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화기획자라는 정체성으로 10년 정도의 커리어를 쌓아왔다. 그보다 더 작은 단위로는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하기가 애매했다. 내가 만드는 것은 작게는 아이들의 물놀이장이었고, 크게는 정부의 국민소통플랫폼이었다. 강의실 맨 앞에 서서 참여자들을 바라보는 교육의 형태를 띄기도 했지만 때로는 관광버스를 대절해 여행을 떠나야 하기도 했다. 와중에 락밴드를 초대해서 공연도 올려야했고, 생전 처음보는 사람들에게 너스레를 떨며 비빔밥 파티를 하기도 했다. 나는 내가 해온 일이 단지 문화기획이라는 것에 한치의 의심도 없었다. 우리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살아갈 수 있는 문화를 함께 만드는 기획. 그래서 나는 모든 문화기획자들이 나와 같은 뜻을 품고 있다고 생각했다. 회사를 나오고 혼자 일하는 것이 외로워 많은 기획자들을 만나면서 나는 고립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새로 만난 문화기획자들과 나는 나눌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사회의 지향같은 것은 장르의 특성 앞에 자주 묻혔다. 관객은 주인공 뒤로 자꾸 밀렸다. 나는 그제서야 내가 오랫동안 무시하고, 등한시하고,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키워드 <시민교육>을 바로 마주했다. 나는 문화기획의 이름으로 시민교육을 도모하고 있었던 거다. 이 후기를 쓰는 지금도, 시민교육이란 말이 썩 내키진 않지만 말이다. 하나에 초점을 맞추니 시민교육과 관련된 여러가지가 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첫번째는 평생교육이었고 성인교육의 메커니즘을 좀 더 교육학적으로 알고 싶어서 방송대 교육학 수업을 여러개 들었다. 두번째는 아카데미 느티나무의 시민교육 기획자 과정이었다. 내가 스스로 시민교육을 나의 키워드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내가 직접 교육을 하는 교육자로서의 정체성이 강하지 않은 것과 내가 시민교육의 주요 주체인 기관 소속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나보다. (시민교육 '담당자'가 아니었다는 것) 그런데 이 과정의 '시민교육 기획자'라는 호칭이 거리낌없이 눈에 읽히면서 봄이 설레는 다른 이유가 또 하나 생겼다. 정민승 교수님은 방송대에서 내가 유난히 좋아했던 수업을 하셨던 교수님이라 처음 수업에 들어가고 굉장히 반가웠다. (수업 커리큘럼과 강사진을 제대로 보지 않고 듣고 있었다는 증거) 내가 내 기획의 대상으로 하는 분들은 50-60대 분들이다. (편의상 5060이라고 말하지만 이렇게 이야기하면 X세대부터 베이비부머를 포괄하는 마치 MZ같은 지칭이 되어 스스로도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대학교육을 받지 않았거나, 텍스트위주의 지식전달이 익숙하지 않거나, 오랜 시간 먹고사니즘에 밀려 자아탐색과 사유, 성찰로부터 거리를 두고 살아오며 자기도 모르게 신자유주의적 개인의 자아를 갖게 된 어른들을 만나려고 늘 고민한다. 이런 고민 끝에 시민교육의 방향은 평생교육과 함께 가야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바로 그 이야기를 더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들을 수 있는 자리였던 것이다. 이 사회의 '어른', '선배시민'이 되어가실 이 분들은 몇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일반화 주의) 우선 민주화 이전의 공교육 효과로 인해 반공과 같은 정치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감정을 갖고 계신 것, 그것이 일상생활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해서 시민으로서 감각하기 어려워하시는 것 (시민이라기보다 민원인으로 행위하시는) 그러면서도 정도는 다르지만 각자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살신성인하시는 진정성을 갖고 계신 것, 이러한 여러가지 이유로 자기를 돌보는 것에 대하여 전혀 준비되어있지 않고 취약한 것, 그 불안이 젊은 세대와 미래 한국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 하나 더 더하면 직접 만나 한명씩 이야기해보면 이상한 사람 한 명도 없다는 것. 모두 엄청 상식적이시다. 나는 오히려 이 분들에게서 종종 희망을 보기 때문에, 어떻게하면 이분들을 나의 적이 아니라 나의 동료시민으로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는데 이 부분에 있어서 정답까진 아니어도 인사이트와 힌트 가득한 이야기를 정민승 교수님이 들려주실거라 확신했고, 실제로 그랬다. 한국에서는 요원하거나 낯선 이야기, 열린이야기, 요새의 트렌드로 여겨지고 있는 많은 교육담론들은 사실 세계대전 시대에 처음 주장되거나 발전하기 시작한 것들이 많다. 교육학의 역사를 통해 보는 시민교육이나 혹은 방법론을 통해 보는 시민교육을 바라보면 아직 시도도하지 못한 가능성들이 무궁무진하구나 라고 생각하게 된다. 사실 나는 '시민교육'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고 있는데, 그 교육이라는 말이 일방향적이라는 감각, 계몽적, 엘리트주의적인 태도, 정답이 있는 근대식 국민 양성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스스로 발견하게끔 돕는 평생교육의 관점으로 시민교육을 바라본다면 시민교육이야말로 한 개인을 해방시키고, 진정한 자유인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즐거이 다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그래도 단어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평생학습의 목표로 교육학에서 제시하는 선형적인 목표들이었다. 