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역사공부 1] 사료와 ‘톡’하는 법

  • 강사

  • 기간

    • 2019. 11. 12 ~ 2019. 12. 10
  • 시간

    • 화 19:00~21:30 총5회
  • 수강료

    80,000

    • 파격 할인혜택
    • 참여연대 회원56,000

    각종 혜택 적용은 로그인 > 마이페이지에서 진행됩니다

    상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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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좌 소개

    역사책을 1차 사료[史料]로 직접 읽어본 경험 있으세요? 얼핏 어렵고 딱딱해 보이는 사료 읽기, 하지만 의외로 재미있습니다. 그 시대의 생생한 느낌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사료는 역사를 해석하고 또한 상상하도록 만드는 보물창고입니다. 오래된 그것을 오늘 ‘나’의 눈으로 읽기에 다채롭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역사의 매력입니다. 이제껏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던 사료와 ‘역사를 한다(doing history)’는 마음가짐으로 ‘톡’한다면 나만의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이번 강의에서는 강사가 추출한 근대사 사료를 함께 읽고, 강의를 듣는 동시에 참여자들이 각자 해석하고 상상한 역사 이야기를 나눌 예정입니다.


    강좌 일정

    날짜

    주제 및 내용

    11.12

    정변의 시대를 함께 겪은 이방인

    알렌, <알렌의 일기> 

    11.19

    서양을 빌어 새 길을 말하다

    유길준, <서유견문>

    11.26

    한국인의 역동성을 발견하다

    비숍,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

    12.3

    계몽의 전사

    <독립신문>

    12.10

    처사의 눈으로 본 흥망사

    황현, <매천야록>

    ※ 매회 사료는 강사가 별도 자료로 준비합니다.


    강사 소개 

    김정인  춘천교대에서 사회과교육과 교수. 근현대 민주주의 역사와 현대 대학사를 주로 연구하고 있으며, 동아시아 역사 대화에 관심을 갖고 한중일3국공동역사편찬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 한국역사연구회 3.1운동100주년기획위원회 위원장과 3.1운동및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기획소통분과위원회 위원장을, 2016년부터 참여연대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 <독립을 꿈꾸는 민주주의>, <천도교 근대 민족운동 연구>, <역사전쟁, 과거를 해석하는 싸움>, <대학과 권력>, <오늘과 마주한 3.1운동> 등이 있다. 


    강좌정보

    일   시 : 2019. 11. 12. ~ 12. 10. 화요일 오후7시 ~ 9시30분, 총5회

    장   소 :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

    수강료 : 8만원 

    할   인 : 참여연대 1만원 이상 후원회원 30%할인, 20대 청년 50%할인(계좌이체로만 결제 가능)

    계  좌 : 하나은행 162-054331-00805 (예금주 참여연대)


    ※ 강좌할인 및 취소환불 규정은 수강신청안내(클릭)를 꼭 확인하세요.


    후기 4

    • [나의 역사공부 1] 사료와 '톡' 하는 법 - 계몽의 전사, <독립신문>

      2019.12.7 빛깔 [나의 역사공부 1] 사료와 ‘톡’하는 법

      오늘날 정보를 SNS, 유튜브 등을 통해 접하지만, 이전에 그 역할을 한 건 신문(新聞)’이었습니다. 단순히 사실을 알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그렇다면 1890년대 조선의 신문은 어떻게 등장했고, 영향력을 행사 했을까요? 사료와 하다, 네번째 시간은 계몽의 전사, 독립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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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신문과 독립협회가 등장한 1896


