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정보
* 성원에 힘입어 정원 마감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강의 소개 |
날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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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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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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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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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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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헷갈렸던] 성에 대한 진짜 은밀한 이야기
섹스 / 섹슈얼리티 / 젠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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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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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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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몰랐던] 역사가 만들어낸 성 이야기
성적 차이에 대한 의외로 치밀한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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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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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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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서 무시했던] 매우 정치적인 성 이야기
차별과 혐오는 어떻게 질서와 진리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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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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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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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만큼 실천할] 성평등한 사회를 꿈꾸는 이야기
양성평등이 불가능한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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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4
[젠더와 민주주의] 4강 [아는만큼 실천할] 성평등한 사회를 꿈꾸는 이야기
4강 [아는만큼 실천할] 성평등한 사회를 꿈꾸는 이야기
-양성평등이 불가능한 진짜 이유
이번 시간 우리는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데 중요한 중심질서 역할을 하고 있는 ‘유교’가 만들어 온 한국 내 성 체계를 ‘춘향뎐’을 통해 알아보았습니다. 유교는 중국에서 넘어온 학문으로 인(仁)과 예(禮)를 중시하고 가족, 남녀의 관계에서 지켜져야 할 예(禮)들을 ‘삼강오륜’으로 정리했습니다. 춘추전국시대 이전에는 오륜이 강조되었지만 뿔뿔이 나뉜 중국을 통합하려는 시도들 속에서 점점 삼강이 강조되었습니다. 삼강은 ‘신하는 임금을 따르고 자식은 아비를 따르고 아내는 남편을 따라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지요. 즉, 남편은 가족 안에서 임금이며 임금은 국가의 아버지인 것이죠. 삼강이 남성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구조는 이러합니다. “심지어 아녀자들이 지키는 도리를 남자인 네가 지키지 않을 것이냐?” 남성과 여성을 대립된 구도로 놓고 대놓고 비교해 남성들의 자존심을 자극시키는 것이죠.
조선 왕들은 삼강에 대해 ‘삼강행실도’라는 책까지 발간하였습니다. 최초로 ‘삼강행실도’를 발간한 것은 세종인데요, 이 책은 글을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그림으로 표현되고 뒤에 글로 설명이 되어 있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안에는 수많은 열녀와 효자들의 사례들이 실려 있는데요, 주목되는 것은 열녀들의 사례입니다. 책 이전에 조선 사회에서 열녀는 과부가 된 이후에도 재가를 들지 않은 것만으로도 들을 수 있었던 칭호였습니다. 그러나 책은 열녀의 조건을 바꾸어놨습니다. ‘부모를 보살피러 갈 여비가 없는 남편을 위해 제 몸을 정육점에 팔아 여비를 마련한 아내.’ ‘남편이 죽은 후 들어오는 왕과 다른 남성들의 구애에 이런 유혹이 내가 얼굴이 예뻐서라면 차라리 얼굴을 못나게 하겠다며 스스로 코를 자른 여인.’ 이런 식으로 열녀의 조건은 단순한 정절이 아닌 목숨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요구와 규범은 여성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춘향뎐’을 통해 엿보겠습니다.
