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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1
[미술학교 강좌후기] 그림, 그리움, 그리니, 그리워...
2020가을학기 느티나무 미술학교 <사물, 그리고 이야기>
그림, 그리움, 그리니, 그리워...
김경혜
“언제 밥 한번 먹읍시다.” “조만간 술 한잔 해요.”
예의상 나누는 인사말이긴 했어도 언제고 여지가 있었던 우리의 관계맺기, 그 시작점을 풍요롭게 해준 촉매제는 다름아닌 밥과 술이었다. 흩어지면 살고, 혼자 있으면 금상첨화인 이 황망한 코로나 펜데믹이 가져다 준 귀양살이 와중에 그것이 얼마나 눈물겹도록 고맙고, 그 숱한 역사가 가능했던 소박한 일상이 얼마나 그리운 지는 지금 우리들 모두가 절절히 경험하고 있을터.
오늘은 또 얼마나...늘어만 가는 숫자에 지치고, 끌어안고 사는 방구석이 마냥 지루할 와중에 새로이 집중할 꺼리가 필요했다. 실은 평생의 염원이기도 했다.
느티나무 미술학교 강사인 이상권 선생, 동료 선후배들과 함께한 <사물, 그리고 이야기>전시회 오프닝에서 한 컷!
'그림, 그리움, 그리니, 그리워...'
몇 번이고 '그림'이라는 말을 되뇌다보면 이 아련한 언어의 신비에 이끌려 금방이라도 붓 한자루 들고 화폭 그 어디인들 대수랴. 마음껏 수놓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마음은 필경 화가 저리가란데, 정작 살면서 단 한번도 이를 실행에 옮기질 못했다. 핑계와 변명은 이제 그만!
마침 참여연대 느티나무 미술학교에서 수강생을 모집한단다. “이런 분을 초대합니다. 중고등학교 이후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으나, 일단 도전해보고 싶은 사람...”
감읍한 나머지 부지런히 공지가 떨어지기 무섭게 신청서를 작성했다. 지난 7월 말이었던가. 이 강좌를 신청하던 때가...(지나고 보니 벌써 아득하다)
하고많은 곳 중 왜 하필이면 참여연대? 마냥 그림만 그리면 무슨 재미. 적어도 눈꼽만큼 세상에 관심있는 이들이 모여 적기(?)가 되면 꼬물꼬물 나름 의미있는 작당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싶었다.
정작 복병은 코로나 바이러스....어쩌면 면대면 수업이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불행 중 다행히 마스크 착용을 전제로 오프라인 수업이 진행된다는 낭보가 날라왔다.
2020가을학기 느티나무 미술학교 <사물, 그리고 이야기> 전시회에
여러 선배들과 나란히 출품할 수 있어 감읍해 하고 있는 필자.
짜자쟌! 드디어 아기다리고기다리던 10월 19일 첫 수업날!
근 3개월 여를 기다린 터라 고마움과 설레는 마음은 기본이요 몸은 수업 시작보다 30분 먼저 가닿아 있었다. 강의실 전체를 환히 감싸는 어여쁜 미소의 주인공, 최인숙 간사의 환대를 받으며 발열 체크, 손 소독, 출석부에 이름을 기재한 연후 자리에 착석했다. 연단 한 켠에서는 까만 마스크로 포스를 내뿜던 우리의 강사 이상권 선생-마스크를 벗은 모습이 너무도 살짜쿵, 잠깐이었던 터라 비교적(?) 멋진 얼굴이었던 걸로 기억된다-도 역시 설레는 마음으로 학생들 한 명 한 명에게 눈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수업 시작인 7시가 다가올수록 강의실을 가득 메워가는 용감한 신청자들(총 18명?)–많아봐야 10명 남짓이겠거니 했다-에 놀라고, 이 선생의 <사물, 그리고 이야기> 강의 소개와 인사에 이어 한 분씩 앞으로 나가 자기소개를 하는데... 저마다 나름 한자락 읊어봤던 재야의 고수같은 분위기에 또 한 번 놀랐다. 왠지 내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기분이었달까?
본업인 취조(?)에 들어가 보니 함께 하시는 분들은 최소 3년, 최장 10년 이상 저마다 자유로이 다양한 재료를 녹여가며 나름 화폭 위를 맘껏 노닐던 분들이더이다. 다만 혼자서 지속적으로 그림 그리기가 쉽질 않아 함께 그리는 동지들을 통해 서로 배우고 성장하고 연단하고자 함이었다. 그 열의 또한 대단한 분들이다.
김경혜 <내가 나였던 순간들> 21*30 종이에 수채. 2020.
김경혜<운명> 21*30 종이에 수채. 2020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는 이 왕초보는 어디로 가야 할꼬?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던 물건이나 각별한 의미가 있는 사물을 찾아 종이 위에 옮겨 보세요. 그래도 생각나지 않으면 가끔 서랍 속을 한번 열어보세요. 뜻하지 않은 무궁무진한 보물들이 아마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스케치(구도 및 구성), 색감, 채색 등 아무 것도 모르는 백지 상태인 내가 하나 자신하는 건 선무당이 사람잡는다는 속담! 그러니 일단 무조건 도전 스타트!!
마치 수도승처럼 행복한 그림 그리기에 몰두했다. 그리다 보니 보이는 것들이 새록새록 생겨났다. 그림도 결국 돌아봄이요 성찰의 과정이었다. 참 고마운 일이다. 이상권 선생이 강의 목표로 삼았던 “기억, 환기, 표현의 즐거움”을 덕분에 온몸으로 경험했다. 그는 딱히 무엇을 어찌 하라 강권하는 법이 없다. 툭툭 내던지는 이야기 속에 답이 없지도 않다. 대신 영문도 모르고 내 멋대로 정하고 그린 사물에 한없는 용기와 격려 얹어주기.
실은 그 덕에 짧은 6번의 수업이었지만 얼떨결에 우리의 정해진 마지막 수업일인 전시회(11월 28일)에 내놓을 수채화 다섯점도 완성해 낼 수 있었다.
더불어 수업 시간 내내 최 간사가 들려주는 추억의 음악은 황홀경 그 자체였다. 그림 그리는 일이 그렇게 행복한 일이었던가.
나는 지금도 기회만 되면 본업인 글쓰기로부터 도망을 다닌다. 어쩌면 그래서 지금 목하 열애중인 그림 그리기가 그만큼 짜릿하게 다가왔는 지도 모른다. 허나 일탈치고는 작심삼일을 넘어서는 걸 보면 앞으로 내 삶을 풍요롭게 할 연장 하나 더 얻은 건 확실!한 듯하다. 그뿐인가. 세상에! 그간 밥 한번, 술잔 한번 기울이지 못하고 아직은 마스크 쓴 눈빛이 더 익숙한 얼굴들이지만 무엇보다 열정 가득한 선배 작가들을 내 동지로 두게 되었다는 점은 더할나위없는 큰 수확 아닌가. 그들과 함께 걸어갈 더불어 숲길이 몹시 기대된다.
‘고맙습니다~조만간 열릴 봄 학기에는 우리 기어코 한 잔 하시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