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으로 보는 중국현대사

  • 강사

  • 기간

    • 2013. 9. 4 ~ 2013. 10. 16
  • 시간

    • 수요일 19:00~21:30 총5회
  • 수강료

    80,000

    • 파격 할인혜택
    • 참여연대 회원5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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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세 정보

     

    강의소개 |
    중국 근현대사는 인류 역사의 실험장이었습니다.
    제국과 식민, 전통과 현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둘러싼 희망과 절망,
    도전과 고투의 기록이 중국 근현대사입니다.
    그러한 역사를 겪은 중국과 중국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20세기 인류는 물론 우리의 역사와 우리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특히 중국은 우리와 같은 문화 가치관과 유사한 근현대사의 배경을 가지고 있어서
    긍정적 부정적 의미를 망라하여 우리의 좋은 거울이 되기도 합니다.
    근대 초기부터 사회주의 시장경제 시대까지 중국을 대표하는 문학 작품을 통해
    중국과 중국인의 내면은 물론이거니와 동아시아 근현대사의 도전과 고투를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강의 일정 |
    날짜
    순서
    주제
    09.04
    1
    노예와 혁명
    루쉰 <아Q정전>
    09.11
    2
    베이징의 희망과 절망
    라오서 <낙타샹즈>
    09.25
    3
    혁명과 여성
    딩링 <밤>, 장 아이링 <색, 계>
    10.02
    4
    농민의 나라, 농민의 중국
    모옌 <인생은 고달파>
    10.16
    5
    다시, 아버지를 찾아서
    위화 <허삼관 매혈기>
     
    강사소개 |
    이욱연 서강대 중국문화과 교수
    한국과 중국이 수교하던 1992년 겨울부터 2년간 베이징 사범대에서 유학했다.
    현재 서강대 중국문화전공 교수로 재직하면서 중국 현대문학과 문화를 가르치고 있으며,
    중국을 오가면서 중국 문학과 문화의 동향을 한국에 소개하고 있다.
    루쉰의 소설, 중국 문화대혁명, 한류와 중국 대중문화 등을 연구했다.
    루쉰의 <아Q정전> <들풀>『아침꽃을 저녁에 줍다』, 모옌의 <인생은 고달파> 등을 번역했고
    <중국이 내게 말을 걸다> <곽말약과 중국의 근대> <포스트사회주의시대의 중국문화>를 집필했다.
     
    참고서적 |
    각각의 텍스트를 가급적 읽고 오시길 권합니다.
    『아Q정전』 문학동네,
    『낙타샹즈』 황소자리
    밤」,『장맛비가 내리던 저녁』(창비)에 실림.
    『색, 계』랜덤하우스코리아,
    『인생은 고달파』 창비,
    『허삼관 매혈기』 푸른숲
     아Q정전  낙타샹즈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 색 계
    인생은 고달파1 인생은 고달파2 허삼관 매혈기
      
    강의정보 |
    일시 : 2013. 9.04 ~ 10.16 (수) 총 5회 오후 7시 ~ 9시 30분
    장소 : 참여연대 느티나무홀(B1)
    수강비 : 8만원(참여연대 회원 30% 할인)

     

    후기 2

    • [문학으로 보는 중국현대사] 2강, 베이징의 희망과 절망, 라오서 <낙타샹즈>

      2013.9.14 Dasom 문학으로 보는 중국현대사

      [문학으로 보는 중국현대사] 2강(9/11), 베이징의 희망과 절망, 라오서 <낙타샹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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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으레 '베이징'하면 무엇을 떠올릴까? 어떤 이미지들이 떠오르곤 사라져갈까? 자금성, 만리장성, 천안문, 왕푸징? 하지만 문학으로 보는 중국현대사의 두번째 강의, '베이징의 희망과 절망, 라오서'를 들은 이들이라면 앞으로 '베이징'이라고 했을 때 단번에 <낙타샹즈>의 작가 라오서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사실 라오서는 루쉰에 비해서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베이징'하면 반사적으로 떠올리게 되는 작가로 군림하고 있다. 또, 북경어를 가장 아름답게 구사하는 작가로도 알려져 있다. <낙타샹즈>의 무대도 물론 베이징이다.


