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짓는 기예, 사랑

  • 강사

  • 기간

    • 2018. 3. 5 ~ 2018. 4. 2
  • 시간

    • 월 19:00-21:30 총5회
  • 수강료

    80,000

    • 파격 할인혜택
    • 참여연대 회원5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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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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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을 적대시하던 정권이 물러갔습니다. 위기에 빠졌던 민주주의가 조금씩 회복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만인의 적이 물러갔지만, 한국 사회의 또 다른 민낯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적대와 혐오입니다. 다름과 차이를 참을 수 없는 사람들이 타자에게 사라져줄 것을 요구하며, 일상에서 서로에게 갑질하는 사회. 서로를 ‘동료 시민’으로 대하는 법도 모르고, 존중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것 처럼 보입니다.

     

    서로 대면하지 않고도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온라인 세상에서 나 홀로 SNS라는 ‘취향의 공동체’에 빠져살고 있진 않나요?

     

    비대면 사회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를 짓는 역량-바로 사랑입니다. 다른 두 개의 목소리를 하나의 무대에서 만나게 하는 일. 평등에 기초하여 존엄을 존중하는 사회를 짓는 ‘사랑’의 역량이 절실합니다.

     

    이번 강의에서는 '관계의’ 사회학자 엄기호 선생님과 함께, 사랑이 일으킨 혁명과 위기 그리고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합니다.

     

     

    강의일정

    날짜

    주제

    3.05

    사랑, 존중을 꿈꾸다

    3.12

    사랑에 실망하고, 친밀성은 공포가 되다

    3.19

    비대면 정보 사회에서 잃어가는 사랑의 역량

    3.26

    그럼에도, 사랑은 어떤 새로운 정치적 가능성을 낳는가

    4.02

    다시 세계를 짓는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까


     

    강사 소개

    엄기호 사회학자. 성장이 불가능한 시대의 페다고지를 만드는 것을 삶의 화두로 삼고 있다. ‘교육공동체 벗’에서 발간하는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을 하고 있다. 저서로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단속사회>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등이 있다.

     

     

    강좌 정보

    일   시 : 2018. 3. 5 ~ 4.2. 월요일 오후 7시 ~ 9시 30분, 총 5회

    장   소 :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

    수강비 : 8만원(참여연대 1만원 이상 후원회원 30% 할인)

     

    ※ 강좌할인 및 취소환불 규정은 수강신청안내(클릭)를 꼭 확인하세요.

    후기 4

    • 세계를 짓는 기예 사랑 5강 - 사랑의 정치적 가능성 & 다시 세계를 짓는 사랑은 가능한가?

      2018.4.9 개똥이 세계를 짓는 기예, 사랑

      세계를 짓는 기예 사랑 5- 사랑의 정치적 가능성 & 다시 세계를 짓는 사랑은 가능한가?

       

      *후기는 강연 내용과 강연에서 배부된 프린트에서 발췌했습니다. 이 글의 저작권은 참여연대와 엄기호 사회학자님께 있습니다.*

       

      어린 아이와 청소년은 그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오늘날 노동세계에서 제외되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들을 준비하는 사람으로 보고 그들의 주체성을 박탈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따라서 어린 아이를 노동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자는 주장이 있지만 몇 세 아이부터 어떤 노동까지 포함시켜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이 된다.

      오늘날에는 아이에게 드는 경제적 비용이 증가하고 아이로부터 얻는 경제적 이득이 감소한다. 자식은 경제적 가치보다는 사랑의 가치를 지니게 된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책임의 주체보다 권리의 주체가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책임지는 주체가 되었을 때 인간은 자신의 존재감과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생긴다. 하지만 오늘날은 책임감이 강할 성인일수록 아이를 갖지 않으려한다. 아이의 미래가 걱정되어서,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이를 갖지 않는 것이다.

      만약 아이를 갖게 된다면 자신을 무장하고,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모든 정보를 전부알기 원한다. 고안된 출산과 육아 방법 등 산모보다는 아이에게만 관심을 쏟는다. 아이를 키우기 위한 최적의 준비를 하려하고 부모나 조부모의 지혜는 쓸모없는 것으로 규정된다. 현대에는 오직 최고만이 있을 뿐이다. 부모에게 그들의 본분을 다하라는 압력이 가해진다. 가장 먼저 육아에 대한 정보를 최신으로 업데이트하는 것이 그 중 하나이다. 끊임없이 과학과 정보를 통해 더 나은 출산과 육아를 공부한다. 엄마는 적절한보살핌을 받지 못한 아이는 대처 능력이 없을 것이라는 공포를 가진다. 이는 현대인이 신자유주의적 관리의 주체로서 사랑으로 키우는 자식조차도 투자와 관리를 통해 기르려는 모습이다. 비정한 엄마들, 아이를 가질 자격이 없는 엄마들만이 새로운 규칙을 따르기를 거부할 수 있다는 역설이다.  

