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정보
강의소개 |
날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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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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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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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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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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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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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렁에 빠진 한국경제와 재벌
- 재벌 보호의 대상인가 성장동력인가
- 재벌 중심 한국경제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 신자유주의를 등에 업고 강화된 재벌, 재벌개혁의 불가피성
- 국민경제에서의 재벌의 기여, 활용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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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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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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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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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개혁, 왜 실패했나
- 역대 정권의 재벌개혁 시도와 실패의 역사, 그 원인
- 사법기관 정치권력 관료사회 압도하는 재벌과 경제권력
- 재벌개혁 실패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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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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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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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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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지배구조, 어떻게 바꿀 것인가
- 한국 재벌의 기형적 지배구조, 총수지배의 문제
- 순환출자, 출총제 문제, 금산분리 문제와 그 개선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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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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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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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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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퍼주기에서 공생의 경제로
- 수출보조금, R&D 재원 집중지원 등 재벌보호 정책 비판
- 초과이익공유제, 유통재벌의 동네상권진출 규제 방안 등
중소상인 보호제도 검토(외국 사례 포함)
- 복지국가 이행을 위한 과제로서의 재벌개혁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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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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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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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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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 Show]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2012년의 선택
- 복지국가와 공생의 경제를 위한 재벌개혁, 경제민주화의 방향
- 대선정국의 재벌개혁, 경제민주화 논의의 한계와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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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5
['재벌 공화국을 넘어' 강좌 ⑤] 토크쇼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 2012년의 선택'
['재벌 공화국을 넘어' 강좌 ⑤] 토크쇼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 2012년의 선택'
"안철수 식 경제민주화, 사람 헷갈리게 해"
: 정치권-시민사회 경제 민주화 토크
프레시안 김덕련 기자
경제 민주화에 관한 이야기가 시민사회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나오고 있다. 이렇게 말이 무성한 만큼 경제 민주화 논의가 내실 있게 이뤄지고 있는 것일까?
정치권과 시민사회 인사들이 25일 저녁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이 문제를 놓고 머리를 맞댔다. 참여사회연구소,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프레시안>이 공동 주관하고 5.18기념재단이 후원하는 강좌 '재벌 공화국을 넘어'의 마지막 순서로 마련된 자리다. 김민영 참여연대 전 사무처장이 사회를 맡고 이종걸 민주통합당 의원, 이병천 강원대 교수, 이동걸 전 한국금융연구원장(한림대 객원교수), 김성진 변호사(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부위원장)가 토론자로 나섰다. 주최 측에서 새누리당 의원도 섭외했으나 일정이 맞지 않아, 민주통합당 의원만 참석했다.
새누리당, 경제 민주화 추진한다는 당 차원 의지 있나?
이 자리에서는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경제 민주화 방안의 적절성 및 실행 가능성 등이 논의됐다. 새누리당과 관련해서는 주로 당 차원의 추진 의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이종걸 의원은 "개별 의원들이 체계 없이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이며, 후보에게 집중돼 관련 정책들이 준비되는 것 같지는 않다"고 평가했다. 이 의원은 "출자총액제한제, 금산분리, 순환출자 금지 등에 대해 새누리당의 몇몇 의원이 당론으로는 아니고 개별적으로 제출했고, 우리와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면서도 당 차원에서 "추진하려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법안과 관련해서는 대선 때까지 서두를 게 없다는 기조를 유지하는 듯하다"는 게 이 의원의 판단이다.
이동걸 전 원장은 "총선 이후 박근혜 후보 입에서 직접 나온 건 '신규 순환출자 금지' 딱 하나"라며 "내용이 매우 빈약하다"고 말했다. 또한 "새누리당에서 말하는 경제 민주화의 대전제는 기득권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이는 "본질은 놔두고 곁가지만 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제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재벌을 중심으로 뭉친 언론, 지식인, 관료 등 특권 카르텔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새누리당이 이 부분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와 관련, 김성진 변호사는 "특권 카르텔에 대항하고 경제 민주화를 이루기 위한 연대기구가 '경제 민주화와 재벌 개혁을 위한 국민운동본부'('경제 민주화 운동본부')"라고 말했다. '경제 민주화 운동본부'는 바로 이날 출범했으며, 전국에서 500여 단체가 함께할 뜻을 밝혔다. 김 변호사는 '경제 민주화 운동본부'가 3대 분야(시장, 일자리, 경제력 집중과 조세 정의)에서 13대 과제를 추진한다며 각각의 내용을 소개했다.
이 전 원장은 새누리당 내 경제민주화실천모임('경실모')과 관련해 "경실모가 낸 법안 중에는 '일감 몰아주기 규정을 어기면 계열 분리를 시키겠다'는 등 상당히 급진적인 것도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새누리당 쪽 실천 의지에는 의문을 표했다. 이 전 원장은 "지금 상태에서 '경실모'가 급진적으로 나오는 건 정치 전략 수준이며, 실제로 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고 말했다.
"민주통합당, 우선순위와 전략 정해야"
민주통합당에 대해서는 전략이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의원은 "민주통합당의 경제 민주화 방안은 '내용이 풍부하긴 한데 무엇에 집중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며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반성이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전 원장은 "우선순위와 전략을 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병천 교수는 "백화점식인 것도 문제이지만 무엇보다 신뢰 문제가 크다"며 "(신뢰 문제에서는) 새누리당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제시된 여러 경제 민주화 방안 중 "현재 조건에서 재벌을 규율하는 데 가장 파장이 큰 것이 무엇일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청중석에서도 민주통합당에 대한 주문이 나왔다.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은 "'새누리당 방안은 나쁘고 우리 것은 좋다'는 식으로는 안 된다"며 "경제 민주화 관련 법안을 단 몇 개라도, 어떤 식으로든 10월에 통과시킬 것"을 민주통합당에 주문했다. "그래야 국민들이 진정성을 조금은 믿어줄 것"이라는 말이다.
한편 안철수 후보와 관련해 이 전 원장은 "조금 더 지켜봐야겠다"고 말했다. "큰 방향은 민주통합당과 그리 다르지 않은데, 출마선언을 할 때 사람을 헷갈리게 해 앞으로 뭐가 들어갈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안철수 후보 측에 합류한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 이 글은 프레시안((www.pressian.com) 기사입니다.
아카데미 느티나무 강좌 '재벌공화국을 넘어'
참여사회연구소,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프레시안은 8월 28일 부터 총 5회에 걸쳐 아카데미 느티나무 강좌 '재벌 공화국을 넘어'를 엽니다. 한국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전망하면서 재벌개혁은 왜 필요한지, 재벌에 대한 인식과 개혁방향을 둘러싼 논쟁 지점들은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또한 보수 정치세력이 말하고 있는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에 관한 주장의 허구성과 한계는 무엇인지, 재벌독식이 아닌 공생의 경제로 나가기 위한 방안들을 살펴봅니다.
<강좌 순서>
1. 8월 28일 : 수렁에 빠진 한국 경제와 재벌(정태인) 보기>>
2. 9월 4일 : 재벌 개혁, 왜 실패했나(이병천) 보기>>
3. 9월 11일 : 재벌 지배 구조, 어떻게 바꿀 것인가(이동걸) 보기>>
4. 9월 18일 : 재벌 퍼주기에서 공생의 경제로(김남근)
5. 9월 25일 : 토크쇼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 2012년의 선택'
일시 : 2012. 8.28 ~ 9. 25 (화) 총 5회 오후 7시 ~ 9시 30분
장소 : 참여연대 느티나무홀
수강비 : 5만원(참여연대 회원 50% 할인)
주관 : 참여사회연구소,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프레시안
후원 : 5.18기념재단, 경제민주화시민연대
['재벌 공화국을 넘어' 강좌 ④] 김대중ㆍ노무현도 못한 '서민의 호민관', 이제 누가?
