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정보
날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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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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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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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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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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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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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핵사회와 탈핵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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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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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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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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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와 좋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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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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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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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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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와 증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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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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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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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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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시민, 국익을 넘어선 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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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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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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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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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논쟁과 탈통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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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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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2
[반성된 미래- 한국사회 전환을 위한 조건] 제2강, 경제민주화와 좋은 삶 (박종현)
안녕하세요, 느티나무 아카데미 자원활동가 한채란입니다.
"돈벌이 수단은 아니지만 경제적 수단이다”라는 표현은 경제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참 의뮨이 많이 생기는 표현이에요. 이 표현을 수긍할 수 있게 된 강의가 바로 지난 수요일에 있었던 박종현 교수님의 ‘경제민주화와 좋은 삶’ 강의였습니다. 저는 요즘 하루 종일 미시경제학 속 아담스미스의 완전경쟁시장에서 살고 있는데요,‘좋은 삶’을 위해 그 시장을 조금 달리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2012년 대선을 기점으로 경제 민주화라는 단어가 공공연하게 들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정치권이 선심 쓰듯 내어 놓고 슬쩍 거두어간 공약과도 같이 ‘경제민주화’라는 용어는 모호하기만 합니다. 강의는 경제민주화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민주주의’가 정치영역에서의 국민주권을 의미하는 것이듯 경제민주화는 경제영역에서의 대등한, 그리고 평등한 권리를 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는데요. 교수님께서도 비슷한 정의를 내려 주셨습니다. 국민 모두가 1인 1표의 경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 바로 경제민주화겠죠.
사실 경제민주화에 대해서는 부정적 시각들도 만만치 않습니다. 재벌의 골목상권 장악, 대한민국의 삼성공화국화, 복지 증세 문제 등 현실정치와 현실사회의 다양한 문제가 경제민주화의 이슈와 함께 논의되는데요. 여기에는 특정집단의 이익을 위해 대의를 포기하는 것이다, 부자에 대한 시기와 질투의 시각일 뿐이다, 경제에 대한 정치적 관점은 형용모순이다, 나아가 의도는 선할지라도 결과적으로 경제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라는 반론들이 제기되고 있어요. 이러한 부정적 시각들에 대해서 이해하고 반박할 근거를 준비하는 것이 경제민주화를 지지하는 자세가 아닐까라고 한 수강자 분께서 이야기해주셨어요.
경제민주화의 논의는 시장과 기업을 바라보는 관점을 이해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경제학 수업의 시작은 항상 이 분으로부터 시작하죠. 바로 아담 스미스인데요. 보이지 않는 손의 힘을 주장하였던 아담스미스와 노벨상 수상자 하이예크는 효율과 자유와 공정의 공간으로서 ‘시장’을 바라보았습니다. 이들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율적으로 조정되는 경쟁시장은 가장 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고 지불의사/ 수취의사 외의 어떠한 차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정한 공간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케인즈는 여기에 반기를 들죠. 시장은 무분별한 욕망을 부추기고 불안정성을 심화시키며 사회를 분열시키는 공간이라고 본 것이 바로 케인즈와 폴라니인데요, 이들은 시장의 한계를 지적하며 정치와 사회가 시장에 개입함으로써 보다 나은 경제를 지향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시장’은 이념의 공간으로 귀결됩니다. 시장을 자유방임상태로 두어야 할 것이냐 규제와 개입을 통해 질서를 형성할 것이냐의 문제죠. 경제민주화의 논의는 여기에 새로운 관점 하나를 추가합니다. 바로 사람을 타락시키는 공간으로서 시장입니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행복의 개념에 시장의 익명성, 일회성은 부합하지 않죠. 우리가 추구하는 삶의 목표인 ‘좋은 삶’에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존재인 인간이 필요합니다. Willingness to pay와 willingness to accept 의 균형으로 형성되는 시장의 안정성이 좋은 삶의 충분조건일까요?
시장에 대한 위와 같은 관점들을 두루 다루면서 이야기는 다시 경제민주화로 돌아왔습니다. 서양철학에 비추어 경제민주화를 유형화했는데요. 시장원리를 사회 전역에 확대하자는 자유방임주의(Libertarianism) 전통에 따르는 입장, 재산소유 민주주의나 복지국가원리를 주장하는 진보적 자유주의(Liberalism) 전통에 따르는 입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장과 기업을 좋은 ㅏㄻ의 수단이 되도록 하자는 공화주의(republicanism)전통에 따르는 입장이 그것입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은 범국가적 조세네트워크를 통해 재산소유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한다는 관점에서 볼 때 두 번째 유형으로 볼 수 있겠죠. 그러나 우리는 또 다른 노선을 고민해야 할 때인 것 같아요. 바로 세번째 유형인데요. '이윤극대화’를 넘어선 사회적 가치를 시장에 부여하는 것입니다.
