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5인에게 시대의 길을 묻다

  • 강사

  • 기간

    • 2017. 3. 7 ~ 2017. 4. 4
  • 시간

    • 화 19:00-21:30 총5회
  • 수강료

    80,000

    • 파격 할인혜택
    • 참여연대 회원5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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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세 정보

    강의 소개 |

    “이제 시작이다”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 가결되었을 때, 광장의 시민들이 외친 구호입니다.

     

    시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또는 정권교체만이 목표가 아니라고 합니다. "이게 나라냐"라는 탄식이 터져나올 정도의 적폐로 증축된 대한민국호가 아니라 새로운 사회, 새로운 나라로서의 대한민국을 이이기하고 있습니다.

     

    2017년 역사학자 5인에게 시대의 길을 묻습니다.

    오늘 우리가 목도하는 적폐와 우리 안의 박근혜와 최순실은 어떤 시간들로부터 온 것인지, 우리가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 힘을 역사속에서 어떻게 찾을 수 있을 것인지, 역사에 대한 성찰 속에서 시민들과 함께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강의 일정 |

    일정

    강사

    주제

    3.7

    김정인

    독립운동에서 2017년의 길을 찾다

    3.14

    박한용

    청산하지 못한 역사는 반복된다 :

    건국절 논란과 국정교과서 음모

    3.21

    이신철

    탈식민, 탈냉전의 대한민국을 꿈꾸다

    3.28

    박태균

    베트남 전쟁으로 오늘 한국 민주주의를 다시 본다

    4.4

    황병주

    우린 박정희와 이별할 수 있는가

     

    강사 소개 |

    김정인  춘천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 근현대 민주주의 역사와 현대 대학사를 주로 연구하고 있으며, 동아시아 역사대화에 관심을 갖고 한중일 3국 공동역사편찬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저서로 『천도교 근대 민족운동 연구』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 『역사 전쟁, 과거를 해석하는 싸움』 등이 있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발간에 주도적 역할을 하는 등 역사청산에 앞장서고 있다.

     

    이신철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연구교수.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있다. 저서로는 『한일 근현대 역사논쟁』,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북한 현대사』(공저),

    『동아사이 근대 역사학과 한국의 역사인식』(공저) 등이 있다.

     

    박태균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한국학전공 주임교수. 주로 한미관계사와 전쟁사를 비롯한 한국현대사의 주요 이슈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으며, 주요 저서로 『현대사를 베고 쓰러진 거인들』, 『조봉암 연구』, 『한국전쟁』, 『우방과 제국, 한미관계의 두 신화』, 『원형과 변용: 한국 경제개발계획의 기원』 등이 있다.

     

    황병주  역사문제연구소 상임연구위원. 주요 저서로 『1970 박정희 모더니즘』, 『근대를 다시 읽는다』(이상 공저), 주요 논문으로 「새마을 운동을 통한 농업 생산과정의 변화와 농민 포섭」 「유신체제기 평등·불평등의 문제설정과 자유주의」 등이 있다.

     

    강의 정보 |

    일  시 : 2017. 3. 7. ~ 4. 4. 매주 화요일 19:00 ~ 21:30, 총5회

    장  소 :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

    참가비 : 8만원(참여연대 회원 30%)

     

    ※ 강좌할인 및 취소환불 규정은 수강신청안내를 꼭 확인하세요.

    후기 4

    • 역사학자 5인에게 시대의 길을 묻다 - 3.28. 베트남 전쟁으로 오늘 한국 민주주의를 다시 본다, 박태균

      2017.3.31 누완다 역사학자 5인에게 시대의 길을 묻다

      “베트남 전쟁과 한반도 : 목표는 달성된 것인가?” 라는 주제로 박태균 교수님께서 강의해 주셨습니다. 과연 우리는 베트남 전쟁으로부터 어떠한 교훈을 얻었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베트남 전쟁에 대하여 교과서는 경제적 효과만 언급한다.

      아직까지 잘못된 인식은 한국군의 군사적 업적 외에 다른 문제들은 모두 잊혀져 있다는 것이다. 원래 우리는 남베트남을 도우러 간 것이었다. 전쟁의 본질은 내전 / 시민전쟁 이었다.

