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정보
2017년 대통령 탄핵 이후 우리 정치는 결정적인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새로운 변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구체제의 유산 안에 남을 것인가?
이 강의는 변동하는 우리 정치에서 반드시 점검해야 할 사안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강의 일정
날짜 |
주제 |
5.8 |
기억(memory)과 정의 정의를 형성하는 세 가지 요소는 분배, 인정, 대표 누가 우리를, 어떻게, 무엇을 위해 대표할 것인가 |
5.15 |
시민불복종과 혁명 시민은 왜, 어떻게 불복종하는가 변화를 원하는 우리. 그러면서도 혁명은 두려워하는 우리 왜 우리는 혁명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아도 좋을, 그런 혁명은 없는 것일까 |
5.29 |
헌법과 권력구조 헌법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아니 어떻게 만들어져야만 하는가 평범한 사람들은 헌법을 만들 수 없는 것일까 대통령제란 무엇이고, 의원내각제란 무엇인가 이원집정제란 무엇인가? 우리가 바라는 권력구조는 무엇인가 왜 권력구조 개편에 선거제도개혁이 중요한 것일까 |
6.5 |
인권과 시민권 시민이 되는 길이 인간이 되는 길이라고? 기본권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수만큼 중요한 소수의 보호는 어디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 것일까 |
6.12 |
노동과 양극화 우리는 어떻게 일하고, 어떤 보답을 받고 있는 것일까 노동한다는 것, 그 의미는 어떻게 변했는가 |
6.19 |
여성과 전망 보호의 프레임에 갇힐 수밖에 없는 사회. 여성의 이해는 어떻게 대변되고 있는가 6.13 지방선거 이후, 한국정치는 어디로 갈 것인가 |
강사 소개
김만권
모두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공적 세계를 짓는 일이 정치와 철학이 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시민들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함께 말을 나눌 준비가 되어 있는 거리 위의 정치철학자다.
그동안 쓴 책으로는 <김만권의 정치에 반하다> <호모 저스티스> <자유주의에 관한 짧은 에세이들> <불평등의 패러독스> <그림으로 이해하는 정치사상> <참여의 희망> <정치가 떠난 자리> 등이 있으며 <민주주의는 거리에 있다> <인민>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강좌 정보
일 시 : 2018. 5. 8. ~ 6. 19. 화요일 오후 7시 ~ 9시 30분 총6회
장 소 :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
수강비 : 100,000원(참여연대 1만원 이상 후원회원 30% 할인, 청년학생회원 50% 할인)
* 20대 청년회원(직장인 제외)은 해당 강좌에 한해 50%를 할인해 드립니다. 카드결제 시 50%할인액이 적용되지 않으니 계좌이체(하나은행 162-054331-00805 참여연대)를 부탁드립니다.
※ 강좌할인 및 취소환불 규정은 수강신청안내(클릭)를 꼭 확인하세요.
후기 6
[후기]6/19(화) 김만권의 정치철학 6강_헌법과 권력구조
헌법과 권력구조
6월 19일, 6주 간 진행된 김만권의 정치철학 마지막 강의가 있었습니다! 6강에서는 ‘헌법과 권력구조’라는 주제로 강의가 진행되었습니다. 앞선 강의에서 헌법과 기본권을 배웠다면, 이번 강의에서는 배제된 구성원이 제도 안에서 스스로를 대표할 수 있는 제도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바탕으로 권력구조에 대하여 배웠습니다.
권력구조의 핵심 : 권력분립
선생님께서는 권력구조의 핵심은 권력의 견제와 균형라고 하셨습니다. 몽테스키외는 입법부를 견제할 목적으로 권력의 견제와 균형의 메카니즘을 제시하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몽테스키외가 제시한 권력구조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행정부가 견제의 대상인 반면, 유럽에서는 입법부가 행정부나 사법부에 비하여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었던 역사적 맥락에서 탄생했다고 설명하셨습니다. 몽테스키외가 주창한 권력구조의 핵심은 ‘인간이 인간답게 통치되는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는 제도가 통치하여야하고, 권력이 분립이 되고 견제와 균형을 맞추어야만 법의 통치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즉, 오로지 ‘권력을 잡을 수 있는 것은 권력뿐’이기 때문에, 권력을 분립시켜 서로 견제하며 균형을 이루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와 같이 시민법을 따르는 나라는 입법부/행정부/사법부 그리고 제4기구로서 헌법재판소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권력구조에서 헌법재판소의 위치나 역할이 절하되고, 행정부가 지나치게 부각되는 문제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입법이 헌법의 취지에 맞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구이기 때문에 헌법재판소의 역할 측면에서는 입법부의 보조기구로 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헌법재판소의 활동이 헌법정신을 지키려는 목적 아래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헌법재판소를 헌법의 수호자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하셨습니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헌법을 수호하는 역할과 책임은 대통령에게 명백히 지워져 있다는 점, 그리고 입법부/ 행정부/사법부는 헌법재판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헌법재판소는 3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행정부가 권력구조에서 지나치게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문제를 제기하셨습니다.
알아두면 좋은 정치체제(political systems)
이어서 다양한 정치체제에 대하여 배웠습니다. 정치체제는 정부나 국가를 구성하는 공식적인 법적 체제를 의미합니다. 크게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 그리고 그 둘을 융합한 이원집정부제로 나누어 보았는데, 위의 정치체제는 행정부와 내각의 존속이 의회의 신임에 근거하는지 여부에 따라 큰 차이를 보입니다.
1) 대통령제
대통령제는 행정부의 성립과 존속이 의회의 신임 여부와 무관한 정치체제입니다. 이는 행정부는 의회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으며, 의회와 행정부과 분리되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미국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미국에서는 의회가 대통령이 구성한 내각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입법부가 행정부의 권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예산법률주의를 채택하고 있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즉 정부의 예산 심의를 의회가 하도록 하며, 의회의 결정 없이는 예산을 집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내각을 구성하는 권한은 대통령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내각은 예산을 심의하는 의회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고 합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예산법률주의가 아니고 입법부는 예산안을 심사하는 역할에 그치기 때문에 행정부의 자율성이 더욱 크게 보장된다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하셨습니다.
