담 보바리’도 아주 기대가 됩니다. |
||||
김만권의 정치철학 - 정치철학으로 그리스 비극을 읽다 | 정치철학으로 그리스 비극 읽기(1), 아리스토텔레서의 <시학> | 라봉 | 2016.9.22 | |
자유인들에게 왜 연민과 공포가 ‘필요’했을까? 자유인들의 도시(국가). 그리스 아테네 하면 가장 떠오르는 말이다. 고대 아테네에서는 특정 전문가가 아닌 자유인(시민)들의 토론과 합의로 법이 만들어졌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들만의 문명을 발전시켜 나갔다. 당시, 아테네 시민들은 자신들이 합의한 사항(법)에 대하여 “성벽을 지키듯이 지켜야 한다”고 이야기 할 정도로 자신들이 만든 법에 대한 준수를 강조했다. 시민들이 법안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고, 법에 대한 준수를 강조했다는 것은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의지하지 않고 법에 의지하는 것을 정치의 상태로 본 것이다. 이와는 반대 상태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야만적인 것으로 인식했다. 자유로운 시민들의 합의(법에 대한 준수)는 곧 아테네 시민들에게 공동체 안에서의 주인의식을 심어주었고 자부심을 가지게 했다. 그런데 이런 자유인들의 공동체에서 시민들에게 돈을 주고서라도 비극을 보게 만들었다고 한다. 왜 아테네에서는 다소 납득하기 힘든 일이 벌어졌을까. 그리고 이러한 비극들을 시민들에게 접하게 하는 것이 아테네에 무슨 도움을 준 것일까
비극의 필요성
아테네 비극에는 간사한 인물 혹은 이간질 하는 인물들이 잘 등장하지 않는다(우리가 기성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비극 작품들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하지만 아테네에 있었던 비극 작품 속 주인공들은 이런 장치들 없이도 비극적인 상황을 겪게 된다. 주인공들이 과거에 했던 선한 행동들조차도 미래에 비극적 상황과 연결되는 경우가 있고, 비극적 상황을 인식하고 벗어나고자 노력해도 실패하는 모습들을 목격할 수 있다. 이러한 아테네 비극의 특징은 비극의 당사자인 주인공들이 어떠한 선택과 행위를 하든 비극적인 결과가 나왔을 때 당사자들이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하는 위치에 있음을 이야기 한다. 모든 불행은 자신들이 했던 모든 선택과 행위에서 연유하며, 후에 이로 인한 책임에서(혹은 이러한 책임을 지우는 운명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말한다. 아테네 비극 작품들의 이런 모습은 현실 정치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정치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이 선택한 행위에 대해 누가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그것은 공동체를 이끄는 정치지도자부터 공동체에 속한 단순한 구성원들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적용된다. 다시 말해서 정치는 지도자의 문제가 아니라 구성원들 각자가 어떠한 방식으로건 결과에 대하여 자신들이 했던 선택과 행동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함을 이야기 한다. 그것이 선한 선택이든, 악한 선택이든 간에 말이다. 그리고 아테네의 비극에서는 이러한 정치에서의 책임의 중요성을 ‘극’의 형태로 풀어낸 것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비극 작품을 쓴 작가들의 면모를 보면 평범한 시민이 아니라 아테네 도시 내에서 나름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정치가들이었다. 비극 작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통해 시민의 자율성을 형상화 했고, 이것을 교육적 목적으로 활용했다. 또한, 책임을 진다는 것을 통해 아테네의 시민들이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우리’라는 존재로서 같은 의식을 반드시 공유함을 이야기 한다. 즉, 비극은 자유인들이 정치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든 하나의 교육 프로그램이었다고 볼 수 있다. |
||||
진짜 주인 되는 <헌법 제대로 읽기> | [진짜 주인 되는 <헌법 제대로 읽기>] 2강. 헌정사 | 박윤채영 | 2016.9.22 | |
지난 시간 우리는 헌법의 주어, ‘대한국민’이 함의하고 있는 선언에 대해 배웠습니다. 헌법에서 대한국민들은 이 나라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존중하되 절대적 지도자의 통치체제에서 탈출하여 ‘평등하고 자유로운 개인들의 공동체’로써의 대한민국을 만들어갈 것을 헌법 전문과 제1조에서 선언하고 있습니다. 특히 1조 2항,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선언은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그 특수성을 등에 업고 독재를 시도하려는 이들의 출현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국가의 부재’, ‘지도자의 부재’, ‘나약한 정치’ 등이 많이 언급되는 요즘, 우리 대한국민에게 단호한 질문과 따끔한 일침을 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헌법은 한 국가 구성원들의 행동 지침이면서 동시에 그 국가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담은 선언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즘 국민의 대다수는 헌법에 무지하고 무관심한 것 같습니다. 단지, 낮은 시민의식 탓일까요? 스스로 대한국민임을 선언하는 것에서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 부르며 ‘차라리 독재자가 낫다’는 말까지 나오는 지금에 오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누가 헌법을 국민으로부터 격리시킨 걸까요? 48년 5월 10일 선거를 통해 제헌국회의원 198명이 선출되었습니다. 이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임기를 2년으로 정하고 그동안 헌법과 그와 관련된 법률을 만들었습니다. 이때 웃을 수 없는 해프닝이 하나 있었는데요, 바로 대통령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원래 제헌국회의원들은 의원내각제의 정치체제를 선택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씨가 ‘그러면 나 안해’라고 한 거죠. 그때 이승만씨는 부정할 수 없는 실권자였기 때문에 제헌국회의원들은 ‘그럼 하지마’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헌법에 이런 내용을 추가하게 됩니다. ‘대통령은 4년으로 국회의원들이 선출한다.’ 국회의원들은 국민이 뽑고 대통령은 국회의원들이 뽑는 이상한 모습이었지요. 이승만씨를 달래듯이 추가 된 내용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당시 국민들에게는 비극적 결과를 초래했지요. 제헌헌법에서 대통령은 선출은 국민들에 의하지 않지만 군사지휘권, 비상입법권한 등 국가를 좌우할 많은 권한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발발하니 한강다리를 끊고 도망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2년 후, 제헌국회의원들의 임기가 끝나고 1950년, 한국 정치 역사에서는 사실상 최초의 선거가 실시됩니다. 국민들은 새로운 국회의원들에게 많은 표를 주었습니다. 최초의 정치적 의사 표현이 바로 ‘새정치’였던 거지요. 그러나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국회 원구성을 다 마치기도 전에 6.25 남북전쟁이 발발하였고 제2대 국회는 무산되고 흩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쟁 중에 국회의원들은 어렵게 다시 모입니다. 그러나 일부는 죽고, 일부는 월북하는 등의 이유로 애초의 선거 결과와는 다른 원구성이 될 수밖에 없었지요. 52년 대통령 임기의 끝을 앞두고 정치권에는 의견 충돌이 생겼고 큰 정치투쟁이 발생합니다. 바로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충돌이었지요. 당연히 이승만계는 대통령제를, 한민당계는 의원내각제를 주장했고 싸움 끝에 대통령제를 유지하되 국민 직선제로 하고 상원의원을 두는 것으로 타협되어 개헌됩니다. 이것이 국민들의 의사가 첫 번째로 왜곡 된 사건입니다. 54년이 되어야 국가의 중대사항은 국민투표를 거쳐 가결되는 조항이 신설되지요. 이후 박정희, 전두환 등의 독재를 거치면서 헌법은 여러 차례 바뀝니다. 독재자들에게 헌법은자기 정치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놀이판일 뿐이었습니다. 4.19 혁명은 의거로 절하되고 5.16이 혁명으로 명시되는가 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공화국을 건설한다며 자화자찬했습니다. 특히 헌법 제1장 총강을 보면 그들이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가 드러나곤 하는데요, 박정희씨는 제6조에 최초로 공무원을 언급합니다.
제6조 1항 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2항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유신헌법에서는 ‘국민의 주권은 대표자나 국민투표에 의해 행사된다.’, ‘국가의 존립에 위해될 때 국가는 정당을 해산할 수 있다.’는 내용이 추가되고, 총강 다음 제2장에는 대통령에 대한 내용을 싣는 것으로 대통령의 위상을 국민 위에 두게 됩니다. (참고로 현재 헌법에서 제2장은 국민의 권리와 의무입니다.) 제5공화국 헌법, 전두환씨가 대통령이던 시절의 개헌 내용에서 눈에 띄는 것은 전문입니다. 먼저 ‘평화적 통일과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이라는 말이 추가된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것은 겉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요, 민족과 역사적 ‘사명’이 묶인다는 것은 대한국민의 개개인의 고유성 이전에 민족과 국가가 위치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한국민들은을 국가로부터 자유로운 개인이 아닌 국가에 귀속 된 대한민국 국민들(Nation)로만 호명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눈여겨 볼 것은 전문 마지막 줄입니다.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1960년 6월 15일, 1962년 12월 26일, 1972년 12월 27일에 개정 된 헌법을 이제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1960년 6월 15일은 이승만 대통령 시절, 62년 12월 26일과 1972년 12월 27일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개정 된 헌법들입니다. 특히 72년은 유신헌법입니다. 이것들을 전문에 적는다는 것은 이들에게 그만큼의 권위를 주는 것입니다. 정당성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인정하겠다는 거지요. 이후 전두환 정권이 물러가고 87년 10월 29일 개정된 것이 현재의 헌법입니다.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을 사명으로 하며 자율과 조화의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질서로 삼고 있습니다. 헌정사를 ’8차에 걸쳐 개정‘되었다고 정리함으로써 독재정권의 역사를 수용할 것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이국운 선생님은 과거 쓰신 글, ‘미완의 프로젝트-48년 체제와 대한민국’에서 ‘아직 우리 헌법은 미완된 프로젝트이다.’라고 주장하셨습니다. 48년 스스로들을 대한국민이라고 선언한 이래 너무 많은 사건들로 인해 그 선언을 충분히 실현할 기회를 갖지 못했고, 국가는 민주화 등의 사건들을 통해 법치를 원칙으로 삼으며 헌법을 판결의 기초로 삼게 되었지만 국민들은 헌법으로부터 멀어져 거의 격리되어 버린 것입니다. 저자가 자신이 쓴 책 내용을 다 까먹어 버리고, 저자라는 정체성까지 상실한 꼴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늦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구태의연하게도 대한민국이라는 프로젝트가 완결될 있다는 가능성으로 기울고자 한다.’ 선생님이 제시하신 48년 헌법에서 주목할 부분은 네 가지입니다. 1)민주공화국: 자치 공화국, 권력의 분산과 대표기관들의 협력과 견제. 2)경건한 세속국가: 각 개인은 국가에 선행하는 절대 불가침의 존재이다. 3)공영의 논리-역사적 조건에서: 공동체로써의 국가와 민주적 자유시장경제 4)헌법적 시민들의 희생: 헌법적 가치 실천을 통한 민주시민 재생산 *사견을 덧붙이자면 현 시대의 맥락상 여기서 쓰인 ‘희생’이라는 표현이 오해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바로 제가 그랬습니다. “엥, 왜 여기서 또 희생이 언급되지.”라는 생각이 본능처럼 들더군요. 열정페이, 국가적, 사회적인 개인희생권유 등의 이유로 요즘 ‘희생’은 알러지를 일으키는 단어인 것 같습니다. 제가 이해하기로 선생님이 사용하신 희생은 종교적 의미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그 희생에 대해 저는 ‘타인을 위한 개인적 희생이 아닌 나를 포함한 공동체를 위한 실천, 훼방세력으로부터 가치를 지키기 위해 어떤 개인적 손실들이 발생하게 될 때 그것 또한 공동체의 것으로 수용될 수 있는 상태.’ 라고 이해해 보았습니다.
물론 48년 헌법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헌법보다 진보한 부분들이 상당히 많고 특히 공동체를 바라보는 관점과 철학에 있어서 과감한 선언들이 담겨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베끼는 것이 아니라 48년 헌법을 당시 시대적 맥락과 함께 헌법을 쓴 마음을 헤아리며 읽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무상교육’에 대한 선언을 이렇게 읽는 것입니다.