방자와 산책을 나온 이몽룡, 저 멀리 꽃 같은 것이 나풀거리고 있어 자세히 보니 어떤 어여쁜 아녀자였다. 방자에게 그게 누구냐 물으니 방자 왈, 기생 월매의 딸 성춘향이라 했다. 그래? 그럼 이리 좀 데려 와 봐라, 도련님 춘향이는 기생이 아니어 오라 가라 할 수 없습니다. 몽룡은 방자에게 온갖 사정을 하여 결국 내 네게 형님이라 부를테니 좀 이리 데려와라, 하였고 방자는 춘향의 시종 향단이를 설득하여 춘향을 몽룡 앞으로 데려온다. 그러나 춘향은 몽룡의 구애에 대고 그리 원하면 우리 엄마 허락을 맡으러 와라, 하고 매몰차게 떠난다. 깊은 밤 몽룡은 아버지 몰래 담을 넘어 춘향 집으로 가 월매에게 자신의 연정을 말하고 월매는 몽룡의 믿음직한 신분과 됨됨이를 보곤 수락을 한다. 그날 밤 춘향과 몽룡은 ‘어화둥둥 내사랑’ 뜨거운 밤을 보냈다. 사랑 타령이 끝나고 춘향은 갑자기 종이를 딱, 꺼내며 ‘불망기(각서)’를 쓰라 한다. 그 내용인 즉슨, 이몽룡이 성춘향을 모른 채 할 시 이 불망기를 갖고 관아에 가 몽룡을 고발해도 된다는 것이었다. 얼마 후 몽룡은 출장 끝난 아버지를 따라 남원을 떠나야 했고 춘향과의 가약을 아버지께 고하지 못한 몽룡은 춘향에게, 내 너를 데리러 다시 올테니 기다리고 있으라, 하곤 남원을 떠난다. 몽룡이 떠나니 남원 고을엔 변학도가 새로운 사또로 왔는데, 춘향의 명성을 들은 변학도는 자리에 앉자마자 춘향을 데려오라고 명한다. 그러자 옆에 있던 신하가 고하길 사또님 춘향은 기생이 아니라 오라가라 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춘향은 전 사또의 아들과 백년가약을 맞은 사이입니다. 그러나 변학도의 고집을 이길 신하는 하나도 없었다.
춘향아, 내 수청을 들라. 춘향은 나와 백년가약 맺은 지아비가 있기에 수청을 들 수 없습니다, 라며 수청을 거부한다. 그러면서 춘향 말하길 신하는 하늘 아래 두 군주를 모실 수 없고 아내는 하늘 아래 두 지아비를 모실 수 없다 하였는데 어찌 그런 요구를 하신단 말입니까? 그때부터 변학도의 혹독한 고문이 시작 된다.
그 와중에 몽룡은 거지꼴을 하고 남원에 낯을 비춘다. 춘향은 하늘이 무너진 듯하나, 변사또의 수청을 거부하는 의지는 변치 않았다. 결국. 변사또의 생일이자 변사또가 춘향을 죽이겠다 한 기일이 되었다. 변사또가 춘향의 사형을 집행하려는 그 순간 저 멀리서 갑자기, 암행어사 출두요. 부채로 얼굴 가린 암행어사가 등장을 하고 변학도는 두 무릎 꿇고 어사를 맞이한다. 암행어사는 변핚도의 횡포를 꾸짖는 한편 사또의 수청을 거부한 춘향에게 이렇게 물었다. 네가 내 수청도 거부하겠느냐? 춘향의 답변은 한결 같았다. 같은 하늘 아래 두 지아비를 섬길 수 없습니다. 암행어사 말하길, 춘향은 고개를 들라. 춘향이 고개를 드니 어사는 들고 있던 부채를 내리는데, 부채 뒤에서 나온 얼굴, 이몽룡이었다.
잘 알려진 춘향전. 대부분 지고지순한 한결 같음으로 사랑을 지킨 굳센 여성의 이야기로 해석되곤 합니다. 한 채윤 선생님은 궁금했다고 합니다.
1. 춘향은 자기 목숨이 아깝지 않았을까? 왜 이몽룡이 거지꼴로 돌아온 것을 확인하고도 수청을 드는 대신 죽음을 택한 걸까?
2. 변사또는 왜 춘향이를 바로 죽이려 든 것일까? 설득도 한 번 안 하고, 춘향을 죽이는 게 그에겐 무슨 이득이었을까?
3. 목에 칼을 찬 춘향을 향해 ‘나, 암행어사의 수청도 거부하겠느냐?’라고 한 이몽룡은 무슨 마음이었던 것일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첫 번째 질문부터 풀어볼까요?
춘향은 양반과 월매의 사이에서 생긴 딸입니다. 그 양반의 성을 따서 ‘성 춘향’이었습니다. 당시 조선 초기에는 양인와 첩/기생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에게 양인의 신분을 주는 제도가 잠시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춘향은 기생이 아니라 양인의 신분일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변학도는 춘향을 기생으로 취급하며 ‘수청을 들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춘향에게 변학도의 수청을 드는 것은 자신을 기생으로 인정하는 꼴인 것입니다.
