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정보
어른들의 말 공부가 필요합니다. 말 공부는 말을 막 배우기 시작하는 아기들만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평생에 걸쳐 말을 배우고 바로 잡으며, 단어 이면에 놓인 이야기를 궁금해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고 여기는 차별과 혐오의 이면에는 “말이 통해야 무슨 얘길 하지!” 하는 체념의 정서가 깊이 깔려 있는데, 말이 통하려면 우선 근본적으로 우리가 쓰는 말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합니다. 서로 사용하는 말이 다른 단절된 상황, 같은 단어라 하더라도 전혀 다른 뜻으로 사용하는 분절된 상황에서 소통과 연대가 과연 가능할까요?
“나라를 다스린다면 무엇부터 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 공자는 “이름을 바로잡겠다” 하고 말합니다. 이름이 바로잡히지 않고 말이 바르지 않으면 결국 사회 전체가 망가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죠. 공자에게 정치란, 사람들이 언어를 바탕으로 신뢰를 구축하는 세계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말했을 때, 그가 특히 주목하는 부분도 인간의 언어 능력입니다. 우리는 언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각자의 생각을 나누고 서로를 설득하는 과정을 통해 공통되는(common) 것을 추출하고, 이를 기반으로 커뮤니티(community), 즉 정치 공동체를 만들어 생활합니다. 이렇게 동서양의 철학자들이 입을 모아 언급하듯이, 말을 바로잡고 이를 사용해 소통하며 연대하는 것은 정치적 주체인 시민의 중요한 의무이기도 합니다.
평생을 사용해 왔으니 다 안다고,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우리에겐 모태신앙과 같은 한국어, 그 익숙하지만 모호한 믿음을 공적으로 해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익숙한 단어가 낯설게 느껴지는 희한한 경험, 낯선 언어가 익숙한 세계를 휘젓는 철학적 순간들, 말 공부에 주목해야 하는 필요에 관한 깨달음, 어른이 되어서 다시 하는 말 공부에서 함께 만나 보시죠.
강사 소개
이진민 정치학 박사, 작가. 세상이 좀 더 다정해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배운 건 남을 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강의를 합니다. 철학을 일상의 말랑말랑한 언어로 풀어내 소통하는 일에 관심이 있습니다. <나는 철학하는 엄마입니다>, <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 <아이라는 숲>, <동굴 밖으로 나온 필로와 소피>를 썼습니다.
강좌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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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2
나이가 들어도 지속적으로 '말 공부'를 계속해야 하는 이유와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준 강의
나이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새삼스럽게 평생 써온 ‘말’을 배운다고? 혹자는 웃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전 주저 없이‘어른이 되어 다시 하는 말 공부’ 강의를 신청했습니다.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며 서로 소통의 도구인데 현재 내가 사용하고 있는 말들이 얼마나 정확한지?
내가 사용하고 있는 말들이 타인에게 독이 되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무수하게 쏟아져 나오는 신조어들은 어느 정도 수용하고 따라가야 할 것인가? 스스로 묻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진민 선생님 강의는 제가 원했던 내용을 충족하고 그 이상으로 사고의 지평을 넓히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제시해 준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강의는 전체 4부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강의 내용 중 저에게 큰 의미를 준 키워드를 중심으로 간략하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부- ‘정명(正名)’ [이름을 바로잡는 일, 이름이 바로잡히지 않고 말이 바르지 않으면 결국 사회 전체가 망가진다는 의미로 공자가사용하신 단어]이란 단어가 말 공부의 필요성을 함축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었습니다. 말 공부는 1) 정치적 주체인 시민으로서의책임과 의무이며 2) 내 세계의 유지와 확장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단어, 사용하는 언어의 질에 따라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게 된다 [‘아이라는 숲’에서 인용]. 1 부에서는 우리말 한국어를 일상 속에서 낯설게 (세심하게 구별해보기/익숙한 말 궁금해하기/적절한지 의심하기) 바라보자는 실천 방안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2부에서는 그 제목 [말에 독을 담다]을 핵심어로 선택했습니다. ‘차별’의 언어와 ’속이는’ 말들에 대하여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일상에서 알고 있지만 사용했거나 그 의미를 정확하게 모르고 사용해 온 말들이 때로는 사람을 죽이고 아프게 하는 말들, 타인의 존재를 거부하는 말들, 우리를 물화 시키는 단어, 누군가를 비하하는 말들, 전쟁의 폭력성이 담긴 언어들이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3부 강의는 제가 기대하지 않았던 조금은 낯선 주제였습니다.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방법으로서의 외국어 공부는 새롭게 외국어를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3 부에서는 ‘단어는 인간 의식의 소우주다’라는 레프 비고츠키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된 단어 ‘파이어아벤트 feierabend -축제가 있는 매일 저녁’에 대한 설명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외국어는 단지 나의 지식을 알리고, 생각을 소통하기 위한 수단만이 아니라 내가 모르던 세상을 나의 인식 세계 안에 새롭게 담는 과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말과 다른 외국어에 담겨 진 그들 사회 문화, 철학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낯선 외국어 공부는 쉽지는 않겠지만 한 번 도전해 봐야 할 과제가 되었습니다.
