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권의 정치철학 - 세계화 시대의 불평등 이해하기 |
[세계화 시대의 불평등 이해하기] 제5강 불평등은 왜 위험한가 |
리브레 |
2015.12.2 |
김만권
선생님의 '세계화 시대의 불평등 이해하기' 다섯 번째 강의에서는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불평등의 대가>를 토대로, 불평등이 민주주의를 어떻게 위협하는가에 대하여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동안 '세계화가 만들어 내는 불평등의 세 가지 얼굴(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불평등)'에
관하여 공부했다면, 이를 바탕으로 불평등을 경험한 중산층들이 민주주의에 환멸을 느껴 정치에서 멀어지고
그 결과 민주주의가 후퇴하게 되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강의 내용을 요약하여 강의록을 작성하였습니다.
우리는
경제위기 이후 회복이 찾아오지 않는 불행한 시기에 살고 있다. 즉, 우리의
경제 시스템에는 중대한 결함이 내재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 시스템이 이를 바로잡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 이유는 정치게임의 규칙이 상위 1%에 의하여 그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투표를 시민의 의무, '시민적 덕목'이라 여기기 때문에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여 투표에 참여한다. 이러한 시민적 덕목은 정치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신뢰를
전제로 하는 것인데, 이러한 신뢰가 깨지게 되면 사람들은 시민적 덕목을 벗어 던지고 정치에 환멸을 느끼거나
이탈하거나 그보다 더 심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부유층은 이러한 현상을 환영한다. 투표자들이 정치에서 멀어져 그들을 투표장으로 유인하기 위한 비용이
증가할수록 부유층이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유층의 정치적인 영향력이
커질수록 이를 지켜보는 유권자의 환멸감은 더욱 거세지고 이들을 투표장으로 불러들이기 위한 비용은 더욱 증가하는 악순환이 이루어진다.
정치는
협력의 과정이며 불신을 신뢰로 바꾸어 가는 과정이다. 모든 종류의 사회적 자본의 토대를 이루는 것이
바로 신뢰이기도 하다. 그만큼 정치 및 경제 전반에 있어 '신뢰'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신뢰를 밑천으로 하는
금융부문에서의 신뢰가 붕괴되면서 그 파급효과가 곳곳에 스며들었고 사람들이 경제 및 정치 시스템에 가지는 환멸도 강해졌다. 이러한 불신과 환멸은 신뢰와 사회계약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에 위기를 가져온다.
이러한
환멸이 증폭되는 가운데, 상위1%가 언론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현상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상위 계층이 그들의 경제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언론사를 매입, 지배하고 관념시장을 제어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미국의 정치 시스템과 경제 시스템에 제공되는 정보에 대한 신뢰마저 무너진다.
엘리트
계층은 광범위한 영역에서 투표가 이루어 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에 교묘한 방법으로 투표권을 박탈하려는
시도들을 벌인다. 이러한 시도들이 성공하게 되면, 유권자들의
의견이 무시되기 쉽고, 모든 유권자가 효과적으로 투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 깨지는 것을 보며 정치
시스템에 대한 환멸감이 강화되어 그만큼 선거가 금권화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주의에 가장 큰 위험요소로 작용하는 것은 '중산층이 정치에서 멀어진다'는 사실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정치에 대한 불신이 깊어 정치의 장으로
끌어오기 어렵고 부유층은 법에 얽매이지 않는다. 즉, 양극화와
불평등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이 두 세력은 민주주의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 반면, 중산층은 민주주의에서 투표가 가지는 의미, 법치의 필요성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계층이다. 그러나 노동시장의 양극화로 중산층이 공동화하고 있고, 남아있는 중산층마저 자신들에게 혜택을 주지 않는 정치 시스템에 강한 환멸을 가진 채 민주주의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Occupy Wall Street나 최근 미국 중산층 백인 젊은이를 중심으로 번진 버니 샌더스
열풍은 이러한 현상을 반영한다. 폴 크루그먼은 "소득의
과도한 집중은 진정한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현상은 비단 미국 내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세계화로 인한 불평등은 이미 전 지구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화와 함께 금융시장의 힘이 강해지면서
불평등을 완화하는 조세제도를 제약하고 이는 곧 민주주의에 대한 제약이 된다. 그러나 스티글리츠는 우리가
또 다른 세계를 이룰 수 있으며 세계화를 길들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세계화는 우리 스스로 '선택'하고 빠져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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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근대를 만든 인물들 2 |
[동아시아 근대를 만든 인물들2] 7강. 요시노 사쿠조. 물거품 |
문동욱 |
2015.11.30 |
[동아시아 근대를 만든 인물들2] 강좌의 일곱번째 강의는 '요시노 사쿠조'를 만나보았습니다. 강의 후기 정리는 자원활동가 문동욱님이 수고해 주셨습니다. - 아카데미느티나무 주-
1920년대는 일본현대사에서, 이채로운 시대에 속한다. 메이지 유신 이래 청일 러일 정쟁을 치르며 정신없이 달려온 국가주의 열차가 잠시 정지한 듯 보이는 시대이다. '데모크라시'와 당연하단 듯이 연결되어지는 이 다이쇼 시기는 민주주의 자유주의가 일시 꽃을 피운 듯이 보인다. 제한적이나마 집회 언론 출판이 종래에 비해, 그리고 만주사변 이래의 15년 전쟁으로 이어지는 이후 30년대에 비해 자유로웠고, 새로운 근대적 사회문화적 변동이 이루어지던 시기이다. 비록 그것이 10년을 채우지 못하고 꺽여버렸지만.
한국에서는 '문화통치'란 미명하에 보다 교활한 회유와 분열 책동이 이루어지던 시대로만 낙인 찍혀있기도 하다. 전적으로 우리 민족의 위업 3.1운 동의 그나마 결실로. 1차세계대전의 참화 이후 전 세계를 휘감았던 이상주의의 호소와 그 힘도 도외시되고, 17년 소비에트 혁명 이후 목소리가 커진 사회주의와 그에 대한 경계심 및 예비조치적 유화정책들의 영향도 외면된 채. 즉 일본 자체에서 이루어지던 변화는 무시되고 식민지이던 조선이 그 인력에도 이끌렸을 가능성은 전적으로 배제된체 말이다. 하기야 아릭부케-쿠빌라이의 내전을 외면한 채 단지 고려가 끈질긴 항쟁으로 몽골에 어느 정도의 인정을 받았다거나, 누르하치-홍타이지의 변화는 외면한체 다만 인조반정의 결과 호란이 일어나거나, 사회주의 탄압로 일본 본국에서 제정된 치안유지법을 조선민족독립운동 탄압을 위해 만들어진 도구로 설명하는 식의 자의식과잉으로 점철된 '국사' 서술에 무엇을 바라겠냐만은.
그런 의미에서 요시노 사쿠조는 딱 좋은 타겟이다. 일본에서의 그는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상징이다. 지식인으로서 언론활동가이자 대중계몽가이다. 민의 삶을 국가의 책임이라고, 그로써 국가의 존재근거로 본 시각, 민의 의향에 따라 정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은 이채로운 것이었으며, 이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참정권 확대를 내세워 보통선거권 투쟁을 이끌고 승리를 이끌어낸 준 영웅이다. 이로써 그는 현대 일본에서까지 민주주의 전통과 계보의 큰 줄기로 남아있다.
반면에 철저히 한국식으로 보았을 때 요시노 사쿠조의 조선관은, 조선'문제'인식과 처방전은 지극히 20년대의 일본인다운 것이다. 직설적으로 국사식의 정서로 표현하자면 교활하고 가식적인 사기꾼일 뿐이다. 일본제국의 식민지 조선이란 전제 하에,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을 냈을 뿐이다. 총독부의 압제적 폭정 중단의 요구는 눈속임이고 사기에 불과할 것이다. 자치권 부여 주장은 싸구려 회유이며, 민족운동 진열을 분열시키기 위한 술책에 다름 아니다. 일시동인의 선정을 극악한 민족말살의 전조일 뿐이다. 요시노 사쿠조란 인간은 없고 문화통치란 술책을 부려대는 1920년대의 일제일 뿐이다.
동 시기에 또다른 자유주의 언론인인 이시바시 단잔은 일본의 이익이란 관점에서 대만과 조선에 독립이란 선물을 안길 것을 주장했다. 별개의 문화적 전통을 지녀온 집단을 힘으로 영구히 지배할 수는 없기에 식민지 상실은 언젠가 일어날 것이라고 내다보았기 때문이다. 그때에 패배 내지는 실패로 잃을 채 원한을 살 바에는, 미리 독립을 선물로 주어 우호 속에 우방이자 경제적 권력으로 자발적으로 기쁘게 합류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그 자신이 일본인으로서, 일본의 이익을 고려하는 만큼으로 조선인에게는 조선인의, 대만인에게는 대만인의 정체성이 항구할 것이라 본 일관적 논리체계의 귀결이었다.
다른 한 사람, 극우파이자 우승열패의 신봉자이던 기타 잇키의 조선관과 주장도 그러하다. 그에게 조선은 멸망함으로써, 존재할 가치가 없음이 증명된 나라였다. 때문에 독립운동을 하는 조선인들은 어리석은 것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에게 조선은 이미 없어진 것이고 조선인도 물론 사라진 개념이었다. 일본제국의 새 영토와 새 신민만이 있을 뿐이었다. 때문에 그는 민족동화 정책 따위를 운운하지조차 않았다. 그에게 구 조선인은 지금 당장 일본신민인 것이었다. 하여 총독부를 반대했으며, 일본 본토와 동일 행정 동일 법제 동일 권리 동일 의무의 즉각적인 시행을 주장했다. 그러고나면 그는 본디 일군만민주의자로서, 구조선인에 대한 모든 차별과 편견을 전적으로 타파할 것을 주장했다. 국가주의자인 그에게, 그것은 그것대로 일관적인 논리성을 띈다.
요시노 사쿠조는? 그는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기독교인이며 자유주의자인 한 개인이다. 동시에 현실적인 점진론자이기도 하다. 그의 조선관은 방책으로서는 그에 일관적이기는 하다. 그는 기독교인으로서 동정적이고 온정주의적이었으며, 자유주의자로서 무단통치의 폭정을 반대했고, 민의의 반영이 이루어질 자치를 내세웠다. 그렇지만 그는 전제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조선은 반드시 일본의 식민지여야 했다.
개인적으로 그 자체에 분노하고 비난할 생각은 없다. 민족주의자들이란 본래 그런 법이니까. 그것을 민족적 관점 내에서 그나마 넘어선 것은 이시바시 단잔이다. 그는 너무나 당연한 흐름, 말했듯이 자신이 일본인임을 포기하지 않듯이 누군가는 조선인이고 대만인이란 정체성을 붙들것임을 깨달았다. 그러나 요시노 사쿠조 이하 대부분의 민족주의자들은 그 정도 일관성을 보전치 못한다. 자민족의 그것만큼이나 타민족의 민족주의를 유념치 못한다.
어쩔 수 없다. 민족주의는 근본적으로 타자에 대한 이해를 거세함으로써만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토록 저열하고 끔찍한 것을 이리저리 구분선을 만들어 방어적 민족주의니 뭐니 하며 귀퉁이를 붙들고 미화하는 자들이야 있다. 그러나 민족주우의 요체는 바로 신채호가 말하지 않았던가. 일본 무산계급과의 연대논의가 나오자 '일본인은 사죄하기 전까지는 그 누구와도' 라 소리지르던, 끝내 근본적으로 골수 민족주의자였던 그를 자꾸 아나키스트로 눈속임 시키려는 자들이 의지의 문제니 뭐니 그 의미를 곡해하지만, 신채호의 명쾌한 사론이야말로 기실 민족주의의 정수이다.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
한덩이 일체적 '아' 외에는 모조리 한 뭉텅이 '비아'만이 존재할 뿐이다. 비아들은 다양성도 차이도 없다. 무엇도 중요하지 않고 '아'가 아니기 ('비')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 아니 한덩이 비와와 할 것은 오직 궁극적으로 투쟁 뿐이다. Mein 'Kampf'의 저자께서 지극히 전율하며 공명하실 정수이다. 아리안인과 조선인으로서 각자 인종의 명운을 위해 서로 맞찌르고 죽어버리는 촌극으로나 귀결되긴 하겠지만.
현실에서 맞부딫히게 되는 문제와, 이른바 시대적 맥락이나 한계는 닿아있는 것이지만 동일하지는 않다. 신념을 초지일관 하는 것은 전후자 모두와 관계가 있다. 그러나 사상과 신념의 일관성과 완결성은 조금 다른 문제이다. 그것은 시대와 관계가 없다.
요시노 사쿠조가, 민족주의적 세계관을 일본인에 한해서만 적용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그의 제한적인 '민본주의' 이념도 마찬가지다. '인민을 위한' 정치가 '인민에 의할' 때에 가능하단 점을 안 사람이 그것이 근본적으로 '인민의' 정치가 전제되어야 가능한 소리란 것을 정말 몰랐을가. 그렇다면 모호하기 그지없는 '민심' 에 귀를 기울이는 왕도정치인들 안 될 것이 무엇이고 다를 것이 무엇인가. 인민의 것이 아닌데, 허락된 영역에서 춤추는 것이 인민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는가? 감옥 안의 죄수가 묶여있지 않다면 자유로운가? 요시노 사쿠조는 자신의 논리 자체를 한발짝 내뻗는 것을 중단한 것에 다름 아니다.