“독재 제국들과 왕조에게 빼앗겼던 우리 대한국민들의 노동의 산물, 그들이 도망치며 버리고 간 이 재산들을 어떻게 나눠가질 것인가? 우리들의 자유를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까막눈 아이들을 위해 공동의 재산으로 사용하자. 의무교육은 ..... 무상으로 하자.” ‘법은 해석의 문제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어렸는데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충격과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학교 교육에서 학습한 규칙은 절대적이며 타협 불가능한 것이었는데 규칙을 해석할 수 있다는 새로운 길을 알게 됐던 겁니다. 이번 수업에서 저는 좋은 해석을 위해선 그 뿌리를 알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법에도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표면에 드러난 악의적 법 적용에 휘둘리지 말고 ‘실재’를 보아야 한다는 것도 배우게 됩니다. (성실함과 근면함을 요하는 일들이라 자신은 없지만요..) 경계해야 할 오해도 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헌법을 공부한다는 게 국가의 충성을 학습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사실 저는 국가라는 것이 추상적이면서 폭력적인 정치적 도구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너무 많은 폭력들이 이루어져 왔고,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으니까요. 국가라는 경계가 우리를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경계를 위한 울타리라는 생각 또한 합니다. 전쟁과 난민, 북한 지원 정책 등의 뉴스를 접할 때면 인터넷에선 무의미해진 국경이 왜 현실에서, 특히 정치적으론 이렇게 계속 강조되는 것일까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국가에 선행하는 국민(People)의 개념으로 국가를 바라보면 그런 국가와 국경은 하나의 선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같은 가치관과 문화를 공유하는 공동체, 그 공동체의 정체성을 선언하고 방향성을 기록한 지도가 바로 헌법이 아닌가 싶습니다. |
||||
진짜 주인 되는 <헌법 제대로 읽기> | [진짜 주인 되는 <헌법 제대로 읽기>] 1강. 헌법 1조 읽기: 민주공화국에서 시민으로 산다는 것 | 아무 | 2016.9.15 | |
[진짜 주인 되는 <헌법 제대로 읽기>] 1강. 헌법 1조 읽기: 민주공화국에서 시민으로 산다는 것
여기에 헌법의 저자이자 참여자로써의 헌법 전체를 이끄는 ‘주어’가 등장한다. 대한민국 헌법의 주어인 “우리 대한국민”은 헌법 전문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설명한다. 대한민국의 출발은 대한국민의 자의식 단절에 있다. 역사의 연장선상에서 “자유” 그 이전과 이후의 단절을 의미하는데 특정계급의 지배를 받는 백성이 아닌 “자유”가 있는 시대가 펼쳐졌음을 의미한다. 또한 이 ‘자유’는 스스로 광야로 탈출하는 자유이며 똘레랑스의 자유이다. 그리고 이 ‘자유’는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공통적인 점을 찾아내는 ‘중첩적 합의’의 자유가 필요하다. 그런데 남북 분단과 한국 전쟁 등으로 인하여 대한민국 헌법은 똘레랑스의 자유에 대해 직접적 언급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는데 ‘우리 대한국민’의 자유가 완결적으로 설명되기 위해서는 탈출의 자유와 중첩적 합의의 자유 사이에 똘레랑스의 자유가 확보되어야 한다. [참조: 세바시-“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읽는 세 가지 방식” 이국운 교수] 헌법 제1조 제1항은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말한 뒤에 그 국가가 민주공화국이라고 선언한다. 이 민주공화국 프로젝트는 일차적으로 자유의 프로젝트이고 민주(평등)의 프로젝트이기도 하며 공화의 프로젝트(자유와 평등, 자유와 민주의 모순적 길항관계를 그 중 어느 한 쪽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해소하는 것을 거부하고 끊임없이 그리고 끝까지 양자를 조화하며 타협시키려는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고 법치의 프로젝트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헌법 제1조 제2항은 비상사태를 이유로 민주공화국 프로젝트를 질서와 권위와 집권을 프로젝트로 바꿔치기 하려는 권력자들에게 강력하고 엄중한 경고를 보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우리 대한)국민에게 있”으므로 비상사태를 명분으로 감히 주권자를 참칭하려는 모든 시도는 헌법적으로 부정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민주공화국 프로젝트가 위기에 봉착한 비상사태에 처해서도 ‘우리 대한국민’의 헌정 권력을 되살리는 방식으로 하루빨리 정상적인 헌정에 복귀하게 하려는 것이며, 나아가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을 ‘우리 대한국민’의 역동적 참여에 연결시킴으로써 그와 같은 위기를 예방하려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헌법의 주어를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다소 생소한 시각이라 조금 충격적이면서 감동적이었다. 또한 우리는 그동안 자유와 평등에 대해서는 익히 안다고 생각했지만 공화의 노력은 거의 없지 않았던가 느끼게 되었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대화'처럼 우리 주변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이 모여 나라에 대해서 토론하고 그것들을 바탕으로 헌법개정 등에 이른다면 매우 이상적인 민주공화국에서의 시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원활동가: 박진희
|
||||
알고보면 더 재밌다 : 미국대선 따라잡기 | <미국 대선 따라잡기> 4강 후기 | lyh1999 | 2016.7.23 | |
7월 14일 김만권 선생님의 <미국 대선 따라잡기> 마지막 강의입니다. 1. 한국에서 미국 정치를 보면 대통령의 존재가 압도적으로 보이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미국의 국회가 가진 권한이 생각보다 막강합니다. 그리고 상하원 의원들이 미 대선에서 실질적으로 대통령을 뽑는 선거인단 역할을 하게 되지요. (상원의원 100명 + 하원의원 435명 + 워싱턴DC 선거인단 3명) 한국에선 번역상 "상원"과 "하원"으로 되어있지만 두 의회의 지위는 같습니다. 의회가 강한 권력을 갖는 이유는 예산지출을 승인할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특정 부분에 예산을 덜 쓰고 있다고 판단되면 더 쓰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에 비해 한국 국회는 연말에 예산안을 심사할 권한만 갖고 있습니다.) 의회에서 예산지출을 승인하지 않으면 정부 운영이 중지될 수도 있는 상황이 올 수 있고요, 트럼프 후보가 기상천외한 공약을 남발하고 있지만 국회에서 통과시켜주지 않으면 실현될 수 없는 것이지요. 따라서 대통령은 어떤 정책을 실현하고자 할 때 각 주 정부와 주 의회뿐만 아니라 상원 하원을 설득해야 하는 처지가 됩니다. 상원은 국방과 외교, 하원은 경제와 재정 분야에서 대통령을 견제하게 되는데, 의회의 힘이 강하다보니 대통령이 실제 사안을 논의할 때 내각보다 상하원의 상임위원회 위원장들을 더 많이 상대하게 되는 현상도 벌어집니다. 미국의 선거제도는 소선거구제이고 의원 선거 등에서 정당이 특정 후보를 '꽂는' 방식의 공천이 불가능합니다. 때문에 정당에서 강력한 지도자가 나오기 어려운 환경이고, 상원과 하원에서 각각 다수를 차지한 정당에서 뽑힌 상원의장과 하원의장이 사실상 정당의 리더 역할을 하게 됩니다. 2. 올해 미국 대선 후보를 뽑는 경선 일정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살펴봅니다. 미국의 대선 경선은 민주당과 공화당의 전당대회에 참가하는 대의원(민주당 4,673명 공화당 2,472명)을 가장 많이 확보하는 후보가 승리하는 레이스입니다. 각 후보는 전당대회에서 치러질 투표에서 대의원의 과반수 이상으로부터 표를 얻어야 합니다. 다만 민주당의 경우 712명의 슈퍼대의원(전직 대통령 부통령, 상하원 의원 등 당 지도부)를 경선 대상에서 제외해놓고 있고, 공화당도 비선언대의원이란 이름으로 자유 의사에 따라 투표할 수 있는 대의원들을 따로 남겨두고 있습니다. 미국 대선 일정은 매번 바뀌지만 각 달에 어느 주가 경선을 치르는지 정도는 정해져 있습니다. 또한 텍사스, 뉴욕, 캘리포니아 등 미국에서 가장 큰 3개 주의 경선 일정은 서로 겹치지 않도록 합니다. 2월부터 경선 레이스가 시작되는데 아이오와 코커스, 뉴햄프셔 프라이머리 등을 치르고 3월달에 "슈퍼 화요일" "미니 슈퍼 화요일" 등을 거치면 후보 윤곽이 거의 드러납니다. 특히 아이오와, 뉴햄프셔, 네바다, 사우스 캐롤라이나 4개 주는 통상적으로 "미국 대선이 여기서부터 시작된다"고 여기는 지역들입니다. 올해 경선 결과를 자세히 찾아보려면 구글에서 검색 언어를 영어로 설정하고 "2016 presidential primary"라고 검색하면 AP뉴스 데이터를 기반으로 구글이 각 주의 경선 일정과 경선 결과를 정리한 그래픽 검색결과가 자동으로 나옵니다. 이걸 참조해도 좋고, 미국의 각 유력 언론사들의 홈페이지에 있는 인포그래픽 자료를 찾아봐도 좋습니다. 민주당의 경우 아이오와 코커스(2월 1일)에서 힐러리와 샌더스가 서로 접전을 벌였고, 뉴햄프셔 프라이머리(2월 9일)에선 샌더스가 이기면서 바람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네바다 코커스(2월 20일)와 사우스 캐롤라이나 프라이머리(2월 27일)에서 힐러리가 이기면서 기선을 잡기 시작합니다. 사우스 캐롤라이나가 힐러리에게 우호적인 지지자가 많은 지역이었기 때문에 샌더스로서는 네바다에서 진 게 치명타였던 것으로 분석됩니다. 힐러리의 우세는 여러 주에서 동시에 경선을 치르는 3월 1일 슈퍼화요일과 3월 15일 미니 슈퍼화요일까지 이어집니다. 그러나 이후 치러진 경선에서 샌더스가 차례로 이기기하면서 힐러리가 쉽게 승리를 확정지을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때문에 뉴욕의 경선 결과가 중요해졌는데요, 뉴욕은 선거인단 수가 많을 뿐더러, 힐러리의 지역구이자 샌더스의 출신지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샌더스가 패한 이유로는 월스트리트 금융가의 이해관계의 지배를 받는 미디어들이 샌더스를 공격한 점, 열풍이 불면서 지지자가 대거 늘어나기 전에 뉴욕의 유권자 등록이 마감된 점 등이 거론됩니다. 뉴욕은 펜실베이니아와 뉴저지 등 다른 주와 투표성향이 비슷해 이후 경선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샌더스에게 또다른 치명타로 남았습니다. 공화당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이번 공화당 경선은 무려 17명이 입후보하면서 미국 정당 역사상 가장 많은 후보들이 난립한 경우였습니다. 그러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된 트럼프나 크루즈는 당에서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강경 우익이었고, 대신 젊은 정치인인 마르코 루비오를 밀려는 움직임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뉴햄프셔에서 치른 토론회 중에서 루비오가 대본을 외워서 토론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유능한 정치인 이미지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으면서 밀려납니다. 때문에 공화당에서는 크루즈도 트럼프로 지지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들이 망설이게 되는 상황이 오게 됩니다. 트럼프는 아이오와에서 졌지만, 이후 사우스 캐롤라이나(2월 20일), 네바다 코커스(2월 23일) 등 세 차례 경선에서 이기면서 기선을 잡습니다. 그리고 4월 이후 치러진 경선에서도 이기면서 후보 확정을 사실상 확정짓게 되는데, 트럼프의 승리는 1위 득표 후보가 그 주의 대의원을 모두 얻는 승자독식 또는 승자다식 방식의 주에서 이긴 것이 주효했던 것으로 분석됩니다. 민주당의 경선은 득표 비례에 따라 대의원을 확보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여론조사와 실제 대의원 확보 결과가 비슷하게 나옵니다. 반면 승자독식/승자다식 방식이 많은 공화당은 트럼프가 실제 지지도에 비해 많은 대의원을 가져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는 것이지요. 7월중 치러지는 민주당과 공화당 전당대회에서는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를 공식지명합니다. 경선을 통해 사실상 후보가 확정돼있기 때문에 대통령 후보 지명은 형식적인 절차인 측면이 있습니다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전당대회 투표에서 과반수 승리가 나오지 않으면 중재전당대회를 다시 치르면서 과반수 승리자가 나올 때까지 투표를 반복합니다. 이때 대의원들은 경선 결과와 달리 자기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투표할 수 있고, 당지도부에서도 대의원들에게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링컨과 루즈벨트가 1차 경선에서 졌지만 재투표를 통해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사례가 있습니다. 때문에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트럼프의 과반 득표를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나오기도 하는 것입니다. 반면 부통령 후보 지명은 경선에서 미리 논의하지 않으므로 전당대회에서 주목해야 할 요소입니다. 각 정당은 경선을 치르면서 당내 갈등이 심해졌기 때문에 부통령 지명을 갈등 봉합을 위한 수단으로 쓰려고 하게 됩니다. 때문에 라이벌 후보를 그대로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거나, 반대파나 소수자를 고려한 지명을 하게 됩니다. 대통령 후보를 북부 사람으로 뽑았다면 남부 사람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한다거나, 젠더나 인종 등의 요소를 고려하는 것입니다. 3. 이번 민주당 경선은 전반적으로 네거티브 캠페인이 없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측면이 있습니다. 힐러리가 이메일 파문으로 곤경에 빠졌는데, 샌더스가 이를 가지고 공격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행정 경험이 풍부한 힐러리나, 불평등 문제를 적극 거론한 샌더스나 민주당에겐 둘다 내세우기 좋은 일종의 '꽃놀이패'라는게 김만권 선생님의 평가입니다. 반면 트럼프는 최근 선거자금 모금이 잘 안되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고 합니다. 힐러리는 경선이 끝난 지금도 하루에 거액을 광고를 위해 쓰고 있는데 트럼프 쪽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지요. 돈을 많이 쓴 후보가 승리해 오면서 금권정치 문제가 부각된 최근의 선거 배턴으로 볼 때 선거자금 이슈는 앞으로도 꾸준히 주시해야 할 지점입니다. 마지막으로 불평등 문제를 거론한 샌더스 열풍을 다시 한 번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샌더스의 경우는 영국에서 젊은층의 지지를 꾸준히 받으면서 당수 자리에 오른 제레미 코빈을 본 미국의 응답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양극화 및 불평등 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로서 유의미하다는 것입니다. 한국 역시 미국의 불평등 문제를 따라가고 있는 측면이 크고, 나아가 '인구의 절반이 직업을 갖지 못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민주주의의 정상적인 작동, 자유와 정의를 실현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특히 영국의 코빈, 미국의 샌더스를 본 한국의 젊은이들이 어떤 응답을 내놓을지 앞으로 기대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
||||
<토크워크숍> 현경과 함께, 이 시대 혁명과 영성을 만나다 | [토크워크숍] 현경과 함께 이 시대 혁명과 영성을 만나다 (7/11,13) 후기 | 박윤채영 | 2016.7.20 | |
[토크워크숍] 현경과 함께 이 시대 혁명과 영성을 만나다 (7/11,13)
현경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영성은 Inner Guide, 내면의 길잡이로 이미 우리 안에 존재하는 힘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마음이 깨어졌을 때 비로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영성은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깨어진 마음의 틈새에서 발견하는 빛줄기들의 통합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통합이 일어났을 때 우리 내면은 치유됩니다.
