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정보
인류사에 있어 민주주의를 꽃 피웠던 그리스,
그리스인들은 왜 해마다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비극을 공연하고, 또 관람하였을까요?
그리스인들에게 비극이란 무슨 의미였을까요?
이 강좌는 그리스 비극을 통해 정치에 내재한 중요한 속성, 권력의 문제, 결단의 문제, 오만함의 문제, 고귀함의 문제, 환대의 문제 등을 살펴봅니다.
강의 일정 * 강사의 요청으로 1회 더 진행하게 됐습니다.
날짜 |
주제 |
10.11 |
니체의 <비극의 탄생>, 그리고 비극과 정치 |
10.18 |
권력 : 아이스킬로스 - <테바이를 공격한 일곱 장수들> |
10.25 |
오만함 : 소포클레스 - <아이아스> |
11.1 |
결단 : 에우리피데스 -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 |
11.8 |
고귀함 : 소포클레스 - <필록테테스> |
11.15 |
환대 : 소포클레스 - <콜로누스의 오이디푸스> |
강사 소개
김만권
모두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공적 세계를 짓는 일이 정치와 철학이 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시민들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함께 말을 나눌 준비가 되어 있는 거리 위의 정치철학자다.
그동안 쓴 책으로는 책으로는 『김만권의 정치에 반하다』 『호모 저스티스』, 『자유주의에 관한 짧은 에세이들』, 『불평등의 패러독스』, 『그림으로 이해하는 정치사상』, 『참여의 희망』, 『정치가 떠난 자리』 등이 있으며 『민주주의는 거리에 있다』, 『인민』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강의 정보
일 시 : 2017. 10. 11. ~ 11. 15. 수요일 오후 7시 ~ 9시 30분 총6회
장 소 :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
수강비 : 100,000원(참여연대 1만원 이상 후원회원 30% 할인, 청년학생회원 50% 할인)
* 20대 청년회원(직장인 제외)은 해당 강좌에 한해 50%를 할인해 드립니다. 카드결제 시 50%할인액이 적용되지 않으니 계좌이체(하나은행 162-054331-00805 참여연대)를 부탁드립니다.
※ 강좌할인 및 취소환불 규정은 수강신청안내(클릭)를 꼭 확인하세요.
후기 6
[정치철학으로 읽는 그리스 비극 2] 제 5회 이피게네이아 강의 후기
#이번 책은
전체적인 줄거리는 간단명료하다. 아가멤논이라는 정치 지도자는 우유부단해서 제대로 결정을 내리지 못할 때, 현명한 딸 이피게네이아가 자발적으로 자신을 제물로 희생하기로 선택하는, 어리석음에 대한 분노와 선택에 대한 안타까움이 겹치는 그런 책이다.
먼저 갈래를 간단히 정리하자면,
- 문학적으로 읽는다면: 자신의 욕망에 더 충실한 아버지 / 자식을 희생시켜야 하는 어머니 / 아버지에게 살해당하는 자식의 이야기이고,
- 정치적으로 읽는다면: 1. 전통과 권위를 위해 새로운 세대를 희생시키는 보수적 세대의 이야기
2. 정치에서의 우유부단함과 결단
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중에서 우리는 정치적으로 읽는 방법 2번의 시각을 위주로 한 강의를 듣게 되었다.
#이번 책이 나에게 가장 크게 준 시사점
교수님께서는 강의를 하시면서 가장 중요한 점으로 결단을 희생의 당사자가 직접 내렸다는 것을 꼽으셨다. 그 점이 주목할 만한 첫 번째 이유는, 먼저 정치 지도자(강자)인 아가멤논과 현저한 대비를 이루기 때문이라고 짐작된다. 정치가들에게 있어 우유부단함은 독이며, 그 우유부단함은 책임감 회피로까지 이어지는 근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회에는 수많은 가치가 존재한다. 사람들의 생각은 전부 다르고, 그렇기에 모두 다른 목소리를 내곤 한다. 그 다원화된 가치들이 모두 존중받아야 하긴 하나, 한 공동체를 유지하고 지속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생각들을 종합하여 한 방향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는 결단과 판단이 필요하다. 그것이 흔히 우리들이 일컫는 '카리스마'이다. 가치다원주의 사회에서 한 방향을 제시했을 때, 그걸 따라올 수 있게 만드는 힘, 그리고 그 제시한 방향에 대한 책임감이 바로 우유부단함과 대비되는 카리스마인 것이다.
희생의 당사자가 결단을 내렸다는 게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역설적으로 희생이 바로 결단을 내리는 사람들이 감내해야 할 몫이라는 것이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형식적으로 강자이자 정치지도자인 '사람'은 아가멤논이지만, 사실상 진정 정치지도자의 '자질'을 가진 것은 우스꽝스럽게도 약자인 이피게네이아이다. 다음은 책에 나오는 아가멤논의 결정적인 말이다.
"(중략) . . . 나는 이번 일을 감행하기가 두렵지만, 감행하지 않기도 두렵소. (중략) "
이 문장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각종 책임을 회피해왔던 뉴스들로 도배된 지난 뉴스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며, 한편으로는 내 자신에 대한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흔히 레밍 효과라고, 심리학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인데, 쥐 몇 마리가 갑자기 한 방향으로 뛰기 시작하면 나머지 쥐 떼들도 자신들이 어디로 향하는 지 모르는 채 정신 없이 따라가다가, 벼랑 끝에 서더라도 멈추지 않고 떨어져 죽는 효과로 군중심리를 뜻하는 용어이다. 나는 판단을 내리기 무서워서 내가 내려야 할 수많은 판단을 유보하며 집단을 따라가곤 했었던 것 같다, 진로도, 사소한 것들도.
이 문제는 나같은 개인뿐 아니라 관료주의의 폐해와도 맞물린다. 베버의 말처럼 근대는 효율성을 중시하는 관료주의로 도배되어 있다. 효율성을 극단적으로 따지다 보면, "가장 효율적으로 일한다"는 것은 곧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그 유명한 "매뉴얼대로"의 행동들이 나오며, 상식 밖의 상황들이 벌어진다. 책임을 가장 잘 회피하는 사람들이 가장 잘 승진하고, 책임을 가장 잘 무시한 사람들이 가장 잘 살아남는 건 어찌 보면 이미 이피게네이아와 아가멤논을 통해서도 보여지는 것 같다.