       독립협회보다 먼저 만들어진 독립신문은 최초의 민영 일간지였습니다. 갑신정변(1884) 실패 후, 김홍집 등 17명을 중심으로 한 군국기무처를 기반으로 갑오개혁(1894)을 추진했습니다. 개화정책을 단행했지만 신임을 얻을 수 없었죠. 갑신정변 후 미국에 망명했던 서재필이 귀국하면서 민중계몽과 개혁정책을 알림으로써 지지를 얻기 위해 독립신문이 탄생했습니다. 이승만, 윤치호 등 개화파를 중심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 후 정부의 외세의존정책에 반대, 자주독립과 내정개혁을 표방한 독립협회가 세워졌습니다. 초기에는 토론회와 연설회 등 민중계몽운동의 주축이 되었으며, 양성한 활동으로 지도적 역할을 담당하게 된 이들은 만민공동회를 열어 고종에게 개혁안을 실행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공화주의를 주장하는 이들이 정부를 무너뜨리려 한다는 유언비어로 인해 해산되었으며, 독립신문은 협회 해산 이후 정부의 탄압과 논조가 바뀌면서 1899년 폐간되었습니다.

       

      순한글 사용, 권리, 그리고 문명화


       독립신문은 국문판과 영문판을 내고, 세로쓰기를 하며, 투고를 받는 등 파격적인 구성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을 꼽자면, 국문 사용, 권리의 중요성 강조 그리고 문명화 교육으로 볼 수 있죠. 먼저 순한글을 사용함으로써 누구나 신문을 읽기에 수월하고, 신문 속에 있는 말을 자세히 알아보게 했습니다. 독립신문 창간 당시 주시경이 참여했는데, 국문을 통해 만들 수 있게 도왔으며, 띄어쓰기를 강조했으니까요. 권리의 경우 천부인권과 법적인 보호를 강조했습니다. ‘백성마다 얼마큼 하느님이 주신 권리가 있는데, 그 권리는 아무라도 빼앗지 못하는 권리요(이하 생략)’ 부분에서 하느님이 주신 권리, 즉 천부인권을 자각하고, 권리의식이 있어야 더욱 높아질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법으로 보호해야한다는 사실을 나타냈습니다. 마지막으로 문명화는 독립신문이 추구했던 민중계몽과 연관이 있지만, 절충적 요소를 덧붙여 문명을 설명했습니다. 문명이 바라는 시민상을 제기하는 거에 그치지 않고 어떤 세력에 상관없이 공평을 가지고 재판하는 까닭에 압제 받을 필요가 없으며, 무죄추정의 원칙을 서술했습니다. 다만 문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찾기 어렵다는 게 아쉽지만 말이죠.

       

      자발적으로 모여서 비폭력으로 맞선다


       독립협회는 크게 3가지 운동을 했습니다. 자주 국권 운동(독립문 건립, 이권 수호운동 전개, 고종의 환궁 요청), 자유 민권 운동(국민 기본권 확보 운동, 의회 설립 운동, 국민 참정 운동), 자강 개혁 운동(국가 재정 일원화 요구)을 말이죠. 다양한 사회운동을 했지만, 자발적 결사체였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전통적 가치와 근대 윤리를 절충해 독립을 기초로 하여 서울이든 지방이든 모든 이의 마음이 모였다는 걸 부각했습니다. 이를 행동으로 나타난 게 만민공동회(1898)입니다. 당시 러시아는 재정장악과 절영도 침략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만민공동회 이후 철회했죠. 이는 첫번째 비폭력시위 성공 사례로 였으며, 동학농민운동처럼 지방에서 일어났던 것과 달리 서울에서 먼저 열린 시위였습니다.

       

      신문을 통해 민중 계몽을 하고, 여론이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있는 1896년의 독립신문. 그리고 민의를 반영하는 것이 중요한지를 드러낸 독립협회. 이 시점에서 민의를 파악하고, 깨어있는 것이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생각거리를 안겨주면서 말이죠.
    • [나의 역사공부 1] 사료와 '톡' 하는 법 - 한국인의 역동성을 발견하다, 비숍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

      2019.11.29 빛깔 [나의 역사공부 1] 사료와 ‘톡’하는 법

      일부 고등국어() 교과서에 한 기행문에서 발췌된 [외국인의 눈에 비친 19세기 말의 한국]라는 지문이 있습니다. 기행문은 4번의 조선 방문과 급변했던 시대적 상항 그리고 인상 깊었던 모습까지 상세히 적혔습니다. ‘정확성 자신의 제일 목표였고,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는 근대적 사료를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사료와 하는 , 세번째 시간으로 이사벨라 비숍의 조선과 이웃 나라들 Korea and Her Neighbours입니다.

