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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명 | 강좌후기 | 글쓴이 | 날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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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복지국가를 말하다 | [북유럽 복지국가를 말하다]-2강 북유럽 모델에서 무엇을 배울것인가 | noname | 2015.8.6 | |
강의 첫째날에는 북유럽의 대표적인 복지국가 노르웨이에 대해 전반적으로 살펴보았고, 둘째날에는 교수님이 노르웨이에서 생활하며 경험한 것을 토대로 실제 복지사회가 어떻게 체감되는지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교수님은 건강상의 이유로 의료 부문을, 자녀들의 교육과 교수님의 대학교 재직생활을 통해 교육 부문을 많이 경험했기 때문에 의료와 교육부문을 중점적으로 다룬다고 하였습니다.
한편, 우리가 실제로 노르웨이에서 의료시설을 이용하려고 한다면 상당히 불만스러울 수 있을 것입니다. 노르웨이에서는 전문의를 만나기까지가 매우 까다롭다고 합니다. 노르웨이에서 진료를 받으려면 해당 지역 의사(주치의)에게 왕진을 예약해야 합니다. 대체로 대기자 명단이 긴 편이어서 당일 예약이 불가능할때가 많고 보통 모레나 글피에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전문의의 진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주치의가 전문의에게 의견서를 e-mail로 보내고 난 후 날짜가 정해지게 되는데 보통 4주이상은 기다려야 한다고 합니다. 큰 수술도 꽤 기다려야 할 때가 많고 작은 수술의 경우에는 더 많이 기다려야 한다고 합니다. (위급한 환자를 위한 구급차 서비스는 아주 잘 되어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국가는 표준 대기 시간 경과 시 항의하여 보상받을 수 있는 제도, 중환자의 수술 대기 시간 초과 시 해외에서 수술 받은 후 보상 받을 수 있는 제도를 통해 극복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노르웨이의 노후 연금은 통상적으로 67세 이상의 사람들에게, 가장 높았던 때의 소득의 67~70%가 지급됩니다. 신자유주의 경향으로 개인 연금 보험 가입자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합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게는 복지사무소에서 파견된 사람들이 집안일과 쇼핑을 해주고, 재택거주가 불편한 노인을 위한 시설이 잘 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처럼 고독사 같은 문제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이러한 노후복지에 대해 세대 간 갈등이 별로 느껴지지 않으며 사회 연대의식이나 사회통합이 강한 편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노르웨이의 최저임금이 어떻게 되는가 하는 질문이 있었는데요. 국가적 최저임금은 정해져 있지 않고 부문별로 집단협의약에 의한 최저임금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공사직 같은 경우 시급이 15000원 정도인데 이는 노르웨이 물가에 비하면 낮은 편이라고 합니다. 또한 예외적으로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필리핀 사람들은 노조에도 가입할 수 없는 형편이기 때문에 한달에 400달러 정도를 받으며 일하고, 온실딸기재배를 위해 고용되는 리투아니아 사람과 같이 계절마다 단기 고용되는 사람들도 인력파견업체 같은 하도급을 통해 노르웨이의 최저임금 기준을 피해서 아주 낮은 임금이 지급된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여러 예시를 살펴보면 노르웨이 내부의 공공성은 높지만 외부에서의 착취로 인해 메꿔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노르웨이에서의 한국인에 대한 차별이 있는가 하는 질문에는, 노르웨이에서는 한국과 일본을 자본주의 성공 국가로 보기 때문에 심한 차별을 하지 않지만 중동이나 아프리카, 같은 나라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배타적이라고 합니다. 실업자의 1/3, 빈곤아동의 50%가 비서구인들이라는 말도 덧붙이시면서 이민자들은 대부분 저임금 고난도 직종에 종사하며 오슬로 대학에 재직하는 15년 동안 백인인 청소노동자를 본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무상교육과 같은 복지를 통해 이민자 2세나 3세는 신분상승이 가능한 사회라고 합니다. 노르웨이의 교육 제도는 초등학교 7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으로 이루어져 있고 사립중학교의 비율은 전체 학생 중 1.5%, 사립고등학교의 비율은 전체 학생 중 3%로 사립학교의 비율이 매우 낮다고 합니다. 현재 6개의 종합대학이 있는데 모두 무료이며 사립대학에 다니는 학생은 전체 학생 중 10%정도입니다. 장학금을 받거나 생활자금 대출도 가능하기 때문에 빈곤 가정에서도 충분히 대학을 다닐 수 있습니다. 이는 평등에 크게 기여하는데 비서구 이민자의 2세, 3세에 이르러서는 대부분 생활수준이 노르웨이사람들과 비슷해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수능과 같은 대입제도가 없기 때문에 사교육이 거의 없고, 의대와 같은 인기학과는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학사3년, 석사2년, 박사3년의 과정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성적의 개념은 없다고 볼 수 있고 교사가 상담을 통해 개선점을 알려줍니다. 중학교 때는 모두 평균적인 수준이 되도록 학급을 관리한다고 합니다. 수학의 경우 우리나라나 교수님이 경험하셨던 소련의 학창시절보다 난이도가 눈에 띄게 낮아 고난도 학습노동이 요구되지 않습니다. 그러한 점은 초등학교 교육기간이 1년 더 길다는 것으로 보완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교육의 내용적인 면에서는 인권에 대한 교육의 질이 높으며 성소수자, 이슬람교, 유대교에 대해서 배우고, 자기권리에 대한 학습이 중요하게 여겨진다고 합니다. 학교 참정권이 주어지고 전국 고교협회라는 단체가 있는데 정치력을 행사하며 상당수 정치계로 진출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노르웨이에서는 우리나라와 달리 교사가 기피 직종이라고 합니다. 공급보다 수요가 더 많으며 평균 임금에 못 미치는 정도의 임금을 받는다고 합니다. 교사에 대한 인식은 지식을 제공하는 서비스업 종사자 정도 라고 할 수 있고, 교사들은 조합화 되어 있다고 합니다. 신자유주의의 경향으로는 비공식적 서열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2005년에 일체고사라는 것이 실행되었으며 그것으로 어느 학교의 성적이 좋은 지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은 철저하게 평준화 되어 있는데 이는 사회 진출에 차이가 없고, 국가의 대학 지원도 균등하기 때문입니다. 노르웨이는 교장 선출 방식도 우리나라와 다른데, 공채이며 학교 관리 지자체가 임명하는 방식이라고 합니다. 또한 학교차원에서 보상해야 할 때는 지자체에서 보상해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노르웨이의 학교에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왕따문제라고 하셨습니다. 따돌림의 이유를 살펴보았는데 첫째로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고급브랜드 의류를 소유하지 못하는 것도, 인종이 다르거나 뚱뚱하다는 외모의 다름도, 다름이 아닌 모자람으로 보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남성의 경우에는 운동을 잘하지 못하거나, 여성의 경우에는 특히 뚱뚱한것으로, 표준 성격에서 벗어나는 성격의 아이들이 따돌림을 받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노르웨이에서는 그렇게 평등교육과 다양성 교육을 많이 받지만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것이 자본주의의 기본 병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신자유주의의 경향으로 남성여가잡지가 200종 이상 되는 등 매체 과잉과 소비주의 사회 속에서의 표준적 획일화가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닐까 하며 노르웨이에서는 현재 스포츠 스타가 가장 인기가 많고 그들을 여러 매체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곁들여 주셨습니다. 노르웨이의 교육 제도에 대해 정리해보면 우리나라와 비교했을 때 수학과 같은 과목은 내용적으로 부실하지만 공공성은 아주 높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의 문제점이라고 이야기 되는 높은 개인부담, 경쟁과 성과위주의 교육, 교사의 권위주의와 고강도의 학습노동과 같은 문제는 전혀 없지만 왕따문제만큼은 해결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전체적인 마무리 정리를 하자면, 정치화된 노동조직의 압력에 의해 공공성이 아주 높은 복지사회에도 자본주의의 기본적 병폐는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 뒤로 30분동안의 질문 시간이 있었는데요. 비례대표 의원 수를 늘리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우리나라의 노후 복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노르웨이의 대학에도 우리나라처럼 권력을 이용한 교수의 성추행이 있는지, 강의 중에 교수님이 노르웨이에서는 중산층에서도 우리나라처럼 인문학 열풍이 없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풍요로운 노르웨이 사람들은 삶의 지향점이 무엇인지, 노르웨이의 성차별 문제 극복 노력은 어떠한 지, 우리나라에서는 공무원을 준비하는 취업준비생이 많은데 노르웨이는 어떠한지, 노르웨이의 유럽연합에 대한 태도는 어떠한지에 대한 여러가지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교수님은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친절하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셨고 굉장히 흥미롭고 재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공식적인 강의일정이 끝나고 옥상에서 뒤풀이 시간을 가졌는데요. 교수님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더 많이 들어볼 수 있었고, 사람들의 질문 하나하나에 궁금증을 해소해주시려고 열심히 답변해주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가 교수님과 유머코드가 맞는것인지 평소에 집중력이 없는 편인데 강의도 재미있게 웃으면서 잘 들었습니다. 그러나 복지 정책으로도 그 기본적인 병폐를 해결할 수 없다는 자본주의의 한계를 느끼게 되는 강의였기 때문에 돌아가는 발걸음은 조금 무겁기도 했지만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더 생각해보게 되는 좋은 강의였습니다. 이 글을 끝마치며 어두운면에 치우쳐 글을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북유럽 복지사회의 좋은 점은 이미 당연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이번 강의에서 몰랐던 측면에 대해 더욱 집중하게 된 것 같습니다. 부족한 후기이지만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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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복지국가를 말하다 | [북유럽 복지국가를 말하다]-1강. 복지천국 노르웨이의 속살을 말하다 | 힐데 | 2015.7.31 | |
* 박노자 선생님의 강의를 필기한 것에 약간의 가필을 하여 강의록을 작성해 보았습니다.
본격적인 강의 시작 전에 이 강의를 기획하게 된 이유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한국에서 북구(북유럽)사회에 대한 동경과 미화의식이 대단하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오늘날의 한국에서 갑자기 생겨난 현상이 아니라 이전부터 지속되어오던 것입니다. 특히 일본은 메이지유신 시대부터 북구를 이상향으로 생각하며 흠모해왔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공산주의 몰락으로 지식인들이 추구하던 실현 가능한 이상적 사회의 모델이 없어짐으로써 차선으로 북구를 이상으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사회의 이러한 북구동경현상은 충분히 이해 가능한 일입니다. 연간 2100시간이나 되는 과도한 노동시간에 시달리면서도 고작 일년에 실질적으로 7일밖에 휴가를 쓰지 못하는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노동시간이 연간 1350시간 정도 밖에 되지 않고 휴가도 5주에 이르는 노르웨이 등의 북구사회는 추구 해야 할 이상향으로 보일 것입니다.
복지국가에서 무상으로 제공하는 가장 기본적인 영역은 의료와 교육입니다. 노르웨이에서는 의료가 전면 무상지원이 되고 있습니다. 국내 의료가 무료인 것은 물론이고 국내에서 치료할 수 없는 병의 경우 외국으로 가서 치료받는 비용까지 국가가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한국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죠. 또한 노르웨이에는 수능이 없기 때문에 학생들이 한국처럼 스트레스에 시달려가며 학창시절을 고통 속에 보낼 필요가 없고, 명문대라는 개념 자체가 없으므로 과도한 경쟁에 시달리지도 앖습니다.
한국사회는 준주변부 자본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나라들에선 초경쟁과 초과노동이 발생하죠. 그러므로 상대적으로 훨씬 여유로운 삶을 영위하는 핵심부 사회를 동경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 겁니다. 그러나 이는 자본주의적 세계에서의 위치 차이에서 비롯되는 점이 큽니다. 노르웨이는 인당 국민소득이 한국의 4배 정도입니다. 부의 재분배 체계도 잘 되어있지만 일단 소득 자체에서 차이가 나죠.
북구의 사민주의 사회는 진보세력 안에서 이상화되어 왔지만 보수세력들도 북구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북구사회 또한 결국 자본주의이기 때문입니다. 북구사회에도 자본가 집단이 있습니다. 그들은 복지로 인해 구매력이 생긴 국민들을 기반으로 자국내의 탄탄한 내수 시장을 대상으로 하여 충분히 이득을 취하고 있습니다. 다른 자본주의가 다 망해도 끝까지 체제를 유지할, 자본주의입니다.
우리가 오늘 강연에서 알아볼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북구사회는 수정자본주의이자, 국가주도의 자본주의사회입니다. 국가주도의 자본주의는 세계적으로 많은 예가 있습니다. 특히 50년대에는 시대의 이념이 국가주도의 경제정책이었죠. 박정희 유신정권 시절의 경제개발정책도 결코 예외적인 것이 아닌, 이 시대적 흐름 안에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부의 재분배와 복지체계의 구축은 그 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지만요. 그러나 형식으로 보면 이 당시 진행되었던 북구사회의 국가주도 경제정책은 박정희의 경제정책과 궤를 같이 합니다. 단 북구사회와 같은 자본주의의 핵심부에서는 그 주도의 방향이 복지국가였던 것이고, 한국과 같은 주변부에서는 박정희식의 개발, 성장 우선 자본주의였던 것입니다.
노르웨이도 자본주의입니다. 사적자본을 그대로 소유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노르웨이의 주택시장, 부동산시장은 한국에서처럼 작동하고 있습니다. 전체 주택의 80%가 사유지이고, 주택가격은 계속 오르고 있습니다. 20년동안 4배이상으로도요. 여기서도 노동자는 상품입니다. 스칸디나비아 국가에선 한국보다 해고가 더 쉽습니다. 다른 점은 여기선 해고되도 굶을 일이 없으니 노동자들이 해고당해도 별 걱정을 안 한다는 겁니다. 해고당하면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쉬면서 다른 직업을 갖기 위한 교육을 받으면 되니까요.
그렇다면 노르웨이 사회의 복지수준을 이 정도로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가장 큰 것으로는 조세정책을 들 수 있습니다. 노르웨이의 국고수입에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세금입니다. 석유로 벌어들이는 돈도 있지만 사실상 생각보다 퍼센트가 그닥 크지는 않습니다. 소득세, 부가가치세, 기업세 등 국민으로부터 거둬들이는 세금으로 국고가 채워지고 있습니다. 노르웨이의 기업세는 25%로 생각보다 높지는 않습니다. 단, 소득세가 굉장히 높습니다. 가장 높은 경우엔 70%까지 적용이 되며, 평균은 46% 정도입니다. 즉, 노르웨이에서 복지사회가 유지되게 하는 것은 국민 개개인의 세금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에 이와 같은 자본주의가 어떤 정치적 제도로
유지되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겁니다. 이런 높은 수준의 재분배가 가능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고 유지시키는 게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노조입니다. 조직된
노동의 힘입니다. 노조의 조직율이 높고 그만큼 힘이 있어서 자본가들을 압박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재분배와
복지가 가능한 것입니다.
한국의 노조는 겨우 9퍼센트의 조직률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지만 유럽은 평균 30퍼센트이며 노르웨이는 53퍼센트입니다. 그리고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는 무려 70%이상의 조직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노르웨이의 노조는 전국 노총과 경총이 일년마다 임금협상을 합니다. 일단 전체적인 임금협상을 한 후에 부문별 임금 협상을 하게 됩니다. 조직률이 제일 높은 노조는 공무원-특히 교사, 은행, 금속노조입니다. 가장 낮은 조직률을 보이는 것은 서비스업-호텔 식당 등 입니다. 노르웨이에선 조직률이 높은 노조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서비스업 부문의 부문별 임금 협상을 도와줌으로써 더 높은 인상을 이루는 식으로 성과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른바 연대적인 임단협이라는 거죠.
물론 중앙노총에 가입하지 않는 노동자도 있습니다. 노르웨이에는 4개의 노조가 있는데 그 중 가장 급진적이고 힘이 쎈
중앙 노총이 나머지 작은 3개의 노조를 이끄는 구조입니다. 이
나머지 3개의 노조에는 다소 덜 급진적인 고학력 전문직 노동자들이 가입되어 있습니다. 한국사회의 입장에서 봤을 때 놀라운 건 목사나 경찰까지도 노조가 있다는 것입니다. 전 사회의 노조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라고 볼 수도 있을 정도죠. 이러한
높은 조직력으로 강한 힘을 갖고서 자본층을 압박할 수 있었기 때문에 노르웨이에선 복지국가의 유지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북구가 복지국가의 기본적인 기틀을 마련한 것은 1930년대 초부터였습니다. 이때 총자본이 노조의 영향력을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당시 북구사회의 여러 조건들이 있었습니다. 이 중 가장 큰 요소는 공산주의의 위협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소련의 공산당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기 때문에 노르웨이의 지배자들은 노동자들이 혁명을 일으켜 인접국가인 소련처럼 체제를 전복시키는 것을 우려했습니다. 때문에 보수정당들은 공산당 집권에 대한 공포에서 차선책으로 복지개혁을 실시하겠다는 사민주의적 노동당의 집권을 수용한 것입니다. 1945년 이후부터 노동당이 장기집권을 하기 시작했지만 공산당은 여전히 노조에서 만만치 않은 세력이었기에 노동당은 공산당에 노동자들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복지 개혁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또한 자본의 입장에서는 세계대공황의 상황에서 내수에 기댈 수 밖에 없었기에 복지를 요구하는 노조와 타협을 했습니다. 국민들의 구매력이 높아져야만 기업에도 이득이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노동당이 집권하면서 국가를 주도로 하여 복지개혁을 이끌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세계대공황. 공산주의의
위협. 탄탄한 내수시장, 노조의 높은 조직률, 사민주의 정당의 높은 지지율, 국가주도 개발이 인기를 얻었던 시대정신. 북구사회의 복지체제가 가능했던 요인 중 그 어느 것도 지금 한국사회에 해당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북구의 사례에서 뭔가 하나를 배울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노동운동’입니다. 노동의 정치화가 사회를 진보화 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북구의 경우엔 고숙련 대기업 노동자들이 급진적으로 재분배를 지지했기에 사회의 재분배가 가능했습니다. 크게 봐서 복지국가는 스스로 되어 가는 게 아니라 노동세력이 자본층에 압박에 압박을 가해야만 가능합니다. 체제를 압박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쟁취할 수 없습니다.
제가 노르웨이에 가서 가장 놀랐던 점은, 사민주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민주의 사회니까 사민주의자들이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외로 아주 많은 사람들이 사민주의에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대부분 고학력 전문직입니다. 애초에 노동당 간부들은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없었고, 때문에 학계나 고학력의 이득을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사민주의에 반대하는 사람 중엔 고학력 전문직군이 많습니다. 이는 덴마크등 다른 북구 사회에서도 볼 수 있는 경향입니다.
왜냐하면 고학력 전문직과 저학력 단순노동직의 임금격차가 미국은 최고 500배인 반면 노르웨이는 3~4배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미국이나 영국으로 가면 동일 수준의 노동으로 수백배나 더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것이죠. 때문에 전문직들은 사민주의에 불만이 많습니다. 이민율도 점점 높아지고 있구요.
노르웨이에선 ‘진보당’이 우파입니다. 높은 세율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는 중소기업인들로 이뤄져 있으며 반사민주의정당으로 8~90년대에 득세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세율을 낮추자고 주장합니다. 한때는 이 정당이 국민 3분의 1의 지지를 얻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2011년의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라는 극우파에 의해 일어난 노동당 10대 청년부를 대상으로 한 테러때문에 세를 많이 잃은 상황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사민주의라는 자본과 노동간의 타협이 언제까지 가능할까라는 것입니다.
현재는 온건우파-극우파 정당이 노르웨이에서 장기 연립을 하고 있는 실정이며, 복지제도는 점차 후퇴하고 있습니다. 80년대 이후 자본 축적 과정의 국제화가 이뤄지면서 기업가들이 축적과정을 국외로 팽창하게 되었습니다. 자본의 글로벌화가 이뤄진 것이죠.
국유화되었던 분야의 시장화로서 노르비치아라는 항공사의 예를 들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항공사는 개인기업이며, 저가 항공입니다. 이 항공사가 승객들에게 제공하는 낮은 가격은 동남아 노동자들을 매우 낮은 임금으로 착취하는 데서 옵니다. 지금은 이 항공사가 유럽 항공권에서 3대 저가항공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실정입니다. 점차 자본이 국유화에서 벗어나 국제무한자본시장에 뛰어들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또한 북구자본들은 자신들만의 경제영토를 늘리기 시작했습니다. 북구는 발틱삼국을 경제식민영토로 삼아 경제 식민지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금융, 토건 부분에서요. 스칸디나비아 자본이 이곳으로 많이 갔습니다. 해외자본을 착취하면서 국내에서 충분히 획득하지 못했던 이윤을 회복하고 국외자본축적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죠.
