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읽기 어려운 책, 함께 읽기 4 - 한나 아렌트 <공화국의 위기>

  • 강사

  • 기간

    • 2015. 9. 2 ~ 2015. 9. 16
  • 시간

    • 19:00~21:30 총3회
  • 수강료

    50,000

    • 파격 할인혜택
    • 참여연대 회원3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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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세 정보

            강의소개
    분열, 혼란, 감시, 절망, 무력감은 요즘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향해
    많은 이들이 느끼는 감정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런 우리사회를 두고
    어두웠던 시절의 국가’를 다시 떠올리기도 합니다.
     
    이번 독서클럽은 한나 아렌트가 쓴 <공화국의 위기>를 통해 이런 ‘위기의 국가’를
    돌아보고자 합니다. 공화국의 위기는 “정치에서의 거짓말”, “시민불복종”, “폭력론”이란
    세 편의 에세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세편의 에세이를 통해
    우리가 위기라 느끼는 시대를 헤쳐갈 지혜를 찾아보려 합니다.
     
    강의일정
    날짜
    순서
    주제
    09.02
    1
    정치에서의 거짓말”
    정치에서 거짓은 어떻게 누적되는 것일까?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거짓에 속아 현실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일까?  
    09.09
    2
    시민불복종”
    절차주의를 강조하는 민주주의에서 정치의 변화는 어떻게 일어날까?
    법의 준수와 개선 간의 갈등은 무엇이며 이 갈등은 어떻게 화해 가능할까?
    09.16
    3
    폭력론”
    폭력 혹은 힘을 쥔 자가 권력을 쥔 자라는 전통적인 발상은 옳은 것일까?
    권력과 폭력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권력은 어떻게 탄생하고 어떻게 유지되며 어떻게 행사되는 것일까?
     
    책 정보   <공화국의 위기> 한나 아렌트, 김선욱 역, 한길사.   자세히보기>>
     
    강의정보
    일   시 : 2015. 9. 2  ~ 9. 16 (수) 총 3회 오후 7시 ~ 9시30분
    장   소 :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
    수강료 : 5만원 (참여연대 회원 30%, 청년학생회원 50% 할인)
    * 20대 청년회원과 학생 신분의 회원에게는 해당 강좌에 한해 50%를 할인해 드립니다.
    카드결제 시 50%할인액이 적용되지 않으니 계좌이체를 부탁드립니다.
     

    후기 3

    • [김만권의 독서클럽-공화국의 위기] 2강, 시민불복종

      2015.9.25 장경환 혼자 읽기 어려운 책, 함께 읽기 4 - 한나 아렌트 <공화국의 위기>

      9.13 노사정합의안을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마르크스주의 국가관대로, 국가는 자본가들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생각도 들었다. 이어서 9.16 새누리당의 입법발의 내용은 노사정합의 조차도 지키지 않는 대국적인 정치행태를 보였다.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국가의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조항과 이어지는 기본권의 내용들을 비웃기나 하듯 벌어지는 행위에 시민들은 분노했다. 바로 어제(9/23) 시민들은 거리에 나갔지만 경찰들의 무자비한 진압에 수많은 시민들이 연행됐다. 아렌트의 [시민불복종] 강의를 듣는 순간에 시민불복종 행위가 거리에서 발생한 건 놀라운 우연의 일치였다. 