       

      허약했던 어린 시절과 장기선박여행

       

      여성 지리학자, 대단한 필력, 크리스천. 이사벨라 비숍(Isabella Bird Bishop, 이하 비숍) 생애를 짚을 있는 단어라고 있습니다. 성공회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려서부터 독실한 빅토리아풍의 기독교적 가정교육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병약했던 터라 정규 학교를 다니지 않고, 부모님께 많은 것을 배우거나 혼자서 공부(생물학, , 화학)했죠. 허약하고 우울증으로 고생하자 의사는 그녀에게 장기 선박 여행을 권유했습니다. 캐나다와 북미주를 방문한 미국에 영국 여인(The Englishwoman in America (1856)) 팔리게 되면서 글과 여행을 자기 업처럼 여기게 됩니다. 그러나 부모님의 사망 이후 다시 병이 재발했는데, 시기에 만난 비숍 박사와 결혼했지만, 병으로 남편을 잃었습니다. 우울증과 고독으로 괴로워하던 그녀는 다시 여행을 떠났고, 1894 1 요코하마를 경유해 2월에 조선에 도착합니다. 그녀는 1897년까지 4차례 방문해 장기 체류를 했으며, 중국과 모로코를 여행했으나, 여독으로 사망했습니다.

       

      조선과 이웃 나라들

       

      1897 발간한 조선과 이웃 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urs 1894 1월부터 1897 3월까지 4차례에 걸친 조선 방문을 다뤘습니다. 당시 그녀가 조선을 방문했던 몽골 인종의 중요한 특성에 관한 자신의 연구 계획의 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이죠. 원작자 머리말-서장- 내용(ex.사회적 상황, 문화)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머리말에선 자신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어떤 점을 우선시 했는지 밝혔습니다. 서장은 기존에 출판된 책에 조선이 어떻게 적혀 있는지, 자연지리와 가족제도, 광물, 통치형태, 개항 이후의 상황 등을 구체적으로 적었습니다. 여기서 두드러지는 점은 정확성입니다. 기행문의 특성상 자연지리와 인문적 요소가 필요한데, 지리학적 정보가 뚜렷했습니다. 더불어 쇄국을 유지하다가 강화도조약 이후 개항을 하게 외교적 상황과 한글 등의 사회문화도 기록했습니다. 바탕지식 같은 느낌으로 말이죠.


      역동성과 격변의 시기를 외국인의 눈으로 바라보다


       ‘역동성 묘사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머리말에선 시베리아에 갔을 봤던 조선인을 보고 다른 국가와 성격의 특성을 짧게 언급했지만, 이를 낱낱히 13 1896년의 서울 에서 드러났는데, ‘서울이 여러 면에서, 특히 남대문과 서대문 방향으로는 너무 변하여 모습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운을 뗐습니다. 있는 보수하면서 때때로 주민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건설되었으며, 새로 건물을 짓는 유럽식과 달랐죠. 또한 도로를 넓히고, 좋은 부지에 호텔을 세우려는 준비가 이뤄지고, 상점들이 즐비 해지기 까지. 1894 자신이 책을 쓰기 위해 찍어둔 빈민촌 사진이 아무짝에도 쓸모 없어졌다고 단언했을 정도로 말입니다. 또한 조선에 왔을 때의 상황도 언급했습니다. 동학농민운동, 갑오개혁, 을미사변, 단발령과 아관파천까지 급박하게 돌아가던 상황을 기록했습니다. 예를 들어 동학농민운동의 경우 동학 교도와 정부군 사이의 전국적 충돌에 관한 소문을 들었으며, 일이 일어난 것을 이해하게 나타내는 부분도 있습니다.

