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어 보는 종교 전쟁 평화

  • 강사

  • 기간

    • 2013. 7. 15 ~ 2013. 7. 22
  • 시간

    • 월요일 19:00~21:00 총2회
  • 수강료

    30,000

    • 파격 할인혜택
    • 참여연대 회원2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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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세 정보

           

    강의소개 |

     

    종교와 전쟁! 이것은 무척 대조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 역사를 보면, 제도화된 종교들이

    전쟁을 적극적으로 합리화하거나 소극적으로 인정, 묵과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기독교는 4세기 초반 이후 정의로운 전쟁을 교리화했으며, 불교는 전쟁행위를 호법전쟁이라고

    적극 장려했습니다. 특히 근대에는 기독교의 군목, 군신부와 불교의 군승들이 국가의 침략에

    참여하거나 방조해왔습니다.

     

    한국종교도 예외는 아닙니다. 일제말기 조선인들의 전쟁총동원에 개신교 천주교 불교가 나섰으며,

    당국의 명령을 거부한 종교인들은 드물었습니다. 한국전쟁때 반공성전은 기독교 선교의 절호의

    기회로 이용됐습니다. 군의 종교에서 거부된 불교는 군승 파견을 위해 정부에 로비한 결과,

    베트남 전에서 군승들이 활약했습니다.

     

    만인에 대한 사랑 자비 평화를 이야기하는 종교!

    그럼에도 세계적으로 거의 모든 전쟁에 종교가 개입해온 역사를 어떻게 이해 해야 할까요?

    종교의 전쟁 방조는 종교와 국가 유착의 결과라면,

    종교가 현실적으로 국가와 거리 둔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종교의 전쟁 동원이 종교의 어떤 내부적 폭력성의 문제라면, 이 부분을 과연 어떻게 시정하고,

    비폭력적 종교의 이상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요.

    종교의 '전쟁 협력' '제도화된' 종교의 문제라면, 이런 '제도화'를 넘어

    생명과 평화의 가르침으로 돌릴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비판적 성찰은 현재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주는 것일까요.

     

    <당신들의 대한민국> <붓다를 죽인 부처>의 저자인 박노자 교수와 함께 생각해봅니다.

     

    강의 일정 |

    날짜

    순서

    주제

    07.15

    1

    종교와 국가폭력

    종교는 전쟁을 추구하는가 평화를 추구하는가

    07.22

    2

    한국 종교와 군사주의 유착의 역사와 현실

    종교는 군사주의에 어떻게 복무해 왔는가

     

    강사소개 |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 인문학부 교수, <붓다를 죽인 부처>, <당신들의 대한민국> 저자

     

    강의정보 |

      : 2013. 07.15 ~ 07.22 월 오후 7~9시 총2

      : 참여연대 느티나무홀(B1)

    수강비 : 3만원(참여연대 회원 30% 할인)

     

    후기 2

    • [뒤집어보는 종교 전쟁 평화] 2강, 한국종교와 군사주의 유착의 역사와 현실

      2013.7.26 이나단 뒤집어 보는 종교 전쟁 평화

      [뒤집어 보는 종교전쟁평화]  2강(7/22) 한국종교와 군사주의 유착의 역사와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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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한민국 군법사에 대한 문제의식 

      박노자 교수님의 여름 특강, 그 두 번째 시간은 마이크없이 교수님의 큰 육성으로 자연스럽게(?)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교수님은 왜 당신이 한국종교와 군사주의 유착을 강의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배경을 간단히 설명해주었습니다. 사실, 이번 여름에 교수님이 한국을 방문한 주된 목적은 이 주제에 대해 연구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국군에 소속된 130여명의 군승려를 심층면접하면서, 박노자 교수님은 불교수행자가 따라야 할 불살생계와 군복무가 충돌하는 것은 아닌지 주로 질문한다고 합니다. 무기를 착용한 사람앞에서 설법을 금지하고, 병영에서 숙박을 금했던 과거의 수행전통과 현재 대한민국 군승려분들의 복무 환경은 세월의 흐름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태국 승려들은 군대에서 정신교육을 담당하나 군복을 입거나 계급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일본 제국주의 시절에도 종군 승려는 있었으나 스님은 결코 군인이 될 수는 없었다지요. 과거 불교 승려들은 사회와 격리된 숲이나 산속 깊은 곳에서 주로 생활했으며, 승가는 국가, 군대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었고, 이에 대한 의견 표시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불교 전통에서 국가권력과 승려는 결코 유착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불교의 기본 5계를 위시한 과거의 엄격한 수행전통과는 다르게 현재 우리나라 군법사님들은 장병들의 정신교육과 군선교를 위해서 장교 군복을 입고 군복무를 하고 계십니다.


