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정보
* 이 강좌는 성원에 힘입어 정원 마감합니다. 꿈투사워크숍 같이 정원이 있는 강좌는 수강료 결제 후 선착순으로 마감하고 있어, 수강 신청 후 수강료 결제를 하지 않으면 수강완료가 되지 않으니 이 점 참고부탁드립니다. ^^
* 수강 대기 접수를 희망하시면 아카데미느티나무 메일로 people@pspd.org 이름, 휴대폰 번호, 이메일 주소를 적어 보내주세요. 수강 취소자가 있으면 순차적으로 연락드리겠습니다. ===>>> 수강대기자가 많아 수강대기도 마감합니다. 이번에 수강 못하신 분들은 아쉽지만 다음 학기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카데미느티나무 드림
눈을 내면으로 돌려 마음 안을 탐색하려 할 때 꿈은 참으로 안전하고 효율적인 도구입니다.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마음을 이미지로 투영해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꿈을 마음의 거울이라 합니다.
매일 밤 꿈거울 속에는 기억도 못하던 어린시절의 상흔과 잃어버린 꿈과 나아가 본질적으로 참나를 만나고자 하는 염원이 고유한 나만의 방식으로 펼쳐집니다. 꿈거울 속에는 내가 무의식적으로 맺는 관계의 패턴뿐 아니라 채 말로 영글지도 않은 갈망과 염원들도 구체적으로 드러나 나를 알아가는 여정에 귀한 안내자가 됩니다.
마음이 비치는 거울을 통해 애매한 감정을 만나고 그 안의 상처를 치유하고 우리 안에 잠재된 가능성과 힘을 만나는 여정은 꿈길처럼 아름답고 경이롭고 흥미진진한 놀이가 될 것입니다.
진행안내
- 첫날에는 강의로 진행이 되고, 그 다음 주부터는 참가자들이 함께 꿈에 관한 각자의 투사를 하는 워크숍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 처음 참여하는 분들도, 전에 그룹투사 꿈작업에 익숙한 분들도 모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강좌일정
※ 안내한 이론의 순서는 변경될 수 있으며, 참가자의 꿈을 다루는 동안 등장하는 주제에 따라 내용 설명이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강좌 정보
일 시 : 2022. 9. 14. ~ 11. 16. 수요일 오전 10시 ~ 12시 30분, 총10회
장 소 : 온라인 zoom
정 원 : 18명(결제 선착순 마감)
수강료 : 40만원 (20대 청년 20만원)
할 인 : 참여연대 1만원 이상 후원회원 30% 할인, 20대 청년 50%할인 (중복할인 안됨, 청년할인은 계좌이체로만 가능)
계 좌 : 하나은행 162-054331-00805 참여연대
※ 강좌할인 및 취소환불 규정은 수강신청안내(클릭)를 꼭 확인하세요.
※ 아카데미느티나무는 청년배움을 응원하기 위해 20대 청년에게 50% 수강 할인 혜택을 드립니다. 다만, 워크숍, 정원제한이 있는 예술프로그램의 경우 청년 할인 적용 대상자를 정원의 30%까지 한정합니다.
강사소개
고혜경 신화와 꿈 아카데미 대표, 치유상담대학원대학교 교수. 퍼시피카(Pacifica Graduate Institute, Santa Barbara)에서 신화학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창조영성대학원(Institute of Culture and Creation Spirituality Oakland)에서 영성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꿈작업을 통한 집단 의식의 진화와 인류 초창기 여신전통 연구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저서로는 <선녀는 왜 나무꾼을 떠났을까>, <태초에 할망이 있었다>, <나의 꿈 사용법> <꿈에게 길을 묻다>가 있으며, 번역서로는 <꿈으로 들어가 다시살아나라>,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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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강연] 꿈에 대하여_고혜경(치유상담대학원대학교 전인치료)
[참가기]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의 ‘꿈 투사 워크숍-꿈거울로 참나를 만나다’ 참가기
참고문헌
<꿈이 나에게 건네는 말> 고혜경, 위즈덤하우스
<나의 꿈 사용법 : 진정한 나를 마주하기 위한 꿈 인문학> 고혜경, 한겨레출판
봄학기 강좌 후기
후기 4
[꿈투사 워크숍] 꿈. 무의식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힘이 세다
꿈. 무의식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힘이 세다
마리 홀 에츠<숲 속에서>