       

       

      1964년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미국은 베트남 공산화가 동남아시아의 공산화로 이어질까 우려했다. 또한 중국의 1호 핵실험으로 미국은 중국이 인도차이나를 통해 동남아시아 모두 공산화할까 걱정을 하게 된다. 그런데 당시 중국과 베트남의 관계는 좋지 않았다.

       

       

      당시 한국은 왜 가게 되었을까?

      1964년 존슨 행정부의 요청이 있었다. 이승만 정부의 파병 제안도 있었고, 1961년 박정희 의장이 워싱턴 방문시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이유는 한미관계와 안보적 문제 때문이었다.(한국군이 가지 않으면 미군이 갈 것) 한국군과 미군의 감축 문제로 특별히 더 중요했던 문제는 한국군 감축으로 그 감축을 막는 방법은 파병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안보적 목적은 달성되지 않았다. 오히려 1967년 안보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어쩌면 베트남 참전이 안보위기를 불러온 것은 아닐까?

      이후, 닉슨 대통령이 취임하고 1970년 일방적 통보, 1971년 주한미군 1개 사단이 철수한다.(사전협의는 없었다.) 결국 파병으로 달성된 목적은 없었다.

      그러나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동맹국들이 전쟁특수를 통해 경제성장을 거두게 된다.(필리핀, 한국, 태국 등)

       

       

      이렇게 베트남에서 돈이 유입되지만, 우리는 1960년대 말 외환위기를 겪는다. 1979년대 말에 또 한 번 반복된다. 그 많던 외화는 모두 어디로 갔는가?

      전쟁에서 진 이유도 미스터리로 남는다. 베트남에 간 군인들에게 목표가 없었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잘못된 교훈이 남긴 유산이 2003년 이라크 파병이다. 파병 전 9월에서 10월 한달간 여론조사로 180도 의견이 바뀐다. 주변국 일본 자위대의 파병 확정과 UN 결의안 채택, 그리고 돈을 벌어온 베트남 전쟁의 기억이 작용했다. 방송의 베트남 전쟁 경험 환기도 한 이유가 된다.

       

       

      다른 나라인 남의 전쟁에서 도와주는 재건이 아니라, 그 곳에서 무언가를 얻겠다는 자체가 문제다.

      일본에게 떳떳하려면 우리도 전쟁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진실은 덮을 수 없다. 나중에 우리 발목을 잡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정의의 전쟁이 아닌 것도 문제지만, 다른 나라 전쟁에서 돈을 벌어온 것이 자랑은 아니다. 후손들에게 창피한 일이 될 수 있다.

      또한 진실된 사과를 해야 참전한 군인들도 가해자에서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참전한 군인들도 피해자이다.)

       

       

      *질의 ; 당시 60년대는 빈곤해서 그랬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지금도 그 기억을 벗어나지 못할까?

      결국 박정희의 유산이 박근혜 정부다. 이번 탄핵으로 역사인식을 바꿀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 베트남 전쟁 관련 사과 활동을 알리고 돕는 ‘평화재단’에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다.

       

    • 역사학자 5인에게 시대의 길을 묻다 - 3. 21. 탈식민, 탈냉전의 대한민국을 꿈꾸다, 이신철

      2017.3.23 누완다 역사학자 5인에게 시대의 길을 묻다

      1. 왜 탈식민 탈냉전인가?

      1) 역사인식과 미래

      ※ 촛불에 나타난 역사 인식

      ∙30년 주기설(25년에서 40년 사이)

      예) 1894 동학농민운동, 1919 3.1운동, 1980 광주 민주화 운동, 1987 6월 항쟁 등

      ∙박근혜의 뿌리는 박정희 – 블랙리스트는 일제 시대에도 있었음.(독립운동 명단)

      1970년대 이후 노조 명단(동일 방직)도 있었으나 본격적으로 이명박 정권에서부터 시작됨.