['재벌 공화국을 넘어' 강좌 ④] 김남근 참여연대 집행위원회 부위원장(변호사)
김대중ㆍ노무현도 못한 '서민의 호민관', 이제 누가?
장흥배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간사
경제정책에서 시장자율과 규제완화를 외쳤던 제 세력과 집단이 이구동성으로 자신들 주장의 근거로 든 것을 하나 꼽으라고 하면? '글로벌 스탠더드'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재벌공화국을 넘어' 네 번째 강좌를 진행한 김남근 변호사가 설명한 선진 각국의 생생한 정책 사례들을 살펴보면 무엇이 진짜 '글로벌 스탠더드'인지, 이 말이 경제적 기득권을 옹호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는지 의심이 갈 만하다.
지난 9월 18일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참여사회연구소,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프레시안>이 공동 주관하고 5.18기념재단이 후원하는 강좌 '재벌 공화국을 넘어'의 네 번째 강연을 김남근 변호사가 진행했다. '2012년 국회에서 추진해야 할 경제민주화의 과제'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강연에서 김 변호사는 선진 각국이 중소기업과 중소상인, 노동자를 보호하는 규제의 측면에서 본다면 "시장자율이 아니라 규제가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강조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글로벌 스탠더드를 얘기할 때 그 기준은 미국이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대형마트는 거의 도시 외곽에 있다. 월마트는 아직 뉴욕에 진출하지 못했고 시카고에만 1호점이 있다. LA에는 매장 규모를 5분의 1로 줄여서 진출하려고 했지만 결국 못했다. 대형마트가 들어설 경우 끼치는 영향에 대한 평가제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글로벌 스탠더드이다."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은 선진 각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
서유럽은 도시계획적 측면에서 대형마트 입점을 규제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독일의 경우 상업지역에만, 그것도 주변상인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매출영향가제 규제를 통과한 경우에만 대형마트가 들어설 수 있다"면서 "프랑스도 지역 상인들이 절반 이상의 위원을 차지하는 상업위원회가 영향평가제를 실시하는 방식으로 규제를 한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경우 대형마트 규제정책에 대해 미국의 대형마트가 국제소송을 걸어 규제법을 폐지한 대신 환경영향평가제를 도입해서 대형마트 입점을 규제하고 있다. 교통체증과 소음 등의 규제에 다 걸리기 때문에 사실상 허가제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교통과 지역상권에 끼치는 영향을 봤을 때 "지금 합정동에 홈플러스가 들어서는 것은 외국에서는 상상하기도 어렵다"고 한국의 실정을 비판했다.
선진 각국은 FTA나 WTO 위반 시비를 피하기 위해 대형마트 규제정책의 표면적 이유로 지역상권이나 중소상인 보호 대신 도시계획과 환경, 노동권 보호 등의 공익적 목적을 내세우고 있다. 이 같은 목적의 규제에 대해 FTA나 WTO 위반 시비 사례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중소기업 보호정책에서도 글로벌 스탠더드는 우리가 아는 것과 다르다. 독일, 일본은 경제적 약자인 중소기업의 처지를 고려해 공동납품, 공동판매, 공동연구개발 등의 공동행위를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공정거래법상 공동행위는 담합으로 처벌을 받는다. 공정위의 인가를 받는 경우에는 예외가 인정되지만 지금까지 이 인가를 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
"대기업이 시장을 장악하다보니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는 대부분 하청구조의 형태를 취한다. 내가 '중소기업들은 1년에 한 번씩 납품단가 후려치기를 당한다'고 토론회에서 얘기를 했더니 어떤 중소기업 사장이 항의전화를 했다. 1년에 한 번이 아니라 분기별로 당한다고. 재벌대기업이 장악한 시장에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공정거래법 19조를 개정해 중소기업이 가격, 판매, 납품, 연구개발 등에서 단결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
볼보자동차와 쌍용차 정리해고의 차이
김 변호사는 역대 정부가 고용유연화를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외쳤지만 이것은 절반의 진실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EU 차원의 법정근로시간은 연장근로시간까지 포함해서 1주 48시간"이라며 "한국의 법정근로시간은 1주 40시간인데 연장근로시간까기 포함하면 1주 52시간이고, 연장근로시간을 계산할 때 휴일근로는 빼는 꼼수를 부린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정리해고제도 하나만 보더라도 한국이 선진 각국의 기준에서 얼마나 멀리 있는지도 설명했다.
"선진 각국은 기업의 해고 회피 노력이 제도화되어 있다. 가장 많이 쓰는 방식은 조업단축이다. 폭스바겐은 5교대제를 실시했다. 당연히 기업이 지급하는 임금은 줄었지만 임금의 50%는 정부가 지원했다. 프랑스는 정리해고에 대비해 전직지원계획이라는 일종의 '소셜 플랜(social plan)'을 둔다. 이 계획에 대해 노동부가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이 계약의 일부로서 기업은 직업훈련기관과 미리 계약을 맺어 해고 시에 실질적인 직업훈련을 받도록 한다. 스웨덴 볼보자동차가 2008년 2000명의 정리해고계획을 발표했을 때와 한국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 과정을 비교해보면 쌍용차 노동자들이 77일간의 격렬한 저항을 했던 이유가 설명된다."
김 변호사는 노동시장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명분으로 진행된 정책들의 허구성을 "고용유연화는 세계의 첨단을 달렸지만 고용 안정화는 걸음마도 떼지 못한 상태"라는 진단으로 요약했다.
이날 강연은 '왜 지금 경제민주화인가?', '어떻게 경제민주화를 해야 하는가?', 그리고 '경제민주화를 위한 정책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라는 순서로 진행됐다.
아래는 전체 강의의 대강이다. 경제민주화의 구체적인 정책 설명은 생략했다.
왜 경제민주화인가?
김영삼 문민정부가 내건 기치가 관치경제 극복이었다. 과거에는 물가가 많이 오르면 중앙정보부가 해결했다.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하면 사채동결 방식으로 해결했다. 더 이상 그런 방식이 작동하기 어려워지자 관치경제 극복이라는 구호가 나온 것이다. 그때는 (경제민주화가 아니라) 경제자유화가 목표였고, 세계적으로도 그런 분위기였다. 규제를 악으로 보았다.
과거에는 대기업들이 동네상권까지 들어오고 문구, 공구, 빵집을 다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부동산 정책을 보더라도 그렇다. 분양에서 무주택자 우선이었다. 유신시대에 분양가 상한제는 '강남이든 강북이든 평당 100만 원만 받아라' 그러면 다 100만 원이었다. 김대중 정부 들어와서 시장자율이라는 모토 아래 무주택자 우선분양제와 분양가 상한제가 폐지됐다. 이후 7년 동안 분양가가 4배 이상 폭등했다.
과거에는 기간제, 파견제, 사내하도급 형태의 비정규직이 거의 없었다. 일본식 평생고용에 가까웠다. IMF 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가 이런 비정규직 형태를 다 허용했다. 그랬더니 10년 동안 비정규직이 전체 고용인구의 절반을 넘었고, 청년의 정규직 취직이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
부동산 규제, 노동시장 규제, 중소상인·중소기업 보호 규제를 다 풀다보니까 결국 재벌이 독식하는 세상이 돼버렸다. 정부가 서민의 호민관 역할을 포기하니 시장독식으로 가버린 것이다. 20년 동안 경제를 이렇게 운용해봤는데, 이 방식은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과거의 중산층과 안정 노동자들이 신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소비자들도 독과점 시장에서 세계적으로 높은 물가를 부담하게 됐다.