강의 자체는 정치철학이지만, 이번 우유부단함과 결단에 대한 담론은 단순한 팀플(조별활동), 일상생활에서의 판단들과도 크게 맞닿는 부분이 많다고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판단과 결단을 밀어붙여서 본인들 나름의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나간 동화와 영화의 주인공들이 떠올랐다. 대표적으로 인어공주와 모아나가 떠올랐다. 먼저 인어공주는 왕자와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결혼하기 위해) 목소리와 가족을 포기하고 얻은 두 다리로 극심한 고통을 겪으며 걸어도 행복해 했다. 그리고 왕자를 죽여야 본인이 살 수 있음에도 왕자를 죽이지 않음으로써,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이루고 하늘에서 천사로 다시 태어난다. 인어공주가 선택한 총 과정은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불행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그녀는 자신의 선택에 오롯이 책임을 지며 스스로 만족했다는점에서 인어공주 스스로를 위해 멋진 결단을 내렸다고 생각한다. 모아나는 섬나라를 떠나 항해를 자유로이 하고 싶은 소녀인데, 바다의 대한 갈망이 높아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각종 위험 상황을 다 겪으며 항해를 계속해 나간다. 죽을 뻔한 위기 상황도 있지만, 그래도 그녀는 결단을 내렸고,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지며 행복해한다. 그리고 그 무모해보였던 선택은 결과적으로 은연중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던 고향을 구해내는 영웅으로 그녀를 만들어 놓는다.
#마치며
휴학하고 나서 참 많은 고민들을 했다. 얼마 전에 20번째 생일을 맞았는데, 이제 공식적으로 20대이자 성인이 된 만큼 내가 내 삶을 그려나가는 어른이 되고 싶다. 앞으로 힘든 일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도 늘 신중하게 고민하고, 내가 내린 선택에 대해서만큼은 책임을 지는 떳떳한 사람이 되어 나가고 싶다.
[정치철학으로 읽는 그리스 비극 2] 제 4회 강의 <아이아스>
들어가면서
문재인 정부의 새 예산안은 서민들을 위한 양적 완화를 목표로 한다. 이는 매우 이례적이다. 왜냐하면,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이 죽으면 수열을 하는 비이성적인 상황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양극화가 심각한 이유는 그것 자체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한다. 잘사는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규제이고 못사는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 중산층이 가장 큰 이익을 볼 수 있는 체제가 민주주의다. 대한민국은 양극화가 심하다. 1/4이 전체 1%로 분배가 되고 있다. 상위 20% 센트의 계층이 90%의 재산을 차지하고 이는 점점 심해지고 있다. (재산세에 근거한 공식적인 분배 기록만 봐도 동국대 김남영) 우리나라 국민의 79.1%가 자신이 중산층이 아니라고 답했다. 이런 구조에서 중산층을 위한 정책을 내놓았다. 내놓은 정책의 핵심은 1.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고 공공영역에서 정규직으로 창출하는 것이다. 2.경력단절을 방지하기 위해서 육아를 중심으로 한 돌봄 노동 지원사업 왜냐하면, 여성이 재취업하면 20%의 임금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세금이 누구를 위해서 쓰이는가가 중요하다. 법인세를 많이 내지만 국가가 기업들을 위해 세우는 정책이 많으므로 이를 돌려받는 경우가 많다고 볼 수 있다. 이번에 7.1%의 증액이 일어났다. 경험적으로 낙수 효과가 증명된 적이 없다. 하지만, 그러한 세금을 반대하는 일들이 생기고 있다 우직함, 용맹함때문에 모든 사람으로부터 미움을 받는다.
원래 신,인간,도시가 있다. 위기에 빠진 모든 사람들이 굉장히 합리적으로 움직인다. 내가 어떻게 죽는 것이 올바른 일인지 계속 고민을 한다. 아킬레우스는 엄마가 신이다. 순수하게 인간으로 태어난 사람 중에서 가장 용맹한 캐릭터다.
아가멤논을 보면 그는 결단을 제대로하지 못하는 캐릭터다, 오만하고 무능하고 우유부단한 사람이다. 신기한 것은 사람들은 오만하면서 무능한 캐릭터를 미워하지 않는다. 오만하면서 능력 있는 캐릭터를 미워한다.
청혼한 사람들이 멍청한 약속을 하는데 남자에게 어떤 일이 생기면 도와주기로 한다. 아이아스는 능력이있고 용맹하고, 의리도 있는자이기 때문에 부르지도 않았는데 배12척을 가지고 온다. 그는 메놀라오스, 아가멤논의 목숨을 구해준다. 하지만, 그는 미움을 받는다. 자신이 오만하고 능력있는 만큼 자기가 한일에 대한 수치심이 존재한다. 내가 능력이 엄청난만큼 못하면 그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다. 하지만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는 오만 하지만 무능하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다. 오만을 둘러싼 캐릭터들을 어떻게 들고 가는가?. 오만함은 확신에서 나오는 것이다. 책은 아이아스라는 인물에 대한 묘사가 매우 뛰어나다는 것이다.
비극경연대회 ? 소포클래스는 수상을 많이 한 사람이다. 그는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가장 번성했을 때 나온 것이다. 제국주의와 같이 강력한 군사력과 성장했던 시기다. 소포클래스는 그리스 시대의 외모가 탁월해서 배우로도 활동했지만 노래를 못해서 노래 못하는 아이돌이다. 말도 안 되도록 90세 넘게 살았다. 도시와 시민의 관계를 중요시한다. 문학적 가치로만 봐도 대단한 진보를 이룬 사람이다. 그전에는 코로스가 중요한 역할을한다. 코로스는 시민의 역할이다. 이는 도시의 역할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포클레스는 그와 다르게 도시의 역할을 강조한다.
무대 위에 서서 공연하는 사람의 배우를 세 사람으로 늘리고 극중에 등장하는 인물의 성격을 변화도록 했다는 최초의 극작가다. 소포클레스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신들에 대해서 말한다. 그리고 인간과 대척점에 서는 국가 사이에서 철저하게 이성적으로 맞서고자하는 인간을 그려낸 사람이다. (신의 감정을 만들어낸 사람이 대부분 다 질투다. 그리스의 신들은 이성으로 이해하기 힘든 신들이다. 때로는 개인과 갈등하는 도시의 이야기에 대해서 말하는데 첨예하게 다른 경우가 생긴다. 권력의 입장에서도 자기 할 일을 다하려고 한다. 아이아스는 감정에 휩쓸려 있는데, 항상 이 순간에 해야 할 옳은 일은 무엇인지 생각을 한다. 그리스 비극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합리주의다. 그리스 비극을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합리주의라고 할 수 있다.
아이아스로 들어가면
아이아스와 관련된 인물은 헥토르라는 인물이다. 트로이 전쟁에서 온종일 그와 싸운다. 그리고 해가 졌을 때 싸움을 멈추는데 거의이기고 마지막 일격을 날리기 직전에 해가 지고 무승부로 끝난다. 그리고 그들은 헥토르와 칼과 혁대를 서로 선물해준다. 아킬레스가 전사했을 때 그를 둘러싼 적군을 다 물리치고 나온다. 아킬레스가 전사하고 그의 갑옷을 누가 가질까 하는 질문에 투표를 한다. 오디세우스는 능변가고 아이아스는 무뚝뚝하고 고지식한 사람이다. 사람들이 오디세우스의 말에 반해서 그에게 투표를 하고 그가 갑옷을 가져간다. 무궁은 전쟁터에서 용맹한 사람의 것이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에게 무구가 간다. 오디세우스의 배가 난파당했을 때 아킬레스의 무구는 유실되어 아이아스의 무덤으로 간다.