근본적으로 그에게 사상은 부재하다. 그러니 그에 기반하는 활동도 표피적으로 많은 것을 이루었어도 근본적으로 공허하기 그지없다. 기둥 없이 지붕을 올릴 수는 없다. 그런 그가 기수였던 다이쇼 데모크라시가 물거품처럼 사라진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것을 전통과 기반 삼으려는 현대 일본의 민주주의에도 미래는 기대할 수 없다. 그건 87년 직선제 이후, 7,8,9 실질적인 노동계 대투쟁을 비롯한 사회변혁 운동을 '민주화가 이미 되었는데''빨갱이 놈들''이익만 챙기는 이기주의'로 매도하던 중산층 시민들의 이른바 민주주의가 환상에 불과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그것은 그저 우연히 당첨된 복권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그리고는 그것은 모조리 탕진되었다. 어떠한 근본적인 여건의 변화도 없이 다음 세대인 우리에게 정치적 잔고의 파산과 높아진 정치적 소비수준만을 남겨놓은채. 마르크스는 그 무수한 오류에도 불구하고 하나만은 반드시 옳았다. 하부가 상부를 결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생산관계니 경제관계니 하는 것만이 하부가 아니었던 점에서 그가 틀렸다고는 하지만. 결국 차세대는 하부를 우선 세워야하고 그러기 위해 저변부터 다져야 한다. 그것은 오직 일관성과 완결성으로만이 가능하다. 그것은 시대를 불문하고 명백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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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권의 정치철학 - 세계화 시대의 불평등 이해하기 |
[세계화 시대의 불평등 이해하기] 제4강 세계화 시대의 사회적 불평등 |
리브레 |
2015.11.25 |
김만권 선생님의 '세계화 시대의 불평등 이해하기' 네 번째 강의에서는 지그문트 바우만의
저서 <새로운 빈곤>을 토대로, 지구화 시대의 사회적 불평등 문제를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강의
내용을 요약하여 강의록을 작성하였습니다.
"가난의 문제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가난한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그들에게 부여하는 가치이다."
과거 산업사회의 도래로
세계화가 확대되던 시기에는 잉여 노동력을 외국으로 옮김으로써 이들이 사회적 불안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을 낮추었다.
이는 근대화의 지역적 차이에 따라 국가간 권력과 힘의 불균형이 현저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러나
이제 근대화는 전 지구적 현상이 되었기 때문에 '지역적 잉여의 지구적 배출'은 어려워졌고, 난민 문제 등으로 인하여 오히려 개발도상국으로부터
발전된 국가로 잉여 노동력이 유입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바우만은 이렇게 '말랑말랑한' 경계를 가지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늦은 근대의 시기를 '액체근대'로 정의한다. 견고했던
과거 민족국가의 경계가 약화되고 유연해지면서 이렇게 약화된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소수의 사람들은 경쟁력을 갖는다. 반면, 소비사회에서 일자리를 얻지 못하여 '소비력'을 갖추지 못하는 '잉여'들은 마치 '쓰레기'와
같이 취급되고, 이들은 배출구 없이 갇힌 곳에서 끊임없이 떠돌다 '최하층계급'으로 전락한다.
통일된 정체성을 갖지 못하고
여기 저기서 밀려온 '최하층계급'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이 계급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들을 '노동윤리가
미치지 않아 일하고자 하지 않는', '부도덕한', 따라서
'도와줄 가치가 없는 사람'으로 낙인 찍는다. 이러한 시선을 통해 이들을 사회에서 배제시킴으로써 이들에 대한 도덕적 부담감과 그들 역시 최하층계급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심리적 공포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국가 역시 이러한 '쓰레기'들을 관리하기 위해 안전산업(예. 감옥산업)에 집중하기 때문에 과거의 사회국가는 점점 보안국가화 된다. 그리고 사회로부터 배제된 이들은 그러한 시선 속에서 모든 권리의식을 잃고 저항하지 않는다.
"불필요하고 쓸모가 없고 버려진 그들은 우리의 눈 밖에 있다."
한 시간 여의 강의 후에는
토론의 시간을 가지고 '우리가 빈자를 바라보는 시선', '직업이
없다는 것이 나에게 주는 의미', '노동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복지'
등에 대하여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가난한 이들과 노동하지 않는 또는 노동할 수 없는 이들에
대한 각자의 시선을 점검해 볼 수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로 마음이 묵직해지던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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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교육 디자이너 과정 1기 - 새롭게 그리다, 한반도 동아시아 평화에 대한 상상 |
[평화교육 디자이너 1기 - 동북아과정] 제8강 나의 평화교육 디자인 선보이기. |
마음천천히 |
2015.11.24 |
평화교육 디자이너 1기 – 동북아 과정 <새롭게 그리다, 한반도 동아시아 평화에 대한 상상>
8강 나의 평화교육 디자인 선보이기
2015년 11월 29일 7시 ~ 9시 30분
강사 : 이대훈, 이미현
마지막 8강에서는 키워드 요약하기, 어휘 찾기, 교육개념 디자인하기를 연습했습니다. 그리고 과제 ‘평화교육 수업 교안 기획서’를 발표했습니다.
1. 키워드 요약 활동 : 진행자가 제시한 주제에 대해 한 사람씩 순서대로 말한다. 진행자는 단계적으로 연습강도를 높인다. 이 활동은 학습자를 참여시킬 뿐 아니라 진행자가 학습자들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준다.
1) 주제1 [키워드 요약의 장점] : 예) 연결성, 축적, 상승, 인정받는 경험, 언어의 명료화, 정리 등.
2) 주제2 [한 주간 있었던 일(좋았던/싫었던 일)] : 첫 번째 사람이 이야기한다. 바로 옆 사람이 앞 사람의 이야기를 요약한 후, 자기 이야기를 한다. 이 과정을 반복하는 중 진행자가 작업을 정지시키고 관찰한 것을 질문한다.“학습자가 더 존중받는 기분이 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교육 진행자로써 요약하는 방식에 좀 더 개선하고 싶은 것은?” ▶ TIP : 공감적 소통. 진행자는 상대를 인정해주고, 학습으로 끌어낸다. 그것을 촉진하기 위해 몸 소통, 이름 호명, 키워드 부각, 명사요약, 어조, 확인하는 과정 등을 사용한다.
3) 주제3 [교육 진행자가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태도] : 첫 번째 사람이 말하면 세 번째 사람이 요약한다. 다시 두 번째 사람이 말한 것을 세 번째 사람이 요약한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사람이 전체 요약을 한다. 역시 진행도중 진행자가 개선할 점에 대해 묻는다. ▶ TIP : 몸으로 기억하기, 시선 공유하기.
( 주어 )가 ( 명사 ), ( 명사 ), ( 명사 )를 (~~~~동사) 다.
| 2. 중간 결론 : 좋은 요약의 문법.1) 주어 : 주어를 지칭하는 것은 개별성을 인정하며, ‘내가 당신을 존중합니다.’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2) 명사 : 키워드 요약을 통해 참가자들과 내용적, 감정적 교류를 한다.
3) 동사 : 인정과 긍정의 동사를 찾고, 다양한 동사를 사용한다. 예) 제시했다. 제안했다. 이야기했다. 말씀하셨다. 강조했다. 설명했다. 지적했다. 설득했다. 설명했다. 언급했다. 주장했다. 비판했다. 공유했다. 찾아주셨다. 도와주셨다. 나눠주셨다. 선물로 주셨다 등.
3. 키워드 요약활동
1) 주제 [동북아 평화교육에서 다룰 수 있는 것] : 앞 사람이 말한 것을 다음 사람이 명사(키워드)로 요약한다. 이 때 앞에서 이야기한 개선사항을 반영한다. ▶ 접두사 : “다시 요약하면, 정리해보면, 종합하면~”과 같은 반복의 뉘앙스는 학습자에게 지루함을 줄 수 있다. 그러므로 “저는 이렇게 들었는데, 어떤가요?”, “키워드를 한번 뽑아본다면 ~~인데, 어떠세요?”라고 말하여 반복을 피하고, 진행자가 참가자에게 권한을 돌려줄 수 있다. ▶ 되물음 : “제가 요약한 게 맞죠?”라는 표현 대신에 “그렇죠? 그렇지 않은가요?”, 확인하는 눈빛교환, “고맙고요, 너무 좋고요, 멋졌습니다.”같은 감사표시를 사용할 수 있다.
2) 어휘 찾기 : 참가자를 긍정하고 인정하는 동사, 의견의 질을 표현하기 위한 말을 찾는다. 예) 빛난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다. 훌륭하다. 창조적이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공감이 된다. 깜짝 놀랄 만하다. 놀랍다. 뛰어나다. 아름답다. 독특하다. 고유하다. 특별하다. 생각해보지 않은 이야기다. 독보적이다. 독창적이다. 쩐다. 대박. 헐. 엄지척. 자극이 되는 이야기다. 신기하다. 소나기 같이 시원하다.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다. 신비하다. 신기롭다. 신선하다. 기발하다.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귀중하다. 상상력을 자극한다. 영감을 주셨다. 독특한 방향이다. 넓은 사고를 갖게 했다. 지평이 확 열린 것 같다. 큰 힘이 되었다. 보석과 같다. 기분이 좋아진다. 흥미롭다. 가치있다. 색다르다. 새롭다. 다채롭다. 가치롭다. 귀하다. 다양하다. 영롱하다. 선명하다. 눈부시다. 찬란하다. ▶ 진행자의 덕목 : ① 참가자의 대답에 형평성을 유지한다. ② 교육의 목표에 충실 한다. 참가자의 반인권적·폭력적인 의견에 단호한 모습을 보일 필요도 있다. 단, 사람에 대한 비난은 피한다.
3) 키워드 목록 수집 : 진행자가 교안에 있는 문장을 하나씩 읽는다. 학습자는 그 문장에 있는 핵심 단어를 모두 고른다. ▶ 대부분 문장의 맨 앞이나 뒤에 강조점(상위 핵심 키워드)이 있다. 해당 교육주제에 대한 키워드가 진행자의 머릿속에 정리되어 있으면 편하다. 왜냐하면 아는 것이 잘 들리기 때문이다. 또한 키워드를 요약함으로써 참가자에게 이야기를 짚어주는 데서 오는 기쁨을 줄 수 있다. 그러므로 평소에 단어중심으로 들으며 기억, 분석, 요약하는 연습을 하자.
4. 교육개념 디자인하기.
1) 어휘 적기 : A4용지를 반으로 나눈다. 왼쪽에 [동북아 평화교육 진행자가 기억하고 있어야할 키워드]를 적는다. 오른쪽에 다른 사람들이 적은 단어를 공유한다.
2) 학습목표, 구성요소, 주제요약하기 : 적는 순서 ①→②→④→③
①학습목표
| ②학습의 구성요소
| ③연결단어
| ④세부주제
| 내가 하고 싶은 동북아 교육을 질문문장형태로 적는다.
| 아까 A4지에 적은 단어들 중에서 연관 된 것들을 적는다.
| ②와 ④의 개념적 연결어를 찾는다.
| ②에 적은 단어들의 상위개념을 2가지로 요약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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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교육 디자인 설명하기 : “내가 하고 싶은 교육은 ①이다. 이것을 부각시키기 위한 주제로 ④를 잡았다. 주제④를 설명하기 위해 ②를 통해서 ③을 이야기 하고 싶다. 구체적으로 역할극, 자료, 몸 소통 등을 이용하여 ②를 ③에서 ④로 연결시킬 것이다.” 즉, 상징적인 활동(역할극)을 하고나서 Input(정보제공)을 한 후, 실질적인 토론을 통해 동북아교육 주제로 연결시킨다.
4) 숙제발표와 피드백 : 교안을 기획할 때 진행자의 동선·위치까지 계획한다. 연극대본 수준으로 만든다. 어휘는 50~100개 정도 찾는다. 사전 독서자료, 시청각 자료 등을 준비한다. 과제 수행 중심의 배움 진행 시 학습률, 집중도, 실천효과 등이 높아진다. 예) ~에 대해 5가지 생각하기. |
동아시아 근대를 만든 인물들 2 |
[동아시아 근대를 만든 인물들2] 6강. 송미령. - '권력. 여성.' |
문동욱 |
2015.11.21 |
[동아시아 근대를 만든 인물들2] 강좌의 여섯번째 강의는 '쏭메이링(송미령)'을 만나보았습니다. 강의 후기 정리는 자원활동가 문동욱님이 수고해 주셨습니다. - 아카데미느티나무 주-
'여자라면 힐러리처럼' .2007년에 나와 제법 팔려나가고 서점의 진열대들을 매우던 책이다. 당당함을 뿜어내는 만큼이나 고압적으로 강제적인 책 제목이지만 생각해보면 한심스럽고 비굴하기 짝이 없다. 지금에 힐러리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을 한번 치루고, 국무장관을 역임하였으며 다시 미국의 유력한 대권후보이다. 그러나 07년에는? 그녀가 대선 후보 준비를 하고 있기는 하였다. 허나 그때까지 그녀는? 검증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들 기억하다시피 그녀는 영부이인었으며 그게 전부였다. 물론 그녀가 단순히 빌 클린턴의 아내가 아니라, 엄청난 영향력을 지닌 동지적 존재였으며 정치적 지혜를 지녔으리라고는 모두들 모두들 여기고 있던 바다. 그렇지만 애초에 그 모든 것의 근원이 합당했던가?
어떤 공직도 아니고, 단지 선출된 대통령의 아내이기에, 그리고 대통령에게 개인적으로 지니는 영향력이 과연 합당하고 용인될 수 있는가? 그것이 정당한가? 그녀는 대통령이 공적으로 국민에게 위임받은 권한을 공적으로 나눠가지는 -부여받는- 공직자조차도 아니었다. 그녀는 대통령이 된 빌이란 한 남자의 아내, 지극히 사적인 관계에 권력의 뿌리를 내린 존재였다. 원칙적으로 그것은 슬어버린 녹에 다름 아니다. 미국이 폐쇄적인 사회라 여성에게 그런 식 외에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참작의 여지는 있다. 그러나 그녀 이전의 여성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백악관에서 당당한 전문가, 안보보좌관으로 시작되었던 콘돌리자 라이스는?
기실 책이 나올때까지의 힐러리는 권력과 명성을 최악의 방식으로 누리던 여성에 불과했다. 그런대도 책 제목이 그리 역겹도록 오만방자한 것은 저자들도, 받아들일 소비자들도 아무 문제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그들에게 권력과 여자는 그런식으로 밖에 연결되지 않았으리라. '여자'란 그들에게 그런 존재에 불과했을테니.