2) 의원내각제
의원내각제는 행정부의 성립과 존속이 의회(입법부)의 신임에 근거하는 정부형태입니다. 의회에서 가장 많은 의석수를 가진 정당에서 총리가 선출되고, 의회에서 선출된 수반이 행정부를 구성하는 형식을 취합니다. 특징으로는 의원의 임기는 있으나, 의회의 신임에 근거하기 때문에 임기를 채우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3) 이원집정부제
선생님께서는 이원집정부제는 영어로는 semi-preseidential system으로 대통령제에 더 가까운 시스템이라고 하셨습니다. 입법부와 행정부 선거가 분리되지만, 대통령이 임명한 내각이 의회의 신임과 불신임의 대상이 되는 정부 형태입니다.
우리 헌법에서 대통령의 권한
다음으로는 현 헌법에서 대통령의 권한이 어떻게 규정되어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헌법 제4장 제1절 제66~68조에 명시된 대통령의 의무와 대통령 선출 방식을 살펴보았고, 제70~87조에 적힌 대통령의 권한에 대하여 보았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이 감사원, 대법원, 헌법재판소의 구성에 대하여 가진 권한을 보다 중점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감사원 구성에 대한 내용은 헌법 제98조에 나와 있는데, 감사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고 감사위원은 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되어있습니다. 즉, 감사원의 구성원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형태이므로 대통령에 대한 공정한 감시가 어려운 구조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대법원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헌법 제104조에 대법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고,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되어있었습니다. 헌법재판소 또한 재판관 9인 중 3인, 헌법재판소장을 임명하는 권한은 대통령에게 부여되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권력분립기구 중 입법부 이외의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장을 대통령이 임명하고, 뿐만 아니라 감사원장까지도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에서 과연 위의 기구들이 행정부를 적절히 견제할 수 있겠는가라는 의문을 던지셨습니다. 즉 권력구조가 대통령에 대한 견제가 매우 어려운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덧붙여, 대법원의 경우에는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행정부에 의해 구성되지만 대법원이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는 구조적으로 존재하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입법의 위헌여부 심판, 탄핵심판, 정당해산심판 등을 수행하는 헌법재판소 또한 다른 권력기구를 제어하는 장치가 역시나 부재하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즉, 대통령이 행사하는 권한은 지나치게 많은 대신, 입법부/사법부/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견제요소가 부족하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대통령 개헌 발의안
마지막으로 대통령 개헌 발의안에서 권력구조가 어떻게 개편되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1. 현행 대통령 권한은 5년 단임제이나 개헌안에서는 4년 연임제가 새롭게 제안되었습니다. 연임제는 중임제와는 매우 다른데, 연임제는 임기 횟수를 2번으로 제한한 것이고, 중임제는 반복적으로 당선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었다는 큰 차이가 있다고 설명하셨습니다. 덧붙여, 개헌 당시의 대통령에게는 연임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명시하였습니다.
2. 선거에 관해서도 어떠한 부분이 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첫 번째, 결선투표제를 도입하여 상대적 다수대표제의 문제점을 보완하고자 하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다만 결선투표제가 여당에 유리할지, 또는 야당에 유리할지는 보다 고민해보아야 할 문제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기존 대통령 피선거연령을 삭제하여 40세 미만이라도 출마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3. 의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조항이 추가되었습니다. 우선 발의안에는 예산법률주의가 반영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예산법률주의를 통해 의회의 권한은 강화시키면서 의원 개인의 권한은 약화시킬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행정부와 의회의 여당이 매우 의존적인 관계인 상황에서 예산법률주의가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 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정부 법안 제출 시 국회의원 10명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조항이 추가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정부의 법률안 제출은 유지되었다는 점과 국회의원 10명의 동의가 필요하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국회의 입법권을 강화하기에는 어렵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4. 행정부 고위 임명직 구성에 있어서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였습니다. 국무총리의 자율성을 없애는 헌법 구절을 삭제하였기 때문입니다.
5. 그러나 여전히 한계는 남아있는데, 실질적인 권력분립을 위해 대법원, 헌법재판소, 감사원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여전히 미진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헌법에 명시된 권력구조에 따르면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임명하고, 대법원장이 대법관 3명을 임명하는 방식이며, 헌법재판소장 또한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법부와 헌법재판소의 구성원을 임명하는 권한이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부여됨으로써, 권력의 견제와 균형이 약화되는 문제를 야기합니다.
개헌 발의안에는 대법원장의 인사권한을 조정하여, 대법관은 대법관추춴위원회의 추천을 거쳐 국회의 동의를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는 형태로 수정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 조항만 본다면 사법부에 많은 권한을 부여한 것처럼 보이나 위원회의 구성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대법관추천위원회 구성 시에, 대통령/대법원장/법관회의에서 각각 3명 임명가능한데 대법원장을 이미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행정부의 권한은 6명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헌법재판소의 재판관 자격을 현 판사로 제한했던 기존의 헌법과 달리 정부 발의안에는 재판관의 자격을 개방하는 방향으로 수정되었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대통령의 특별사면 통제를 강화함으로써 사법부에 대한 행정부의 권력을 견제하고 균형을 맞추고자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발의안에는 감사원의 독립기관화를 위하여 9명의 감사위원 중 의회/대법관회의/대통령이 각각 3명을 임명, 또는 선출하는 것으로 반영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감사원이 독립기관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존재합니다. 선생님께서는 헌법재판소, 의회, 사법부 등에 대하여 대통령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제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각각의 기구가 대통령을 어떻게 견제할 수 있는지를 명시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지금 설계되는 새로운 제도들은 기성세대뿐 아니라 미래세대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하시며, 헌법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끝으로 참여연대 옥상에서 뒤풀이를 하며 소회를 나누는 시간으로 즐겁게 마무리하였습니다.
[후기] 6/12(화) 김만권의 정치철학 5강 _ 헌법과 젠더
김만권 정치철학 <5강 헌법과 젠더>
이번 5강에서는 젠더와 관련해 헌법을 설명하셨다.
0. 2물결 페미니즘과 분배, 인정의 영역
1세대 페미니즘은 투표권, 참정권을 얻고자 투쟁하는 운동이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중인 페미니즘은 1세대 페미니즘보다는 2세대 페미니즘에 가깝다.
오늘 강의에서는 2물결 페미니즘을 주되게 다뤘다. 2물결 페미니즘도 두 파트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분배’에 방점을 찍은 파트인 사회주의적인 운동의 물결과 두 번째는 ‘인정’의 영역이다. 페미니즘을 두 가지로 쪼개서 본다면 ‘분배’의 영역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보는 페미니스트들과 ‘인정’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들로 나뉜다.