일상과 생활을 더 낫게 하기 위한 학습, 삶을 더 낫에 하기 위한 학습도 있지만, 그저 오롯이 존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학습도 있다는 말씀. (Learning to be) 내가 시민교육기획자로서 기획을 통해 만나는 개개인들에게 전달하고 만나게 하고픈 세계는 바로 한명한명이 스스로를 오롯이 인식하고, 오롯이 존재하게끔 하는 것. 그리고 시민교육은 우산대가 되어야한다, 는 말씀도 하셨는데 여성교육, 인문교육, 문화예술교육 교육의 종류는 참 많지만 그런 것들은 모두 우산살 들이고, 시민력을 키우는 시민교육이 우산대가 되어 기준을 명확하게 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수많은 일을 하며 도대체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가 혼란스러웠던 시기가, 우산의 이미지로 수렴되는 순간이었다. 속이 다 시원했다. 교육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아에 들어가도록 허락된 타자'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는데 이 부분에서는 지금의 고민이 더 짙어졌다. 나는 여자고, 어린데다가, 박사님도 아니고, TV에 출연한 것도 아니고, 저서도 없는데 어떻게 내 기획에 참여하시는 분들께 신뢰를 얻고, 자아에 들어가도록 허락을 받을 수 있을까? 그런 것 없이도 나를 신뢰해주실 수 있다면 좋겠는데...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꾸준히 하는 것 밖에 없다는게 조금 괴롭다. 스스로 동력을 내는데에 지친지는 좀 되었기 때문이다. 교육을 듣고 나면 함께 듣는 참여자들과 대화하고, 질문에 대답하고 또 질문을 만들어가는 시간을 갖는데 이 시간도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어느순간부터 사람을 대하는 것이 귀찮다고 느끼기도 했는데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서 마음속 깊숙한 곳의 외로움이 조금 덜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힘을 받으면서 뭔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까? 있겠지?
[온라인] 내 인생의 시의적절한 성교육
아카데미느티나무
<내 인생의 시의적절 성교육>과정이 무엇보다 좋은 것은 과학적 근거와 철학이 함께 조화를 이룬다는 점입니다. 성교육 전문가 강사과정 중에 들은 선생님 수업에서 우리의 성염색체가 분화하는 과정은 우리가 갖고 있던 편견을 깰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과학적 사실’이어서 시연 때도 수업 때도 종종 예로 많이 들게 됩니다. 이번 과정 중에는 우리 신체의 구조(생식기)를 처음 그려본 첫 시간이 가장 인상이 남아요. 분명히 수업자료로 썼던 내용인데 그리려고 보니 도대체가 기억나지 않은 사실! 그러나 복습을 아직도 못했답니다.(언젠간 꼭 그리고 말 테야!) 우리 몸의 생식기 구조를 이해하면 잘못 알고 있었던 정보들을 걸러낼 수도 있고, 성적 만족감에 대한 부분이라거나 궁금증들이 저절로 풀린다는 게 놀라웠어요. 성교육을 한다고 하면 어떤 분들은 어떻게 하면 섹스를 잘 할 수 있는지도 배울 수 있냐고 묻곤 하는데 <내 인생의 시의적절 성교육>을 통해 처음으로 그런 수업을 만날 수 있었어요. 얼마나 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공부를 하신 걸까 싶은 방대한 자료들과 함께 안전하고 평등한 섹스에 대해 이야기했던 시간들이 좋았습니다.외국의 성교육은 ‘관계교육’이 첫 단계라는 것, 먼저 ‘나라는 사람과 내 몸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되면 타인에 대해서도 좀 더 잘 이해하고 존중하게 된다는 것이 저에게는 매우 인상적이어서 수업 시간마다 이야기하곤 하는데 선생님 수업을 통해 다시 한번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 나와 관계를 맺는 사람은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가? 내가 지금의 파트너를 만나 잘 지내고 있는 이유까지 이번 수업 속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성소수자 친구가 있습니다. 우리가 알게 된 지 5년 즈음이 흘렀을 때 아주 어렵게 그 모임 친구들에게 커밍아웃을 했고 그의 우려에 비해서 그 모임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그 사실을 수긍하고 관계에 어떤 변화도 없이 잘 지냈답니다. 그렇다고 궁금한 것, 잘 모르는 세계에 대해 많은 대화를 한 건 아니어서 오해하거나 몰랐던 것도 많았던 것 같아요. 모태솔로였던 저는 연애를 자주 할 수 있었던 그가 반려인을 만나고 싶어하는 마음까지 이해를 하지 못했는데 제가 결혼을 하고 보니 그제야 알겠더라구요. 무성애자라도 사랑(연애)를 하고 싶지 않은 건 아니라는 선생님 말씀처럼요. <내 인생의 시의적절 성교육> 과정을 통해 그간 나의 관계 맺음의 시간과 과정, 감정들을 돌아보고 점검해 볼 수 있는 값진 시간을 가진 것 같습니다. 수업을 들으면서 성교육을 할 때 어떻게 풀어나가면 좋을지 고민하고, 공감했던 것들 잊지 않고 잘 적용해보도록 노력할께요.이 글을 쓰기 전에 1~5회차 수업자료들을 다시 돌아보면서 내년에 다시 들어야겠다는, 내년에는 좀 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잘 듣고 싶다는 마음이 듭니다. 멋지고 꽉 찬 수업 마련해주셔서 고맙습니다. from 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