       

      급변하던 상황을 3 시각에 바라보고, 저술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료(史料) 인정받고 있으나,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의 조선 입항은 광물을 노린, 이권침탈이 있다는 것과 사회진화론 시각이 있다는 아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안에선 차마 없었던 관점, 생생하게 묘사하되 정확성을 잃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녀가 조선이라는 나라에 깊은 관심이 있었는지 있었습니다.
    • [나의 역사공부 1] 사료와 '톡'하는 법 - 서양을 빌어 새 길을 말하다- 유길준의 서유견문록

      2019.11.27 느티나무 [나의 역사공부 1] 사료와 ‘톡’하는 법
      서양을 빌어 새 길을 말하다- 유길준의 서유견문

      위의 제목은 사료로 ‘톡’하는 역사 시간을 이끌고 계신 김정인 교수의 ‘서유견문’에 대한 핵심적 제목이다. 유길준이 서유견문에 밝히고자 하는 내용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고 봐도 좋다.

      서양에서는 성경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이 마르코폴로가 쓴 ‘동방견문록’이라고 한다. 마르코폴로의 큰 뻥치기 언어의 기술은 동방은 ‘황금이 가득한 나라’라고 환상을 심어 주는 바람에 이후 서양의 국가들이 앞 다투어 신대륙의 포문을 열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유길준의 서유견문은 결코 서양이 황금이 가득한 나라이니 우리도 빨리 힘을 길러 쳐들어가자 그런 류는 아니다. 어쩌면 그가 찾고 있던 황금은 당시 그가 본 서양의 사회정치적인 면모가 황금이었을지 모른다. 서유견문에서는 19세기 말 조선이 나아가야 할 길을 밝히고 나아가서 세계의 정치적 시스템도 알려 주고 있다. 그는 일본과 미국에서 수준 높은 학자들과 교류하며 공부를 하였고 심지어는 일본으로 망명하기도 하였던 그는 친일파나 친미파로 분류되지 않는다. 강한 세력에 빌붙어서 한 자리 탐을 내던 그런 사람들의 부류도 아니었다.

      오직 조선의 개혁을 꿈꾼 진정한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동방견문록을 읽고 탐험을 떠난 사람들이 많았지만- 실은 탐험을 빙자하여 금 쟁탈전- 유길준의 서유견문이 조선의 개혁을 주도적으로 이끌거나 행동으로 옮긴 견인차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 할지라도 그 당시 많은 개화파 지식인들이 얼마나 왕정 전제국가에 머물러 있던 조선을 개혁하려고 했는지 유길준의 행적을 통해서도 그 고민과 의지를 알 수 있었다.

      겨우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이 주로 이끌던 개화파 지식인들이 뭘 알았겠냐고 하던 역사 시간 선생님들이 개화파에 대한 미숙함에 대한 언급이 오버랩 되기도 하면서 한국 현대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민주화의 거센 파도 맨 앞에도 늘 젊은 20대가 있었던 것을 보면, 500년 지속되던 왕정국가에서 다른 정치 체제로의 변혁을 꿈꾸던 그들은 아마도 디지털도 따라 가기 힘든데 인공지능시대로 넘어가는 현 시대가 직면한 과도기보다 더한 요동치는 변화의 물결위에서 조선을 구하고 살리고자 하는 정치적 몸부림을 하였는지도 모른다. 앞으로 개화기 지식인들을 알고 싶어하는 강한 호기심을 이끌게 되었다.