즉, 수청을 거부하는 춘향의 굳은 의지는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싸움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춘향의 몽룡과의 관계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춘향은 몽룡의 구애에 ‘엄마의 허락부터 받아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호감과는 상관없이 말이죠. 그리고 첫 합방 이후 불망기를 바로 쓰게 하죠. 춘향에게 몽룡은 사랑 이전에 신분을 전환 할 대안이기도 했습니다. 기생의 딸인 춘향이 기생의 삶을 사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했습니다. 기생들에게 양반댁의 첩이 되는 것은 그나마 최선의 삶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춘향에게는 몽룡 같은 좋은 집안의 첩이 되는 것이 그나마 인생의 선택지 중 최선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변학도의 춘향을 데려오라는 명에 신하가 ‘이미 백년가약을 맺은 사이가 있다.’고 말하는 걸 보면 춘향은 몽룡과의 사이를 온 동네 알린 것으로 보입니다. 춘향에겐 자신과 몽룡의 사이를 사람들이 아는 것이 신분을 지키는 중요한 일이었을 겁니다.
두 번째 질문, 왜 변학도는 바로 춘향을 죽이려 든 것일까?
수청을 들라는 변학도에게 춘향이 한 말 기억하시나요? “신하는 하늘 아래 두 군주를 모실 수 없고 아내는 하늘 아래 두 지아비를 모실 수 없다 하였는데 어찌 그런 요구를 하신단 말입니까?” 이것은 소학에 나오는 구절로, 신하 된 도리 편에 포함 된다고 합니다. 지금 춘향은 변학도에게 ‘너 지금 제대로 된 신하가 아니야.’라고 지적한 것입니다. 그러니 변학도는 이제 자신의 충심을 만 백성 앞에 증명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아무 아녀자를 건든 것이 아니라 기생에게 명령을 거부당한 것이라는 당위를 얻어야 했지요. 이제 변학도에게 춘향은 수청을 들 대상이 아닌 충심을 증명하기 위해 넘어야 할 대상이 된 것입니다.
세 번째 질문, 몽룡은 어떻게 죽어가는 춘향에게 ‘나, 암행어사의 수청도 거부하겠느냐?’라는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이건 이런 의미겠죠. 니가 사또정도의 신분에는 만족을 못해 그러는 것이냐, 진짜 마음이 뭐냐. 몽룡의 시험이었던 거죠. 당시 여성들의 ‘정절’은 이렇게도 가혹하게 검증에 검증을 요구받았습니다. 정절을 지키지 못한 여성은 양반댁에서 바로 관비(관의 기생)으로 전락하곤 했지요. 몽룡의 이 대사는 그 시대가 여성에게 얼마나 가혹했는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바탕에는 유교, 그 중에서도 삼강이란 도덕이 깔려 있습니다. 한 사회의 강력한 규범은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그 행동들을 좌우합니다. 몽룡과 춘향의 사랑을 부정하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 사랑의 깊이와 진정성을 어떻게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들이 보여준 사랑의 방식과 그 사랑을 두고 발생한 사건에 이상한 점을 짚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고방식과 사건을 가능케 한 사회 구조를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로 돌아와 우린 다시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왜 춘향뎐을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로 해석하려고 하는가? 그 해석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한 채윤 선생님은 우리 사회에서 당연시 여기는 것들에 깔린 전제들을 뒤바꾸어 질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십니다. 선생님께도 '이성애'라는 전제를 바꾸는 것이 중요한 전환점이었다고 합니다.
“왜 당신은 이성애자가 당연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왜 당신은 남성과 여성이 부모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남성들은 성욕을 잘 못 참는다, 는 논리가 무엇을 대변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한 채윤 선생님은 저희에게 두 개의 질문을 더 주셨습니다.
1. 젠더와 민주주의란 말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떠올린 사건, 인물 혹은 장면은 무엇이었는가?