영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한 세 가지 물음이 있습니다.
“내 스스로에게 진실한가.”
“나는 그것을 표현하는가.”
“그 표현에 대해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세 질문 중 ‘표현’과 ‘책임’에 대한 물음이 바로 혁명과 이어지게 됩니다.
선생님은 ‘가장 나다운 게 신성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회와 상호관계를 맺게 되기 때문에 ‘온전한 나’는 ‘사회와 나의 관계’를 빼놓고선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회에 길들여지는 것과는 다른 일입니다. 사회와 나의 관계를 이해해야 하는 이유는 나라고 생각한 것 중에 ‘사회적인 것’을 구분해 내고 동의할 것과 동의하지 않을 것을 선택하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동의하지 않는 것을 표현하는 일, 지키는 일, 이게 ‘혁명’입니다. 현경 선생님의 말대로 옮기자면 ‘개인의 영성을 꺼내는 일은 그것을 꺼내지 못하게 하는 구조를 바꾸는 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표현만 하고 끝난다면 그것은 단편적인 발산에 그치게 될지도 모릅니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자신의 표현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데서 완성됩니다. 저는 이것을 강의에서 배운 네 분의 선생님들의 삶 속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도로시 데이(Dorothy day)는 Cathoric Workers 잡지를 만든 저널리스트이자 사회운동가로 가톨릭 사회 정의 운동을 일으켰고 여성 참정권 운동, 노동운동, 평화운동 등을 시민 불복종, 비폭력 저항의 방식으로 했던 분입니다. 자신이 있는 곳을 변화시키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움직이셨고 공동체를 만들어 생산과 소비가 일치하는 삶을 실천하셨습니다. 최대한의 자선을 정의라고 믿으셨던 분이기도 합니다.
도로시 데이가 만든 공동체는 현재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여전히 사람들은 노동을 통해 자신이 먹을 것을 생산하고 자선을 베풀며 자본주의와 세계의 폭력적 일들에 대해 시민불복종의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King)은 흑인 인권 운동가로 아주 유명한 분이죠. 이분의 가장 큰 공은 시민들이 스스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의식을 심어 주었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 분도 간디에 영향을 받아 비폭력 저항을 했는데요, 보이콧 운동, 행진 등의 방법이 있었습니다. 스스로를 “정의와 평화와 올바름을 위해 계속 드럼을 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틱 낫한(Thic Nhat Hanh)은 베트남 승려로 현재도 생존해 계십니다. 베트남 불교 계파 중 아무 데에도 속하지 않고 접현종을 창설하여 청년 불교 운동을 펼치셨다고 합니다. 스님의 제자들이 바로 베트남 전쟁 때 분신한 스님들이었다고 합니다. 가장 주요한 가르침으로는 “Inter I Inter Being” “Do not take side” 등으로 ‘실천’을 강조하는 가르침을 해오셨습니다. 주요 저서로 ‘마음 챙김의 기적’이 있습니다. 스님은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과 베트남군을 구분하지 않고 치료하고 음식을 주어 국가를 배신했다, 이단이다, 등의 비판을 받았고 베트남 정부에 의해 추방을 당해 프랑스로 넘어가 불교 심리학을 전공하셨다고 합니다. 스님은 지금도 세계에 폭력적 상황에 가장 먼저 가시는 분입니다 9.11 테러가 났을 때도 가장 먼저 그곳에 가서 현장을 어루만지고 법회를 하셨다고 합니다.
저는 틱 낫한 스님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서 깊이 차분해지는 저를 느꼈습니다. Don’t take side, 라는 가르침은 제게 오랫동안 풀리지 않았던 갈등에 대한 위로와 답이 되었습니다. 평소 저는 '경계'에 대한 의심과 의문 가끔은 반발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국가를 나누고, 적을 분류하고, 편을 선택하고, 동일한 행동과 판단의 요구가 폭력의 고리를 유지시킨다는 느낌을 받곤 했기 때문입니다. 먼 과거에는 학교 친구들과의 관계를 시작으로 가장 가까운 예로는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때였습니다. 살해의 죄는 절대적으로 악하고 유죄이지만 그 사람을 무조건 '나와는 다른 이상한 남성' 또는 '정신병자'로 사건을 해석하려는 사람들의 시선이 저는 불편했었습니다. 그런 식으로는 근본적인 문제에 도달하지 못할 것 같았거든요. 가해한 사람의 마음을 이해해야 재발을 방지 할 지혜가 나오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같은 문제의식이었을 것 같은데, 한때 SNS에서는 남성들 사이에 '나는 잠재적 가해자 입니다.'라는 태그 운동이 일었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해 매우 불편한 감정을 표현하는 남성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몇 번의 논쟁을 하면서 저의 질문은 더 강해졌습니다. "누구를 위해 경계를 만드는 것일까?"
경계를 뛰어넘은 틱 낫한 스님의 행보는 매우 감동스럽습니다. ‘적이 곧 나이다.’ ‘죄인이 곧 나이다.’ 이 가르침에 대해 더 듣고 싶으시다면 스님의 시 ‘Call em by my true name’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앨리스 워커(Alice Walker)는 미국의 민권운동, 여성운동, 평화운동가이면서 시와 소설을 쓰는 분입니다. 미국의 페미니즘 운동에 흑인 여성이 소외되어 있다는 모순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며 Womanism, Womanist 라는 말을 처음 쓰셨던 분이기도 합니다. 믿는 것을 삶으로써 실천하는 여성으로 그 실천은 백인과 흑인의 결혼이 금지된 주에서 백인과 혼인하는 식의 도발적 방법들이죠. 이 분의 영감의 원천은 자연이라고 합니다. 글을 쓰기 전 자연 속을 산책하다 보면 인물들이 뱀이 되어, 꽃이 되어 말을 걸어온다고 합니다. 판타지스럽게 느껴지지만 깊은 명상의 과정을 그렇게 설명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분들의 삶이 우리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한국 사회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 그것이 현경 선생님이 저희에게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이러한 분들의 ‘영성의 포현’에 영향을 받고 또는 수혜를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이어나가려 노력하는 것이 염치이자 도리이자 ‘나’라는 존재의 삶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렵고 고독하고 때론 위험했던 그분들의 삶의 10%만이라도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틱 낫한 스님께서 직접 만드신 만트라를 옮겨 적겠습니다. 단순한 것이 동요 같지만 유심히 생각하면 그 깊이가 끝이 없을 것 같은 문장들입니다.
수업 시간에 현경 선생님이 한글로 번역하셔서 다 같이 불렀답니다.
나는 꽃이네 나는 피어나네
나는 이슬이네 나는 신선하네
나는 산이네 나는 단단하네
나는 땅(지구)이네 나는 든든하네
*함께 만트라를 읊는 소리를 녹음했습니다. 당시엔 몰랐는데 다시 들으니 정말 '만트라'네요. 파일로 첨부하여 공유합니다.