      시민불복종과 혁명, 두 개념은 비슷한 개념으로 인식되고 특히 시민불복종은 불복종이라는 말에만 집중해서 혁명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것으로 인식되지만 둘은 다른 개념이다. 혁명은 시스템을 새로운 것으로 바꾸는 것이고 시민불복종은 시스템의 왜곡을 막는 것이다. 우리가 통상 알고 있는 합법과 불법은 기존의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헌법은 단순히 쓰여진 문서가 아니라 우리가 시스템을 구성한 흔적이며 앞으로의 시스템을 구성하려는 약속인 만큼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헌법의 원칙을 위반하는 사람들이 나왔을 때, 시민들은 깨어나게 되고 불가피하게 사소한 법률을 어기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이 시민불복종으로 이어진다. 집회 자체를 꺼리는 사람들은 시위하는 사람들이 도로교통법을 어긴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시민불복종의 경우 헌법 정신을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온 사람들이기에 법의 단계상 도로교통법과 같은 사소한 법률은 어길 수도 있다. 시민불복종의 순간이 초일상의 순간이므로 합법과 불법이라는 일상의 법 개념을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렌트는 시민불복종 행위를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위기의 순간인 건 맞는데 나쁘지 않다. 분명 시민들이 법조문을 어긴 건 맞다. 하지만, 법조문과 체제에 대해 문제제기 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 정신이다. 시민들이 우리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 거리로 나오는 것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행위이다.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미국의 장점은 풀뿌리 조직(자발적결사체)이 금방 만들어진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늘 강조하듯 아렌트도 강조했다시피, 시민불복종 행위가 폭력 자체를 옹호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란 정치체제에 들어가 원리를 만들고 그 원리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정치적 인간이 되지 않는다면 행복해질 수 없다는 말이다. 현 체제에서 가장 민주적인 순간이 시민불복종인 반면, 일상의 순간과는 다른 형태의 혁명의 시간은 법이나 제도가 그 자체로 작동하지 않는 상태이다. 공적영역(합법)과 사적영역(불법)의 경계선이 혁명의 순간에, 즉 초일상의 순간에 일그러지게 되고 그 일그러진 빈틈에서 초법적 영역이 발생한다. 이는 일반적인 법 개념(합법과 불법)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일상의 정치에선 엘리트가 권력을 독점한다. 하지만, 초일상의 순간엔 주권자인 시민이 주권을 되찾는다. 셸든 월린(Sheldon wolin)도망자 민주주의라는 표현이 이 일상의 정치를 설명하기에 적절한 것 같다. ‘도망자 민주주의는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대의민주주의엔 민주주의가 본질적으로 의도했던 시민의 적극적인 정치참여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현실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제 민주정체에서 시민의 참여란 혁명 혹은 저항이라는 일시적인 순간에만 존재할 뿐이고 정치가 일상으로 접어들면 참여는 모습을 감춘다. 웰린은 이러한 현실을 도망자(fugitive)라고 표현했다. 따라서, 초일상의 순간, 즉 주권자가 다시 등장하게 되는 순간은 매우 소중한 순간이다. 

      아렌트는 [시민불복종] 초반부에 양심적 거부시민불복종의 차이에 대해 말한다. 두 개념은 완벽히 다른 개념이지만 혼동해서 사용되는 개념이다. 첫 번째로, 세상과의 관계에서 차이가 있다. 양심적 거부의 경우 나의 양심에 묻고 아닐 경우 행위하지 않는 것이다. , 세상과 관련되지 않은 나의 행위일 뿐이다. 반면, 시민불복종의 경우 바깥 세계와 나의 양심을 일치시키는 일, 다수의 정의감에 호소해서 세계와 함께 하는 행위이다. 두 번째로, 단위의 차이가 있다. 전자는 철저히 개인이 하는 것으로, 아렌트는 소크라테스와 소로의 예를 들어 말한다. 반면에, 후자는 집단이 하는 것이다. 세 번째로 양심적 거부는 대안을 주지 않지만, ‘시민불복종은 대안을 가진다는 차이가 있다. 네 번째로, 전자는 소극적, 후자는 적극적이라는 차이가 있다. 

      시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늘 변화한다. 따라서, 변화되는 시대에 맞게 법과 체제가 따라가야 한다. 베블런(Veblen)은 보수와 진보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보수는 이전의 시스템을 유지하자는 것이고, 진보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사회를 구성했던 집단은 대개 자신이 만든 사회를 새롭게 형성하려는 행위가 사회에 위협이 될 수도 있다고 여기고 더 나아가 사회를 새롭게 구성하려는 행위 자체를 차단해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는 메디슨과 제퍼슨의 유명한 논쟁에서도 드러난다. 메디슨은 사회를 새롭게 만드는 구성행위를 하는 것이 사회를 위험에 노출시킨다 생각한 반면, 제퍼슨은 자신의 세대들이 그러했듯이 18년마다 각 세대가 자신들의 헌법을 구성할 수 있어야 된다고 주장했다. 결국 메디슨의 승리로 끝났지만 제퍼슨의 주장은 후 세대가 기존 헌법을 수정할 권리로 남았다. 이전 세대의 잘못된 것을 바꾸는 것, 주권자인 시민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수단, 결코 사회에 해롭지 않은 것, 그것이 시민불복종이다. 