페미니즘에서 분배와 인정의 영역을 다루면서 김만권 선생님은 낸시 프레이저의 이론을 가져와 설명하셨다. 2물결 페미니즘에 있어서 분배와 인정은 가장 논쟁적인 영역이다. 현재 우리나라 페미니즘은 2물결 페미니즘에서 ‘인정’의 영역에 쏠려있다. 분배와 인정이 함께 갈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현실에서는 노동의 영역에 해당하는 분배와 가치의 영역에 해당하는 인정은 접점이 잘 생기지 않는다.
낸시 프레이저는 페미니즘이 운동 과정에서 신자유주의와 만나 선진국 페미니스트들이 자신의 유리천장을 깨기 위해 나머지 사람들을 모두 공장으로 몰아넣었다고 비판한다. 남성 중심적인 임금구조를 허무는 데는 성공했으나, 이를 여성 정규직 임금 구조로 재구성하는 데는 실패했다는 점에서 페미니즘의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프레이저는 페미니즘을 위해선 다른 약자들과 연대해서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약자 중 가장 중요한 주체가 바로 노동자인데, 현실에서 노동자와 페미니스트가 합의점을 찾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프레이저는 인정 영역에서도 문화보다는 제도 내에서 페미니즘이 다뤄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대표의 영역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동등한 참여를 만드는 데 페미니즘이 실현해야 하는 핵심적인 목표가 있다고 말했다. 동등한 참여란 헌법을 구성할 때 여성이 대표로서 동등한 파트너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가의 문제다.
1. 오늘 날 정의의 두 수준
정의에는 일차원적 질문과 이차원적 질문이 있다.
1) 일차원적 질문 (정의의 내용)
‘정의가 얼마만큼의 경제적 불평등을 허용하는가?’ 일차원적 질문에서 정의는 허용할 수 있는 불평등의 크기가 얼마인가를 얘기하는 것이다. 모든 이들이 평등해야 한다는 것이 정의가 아니다. 어떤 분배정의 원칙에 따라서 얼마만큼의 재분배가 요구되는지, 동등한 존중의 내용은 무엇인지를 다루는 것이 일차원적 질문을 구성한다.
2) 이차원적 메타 수준 (정의의 틀)
이차원적 질문은 정의의 틀을 논하는 것이다. 이차원적 질문에선 정의의 내용도 문제지만 정의의 틀도 문제라고 본다. 제도의 당사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낼 수 있도록 틀 자체를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3)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결국 어떻게 기존의 정의의 내용과 새로운 정의의 필요성을 수용할 수 있는 틀을 만들 수 있을까하는 질문에 맞닥뜨리게 된다. 프레이저의 해결책은 삼차원적 정의론이다. 프레이저는 소수자 그룹은 다양하지만 그 소수자 그룹을 모두 대표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2. 삼차원적 정의론
1) 정의의 가장 일반적 의미
프레이저는 정의의 가장 일반적 의미는 ‘동등한 참여’라고 해석했다. 정의는 모든 사람이 사회 생활에 동등한 동료로서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드는 사회적 상태를 요구한다. 부정의를 극복한다는 의미는 누군가가 온전한 당사자로서 다른 사람들과 동등하게 사회적 상호작용에 참여하는 일에 방해가 되는 제도적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다.
2) 제도적 장애 1: 불평등한 분배
경제적 차원, 사회적 계급구조에 상응하는 것이다. 동등한 동료로서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길 거부하는 경제적 구조 때문에 온전한 참여를 방해받을 수 있다.
3) 제도적 장애 2: 제도화된 위계질서
필수적인 지위를 부여할 것을 거부하는 문화적 가치에 관한 제도화된 위계질서 때문에 동등한 상호작용을 방해받을 수 있다. 이는 문화적 차원이다.
4) 정의의 세 번째 차원: 정치적인 것
누구를 구성원으로 볼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정치적 차원이다. 정당한 분배와 상호인정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의 범위 안에 누가 포함되고 누가 배제되는지를 말해 준다.
3. 정치적 차원, “대표”의 문제
정의의 정치적 차원은 주로 대표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1) 누가 구성원인가? 구성원을 정하는 절차는 어때야 하는가?
정치공동체의 경계가 실제로 대표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을 잘못 배제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공동체의 의사결정 규칙이 공적인 토의에서 모든 구성원들에게 동등한 목소리를 보장하고 있는지, 그 규칙이 공적인 의사결정에서 모든 구성원을 공정하게 대표하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2) 두 수준의 대표 불능
- 일상적 대표불능 : 정치적 의사결정 규칙 자체가 공동체에 포함된 어떤 사람들이 동료로서 온전히 참여할 기회를 부정할 때 발생하는 부정의를 말한다. 예를 들어 소선거구제, 승자독식제 등이 있다.
- 잘못 설정된 틀(misframing) : 대표의 경계 자체가 잘못 설정된 경우다. 여성의 문제를 이야기하는데 여성은 정작 없다거나, 인종 문제를 얘기하는데 백인이 다수거나 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이런 잘못된 틀의 설정은 정치적 대표의 문제와 관련해 당사자를 배제하는 문제점이 있다. 이 때문에 정치적 죽음이 발생한다.
따라서 프레이저의 이론은 한마디로 “운명 앞에 선 당사자들이 결정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당사자들이 틀의 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하며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4. 우리 헌법에 나타난 젠더
1) 기존 헌법 속 젠더
87년 헌법에서 젠더 내용은 거의 담기지 않았다. 우리헌법 제36조는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삼으며 성소수자를 배제하고 있다. 그나마 2018년 공직선거법이 개정되면서 “비례후보의 절반 이상을 여성으로 공천하고 여성후보를 홀수 순번으로 배치해야 한다는 규정을 어기면 등록신청을 무효로 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2) 발의안 속 성평등
- 발의안 제35조는 임신, 출산, 양육을 여성이 아닌 국민의 권리로 규정했다. 그러나 여전히 ‘현실적으로 임신,출산,육아의 직접 당사자가 여성인 것을 고려하여’라는 설명으로 앞 뒤가 맞지 않는 주장을 하고 있다.
- 발의안 제39조도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바탕으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쓰고 있다. 여전히 ‘양성의 평등’이라 쓰며 87년 헌법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 조항은 국가가 생각하는 ‘정상가족’의 개념이 반영된 것이다.