      ※ 역사 논쟁의 핵심 쟁점

      ∙건국절 논란 – 결국, 대한민국 정통성과 관련되어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이미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한 공화정이었다. 건국절을 주장하는 이들은 국제법상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국가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이는 제국주의 식민지 지배를 합법화하는 주장으로 우리 시각이 아니다. 어쩌면 이것은 단순하게 ‘건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해결될 수 있다. 10월 3일 개천절이 더 근본적인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화와 산업화 – 민주화는 정치인들만의 민주화가 아니다. 실제 싸운 건 전태일 열사와 같은 대중들이다. 산업화 또한 노동자와 농민의 힘으로 이루어 낸 것이다. 그 핵심 주역들은 모두 동시대의 같은 사람들이었다.

       

      역사관 = 세계관, 곧 미래를 바라보는 눈이라고 할 수 있다.

       

      2) 1945년 이후, 제국주의는 사라졌을지 몰라도 제국의 논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결국 제국의 시대가 종말되었는가의 문제는 식민주의 청산의 문제이다.

       

      2. 동아시아 냉전체제와 전후체제

      1) 청산하지 못한 식민주의는 제국주의 질서(힘의 관계)가 온전하게 남아있다. 전후 사과를 제대로 한 나라는 하나도 없다. 1년간 8만명을 학살한 독일의 사과도 그저 흉내만 낸 것에 불과하다.

      2) 한국 식민주의 청산의 좌절

      ▪식민주의자 처벌의 사례 – 평안북도 내무부장 다카하시

      1945년 9월부터 1947년 3월까지 총 네 차례에 걸쳐 241일 동안 구금과 조사, 유치와 석방, 출두와 귀가, 보석 등을 반복하던 중 1946년 8월 8일 “일본인의 유력관리를 불구속하여 취조한 것에 대해서 조선인 측 친일반동 분자를 구속하는 것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에 의해서 조선인 측으로부터 비난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당분간 구속한다.”라는 통보와 함께, 신의주 민교화소에 수용.

       

      3. 식민과 냉전의 균열 – 제국의 지배를 끝내지 못해, 식민지배는 계속된다.

      1) 동아시아 냉전체제 극복을 위한 해결 방안 모색

      ▪식민주의 청산과 신식민주의에 대한 저항성을 담보한 탈식민주의, 제3세계와의 연대 – 국제사회에 대한 식민주의 청산, 탈식민주의 촉구

      (연대에 대한 국가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같은 길을 가는 나라와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

       

      # 질의 응답

      1. ‘대일청구권’에 대하여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린다.

      - 일본과 처음부터 협의는 없었다. 북한에도 우리나라와 동일하게 ‘경제 협력 자금’으로 이야기했다. 독립운동 피해에 대한 보상이 아니고, 단지 돈을 더 많이 주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독일도 전후보상은 했지만, 식민지 문제는 별개의 문제다. 김영삼 정권에서처럼 “역사를 기억하자.”는 의미로 교과서에도 기록하고 기억하고 배상하면서 그 다음에 일본에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예전 박근혜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하여 단지 100억원 받는 것으로 끝냈다. 이는 2만명으로 추산하는 위안부 한 명당 50만원씩 돌아간다. 20만명이면 5만원 배상받는다. 이러한 비용 또한 실제 교육에는 사용할 수 없다는 것도 문제다.

       

      2. 배상문제보다 사과, 사죄가 더 중요한가?

      - 식민지 지배는 범죄다. 그런데 정작 가해자인 유럽이나 미국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그들의 공동 교과서에도 ‘일본이 피해를 입은 국가들에게 충분히 보상했다.’라고 기록해 두었다.

       

      3. 65년 한일회담시 독도 폭파설이 있었는데, 사실인가?

      - 신문기사, 미국 문서에 기록되어 있다. 실제, 김종필씨에게도 메일을 보냈으나 ‘아니다.’라는 답을 들었다. 독도가 분쟁 소지가 있기 때문에, 그저 하나의 의지 표명으로 보면 좋을 것 같다.

       

      4. 중국은 배상 문제가 없는 배경은 무엇인가?

