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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마지막 주말 <구르지예프 무브먼트 세미나>가 열립니다.


이번 주말 <구르지예프 무브먼트 세미나>가 열립니다. 


구르지예프 무브먼트가 무엇인가요? 

구르지예프 무브먼트를 왜 하나요? 

구르지예프 무브먼트가 무엇에 좋나요? 

구르지예프를 통해서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나요? 라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답하기 어렵지만,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라 '피아노'(악기) 로 태어났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일단은 나를 쳐줄 주인을 만나는게 제일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길가에 술 취한 사람, 사춘기에 있는 소년들 혹은 피아노를 모르는 누군가가 나를 막 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면 나는 나의 존재의 이유를 실현하기 못한 채 녹슬어가고 고장나서 금방 손쓰기 힘든 상태로 갈 것이 뻔합니다. 나는 이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주인을 만났다고 가정한다면, 이왕이면 그 주인이 좋은 사람이였으면 좋겠습니다. 나를 함부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소중히 대해줄 수 있는 섬세함과 감응력을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주인이 실력 있는 연주자이거나 앞으로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연주자(주인)가 나를 통해 동요를 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나는 동요만을 위해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멜로디언'이 아니라 '피아노'라서 이왕이면 더 다양한 음악을 쳐주면 좋겠습니다. 가능하다면 바흐에서 바그너, 모짜르트, 베토벤까지... 나를 구석구석 사용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그게 내가 태어난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나는 나의 진가를 보여줄 것이고.. 그럼으로 나는 기쁠 것이고.. 연주자는 이를 위해 더 높은 감정과 더 높은 감각과 더 높은 사고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연주자를 더 높은 존재의 상태로 이끌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관계로부터 무언가가 흘러나옵니다. 그리고 이것이 조화롭고 조율되었다면 '좋은 음악'이 나올 것입니다. 누군가는 이것을 '우주의 반영' , '우주의 소리' 라고 표현했습니다. 무엇이라하든, 이 관계로부터 흘러나온 무언가는 세상을 보다 풍요롭게합니다.  


어쩌면 그 연주에서 연주자는 나(피아노)와 하나임을 경험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나는 계속 피아노인가요? 연주자는 계속 연주자인가요? 그곳에 음악이 있습니다. 음악은 어디에서부터 흘러나오나요? 음악은 어떻게 가능한가요? 음악은 무엇인가요? 그곳에 가능성의 세계가 있습니다. 나는 그 가능성을 원합니다. 그러나 나는 우선 주어진 것을 구석구석 사용해야합니다. 나에 대한 지식을 얻고 기능을 익히고 사용법을 배우고 연주 스킬을 향상시켜야합니다. 그게 방식입니다. 나는 피아노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수 많은 건반을 두고 동요만을 반복한다는 것은 상당히 이상한 일입니다. 실은 억울한 일입니다. 그러나 자연은 이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미완성인 상태로 우주 속에 남겨졌습니다. 연주자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가만히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는 바흐를 연주할 수 없습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것만으로 모차르트를 연주할 수 없습니다. 음악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으로 연주자가 될 수 없습니다. 기계적으로 베토벤의 곡을 트레이닝하는 것만으로 베토벤이 느낀 감정을 느낄 수 없습니다. 적절한 행위가 필요하고 감정이 필요하고 사고가 필요합니다. 이 모든 것 안에 노력이 있습니다. 적절한 방향성 속에 있는 노력이 있습니다. 나는 요행을 바라지 않습니다. 나는 내게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고 사용합니다.   


이것 없이는 나의 상상력이 나를 데려갑니다. 나의 좋고 싫음이 나를 데려갑니다. 나의 육체적 욕망과 충동이 나를 데려갑니다. 나의 고정된 생각이 나를 데려갑니다. 나의 트라우마가 나를 조종합니다. 나의 결핍된 감정이 모든 것을 이끌어갑니다. 즉, 나도 모르는 누군가가가 나를 데려갑니다. 나를 연주할지 모르는 사람이 나의 주인이 됩니다. 


이 모든 것을 내가 좋아하고 싫어할 수도 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선, 내가 데려가지는지(누가 나를 치고 있는지) 모르기에 싫어하거나 좋아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안다고 가정하더라도, 중요한건 나는 ‘멜로디언’이 아니라 ‘피아노’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 동요를 좋아해도 괜찮고 싫어해도 괜찮습니다. 그건 요점이 아닙니다. 중요한건 나는 동요를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성장이라는 방향성이 우리 앞에 두 팔을 벌리고 서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직접 발을 움직여야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영원히 우리를 기다릴 것이라는 생각은 해롭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예수님이 지옥이라는 말로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구르지예프 무브먼트는 보다 높은 질서로부터 우리에게 전해진, 우리를 구석구석 사용하게끔 하는 ‘호모 사피엔스’를 위한 도구입니다. 적절한 방향성 속에서 노력할 수 있게끔 우리를 안내해주는 지혜의 춤입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하나의 ‘가능성’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 '바라봄' 안에는 ‘의식적 노동’과 ‘의도적 고통’이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자신과 작업합니다. 이것이 누군가에겐 단비이고 누군가에겐 성가심입니다. 이는 누구도 바꿀 수 없습니다. 


따라서, 구르지예프 무브먼트는 함께 하는 일 WORK 입니다. 한 개인의 내적 작업이 집단을 만듭니다. 내가 나와 일하고 동시에 타인과 일합니다. 그리고 일 WORK 과 일합니다. 그렇게 새로운 가능성의 에너지를 초대합니다. 보다 높은 보다 섬세한 보다 정교하고 조화로운. 그렇게 우리는 함께 성장합니다. 나와 가족 그리고 나의 주변 나아가 모두가 '안녕'하길 기원합니다.  


함께 작업하실 분은 환영합니다. 

개별적으로 연락주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사랑입니다. 


<조화로운 성장 연구소> 드림

https://harmoniousgrowth.modoo.at/


안내 및 신청

구르지예프 무브먼트 세미나 (goog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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