5강을 들으며 김만권 선생님이 유학 시절 가르침을 받으셨던 낸시 프레이저의 분배와 인정에 대한 이론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대통령 발의안조차도 아직 젠더의 개념을 제대로 헌법에 반영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후기] 6/4(화) 김만권의 정치철학 4강 _ 기본권으로서의 노동 그리고 분배
김만권의 정치철학 4강 ‘기본권으로서 노동 그리고 분배’
이번 강의의 주제는 ‘기본권으로서 노동 그리고 분배’였습니다. 본격적인 강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왜 우리가 분배를 이야기하고 공부해야 하는가를 짚어보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2010년대 초반까지는 ‘분배’의 영역에 대한 논의가 주로 이루어졌다면, 현재는 권리와 존재에 대한 ‘인정’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분배와 인정은 다른 영역이자 환원될 수 없는 영역입니다. 그러나 인정의 욕구가 주로 기본적인 욕구와 생존이 보장될 때에 제기된다는 점에서 여전히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도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분배는 늘 노동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다고 설명하시면서, 노동은 무엇인지, 왜 노동자는 노동할수록 가난해지는지, 노동 중심의 분배는 지속가능한지에 대하여 강의해주셨고, 마지막으로 새로운 분배의 패러다임으로 기본소득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1. 왜 노동자는 노동할수록 가난해지는가?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는 노동하는 손과 노동하지 않는 손이 있고, 후자가 너무나도 많은 이윤을 가져간다고 나옵니다. 즉, 노동하는 이와 노동으로부터 이윤을 얻는 이가 다르며, 노동시장에서의 경쟁으로 인해 노동자의 임금은 점차 하락하는 것입니다. 일례로 초국가기업에 대하여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초국가기업은 노동시장의 범위가 전 세계로 확대된 경우입니다. 경제가 발전할수록 임금도 오른다는 논리는 합당하게 여겨졌으나, 노동시장의 범위를 국내에서 전 세계적 차원으로 확대하여 살펴보면 노동자들이 경쟁에서 얻는 것은 점차 값싸지는 임금뿐이라는 것이 명확히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이키의 문화를 만들어내고 마케팅을 하는 산업은 선진국에서, 생산과 같은 노동 중심 산업은 임금이 저렴한 국가에서 이루어지는데 이는 미국과 같은 노동시장의 임금이 비싸기 때문에 노동자의 임금을 올리는 대신에 노동시장을 임금이 더 저렴한 국가로 옮긴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2. 노동의 의미 (마르크스 노동관)
1) 노동의 본성
선생님께서는 노동의 의미를 마르크스 노동관에 입각하여 설명하셨습니다. 마르크스의 노동관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소외”라고 합니다. 즉, 노동자가 자신이 하는 노동행위로부터 소외되고, 인간의 본질이 노동으로부터 소외되고, 관계로부터 소외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마르크스가 문제 제기한 노동은 노동 그 자체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노동으로 한정됩니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노동관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노동을 자연과 인간 간의 창조적 상호작용이자, 활동적인 삶으로 보았습니다. 즉 노동의 본성을 창조적 잠재력을 발견하는 과정으로 여겼으며, 노동을 부여함으로써 자연을 변화시키고 동시에 자신의 본성도 변화시킨다고 설명하였습니다.
2) 인간적 노동의 결과
인간적 노동은 자본주의적 노동과는 반대되는 개념으로,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노동의 본성이 잘 드러나는 노동입니다. 또한 인간적 노동은 물질과의 관계 맺기인 동시에 인간과의 관계 맺기이기도 합니다. 인간적 노동의 결과 다음 4가지라고 합니다.
- 생산 과정에서 창조성을 즐기고 타자에게 보여줄 수 있는 물건을 만듦으로써 개성을 객관화시킬 수 있게 함.
- 다른 인간이 자신이 생산한 물건을 사용하는 것을 보며 인간의 필요에 부응했다는 점에서 즐거움을 느낌
- 다른 사람이 내 물건을 자신의 일부처럼 쓰는 것을 보며 내가 타인의 필요한 부분이라고 느끼게 되고, 이를 통해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음
- 내가 노동으로 나타난 내 삶의 표현에서 다른 사람들의 삶의 표현을 발견하면서 인류의 부분이라는 공동체적 본질을 발견한다.
3) 이윤극대화와 노동왜곡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적인 방식의 노동이 상실되었다고 지적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자본주의의 합리성이 임금과 이윤으로 이분화 되고, 양자가 반비례 관계에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였습니다. 즉, 이윤을 위해서는 값싼 노동이 최선의 선택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본의 성장이 임금의 성장을 필연적으로 동반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앞서 살펴본 초국적기업의 예시와 같이 ‘노동 분업의 심화’라는 개념을 통해 반박하였습니다. (초국적 기업이 더 넓은 소비시장과 더 저렴한 노동시장의 확보를 위해 전 세계로 확대하는 예시).
4) 자본주의적 노동은 노동소외라는 결과를 초래한다.
선생님께서는 자본주의 합리성이 극단적인 이윤 추구를 멈추지 않는 한 노동소외는 불가피하다고 설명하셨습니다, 노동소외는 구체적으로 다음 4가지의 형태로 분류하여 볼 수 있습니다.
생산물로부터의 소외 : 노동자가 자신이 생산하는 물건을 소비할 수 없는 상황을 의미한다.
생산활동으로부터의 소외 : 분업으로 인하여 노동자들이 생산 활동을 자기 삶의 일부로서 받아들이고 즐거움을 얻기 힘들며, 노동의 목적이 생존에 필요한 임금을 얻는 것에 한정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란 류적 존재로부터의 소외 : 유적존재는 개별적 존재방식이 아니라 자연적, 사회적 존재로서의 총체적인 존재방식이다. 노동이 서로에게 필요한 일부라는 것을 확인하는 방안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하면서 유적존재로부터 소외된다.
인간의 인간으로부터의 소외 : 내가 노동으로 생산한 물건에 나의 삶이 존재하지 않고, 타자 역시 노동으로 생산한 물건에 그들 삶의 표현을 불어넣지 못하기 때문이다.
5) 왜 인간소외인가?
선생님께서는 노동의 본질과 인간관계가 왜곡되며 결국 노동소외가 인간소외로 귀결된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견고한 것들은 공기 속으로 녹아들고, 모든 신성한 것들은 불경스러운 것이 되었다. 인간은 마침내 냉정한 사리분별, 자신의 삶의 현실적 조건, 자신과 같은 인간과의 관계를 직면하도록 강요되었다.”
3. 기본권으로서의 노동
1) 헌법과 노동
이탈리아 헌법 1조는 ‘이탈리아 공화국은 노동에 기초를 두는 민주공화국’이라고 명시하며 노동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다고 합니다. 독일 헌법에는 9조 ‘모든 독일인은 단체와 조합을 결성할 권리를 가진다.’고 되어있어 모든 국민의 노동권을 보호하며, 95조에 연방노동법원의 설치를 명시하면서 노동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법원을 두도록 되어있습니다. 한국 또한 대통령 개헌안에 기존 헌법에서 ‘근로자’로 표기된 것을 ‘노동자’로 바꾸기도 하였습니다. 노동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 중에 하나입니다.