이걸 근본적으로 바꿀 때가 된 것이고 이것이 경제민주화 요구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과거 유신시대나 군사독재 시절의 방식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이명박 정부와 같은 정부냐, 이런 의문도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정치민주화, 남북평화 이런 정책들에서는 잘했다고 보는데 서민의 호민관 역할은 못했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경제 문제들의 근원을 살펴보면 대부분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그 뿌리가 닿아 있다. 10% 이자율로 서민들에게 대출하던 저축은행이 지금 이렇게 된 것은 김대중 정부의 부동산 PF 대출 허용, 2005년(노무현 정부) 제로베이스 규제 완화가 근원이다. 은행에서 키코(KIKO) 같은 위험한 통화옵션 상품을 팔게 해준 것도 그 뿌리들은 이전 정부에 있다.
다시 그런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국가가 필요하면 시장에 개입하고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며 복지국가를 하자는 것이 새로운 기조이고, 이렇게 20년 체제를 바꾸자는 것이 경제민주화 요구로 나타나고 있다.
어떤 분야에서 경제민주화인가?
민주노총, 참여연대, 새사연, 중소상인 단체 등이 모인 경제민주화시민연대(준)라는 단위에서 경제민주화의 과제를 3대 분야, 12대 과제로 정리했다.
첫 번째가 시장에서 경제민주화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는 견제와 균형이다. 재벌대기업의 독식에 대항해 중소기업, 중소상인, 소비자, 노동자에게도 대항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자는 것이 시장 민주화다. 두 번째는 일자리 민주화다. 노동관계에서도 재벌대기업이 우위에 서다보니까 온갖 형태의 비정규직이 남발되고, 정규직은 정리해고에 시달리고,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하는 상태다.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청년에게 일자리가 돌아가게 일자리를 나눠야 한다. 그런 면에서 현대차노조가 주야 2교대제를 3교대제로 바꾸자고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이것만으로도 일자리가 1만 개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비정규직의 지위를 올려서 기업이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유인을 없애는 정책도 시급하다. 세 번째는 재벌대기업에 의한 경제력 집중을 막고 해소하는 경제민주화다.
어떤 방식의 경제민주화인가? 상생과 동반성장에서 제도적 재벌 규제로
상생이나 동반성장이라는 용어의 배경에는 재벌을 법과 제도로는 규제할 수 없다는 시장자율, 자유시장의 철학이 있다. 노무현 정부 때 시민단체가 정당과 관료들에게 재벌 규제를 주장하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런 배경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상생이다. 문제는 재벌이 상생 같은 듣기 좋은 말만 가지고는 상생의 의지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생이라는 이념적 도그마의 전형이 사업조정제도다. 대중소기업 상생촉진법에 따라 중소기업이 사업조정을 신청하면 대기업에 사업진행의 일시정지 권고를 하고, 1년 동안 조정해서 조정명령을 내리는 것이 핵심이다. 최근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 사례를 보면 중소기업청장이 홈플러스에 대해 입점을 일시 정지하라는 권고를 했는데, 따르지 않았다. 제재수단이 없으니 무시해 버리는 것이다. 그 결과 상생에서 사업조정 결과라고 나온 게 뭐냐면, 서울시에서 SSM이 소주, 쓰레기봉투 따위를 팔지 말라고 한 것이었다. 제재수단도 없는 이 권고를 하기 위해 1년 동안 논의를 질질 끌어왔다.
이명박 정부의 동반성장위원회는 민간자율기구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불러서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을 하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신사협정을 맺게 하는 방식이다. 이미 진출한 것은 사업이양권고를 한다. 그런데 대기업이 따르지 않더라도 제재수단이 없다보니 지난해 중소상인 적합업종 품목 지정 논의를 꺼내기만 하고 시작도 못했다. 결국 상생과 동반성장이 가능하기 위해서도 재벌대기업에 대한 법적 제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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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느티나무 강좌 '재벌공화국을 넘어'
참여사회연구소,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프레시안은 8월 28일 부터 총 5회에 걸쳐 아카데미 느티나무 강좌 '재벌 공화국을 넘어'를 엽니다. 한국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전망하면서 재벌개혁은 왜 필요한지, 재벌에 대한 인식과 개혁방향을 둘러싼 논쟁 지점들은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또한 보수 정치세력이 말하고 있는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에 관한 주장의 허구성과 한계는 무엇인지, 재벌독식이 아닌 공생의 경제로 나가기 위한 방안들을 살펴봅니다.
<강좌 순서>
1. 8월 28일 : 수렁에 빠진 한국 경제와 재벌(정태인) 보기>>
2. 9월 4일 : 재벌 개혁, 왜 실패했나(이병천) 보기>>
3. 9월 11일 : 재벌 지배 구조, 어떻게 바꿀 것인가(이동걸) 보기>>
4. 9월 18일 : 재벌 퍼주기에서 공생의 경제로(김남근)
5. 9월 25일 : 토크쇼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 2012년의 선택'
일시 : 2012. 8.28 ~ 9. 25 (화) 총 5회 오후 7시 ~ 9시 30분
장소 : 참여연대 느티나무홀
수강비 : 5만원(참여연대 회원 50% 할인)
주관 : 참여사회연구소,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프레시안
후원 : 5.18기념재단, 경제민주화시민연대
['재벌 공화국을 넘어' 강좌 ③] "박근혜, 재벌의 은행 지배가 경제민주화인가?"
['재벌 공화국을 넘어' 강좌 ③] 이동걸 전 한국금융연구원장
"박근혜, 재벌의 은행 지배가 경제민주화인가?"
김덕련 프레시안 기자
"대한민국이라는 조그만 연못에 '30마리의 고래(30대 재벌)'가 붐벼 작은 생선들이 살 수 없는 상황이다. 고래들이 다 죽여 버려 서민들이 먹고살기 점점 힘들어지고 중소기업이 크지 못하며 (좋은) 일자리가 안 생기고 자영업자가 엄청나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동걸 전 한국금융연구원장은 11일 '재벌 지배구조,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주제로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한 강연에서 현재 상황을 이렇게 진단했다. 참여사회연구소,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프레시안>이 공동 주관하고 5.18기념재단이 후원하는 강좌 '재벌 공화국을 넘어'의 세 번째 강연이었다.
이 전 원장은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한 탓에, 임기를 절반밖에 못 채우고 2009년 한국금융연구원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관련 기사 : "이건희를 건드리니, 주변이 온통 적이 됐다"). 지금은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 전 원장은 이날 "재벌 지배구조의 핵심 문제는 외적 무한팽창과 내적 1인 수렴 성향"이라고 말했다. 10대 재벌 총수가 순환출자 등을 통해 "1.1원으로 53.5원의 내부지분율을 지배하는 구조"를 만들었고, 그 결과 총수에게는 이익이 되지만 국민에게는 손해를 끼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전 원장은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불공정거래 행위, 담합, 일감 몰아주기 등 재벌의 문제점을 비판한 후, "재벌 총수는 지배구조에 대한 도전이 들어오면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며 삼성 상속 소송을 예로 들었다.
"이맹희 씨가 이기면 삼성의 지배구조가 무너진다. 이건희 회장이 공개석상에서 형에게 몰이성적인 이야기를 한 것도 그 때문이다. 지배구조에 대한 도전을 받으면 그렇게 된다."