      2. 군법사님들의 세 가지 답변

      .국가주의적인 논리

      국가가 존재해야 종교도 존재한다는 주장은 박노자 교수님이 인터뷰한 대부분의 군법사님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몇몇 군법사님들은 스스로 종교인이기 전에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일종의 국가지상주의적인 의견을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한국 기독교, 천주교, 불교 모두 국가지상주의를 공통분모로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연유로 특히 한국전쟁이후로 한국 종교계 사이에 갈등이 그나마 최소화될 수 있었던 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박노자 교수님에 의하면, 군승 원로들은 국가지상주의에 대한 고민이 거의 없는 듯 느껴진다고 합니다.

      .전통주의적인 논리

      예로부터 불교는 호국정신으로 나라를 지키는데 책임을 다해왔다는 이야기로, 현재까지 불교집단의 군사화를 합당화하고 있는 주요 근거입니다. 신라의 화랑, 서산대사-사명대사의 의병활동을 호국불교의 대표적인 사례로 삼는 것이지요. 교수님은 조선시대까지 억불정책의 일환으로 전쟁과 축성 등, 왕명으로 동원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현재의 군승려의 복무모습과 상황과는 매우 다르다고 전해주었습니다.

      .상황론적인 논리

      군대는 어쩔 도리없이 현재 우리 상황에 존재할 수 밖에 없으며, 인명살상이 아니라 가족과 평화를 지키위해 군복무를 한다는 의견입니다. 


      3. 구한말의 상황

      박노자교수님은 한국에 기독교를 전파한 초기선교사의 대부분은 전쟁에 대해 우호적이었다는 메시지로 강의 본론을 전해주었습니다. 당시 조선지식인들과 선교사들은 기독교, 교육, 군대 등은 근대화, 문명화와 동일시하였기 때문에 문명국가가 비문명국가를 개화시키기 위한 전쟁, 교화에 대해 큰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구한말 해산당한 군인들은 학교의 교련교사로 초빙되고, 잘 훈련된 군인을 이상으로 하는 젊은 학생들이 참가하는 운동회를 통해 민족의 독립을 꿈꾸던 시기였지요. 당시 기독교인들은 구약의 이스라엘 민족 수난사 이야기와 조선민족의 상황을 연관지으며, 해방이데올로기로 기독교 신앙을 활용하였습니다. 일제 식민지 당시 조선의 기득권, 유산계급은 종교인으로서 일본군을 적극 지원합니다. 파쇼독일의 반유대주의를 받아들인 조선총독부의 명령을 따라 다수 기독교인들은 구약폐기, 비유대적 기독교 실천운동에 열심을 다했습니다. 주기철목사와 같은 예외적인 인물들을 제외하고는 이런 운동에 신사참배도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같은 시기, 불교에는 잘 알려진 저항자는 거의 전무하다고 합니다. 그 까닭은 외국 선교사들이 든든한 지원자로 있는 개신교, 천주교에 비해 불교인들은 총독부의 권력(도움)이 절실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지요. 조선후기 불교계의 정신적 지주라고 할 수 있는 방한암은 임전에 개인이 없고, 오직 국가가 있을 뿐이고, 임사에 오직 공포가 없고 충의가 있을 뿐이라는 메시지로 불교와 일본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전 지역의 사찰에 있던 범종을 무기제작을 위해 헌납하는 등 적극적으로 일제 전쟁에 협력하였다고 합니다.