10주간의 그룹 꿈투사 여행을 마무리 지으며, 언제부터 꿈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을까? 란 물음이 올라왔다. 돌이켜보니 어릴적부터 원형이 꿈틀대는 옛이야기를 무척 좋아했지 싶다. 그래서 아이를 낳으면 이야기와 함께 키울거라고, 그 이야기가 세상과 만나는 접점을 만들어줄 거라고 나름 다짐했지만 살다보니 외부에 보여주기 그럴듯한 성을 짓는데 급급해서 이야기도 잊어버리고 꿈꾸기도 잊어버렸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출산 후 아이에게 이야기를 읽어주면서 꿈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전과 다른 결을 가진 꿈들이었다. 온갖 동물들, 미라가 된 나의 모습, 성이 무너져 내리는 꿈들... 그 즈음 팟캐스트를 통해 고혜경 선생님 꿈 강의를 듣고 나의 무의식이 내게 이렇게 살아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건네는 이야기가 밤마다 꿈으로 찾아온다는 것을 깨달았고, 동시에 너무 알고 싶었다. 내 꿈이 나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10번의 만남,18개의 꿈 투사를 통해 내가 꿈 속 주인공이 되어 그 속을 거닐며 나의 본연의 힘과 감정, 치부들을 하나하나 면밀히 살펴보고 발견하는 시간을 경험할 수 있었다. 관계안의 부침이 어디서 기인하는 것인지, 내가 잃어버린 보석은 무엇이었는지, 관계의 삐걱거림 조차 내가 외면하고 냉랭히 대했던 나의 어떤 면의 역동이었음을 절절히 알아차릴 수 있는 매 순간이었다. 함께 한 꿈 친구들의 꿈을 통해 지나간 20대의 나를 다독여줄 수 있었고, 카프카의 <변신>의 그레고리처럼 먹고 사는 데 급급해 감정이 바닥났던 날 울게 해주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또 언젠가 본 그림책의 꼬마 주인공처럼 숲의 동물들과 음악대 행진을 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꿈은 내 안에 있는 본능과 조우하는 찰나를 선사해줬으며 본능의 힘을 믿고 <마당을 나온 암탉>의 잎싹처럼 닭장을 헤치고 나가 너른 황금 들녘의 벼이삭을 맛볼 수 있을 거란 가능성을 열어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문학 작품들도 어쩌면 작가들이 꾼 꿈의 재현이 아닐까? 정말 나 다움이 뭔지, 나로 살지 못하는 시간 동안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지를 성찰해볼 수 있는 시간을 나의 꿈을 비롯 다른 이들의 꿈에서 들여다볼 수 있음은 경이로운 울림으로 다가왔다.
아기 때는 걷는다고 박수받고 넘어지면 함께 아파해주는 시선과 만져주는 손길이 있었다. 그런 기억조차 가물거리는 지금, 서로의 꿈을 온 마음으로 들여다 보며 때론 감동하고 때론 함께 아파하며 나다움의 길을 찾아가는 데 힘을 보태줄 수 있는 체험은 얼마나 값진지. 꿈은 차별하지 않는다. 잠들면 누구에게나 선물처럼 찾아드는 꿈, 그 꿈을 들여다 본다는 황홀함을 경험할 수 있는 복된 시간에 감사한다.
융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 실현의 역사다"
제레미 테일러 "꿈으로 들어가 다시 살아나라"
저 문장들이 가슴으로 와서 꽂히는 경험은 2022년에 내가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음을!
이번 그룹 꿈 투사 여정을 거치며 건져 올린, 알아차린 내면의 울림을 이제 실제 삶으로 가져와 나 답게 깨어나 살아가라는 뜻임을!
벌써 다음 꿈 모임이 기다려진다.
문인가 하였더니 다시 길
새벽에 눈을 떴다. 요즘은 새벽, 이 시간쯤에 자주 잠에서 깬다. 다시 눈을 감았으나 쉬이 잠들지 않는다. 꿈은 종종 그랬던 것처럼 눈을 뜨자마자 뽀얀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나 잠에서 깰테니, 너 거기 잠깐만 있어’ 라고 부탁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꿈은 하늘과 땅의 거리보다 더 멀리 가버렸다. 무언가 차곡차곡 서랍 속에 쟁여넣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님 켜켜이 서랍 속 무언가를 꺼내는 것 같기도 한데...아무튼 꿈은 미련 가득한 내 곁을 미련없이 홀연히 떠나 버렸다. 이러다가 문득, 꿈은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세수를 하고 로숀을 바르다가, 옷장 문을 열다가 혹은 출근하다 신호대기 중 건너편에 붙은 광고 플래카드의 ‘OO가구점’ 글자를 무심히 바라보다가 ‘가구?...아하’ 기억이 살아날 때가 있다. 뿌연 안개 속 깜깜한 장막이 걷히고 곧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순간이다. 그럴 땐 마치 잃어버린 내 소중한 보물을 찾은 것처럼 흥분된다.