송미령은 장개석의 아내로서, 악의적인 비아냥 담긴 표현대로, 그러나 그와 상관없이 딱 들어맞게도 '권력을 사랑한 여인'이었다. 애초에 세상에 권력을 사랑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만은. 친목모임 술자리 대화라도 화제와 흐름을 자기 바랄대로 이끌고 싶기 마련인데. 여하간 그로써 송미령에게 덧씌워진 것은 유구한 중국사의 전통에 따른 '정치적 악녀'의 표상이다.
그것은 군주를 환락에 이끄는 미색, 이른바 경국지색으로 꼽히는 서시 달기 양귀비와는 전혀 다른 증오의 대상이다. 한 고조의 아내 여후(여치), 당고종의 황후이자 후에 스스로 성신황제에 올랐던 -말년에 그 자리를 유지 못하고 끌어내려진- 무측천, 청 함풍제의 아내이자 동치-광서 연간에 섭정으로 권력을 행사한 자희태후 즉 서태후. 송미령은 신중국의 황제나 다름없는 장개석의 아내로서, 후에 그 자리를 얻는 모택동의 아내인 강청과 함께 이 이미지의 마지막 계보를 잇는다.
강청만은 다르긴 하다. 그녀는 매도당했다기에는 실제로 저열한 악인이었고 동정이나 재평가의 여지는 없으니까. 그러나 스스로 말한대로 그녀는 모택동의 개에 불과했다. 그가 짖으란 상대에게 짖었고 물란 상대를 물었다. 그의 의중을 벗어나서는 아무 힘이 없었다. 그리고는 힘의 근원이 되던 모택동의 사망 직후, 그리 기세등등히 문화대혁명 내내 날뛰던 사인방의 나머지와 마찬가지로 눈깜짝할 사이에 권력을 상실하고 숙청당할 뿐인 존재였다. 그녀는 타인의 도구에 불과했고, 그에서 알량한 권위에 취해있던 역사의 작은 벌레에 불과했다. 민자영을 미화하는 것이 우스운만큼 그녀에게 망국의 책임을 지우는 것은 부당하다. 강청도 마찬가지다. 강청이나 민자영이나 영사적 가치와 의의는 전혀 없는, 부정적인 영향조차 미칠 수 없는 먼지에 불과한 존재들이였으니까.
그러나 이른바 '정치적 악녀'들의 실체는 그와 조금 다르다. 그들은 혹독하고 냉정했으며 때때로 잔인했다. 그러나 그건 정치적 투쟁이 극심한 상황에서 살아남을 모두가 보이는 특성일 뿐이다. 그들이 여성이었기에 반발이 거세어 많은 피를 보았을 수는 있지만 그녀들이 여자이기에 잔인했던 것은 아니다. 물론 한 개인으로서 그런 장벽들을 으깨어버리도록 권력의지가 강하고 지독한 성미들이었던 개인들은 맞지만, 그건 그녀이기 이전에 그 사람들의 퍼스낼러티일 뿐이다. 정치적 악녀들의 신화는 결국 그 정도 인간이 아니고서는 여자는 정치와 권력에 닿을 수 없던 시대와 환경의 적자일 뿐이다.
그러고나면 여후의 치세는 그녀에 부정적이전 사마천마저 인정하도록 '백성의 삶은 평안했다'. 무측천의 시대는 곧 중국인들이 그리 자랑스러워하던 성당기이며 노년의 그녀를 황제에서 끌어내린 복고파조차도 황실의 큰 어른으로 모셔야 하도록 그녀는 권위를 지니고 존경을 받던 존재였다. 서태후. 무수한 날조와 매도의 신화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제국의 구심점이었으며, 때문에 중국이 해체되지 않고 그로써 인도처럼 완전한 식민지로 전락되는 것을 피했음은, 그리고 조작과 모욕이 이루어지기전까지 그녀가 인민들에게 경애받던 '노불야' 였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과연 송미령은 어떨까. 그것이 궁금하던 터였고 아는 바가 없었기에 기다렸던 강의였으나 아쉽기 그지없다. 솔직히 아직도 평을 할만한 여지조차 찾기가 어렵다. 그녀의 삶이 어쩔 수 없이 중국의 현대사 전체와 얽혀져 있다. 그리고 중국 전체와 국제정세까지 뒤얽힌 그 무대에서 송미령의 역할과 비중은 집어내기 어렵다. 애초에 그녀의 영향력은 결국 비공개적이고 비공식적인 부분에서 더욱 크니. 정적들마저 인정한 그녀의 명민함, 지식, 어학능력과 서양 사회에 익숙함은 장개석에게 큰 조력이 되었을 것이다. 정치적 조언은 물론, 외국과의 협상에서도 그렇고 더더욱이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이미지를 개선하는데 큰 기여를 했으리라. 하지만 도리어 장개석과 국민당의 한 하위에 불과해, 그녀의 주도적인 업적이라 할만한 것은 찾을 수 없다. 그녀는 그 전체에서 일정 이상의 영향력을 지니고 권력을 만끽하며 살았겠지만, 후대인인 나로서는 그녀에 대해 추론해볼만한 근거가 없다. 전설이 된 그녀의 명민함을 보여줄만한 결정이 그녀의 이름으로 난 적부터 없지 않은가. 그녀는 거대한 역사적 존재들의 일부이고 그림자에 가려져 있을 뿐이다.
중국 현대아세, 아시아 역사에 가장 결정적인 것은 1936년 서안사변이다. 시계에서 가장 크고 많으며 일체감을 지닌 4억 인구가 일치항일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에 장개석은 반쯤은 떠밀리듯 노구교 사건에서 강경한 태도를 보이며 일본에 맞섰고, 중국은 4년간 일본제국과 홀로 전쟁을 벌였다. 그 4년이 흐르고나서야 미국은 이미 지치고 한계에 이르러가는 일본을 압박하기 시작했고 태평양전쟁을 승리해 그 힘을 제거했다.
송미령이 없었다면? 남경정권은 서안에서 체포된 장개석을 기꺼이 희생시키고 장학량 동북군-양호성 서북군-중공 홍군과의 내전을 벌였으리라. 장개석의 빈자리를 놓고 왕정위 이종인 풍옥상 하응흠 호종남 손과 송자문 공상희 등이 다투기에 바쁘고, 용운 염석산 서북삼마들은 할거했으리라. 국민당은 분열되고 혼란에 빠진 중국의 각부는 각기 일본에 공순하여 삼켜졌으리라. 미국은 홀로 큰 부담을 무릅쓰는 대신, 전격적으로 아시아에 수립된 거대한 제국을 인정했으리라. 허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는 천황제 군국주의의 보다 짙은 그림자 아래 놓여지고, 세계는 그 위험하고 강력한 존재를 경계하면서도 방관하고 인정했으리라.
서안사변의 수습에서, 장개석의 유고상황에서 송미령은 유일하게 그녀가 전면에 나서 주도적으로 일을 치뤘고 국민당과 중국, 아시아와 세계를 구했다. ...근데 그게 겨우 장학량과의 로맨스로 해석되다니. 트라비아에 불과할 것이 주가 되면 우스울 따름이다. 이로써 중국 현대사 최대의 사건은 단지 한 여자와 그녀의 전 애인과 현 남편의 문제로 전락할 뿐이다. 그런식으로 되면, 장경국이 계엄해제를 비롯한 국민당의 개혁 및 체제이완을 이끈 것도 생략되면서 장새석 사후 권력투쟁도 단지 집안 서열의 일에 불과하게 된다. 국민당 신구파의 갈등은 사라지고, 적장자가 아내에게 승리하는 일에 불과하게 된다.
장개석의 수년에 걸친 구애를 받아들인 시점이 그가 중국의 제1인자가 되고나서야인 것과, 그의 사후 국민당 당권 장악 투쟁에 나섰던 것으로 송미령이 권력을 사랑했음이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말했듯이 그건 그녀뿐 아니라 누구나 어느 정도는 대게 마찬가지이다. 중요한 것은 그 외에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가이나, 그에 대해서는 미루어 짐작해볼만한 것이 여전히 없다. 강의를 통해서도 그녀는 결국 권력을 사랑한 '여인'으로서만이 그려져 기억되고 있을뿐임이 새삼 확인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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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교육 디자이너 과정 1기 - 새롭게 그리다, 한반도 동아시아 평화에 대한 상상 |
[평화교육 디자이너 1기 - 동북아과정] 제7강. 평화로운 한반도 상상하기 - 분단폭력에서 통일평화로 |
바네사 |
2015.11.18 |
평화교육 디자이너 1기 - 동북아과정 제7강. 평화로운 한반도 상상하기
- 분단폭력에서 통일평화로
2015. 11. 12. 목 자원활동가 주선민
지난 12일, 평화교육 디자이너 1기의 7번째 수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날 수업에서는 서보혁 통일평화연구원님이 수고해주셨습니다. 수업은 크게 '평화'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돕고, 이를 토대로 한 '한반도 평화'에 대한 논의의 순서로 진행되었습니다.
1. 평화의 이해
우선 '평화'라는 말은 아래에서 볼 수 있듯이 문화권마다 각기 다른 의미와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 the Latin Pax 질서
- the Hebrew shalom and the Arabic salaam 평화, 정의, 건강, 등
- 이슬람 Isam, 알라에게 순종하고 겸손한 사람
또한 평화의 종류 역시 그 기준에 따라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크게는 아래와 같은 기준으로 구분지어볼 수 있습니다.
- 소극적 평화, 적극적 평화
- 구조적 평화, 문화적 평화
- 지속가능한 평화, 정의로운 평화 (과거 기독교 전쟁 및 기독교 문화에서 기인)
평화로 가는 길
또한 평화를 이루어나가는 과정 또한 여러 단계로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는 Peace Making-Peace Keeping-Peace Building의 단계로 나뉩니다.
- Peace Making: 평화 상태 구축
- Peace Keeping: 평화 상태의 유지
- Peace Building: 지속가능한 구조적 평화를 유지해 나가는 것. 적극적 평화에 해당.
단계가 올라갈수록 보다 높은 수준, 즉 적극적이거나구조적인 수준의 평화를 달성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각 단계는 중첩될 수 있습니다. 현재 한반도 평화에 대해 논할 경우, 남북한의 물리적 분단 상태 해소, 즉 Peace Making만이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분단 상태에서도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논할 수 있듯이, Peace Building에 대한 지향 역시 동시에 이뤄질 수 있습니다.
2. 한반도 평화 상상
한반도 비핵화
현재 한반도의 평화에 대해 논할 때는 소극적 평화에 대한 논의가 지배적인 편입니다. 특히 한반도, 더 나아가 동아시아 평화 문제를 논할 때 “북핵문제”에 대한 고민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부터 6자회담을 비롯한 북-남-미-일 등 관계 당사자들의 수 차례 접촉에도 불구, 북핵 위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한반도 평화체제
- 평화유지 - 안전보장조약, 불가침조약
- 평화회복 - 휴전조약과 평화조약
현재 한반도 평화체제를 이루고 있는 협정 및 조약들이 다수 존재합니다. 하지만 가장 우선시되어야할 질문은 바로 "평화협정(조약)의 당사자, 방식, 조건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현재 남북한 분단 상황의 당사자는 누구인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북기본합의서(1991.12.13) ***
이는 현재의 남북 관계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합의서 중 하나입니다. 특히 현재의 한반도 내의 특수관계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제5조. 남과 북은 현 정전상태를 남북 사이의 공고한 평화상태로 전화시키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하며 이러한 평화상태가 이룩될 때까지 현 군사정전협정을 준수한다.
결국 북한에 대한 대응방식 및 통일 노선은 현재의 정전상태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판이하게 달라집니다. 즉 북한을 특수관계로 이해하느냐 혹은 국가대국가의 관계로 이해하는지가 관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10.4 남북정상선언(2007)
특히 10.4 남북정상선언에서는 수역에 관한 분쟁 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하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선언문 내에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라는 문구에 대해 많은 비판이 있었습니다. 남북 통일 문제의 관계 당사자에 대해 모호하게 표현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 문제 해결 당사자를 이해하는 것은 현 한반도 분당 상황을 이해하고 해결하는 데 주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보편 인권과 북한 인권
특히 최근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뜨겁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비판이 가해지자, 북한은 2009년 북한헌법에 인권에 대한 내용 포함시켰습니다.
북한헌법 제8조. 국가는 로동자, 농민, 군인, 근로인테리를 비롯한 근로인민의 리익을 옹호하며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한다.
국제인권 메커니즘과 방법
그렇다면 북한 인권은 어떤 방식으로 해결해나가야 할까요. 국제적으로 인권 문제 해결법은 아래와 같은 과정을 거칩니다.
보호(Protection) : 최소한의 국가의 인권 침해 방지 ▶ 증진(Promotion) : 인권 개선 방안 마련 ▶ 이행(Fulfillment) : 보다 높은 수준의 인권 보장
그 방법 역시 외교 언술상의 개입부터 경제, 기술력 지원과 같은 비군사적 방식, 적극적 개입까지 다양합니다. 북한인권 문제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고려했을 때, 정책 목표는 일관적이되, 정책 방향은 다양해야 합니다. 즉 다양한 방법론적으로 접근해, 북한 인권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분단 폭력
마지막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분단폭력'입니다. 이는 분단에 의해서, 분단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비인도적, 반인권적 행태로, 메카시즘 혹은 레드 컴플렉스로 대변되는 우리 사회 전반의 반공 사상과 그 기저를 같이 합니다. 결국 통일이 되지 않으면 분단폭력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평화운동과 평화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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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권의 정치철학 - 세계화 시대의 불평등 이해하기 |
[세계화 시대의 불평등 이해하기] - 3강 세계화 시대의 정치적 불평등 |
이수종 |
2015.11.17 |
이번 강의는 강의에 앞서, 시 한편을 읽는 것으로 시작됐습니다. 김중식의 사춘기라는 시로서, 신념을 지키며 살아온 자가 마흔 살에 느끼는 회한을 담은 시였습니다. 저는 이 시를 이해하기에 어린 나이였지만, 와닿는 부분이 있었던 걸 보면 김만권 선생님이 좋은 시를 선택해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계화 시대의 정치적 불평등은 래리 M. 바텔스의 불평등 민주주의의 내용을 함께 살펴보고 우리의 상황과 대비시켜보며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이 책에서 바텔스는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가 정치적 불평등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가를 분석했습니다. '신도금시대'라고 불리는 오늘날은 1900년대 도금 시대의 엄청난 물질주의와 정치부패와 닮아 있습니다. 경제적 불평등은 심해졌고 물질주의는 횡행하며 정치 역시 불평등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1950년 대 로버트 달은 미국의 민주주의를 다원주의적이고 경제력이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고 분석했으나 오늘날 미국은 정치가 경제력을 가진 자들에게 집중된 형국입니다.