노르웨이의 3대 대기업 중 하나인 텔레놀사가 방글라데시 하도급 업체에서 14세의 청소년들을 불법고용하고 안전대책 없이 노후장비를 써서 수 많은 사상자를 내었던 것은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제 이 기업은 미얀마까지 진출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제3세계의 입장에서 보자면 스칸디나비아의 자본은 결국 미국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죠.
그 밖에 동구권 노동자들의 문제도 심각합니다. 폴란드 노동자가 15만명이나 됩니다. 이들의 노조가입은 가능하나 다단계 하도급업체 파견회사를 통해서 일하기 때문에 가입이 쉽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사민주의가 모든 노동자를 대변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온건좌파들은 사민당에서 이탈하여 극우정당인 진보당으로 가고 있습니다. 저숙련 노동자들이 자신의 일자리를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빼앗기는 것이 두려워 진보당에 투표하고 있습니다.
다음 강의에선 북유럽 모델의 역사적 전개과정과 그 한계, 그리고 우리가 이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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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읽기 어려운 책, 함께 읽기 4 - 한나 아렌트 <공화국의 위기> | 내가 푸른시니어 학교와 인연을 맺기 까지 | 우경 | 2015.6.8 | |
내 고향은 전북 익산의 변두리에 있는 작은 농촌마을 다가포 이다. 1949년 한국전쟁 한해 전에 5남매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올해로 예순일곱 이다. 어려서는 몸이 많이 허약해서, 오랜동안 중이염을 앓았고 그로인해 반귀먹어리가 되는 등 잔병 치레를 많이 하면서 자랐다. 초등학교 5학년때는 폐결핵을 앓게되어 장기간 치료 받느라 학교 공부를 계속하지 못했고, 그 후로 삼년 가까이 한문 공부를 했다. 마음은 늘 먼곳에 가 있었고, 허황된 꿈과 현실에 대한 불만으로 집에 가만히 붙어 있지를 못했다. 주먹패 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패싸움도 했고, 밤새워 돌아다니며 닭서리, 참외서리(도둑질)등 위험 천만한 사춘기를 보냈다. 나는 다행히 일찌기 자동차정비 기술을 배우기 시작 하였으며 자동차와 함께 살았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렇게 사회생활의 안정을 찾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흘러갔다. 정비공장에 취업을 해도 한곳에 안주하지 못하고 옮겨다니기 일수였고, 전주 군산 서울 인천으로 한 곳에서 근무하기를 한 두해를 넘기지 못했다. 그렇게 떠돌며 생활을 하다가 1970년에 군대에 가게 되었고 강원도 양구지역 최전방 에서 3년간 자동차 수송부에 복무하면서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군복무를 마치고 3년후 1976년 스물여덟 에 결혼하였다. 그후로 딸하나 아들 둘 삼남매를 낳아 기르면서 중랑구에 있는 정비공장에서 엔진부서를 상사와 함께 하청으로 운영하며 열심히 일 했다. 월급을 받는 것 보다는 수입이 좋았기 때문에 가정을 꾸려 가면서 또한 부모님을 모신 5남매의 장남으로 열심히, 정말 열심히 살았다. 그런대 1987년 어느날 이었다. 운전중에 시야가 흐릿해 졌다는 느낌이 왔다. 병원에 가서 보니 양쪽 눈이 한꺼번에 원인은 모르겠는데 백내장이 왔다고 했다. 나는 그것과 관련하여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주재넘게 뭘 개발 하겠다는 욕심으로 불빛과 마주하는 무모한 방법에 골몰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 이었다. 당시에는 백내장 수술을 할 수 있는 곳은 대형 종합병원과 전문병원 한 두곳 이었다. 찾아간 병원마다 의사들은 아직 수술을 하기에는 시기가 너무 이르다며 수술을 거부했다. 나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일을 해야 할 나이에 언제까지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백내장 수술을 제일 잘한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간 여의도 성모병원 에서는 가능하다는 진단을 내렸다. 나는 그 곳에서 인공수정체 삽입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받고 그때 바라본 세상은 마치 다른 세상을 보는듯 황홀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수술을 받은지 일주일도 안되어 염증이 발생 하였다. 통원치료를 계속 하였으나 증상은 호전 되지 않았다. 오히려 나중에는 눈에 하얗게 고름이 보이고 염증은 더욱 더 악화 되었다. 2년여에 걸쳐서 재수술 등 입 퇴원을 반복하며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왜 하필 이런 시련이 나에게! 나는 알수 없는 분노와 슬픔으로 마음은 괴로웠다. 1989년 부활절이었다. 원목실 에서 일 하시는 수녀님으로 부터 '그대가 성장하는 길' 시집 한권을 선물로 받았다. 나는 커다란 돋보기를 대고 눈 안에서 떠도는 구름같은 염증을 비껴가면서 책을 읽고 또 읽었다.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눈물이 나왔다. 나는 그때에야 비로소 '성장' 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나의 내적인 성숙으로 되새겼다. 그로부터 때가 되어서 그랬는지, 눈의 상태가 조금씩 안정되어 갔다. 나는 그때 어린 자식들을 바라보면서 기도했다. 다섯살 짜리 막둥이가 성년이 될때까지 만이라도 가장으로써 가정을 지킬수 있다면, 그 뒤로는 내가 어떻게 된다 하더라도 무엇을 더 바라지 않겠노라고 그렇게 기도하며 다짐을 했었다. 그 즈음 인천에서, 산자부에서 시행하는 회사내 고충처리위원 교육을 하루종일 받은 적이 있었다. 나는 그 중에서 심리학 교수로부터 들은 두시간 의 강의를 지금까지 잊지 못한다. 뭔가 애로사항을 가지고 찾아온 사람에게는 무조건 잘 들어 주는 것이 최고의 상담자의 역활 이라는 내용이었는데, 그때까지 내가 살아 오면서 얼마나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가를 깊이 깨닫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생각이 부정적 사고에서 긍정적인 사고로 바뀌기 시작 하니, 마음도 여유가 생기고 삶의 자세도 조금씩 바뀌어갔다. 독서도 하게 되고 신문 읽기에도 재미가 붙으니 그것이 또한 일상의 취미가 되었다. 그러나 돈복은 없었는지 그동안 자동차정비 사업에 뛰어들어 봤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늙으막에 6, 7년 직장생활을 하던중 환갑을 맞게 되면서 몸이 먼져 예전 같지 않았고, 중견 간부로써 회사 운영과 관련되는 문제들과 관련되어 내가 가진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느껴지는 갈등도 괴로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라고 하는 정체성이 흔들린 것이 제일 큰 문제로 다가욌다. 그 나이가 될때까지 아직까지도 내 인생의 의미도 명쾌하게 규정하지 못하고 살아온 자신이 한심 했다. 나는 진정 무엇을 위하여 살고 있었는지도 모르고 살고 있었구나, 해는 이미 석양이고 시간은 다 가는데!! 그래서 나는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 내 인생이다. 나머지 삶 이라도 조금이라도 더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일을 찾아 살자, 사람이 살기 위해 먹는거지 먹기 위해 사는것은 아니라고 하지 안는가! 그렇게 생각하고는 그때 직장을 그만 두었다. 벌써 6년 전의 일이다. 지금 생각해도 더 늦기전에 너무나 잘한 결정이었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 걱정되는 것은 우리사회가 이미 초고령화 시대로 접어들었는데도 노인들의 복지 문제를 놓고 정치권의 보수 세력들은 개선하려는 노력은 안 하고 세대간 이간질이나 부추기는 한심한 작태 들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더 걱정이 되는것은 정작 깨어나야 할 당사자인 노인들의 정신상태는 의식이 잠들었거나 이미 세뇌되어 있고 돈 몇푼에 영혼을 팔아버리고 수구꼴통이 되어 사회로부터 존경은 커녕 손가락질과 천덕꾸러기로 외면당하는 이들이 너무 많은 것이 지금의 우리 현실이다. 그래서 나는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보내준 메일에, 푸른 시니어학교 '새로운 노인시대를 만들자' 라는 주재가 특별히 눈에 띄었고, 강좌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아홉번의 강좌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참석 하면서 배우고 느낀것은 유명하신 강사님들의 충실한 강의도 좋았고, 앞으로 '새로운 노인사회를 만들자'고 하는 과제를 가지고, 많은것을 토의 하고 공유 할 수 있는 수강자들 과의 만남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실재로 이번 강좌를 수강 하면서 내 주변의 몇분의 시니어들 과의 대화를 통하여 내가 가진 생각과, 그분들이 가진 생각과 사고방식 체계에 상당한 간격이 있음을 확인 하였다.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을 실행 할 때에는 내가 사는 동네에서 한사람씩 신뢰를 쌓아 가면서 한분 두분 친교을 맺어가는것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렇게 하여 다섯명 만 모이게 되면 무엇을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도 생겼다. 그리고 이번 강좌를 통하여 내가 어떻게 움직여야 할 것인가 하는 방향과 동력을 얻은 것에 크게 감사한다. 그동안 어려운 가운데서도 강좌를 만들고 이끌어 주신 주은경 선생님과 참여연대 관계자 여러분 그리고 우리함께 강좌에 참여하신 수강자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사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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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전문가와 함께하는 나라살림 흥망사 - 국가와 문명의 흥망성쇠, 나라살림의 비밀 | [예산전문가와 함께하는 나라살림 흥망사] 6강 나라살림 우리는 어디로? | 아비 | 2015.6.1 | |
안녕하세요. 이번 시간에는 현재 한국의 나라살림을 알아봤습니다. 총 6강이 진행되는 동안 고대국가부터 근현대까지 정말 많은 나라의 흥망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이렇게 마지막이 되니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아쉬움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여태까지 그랬듯 이번 강의를 다시한번 되짚어보겠습니다. 한국의 나라살림에 들어가기에 앞서 여태 배워왔던 나라살림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나라살림의 기본은 재정이며 재정의 기본은 조세와 재정지출에 있을 것입니다.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흥망이 좌지우지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앞선 시간에 여러 나라들이 재정을 얼마나 훌륭히 걷어서 효과적으로 쓰는지 배웠습니다. 반면에 비효율적이거나 흡족하지 않게 걷어 사용하는 경우도 배웠지요. 그렇다면 한국의 경우 어떤 모습일까요? 경제적으로 한국은 세계에서 단시간에 크게 성장한 나라 중에 하나입니다. 어떤 이유로 한국은 경제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을까요? 단순히 국민들이 성실하고 똑똑해서, 또는 지도자의 리더쉽이 뛰어나서였을까요? 아니었습니다. 한국이 크게 성장한 시기는 저번 시간에도 이야기했지만 박정희 독재정권 때였습니다. 이 시기에 한국은 비록 많은 고통과 희생을 수반하긴 했지만 수출을 장려해서 큰 성공을 만들어냈습니다. 게다가 강력한 중앙 통제 정책으로 신자유주의를 거절하고 독재를 통해 자원동원 배분의 효율을 극대화시켜 경제적으로 큰 성장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 같은 성장이 지금까지도 많은 부작용, 가령 불균형 성장에, 재벌 경제등의 안타까운 현실을 만들어냈죠. 게다가 시간이 흘러 이 같은 독재적인 성장이 신자유주의를 불러들이기도 했습니다. 신자유주의에 이득을 보는 주체들이라고는 대내외적으로도 아주 강한 경쟁력과 자본을 가진 소수의 재벌 기득권 세력들 밖에 없을테니까요. 이렇듯 부작용이 심각한 지금 우리는 과거의 영광 같은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해결해야할 과제를 생각해야할 때일 것입니다. 과다한 금융에 집중, 사라진 경제 정책, 부정부패, 재벌 기업 위주의 경제등 우리가 해결할 일은 아주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국가는 지금의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해결하고자 재정을 사용하고 있을까요? 먼저 우리나라는 건설업 비중이 아주 큰 나라 중에 하나입니다. 건설업 비중이 크다는 것은 개발도상국에게는 철도와 다리 같은 여러 사회간접자본을 만드는 데 유용하고 결국 경제 성장을 불러일으킨다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미 충분히 많은 다리와 철도, 도로들이 있고 심지어 곳곳에 주택도 넘치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건설업 비중이 크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이것은 올바른 나라살림일까요? 이 강의를 들은 분들이라면 이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복지에 대한 지출 수준이 OECD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아주 낮은 나라 중에 하나입니다. 대신 앞서 언급했듯 건설업 비중은 아주 높지요. 사실 건설업 비중만 높은 것이 아닙니다. 기업에 지원하는 경제부분 비중도 월등히 높으며 실제로 여러 편법들을 써서 원래 목적을 가린다 뿐이지 여러 쓸데 없는 사업에 지출되는 비용도 아주 많습니다. 그 편법이라는 것은 환경보호라는 부분에 속해있는 지출이 사실상 전혀 환경보호와 상관없는 지출이라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지요. 결국 우리나라 정부는 거의 많은 부분을 건설 업계, 대기업 경제에 투자하는 데 쓰고 있습니다. 이 같은 투자가 기업으로 하여금 고용을 창출하고 많은 경제적 성장을 가져온다는 이유로 말이죠. 그러나 실제로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지금 이 사회에는 낙수효과가 없습니다. 정부를 통해 국민의 눈 먼 돈을 받은 기업들은 그렇게 얻은 이윤으로 고용을 창출하고 새로운 사업을 만들기보다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금융산업, 다시 말해 돈 불리기에만 여념이 없을 뿐이며 모조리 다 주주들의 잇속만 차리게 합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 되어도 교묘한 논리로 국민들을 기만하기만 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나라살림이 과연 나라를 살리는 길일까요? 앞서 복지 지출이 아주 낮은 나라라는 설명을 했습니다. 요새에는 많은 사람들이 복지에 대한 문제인식을 하고 복지를 늘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은 복지를 늘리려면 세금도 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좀 전에 우리나라의 살림을 잠시 살펴봤듯이 복지를 하는데 필요한 것은 단순히 세금을 늘리는 것이 아닐 것 같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지출 구조, 즉 재정 구조를 바꿔야 하는 점입니다. 경제부분, 건설업에 들어가는 비중을 낮춘다면, 혹은 그 유명한 4대강 같이 땅만 파는 사업을 추진하지 않고 그만한 재정으로 복지에, 소득불평등에, 열악한 경제 상황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투자했다면 어땠을까요? “왜 부자들을 돕는 것을 '투자'라고 하고, 가난한 이를 돕는 것을 '비용'이라 말하는가?” 이 말은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의 말입니다. 이 말에서 좀 더 나아가 성장을 돕지 않는 효율성 없는 경제 부분에 대한 과도한 재정 투자를 하는 것은 옳은 일일까요? 아니면 복지 정책에 투자하고 정말 국민들의 삶을 나아지게 할 투자를 해야 하는 것이 옳을까요? 어떤 것이 우리나라 경제를 흥하게 만들까요? 제 견해를 덧붙이자면 가장 먼저 우리가 해야 할 것은 4대강 같은 사업에 들어가는 비효율적인 비용을 없애고 가난한 자들을 위한 투자를 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투자를 위해서는 단순히 세금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지출구조를 바꿔야 하는 것이 먼저일 것입니다. 우리나라와 같이 비효율적인 재정지출로 크나큰 위기를 겪은 나라는 한 곳 더 있습니다. 바로 가까운 나라 일본이었습니다. 일본은 엄청나게 많은 돈을 국가적인 차원에서 건설업에 투자 했습니다. 그로 인해 쓸데없이 많은 공항과 많은 다리들이 생겨났습니다. 우리는 강의를 통해 건설업이 순간에 많은 고용을 창출해내고 경기를 활성화시키지만 장기적으로는 별로 효율적인 경기 활성화 정책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일본 같이 이 같은 단기적인 경기 활성화 정책 때문에 나라가 기울어가는 것에 대해 배웠습니다. 이것은 명백히 나라살림을 제대로 못하는, 정확히는 예산 낭비를 하고 있는 예일 것입니다. 한 나라의 흥망은 재정을 어떻게 관리하는냐에 달려있다. 이 강의의 핵심인 이 말은 결국 쉽게 말해 국민에게 돈을 어떻게, 얼마나 걷고 어디에 쓰느냐가 나라의 흥망을 좌우한다는 말일 것입니다. 고대의 많은 나라들, 근현대의 많은 나라들이 재정을 바르게 관리하지 못하여 저물고 또 떠올랐습니다. 이번 강의를 통해 우리나라의 재정 지출 구조를 살펴보면서 우리나라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안타깝게도 예측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문제해결의 첫 걸음은 잘못을 이해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뭔가를 배우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앞으로 더 많은 것들을 배워야 할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여섯 번의 강의를 통해 배운 것들이 쌓여서 역사를 배우게, 또 예산과 정책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신 정창수 소장님께 감사드리며 저는 이제 물러가려합니다. 한 학기동안 수업을 들어주신 분들, 부족한 후기를 봐주신 분들 모두 ‘올바른 배움’에 더 가까워지시길 희망합니다. [예산전문가와 함께하는 나라살림 흥망사] 1강 고대문명의 흥망은 어떻게 달랐을까. 다시보기(클릭) >> [예산전문가와 함께하는 나라살림 흥망사] 2강 세계 제국의 흥망은 어떤 비밀이 있을까? 다시보기(클릭) >> [예산전문가와 함께하는 나라살림 흥망사] 3강 서양이 흥망을 선점하게 된 이유. 다시보기(클릭) >> [예산전문가와 함께하는 나라살림 흥망사] 4강 아시아는 어째서 먼저 흥하고 먼저 쇠락했는가. 다시보기(클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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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권의 독서클럽 – 혼자 읽기 어려운 책 함께 읽기 2 <위기의 국가> | [김만권의 독서클럽-위기의 국가] 4강: 제3부 민주주의의 위기 | rohsawook | 2015.5.28 | |
위기의 국가를 함께 읽는 마지막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 파트인 ‘민주주의의 위기’ 부분이었는데요, 먼저 선생님께서 우리 민주주의의 위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질문하셨습니다. -과거로의 회귀다(명징했던 것들이 되돌아가는 것 같다), -절차적 민주주의 이룩 이후에 어떻게 나갈 것인지 다음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지 못한다, 등의 의견이 있었고 그와 더불어, 민주주의의 질적 발전도 중요하지만 먹고 사는 문제도 소홀해서는 안 된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돼야 자유롭게 정치로 들어갈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오늘날 어떤 국가에 대해서건 그 국가의 입법부, 더 나아가 유권자들의 의사와는 완전히 독립적으로 온갖 중요한 경제적 결정을 내리는 전지구적 최상층 계급이 있다.” -리처드 로티
본격적으로 보르도니와 바우만의 이야기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민주주의가 무엇에 영향을 받을까요?] 이 질문에 대해 보르도니와 바우만은 각각 경제적 현상, 문화적 현상에 주목했습니다. 보르도니는, 근대가 왕성해지고 나서 상부구조의 문화적 힘이 경제에 영향을 줄 만큼 컸는데 지금에 와보니 결국 우리 삶을 결정하는 거 여전히 경제적인 것이라고 말합니다. 반면 바우만은, 경제가 무언가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민주적 사회로 돌아가고 싶다면 우리가 보아야할 것은 ‘문화’라고 얘기합니다. ‘glocalization’. 지역이 세계적인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집중하여 여기서 민주주의의 포인트를 찾아야 합니다. 문화적 수용 안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야하는 것이죠.
[포스트민주주의] 바우만은 문화의 이정표로서 Y세대를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Y세대는 ‘불안정성의 세대’입니다. 보호 없이, 직업 불안정성을 겪으면서 거기에 소비주의 문화가 결합된 세대입니다. 1980년대 중반과 1990년대 중반 사이에 태어난 세대로서, 인터넷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최초의 인간들이고 ‘실시간으로’ 디지털 소통을 알고 실천한다는 점에서 문화의 역사에서 하나의 이정표로 인식되고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브라프만은 프랑스인들이 Y세대라고 할 때 흔히 Y를 영어의 why로 발음하는 것은 이 세대가 질문하는 세대라는 데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고 합니다. ‘Y세대’는, “자기말을 뱉고 나가버리는 대화구조가 만연”한 세대이며 반민주적, 반정치적인 세대로도 이해될 수 있습니다. Y세대는 대개 위키피디아의 익명의 저자들, 페이스북 친구들, 트위터 중독자들에게 질문을 할 뿐, 부모나 상사 혹은 ‘정부당국’에 결코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들로부터 권위 있고 믿을만한 답변은 고사하고 귀 기울일만한 정도의 대답도 기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Y세대는 왜 질문을 할까요? 정말 간절히 원하는 질문이 많기 때문일까요? 그게 아니라 혹시 ‘처음 뵙겠습니다’처럼 정보 전달이 아니라 당신의 존재를 알리고 당신이 언제든 함께 어울릴 준비가 되어있음을 보여주는 사교적 기능만 하는 말들인 건 아닐까요? 사람들이 많은 모임에서 소외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혹은 지루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나누는 잡담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요? 또한 Y세대 구성원들은 완벽하거나 완벽에 가까운 직장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지 않고 현재의 일자리와 그 일자리를 제공하는 회사들에 대해 그다지 헌신적이지 않으며 삶은 다른 곳에 있다는 확신과 바로 그 다른 곳에서 살겠다는 결의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 세대들과 다릅니다.