경제학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윤극대화식과 제약식을 도출해내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미적분의 기술적 문제이죠. 즉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주어진 제약하에 이윤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비용을 극소화하는 노동량을 선택하고 이윤을 극대화하는 산출량을 선택하며, 이를 통해 효율적인 가격을 설정하죠. 경제민주화는 왜 우리가 이윤을 극대화해야하는지에 의문을 가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친구가 될 수 있는 방법. 합리적으로 공존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내는 수단으로서 시장에 가치를 부여하자는 것인데요. 최근 이탈리아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시민경제, 공정가격, 도덕경제는 모두 이러한 관점에 기인합니다. 미국의 대중음악 가수 브루스 스프링스턴은 콘서트 가격을 시중 가격보다 파격적으로 낮은 가격으로 책정함으로서, 보다 많은 팬들이 콘서트를 관람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티켓을 사간 사람은 이윤을 극대화하는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수였고, 가격은 터무니없이 낮았습니다. 하지만 이는 관객가 가수가 소통할 수 있는 가장 최적의 가격이었고 수량이었기에 그는 그 가격을 적정하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브루스에게 노래는 돈벌이 수단은 아니지만 충분히 경제적인 수단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기업은 이윤을 극대화하는 존재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여 의문을 가지지 않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나 사회는 함게 살아가는 공간입니다. 기업이 이윤을 극대화하는 이면에 많은 사람들은 생존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소외되고 나아가 사회에서 도태되고 있습니다. 기업에게 높은 세율로 과세하여 그 소득을 재분배하는 것도 일종의 경제민주화 수단이겠지만, 이를 넘어서 기업과 시민이 대등한 존재로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마지막 관점은 바로 이러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자는 외침일 것입니다. 강의를 듣는 내내 생각했던 것은 공존의 방법이엇습니다. 아담스미스가 설계하였던 시장은 가장 순수한 상태에서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사회는 아담스미스의 순수성을 넘어섰죠. 대기업은 우월한 자본력과 정보력을 선점하고 있고 기득권층은 정치적, 정책적 수단을 독점하며 공정경쟁을 방해합니다. 이제 시민들이 시민덕성을 발휘해야할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적정한 가격은 무엇일까, 조금 늦게 성장하더라도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를 고민해야할 시점인 것이죠.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의 반성된 미래, 한국사회 전환을 위한 조건 다음 수업은 복지국가와 증세입니다. 경제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그리고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공존을 위해서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 무엇인지에 대해 다음시간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끊임없이 고민하고 성찰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반성된 미래- 한국사회 전환을 위한 조건] 제1강, 탈핵사회와 탈핵정치 (하승수)
[반성된 미래 - 한국사회 전환을 위한 조건] 1강(9/03) - 탈핵사회와 탈핵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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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아카데미 느티나무 가을학기 자원활동가 한 채란입니다.
아카데미 느티나무는 참여연대 20주년을 맞이하여 <반성된 미래- 한국사회 전환을 위한 조건>이라는 강좌를 개설하였는데요, 본 강좌의 첫 번째 강의는 바로 녹색당 하승수 위원님의 ‘탈핵사회와 탈핵정치’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탈핵과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해서 초현실적 이상이 아닐까하는 추상적 관념만을 가지고 있었어요. 비행기에 맞아도 끄떡없다는 원전인데 문제가 될까? 원전이 멈추면 우리의 전기는 어떻게 공급하지? 나아가 약간의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과학기술과 경제의 성장을 위한 필요악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돌이켜보니 강사님께서 탈핵 1인 시위를 하며 만나셨다던 ‘나 살아있는 동안만 안전하면 되지’ 하던 사람들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네요.
강의 시작에 앞서 강의와 관련된 키워드를 나누는 시간이 마련되었습니다. 저는 부안 핵 방폐장 문제를 행정학 수업 주제로 접하였어요. 행정학에서 부안의 문제는 관주도적 정책과정의 실패 사례였고, 입지선정과 관련하여 민관의 협력이 요구된다는 정도의 결론에 도달하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강의 시작에 원자력발전과 민주주의는 공존할 수 없다고 단정하고 시작하셨죠. 내가 공부한 ‘보상과 소통을 통한 해결’ 이상의 문제가 존재하겠구나, 그럼 나는 ‘새로운 시각’을 공부하게 되겠다, 생각했어요. 따라서 제 키워드는 ‘새로운 시각’이었죠. 많은 분들이 밀양 송전탑, 딸이 좋아하는 참치, 안전, 대한민국의 미래 등을 키워드로 이야기해 주셨어요. 서로의 키워드를 들으면서 이번 강의와 탈핵, 나아가 대한민국의 미래까지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강의가 시작되고 강사님께서는 ‘현실’을 보여주셨습니다. 플루토늄정도는 먹어도 되고 미사일에도 끄떡없는 원전이 현실일까요? 후쿠시마 사건 이후 후쿠시마 어린이의 갑상선 암 발병률은 비정상적으로 증가하였습니다. 