오늘날 미국의 정치인들은 못가진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습니다. 미국의 중산층까지도 가진 자의 이데올로기에 휩쓸리곤 합니다. 이는 감세정책에 대한 지지, 최저임금의 정체를 통해 잘 알 수 있습니다. 중산층 중 상당수는 검증된 적 없는 '불가피한 불평등',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는 불평등'과 같은 담론에 휩쓸리기도 합니다. 그 사이 불평등은 심화 되었고, 정치인들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못가진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한시간여동안 이와 같은 내용의 강의가 끝난 후, 강의를 같이 듣는 분들과 우리 현실에 대한 토론을 나눴습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나라의 중산층들도 불평등을 지지하는가?와 같은 질문이 나왔고 많은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우리에게 각인된 낙수효과에 대한 지적도 가난한 사람이 부자의 입장을 지지해주는 착각에 대한 지적도 나왔습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공감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다음 강의에서는 사회적 불평등을 다루게 됩니다. 세계화 시대에 접어들며 우리는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불평등해졌습니다.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부분 역시 불평등해졌으리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최소한의 인권이던, 사회 속의 주체로서 살아갈 수 있는 권리던간에 상관없이 말입니다. 다음 시간에도 조금 더 많은 분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의 불평등을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지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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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교육 디자이너 과정 1기 - 새롭게 그리다, 한반도 동아시아 평화에 대한 상상 |
[평화교육 디자이너 1기 - 동북아과정] 제6강. 평화시민의 역할과 평화시민 되기 |
바네사 |
2015.11.12 |
[평화교육 디자이너 1기 - 동북아과정] 제6강. 평화시민의 역할과 평화시민 되기
2015년 11월 5일 자원활동가 주선민
지난 5일에는 평화교육 디자이너 1기 동북아 과정의 제 6강 ‘평화시민의 역할과 평화시민 되기’ 수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날 수업에서는 이경주(인하대 법학과 교수,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소장)님이 수고해주셨습니다. 이 날 수업에서는 인권과 평화권의 개념 및 역사에 대해 들어보고, 평화적 시민의 역할과 위상에 대해 고민해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각자가 생각하는 평화권에 대해 적어보고 함께 공유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자세한 수업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매스미디어에 등장하는 전쟁의 이미지를 보면 마치 전쟁은 ‘화려하다’, ‘멋지다’ 등의 단어와 대응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전쟁의 실상은 이와는 다릅니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장’의 개념이 모호해지면서, 전쟁의 희생자 중 민간인의 비중이 크게 증가합니다. 이전에는 일정한 ‘전장’이 존재했고, 그 안에서 전투를 치르는 군인들이 주 희생자였으나, 전장 개념이 사라지면서 민간인 희생자 수가 크게 증가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1차 대전에서 사망자 수 2천만 명 가운데 일반인 비중 5%였던 반면, 2차 세계대전에서는 전체 사망자 수가 2배 가까이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그 중 일반인 비중은 48%에 달했습니다. 이는 대량 살상무기의 등장, 공군의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총체전’으로 전쟁의 양상이 변화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2차 대전 전후로 평화에 대한 조약이 부재했던 것은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1928년 체결된 ‘켈로그-브리앙 조약 (Kellogg-Briand Pact)’ 조약 (혹은 ‘부전조약)에서는 전쟁에 반대하는 내용의 조항들을 담습니다. 하지만 해당 조약에 강제성이 없어 세계 대전의 발발을 막는 데는 일조하지 못했습니다.
*참고: 켈로그-브리앙 조약이란? (출처: 위키피디아)
켈로그-브리앙 조약 (Kellogg-Briand Pact)은 1928년 8월 27일 미국의 국방장관 프랭크 켈로그 (Frank Billings Kellogg)와 프랑스 외무부 장관 아리스티드 브리앙 (Aristide Briand)의 발기에 의하여 파리에서 15 개국이 체결한 전쟁 규탄 조약으로서, 서문과 전문 3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문 1 조에 따르면, 조약에 가담 비준한 국가는 자국 국민의 이름으로 국제 분쟁의 해결 수단이나 국제 외교 정치의 수단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거부함과 동시에 포기하는 것을 조약의 기본 이념으로 삼고 있다.
이와 같은 훌륭한 도덕적 이념에도 불구하고, 이 조약은 조약 위반의 경우 대처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 때문에 켈로그-브리앙 조약의 가입국인 독일과 일본이 1940년대에 세계 대전의 주범으로 등장하였을 때, 이들 국가의 야만적 행위에 대해 다만 서류상 규탄만을 할 뿐이었다.
세계 대전 이후 여러 국가들에서는 '평화주의의 헌법규범화’가 진행됩니다. 세계대전 이후 국가권력을 강제하기 위해 평화주의 헌법규범화를 진행한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독일의 기본법, 일본의 평화번법 등이 있습니다. 특히 일본국 헌법의 전문에는 실제로 평화에 대한 언급이 다수 포함되어 있으며, 헌법 전체에도 평화에 대한 조항의 비중이 높은 편입니다.
실제 일본국헌법의 전문은 아래에 첨부합니다.
일본 국민은 정당한 선거로 구성된 국회의 대표자를 통해 행동하고, 우리와 우리의 자손을 위해 모든 국민과의 협력과 화합(協和, 협화)에 의한 성과와 우리나라 전체에 걸쳐 자유가 가져오는 혜택을 확보하며, 정부의 행위에 의해 두 번 다시 전쟁의 참화가 초래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을 결의하고, 이에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선언하며 이 헌법을 확정한다. 본래 국정은 국민의 엄숙한 신탁에 의한 것으로, 그 권위는 국민으로부터 유래하고, 그 권력은 국민의 대표자가 행사하며, 그 복리는 국민이 향유한다. 이는 인류 보편의 원리이며, 이 헌법은 이러한 원리에 기초한 것이다. 우리는 이에 반하는 일체의 헌법·법령 및 詔勅을 배제한다.
일본 국민은 항구적인 평화를 염원하고, 인간 상호관계를 지배하는 숭고한 이상을 깊이 자각하며,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국민의 공정함과 신의를 신뢰하며, 우리의 안전과 생존을 유지(保持)할 것을 결의했다. 우리는 평화를 유지하고, 專制와 隸從, 압박과 편협함을 지상으로부터 영원히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국제사회에서 명예로운 지위를 갖고자 한다. 우리는 전세계의 국민이 다같이 공포와 결핍으로부터 벗어나, 평화 속에서 생존할 권리를 가진다는 것을 확인한다.
우리는 어떠한 국가도 자국에만 전념하여 타국을 무시해서는 안되며, 정치도덕의 법칙은 보편적인 것으로서, 이 법칙에 따르는 것은 자국의 주권을 유지하며, 타국과 대등한 관계에 서고자 하는 각국의 책무라고 믿는다.
일본 국민은 국가의 명예를 걸고, 전력을 다하여 이 숭고한 이상과 목적을 달성할 것을 맹세한다.
대한민국 헌법 5조에도 유사한 조항이 존재합니다. 해당 조항은 지난 2003년 이라크 파병 당시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①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 ②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며, 그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
이처럼 평화권에 대한 이해는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과거 평화권이 단순한 인간의 바람으로 치부되었다면, 이제 평화권은 여타의 인권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보장받아야 할 권리에 해당하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일본에서 평화권에 관련된 투쟁의 대표적인 예시로는 '스나가와 사건’이 있습니다. 일본에 위치한 스나가와 마을에 일본 내 주일미군의 활주로 연장 계획이 발표되었지만, 주민들은 10년 간의 법적 투쟁 끝에 승리를 거둔 사건입니다. 이후 해당 지역에는 별칭 ‘평화공원’이 건립되어, 평화권에 대한 투쟁이 오래도록 기억되고 있습니다.
또한 평화권의 국제화 역시 진행중입니다. 1984년 UN총회 등에서 평화권에 대한 국제회의가 진행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유엔 총회에서의 선언이 다소 추상적인 수준의 결의였다면, 2010년 산티아고 선언에서는 평화권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담았습니다. 불복종권과 양심적 병역거부권, 군비축소에 대한 권리, 난민의 지위에 관한 권리 등이 그 예시입니다.
이후 2012년 유엔인권이사회 자문위원회의 평화권보고서에는 평화권의 주체는 개인(individual)와 인민(people)이라고 명시했습니다. 즉, 평화권의 주체는 단순 개인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집단도 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이 외에도 모든 인간의 안전 보장, 평화교육 및 훈련 등에 대한 내용들을 포함했습니다.
실제 오늘날 평화권의 예시로 인정되는 내용들에는 침략전쟁의 포기, 군비보유의 배제, 집단적 자위권 부인, 국가에 대한 평화저해 행위 배제(무기수출 등) 등이 있습니다.
수업 말미에는 제주도 강정, 평택 대추리, 김포 애기봉 주민들이 '내가 생각하는 평화권’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감상했습니다. 이후 수업 참여자들 개인이 생각하는 평화권에 대해 함께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 영상 바로보기: https://youtu.be/JsS__3rm5F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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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권의 정치철학 - 세계화 시대의 불평등 이해하기 |
[세계화 시대의 불평등 이해하기] 제2강 세계화 시대의 경제적 불평등 |
리브레 |
2015.11.11 |
김만권 선생님의 '세계화 시대의 불평등 이해하기' 두 번째 시간에는 지구화에 따른
세계질서 재편과 지구화 시대의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알아 보았습니다. 강의 내용을 요약하여 강의록을
작성하였습니다.
1.
지구화와 세계질서의 재편
지구화는 '사람의 이동'이라는 의미에서 인류탄생 이래 지속되어온 현상이나, 현재의 지구화는 기술의 발전과 맞물려 다방면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특징을 가진다. 이러한 지구화 현상은 주로 경제적 동기에서 시작되지만, 새로운 인구가
유입된다는 것은 새로운 문화의 동반 이동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다양한 문화적 충돌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예. 서 유럽의 난민수용). 즉, 지구화는 우리 삶의 지형 자체를 바꾸어 놓는다.
'베스트팔렌 모델'은 지구화
현상이 현저해지기 이전, 민족국가(nation-state)를
중심으로 한 세계질서를 의미한다. 이 때, 행위자의 단위는 '민족'이 되며 '국가주권'의 절대성을 보장받는다. 따라서 국가가 자행하는 무도덕 또는 부도덕을
견제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를 극복하여 무도덕한 체제에 도덕성을 불어넣고 국제질서를 '인권' 아래 재편하려는 움직임이 '포스트
베스트팔리아' 프로젝트이다. 롤스의 제자들 또한 정의론의
전 지구적 실현과 세계의 빈곤문제 해결을 고민하는 일종의 세계시민주의자들로서, 이들의 시도는 지구적 정의를
추구하고 이를 위해 국가간 협력을 권장한다는 점에서 포스트 베스트팔리아 프로젝트와 그 맥락을 같이 한다. 그러나
확산되는 테러리즘의 여파로 각국은 자국의 안보를 위해 전에 없던 수준의 비자통제를 시행하는 등 '네오
베스트팔리아'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즉, 현재의 세계질서는 열림(포스트 베스트팔리아)과 닫힘(네오 베스트팔리아)의
갈림길에 서있다.
2.
21세기 글로벌 부의 불평등 - 토마 피케티, <21세기 자본>
피케티는 지구적 차원에서
부의 불평등이 일어나는 원인으로 '규모의 경제가 만들어내는 자본수익률의 불평등'에 주목한다. 많은 경제 모형이 재산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의 자본수익률을 동일한 것으로 보지만, 부유한 사람들의 평균수익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높을
수 있다. 부유한 사람들은 탁월한 자산운용가를 고용해 더 많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으며 위기의 상황을
견딜 수 있는 힘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는 자본의 분배에 있어 근본적인 격차를 만들어내고 불평등의
수준은 무한히 증가한다. '많은 돈이 더 많은 돈을 버는' 불평등이
가속화된다.
국민소득에서 자본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과도하게 증가하고 이렇게 증가한 자본이 세습되어 세습자본주의가 구조화되면서 이러한 불평등은 더욱 공고해진다. 그리고 이렇게 심화된 불평등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피케티는 이와 같은 현상을
국제적 부의 순위, 미국대학기금의 수익률 등 다양한 실증적 자료를 토대로 설명한다. 그리고 불평등을 해결할 방법으로 민주주의 가치 및 제도의 강화와 지구적 누진세 실시를 주장한다. 특히 세습자본에 대한 누진세 실시를 통해 자본의 세습을 억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으나 거의 유일한 대안과 다름없다.
자본가들은 국가 간의 경계를 허물고 복지의 문제를 저지함으로써 자신들의 부를 축적하고자
한다. 이렇게 국경 없이 움직이는 자본은 국내/개인 차원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세계의 성장속도가 느려지고 과거와 같은 고성장을 기대할 수 없는 만큼, 이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분배'의 문제이다. |
동아시아 근대를 만든 인물들 2 |
[동아시아 근대를 만든 인물들2] 4강. 히라츠카 라이초. - '그리고 백년' |
문동욱 |
2015.11.9 |
[동아시아 근대를 만든 인물들2] 강좌의 네번째 강의는 '히라츠카 라이초'를 만나보았습니다. 강의 후기 정리는 자원활동가 문동욱님이 수고해 주셨습니다. - 아카데미느티나무 주-
히라츠카 라이초에 대해 어떻게 얘기하여야 할까. 역사에서 그게 누구라도 몇년에 무엇을 했고, 어떤 단체를 만들고, 무슨 글을 썼고 하는 연표 정리는 의미를 잘 모르겠다. 그런 식의 사실관계는 오늘날에는 헌신적인 연구자들의 기여에 따라 포털에서조차도 쉽게 자료를 찾아 볼 수 있으니. 어쨌든 내가 쓰는 것은 강의에 대한 후기이지 않겠는가.