십여 년 전쯤 부산에서 열린 워크숍에서 고혜경 선생님의 그룹투사 꿈작업 강좌를 접하게 되었다. 열 명 남짓 사람들이 둘러앉아 각자의 꿈을 나누고 원하는 한 사람의 꿈으로 그룹 투사를 하는 과정은 나에게 낯선 광경이었다. 교양과목으로 ‘꿈분석’을 수강한 이후부터는 가끔 꿈을 기록하고 있었던 나로서는 꿈으로 무의식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구체적인 작업이 얼마나 흥분되고 경이롭던지... 그때부터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꿈을 더듬어보며 음미하는 일이었다. 어떤 날은 너무 선명해서 생시같기도 하고, 어떤 날은 기억이 흐릿해 안타깝기도 하고, 가물 가물 기억이 나지 않을 때는 혹시라도 남아있는 어떤 이미지나 느낌을 한 가닥 붙잡고는 음미하며 잠잠히 있어 본다. 그러다가 운 좋게 꿈이 다시 돌아와 주면 얼마나 흥분되는지 모른다. 꿈을 기록하다 보면 등장하는 인물이 나의 무언가와 연결되기도 하고 사물을 통한 직관이 올라오기도, 혹은 동물에게서 나의 숨겨진, 아니 숨기고 싶은 모습을 보기도 한다. 의식세계에서 외면하고 검열하여 내 것이 아니라고 밀쳐두었던 감정이나 욕구들을 적나라하게 보는 순간은 속물같은 내 모습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수치스럽기도 하지만 그 낯선 나를, ‘또 다른 나’로 수용하기까지 겪는 나름의 아픔은, 그런 나를 인정한 후에 내게 주어지는 선물, 존재의 자유로움에 비하면 견딜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이 경이로는 세계를 좀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쯤 고혜경 선생님의 ‘꿈에게 길을 묻다’를 읽고 그룹투사 꿈작업 모임을 해 볼 용기를 내었다. 여러 사람이 함께 투사작업을 하는 것이 혼자보다 훨씬 풍성한 ‘아하’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에 매료되어 용감하게 모임을 시작했다. 그러나 구심점 역할을 내가 제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에 때늦은 후회를 하던 날, 초록색 잎이 풍성한 나무에 빨간 열매 하나가 달려 있는 모습을 담장 너머로 스쳐 지나가며 보는 꿈을 꾸었다. ‘빨간’ 열매는 하루 종일 나와 함께 했고, 모임의 가이드 역할을 잘 해내야 한다는 건 또 다른 나의 페르조나였음을 깨달았고, 굳이 내가 하지 않아도 꿈이 스스로 그 역할을 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후로 모임은 계속 이어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고혜경 선생님의 그룹투사 꿈작업에 참여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램(공지를 보고 신청하려고 하면 이미 마감!!)이 하필이면 내 인생에서 가장 혼란한 시기에 이루어졌다는 것 또한 내게 아주 큰 의미가 있었다. 간절함이 없었다면 이번 봄학기는 포기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언제나 내가 계획한 대로, 결정한 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의 틀(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힘든 시기고 바빠. 새로운 변화가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이 시점에서 또 새로운 공부를 하기는 힘들어. 그러니 다음에 여유있을 때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편한 마음으로 하자. 이번에는 포기하자!!)이 박살나는 경험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 세계에서 눈을 돌려 새로운 세계에 한 발 들이미는 경험은 고통없이는 불가능한 일일테니 말이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 힘들거나 지치거나 혹은 갈피를 잡지 못할 때 ‘오늘 밤 꿈은 나에게 어떤 말을 건넬까’ 생각하면 내가 타인이 되어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래서 다시 궁금해진다. 또 다른 내가 말이다.
[꿈투사워크숍] 나의 장례식장
영화 <굿바이> 영상 캡처
타키타 요지로 감독의 <굿바이>(2008)라는 영화가 있다. 영화 속 어린 시절 주인공은 아버지와 ‘돌편지’라는 것을 주고받는다. 사람의 마음은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기에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의 마음과 닮은 돌을 강가에 주워 아들에게 준다. 그러면 마음은 촉감, 무게감. 생김새를 가진다. 그렇게 전달된 편지는 어렴풋이 상대의 마음을 추측하게 한다. 나는 이 ‘돌편지’가 꿈과 같다고 생각한다.