보르도니는 포스트민주주의를 ‘반정치’라고 이야기합니다. 포스트민주주의는 탈규제, 정치생활과 선거에서 시민참여의 감소, 복지국가의 쇠퇴, 경제적 자유주의의 회귀, 정치의 쇼비지니스화, 공적 투자의 감소, 최소한의 자유만을 보장하는 형식적 민주주의의 모습들을 보입니다.
포스트민주주의에 대해서 ‘바우만’의 의견에 공감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Y세대’로 일컬어질 수 있는 20대들이 바우만이 얘기한 Y세대의 양상과 거의 정확하게 일치하는 생각과 소통 방식들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새로운 지구적 질서를 위해] 보르도니는 “multitude”에 집중합니다. ‘multitude’ 즉 ‘다중’은 시민과는 조금 다른 개념입니다. 시민은 국가경계적 개념에 ‘속한’ 사람의 뜻이 강한 반면 다중은 그 개념 너머에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경제가 가장 효과적인 사회통제수단이기에, 이 새로운 정치는 본질적으로 경제적 결정에 좌우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민들의 수중에서 완전히 벗어나 지구적 권력의 최고 수뇌부에 있는 ‘얼굴없는 책임자들’에게 전적으로 맡겨져 있습니다. 일반시민들은 지역차원의 정치에 대해서만 책임이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지역차원의 정치에는 중요하다고 할 만한 활동영역이 없습니다. 그것은 늘 되풀이되는 뻔한 문제들을 관리하는 일만 할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르도니는 더욱 ‘다중’에 주목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다중’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김만권 선생님께서도 다중보다는 ‘시민(citizenship)’ 개념을 다른 차원으로 옮겨 대응해야한다는 생각을 말씀하셨습니다.
바우만은 ‘소비주의 신드롬’에 주목합니다. 이는 강력한 장애물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처리하기 가장 힘든 장애물입니다. 소비주의 신드롬은 소비시장들의 관행을 통해 세워진 기준들에 입각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인식, 판단, 평가를 촉진하고 정당화합니다. 인간이 ‘소비’되는 것입니다. 그에 더해 “일방적 종결의 권리”를 이야기하는데요, 좋아하면 소비하고 매력이 없으면 소비를 중단하듯, 네트워크의 본질적 특징으로 ‘일방적 종결의 권리’가 작용합니다. 공동체와 달리 네트워크는 개인들이 모여 만들고 개인별로 탈퇴와 가입이 이루어지며 개인들이 떠나면서 해체됩니다. 도덕적으로 무감각해진 개인들, 즉 타인의 행복을 고려할 수도 없고 고려할 생각도 없게 된 사람들은 싫든 좋든 동시에 상대의 도덕적 무감각에 직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멸감만 남고 도덕감은 사라졌다”. 소비주의는 경제의 수레바퀴에는 기름칠을 할지 모르지만, 도덕의 베어링에는 모래를 뿌립니다.
4주 동안 [위기의 국가]를 읽으며 우리의 위기, 민주주의, 그리고 현대의 새로운 질서 등에 고민하고 생각을 나누는 좋은 시간들이었습니다.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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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전문가와 함께하는 나라살림 흥망사 - 국가와 문명의 흥망성쇠, 나라살림의 비밀 | [예산전문가와 함께하는 나라살림 흥망사] 5강 나라살림으로 본 한국 흥망 | 아비 | 2015.5.25 | |
이번 시간에는 마침내 한국 흥망에 대해 배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농업이 시작되었던 선사시대부터 박정희 독재정권의 70년대까지 한반도에 있던 모든 국가와 정부들이 어떤 식으로 조세와 토지, 또 경제를 꾸려나갔는지, 어떤 제도가 훌륭했고 또 어떤 제도가 미흡했는지에 대해 전체적으로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비록 시간이 워낙 짧아서 많은 내용들을 충분히 배우기에는 곤란했으나 그래도 가장 중요한 요점들을 짚을 수 있던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한국 살림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역사에 두 가지 거대한 흐름을 살펴보았습니다. 첫째는 농업의 시작이었고 둘째는 산업화였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기원전 3000년 잡곡 재배를 시작했고 세계사에서는 기원전 8000년부터 메소포타미아의 한 지역에서 시작했습니다. 이후 아주 오랜 기간 세계는 농업을 기반으로 국가가 성립하고 성장하였으며 끊임없는 발전과 발전을 거듭해 결국 산업 혁명에 이르렀습니다. 이 농업의 시대는 지금 기준의 전체 성장량으로 한없이 낮고 오랫동안 성장하지 않는 고인 물과 같은 시대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모든 진보를 압도하는 가장 거대한 진보” 이며 “훗날의 군장사회와 대군장사회, 이윽고 국가와 제국까지도 거기에서 비롯되었다.” 라는 윌슨의 말처럼 역사를 지탱해온 원동력이었습니다. 물론 이어 산업경제가 가져온 엄청난 경제 팽창에 대해 짚고 넘어갔습니다. 세계사는 멜서스 함정이라고 하는 농업 사회의 한계로부터 산업사회를 맞이하여 커다란 경제성장의 시대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시작에 대해 다음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나라는 기원전 1000년부터 본격적으로 농업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전에 수렵생활은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아주 중요한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이것은 공동소유의 재산권 제도 하에서는 인구가 늘어나 자원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경우 자원이 고갈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에 생기는 비극을 뜻합니다. 어느 순간 역사는 필연적으로 농업이 유리한 시점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농업은 정착생활을 전제하고 가능하게 하므로 배타적 소유의 재산권 제도로의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고대 국가는 이런 시기에 맞춰 생겨난 가장 큰 발명이나 다름 없습니다. 이들은 군사력을 가지고 국민을 지키는 조직입니다. 대신 조세를 받아서 유지를 하는 것이지요. 한국도 기원전 2세기 진국이 성립하고 뒤를 이어 삼한이 등장했습니다. 점차 전쟁으로 영토를 넓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도 했지요. 삼국 시대에는 이러한 팽창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여러 기술의 발달도 한몫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중세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한국의 중세는 집권적, 국가적, 관료적이라는 다양한 수식어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유럽의 중세가 봉건제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볼 때 관료제에 발달로 오히려 한국의 중세가 더 선진적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국가는 토지와 인구를 양안과 호적으로 파악하여 직역제도와 지방제도를 통해서 사회의 재생산에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려고 했습니다. 고려의 경우에는 먼저 13조창을 두어 세금으로 걷은 곡식을 13개 창을 통해 관리하고 개경으로의 수송을 원활히 하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물자이동을 최소화하고 지방 재정은 독자운영토록 하게 하는 여러 제도들이 만들어졌습니다. 물자 상납을 위한 특수 행정구역은 물론 당시의 정부는 그 밖의 나라 안의 인적 물적 자원을 효율적이게 관리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물론 이렇게 잘 발달된 중앙 집권적인 형태의 제도들은 시장발전에서 유럽의 봉건제보다 불리한 점도 있었습니다. 유럽의 봉건 사회에서는 국가의 역할을 대신해 도시의 상인들이 경제 통합을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혹여 많이 달라보이는 유럽과 한국의 공통점을 굳인 찾는다면 농업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당연히 유럽의 중세도 농업을 기반으로 이루어졌고 한국도 이러한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농업은 중세를 걸쳐 여러 방향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먼저 제도 혁신과 기술 발달로 인해 생산성이 증가되었습니다. 이 때는 노비를 이용한 집단 농장 경영보다는 소작농 체제로 이전하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중세의 토지는 법적으로 영주의 소유였지만 사실상 농민의 소유나 다름 없었습니다. 고려 시대때부터 이러한 토지 소유권이 발달되기 시작했고 농업 역시도 1,2년을 묵히는 단기휴경 단계까지 도달했습니다. 이러한 민간의 소유권 확립을 통해 점점 조세 국가로 역사가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선 왕조는 문벌 귀족이 독점하던 귀족의 사회에서 신흥 사대부로 권력이 이동한 크나큰 변혁이었습니다. 귀족제는 타파되고 양인과 천민만을 둔 양천제를 도입하여 신분제도를 명확히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노비를 소유하고 과거를 봐서 군역을 면제 받는 양반이라고 하는 특권 신분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조선은 노비제가 발달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노비제는 나중에 너도 나도 노비가 되고자 하는 나라 총체적인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점차 쇠퇴하게 되었지요. 조선은 경제 부분에서 많은 제도를 만들어냈습니다. 먼저 조세 징수를 더 잘 할 수 있게 3년마다 호구조사를 실시했습니다. 물론 조세 회피의 목적으로 인구는 실상보다 잘 들어나지 않았습니다. 19세기 쯤 되면 전체적인 식량부족의 문제가 발생했고 인구 압력이 매우 높아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조선의 전기 까지는 튼튼한 재정 정책과 제도들이 나타나 효율적으로 나라 살림이 운영될 수도 있었습니다. 조선 초기에는 경지 면적을 확대했고 과세 기준을 낮추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국가 재정범위가 좁았고 모든 것들이 지방의 관행에 맞춰져 상납 네트워크가 형성되기도 하였습니다. 여기에 군역 부담 어려운 양인들은 몰락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후에 조선은 대동법과 같은 공납 제도의 개혁을 추구함으로서 국민의 공납 부담을 낮추고자 했습니다. 조선은 환곡제도를 통해 기근을 완화시키려는 노력 역시도 보여줬습니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시장경제의 발달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를 통해 종래의 상품화폐의 시대에서 점차 상평통보의 시대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농업의 부분에서 조선 역시도 소농 경영의 성장과 지주제가 발달한 국가였습니다. 농업 생산성도 기술의 발달로 크게 증가하였습니다. 특히 이양법의 보급으로 하층 농민들이 소농으로 자립하게 되었고 이러한 집약적 소농 경영의 성장이 지주제와 함께 조선 후기 농업의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정치적으로 조선은 군주제 이자 엘리트 층의 특권을 부여한 기득권 중심의 국가였습니다. 양반은 국정 참여를 통해 독점 이익을 향유 했고 조선 후기에 이르러 국가적 경제 위기가 발생했을 때 여러 민란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 조선은 부패가 심해지고 양반층에 의한 독점이 끝에 다다른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경제적 위기의 근본 원인은 인구 증가이기도 했습니다. 농업생산성도 지속적으로 하락하였고 물가는 상승했기에 국민들의 삶은 점점 피폐해졌습니다. 국가의 재정운영도 한계에 다다라 점점 나라에 망조가 들고 있었습니다. 주변국이었던 중국과 일본은 끊임없이 조선을 넘보고 있기도 해서 나라는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이 시기에 김옥균 등의 급진 개화파가 갑신정변등을 통해 나라를 개혁하려고 일어났지만 실패로 끝났고 이후 등장한 대한제국 역시 황실의 비효율적인 재정운영과 함께 끝으로 달리게 됩니다. 이어 일본의 본격적인 침탈로 인해 결국 끝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식민지 시대 조선은 일본의 쌀 생산기지로 쓰였습니다. 또한 광공업이 발달하기 시작했고 경제 성장이 일어났습니다. 물론 해방 후 일본과의 경제 관계가 단절되자 공업 생산은 급격히 위축되었고 이는 일본 자본이 주도한 공업화와 경제성장의 그림자였습니다. 물론 해방후 일본이 두고 간 식민지 동안 축적된 물적 자본은 이후 한국의 산업 성장에 도움을 준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후 한국은 분단과 전쟁의 과정을 거쳐 많은 변화를 가졌습니다. 특히 가장 큰 변화는 한강의 기적이라 일컫는 1960년 대 이후의 급속한 공업화와 경제성장이었습니다. 당시 박정희 독재정권은 일본으로부터 받은 무상원조와 공공차관으로 제조업을 키워 수출지향적인 경제 성장에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물론 이 시기에 경제 성장이 현재까지도 재벌 경제라는 형태의 부작용으로 나타났지만 한국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더 빠른 시간 많이 성장한 나라라는 점은 부정할 순 없을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단지 경제적인 총량 뿐이겠지만 말입니다.
이번 강의를 통해 우리는 한반도의 거의 모든 나라들의 살림을 살펴보았습니다. 조세, 농업, 경제 정책, 정치 체제까지 한국 역사의 수많은 변화와 혁신 그리고 부족함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시간 마침내 마지막 강의를 통해 현대의 살림을 살펴보게 됩니다. 금융위기를 비롯한 세계적 경제 상황뿐만 아니라 한국의 문제적 재정 운영을 깊이 있게 살펴보는 갚진 시간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예산전문가와 함께하는 나라살림 흥망사] 1강 고대문명의 흥망은 어떻게 달랐을까. 다시보기(클릭) >> [예산전문가와 함께하는 나라살림 흥망사] 2강 세계 제국의 흥망은 어떤 비밀이 있을까? 다시보기(클릭) >> [예산전문가와 함께하는 나라살림 흥망사] 3강 서양이 흥망을 선점하게 된 이유. 다시보기(클릭) >> [예산전문가와 함께하는 나라살림 흥망사] 4강 아시아는 어째서 먼저 흥하고 먼저 쇠락했는가. 다시보기(클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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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권의 독서클럽 – 혼자 읽기 어려운 책 함께 읽기 2 <위기의 국가> | [김만권의 독서클럽-위기의 국가] 3강: 제2부 근대성의 위기 | 혠벗 | 2015.5.21 | |
'1부 국가의 위기'에서 글로벌리제이션과 그에 따른 위기와 국가의 변화에 대한 두 학자의 생각을 볼 수 있었습니다. 몇몇 지점에서 두 사람의 생각이 미묘하게 다르기도 했으나, 현재를 '위기'로 본다는 점, 근대 국민국가가 더 이상 국민 보호라는 자신의 역할을 하려들지 않는다는 점, 그 결과 개인들이 스스로를 보호해야하는 상황에 처했다는 점 등에 대해서는 의견을 같이 했습니다. '2부 근대성의 위기'에서는 두 사람의 견해가 갈리고 서로 설전을 벌이는 무척 흥미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준비해주신 강의록에 100페이지 가량 되는 2부 전체가 무척 꼼꼼하고 이해하기 쉽게 요약.정리 되어 있어, 저는 두 사람의 견해가 갈리는 포인트에 대해서 정리.인용 하는 것으로 후기를 대신하려 합니다. [Point 1] 근대는 과거인가 현재인가 보르도니는 '이미 근대와 포스트 모더니즘을 건너왔다. (아직 어떤 시대인지 알 수는 없지만...) 현재는 또 다른 시대'라고 봅니다. 세계대전 이후 노동의 변화, 탈물질화, 이데올로기의 쇠락이 근대의 붕괴를 보여주며, 그 후 혼란했던 1970년부터 20세기 끝날 때까지가 포스트 모던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바우만은 '우리는 근대가 끝났다는 것을 당장 확신할 수 없으며, 여전히 (액체화 된) 근대에 살고 있다'고 봅니다.
[Point 2] 근대국가가 떠난 자리에 설 새로운 주체는 누구인가? 보르도니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남긴 하나의 가능성으로 다중 (multitude)이 새로운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다중'은 인민(the people), 시민(citizen), 국민과는 구분되는 개념으로 주권자와 사회계약을 맺지 않고, 계속해서 (국가라는) 정치사회 바깥에 있던 사람들을 지칭한다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보르도니는 어려운 시기를 통과하면서 단련된 다중으로서의 개인이 국민국가의 빈 자리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한편 바우만은 '우리는 여전히 공위기 상태, 즉 주체의 부재에 따른 위기에 직면 해 있으며, 보르도니가 말하는 다중은 해답이라고 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두 가지 포인트에 대한 두 사람의 신경전이 젠틀한 단어들 사이에서도 비쳐보여 읽는 내내 매우 흥미로웠던 파트였습니다. 수업을 들으시는 분들은 두 사람 중 누구에게 좀 더 설득 당했는지, 혹은 두 사람의 견해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이야기를 더 나눠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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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전문가와 함께하는 나라살림 흥망사 - 국가와 문명의 흥망성쇠, 나라살림의 비밀 | [예산전문가와 함께하는 나라살림 흥망사] 4강 아시아는 어째서 먼저 흥하고 먼저 쇠락했는가 | 아비 | 2015.5.18 | |
지난 시간에 이어 이번 시간에는 서양의 흥망과는 조금 다른 아시아의 흥망을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히 오랫동안 아시아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중국의 나라살림을 주로 살펴봤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특히나 고대 아시아 국가의 뛰어난 기술력과 제도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어째서 이런 훌륭한 기술력과 제도를 보유한 아시아가 유럽에 뒤처지게 되었는지 또 한번 고민하게 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점점 강의가 진행될수록 이 강의의 본질적인 핵심에 다가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강의를 통해 역사 속 국가들의 흥망사를 살펴봄으로서 또 우리나라와도 연관되어 있는 부분들까지도 배워나가면서 우리가 어떻게 우리나라의 나라살림을 바라볼 수 있을는지, 한국의 나라 살림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등에 대해 배우는 것을 더 기대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번 강의에서 첫 번째로 확인 했던 것은 아시아 문명들의 뛰어남이었습니다. 유럽의 문명들과 비교해 봐도 전혀 기술적으로든 체제적으로든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죽은 제갈공명이 중동 현대사를 힘들게 하다” 이 말뜻을 알아보기 위해 우선 중국의 삼국시대부터 알아보아야 합니다. 다들 알다시피 서기 208년 중국에서는 조조, 손권, 유비의 위(魏), 오(吳), 촉(蜀) 세 나라가 자웅을 겨루는 삼국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중 가장 열악한 곳은 유비의 촉나라였습니다. 촉은 영토의 대부분이 내륙 깊숙한 산간 지역이고 인구도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적어서 삼국 중 불리한 조건을 가졌고 가장 큰 문제는 바다에 접하지 않아 소금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소금은 역사적으로 모든 나라들에서 큰 문제가 되었던 필수적인 자원이었습니다. 소금으로 인해 반란이 일어났던 적도 많았고 실제로 우리 식생활만 생각해보아도 소금은 없어서도 안 될 소중한 자원이라는 것을 다들 아실 겁니다. 당연히 촉나라도 소금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큰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직접 바다로 갈 수는 없던 상황에서 제갈량은 소금을 구하는 방법을 고안해냅니다. 그것은 바로 지하수 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염수층을 이용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이 염수층은 소금이 녹아있기 때문에 소금을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위해서는 고도의 굴착 및 시추술이 필요했고 다시 말해 정교한 기술이 필요했습니다. 무려 기원전 4세기경부터 중국은 고도의 기술력으로 소금을 캐냈습니다. 게다가 이런 과정에서 석유와 천연가스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기술력이 프랑스 선교사에 의해 1828년 유럽으로 전달 되었습니다. 게다가 미국은 자국의 철도 건설에 동원된 중국 노동자에게 이 시추술을 배웠고 1859년 이 방식을 최초로 이용했습니다. 당연히도 이런 기술의 전달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옵니다. 석유의 대량공급으로 인해 산업화가 비약적으로 발전합니다. 이것이 곧 대량 생산 사회를 만들어 낸 첫걸음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기술은 왜 중동을 곤란하게 만들었을까요. 그것은 석유가 잔뜩 매장되어 있는 중동이 전 세계의 관심, 혹은 강대국의 관심을 독점한 탓입니다. 두 번째로 살펴본 제도는 환관제도였습니다. 환관이 중국사에 처음 나타난 시기는 적어도 서기 2500년 이전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고 합니다. 수나라 이후 중국 역사는 환관을 빼놓고는 설명이 되지 않을 정도로 환관의 역할이 커졌습니다. 황제와 사대부가 권력 갈등을 빚게 되면 황제가 자신의 측근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환관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따라서 비약해서 말하면 중국사를 은밀하게 지배했던 관료집단을 환관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보통의 생각처럼 환관이 꼭 나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들이 부패했던 집단이었던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중국 고대사의 환관 구자량이라는 자가 휘하의 환관들에게 말한 ‘군주를 조종하는 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천자를 한가하게 해서는 안 된다.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천자가 다른 일을 생각할 여유를 주지 말아야 한다. 독서를 즐기거나 유가(공부하는사람)들을 가까이하게 해서도 안 된다. 만약에 황제가 역사를 알고 우려하고 있다면 우리들은 멀어져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처럼 환관제도는 과대한 힘을 가진 관료집단의 부패가 역사를 어떻게 바꾸는지 생각해 볼 수 있게 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관료집단을 생각하게 합니다.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권력에 편승하는 관료집단의 존재가 우리나라를 얼마나 병들게 하고 있는지 씁쓸해지는 대목입니다. 이외에도 중국은 여러 훌륭한 제도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국가 차원에서 토지를 정비하여 적절한 토지제도를 도입하고 조세를 위해 보다 더 정확한 통계체계를 쌓는 한편 보다 더 효과적인 조세제도를 도입시켰지요. 경제부분에서도 여러 국가적 차원의 통제를 통해 국가 경제가 보다 더 흥할 수 있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여러 문제를 가져온 수나라의 운하 건설 역시 후에 당나라의 경제 통합에 큰 도움을 주기도 했지요. 물론 이런 훌륭한 역사를 가진 대국 중국에도 많은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부패한 관료집단과 정치적인 문제들이 바로 그것이지요. 아마도 다음 강의부터 우리가 배울 한국의 흥망에도 바로 이러한 문제들이 가득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하루빨리 우리의 나라살림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기를 희망하며 이만 글을 마치겠습니다. [예산전문가와 함께하는 나라살림 흥망사] 1강 고대문명의 흥망은 어떻게 달랐을까. 다시보기(클릭) >> [예산전문가와 함께하는 나라살림 흥망사] 2강 세계 제국의 흥망은 어떤 비밀이 있을까? 다시보기(클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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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권의 독서클럽 – 혼자 읽기 어려운 책 함께 읽기 2 <위기의 국가> | [김만권의 독서클럽-위기의 국가]1부 국가의 위기 | 박윤채영 | 2015.5.14 | |
<위기의 국가> 1부. 국가의 위기
위기의 국가는 보르도니와 바우만의 대담이 담긴 책입니다. 때문에 같은 것에 대해 다르게 해석하고 판단합니다. 두 학자의 입장을 그대로 정리해서 옮겨보겠습니다.