|
||||
잊혀진 혁명가들 : 조선 공산주의 운동과 인물들 | 잊혀진 혁명가들 : 조선 공산주의 운동과 인물들 2 | lyh1999 | 2016.7.13 | |
7월 6일 진행된 박노자 선생님의 <조선 공산주의 운동과 인물들> 두 번째 강의 시간입니다. 평소 자주 거론되는 주제가 아니다보니 생소하게 여기실 분도 많으리라고 생각되는데요, 두 번째 강의 시간은 첫 번째 시간에 이어 공산주의 운동가들을 추가로 소개하면서 지금 시점에서 이들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탐색하는 방향으로 진행됐습니다. 1. 공산주의의 내용이 이상적이지만 실현 불가능한 일종의 유토피아를 그리는 것으로 종종 인식되지만 박노자 선생님은 조선시대 공산주의 운동가들의 주장에 의외로(?) 현실적인 부분들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지금 시점에서 봐도 시급히 이뤄야 할 유의미한 주장들이 많다는 것이지요. 예컨대 노동자 해방, 노조 등 결사의 자유를 주장한 것이 그렇습니다. 지금 한국은 집회를 열었다는 이유로 노조 활동가에게 징역형을 선고하는 나라이죠. 토지개혁 같은 문제도 그렇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 토지개혁을 거론한 것은 조선인 대부분이 농민(소작농)이었고 식량 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공산주의자들이 지금 한국사회를 봤다면 주택문제 해결을 의제로 제시했을 겁니다. 그 외에도 기층대중의 권익이 보장되는 근대, 철저한 밑으로부터의 민주화, 온전히 독립된 민족국가 실현, 민중적 활동의 자유 등이 그렇습니다. 다소 추상적으로 들리는 이야기일수도 있겠습니다만,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분단체제 및 미국보호령 상황 해소, 경찰탄압 중지, 학생들의 완전한 자유연애, 부동산 부자에 대한 과세 강화 등등의 목표가 이들 구호와 연결돼 있고 아직 한국에서 실현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2. 임화의 근대론 당대의 대표적인 사회주의 문학가로 꼽히는 분이죠? 임화가 활동하던 시대 그가 가졌던 의문은 왜 식민지조선에서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가 하는 점이었다고 합니다. 공산주의 이론에 따르면 탄압받는 '밑'(프롤레타리아)으로부터의 계급운동과 혁명이 자연스럽게 발생해야 하고, 그러자면 당시 식민지조선만큼 '약한 고리'도 없지요. 그러나 현실은 일본이 세계대공황을 파시즘으로 극복하려 하면서 공산주의에 탄압을 가하고 오히려 많은 조선 인사들이 전향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임화의 답은 조선의 근대가 '이식된 근대'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문학의 관점에서 보면 문학이란 '상부구조'가 발전하기 위해선 토대 역할을 하는 '하부구조'가 존재해야 하는데, 조선은 태생적 결함으로 자본주의를 스스로 탄생시킬 수 없었고, 일본을 통해 이를 이식받아야 했습니다. 임화는 신소설이나 조선 프롤레타리아 문학도 일본에서 이식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 결과 조선의 근대화는 압축적이고 파행적인 양상으로 진행됩니다. 정작 프롤레타리아들은 계급운동이나 혁명에 관심이 없고 일부 지식인들이 공산주의 운동의 방향을 놓고 파벌다툼을 벌이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죠. 프롤레타리아 문학에서도 실제 계급현실에 기반하기보단 도식적이고 관념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몇몇 아시아 국가들이 '토착적 자본주의'를 탄생시켰다고 평가받는 현재 임화의 '이식된 근대론'은 지나치게 서구중심적이라는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후 한국의 지식담론 역사를 보면 그의 비판을 곱씹어볼 지점들이 분명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예컨대 과거 한국에서 유행했던 종속이론 같은 경우도 한국의 노동계급이 자연스럽게 생산한 것이 아니라 지식인들이 외부에서 수입해서 한국의 상황에 적용하려 했던 것이죠. 3. 허정숙, 주세죽, 박진홍 등 "붉은 여성"들의 연애론 여성 혐오 문제가 뜨거운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지금 강연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대목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성문제에 있어서도 가장 급진적이고 본질적인 문제제기를 했던 이들은 여성 공산주의자였다고 합니다. 과거의 정조 개념을 타파하고 여성의 경제적 독립과 남녀평등을 주장함은 물론, 자유연애를 지지하면서도 그 안에 존재하는 한계들도 비판합니다. 이들의 연애론을 들여다보면 이렇습니다. 이들 여성 공산주의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정체성 중 하나는 "운동가"였습니다. 이들은 운동하던 남편이 감옥에 들어가자 다른 동지와 연애 관계를 맺거나(허정숙), 부부간에 호칭을 "집사람"으로 통일하는 등(박진홍) 남녀평등을 일상에서 실천하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나아가 동지와의 연애 후 허물없이 동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관계가 단수일수도 복수일수도 있다고 보는 태도도 나타납니다. 당시 공산운동이 남녀평등을 지향하면서도 실제로는 여성의 역할은 아지트 키퍼 같은 부차적인 수준으로 제한하는 경우가 흔했다는 것, 남성 공산주의자들도 연애보다 계급운동을 우선시하면서 금욕주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등 젠더 문제를 유보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이들의 연애론은 당시 조선 사회에서 굉장히 파격적인 것이었습니다. 이들 신여성 자체가 조선사회에서 매우 드무었을 뿐더러, 그 때문에 매체 일각에서는 이들의 "붉은 사랑"을 퇴폐적인 가십으로 다루려 하는 시각도 나타납니다. "여성이 이렇게까지 막 나갈줄이야" 식의 선정적인 어조의 기사가 많았던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주장은 현재에도 유효한 것이 많습니다. 허정숙은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하면서 기사에서 여성들이 집안에선 아버지/남편, 집밖에선 노동자로서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있으며 그래서 여성의 경제적 독립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한편 현재 한국 경제 역시 여성들에게 집중적으로 비정규직을 떠맡기거나 무급노동(가사노동, 가족의 사업 돕기 등)을 강요함으로써 작동하고 있습니다. 김옥엽이 "청산할 연애론"에서 쓴 자유연애 비판도 눈여겨봐야 합니다. 자유연애가 봉건시대에 비교했을 때 진보적인 것은 사실이나, 자유연애 개념에는 다음과 같은 한계가 있습니다. 첫째 자유연애 자체가 어느 정도 재산을 지닌 유산계급이어야 할 수 있는 것이고, 둘째 아무리 자유연애를 부르짖을지언정 실제 결혼에서는 계급의 논리가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들은 자유연애가 일상화된 지금에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3. '전위당 이론'과 유기적 지식인 당시 공산주의자들의 주장에 혁신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반면 비판받을 지점이 있는 것도 사실인데요, 당과 대중을 수직적인 관계로 놓는 계몽주의 패러다임에서 끝내 자유롭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파업을 지도자에 의해 "영도"되어야 하는 것으로 보는 인식, 운동을 통해 "대중을 획득한다"는 표현, 개인숭배까진 아니더라도 레닌 같은 지도자를 피라미드의 상위 위계에 올려놓는 사고방식 등이 그렇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 공산운동이 보였던 문제점들이 이후 한국 좌파운동에서도 반복돼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학벌의식이나 운동가들이 노동자 위에 군림하려는 의식, 여러 운동 노선 간의 갈등, 운동 안에서 민주성이 얼마나 확보되었는가 하는 의문 등이 그 예입니다. 이에 대한 비판이 당시 공산당에서도 제기됩니다. '당이 지식인에 의해 영도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1930년대엔 일선 노동자 출신 운동가들이 그람시적 의미의 '유기적 지식인'으로서 공산운동을 주도하게 됩니다. 철도 노동자 출신으로 조선공산당 책임비서 자리까지 오른 차금봉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5. 박치우의 민족주의 비판 박치우는 박노자 선생님이 지금 시점에서 재발굴할 가치가 높다고 꼽은 공산주의 논객인데요, 1930년대와 해방 이후 신문 칼럼을 통해 자유, 파시즘, 민족주의 등의 개념을 흥미롭게 다뤘다고 합니다. 박치우의 관점에서 근대는 잠재적으로 파시즘을 가능성을 가진 것으로 파악됩니다. 자본주의의 위기 단계에서 자본주의의 문제점들을 해결하지 않으면 파시즘의 도래를 막을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시민계급의 자유를 통해 움직이는 자본주의는 이 과정에서 시민들을 조직 안에서 '통제'하려고 드는 자기부정에 빠집니다. 특히 최근 영국의 브렉시트 논란처럼 몇몇 국가들이 다시 국가경제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을 박치우의 관점에 비춰보면 이들 현상이 신자유주의의 위기가 부른 일종의 '퇴락'일 수 있다는 것이죠. 박치우의 민족주의 비판도 파시즘이 민족주의를 동원한다는 지점에서 나옵니다. 그는 타이나 폴란드 등을 주목하면서, 자기 국가를 '피의 공동체'로 부른다는 점에서 이들 국가를 움직이는 지배이데올로기가 파시즘이라고 봤습니다. 이들 국가처럼 식민지화를 겪지 않은 후진사회는 자연스럽게 파시즘으로 떨어질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박치우는 파시즘이나 극우민족주의가 민족을 "피"나 "흙" 등으로 정의하지만 실제 민족은 "의식", 즉 "자각"의 공동체라며 민족성의 긍정적 의미를 살리려면 민족문화부터 발전돼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6. 결론 조선 공산주의자들은 당대 조선에서 계급/민족/노동/여성/이성 등등의 가장 충만한 해방을 추구한 이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판적 자율성을 확보한 개인상을 추구한 점, (파시즘의 특성인) 신비주의를 배격한 점 등에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번 강연을 통해서 살펴본 공산주의 사회세력은 해방 후 남한과 북한 모두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소멸했다는 점이 한반도 현대사의 비극이라는 게 박노자 선생님의 지적입니다. 남한에선 반공의 이름으로 탄압받았고, 월북한 이들도 북한에서 자기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덧붙여 이번 강의를 통해 언급된 인물들에 대해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좀더 자세한 자료를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드라마에서 중요하게 언급된 인물도 있고, 박헌영과 주세죽의 연애사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
||||
알고보면 더 재밌다 : 미국대선 따라잡기 | <미국 대선 따라잡기> 3강 후기 | 새로나기 | 2016.7.13 | |
<미국 대선 따라잡기> 3강은 미국 대선의 쟁점을 이해하기 위한 배경으로서 불평등과 포스트민주주의에 대해 넓은 안목을 가질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현재 미국의 쟁점은 '부의 불평등 심화'인데요, 이러한 불평등은 경제적 영역에서 정치적, 사회적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으나, 제도권 정치의 해결 의지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죠. 시작에 앞서, 역사비평 2016년 봄호에 실린 김만권 선생님의 <'샌더스'와 '코빈' 신드롬>을 읽어보시거나, 참여연대 팟캐스트 <톡톡! 철학 사이다 - 불평등 특집>을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전후 세계를 이끌어갈 경제 시스템으로 케인스의 브래튼 우즈 체제(Bretton Woods System)가 구축됩니다.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 IBRD(국제부흥개발은행), IMF(국제통화기금)를 중심으로 국제 질서를 마련한 이 체제는, '자본에 국적을 붙이는 것'을 지향했습니다. 케인스 경제의 기본 철학인 총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민족국가'가 적합하였기 때문이죠. 그러나 1970년대 오일쇼크와 인플레이션 이후, 소위 서방의 경제 선진국은 국내의 총수요가 소비하지 못하는 잉여생산물을 내다팔 곳이 필요해집니다. 즉, '민족국가'라는 경계가 불편해진 것이죠. 이를 배경으로 1980년대 미국과 영국은 신자유주의 전파로 지구화를 주도합니다. 이들은 WTO(세계무역기구), World Bank(세계은행), IMF를 활용해 지구적 무역 및 금융 질서를 장악하게 됩니다. '워싱턴 컨센서스'로 불리는 이 지구적 경제 질서 아래, 국가의 경계는 낮아지고, 이들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경제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예외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1997년에 돈을 빌리면서 IMF의 강력한 규제 아래 구조 조정을 실행하며 노동의 유연화로 인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 가장들의 자살이 연이어 발생하기도 했죠. 한편, WB의 최대 주주가 미국, ADB의 최대 주주가 일본임을 견제하며 중국이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설립으로 대응, 자국 위주의 경제 질서('베이징 컨센서스') 재편을 꾀하고 있습니다. '워싱턴 컨센서스' 하에 초국가기업은 그 규모 면에서 국가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진 존재로 변모합니다. '월마트'에 210만명, '맥도널드'에 170만명에 고용되어 있거나, 한국의 10대 재벌의 매출 비중이 전체 GDP의 85%를 차지하는 것 등이 그 사례입니다. 따라서 정치가는 기업에 의지하고, 국가는 법인세를 낮춰 기업의 탈국가를 방지하게 됩니다. 토마 피케티는 초국가적기업이 주도하는 경제적 불평등의 원인을 노동이 아니라 자본이 더 많은 이익을 취하고, 더불어 이런 자본이 세습되는 경향을 꼽습니다. 신자유주의 질서 아래 경제적 지구화는 저개발국 뿐 아니라, 발전된 국가의 노동자에게도 피해를 줍니다. 예컨대 제조업이 중국으로, 서비스업이 인도로 아웃소싱되는 것이 그 사례죠. 결국 선진국, 기업가들 위주로 무역의 이익이 돌아가며 이것이 임금으로 분배되지 못하여 계층의 불평등이 심화됩니다. '20:80'의 사회를 넘어, '1:99' 사회로 양극화가 진행된 것입니다. 이 문제는 '무엇을 소비하는가'가 정체성을 결정하는 오늘날, 소비할 수 없는 인간은 쓸모 없는 존재로 전락되고 맙니다. 이러한 불평등은 영국와 미국에서도 극심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래리 바텔스는 피케티의 데이터를 사용해 1980년과 2005년 사이 미국의 세전 실질소득 총증가분의 80% 이상이 최상위 1%에 집중되었음을 지적합니다. 