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참여연대 느티나무아카데미에서 열린 주은경 선생님의 북토크에 다녀왔다. 토크는 선생님이 15년 전, 과로로 몸이 안좋아져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머물렀던 캐나다의 한 영성 공동체에서의 시간을 담은 책, <나의 오래된 순례, 마돈나하우스>에 대한 나눔이었다. 붉은 원피스에 반짝이는 테두리가 돋보이는 검은 중절모를 쓰신 선생님의 의상은, 오래 전에 방문했던 수도원 공동체에서의, 어찌보면 ‘한 때의 추억’으로 치부될 경험이 현재 삶 속에서 소중한 자산으로 남아 있다는걸 보여주는 기쁨의 증표로 보였다. 당시 순례길에 올랐던 47세의 당신을 돌아보며 “애기가 아니었던가” 하고 웃으셨을 때, 문득 ‘그럼 나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건가?’ 하는 의문과 함께 미소가 지어졌다. 캐나다의 추운 겨울에 마돈나하우스에서 선생님이 보낸 일상은 겉으로는 꽤 단조로워 보였지만, 내적으로는 놀라움의 연속으로 가득찬 시간으로 전해졌다. 그 놀라움이란 외부에서 벌어진 특별한 사건 때문이라기보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들에 대해 묻혀 있던 당신의 본성과 감성을 마주하게 된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고요한 밤의 적막이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렸다고 책에서 회고되었듯 말이다. 강의는 순례의 경험을 통해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얻은 깨달음을 나누는 내용이었어도 충분히 의미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일상 속에서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일종의 고백과 같은 이야기였기에 울림있게 와닿았다. 인상 깊었던 질문 두가지는, “고독과 공동체는 공존할 수 있는가?”, 그리고 “개인의 영성과 사회적 영성은 함께 나아갈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었다. 온전한 소속감과 존재로서 수용받을 자유를 동시에 갈망하는 인간이기에, 우리 모두 마음속에 같은 질문을 품은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제가 얼마나 뻣뻣한지 아시죠”를 재차 굳이 강조하시며 한복을 입고 춤을 춘 사진을 보여주셨는데, 중년의 나이에 사뭇 엉성하고, 준비되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낯선 시공간에서 펼쳤을 때 경험되었을 호기심과 환대의 감정들이 간질간질하고 따뜻한 온기로 내게 전달되었다. 토크가 어느새 끝이 났고, 홀의 뒤편에 앉아있었는데, 내 옆에 어떤 분이 토크가 끝나자 중후한 목소리로 우렁차게 한 손을 들고 외치며 걸어나왔다. “잠깐만 ! 이건 불법이야! 축하공연도 없는 북토크를 용납할 수 없다!” 며 곧이어 다른 분들과 함께 무대로 나오시더니 언론인 중창단이라고 소개를 하셨는데, 이 익살스러운 소개에 웃음이 터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의 공연이 첫 데뷔 무대라고 당당하게 자신들을 소개하는 모습을 보며, 가슴 한켠이 시원해졌다. 내가 아는 한국의 중년들은 완벽하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창피해한다. 그런데 이렇게 당당하고 즉흥적인 모습이라니? 그들의 열린 태도에 모든 노래가 신나게 들렸다. 더 크게 소리 지르고 환호하고 싶었지만, 조금 자제한 것도 있었다. 왜 다들 더 환호 안하지? 를 궁금해 하면서 30대 후반을 달리고 있는 내가 주변의 ‘중년’에 들어선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은 더 이상 자신이 누구인지 묻지 않는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의견을 지지하는지, 무엇을 생산하고 내놓을 능력이 있는지를 말하느라 바쁘다. 