마지막 4부 –‘말의 생로병사’ 생겨나는 말들과 사라지는 말들을 살펴보며 우리 사회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살펴본 시간이었습니다. 말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기에 나이가 들어도 계속 말 공부의 필요성도 느끼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폭발적으로 만들어지는 신조어가 다양성을 높이고 시대상을 반영할 수 있기는 하지만 소통을 단절시키고 차별과 혐오 표현 유행이 혐오 문화를 강화할 수도 있기에 우리 언중(言衆)들이 자율적으로 선을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4주간의 강의를 통해 배운 ‘말 공부’가 공염불, 헛일을 의미하는 말공부(工夫) 되지 않도록 노력해달라는 당부의 말씀으로 강의는 끝맺음 되었습니다.
내 의식의 소우주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싶으신 분, 내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데 관심이 있으신 분들께 ‘꼭’ 추천해드리고 싶은 강좌였습니다.
좋은 강좌를 마련해주신 참여연대 아카데미와 강의를 맡아주신 이진민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또한 솜씨 없는 후기지만 읽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수강생 김현희였습니다.
어른이 되어서 다시 하는 말 공부 강의를 들으며......
24. 10. 23. 한국어라는 모태신앙의 명암 – 익숙한 말들의 뒷모습(1주차)
아카데미느티나무 24. 10. 23. 어른이 .. : 네이버블로그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내 언어만큼 나의 세계를 인식하고 표현한다. 이전에 내가 그러했다. 지금도 조금 모자라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전에 나는 더욱 심했다.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단어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단어에 따라 전혀 다른 세계를 살게된다. 그당시에는 나도 내가 인식한 정도까지만 생각하고 받아들인 것이다. 왜곡된 사고를 가지게 되었었던 이유도 음모론, 유사학문만 접했기 때문이다.
나의 말을 이해해야 할 책임은 상대방에게 있다고? 이는 또 다른 혐오표현이 될 수 있으며 올바른 소통의 자세는 아니다. 이때문에 내말을 상대방에게 이해시켜야 할 책임은 나에게 있다. 상대의 언어수준, 지적수준도 최대한 배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눈높이란 말이 있으니까.
24. 10. 30. 말에 독을 담다-차별하는 말들과 속이는 말들(2주차)
아카데미느티나무 24. 10. 30. 어른이 .. : 네이버블로그
이때는 다른 토론회에 참석을 해서 조금 늦게 출석을 했다.
장애인을 비하하는 언어는 더욱 날이 선 칼이 된다. 우리가 흔히 쓰는 병신, 정신병자, 애자, 발암캐 등등...... 그리고 답답하게 구는 사람들에게도 이러한 말들을 쓴다.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너무 답답하고 화가나니 표출을 해야 살 것 같지만 정작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더더욱 위축될 수 밖에 없지 않겠나? 나 또한 그렇게 받으면서 살아왔기에...... 남일 같지가 않네
그리고 지역을 차별하는 언어도 많이 쓰인다. 내가 군에 있었을 당시에 대통령선거를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어느 전우가 다른 전우에게 '절라디안'이라는 말을 마구 써댔다. 나는 그 것이 차별하거나 혐오하는 말인 줄 몰랐었다. 어떻게 보면 그 말이 그당시의 나에게 당연하게도 들렸었는지도 모른다. 왜냐고? 군생활을 하게되면 당연히 정신전력 교육을 받게되는 더 거기서 우경화가 일어난다. 우경화된 사고가 형성이 된다 이말이다. 나 역시 정신전력 교육을 받으면서 우경화가 진행되었고 부모님앞에서 5.18은 북한간첩이 와서 장난질 친 것이 아니냐고 조심스럽게 말을 했었던 적이 있었으나 아버지께서 5.18에 관한 영화를 보여주시면서 북한개입설은 사실이 아니라고 하셨다. 이 글을 쓰는 지금 그 생각을 하니 부끄럽다. 또 '절라디안'이라는 말이 당연한 것처럼 들린 것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진심으로 부끄럽다. 5.18 피해자 및 그 유족분들에게 진심으로 사죄드리고 싶다. 정말 죄송하다고, 너무 무지하였고, 너무 생각없이 말도 안되는 것을 받아들였었다고 말이다.