      시민불복종 행위를 바라보며 사람들은 말한다. 왜 법의 과정을 활용하지 않는 거냐고. 정치에 참여해서 법을 바꾸면 되고 일상적인 과정을 거쳐 세상을 바꾸면 되지 왜 거리로 나와서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거냐고. 맞는 말이면서도 틀린 말이다. 법만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세상은 행동함으로 바뀐다. 정상적인 과정으로 왕이 시민들에게 권력을 주었나? 이승만이 스스로 권좌에서 내려왔는가, 박정희가 61년에 약속했던 민정이양은 평화적으로 이루어졌는가, 전두환을 법을 바꿔서 끌어내렸나하는 것이다. 모든 소수자의 역사를 보라. 일상적인 정치의 과정으로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지난 95일 박상훈 정치발전소학교장은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촛불 10번 드는 것보다 좋은 정당이 더 중요하죠라는 말을 했다. 그의 강의를 여러 번 들었고 그의 주장에 공감하는 점은 많지만, 시민의 주권자로써의 등장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그의 주장엔 공감하지 않아 짧게 반박해보고 싶다. 첫 번째로, 그는 우리나라의 양당제를 비판하며 유럽의 예를 들며 300개가 넘는 정당이 존재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우리나라도 이처럼 많은 정당들이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정당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정당으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경로 300개가 모든 논의를 정치에 반영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건강한 시민단체 300개도 없는 나라에서 300개의 정당이 있어야 된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두 번째로, 일상의 정치는 엘리트들이 독점하는데, 정당정치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능의 해결책이라 주장하는 것은 결국 엘리트를 다른 엘리트로 교체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세 번째로, 하나의 당은 하나의 의견으로 수렴하려는 성질을 가진다. 다시 말해, 정당이 목소리의 다양성을 지운다는 것이다 

      나는 그가 말하는 정당정치와 의회정치의 차이를 구분해낼 수 없다. 결국, 제도권 정치로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같이 들린다. 헬조선이라 불리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선 의회정치의 정상화가 필요하다는 것엔 동감하지만, 그렇다고 시민참여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이견을 제기하는 것이 사회를 바람직하게 만든다는 것엔 그도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이견을 제기하는 통로가 제도권 정치 하나밖에 없다면, 결국 주권자의 참여를 제한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대의제 정부는 그 자체로 오늘날 위기에 처해 있다. 한편으로는 오랜 기간 동안 시민들의 실질적인 참여를 허용하는 모든 제도를 잃어왔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당 제도가 모든 것을 대표할 것이라는 믿음의 질병에 막대한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한나아렌트-시민불복종(Civil Disobedience)]" 

      법이 생겨나면, 법은 실제 변화를 안정화하고 합법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변화 그 자체는 언제나 초법적인 행위의 결과이다.[한나아렌트-시민불복종(Civil Disobedience)]" 

      일상의 정치는 정치 엘리트가 독점한다. 반면 민주적인 초일상의 정치는 의식 있는 대중의 정치 참여와 초일상적인 제도적이며 자발적인 집단적 개입에 공간을 연다. 이 초일상의 순간에, 잠자던 인민주권이 깨어나 자신이 자기의사결정과 자치정부에서 최고의 권력임을 재확인하고, 일상의 입법과 제도화된 정치를 규율하는 근본적인 규범, 가치, 제도를 실질적으로 다시 정비하거나 바꾼다.[안드레아스 칼리바스-민주주의와 초일상의 정치]”

    • [김만권의 독서클럽-공화국의 위기] 1강, 정치에서의 거짓말

      2015.9.25 장경환 혼자 읽기 어려운 책, 함께 읽기 4 - 한나 아렌트 <공화국의 위기>

      참여연대 15기 인턴, 정당, 정치발전소 등 많은 단체에서 활동하고 1년 만에 돌아온 [느티나무 아카데미]. 늘 보던 간사님들도 그대로이고, 수강생들도 익숙한 얼굴들이 여럿 보인다. 김만권 선생님의 강의를 듣지 못했던 기간 동안 대체재로 선생님의 책 [참여의 희망][정치가 떠난 자리]를 읽으며 조금은 성장했겠지 생각하며 강의를 들었다 