또한 바텔스는 미국의 경제적 불평등과 정치 간의 인과관계를 발견하였는데, 그에 따르면 지난 6년간 상원의원들은 소득분포 하위 3분의 1에 해당하는 유권자들을 위한 정책에 매우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빈곤지역인 뉴올리언스를 강타했을 때, 정치인들은 복원사업에 사실상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음을 사례로 제시하였습니다. 한편, 지그문트 바우만은 지구화 과정이 대량해고를 통해 잉여노동력을 배출하는 과정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죠. 포스트민주주의 사회는 민주주의의 특성을 지니고 있으나, 직업구조의 변화나 초국적자본의 영향력 증가 등을 배경으로 정치의 에너지와 활기가 민주주의 이전 시대의 소규모 엘리트와 부유한 집단에게로 돌아가는 특징을 보입니다. 이는 민주주의 정당 모델의 동심원 구조에 변화를 가져옵니다. 정당의 강력한 지도자를 핵으로, 정당 소속 국회의원, 정당활동가, 진성당원, 유권자의 순서로 점점 더 커지는 동심원 구조에서, 강력한 지도자와 기업가(혹은 시장 권력)가 타원형의 구조로 바로 연결되며 확실한 결탁구조를 형성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과거 시민권의 이루였던 권리들이 민영화되거나 민간 위탁되면서 시민들은 권리를 상실하는 것이지요. 포스트민주주의 하에서는 절차를 밟는 것만으로도 민주주의로 인정되거나, 좋은 서비스가 아니라 좋은 관계가 유의미하게 작용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이러한 지구화가 만들어낸 불평등사회에서, 지구화를 주도한 미국과 영국에 각각 '샌더스 신드롬'과 '제레미 코빈 신드롬'이 일어나면서 제도권에서 불평등을 극복하려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김만권 선생님께서 불평등을 바라보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많은 이야기들을 압축적으로 들려주신 시간이었습니다. 수업의 말미에는 '노동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화두로 '기본소득', '기초자본'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벌써 다음 차시가 마지막 강의네요! 전당대회를 앞두고 마지막 시간에 어떤 이야기들로 마무리될지 기대가 됩니다. |
||||
알고보면 더 재밌다 : 미국대선 따라잡기 | <미국 대선 따라잡기> 2강 후기 | lyh1999 | 2016.7.7 | |
6월 30일 김만권 선생님의 미국 대선 따라잡기 두 번째 시간입니다. 1강에 이어 미국 정당체제의 특징을 살펴봤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엔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만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외의 제3정당은 분명 존재합니다. 루즈벨트 대통령 같이 무소속으로 당선한 경우도 있고요. 그러나 실제 선거가 양당제 시스템으로 치러지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1) 당비를 내는 '진성당원'을 우대하는 제도가 미국엔 없고, 버니 샌더스처럼 당원이 아닌 사람도 각 당에서 입후보할 수 있습니다. 외부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당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개방성을 양 당이 지니고 있기 때문에 제3정당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입니다. (2) 각 주에서 정해놓은 선거 규칙에 제3정당이 성장하기 어려운 제한들이 많습니다. 예컨대 대선 후보 출마를 위해선 일정한 수의 서명 숫자를 채워야 하는데 대규모 조직이 없는 제3정당들은 이런 조건을 만족시키기 어렵습니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가 확산된 이래 양당의 이념적 색채가 강해졌다는 특징도 들 수 있습니다. 과거 미국 정당은 지나치게 이념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자유주의를 대변하는 공화당과 민주주의를 대변하는 민주당이 서로 경쟁해야 책임정당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공화당은 보수 우익 계열로, 민주당은 중도 계열로 이동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념적 일관성은 생겼지만, 공화당 내 자유주의자와 민주당 내 보수주의자 같은 온건파가 당 내에서 사라졌고, 양당이 서로 대치만 할 뿐 제도적 완성은 낳지 못하는 교착상태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1강부터 시작된 이상의 내용을 바탕으로 미국 선거제도를 구체적으로 살펴봅니다. 시스템이 매우 복잡한데, 핵심은 현재 미국 선거가 금권정치, 즉 돈이 많을수록 승리하는 문제가 악화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은 50만개 이상의 공직을 선출 방식으로 뽑지만 선거 참여율은 다른 국가에 비해 매우 낮습니다. 여기엔 미국 유권자들이 정치에 무관심하고 무지하다는 비판도 나오지만, 제도적으로 선거 참여를 가로막는 측면도 강합니다. 미국에서 선거에 참여하려면 각 주에 유권자 등록을 미리 해야 하는데, 이 절차가 까다롭고, 주에 따라 전과자들에게 유권자 등록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게다가 유권자들이 선거일은 알고 있어도 유권자 등록 마감일은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선거에서 불리하다고 여기는 후보들이 유권자 등록 마감에 대해선 홍보하기를 꺼려하기 때문입니다. 뉴욕의 민주당 대선후보 선거에서 실제 분위기는 버니 샌더스에게 더 우호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힐러리 클린턴이 당선된 것도 유권자 등록을 한 달 전에 미리 마감했기 때문에 당일 분위기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측면이 크다고 합니다.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위해서 사상 최대의 천문학적인 자금을 썼다고 하죠? 미국에서 공직 선거에 뜻이 있는 사람은 무엇보다 선거자금 모금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TV에 나오는 소위 '의견광고' 같은 미디어 광고에 특히 돈이 많이 든다고 합니다. 필요한 만큼 선거 자금을 모을 수 없어서 미국 대선 후보를 뽑는 선거 투어 도중에 후보를 사퇴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라고 하죠.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 역사적 흐름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일단 미국 정치자금에 대해서 알고 넘어가야 합니다. 크게 하드 머니(hard money)와 소프트 머니(soft money)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전자는 후보들에게 직접 기부할 수 있지만 단체는 기부가 불가능하고 기부 액수 등에 대한 제한도 엄격합니다. 반면 소프트 머니는 그런 제한이 없지만 개별후보가 아닌 정당 건설 활동을 위해서만 써야 한다는 조건이 붙습니다. 그래서 미국 정당들은 우회로를 택하게 되는데, 후보들에 대한 지지 여부 대신 특정 이슈에 대한 찬반 의견 메시지를 실어서 광고에 소프트 머니를 대량으로 쓰는 것이죠. 미국 선거가 낙태, 동성애, 인종문제, 총기 같은 특정 이슈 중심으로 흘러가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이후 2002년 미국 의회에선 중요 선거자금 규제법안을 통과시켜 소프트 머니의 편법적인 사용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연방 정부 단위의 선거에서 소프트 머니의 사용을 금지하고, 선거 전 일정 기간 동안 이슈광고 자체를 제한하는 것 등이 이 법의 내용입니다. 하지만 정당들은 여기에서도 우회로를 찾아냅니다. 연방 세법 527조에 의거해 정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비영리 단체인 소위 '527 단체'들이 등장합니다. 이들 단체들은 면세 혜택을 받는데다가 자신들이 지지하지 않는 후보들에 대한 공격적인 광고를 쏟아부어 논란을 일으킵니다. 이어서 등장한 단체가 최근 많이 언급되고 있는 PAC(정치활동위원회, Political Action Committee)입니다. 연방선거자금법은 미국정부와 계약관계에 있는 노동조합과 기업들이 PAC을 통해 정치자금을 형성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PAC은 특정 후보에게 직접 기부를 할 순 없지만, 대신 특정 후보의 당선이나 낙선을 위해 모금한 돈을 쓸 수 있습니다. 하드머니를 기부할 수 없는 기업, 노조 등 단체들의 우회로가 생긴 것이죠. 미국에 존재하는 PAC이 수천 개에 달한다고 하는데요, 이 중 금권정치의 정점에 있는 것이 거액을 보유한 부자들과 기업들로 구성된 "슈퍼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활동은 2010년 미 연방 법원의 판결로 뒷받침되고 있습니다. '스피치 나우' 시티즌스 유나이티드' 등 시민단체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은 특정후보와 결탁되지 않은 한 자금모금이나 이슈 광고 등을 제한할 수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PAC의 무제한적인 모금을 허용하게 된 근거로 '표현의 자유'가 동원된 것입니다. 버락 오바마의 연설 능력이 주요한 장점으로 꼽히고 있는 이유, 버니 샌더스의 선전이 놀라운 이유 역시 이러한 금권정치의 실정에서 비롯됩니다. 모금 능력이 곧 정치인의 능력으로 치환되는 상황에서 오바마의 유연한 스피치만큼 사람들이 기부하도록 설득하는데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죠. 반면 샌더스는 슈퍼팩의 지원을 거절하고 소액기부 위주로 캠페인을 펼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강한 자금 화력을 지닌 클린턴과 대등한 경쟁을 펼쳤으니 놀라운 것으로 평가를 받는 것이죠. 미국 대선은 예비선거 - 전당대회 - 대통령선거 크게 세 단계로 치러집니다. 대부분의 주는 대통령 후보 지명을 위해 예비선거를 거칩니다. 실제 대선이 선거인단의 투표로 치러지기 때문에 예비선거는 실제 유권자들에게 후보 선택의 기회를 준다는 점, 정당의 통제력이 약하고 예상 밖의 후보가 대통령 후보로 등장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한편 주마다 선거규칙이 제각각인데, 정당에 당원으로 등록한 사람에게만 투표를 허용할 것이냐, 정당소속을 표명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투표를 허용할 것이냐 등등의 기준에 따라 Closed Primary, Semi-closed Primary, Open Primary, Semi-open Primary 크게 네 가지 방식으로 나뉩니다. 프라이머리 대신 '코커스(Caucus)' 방식을 택하는 주도 있습니다. 경선을 가장 먼저 치르는 주인 아이오와가 대표적입니다. 코커스는 미국 원주민 언어로 "함께 모여 큰 소리를 냄"이라는 뜻인데, 유권자들이 모여서 긴 토론을 거친 끝에 투표로 지지 후보를 정하는 방식입니다. 예비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자신이 지지할 대통령 후보를 뽑아줄 대의원을 선출하고, 이들 대의원들이 공화당과 민주당 전당대회에 모여 대통령 후보를 지명합니다. 예비선거 과정을 통해 대통령 후보는 실질적으로 이미 확정되기 때문에 후보 지명은 형식적이지만 여기서 부통령 후보를 함께 지명하고, 후보 지명 과정에서 분열된 당을 다시 단합시키기 위해 반대자들을 포용할만한 정당 공약을 발표합니다. 실제 대통령 선거는 유권자들이 대통령 선거인단에게 투표하고, 이들 선거인단이 다시 투표를 치러 대통령을 선출하는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선거인단은 상하원 의원과 워싱턴 자치구 의원 3명으로 구성된 538명의 선거인단으로 구성되는데, 각 주는 상원의원 2명에 인구비례에 따라 각기 다른 숫자의 하원의원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마다 선거인단 숫자는 3명에서 55명까지 크게 차이를 보입니다. 대부분의 주들이 승리한 후보에게 선거인단을 몰아주는 승자독식 방식을 택하고 있기 때문에 캘리포니아, 텍사스 등 선거인단을 많이 보유한 주에서 승리하는 게 후보들에게 중요합니다. 반면 이 때문에 엘 고어처럼 유권자들에게서 많은 표를 얻었더라도 선거인단 선거에서 밀려서 낙선하는 경우도 생기게 되지요. 한국의 대선에 비해 굉장히 복잡한데요, 김만권 선생님은 디테일에 매몰되기보다 현재 미국 정치의 복잡성과 결함이 어디서 왔는지를 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지적하셨습니다. 금권정치가 대표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을텐데요, 미국의 기업과 부자들은 한 사회의 룰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세팅해줄 편을 끊임없이 탐색해왔고 이를 위해 돈의 힘을 무제한적으로 동원해왔고 이것이 불평등문제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샌더스가 이번 대선에서 이슈화시킨 것 역시 불평등문제였음을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한국 역시 이 현상을 따라가는 측면은 없는지 살펴보는 게 미국 대선을 관전하는 우리의 과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
잊혀진 혁명가들 : 조선 공산주의 운동과 인물들 | <잊혀진 혁명가들 : 조선 공산주의 운동과 인물들> 1강 | 오하라 | 2016.7.3 | |