그러고나면 강의에서도 다루어진, 그 당시 여성운동 내에서 이루어진 논쟁들도 흥미롭지만 다루기에는 모자란 역량으로서는 막막하기 그지없다. 정조, 낙태, 폐창, 모성. 이들은 사실 큰 줄기에서 현재까지도, 그리고 영원히는 아니더라도 기약하기 어렵도록의 미래에까지도 끝없는 논쟁과 토른의 거리가 될 법한 것들이니 말이다. 그 각 운동가들의 주장과 주 논점, 접근방법의 차이는 매우 흥미로우나, 내 부족한 역량으로 다루어보아야 강의안을 옮겨적는데 불과할 것이다.
그리고나면 배우느니 도둑질이라고, 악습대로 모호하고 큰 범위로 질질 끌어 돌아보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역사가 분명히 지니는 속성은 그것이 '사실' 못잖게 지니는 '기억'으로써의 입장이다. 역사와 여성이라...
'세상 밖으로 나온 여성들' 강의의 주제이기도 한데, 여성이 역사에서 그 이름을 남긴 것은 고대 이래 몇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몇몇조차 썩 아름다운 이름들은 아니다. 당장 우리와 우리에게 익숙한 중국에서는 폭정 혹은 망국의 근원에는 여성과 환관이 있다는 오래된, 편견으로 가득찬 레토릭하에서의 기록들이 대다수다. 그 개개의 퍼스낼러티와 별개로 그 한 인간이 악인인지 여부는 논쟁의 여지는 있겠으나, 설령 그렇다해도 어떤식으로든 그토록 강렬한 기질이 아니었더라면 그 시대에 여성의 처지에서 이름을 남길수 있었을가 하는 생각이 든다. 몇몇 악인 -이른바 악녀- 들의 존재는 도리어, 그쯤 되지 않고서는 이름 자체를 남길 여지도 없도록, 여성이 억압받고 침묵 당해왔음에 대한 증거가 되어준다.
내 개인적으로 부끄러운 것은, 역사에 관련된 전공을 가졌기에 본 강의에서 다루어질 다른 인물들은 적어도 이름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반면에 여성 3인에 대해서는? 송미령만은 안다. 그녀 또한 처절하게 권력의 세계에서 살아가며 발자국을 남긴 한 사람으로서. 내가 기억하는 그녀는 때때로 여성임을 수단으로 삼기는 하지만 -그만큼 제약으로도 되었을테니 일방적으로 비난 받을 꺼리만은 아니지 않을까- 기본적으로 정치가이다. 한 사람의. 그것이 송미령 개인은 기뻐했을지 쓰게 웃었을지 모를 일이나, 어떤 의미에서 그녀는 '여성' 의 한 성원으로써 기억되는 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아니었다. 개인적으로는 여치, 성신황제(측천무후), 서태후 그리고 잔다르크 등과 마찬가지로. 역사의 다른 인물들을 구태여 남성으로서 기억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러나 그런 것과 별개로, 그들의 삶은 이른바 여성에서 실제적으로 자유로웠다고는 볼 수 없다. 당대에, 그리고 후대에,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여성'으로서 평가받고 대해진다. 적어도 그것이 평가에 있어서 어떤 식으로든 작용을 한다. 기계적인 공평의 잣대는 무한한 힘을 지닌 현실 앞에 무기력할뿐더러, 특별성 앞에서 차별의 도구가 되기 마련이다.
두서없는 난론이 되어버린 것은 본래도 그렇지만, 올 한해가 페미니즘과 젠더가 폭발적인 그러나 아직 이름 붙이기 어려운 현재 진행형의 현상 그 자체를 빚어내며 아직도 한가운데에 있기 때문이다. 그 개개 사건이나 어떤 주장, 방식등에 대해서는 입이나 뇌가진 사람마다 제각기 하는 말과 할 말이 있고 생각이 있기 마련이다. 그 자체는 아무래도 좋다. 분명한 것은 '여성'이 개인으로서, 혹은 개념으로서 과거처럼 일방적으로 존재 자체가 깨끗히 무시당하지는 않는다는 분명한 사실이다. 혐오자들조차도, 적시는 할지언정 외면은 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그러고나면 그것이 가능해진 시작도 역시 인류의 정점이던 모더니즘의 시대에서 비롯된다. 주제대로, 그때에서야 여성은 세상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시대로부터, 히라츠카와 초기 활동가들의 시대로부터 100여년이 지났다.
그리고 기억에 대한 투쟁은, 작금의 한국 역사교과서문제와 마찬가지로 어디에서나 가열차다. 교수님께서 강의로 다루어주신대로, 일본 교과서 역시 각 출판사의 필진마다 나타나는 편집방향의 차이들처럼. 우익이라 하는 이쿠호샤 교과서는, 아예 최소한의 검정통과 기준만 충족하고는 모든 것을 제외한 극우 지유샤 교과서보다도 혐오스럽다. 여성운동을 정치 사회 운동에서 분리시킨다. 그리고는 마치 한국에서 쓰이는 '~의 꽃' 과 같은 역겨운 표현인 '나데시코' 일본사로 그것을 이름지어 별개 항목으로 넣어놓는다. 구태여 번역하자면 대강 아가씨들의 일본사쯤이 될법한, 그 천박한 어휘에 걸맞게도, 대표적 여성운동가들의 젊을적, 그들이 바라는 아름다움을 지닌 사진을 실어놓은채.
개인적인 생각으로 극우 지유사의 태도가 차라리 낫다고 본다. 그들은 여성운동가를 증오한다. 최대한 존재 자체를 말살해버리길 원한다. 치명적인 위험으로, 위협적인 존재로 여기기에나 가능한 짓거리다. 그러나 이쿠호샤는? 그들은 너무도 가볍게 깔보고 경시하여, 속된 표현으로 입맛을 다시고 자빠졌다. 그들 보기에 좋도록 뜯어고쳐 진열이라도 하듯, 별개의 영역으로 실어놓고는 '나데시코'들로서 바라본다. 구역질 나오도록 관음증적인 정서가 느껴질 지경이다.
이것이 100년전에 대한, 그 위대한 투쟁이 시작되었음에도 결과인 현재에 '그녀' 들에 대한 그들의 기억이다.
철저한 적이, 음험한 자칭 친구보다 300배는 낫다. 페미니즘에서도, 성적소수자 운동에서도 이따금, 그리고 점증하는 성향 중 하나가 끽해야 서브컬쳐로서의 인정에 만족, 혹은 아예 별개로 독립된 그러나 결국은 외딴 갈라파고스적 하위문화로서 정체성을 스스로 규정짓고 고립을 고집하는 경향들이 있던데, 그렇게 스스로까지 타자화 됨으로써 결국 앞서 본 것 같은 저열한 관음증의 대상이 될뿐이라는 명백한 사실은 왜 외면하는지 모르겠다.
히라츠카 라이초의 시대로부터 100년이 지났다. 남은 것은 씁쓸함 뿐이다. 백년전 '여성' 이기에 억압받고 차별받던 개인들은 마침내 세상에 걸음을 내딛었다. 그리고 흔히 역사에 대해 말이라도 해볼만하다는 100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그들은 한 인간이 아니라 '여성' 으로서 남아있다. 그 또한의 집단 정체성으로서의 굴레이건만 자유로워지기는 커녕, 그럴 엄두도 못내도록 단결이 필요하도록 여전히 '여성'이기에 공격받음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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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시니어학교 2기 - 새로운 노인복지와 시니어운동을 위하여 |
푸른시니어학교 제2기 5주차 / 국내, 외 사례를 통해 본 시니어 운동 |
우경 |
2015.11.4 |
푸른시니어학교 제2기 5주차 / 주재: 국내, 외 사례를 통해 본 시니어 운동 교육, 문화
2015.11.02. 23:14 수정 삭제
http://blog.naver.com/jhw0335/220527230167
강사 : 남경아 (서울시 인생이모작지원단장)
고령화 시대의 도래로 평균 수명을 근간으로 하는 인류의 표준적인 생애 주기에 근원적인 변화가 일어고 있다. 최근 희망제작소에서100세 시대, 새로운 생애주기를 제안하는 보고서에 보면, 은퇴는 노년기로 진입하는 기점이 아니라, 정체성, 삶의 목적, 일, 사회적관계 등을 재조정하여 고유한 의미를 갖는 새로운 한 시기를 시작하는 전환의 기점에 가깝다고 보고, 고령화 시대, 은퇴 이후의 삶은 노년기의 확장이 아니라, 별도의 구획과 명명이 요구되는 새로운 시기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새로운 생애 주기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인생 후반기에 성장과 발전을 연속해 갈 수 있는 새로운 생애 단계를 구획, 설정한 것이다. 이 새로운 생에 단계를 제2성인기(중년전환기+중년안정기)로 명명하고, 연령 범위는 50~60대로 설정하였다.
행복하게 살기위해서는 일, 여가, 관계가 잘 이루어진 삶이 중요함. 노년의 준비는 경제, 건강, 일 뿐만 아니라 '정체성'을 세우는 일이 필요하다. #100세 시대, 생애주기의 변화 #왜100세 시대, 왜 50+에 주목해야 하는가? #고령화 시대의 '일'에 대한 생각 전환등 중요한 얘기들이 많은데, 모두를 다 기술 할 수 없어 자료화면을 참고로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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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교육 디자이너 과정 1기 - 새롭게 그리다, 한반도 동아시아 평화에 대한 상상 |
[평화교육 디자이너 1기 - 동북아과정] 제5강. 평화교육 디자인 방법 및 실습 |
마음천천히 |
2015.11.4 |
평화교육 디자이너 1기 – 동북아 과정 <새롭게 그리다, 한반도 동아시아 평화에 대한 상상>
5강 평화교육 디자인 방법 및 실습
2015년 10월 29일 7시 ~ 9시 30분
강사 : 이대훈
Ⅰ. 강의 내용
- 표준 교안 사용하여 세션 구성하기
- 배움 촉진을 위한 다양한 실습활동 설명 및 연습
Ⅱ. 강좌 후기
이번 5강은 지난 3강과 마찬가지로 평화교육 세션을 직접 체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역시 두 가지 시선(참여자&관찰자)을 가지고, 실습에 참여했습니다.
1. 강의 진행과정
순서
| 주제
| 세부사항
| 도입
| 인사
간단한 안내
| ▶ 인사 : 사람들을 기다리는 동안 지난 시간에 배운 내용(군비경쟁, 평화, ADEX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 활동1
| [그림]
이전 강의 복습
(ADIDAS & 질문법 실습)
세션 계획하는 법
| ▶ 2가지 갈등상황 : 1강 때 봤던 2가지 갈등상황(부드러운 갈등, 강경한 갈등)에 대한 그림을 보며 3강 때 배운 질문법을 연습했다. (1차 질문→2차 질문→연결 질문→낯설게 하기)
▷ 특징 : 설명이 아니라 질문에 의해 연결됨. 상황그림이 바뀔 때마다 질문의 단계가 높아짐. 질문이 점차 구체적으로 들어감. “예)이 가족의 특별한 방법 3가지를 찾아보자.” 진행자의 질문을 통해 세션을 어떻게 계획할지 참여자가 스스로 생각하는 기회를 가짐.
▶ 계획하기 : 예) 슬라이드1-질문-예상반응-슬라이드2-질문-예상반응 생각하기. ▷ 예상반응이 빗나갈 수는 있지만 이렇게 계획을 세울 수도 있다는 참고를 들어줌. 진행자는 참여자가 대안을 찾을 수 있게 도움.
| 활동2
| [활동1과 남북관계 연결]
키워드 요약연습
| ▶ 키워드 요약하기 : 5명씩 두 팀으로 나눈다. 앞서 한 활동을 남북한 관계에 대입하여 생각해본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브레인스토밍을 하고, 마지막 사람이 그것들을 키워드로 요약한다. ▷ 브레인스토밍 주제: 남북갈등과 남북교류 두 가지 상황을 소재로 놓고, 이것을 어떤 방법(사진, 동영상, 활동 등)을 활용하여 이끌어 나갈지 디자인하기.
| 활동3
| [역할극]
| ▶ 윗마을, 아랫마을 : 집단을 두 팀으로 나눈다. 한 팀은 윗마을, 한 팀은 아랫마을이 된다. 진행자가 배경을 설명한 후, 개개인의 역할이 적힌 종이를 나눠준다. 팀원들은 각자의 역할에 맞춰 문제를 해결한다. 역할극이 끝난 후 모두 모여 피드백을 나눈다. 다음에는 마을과 역할을 바꾸어 진행한다.
상황 ① (협상이 가능한) 부드러운 갈등상황.
상황 ② 강경한 갈등상황.
▷ 피드백 시 진행자의 질문법 : 진행자는 마을별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협상계획은 무엇이었는지 등을 질문하고, 정리한다. 그 다음에 “②번 상황이 ①번 상황보다 더 강경하게 된 요소가 무엇일까? 5가지를 찾아보자.”와 같은 더 구체적인 질문을 한다. 그래서 찾은 5가지 요인은? 앞서 경험한 갈등상황, 가시화(매체활용), 소리(대북방송), 여론(소문, 언론의 역할), 캐릭터들 간의 갈등요소이다.
| 10분 휴식
| 활동4
| [권력]
| ▶ 의자를 이용하여 내가 생각하는 ‘권력’을 표현한다. ▷ 대부분 현실주의에서 말하는 권력에 관한 모티브가 표현됨. 진행자는 참여자들이 표현한 것을 말로 읽어줌.