      한나 아렌트의 공화국의 위기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쓴 책이 아니라 베트남 전쟁, 60년대 민권운동과 뉴레프트운동. 이 세 가지 상황을 배경으로 따로 따로 쓴 논문 3개를 엮은 것이라고 한다. 책에서 그녀는 정치권력이 시민들로부터 분리되어 그들을 조작과 거짓의 대상으로 삼을 때 성공할 수 없으며, 진정한 정치적 법적 권력은 시민들에게서 나오며, 폭력은 권력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할 때에만 분명하게 지목할 수 있고 또 제어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일관성이 떨어진다고 평가받는 아렌트가 일관되게 주장했던 것이 있다. “정치와 폭력은 같이 가지 않는다는 것.” 그녀 이전, 인류의 모든 정치학에서 혁명은 폭력과 땔 수 없는 관계라고 가정했지만, 그녀는 유일하게 혁명과 폭력을 구분했던 이론가였다. 그녀의 이러한 생각은 말년작인 [공화국의 위기]에도 여실히 드러난다. 선생님은 폭력과 혁명의 연결고리를 끊는 것이것이야 말로 아렌트가 일생동안 맡았던 프로젝트라는 표현을 쓰면서 이 지점을 계속해서 강조하셨다 

      이어서 설득을 주제로 말씀하셨는데, 정치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행위 중 하나는 설득이다. 따라서, 정치에서 설득이 필요하고 중요한데, 그 때문에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시민들은 언제나 손가락질 한다. 정치인들은 거짓말쟁이라고. 거짓말을 많이 하는 친구에게 우리는 너 정치하면 잘하겠는데?’란 농담도 곧잘 한다. 하지만, 아렌트는 사실을 말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정치인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사실과 정치는 같이 갈 수 없다. 사실과 함께 해야 하는 건 언론과 학교지 정치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 부분을 들으면서 4.19혁명, 87년 민주화운동 등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건 학생들이었고 언제나 사회에 바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건 교수들이었지만 언제부턴가 사회에 이견을 제기하는 것은 혼란을 조장하는 행위로 여겨지는 사회가 돼버린 것이 안타까웠다. 

      더 나아가서, 아렌트는 정치에서 거짓말이 지속될 수 있는 것은 언론이 도와주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녀는 정상적인 상황에서 거짓말은 현실 앞에 무너진다고 말했다. 맞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언론이 정치에서 거짓말이 상대적으로 적게 생산되도록 만들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언론이 침묵 등으로 사실을 왜곡할 때 정치에서 거짓말이 살아남을 수 있고 오히려 거짓말이 주()가 되어버린다는 것을 아렌트는 정확히 지적하고 있었다. 아렌트는 [정치에서의 거짓말] 말미에, 언론이 자유롭고 타락하지 않는 한, 언론은 사회적으로 엄청나게 중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언론을 제 4의 정부기관이라고 여기며 진실과 관련된 언론의 품위를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께서는 사실(Fact)과 진실(Truth)의 차이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사실은 보는 시간·공간 등에 따라 다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는 것이 사실인데, 위안부를 바라보는 식민사관의 관점을 예로 들 수 있다. 반면, 진실은 항상 그대로인 것으로 진리와 맞닿아 있는 것이다. 플라톤은 진리는 자명하다라고 말하면서 진리는 증명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진실. 정치는 항상 진실해야 한다는 건 위험한 생각이다. 마키아벨리는 정치와 도덕은 다르다고 주장했고 아렌트 역시 진실과 정치는 다르고 함께 갈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정치인은 진실을 밝혀야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것은 언론의 역할일 뿐이다.” 이것이 아렌트가 [정치에서의 거짓말]에서 주장하고자 했던 가장 핵심적인 말이다.