1)위기의 정의 위기Crisis 는 그리스어 κρίση에서 나온 말입니다.
보르도니 Carlo Bordoni 보르도니는 이 단어에 대해 “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에 따르면 ‘판단’, ‘재판 결과’, ‘전환점’, ‘선택’, ‘결정’등의 의미를 갖고 있다.”는 점과 여기에서 ‘판단 기준’ 등을 뜻하는 ‘크라이티어리언critierion'과 ‘판단에 적합한’, ‘매우 중요한’ 등을 뜻하는 ‘크리티컬critical'이 파생되었다는 것을 설명하면서 위기가 가진 ’전환‘, ’결정‘, ’판단‘, ’선택‘의 의미에 주목합니다. 전과 다른 상태로 바뀌어야 하는 때 또는 바뀐 결과가 위기의 진짜 의미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지금 날 위기는 주로 경제 분야에 침체가 일어났을 때로 표현하는 데에 쓰이고 있습니다. 보르도니는 이것이 모든 문제의 원인을 ’위기‘탓으로 돌리고 있는 거라고 봅니다. 이것을 통해 개인들은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명분을 갖습니다. ’세월호 문제를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가 경제 위기를 극복해야 합니다.‘ 라는 말이 실 예가 아닐까 싶습니다. ‘위기’라는 단어는 ‘국면’이나 ‘공황’과 같은 단어를 대체하게 되었습니다. 보르도니는 ‘국면’이란 ‘새로운 번영의 단계로 가는 과도기’를 뜻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비교적 단기적이며 극복해야 할 것보다는 재충전의 시기입니다. ‘공황’은 국면보다 장기간적인 침체로 회복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케인스의 이론으로 극복될 수 있었습니다. 확실히 지금의 위기는 그동안의 것들과 다릅니다. ‘국면’보다 장기적이며 ‘공황’ 때처럼 이론과 정책으로 통제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금융 중심 경제에서는 새로운 가치가 창출되거나 투자가 발생하기 보단 ‘자본의 이동’으로 돈을 확장하기 때문입니다. 경제가 어려워지니 소비는 줄고 새로운 투자가 없으니 줄어든 소비로 인한 손실을 보상하려 기업은 값을 올리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편에선 아직 위기를 절감하지 않은 사람들이 위기가 내게 닥치기 전에 있을 때 즐기자! 는 마인드로 소비하는 일명 ‘타이타닉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인간의 노동만이 새로운 가치 또는 부를 창조한다.” -칼 마르크스-
현재의 위기의 특징은 ‘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 있다’는 것입니다. 보르도니는 우리가 위기를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특히 ‘공포’에 압도되지 말고 파도를 타듯, 위기를 살아가는 데 익숙해져야 합니다.
바우만Zygmunt Bauman 바우만은 ‘위기’의 의미 중 사태가 어떻게 진행될지 모른다는 ‘무지와 불확실성’에 주목합니다. 위기란 ‘진단과 동시에 행동이 필요하다는 뜻’인데 이것은 원하는 방향으로 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결정하여 행동해야 한다는 모순을 갖습니다. 현재의 위기는 이 어원으로 되돌아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는 것이 바우만의 진단입니다. 즉, 선택한다고 원하는 대로 될 가능성이 별로 없는 위기라는 거죠. 그리고 그 원인을 ‘정치와 권력의 분리’로 보고 있습니다. 과거 공황 때만 해도 사람들은 의지할 대상이 있었습니다. 바로 ‘국가’입니다. 그때의 국가는 ‘사태를 자기 의지와 일치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강한 국가’였습니다. 결정하고 행동하고 그 결과가 원하는 대로 되도록 강제할 수 있는 힘을 가졌었다는 거죠. ‘결정하는 것’이 정치이며 ‘결정이 진행되도록 일을 처리하는 능력’이 권력입니다. 1970년대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국가는 국민들에게 해주어야 할 역할을 해주지 못했습니다. 보편적 복지는 국가의 재원 낭비로 여겨지게 되었고 경제 발전을 위해 개인이 그 책임을 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가 시작되면서 교육, 보험, 교통, 안전과 같은 국가의 역할은 시장에게 넘어갔습니다. 개인들은 이제 국가의 역할을 시장에서 구매하는 소비자가 됩니다. 지구화로 인해 이제 시장은 지구적 차원으로 거래됩니다. 초국가적 기업들은 국경을 넘어서 세력을 키우고 확장하고 있습니다. 시장이 국가의 역할을 대신하면서 빠져버린 국가의 역할은 여전히 비어 있습니다. ‘공위기’상태입니다. 이제 시장은 국가가 관리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국가는 그것을 관리할 수단도, 자원도 갖고 있지 못합니다. 국가에게 남은 것은 정치뿐인데 결정을 해도 실행 할 능력이 없습니다. 국가는 자신의 위기를 치료할 능력이 없습니다. 남은 정치의 능력을 끌어올려 ‘주체의 부재’를 채우는 것. 이것이 지금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2)국가 없는 국가주의 국가의 역할에 지구적 세력들이 개입되면서 각 국가들은 상호의존성이 높아졌습니다.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문제가 전염되는 것이지요. 그것들은 한 국가 차원에서 해결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의 2차적 문제해결 기구 거버넌스들이 많이 생겼지요. WTO, EU 같은 것들이요. 이제 국가의 의미는 달라졌습니다.
보르도니 전지구적 차원의 문제해결 기구들이 생기면서 지구적 기구들이 국내에 개입하기도 하고 지구적 차원으로 발생 된 것들을 지역적(국내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일들이 생겨납니다. 문제의 발생 원인과 해결이 분리되어 진행되는 것이지요. 한편 지구적 세력들은 문제를 통제하고 원하는 대로 풀어나갈 권력을 가졌지만 지역 정치는 권력을 빼앗겼기 때문에 지구적 세력들의 권력에 종속되었습니다. 지역의(국내의) 법을 따를 필요 없는 지구적 세력들이 원하는 바를 결정하면 국가는 해결해내야 합니다. 이것을 바우만은 ‘현대도시가 거대한 쓰레기통’이 되었다고 표현했습니다. 국가와 시민들의 관계가 변화하고 허술해지자 그 부분을 거버넌스가 채우게 됩니다. EU가 그 대표사례입니다. 그러나 거버넌스에는 민족 국가에 있는 ‘집단적 동일화 요소’가 없습니다. 때문에 시민들은 공동체에 대한 욕구를 정부가 아닌 다른 데서 해소하려고 방법을 찾게 됩니다. 정치의 혼란과 문제 해법들의 혼란이 반정치 감정을 키우게 되고, 이것이 공동체 참여 욕구와 결합하게 되면 전체주의나 민족주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국가는 역할을 시장에 넘겼습니다. 국가의 정치와 권력의 분리는 국가가 책임을 다 하지 않게 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위기의 국가는 공공복지를 제공하고 보장하는 기구가 아니라 시민에 빌붙어서 오로지 스스로의 생존에만 신경 쓰는 기생충이 됩니다. 시민들은 개인으로 생존하기 위해 점점 시장에 기댈 수밖에 없습니다. 바우만 현재의 정부에서는 서로 의사결정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중의 구속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뽑는 유권자로부터의 압력과 지구적 세력들의 압력이 그것들입니다. 그래서 정부들은 자꾸, 중요한 사항일수록, 결정을 질질 끕니다. ‘민주주의의 본질적 특징은 인민이 주기적 선택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점’인데 이것은 영토 내 주권 보장을 우선으로 한 베스트팔렌 모델에서는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지구적 세력들의 영향을 받는 지금 시민의 선택의 영향력은 축소되었습니다. 국가가 지구적 세력들에게 역할을 떠넘길수록 시민이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은 작아집니다. 시민들의 정부에 대한 신뢰 또한 작아졌습니다.
“정부는 위기의 피해자 중 하나이다. 그리고 각 정부가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취하는 조치가 모든 것을 더 불안정하게 만든다.” -존 그레이
현재의 위기는 주체의 위기이며 영토적 주권의 위기입니다. 국가가 정치와 권력을 다 갖고 있었던 시절의 방식으로는 현재의 위기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지구적인 문제를 지역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지금, 권력을 상실한 국가는 혼자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 시민들은 국가에게 해결을 기대하지 않게 됐으며 새로운 집단행동의 수단들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광장에서, 공원에서 말입니다. 독일의 사회심리학자 하랄트 벤처는 이 현상의 근본적 원인들을 대중들의 인식의 발전에서 찾고 있습니다.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오늘날 분노가 우리들 안에 존재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것을 털어내려면 광장으로 공론장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 바우만의 의견입니다. 그리고 EU는 또 다른 하나의 실험입니다. 지구적 차원에 지역을 만들어 분열된 원인과 해결을 합치시키려는 실험이지요. 바우만은 쿳시의 질문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전달합니다.
“삶이 왜 경주에 비유되어야만 하는가, 혹은 국민경제들이 건강을 위해 사이좋게 조깅하지 않고 어째서 서로 앞 다투며 달려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분명 신은 시장을 만들지 않았다. 왜 세계는 부지런히 협력하는 벌집이나 개미집이 아니라 검투사끼리 죽고 죽이는 원형경기장이어야만 하는가?” <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
3)국가와 민족
보르도니 지구적 차원으로 세계가 움직이면서 국가의 경계와 민족의 구분의 의미가 모호해졌습니다. 절대적 주권은 이제 지구적 세력보다 약한 것이 되었습니다. 베스트팔렌 모델에서 국경은 물리적인 것과 동시에 정치, 법, 경제적인 것으로 힘과 관계들의 균형을 유지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균형은 깨졌습니다. 정치, 경제는 지구적 세력들의 영향을 받게 되고 그들은 법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정보의 확장은 민족 정체성, 문화 정체성을 파열시킵니다. 그것을 유지하려 할수록 지금의 세계에서 도태됩니다. 정부는 자기 마음대로 시민들을 통제할 수 없게 됐습니다. 잃어버린 권력을 찾기 위해 정부들은 경제적 동맹을 모색해왔습니다. 시장이요. 정부는 시장과 손을 잡고 국가로써의 권력과는 전략적인 이별을 합니다. 권력과 정치는 다른 차원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현재의 권력과 정치의 분열은 전략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국내 정치의 묵인이 없다면 초국적 권력들의 임무 수행도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게 초국적인 경제 권력에 의존하는 정부가 되었습니다. 정부의 대응 방식의 이면에는 신자유주의 철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철학은 본질적으로 실용적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는 초국가적인 이동의 자유를 허용하되 원래 국가의 책임을 대부분 사적 부문으로 넘겼습니다.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통치하는 새로운 지배 형태. 이것이 바로 국가 없는 국가주의입니다.
바우만 주권의 의미는 ‘선택의 특권’입니다. 법을 일시 정지 시키고 법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제할 수 있는, 예외를 둘 수 있는 능력입니다. 지금의 국가전략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는 것 같습니다. 울리히 벡은 독일의 메르켈 총리의 정치 전략을 일컬어 ‘메르키아벨리즘’이라고 했습니다. “메르키아벨리의 권력은 조심스러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는 욕구에 기초하고 있다. (...) 강제 수단으로서의 주저함. 이것이 바로 메르키아벨리의 방법이다. 그것은 회수하고 유예하고 신용을 거부하겠다는 협박이다.” 자신의 의도를 직접적으로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협박을 통한 통제가 신 국가전략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략이 나올 수 있는 이유는 과거에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에 있던 상호 의존 관계에서 한 쪽이 일방적으로 깨졌기 때문입니다. 이제 의존 관계는 언제든 바꿀 수 있습니다. 국내 인건비가 비싸면 인건비가 싼 국외로 가면 되는 거지요. 이 국가와의 거래가 마음에 안 들면 다른 국가와 협상하면 되고요. 때문에 ‘양호한 상태에 있게 할 필요성은 자본에게 더 이상 ’경제적 의미‘가 없습니다.’ 의존관계의 붕괴는 경쟁, 이기주의, 사회 분열, 불평등을 촉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확실성, 불안, 두려움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전략에는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있습니다. 관계자들이 완전히 자격을 잃게 되는 수준까지 이르러서도 안 되며 모두 협상 테이블에 있도록 붙잡아야 합니다. 어쨌든 함께 지내야 합니다. 일방적인 협박은 오래 지속될 수 없습니다.
4)홉스와 리바이어던 근대국가는 리바이어던이었습니다.
보르도니 리바이어던은 본래 성서적 전통에서 몸체가 수많은 인간들로 이루어진 괴물입니다. 홉스는 근대국가를 전체의 규칙성이 머리에 의해 보장되고 각 개인은 그 안에서 전체의 생명 유지를 위해 임무를 수행하는 리바이어던이라 일컬었습니다. 주권자는 전체의 행위를 결정하고 안정을 유지하려 노력합니다. 각 구성원들은 주권자에게 행위 결정권을 위임하며 주권자는 개인들을 대신해 혼란에 대한 해법을 고민하고 결정하고 실행합니다. 개인보다는 전체의 통일성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 근대국가, 리바이어던입니다. 그러나 근대국가는 사회적 차별을 먹고 삽니다. 전체의 통일을 위해 이질적인 것들은 배제되고 삭제되어야 하는 존재가 됩니다. 현대의 대의민주주의는 그와 다릅니다. 주권자의 결정에 대해 고민 없이 따르는 것이 아니라 다수가 주권자를 뽑고, 주권을 위임합니다. 대표집단 또한 이질적인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어 국가의 동일성을 규정하기 어렵습니다. 각기 다른 의견들이 합쳐진 것이 국가입니다. 주권자의 권위는 아래에서부터 주어지며 위임은 절대적이고 원칙은 권력에 따라 변하지 않습니다.
바우만 근대 국가의 핵심 역할은 질서 유지였습니다. ‘베헤모스’라는 인간의 무질서한 본성을 리바이어던이 통제하는 것입니다. 통제와 질서 유지에 실패하면 국가는 실패한 국가가 되는데, 이것 외에는 어떤 경우에도 국가는 실패하지 않습니다. ‘질서’가 유일한 국가의 평가 기준이 됩니다. 국가는 질서 유지를 위해 감시와 통제의 방법으로 벌을 주고 권력을 행사하는 하드 파워를 사용합니다. 판옵티콘과 같은 수용소도 그 방법의 하나입니다. 오늘날의 국가가 사용하는 힘은 다릅니다. 자발적 감시와 복종, 질서 유지를 유도하는 소프트 파워가 현대 국가의 방식입니다. 시민을 통제하려 한다는 점에서 근대 국가와 다름없습니다만 시민이 자신이 통제와 감시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점에서 매우 다릅니다. 신자유주의의 기술의 발달은 개인들의 정보 수집을 용이하게 해주었습니다. SNS와 같은 수단은 시민들의 고해성사를 공개해줍니다. 개인들이 부각되면서 과거에는 위협과 삭제의 대상이었던 개성, 다원성이 훌륭한 것으로 평가 받고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요소로 여겨집니다. 국가의 역할도 바뀌었습니다. 노동과 자본을 연결시켜주는 것이 주 역할이었던 국가의 기능은 이제 시장과 소비자를 연결시켜주는 주선자가 되었습니다. 국가는 자본가의 투자를 유도하고, 소비자의 소비를 유도하면서 시장에 국가의 책임을 상품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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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권의 독서클럽 – 혼자 읽기 어려운 책 함께 읽기 2 <위기의 국가> | [김만권의 독서클럽-위기의국가] 제1강 지구화의 조건과 국가 | rohsawook | 2015.5.7 | |
4월 30일, 김만권의 독서클럽-혼자 읽기 어려운 책 함께 읽기2<위기의 국가> 수업이 시작됐습니다. 본격적인 수업 시작에 앞서 강좌에 대한 의견들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1)강좌에 대한 기대와 신청동기는, 많은 분들께서 그 전에 들었던 김만권 선생님 수업에 대한 높은 만족도와 선생님에 대한 신뢰로 이 수업을 이어 수강하시는 분들이 가장 많았습니다. 또한 강좌에서 다룰 사회학자인 ‘바우만’에 대한 관심이 동기가 되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2) 국가에 대해 평소 가지고 있던 질문은 무엇인지 또한 나누어보았는데요, 국가의 의미 그리고 정체성은 무엇인가, 국가와 시민의 관계, 국가의 필요성, 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 우리는 언제까지 국가 권력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가 등의 생각들이었습니다. 우리가 나누어 본 국가에 대한 질문들이 4주간의 <위기의 국가> 수업이 진행되는 과정에 서서히 답을 찾아가길 바라봅니다.
세계적인 석학 지그문트 바우만(오른쪽)과 이탈리아 사회학자 카를로 보르도니. 바우만과 보르도니의 “위기의 국가”를 본격적으로 읽기 위해, 1강에서는 지구화에 입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바우만은 ‘액체근대(liquid modernity)’ 개념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 개념은 그 전에 얘기하던 근대성과는 조금 다른 개념의 근대성인데, 본래 ‘modernity’ 개념은 전통과의 단절, 합리화, 신과 봉건주의에서 탈피한 이성과 자본주의를 의미하며 그 개념이 매우 명확합니다. ‘liquid modernity’는 ‘globality’와 관련 있는 개념인데, globality는 상호의존성이 높다는 것 이외에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입니다.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는 것이죠. 누구에겐 기회가 되고 또 누구에겐 위기가 되는데, 선명하지 않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경계가 움직이고 있다’ 즉 ‘액체근대’ 개념과 연관이 있습니다. 바우만은 globality의 예시를 이렇게 들었습니다. 1) 보호망을 스스로 거부한 사람들 2) 사람들이 알아서 ‘걸어나가게’ 만드는 것(위기의 국가의 표지 그림이 나타내는 바입니다) 3)국가가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 것. 바우만은 이 책에서 보통 ‘베스트팔렌모델’이라 부르는 것을 ‘포스트 베스트팔렌’ 모델로 칭하였기 때문에, 책을 읽으실 때 포스트베스트팔렌 모델을 베스트팔렌 모델로 바꾸어 생각하시면 이해하기에 더 도움이 될 것입니다. <위기의 국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구화’의 프로세스를 알아야 합니다. 지구화란, “기술 혁신에 기반하여 기존의 민족국가의 틀을 넘어서 정치, 사회, 경제, 문화, 환경 등 인간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빠른 속도로, 그리고 대규모로 행해지고 심화되고 있는 상호의존성의 과정입니다. 지구화란 ‘기술 혁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느끼는 ‘경제’ 영역에서의 지구화 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영역을 나누어 사고해야 탈출구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는 지구성(globality)의 조건이 민족국가를 벗어나는 것이라는 것만 이해할 뿐 그 실체가 정확하게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지구화는 정치, 경제, 문화 등의 각 영역에서 각 영역마다의 특징을 가지면서도 서로 얽혀서 진행되고 있는 다면적 현상입니다. 경제적으로는 새로운 글로벌 거버넌스 체제가 등장하고(WTO, IMF, WB 등) 초국가적 기업이 등장하여 전세계 200대 초국가기업의 생산량이 세계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바우만이 액체근대 개념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경계(고체)가 사라지는 듯한 느낌입니다. 정치적으로는 세 가지 형태가 드러납니다-국가 위로 권력이 분산되는 것(대표적으로 EU), 국가가 권력을 쥐고 있는 것, 국가 밑으로 권력이 분산되는 것(대도시 연합). 문화적으로는 하이브리디제이션(모든 문화들이 하나로 섞여드는 현상), 글로컬리제이션, 다문화주의, 문화적 국제주의, 문명의 충돌 등의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렇게 정치, 경제, 문화적 양상이 모두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이 현상을 너무나도 적절하게 표현한 “liquid mdernity”에 더 열광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지구화가 진행되면서 정치가 시장에 종속되고, 그래서 권력이 시장으로 이동하여, 권력 없는 정치의 모습이 나타나며, 국가(보호) 없는 국가주의의 형태가 되는 문제들이 발생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제는 다시 정치의 통제 아래 위치할 수 있을까요? 다시 정치가 권력을 찾아올 수 있을까요? 바우만도 과연 그것이 진짜 가능할지, 의문을 가집니다. ‘공위기’라는 것이죠.