아이아스가 이에 실망해서 그리스 장군을 다 죽이려고 한다. 아이아스가 칼을 뽑으면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아테네가 그의 눈을 가리게 해서 양 떼를 난도질하게 한다. 양 떼를 난도질하며 일어나는 것 소포레스의 이야기의 시작이다. 아이아스는 오만한 자였다. 오만은 인간의 덕이 아니라 신들의 덕이다.
아이아스에서 아이아스는 수치심에 못 이기는 사람이다. 내가 내 능력을 쓸 수 있는 게 못 쓴 것에 대한 비참함에 빠진다. 소위 오만 능력 부끄러움이 똑같이 오만하지만 무능한 캐릭터다. 매넬라우스와 아가맴논이 찾아올 때 테우크로스와 논쟁을 벌인다. 메넬라오스와 아가멤논은 창피한 사람이다. 대사만 봐도 알 수 있다. 무능한 자들이 오만할 때는 비겁한 짓을 서슴지 않는다. 트로이군과 아르고스 군이 만드는 것 어떤 친구가 그대에게 이 사람을 묻어주지도 않고, 오디세우스가 동생에게 이렇게 말한다. 전에 내가 그에게 적이었던 만큼 오디세우스가 여기서 아이아스가 적이었다는 사실을 절대 거부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이었던 아니던 인정하는 것이다. 지혜로운 문장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겸손까지 보여준다. 테우크로스, 장례식 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다 도와준다. 가장 사람을 보낼 때 최선을 다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어쨌든 형님과 라이브러리 관계였다. 저주하는 것 그 사실을 몰랐겠지만, 테우크로스가 그렇게 대답한다. 인간이 가져야 될 덕성이 존재한다. 신이 가지는 덕으로써 오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신이 가지는 덕성을 무능한 자가 가진다고 했을 때 최악의 상태가 나타난다. 나르시스 시론은 완벽하게 이 상황을 상반되게 해석한다. 나르시스를 보면 주위에서 아름답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엄청난 자부심을 느끼고 오만이 생겨난다. 간신히 우물에 이루로서 우물물을 드러났는데 숲을 헤매다 온 자신의 모습에 너무 취한다. 자기 모습이 너무 추해서, 견딜 수 없어서 뛰어든다. 현실을 견딜 수 없어서 빠져서 죽는 것이다. 정말 아름다워서 오만해진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을 이상화시켜서 자신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시인은 이 틈을 못 버틴다고 본다. 시인은 아름다움을 갈망하지만, 자신에게 부질없음을 절망한다. 그런 것들이 훌륭한 문학작품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상과 현실의 틈새를 버티지 못한다. 자신을 견디지 못하는 것을 수치심이라고 한다. 아이아스의 고민도 어떻게 보면 본질에서 같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오만이라고 했을 때 본질에서 자기 자신이 누구보다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누구보다 소중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칸트는 오만이 겸손이라는 미덕이 결연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오만의 반대말은 겸손일까?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것.
오만이라는 것들은 인간이 가지면 안되는 덕처럼 여겨지는 것이고 인간에게 불행이 닥쳐온다. 아가멤논형제의 무능함으로 인해 10년간 전쟁이 지속되었고 그것은 무능함을 보여준다. 능력 있는 자들의 오만함은 제어가 된다.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이 든다. 능력 있는 오만한 자를 알아보면 그와 같이 있을 수 있는 사람 그걸 알아보는 사람과 같이하면 오만과 합쳐질 때 정치가 배신으로 얼룩지고 정치 자체가 기능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오만 한 자는 타자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정치에 오만한 자는 필요한 것이 아니다. 오만이라는 것이 긍정적인 것 능력 있는 자들의 오만은 제동될 수 있다. 능력이 없는 자들의 오만은 제어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원활동가 류태림
[정치철학으로 읽는 그리스 비극 2] 제 3회 강의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
니체는 보불전쟁에 나가서 떨어져 죽고 남성의 성적기능에 장애가 생긴다.
베버의 아버지는 베버와 말싸움 후 화병이 돋아서 돌아가신다. 그때 배버는 정신적 혼란을 겪었다고 말한다. 니체가 이야기했던 절망 속에서 절망자체를 긍정하고 마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말함에도 불구하고 니체는 절망을 견딜 수 없는 사람이었다. 절망자체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투쟁해야 된다고 전하는 것이다.
가장 니체같이 파멸한 인물이 오이디푸스다. 두 눈을 뽑아버리는 것은 현실을 마주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물을 직시하고 현실을 직시할 수 없으므로 두 눈을 뽑아 거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들들에게 권력을 나누어 가지라고 하는 오이디푸스는 그 순간부터 그는 어쩌면 현실을 마주할 수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파멸들을 주도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권력이라는 것들을 중심으로 자기가 선택을 해봤는지 잘 모르겠다.
만약 당신이 권력을 가지려면 뭘 할 것인가? 플라톤의 글라우콘이라는 인물을 보면 그는 청렴한 공무원들은 주위의 부탁을 거절하기 때문에 나쁜 평판을 얻게 되고 부정의 한 사람이 된다. 주위의 사람들을 어떻게 관리하는가가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다. 훌륭한 대통령이 될 뻔한 뿐 들도 그러는 경우가 존재한다.
국가를 새롭게 세우는 순간 Founding Moment에서 마키아 벨리는 폭력없이 국가를 세울 수 없다고 말한다. 누가 마키아벨리를 두려워하느냐는 말이 있다. 마키아벨리는 아버지한테 뭔가를 물려받은 정치지도자는 질문할 필요 없는 사람이다. 시스템을 새롭게 만들 때 가장 큰 위기에 처하는데 이 위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때로는 폭력을 쓸 줄 알아야 국가를 세울 수 있다고 말한다. (혁명론) 혁명론이 가장 크게 시달리는 질문이 혁명은 폭력과 같이 간다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의 책이 유명해진 이유는 말만으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권력과 폭력의 전통적인 결합은 무소불위의 힘을 떠올리게 하고 그곳에는 권력이 존재한다. 과거에는 이 사람들을 참주라고 불렀다. 실제 텍스트에 보면 중요한 대사가 있다. 그 대사는 독재다. 독재는 로마 시대 때 나왔다. 독재는 일정시기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합법적으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참주는 법 밖의 사람이다. 사실 독재의 시작은 좋았다 독재는 위기 상황 때 9개월 동안 권력을 몰아준다. 테베인이 살고 있던 곳은 참주 정이고 아테네는 민주정이다. 민주정과 비극은 항상 같이 갔다. 비극에 대해서 말하면서 테베이야기를 심각하게 한다. 그 당시 아테네인들이 가지고 있던 생각은 이 시대를 들여다보면 왜 비극을 많이 상영하고 참주정의 일을 계속 상여하였냐면 시민들에게 권력이 없고 참주에게 권력이 있을 때 생기는 문제점들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도시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서 깊은 도시다. 고대 그리스에서 오래된 도시고 도시를 세운 사람이 카드모스라는 사람이다. 카드모스라는 인물이 페네키아인이였다. 페네키아는 레바논 지역이였다. 카드모스라는 이름 자체가 동쪽에서 온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고 카드모스가 납치당한(에오파)의 오빠다. 동생을 구하러 갔다가 구하라는 동생은 구하지 않고 세운 도시다.