총수 1인 지배체제에서 벌어지는 형제 간 다툼은 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 이 전 원장의 판단이다. 또한 이 전 원장은 재직 시절 삼성그룹 등과 접했던 때의 경험을 소개하며 "삼성그룹은 대한민국의 중요한 자산인데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능력을 발휘해 성과를 낸 사람이 아니라 총수 일가의 세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작업을 한 사람이 그룹의 2인자로 인정받고 (…) 10명이면 10명 다 총수에게 아부하며 충성 경쟁을 하는 체제다. 위기가 닥쳤을 때 컨트롤할 능력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접하면서) '위기를 맞으면 이 기업은 망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전 원장은 기업에 대한 조세 지원이 재벌에 편중돼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2010년 조세 지원액을 살펴보면, 중소기업 지원액을 다 합쳐도 삼성그룹 지원액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이 전 원장은 "재벌에 의한 '이익 사유화, 비용 사회화' 구조가 고착되면서 경제가 실질적으로 재벌 사회주의화하고 있고, 재벌이 각종 특혜 지원을 독식하고 그것에 의존하는 재벌 복지병이 심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계열 확장은 이명박 정부 들어 더 심해졌다. 금산분리 완화 정책도 그 원인 중 하나다. 이 전 원장은 "피감시자(산업자본)가 감시자(금융자본)를 소유·지배해 시장경제 기능을 마비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보수 운동의 아교는 돈…재벌 개혁, 기득권 구조 전반의 개혁과 함께 가야"
이 대목에서 이 전 원장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도 비판했다.
"박근혜 후보는 자신이 5년 전 말한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가 경제 민주화(와 맥을 같이하는 것이)라고 한다. '줄푸세'는 강자의 논리를 대변하는 것인데, 워낙 창의적인 분이셔서…. 박 후보는 5년 전 금산분리 완화, 산업자본 즉 재벌의 은행 지배를 허용하자는 쪽이었다. 박 후보에게 꼭 묻고 싶다. 재벌이 은행 지배하는 게 경제 민주화인가?"
박근혜 후보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금산분리 완화 등 재벌 친화적 경제 정책을 주장한 점에서는 이명박 후보와 별 차이가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줄푸세'는 재벌 개혁을 중요한 축으로 삼는 최근의 경제 민주화 논의와는 결이 다른 주장이었다.
이 전 원장은 재벌 체제를 비호하는 관료, 언론, 보수 지식층 등으로 비판 대상을 넓혔다. 이 전 원장은 "보수주의 운동의 아교는 돈이다"라는 미국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의 말을 인용해 이 세력을 비판했다. 재벌이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기득권 카르텔을 공고하게 구축하고, 돈맛에 취한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지적 속임수"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전 원장은 "재벌을 비판하면 빨갱이라고 한다"며 "내가 아는 건 미국 경제학인데, 그럼 미국 경제학이 빨갱이(들의 주장이)라는 건가"라고 되물었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재벌 지배구조 개혁은 한국 사회 기득권 구조 개혁 작업과 함께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 이 전 원장의 생각이다.
이 전 원장은 헌법 119조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도 의견을 밝혔다. 119조 2항은 경제 민주화의 근거 조항으로 거론된다. 이와 달리 재벌 체제를 옹호하는 이들은 '개인과 기업의 경제적 자유와 창의'를 규정한 119조 1항을 강조한다. 이에 대해 이 전 원장은 "재벌 체제는 119조 1항을 침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전 원장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금융 시장에서 자금을 모아 성공하는 미국의 구글이나 애플 같은 사례가 최근 한국에 있나"라는 질문을 던졌다. 재벌 체제 때문에 그런 기업이 생겨날 수 없는 게 오늘의 한국이라는 것이 이 전 원장의 생각이다. 헌법 119조 2항 이전에 1항부터 재벌 체제가 막아서고 있다는 판단도 이와 관련 있다.
이 전 원장은 "중소기업->중견기업->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좋은 일자리가 많이 창출되는데, 한국에서는 중소기업이 성장하기가 매우 어렵다"며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려면 건강한 기업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이 전 원장은 지난 몇 년 사이에 베스트셀러 저자로 떠오른 김난도 서울대 교수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김 교수를 욕할 생각은 없지만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읽고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다. 사회가 문제인데, 개인에게 '네 탓이니 너만 잘해라'라고 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지금은 사회를 바꿔야 할 때다. 고쳐야 할 것 중 하나가 바로 재벌 문제다."
* 이 글은 프레시안((www.pressian.com) 기사입니다.
아카데미 느티나무 강좌 '재벌공화국을 넘어'
참여사회연구소,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프레시안은 8월 28일 부터 총 5회에 걸쳐 아카데미 느티나무 강좌 '재벌 공화국을 넘어'를 엽니다. 한국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전망하면서 재벌개혁은 왜 필요한지, 재벌에 대한 인식과 개혁방향을 둘러싼 논쟁 지점들은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또한 보수 정치세력이 말하고 있는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에 관한 주장의 허구성과 한계는 무엇인지, 재벌독식이 아닌 공생의 경제로 나가기 위한 방안들을 살펴봅니다.
<강좌 순서>
1. 8월 28일 : 수렁에 빠진 한국 경제와 재벌(정태인) 보기>>
2. 9월 4일 : 재벌 개혁, 왜 실패했나(이병천) 보기>>
3. 9월 11일 : 재벌 지배 구조, 어떻게 바꿀 것인가(이동걸)
4. 9월 18일 : 재벌 퍼주기에서 공생의 경제로(김남근)
5. 9월 25일 : 토크쇼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 2012년의 선택'
일시 : 2012. 8.28 ~ 9. 25 (화) 총 5회 오후 7시 ~ 9시 30분
장소 : 참여연대 느티나무홀
수강비 : 5만원(참여연대 회원 50% 할인)
주관 : 참여사회연구소,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프레시안
후원 : 5.18기념재단, 경제민주화시민연대
['재벌 공화국을 넘어' 강좌 ②] "안철수 할아버지가 집권해도 봉착할 문제는 바로…"
['재벌 공화국을 넘어' 강좌 ② : 이병천 강원대 교수]
"안철수 할아버지가 집권해도 봉착할 문제는 바로…"
장흥배 참여연대 시민경제위 간사
"재벌 개혁 과정에서 분배정의와 민주적 참여는 어디로 실종해 버렸나? 이것이 문제에 대한 나의 물음이다. 지난 시기에는 재벌 개혁이 실질적 경제민주화와 분리되거나, 경제민주화 자체가 공정경쟁시장 수립이라는 경쟁절차 문제로 좁혀졌다. 공정경쟁시장이나 소액주주권의 문제만이라면 공정거래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고, 굳이 헌법 119조 경제민주화 조항을 끌어들일 필요도 없는 것 아닌가?"
재벌 개혁이 곧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극복하면서 민생을 살리는 실질적 경제민주화를 위한 길이 되기 위해서는 절차적인 공정경쟁시장을 수립하는 과제와 함께 반드시 실질적인 분배정의, 민주적 참여도 그 필수적 과제로 제기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이병천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가 지난날은 물론, 현재의 재벌 개혁과 경제민주화 논의에 대해 하고 있는 기본 생각이다.
4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이병천 교수가 '재벌 개혁, 왜 실패했나?'를 주제로 강연했다. 참여사회연구소와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프레시안>이 공동 주관하고 5.18기념재단이 후원하는 강좌 '재벌 공화국을 넘어'의 두 번째 강연이었다.