      - 당시 연합국 일원인 모든 나라가 배상을 받지 않기로 했다. 실제 한국 전쟁 후, 중국은 타이완이 나간 빈자리로 인해 유엔 안보리에 가입하게 되고, 5대 강국으로 인정받게 된다.

      베트남도 우리에게 학살에 대한 보상 요구는 하지 않는다. 그저 경제 협력만을 바랄 뿐이다.

       

      5. 위안부 문제가 정작 여성들의 목소리는 없이 남성들의 시각에서만 다루어지는 것은 아닌가? 위안부 문제 뿐 아니라, 미군 양공주, 기생 관광 등 다른 많은 문제도 있다.

      - 위안부 문제는 분명 인권에 대한 반인도적인 범죄이다.

      한 예로 마포에 위안부 관련 건물을 세울 때, 광복회가 가장 먼저 나서서 반대했다. 철저한 남성들만의 시각이었다. 이러한 지나친 민족주의는 경계해야 한다.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처럼 보편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전세계에서 위안부 문제는 있었다. 유독 왜 일본만 가지고 그러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이는 모든 것이 함축된 식민지 문제로 보아야 한다. 왜 전쟁 당사국이 아닌 한국여성 수만명이 그렇게 위안부로 끌려갔는가? 결국 이는 식민지라는 구조적 문제이다. 일본은 18세 이상, 직업 여성들만을 대상으로 했지만, 우리는 나이 제한 없이 근로정신대라는 이름으로 모집을 했다.

       

    • 청산하지 못한 역사는 반복된다_박한용, <역사학자 5인에게 시대의 길을 묻다> 2강 후기

      2017.3.17 누완다 역사학자 5인에게 시대의 길을 묻다

        3월 14일(화) 두 번째 시간 강의는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선생님께서 해 주셨습니다.

        친일 청산과 국정 교과서 등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내용들에 대해 더 객관적으로 새롭게 볼 수 있는 눈을 키우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강의 내용을 옮겨 보겠습니다.

       

       

        역사는 fact에 기반한 학문일까?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유병언’은 정말 죽었을까? 아직 살아 있을까?

        “역사”에서만은 유병언은 죽어있어야 한다. 왜 그는 죽은 것으로 정리되어야 할까?

        역사에서 사실(事實)이 사실(史實)이 되기 위해서는 주관적인 개인적 가치가 들어가게 된다. 결국 역사는 사실(事實)이 없어도 가능한 ‘인문과학’이 된다. 우리는 역사를 그 맥락, 하나의 큰 흐름으로 보고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친일 청산’ 문제는 단순한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외국인 노동자, 베트남 전쟁과도 관련이 있다.

        요즈음 우리사회에서 볼 수 있는 역사 쿠데타는 크게 두 가지다. 국정교과서 문제와 건국절인데, 결국 이 두 가지는 하나의 문제라 할 수 있다.

       

       

        먼저 보수, 수구, 진보에 대하여 알아보자. 이들을 어떠한 기준으로 나누어야 할까?

      ∘3백년 묵은 종갓집 고추장에도 보수와 진보가 있다.

      ∘사람 사는 곳은 모든 분야마다 보수와 진보가 있고 그것이 ‘정상’이다.

      ∘‘비익조’ :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리영희)

        진보, 보수, 수구는 도덕적 잣대로 기준을 삼을 수 없다. 그것은 도덕과 관련이 없는 질서의 문제이다. 하나의 기준, 잣대를 제시한다면 그것은 헌법(가치규범이자 원칙)이고, 그 헌법의 최고 가치는 민중이다.

        이승만이 시작한 ‘직선제’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부정선거를 위한 목적에서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100년 전 민주공화국(대한민국 헌법 1조)은 당시에 진보였지만, 지금은 보수의 가치이다. 여기서 민주주의는 제도나 절차가 아닌 본질이다. 즉 민중이자 민주시민의 핵심은 동등함으로, 모든 이의 존엄성이 보장되어 평균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 이는 지금 뜨거운 화제가 되고 있는 기본소득과도 관련이 있다.