▶ 권력 연극(1분) → 연극제목 맞추기 : 4팀으로 나눈다. 진행자가 여러 종류의 권력을 적은 종이를 팀별로 나눠준다. 팀원들이 상의하여 1분짜리 연극을 만든다. 팀별로 앞에 나와 발표한다. ▷ 관객이 제목을 맞추지 못 할 경우 재발표 가능. 이 때 참여자의 어휘가 풍부해짐. 내가 표현한 것과 관객이 이해한 것이 다를 경우, 그 이유를 함께 탐구하기도 함. 그 외 진행자는 다양한 권력상황과 실제생활에서 본 것을 연결하는 질문 등을 참여자에게 던질 수 있다.
| 활동5
| 주제에 관해
인식을 심화하는 상징적 활동
| ▶ 평화의 시 창작하기와 반전.
- 준비물 : 테이블, 종이, 매직, 서류봉투.
- 테이블에 3팀으로 나누어 앉는다.
1. 주제제시 : 진행자가 주제를 제시한다. “예)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2가지씩 떠올려보세요. 그리고 그것을 각각 한 문장으로 만들어보세요.”
2. 시 쓰기 : 한 사람씩 돌아가며 아까 생각해놓은 문장을 종이에 적는다. 순서는 즉흥.
3. 제목 짓고, 발표하기.
4. 침묵&감상 : 종이를 서로 바꿔서 다른 팀의 시를 감상한다. 이때 진행자는 침묵할 것을 지시한다. ▷ 침묵이 들어가는 순간, 권력의 구도가 변함!
5. 지침전달 : 진행자가 각 팀에게 서류봉투를 전달한다. 서류봉투에는 지침이 들어있다. ▷ 텍스트권력!
6. 찢은 시 돌려주기.
7. 진행자의 질문&피드백 : 각자의 반응과 소감을 듣는다. 서류봉투 속 지침을 따르지 않은 조와 개인에게 행동의 이유를 묻는다. 지침을 따른 조와 개인에게 현실의 폭력 문제와 연관시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질문한다. ▷ 진행자의 질문 예) 지침을 봤을 때 감정은? 찢은 것을 보니 기분이 어땠는가? 왜 찢었는가(낯설게 하기)? 머뭇거렸다면 그 이유는? 종이를 찢는데 걸린 시간은? 언제부터 찢기 시작했나? 지침을 따르게 된 요인 5가지를 찾아보자 등 : 진행자의 명령, 신뢰하는(친숙한) 사람의 지시에 따르는 습성, 시간, 소리, 집단의 영향, 텍스트 권력(글자의 색, 고딕체, 기계적 문체 등), 침묵으로 인해 토론을 할 수 없었던 것 등등이 영향을 줌.
▷ 주의사항 : 진행자가 도덕적 우열이나 판단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참여자가 책임을 물을 시, 잠시 책임을 내려놓고 관찰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한다.
| S 종합
| 관찰의 종합,
인식의
종합과 정리
| ▶ 오늘 한 활동에서 배운 페다고지는 무엇인가?
▷ 목적 :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법에 변화를 주는 것. 현실의/내재화된 폭력과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바라보기.
▶ 소감 나누고, 질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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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배운 것 & 느낀 것.
1) 계획 짜는 법 : 세션의 진행 흐름을 상상하여 세션구성하기, 진행자로써 질문하기, 참여자의 예상되는 반응 상상하기, 내용 전달하기, 전체 활동을 주제에 맞게 연결하기 등을 배웠습니다.
2) 시, 그림, 연극을 통해 몰입, 즉흥성, 통찰의 힘을 경험했습니다.
3) 역할극 : 입장에 따라 나의 생각이나 태도가 바뀌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4) '어떻게 하면 좋은 질문을 할 수 있을까?' 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
<워크숍-공익로비학교 1기> 국회를 흔들어라 선거를 흔들어라 - 공익로비의 원칙과 기법 |
[공익로비학교] 제4강, 2015 정치개혁의 쟁점들 |
박스아웃 |
2015.11.3 |
[공익로비학교] 제4강, 2015 정치개혁의 쟁점들
안녕하세요. 느림과 게으름으로 세상에 저항하는 자원활동가 이진용 입니다.
강사님 소개
이번 강사 선생님은 서복경 교수님이십니다. 8년간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활동을 하셨고, 현재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에도 계시며 왕성한 활동을 하십니다.
강의내용 중 인상적인 내용들 위주로 정리했습니다.
- 의회정치, 선거정치. 정당정치 측면을 입체적으로 검토해야 정치를 효과적으로 이해. 신문기사들의 다면적 정치보도 부족. 포탈 댓글 반응도 입체적 검토를 못한 내용이 많음.
- 국회의원은 4년 단기계약직 고용노동자. 단순한 도덕적 윤리적 관점으로 국회의원 비판하면 논점을 놓치는 문제발생.
- 효율을 위해 1당 독재가 어떠냐는 여론조사를 하면 예전엔 20%, 지금은 28%. 예전엔 노인층 높고 젊은층 낮았는데, 현재는 젊은층의 동의가 급격히 늘어남.
- 서복경 교수님께서 과거 국회에서 정치관계법, 헌법 비교하며 5년 근무. 정당법/선거법/국회법이 1set으로 움직이는 것 확인.
- 양 당이 30년간 국회법. 정치관계법, 선거법 모두 세팅해서 군소정당 난립이란 말은 오해.
- 한국 선거제도는 선거때만 이뤄지는 게 아님. 선거 외적활동을 하다가 선거 때 되면 투표하는 것이므로 항상 선거제도는 작동 중.
- 역대 총선 투표율이 급격한 하락 중. OECD기준으로 봐도 낙차폭이 큰 이유로, 유권자 2명 중 1명이 투표 안함. 투표한 유권자 2표 중 1표가 사표. 19대 국회는 전체 유권자 1/4만 반영.
-"여러분 집의 화장실이 막히면 노동당 화장실로 오십시오"라는 영국 노동당 홍보문구. 일상에 문제 생기면 가장 먼저 찾는 존재가 정치인이어야. 한국은 그것이 안되서 크레인에 오르고 목을 멘다. 자살률, 강력범죄율, 이혼율은 가족해체지표이면서 동시에 정치건강 3대지표. 현재 국회에 문제제기하는 루트가 사실상 없으니 시민들 스스로 자신들의 문제 해결 중.
- 투표수에 비해 의석수를 더 갖는 문제. 두 당에 동의 않는 유권자들이 정치에서 점점 더 멀어짐. 1, 2당이 아니면, 제3당, 아니면 제4당, 지지할 정당이 없으면 유권자 스스로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 OECD국가들은 가능하면 정당에 오시고 아니면 만들라하는데, 한국은 정당에고 오지말고 정당 만드는 것도 힘든 실정. 두 거대정당이 싫은 다수의 사람들이 제금 뭐하는지가 논점. 정당선호 여론조사 때 "없다"란 항목이 없다. 2010년 10명 7명은 지지정당이 없음.
- 의회정치 측면에서 검토 중요. 88년에 비해 법안 처리수 22배 증가했지만 국민 1인당 의원수는 제자리 걸음. 미국은 1인당 의원수가 우리의 절반, 독일은 우리의 1/4. 한국 국회가 게으른 축면보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 더 크다. 법안에 소비되는 시간이 너무 부족. 상임위 16개, 국회의원 300명 공무원 100만명을 규율해야 하는 중.
- 2015년 선거제도 쟁점 검토. 초선 의원들은 행정부 견제능력이 거의 없음. 다른 나라는 정당에서 도제식으로 배움. 2016년 정부 예산안 첨부파일 열어보기. 예를 들어, 2014년 기준 정부 예산 총괄서는 300page, 이것의 sub page가 3700page 이런식으로 해서 의원 한 명이 봐야할 page가 10000page가 넘음. 현실적으로 3선은 되어야 예산 숫자의미가 보이지만, 3선이면 의원들이 모두 거의 교체되면서 정부 견제하는 힘이 떨어짐. 국회가 젊어지는 장점과 함께 고려해야하 함. 행정관료는 예산과 사업 검토로 콘트롤해야 하는데 초선들이 현황파악과 논점을 잡는 것이 더뎌 요즘은 공무원들이 국회의원을 무서워하지 않음.
- 현재 여야에서 논의되는 오픈프라이머리의 문제는 두 가지. 하나는 법제화하여 정당비용을 세금으로 처리해야하냐의 유무. 둘째는 공천권을 당원에게서 뺐는 구조. 그러나, 여야 모두 비용문제를 세금으로 메우려는 논의에 침묵하며 겉만 얘기함.
- 선거구 인구편차 조정 중. 지방은 넓어서 선거비용이 많이 필요. 농촌지역은 의원 당 면적이 커서 농촌 유권자의 대표성을 지닌 사람들이 드물기 때문에 유권자들이 소외감을 느낌. 의원수 확대로 문제를 해결해야하지만 새누리당 반대 중.
- 권역별 비례제도 이번에 이뤄질 확률은 0%. 지방에서는 서울 명부제, 수도권 명부제라고 함. 정치인 충원 루트가 수도권이 압도적. 120석 미만으로는 권역별 비례 효과가 떨어짐. 예를 들어 전남과 제주를 묶을 시 소수정당들은 의원을 못냄. 그럼에도 새정련이 권역별 비례를 지지하는 이유는 부산 경남에서 2석이 나오기 때문.
- 이지현 선생님 발언 중. 선거구 획정 위원인데, 거의 역할이 없음. 게다가 획정이 2달전 결정되어 현역에 절대적으로 유리. 또한 신인 의원이 자리에 들어가면 기존 시스템에 적응함.
- 선거제도 바꾸기 진짜 힘들지만, 2004년 여야 초선(정병국, 남경필, 원희룡, 오세훈/ 천정배, 신기남, 정동영)이 각각 자당에 반기를 들며 시민단체 백업을 받아 선거제도를 고쳐냄. 예견치못한 역효과가 있었음. 앞으로도 10년이 지나도 선거제도가 고쳐지지 않을 수 있고, 정치적 균형에 따라 예기치 않은 속도로 변화가능. 이 균형을 깰 제3당의 존재유무가 중요.
- 새누리당이 대통령에 밀리는 이유는 정당이 약해서임. 2004년 선거제도 바뀐 이후 총선 때 당이 의원들에게 해줄 수 있는데 별로 없다. 현재 지구당 대회가 불법이라 이름있는 의원이 얼굴 보이며 다니는 정치로 메움. 게다가 2004년 미디어선거로 바뀌며 입은풀고 돈을 막는다는 구호가 얼핏 옳아 보이나, 정당합동연설회 같은 시민들의 오프라인 커밍아웃효과를 낸 정치정보교환장치가 사라짐. 이후 선거캠페인에서 정당이 보이지 않음. 2004년 제도로 정치상황이 악화된 셈인데, 시민단체 시각으로는 선거자금 투명화가 목표였음. 미디어선거 향후효과를 가늠하기 어려웠음.
- 정당 수명이 너무 짧아 시민단체와의 협약을 안정적으로 이행할 역량이 부족. 민주당 계열 대표 평균 임기 8개월.
- 60세이상 어르신들 새누리 얘기만 들어줌. 복지관, 경로당, 동네 뒷산, 동네 미용실에서 정보교환이 이뤄지며 요즘은 카톡 네트워크까지 추가되어 대단한 위력. 새누리 이정현이 노인들에게 쏟아붓는 노력과 노하우는 혀를 내두를 지경. 정보가 교차되어야 하는데 60세이상에서는 대다수가 새누리당 정보만 들어감. 변화를 구하는 정치인과 단체들은 위에서보다 밑에서 올려다보는 자세로 접근해야. |
<워크숍-공익로비학교 1기> 국회를 흔들어라 선거를 흔들어라 - 공익로비의 원칙과 기법 |
[공익로비학교] 제3강 선거와 공익로비 |
한정희씨 |
2015.11.2 |
안녕하세요
공익로비학교 워크샵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 한정희입니다. 이번주에 있었던 “제3강 선거와 공익로비” 시
간에 느
림과
게
으름으로
세
상에
저
항하는
자
원활동가
이
진용님께서
개
인적인
사
정으로
참
석하지
못
한
관
계로다가
제
가
대
타로
후
기를
올
려봅니다.
후기라는 특명을 받고 중간중간 두뇌 휴식, 즉 멍때리기를 하지 않으려 최대한 노력하였습니다만 저의
짧은 지식으로 인해 이해 못한 부분도 구멍난 기억력으로 인해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도 존재함을 미리
밝힙니다.
이번 시간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선 거시기의 로비 활동에 대해 배워보는 시간이었는데요,
15년 전과 확연히 다른 모습의 (그러
나 분명 같은 열정의) 이태호 선생님께서 1) 선거의 행위자와 그들의 활동 영역, 2) 선거 시기의 로비가 일반(평소) 로비
와 어떻게 다른지, 3) 선거 시기에 정치개혁을 위해
참여연대가 진행했던 운동의 케이스 스터디를 가지고 열띤 강의를 해 주셨습니다.
먼저 선거라는 이벤트에 관련된 행위자를 후보/정 당, 유
권자, 관리자, 기
타-언론라고 정리하셨는데요, 이후 이어진 케이스 스터디들을 보면 이 행위자들이 각각
운동 대상으로, 지지 기반으로, 캠페인 전달 매개체 혹은 파트너로, 직접 대상은 아니어도 개혁 대상으로 선거기간 공익로비에
관여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선거를 통해 후보/정당은 당 내에서 후보선수를 뽑는 공천 과정을 거치고, 공약 정책을 내세우고,
선 거운동을 하는 등의 활동을, 유권자(개 인, 그
룹)는 표라는 파워로 정치권을 심판 혹은 보상하거나, 정책을 관철시키고, 정
치 제도 개혁을 요구하고, 선 거가 공정하게
이루어지는지 감시하는 역할을 합니다. 시민들의 이런
활동은 사실 평상시에도 일어나고 있는 활동인데요, 선
거 기간이 특별한 이유는 뭘까요?
바로 정치권이 유권자들의 조직적 요구에 취약해지는 시기, 정치권이 (비
로소) 유권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반 응하고, 유
권자를 찾아오는 시기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정치권을
개혁하기 좋은 타이밍이 바로 선거 시기랍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점점 유권자의 시장이 조밀해지고, 즉 점점
더 다양한 유권자 그룹이 나오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경쟁하고, 정
치권력이 강화되면서 요런 도식이 단선적으로 성립되지 않게 되고 있다네요. 그리하야 선거 시기에 특정 주제를 가지고 공익로비를 할
계획이라면 SWOT 분석을 해 보고 전략을 잘 짤
것을 권유하십니다.