‘베스트팔렌 모델’은 지구화라는 현상이 현저해지기 이전의 세계질서를 묘사하는 모델로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의 국민국가 중심의 세계질서, 즉 ‘국가주권’의 절대성을 보장한 체제입니다. 우리에겐 포스트 베스트팔리아, 네오 베스트팔리아의 두 가지 옵션이 있습니다. 과연, 국가는 정말 시장에 손을 든 걸까요, 아니면 혹시 편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는 걸까요? 국가가 정말 약화된 걸까요, 혹시 더 강한 국가가 뒤에서 조정하는 건 아닐까요?
바우만과 보르도니가 그려내는 세계는 ‘디스토픽 포스트 베스트팔리아’, 즉 근대의 견고한 벽이 액체화되어가는 가운데 국가가 권력을 잃었으나, 새로이 원했던 권력은 형성되지 않아 그 권력의 상실이 오히려 개인의 위기를 낳은 상황, 바로 공위기(interregnum)입니다. 바우만은, 이제 더 이상 국가는 우릴 보호해 줄 생각이 없다고 얘기합니다. 개인이 알아서 할 일 이라고 말이죠, 그리고 또한 개인도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이번 시간은 <위기의 국가>를 읽기 위한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 보았습니다. 다음 시간에 본격적으로 1장에 들어가기에 앞서, 홉스에 대해 이야기해주셨습니다. 홉스는 ‘국가의 의무는 구성원의 보호’라고 얘기했습니다. 그 유명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뜻은 ‘각자가 각자의 해석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해석의 다름이 혼란을 만들기 때문에, 그에 대한 질서를 만드는 것이 국가입니다. 개인들은 나의 해석을 버림으로써 보호를 보장받고, 국가는 보호를 해줌으로써 해석의 권위를 가집니다, 즉 판단과 폭력을 독점하는 것입니다.
첫 시간, <위기의 국가>를 위한 큰 그림을 듣고 나니 앞으로의 수업들이 더욱 기대되네요. 선생님 말씀처럼, 이해되는 부분을 중심으로 읽어가며 각자의 해석을 만들면서 우리가 가장 처음에 나누어 보았던 ‘국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어느정도의 답들을 찾아가는 과정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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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권의 정치철학 - 고전으로 이해하는 정치사상 <당대편> | [김만권의 정치철학 당대편]자크랑시에르, 민주주의는 왜 증오의 대상인가 | 박윤채영 | 2015.5.6 | |
지난 수업(4월16일), 세월호 1주년 추모식을 앞에 두고 저희는 참여연대 강의실에 않아 ‘호모 사케르’를 배웠습니다. ‘재물로 바칠 수도 없고 누가 죽여도 괜찮은 존재’. 주권을 통해 ‘고립’과 ‘피해’가 정당화 된 존재들. 세월호 유가족들이 그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랬습니다. 나의 부모님이 그러했고 내가 그러했습니다. 아감벤은 우리에게 주권 권력이 무엇을 배제하면서 자신의 힘을 키우는지 알아채야 한다는 조언은 주었지만 호모 사케르로써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일주일간 광화문과 시청에선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모두 또 한 번 큰 실망과 좌절을 했고 그래서인지 강의실의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김만권 선생님도 힘든 일주일이셨는지 회의감에 절은 눈빛으로 강의를 시작하셨습니다.
자르 랑시에르 <민주주의는 왜 증오의 대상인가> 주제가 낯설었습니다. ‘민주주의가 증오의 대상이 된다.’니. 저는 민주주의를 한 번도 의심하지 않고 ‘좋은 체제’로만 여겨왔기 때문입니다. 어른들도, 학교에서도, 정치권에서도 ‘민주주의를 침해’하는 것들로부터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고만 했지 ‘이게 다 민주주의 때문’이라고 증오를 표현하는 것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민주주의가 공공 영역을 확대하고 모든 존재의 동등한 발언권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숨겨져 있던 존재들의 발언이 사회로 표출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들을 ‘사회 혼란을 야기한다.’며 비난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그들이 바로 민주주의 혐오자들입니다. 민주주의 혐오자들은 민주주의를 ‘이기적 개인들이 삶의 모든 에너지를 개인적 만족을 추구하는 쪽으로 돌리는 형태’로 봅니다. 국가 전체, 공동체 전체의 이익보다 개인의 행복과 이익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자들이라는 것이죠. ‘민주적 인간=이기적 개인+탐욕적 소비자’로 공동재산의 구축을 방해하는 자들로 여깁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를 다원성에 대한 증오로 이해하니 많은 사람들이 떠오르더군요. LGBT퍼레이드에 진입하여 주기도문을 외우는 보수단체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가운 시선, 사업이 되어버리는 다문화 가정. 집회를 공권력에 대한 위협이라며 비난하는 사람들... 민주주의에 대한 혐오에는 정치의 엘리트주의도 섞여 있습니다. 플라톤의 ‘철인 정치’가 그들의 입장의 대표격이지 않나 싶습니다. 통치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는 것이지요. 플라톤은 정치인의 자격을 ‘통치행위를 갈망하지 않는 자’라고 했습니다. 바로 ‘철인 정치’이지요. 통치는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권력으로 신에게 직접 부여받거나 추첨이라는 행운으로 부여받을 수 있는데 그 추첨이 바로 민주주의의 투표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플라톤의 철인 정치에는 딜레마가 있습니다. 정치인이 정치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철인은 현실 세계에서 이상 세계를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는 사실 현실에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가 정치의 임무를 부여 받았을 때, 그는 ‘연민’으로 시민을 통치하게 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정치는 특별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권력인 것 같습니다. 정치인들이 지닌 스펙과 재산의 크기를 보면 그러합니다. 선거 기간 길거리는 ‘학벌’과 ‘직위’, 그리고 ‘군대’가 적힌 현수막과 명함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정치인’이라는 자격을 갖게 되는 동시에 얻는 특권과 이득들을 보면 그러합니다. 정치란 무엇일까요? 플라톤의 말처럼 연민을 가진 철인의 통치인 걸까요? ‘우리 지역’의 활성화일까요? 랑시에르는 정치란 권력을 가진 이들의 이득을 위해서, 먹고 사는 것이 일단 중요해서 다음에 해결 되어야 할 문제로 미뤄진 존재들을 겉으로 꺼내서 사회가 그들을 감각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합니다. 감각된다는 것은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여 지고 그 소리가 들리고 그에게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그 존재를 ‘감각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감각’되는 방법은 사회의 질서로부터 그 존재들을 불일치시키는 것입니다. 불일치란 ‘몫이 없는 자들’이 다수의 말에 따르는 것을 멈추고 ‘나를 위한 분배를 해 달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합의된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권리를 주장하는 일로 사회 안정을 통해 이득을 보는 자들이 매우 두려워하는 일이지요. 불일치 작업은 매우 조용하게, 은밀하게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노동자들이 밤에 다음 날의 노동을 위해서 잠을 자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권리를 위해서 모여 학습을 하는 것이 그 예이지요. 학습은 노동자들의 내면에 불일치를 만들어 낼 것이고 그 혼란이 사회로 표출되었을 때 정치적 불일치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혼란이 랑시에르가 생각하는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는 헌정의 한 형태도 아니며 사회의 한 형태도 아니다. 인민의 권력이란 사회 구성원 전체의 권력이 아니며 다수의 권력도, 노동계급의 권력도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통치 받을 자격만큼이나 통치할 자격을 가지지 못한 자들(데모스: 자신의 몫을 가지지 못한 자들로서 기존의 나눔의 경계에 의문을 제기하는 자들)의 고유한 권력인 것이다.“
정치의 역할은 공공 영역에 배제된 자들의 자리를 만들고 그들을 지지하는 것이며 배제된 자들을 감각하려는 노력이 정치인들이 해야 할 노력입니다. 경제 성장이 정치의 목표가 되어선 안 됩니다. 그러나 마냥 정치인들이 바른 정치를 하기를 기대하고 기다려서는 안 됩니다. 투표라는 형식에 기대도 안 됩니다. 민주주의는 제도도 아니며 정치 방법도, 사회 형태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랑시에르는 민주주의는 가지지 못한 자들의 권력 그 자체이며 데모스의 권력을 포기하는 것은 정치 자체를 포기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어쩌면 정치인들이 정치를 포기한다면 데모스들이 정치하면 된다는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민주주의는 자신만이 보유하는 고유하며 항구적인 행위에만 자신의 운명을 맡기고 있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모습은 철학의 힘을 사용하는 데에 익숙한 자들에게 충분한 공포감과 증오감을 자극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어느 누구와도 공평하게 권력을 나눠 가질 수 있는 사람들에겐 민주주의는 용기와 기쁨을 선사한다.”
‘항구적인 행위’가 민주주의의 운명을 만든다고 합니다. 계속, 움직이라는 말이겠지요. 7강을 통해 만난 철학자들이 똑같이 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해라, 계속 해라. 지식인이, 정치인이 대신 해주길 바라지 마라. 직접 해라.” 덧붙여 ‘같이 하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혼자 고립되고 소외된 것이 아니라 너와 같은 이들이 분명히, 도처에 있으니 그들을 찾아서 함께 민주주의를 가지라고 말입니다. 김만권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은폐를 거부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요. 그 누구의 권력에도 자신의 자유를 팔지 않는 것. 한 존재도 무시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혼란이 아니라 ‘고요’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끝으로 김만권 선생님이 눈물로 수업을 끝내게 했던 시 중 한 편을 소개하겠습니다. "아빠는 그럼 사랑을 기억하려고 시를 쓴 거야?/어두워서 불을 켜려고 썼지./시가 불이야? 아빠가 사랑하는 나라가 보여?/등불이 있으니까./그래도 멀어서 안 보이는데? 당신이 들고 계신 등불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들고 있는 등불은 무엇일까요..??? 대화(對話) 아빠, 무섭지 않아? 등불이 자꾸 꺼졌지. ―아빠, 갔다가 꼭 돌아와요. 아빠가 찾던 것은 아마 없을지도 몰라. 그렇지만 꼭 찾아 보세요. 그래서 아빠, 더 이상 헤매지 마세요. ―밤새 내리던 눈이 드디어 그쳤다. 나는 다시 길을 떠난다. 오래 전 고국을 떠난 이후 쌓이고 쌓인 눈으로 내 발자국 하나도 식별할 수 없는 천지지만 맹물이 되어 쓰러지기 전에 일어나 길을 떠난다.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문학과지성사, 19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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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전문가와 함께하는 나라살림 흥망사 - 국가와 문명의 흥망성쇠, 나라살림의 비밀 | [예산전문가와 함께하는 나라살림 흥망사] 3강 서양이 흥망을 선점하게 된 이유 | 아비 | 2015.5.4 | |
서양이 흥망을 선점하게 된 이유
이번 시간에는 조금 더 현대로 넘어와서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나 영국, 미국 같은 나라들이 어떻게 강대국이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몇몇 동영상들을 통해서 수업 내용에 대한 흥미도 더해지며 역시나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강의는 대법관님의 강연 덕분에 참여연대 지하 1층에서 진행하게 되었는데 강의 듣기에는 꽤 괜찮은 공간이었습니다. 또 김밥을 제공해주신 회원님 덕분에 허기를 잊으며 수업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서양이 왜 흥할 수 있었느냐에 대한 대표적인 두 주장에 대해서 우리는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는 장기고착 이론으로 원래부터 서양이 동양을 이길 수 있는 제도나 철학을 가졌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단기 우연이론으로 동 서양 둘 다 성장의 한계에 봉착했었는데 서양이 석탄 자원에 대한 접근의 용이성 등의 행운으로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어느 한 쪽 이론만 맞는 것이 아니라 둘 다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배웠습니다. 이탈리아의 경우 로마 몰락 이후 11세기 들어 몇몇 도시들이 상당히 발전하게 되었는데요. 그 원동력에는 동방 무역을 이용할 수 있는 지리적인 이점이 작용했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도시가 베네치아인데 베네치아는 한 때 지중해 전역에 세력을 떨쳤던 해상공화국의 요지로 우리 모두 물로 이루어진 아름답고 낭만적인 도시로 알고 있을 겁니다. 이 도시는 물의 도시답게 적들의 접근을 막기 용이했으며 비록 비잔틴 제국에 귀속되었고 이후 나폴레옹에게 정복되었지만 무려 1천년 가까이 도시국가로 이름을 떨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에는 단순한 무역이 아니라 잘 짜여진 제도가 한몫 했다고 합니다. 먼저 공화국의 형태를 가지고 전쟁 시에도 용병에게만 의존하지 않았으며 사회 인구를 정확히 조사하는 관리 시스템을 가졌는데요. 이 체계적인 인명 관리 제도를 통해 행정 군역 등의 조세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이루어졌는지 가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신뢰할만한 자료를 통해 공정한 경쟁을 가능케 했으며 여러 가지 선진적인 경제구조를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현재에 볼 수 있는 계좌이체, 어음 발행 등의 요소뿐만 아니라 해상보험도 있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복식 부기제도를 통해 투명하게 행정을 수행했고 사회적 부조리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잠깐 당시의 베네치아 근처에 있던 제노바를 살펴보면 독특한 사실을 하나 알 수 있었는데 제노바는 복권으로 정치인을 뽑았다고 합니다. 복권은 여러 가지 의미로 사회 경제적으로 유용한 면을 보이는데 여기에 착안하여 90명의 정치인 중에 5명의 상원의원을 로또를 통해 정했습니다. 로또는 재정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주는데 이러한 의미의 복권 설계는 그 이름도 유명한 카사노바가 담당했다고 합니다. 다음으로는 기후변화와 바이킹의 흥망을 간단히 알아봤습니다. 바이킹은 유럽 사회 곳곳으로 진출하며 약탈을 일삼았는데 이들의 진출 목적은 약탈 뿐만 아니라 이주에도 있었습니다. 소빙하기가 끝나면서 바이킹의 인구가 급속히 늘어나며 유럽 곳곳으로 진출했는데요. 이러한 진출을 통해 세계 여러 곳에 식민지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200년 경에 찾아온 소빙하기는 그린란드에 살던 바이킹을 멸종시키게 됩니다. 그 옆에 아이슬란드 역시 소수의 인원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듯 기후변화가 가져오는 영향은 인간의 삶에 크게 영향을 줍니다. 이에 대한 대처와 정책도 한 나라나 민족에 굉장히 중요한 일임에 틀림 없을 것입니다. 그 다음 살펴 본 유대인은 여러분도 알다시피 여러 가지 전세계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민족임에 틀림없습니다. 가장 크게는 나치로부터 당한 인종적 차별이 있을텐데요. 사실 유대인이라는 관념은 종교적인 기준이었지 혈연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나치는 인종적인 유대인을 기준으로 학살을 일삼았기에 이스라엘 역시 정치적 이유로 이러한 기준을 사용하여 정착된 것입니다. 두 번 째 커다란 문제는 팔레스타인 땅으로의 이주인데 이는 그들이 세운 신화로부터 비롯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그 땅에서 쫓겨난 것이 아니라 멸망한 것이며 유대인의 민족의식은 멸망이후에나 생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신화와 세계 곳곳에 뻗은 유대 자본의 힘으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강대국이 될 수 있었습니다. 포르투칼은 한때 해상 강대국으로 이름을 날리던 나라였습니다. 여러 관세 정책과 해상보험 제도와 항해할동으로 여러 가지 세계적인 발견들을 해낼 수 있었습니다. 콜럼버스의 경우에는 왕과의 의견차이로 스페인으로 넘어갔습니다. 스페인의 여왕은 나라차원에서 그에게 투자했고 결국 그는 신대륙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두 나라는 살던 사람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제국주의적 조약을 하며 신대륙의 소유권을 얻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덕택에 브라질은 포르투칼의, 나머지 남미의 나라들은 스페인의 영토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이 두 나라는 이렇게 유럽사의 패권을 잡을만한 여건을 가지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이는 무역과 식민지등에서 얻은 부를 국내산업의 발전에 투자하지 않았으며 그것들을 보호하는 제도를 발전시키고 해군력을 강화시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주도한 대항해 시대는 인류 역사에 많은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중심지역이 지중해에서 대양으로 광대한 해외시장과 다량의 염가원료 공급으로 상업혁명, 가격혁명이 발생하였으며 동서양의 만남과 제국주의적 팽창경쟁이 막 시작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시대를 지나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무찌르는 제2의 해상 강대국 영국이 등장하게 됩니다. 영국은 처음에 약탈을 통해서 부를 쌓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무너트리고 해상 최강국으로 이름을 날리게 됩니다. 이후 도전하는 네덜란드 프랑스를 차례로 극복하고 19세기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무려 3세기 동안 국가 차원의 노력으로 세계의 중심이 되었으며 대영제국이라는 이름을 널리 떨치게 됩니다. 네덜란드 역시 해상 무역의 강국으로 유럽의 중심이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들은 선박에 대한 기술혁신을 통해 관세를 줄이고 장기적으로 투자되는 유한회사 형태의 동인도 회사를 설립하여 자본금을 유치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프랑스에 점령당하기 전까지 네덜란드는 신뢰를 중심으로 한 무역업과 해양기술 발전, 동인도회사 등으로 해상 강국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미국에 대해 배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미국은 독립 초기 광대한 서부 개척에 국가적 차원에서 힘을 들였고 해상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국익과 안보 등을 위해 투자하기 시작하여 세계대전 후부터 현재까지도 해양 최강국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자국의 영토에 머무르지 않고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새로운 프런티어를 설정할 수 있는 자리로 올라간 것을 뜻합니다. 미국의 부흥에는 이러한 해양강대국의 위상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 정부는 당시 심화되고 있던 토지 소유 문제를 평등하고 또 효과적으로 해결하여 국가의 생명력을 강하게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링컨의 무상몰수 무상분배라고 할 수 있는 홈스테드 법인데 이를 통해 우리나라 면적에 12배나 되는 땅을 서부개척 농민들에게 평등하게 나누어줬습니다. 미국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하와이입니다. 하와이는 처음에 태평양을 지나는 외국 선박들의 중간 기항지이자 무역의 중심지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는데 미국으로부터 사탕수수 농업 조성을 도움 받으면서 큰 성공을 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미국에 의한 관세 정책과 일 산업 일 국가 형태의 의존, 또한 왕실 국고의 탕진으로 결국 미국에게 합병당하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이번 강의를 통해 여러 나라들의 흥망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강대국이 되는 나라들은 당시에 가장 중요한 사업에 효과적으로 투자했고 또 이로 인해 얻어지는 이익을 효과적으로 사용했습니다. 반면이 몰락했던 나라들은 효과적으로 나라 정책을 가져가지 못하거나 가져가서 부를 축적했음에도 이를 나라 발전을 위해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이렇듯 국가 정책, 또는 나랏돈이라는 것을 어떻게 투자하느냐 또 투자해서 얻은 이익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나라의 흥망이 결정되는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예산전문가와 함께하는 나라살림 흥망사] 1강 고대문명의 흥망은 어떻게 달랐을까. 다시보기(클릭) >> [예산전문가와 함께하는 나라살림 흥망사] 2강 세계 제국의 흥망은 어떤 비밀이 있을까? 다시보기(클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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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전문가와 함께하는 나라살림 흥망사 - 국가와 문명의 흥망성쇠, 나라살림의 비밀 | [예산전문가와 함께하는 나라살림 흥망사] 2강 세계 제국의 흥망은 어떤 비밀이 있을까? | 아비 | 2015.4.27 | |