Tryo 영어로 참주정이 Tyranny 모든 정체의 이름을 보면 누가 통치하는지 말한다. 최초로 그리스에 도시를 세운 사람이 누구냐고 할 때 카드모스라고 한다. 왕이 절대적인 권력을 소유하고 통치하는 그런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이것들이 맞물리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이 어원이 어디서 나왔는지 추정할 때 카드모스의 도시인 Tryo 일 것이라고 학자들은 말하는데 이것은 예측뿐이다. 모든 것이 다 권력을 둘러싸고 일어난 투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아이스킬로스 10번 비극 경연에서 우승한 사람. 아이스킬로스가 왜 유명하면 그리스 비극의 형식을 마련해줬다. 초기의 비극은 코러스와 사람의 대화형식이다. 하지만 아이스킬로스는 사람을 한 명 더 데리고 와 우리가 아는 그리스 비극의 형식을 정착시킨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에이루피데스에 대한 평가는 아주 완벽히 엇갈린다. 니체는 그것을 싫어했지만, 당시의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작품을 극찬한다.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의 대결은 형제의 대결이라 많은 예술가가 이를 재창조했다.
라이오스라는 인물이 있는데 피난처를 제공한 펠롭스의 아들 크리시포스를 강간했는데 이로써 삼대에 걸친 저주가 시작한다. 아폴론이 절대 아이를 낳지 말고 죽이라고 한다, 그래서 오이디푸스가 태어났을 때 죽이려고 한다. 도시국가의 전통은 방문자를 환대하고 손님은 감사한다는 것이다. 칸트가 말한 환대라는 개념이 있는데 사실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환대와 감사라는 도시의 법칙을 라이오스는 어기고 저주를 받게 된다. 모든 것을 똑같이 나누어 가진다. 권력을 똑같이 나누어 가져야 하는데 그 방식을 1년씩 번갈아 가면서 통치하는 방법을 택한다. 여기서 형 동생 관계에 대해서는 논란이 존재한다.
형 오클레스가 권력을 잡자마자. 아르고스의 사위가 된다. 에테오클레스가 전투에 나가려고 할 때 말리는 사람들이 코러스다. 코러스는 웅성거리면 시민들의 목소리다. 에테오클레스에게 이성을 불어넣으려고 한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를 볼 수 있는 작품이다.
갈등은 권력을 어떻게 공유할지 고민하면서 나타난다.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폭력을 시민들한테 안 쓴다. 중요했던 순간들에 자국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경우가 없다. 자국민들에게 절대 폭력을 안 쓰는 신기한 국가다. 마이키아벨리 군주론의 핵심적인 내용은 누가 가져야 하는지가 아닌 권력을 가지는 방법에 대해서 말한다. 플라톤은 정치가 무엇인지 묻는다. 플라톤은 권력을 지혜와 연관시킨다. 지혜는 도덕적 앎(플라톤 라인) 지혜가 폭력과 관계 훌륭한 지도자는 사자와 여우라는 비유가 등장한다. 이규찬 선생님은 마키아벨리 라인이 성공해서 플라톤 라인이 가능해진다고 말한다. 그것을 해야 이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마키아벨리시대 때는 근대국가가 성립하고 있었다. 정치지도자들은 정치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 마키아벨리가 말해주는 정치의 목적이랑 비슷하다. 권력이란 다른 이들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통제하고나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의미한다. 권위란 무엇인가? 내가 쓸데없이 다른 수단을 쓰지 않아도 존재만으로도 설득한다는 것이다. 권 워 적이라는 것은 내가 존재만으로 설득할 힘이 없는데 그러는 척하는 것이다. 예수님 얼굴은? 체자르보르제의 얼굴이다. (이탈리아의 정치인) 보르제의 아버지가 교황이어서 가능했던 것이다. 하느님이 준 세계는 공유에서 사유로 넘어가고 인간세계의 권력은 사유에서 공유로 넘어간다. 사유화된 권력은 대부분 비밀권력이다. 대표적으로 플라톤의 국가에서 나오는 기게스의 반지다. 기게스의 반지를 끼면 사라지게 된다. 결국, 양치기가 왕가지 살해한다.
권력을 사유화시킨 사람들은 이것을 내려놓은 것이 너무 힘들다. 폭력보다 권력을 사유화시키는 것이 돈이라는 존재다. 많은 돈 있는 사람들이 권력 있는 자들을 사고 그들과 결합하는데 이것을 정경유착이라고 한다. 국가의 영역에 있을 때는 권리지만 민영화의 영역에 가면 권리가 아닌 것이 되고 상품이 되는 것이다.
당은 승리를 위해 필연적으로 양당제로 갈 수밖에 없다. 한 정당이 늘 50% 이상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이 양당제라고 볼 수 있다. 실제 강한 권력이라고 했을 때 나타난다. 이렇게 불합리한 양당제에서 가장 이익을 많이 보는 것은 현직의원이다. 한국은 그나마 공천권이 있으므로 눈치를 본다.