    • 내가 푸른시니어 학교와 인연을 맺기 까지

      2015.6.8 우경 혼자 읽기 어려운 책, 함께 읽기 4 - 한나 아렌트 <공화국의 위기>

      내 고향은 전북 익산의 변두리에 있는 작은 농촌마을 다가포 이다. 1949년 한국전쟁 한해 전에 5남매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올해로 예순일곱 이다. 어려서는 몸이 많이 허약해서, 오랜동안 중이염을 앓았고 그로인해 반귀먹어리가 되는 등 잔병 치레를 많이 하면서 자랐다. 초등학교 5학년때는 폐결핵을 앓게되어 장기간 치료 받느라 학교 공부를 계속하지 못했고, 그 후로 삼년 가까이 한문 공부를 했다. 마음은 늘 먼곳에 가 있었고, 허황된 꿈과 현실에 대한 불만으로 집에 가만히 붙어 있지를 못했다. 주먹패 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패싸움도 했고, 밤새워 돌아다니며 닭서리, 참외서리(도둑질)등 위험 천만한 사춘기를 보냈다. 나는 다행히 일찌기 자동차정비 기술을 배우기 시작 하였으며 자동차와 함께 살았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렇게 사회생활의 안정을 찾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흘러갔다. 정비공장에 취업을 해도 한곳에 안주하지 못하고 옮겨다니기 일수였고, 전주 군산 서울 인천으로 한 곳에서 근무하기를 한 두해를 넘기지 못했다. 그렇게 떠돌며 생활을 하다가 1970년에 군대에 가게 되었고 강원도 양구지역 최전방 에서 3년간 자동차 수송부에 복무하면서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군복무를 마치고 3년후 1976년 스물여덟 에 결혼하였다. 그후로 딸하나 아들 둘 삼남매를 낳아 기르면서 중랑구에 있는 정비공장에서 엔진부서를 상사와 함께 하청으로 운영하며 열심히 일 했다. 월급을 받는 것 보다는 수입이 좋았기 때문에 가정을 꾸려 가면서 또한 부모님을 모신 5남매의 장남으로 열심히, 정말 열심히 살았다. 그런대 1987년 어느날 이었다. 운전중에 시야가 흐릿해 졌다는 느낌이 왔다. 병원에 가서 보니 양쪽 눈이 한꺼번에 원인은 모르겠는데 백내장이 왔다고 했다. 나는 그것과 관련하여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주재넘게 뭘 개발 하겠다는 욕심으로 불빛과 마주하는 무모한 방법에 골몰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 이었다. 당시에는 백내장 수술을 할 수 있는 곳은 대형 종합병원과 전문병원 한 두곳 이었다. 찾아간 병원마다 의사들은 아직 수술을 하기에는 시기가 너무 이르다며 수술을 거부했다. 나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일을 해야 할 나이에 언제까지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백내장 수술을 제일 잘한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간 여의도 성모병원 에서는 가능하다는 진단을 내렸다. 나는 그 곳에서 인공수정체 삽입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받고 그때 바라본 세상은 마치 다른 세상을 보는듯 황홀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수술을 받은지 일주일도 안되어 염증이 발생 하였다. 통원치료를 계속 하였으나 증상은 호전 되지 않았다. 오히려 나중에는 눈에 하얗게 고름이 보이고 염증은 더욱 더 악화 되었다. 2년여에 걸쳐서 재수술 등 입 퇴원을 반복하며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왜 하필 이런 시련이 나에게! 나는 알수 없는 분노와 슬픔으로 마음은 괴로웠다. 1989년 부활절이었다. 원목실 에서 일 하시는 수녀님으로 부터 '그대가 성장하는 길' 시집 한권을 선물로 받았다. 나는 커다란 돋보기를 대고 눈 안에서 떠도는 구름같은 염증을 비껴가면서 책을 읽고 또 읽었다.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눈물이 나왔다. 나는 그때에야 비로소 '성장' 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나의 내적인 성숙으로 되새겼다. 그로부터 때가 되어서 그랬는지, 눈의 상태가 조금씩 안정되어 갔다. 나는 그때 어린 자식들을 바라보면서 기도했다. 다섯살 짜리 막둥이가 성년이 될때까지 만이라도 가장으로써 가정을 지킬수 있다면, 그 뒤로는 내가 어떻게 된다 하더라도 무엇을 더 바라지 않겠노라고 그렇게 기도하며 다짐을 했었다. 