      사실은 서유견문이라는 책 제목만 알고 있는 수준에 머물던 내가 이번 사료와 ‘톡’ 하는 시간을 통하여 ‘역사 까막눈’이 조금씩 눈 떠가는 새로운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은 나에게 정말 소중한 계기가 아닐 수 없다. 첫 시간인 ‘알렌의 일기’를 통해서도 이방인이 본 갑신정변이 결코 3일 천하로만 끝나지 않은 시각을 가지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사료가 가지는 힘이 객관성 뿐만 아니라, 시사하는 가치가 다양하게 접근할 수 있으며 새로운 쟝르를 재창출 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하게 되었다.

      서유견문은 성리학을 공부한 조선말의 지식인이 서양의 문물을 접하면서 조선이 앞으로 어떻게 개혁을 하며 어떤 사회로 나아가야 할 지 치밀하게 고민하고 또 자신이 본 것 중에서 나은 정치 제도 개혁을 통하여 그 꿈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으며, 국한문을 혼용하면서 책을 출간한 이유는 궁극적으로는 모든 국민들이 읽을 수 있게 ‘적극적인 계몽’에 염원을 두었다는 강력한 의지를 서문에 밝혔다.
      우리나라의 글자는 우리 선왕(세종대왕)께서 창조하신 글자요, 한자는 중국과 함께 쓰는 글자이니, 나는 오히려 우리 글자만을 순수하게 쓰지 못한 것을 불만스럽게 생각한다. 외국 사람들과 국교를 이미 맺었으니, 온 나라 사람들-상하, 귀천, 부인, 어린이를 가릴 것 없이 저들의 형편을 알지 못해서는 안 될 것이다.

      유길준의 국한문 혼용쓰기는 훗날 국민이 갖고 있는 힘이 나라의 근본이 된다고 생각하여 한글로 펴낸 독립신문 창간에도 연결된다. 김정인 교수님에 의하면 이것은 서재필이 독립신문을 창간하면서 이왕이면 한글쓰기에 띄어 쓰기로 함으로써 한글을 더 읽기 쉽게 만든 주시경 선생과도 연결이 된다고 하셨다. 이렇게 그들은 서로 서로 다 연결되어서 국민 계몽과 개혁에 앞장서고 있었다.

      유길준은 1881년 26살 신사유람단에 참가해 후쿠자와 유키치가 운영하는 게이오 의숙에 입학을 하여 공부를 하였다. 1883년 28살에는 민영익을 전권대신으로 하는 보빙사의 수행원으로 미국행을 하면서 피바디 관장인 모스 박사로부터 한국 최초의 미국 유학생이 되기도 하였다. 이완용이 미국에 갔다 오면 친미파가 되고, 일본을 갔다 오면 친일파가 된 것 과 달리 유길준은 부정적인 의미의 친일이니 친미가 아닌 진정으로 그 나라로부터 조선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하고 고민하는 관계의 친미,친일이었기 때문에 개인의 영달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유길준은 이 책에서 천부인권 사상과 같은 자유와 통의를 설명하고 있으며, 입헌군주제를 주장하고 있다. 다양한 정치 제도를 설명을 하면서, 조선의 왕권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영국의 입헌군주제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그 체제가 가지는 장점에 대해서 많이 할애하고 있다.

      김정인 교수에 의하면 고종이 입헌군주제를 취했더라면 조선은 일본에게 국권침탈이 쉽게 되지도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주장과 함께, 조선이 입헌 주제가 되는 것을 가장 막은 것은 당시 일본이었다고 한다. 입헌군주제 체제에서는 내각이 모두 찬성해야 하기 때문에 국권침탈이 쉽지 않기 때문에 한 절대권력자의 도장인 옥새로 일사천리로 처리되는 과정과 다르다고 하였다. 개화파들이 고종에게 끊임없이 입헌군주제의 장점을 이야기하면, 고종이 하루는 신하들에게 일본의 이토우 히로부미는 다른 나라 신하인데 나에게 입헌군주제를 절대 하면 안된다고 하는데 너희들은 어째서 입만 열면 입헌군주제를 하자고 하느냐고 하였다는 일설이 있다고 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이치는 천자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털끝만큼의 차이도 없다.