강한 권력이라고 했을 때는 불법적인 무소불위적인 권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합법적인 루트를 택하는 경우가 많다. 전쟁의 신 아레스 두 사람이 공유한다는 것은 환상이다. 언제나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특성이 있고 그것을 가지고 오고자 한다. 권력은 폭력과 떨어진다. 합법적인 공권력 폭력적인 공권력, 실제의 권력과 폭력이라는 이미지가 분리될 수 없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확고히 들어낼 수 없는 권력을 말한 것은 마키아벨리다. 사자와 여우의 예를 들어서 마키아벨리는 설명한다. 여우 역시 함정을 만들고 폭력적인 경우가 많다. 용맹한 사자의 시대 무소불위의 시대는 갔다. 모든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나쁜 일을 저지르는 것 글라우콘이 플라톤에게 던지는 질문과 비슷하다. 판별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권력의 폭력은 사자와 여우다. 변화의 시대에는 각자 자기만의 이익을 찾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권력이 휠씬 큰 사람뿐이다.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읽어보면 이러한 이야기가 나온다. 리바이어던이라는 근대국가의 기초가 인민의 동의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과거와 다른 것은 왕당파를 비판한 홉스도 거의 건드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불과하고 폭력이 권력의 기반이라고 말한다. 인민의 동의가 국가의 기반이다. 모든 판단을 국가가 하고 그 판단을 했을 때 사람들이 따를 수 있는 폭력을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권력이 가지는 속성을 말했을 때 홉스도 폭력이 있어야 되고 합법적으로 권력자들이 차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권력의 욕망이 부르는 참사/테베에 대응하려고 보내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통치자들에게 눈이란, 자신의 욕망에 가려서 자신의 자리를 잃게 하는 것 지켜야 될 자리도 잃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권력자들은 권력을 얻기 위해서 무슨 일이라도 한다. 권력이라는 것을 사람과 연결해서 말하지만, 대통령이라는 것도 제도 적자리다. 우리가 하는 선거들은 사람이 아니라 기관이다. 그런 맥락에서 봤을 때 개인이 아닌 정부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개인이 통
자원활동가 류태림
[정치철학으로 읽는 그리스 비극 2] 제 2회 니체의 <비극의 탄생> 강의 후편 후기
강의의 큰 틀은 지난 강의와 다르지 않았다. 지난 시간에는 니체라는 사람과 그 배경에 대해 새로이 들어봤다면, 이번 강의에서는 내용이 조금 더 심화되어 현세를 강조하는 니체의 사상과 그의 생각, 그리고 그를 통한 그리스 비극 학습의 의의에 대해서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아폴론적인 것? 디오니소스적인 것? _예술을 정리하는 한 가지 시각
교수님께서는 니체의 사상을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변증법적 상태"라는 핵심적인 단어들로 표현하시며 설명을 이어나가셨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철학의 ㅊ도 모르는 대학생으로서는 처음에 디오니소스라는 말을 듣고 이것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출처:구글)
위 사진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그리스로마신화인데, 약 1년 전쯤 갑자기 한 장면이 웃기다고 각종 SNS에 떠돌아다니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영상의 일부이다. 명대사는 바로 "늦어서 죄송합니다, 디오니소스님." "너 때문에 흥이 다 깨져버렸으니까 책임져." 숱한 패러디를 낳으며, 아래의 사진처럼 SNL의 권혁수가 따라하기도 하는 등 많은 후속 영상을 낳았다.
내가 아는 디오니소스는 그냥 이렇게 뭔가 유흥적인 이미지에, 사람들 사이에서 요즘 들어서도 비교적 친근한 존재이다. 그런 디오니소스가 니체와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다는 건가? 디오니소스적이라는 건 뭐지? 라는 궁금증이 밀려들어올 때쯤, 교수님께서는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를 비교하며 각각이 상징하는 사회를 이야기해주셨다.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먼저, 사전 검색을 통해 알아보니 "디오니소스적이다", "아폴론적이다"는 문학비평용어 중 하나로, 예술의 경향 사조를 논할 때 자주 대비되는 개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치를 '좌파' '우파'라는 용어로 성향을 명명하듯, 예술계나 문학계에 있어서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은 그런 지표의 양 끝을 담당하는 상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 <만화로 보는 그리스로마신화>라는 책을 읽고 자라며 그리스로마 신들을 단순히 둘리나 뽀로로 같은 만화 캐릭터로만 생각해왔던 나에게는 이렇게 깊은 분야에서도 다루는 게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교수님의 설명을 듣고 난 후 내가 정리한 '아폴론적인 것'이란, 비교적 이성적이고 논리를 근거로 하는 경향이다. 질서 있는 것, 설명이 가능한 것들이 이에 해당하며, 예술로 들어가보면 조형과 같은 엄청난 계산과 세심한 노력이 필요한 분야가 해당될 수 있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아폴론적인 것의 극치는 국가의 형성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한다. 반면 디오니소스적은 즉각적인 현장 그 자체라고 교수님은 말씀해주셨다. 그렇기에 축제나 시위, 혹은 춤이나 음악처럼 그때 보고 듣는 것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예술 등이 해당될 수 있다.
# 현실에 그리스 용어 적용하기: 2017년의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 그리고 니체와의 연관성
현대 생활로 들어가 보면 월드컵과 락 페스티벌같이 사람들이 도취되는 현장을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고,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조형물들을 아폴론적인 것이라고 들 수 있다. 그렇다면 니체가 내세운 이 두 단어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으로 그의 주장을 재해석해본다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서문에서도 말했듯, 니체의 생각은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변증법적 상태"로 표현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서로 상호작용해야 한다고 니체는 주장한다. 아폴론적인 것은 안정성을 기반으로 국가의 형성 등을 도우며 각종 비극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곤 하지만, 이 '아폴론적인 것'의 문제는 무언가 진리를 찾으려 노력하는 특성 때문에 현실과의 괴리인 화석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을 보호하려고 만든 법이 시간이 지나 허점이 가득해지기도 하고, 조선시대의 이야기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과는 확연히 다른 데서 이러한 문제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놀랍게도 정 반대편에 위치해 있는 듯한 디오니소스적인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 나뭇잎이 새로 태어나듯,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기존 질서를 파괴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작년의 그 촛불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디오니소스적인 것들은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창조가 일어날 만한 기반을 형성한다는 점이다. 디오니소스적인 것들로 인해 사람들은 또 다른 아름다움의 종류를 갈망할 수 있고, 이는 곧 새로운 아폴론적인 것의 탄생을 불러 온다.
과거 도시 유지 기반은 시민 종교와 시민 축제, 이 두 가지였다고 한다. 종교가 신 아래 사람이 있다는 질서를 확립했다면, 축제는 그러한 개체화를 넘어서서 서로간의 벽을 허물고 공동체가 되기 위한 연대의 기반이었으리라 추측된다. 예술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의 맥락에 적용해볼 수 있는 이 단어들은 더 이상 나한테 단순한 코미디의 소재는 아닌 것 같다. 부족하지만 조금씩 철학에 대해 배우며 즐겁다. :)
[정치철학으로 읽는 그리스 비극 2] 제 1회 니체의 <비극의 탄생> 강의 후기
글을 작성하기에 앞서, 필자는 철학과 관련이 없는 전공을 공부하고 있는 대학생으로서 부끄럽지만 철학 및 정치에 무지하다는 말씀을 먼저 올립니다. 이에 따라 잘못 기재된 내용 등이 있을 수 있으며, 이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자유롭게 의견을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그리스 비극', 생소하기만 했던 영역에 다가서다
철학에 대해 얕은 관심만 있을 뿐, 배울 시간도 방법도 내지 못했던 대학생으로서 사실 강의를 수강하는 것부터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강의 내용을 따라가지 못하면 어쩌지, 내가 알아들을 수는 있을까, 많은 고민을 했지만 김만권 교수님이 그렇게 유명하시고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자자하다는 소문을 듣고 신청을 해 듣게 되었다.