그 즈음 인천에서, 산자부에서 시행하는 회사내 고충처리위원 교육을 하루종일 받은 적이 있었다. 나는 그 중에서 심리학 교수로부터 들은 두시간 의 강의를 지금까지 잊지 못한다. 뭔가 애로사항을 가지고 찾아온 사람에게는 무조건 잘 들어 주는 것이 최고의 상담자의 역활 이라는 내용이었는데, 그때까지 내가 살아 오면서 얼마나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가를 깊이 깨닫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생각이 부정적 사고에서 긍정적인 사고로 바뀌기 시작 하니, 마음도 여유가 생기고 삶의 자세도 조금씩 바뀌어갔다. 독서도 하게 되고 신문 읽기에도 재미가 붙으니 그것이 또한 일상의 취미가 되었다. 그러나 돈복은 없었는지 그동안 자동차정비 사업에 뛰어들어 봤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늙으막에 6, 7년 직장생활을 하던중 환갑을 맞게 되면서 몸이 먼져 예전 같지 않았고, 중견 간부로써 회사 운영과 관련되는 문제들과 관련되어 내가 가진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느껴지는 갈등도 괴로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라고 하는 정체성이 흔들린 것이 제일 큰 문제로 다가욌다. 그 나이가 될때까지 아직까지도 내 인생의 의미도 명쾌하게 규정하지 못하고 살아온 자신이 한심 했다. 나는 진정 무엇을 위하여 살고 있었는지도 모르고 살고 있었구나, 해는 이미 석양이고 시간은 다 가는데!! 그래서 나는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 내 인생이다. 나머지 삶 이라도 조금이라도 더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일을 찾아 살자, 사람이 살기 위해 먹는거지 먹기 위해 사는것은 아니라고 하지 안는가! 그렇게 생각하고는 그때 직장을 그만 두었다. 벌써 6년 전의 일이다. 지금 생각해도 더 늦기전에 너무나 잘한 결정이었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 걱정되는 것은 우리사회가 이미 초고령화 시대로 접어들었는데도 노인들의 복지 문제를 놓고 정치권의 보수 세력들은 개선하려는 노력은 안 하고 세대간 이간질이나 부추기는 한심한 작태 들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더 걱정이 되는것은 정작 깨어나야 할 당사자인 노인들의 정신상태는 의식이 잠들었거나 이미 세뇌되어 있고 돈 몇푼에 영혼을 팔아버리고 수구꼴통이 되어 사회로부터 존경은 커녕 손가락질과 천덕꾸러기로 외면당하는 이들이 너무 많은 것이 지금의 우리 현실이다. 그래서 나는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보내준 메일에, 푸른 시니어학교 '새로운 노인시대를 만들자' 라는 주재가 특별히 눈에 띄었고, 강좌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아홉번의 강좌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참석 하면서 배우고 느낀것은 유명하신 강사님들의 충실한 강의도 좋았고, 앞으로 '새로운 노인사회를 만들자'고 하는 과제를 가지고, 많은것을 토의 하고 공유 할 수 있는 수강자들 과의 만남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실재로 이번 강좌를 수강 하면서 내 주변의 몇분의 시니어들 과의 대화를 통하여 내가 가진 생각과, 그분들이 가진 생각과 사고방식 체계에 상당한 간격이 있음을 확인 하였다.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을 실행 할 때에는 내가 사는 동네에서 한사람씩 신뢰를 쌓아 가면서 한분 두분 친교을 맺어가는것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렇게 하여 다섯명 만 모이게 되면 무엇을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도 생겼다. 그리고 이번 강좌를 통하여 내가 어떻게 움직여야 할 것인가 하는 방향과 동력을 얻은 것에 크게 감사한다. 그동안 어려운 가운데서도 강좌를 만들고 이끌어 주신 주은경 선생님과 참여연대 관계자 여러분 그리고 우리함께 강좌에 참여하신 수강자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사랑합니다~♡♡♡

      푸른시니어학교 제1기 수강자 정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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