      4. 한국전쟁과 군사정권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 북조선에서 종교에 대한 탄압은 크지 않았으나, 토지개혁(무상몰수)으로 경제적인 손실을 입은 기독교인들이 월남하게 됩니다. 월남한 기독교세력은 약 8만 명으로 숫자는 많지 않지만 엄청난 재산을 잃었고, 그 크기에 비례하여 북조선 또는 공산주의에 대한 원한이 컸을 겁니다. 한경직 목사는 특히 북조선을 사탄으로 규정하고, 철저한 반공사상과 기독교신앙을 자연스럽게 하나로 엮어나갔다고 합니다. 당시 기독교인들은 미국의 후원기관에서 흡족하게 여길 만한 개인의 인권을 존중하는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강조하거나 어떠한 형태의 사회주의든지 배격해야한다는 취지의 글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군목제, 반공시국강연, 징집 지원 활동 등 대한민국군의 정신적 지주로서의 기독교의 역할은 대단했다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한경직 목사가 조직한 대한기독교구국회1950년 청년 약 3000여명을 세례를 주고 입대시켰으며, 국방부와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한 목사 자신은 베트남전 당시 파병군사들을 위한 예배를 인도하기도 했습니다. 1960~70년대 군사정권에서는 전국신자화운동을 펼치며, 공산주의에 물들지 않도록 모든 장병이 하나의 종교를 갖도록 하였습니다. 종교단체에게는 교세를 크게 확장할 수 있는 호기였으며, 특히 기독교가 이 조치에 가장 큰 이득을 보았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은혜에 보답하듯이 대통령을 위한 조찬기도회를 열었고, 이런 대국가 서비스는 미국교회와 관계를 맺는 주요 목사들로부터의 협럭이 유신독재정권의 정당성 확보에 적지않은 영향을 주었을 겁니다. 공동의 적인 북조선 앞에서 기독교와 국가는 상호이득을 얻는 동반자의 관계가 되었습니다.


      5. 베트남전쟁, 또 하나의 성전

      주류 종교계인사들은 한국전쟁 때와 유사하게 해당 국가의 전쟁을 성전으로 여기며 적극 지지하였습니다. 베트남전쟁을 반대하던 이들은 함석희, 리영희, 장준하 선생 등 소수에 불과했고, 나머지 지식인들은 베트남전쟁 참전에 열광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김활란 전 이대총장은 베트남파병을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자유의 십자군으로 표현하였고, 유호준 목사는 백마부대 장병들에게 아시아의 생명과 재산을 수호하기 하나님이 군대를 파병하시는 것이라는 설교를 하기도 했습니다.

      베트남 전쟁 시기, 불교집단 역시 기독교와 비슷한 위상을 차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파병 최고사령관 채명신 장군은 불교신자는 아니었으나, ‘월남파병되는 한국군인들의 대부분은 불교신자이기 때문에 군승이 없으면 정신교육이 안된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의 말처럼 군목제가 실시된지 10년이 더 지난 1968년에 군승제도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베트남전쟁에서 적군을 사살하는 불자 군인들에게 그것은 악업이 아니라 극락왕생할 수 있는 길이라고 설법하게 되는 군승려분들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6. 한국형 종교적 평화사상의 가능성?

      식민지 말기부터 여호와의 증인 등이 종교적 평화실천을 해왔지만, 평화주의적인 종교가 체계화 된 것은 함석헌, 안병무 등 민중 신학자들의 노력 덕분이었습니다. 현재까지도 그 후배들, 조직들이 남아있으나 영향력이 매우 미미하다고 합니다. 신도들이 떠나기 때문에 이런 교회들의 성장이 어려운 것이겠지요? 지난주 강의 결론과 마찬가지로, 신자들이 목소리를 내야한다는게 중요한 거 같습니다. 각자가 속한 종교집단의 성직자들에게 군사주의의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 것이지요. 반군사주의적인 종교가 불가능한 것이 아니며, 종교와 군사의 분리는 평화주의를 지향하는 민중, 일반 평신도의 힘에서 비롯될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뒤집어보는 종교 전쟁 평화] 1강, 종교와 국가폭력 (1편+2편)

      2013.7.17 이나단 뒤집어 보는 종교 전쟁 평화

      [뒤집어 보는 종교, 전쟁, 평화]  1강(7/15) 종교와 국가폭력

      강의소개 보기 > 클릭

      20130715_박노자특강

      △ 강의 중인 박노자 교수 (사진=아카데미느티나무)


      지루한 장마비가 잦아들고, 강렬한 여름 햇빛이 간간히 비추었던 월요일, 참여연대 지하 1층 세미나실은 40여 명의 사람들도 꽉 들어찼습니다. 바로 박노자 교수님의 뒤집어 보는 종교, 전쟁, 평화첫 강좌가 있던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박노자님이 아카데미느티나무에서 여름 특강을 한지도 올해로 벌써 세 번째라고 합니다. 주은경님께서 간단히 강의소개를 해주신 후에, 많은 분들이 고대하시던 박 교수님의 강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1. ‘평화가 발명되기 전까지