       

      인간의 동물성이란?

      말의 머리를 가지고 사람의 몸을 가진 인간. 그는 인간의 합리적 이성을 해방하고 본능적인이고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허용하는 사람이다. 그는 인간의 음성보다 인간의 소리를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다. 아이를 잃고 슬퍼하는 부모의 절규를 듣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오늘날 서로에게 무관심해진 이 사회에서 꼭 필요한 사람일 것이다.

       

      사랑의 형식 중 하나인 필리아.

      필리아는 성찰보다는 반사에 가깝다. 친한 사람을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계산을 넘어 미소부터 짓는 것, 대가를 바라지 않고 타인의 존재만으로 기쁨을 느끼는 것, 현존 자체를 기뻐하는 사랑이다. 개인주의가 익숙해지는 현대사회에서 사라지고 있는 필리아적 사랑. 사랑은 계산하고 안전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기뻐하는 것이다.

          

      위험 없는 사랑을 당신에게. [세계를 짓는 기예 사랑 5-(3) 2에서 3페이지 중]

      사랑에 빠지지 않고서도 우리는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공통된 취향이 사랑이며, 사랑이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서 저들의 삶에 그 밀도와 의미마저 부여하는 것이라고 확신하는 제 입장에서 볼 때, 위험이 부재하는 체제에서 존재에 부여하는 이런 증여는 결코 사랑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안전한 사람만을 사랑한다는 것은 위험이 오직 타자들에게서만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타인이라는 존재를 포기하는 것, 열정을 절약하면서 쾌락으로 채워진 즐거운 성적 타협을 우리가 소유할 수 있다는 논리, 안전과 안락에 대항하여 위험과 모험을 다시 창안해야 합니다.

      사랑의 경험은 일종의 도약입니다. 서로의 이익만을 챙길 단순한 교환처럼 인식되지 않으며, 미리 수익성을 기대하고 진행하는 투자처럼 장기간 계속 견디는 것도 아니므로 사랑은 우연으로 인해 발생되는 믿음입니다. 결국은 주체가 자기 자신을 넘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나르시즘을 넘어서는 게 바로 사랑 안에서입니다. 사랑은 타자 존재 자체, 단절되고 재구성된 자신의 인생에서 자신의 존재로 완전히 무장하고서 불쑥 솟아난 타자 그 자체와 관련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시련을 받아들이고 지속될 것을 약속합니다. 우연 속에서 시작된 만남을 지속성과 끈덕짐, 약속, 충실성을 통해 우연을 고정시키고 운명에 이르는 것이 사랑입니다. 당신에게 하나의 가능성처럼 주어지지 않았던 무엇을 존재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어떤 불가능성을 극복하고 둘이 등장하는 무대를 만드는 것입니다.

       

      +) 타자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타자성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 이후부터는 타자성이 없다고 생각하고 무시하고 살면 안 된다.

       

      강연을 마치며...

      강연 도중 사람들과 사랑에 대해 토론해볼 시간이 있었다. 우리는 사랑을 이런 강연과 이론으로 배워야하게 되었을까에 대해 고민해 보게 되었다. 사랑은 우리의 삶과 공동체 안에서 자연스럽게 알아가는 것일 텐데 경쟁이 과열되고 개인의 삶이 고단해지면서 사랑이란 하나의 이상을 가리키는 우리와 거리가 먼말이 되어버렸다.

      강의에 온 사람들도 사랑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현재의 사회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온 것일지 모른다. 우리는 우리가 강연에서 배운 사랑에 대한 이론과 지식을 삶에 어떻게 적용시킬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경쟁이 치열해지는 사회 속에서 사랑이 가능한지에 대해 토론헀다. 물론 명확한 결론은 나지 않았지만 각자의 삶을 되돌아보며 사랑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공유할 기회를 얻었다. 

      우리는 이 강연을 통해 사랑의 면모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고 자신이 살고 있는 삶과 사회를 되돌아 볼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삶과 가치관에 다시 한번 확신을 가지고 강의실을 나갈 것이고 어떤 사람은 사랑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터덜터덜 발을 옮길 것이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 없다. 