잊혀진 혁명가들 : 조선 공산주의 운동과 인물들 1강 6월 29일 수요일, 박노자 선생님의 강의가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진행됐습니다. 여유를 두고 준비한 자리가 모자를 정도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수강하셔서 시종일관 열기가 느껴졌습니다. 이날 강의를 통해 조선시대 공산주의 운동가들을 중심으로 당시의 공산주의 운동에 대한 오해와 실제에 대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 아래는 박노자 선생님의 강의를 필기한 내용을 정리합니다. 왜 조선 공산주의인가 식민지시대의 공산주의와 조선의 공산주의는 다른데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당시 모스크바에서는 중국과 더불어 조선이야말로 혁명적으로 공산주의가 발현된 나라였다고 평가했으며 조선 공산주의의 운동역량에 상당한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1925년 4월 20일 조선 공산당 창당 이후 당원은 400명 정도였습니다. 당시 인구에 비해 활동하는 공산당원의 수가 적은 편이었습니다. 많은 탄압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지식인들은 친 공산주의자들이 많았고 대부분 사회주의에도 친화적이었습니다. 수는 적었지만 영향력 부분에서는 작지 않았습니다. 이들을 통해 조선의 공산주의는 대중운동으로 발전했습니다. 지도자의 위치에서 있었던 친 공산주의자들 덕분이었습니다. 당대인들의 입장을 이해하기위해 우리는 공산주의 운동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 조선 공산주의에 대한 오해 첫 번째 오해는 공산주의는 망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공산주의는 현재까지 실제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중국의 경우 통치층이 상당부분 계승되기도 했으며 러시아는 소비에트 체제로 가야한다는 것에 50% 이상이 동의를 하고 있습니다. 망했다는 표현이 아닌 혁명이 보수주의 체제에 젖어들어 자본주의 체제에 영입되었다고 봐야할 겁니다. 두 번째, 공산주의 자체가 유토피아를 설정하고 시작된 것이라는 오해입니다. 하지만 당시 실제로 구체적 계획이 논의됐었으며 현실적이고 구체적이었으며 조선의 독립에 대해서도 얘기할 정도로 대중적이었습니다. 조선에서 활동하던 공산주의 혁명가들을 통해 오해와 실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조선 공산주의 운동의 현실적, 구체적 상황인식 1) 조봉암 화요계로 유학파 출신이었으며 원칙주의자에 계급이념이 투철했습니다. 1925년, 그는 조선혁명해서 공산주의, 민중민주주의를 도입해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앞섰다고 평가를 받았고 결국 강령을 수정했습니다. 민족혁명을 통해 독립을 하고 민주혁명을 통해 85%의 농민에게 토지를 재분배 하자는 주장을 했고 이는 당시 다수 조선인들이 생각했던 새로운 세상의 모습이었습니다. 당시의 공산주의가 얼마나 현실적이고 구체적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2) 박헌영 박헌영의 “8월 테제”는 진보적 민주주의를 쟁취해야 한다는 것을 기치로 내걸었습니다. 토지를 민중에게 돌려주고 대규모 자본을 국유화 해 운영해야 하며 친일파를 압박해서 재산을 몰수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민주민족혁명에서 근대적 기초를 쌓아 공산혁명을 이뤄야 해방이후에도 유지가 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주장은 좌파와 우파에게 동시에 비판을 받았습니다. 좌파에게 두 단계 혁명은 덜 급진적이기 때문입니다. 국가 간 연속된 혁명이 아닌 한 나라에 국한된 혁명이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패착인 지에 대해서는 재평가가 되어야 합니다. 자본주의는 재분배 체제이며 핵심부의 노동자들은 국민국가가 먹여 살리는 구조이기 때문에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최근 브렉시트만 해도 65%의 노동자가 찬성했는데 이는 국민국가 안에서 안정된 삶을 누리고 싶다는 욕구 때문입니다.) 조선 공산주의 운동의 다양한 시선 3) 이재유 이재유는 국내파 혁명가였습니다. 그는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이끌었습니다. 민주주의민족혁명 단계에서 사형제 폐지와 반노동악법 폐지, 정치집회의 자유 등과 함께 노동자들의 경영참여를 요구했으며 이를 슬로건집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는 30년대 노동 공산주의자들의 주장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슬로건에는 학생들의 교과서 선택의 자유와 의무적 종교교육 폐지 등이 있었으며 노동자들의 노조결성의 자유와 노동자 경영참여, 동일노동 동일임금, 1년 단기계약제 폐지 등이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1930년대 주장들은 지금도 실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당시 얼마나 구체적으로 공산주의 운동이 진행되고 있었는지 확인이 가능합니다. 이재유는 조선의 독립요구와 함께 국제적 연대도 함께 주장했습니다. 소비에트 독립사수와 대만의 독립촉구, 일본노동대중과의 연대 등이 그의 주장이었습니다.국제연대는 공산주의자의 조건일 뿐 양상은 다양했습니다. 4)김찬 김찬의 경우 국제연대에 비관적이었습니다. 그는 일본 유학생 출신으로 민족의식이 뚜렷한 민족적 공산주의자로 분류됐습니다. 이미 1925년 조선 공산당 창당시절부터 일본 공산당과의 협력에 비공식적으로 반대를 했으며 일본 공산당과의 제휴는 일본주의에의 항복을 의미한다고 말했습니다. 5) 김천해 김찬과는 대비되는 노동자 출신으로 일본에서 노동자로서 이해관계에서 시작됐습니다. 국제연대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일본과 노동 연대투쟁을 했으며 1국 1당의 코민테른의 원칙 또한 받아들였습니다. 조선 공산주의와 코민테른의 관계 6) 조동호 조선공산당 제1대회에서 코민테른에서 공산당 대표자로 선출된 조동호를 통해 조선의 공산당과 코민테른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모스크바에서 코민테른의 승인을 얻었는데 이는 지원금 신청과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조동호는 코민테른에 민족차별, 경찰폭압, 동양척식회사, 농민의 몰락 등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코민테른의 조선 관련 의식은 이와같은 조선 공산주의 혁명가들의 보고서를 종합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코민테른은 조선의 조선인들과 연해주의 고려인들에게 조선의 상황을 전달받았습니다. (당시 공산주의는 현대판 사대주의라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공산주의자는 험한 길이었으며 혁명가들은 애국을 하기 위해 스스로 공산주의를 택했습니다. 그들에겐 조선해방이 가장 큰 목적이었습니다. 단 모스크바와는 후원자와 피후원자의 관계였습니다. 코민테른과 조선의 공산당은 주체적 관계맺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대주의가 아닌 지식과 돈의 필요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대체로 코민테른은 정세에 맞는 정책을 지시했으나 1930년 초반 이후 코민테른이 스탈린의 외교적 도구로 전락하면서 역기능이 심화됐습니다.) 조선 공산주의 운동의 성취와 한계 식민지 시대 공산주의 운동은 타 아시아의 공산주의 운동과 달리 성공이 어려웠습니다. 1920~30년대 조선이 일본 치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시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은 시행착오를 거쳐 합리적인 선택을 했으며, 농민과 노동자 사이에 공산조직을 심고, 민중 공산주의 조직을 심고, 좌파이념의 대중화에 중점을 두고 결실을 맺었습니다. 운동가의 대부분 해방이후 운동에 긴밀하게 연결됐으며 진보당을 이끈 조봉암을 포함해 70년대 급진운동의 동력이 됐습니다. 당시 혁명가는 공산운동 출신이거나 식민지시대 운동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결국 조선 공산주의 운동은 장기적으로 급진 운동의 씨앗을 뿌렸고 이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국제연대노선은 합리적이었고 국내에서는 대중노선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바람직한 조선의 미래는 지금도 획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근대화 시도는 북조선에서 시도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남한은 현재도 시도의 필요가 얘기되고 있을 뿐입니다. 민주민족혁명 또한 지금도 대한민국이 독립된 민족국가라 보기 힘듭니다. 전근대적 세상에 대한 바람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만약, 1951년 조선이 독립하고 조선인들이 민주적으로 5년을 신탁통치하고 이후 대통령을 뽑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자연스럽게 좌파적 근대화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
||||
알고보면 더 재밌다 : 미국대선 따라잡기 | <미국 대선 따라잡기> 1강 후기 | 새로나기 | 2016.6.27 | |
김만권 선생님을 모시고 미국 대선 따라잡기를 시작한 첫 날입니다. 미국 대선을 따라잡기에 앞서,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선, 한국을 비롯한 현대 다수의 나라들의 쟁점인 '사회 양극화', '부의 편중화'가 미국에도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는데요. 미국 하위 50%가 전체 자산의 3%를 소유한다는 것, 미국의 최고 상위 자산가 14명이 지난 2년간 증식한 자산이 하위 50%의 전재산에 육박한다는 것, 미국 대졸자의 평균 학자금 대출이 3만 6천달러라는 것 등이 관련 통계자료입니다. 다만, 부의 편중화가 사회 구조상 가시화되는 정도가 약할 뿐입니다. 이 과정에서 하류층이, 더 하류층의 복지 혜택을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로 복지 증대를 반대하고 있으며 이러한 논리는 미국 뿐 아니라 영국을 비롯한 다수의 나라에서도 발견되는 바입니다. 다음, 미국 패권주의의 또다른 이름으로, '미국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에 대해 정리해보았습니다. 첫째, 한나 아렌트의 표현에 의하면, '이 나라는 세계 최초로 말로 한 혁명의 결과로 만들어졌다'입니다. 미국은 유례가 드물게 이주민에 의해 만들어진 국가이며, 당시 사회계약론에 기초한 메이플라워 조약을 근간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폭력과 함께 한 프랑스 대혁명에 비해 차별성을 가진다고 볼 수 있겠지요. 한나 아렌트는 미국이 이러한 전통을 상실하면서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또한, '말'로 하는 이러한 전통은 철학적 디베이트 과정을 동반하며 미국의 수정헌법으로 이어졌습니다. 제퍼슨은 한 세대가 대략 19년이니, 그 때마다 헌법을 개정할 수 있도록 하였고, 메디슨은 기존의 헌법을 근간으로 전달하되 과거의 문항을 사문화시키는 방식으로 새로운 조항을 추가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 과정이 모두 기록에 남아있다고 합니다. 최근 100년간 수정조항이 부재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겠지요. 둘째, <근대화론>에 따르면 경제발전이 민주주의를 이끕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경제 발전이 자유와 부를 만들었습니다. 토크빌은 '미국은 예술, 문화보다 돈벌이에 관심이 있다'고 지적하였지요.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sect'(종교적 공동체)가 자본주의의 발전에 기여한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성실함과 신용의 상징인 sect가 가장 많은 집단이 미국입니다. 오늘날에도 인구의 90%가 기독교도인이며, 충실한 신자가 대다수이지요. 셋째, 대통령제를 발명한 국가입니다. 로마의 전성기에 집정관, 호민관, 원로원이 상호견제하였음에 착안하여 하나의 조직이 강건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갈등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보며 대통령, 상원, 하원의 구조를 정착시키게 됩니다. 현재의 중임제는 헌법 제정 초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규정으로, 초기 2인의 대통령으로 인해 암묵적인 규정이 되었다가, 루즈벨트 대통령의 4선 이후 수정조항 22조를 추가하면서 제도로서 자리잡았습니다. 셋째, 미국은 최초의 정당 정치 국가입니다. 유럽의 정당이 계급과 이익에 따른 사적 집단으로 대중 당원을 지니고 있으며 강력한 지도자에 의해 통제되는 경향이 있지만, 미국의 정당은 중대 사안에 따라 사람들을 흡수하며 정부 장악이 아닌 선거에서의 승리를 목표로 정당을 재편해가는 느슨한 선거 연합체의 성격을 갖습니다. 정당에 대한 연방정부 차원의 규정이 존재하지 않으며 주 차원에서 통제 권리를 지녀 중앙에서 통제가 어렵습니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빌 클린턴처럼 만들어진 정치인이 대통령 후보가 되기도 하지만, 버락 오바마나 도널드 트럼프 같은 인물이 뜰 수 있는 것이지요. 또한, 전세계에서 가장 순수한 의미의 양당제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이기도 합니다. 실제 100여개 내외의 정당이 존재하지만, 민주당과 공화당 만이 대통령을 배출해 온 역사가 이를 증명합니다. 이후, 미국의 정당에 대해 본격적으로 살펴보았는데요. 미국 양당제는 재무장관 해밀턴(강한 중앙정부와 중상주의)과 국무장관 제퍼슨(약한 중앙정부와 중농주의)의 갈등에서 시작됩니다. 해밀턴은 엘리트와 재력가의 지지를 등에 업고 연방당을, 제퍼슨쪽에 가담한 메디슨이 남부와 뉴욕에서 반해밀턴주의자들의 규합에 성공하면서 민주공화당을 창당합니다. 대통령직을 누가 차지할 것이냐를 사안으로 두고, 이후 전국적 정당배열(arrangement)를 만들어냈으며 '버지니아 왕조'. '잭슨 민주주의', '남북 전쟁', '대중연합적 불만, 진보주의 개혁 및 공화당 다수', '뉴딜 민주당 연합'의 5개 체제를 거쳐갑니다. 이 과정에서 민주공화당 내에서 잭슨을 지지하는 이들이 모여 민주당을 창당하였고, 잭슨을 반대하는 이들이 해밀턴 사망 후 힘을 잃은 연방당을 흡수하며 휘그당을 창당합니다. 이후, 노예제가 휘그당을 분열시켜 반노예정당으로 공화당이 만들어졌고, 북부기업 소유주와 노동자들의 이익을 보호하며 산업 및 금융자본의 이익과 자신들을 동일시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공화당은 북부와 동부 노동자들에게 경제공황 이전까지 막대한 지지를 얻게 되지요. 농업이익에 기반해 통제력을 행사한 민주당은, 남부와 북부에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약자들과 국외자들을 새로운 새력기반으로 자리를 잡습니다. 다음으로 '조직으로서의 정당'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앞서 보았듯, 정당에 대한 규제는 전적으로 주정부에 맡겨져 있습니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미국 정당 정치를 지배한 개념이 머신 정치로, 유권자의 열정적 정치 지지에 대한 대가로 정당이 물적 지원 및 유용한 개입을 제공하였음을 의미합니다. 머신은 보스의 지시에 따라 표와 돈이 동원되고, 이런 동원에 대해 대가를 분배하는 방식으로 작동하였습니다. 20세기 초반에 이르러 뉴욕의 '태마니 홀' 등 주요 대도시의 선거와 정치가 머신에 의해 장악되었으며 머신에 대한 견제로서 예비선거제도를 도입하게 됩니다. 이상 다소 거칠게 첫번재 강의를 정리해보았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그 복잡한 미국의 선거제도를 공부하기 위해 미국 지도를 필참하고 올 것을 당부하셨어요.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이 미국의 대선에 미칠 영향이 더욱 궁금해지는 요즘입니다. 아래는 링컨의 공화당부터 미국 정당의 역사를 간결하게 정리하면서 트럼프의 이념적 위치를 살펴보는 참고기사입니다. 미국 정당의 역사를 짧게나마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
성평등 : 한국 민주주의의 교묘한 장식품이자 의도된 건망증 | [월례특강]성평등, 한국 민주주의의 교묘한 장식품이자 의도된 건망증(한채윤) | 박윤채영 | 2016.6.17 | |
아카데미느티나무 6월 월례특강 후기 (윤채영) 요즘 한국은 ‘여성 혐오 범죄’와 ‘성폭력’ 문제로 시끄럽습니다. 사람들은 ‘갑자기 늘어났다.’고 말하지만 한 여성학자는 칼럼에서 ‘원래 있어왔는데 이제야 보이게 된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협박도 여성을 향한 폭력과 협박도 늘 있어왔지만 요즘 달라진 것은 협박에서 끝나지 않는 다는 겁니다. 국경을 초월한 젠더문제와 성평등 이슈. 어디서부터 알아가야 할까요?