2) 최초분배
노동은 기본권 중에서도 굉장히 중요하게 다루어지는데, 선생님께서는 그 이유를 노동이 자원을 분배하는 최초의 수단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최초분배란 노동자가 노동을 제공받은 자로부터 받는 임금을 통해 이루어지며, 재분배와는 상반되는 개념입니다.
최초분배의 건전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로 최저임금제를 설명하셨습니다. 최저임금은 노동자들이 값싼 노동력 제공 경쟁에서 벗어나 최저의 생계를 유지하게 하는 수단으로, 노동왜곡현상을 최소한의 수준에서 방지하는 역할을 목적으로 합니다. 그러나 최저임금은 그야말로 최저의 생계를 보장하는 제도이며, 중산층을 양산하는 제도는 생활임금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생활임금을 유지하는 데에 더욱 효과적이라고 말씀하시며, 영국의 한 시민단체의 예를 들어주셨습니다. 이 시민단체는 해당 년도의 생활임금을 공표하고, 생활임금을 주겠다고 약속한 기업의 리스트를 공개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시민들이 리스트에 올라간 기업의 물품을 구매하는 식으로 기업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생활임금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한다고 합니다.
강의 중에 함께 생활임금을 짜보기도 하는데, 1인 가구 기준으로 의(衣)15만원 / 식(食) 50만원 / 주(住) 70만원 / 교통비 15만원 / 사교비 10만원 / 생활자재구입비 / 교육비 / 감가상각비 / 의료비 등의 항목을 더해 대략 207만원이 나왔습니다.
4. 노동이 해결책이 될 수 있는가?
그러나 과연 노동을 기반으로 한 분배를 유지해야 하는가는 또 다른 질문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노동을 되살리는 것도 의미가 있겠으나 사회의 본질 자체가 변하였기에 전통적인 노동에 의한 분배의 재구성이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산업사회는 생산자 중심의 사회였고 노동이 불가결한 요소였던 반면, 현재는 포스트산업사회, 즉 소비중심사회이므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노동이 아닌 소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1) 낮은 노동조합 가입률
노동조합 가입률은 2005년 26.1%에서 2013년 21.3%로 하락하였다고 합니다. 이는 점차 많아지는 비정규직 일자리와도 연관이 되어 있다고 설명하셨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특히 용역업체에 고용되어 일하는 이들은 자영업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더욱이 노조를 결성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2016년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보고서에는 비정규직 숫자가 839만 명으로 집계되었는데, 사내 하청 노동자들은 자영업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실제 비정규직의 숫자는 천만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된다고 합니다.
2)높아지는 실업률
일자리를 양극화 해소의 방안으로 내놓았지만 청년 실업률은 낮아질 줄을 모릅니다. 2017년 실업률은 9.9%, 체감실업률을 보여주는 ‘고용보조지표3’은 22.7%에 달했다고 합니다. 일자리가 줄어드는 이 상황에서 노동 중심의 분배는 오히려 노동시장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 즉 복지가 필요한 이들을 오히려 소외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 선생님의 설명이었습니다. 물론 인구 절벽으로 인해 일자리 부족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는 의견이 존재하지만, 제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는 지금 과연 남아있는 일자리 중 양질의 일자리가 다수 존재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 또한 존재한다고 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노동 중심의 분배는 일자리 창출 이외의 해결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하시면서, 실업률이 점차 높아지는 지금 분배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5. 기본소득
그리고 분배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기본소득을 제시하셨습니다. 기존의 복지국가가 재분배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기본소득은 국가가 최초분배의 주체가 된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입니다. 선생님꼐서는 기본소득의 자격요건은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는 것이 전부라고 설명하셨습니다. 필립 반 파레이스는 기본소득을 “(1) 개인을 기반으로, (2) 자산조사 없이, 그리고 (3) 노동에 대한 요구 없이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무조건적으로 지급되는 소득”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노동을 최초분배의 요건으로 여겼던 기존의 복지와는 매우 다른 형태의 분배인 것입니다.
물론 선생님께서는 기본소득에 대한 의심도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기본소득이 갑작스레 유행하는 배후에는 기업의 영향력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노동자가 줄어드는 것은 노동 중심 분배 구조에서 소비자가 사라지는 것과 동일하기 때문에, 소비 시장을 꾸준히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본소득을 제공함으로써 사람들의 구매력을 유지하려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입니다. 또한 재원의 한정 때문에 기존의 복지제도를 모두 유지하면서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이 우세한데, 이 경우에 기존의 복지제도를 해체하고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라는 의구심 또한 든다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들이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경향도 보인다고 하셨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노동자들이 낸 세금을 낸 것으로 기본소득을 받는다는 것에 대한 반발이 주된 이유라고 하셨습니다.
추가적으로 기초자본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최초분배도 설명하셨는데, 이는 부유세를 통해 조달한 자금을 일정 연령에 이른 사람에게 사회가 상속을 하는 제도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물론 기본소득이 자본주의의 영속을 위하여 이용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심이 필요하지만, 노동중심의 분배에서 벗어난 새로운 분배구조는 분명히 필요한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실업률이 점차 높아지는 지금, 노동 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이들은 대부분은 비자발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노동을 제공한다고 하더라도 노동3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현실은 분명합니다. 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의 삶의 방식이 불투명하여 일자리의 질과 노동 시장의 규모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예상하기 어려워집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제의 해결방식이 노동에 대한 보상 또는 일자리 창출에 맞춰진다면 노동시장에 진입조차 하지 못하고, 극단에 배제되어 있는 이들이 보호의 영역에 들어오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마지막으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안전망을 제공하는 것이 노동 중심적 관점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한 지금이라고 하시며, 노동 중심 사회에서 노동 시장 바깥으로 밀려나 존재가 지워지고 잊힌 이들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후기] 5/29(화) 김만권의 정치철학 3강 _ 헌법 제정과 기본권
3강에서는 헌법 제정의 의미를 알아보고 대통령 발의안에 새로 추가된 기본법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가기 전, 김만권 선생님은 이번 대통령 발의안이 국회에서 심의조차 되지 않은 상황에 대한 아쉬움을 말씀하셨다. 대통령 발의안을 국회에서 부결을 시키더라도 심의를 했어야 하는데 국회가 심의조차 하지 않은 건 국회의 직무유기라는 것이다. 국회가 심의하는 것만으로도 헌법의 두 축인 기본권과 권력구조에 대해 국민들에게 여론을 환기시키고 공론화하는 기능을 하는데 이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비판하셨다.