이번 주에 흥망사 강의는 세계 제국들의 흥망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총 열 분정도 참여해주셨고 정창수 소장님의 여지없이 유쾌하고 밀도 있는 강의 덕분에 저나 다른 분들 모드 정신없이 수업에 몰입했던 것 같습니다. 가면 갈수록 더 많은 것을 깊이 배우게 되는 것 같아서 다음 주 강의는 더더욱 기대 됩니다. [예산전문가와 함께하는 나라살림 흥망사] 1강 고대문명의 흥망은 어떻게 달랐을까. 다시보기(클릭) >> 여러분들은 캐번디시 바나나를 아시나요? 현재 우리들이 먹고 있는 단 한 종의 바나나라고 합니다. 과거 1960년대 미국에 바나나 붐이 일어났을 때 그로미쉘이라는 품종이 맛도 좋고 단단하여 중남미의 흔히 바나나 공화국이라 일컫는 다섯 나라들은 모두 그로미쉘을 키우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바나나에 치명적인 전염병이 퍼지게 되었고 결국 모조리 그로미쉘로 채워진 바나나 생태계는 멸종위기에 이릅니다. 다행히도 캐번디시라는 품종을 개발하여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지만 또 모릅니다. 언제 새로운 전염병이 나타나서 바나나를 멸종으로 이끌지요. 이 이야기와 흥망사 강의에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그 답은 바로 다양성에 있습니다. 바나나의 경우에 종 다양성이 멸종을 만들었다고 한다면 세계 역사에서도 이 다양성이 흥망을 좌지우지 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대부분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거나 무시하는 나라들은 오랫동안 제국을 유지할 수도 제국으로 발전할 수도 없었습니다. 폐쇄적인 순혈 주의가 환경 변화에 취약한 까닭이지요. 미국을 성장시킨 원동력 역시 다양한 인종과 사람들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이번 강의는 바로 이 다양성을 중점으로 흥망을 살펴봤습니다. 가장 먼저 로마 제국을 보면 로마의 경우 포용성과 다양성으로 제국을 유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양한 민족과 나라들에 대한 사회적 통합을 이뤘기 때문에 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한 제국 중 하나로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죠. ‘우리 조상들은 능력 있는 자를 이 도시로 받아들였다. 율리우스 가문 등 지금 원로원 의원들도 대부분 로마 본래 혈통이 아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왜 멸망했는지를 봐라. 로마의 창립자 로물루스가 한 통합을 보라. 정복한 땅의 자유민들에게 공적을 부여하고자 하는 것은 관습이다. 정복당한 자들의 금과 자산을 로마로 가져오게 하자’ 이 말은 로마의 클라우디스 황제가 벨기에 인을 원로원에 받아들일지 말지에 대한 논란이 일어났을 때 한 연설의 일부입니다. 이것을 보면 제국의 지도자가 통합이 가져오는 이득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후에 티베리우스 총독이 과한 수탈을 하는 이들에게 했던 말은 ‘나는 양털을 원하지. 양을 산채로 껍질을 벗기기를 원하지 않는다’ 였습니다. 이런 말 역시 로마의 지도자들이 전략적으로 관용과 포용을 나라의 기조로 채택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포용성을 토대로 로마는 오랜 세기 유럽을 지배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의 경우 이러한 다양성의 효과를 극명하게 볼 수 있는 사례입니다. 아테네의 경우 외국인 거주자를 ‘우리와 함께 사는 사람들’로 봤다면 스파르타의 경우 ‘우리 주변에 사는 사람들’ 로 봤습니다. 또한 시민권에 대한 장벽에서도 두 나라 간에 차이가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그 차이가 스파르타의 몰락을 가져왔죠. 스파르타 전성기의 8천명의 시민이 나중에는 200명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타 국적 시민에 대한 관용과 포용이 이루어졌다면 스파르타는 그렇게 쉽게 몰락하지 않았을 겁니다. 물론 나라의 몰락을 가져오는 요소는 이 다양성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역시 낭비적인 세금 사용도 그리스의 몰락을 가져왔습니다. 이집트의 경우를 잠깐 보면 조세 시스템의 부적절성으로 인해 풍요로운 나일강을 가지고도 큰 발전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다음으로는 몽골을 살펴볼텐데요. 몽골의 경우에도 여러 부족을 통합할 수 있었던 것이 유럽을 공포에 떨게 만든 가장 큰 이유인데요. 서로 부족이 다름에도 지금으로 치면 의리나 동료애 같은 것으로 넓은 몽골의 부족들을 통합했고 그 힘을 유럽으로 뻗어나가 가장 멀리 있는 영국까지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을 정도로 전 유럽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여기에도 수만키로에 걸쳐 설치한 역참같은 제도들이 큰 힘을 보탰습니다.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몽골에 있는 카라코롬까지 겨우 일주일이면 도달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슬람 제국의 경우에는 굉장히 계산적으로 개방적인 정책을 취했는데요. 비잔틴과 페르시아지역을 정복했을 때 기존통치 방식과 종교를 그대로 인정했습니다. 또한 국유지만 접수하고 개인 소유 토지는 세금을 납부하는 방식을 채택함으로서 정복자로서는 상당히 의아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나 그 이유는 바로 세금에 있었습니다. 아라비아 밖의 무슬림은 토지세 납부가 없었고 종교를 인정한 이유도 세금을 걷을 이유를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이슬람을 믿지 못하도록 방해한 경우도 있을 정도니까요. 그러나 어찌되었든 이러한 방식을 통해 제국은 발전하고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웃기게도 제국 전체가 이슬람화 되었을 때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에는 역시 세금문제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를 해 보면 나라의 흥망이 다양성과 또 세금에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겠죠? 마지막으로 동로마 제국을 살펴보겠습니다. 여태 중점을 맞춘 다양성에서 잠시 벗어나 제국 흥망에 지대한 영향을 준 정책에 대한 설명으로 후기를 마치겠습니다. 동로마 제국 다시 말해 비잔틴 제국의 성장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준 것은 군관구제와 둔전병제였습니다. 군관구제는 지방 행정 제도로 각지의 군사령관이 민정과 군정을 겸하는 제도였습니다. 여기에 둔전병제가 합쳐 전투력과 농업 생산력, 조세 수입을 늘릴 수 있었는데요. 둔전병제는 토지를 주고 농민들이 자신의 토지를 지키기 위해 싸우게 하는 제도였습니다. 훨씬 더 사기가 높았겠죠? 이를 통해 용병들에게 지불하던 재정 지출을 크게 줄이면서도 국방력의 강화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황권을 위협하지 못하게 너무 작은 단위로 군관구를 분할시켰고 귀족과 호족의 대토지 소유가 확대되면서 농민들이 몰락하게 됩니다. 결국 군관구제는 형식만 남은 채 문란해졌고 이에 따라 제국 역시 멸망으로 나아갔습니다. 2강에서 우리는 다양성에 대한 포용의 여러 정책들을 봐왔습니다. 이러한 포용이 선의에 인해 행해지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제국에 이익을 준 것은 사실입니다. 여기에 더해 세금 관련 정책들이 얼마나 나라의 흥망에 영향을 주었는지도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굳이 이번 강의를 짧게 정리하자면 다양성 -> 조세 정책 -> 흥망 이라는 도식을 세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강의를 모두 마치고 소장님께서 맛있는 통닭집으로 저희를 데려가 주셨습니다. 수업을 들은 모든 분이 참여하여 함께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소장님께서 다음 강의부터는 세금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집중적으로 이야기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과연 어떨지 모르겠네요. 저의 경우는 환영입니다. 이 강의를 통해 좀 더 많은 조세 정책들을 배우고 싶으니까요. 아마 다른 분들도 그럴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역사적인 이야기를 더 좋아하는 분들도 많겠지만 어찌 되었든 소장님의 훌륭한 강의가 벌써 기대됩니다. 모두 한 주 마무리 잘하시고 화요일 날 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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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나무 기자의 <사실을 다루는 글쓰기> | [사실을 다루는 글쓰기]7강 - 네트워크는 광대하다. | 피를로 | 2015.4.26 | |
벌써 마지막 글쓰기 강의입니다.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지나간 듯한 느낌이네요. 이번 7강의 주제는 독자와 만나는 방법에 대해서 입니다. 이번 고 기자님의 강좌는 책을 출판하고 싶거나, 자신의 블로그에 애독자들을 만들기 위한 즉, 남들에게 읽히는 글쓰기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자도,문학가도 아닌데 어떻게 자신만의 독자를 만들 수 있을까요? 가장 간단한 방법은 SNS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현재 트위터, 페이스북, 블로그가 가장 많은 대중이 이용하는 SNS입니다. 각 서비스마다 이용방법과 특징이 달라 독자 만들기를 염두해두고 다음 서비스들을 이용한다면, 각 서비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먼저 트위터는 140자 이내로 한 게시물을 올릴 수 있는 SNS입니다. 140자 이내로 글을 써야 한다는 제약이 부담스러우실 수 있을텐데요. 그럴 땐 글을 나눠쓰거나 다른 곳에 써서 링크를 걸어두는 방법이 있습니다. 만일 트위터와 블로그를 병행하신다면 자신의 블로그글의 링크를 트위터에 올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리고 트위터에는 '리트윗'이라는 기능이 있습니다. 리트윗은 글의 게시자에게 의견형식으로 답을 할 수 있는 기능인데요. 리트윗을 하기 위해선 상대방을 지정해야하기 때문에 단순한 감상보다는 서로의 의견교환에 자주 이용됩니다. 그래서 트위터의 대표적인 기능은 '의견 발산'입니다. 관련 링크 : http://twitter.com/choijinsoon 뉴미디어 전문가 최진순 기자 트위터 페이스북은 트위터와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단 글자 수 제한이 2000자라 특별하지 않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글의 전문을 올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댓글이 트위터의 리트윗과는 다르게 특정 대상을 지정하지 않아도 달 수 있어서, 단순히 글에 대해 자신이 느낀 점을 쓰거나 감탄사만 남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좋아요' 기능인데요. 이는 자신이 마음에 드는 글에 호감을 표시하는 기능입니다. 이렇게 댓글과 좋아요 기능의 차이로 페이스북은 트위터보다 '공감'이 부각되는 서비스입니다. 관련 링크 : http://www.facebook.com/jinsoon/choi 뉴미디어 전문가 최진순 기자 페이스북 마지막으로 블로그는 두 SNS보다는 폐쇠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게시물 하나하나 올리는 게 두 SNS보다는 무거운 느낌입니다. 때문에 블로그는 두 SNS보다 전문적이고 상세한 글을 쓰기에 용이합니다. 관련 링크 : http://wisdomhouse.kr/new/new/social.php?mid=79 이종진 전 영화전문기자, 현 영화평론가 SNS를 이용해 독자들과 소통할 때 최소 2~3주에 한 번씩은 게시물을 하나씩 올려야 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만일 너무 오랜기간 동안 글을 올리기 않게 되면, 독자들이 구독 혹은 팔로잉을 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마지막 강의는 수강생들의 숙제 품평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저는 친구 부친상이 있어 뒤풀이에는 참석하지 못하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먼저 끝까지 열강해주신 고나무 기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간사님을 비롯한 아카데미 느티나무 원장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글쓰기 강좌를 통해 저는 제가 가진 컨텐츠가 무엇일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습니다. 평소 관심분야는 다양한 편이었지만, 과연 '나의 어떤 컨텐츠를 써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읽을까?'는 고민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고민을 해 본 결과 '아 이거다!'하는 컨텐츠는 아직 떠오르지 않았지만, 컨텐츠가 떠오른다면 당장 블로그를 만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상 함께한 수강생분들, 부족한 제 강의후기를 읽어주신 분들도 고생하셨고 원하시는 목표에 한 걸음 다가가셨기를 기원합니다.
1주차 강의 후기 : http://academy.peoplepower21.org/index.php?mid=lecture_board&document_srl=1177350 2주차 강의 후기 : http://academy.peoplepower21.org/index.php?mid=lecture_board&document_srl=1205289 3주차 강의 후기 : http://academy.peoplepower21.org/index.php?mid=lecture_board&document_srl=1235767 4주차 강의 후기 : http://academy.peoplepower21.org/index.php?mid=lecture_board&document_srl=1256395 5주차 강의 후기 : http://academy.peoplepower21.org/index.php?mid=lecture_board&document_srl=1276801 6주차 강의 후기 : http://academy.peoplepower21.org/index.php?mid=lecture_board&document_srl=13052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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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권의 정치철학 - 고전으로 이해하는 정치사상 <당대편> | [김만권의 정치철학 - 고전으로 이해하는 정치사상 <당대편>] 5강-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 혠벗 | 2015.4.15 | |
3월부터 매주 목요일 저녁을 함께 했던 고전으로 이해하는 정치철학 <당대편>, 어느덧 반환점을 돌았네요. 다섯 번째 수업에서 다룬 고전은 한나 아렌트의 1958년 작 <인간의 조건>입니다. 한나 아렌트는 근대성의 병폐와 ‘악’을 다뤄내면서 명성을 얻었습니다. 급진적 악을 다룬 <전체주의의 기원>, 야스퍼스의 영향을 받아 일상의 악을 탐구한 <예루사람의 아이히만>, <혁명론>, <자유란 무엇인가> 등등 흥미를 끄는 제목의 저작이 많습니다. 또 스승이자 연인이었던 하이데거가 소멸과 맞닿은 사유를 중심으로 철학을 펼쳐나갔던 반면, 아렌트는 ‘인간의 본질을 이루는 것은 생각함이 아니라 행위함’이라며 새로운 시작, 탄생과 행위를 철학의 중심에 놓았습니다. 또한 유태인으로서 몇 번이나 끔찍한 상황에서 극적으로 탈출했던 경험은 그녀의 철학과 삶의 자세 곳곳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입니다.
<인간의 조건>은 얼핏 제목만 보면 인간으로서 갖추어야할 조건과 인간 본성을 탐구한 책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조건>은 인간이 이미 조건 지워졌다는 것, 즉 인간적 제약성 자체를 의미합니다. “인간의 삶과 지속적인 관계를 가지는 것은 무엇이든 인간의 실존조건이라는 성격”을 가지므로 “인간이 무엇을 하든 언제나 조건 지워진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조건>에서는 이러한 주어진 제약을 다루어가는 ‘활동’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아렌트는 이 책을 ‘Vita Activa(활동적인 삶)’, ‘Amor Mundi (love of the world)’라고 불러주길 원했다고 합니다. <인간의 조건>은 두 가지 트랙으로 구조화하면 이해하기 보다 쉬운데요, (수업 중 판서 참고) 첫째, 인간의 실존조건에 따른 ‘세 가지 활동적인 삶’으로서 ①노동 ②작업 ③행위, 둘째, 각각의 삶이 위치하고 있는 ①공론영역 ②사적영역이 있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아렌트는 각각의 활동의 중요도가 뒤집히고 각각의 삶이 원래 위치해야할 곳에서 이탈하여, 공론영역과 사적영역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결국 두 영역 모두 사라지게 된 것이 근대사회의 문제라고 보았습니다. 강의록의 순서와 같이 노동부터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노동(Labor)은 생명 유지라는 필요성에서 나오는 동물적 특성입니다.(Homo Laborans)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인간들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소비해야하죠. 아렌트는 세 가지 활동 중에서 노동(과 소비)가 가장 파괴적이고 지속성이 짧으며, 그렇기 때문에 노동하는 동물은 “무세계성”을 띤다고 표현합니다. 노동하는 동물은 “자기 신체의 사적 성격 속에 갇혀서 누구와 함께할 수도 없고 온전하게 의사소통도 할 수 없는 충족에만 사로잡혀 세계로부터 추방”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세계란 사람들이 모여 같이 무언가를 하는 곳, 즉 공적영역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노동이 있어야 할 곳은 엄연히 사적영역입니다. 그러나 근대세계에서 노동하는 동물이 공론영역에 자리 잡게 되었고, 아렌트는 이를 두고 ‘근대세계가 필연성〔필요성〕에 거둔 승리’라고 표현했습니다. 필요성의 충족만을 위해 힘쓰는 자들이 공론영역을 차지하게 되어 결국 진정한 공론영역은 사라지고 “공개적으로 이루어지는 사적 활동”만이 존재하게 된 것이 근대의 문제입니다. 작업(Work)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유용성입니다. 노동과는 달리 “자연적 환경과 전적으로 구별되는 인공적 세계의 사물들을 제공”하여 “세계에 지속성과 견고성을 부여”합니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재화를 생산하는 것은 물론, 사회 제도를 만드는 것 역시 작업에 속합니다. 전자의 경우는 사적영역에, 후자의 경우는 공적영역에 위치합니다. 작업을 통해 인위적인 세계를 건설하는 인간은 자연에 대한 객관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으며, 이는 인간이 필요성과 탐욕이라는 자연적(동물적) 특성에 저항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작업에는 공리주의의 문제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유용성의 가치에 사로잡힌 제작인(Homo Faber)에게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합니다. 따라서 작업을 위한 재료를 얻기 위해서 자연에 가하는 폭력은 모두 정당화됩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목적이 어떤 다른 맥락에서는 다시 수단이 되는 사슬”과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해를 돕기 위해 의자 생산의 예를 들어주셨습니다. 의자를 만드는데, 사실은 의자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의자를 책상과 함께 두는 것이 목적이라고 하면, 의자는 목적에서 수단으로, 1차적 가치에서 2차적 가치로 전락하고 맙니다. 또 의자와 책상을 만들어 내는 게 목적이 아니라 그것들을 방에 놓는 게 목적이라면...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목적이 다시 수단이 되는 일이 발생합니다. 제작자로서 인간은 도구화의 문제, 즉 “내재적이고 독자적인 가치를 상실”하는 문제에 봉착합니다. 행위(Action)는 “사물이나 물질의 매개 없이 인간 사이에 직접적으로 수행되는 유일한 활동”이고, 그 근본조건은 다원성입니다. 여기서 다원성은 “‘동등성’과 ‘차이성’이라는 이중의 성격”을 가집니다. 동등하게 다른 존재이기에 사람들 사이의 거리가 의미 있어지고, 비로소 말과 행위를 통한 ‘참여’, 즉 정치가 일어납니다. 따라서 행위는 공공영역에 위치합니다. 아렌트가 “제2의 탄생”이라고 부른 참여는 “우리가 결합하기를 원하는 ‘타인의 현존’에 자극 받은”것입니다. “노동처럼 필연성〔필요성〕에 의해 강요된 것이 아니고 작업의 경우처럼 유용성 때문에 추진된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아렌트는 행위만이 자유로운 활동이라고 보았습니다. 