      서유견문은 조선에서 출간되지 못했다. 1895년 일본 교문사에서 출간을 하였다. 서유견문의 목차를 눈 여겨 둘 필요가 있다. 서유이니 여행에 빠질 수 없는 세계의 바다나 강, 산 그리고 지리적인 면도 포함되어 있으며, 정치, 사회적 풍습도 소개되어 있다. 무엇보다 김정인 교수는 제 4편의 국민의 권리에서 ‘통의’ 라는 정의와 제15편 여자를 대접하는 예절편을 소개하면서 서로 토론하는 과정도 가졌다. .

      지유와 평등이라는 계몽주의 이후에 개념에서 유길준은 통의通義라는 용어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국민의 권리라고 하는 것은 자유와 통의를 말한다.
      자유는 나라의 법률을 삼가 받들고 정직한 도리를 굳게 지니면서,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사회적인 직분 때문에 다른 사람을 방해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의 방해도 받지 않으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하는 권리이다.
      통의를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당연한 정리正理- 바른 이치, 도리-하고 할 수 있다. 통의는 인간에게 천연과 인위의 두 가지 형태로 존재한다 . 천연이라고 하는 것은 자연히 생겨난 것이니 동요되거나 고쳐지지 않는 것이다, 인위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지혜로 법률을 세우고 그에 따라 나아가거나 물러나는 것이다. 또 통의를 자세히 논의하자면 유계와 무계의 구별이 있다. 무계의 통의는 한 사람에게만 소속되어 다른 사람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며, 유계의 통의는 세속에 살면서 세상 사람들과 사귀어 서로 관계되는 것이다.
      무계한 통의는 사람이 타고난 것이다. 하늘 아래 사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막론하고 세속안에서 어울리며 교제하는 자나 세속 밖에 처하여 혼자 살며 의지할 곳이 없는 자라도 다 도달 할 수 있는 올바른 이치인 것이다. 유계한 통의는 인위적인 법률로 , 법률의 근본 취지로 사람들의 행동거지를 바로 잡으려고 하는 것이다.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사람답게 사는 권리는 현명함과 우둔함, 귀함과 천함, 가난함과 부유함, 강함과 약함에 따라 구별되지 않는다. 사람답게 사는 권리는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고도 올바른 원리다. 대중이 이 원리에 의하여 그들의 인성을 저마다 펴간다. 어떤 사람이 말하길, ‘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권리는 각 사람에 따라 각각 일정하게 정해져 있다.’ 고 하였는데,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이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권리는 하늘이 내려 준 공도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이치는 천자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털끝만큼의 차이도 없다."

      유길준은 현 시대로 비유하자면 관직에 나가지 않고 시민단체를 만들어 교육과 계몽운동을 다방면에서 평생 하였으며, 59세로 숙환으로 사망하였다고 전해진다.

      정리 _백미정
    • [나의 역사공부 1] 사료와 '톡' 하는 법 - 정변의 시대를 함께 겪은 이방인 알렌, <알렌의 일기>

      2019.11.15 빛깔 [나의 역사공부 1] 사료와 ‘톡’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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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다양한 매체를 통해 역사를 접하고,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해 자유롭게 해석을 합니다. 이를 할 수 있게끔 하는 중요한 기반이자 보물창고인 것이 사료(史料)이죠. 하지만 막상 읽는다고 생각하면 딱딱하고, 한자 투성이며 어렵다는 인상이 큽니다. 그러면 우리의 눈으로 접하고 해석한다면 어떨까요? 첫 번째 시간은 정변의 시대를 함께 겪은 이방인, H.알렌의 <알렌의 일기>입니다.