1. 헌법을 쓰는 법을 아는 게 왜 중요할까?
헌법에서 한 구절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해석과 적용이 아주 달라진다. 예를 들어, 유신헌법 상 제18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제한받지 아니한다’고 쓰고 있다. 이는 겉보기에는 크게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다시 말하면 법률로 제한하면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얼마든지 제한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처럼 헌법이 어떤 언어로 쓰이는지 알아야 헌법의 의미를 제대로 볼 수 있다.
2. 헌법을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을까?
헌법을 만드는 일은 단지 헌법이라는 문서를 쓰는 것이 아니다. 헌법을 만들 때는 constitution making과 constitution building 두 가지로 나뉜다. 전자는 문자화시키는 과정이며 후자는 헌법을 만드는 모든 과정을 포괄하는 것이다.
전문가의 영역이 아닌 시민들이 관여하는 활동은 두 수준에서 이루어지는데, 실제 이 제작자들과 소통하는 시민대표자들 그리고 헌법에 담길 내용을 놓고 벌어지는 사회적 논의에 참여하는 일반시민들이다.
1) 이중헌법제정의회
이중헌법제정의회는 헌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두 개의 의회에 모여있다는 뜻이다. 제1의회는 헌법을 문자화시키는 전문가들이 모인 곳이며 제2의회는 시민의 대표들이 모인 곳이다. 제2의회를 구성하는 시민은 많을수록 좋다. 헌법 제정 의회가 2트랙으로 운영되는 구조다.
제1의회는 실제 헌법을 쓰고, 제2의회는 관련된 헌법적 이슈들을 검토하고 논의하는 역할을 나눠서 맡게 된다. 제1의회와 제2의회는 각각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기본권을 담당하는 네 개의 부위원회로 구성된다. 네 개의 부서가 함께 만나서 논의할 수 있는 주위원회는 제1의회, 제2의회에 각각 1개씩 존재한다.
예를 들어 제1의회가 기본권에 관련된 헌법을 쓰면, 제2의회 기본권 담당 부위원회에 속한 시민대표들이 제1의회 전문가들과 만나 논의하게 되는 것이다. 제2의회 시민대표들이 원하는 것을 제1의회에 요청하면 제1의회는 이를 검토해 헌법을 쓸 때 반영한다.
의회 내 기본권을 제외한 세 부서인 권력구조를 논의하는 세 개의 부의원회는 권력구조가 기본권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규정하는 논의과정을 거쳐야 한다.
헌법제정의회에서 합의된 중요조항은 미디어를 통해 적극적으로 그 내용을 알리고 사회적 논의를 유도해야 한다. 공영미디어는 헌법적 이슈가 무엇인지 공유된 내용을 알리는 역할을 맡고, 다른 미디어 매체들은 헌법적 이슈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을 표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이와 동시에 제2헌법제정의회는 전국을 돌며 공청회를 개최해서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시민들에겐 제2헌법제정의회를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내용을 제안할 수 있는 제도적 채널이 개방돼야 한다.
이러한 짓기과정을 통해 수렴되고 제작의 과정을 통해 문자화된 내용은 주민전원투표(국민투표)를 통해 승인과정을 거치게 된다. 승인할 때도, 사안별로 분리해서 투표한다면 권력구조 부분을 먼저 투표하고 이후 기본권을 승인하도록 하는 것이 논의의 초점을 분산시키지 않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매우 중요한 조항(예를 들어, 대통령의 임기를 정하는 조항)은 구분하여 조항별 승인을 거치도록 해서 중요조항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모으고 그 내용을 숙지하는 데 교육적 효과를 낼 수 있다. 한 마디로, 헌법 짓기 과정은 시민들이 헌법을 배우고 그 내용을 숙지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
하버마스는 헌법을 짓는 과정을 통해 집단의 정체성을 만들 수 있다고 보았다. 제도적 통합을 통해 정치적 정체성을 만드는 것이다. 하버마스는 독일 통일 당시 새로운 헌법을 짓지 않고 서독의 헌법을 동독에 이식하는 과정을 거쳐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 기회를 놓쳤다고 지적했다. 현재 EU도 유럽연합이라는 제도적 통합을 통해 유럽인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3. 헌법의 기본권
기본권이란 인간의 권리를 시민의 권리 형식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인권과는 의미가 다르다. 인간으로서 가지는 권리가 아니라 시민으로서 마땅히 지녀야 하는 기본적 권리를 의미한다. 인권은 보편적 권리지만 시민권은 배타적 권리에 해당한다. 시민권은 비시민을 배제하기 때문에 항상 특권이다.
대통령 발의안에서 기본권은 “기본권 주체를 확대하고 공무원을 포함한 노동자의 권리를 강화”하고 “생명권과 안전권, 알권리, 자기정보통제권,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 및 성별‧장애 등에 따른 차별개선에 노력할 국가의 의무 등을 신설”하는 조항으로 강화됐다.
또한 일부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확대해 제2장의 제목을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서 ‘기본적 권리와 의무’로 변경했다. 신설되는 기본권으로서 생명권 및 자기정보통제권의 주체를 사람으로 규정했다. 권리의 주체를 사람으로 했다는 건 꼭 한국의 국민이 아니더라도 기본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규정한 것이다.
대통령 발의안에서는 평등권과 교육권, 노동자의 권리를 강화하고 생명권, 정보기본권, 사회보장을 기본권화하고, 임신,출산,양육 지원 받을 권리, 주거권, 건강권, 사회적 약자의 동등한 권리, 사회적 약자의 동등한 권리, 안전권, 국민소환권 및 국민발안권을 새로 규정해 국가가 책임져야 할 영역을 확대했다.
수업을 마치며 김만권 선생님은 이 외에도 우리가 헌법에 추가해야 할 기본권은 어떤 것이 있는지 논의해보자고 하셨다. 이번 수업을 통해 헌법을 쓴다는 것이 단순히 문자화하는 과정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헌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민주주의가 작동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후기] 5/15(화) 김만권의 정치철학_'시민불복종, 혁명과 헌법'
5월 15일 진행된 김만권 선생님의 두 번째 강의는 ‘시민불복종, 혁명과 헌법‘을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지난 강의에 이어 기억을 제도화하는 방식으로 헌법을 이야기하였고, 기억을 구성하고 변화시키는 데에 있어 시민들이 스스로를 드러내고 참여하는 방식으로써 시민불복종과 혁명을 다루었습니다.