2. 빈부의 격차가 더 큰가 남녀의 격차가 더 큰가?
한 번 답해보시길 바랍니다.
답이 있는 질문이 아니라 질문에 대해 어떤 답변을 내놓는지 자신을 바라보시면 된답니다.
한참 핫 이슈였던 DJ DOC의 노래, 'MISS박 논쟁‘에 대해 다루기도 했는데요, 한 참가자 분의 “그럼 여성 대통령을 어떻게 비판합니까?” 라는 말에 선생님은 이렇게 답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대통령이죠. 공인이죠. 비판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이 흑인이라는 이유로 비하 당하거나, 노무현 대통령이 고졸 이라고 비하 당하고, 김대중 대통령이 전라도라고 비하 당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나요? 이 또한 대통령의 업무에 대한 잘못이 아닌 개인의 정체성 일부인 여성이 타켓이 되어 조롱거리가 것은 맞지 않다는 겁니다. MISS라는 것을, 쎄뇨리땅 이라는 말을 다른 의도로 사용했다 하더라도 그 말들이 사회에서 실제로 쓰이는 맥락은 그렇지 않잖아요. MISS라는 말을 우리가 보통 어떻게 사용하죠? 그것이 미스터와 동등한 위치에 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Miss, Mrs는 여성을 혼인 유무로 판단하고 호칭 짓는 사고방식이 들어간 호칭입니다. 그리고 이런 의문도 듭니다. 그들의 의도가 그렇지 않더라도 그 말에 불편을 느끼는 사람들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 노래를 굳이 광장에서 불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표현의 자유가 억압당했다, 라고 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지금 원하면 DJ DOC 노래 찾아서 다 들을 수 있습니다. Dj DOC가 가수 생활을 금지 당한 것도 아니지요. 권리라는 말은 약자가 강자에 의해서 금지 당하고 억압당했을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밥 먹는 권리를 일상 적으로 밥 먹을 때마다 쓰지 않지요. 밥 먹을 권리는 사장이 여덟 시간 노동을 시키면서 밥을 주지 않을 때 사용하는 겁니다. 주최측이 만약 DOC의 음악 발행 자체를 막았다면 가수들이 표현할 권리를 침해받은 거지만, 이 경우 가사에 대한 문제제기가 되면서 무대에 서지 않을 것을 합의했다고 보는 것이 더 맞습니다. 이따금 강자들은 약자들의 권리 주장의 논리를 그대로 옮겨서 침해가 아닌 것을 침해당했다고 쓰곤 합니다.
현재의 한국은 합의의 과정을 거치는 것에 익숙치않고, 연습 되어 있지 않습니다. 주최 측과 가수가 논의해서 합의하에 결정 된 공연 취소를 주최 측이 권력을 부린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합의와 강제는 다른데. 이런 논쟁을 계속 하고 합의를 계속 연습해야 합니다.”
덧붙여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지금 이 논쟁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을 넘어가야 다음 사회를 준비할 수 있지 않겠는가. 분명히 다음 대선 때 여성 대통령 뽑으면 안 된다는 말이 우스갯소리로라도 나올 겁니다. 이런 사소한 것들 다 걸고넘어지고 계속 싸울 필요가 있다. 지금은 조금 과해도 된다. 그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나도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한 번에 소화하기엔 방대한 양이라 충분히,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번 강의가 끝나고, 나는 왜 젠더 문제, 페미니즘이라는 주제를 외면하지 못하는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찾은 답은 ‘질문이 허용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내 자신의 정체성에 질문하고 당연시 되는 것들에 질문하고, 그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요. 수많은 이론과 탄탄한 논리보단 그 자세를 배우고 싶습니다.
한 달 동안 엄청난 경험과 지식을 전해주신 한 채윤 선생님께 감사하단 말씀 꼭 다시 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참고 자료 : 책 '섹스 앤 처치' , 영화 '단지 여자라는 이유 만으로', 기사 '[뉴스 앤 조이]미국 복음주의는 45대 45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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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와 민주주의] 3강 - [알면서 무시했던] 매우 정치적인 성이야기
<젠더와 민주주의>
-차별과 혐오는 어떻게 질서와 진리가 되었나?