내 예상보다 젊으신 교수님께서는 재미있는 농담과 곁들여 강의를 시작하셨다. 강의 주제와 맞물리는 일상 이야기를 두런두런 하시다가, 자연스럽게 이번 강의 주제인 <비극의 탄생>을 저술한 '니체'라는 사람에 대해 알려주셨다.
# 니체는 누구?
내가 들은 니체에 대한 정보를 한 마디로 종합하자면, 그는 '개인은 현실을 똑바로 마주하면서, 그에 따른 고통을 끊임없이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을 중시한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은 특정 종교나 이상을 맹신하며 내세, 혹은 미래에 중점을 두어 살곤 한다. 하지만, 니체는 그것들을 너머 현재, 지금에 가장 강점을 둘 것을 권한다. 다시 말해, 그는 종교나 이상 등의 '진리'만을 추구하는 것은 곧 현세의 삶을 외면하는 것이므로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의 사상 중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계보학'이라는 그의 방법론이었다. 계보학이란 '당연히 믿고 있는 진실 이면의 이야기를 연구하는 학문'인데, 그 내용보다는 교수님께서 계보학을 설명하기 위해 들어주신 예시가 인상적이었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사람은 누구일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많은 사람들은 콜럼버스라고 답한다. 그러나 계보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그럼 아시아 대륙 발견은?"
계보학을 통해 당연히 믿고 있는 진실(신대륙은 서양인 중 한 명이 발견했다) 아래 깔린 서구중심적 사고가 드러났던 순간이었다. 애초에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은 없다고 계보학은 알려주고 있다, 그곳에서 수천만년 전부터 살고 있던 원주민들 입장에서는 결코 발견이 아니니까.
# 비극이란? 비극이 필요한 이유와 그 기능
그렇다면 비극은 무엇이고, 비극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며, 대체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 비극은 그리스 연극의 한 갈래로, 우리가 흔히 아는 부정적인 감정이나 상황을 주제로 한 연극 갈래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검색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교수님께서는 비극이라는 감정이나 상황이란 '의도하지 않았지만 일어난 일이나 책임져야 할 일'이라고 구체화하여 말씀해 주셨다.
니체의 사고에 입각했을 때, 그 살기 좋았던 그리스 시대에서 오히려 비극이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 비극이 필요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힘든(비극적인) 상황에서 '그리스 비극'은 삶에 대한 체념이 아니라 긍정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보통 우리가 힘들어하는 이유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 때문이다. 나는 돈을 많이 벌고 싶은데(이상) 돈을 적게 벌어서(현실) 괴롭다. 즉, '더 돈을 많이 벌고 싶다'라는 이상에 대한 갈망이 채워지지 않아 부족함을 느끼고, 그러한 부족함이 괴로운 마음을 만들어낸다.
이럴 때 쇼펜하우어라는 학자는 사람들에게 체념하라고 한다. 인간의 욕구는 끝이 없는데, 한 개인의 '의지'가 결국 늘 그 개인을 '무언가가 부족한 상태'로 놓기 때문이다.하지만 니체가 말하는 비극은 다르다. 니체는 애초부터 그러한 이상에 대해 관심 갖지 말 것을 당부함으로써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생길 틈을 없앤다. 그리고 현세 안의 존재에서 삶을 긍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삶의 기준과 판단의 초점은 현재이고, 그 현재를 긍정하는 것이 니체의 핵심이다. 앞의 예시로 니체의 생각을 표현하자면 돈을 벌 수 있고, 돈을 더 벌 가능성이 있는 현재에 집중하며 더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그의 답이리라 예상된다. 그리고 이 정신을 가장 잘 실천하고 있는 2017년 현대인 중 한 명을 꼽자면 빚을 십몇 년 동안 청산해온 탤런트 이상민 씨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가 인용하는 셰익스피어의 말 중에서는 이런 구절이 있다. "힘들 때 우는 건 삼류다, 힘들 때 참는 건 이류다, 힘들 때 웃는 자가 일류다."
(관련영상: http://cafe.naver.com/samdefense/69300)
이 부분을 공부하면서 흥미로운 토론거리 하나는 바로 '인간이 쉽게 욕망을 포기할 수 있는가?'에 대한 생각이었다. 교수님께서는 "다 내려놨다"라는 말이 90%는 거짓말이라면서, 우리가 무언가를 체념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말씀해주셨다. 도덕적인 사람도 삶에 대한 의지가 없다면 그러한 행동을 하기 어려우며, 무소유를 대표 정신으로 표방하는 듯한 불교 역시 그 종교를 공부하는 것 자체가 또다른 욕망이기 때문이다.
# 니체의 생각과 2017년 현재, 그리고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소통하는 '그리스 비극'
그래서 이런 니체를 표현할 수 있는 말들은 바로 "신은 죽었다", "다른 시간이 아닌 오늘을 살라" 등이다. 그의 저서 <반시대적 고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비록 우리의 미래가 희망을 위한 어떠한 근거를 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가 확연히 이곳에 지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가 우리의 법과 기준을 따라 살아가는 가장 강력한 동기가 되어야 한다,"고.
어떻게 보면 이 말들은 19세기에 기록되었지만, 2017년 오늘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부터 일단 청소년 시기를 오로지 대학이라는 거대한 목표 하나만을 바라보며 행복한 미래를 상상해 왔으나, 막상 대학생이 된 현실은 '문송합니다 (문과라서 죄송합니다)'를 울부짖으며 또 취업이라는 거대해 보이는 이상을 향해 가는 한낱 예비 취업준비생일 뿐이니까. 수많은 고비와 고통 속에서 행복한 나 개인을 만드는 건 다름아닌 오늘이고, 그것이 니체가 현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지하고자 하는 가장 큰 메시지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글을 마치며
현대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많은 부분들이 서양, 그 중에서도 그리스의 영향을 받았기에 그리스 비극을 공부하는 것은 따분한 옛날 책을 읽는 시간이 아니라 우리 사회 내면을 깊이 탐색하며 다양한 현상들을 고민해볼 수 있는 기회임을 이번 강좌 첫 시간을 통해 깨닫게 됐다. 앞으로의 강의가 정말 기대된다 :-)
김만권 교수님의 그리스철학읽기 제1강 니체
제목: 니체 <비극의 탄생>, 그리고 비극과 정치
-비극을 읽는다고 했을때 읽어야하는것 아리스토텔레스의<시학> 왜 희극과 비극이 필요했는지에 대한 말을 한다.