우리, 데모스는 통치하는가?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우리는 주권을 지닌 국민 개개인으로 존재합니다. 그러나 개인의 일상 속에서 스스로를 주권자로 정체화하고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기는 꽤나 귀찮은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무관심은 무지로 이어집니다. 김만권 선생님은 이러한 현상을 ‘구경꾼 민주주의’로 설명하시며, 민주주의가 도망쳐 버린 자리에는 정치 엘리트가 남용하는 정치가 만연하며 시민들은 결국 자발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구경꾼”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현재의 대의제 민주주의는 정치를 시민의 일상에서 분리하였기에, ‘도망자 민주주의’라고도 부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즉, 시민불복종이나 혁명과 같은 일상을 벗어난 순간에 주권자로서의 권력을 행사하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면 시민들은 다시 정치와 분리된 일상을 산다는 것입니다.
초일상의 정치
일상의 제도권 안에서 시민들이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경우는 선거로 극히 제한적입니다. 김만권 선생님께서는 일상의 제도권 밖에서 주권자로서 정치에 참여하고 자신을 드러내며 직접 결정을 내리는 것, 그것이 바로 초일상의 정치(extraordinary politics)이자 혁명과 시민불복종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일상의 정치가 정치 엘리트, 관료적 정당, 완고한 제도적 절차의 특징을 지니는 반면, 초일상의 정치는 높은 수준의 집단 동원,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광범위한 지지, 다양한 공론장의 출현 등을 포함합니다. 더불어 초일상의 정치 시기에는 초법적 행위가 존재한다고 하셨습니다. 시민불복종은 일부의 법을 의도적으로 무시하여 법정신을 지키려는 행위이며, 혁명은 궁극적으로 기존의 체제를 뒤집고 새로운 체제를 세우려는 노력입니다. 그렇기에 초일상의 정치에는 일상에서 통용된 합법과 불법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는 초법적인 행위가 존재하는 것이며, 변화 자체가 초법적 행위의 결과인 것입니다. 강좌에서 “법이 생겨나면 법은 실제 변화를 안정화하고 합법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변화 그 자체는 언제나 초법적 행위의 결과이다.”라는 한나 아렌트의 ⌜시민불복종⌟에 나오는 구절도 함께 읽었습니다.
시민불복종
시민불복종은 헌법이 보장하는 다른 목소리를 낼 권리(right of dissent) 중 핵심적인 것으로 법정신을 향한 근본적인 호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더불어 불복종의 4가지 조건에 대하여 설명하셨는데 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주제는 정체 전체에 미치는 공공사여야 한다.
두 번째, 다수의 동료 시민의 일반적 정의감을 향한 소수자들의 호소이다.
세 번째, 비폭력적 참여를 전제로 한다. 이는 장기적으로 비폭력이 시민들에게 신뢰를 줌으로써 참여의 지속성을 보장할 것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되는데, 이러한 믿음은 불복종의 목적이 폭력이 아니라 시민의 합의를 통한 변화라는 정치적 믿음과 헌법이 비폭력을 지지한다는 헌법적 믿음, 그리고 도덕적 신념에 기반한다.
네 번째. 시민 불복종에서 의도적으로 행해지는 법률 위반은 결코 은밀하게 이루어져서는 안되며 공개적인 장소에서 공개적인 행위로 이루어져야 한다.
즉, 시민 불복종은 일상의 시간 내에 존재하는 초일상의 정치로 정당한 이견의 권리, 다른 목소리를 낼 권리라는 것입니다.
혁명과 헌법 : 폭력 없는 혁명은 불가능한가.
한나 아렌트는 헌법은 ‘전적으로 혁명의 소산’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혁명은 체제의 변화를 목적으로 하는 초일상의 정치이지만 왠지 혁명이라는 말을 들으면 변화보다는 폭력을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선생님께서는 ‘폭력 없는 혁명은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혁명과 헌법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우선 4가지의 혁명론 (응집심리이론, 체제/가치 합의론, 정치갈등, 계급갈등이론)을 살펴보았는데, 모두 혁명 안에 폭력이 내재되어 있거나 또는 폭력을 혁명의 필수 요소로 여김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혁명의 폭력적 요소는 다수의 시민들로 하여금 혁명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곤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폭력 없는 혁명’에 대한 대답으로 한나 아렌트의 <혁명론>을 설명하셨습니다. 아렌트는 폭력의 반정치성에 대하여 이야기하였습니다. 폭력이 있을 때 다양한 요구와 목소리는 다시 침묵하게 되므로 결국 폭력은 새로운 논의를 만들어낼 수 없으며, 따라서 폭력과 정치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혁명은 폭력이 아닌 말과 행위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말을 통한 혁명은 결국 새로운 헌법을 제정함으로써 체제의 변화를 이루는 것을 의미합니다. 혁명의 목적이 공동체의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라면, 헌법은 그 자체로 방향성을 지시하는 문서이기 때문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누가 헌법을 쓰는가?’라고 하셨습니다. 구성권력(constituent power)은 넓은 의미에서는 정체를 구성하는 주체를 이르고, 좁은 의미로는 정체의 헌법을 제정할 권리를 의미합니다. 헌법은 정부의 행위가 아니라 정부를 구성하는 인민의 행위다”라는 토마스 페인의 말처럼 구성권력은 시민이 마땅히 행사해야 할 권리인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우리 헌법의 전문에서 ‘대한민국’이 아닌 ‘대한국민’으로 시작한다는 점에서 시민의 구성권력이 드러난다고 설명하셨습니다.
헌법 제정에서 혁명성을 찾지 못하는 이유
그러나 우리 사회가 헌법 제정을 통해 혁명을 이룰 수 있으리라는 공통의 신뢰가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오히려 헌법은 일상과 괴리된 이상적인 무언가로 여겨져 왔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헌법 제정에서 혁명성을 찾지 못하는 이유를 한국 사회에서는 헌법이 혁명의 결과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87년 6월 민주화운동을 통해 새로운 헌법을 썼다는 점에서 혁명으로 불려도 좋을 민주주의의 주요한 성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대중은 일상의 정치에서 정권교체의 실패를 경험하였고, 엘리트 위주의 헌법 개정으로 인해 대중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못하였습니다. 선생님은 그렇기에 더더욱 헌법을 개정하는 이번 시기가 시민의 목소리를 반영할 중요한 기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마종기 시인의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중 ‘대화(對話)’를 함께 읽으며 2강을 마쳤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지난 시간 우리가 헌법을 만드는 과정은 등불을 만들고, 등불이 다시 꺼지는 과정의 연속이었을지 모른다고, 그러나 구체제와 새로운 체제와의 대화인 헌법 제정에 다시금 참여하여 목소리를 내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집단적 기억을 구성하고 제도화 하는 과정에 주권자로서 참여하여 시민이 헌법을 만드는 일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배운 뜻깊은 강좌였습니다.