      박노자 교수님은 10여 년 전에 있었던 불교계의 종단갈등에 대한 신문사설 이야기로 강의를 열었습니다. 그 당시, 여러 신문에서 본래의 수행정신으로 돌아가라, 자비로 돌아가라는 메시지로 불교계에 일침을 가했습니다. 이렇듯, ‘종교는 평화지향적 또는 비폭력적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지배적인 듯합니다. 그러나 종교가 평화, 비폭력과 연결된 것은 근대에 들어서부터라고 합니다. 마치 민족이라는 개념이 근대에 나타난 것처럼 말입니다. 교수님에 따르면, 그러한 인식은 1960년대 후반, 미국내 종교단체들이 베트남전쟁에 반대하기 시작하면서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러 가지 인간들이 겪는 갈등상황을 전쟁으로 해결하는 것이 당연지사였다고 합니다. 전근대 유럽 역사에서 전쟁이 없는 시기는 평화시대가 아니라, 그저 전쟁을 준비하는 시기라고 봐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입니다. 17세기를 배경으로 한 삼총사이야기에서도 정당한 결투의 결과로 적을 살해하는 것에 주인공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습니다. 1795년 엠마누엘 칸트가 영구평화론에서 평화라는 개념을 소개하기 전까지 전쟁과 살해에 대해 느끼는 죄의식은 현대 인류의 그것과 매우 달랐던 것으로 추측해봅니다.


      2. 고대 종교와 폭력

      종교의 시작은 매우 끔찍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유라시아 문화권에서 발견되는 순장풍습, 로마의 검투사, 갑골문과 켈트족 주술에서 나타난 점치는 방법까지 모두 인신제사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초기 인류의 종교는 왜 이렇게 폭력적이었을까요? 르네 지라드라는 학자는 인신제사를 통해 내부결속, 소속감을 확인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 맑스레닌주의 유물사관에 따르면, 자연에 대한 인간의 공포로부터 비롯된 원시종교는 사냥대상인 동물()을 죽인 댓가로서 인간을 잡아 신에게 바친다는 일종의 폭력적인 거래로서 그 원인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해, 폭력은 인간과 신 사이의 거래방식면서, 인간들이 상상한 신들 자체도 매우 폭력적이었다. 호머의 일리야드나 고대 북유럽의 오딘 신화 등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3. 기축시대와 중세의 종교들

      인간의 생산능력 향상되고, 자연에 대한 공포가 점차 줄어들면서 종교에서는 착한 폭력(정당한 폭력)과 나쁜 폭력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폭력은 찬양하고, 나쁜 폭력은 금지하는 것입니다. 종교의 가르침은 여전히 평화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기축시기에 체계화된 종교 중 대표적으로 유대교를 살펴보겠습니다. 유대교의 십계명에서 살인하지말라고 번역된 원어 레차흐는 본래 암살하지 말라, 사사로이 사살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모세가 이집트인을 살해했던 것과 같은 의로운 살인, 신이 허락한 폭력, 하나님이 지시한 폭력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지요. 신명기에서는 야훼신이 유대민족에게 제노사이드를 구체적으로 지시하기까지 합니다. 당시 힌두교, 티벳불교도 마찬가지 또 예수나 붓다의 행적에서도 여전히 근대적 의미의 평화주의, 평화운동과는 큰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중세에 들어서 폭력에 대한 종교의 태도는 기독교, 불교가 매우 유사하게 발전하였다. 이름하여 의전론입니다. 특별히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에서는 정당한 전쟁의 요건으로 정당한 이유, 정당한 주체, 정당한 의사를 강조하면서, 국가 차원에서의 이교도와의 전쟁을 합리화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고 합니다.

       

      4. 근대 기독교의 평화주의와 군목제도 

      15세기 이후, 평민(소상업자) 위주의 교회는 귀족의 폭력에 대한 저항으로서 평화주의를 띠게 됩니다. 재세례파, 모라비안, 퀘이커 등과 같은 민중교파들이 등장하면서 전쟁의 합당성에 의문을 던지기 시작한 것이지요. 박노자 교수님은 평화(주의)근대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라고 재차 강조하였습니다. 특별히 밑으로부터, 민중으로부터의 종교가 그나마 폭력성을 덜어내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지요. 1796년 군목제가 시작되면서 살인하게 되는 군인들의 양심을 달래주는 종교인들이 등장합니다. 죄의식을 덜어주고, 내세의 축복을 보장하면서 일종의 정신무장을 시켜주는 것입니다. 미국 남북전쟁 때는 심지어 같은 교파 신부가 상대진영에서 활동하면서 군인들을 위로해주었다니 군목제도라는 것이 모순덩어리인 것 같습니다.