이 교수는 "분배정의 및 참여경제 그리고 공정경쟁은 재벌 개혁에서 불가결한 이중과제이며, 이 실질적, 절차적 이중과제를 어떻게 통합적으로 파악하면서 개혁 운동을 전개할 것인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그간 정치권 그리고 시민운동의 재벌 개혁은 절차적인 공정경쟁 수립 문제를 중심에 둠으로써 재벌 개혁을 (구)자유주의적 과제로 좁혔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재벌이 독점-독식하는 특권적 시장경제체제에서 공정경쟁은 분명히 중요한 역사적 과제"라면서, "그러나 분배정의와 참여경제를 빼놓고 재벌 개혁과 경제민주화를 얘기하면, 민주화 시대까지 이어진 선성장 후분배 시대에 국민적 지원과 희생을 통해 오늘날 세계적 반열까지 올라선 재벌의 사회적, 역사적 책임이 기억에서 지워지게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대목에서, 이 교수는 공정경쟁시장 수립이나 소액주주권 중심의 재벌 개혁 정책과 운동의 한계를 비판하고 보편적 복지국가 수립을 주장하는 장하준 교수의 생각에 동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이 교수는 "장하준 교수는 놀랍게도 신자유주의 지배체제에서 재벌을 빼놓는다"는 말로 장 교수에 대한 자신의 비판점을 압축했다. 한국식 신자유주의 양극화체제에서 소수 재벌이 그 지배체제의 정점에 자리 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 교수는 이 지배체제에서 재벌을 빼내고 복지국가를 위해 '대타협'을 해야 한다고 공허하게 외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강의 주제인 재벌 개혁의 실패 원인과 관련, 분배정의와 참여경제의 문제를 밀어낸 '개혁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인식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이 교수는 "1997년 이후 민주개혁정부는 분배정의와 참여경제 확립을 자기 과제로 삼지 않았으며 공정경쟁 수립과제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면서, "그래서 비틀거렸는데도 지금 민주통합당은 철저한 자기반성을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추진과 IMF 환란 자초, 김대중 정부 집권 후반기 재벌 개혁의 완연한 후퇴, 그리고 노무현 정부와 삼성 재벌의 밀월 등은 보수세력에 포위된 '민주 정부'의 객관적 조건과 함께, 중도 자유주의 정권 자체에 내재된 자기 한계도 동시에 보여주는 교훈적 사례들이다.
앞으로 전개될 상황에 대해 이 교수는 아래와 같이 봤다.
"지금은 재벌 개혁의 실패냐 성공이냐, 이런 이분법적 상황은 아닌 것 같다. 한참 '줄푸세' 정책을 얘기하던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조차 지금 경제민주화를 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적어도 부분적인 소개혁은 이뤄질 것 같고, 그래서 지금은 성공이냐 실패냐보다는 재벌 개혁이 어느 정도 폭과 깊이로 될 것이냐, 이렇게 가고 있는 것 같다. 세계적으로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있었고, 내부적으로는 이명박 정부의 역주행이 워낙 민생을 파탄으로 내몰았고 나라경제를 망쳐놓아서 민심이 영 좋지 않다. 이런 상황 때문에 재벌 개혁도 조금은 진행될 것 같다. 그러나 부분적인 소개혁 정도로 신자유주의적 양극화 구체제가 극복될 수 있을지, 그래서 더불어 사는 선순환 선진경제로 갈 수 있을지, 이게 문제다."
이 교수의 이번 강의는 개발독재의 유산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여, 재벌 개혁의 실패라고 하지만 "어떤 실패인지"하는 문제로 넘어가,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로 끝을 맺었다.
아래는 전체 강의의 대강이다.
민주화 시대에 어떤 일이 일어났나
- "길들이기에는 너무 강한 괴물" 그리고 허약한 개혁정부
먼저, 개발독재의 유산으로서 재벌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재벌의 힘은 워낙 강고하고 강력한 반면 이에 대한 개혁의 힘은 취약한 것이 우리가 처한 엄중한 역사적 조건이 되었다. 우리는 대마불사(too big to fail)라는 말을 많이 한다. 2008년 위기 이후 월가 점령운동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미국 월가의 금융권력이 한국 재벌의 위치와 비슷하다. 대마불사는 대자본이 지배하는 시장경제에서 늘 부딪히는 문제다. 잘못하면 책임지고 퇴출되어야 하는 것이 공정경쟁시장의 기본 원리다. 그렇지만 한국 재벌의 경우, 대마불사도 불사지만 오히려 "길들이기에는 너무 강하다"(too strong leviathan to get disciplined)라는 말이 더 적절해 보인다. 대마불사가 공정경쟁 시장의 관점에서 보는 말이라면, "길들이기에는 너무 강하다"라는 건 민주적 규율의 시각에서 보는 말이다.
우리 재벌은 개발독재 시기 특혜금융 등 온갖 방식의 정부 특혜를 누렸고, 자기 노력만으로 지금의 위치에 오른 것이 아니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성장방식은 국민, 정부, 재벌이 일종의 '불완전 계약' 상태에서 협력하여 파이를 키우는 식이었다. 그러나 그 공동 협력의 성과를 거의 재벌이 독식했고 민주화 시대에 후분배의 약속은 깨어졌다. 따라서 지금 재벌을 비판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재벌의 이익이 국민적 이익으로 연결되게, 국민적 이익 공유 메커니즘을 구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장하준 교수도 지적한 바지만, 그간 우리가 국민 대중의 지원과 희생으로, 피땀으로 재벌을 키웠는데 주로 외국자본이 달라붙어 그 이익을 챙겨간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런 문제의식은 나도 공유한다. 그러나 거기까지고 다음부터는 의견이 갈린다.
재벌을 길들인다는 것은 재벌을 민주적으로 규율하고 거듭나게 해 국민적 이익이 되도록 다시 제도적 틀을 짠다는 얘기다. 삼성재벌처럼 온갖 방법으로 국가기관이나 검찰을 마음대로 조정하고 구워 삼도록 놔둬선 안 된다. 제대로 작동하는 시장경제체제에서 재벌이 책임을 진다는 것은 잘못된 기업 활동에 대해 퇴출시켜야 한다는 의미도 있다. 그러나 삼성이 잘되는 것이 나라경제와 민생에도 좋은 일이 되게 재벌을 거듭나게 하는 것이 재벌 개혁의 기본목표가 되어야 하지, 삼성을 해체하는 것이 목표는 아니다. 이익을 독식하지 않고 국민적으로 공유하게 사회적 책임을 지우는 것이 기본 목표다.
그런데, 길들이기엔 너무 강고하고 강대한 재벌의 힘, 이것이 바로 개발독재의 유산이다. 박정희 체제는 마치 공룡과 같은 강력한 재벌권력과 경제력 집중 구조를 물려준 반면에, 노동계급과 민주적 시민사회의 성장은 억압하고 그 발언권을 통제했다.
재벌의 고삐를 잡아 길들이는 일, 다시 말해 재벌을 민주적으로 규율하는 일과 공정한 경쟁시장을 수립하는 것이 바로 재벌개혁의 이중 과제라 할 수 있다. 재벌의 이익이 노동자, 중소기업, 골목상권, 지역사회, 소비자 등 이해당사자들에게도 균점되게 하고, 나아가 이해당사자들이 열린 시장경제에 참여해 활동하게 실질적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 민주적 규율의 과제라고 한다면, 통상 언급되는 출자총액제한, 순환출자 금지, 금산분리 등은 공정한 경쟁질서와 관련된 과제들이다.