-시학이 고대에 비극에 대해서 가장 완성된 책이라고 했을때 근대에 가장 완성된 책은 니체의 <비극의 탄생>.
-니체는 인생은 고통스럽다고 한다. 누구나 고통하지만 그 고통을 긍정하고, 받아들이고 노력하지만 그 고통을 넘어서면 또다른 고통이 찾아온다. 니체는 내가 생각하는 원리와 세상의 원리가 너무 멀면 절망을 느낀다고 말한다. 플라톤은 개인은 이 간극을 좁혀나가는 것, 더 나은 삶을 지향함으로써 절망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니체는 이 개념을 뒤집어서 고통과 간극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마주하는 것이다. 그 고통을 외면하면서 갈구하는 세계를 바라보는 것은 잘못되었고 그래서 기독교를 싫어한다.
-지옥이라는 개념은 플라톤이 만들었다. <국가>를 읽으면 글라우콘이라는 사람이 겉으로는 정의로운 사람 속으로는 사악한 사람을 어떻게 구분해낼까?라고 물어봤을때 플라톤은 지옥으로 간다고 답변한다. 그러면서 천국론, 지옥론이 자리잡는다.
-플라톤의 이데아와 기독교의 내세가 겹치는 부분이 있는데, 신의 말씀을 듣는 형이상학자, 절대적인 이상을 추구하는 태도를 경멸한다.
-비극의 탄생은 니체의 자기비판의 시도 15년 이상이 학생을 지도한 이후에 자기 이상에 대해서 써놓는 책이다.
-‘계보학’ 새로운 방법론을 내세우고 20세기 푸코가 이것을 받아들인다. “계보학”은 우릭가 당연히 믿고 있는 진실을 뒤집는 것이다. (Ex 신대륙을 발견한 사람은 누구일까? 콜롬버스 그렇다면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를 발견한 사람은 누구인가?)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지식들이 서구 중심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당연히 받아들이는 사람을 계보학이라고 한다.
-1844 년에 태어나고 20세기 입구인 1900년대에 죽었다. 근대는 인간의 시대라고 신은 죽었다라라고 말하면서 죽었다. 신외에 다른 대체물을 찾지못하고 죽었다. 실존주의를 열었던 사람이다. 실존주의는 사실자체를 받아들고 사실대로 살아가야한다고 하고 후에 칼 슈미트, 막스 베버와 같은 학자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니체의 “힘에로의 의지를” 나치에게 잚못 이용되었다.
-초인이 영어에서는 overman 극복하는 인간이라고 해석된다. 독일어 표현에는 플라톤식의 형이상학을 거부하는 사람이라고 해석된다. 이 사람은 나만의 기준을 세우는 사람이다. 선악의 개념 구분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선악을 구분하면 결국 자신이 말하는 진정한 삶을 가지는 사람을 억압하는 것이 된다. 도덕에는 옳고 그름이 정해져있다. 니체는 칸트적인 도덕형이상학을 싫어하지 않는다 자기안의 기준을 만드는 것에는 동의는 했지만, 다른 사람으로부터 도덕의계보가 온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비극의 탄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초판의 배경표지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배경표지는 프로메테우스의 사진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에게 체벌받는 상황에서 언젠가는 본인이 풀려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태도,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그것을 긍정하는 개별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진정한 위버맨시*(독일어로 초인) 이 되려면 체벌을 받더라도 재판을 받더라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투쟁하라는 내용을 볼 수 있다. (표지에 대해서 니체도 강조한다)
-반시대적고찰 니체가 사용하는 내용 반시대적 고찰 4편으로 만들어져 있다. 교육자로서의 쇼펜하우어가 존재한다. 교육자로서의 쇼팬하우어 여기의 이야기들이 다 들어가 있다. 니체를 입문할때 교육자로서의 쇼팬하우어에 관한책을 읽으면 좋을 것.
-니체가 말하는 핵심은 자신의 삶에 책임 질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종교의 꼬임에 넘어간다. 모든 플라톤적인 형이상학을 다루는 사람들 절대적 진리를 따르는 사람들은 현실을 외면하게 된다. 지금 현실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외면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현세에 가져야하는 형이상학이다. 이데아의 형이상학이 아닌 현세의 형이상학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쉬는 시간
-비정규직 남성노동력을 비정규직 여성노동으로 대체했다는것 / 페미니즘은 분배투쟁과 인종투쟁을 해야한다. 한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사람은 버틀러다. 미국은 버틀러와 프레이져다. 왜냐하면 버틀러가 인종투쟁을 전개했기 때문이다. 인종투쟁을 통해 가족주의를 해체하려고 한다. 남성위주의 분배체계 복지체계 역시 부술려고 한다. 프레이져는 여성중심의 복지사회를 없에는데 여성주의가 활용되었다고 한다. 제1세게 여성을 위해 제3세계의 여성들이 다 비정규직이 되었다. 발전된 국가에서 대부분의 여성들이 저임금 노동자가 되버렸다. 신자유주의와 마주해서 비극이 일어난 것이다.
-1장에 본인이하고 싶은 이야기가 매우 많이 담겨있다. 이것을 처음부터 이해할려고 하지말고 이해되는것만 읽고 나머지를 해석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비극의 탄색의 원래 제목이 비극의 탄생, 그리고 정신과 염세주의다. 그리스인들의 세계가 가장 이성적인 시대였다. 이성의 시대와 빛을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만 보면 이들에게 염세주의란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실제 우리가 비극이라고 하면 쇼팬하우어 삶의 갈망이 의미없다는 해석을 생각한다.
니체의 비극의 해석은 다르다. 그리스 시대의 번창하는 비극을 죽인 사람은 소크라테스다.
-학문이라는 것들이 진리를 찾는 활동이 우리가 체념하고 싶지 않아서 절망하고 싶지 않아서 하는 행동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 좌절로부터의 도피가 아닌가?. 이건 학문의 문제, 우리가 고통스러운 현실과 마주하기 싫어서 이상적인 무엇을 찾아가는 것 아닌가? 학문의 토대에서는 인식되기 싫기 때문이다.
-니체는 디오니소스가 그리스 비극을 형성하는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아폴론적인 것에 정의의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디오니소스의 본질은 도취다. 도취는 사람들과 환의의 순간에 들어가는 것이고 이것은 보통 정치에서는 혁명의 순간이다. 이렇게 되면 자신의 기준을 상실하게 된다. 로베스 피에르같이 엉망징창이되는 경우가 있다 자신의 기준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자유 프랑스 혁명의 기본정신 어떻게 나눌 것인가가 혁명의 과제가 된다. 기준을 상실해버린다. 그런 순간의 도취적인 순간을 말한다.