이후 그간 참여연대가 진행하거나 참여해 온 선거시기 정치개혁
운동들의 케이스 스터디 시간이 이어졌는데요, 전부
글로 옮길 수는 없고 몇 가지만 아주아주 간략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1.
1996년, 한겨레와 공동 기획한 참여연대 맑은사회만들기 본부
운동
-
배경: 당
시 선거부정, 불법정치자금 문제가 굉장히 심각한 시기. 정치권이 부패했다는 욕을 먹고 있었기 때문에 부패방지를
위한 법을 만들자는 요구에 취약.
-
활동: ‘부
패방지법 제정을 위한 서약서를 총선 출마자들에게 보내 O, X 답
변을 받음
-
전략: 후
보자 전원에게 서약서를 보낸 운동 방식은 처음. X를
선택한 후보에게 패널티를 주기에는 참여연대의 파워가 약해서, 패
널티 대신 보상을 주기로. 보상 – O를 선택한 후보 명단 신문에 공개. 압력을 가하려면 표가 있거나 매체가 있거나 해야 할텐데, 이 경우 매체 파워 이용.
서약서를 총선 출마자들에게 보내는 사진을 선관위
이름이 헤드라인으로 나온 선거 관련 기사 밑에 전략적으로 배치.
서약 명단 시리즈로 공개. 참여한 인물 중 유명한 사람 이름 거론하며 미디어 푸시.
-
고려할 점:
서명 캠페인의 성공요인? – 전체
프레임이 그 방향일 것. 대세여야. 선거철에는 옳은 이슈여도 유권자들이 전반적으로 반대하는
방향이라면 후보자가 목소리를 낼 수 없을 것. 전국에
서는 불리해도 지역구에서 유리한 이슈도 물론 있음. 예
를 들어 행정수도 이전 같은 이슈. 서명/지지를 위해 더 강한 푸시도 가능할 것.
포지티브 전략을 사용할지 네가티브를 사용할지? 어느쪽을 사용하든지 안할 경우 어떻게 된다는 반대 급부를
확실히 제시해 줘야 함. ‘너 이거 안하면 아웃!’ 그 정도의 반대급부 제시하지 못할 경우 보통 포지티브
전략을 취해. 예로 한겨레 기사에 명단 공개
2.
2000 낙
선낙천운동 (총선연대)
-
낙선운동:
떨어뜨리는 것이 목표. 낙선을 통해
영향력을 과시. 평가 기준도 ‘낙선을 시켰느냐 말았느냐’
4-5년마다 돌아오는 선거를 통해 나쁜짓을 한 사람을 기억하고 표로 심판. 선거 판이 점점 조밀해지면서 낙선운동의 성공률은 점점
희박해지는게 현실이지만 낙선까지는 아니어도 정보를 공개해서 나쁜 전력을 공개하는 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
-
전략: 어
떤 기준으로 어떤 블랙리스트를 만드는가가 중요. 리스
트를 단순화, 낙선 리스트 만드는 기준도 간단해야. 낙 선을 끌어내기에 가장 효과적인 기준이 가장 좋은 기준.
처음 기획할 때는 환경단체의 설악산 아젠다, 여성단체의 호주제 아젠다 등 각 단체마다들이 다른 기준을
댔지만 낙선을 끌어내도록 단순화. 낙선 리스트 만들고
그 중 22개 집중 공략 지역 골라서 집중 캠페인.
-
운동 과정:
리스트 작성 -> 여 론 환기를
위한 퍼포먼스, 리스트 공개 기자회견 -> 리스트 공개 (보
수언론이 비협조적이었지만 대통령의 지지와 언론사 로비를 통해 낙선 리스트 언론 통해 공개 성공) -> 대중 캠페인 (레
드카드, 유권 자 서약, 티저광고, 여
론조사 등) -> 전
국 투어 통한 조직화. 전 국 투어 후 주요 도시를 22개 집중 캠페인 거점으로 삼아.
- 결
과: 성공적.
대상자 명단 86명 중 59명 낙선 (68.6%)
-
평가: 단
기적으로는 낙선에 성공. 중장기적으로는 시민운동의
힘을 보여주고 위상을 강화한 효과. 하지만 본질적으로
네가티브 운동이다보니 포지티브 운동이 갖는 장점이 없는 한계가 있음.
예 로, 낙선운동은 인물갈이는 끌어낼 수
있지만 판갈이는 안됨.
이어 대선, 총선에
서 각 후보의 정책을 비교한 정책캠페인, 2011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정치관계법 패키지 개정 청원 운동,
2011~2012년 유권자 표현의 자유 억압에 반대한 유권자자유네트워크, 선거시간 조정 및 투표권 보장 운동, 선관위의 관여 범위 및 역할에 문제를 제기한 움직임 등
다수 사례를 살펴보았습니다.
참여연대의 활동, 민
주화운동에 대해 깊은 지식이 없는 저로써는 숙연하고 경건한 마음이 드는 시간이었습니다. 아, 이
런 노력들을 통해 지금 우리가 누리는 것을 누리는 거구나. 15년
사이 확연한 변화를 보여주신 이태호 선생님 및 많은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되었달까요. J 그리고 그 경험들을 짧은 시간이나마 전해 들을 수 있어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다 음 강연도 설레는
마음으로 참석하도록 하겠습니다. |
김만권의 정치철학 - 세계화 시대의 불평등 이해하기 |
[지구화시대의 불평등 열기] - 제1강 지구화의 조건과 국가 |
이수종 |
2015.11.2 |
지구화시대의 불평등 열기는 지구화 시대의 경제적 불평등, 정치적 불평등, 사회적 불평등에 관한 현 상황을 짚어보고, 불평등은 왜 위험한지, 불평등의 극복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함께 고민하는 총 7강의 강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0월 28일 7시에 진행된 1강 지구화의 조건과 국가에서는 지구화가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지, 왜 불평등 문제를 보는지, 왜 불평등의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봐야하는지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강의는 존 롤스의 정의론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됐습니다. 불평등이 없을 수는 없다라는 생각하에, 허용될 수 있는 불평등의 범위를 정하고, 기회의 평등을 이끌어내 조금 더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담겨 있는 존 롤스의 정의론을 살펴보았습니다. 정의로운 일을 인간에게 맡기면 너무 큰 부담을 주기 때문에 평등한 기본적 자유, 기회의 균등, 차등의 원칙이라는 3가지 원칙이 지켜지는 가운데 만들어진 사회기본제도로 하여금 정의를 행하도록 한다라는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하지만 존 롤스의 정의론은 국내, 다시 말해 갇혀있는 시스템 하의 정의에 대한 주장이라는 인식을 공유하며 지구화 시대의 문제로 나아갔습니다.
지구화 시대는 위에서 말한 불평등의 관점, 정의의 관점이나 문제 해결 방식이 받아들여지기 힘든 시대입니다. 지구화 맥락에서 복지가 해체됨에 따라 불평등은 늘어나고, 국가 간의 정의에 대한 문제가 생겨난 데 비해 정의론은 기존에 있던 전지구화 시대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허물어진 국가 간의 경계,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양식의 변화 속에서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고민이 더욱 필요해졌습니다.
이러한 고민은 이후 강의로 미루고, 이번 강의 시간에는 우리가 얼마나 불평등한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얼마나 지구화되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지구화 시작 전과 비교할 때, 부는 가진자에게 더욱 집중되는 반면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더욱더 궁핍해지는 세상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샌더스와 코빈 열풍 역시 불평등 심화에 기인해서, 불평등 문제의 당사자인 청년들이 만들어나간 열풍이었습니다. 동시에 세상은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점점 더 지구화되었고, 따라서 국가의 역할 역시 모호해져갔습니다. 반면 시장의 힘은 점점 더 커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경제를 다시 정치의 통제 아래 둘 것인가?와 같은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앞으로의 강의는 이러한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 되리라 기대해봅니다.
저녁 7시부터 2시간여동안 진행된 긴 강의였지만, 불평등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 동의하고, 관심을 가지는 30여분의 진지한 눈빛과 함께 열정적인 강의를 들을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앞으로의 강의를 통해 불평등 문제를 조금 더 알아가고, 문제 해결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
저성장 시대에 던지는 여섯 가지 불편한 질문 |
[저성장 시대에 던지는 여섯 가지 불편한 질문] 제6강. 저성장이라는 사막을 어떻게 건널 것인가? |
인생이개그 |
2015.11.1 |
강사: 에듀머니, 쥬빌리 은행 대표 제윤경
날짜: 2015년 10월 22일 목요일 오후 7시 30분~오후 9시 40분.
제윤경 대표는 저성장에 대한 가계의 입장에 대해 얘기하는 것으로 서두를 열었다. 고성장시대에는 변동이 심해서 가계 운영이나 재테크에 난점이 있었는데 저성장시대에는 변동이 적어서 재테크하기엔 더 순조로울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재테크를 할 수 있는 수단도 많아지게 되었다. 과거에는 저축, 적금 위주였으나 오늘날은 주식이나 펀드, 부동산과 같은 수단이 재테크 수단이다. 그래서 본인의 경제사정에 맞는 재테크 수단을 스스로 강구해야 한다고 강론했다.
그 다음에는 부동산에 대해 언급했다. 한국인들은 임대인과 임차인의 관계, 그것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두고 임대인과 임차인의 손익을 사회적인 문제가 아닌 '나도 임대인이 될 수 없을까'하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즉, 임차인의 고액 임대료라는 현실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고 제윤경 대표는 한국인들이 저성장시대를 잘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단 임대인에게 감정이입할 것이 아니라 현실의 비정함을 성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우스푸어의 문제 또한 개인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인 문제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동산 호황이라는 것을 국민들에게 주입시키거나 대출과 투기를 종용하는 사회 풍토가 하우스푸어를 대거 양산하도록 조장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부동산 버블에 대해 언급했다.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는 것을 두고 대개 한국인들은 기뻐하는데 이는 기뻐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우려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부동산이 투기자산인 경우에도 팔리기 전까지는 수익이 생겼다고 할 수 없고 오히려 세금만 늘어나는데 하물며 자신이 사는 집 값이 오른 것을 두고 기뻐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가격이 오르면 일단 좋아하는데 이는 '보유효과' 때문이다. 보유효과란 판매하지 않을 것이어도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재산 내지 재화의 가격이 오르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뜻하고 다른 말로는 이를 '심적 계좌'라고도 한다. 마음의 계좌에서 부동산 가격이 오른만큼 재산이 불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는 의미다. 이 상황이 되면 대부분의 부동산 소유자들은 '더 오를 것'이라는 이야기만 들려서 부동산을 매각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지금 팔면 손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에 대해 제윤경 대표는 그러한 손해에 대해 감수하고 살아야 한다고 설파했다. 오늘날 기업이나 공인중개사들은 작은 손해를 줄이는 대신 큰 손해에 무디게 하는 마케팅전략을 사용하는데 그 결과가 바로 직장인들의 소위 '월급 광속 인출'이다. 대표적인 예가 블랙프라이데이 할인이다. 할인폭이 크다는 이점이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구태여 필요 없는' 물건을 구입하는데 돈을 쓴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 역시 작은 손해(할인폭)를 줄이고 큰 손해(구입 자체 비용)에 무디게 하는 전략으로, 이는 많은 한국인들에게 먹혀들었다.
신경써야하는 것은 이런 보유효과나 큰 손해에 무딘 것 뿐만이 아니다. 한국에서 부동산에 투자하는 사람의 심리 기저에는 '손해 효과'가 있다. 손해 효과란 투자 수익이 나면 회수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돈으로 더 투자하는 것을 뜻한다. 결국 손해가 날 때까지 계속 투자하다 손해가 나면 그제서야 되팔아버리므로 비용만 늘어나고 이것이 손해로 이어진다. 이는 1929년 대공황 발생 이전 미국의 증상과 비슷하다. 주식값이 날로 오르던 1920년대 중반, 많은 미국인들은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주식을 샀고, 그 주식 값이 오르면 되파는 것이 아니라 그 주식을 담보로 또 대출을 받아 주식을 샀다. 그러나 대공황으로 주가가 크게 폭락하면서 많은 주식투자자들이 손해를 보았다.
그 다음에는 부동산 버블 붕괴에 대해서 언급했는데 부동산의 붕괴는 부동산 소유주는 물론 전세에 거주하고 있는 세입자들에게도 큰 타격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부동산 소유주는 집값이 떨어진다는 것 자체와 융자로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의 경우 빚더미에 오를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고 전세 세입자의 경우에는 전세금이 증발해버리기 때문에 서로 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부동산 소유자들의 수익이 자신의 부동산을 구입한 사람 내지 임차인으로부터 나오는 바 순망치한의 관계에 있으므로 임대료 낮추기 운동같은 것을 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현실을 한국민들이 직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파했다.
마지막으로는 제윤경 대표는 수강자들에게 '자산 형성이 필요한가? 필요하다면 가능한가?'에 대해 강론했는데 이는 불가하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는 주장을 했다. 과거에는 자산 형성이 가능했고, 또 필요했으므로 저축으로 자산을 형성하거나, 부동산을 매입하는 것이 가능했으나 IMF 이후에는 그것이 어려워져서 빚을 내서 부동산을 매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동안 부동산 거래가 활발해지고 가격이 올라서 차익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이 있었으나 이 역시 오늘날에는 불가능해져 사실상 중산층부터 자산 형성은 불가해진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산 형성은 왜 필요 없는가? 물론 오늘날 한국에서는 그것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주거나 교육, 의료, 노후활동의 목적으로 자산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는 국가의 '복지'라는 수단으로 해결할 수 있는 내용이다. 문제는 한국인들이 '다 같이 잘 살자'가 아니라 '나만 잘 살면 돼.'하고 투자하고, 자산을 모으게 만들었고, 국가 복지에 반대하면서 스스로를 옥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제윤경 대표는 한국민들은 앞으로 재테크를 하려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자산 형성이 필요 없게끔 복지제도를 갖추기 위해 힘써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푸른시니어학교 2기 - 새로운 노인복지와 시니어운동을 위하여 |
푸른시니어학교 제2기 4주차 / 노인세대, 정치사회의식 |
우경 |
2015.10.31 |
강사 : 김동춘 / 성공회대 사회학과부 교수.