고혜경 선생님은 “꿈은 신이 보낸 연애편지”라고 자주 말씀하신다. 신은 우리를 사랑하는데 그 사랑(내가 건강하고 온전해지길 바라는)을 전달하기 위해 무의식이란 강가에서 꿈이란 도구를 선택한다. 다만 꿈은 상징과 은유로 되어있기에 어찌 도착한 편지를 열어보아도 그 의미를 명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그래서 꿈은 신의 일방적인 짝사랑으로 시작해 ‘연애편지’가 아닌 길거리에서 받은 ‘부동산 전단지’로 취급당한다. 힘겹게 꿈이 전달되었다 하더라도 악몽이라 생각되면 길에 버리고, 길몽이라 여겨지면 복권방 주인에게 가져다준다.
그룹 투사 꿈 작업(Group Projective Dreamwork)은 꿈을 잘 들여다보기 위해 제레미 테일러 선생님이 1960년대에 창안한 방법이다. 한 사람이 가져온 꿈을 듣고 '이 꿈이 내 꿈이라면...’ 하면서 여러 사람이 투사(projection)를 한다. “하나의 꿈을 가지고 작업할 때 각 개인이 가진 다양한 층의 지식과 직관을 동원해 함께 꿈을 이해하려는 작업에 동참한다. 그러면 꿈을 꾼 사람은 훨씬 넓은 범주의 의미를 파악할 가능성이 높아지며, 자연히 꿈의 다층적인 면과 복합적인 의미를 파악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또 “아하! 체험”을 할 기회도 증가하게 된다.”고 선생님은 말한다. 실제로 다양한 시각에 내 꿈은 다채로운 빛을 내기 시작한다. 누군가 던진 말에 내 안에 있는 내가 모르는 누군가 반응해(저 공이야!) 딱! 소리를 내며 홈런을 친다. 그러면 절로 ‘아!’ 소리가 나온다.(이 순간의 느낌은 시커먼 무지의 구름을 빠져나와 새파란 하늘을 바라본 <매트릭스3>의 명장면과 같다)
그렇다면 실제 꿈 투사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나는 작년 가을과 올해 봄에 워크숍을 참여했다. 공교롭게도 맨 처음 내 꿈을 다뤘다. 제목은 <앞다리가 없는 통통한 고양이>였다. 다음은 꿈의 내용이다.
‘앞다리가 없는 고양이가 내게 걸어온다. 두 뒷발로 잘 걷는다. 잘 먹고 다니는지 얼굴이 통통하고 둥그스름하다. 그 옆에는 조금 어린 청년 수컷 고양이도 있다. 둘 다 수컷이다. 내가 먹이를 준다. 두 고양이는 먹이를 먹고 잠시 내가 시선을 돌려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순간 땅속으로 가라앉아 사라진다.’
전혀 팔릴 것 같지 않은 이 허무맹랑한 판타지를 나는 사람들 앞에 내놓고 그들의 질문을 기다린다. 누군가 묻는다. “고양이의 앞다리가 잘렸나요?” 생각해보니 다리는 없지만 잘리지는 않고 흐릿했던 기억이 나서 절단은 아니고 흐릿하다고 말하며 대신 없는 것은 확신한다고 말했다. “고양이는 서서 걷나요?” 아니다. 일반 고양이처럼 네 발로 걷는다. 다만 앞발이 흐릿해 없을 뿐이다. “옆의 어린 수컷 고양이는 형제인가요?” 그건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어떻게 먹이를 주고 있나요? 밥그릇에 담아 주나요?” 그냥 두 손으로 건 사료를 담아 땅바닥에 두었다고 말했다. 동시에 속으로 아차! 싶었다.(아하!가 아니다) 고양이에게 밥을 너무 애정없이 주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때문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누군가는 어떤 사람인가요?” 나는 그 사람의 형체가 기억나지 않지만 예전 꿈에도 등장해 이런저런 상황이라고 설명해 주었던 사람이라고 답했다. 구성원들은 자기 꿈으로 만들기 위한(이미지를 선명하기 위해) 질문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한 사람씩 ‘이 꿈이 나의 꿈이라면...’ 말하면서 투사를 시작했다.