아폴론적인것 – 기준이 있는것 이성이 있는것/ 디오니소스 – 기준이 무너지는 것 그리스 철학은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를 넘나드는 것이다.
-서울대 김주휘 교수님 니체에 대한 글을 같은 구조로 써놓앗다. 그분의 글을 찾아보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비극은 어디서 유래했는가? 니체의 아폴론은 태양의 신이지만 태양을 절대적으로 믿지 않는 플라톤적인 아폴론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차라투스를 디오니소스의 부활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무엇이 디오니소스적인지 계속 물어보게 된다. 플라톤의 말을 빌리자면 가장 큰 축복을 가져온 것이 광기라고 한다. 그리스인들이 휠씬더 낙천적이고 논리와 더욱 열성적으로 더욱 학문적이되었다. 자기한테 닥친 고통을 피하기 위해 학문의 세계로 도망갔다. 현실적으로 눈앞에 들어가는 순간이 아니였을가 생각을 한다.
-니체가 언급하는 민주주의는 정치의 형태의 민주주의라고 한다.
-기독교는 절대적으로 모든 척도로써 예술을 부정한다.
-삶은 가상, 예술,, 기만, 광학(렌즈를 빛에 대면 바뀐다 절대적인 것이 없다) 오류의 필연성에 의해 삶은 욺직인다. 무조컨적인 도덕앞에서의 삶 이게 가지고 있는 나쁜 측면을 이야기하면 신의 말씀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신의 말씀은 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른 전쟁을 했다. -성경이 다양한 언어로 읽으면서 다르게 해석하면서 문제가 생긴다. -하지만 신의말씀을 듣고 복종하라고 말하고 이것이 신의 전지전능함이다. 이는 반도덕적인 것이 아니라 비도덕적이라고 한다.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체념이 아니다. 쇼펜하우어는 비극에서는 올바른 일을 해서 문제가 생긴다. 내가 옳은일을 했는데도 상황이 더 나빠진다면 과연 이 삶에 집착할 가치가 있는가 질문을 던진다. 비극의 정신의 체념으로 인도한다. 이는 디오니소스가 말한 것과 다르다.
-쇼펜하우어가 아폴론, 디오니소스의 해석을 한다. 아폴론적인 것 – 조형예술 디오니소스적인것 – 음향예술/ 1. 쇼팬하우어의 아류적 2. 니체가 말하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뒷받침하는 고증의 자료들이 없었다. 고증문헌자료가 없었다.
-과연 쇼펜하우어와 니체는 같은가?
쇼펜하우어의 비극은 삶을 체념하게 만드는 것이였지만
니체의 비극은 삶을 긍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쇼펜하우의 염세주의는 체념 니체는 내 앞으로 고통스러운 삶을 긍정합니다. 쇼팬하우어는 삶 자체가 저주라고 생각한다. 이것 자체가 어디서 나오냐면 무엇인가 부족하고 결여됬기 때문이다. Will 이 나쁜이유는 부족과 결핍을 나타내기 때문에 현실화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끊임없는 부족과 결핍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아렌트는 왜 니체가 Will대신 자유를 말하지 못했을까?) 왜 끊임없이 체워놓지 못하였는가? 그레서 쇼펜하우어를 읽은 많은 청년들이 자살을 했다. 사실 쇼펜하우어에게 자살은 무엇에 의지를 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것도 불교의 선의 의지와 같은 것이다. 쇼펜하우어가 신을 믿는 이유는 철저한 의심 후 믿을 수 있을기 때문이다. 체워 놓을 수 없는 것이라면 그냥 비워놓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체념을 순수한 말이라고 한다.
-순수한 앎 의지의 예속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이 순수하게 말을 하는 것
-비극은 무엇인가? 세계와 삶 진정으로 만족시킬 수 없는 이유 여기서 비극의 정신. 여기서 비극의 정신이 존재한다. 비극의 정신은 체념으로 인도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만난 것 거기서 어떤 길을 찾은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에게는 그것이 자유이자 표상이다. 거기서 나온 주인공들이 정말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끊임없이 그속에서도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생각하는것 그리스 비극에서 무엇을 해야 옳은지? 그 어렵고 난감한 상황에서도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이질문이 철학과 통하는 것이 있다.
-니체는 쇼펜하우어와 반대로 체념하지 않고 투쟁을 하는 긍정을 하는 그리스 비극이 비극이라고 이야기한다. 니체는 쇼펜하우어를 보면서 우리가 의지하는 일을 내려놓는 것 채념하는 것이 잘못되엇다고 한다. 이 의지에 종속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페시미즘은 개념의 영역에서만 가능하다고 한다.
-과연 우리는 내려놓을 수 있을까? 우리는 사랑 받고 싶어하는 욕망에서 벗어나야 한다. 루소가 말했듣이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술가들을 만들어내는 것의 90%는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에 대한 욕망이 강한 사람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의지하고 갈망하기 때문에 도덕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니체의 독창적인 측면은 무엇인가? 쇼팬하우어의 체험, 쇼팬하우어는 플라톤적인 구조를 세우고 이데아를 만든다. 여전히 쇼팬하우어는 플라톤적인 이데아에 가두어져 있다. 현세안의 삶을 가지고 있다. 체념하고 바라는 것 바라는 대상이라고 믿는다. 고통받는 삶 자체를 긍정하라는 의미에서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니체가 가지고 있는 측면은 아폴론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의미에서 니체와 쇼팬하우어는 다르다.
느낀점
-이번 여름 우연치 않게 아론슈스터와 슬라보예 지젝 교수님의 조교를 하게 되었다. 그때 당시에도 욕망 그리고 욕망이 어떻게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경계를 통해 표출되는지에 대해 말을하고 그것 안에서 보여지는 욕망의 미학에 대해서 설명한다. 욕망을 탈출하려고 하지만 벗어나지 못하는 비극과 필연적으로 죽거나 비극을 맞이해야하는 인간을 미학적으로 표현하신분들이 이 두 정신분석학자, 철학자였다. 그리고 그 욕망의 근원은 거울단계, 성욕(섹슈얼리티)으로 부터 시작된다고 보았고 이것은 아주어린 어린아이때부터 시작된다. 그때 당시에도 프로이드가 말한 것처럼 욕망으로 인해서 어린아이가 불안에 시달린다고 했다.
어쩌면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욕망과 욕구에 의한 불안을 느끼고 그것을 탈출하려 하다보니까 비극을 맞이한다. 하지만, 비극은 미학적 일수도 있다. 비극자체는 누가보이는 것에 따라 상대적인것이다. 그렇기에 과연 비극을 비극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비극은 욕구가 표출되는 어쩔 수 없는 장면들이고 어쩔 수 없이 인간이 겪는 것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음의 미학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은가 질문을 던져본다.
자원활동가 류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