        간단히 요약하면, “보수”는 현재완료 진행형(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옴)이라 할 수 있다. “수구”는 아직도 “각하 때가 좋았지.”, “삼청교육대”, “일제 당시”를 이야기하며 그리워한다. 그들은 대한민국 헌법 1조(민주공화국)를 부정하고 있다. 보수는 헌법 1조는 지키자고 한다. 이것이 보수와 수구의 차이다.

       

       

        한국의 정치권력 흐름에서 보수와 수구의 탄생에 대하여 알아보자.

        1948년 8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68년 4개월의 헌정 기간 동안 수구-보수 양당체제 하 수구가 독점하였다. 장면의 8개월과 김대중, 노무현의 ‘잃어버린 10년’을 더하여 10년 8개월만이 보수의 집권기였고 나머지는 수구가 독점했다.

        여기서 ‘노무현은 진보가 아니냐?’는 물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가 개인적으로는 진보였을지 몰라도 그의 정책은 보수적이었다.

        이러한 수구의 장수 비결은 ‘6.25효과’, 바로 ‘분단 체제’이다. 수구를 지지하는 이들은 대다수가 6.25를 체험한 세대, 6.25에 공감하는 세대이다. 그러한 배경에서 ‘전쟁을 하기보다는 독재가 더 낫다.’는 논리로 수구를 지지하게 된 것이다. 이에 반대하면 ‘빨갱이’, ‘종북’으로 공격을 받는다.

        수구와 보수의 사상 기반은 친일, 친미, 반공, 자본주의 체제, 남한 단독 분단정부론 등 다섯 가지가 공통적이다. 그러나 가장 큰 차이는 앞서 언급한 대한민국 헌법 1조(민주공화국)에 대한 시각이다.

       

       

        ‘2008년 미국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는 MB가 미국 소고기를 파는 쇼호스트가 된 것도 한 원인이다. 당시 커다란 화제였던 ‘무상급식’으로 인해 급식에 미국 소고기가 사용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젊은 엄마들도 유모차를 끌고 집회에 함께 했던 것이다.

       

        반공을 돌파한 6/15선언은 '종북' 아이들을 탄생시켰다. 증오와 적대의 남북관계가 균열을 일으킨 것이었다. 

    • 역사학자 5인에게 시대의 길을 묻다 - 독립운동에서 2017년의 길을 찾다, 김정인

      2017.3.10 누완다 역사학자 5인에게 시대의 길을 묻다

      강의 첫 시간, 김정인 교수님께서는 ‘독립운동’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다양한 관점에서 하나하나 분석해 주셨습니다. 자치의 공간, 여러 주체의 탄생, 권리를 위한 투쟁, 사상의 향연, 법에 맞선 정의, 비폭력의 연대로 나누어 살펴보고 2017년 오늘 우리 사회 현실과 나아갈 방향을 찾아볼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강의 내용을 지면으로 옮겨 보겠습니다.

      ◦독립을 꿈꾸는 민주주의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한다. 이로써 세계 만국에 알려 인류 평등의 큰 도의를 분명히 하는 바이며, 이로써 자손만대에 깨우쳐 일러 민족의 독자적 생존의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려 가지게 하는 바이다.(3.1 독립선언서 中)

      - 독립국, 자주, 평등, 생존의 정당한 권리가 바로 우리 독립의 근거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 사이에는 민주주의가 남아돌 정도로 많았다.(김산의 말, 님 웨일즈의 ‘아리랑’에서)

      - 독립운동 자체가 민주주의 원리에 의해 움직인다는 의미입니다.

       

      ◦자치의 공간

      ▪주권 자치의 공간, 임시정부

      1919. 2. 28. (3.1.운동보다도 먼저) 연해주에 설립되었다.(3.1.운동으로 임시 정부가 세워진 것이 아니다. 3.1.운동은 독립운동을 자극하고 활성화했다.)

      임시정부는 군주정이 아닌 공화정을 표방했다. 헌법(대한민국 임시헌장)은 정부의 정당성을 유지시켜 주었다.