      문제를 인지하면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분명 어려울 것이다. 관성적으로 살고 있는 삶에 변화를 주는 건 사랑에 대한 지식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보고 들은 강연의 내용에 대한 고민은 의식적이든 아니든 삶을 사는데 내려야 하는 크고 작은 선택들에 영향을 줄 것이다. 위험을 감수하고, 인정을 베풀며, 개인에서 나아가 타인으로, 타인에서 나아가 사회로, 사랑을 하는 일은 쉽진 않겠지만 우리가 배운 사랑의 다양한 면모와 올바른 방법이이 존재한다는 걸 안 이상 우리는 사랑을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 세계를 짓는 기예 (엄기호 선생님) 4강 후기

      2018.4.2 미요이 세계를 짓는 기예, 사랑

      나는 평생을 여자로서 살아왔다. 하지만 오늘 강의를 들으면서, 정말 그러한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남성성이라는 것이 근대의 산물인 것처럼, 오늘날의 여성성또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근대 이후의 남성성의 이미지는 성인, 자유인, 의지대로 살아가는 사람 등으로 재현되며, 무엇보다 힘을 타자(대상)에게 가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여성의 이미지와 확연히 구별된다. 남성들은 도덕적 감성을 가지고 사회와 공익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사람들이고, 그렇기 때문에 시민권과 자유 또한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남성의 범주에 들지 못한 사람들은 마찬가지의 이유로 배척과 차별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들은 여성, 장애인, 동성애자, 그리고 (유대인으로 대표되는)이방인들이었다. 특히 이방인들은 가장 오랜 기간 동안 혹독한 차별을 견뎌내야 했는데, ‘뿌리’, ‘이 없는 민족은 정치공동체를 가질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언제든 국가를 배반할 수 있다는 통념이 그 주된 이유였다.

      남성성을 이야기할 때 나 자신에 대한 성찰을 피해갈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생물학적으로는 여자이지만 남성적 가치들을 내면화한 나는 결코 완전한 여성성을 대표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남성성에 대한 문제는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하는 주제이고, 어느 성별 집단에 대한 맹목적 비난이나 조롱으로 이어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에 분명히 존재하는 성별 간 위계구조가 문제화되어야 한다는 점은 여전히 중요한데, 이는 견고한 동성사회집단에 대한 문제제기이기도 하다. 기쁨을 주고받는 관계가 연인관계를 제외하고는 동성관계에서밖에 없는 Homo-erotic한 문화, 그리고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만 어울리는 Homo-social한 문화가 만연한 한국 사회 전반의 비공식영역은 동성집단화 되어 있다. 지혜의 전승이 일어나는 비공식영역에서의 경험이 차별적으로 행해지면서 성별 차이는 실질적 능력과 기회의 차이로 이어진다. 엄기호 선생님은 한국에서 동성 간의 성적 관계가 금기시 되는 이유는 이러한 동성집단 중심의 연대가 위기를 맞이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는데, 나는 이를 거꾸로 되짚어 동성애에 개방된 사회일수록 동성집단의 엄격한 분리가 옅어질 것이다라고 해석해보았다.

      엄기호 선생님은 또한 비장미를 잃어버린 일베의 남학생들의 대화를 관찰함으로써 오늘날 청년들에게 무기 없는 아들들이라는 이름을 붙인 배경을 설명하였다. 부친을 살해함으로써 이룩했던 청년세대들의 정당성, 그리고 정치적 진보가 오늘날에도 가능한 것인가? 사회에 대한 주도권을 젊은 세대들로부터 빼앗기거나 그들에게 스스로 넘겨지는 아버지의 역할을 지금의 아버지 세대(386세대)는 이행하고 있는가? 베트남전 참가와 해외노동자 파견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열악한 공장에서 모진 노동을 감내해야 했던 태극기 세대들은 어쩌면 한국 역사상 최초로 아버지의 역할을 다 했던 세대일 것이고, 5.18 이후 876월 항쟁으로 이들을 물러나게 한 현재의 아버지 세대는 일종의 살부(殺父)’를 행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아직까지도 건재하다는 것이며, 정치적 정당성과 경제적 능력, 사회적 지위, 수적 강세 모두를 손안에 쥐고 있다는 사실인 것이다.