       

      시대 흐름 간의 연결과 사진해석

        

       '역사'라는 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시대에 맞춰서 해석하는 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죠. 설령 자유롭게 해석을 해도 오늘날 추구하는 가치 안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하며, 약간의 상식도 필요합니다. 사진해석도 중요하게 작용하고요. 그렇다면 당시 어떤 상황이었던 걸까요? 강화도조약(1876) 이후 조선은 개화기였습니다. 농민 투쟁이 많았고, 급진개화파들은 평등을 법제화하려고 했습니다. 특히 국왕권위는 낮아지고, 내각(의회)는 높아지는 이른바 입헌군주제도입을 추구했습니다. 하지만 조선의 서양화 속도는 늦었고, 근대화를 향한 의지도 낮았죠. 이를 보여 주는 것이 광혜원(廣惠院) 사진입니다. 고종과 명성황후가 지원해서 생긴 이 병원은 당시 홍영식의 집을 썼습니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은 이미 서양문화가 깊게 들어온 때였습니다.

       

      선교사이자 관료였던 그, 안련(安連)

       

       H.알렌(이하 알렌)1884년 제물포를 통해 조선에 들어옵니다. 신학과 의학을 공부한 후 미국 북장로교회 해외 선교부에 선교사 지원서를 제출하면서 중국으로 파송되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그는 주변 조언으로 한국으로 가게 됩니다. 그 후 갑신정변(1884)때 민영익을 치료해준 걸 계기로 신임을 얻어, 의료·선교뿐 아니라 미국 공사관 서기관(1890)에 역임하는 등 정치에도 관여했습니다. 특히 1903년 미국에 머무는 동안 동아시아 정책이 잘못되었다며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1905년 해임 이후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후에 그에 관한 평가는 두 갈래로 나뉘는데, 한국 독립을 위한 친한적인사 혹은 미국정부의 공식 외교관이었기에 친한적외교관이 될 수 없다는 평가로 봅니다. 전자의 경우 알렌이 고종의 독립 보전 및 근대화 정책을 지지했다는 것에 주목하지만, 후자는 미국이 한반도에서 금광, 철도, 전차 등의 이권을 차지할 수 있도록 하는, 즉 신문물이 도입했을 당시에 관여했음에 주목 했습니다. 그렇지만 의학 발전에 노력했다는 점, 주한미국공사로 활동하면서 한국의 입장을 알렸던 점은 인정되고 있습니다.

       

      알렌의 일기 속 1884년 그날

       

       오늘날 <알렌의 일기>는 한국을 둘러싼 극동 아시아의 외교사가 어땠는지, 한미 외교사를 연구할 때 중요한 사료입니다. 또한 도착할 때까지의 항로, 생활사, 의학사 등 다양한 부문을 알 수 있기도 하죠. 그러나 여기서 두드러지는 부분은 바로 1884124, 갑신정변과 삼일천하를 다룬 기록입니다. 서울에 거주하는 외국인에게는 아주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다(125일 금요일) 며 시작했는데, 문득 보면 정세를 모른다는 걸 짐작할 수 있지만, 두렵고 신경이 세워지던 때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자신들의 삶이 위협받고, 청나라와 일본이 싸우던 찰나였으니 피신해야 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죠. 아무튼 민영익을 밤새도록 치료하고 간호한 그는 갑신정변을 최초의 암살사건으로 지칭하며 급진개화파의 배후에 일본이 있었다(1211일 목요일)고 추측합니다. 나아가 일기 후반부에는 계속 전투가 일어났으며, 외국인들이 계속 서울을 떠나고 있음(1220일 토요일)을 저술했습니다. 그리고 갑신정변에 가담했던 인물들을 처형한 후 시내에 보인 시체더미가 있었고, 반역자의 시체임을 알게 되었다(1885130일 금요일)는 걸 썼는데, 이는 삼일천하가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당시 어떻게 흘러가고 있었는지 상상이 되고, 와닿았습니다. 물론 '일기'인 특성상 개인의 솔직한 마음도 드러나는 부분도 있었지만 말이죠. (알렌이 민영익을 정말 싫어했다든지) 그래도 사료를 읽는 것이 조금은 낯설지게 되어서 다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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