내부피폭의 문제를 생각하면 암발병률 지표는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릅니다. 그 무엇보다 튼튼하다는 부산의 고리원전은 침수 때 펌프작동의 문제가 발생했었죠. 비상발전기조차 작동하지 않아 수동으로 펌프를 가동하였는데 미사일에도 끄떡없는 방어벽 광고만을 믿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핵발전밀집도 세계 2위 국가이죠. 핵 폐기물 처리에 대해서는 재사용 기술도, 처리 방법도 미비된 상태입니다. 핵폐기물 저장창고를 짓는다는 핀란드 역시 지하 500m에 봉인하는 방법이 유일한데요, 이마저도 100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공계 학생으로서 원자력은 과학기술 발전의 결실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어요. 이토록 준비되지 않고 위험천만한 일들이 과학이라는 미명하에 이루어지고 있다니 내가 공부했던 과학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회의가 들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원전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왜 우리는 원전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그 답은 유례없는 전기소비의 증가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1인당 전기소비량이 90년대의 4배 이상이라고 해요. 그렇다면 우리 시민들이 90년대에 비해서 과도하게 전기를 사용하고 있는 걸까요? 우리 집은 90년대나 지금이나 세탁기1대, 냉장고1대일뿐인데 말이죠. 문제는 산업용 전력소비입니다. 우리나라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지나치게 저렴합니다. 제철회사들은 전기 용광로를 돌리고 공장은 전기를 이용해 열을 공급하죠. 이러한 값싼 전기는 대기업의 로비, 정치권의 친 기업 행태, 그리고 시민들의 무관심 혹은 무지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업을 들으며 반성과 후회를 지속하며 대책을 고민할 즈음, 탈핵사회와 탈핵정치를 위한 시급한 과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먼저 수요 측면에서는 산업용 전기요금의 대폭 인상, 지역별 차등요금제 실시, 에너지 다소비기업에 대한 자가발전 의무화 등이 제시되었어요. 산업용 전기요금의 경우 50%이상의 대폭 인상이 절실하다고 하셨는데요, 그에 대한 비용은 기업 스스로의 절전 노력과 기술개발을 통해 해결할 과제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역별 차등요금제 실시와 관련하여서는 서울 쓰레기가 시골에서 처리되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되었는데요, 수도권에서만 살다보니 서울의 전기공급을 위해 인원수가 적은 농어촌 지역의 희생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무지했던 사실이 부끄러워졌어요. 한편, 공급측면에서는 신규원전과 석탄화력발전소의 건설을 우선적으로 중단할 것이 요구되었고, 노후원전을 폐쇄하고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한 기술개발과 투자를 확대할 것이 요구되었습니다. 또 지역분산형 발전에 대해서도 이야기되었어요. 대체에너지는 소규모로만 이루어지고 산업국가에서는 적절하지 않은 형태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독일, 덴마크, 핀란드등 유럽의 사례나 LNG 발전을 통해 후쿠시마 사고 이후 감소한 전력공급을 보충하고 있는 일본의 사례를 생각할 때 재생가능에너지는 탈핵사회를 위한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지역사회수준에서 각 지역에 적합한 발전방식을 고안하여 전력을 충당하는 방법도 필요할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시민들이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해 더 많이 공부하고 이해하여 사회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강의 말미에 원전마피아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최근 세월호 사태로 관피아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죠. 낙하산, 회전문 인사를 통해 공기업과 대기업, 그리고 관료사회가 결탁하고 그 피해는 모두 시민에게 돌아오고 있습니다. 핵문제도 마찬가지인데요, 원론적인 이야기겠지만 이러한 관피아 문제에 있어서는 시민의 감시자로서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제도적 정비가 우선되어야하겠지만, 합리적 무시가 체화된다면 관피아 척결과 탈핵사회로의 정진은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활발한 질의응답과 함께 수업은 종료되었어요. 질의응답시간에는 비핵과 탈핵의 구별, 탈원전 흐름을 만들었던 외국의 사례, 탈원전에 대한 정당의 입장 등이 이야기 되었는데요. 마지막으로 우리 스스로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물론 산업용 전기소비의 과도한 확대가 핵심문제이나, 개인 스스로의 변화도 중요한 것 같아요. 전기소비를 줄이고 전력을 소중히 하는 마음과 실천이 탈핵사회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 것일 아닐까 싶어요.
느티나무 아카데미에서의 첫 수업은 긴 여운을 남겼습니다. 스스로에 대해 반성하고, 원전과 관련한 새로운 시각과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소중했던 시간이었었어요. 마지막으로 강좌에서 배운 탈핵이 필요한 이유를 짧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며,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탈핵이 필요한 이유>
1. 안전하지 않다. 577개의 원전 중 6개의 원전이 폭발하였으며 사고의 피해는 자동차 사고에 비할바가 아니다.
2. 비윤리적이다. 핵발전소의 해체, 사용후 핵 연료의 처분 부담은 모두 미래세대에 전가된다. 인류의 미래에 이러한 부담을 남기는 일이 과연 윤리적인가.
3. 심지어 경제적이지도 않다. 발전소 해체비용, 향후 20만년간 보관될 핵폐기물의 관리비용까지 고려한다면 원자력발전의 비용은 태양열발전의 비용을 추월한다.
그래도 원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면? 일본을 보자. 2011년 후쿠시마 사고이후 모든 원전이 중단되었지만 일본은 여전히 안정된 사회를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