아렌트는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에서 다원성과 참여의 원형을 발견하고, 폴리스의 발생이 “인간이 사적생활 외에 일종의 두 번째 삶인 정치적 삶을 부여받았음을 의미한다.”고 말했습니다. 고대 도시국가에서부터 이미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의 분리가 일어났으며, (근대 이전까지) 뚜렷이 구분되는 실체로 존재해온 것입니다. 공론영역에서 ‘공’이란 누구나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폭넓은 공공성을 가진다는 것”과 “세계가 공동의 소유”라는 것을 동시에 의미합니다. 세계에서 산다는 것, 즉 공론영역에서 행위하는 것은 마치 다양한 사람들이 탁자에 둘러 앉은 것과 같습니다. 다양성의 기반 위에서 다르지만 평등한 사람들 사이(in-between)에서 정치가 만들어지고, 정치는 사람들을 이어줍니다. 대중사회의 문제는 탁자의 부재, 즉 정치의 부재인 셈입니다. 아렌트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인용하며 “행위(praxis)와 언어(lexis)”만이 ‘정치적 삶’을 구성한다고 했습니다. 힘과 폭력으로는 사람들을 이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편 행위자가 모습을 드러내는 현상공간으로서 공론영역은 행위와 말의 방식으로 사람들이 함께 사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잠재적으로 존재하며, 공론영역을 존재‧보존 시키는 힘이 ‘권력’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결국 자유와 권력 모두 공공의 장에 모습을 드러낼 때, 즉 행위 할 때만 구현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아렌트에 대한 해석이 갈립니다. 현실적으로 일반 사람들이 공공의 장에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엘리트주의‧보수주의라고 보는 시각도 있고, 혁명‧시민불복종의 순간에 집중하여 아주 급진적인 해석을 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한편 사적(가정)영역은 필요와 욕구의 동인에 의해 이뤄지며, 타인과의 관계가 사라지면서 “삶 그 자체보다 더 영속적인 어떤 것을 성취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박탈당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사적영역에서의 사적 소유(≠wealth)를 “삶의 필연성을 지배함으로써 잠재적으로 자유로운 사람, 즉 자신만의 삶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참여하는 세계에 들어가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았습니다. 즉 사적 소유가 한 인간이 정치적 존재가 되기 위해 필요한 요소라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시각은 사적 소유를 문제로 보았던 맑스와도 다릅니다. 근대에 접어들어 ‘민족국가’를 세우면서 사적영역도 아니고 공적영역도 아닌 사회적 영역이 등장합니다. 원래 가정영역의 문제였던 것들이 공적영역으로 나와 이른바 ‘사회’를 형성할 때, 사람들은 부를 통해 정치적 인간이 되는 것, 즉 “공론영역에 접근하기보다, 보다 많은 부를 축적하여 공론영역이 자신들을 보호해줄 것을 요구”했고, 이것이 국가(commonwealth)가 되었습니다.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근대 국가의 본질인 것입니다. 결국 아렌트는 “공적인 것이 사적인 기능을 하는 까닭에 공적인 것이 사라지고, 사적인 것이 유일한 공동의 관심사로 남기 때문에 사적인 것이 사라짐으로써 결과적으로 이 두 영역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앞서 행위만이 자유로운 활동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아렌트는 <자유란 무엇인가>에서 행위와 자유는 동시에 발생한다고 했습니다. 행위가 있어야할 곳은 공론영역인 까닭에 자유 역시 공론영역에서만 구현됩니다. 또한 ‘행위하다’는 ‘시작하다(아르케인)’와 ‘누군가와 같이, 혹은 도움을 받아 완수하다(프리테인)’라는 두 가지 말에서 유래했다는 것에서, 자유는 본질적으로 타자와 세계 속에서 무엇인가를 할 때 발생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근대세계에서 결국 공론영역이 사라지면서, 근대의 인간은 자유를 잃어온 것입니다. 그러나 아렌트는 신학적 세계관에서 우리는 이미 탄생할 때 우주를 한 번 출발 시켜본 존재라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역사는 하나의 덩어리 같아 보이고, 끊임없이 주욱 이어져온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단절의 순간이 있었고, 새로운 시작의 순간이 있었습니다. 역사의 무거운 흐름 속에 나를 끼워 넣어 단절을 만들고 새롭게 시작 시켜야 합니다. 우주를 출발 시켜본 존재인 우리는 행위 할 수 있습니다. 아렌트는 이것이 자유이고, 자유의 본질은 행위라고 강조하였습니다. 어떤 철학자의 어떤 책을 읽어도 늘 첫 수업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세계의 문제와 함께할 것" 세월호 참사 1주기가 다가오고 있어서 그런지, 이 메세지가 참 절절하게 느껴집니다. (지난 주에 수업을 들으면서 많이 어려워서 여러번 다시 읽고 정리했는데도 유독 부족함은 많고, 길이는 긴 후기가 된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ㅠ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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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나무 기자의 <사실을 다루는 글쓰기> | [사실을 다루는 글쓰기]6강 - 이야기 논픽션쓰기 | 피를로 | 2015.4.14 | |
어느덧 종강까지 1강 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번 시간에 고 기자님께서 강조하신 부분을 한 번 더 언급하겠습니다. <Guardian>지의 과학담당 에디터 Tim Radford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방금 전, 전 당신이 인터뷰한 과학자를 감동시키려고 글을 쓰는 것도 아니요, 당신의 지도교수를 위해서 쓰는 것도 아니며 당신을 어리석게 실망시키는 에디터나 "당신은 작가님이시군요"라고 말해주는 섹시한 여자를 위해서 쓰는 것도 아니다. 당신은 기회만 주어진다면 0.2초만에 읽기를 중단하고 티비 드라마<파슨스 그린>이나 <푸트니>로 가버릴 수 있는 그런 독자를 상대로 글을 쓴다." 그의 말대로 우리 주변에는 책 말고도 너무나 재미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치열한 경쟁 상품을 제치고 당신의 책이 읽히려면 어떡해야 할까요? 핵심은 첫 문장과 첫 문단에 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인 까뮈의 <이방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첫 문장을 읽는 순간 드는 알수없는 의문과 함께 저는 이 소설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람의 첫인상이 중요하듯 글도 첫 문장이 아주 중요합니다. 일단 주로 독자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내용으로 시작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통념을 비판하는 식으로 출발한다던지, 재밌는 발언을 인용한다던지 눈길을 끄는 통계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은희 씨의 <하리하라 생물학카페> 중 12편 '심장이 왼쪽에 있는 이유'를 예시로 들겠습니다. 12편은 주제와 관련 있는 오디세우스의 외눈박이 거인과 조우하는 신화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외눈박이 거인의 눈은 어디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고, 인체의 대칭과 비대칭에 관한 본론으로 들어가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신화라는 흥미로운 소재와 연관시켜 독자의 관심을 끄는 좋은 글쓰기 도입입니다. 또 주제와 무관해 보이는 소재 언급으로 출발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남종영 기자의 '돌고래 연구의 윤리 논란'을 다룬 기사가 예로 있습니다. 링크 : 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685361.html '사람과 돌고래의 러브스토리? 그녀가 떠나자 피터는 자살했다.'는 돌고래와 관련한 흥미로운 제목과는 다르게 기사는 1960년대에 대한 소개로 시작합니다. 게다가 무려 3번째 문단부터 돌고래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이렇게 문단이 자연스럽게만 연결된다면 독자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관련 없어 보이는 정보로 문장을 시작하는 것도 첫문장쓰기의 좋은 방법입니다. 그리고 묘사로 글을 시작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고 기자님의 김종필 전 총리 부인 별세기사를 예로 들겠습니다. 링크 :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680148.html 기사는 장례식장과 늘어선 화환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홀컴 마을은 캔자스 서부, 밀을 경작하는 높은 평원 지대에 있다. 캔자스의 다른 지역 사람은 거기 바깥이라고 부르는 외딴 지역이다. 콜라라도 주 경계에서 동쪽으로 110킬로미터 떨어진 시골인데 굳건한 푸른 하늘과 사막같이 맑은 공기 때문에 중서부라기보다는 극서부라고 하는 것이 어울릴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투리에는 초원 지방 특유의 코맹맹이 소리, 목장 일꾼들의 비음이 섞여있고 남자들 대부분이 통이 좁은 카우보이 바지에 스테트슨 모자를 쓰고 앞코가 뾰족하고 굽이 높은 부츠를 신고 다닌다. 트루먼 카포티, <인 콜드 블러드> 중 주의하셔야 할 점은 원고지 30매(A4 3쪽 정도)가 넘어가는 글을 쓸 경우에는 이야기 형식으로 내용을 풀어나가야 합니다. 글의 내용이 30매 미만이라면, 단순히 글의 논리나 설명만으로도 쓸 수 있지만, 글의 내용이 30매가 넘어가면 이야기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합니다. 한 권의 논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네 개의 장치를 기억해야 합니다. "논픽션은 소설문학의 기술적 장치를 사용한다."<Telling true stories> 장면을 통한 글구성(Scene by scene construction). 일련의 장면으로 서사를 보여주며 보통의 설명적 나레이션은 되도록 사용하지 않는다. 대화의 풍부한 사용, 대화는 모든 산문 중에 가장 읽기 쉬우며 주인공의 성격(캐릭터)을 드러내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하지만 논픽션이 일반 소설에 비해 어려움이 있다면, 소설은 허구로 작가가 대화를 지어낼 수 있지만, 논픽션의 경우 사실에 기반해 쓰는 글이기 때문에 인터뷰를 직접 따야 한다는 점이 있다. 인물의 사회적 위치에 대한 디테일. 사회적 위치를 드러내거나 야망을 보여주는 모든 종류의 디테일. 옷, 가구, 말버릇, 상급자, 하급자에게 대하는 어투 등.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감독의 영화 <리바이어던>에서 탐욕적인 시장 바딤의 책상엔 그의 탐욕을 대변하는 지구본 모형이 있고, 그위 머리 위에는 푸틴사진이 걸려있다. 즉 단순히 인물을 설명하기보다는 구체적 상황을 묘사해 인물의 성격을 드러나게끔 해야한다. 시점. 독자들을 저자가 아닌 기사 속 인물들의 마음속으로 데려갈 시점에 대한 고려를 해야한다. 1주차 강의 후기 : http://academy.peoplepower21.org/index.php?mid=lecture_board&document_srl=1177350 2주차 강의 후기 : http://academy.peoplepower21.org/index.php?mid=lecture_board&document_srl=1205289 3주차 강의 후기 : http://academy.peoplepower21.org/index.php?mid=lecture_board&document_srl=1235767 4주차 강의 후기 : http://academy.peoplepower21.org/index.php?mid=lecture_board&document_srl=1256395 5주차 강의 후기 : http://academy.peoplepower21.org/index.php?mid=lecture_board&document_srl=12768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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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전문가와 함께하는 나라살림 흥망사 - 국가와 문명의 흥망성쇠, 나라살림의 비밀 | [예산전문가와 함께하는 나라살림 흥망사] 1강 고대문명의 흥망은 어떻게 달랐을까. | 아비 | 2015.4.13 | |
[예산전문가와 함께하는 나라살림 흥망사] 1강 고대문명의 흥망은 어떻게 달랐을까.
안녕하세요. 이번 학기 정창수 선생님의 흥망사 수업 후기를 맡게 된 오상윤이라고 합니다. 저는 평소에 나라 살림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이 수업은 단순히 경제적인 부분만으로 살림을 읽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과 맥락 속에서 살림을 읽는 것이기에 더더욱 앞으로의 수업이 기대됩니다. 1강에서 선생님께서는 먼저 흥망사를 배우는 의미와 이론에 대해서 설명해주시고 우리나라 및 고대 문명들의 역사에 대해 강의를 해주셨는데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추가로 신청해주시고 와주셔서 열띤 강의가 진행되었던 것 같습니다. 역사와 경제가 만나니 전혀 지루할 틈이 없었어요. 먼저 흥망사를 시작하기 앞서 간단한 개념에 대해서 살펴보아야 할 텐데요. 가장 먼저 설명할 것은 조세입니다. 조세란 토지의 경작자가 수확의 일부를 토지의 소유자에게 내는 ‘조’와 토지의 소유주가 토지 경작자에게 받는 조 중에서 국가에 내는 ‘세’를 뜻하는 말인데요. 이는 고려시대부터 구분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주나라의 정전법이 그 시초인데 사각형의 토지의 가운데 부분을 공동 경작하여 세금을 내는 제도라고 합니다. 후에는 토지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세금이 걷히는데 어떻게, 얼마나 세금을 걷느냐, 그리고 이렇게 걷힌 세금이 어떤 식으로 사용되었는지 아는 것이 나라살림에 가장 핵심적인 요소일 것입니다. 흥망사 강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우리나라의 사례를 먼저 살펴보았는데요. 그 첫 번째 대상은 고조선이었습니다. 우리 역사의 최초 국가인 고조선 역시 세금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결국 이는 국가를 운영하는 데에는 세금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같습니다. 게다가 오랫동안 나라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을 보아 이러한 조세와 재정지출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추측해볼 수 있겠죠? 우리의 두 번째 논의 대상은 조선의 고종 시대였는데요. 여기에서 나라살림 운용의 중요성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국가 예산은 결국 조세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쓰임이 누구를 위해 쓰였냐가 중요할 것입니다. 가령 국가 예산에 황실만을 위한 예산의 비중이 크다면 그만큼 다른 필요한 곳에 세금이 쓰이지 않을 것은 분명합니다. 고종시대에 바로 이런 문제점이 이루어졌는데요. 황실비 중 제사를 위해 쓰인 비용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습니다. 요즘 이야기로 쉽게 예를 들면 300조 가량에 국가 예산 중에 30조원을 황실을 위해 쓰며 그 중 6조원 가량을 제사를 위해 썼으며 이 비중이 점차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을지 모르나 국민들이 낸 세금이니만큼 쓸데없는 곳에 쓰였다는 인상을 지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물론 국가 세금이 황실비로만 사용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한제국 전체 중 40%의 예산은 국방비로 들어갔는데요. 당시 나라 상황을 생각할 때 이 비용이 과도한 것은 아니었을지도 모르나 얼마나 효과적으로 쓰였냐고 묻는다면 글쎄요.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이해관계로 국방비를 사용하다보니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드러났고 결국 이는 나라살림을 잘 못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보여준 가장 큰 예는 양무호 사건입니다. 고종 즉위 40주년 일본에서 들여온 군함, 양무호가 모습을 드러내는데요. 일본이 영국 상선이던 이 배를 25만원 주고 사온 것을 우리나라에 55만원에 판 것입니다. 당시 국방 예산의 30%가 이 고물 배에 사용되었습니다만 여기에 25만원을 더 들여 수리하고 나중에 일본군에 의해 징발되어 뺏기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소중한 나랏돈을 낭비한 셈이었던 것이지요. 조선 말기의 안타까운 상황만 보자니 가슴이 아픈데요. 다음으로는 다행히도 세종에 대해 배웠습니다. 세종은 관청에 있는 계집종만의 경우겠지만 무려 출산휴가를 주었습니다. 여기에다가 남편들에게도 같이 휴가를 주었다는 점이 놀라운데요. 단지 어진 임금이어서가 아니라 인구가 늘어야 국가의 부가 늘어난다는 필요성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게다가 이러한 복지가 가능했던 것은 재정이 그만큼 튼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튼튼한 재정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바로 공평한 조세제도 덕분이었습니다. 공법이라고 일정한 땅을 농민에게 나누어주고 10분의 1의 땅에서 나온 수확을 세금으로 바치게 하는 고정비율의 조세였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여론조사를 시행했다는 기록을 보아 나라 살림에 대한 훌륭한 고민과 생각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으로는 선생님과 함께 공부했던 흥망사의 이론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흥망사를 보는데에는 여러 가지 관점이 있을 수 있는데 먼저 공공정책의 역할을 통해 나라 살림을 살펴보겠습니다. 콜럼버스의 발견도 의도하지 않는 공공정책의 결과였습니다. 그 덕분에 어마어마한 발견이 이루어졌지만 이를 유지 관리하지 않았기에 결국 나라살림이 성공적이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추가로 조세를 어떤 식으로 걷고 관리하는지 역시 나라살림에 굉장히 중요한데 영국의 경우 징수관, 지출관, 재무관의 분리로 조세 수취를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하여 성공적인 나라살림을 가능케 했습니다. 아담 스미스의 유명한 국부론에서도 이런 나라살림에 대한 부분이 나오는데 비싼 마차에 고율의 세금을 물리는 누진세 같은 조세의 방향성 문제, 공공교육, 무상급식에 대한 조세 지출의 문제들을 다룹니다. 이러한 문제제기와 논의들이 의미하는 것은 결국 국가에는 나라 살림이 가장 커다란 부분을 이룬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고대문명에 살림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문자가 세금을 관리하기 만들어졌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누가 세금을 냈는지를 기억하기 어려웠던 그들은 점토판에 약속기호를 그리기 시작했고 이를 문자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결국 문자는 세금을 걷고 관리하며 사용하기 위해서 지배층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손쉽게 사용하는 문자도 세금을 위해 만들어진 셈입니다. 그러면 이제 이집트 문명을 시작으로 문명들의 흥망사를 직접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집트의 나일 강은 홍수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함께 내려오는 토사들이 땅을 비옥하게 만들어주기도 했습니다. 나라 살림을 잘 하지 못한 한 예가 나일강에 있습니다. 이 홍수를 막기 위해 지은 나세르 댐이 농업과 어업을 망쳤기 때문입니다. 또한 피라미드와 같은 기념물의 건립을 통해 많은 자원을 낭비했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전시행정의 예입니다. 이런 것들로 인해 이집트가 망으로 향했다고 귀결 지을 수는 없겠지만 분명히 많은 영향을 주었던 것 사실일 것입니다. 또한 이는 한 나라의 흥망이 어떤 식으로 나라 살림을 하느냐에 달렸다는 것을 보여준 한 예입니다. 두 번째로는 그리스를 살펴보았는데 그리스 문명을 통해 먼저 볼 수 있는 것은 숲에 대한, 즉 환경에 대한 문제입니다. 초기에 많은 함대를 가진 아테네가 스파르타를 압도했지만 산림이 너무 많이 파괴돼서 나무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로 인해 결국 패하게 되는데 이러한 나무 역시 나라의 재산으로 볼 때 과도한 낭비가 가져오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인구에 대한 관리입니다. 스파르타를 몰락시킨 가장 큰 원인은 인구 감소였습니다. 그러나 이 인구 감소는 어떤 것 때문이었을까요? 바로 부의 집중 문제였습니다. 부유층은 재산유지를 위해 출산을 의도적으로 회피했습니다. 이들이 토지를 독점했던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이가 부유층으로 진입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이렇듯 나라를 망하게 한 것을 보려면 나라 살림에 대한 문제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최근에 우리나라의 출산감소 역시 단순히 독신주의를 지향하는 문화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이는 총체적인 경제문제이며 여러 가지 정책들이 동원 되어 해결해야하는 중요한 문제임이 분명할 것입니다.