성경에서의 동성섹스
창세기 오난, 형이 죽게 되자, 형의 부인과 섹스를 해야 했다. 그리고 오난은 질외사정을 해, 하느님께 죽었다고 한다. 이로써 기독교는 임신목적외 섹스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을 했다. 근본주의 개신교에서는 동성 간의 섹스는 임신목적외 섹스이기 때문에 그 역시 부정적으로 보았다.
동성애혐오 정치
세계2차대전 당시, 독일에서는 동성애를 처벌하고 낙태에 대해 반대했다. 사람을 많이 낳아 그들을 군인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런 입장에서 보았을 때 동성애자는 국가반역자였다.
레닌이 집권하던 당시 소련에서는 낙태가 가능했고, 유급출산휴가를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스탈린이 들어서게 되면서 낙태를 불가능하게 했고, 유급출산휴가도 없애고, 이혼을 억압하며, 여성의 몸을 나라의 것으로 생각하였다. 옐친이 집권을 하며 동성애처벌법을 폐지하였고, 이후 푸틴정권이 들어서며, ‘비전통적 성관계선전 교육처벌법’을 제정였다. 여기서 비전통적이라는 것은 동성간의 섹스를 의미한다. 이렇게 하게 된 이유는 동방전교회가 망해갔고, 푸틴과 동방전교회가 도덕, 즉 성생활에 관여하게 되었다.
1949년 중국에서는 동성애가 부르주아의 타락이라고 하며 총살을 하였고, 1950년대 미국에서는 동성애자가 공산주의자라며 동성애자들은 공산주의자 일 수 있다는 이유로 공무원이 될 수 없었다.
대다수의 독재국가 중 러시아에서는 출산율이 낮으므로 동성애는 하면 안 된다고 했고, 우간다에서는 동성애유전자라는 것은 없고 비정상적이라고 했다.
한국과 일본에서의 동성애
과거 고려 목종 때에도 목종과 신하와의 동성애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었고, 그것에 대한 비판이나 비난은 없었다고 한다. 또 조선에서 일본으로 여행(?)을 갔다 와, 쓴 책에 ‘일본에서 남색이 유행했다’, ‘일본에서 남성이 여성의 옷을 입는 경우가 많았다’는 식으로 쓰였다고 한다. 또 일본에 혼마 규스케라는 사람이 조선으로 여행(?)을 왔다가 쓴 책에서 조선에 남색이 유행하지 않는 곳이 없다고 썼다고 한다.
일본은 유럽의 문화를 받아들이며 동성애를 터부시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혼마규스케도 일본의 도덕적 우월을 위해 조선의 남색에 대해 썼다고 한다.
‘호모섹슈얼’의 유래
1869년 의사가 ‘호모섹슈얼’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남성간의 섹스를 형법에서 다루는데 그것이 왜 범죄냐고 하며 만든 단어이다
한국에서의 동성애혐오 운동
2005년 사립학교법(사학법)을 개정하게 되었고, 기독교에서는 개정에 반대를 했다. 대다수 사립학교는 기독교소유이고, 사학법이 개정되게 되면, 이사회가 투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2007년 사학법은 재개정을 하게 되었고, 재개정 2달 뒤 차별금지법이 입법을 예고하게 되면서 기독교에서 공개적으로 동성애반대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추세
-2005년 기독교에서는 추세로 보아 신도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래서 빚을 지고서라도 교회를 지었다. 하지만 근래, 기독교에서 안 좋은 일들이 있어서 신도수는 늘지 않았다. 결국 교회에 돈이 들어오지 않게 되자, 교회는 힘들어졌고, 혐오로서 자신들의 편을 만들며 혐오의 정치를 하게 되었다. 또, 목사는 많다. 하지만 이들이 갈 교회는 줄어들고 있다. 이 목사들은 반동성애단체에 들어가게 된다고 한다. 결국, 이후 기독교의 동성애 혐오운동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생각된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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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와 민주주의] 2강 - [어쩌면 몰랐던] 역사가 만들어낸 성 이야기 성적 차이에 대한 의외로 치밀한 환상