고삐가 풀려 마구 날뛰는 재벌의 고삐를 다시 잡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불편한 이야기지만, 재벌의 고삐를 잡는 데는 어쩌면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이 더 능력을 발휘했다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박정희 체제 아래서는 재벌에 엄청나게 특혜를 퍼줬지만 그것에 상응하는 대가도 요구했다. 수출을 잘못하면 퇴출하는 식으로 성과 규율을 강제했다. 그리고 오늘날의 공정거래법이 전두환 정권 시절에 만들어진 건 우리가 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는 재벌개혁의 과제를 수행함에 있어 곧 민주화 시대가 그만큼 허약했다는 뜻이다. 강력한 재벌 대 허약한 연성(軟性) 민주정부, 이것이 우리가 처한 역사적 조건이 되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봐도, 한국은 매우 특수한 역사적 상황에 놓여 있다. 스웨덴의 경우, 강한 노동과 재벌(발렌베리 그룹)의 타협 결과, 재벌시스템의 맨 꼭대기에 공익재단이 자리 잡고, 이 공익재단이 사회적 책임과 국민적 이익 공유 활동을 하게 됐다. 미국의 경우 노동세력은 전통적으로 힘이 약하지만 반독점 경쟁질서의 전통이 가장 강한 나라다. 그래서 루즈벨트가 주도한 뉴딜 개혁으로 강력한 반독점 개혁 관문을 통과했다. 그리고 미국도 스웨덴과는 다르지만 공익재단이 많이 발전했다. 재벌이 워낙 악행을 많이 저질렀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사회적 정당성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전후 미군 점령 하에서 외부의 힘으로 재벌이 해체됐다. 재벌체제가 가장 급진적으로 해체된 경우에 해당된다. 마지막으로, 동아시아에서 대만, 싱가포르는 국가 부문이 매우 크고 한국처럼 재벌이 독식하고 국민경제를 볼모로 잡는 문제가 없다.
민주화 시대에 재벌에 의한 국가기관과 시민사회의 포섭 및 지배 문제는 여러 말 필요 없이 김용철 변호사가 쓴 <삼성을 말한다>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삼성 X파일 사건이나 삼성 특검의 결말 등을 보면 생생하게 알 수 있다. 또, 재벌은 단지 힘으로만 밀어붙이는 게 아니다. 이른바 '경제위기'나 '경제 살리기' 이데올로기를 통해 개혁 노력을 무산시킨다. 그리고 재벌은 개혁정부를 길들이기 위해 투자 스트라이크를 벌이기도 한다. 파업은 노동자만 하는 게 아니라 자본도 한다. '자본파업'이라고 한다. 특히 경기가 침체할 때 혹은 선거국면에서 정부는 속이 터지고 재벌은 이 상황을 적절히 잘 활용한다.
시장개혁에 내재된 딜레마 - '전환의 계곡'
나는 1987년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시대에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실질적 내실을 확보하지 못하고 허약한 개혁정부로서 계속 비틀거렸다는 의미로 '물탄 민주주의' 혹은 '물탄 개혁'이라는 말을 쓴다. 개혁정부는 재벌과 보수세력의 압박에 밀리고 포위되었고, 이 상황에서 재벌은 대내적 자유화(규제완화), 대외적 자유화(무분별한 개방)를 끊임없이 요구했다. 김영삼 정부의 1997년 IMF 외환위기 자초, 김대중 정부 집권 말기의 재벌개혁의 완연한 후퇴, 노무현 정부와 삼성의 밀월 등이 이런 대표적 사례들이다.
그런데 이런 경과는 개혁정부가 밀려서 재벌에 발목이 잡혀 그런 부분도 있지만, 자기에 내재된 속성 때문에 그렇게 된 부분도 있다고 봐야 한다. 두 가지를 같이 봐야 한다. 그리고 관료 집단도 굉장히 무서운 조직이다. 한국경제를 다루고, 관리 운용하는 기본 정책 노하우를 이들이 다 장악하고 있다. 이런 기반 위에서 내각에 들어온 진보 학자들도 길들인다. 때로는 대통령의 지시조차 사보타주한다. 만약 민주통합당이나 안철수 교수가 집권한다 해도, 아니 안철수 교수 할아버지가 집권한다 해도 이 문제에 봉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민주개혁 정부는 신자유주의의 지배적 사조를 수용했다. 이 부분은 이제는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다. 규제완화, 자유화, 민영화, 개방이 세계를 풍미했고 우리도 그랬다. 경제민주화라기보다 경제자유화를 추구했다. 경제자유화도 단순하지는 않은데, 여기에는 일방적인 규제 완화, 주주자본주의 추구 그리고 공정경쟁 수립 등이 뒤섞여 있었다. 1997년 이후 개혁 정부의 준거 모델은 미국식 주주자본주의였다고 생각된다. 그 결과 서민대중의 개혁 에너지를 동원하기 어렵게 됐다.
그런데, 재벌개혁은 불가피하게 시장을 확대하는 개혁도 내포하고 있다. 이는 시장이 저발전된 상태에서는 시장을 더 키워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정글식 경쟁(자유방임경쟁)은 물론이지만 공정경쟁이라고 해도 시장경쟁을 심화시킨다. 그리고 시장의 확장이 곧 지속가능한 성장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국민들은 정치적 민주화가 이뤄져 살기 좋아지는 줄 알았는데, 말하자면 '밥 먹여 주는 민주주의'가 될 줄 알았는데, 경쟁만 심화되고 살기가 고달파졌다는 걸 알게 된다. 이 과정을 민주화 이행 및 공고화론에서 흔히 전환의 계곡 또는 눈물의 계곡이라고 부른다. 이런 상황에서 개혁정부에서 전형적으로 나오는 처방이 무리한 경기부양이다. 경제의 건강성을 망치는 일인데 그 유혹을 이기기 어렵다. 부동산 거품 띄우기, 금융규제완화, 신용카드 규제완화, 금리 인하 등이 그런 정책들이다. 또 이를 틈타서 재벌의 '경제 살리기'와 규제완화 공세가 벌어진다.
마지막으로, 절차적 민주주의 자체에 내재된 보수성 문제도 있다. 민주화 이후에는 재벌 개혁도 절차를 따라 진행해야 한다. 그러나 이 '민주적 절차'를 지키는 과정에서 당연히 힘세고 돈 많은 세력들의 목소리가 높을 수밖에 없다. 경제적 시장에도, 정치적 시장에도 강자의 목소리가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이 또한 흥미로운 '민주화 역설'의 한 부분이다.
시민운동도 분배 정의와 참여경제 과제를 전면에 제기해야
시민사회 운동의 흐름은 여러 갈래지만, 크게 보면 분배정의와 민주적 참여를 중심에 두는 흐름과 공정한 시장경쟁 또는 절차적 공정성을 중심에 두는 흐름으로 분화되어 왔다. 유종일 교수는 <경제 119>에서 경제민주화의 과제를 크게 공정경쟁, 참여경제, 분배정의라는 세 가지로 요약한 바 있다. 대개 한 가지만 거론하곤 하는데, 요점을 종합적으로 잘 정리했다고 본다. 그런데 우리가 분배정의와 참여경제를 실질적 경제민주화 과제라고 본다면, 공정경쟁은 절차적 경제민주화 과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경제민주화의 이 두 축을 어떻게 잘 가져가느냐, 이게 대단히 중요하다고 보는데, 이를 통합적으로 가져가는 일을 그간 시민운동도 잘한 것 같지는 않다.
경실련 창립 이래 참여연대를 포함하여 그간 시민단체의 재벌개혁 운동은 공정경쟁 수립 문제를 중심에 두어 왔다. 최근 김상조 교수는 <종횡무진 한국경제>라는 역작을 내놓았는데, 여기서 한국경제를 '신자유주의의 과잉과 구자유주의의 결핍' 상태로 진단하고 있다. 그러면서 후자에 초점을 두고 재벌개혁을 (구)자유주의적 과제로 좁히고 있다. 이에 대한 나의 질문은 '재벌 개혁에서 실질적 경제민주화의 과제, 즉 분배정의와 참여경제는 어디로 갔는가?' 하는 것이다. 재벌 개혁이 경제민주화와 단절되거나 경제민주화 자체가 공정경쟁의 수립 문제로 좁혀진 측면이 있다. 이것은 공정거래법으로 소화가 가능하고 굳이 헌법 119조를 얘기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공정경쟁 측면만 얘기하면 재벌이 그 정점에 자리하고 있는 사회경제적 양극화 체제 아래 서민, 노동자, 취약 중산층 등의 희생이 진행되고 있다는 진실이 희석될 것이다.