      라오서는 중국의 밑바닥 현실을 어루만지는 유머 감각을 발휘한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삶이 그렇게 풍족하고 유쾌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게 된다. 전통 사회에서 아버지가 없다는 것은 심각한 차별과 물질적 궁핍에 처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는 자연스레 사범대에 진학하게 된다. 등록금이 없고 교사로서의 미래가 보장된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한 뒤 교사 생활을 하던 그는 1921년에 첫 소설을 발표한다. 그러다 영국 런던대학에 중국어를 가르치러 건너가게도 되는데, 이곳에서 영문학을 접하며 활발하게 창작 활동에 전념한다. 그러나 이 경력은 훗날 문화혁명 때 문제가 되기도 한다. 그는 마치 유목민처럼 여기저기를 떠돌며 살았다. 런던에서의 삶을 정리한 다음에는 싱가포르를 거쳤고 이후 상해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계속한다. 그러고는 33세에 결혼을 하고 산동대학 중문과의 교수가 된다. 아이도 낳았다.


      이후 전업 작가 생활을 하던 그는 항일운동을 하는 단체에 몸을 담기도 했으며, 훗날 미 국무부의 초청으로 미국에 가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1949년 11월,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지자 중국으로 돌아온다. 물론 이 당시 사회주의에 반대하던 이들은 오히려 거꾸로 출국을 감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반대로 라오서는 중국으로 돌아온다. 그의 정치적 성향이 어땠는지 짐작케 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를 사회주의자 혹은 마오주의자로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귀국해 인민예술가상을 수상하기도 하며 명성을 얻은 그는 창작 활동을 이어나간다. 그러다 1966년부터 1976년, 문화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숙청과 억압이 시작되고 마침내 그는 문화혁명의 초기인 1966년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런데 이 장면을 목도한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패왕별희>의 감독 첸 카이거였다. 첸 카이거 역시 홍위병 출신으로 격동의 문화혁명기, 그 혼란의 한복판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바 있다. 그는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라오서의 자살을 목도했을 당시의 느낌을, 자신의 저서 <어느 영화감독의 청춘>을 통해 회고한다. 그리고 아픈 상처를 영화로 토해내기라도 하듯 <패왕별희>를 만든다.


      잘 만들어진 영화나 문학 작품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바로 예술은 시련을 먹고 자란다는 것이다. 인간은 왜 고통스러울수록 노래할까. 인간은 왜 괴로울수록 글을 쓸까. 이것이 바로, 역시 영화를 만들고 글을 쓰며 살아가고자 하는 나의 근심이다. 나의 '아름다운 근심'이다.


      이렇게 일주일에 한 번씩 나는 자신의 시대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그 사유를 한 자, 한 자 수를 놓듯 새겨낸 선배 예술가들의 삶의 족적을 더듬는다. 강한 영감이 찾아와 내 머릿속의 결을 온통 헝클어놓고 간다. 동시에 그들의 삶을 마구 어루만져주고 싶은 충동도 느낀다. 끌어 안아주고 싶은 격정적인 감정마저 느낀다.


      문화혁명의 한복판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홍위병' 첸 카이거와, 그 참담한 현장을 견디다 못해 자살로 생을 마감한 라오서의 삶에 강한 연민을 느낀다. 그 억압적 환경에서 몸부림치며 분열해갔을 두 예술가의 삶에 연민을 느낀다. 나 같아도 창작에의 의욕은 커녕 삶의 의욕조차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르니...