      임시정부가 승인을 받기 위한 외교 노력은 계속되었다. 중국도 승인하려고 했지만, 결국은 실패한다. 미국이 일찍부터 신탁통치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발적 결사체, 인민자치

      국회라 할 수 있는 임시의정원이 있었으며, 지역별로 나누어 실제 투표로 선출했다. 대의제에 대한 훈련도 되어있었다.

      사회주의정당, 민족유일당운동, 독립운동정당 세 갈래의 정당운동이 있었다.

      합법적인 전국적 정치 결사인 신간회가 있었다. 3년간 활동 후, 사회주의 노선에 의하여 깨지고 만다. 일제 치하라는 영향도 있었다.

       

      ◦주체의 탄생

      ▪선봉대로서의 학생

      휴교령과 동맹 휴학의 시대였다. 학생회를 만들자는 자치체를 획득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광주학생운동은 12월3일에 발생하여 다음 해 3, 4월까지 계속되었다. 이는 학생시위의 전국화였다.

      ▪노동자

      1923년에는 농민이 더 많아 조선노농총동맹이 결성되었다. 1927년에는 농민과 노동으로 갈라져 노농운동에서 노동운동이 되었다.

      임금 격차와 같은 민족차별로 인해 생존권을 위한 파업을 벌였다. 이러한 노동쟁의의 정점은 1929년 원산 총파업이다.

      ▪여성

      여성 스스로 여성을 깨우치려 했던 조선여자교육회는 유료 강연 수익금으로 야학을 열기도 했다. 여성계의 민족협동전선인 근우회는 실제로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활약했다.

      ▪청년, 어린이

      청년이라는 용어는 19세기 말에 등장했다. 청소년이라는 관념도 이때 처음 생겼다.

       

      ◦권리를 위한 투쟁

      ▪언론운동, 자유롭게 말할 권리를 달라

      언론은 현대인의 권리다. - 동아일보 1926년 8월 4일

      ▪형평운동, 인간답게 살 권리를 위한 투쟁

      1894년 갑오개혁으로 더 이상 ‘백정’이라는 언급은 없어졌다.

      조선의 형평운동은 순전히 인권운동에서 시작되었다.

      ▪교육운동, 차별없는 배움의 권리를 찾고자

      일본의 3면1교 정책으로 인해, 학교설립운동이 벌어졌다. 민립(사립)대학 설립 운동과 일반 학교를 못 가는 경우를 위해 서당 설립운동이 일어났다.

       

      ◦사상의 향연

      ▪저항의 절대동력인 민족주의

      신민족주의(보편성을 가진 민족주의이어야 한다.) - 조선을 먼저 알아야한다는 조선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민족과 계급 사이에서의 사회주의

      일제 시대 당시, 최고의 사상이었다. 민족과 계급 사이에서 고민한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제3의 사상인 아나키즘(무정부주의)

      많은 무정부주의자가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신채호는 민중의 직접 행동을 주장하기도 했는데, 이는 최종적으로 테러로 갈 수도 있었다.

      ▪대안의 가치인 민주주의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서 출발하게 되었다.

       

      ◦법에 맞선 정의

      ▪고문을 이기고 옥중투쟁에 나서다

      대표적인 고문 조작 사건인 105인 사건과 조선어학회 사건이 있다.

      옥중 투쟁의 예로 단식 투쟁이 있다. 또한, 1920년 3월 1일에는 3.1.운동 1년을 기념해 옥중에서 만세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비폭력의 연대

      ▪비폭력의 길, 반폭력의 길

      비폭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비폭력 직접 행동에서 ‘직접 행동’이라는 부분이 핵심이다. 이를 상징하는 것이 “만세시위”이다. 인도에서는 “연좌시위”가 있다.

      반폭력으로서의 ‘의열투쟁’은 비폭력을 지향하는 폭력이다. 이는 ‘테러’와 구분되는데, 목표가 정확하고 불특정 다수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다.

      ▪연대만이 살 길이다. 평화를 갈구하다.

      ◦2017년, 민주주의의 향연

      ▪문화혁명으로서의 촛불시위 : 자유 평등 연대 평화(집단보다 개인을 더 주목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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