      한국의 청년인구는 기득권을 가진 부모님의 자식들과 그렇지 못한 부모님의 자식들로 분화되어 있다. 물론 그 스펙트럼은 다양하겠지만, 굳이 살부(殺父)’를 행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끼는 청년들의 목소리는 이전보다 작을 수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와 잇따른 사회적 재난들 이후, 자신들의 생존과 안녕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분명 높아졌다. 그러나 그 목소리가 과연 청년의 언어와 서사로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이다. 청년들에게는 좀 더 많은 공통의 공간과 시간과 경험, 그리고 이것들의 총체인 사회가 필요하다

    • 세계를 짓는 기예 (엄기호 선생님) 2강 후기

      2018.3.20 미요이 세계를 짓는 기예,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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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기호 선생님 강좌 (제 2강: 사랑, 세상을 짓는 기예) 후기

       

      전미영 (참여연대 자원활동가)

       

      근대 초기의 혼인은 개인의 선택 이라기 보다는 도덕적, 법적 질서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근대 후기에 해당하는 오늘날, 결혼은 선택의 일대기적 성격을 띠게 되었으며 우리는 선택하는 개인으로서 강박과 자유를 동시에 안고 살아간다. 배우자를 찾는 과정에서 우리는 상대뿐 아니라 스스로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자문하고 성찰한다. 이 결혼이 과연 최선이 될 수 있을지, 내가 잃게 되는 것은 없는지를 따져보며 때로는 결혼으로 인해 누리지 못할 미래 어느 것들에 대해서 이른 후회를 하기도 하는 것이다.

       

      엄기호 선생님은 이를 미리 앞당긴 실망이라 표현하며, 사랑을 시작하는 동시에 실망할 준비되어 있는 청년들의 일면에 대해 설명하였다. 청년세대가 중요시 하는 등가성의 원리에 충실하면서도 아프지 않은, 또한 합리적인 사랑은 기존의 에로틱한 사랑과는 분명 결이 다르며, 이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새로운 관계의 방식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결혼에 대한 인식 또한 달라지고 있다. 결혼 이후 자신이 개인, 주체적 인간으로서 살 수 없다는 두려움이 있을 때, 과거의 여성들은 희망을 버렸지만, 오늘날 여성들은 결혼을 버린다.

       

      그렇다면 지속 가능한 사랑은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까? 서로의 타자성을 존중하면서 상호 호혜적 돌봄을 오래도록 주고 받을 수 있는 동등한 관계는 실제로 가능한 것인가? 엄기호 선생님에 따르면 열정이 다르게’ 코드화 되어야 한다. 사랑하는 존재로서의 남자, 사랑받은 이후 돌봄의 역할을 다 해야 하는 여자라는 기존의 코드는 연애기간동안의 짧은 남자의 구애 이후 장기간의 여성의 일방적 사랑/돌봄을 요구하는 불평등한 코드였기 때문에 그 열정이 지속되기 어려웠다. 남/녀 역할이 아니라 서로가 다 해야 하는 것으로서의 사랑의 코드를 우리는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자신을 내적으로 확장, 강화시키며 끊임없이 과거와는 다른 차이들을 만들어내고, 그 차이들 속에서 나 다움을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즉, 성장하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이와 동시에 관계 안에서 스스로를 계속적으로 드러내는 용기를 내야 한다. 진실한 드러냄은 사랑하는 관계 속에서만 적절하고 또한 가능하다. 나의 존재감을 인정 받고 또 상대의 존재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여전히 서로에게 타자로, 그러나 매우 친밀하고 진실한 태도로 사랑할 수 있다.

       

      <단속사회>서 엄기호 선생님은 듀이를 인용하며 성장이란 자기 삶을 연속적으로 흐르는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려는 의지와 그것이 의미 있고 가능할 때에만 이루어진다고 했다. 사랑한다는 것은 나의 서사를 넘어 우리의 서사를 함께 만들어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 나는 파트너 관계를 넘어선 사회 공간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랑이 실현되어야 한다고 믿는다.이에 대한 고민은 앞으로의 강의들을 통해 이어갈 것이다.

    • 엄기호 사회학자 '세계를 짓는 기예, 사랑' 1강 _ 사랑, 존중을 말하다 후기

      2018.3.12 개똥이 세계를 짓는 기예,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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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기호 사회학자는 성장이 불가능한 시대의 페다고지를 만드는 것을 삶의 화두로 삼고 있다. ‘교육공동체 벗에서 발간하는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을 하고 있다.

      그의 강연 세상을 짓는 기예, 사랑에는 30명 남짓한 사람이 와 강의실을 채웠다. 모두 그의 강연에 관심을 갖고 모인 사람들이었다. 홈페이지

       

       

      # 1: 사랑, 존중을 꿈꾸다

      강연 이름은 세상을 짓는 기예, 사랑이다. 기예는 예술로 승화될 정도로 갈고닦은 기술이나 재주를 뜻한다. 풀어서 얘기하면 세상을 짓는 사랑의 기술을 의미한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사랑의 기술은 무엇인가? 사랑의 특별한 기술이 있단 말인가? 엄기호 사회학자는 첫 수업에 존중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사랑에 대해서 설명했다.

       

      #사랑은 평등을 전제한다.