저번 강의에서 우리는 ‘나는 여자/남자입니다.’ ‘너는 여자/남자이다.’ 라는 확신을 향해 의문을 가져보고 그 답변에 대한 사회적 전제들에 생물학적 근거들을 바탕으로 의문을 제기해보았습니다. 우리가 믿어왔던 'XX' 'XY'염색체에 배신(?)도 당했고요, 세상에 많진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다양한 염색체 작용과 성기의 형태도 알게 되었습니다. 호르몬이 얼마나 바쁜지, 그리고 성에 대한 ‘상식’들이 호르몬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해왔다는 것을 알고 반성도 해보았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여성, 남성에게 인간의 본질인양 부과된 사회적 역할과 규범, 관념들이 형성된 역사를 기독교 역사를 중심으로 알아보았습니다. 왜 기독교인가? 라는 의문이 먼저 드실 텐데요, 기독교는 그 역사에 비해 단기간에 엄청난 영향력을 전 세계적으로 떨치고 있는 종교입니다. 많은 학살을 자행하기도 했고요. 그리고 문화적으로 동서양의 경계가 점점 흐려지고 있는 지금 글로벌 시대에, 서양 문화의 중요한 바탕이어 온 기독교를 알면 지금 우리 사회에 서양문화가 얼마만큼 영향력을 갖고 있는지, 얼마만큼 잠식해 있는지 알 수 있겠지요.
예수가 등장했던 시대의 사람들은 세상을 이원론적으로 보았습니다.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은 허구이며 이데아로 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지구에 종말이 있을 거라 생각했고 그때를 잘 넘기기 위해서 극단적인 금욕 생활을 실천하고 있었고요. 또한 계급이 있던 시대였습니다. 노예와 여자, 아이들은 성인 남성의 통치 하에 살고 있었습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사람들이 수학, 과학, 철학을 발달시키고 이성을 중시하고 있었지요. 이 시대 사람들은 아주 많은 신들을 섬기고 제를 지내고 신탁을 받았습니다. 잘 알려진 ‘그리스 로마 신화’가 이때 사람들의 일종의 경전이었습니다.
그런 때에 예수가 등장했습니다. 예수는 ‘평등’ ‘사랑’ ‘유일신’을 말했습니다. 계급에 짓눌린 사람들, 이성에 짓눌린 사람들은 예수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에 위로를 받고 그를 따랐지요. 예수가 죽고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의 말을 정리하여 기독교를 만들었고 기독교는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오랜 박해를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로마는 다양한 신을 인정해왔는데 기독교는 유일신을 주창했기 때문이죠.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내분 된 로마를 통일하면서 기독교를 공인하게 되고 그것을 계기로 기독교의 영향력은 커졌습니다. 황제에게 기독교는 유일신이라는 점에서 민중을 하나로 통합하고 통치하기에 유용한 종교였습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성경을 두고 분분한 종교계 인사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하나의 종파만을 기독교 정통 교리로 채택하도록 하는 회의를 열었는데, 이것이 니케아 공의회입니다. 이때 채택된 종파는 ‘니케아 신조’로 여기서 나온 게 삼위일체 교리입니다.(성부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이때부터 정치와 종교가 결합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가 남/녀 성체계와 성관념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은 아우구스티누스 때부터입니다. 그는 ‘인간은 아담과 이브의 원죄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고 그 원죄는 정자를 통해 옮겨진다고 했습니다. 섹스는 죄를 옮기고 죄를 잉태하게 하는 행위이므로 죄악에 해당하게 됐지요.
이때 사람들에겐 의문이 생깁니다. “그럼 예수는? 죄 있는 자가 인간의 죄를 사하러 왔다고?” 거기에 이런 답변이 돌아옵니다. “예수는 ‘처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에 의해 잉태되었다.” 사람들은 또 질문합니다. “그럼 인간 마리아는? 그도 정자를 통해 태어났으니 죄가 있지 않는가?” 여기서부터 마리아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나오기 시작하고 마리아의 변천사가 시작됩니다.