ㆍ 역사문제연구소 소장.
지금의 노인들은 처참한 동족 상잔의 6.25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있으며, 하루세끼 먹고 살기도 힘든 고난의 시대를 견디며 살았다. 그리고 70년대 80년대의 산업화 사회를 거치는 동안 전통적 가족문화도 깨지면서 주도권 마저도 젊은층 들에게 내주고 밀리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정보화 디지털 시대에 들어서면서 노인들은 더욱 더 소외되고 설자리도 없는 현실이 자존감 상실, 의욕상실, 변화에 대한 두려움 등 세대효과와 가령효과가 더해 보수화의 원인이되었다. 독거노인들과 젊은 세대들이 함께 모여살면서 그 반대 급부로 주거비용을 줄일 수 있다면 새로운 관계맺기를 통한 신 가족운동을 정치가 아닌 사회적으로 접근해 보자는 연구도 있다. 등. 교수님의 강의가 끝나고 계속해서 질문과 답변 토론시간이 있었으며 특히 이번 강좌에는 인천지역 노인복지 분야 활동가 여러분들이 참여하여 경험에서 얻어지는 풀어야 할 여러가지 생생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어 공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토론 말미에는 노년 세대의 발전적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가들로 이루어진 연극 공연단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깜짝 아이디어가 나오는 등 발전적이고 활가찬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다.
모바일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블로그앱에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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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교육 디자이너 과정 1기 - 새롭게 그리다, 한반도 동아시아 평화에 대한 상상 |
[평화교육 디자이너 1기 - 동북아과정] 제4강. |
마음천천히 |
2015.10.28 |
평화교육 디자이너 1기 – 동북아 과정 <새롭게 그리다, 한반도 동아시아 평화에 대한 상상>
4강 평화를 준비하는가, 전쟁을 준비하는가
동북아 군비화와 우리의 선택 -
2015년 10월 23일 7시 ~ 9시 30분
강사 : 박정은(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4강은 강의와 토론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도입 : 여러 나라의 [북한 분할 가상 시나리오]를 보며 이야기를 나눈 후 통계자료를 통해 대한민국의 현실을 살펴보았다. 통계자료 속 한국은 자살률 1위(청소년 30%), 노인빈곤 1위, 삶의 질 만족도 27위, 무기 거래액은 세계 상위, 사회복지 지출비율은 28위(OECD)였다. 그런 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으로 인한 난민, 테러, 민간인 희생 사진을 보며 ‘과연 전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이런 일들이 우리와 무관한가?’,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관점이 타당한가?’에 관한 의문을 제기하였다.
동아시아의 군사기지, 군사동맹과 그 영향력
미국 : “Pivot to Asia(아태지역에서의 재균형 추구)”를 목표로 해군·공군력을 아태 지역으로 배치하고 있다. 중국을 둘러싼 주변국들과 군사협력을 맺고, 3자 동맹(한-미-일, 미-일-호주, 미-일-인도)을 구축하였다. 또한 남중국해 분쟁과 관련하여 중국을 비롯한 필리핀, 베트남 등 동남아국가들 사이의 영유권 분쟁에 적극 개입하였다.
중국 : 미국의 Pivot to Asia에 대응해 중국은 “미국이 중국의 세력권 안으로 들어오는 걸 차단하겠다.”는 Denial strategy을 펴고 있다.
일본 : 미일동맹. 안보관련 법제 통과로 자위대 활동범위의 제약이 없어졌다.
한국 : 한미동맹. 2만 6000명의 주한 미군이 평택 기지에 주둔 하고 있다. 미국의 국방예산 축소로 인해 한국의 방위비 분담이 증가하였다.
동아시아 군비경쟁 실상
군비축소 흐름에 역행하는 아태지역 : 전 세계 군비 증감자료를 살펴보면 지난 10년 간 미국(–0.4%)과 유럽(-9%)은 군비가 감소한 반면, 러시아(+97%), 인도(+39%), 중국(+167%)등 아시아지역의 군비는 증가하였다.
아태지역 군비지출 경향(2014) : 중국, 일본, 한국 등 동북아는 군비 경쟁이 지속중이다. 아태 지역의 군비지출 규모는 4390억이며, 전년 대비 5%상승하였다. 미국은 세계군비 지출 1위, 일본은 9위, 중국은 2160억 달러로 군비 지출급증, 한국은 367억 달러로 군비지출 세계 10위를 기록하였다.
전 세계 군비 vs UN 새천년개발목표(MDG) : 2013년 한 해 전 세계 군사비는 1823조원이었다. 전 세계 빈곤과 기아퇴치에 필요한 비용이 3290억임을 볼 때, 군사비의 5%만 있으면 전 세계의 빈곤이 해결될 수 있다고 한다.
한국의 군비 vs 사회복지비 : 한국은 무기 수입 세계 8위, 국방비 지출 세계 10위인데 반해 사회복지비 지출은 OECD 34개국 중 33위(2012)를 기록했다.
군비경쟁의 정당화 이념과 담론
안보 딜레마 : “평화는 무엇으로 가능한가? 군사력만이 평화 유지 수단인가? 여기서 말하는 ‘평화’는 어떤 평화인가? 그냥 전쟁이 없는 상태, 현상을 유지하는 것이 평화인가? 일례로 핵무기를 통한 전쟁억지는 평화인가 아닌가? 군사력이 높은 나라가 (빈부격차와 삶의 질을 포함하여) 안전한 나라일까?” 등 평화와 안보에 관해 탐구하였다.
누가 전쟁 장사를 하는가? 군산학관복합체, ADEX(무기전시회), 군사업무의 민영화.
한국의 무기산업 : 확산탄, 최루탄 등 방산업 수출로 얻는 이익이 늘어날수록 한국산 무기로 고통 받는 타국의 시민도 늘어나고 있다.
우리의 선택 : 다시 한국 사회를 돌아보자.
누가 ‘위협’을 규정하는가? 참여자들의 현재 고민은? 위협은?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지키는 것이 나라인가, 사람인가?
우리에게 ‘평화’란? 자연 생태적 평화, 인권, 빈곤 없는 세상, 성매매·성폭력·성차별 없는 세상 등 다양하고 입체적인 시각의 평화.
어떤 수단으로 평화를 지킬 것인가? 군사력 외에 또 어떤 것이 있을까?
동아시아 평화공동체 구상 : 우애, 정치·경제적 자립, 공생, 아시아 공동체 등 동아시아의 평화로운 미래를 제시한 히토야마 총리의 글을 살펴보았다.
평화는 평화로 : 최고의 평화 억지력은 무엇인가? 민주주의, 역동적인 시민사회의 힘, 시민의 평화의지와 역량 등. 한국이 동북아 국가 협력을 촉진하는 나라가 될 수 있을까? 갈등 예방에 중점을 두는 나라가 될 수 있을까? 우리가 먼저 달라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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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시니어학교 2기 - 새로운 노인복지와 시니어운동을 위하여 |
푸른시니어학교 제2기 2, 3주차 강의 소감 |
우경 |
2015.10.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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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시니어학교 제2기 3주차 강의. 주재 : 한국노인복지 제도의 진단과 과재. 교육, 문화
2015.10.20. 17:41 수정 삭제
http://blog.naver.com/jhw0335/22051435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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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0 19 한국노인복지제도 진단과 과제 강사 : 양난주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아래 2주차~3주차에 기술한 것은 강의 내용 요약 보다는 토론과정에서 가지게된 나의 주관적인 생각들을 정리해 보았다.
노인복지 대한 "유엔 원칙"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것을 보면 우리나라의 노인복지 문제는 아직 기본도 갖추지지 않은 초보적인 단계에 있슴을 알 수가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복지실현을 위해서 우리는 장애가 되는 것들, 정치인들의 부폐, 관료들의 무사안일과 복지부동, 등수로 줄세우고 끝없이 경쟁만을 부추기는 교육제도, 승자독식 불평등 사회, 그리고 극단적 이기주의와 무너진 도덕성 등등, 이러한 문제점 들을 직시하고 이것들을 개선하고 바로잡기 위한 운동을 꾸준하고 지속적으로 전개 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사회가 정의와 사회공동선 실현을 위해서는 공동체 모두의 의식 개혁과 사회적 경제에 대한 이해와 운동이 필수적으로 선행되고 그러한 것들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평생교육센터와 인생이모작 센터, 그리고 시민단체 등에서 노인들 뿐만이 아닌 장 노년층을 포함하여 지속적인 교육과 홍보를 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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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시니어학교 제2기 2주차 강의. 주재 : 고령화 시대의 생활정치 교육, 문화
2015.10.20. 17:40 수정 삭제
http://blog.naver.com/jhw0335/220514349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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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0 12 고령화 시대의 생활정치 강사 : 하승우 (사회투자지원재단 연구위원) 땡 (땡땡책 협동조합 땡초)
정치는 우리들 모두의 삶과 복지문제에 직 간접 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정치가 제 역활을 할 수 있도록 하기위하여 우리가 스스로가 참여하고 의사표현을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우리가낸 세금으로 짜여지는 예산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봐야 한다. 이명박 정권의 대표적인 예산낭비로 지적되고 있는 사대강사업, 해외자원개발, 방만한 국방예산 등에서 우리의 세금이 헛으로 흘러나가고 있는 것들에 대하여도 알아보고 연대하여 책임자 처벌까지도 요구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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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근대를 만든 인물들 2 |
동아시아 근대를 만든 인물들 II 3강 [조소앙,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
김지문 |
2015.10.26 |
조소앙,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강령과 삼균주의의 창시자, 이정도는 중,고등학교때 역사 수업을 잘만 들었다면 모두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사학과를 다니는 학생으로써 그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한 것은 수업을 들으며 부끄러웠다. 우연한 사건이었지만, 조소앙에 대하여 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조소앙은 1887년 경기도에서 태어났다. 그는 마지막 성균관 입학생들 중 하나였는데, 젊은 나이인 1902년부터 신채호와 함께 보안회 활동을 했다고 전해진다. 1913년에 그는 상하이로 망명을 떠나는데, 이때 신채호, 박은식 등이 조직한 동제사에서 독립운동에 전념했다. 여기까지는 많이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한학을 배운 민족주의계열의 독립운동가로써의 조소앙의 모습이다. 나는 그의 젊은 시절에 대한 묘사가 신기하다고 생각하였다. 뭔가 신념이나 이상이 있는 사람이 우울증에 시달린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뚜렷한 미래의 지향이 존재하는 사람이 우울증에 걸려 책으로 극복하였다? 그에게 있어 한발 한발 걸어가는 미래는 흔들리고 고통스러웠던 것 같다. 그가 우울증을 견뎌냈다는 1910년대 초반에서, 그의 활동이 더 굳건해지면 굳건해질수록 증세도 호전되었다고 이야기 한것은 어느정도 비약일까?
내가 신기하게 여긴 사실은 바로 공화국의 초석과 3.1운동에 대한 이야기였다. 교수님은 3.1운동의 영향으로 임시정부가 수립된 것이 아닌, 3.1운동과 정부수립운동은 병행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 예로 1917년부터 적혀진 <대동단결선언>에서 나오는 '제국의 주권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이양괴어 민국이 된다.'라는 주장과 '임시정부의 수립'에 대한 주장을 확인시키셨다. 또한 3월부터 5월까지 전국에서 진행된 3.1운동과 그 중심인 4월에 세워진 임시정부가 병행하여 만들어진 것, 모두 하나의 목적으로 오랜 준비끝에 완성된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러 선언문들과 독립선언서, 대한민국 임시 헌장 등은 모두 조소앙, 그의 손을 거쳐 써 내려가졌다.
이런 상황에서 나를 더 놀라게 만든 것은 독립 외교중에 그가 휘젓고 다닌 나라와 단체들이였다. 그는 1919년부터 임시정부에서 외교분야를 담당했다. 조선 문제를 다루지 않았던 파리 강화회의를 지나, 그는 네덜란드의 만국사회당대회에 참가했다. 그는 여기에서 사회민주주의적 정부 수립을 열망한다는 연설으로 각국 사회당의 당수들에게 지지를 받았다. 거기에 더해 그는 이듬해 1920년부터 1921년까지 그는 소비에트를 여행하며 공산당 대회까지 참가하였다. 민족자결주의 선언이 별 효용이 없음을 독립운동가들이 막 깨닫기 시작하던 1920년대 초, 국제사회주의자들과 공산주의 세력은 약소민족 독립운동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의 효용적 가치를 깨달은 것이다. 조소앙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국민당과 소련 공산당, 전운이 다가오는 동안 조소앙은 임시정부를 이용하려는 외부세력들을 조율하고 줄타기하면서 그들이 임정을 인정하고 힘을 보태주게끔 만들려 노력하였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외교 노선에 대한 비판을 가하지만, 자신들의 상황을 가장 잘 깨닫고 노력하려 한 사람, 큰 그림을 본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다양한 사상을 접한 사람이기에, 그가 제창한 삼균주의는 여러 사상의 장점을 담고 있다. 정치, 경제, 교육의 평등과 민족과 민족의 평등, 학교에서는 이가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았다고 서술하지만, 어떻게, 왜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부족하다. 그의 삶과 가던 길이 그가 세운 주의의 이야기를 말해준다. 교수님은 말한다. 여러 독립운동가들이 있었지만, 각박한 독립이라는 목표 속에서 이념이나 사상을 만들어낸 사람은 적다. 하지만 조소앙은 간단하고, 미약하게나마 나아갈 길을 정립하였고, 이는 우리의 헌법 속에서도 충분히 살아있다고 말이다. 그는 어두운 역사 속에서 오히려 더 진보한 체제를 정립해나가기 위해 애썼다. 과연 교과서, '올바른 역사'만을 담은 교과서에서 그가 걸어온 길을 우린 알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