      먼저 사랑은 평등이 전제한다. 인간 대 인간으로 동등한 위치에 있어야지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노예와 주인 사이에서 개인적인 우정이 존재할지는 몰라도 서로를 사랑하기까지 나아갈 수 없다. 공적인 자리에서 주인은 노예에게 맞는 대우를, 주인은 노예에게 맞는 대우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를 존중해주는 것이 사랑이다.

       

       

      #완벽한 상호존중은 없다.

      상호존중은 평등한 위치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완벽한 상호존중을 이룰 수 있는 기간은 극히 짧다. 두 사람의 관계에서 시간의 차이를 두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더 존중하고 마찬가지로 반대인 시기가 온다. 마치 시소처럼 서로의 관계가 역전된다. 존중은 역동성을 지닌다. 따라서 인간관계에서 단면적인 부분만 보고 그 관계를 판단하는 건 위험하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그 관계가 어떤 경향성을 띠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상대에 대한 소극적 존중

      엄기호 사회학자는 두 가지의 존중을 말했다.

      소극적 존중은 상대에 대한 무관심이다. 흔히 취존합니다(취향 존중합니다)’ 라는 말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타자에 대한 관심을 거두고 타인의 취향이나 개인사에 깊이 관여하지 않는 것이다. 엄기호 사회학자는 이러한 존중이 직장에서 꼭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그곳에서는 비인격적 관계를 맺는 것이 오히려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이다. 흔히 우리 사회에서는 직장을 또 하나의 가족이라고 여기며 업무 시간이 끝난 후에도 만남을 갖고 업무 이외의 사적인 일에도 관심을 둔다. 사회에 이런 분위기를 가진 직장이 많다는 건 가족과 직장 간의 기능 분화가 덜 된 증거라고 말했다. 사적인 관심과 애정이 필요한 곳은 친밀한 관계를 수행하는 가족과 친구, 이웃들이다. 위계질서가 존재하는 회사에서 이러한 역할을 하면 애정이라는 이름의 폭력이 된다. 업무에 사적인 감정이 개입되면 업무에 차질이 생긴다. 따라서 공적인 자리에서는 익명성과 서로에 대한 적당한 무관심이 요구된다.

       

       

      #상대에 대한 적극적 존중

      하지만 친밀한 관계에서 이러한 무관심은 방목이다. 존중하기 때문에 무관심해질 수는 있어도 서로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관계에서 무관심이 존중이 될 수는 없다. 친밀한 관계에서는 그 사람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상대방의 인격을 아는 건 엄청난 노력을 요하는 일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그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만약 인지 작용을 멈추면 위계질서를 강요하는 일 밖에 없다. 사르트르는 말했다. ‘타자는 지옥이다.’ 타자를 아는 것은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일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진실이 아닐 수 있다고 반문해보는 일이다. 타자를 알고 사랑하는 것은 자신의 언어를 바꿀 수 있는 커다란 일이다.

      사랑은 나르시즘을 극복하게 한다. 타자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존재, 내가 완전히 알 수 없는 존재라는 걸 깨달을 때 스스로 작아지고 세상에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게 있다는 걸 인정할 수 있다. 타자를 만났을 때 타자를 조심조심 다루기, 있는 그대로 두기, 물러나기 등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건 타자의 타자성을 거세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자발적 위축이 있다. 자발적 위축은 사랑에서 나오는 기쁜 위축이다. 상대방에게 여지를 주기 위해서 자신을 작게 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슬픈 위축도 있는데 이는 상대방이 먼저 우리를 포기에 이르게 하는 경우이다. 이 때는 사랑이 아니라 분명한 폭력이다.

       

       

      #엄기호 사회학자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엄기호 사회학자가 생각하는 사랑은 그 사람 그 자체로 알아주는 것이다. 이 사람에게는 다른 무언가로 환원할 수 없는 그 사람만의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는 것이다.

      그 사람의 무엇을 규정할 수 없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사랑하는 것이 그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에 대한 반문이나 반박 또한 그 사람에 대한 걱정과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면 괜찮다.

      그 사람에게 기능을 기대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인격을 봐주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을 위해서 어떤 기능을 수행할 수 있지만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사랑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 사람에게 기능과 역할만을 기대하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인격 모독이다.

       

       

      #강의를 마치며

      사랑하는 자와 사랑받는 자가 분명히 존재한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는 번갈아가면서 일어난다. 하지만 자신이 사랑 받지 못했다고 자신이 사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억울함, 피해의식, 자괴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럴 때면 오히려 더 사랑하는 자가 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수 있다. 다음 시간에는 이에 대해 더 자세히 말씀해주신다 했다. 다음 강의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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