마리아의 시작은 가난한 집의 부인이었으나 죄 없는 예수를 잉태한 존재로 만들어지면서 점점 ‘성녀’가 되어 갑니다. 그 시대의 그림에서 그것을 엿보는 방법은 마리아의 옷 색입니다. 마리아의 옷은 검정색에서 점점 빨강(황제의 옷 색) 그리고 빨강과 파란색을 함께 걸치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또한 예수를 잉태시켜준 성령과의 관계 묘사도 달라집니다. 성령을 맞이하는 마리아에서 성령의 절을 받는 마리아로요.
마리아에 대한 해석과 더불어 마리아와 대비된 존재로써의 여성-마녀가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이 마녀로써의 여성은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게 한 뱀으로 표현됩니다. 이것도 그 시대의 그림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특히 노트르담드 성당에서는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 조각 발 아래 선악과를 감싸고 있는 여자 뱀을 새긴 조각을 볼 수 있습니다. 성교가 죄악시 된 시대에 마리아는 점점 만인의 연인이자 성녀가 되어 갑니다.
근대로 들어서면서 이성과 과학이 다시 꽃을 피우며 기독교는 그 빛이 쇠해 가는 듯 했습니다. 과학은 근대의 새로운 종교가 되었습니다. 정치는 과학과 결탁하여 과학을 여성들을 통제하거나 열등성을 강조하는 근거로 사용했습니다. 여성의 질을 ‘축축하고 은밀히 숨겨져 있는 곳’으로 표현하였고 출산의 고통은 여성의 원죄에 해당한다며 출산 시 마취제 사용을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포유류’라는 분류 항목의 말 안에는 ‘아이에게 젖을 주는 어머니’의 모습이 그 종을 대표하는 모습으로 부각되어 있습니다.
방대한 양이기에 강의를 정리하는 것에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때문에 강의의 메시지를 분명히 요악하고 후기를 마치겠습니다.
사회에서 정설처럼 얘기되는 것들의 많은 부분은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즉, 시대에 따라 정치, 과학, 종교는 결탁되어 변형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규범과 관념들은 실은 소수 권력의 필요에 의해, 해석되고 변형되어 온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역할은 그것들에 질문을 던지기를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규범에 맞지 않는 나의 모습을 거제하기 이전에 규범에 의문을 제기해보는 것입니다. ‘만약 판도라의 상자를 연 판도라가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었다면 어떻게 해석되었을까?’ ‘동양에서 성은 어떻게 얘기되어져 왔지?’ 옳다고 애기되어 지는 것들에,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상식들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남들의 해석에 내 인생과 사고방식을 맡기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젠더와 민주주의] 1강 - [이상하게 헷갈렸던] 성에 대한 은밀한 이야기 섹스 / 젠더 / 섹슈얼리티 후기 바로가기(클릭)>>
[젠더와 민주주의] 1강 - [이상하게 헷갈렸던] 성에 대한 은밀한 이야기 섹스 / 젠더 / 섹슈얼리티
강의 자료로 준비해주신 프린트에는 낯선 질문이 있었습니다. 1) 나의 성별은 _____ 2) 그 근거를 세 가지만 찾는다면?
잠시 생각해보셨나요.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의 성별은 무엇인가요? 남성? 여성? 그렇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가요? 저는 남성이라고 적었고 근거는 두 가지 밖에 적지 못했습니다. 성기의 모양과 ‘자연적으로는’ 임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썼습니다. 하지만 이건 저의 겉모습만 봤을 땐 알아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상대방의 겉모습을 보고 그 사람의 성별을 알아낼 수 있는 이유는 과연 몇 가지나 될까요? 그 이유는 모두 동의할 수 있습니까?