투사가 시작되면 각자의 지식과 직관으로 꿈을 풀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것은 꿈을 가져온 나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순전히 ‘자기 고백’이다. 따라서 틀린 것도 없고 굳이 상대방에게 도움이 될 필요도 없다. 그저 각 개인이 가진 역량대로 성찰하면 된다. 그때 나는 솔직히 말해서 ‘이 사람들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나’하고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가 앞발이 없는 고양이가 되기도 하고 어린 수컷 고양이에게서 자기 형제를 보기도 하고 실제 키우는 고양이에 대한 습성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그러는 도중에 내게 ‘아하!’가 왔다. 앞발을 잃은 고양이는 호기심도 인간관계도 잃은 나였음을. 그리고 나는 그런 나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허기만 채우면 된다는 지침으로 애정없이 먹이를 주고, 보기 싫어(‘시선을 돌려’) 괜찮은 척하고 있지 않은가. 내가 나를 내버려 두고 무관심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나고 또 다른 통찰이 올라왔다. 우리 부모님도 사회가 요구하는 경제적 능력을 갖추기 위해 앞발을 잘랐음을. 그래서 사랑이란 이름으로 자식들의 앞발을 자르려고 했다. 이것은 김수영 작가의 책 「멈추지마, 다시 꿈부터 써봐」에서 작가의 부모님이 자식이 외국의 어떤 좋은 회사에 다니든 그저 집 근처 공장에 취직해 남자를 만나 우리 곁에서 아이를 낳고 같이 살았으면 하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과 같다. 자식을 자신의 틀 안에 가두려고 한 것이다. 어쨌든 그런 부모님도 불쌍하다고 느껴져 부모님에게 미안하다고 우는 꿈을 꾸었다. 부모님도 앞발이 없는 것이다.
꿈투사를 하고 나서 무엇이 좋았냐고 내게 묻는다면 몇 가지 짚어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첫째, 질문을 받는 것이 좋다. 꿈에 등장하는 모든 것은 내 안의 어떤 요소이다. 따라서 꿈에 대한 모든 질문은 나에 관한 관심으로 느껴져 나를 기쁘게 한다. ‘와 이렇게 나한테 관심이 있는 사람이 많다니!’ 나에 관한 여러 질문은 내 기억 속 묻혀있던 기쁨과 슬픔을 자극해 내 마음을 활성화한다.
둘째, 상징과 은유로 내 고민을 다루기 쉽다. 심리학적으로 첫 번째 꿈을 다룬다면 [어린 시절 부모님의 유기와 방임으로 애착 형성에 실패해 내가 부족해 부모님이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나는 열등감에 빠져 남의 눈치를 살피며 남들의 칭찬을 받기 위해 모범생이 되고자 노력한다. 열등감은 이성 앞에서는 부끄러움으로 나타나고 배울 점이 있는 사람에게는 시기와 질투로 표현된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 나는 부모님의 곁에 떠나지 못하고 옹졸한 사고방식으로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하지 못한다.]로 분석할 수 있다. 그런데 꿈은 얼굴이 통통한 앞발이 없는 고양이의 상징으로 이 사연을 압축한다. 이 고양이라는 상징은 나에게 설득력이 있다. 왜냐하면 이 상징은 내 안에서 선택된 이미지고 내 감정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내게 고양이는 매우 독립적이고 개와 달리 자신의 기분이 주인보다 더 우선시하는 동물이다. 동시에 다루기 힘들어 중성화하고 집안에 키우는 동물이다.
셋째, 무의식적 행동 양식을 볼 수 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고양이 밥그릇’을 왜 나는 놔두지 못했나? 그 이유는 내가 나에게 친절하지 못해서이다. 무엇보다 나는 내가 돌봐야 하는 0순위인데 끊임없는 인정욕구로 시선이 타인에게 향하고 있었다. 나는 꿈투사 이후로 친구에게 선물할 예쁜 ‘안경 닦이’를 그냥 내가 썼다. 그리고 몇천 원을 아끼기 위해 늘 실망으로 끝내는 가성비를 따지는 소비습관도 고치고 있다.