6월 13일 월요일 저녁, 한 채윤(비온뒤무지개재단 상임이사)님의 강의가 있었습니다. “성평등, 한국 민주주의의 교묘한 장식품이자 의도된 건망증”이라는 긴 제목을 가진 강의였습니다. 성평등이 교묘한 장식품이자 의도된 건망증이라, 그 뜻이 잘 짐작되지 않았습니다만 왠지 느낌적으로 ‘맞는 것 같아.’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강의는 ‘성평등’이라는 말에 대한 사회 인식의 변화부터 짚었습니다. 예전에는 공무원들이 ‘양성평등’이 ‘여성이 남성을 맞먹으려 하는 느낌’이라며 그 대신 ‘성평등’이라고 써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성평등’은 ‘동성애자들이 이성애자와 맞먹으려는 느낌’이라며 대신 ‘양성평등’이라고 써줄 것을 요청한다고 합니다. 오락가락 하는 것 같이 보이는 두 반응에서 공통적인 것은 배제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맞먹으려 든다, 는 사고 자체에 이미 평등할 마음이 없다는 것이 실려 있는데 말이죠. 성평등 이슈는 오랫동안 있어 왔지만 아직 한 번도 한국 사회는 평등에 진짜 다가서 본 적이 없는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성평등이라는 주제는 남성과 여성을 나눈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여성이 남성의 권리를 빼앗으려 한다.’라던지 ‘동성애자들이 이성애자 권리를 넘본다.’식의 밥그릇싸움, 권리싸움으로 비춰집니다. 그런데, 그렇게 다뤄지는 문제들을 한 번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강의에선 ‘군 가산점 제도’가 그 예였는데요, 이 문제에 대해 ‘여성들이 반대해서 못한다.’는 주장(변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만..)들이 있습니다. 꼼꼼히 따져볼까요?
첫째, 군 가산점 제도 혜택은 모든 남성에게 동등하게 돌아가는가? 가산점제도는 ‘군대를 제대해서 9급 7급 공무원을 지원하는 남성’만 받을 수 있습니다. 때문에 군 면제자, 군 ‘특별’ 면제자, 그리고 공무원을 안 할 남성들에겐 그 혜택이 가지 않죠. 애초에 남성들에게도 동등하게 돌아가지 않는 겁니다. 둘째, 군 복무는 경력으로 인정이 되기 때문에 남성이 입사를 하면 같이 입사한 여성들보다 기본 호봉이 높습니다. 같은 나이의 여성들이 대리되어 있을 때 남성들은 신입이어 불평등하다? 여성이 대리 이상 올라가는 경우가 한국에서 몇이나 있는지, 유리천장의 현실을 간과한 주장이죠.
모든 남성에게 돌아가지도 않는 군가산점제도를 남녀의 밥그릇 다툼으로 모는 것처럼 사건을 젠더문제로 다루면서 근본적인 문제와 질문을 은폐시키려는 시도들이 많습니다. 최근 한 섬에서 벌어졌던 마을 사람들의 교사 성폭행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섬에 파견 된 여 교사들을 남교사로 대체한다, 는 대책도 같은 경우입니다. 또는 젠더문제를 젠더문제가 아닌 것으로 다루려는 시도들도 있습니다. 이번 강남역 살인사건을 두고 경찰이 ‘이 사회에 아직 혐오 범죄는 없다.’고 강조하는 모습이 그렇습니다.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고 화낼 대상을 바로 알기 위해선 그가 자꾸 앞에 내세우는 젠더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합니다. 도대체 ‘젠더’가 뭐기에 툭하면 그 뒤로 숨는 걸까요.
먼저 질문을 하나 할게요.
졸라맨이 있습니다.
졸라맨을 여자로 보이게 하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는 어떻게 말할까요? 어떤 포즈로 앉아 있을까요?
혹시 치마를 떠올리셨나요? 꽃이나 리본을 달아 주셨나요? 얇고 고운 목소리로 말을 하던가요?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렇다면 졸라맨을 남자로 보이게 하기 위해선 무얼 하시겠어요?
여자, 남자라는 성별 구분에서 옷과 목소리, 태도, 말투 심지어 직업까지 연상하게 되는 것. 여성으로 만들 때와 달리 남성으로 만들려 하니 별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것. 조금은 거친 설명이지만, 그게 ‘젠더’입니다. 조금 무섭게 말하자면 여자, 남자라는 생물학적 차이에다가 ‘걸맞는’ 옷과 목소리, 태도, 역할, 사랑하는 사람의 성별까지 규정하려는 힘입니다. 이것은 제도에서도 찾을 수 있고 문화에도 녹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자와 남자는 ‘성기와 염색체’의 차이에 의해 나뉜다는 간단한 사실은 잊어버리고 겉모습과 말투, 태도 등을 통해 그 사람의 성별을 구별해내려 하죠.
사실 우린 모두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성기만으로 성별을 구분할 수 있었죠. 그러나 커가면서 겉모습으로 성별을 표시 할 것을 요구받게 됩니다. 젠더를 학습하게 되는 거지요. 이 젠더는 개별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의학/과학, 정치/통치, 예술, 종교와 함께 발달해 왔습니다. 사례를 하나씩 들어보겠습니다.
1. 의학/과학 : 호르몬과 젠더
검지와 약지가 성별과 성 정체성을 알려준다는 거 알고 계셨나요? 약지가 검지보다 길면 남자, 짧으면 여자, 두 길이가 비슷하면 동성애를 할 확률이 높다는 말이요. 사실 약지에는 테스토스테론 호르몬의 수용체가, 검지에는 에스트로겐 수용체가 많아서 그에 따른 길이의 차가 성별에 따라 있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게 ‘성적 지향성’을 좌지우지 하진 않습니다. 한 채윤 선생님은 ‘테스토스테론이 많으시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내요. 호르몬의 성별 결정 능력을 성적 지향까지 연결시키는 것은 자연의 섭리가 아니라 ‘젠더’문제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테스토스테론의 역할은 근육을 발달시키고 털을 만드는 것입니다. 물론 남성의 2차 성징에도 영향을 끼치고요. 그러나 ‘성욕’을 활발히 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남성이 여성보다 성욕이 더 많다.’ 는 설 또한 틀린 말입니다.
여성과 남성은 XX와 XY, 생식기로 구별됩니다. 생물학적으로 다른 몸을 갖고 있고 그에 따른 기능이 다릅니다. 그렇지만 그게 성격, 스타일, 몸매, 말투, 역할을 결정짓는 바탕이 되지는 않습니다.
2. 정치/통치 : 열녀문
열녀문은 ‘평생 하나의 지아비를 둔 여성’을 위해 세워주는 문입니다. 이것은 고려시대 때부터 있었는데 그 의미가 고려와 조선이 달랐다고 합니다. 고려시대에는 재혼이 너무 많아서, 즉 평생 하나의 지아비만을 두는 경우가 너무 흔해서 그에 대한 보상이었던 반면 조선시대 때는 여성의 남편에 대한 복종과 헌신을 위한 나라의 통치술이었죠. 열녀가 너무 많아져서 열녀로 인정하는 기준이 점점 까다로워지고 그에 대한 보상도 점점 커졌다고 해요. 그 뿌리는 조선 통치의 주요 사상이었던 유교의 기본 ‘삼강오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삼강의 뜻은 ‘신하는 임금이 법이고 아들에겐 아버지가 법이며 부인에겐 남편이 법이다.’입니다. 주로 신하는 남성이었으니 임금의 입장에선 신하만 잘 통치하면 나라 전체를 움직일 수 있었던 거죠. 이것은 또한 신하와 임금, 부부의 사이를 동급으로 놓으면서 ‘하나의 임금만 섬길 것.’과 ‘하나의 남편만 섬길 것.’이 동금의 일이 된 거죠. 신하의 반란으로 세워진 조선 임금들의 불안은 이렇게 가정에까지 영향을 끼친 겁니다.
하나의 지아비를 섬기는 것이 온전히 여성의 몫인 것, 여성의 순결과 정조를 중시하는 사고방식은 현대에도 남아있습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뒤집으셨습니다.
“정조를 지키는 것보다 정조를 빼앗지 않으려 하는 게 맞지 않은가? 뺏긴 이와 뺏은 자, 어디에 그 잘못이 더 큰가?”
3. 예술/종교 : 아담과 이브 그리고 뱀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어 벌을 받게 된 이야기는 모두 아실 겁니다. 이것은 성당이나 많은 화가들의 그림 소재가 되어 왔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다뤄왔는데도 그 표현은 변해왔다고 합니다.
15세기 16세기 그림에서 뱀은 여성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전 8세기 그림에서 뱀은 날개를 달기도 하고 다리를 갖고 있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노하셔서 뱀에게 평생 배로 다니게 하는 벌을 내리셨다는 게 성경의 내용인데 왜 뱀은 여자로 그려지기 시작한 것일까요? 그리고 이것은 당시 여성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쳐왔을까요. 여성을 꽃뱀으로 부르고 성녀와 창녀로, 마녀와 마리아로 나누는 요즘. 우리는 19세기 인식에서 얼마나 앞으로 진보해 온 걸까요?
젠더는 이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져 왔습니다. 그리고 주로 ‘남성’과 ‘남성 아닌 것’으로 표현되지요. 교사와 여교사, 의사와 여의사, 군인과 여군. 이런 식으로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어서 예민해지지 않으면 알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남성 또한 억압합니다. 돈 잘 벌어야 능력이지, 키 커야지, 집 살 능력도 돼야지 등등. 이렇게도 말합니다. ‘남자니까 괜찮아.’. ‘여 자보다 못 하는 거야?’ 식으로요.
이러한 억압이 무서운 것은 의심이 ‘나’로 향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왜 난 안 맞지?” “내가 틀렸나?” 등 끊임없이 자기 검열을 하게 만드는 것, 스스로 맞추도록 하는 것이 바로 젠더의 작동 원리이자 생존 방식입니다. 게다가 젠더문제는 직장, 연애, 결혼 등 생활과 밀접한 일이기 때문에 무시하기도, 맞서 싸우기도 어려운 것 같습니다.
집에 오는 길, 내가 왜 살을 빼자고 생각하기 시작했더라? 내가 왜 엄마한테 ‘엄마의 역할’을 요구하기 시작했더라? 엄마로부터 여성성을 배우지 못했다, 는 말은 왜 했지? 내 가슴이 작아서 남자가 싫어할 거라는 생각을 왜 한 걸까? 등의 물음이 생겼습니다. 내 가족들의 불화라고 생각했던 것도, 내 자존감 문제라고 여겼던 것도, 젠더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젠더는 보이는 규칙이나 지식 또는 유행이 아니라 내 위에 서 있는 권위였던 겁니다.
젠더는 우리에게 주어진 구조입니다. 그리고 그 안엔 다양한 높이의 벽들이 있고 벽들 사이에 사람이 있습니다. 어쩌면 너무 당연해서 벽의 존재를 모르며 살아왔을 수도 있습니다. 성평등을 말한다는 것은 우리를 가로막은 벽을 보고 그것을 허무는 일인 것 같습니다. 성평등을 말한다는 것은 가해자를 단죄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 벽이 왜 필요한지 질문하고 벽이 없는 상태를 상상하고 제안하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한 채윤 선생님의 말씀처럼 “우린 정말 많이 얘기해야” 합니다. |
||||
리추얼 워크숍 - 삶을 예술로! 삶을 축제로! | 리추얼워크숍 <삶을 예술로, 삶을 축제로>을 마치며 | 느티나무 | 2016.6.16 | |
* <삶을 예술로, 삶을 축제로> 주제로 진행한 리추얼워크숍을 마치며 참여자들이 짧게 적어본 소감문을 나눕니다.