      글 : 이다솜 자원활동가

    • [문학으로 보는 중국현대사] 1강, 노예와 혁명, 루쉰 <아Q정전>

      2013.9.7 Dasom 문학으로 보는 중국현대사

      [문학으로 보는 중국현대사] 1강(9/4), 노예와 혁명, 루쉰 <아Q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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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큐정전.jpg

      작년 이맘때, 그간 나의 눈이 지나치게 서구, 백인 사회를 향해 있었다는 문제의식이 처음으로 생겼다. 

      참여연대 자원활동을 신청하면서 특별히 '문학으로 보는 중국현대사' 강의를 선택했던 건 그런 문제의식의 일환이었다. 또, 다양한 자원활동 분야 중에서도 아카데미 느티나무를 고른 건 재작년 겨울, 친구와 함께 들었던 리영희 읽기 강좌에서 얻은 것이 많기 때문이기도 했다. 리영희 읽기 강좌에서 다룬 핵심 텍스트가 바로 김삼웅 선생님이 쓴 <리영희 평전>이었는데, 그 책을 통해 처음으로 리영희 선생님의 글쓰기에 많은 영향을 준 존재가 루쉰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루쉰의 문학세계를 다룬 첫 강의는 내게 아주 각별하고 소중했다.

       

      이욱연 선생님은 루쉰이 중국의 문제점을 신랄히 고발한 나머지 '매국노'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고 소개하셨는데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새삼 '경계자'의 역할에 대해 생각했다. 또, 루쉰이 난징, 도쿄 등지에서 유학하면서 신식 문물을 받아들였지만 전통 문화를 깍듯이 지키는 데에도 열심이었다는 대목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근거 없는 상상력(?)을 동원해 생각해보건대 루쉰은 일종의 '경계자'가 아니었을까?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같은 이분법, 그 갈라진 두 세계를 자유롭게 횡단하는 지적 유목민이 아니었을까? 이욱연 선생님은, 루쉰은 주인과 노예의 관계가 뒤바뀌는 것이 아니라 그 구분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 진정한 혁명이라 믿었고, 맑시즘에 도취했으나 그것과는 지속적으로 거리를 유지했다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보아 루쉰은 일종의 '영매'가 아니었나, 싶다. 갈라진 두 세계를 자유롭게 횡단하는 존재. 그럼으로써 그 갈라진 두 세계를 이어주는 존재. 사실 경계자가 수행해낼 수 있는 최고의 역할이 바로 '화해자' 아니던가? 나 역시 경계자로서의 삶, 화해자로서의 삶, 영매로서의 삶을 꿈꾸고 있기에 전체 수업 내용 중에서도 이 부분이 특히 각별하게 다가왔다.

       

      또한 루쉰은 혁명이 충분히 '혁명적'이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 "통치계급의 혁명은 낡은 의자를 빼앗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는데 나는 여기에도 공감하는 바가 컸다. 루쉰은 오늘의 혁명가가 내일의 응고된 정치가가 될 수 있다고 보았고, 그런 이유에서 끊임없이 혁명을 의심했다. 또, "문학은 현실을 어지럽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그의 문장은 내게 매우 힘 있게 다가왔다. 일찍이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나는 세상의 도덕을 의심하는 작가"라고 선언한 것처럼 말이다. 역시 고수들의 세계는 한 길로 통하는 듯하다.

       

      나는 루쉰이 그리 오래 살지 못했다는 점이 내심 안타깝기도 했는데, 어찌보면 그가 문화대혁명을 보지 못하고 죽은 것이 차라리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문화대혁명의 한복판에 살아 있었다면 그가 느끼는 참담함은 어떠했을까.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이욱연 선생님은, 다다음 수업에서 우리가 만나게 될 딩링이라는 작가를 잠시 언급하시며 그녀는 여성해방론자로, 루쉰 계열 작가들의 남권 의식을 비판했다고 말씀하시면서 수업을 마무리해주셨는데 과연 딩링이라는 사람은 얼마나 뜨겁고 매혹적인 작가일까? 다음 수업도, 그 다음 수업도 기대하는 바가 아주 크다.

       

      글 : 이다솜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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