얼마 전 유튜브 쇼츠를 시작한 나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 토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그런 일상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상을 충실히 살아가면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따뜻한 상기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용기를 잃지 말자는 성찰의 초대이기도 했다. 주은경 선생님을 자주 뵙는 편은 아니지만, 뵐 때마다 선생님의 시선과 질문들 사이에서 늘 무언가를 탐색하고 계시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 궁금함에 이끌려 이번 북토크 행사에 함께하게 되었고, 여전히 미묘한 호기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한 어른의 시선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 글은 황정인님께서 작성해주셨습니다.국제기후종교시민네트워크 ICE 네트워크 활동가, 사운드 오케스트라 & 음악평화워크숍 리더, 요가 강사
톡톡! 참토크 2회 - <꿈을 꾸게 하는 꿈이 있다> 출간기념 북토크
폭신
신기하게도 이문재 시인 북토크 전날 개기월식이 있었습니다. 대보름과 개기월식이 겹친 것은 36년 만이라고 하지요. 이번 개기월식은 지구 그림자가 완전히 달을 덮은 그 순간, 달이 조금도 지워지지 않아 더욱 특별했어요. 오히려 뺨에 물든 홍조처럼 발갛게 빛나는 보름달이 되었거든요. 지구의 대기를 통과한 태양광 중 파장이 긴 붉은 빛이 달에 닿았기 때문이라고 해요.《꿈을 꾸게 하는 꿈이 있다》 북토크는 꼭 그 보름달 같았습니다. 보통 북토크는 저자와 사회자가 무대에 있고, 모든 청중은 앞만 보는 형식으로 진행되잖아요. 이번 북토크도 ‘1부 시인과의 대화’는 그렇게 진행이 되었습니다. 월식처럼 차츰차츰 이야기에 몰입되어 가는 전 단계를 충분히 거친 것이지요. 참여자들이 쏟아낸 무수한 질문 덕분에 작품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시간이었어요. 내 안에 머물던 질문이 다른 이에게서 흘러나올 때는 친근함이 느껴지기도 했고요. 그렇긴 해도 그때까지 참가자들은 그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타인일 뿐이었지요. 12시 방향으로 향해있던 눈동자들이 서로를 향하게 된 건 ‘2부 감상 나눔’부터였어요. 모두가일제히 일어나 의자의 방향을 서로를 향해 돌린 것이지요. 대보름처럼 커다란 원 모양으로 둘러앉은 우리는 쑥스러워 발그레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 보았습니다. ‘눈동자는 다른 눈동자와마주 보게 하기’수록시 <너도 봄날> 중에서라는 시구가 피부로 와닿았어요. 한 명씩 돌아가며 시를 낭송하고, 그 시에 대한 감상을 나누는 동안에는 ‘내 생각이 피부 밖으로 나가/ 다른 몸 안으로 들어가 본 적이 과연 몇 번이나 있었는지’수록시 <피부 바깥으로> 중에서라는 구절이 절로 떠올랐지요. 시를 읽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시를 몸소 겪게 하는 북토크여서 내내 경이로웠어요.《꿈을 꾸게 하는 꿈이 있다》 시집을 읽으면 저절로 내면화되는 화두가 있습니다. ‘환대’와 ‘기도’와 ‘연결’이지요. 점점 더 ‘물려줘선 안 되는 세상’수록시 <죄와 벌> 중에서이 되어가는 현실에서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가치들을 시詩로 선물 받은 느낌입니다. 시인을 향한 감사를 그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참가자가 공통으로 느꼈던 것 같아요. ‘공동체춤’이라고도 불리는 ‘서클댄스’로 축하의 마음을 전하는 시간이 왔을 때 옆 사람의 손을 모두가 스스럼없이 잡을 수 있었던 이유겠지요. 음악에 맞춰 느리게 느리게 움직이는 동안 우리는 서로를 환대하고, 기도의 마음을 전하며, 하나로 연결되는 감각을 나누었습니다. ‘반대편에 떠 있는 태양’수록시 <직사광선> 중에서의 빛을 받아 수줍게 빛나던 달처럼 우리의 눈빛도 북토크를 통해 잠시나마 서로를 비춘 셈이지요. 손에 손을 맞잡고 다함께 거대한 눈동자가 되었던 그 순간이 오래오래 잊히지 않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