- 내가 경험한 리추얼 워크숍은 있는 그대로의 ‘나’와 만나 놀았던 시간이다.
- 나에게 리추얼 워크숍은 채워지지 않은 허한 마음안에 무언가 넣어주고 가라앉혀주는 시간. 생활이 리추얼로 하여 충만한 나를 만나고 삶을 즐기는 원동력이 되어준 시간. 좋은 사람과 함께 한 시간. 누구나 할것없이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이어서 좋았던 시간. 감사하며 살아갈께요. 고마워요.
<2016. 6. 7. 나에게 주는 선물 리추얼>
- 잃어버린, 잊어버린 나와의 만남 타인의 삶과 나의 삶의 소통속에서 얻는 기쁨과 즐거움. 감사합니다. 모두모두
- 나를 찾는 과정에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들어야 할 수업이라 생각하며, 특히 삶의 새로운 영감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강추합니다.
- 내가 나를 마음놓고 마음대로 마음껏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 나에게 리추얼 워크숍은 나를 돌아보고 내 주위를 돌아보고 내 가족을 돌아보고 그래서 나를 다독이고 보듬고 쓰다듬어줄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습니다. 내가 좀더 단단해지고 유연해지고 부드러워지고 그래서 더 날카로울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매순간 눈뜨고 살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6. 5. 31. 마음껏 나와 다른 사람을 안는 리추얼>
- 나에게 리추얼 워크숍은 늘 의외성의 즐거움이 있다. 이건 한두마디로 할 수가 없다. 참여자들 한사람 한사람의 진실한, 구러면서도 자신과 타인을 사랑하는 힘이 만드는 엄청난 화학작용. 일상의 삶을 예술로 축제로 만들 수 있는 기본의 힘... 더불어 함께가 아니면 불가능했을 시간이다. 함께 한분들 모두 보석같았다. 감사합니다.
- 머릿속으로 생각하면 부담되고 버겁고... 그래서 아, 몰라, 하고 싶지만 멤버들과 리추얼을 하나하나 해가다보면 네 얘기가 내 얘기가 되고 내 얘기가 모두의 마음을 모으게 되는 기묘한 체험을 하게 된다. 체감이 못된 가라앉았던 돌멩이가 솓구쳐오르고 옆에 있던, 항상 있던 누군가가 눈물겹게 애틋해지고 고마워지는... 말하자면 모든 오감을 열고 세상을 느끼고 만나게 되는 리추얼... 마법의 세계
- 허겁지겁 사라져가는, 삶의 순간순간을 맛보지도 만지지도 못하는 빠른 시공간 속에서 리츄얼은 나를 잠시 멈춰서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관계’를 위해서는 우리는 또다른 시공간을 창조해내야 함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더 나아가 자고 일어나는 일, 먹고 마시는 모든 것이 삶을 풍성하게 하는 의식, 리추얼이었다는 것도 다시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결국 리추얼은 다른 곳에 있는 특별한 게 아니라, 내 삶임을... 앞으로 여기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일상의 성스러움을 회복하기를...
|
||||
우리 역사 속 여성사 기행 | <우리 역사 속 여성사 기행> 6강 | 전활걸고 | 2016.5.23 | |
5월 10일 제 5강에서 '열녀, 죽임인가? 죽음인가?'라는 주제로 쟁점토론을 진행한 데 이어서, 17일에는 제 6강 '근대 여성의 아이덴티티: 현모양처론의 두 얼굴'을 주제로 강의를 진행했습니다. 시작하기에 앞서 마치 조선시대 여성상의 전형처럼 인식되고 있는 '현모양처'라는 개념이 사실 근대에야 비로소 등장하였음을 짚고 넘어갔습니다. 18세기 이후 조선에서는 가부장적 의식이 더욱 강화되는 양상이 보입니다. '시집을 간다'는 결혼개념이 기본 풍습으로 정착하였고, 열녀문 건설이나 여성 수신서 보급 등으로 여성들도 가부장적 개념을 내면화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이때는 양반뿐 아니라 양인, 천민 여성도 열녀가 된 사례가 왕왕 등장합니다. 즉 열녀 개념이 하위계층에까지 퍼져나가게 된 것입니다. 또한 족보에서도 선남후녀식의, 혹은 아예 딸의 이름을 적지 않는 식의 서술이 주류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여성은 이 상황에서 마냥 수동적 객체로만 살았을까요? 사실 사회의 가부장적 요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겠지만, 여성이 주체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례도 있습니다. 먼저, 독서 열풍으로 여성의 의식이 높아졌습니다. 그 배경 중 하나는 수신서/교화서의 정책적 보급으로 여성들의 언문 사용이 늘어난 것입니다. 언문은 여성이 많이 쓴다고 하여 '암글'이라고 불리기도 했지요. 반가 여성들의 경우 미래 자녀교육을 위해 출가 전에 글공부할 기회를 주는 경우가 많아, 한문까지 읽고 쓸 수 있었습니다. 유학서를 읽고, 심지어 책을 쓰는 여성도 있었습니다. 초창기에는 글을 읽고 쓰더라도 여성 자신이 그것을 숨겼습니다. 이익의 책에서 '부인은 가족을 봉양하고 봉제사, 접빈객하는 일이 있는데 어느 겨를에 책을 읽겠냐'는 말이 등장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글 읽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 여성 성리학자인 윤지당 임씨의 경우 '서책을 가까이하는 기색을 보인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또한 소설이 등장하면서 여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시기의 소설은 내용 전개가 흥미있고, 현실에서 이루기 어려운 판타지를 소재로 하는 경우가 많다는 특징을 보입니다. 책을 빌려주는 '세책가'나 방물장수를 통해서뿐 아니라 판소리나 이야기꾼의 낭독 등으로 소설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주 독자층이 여성인만큼 여성의 구미에 맞는 이야기를 다룰 필요가 있었고, 따라서 나중에는 여성 주인공이나 여성 영웅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여성의 독서가 활발해지면서 책을 쓰는 일도 늘었습니다. 여성의 작품이 사후에 문집으로 출간되기도 하고, 한중록이나 규합총서 등 유명한 여성 저서들도 이 시기에 등장합니다. 조선 후기에는 여성의 의식이 높아졌을 뿐 아니라 경제참여율도 늘었습니다. 시전에는 여성이 운영하는 점포를 뜻하는 '여인전'이 등장했습니다. 양반 여성들도 경제활동을 했습니다/ 양반 남성들이 정치/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생업에 뛰어들지 못하고 과거를 준비하는 일이 많아, 집안 살림을 꾸려가기 위해서는 여성이 일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덕무의 글을 보면 '선비의 아내는 생계를 위해 일해도 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여성의 경제참여가 늘면서 경제적으로 성공한 여성의 사례도 등장합니다. 제주 거상 김만덕이 대표적인 예인데, 상업을 통해 번 돈을 빈민 구휼에 희사한 결과 상으로 왕비를 알현하고 금강산을 유람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여성의 경제활동은 마냥 순탄치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양반 여성 박씨가 동전을 주조한 사건에 대한 실록 기록을 보면 박씨가 흉악한 성품을 가졌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맥락을 보면 여성이 주체성을 보이는 것을 성품이 포악한 것으로 몰아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비단 조선시대뿐 아니라 현대에도 이런 모습은 있습니다. 남성이 여성보다 '나아야' 한다는 가부장적 관념으로 능력있고 자기주장 강한 여성을 '기가 세다'고 깎아내리거나, '여자가 나를 무시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결국 여성이 글을 배우고 돈을 버는 것을 막으려던 이때의 관념과 큰 줄기는 같다고 할 수 있겠지요. 천주교의 등장도 여성의 의식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천주교는 여성을 중심으로 유입되었는데, 이것은 아마 모든 사람이 신 앞에서 평등하다는 천주교의 이념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념 때문에 국가에 의해 탄압을 받기도 했는데,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하는 것은 곧 신분제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더해 중국에 처음 유입될 때 최대한 기존 유교 관습과 충돌하지 않으려 한 것과 달리 종교색을 드러내어 제사를 거부하거나 신주를 없애면서 충돌이 생긴 것, 그리고 남녀가 모여 미사를 드린다는 점 등이 탄압의 명분이 되었습니다. 또한 여성들이 동정녀로 살기 위해 여성끼리 공동체 생활을 하거나 결혼하되 동정 서원을 하기도 했는데, 이 역시 윤리에 반하는 행위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보편적인 종교는 아니었으며, 탄압을 많이 받은만큼 천주교 신앙이 당대 여성의 삶을 대표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천주교 유입은 새로운 가치관을 제시하고, 여성 교육과 개화가 시작하는 계기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동학도 비슷한 양상을 보입니다. 동학은 서학을 막자는 취지를 내세웠으나, 사실 서학과 유사한 개념이 많이 나타납니다. 특히 평등사상이 그렇습니다. 이런 평등사상을 기반으로 여성들은 남성과 동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를 주장하였습니다. 또한 개화파도 서구의 여성관 변화를 수용하여 균등교육을 주장하였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여성을 동등한 주체로 보았다기보다는 서구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의 일환이거나, 여성을 남성들의 개혁을 뒷받침할 존재로 교육시키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여성교육기관 설립 운동이 진행되었습니다. 한국 최초의 여성교육기관은 미국인 선교사에 의해 설립된 이화학당입니다. 초기 학생의 대다수는 기생이나 고아 등 사회적 약자들이었습니다. 이는 여성교육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어 한국 단체에 의해서도 여학교가 설립되었는데 이것이 순성여학교입니다. 이 순성여학교가 설립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1895년 공포된 교육입국조서에 여학교 설립에 대한 조항이 있었으나 실행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여성의 참정권, 직업권, 교육권을 주장하는 내용의 여권통문이 발표되었는데, 당대에는 상당히 급진적인 주장이어서 큰 사회적 주목과 지지를 받지는 못했습니다. 여권통문 발표는 찬양회 조직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들은 성금을 모아 여학교 설립을 준비하였고, 결국 순성학교를 설립해 기초적 수준의 유학과 서양 학문, 실기 등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한계도 분명했는데, 연설회 강사진이 주로 독립협회 남성 회원이었던 점에서 알 수 있듯 여성이 담론을 주도하지 못했고, 첩의 참여 문제로 내분을 겪었으며, 순성학교도 운영난에 시달리다가 결국 문을 닫았습니다. 이후 우리나라 최초의 관립 여학교인 한성학교가 설립되었고, 1905년 이후에는 전국적으로 여러 여학교가 설립되어 여성교육을 이어갔습니다. 그런데 이 여성교육의 목적은 여성에게 평등한 교육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당대의 자료나 실제 진행된 교육의 내용을 보면, 이때의 여성교육이 현모양처를 양성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현모양처론은 사실 근대적 개념입니다. 원래 조선에서 전통적 여성의 덕목은 '효부'입니다. 현모양처론은 근대적 소가족 제도의 산물이자, 일본의 '양처현모' 관념이 유입 과정에서 변형된 결과입니다. 전쟁이 잦았던 일본에서는 남성이 전쟁으로 자리를 비워도 가정을 유지하고 군인인 남편을 뒷받침할 수 있는 양처의 덕목을 강조했다면, 근대 어려움이 많았던 한국에서는 교육을 통해 미래를 도모할 수 있도록 현모의 덕목을 더 강조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성이 교육을 받더라도 남성과 동등한 일자리를 구할 기회는 없었습니다. 대신 교육받은 것을 바탕으로 가정경제와 자녀교육을 책임져야 했습니다. 따라서 관립 여성교육에서도 가사를 많이 가르쳤습니다. 원래 조선의 전통적 가정관에서 자녀교육은 주로 아버지의 책임이었는데, 오히려 근대에 들어서며 이 책임조차 여성에게 떠넘겨진 것입니다. 여성교육은 현모양처를 양성하기 위한 것이므로, 교육받은 여성이 남성의 영역을 침범하려 들 경우 가혹한 공격이 따랐습니다. 당대에도 현모양처론에 대한 비판은 있었습니다. 무보수의 여자 하인이나 다름없다는 비판과 더불어, 여성을 구속하는 모든 사상에서 벗어나자는 주장, 현모양처교육은 여성집단을 효율적으로 억압하기 위한 노예교육이라는 주장 등이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