이 문제는 단지 내 얘기만은 아니고, 알고 보니 안철수 교수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안 교수는 "우리나라 재벌들은 물론 자신들의 노력도 있었지만 국가적으로 많은 자원을 몰아주고 노동자들이 희생했기 때문에 크게 성장할 수 있었죠. 그런데 재벌들은 모든 걸 제 스스로 이룬 것처럼 행동하면서 이익을 독식하고 사회적 책임을 지지 않았죠"라고 <안철수의 생각>에서 쓰고 있다. 적확한 지적이다. 그런데 오랫동안 참여연대의 재벌개혁운동, 경제민주화 운동은 양극화 체제를 주 타깃으로 삼지 않았고, 공정경쟁시장 수립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빈틈이 이제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운동 '시즌2' 국면에서 반성적으로 점검해야 할 기본적인 문제다. 나는 최근 발족한 '경제민주화와 재벌 개혁 시민연대'도 이런 문제의식을 깔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만, 오해해서는 안 되는데, 나의 지적은 공정경쟁 수립이 우리의 역사적 과제가 아니라는 말이 결코 아니라 어디까지나 반쪽 과제, 경쟁절차의 문제라는 의미다. 재벌 개혁에서 공정경쟁과 분배정의, 또는 절차적 경제민주화와 실질적 경제민주화는 병렬적으로 제기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 경제민주화 다시 말해 파이의 분배와 의사결정 참여에서 이해당사자 참여자본주의 수립과제를 중심에 놓고 거기에 공정경쟁 수립 과제를 결합하는 식으로 통합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민생고에 시달리는 서민 대중을 동원할 수가 없고 지금시기 진보 개혁세력의 최대 과제라 할 '민생연합'을 만들어 낼 수가 없다. 1997년 외환위기와 구조조정 이후 15년, 한국 경제 '97년 체제' 15년의 현 상황에서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하는 역사적 시점에 와 있다, 이것이 나의 생각이다.
또 실패하지 않으려면?
그런 생각에서 볼 때, 장하준 교수의 연구는 그간 공정경쟁이나 소액주주권 중심의 재벌개혁 운동이 갖고 있는 한계를 짚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의미가 크다. 그러나 장 교수는 놀랍게도 신자유주의 지배체제에서 재벌을 빼놓는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재벌이 휘두르고 있는 강대한 힘과 그 사회적 책임이 희석된다. 이렇게 해서, 한국경제 1997년 체제를 보는 대표적인 두 견해(김상조, 장하준)에서 모두 각각 다른 논리구조로 신자유주의 지배 또는 사회경제적 양극화 체제의 정점에 있는 재벌을 그 책임에서 면제시키고 있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민주개혁정부 역시 분배정의와 참여경제를 자기 과제로 삼지 않았다. 절차적 공정경쟁질서 수립과제마저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그래서 비틀거리고 민심이 떠난 것이다. 바로 이 대목에 대해 무겁고 통렬한 자기반성이 있어야 하는데, 정치적 이유가 있겠으나, 그런 자세를 보이고 있지 않다. 그래서 "진보의 실패가 박정희를 부른다"라는 말조차 나오는 것이다.
진보개혁 세력이 정권을 잡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줄푸세'가 계속 유효하다면서 경제민주화를 하겠다고 하고, 유신독재가 없었으면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강변하는 구체제세력에게 이 나라를 다시 맡겨서야 되겠나. 그러나 정권 장악은 끝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이다. 재벌 개혁이 또 실패하지 않으려면, 진보개혁세력의 결집, 무엇보다 민생 연합의 수립과 시민사회 진지의 강화,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에 대한 생각을 재정립하는 일, 넓은 의미에서 '전환의 계곡'에 대해 주도면밀한 대처 전략을 준비하는 일 등이 꼭 필요하다.
타협 운운하지만 타협은 정권을 장악하기까지는 물론 정권교체 이후에도 힘과 힘이 부딪히는 과정에서 성립될 것이다. 타협하자고 공허하게 주장만 하면 뭐하나. 재벌과 섣부른, 어설픈 타협을 말하기에 앞서 힘 있게 부딪혀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시민적 힘과 진지를 키우고 저변을 넓게 확대해야 한다. 바로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할 일이다.
아카데미 느티나무 강좌 '재벌공화국을 넘어'
참여사회연구소,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프레시안은 8월 28일 부터 총 5회에 걸쳐 아카데미 느티나무 강좌 '재벌 공화국을 넘어'를 엽니다. 한국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전망하면서 재벌개혁은 왜 필요한지, 재벌에 대한 인식과 개혁방향을 둘러싼 논쟁 지점들은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또한 보수 정치세력이 말하고 있는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에 관한 주장의 허구성과 한계는 무엇인지, 재벌독식이 아닌 공생의 경제로 나가기 위한 방안들을 살펴봅니다.
<강좌 순서>
1. 8월 28일 : 수렁에 빠진 한국 경제와 재벌(정태인) 보기>>
2. 9월 4일 : 재벌 개혁, 왜 실패했나(이병천)
3. 9월 11일 : 재벌 지배 구조, 어떻게 바꿀 것인가(이동걸)
4. 9월 18일 : 재벌 퍼주기에서 공생의 경제로(김남근)
5. 9월 25일 : 토크쇼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 2012년의 선택'
일시 : 2012. 8.28 ~ 9. 25 (화) 총 5회 오후 7시 ~ 9시 30분
장소 : 참여연대 느티나무홀
수강비 : 5만원(참여연대 회원 50% 할인)
주관 : 참여사회연구소,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프레시안
후원 : 5.18기념재단, 경제민주화시민연대
['재벌 공화국을 넘어' 강좌 ①] "'대마불사' 재벌, 한국 사회 위기의 근원"
['재벌 공화국을 넘어' 강좌 ① : 정태인 새사연 원장]
"'대마불사' 재벌, 한국 사회 위기의 근원"
: 수렁에 빠진 한국경제와 재벌
프레시안 허완주 기자
A와 B가 있다고 하자. 이 둘이 있는데 하늘에서 만 원이 A에게 떨어졌다. A는 내키는 대로 그 돈의 일부를 B에게 준다고 하자. 얼마든 상관없다. 그 돈을 받고 B가 흡족해서 '예스'라고 하면 끝난다. 하지만 B가 만족하지 못하고 '노'라고 하면 둘 다 돈은 한 푼도 가지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 게임은 '최후통첩'이라 불리는 게임으로 '인간은 이기적이다'라는 경제학 개념을 뒤집어 놓았다.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은 "이 게임이 알려진 이후 수만 번이나 진행됐으나 대부분 A가 B에게 4000원을 주고 B는 이를 받아들이는 걸로 마무리된다"며 "이런 결과는 그간 경제학의 가정이 틀렸다는 걸 증명한다"고 말했다.
주류 경제학에서 말하는 대로라면 A는 B에게 1원을 주고 자신은 9999원을 가져야 한다. 반면, B는 1원을 거부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기 때문에 '예스'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게임에서 이런 결과가 나온 예는 없다. 주류 경제학에선 이익만 고려하지만,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단순히 이익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 원장은 "물론 A가 B에게 2500원 이하를 줄 경우, B는 '노'라고 하기도 한다"며 "아무것도 못 받는다는 걸 알고도 '노'라고 하는 건, '너 죽고 나 죽자' 식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응징을 하겠다는 인간의 심리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간은 불공정하다고 판단하면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응징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 원장은 사람들이 '재벌'에 분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지적했다. 재벌이 한국 경제를 부양하는 건 맞지만, 그 방법에서 공정하지 못한 점이 사람들을 분노케 한다는 이야기다.