[후기] 5/8(화) 김만권의 ‘새로운 세계를 짓기 위한 변화의 매뉴얼 - 변동하는 우리 정치 앞서보기’ 1강 _ 기억(memory)과 정의
이번 첫 강의에서는 6회에 걸쳐 진행되는 전체적인 강의의 흐름을 짚어보고 앞으로 우리가 함께 논의하게 될 이야기를 훑어보는 것부터 시작했다. 2017년 대통령 탄핵 이후 우리 정치는 결정적 갈림길에 서있다. 새로운 변화를 이룰 것인가 아니면 구체제의 유산에 남을 것인가. 김만권 선생님은 새로운 세계를 짓는다는 것이 정치학적으로 무슨 의미인지 말씀하시기 위해 헌법을 먼저 설명하셨다.
1. 헌법(constitution)의 의미
김만권 선생님은 우리가 흔히 헌법을 문서라고 생각하지만 본래 의미는 구성(constitution)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셨다. 정치에서는 헌법은 정체를 구성하는 원리이며 정체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헌법(constitution)의 의미는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1) 헌법(문서) 2) 정체의 구성 3) 정체
김만권 선생님은 ‘성공한 혁명은 새로운 헌법을 쓴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헌법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은 촛불혁명 이후에 새롭게 만들어질 정체는 곧 헌법에 어떤 내용을 새로 담아내야 하는가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계를 짓기 위해 우리는 새로운 체계가 필요하고 그 내용을 담아내는 것이 바로 헌법이다. 우리는 헌법에 어떤 내용을 담아내야 할까? 바로 거기서 이번 수업의 주제인 ‘기억과 정의’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됐다.
2. 기억(memory)의 중요성
모든 기억은 외부 충격이나 역사적 사건에서 시작된다. 촛불혁명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억의 계기를 제공했다. 김만권 선생님은 우리나라 정치사에서 기억이라는 단어가 국가적 키워드가 된 첫 번째 사건은 ‘세월호’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잊지않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아있다.
김만권 선생님은 기억이 과거의 행위를 되짚어보는 의미를 넘어 미래의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는 현재의 정의로 연결되기에 중요하다고 말씀하신다. 기억하는 자들만이 같은 부정의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억은 과거를 향한 정의이자, 미래의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는 현재의 정의라는 것이다.
기억은 반성의 계기가 된다. 기억하지 못하는 자들의 삶의 문제는 반성 없는 삶을 살기에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우리는 같은 실수를 다시 저지르지 않기 위해, 더 나아가 우리가 그런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지 않기 위해 기록하고 기억해서 정의를 세워야 한다.
기억이라는 활동의 목적은 과거를 돌아보는 것을 넘어, 미래를 위한 일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진실과 화해를 위한 협의회는 이전에 인종 범죄를 저질렀던 가해자들이 피해자 앞에서 공개적으로 자신이 행한 일을 고백하고 이 활동을 기록해서 모두에게 공유했다.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록으로 남기고 사람들이 용서를 하는 과정에서 다시는 이런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만들게 되고 그 결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헌법이 만들어졌다. 이런 기억의 과정을 통해 집단은 ‘다시는 이런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새기게 된다.
기억의 결과는 정체, 즉 새로운 헌법에 담기게 된다. 다시 말해 헌법은 집단이 어떤 과거와는 단절하고 어떤 내용은 기억할 것인가 결정한 결과물이 담기는 것이다.
3. 행위와 사유
김만권 선생님은 집단이 제대로 된 기억을 만들기 위해서 한계상황을 마주하는 것과 그에 따르는 사유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하이데거는 “인간은 웬만해선 사유하지 않는다. 인간은 한계 상황에 마주했을 때만 사유한다”고 말했다. 한계 상황은 죽음을 앞뒀을 때를 말한다. 하이데거 같은 존재론자는 인간이 존재에 대해 질문하게 되는 건 그런 한계상황일 때뿐이라고 봤다. 이를 정치 상황에 비춰 본다면 일반적인 정치상황이 아니라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고 충격이 일어났을 때 우리를 생각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표현되고 기억되어야만 의미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 마주했을 때 사유하지 못하고 명확히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다면 문제가 발생한다. 김만권 선생님은 우리가 공론장에 참여하는 정치참여의 경험을 후대에 넘겨주는 것이 ‘집단적 사유의 장’이고 그 장에서 제대로 된 기억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만약 집단적 사유의 장 없이, 기억을 하나의 이미지로 공유한다면 집단의 기억이 왜곡되거나 아예 기억 자체가 부재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이런 정치참여 경험을 곱씹는 사유의 과정을 거쳐 후대에 제대로 전달했을까? 김만권 선생님은 이에 대한 답을 1987년 6월 혁명으로 설명하셨다. 우리는 6월 혁명의 결과로 만들어진 87년 헌법 체제를 ‘민주정체로서 새로운 시작’이란 긍정적 평가보다는 ‘낡은 독재의 유산에서 완전히 헤어 나오지 못한 실패한 혁명’이란 부정적 평가에 방점을 찍고 바라본 경향이 있다.
김만권 선생님은 87년 헌법 체제가 우리가 민주주의를 기억하는 데 실패한 사례라고 말씀하셨다. 87년 헌법은 ‘법치’와 ‘민주적 정치’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탓에 헌법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명확한 지식과 개념이 제대로 자리 잡지 않은 상태였다는 시대적 한계도 있었다. 하지만 사실상 일반 ‘데모스’의 의지가 군사정권이라는 과거와 완전히 결별하고 우리 역사상 민주적 주권자가 만들어낸 첫 민주헌법이라는 점에서 유의미한 헌법이다.
87년 민주헌법을 쓴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 결과, 현재 우리는 민주주의를 단순히 다수결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87년 전후 독재를 민주주의로 대체한 세대마저 사건의 온전한 의미를 곱씹고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어질 2강에서는 시민불복종과 혁명에 대해 배우게 된다. 그 뒤로는 헌법과 새로 쓰일 헌법에 어떤 내용이 담겨야 하는지에 대한 강의가 진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