      이와 동시에 제도종교의 바깥에서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평화개념을 만들어냅니다. 센피아르 신부, 루소, 칸트로 이어지는 평화의 계보는 근대에 확실히 뿌리내리게 됩니다. 박노자 교수님은 칸트의 영구평화론은 혁명적 민주주의였다고 전해주었습니다. ‘모든 나라들이 진정한 민주공화국이 될 때, 다수는 전쟁을 반대할 것이다. 그러면 평화로운 세상이 올 것이다라는 발상입니다. 칸트 이후로, ‘가능성으로서의 평화에 대한 이야기가 꽃피우고, 각 지역에서 평화협회가 발족되는 등등 평화운동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 평화운동은 제도교회와 별도로 시작되었으며, 평화운동이 제도교회에 미미한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코 종교 스스로 평화주의를 시작하교 발전시킨 것이 아니었습니다.

      20130715_박노자특강 (4)

      △ 질의응답시간의 참여자들 (사진=아카데미느티나무)


      5. 베트남 전쟁 이전까지

      짧은 휴식시간을 보내고박노자 교수님은 다시 목소리를 높여 강의를 이어갔습니다그리고 앞으로 이야기를 나누어 볼 20세기는 아주 끔찍한 시기였다고 강조하였습니다예를 들어유럽과 미국의 주류 교회들은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참전을 적극 지지하며 군목과 군신부들은 파견했는데이는 대다수의 종교인들이 전쟁 반대에 대한 감수성을 거의 가지고 있지 못했다는 것이지요물론 2차 세계대전 당시독일 안에서는 파시스트 군대에 군목을 파견하는 협력하는 교회’, 이와 다른 길을 가는 본 회퍼 목사의 고백하는 교회의 저항운동도 있었으나 이마저도 근대적 의미의 평화주의와 다소 차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주류 종교계의 이런 행보와는 달리이 시기에 극소수의 주류종교인과 몇몇 종파에서 병역거부가 있었습니다퀘이커멘노나이트와 같은 평화교회는 병역거부를 신청하고 대체복무제를 얻어냈습니다벤 살몬이라는 천주교 병역거부자도 있었습니다만고된 옥살이로 폐렴에 걸려 요절했습니다대체로 이런 소수 종교인들은 전쟁불참에는 적극적이었으나 전쟁과의 투쟁에는 소극적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오히려 미국 사회당 당수였던 유진 댑스는 전쟁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10년형을 선고받았으며인간 이성에 대한 존중의 의미로서 전쟁을 반대했던 영국의 버트란트 러셀도 여러 고초를 겪는 등 비종교인들의 인도주의가 빛을 발했던 것 같습니다.

       

      6. 종교 평화주의 발전이 가능한가?

      본격적으로 전쟁반대론이 등장한 것은 베트남전쟁 시기였습니다전쟁반대를 외치는 급진주의자들의 사상과 운동에 종교인들이 편승하면서 주류 종교계에서도 전쟁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지요박노자 교수님은 교회 스스로 변화한 것이 아님을 재차 강조하였습니다먼저 세속적인 급진주의 세력이 평화운동을 시작했고이러한 밑으로부터의 압력이 있었기 때문에 70년대 이후로 주류 종교계가 평화를 외치게 된 것입니다불교로 개종하는 대부분의 서방 평신자들은 평화주의자였으며이들의 평화의식이 승려들에게 영향을 끼쳐 이제는 불교가 평화종교로 알려지게 되는 것이 비슷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수님에 따르면종교 평화주의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종교와 국가가 대립각을 세워야 하는데주류 종교계에게는 매우 부담스러운 요구조건이라고 합니다남미아프리카 신자들의 의향을 반영하면서 서방국가의 이라크 전쟁에 반대의견을 표했던 요한바오로2세 교황의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그는 이라크전쟁은 정당한 전쟁이 아니라고 규정하였으나교황청은 서방국가와의 갈등을 원치 않기 때문에 천주교 신도들에게 전쟁불참을 호소하지는 않았습니다기득권세력과 다수의 신자들의 눈치를 보는 이런 모순적-중간적인 입장은 종교 평화주의가 국가와의 갈등을 넘어서지 못하는 예가 되겠습니다.

      결론은 종교를 믿는 신자들이 평화를 지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입니다평신도들이 그들의 종교와나아가 세계를 바꾼다는 의미입니다박노자 교수님은 종교가 비제도종교적인 원인으로 평화지향적으로 바뀐 것즉 대중들의 힘을 강조하면서 오늘의 강의를 마쳤습니다. ‘한국 종교와 군사주의 유착의 역사와 현실에 대해 공부하는 2강이 기다려집니다.


      글: 자원활동가 이나단 / 편집 : 천웅소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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