지난 28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이 '수렁에 빠진 한국 경제와 재벌'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참여사회연구소와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프레시안>이 공동 주관하고 5.18기념재단이 후원하는 '재벌 공화국을 넘어'라는 강좌의 일환이다.
이 자리에서 정 원장은 사람들이 재벌의 착취 구조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는지 등을 이야기했다. 강연 내용을 요약했다.
자기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 보답하고자 하는 게 인간의 본성
지난 10여 년 동안 경제개혁연대 등은 주주이론(shareholder theory·기업의 주인은 주주이므로 임금과 이자, 지대 등을 뺀 나머지는 주주의 몫이라는 이론)에 입각한 소액주주운동으로 재벌의 횡포를 견제했다.
기업총수 등 지배주주가 소액주주를 약탈하는 것(tunnelling)을 막기 위해 주주대표 소송제, 이중 소송제, 사외이사제 등을 도입한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상호출자제한 기업규모의 완화,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금산분리 완화, 지주회사 설립요건 완화를 통해 재벌은 외환위기 이전보다 더 거대한 규모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재벌을 보는 관점은 주주자본이론 보다 이해당사자 이론(stakeholder theory)으로 더 확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칠게 요약하면 기업은 이해당사자 전체가 이익과 위험을 공유함으로써 더 효율적으로 발전할 수 있으며, 따라서 기업은 주주뿐 아니라 이해관계자 전체의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 기업이 파산했을 때 주주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을 받는 노동자, 하청기업(공급기업), 지역주민, 그리고 소비자가 모두 이해관계자이다.
경제학자 조지 에컬로프는 '선물로서의 교환'에 주목했고 행동경제학은 그것이 인간의 상호성에서 유래한다고 생각했다. 쉽게 이야기해서 자기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 보답하고 악의에 대해서는 보복을 하는 게 상호성이다. 이에 자신의 준거임금보다 더 많은 보상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경우 노력을 더 기울여 생산성이 높아지고 결국 투자자에게도 이익일 수 있다. 이는 선물게임, 공공재 게임 등 여러 실험에서 되풀이 확인되고 있다.
예를 들어 직장인이 이직할 경우, 자신이 받는 임금은 어떻게 결정될까. 대략 자신의 경력 등에 비춰 이직하는 곳의 동료와 비교해서 결정한다. 만약 비슷한 경력의 동료보다 임금을 적게 받으면 분노한다. 반면, 그보다 많이 받으면 더 열심히 일한다. 그게 상식이다. 이런 예는 임노동관계에서만 설명되는 게 아니라 다른 경제 관계, 예컨대 하청관계, 소비자 관계 등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
재벌 문제 해결하기 위해선 수탈 구조 깨는 게 필요
물론 이론적으로 그렇다 해서 사회적으로 바로 실현될 수 있는 건 아니다. 현재 재벌 구조는 하청 및 비정규직 노동자를 수탈하는 시스템이다. 기업총수가족과 가신, 지배주주는 나머지 이해당사자를 수탈한다. 그러나 수탈당하는 이해당사자인 1차 공급업체, 소액주주 등도 하청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를 수탈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지금의 재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이런 수탈 구조를 깨뜨리는 게 필요하다. 무엇이 있을까. 기본적으로 수탈당하는 이해당사자들이 먼저 세력화해 착취하는, 즉 재벌과 대등한 교섭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재벌체제 내 정의를 위해서 다른 이해당사자들이 응징 수단을 구비해야 한다. 노동자들의 응징수단은 노조 조직과 파업, 하청기업은 공동 교삽단체 조직 등을 들 수 있겠다.
공유 이익의 분배 규칙을 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해 당사자이론의 가장 큰 단점은 구체적 제도 제시가 없다는 점이다. 각 이해당사자가 세력화되어 분배 규칙을 정할 수 있겠지만 현재처럼 세력화가 되지 않았을 경우, 규칙을 도입하는 게 필요하다.
최근 미국 경영학자 프리먼 등이 집대성한 공유자본주의론이 그 규칙이라 하겠다. 이것은 이미 미국에서 효과가 입증됐다. 특히 노동자가 자사 주식을 소유하는 노동자 주식소유 제도는 재벌기업뿐만 아니라 하청계열사에도 적용할 수 있다.
어쩌면 스페인의 몬드라곤이 한국 재벌개혁의 이상적인 모델일지도 모른다. 몬드라곤은 수직적 하청계열, 내부 금융을 모두 가지고 있지만 고유의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노사 간, 노노 간 양극화,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가 나타나지 않으면서도 경제적 효율성을 달성하고 있다. 자본주의 기업에 유리한 제도 환경 속에서도 이런 원칙을 지키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반면, 협동조합 도시인 이탈리아 에밀리아 로마냐의 중소기업 산업지구는 수평적 네트워크 형태지만 자본시장에 의해 통제받는 전문 대기업이다. 그러나 이는 인간 본성이나 현실에 비춰 이상형이라고 할 수 없다.
재벌, 자원 독식하지만, 견제 부재
과거 한국이 발전국가 시대였을 때는 재벌과 경제시스템이 공생관계였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기술발전이나 브랜드 효과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재벌이 정치, 관료, 사법부를 다 장악함으로써 약탈적 기생관계에 들어갔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장하준 교수 등이 간과하는 측면이 있다.
대마불사라는 점에서 시민 역시 재벌의 현실적, 그리고 상상의 공생관계로서 볼모가 됐다. 생태계라는 관점에서 재벌의 폐해는 무엇보다도 대마불사에 의한 시스템 위기의 근원이 된다는 이야기다. 또한, 자원을 독식하고 견제가 부재하다는 문제가 있다.
재벌, 특히 삼성은 사회 전 분야에서 지대추구를 할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을 갖췄다. 의료민영화, 금융시장 자유화(자본시장통합법) 등이 그 예다. 결국, 재벌의 지대추구는 공공성이 강한 분야에 집중될 거다.
재벌은 한국의 모든 요소를 동원한 한국사회의 작품이다. 따라서 국민은 이를 규제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특히 공멸의 위협을 제기히면 강력한 수단을 동원할 수 있다. 이해당사자 각각의 권력화, 공유자본주의론 도입 등이 그 수단이 될 수 있겠다.
* 이 글은 프레시안(www.pressian.com) 기사입니다.
아카데미 느티나무 강좌 '재벌공화국을 넘어'
참여사회연구소,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프레시안은 8월 28일 부터 총 5회에 걸쳐 아카데미 느티나무 강좌 '재벌 공화국을 넘어'를 엽니다. 한국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전망하면서 재벌개혁은 왜 필요한지, 재벌에 대한 인식과 개혁방향을 둘러싼 논쟁 지점들은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또한 보수 정치세력이 말하고 있는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에 관한 주장의 허구성과 한계는 무엇인지, 재벌독식이 아닌 공생의 경제로 나가기 위한 방안들을 살펴봅니다.
<강좌 순서>
1. 8월 28일 : 수렁에 빠진 한국 경제와 재벌(정태인)
2. 9월 4일 : 재벌 개혁, 왜 실패했나(이병천)
3. 9월 11일 : 재벌 지배 구조, 어떻게 바꿀 것인가(이동걸)
4. 9월 18일 : 재벌 퍼주기에서 공생의 경제로(김남근)
5. 9월 25일 : 토크쇼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 2012년의 선택'
일시 : 2012. 8.28 ~ 9. 25 (화) 총 5회 오후 7시 ~ 9시 30분
장소 : 참여연대 느티나무홀
수강비 : 5만원(참여연대 회원 50% 할인)
주관 : 참여사회연구소,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프레시안
후원 : 5.18기념재단, 경제민주화시민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