[성은 허구다] 허구는 없는 것을 꾸며낸 것입니다. 내가 혹은 남이 나의 성을 ‘이것’이라고 판단하고 그에 맞는 태도 등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성은 허구’라고 말해야 합니다. 성별을 구분하는 거에 그치지 않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우리는 그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해야 합니다.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인 차이에 대해 사람들은 이야기합니다. 유전자가 다르다 DNA가 다르다 호르몬이 다르다. 그 다름에 의미를 부여해서 차별의 근거로 사용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강의 중 한채윤 선생님은 고정관념에 의해 형성되는 성의 구별과 그것에 기인한 차별을 깨주셨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정자가 경쟁에서 승리해서 난자와 결합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난자 핵은 세포질로 쌓여있고 또 그 바깥에는 투명대가 있어 1등으로 도착한 정자가 결합하는 게 아닙니다. 정자끼리의 경쟁이 아닌 협력을 통해 난소와 결합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생물학적인 이유로 차별을 말하는 사람들의 공식대로 맞추면, 남성의 특징은 협력하고 다정다감하며 희생하는 것입니다.
[모든 걸 하나로 섞어버리지 말고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세요] 한채윤 선생님께서는 몇 가지 신문이나 방송에 방영된 자료들을 보여주셨습니다.
정자는 여성 질 안을 날아가지 않고 질벽에 붙어서 기어갑니다. 그것에 대한 보조자료로 사용된 그림에서 남성의 얼굴과 형상을 한 캐릭터가 철모를 쓰고 낮은 포복을 하면 총을 메고 질벽을 기어갑니다. 이것은 정자가 모두 남성으로 그려진 것의 오류와 남성이 여성을 정복하러 가는 것을 형상화합니다.
애기울음소리에 반응하는 연구를 진행한 자료에서 여성이 더 많이 반응하였습니다. 역시 여성이 아이를 더 생각하는군요. 그러니 아이는 역시 여성이 키우는 게 맞는 거 같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이 실험에서의 오류는 애기울음소리를 듣는 여성과 남성이 성인이라는 것입니다. 충분히 사회에서 교육된 남성과 여성으로 주어진 반응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아이의 울음소리에 더 반응한다고 육아를 그 사람이 전담하는 게 맞는 말일까요.
이성애에서 바람을 피우는 이유는 더 우수한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동성애에서 바람을 피우는 이유는 '더 우수한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서'라고 설명이 될까요?
그리고 이성애에서는 인간의 유한한 생명으로 인해서 유전자를 남기고 싶어 하는 마음에 사랑도 하고 섹스도 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관점으로 인해서 동성애에 대해서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도 그들은 어떻게 섹스를 할까라고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답답해지지 않나요?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에 대해 안다는 것의 효과란 .. 속지 않고 해석한다는 것]
여성 같다 남성 같다라는 체계를 만들고 성역할이 만들어진 사회에서 우린 지금 살고 있습니다. 젠더롤(사회적으로 규정된 역할)이 주어졌기 때문에 여성이 되고 남성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대가 지날수록 젠더롤은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고려하였을 때 젠더롤은 사회에 의해 규정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젠더 뿐만 아니라 섹스(생물학적 성)도 만들어졌습니다. 버틀러에 의하면 남성의 성기를 가진 사람을 남성이라고 말하고, 여성의 성기를 가진 사람을 여성이라고 말하며 섹스도 만들어졌습니다.
인간은 99.9%가 똑같습니다. 대부분 같지만 아주 작은 부분에 의해서 서로 매우 다릅니다. 즉 생물학적인 차이가 전부가 아니라 사회가 차이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차이에 주목하는 것에 속지 않아야 합니다.
강의하는 동안 한채윤 선생님께서는 덜 예민한 사람들이 그냥 흘렸을 자료나 해석에 관한 점들을 짚어주셨습니다. 그로 인해 제가 얼마나 무감각하게 그런 것들을 받아들였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권력자가 자신들의 의도대로 사람들을 반응시키기 위해서 어떤 것을 만들고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을 떄 민주주의는 위기를 겪습니다. 사회적으로 규정된 성 역할 또한 누군가의 의도는 아닌지 생각해보고 속지 않아야겠습니다.
자원활동가 박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