그 외에도 직업을 낮잡아 부르는 말 등...... 혐오의 언어는 넘쳐난다. 그날 늦게나마 출석하여 강좌를 들은 내용을 다시 복기해보다 동덕여대사태를 다시 떠올리게 되어 매우 괴롭다. 또 3달 전에 단체톡방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라 정말 기가 막힐 지경이다. 대체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왔는지 알 수 없다. 서로 용서할 수는 없는 것인가? 그럴 여유가 없는 것인가? 기가 막힐 노릇이다.
광고속에도 일상에도 차별이 만연한 사회를 보면서 인식개선이란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인식개선운동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현재로썬 알 길이 없다. 게다가 너무 익숙해서 독을 머금고 있는 말도 있다.
"손님은 왕이다."
내가 요식업에 종사했었을 때 어느 사장에게 들은 말이다. 손님은 왕이니 갑질해도 그냥 묵묵히 받아들이라는 말이라 불쾌한 감정이 들었다.
새벽배송, 총알배송, 로켓배송 등등...... 이 배송의 연료는 사람이다. 사람을 갈아넣어도 되는 건지 그런 단어를 써도 되는지 모르겠다. 사람이 중요한지 돈이 중요한지 잘 모르겠다. 나 역시 쿠팡에서 일용직으로 일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물류센터에서만 일을 했다. HUB, 출고, 입고등 다양한 업무를 해봤다. 몸이 상당히 고된 일이다.
24. 11. 06. 말이 세상의 틀을 만든다-익숙한 세계를 휘젓는 낯선 말들(3주차)
아카데미느티나무 24. 11. 06. 어른이 .. : 네이버블로그
말이 세상의 틀을 만든다는 제목이 딱 눈길이 갔다. 왜냐고?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말들이 우리의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말은 증오와 분노의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은 증오와 분노의 말로 가득차 있다.
우리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다르게 인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적어도 정답은 없다. 그렇기에 정(正), 반(反), 합(合) 이 3개를 늘 염두해 두며 살아야 한다. 그렇게 서로 토론하며 존중하고 이해하며 용납하고 더 나은 선을 만들기 위함이다. 이 것이 진정 우주의 법칙이 아닐까?
독일어 파이어아벤트->좋은 저녁 보내!(축제가 있는 저녁)
독일인은 주말에 식당빼고 다 일찍 문닫는다. 주말에는 다 밖으로 나간다.(자연으로) 또 가족들을 중요시하여 가족들을 만나러 간다, 일상적이다. 그리고 독일인은 병가에 대해 상당히 관대한 편이다.
하지만 지금의 윤석열 정부는 노동시간을 더 늘리려고 해왔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인가? 어째서 이 정부는 노동자의 아픔에 대해 고충에 대해 공감을 하지 못한다고 할까?
언어의 역사성: 말은 탄생하고, 변화하고 죽는다. 언어의 역사가 생겨나는 이유도 이러한 순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언어는 언중들의 사회적 약속으로, 언어와 사회는 서로를 반영한다
우리가 쓰는 언어는 시대상에 따라 변화한다. 살아나기도 하고 변화하기도 하고 죽기도 하고......
PC의 발전, 더 빠른 소통의 욕구로 인해 더더욱 심화된 속도지향성은 우리 말을 더더욱 혼탁하게 만든다는 생각도 하게 만든다. 인공지능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면서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어떻게 변하게 될 지 생각해야 할 시점이 왔다.
이렇게 말공부를 끝마치게 되었다.
4주간의 짧은 시간이어서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만 말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 글을 쓰는 오늘같은 날은 더더욱 그러했다. 말을 할 때 곱씹고 되새기도록 노력해야 겠다.
나 역시 말을 함부로 하다가 사람에게 상처준 경험도 있고 그 반대로 남에게 상처받은 경험이 있기에 그렇다.
그리고 앞으로 시대가 발전하게 되면서 언어 또한 인공지능과 결합해서 어떻게 변하게 될 지 궁금하다. 인공지능의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중에 죽음을 맞이하게 될 언어가 얼마나 될 지 또 유지되는 언어나 융합이 일어남에 다라 변화하는 언어는 얼마나 될 지 궁금하다.
이제는 인공지능의 언어도 생기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리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혐오하고 증오하는 언어는 더이상 설 자리가 없어져 간다고 봐야 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렇게 좋은 아카데미느티나무 강좌를 개강해준 참여연대에 진심으로 감사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