넷째, 꿈을 가지고 놀 수 있다. 나는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하지만 꿈을 들으면 손짓으로 이미지를 상상해보기도 하고 꿈이 사용하는 기교인 언어유희를 맞추기 위해 여러 단어를 던져보기도 한다. 더욱 나아가 꿈 작업이 끝난 후에도 내 꿈에 나오는 고양이를 가지고 여러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예를 들어 고양이에게 장화를 신기다면 고양이는 두 발로 일어서서 그의 재치로 가망이 없는 이 현실을 놀라운 일들이 가득한 세상으로 바꿀 것이다. 또 좀 더 강인하고 고귀하게 고양이를 돌본다면 <알라딘>에 나오는 쟈스민 공주가 키우는 호랑이로 성장할 것이다. 그러면 그 누구도 나를 만만하게 보지는 못할 것이다.
영화 <알라딘> 티저 영상 캡처
다시 영화 <굿바이>로 돌아가 보자. 영화 속 아버지는 주인공이 어릴 때 바람이 나서 집을 떠난다. 주인공은 그런 아버지를 증오한다. 어찌 돌아온 고향에 그는 어릴 때의 상처와 마주한다. 동시에 아내의 의견을 묻지 않고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자신의 모습이 아버지와 닮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가장 싫어하는 이와 나는 닮은 것이다. 그는 죽음을 다루는 납관사(관에 사람을 넣는 의례를 관장하는 사람)로서 사연이 있는 여러 죽음을 다루며 좋음과 나쁨으로 삶을 가르는 이원론의 무상함을 바라보고 자신의 상처에 담대하게 다가간다. 그 후 죽은 아버지를 마주하며 그가 전해고자 했던 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와 함께 상처 입었던 자신도 관에 넣는다. 영화 제목 <Good & Bye>의 'Good'은 일련의 경험을 통해 상처를 준 그들을 향해 ‘You are good’이 아니라 ‘I am good’라 말할 수 있게 되고 그래서 ‘Bye’로 이 사건을 내가 종지부 찍을 수 있음을 뜻한다. ‘I am good’라 말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꿈투사 워크숍에서 당신은 얻을 수 있다.
가장 보통의 보편적인 당신이 참여하고 연대해 만들 이 둥근 자리는 모험을 떠나기 전 옛 기사들이 치유의 성배를 보았던 원탁이며,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가 절대 반지를 파괴하더라도 남아 있을 진정한 반지며, 일찍이 아기 공룡 둘리가 납치되었던 UFO다. 왜 갑자기 UFO냐고? 패닉의 <UFO> 가사를 보라.
“마지막 달빛으로 뛰어가봐 날아와 머리위로 날아와 검은 하늘을 환히 비치며 솟아 모두 데려갈 빛을 내리리 이제야 그 오랜 미움 분노 모두 다 높이 우리와 함께 날으리”
여신의 달빛으로 당신의 그 오랜 미움과 분노가 사라지는 자리가 여기 있다.
[꿈투사워크숍] 잠들면 개봉하는 인생극장
수요일 오전마다 화면으로 만나는 얼굴과 목소리. 그리고 간밤에 꾼 꿈의 제목으로 “ 안녕하세요, 일주일간 어떻게 지내셨어요~”를 나눈 뒤에 꿈을 통한 연결이 이루어졌습니다.
한 사람의 꿈 이야기를 듣고 나누며 ‘내가 그 꿈을 꾸었다면~’을 상상해서 느낌과 생각을 나누는 피드백 속에서 저는 또 다른 관점과 또 다른 영감을 얻었습니다.
그 영감은 저의 마음을 날마다 새롭게 했습니다.
해외, 경상남도, 충청도, 경기도에…. 사는 모르는 사람들이 만나서 오직 꿈으로 진솔하게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은 아름답고, 가슴이 따끈해집니다.
꿈을 기억해서 기록하고 나면, 꿈이 전하는 말을 듣는다는 것이 들릴 듯 말 듯, 알쏭달쏭하거나 때때로 물음표만을 남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꿈은 보이지 않는 나의 내면의 마음을 보여 주기도 하고 들려주기도 하니, 어찌 귀하지 않을까요?
불변의 진리처럼 나의 마음은 내가 스스로 알아가야 하기에 저는 오늘도 어젯밤 꿈속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시를 느끼는 마음으로 곰곰이, 천천히, 고요해집니다.
꿈 투사 과정을 통해서 알았습니다. 저는, 제가 아는 것 외의 존재라는 것을요. 꿈을 나누고 경청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이리저리 휘둘려 살며 내 안의 사랑을 두고서 평생 사랑을 모를뻔했습니다. 꿈꾸기가 즐거워 잠을 청하는 것이 살짝 두근거립니다.
꿈에 귀 기울이기를 경험하는 귀한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깊이, 깊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