이번 강의에서 이외에도 다양한 역사적 사실들과 맥락들에 대해서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이 강의에서 얻은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역사가 저절로 이루어지거나 표면적인 이유들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많은 역사들이 국가와 떨어질 수 없는 관계라고 할 때 나라 살림이라는 것이 역사를 움직이고 발전시키고 몰락시키는 가장 중요한 동력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흥망사 강의를 통해 더 많은 국가의 역사의 이들의 흥망을 경제와 연관하여 배울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더 효과적인 조세정책들과 나라 살림에 대해 생각할 수 있고 결국에는 보다 더 나은 나라를 꿈꿀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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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권의 정치철학 - 고전으로 이해하는 정치사상 <당대편> | [김만권의 정치철학] 4강 자크데리다 "왜 해체가 정의인가"<법의힘> | 박윤채영 | 2015.4.8 | |
2015년 4월 2일 강의 자크 데리다 <법의 힘> 지난 시간 미셸 푸코에 의해 멘붕(?)과 깊은 우울을 겪으셨나요? 저 같은 경우엔 푸코가 충격적이거나 우울하진 않았습니다만 내가 살고 있는 21세기라 하는 사회 또한 중세와 다를 바 없는 권력의 감시와 규범에 의한 사회구나 하는 생각에, 그리고 “모든 게 구조라면 다시 구조화 하면 된다.”는 희망의 말에 ‘그럼 무엇부터 해야 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강의에서 그 ‘시작 할 무엇’-제가 받아들이기로는 살아가는 태도와 방식-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저희가 만나게 된 철학자는 ‘자크 데리다’입니다. (이하 줄여서 ‘데리다’라고 하겠습니다.) 데리다가 말하는 해체란 뭘까요? 사실 해체라는 개념은 하이데거가 먼저 제시했던 개념입니다. 하이데거는 일상 속에서 각 존재들은 자신에 대한 의심과 질문을 통해 근대적 사고방식을 깨는 방법으로 ‘해체’를 말했습니다. 하이데거에게 해체란 일상 속에서 현존재의 일상적 본질을 탐구하는 수단이었습니다. 데리다의 해체는 하이데거의 것에서 영향을 받았지만 같지 않습니다. 데리다는 자신의 ‘해체’라는 용어는 하이데거의 ‘(존재의)해체’라는 용어와 그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데리다와 하이데거의 차이점은 해체하는 대상에 있습니다. 하이데거의 해체는 세계 안에 있는 ‘나’를 확인하고 그 의미와 본질을 찾는다면 데리다가 말하는 해체는 ‘존재하는 모든 권위에 대한 허물기’입니다. 즉 세계 안에 있는 내가 아닌 내가 살고 있는 세계를 해체하는 것이지요. 때문에 데리다는 하이데거와 달리 ‘언어’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언어야 말로 일상성이 가장 강한 영역이며 때문에 가장 중요한 해체의 대상이 됩니다. 특히 언어로 구성되는 담론은 사용자들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드러내주며 생활양식에서 사고방식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아주 가볍게 예를 들면 ‘초콜릿 복근’ ‘꿀벅지’ ‘검둥이’와 같은 단어들이 그 사회가 갖고 있는 편견과 시선을 반영한다고 보는 거죠. 때문에 “누구를 위해 여자의 허벅지는 ‘꿀’같아야 하며 남자의 복근은 ‘초콜릿’ 같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어 보이지만 중요한 해체의 시작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데리다는 책‘법의 힘’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이 책은 데리다가 자신의 ‘해체’라는 개념에 대해강의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강의는 당시 데리다를 비판하던 비판법학자들이 데리다에게 질문하고 데리다가 대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는데 비판하는 자와 답하는 자의 모습이 마치 소크라테스가 섰던 법정을 떠올리게 했다고 합니다. 비판법학자들은 해체가 옳은 이유를 증명할 것을 요구했고 데리다는 계속 해체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그러니까 ‘법의 힘’이라는 책은 데리다의 “왜 해체하는 삶을 살려고 하는가.”에 대한 해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판법학자들은 ‘해체는 무책임하다.’고 비판했습니다. 권위의 붕괴는 사회 혼란을 야기할 것이며 기존의 질서가 해체될 때 부득이하게 피해 받게 되는 존재들에 대해 책임감이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해체하면 뭐가 남느냐! 이것이 그들의 비판이었습니다. 그러나 해체는 파괴가 아닙니다. 데리다가 말하는 해체는 일종의 ‘분해’입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을 분해하여 구성 성분과 본질을 보고 낡은 것은 버리고 틀린 것은 고쳐서 재조립하는 과정. 그것이 데리다의 '해체Deconstruction'입니다. 부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재구축이 목적인 것입니다. 때문에 해체를 무책임한 것으로 보는 것은 틀린 지적입니다. 해체는 기존 질서를 붕괴하고 파괴하는 작업이 아니라 ‘아무런 질문 없이 받아들이는 것들’에 대한 탐구입니다. 구축되어 있는 것은 모두 해체의 대상이 되며 단단한 것일수록 더더욱 해체해야 할 대상입니다. “만약 정의 그 자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법 바깥에 또는 법 너머에 있는 정의 그 자체는 해체 불가능하다. ” 데리다는 강의에서 최초로 “해체가 정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정의의 근거이면서 정의 실현의 수단이며 국가를 유지시켜주는 가장 단단한 구조물인 ‘법’의 이중성을 보여주며 해체 가능성을 말합니다. 데리다에게 해체될 수 있다는 것은 그 안에 이중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뜻하며 배제성을 갖고 있다는 의미이고 이러한 이중성과 배제성은 부정의와 연관되어 있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정의 그 자체는 해체되지 않는 다고 말 한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법의 해체는 “해체가 정의이다”라는 데리다의 말에 대한 증명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정의의 근거를 해체함으로써 정의를 증명했던 것입니다. 데리다가 보여준 법의 이중성은 ‘폭력성’입니다. 법은 폭력을 막기 위해 폭력(강제성)을 사용한다는 것이지요. 이때 우리가 견제해야 할 것은 ‘폭력이 잘 사용되고 있는가’입니다. 데리다는 발터 벤야민의 이론을 끌어와 법이 가진 폭력의 정당성을 어떻게 판별할 것인가에 대해 얘기합니다. 벤야민은 수단으로서 정당한 폭력은 법제정적이거나 법수호적인 성격 중 하나를 갖는다고 말했습니다. 법 제정적 폭력은 법의 기초를 설립하는 데 사용되는 폭력으로 혁명이 그 예입니다. 반대로 법에는 법을 보존하기 위한 폭력도 작동하는데 법에 복종, 법의 작동에 사용되는 폭력입니다. 이 두 가지 폭력은 서로 긴장관계에 놓여있으며 그 긴장관계는 힘의 조화를 가질 때 그 역할을 충분히 수행합니다. 힘의 조화, 그것은 정의 실현을 위해 중요합니다. 법 보존적 폭력의 힘이 과도한 곳에서 혁명은 어려우며 법은 점점 법을 위한 법이 될 수 있습니다. “정의 없는 힘은 비난을 받는다. 따라서 정의와 힘을 결합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정당한 것이 강해지거나 강한 것이 정당해져야 한다. 정의로운 것을 정당한 것으로 만들 수 없었던 우리는 힘 있는 것을 정당하게 만들어 왔다.” -파스칼- 결국 우리는 법이 갖는 폭력성을 배제하고 법을 보아서는 안 됩니다. 법이 갖는 폭력성을 인정하고 그 폭력성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견제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며 중요한 해체작업입니다. 해체는 한 번 하면 끝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해체는 ‘계속 되어지는 것’입니다. 해체는 기존의 것을 비판하여 정의롭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기존의 것들에서 부조리를 없애는 과정입니다. 물이 고이지 않도록 새 물을 계속 흘려보내는 일 같은 것입니다. 어쩌면 돌을 부수고 다시 뭉쳐 돌로 만드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때문에 해체는 이론이라기보다 삶의 철학이며 방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해체하는 삶이 계속되는 한 정의는 계속 미래 시제에 놓이게 됩니다. 데리다에게 정의는 도달할 지점이 아니라‘ 도래할 약속 To Come’이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정의의 약속을 믿고 현재를 해체하기를 두려워 하지 말라고 얘기합니다. 현재를 부수고 과거를 반성하고 더 좋은 내일을 만드는 것. 그리고 그 내일이 다시 오늘이 되는 것. 그것이 데리다가 말하는 ‘해체의 정의’의 가능성입니다. “정의란 언제나 앞으로 찾아올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정의는 언제 찾아올 것으로 남아있으며 찾아올 것을 지니고 있고 찾아오는 중인 하나의 약속이다.” “아마도 바로 이 때문에 정의는 그것이 그저 하나의 법적, 정치적 개념이 아닌 한에서 법과 정치의 변혁이나 개조 또는 재정초를 장래로 열어놓을 것이다.” *선생님이 공유하신 칼럼 정치의 무책임의 폐해: [정동칼럼]세월호법 정부 시행령안 당장 폐기하라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3312043085&code=9903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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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나무 기자의 <사실을 다루는 글쓰기> | [사실을 다루는 글쓰기]5강 - 유혹하는 문장쓰기 | 피를로 | 2015.4.7 | |
4강에서 글쓰기 워밍업을 했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웨이트를 시작할 차례입니다. 초보자가 쓸 수 있는 문장 중 가장 좋은 문장인 무엇일까요? 바로 '간결한'문장입니다. 즉 불필요한 수사 없이 필수 성분들로만 이루어진 문장을 뜻합니다. 소설가 조지 오웰은 자신의 에세이 <Politics and the English language>에서 피해야할 표현들을 설명합니다. 먼저 사은유가 있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비유의 참신한 가치를 잃은 표현으로, 쟁반같이 둥근 달, 바다같은 내 마음 등이 있습니다. 좋은 비유란 참신하면서도 독자에게 정확한 이미지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사은유 표현이 삼가는게 좋습니다. 다음으로 무의미한 숙어와 허세떠는 말이 있습니다. 영어 표현으로는 쓸데업이 긴 단어(generate와 바꿔 쓸 수 있는 give rise to)가 있고, 한국어 표현으로는 어려운 한자말 표현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웰은 의미 없는 말 삼가기를 강조했는데, 우리나라 말에서는 '정의'가 있습니다. '정의'란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무수히 많은 뜻을 지닐 수 있기 때문에 독자로 하여금 뚜렷한 이미지를 전달하기 어렵습니다. 이 밖에도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조지 오웰의 말들이 있습니다. 단어를 칠 수 있을 땐 언제든지 짧게 칠 것 능동태를 사용할 수 있을 때는 절대 수동태를 사용하지 말 것. 수동태를 필연적으로 쓰는 경우는 4강에서 말씀한 대로 주어의 흐름에 맞게 쓰거나 행위를 당하는 대상을 강조할 때가 있습니다. 일상어 가운데 대응할 말을 생각할 수 있다면 절대 외국말, 구절, 과학용어는 피할 것 전문가 집단의 언어를 사용하지 말 것 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쓸데없는 수사란 무엇일까요? 바로 우리가 습관적으로 쓰는 부사, 형용사 표현을 의미합니다. 예를들어, 개발사업은 천연기념물 거북이를 완전히 멸종시켰다. 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저 문장에서 '완전히'가 꼭 필요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흔히 강조를 위해 자주 쓰는 표현들 '너무, 좀, 어느 정도, 그냥, 정말, 아주, 갑자기, 굉장한, 어쩐지.' 등의 표현은 최대한 삼가시는게 좋습니다. 또 하나 형용사, 부사를 덜어내는 방법으로 무의미한 부사와 동사의 조합을 '더 강한 동사'로 바꾸는 방법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들은 빨리 뛰었다.'를 '그들은 질주했다.' 로 바꿔 쓴다면 독자에게 더 강한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씁쓸히 웃었다.' 와 같이 역설적인 표현이거나 동사의 이미지를 평소와 다른 느낌으로 표현할 때는 형용사,부사 표현이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다음은 형용사,부사를 덜어낸 소설가 김훈의 문장입니다. '저녁에 나는 숙사를 나와 갯가 염전으로 갔다. 종사관과 당번 군관을 물리치고 나는 혼자서 갔다. 낡은 소금창고들이 노을에 잠겨있었다. 나는 소금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가마니 위에 엎드려 나는 겨우 숨죽여 울었다. 적들은 오지 않았다.' <칼의 노래> 중 위 문장에서 '슬프다.'는 단어는 어디에도 없지만 독자들은 엄청난 슬픔을 느낄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형용사,부사 표현 대신 훌륭한 묘사를 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상황을 설명할 때 슬프다, 즐겁다 등의 개념어로 서술하기 보다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거나 비유, 대구의 표현법을 활용한다면 독자들에게 훨씬 더 강렬한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비유를 할 때 주의해야할 점이 몇가지 있습니다. 일단 정치적으로 올바른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꿀 먹은 벙어리'라는 표현은 현시대에 쓰기에 장애인 차별적 성격을 나타내는 표현일 수 있습니다. 또 비유가 적절한 이미지를 환기하고 문맥의 흐름과도 어색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번 강의 과제로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1. 휠체어를 타고 움직이는 것은 마치 ( )와/과 같다. 사실 이 문장을 처음 봤을 때 위에서 말한 '정치적으로 올바른가'에 생각을 해봤습니다. 아무리 공감능력이 높더라도 제가 휠체어타는 분들의 마음을 완전히 헤아리지는 못할 것 같고, 어떤 식으로 표현하느냐에 따라 그분들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 표현 중 가장 좋았던 표현은 '발가벗고 걷는 것과 같다.' 입니다. 휠체어로 움직이면 타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단 이미지는 적절히 환기했고, '휠체어를 타고 움직이는 것'과 '걷는 것'의 표현이 맥락에 잘 맞아떨어져 좋은 비유라고 느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힘들지만 그래도 움직일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는 이미지를 환기하기 위해 '옥상에 핀 민들레꽃'이라는 비유를 했습니다만, 이는 '휠체어를 타고 움직이는 것'이 주는 역동적인 이미지와 맞지 않아 좋은 비유는 아니었습니다. 2. 취미를 직업으로 택하는 일은 마치 ( )와/과 같다. 비유를 하기 전엔 일단 자신이 환기할 이미지를 정해놓는 게 좋습니다. 위 문장을 예로 누군가는 '확률적으로 어려운 일이다.'를 또 누군가는 '재정적으로 안정적일 확률이 낮다.' '취미였을 땐 좋았지만, 직업이 됐을 땐 지루해 질 수 있다.'라는 이미지를 전달하고 싶을 수 있습니다. 일단 이미지를 정한 뒤 그에 맞는 적절한 비유를 찾는 방법이 논리적으로 수월합니다. 저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오랜 친구와 결혼하는 것'이란 표현이 좋았습니다. '결혼 전에는 그 친구가 무척이나 좋았지만, 결혼한 후에는 질려버릴 수 있다.'는 표현이 취미와 직업의 관계와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개념어, 쓸데 없는 형용사,부사 표현을 삼가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키가 크다.' 보다는 '그는 키가 183cm이다.'란 표현이 '그는 칠칠치 않다.'보다는 '그는 소변을 보고 오면 종종 바지에 흘린 자국을 남긴다.'란 표현이 훨씬 우리에게 확실한 이미지를 각인시켜 줍니다. 이번 강의의 과제를 살펴보겠습니다. '그 남자는 속물이다.'란 표현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바꿔볼까요? 특정한 상황, 행동을 설정하면 됩니다. 오늘 본 표현 중 가장 좋았던 표현은 이렇습니다. '그의 책상은 정리정돈이 잘 돼있다. 신년 선물로 보내준 예술의 전당 다이어리는 책상의 잘 보이는 곳에 두었다. 그의 책상 왼쪽엔 후원하는 아프리카 어린이의 사진이 있다. 그런 그가 늘 입에 담고 다니는 말이 있다. '업소, 강남, 언니.' 문장에서 우리는 그가 예술에도 관심이 있고, 봉사도 하는 사람이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업소, 강남, 언니'라는 표현을 달고 달아 이중적이고 속물적인 모습을 아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실을 다룬다는 측면에서 논픽션과 다큐멘터리는 일맥상통합니다. 다큐 감독들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늘 영상이나 장면으로 구현합니다. 수강생들이 다큐 감독이라고 가정하고, 다음 예시를 참조해, 보여주고 싶은 장면을 제시해 봅시다. '한국에서 연애하는 것은 너무 힘들다.' 이번에도 오늘 본 표현 중 제게 가장 인상깊었던 표현을 쓰겠습니다. '소개팅자리, 저녁 7시 남녀. 스타벅스에서 즐겁게 대화를 나누며 웃고 눈빛도 교환한다. 둘은 9시쯤 헤어진다. 남자, 여자에게 안부 카톡을 남기고 여자, 화답해준다. 남자, 애프터 신청을 썻다 지우길 반복한다. 남자의 눈에 고지서가 들어온다. 남자, 카톡을 지우고 아르바이트 자리를 더 알아본다. 여자,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컴퓨터를 킨다. 내일 취업스터디에서 검사 받아야 할 자기소개서를 수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취업난에 시달리는, 연애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20대의 비애가 묻어나 개인적으로 인상깊었습니다. 요즘 다큐멘터리는 나레이션 없이 시청자에게 구체적 상황만 제시하는 형식으로 만들어 지기 때문에, 다큐멘터리를 꾸준히 시청하신다면, 본인의 표현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번 강의는 여기까지 입니다. 1주차 강의 후기 : http://academy.peoplepower21.org/index.php?mid=lecture_board&document_srl=1177350 2주차 강의 후기 : http://academy.peoplepower21.org/index.php?mid=lecture_board&document_srl=1205289 3주차 강의 후기 : http://academy.peoplepower21.org/index.php?mid=lecture_board&document_srl=1235767 4주차 강의 후기 : http://academy.peoplepower21.org/index.php?mid=lecture_board&document_srl=12563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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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권의 정치철학 - 고전으로 이해하는 정치사상 <당대편> | [김만권의 정치철학-고전으로 이해하는 정치사상 <당대편>] 3강 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 혠벗 | 2015.3.31 | |
고전으로 이해하는 정치철학 <당대편>에서 세 번째로 다룬 고전은 미셸 푸코의 1975년 작 <감시와 처벌>이다. <감시와 처벌>은 그의 대표작이자 동시에 전환점이다. <감시와 처벌> 전, 그러니까 1975년까지 그의 철학이 ‘지식의 고고학’이라면, <감시와 처벌> 이후에는 ‘권력의 계보학’이라고 불린다. 지식의 고고학이란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들, 즉 단절된 지식을 고고학과 같이 발굴하여 해석을 가하지 않고 관찰하는 것을 의미한다. 계보학은 오늘 날 우리의 사고방식과 지식을 권력과 관계 지어 탐구하는 방식이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이후 철학의 목표는 진리 추구에 있었다. 푸코는 이 ‘앎을 향한 의지’가 참과 거짓을 늘 대조시키고, 거짓은 나쁜 것으로 여겨 배제 시키는 일종의 권력을 낳는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하나의 지식이 ‘진리’라는 이름으로 권력을 만들어 내면, 이 권력은 배제라는 수단으로 다른 담론의 형성을 막아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한 지식을 재생산하고, 이 지식은 다시 권력을 강화 시킨다. 이와 같이 진리와 권력의 관계-서로를 재생산하는 관계를 푸코는 ‘진리의 레짐’이라고 불렀다. 또한 그는 진리의 레짐이 이미 우리의 일상 속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데에 주목했다. 일상에 퍼져있는 (종속적) 지식은 권력관계를 구축하고, 개인이 스스로를 조정하고 굴복하게 만든다고 했다. 푸코가 말하는 ‘권력’이란 이처럼 알게 모르게 일상에 내재되어있는 힘을 의미한다. 푸코는 권력을 “국가 대 개인”의 프레임 속에서 이해하는 전통적인 방식을 ‘비판의 집중화(centrality of criticism)’라고 불렀다. 그는 앞서 말 한 대로 “권력이 지식과 관련을 맺으며 국가뿐만 아니라 사회 내의 모든 분야와 일상생활(법률, 학문, 사회, 공장, 기업, 학교, 성생활 등)에 구축되어 있다”고 보았다. 보이지 않지만 일상 속에 깊이 들어와 있는 권력에 대한 비판에 기존의 국가-개인 프레임은 적절치 않다. 푸코는 새로운 연구 방법, 즉 계보학을 창안한다. 계보학은 “특정한 사회기제에 존재하는 지식을 역사적이고 비판적인 관점에서 탐구‧비판”한다. 국가-개인 프레임에 비해 훨씬 미시적이고 세부적이라 할 수 있는데 푸코는 이를 ‘비판의 지역성(locality of criticism)’이라고 불렀다. 이 방법론을 통한 연구에서 권력은 “전략으로서 이해되어야”하며, 권력지배의 효과는 “배열, 조작, 전술, 기술 작용 등에 의해 이루어”진다. <감시와 처벌>에서 푸코는 권력이 인간의 신체를 다루는 기술, (종속적) 지식을 불어넣는 전략을 분석함으로서 사회를 구성하는 메커니즘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감시와 처벌>은 루이 15세 때 있었던 끔찍한 신체형(신체형벌, 고문) 묘사로 시작한다. 전근대 사회에서 권력이 가하는 폭력은 “‘진실’을 밝힌다는 명목으로 정당화”되고, 구경꾼들에게 왕이 절대 권력이라는 종속적 지식을 심어주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형벌이 주는 공포감이 “수형자에게 부과된 치욕이 효과”를 “동정이나 영광”으로 역전 시켜, “사형집행인의 합법적 폭력이 불명예스러운 행위로 변화”되는 부작용(?)이 있어,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잔인한 신체형은 사라진다. 근대적 형벌은 정신에 대한 형벌, 자유를 박탈하는 형벌이며 신체는 이를 위한 도구이자 매개체가 된다. 또 단순히 범죄에 대한 징벌에서 범행의 재발을 막기 위한 ‘교정’으로 초점이 바뀌고 처벌의 목적 역시 “죄인을 개조”하는 것으로 변화한다. 푸코는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신체, 다시 말해 “복종시킬 수 있고, 쓰임새가 있으며, 변화시킬 수 있으며, 나아가 완전하게 만들 수 있는 신체, 바로 순종하는 신체”에 주목하였다. 그는 18세기 군대, 학교, 구빈원의 억압적인 규율 중에서 폐쇄적 공간배치와 개인의 서열화가 ‘순종하는 신체’를 만드는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규율은 ‘독방’, ‘자리’, ‘서열’을 조직화함으로써 복합적인 공간을, 즉 건축적이면서 동시에 기능적이고 위계질서를 갖는 공간을 만들어 낸다. (...) 그 공간은 개개인을 작은 단편으로 절단하고, 또한 조작 가능한 관계를 수립한다.” 푸코는 건축화 된 규율을 17세기 페스트의 도시와 판옵티콘에서 찾았다. 17세기 페스트가 발생한 도시에서는 “엄격한 공간 분할이라는 행정조치”가 취해진다. 각 가정집의 문을 밖에서 걸어 잠그고, 매 아침 창문으로 점호를 하는 등 폐쇄, 봉쇄, 배제, 분할과 통제가 주를 이루는 이 조치는 주민들의 안전을 명분으로 개인에 대한 끊임없는 감독과 감시를 정당화한다. 어기거나 반발하면 사형. “위계질서, 감시, 시선, 그리고 기록행위가 구석구석까지 스며든, 페스트에 감염된 도시, 개개인의 신체를 명백히 감시의 대상으로 확장하는 권력의 운용 속에서 꼼짝 못하게 된 도시”의 일상적‧건축적 형태가 바로 벤담의 ‘판옵티콘’이다. 판옵티콘의 구조는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이며(강의록 p.49~50 참고), 광인, 병자, 죄수, 노동자, 학생(어린이) 수용을 목적으로 한다. “측면에서의 불가시성”(원형건물의 분할된 부분들과 완전히 분리된 독방들)은 개인들을 완전히 개체화 하고 집단행동을 원천봉쇄하여 질서를 만든다. “가시성”(충분한 빛과 감시자의 시선)은 자율성을 만든다. 여기서 말하는 자율성은 개인이 감시를 내면화하여 더 이상 감시를 받지 않더라도 스스로를 규율하는 것, 나아가 스스로 ‘권력의 전달자’가 되어 질서를 지키지 않는 사람을 배제 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푸코는 이 판옵티콘을 “인간의 일상생활과 권력과의 관계를 규정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보았으며, 판옵티콘에서 볼 수 있는 자율성이 “근대적인 개인의 자율성의 실체”라고 말한다. 이는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에 대한 믿음을 기초로 하는 자유주의자들에 대한 공격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민주주의나 전체주의 사회나 똑같이 판옵티콘을 메커니즘으로 하고 있고, 단지 감시탑의 개방성만이 차이이며 이 차이가 메커니즘의 부패를 막는다고 보았다. 이쯤 되니 나는 물론이고 수업을 함께 듣는 분들이 다 같이 힘들어하시고 우울해하셨다. 학교에서 푸코를 배우는 내내 우울했다는 옆자리 언니의 말이 백 번 이해가 되면서 답답함이 목까지 차오르는데, 무거워진 분위기에 당황하신 김만권 선생님께서 <감시와 처벌>과 계보학의 의의를 다시 상기시켜 주셨다. 푸코는 계보학을 통한 권력 비판이 대안을 줄 수는 없다고 인정하면서, 전통적인 프레임 내에서 획일적인 권력 비판과 대안이 잘못 된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 계보학의 목표라고 했다. 다르게 생각하면 다르게 행동할 수 있다. 모든 것이 ‘구성’된 것이라면,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가능성 역시 우리에게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