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저자와 함께 읽는 한국 근현대사 Ⅰ

  • 강사

  • 기간

    • 2012. 4. 5 ~ 2012. 6. 7
  • 시간

    • 목요일 19:00~21:30 총10회
  • 수강료

    150,000

    • 파격 할인혜택
    • 참여연대 회원75,000

    각종 혜택 적용은 로그인 > 마이페이지에서 진행됩니다

    상세 정보

    강좌소개 |
    얼마나 지금까지 편향된 자세로 주입식의 역사를 그냥 그대로 받아들였는지, 이번 강의를 통해
    반성하게 되었고, 지금의 나와 그리고 이 세계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역사를 바라봐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 <2011년 저자와 함께하는 역사교과서 다시 읽기> 수강생의 글
     
    많은 분들의 기대와 성원으로 2011년 <교과서 저자와 함께 읽는 한국 근현대사> 강좌가 2012년
    앵콜 강좌로 돌아왔습니다. 최근 사용되고 있는 검인정 교과서는 과거의 교과서와 많이 다릅니다.
    내용면에서도 새로운 연구의 흐름을 많이 반영하고 있고 시각자료들도 풍부합니다.
    하지만 검인정이라는 제도 때문에 자유로운 역사서술이 되기 어려운 점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교과서는 역사를 체계적으로 제시한 하나의 텍스트에 불과합니다.
     
    <교과서> 강좌는 지난 학기에 이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때로는 일방적으로 주입됐던
    역사교과서를 비판적인 검토의 대상으로 공부합니다. “역사교과서의 한계점은 무엇인지”, “교과서
    내용을 둘러싼 (시대와 주제별) 역사적, 사회적 논쟁점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또한 교과서를 집필한 역사학자들이 직접 교과서의 내용을 설명하고 토론과 논쟁을 이끌어 나가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고 그것이 우리의 현실과 어떤 관계가 있으며 미래를
    어떻게 전망할 것인가”라는 역사교육의 본래 목적에 충실하게 진행될 것입니다.
     
    봄, 가을 두 학기 1, 2부로 나누어 진행되며 1부는 근대 초기부터 1920년대까지,
    2부는1930년대부터 현대사를 다룹니다.
     
    현장에서 답사를 포함해 총 10회로 진행될 즐거운 한국 근현대사 공부에 많은 분들과 함께 하길
    기대합니다.
     
    강의 일정 |

     

    날짜
    순서
    주제
    강사
    4.05
    1
    흥선대원군이 꿈꾼 나라
    주진오
    4.12
    2
    조선은 어떻게 세계질서에 편입되었나
    주진오
    4.19
    3
    근대국가를 향한 출발과 갈등
    주진오
    4.28(토)
    4
    답사 – 갑신정변을 따라 걷다
    (종로구 계동 일원)
    주진오
    5.03
    5
    쟁점: 근대 국민국가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주진오
    5.10
    6
    근대 문화는 어떻게 들어왔나
    주진오
    5.17
    7
    우리는 어떻게 식민지로 전락하였나
    주진오
    5.24
    8
    일제는 어떻게 조선을 지배했나
    박찬승
    5.31
    9
    독립운동은 어떻게 전개되었나
    박찬승
    6.07
    10
    식민지 일상생활은 어떠했을까
    박찬승
    ※ 4월 28일(4강) 답사는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진행됩니다.
     
     
    강사소개 |
     주진오
    상명대학교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인문사회과학대학 학장. 연세대학교에서 한국 근대 개혁운동
    연구를 통해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역사교육, 여성사, 병원사 등 다양한 분야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왔다. 역사학을 학문으로서만이 아니라 사회와 소통하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특히
    역사를 소재로 이루어지고 있는 각종 문화콘텐츠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고등학교 한국사(천재교육), 고등학교 한국근현대사(중앙교육진흥연구소)와 중학교 역사 상, 하권
    (천재교육)의 대표집필자이기도 하다.
     
    박찬승
    1990년 목포대, 2001년 충남대 교수를 거쳐 2005년 이후 현재까지 한양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중. 전공은 한국근대사로 주로 일제강점기를 연구하고 있음. 특히 사상사와 사회사를 연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근대정치사상사연구> <민족주의의 시대> <근대이행기 민중운동의
    사회사> <마을로 간 한국전쟁> 등이 있음. 2011년 한국출판문화상, 단재상을 수상하였다.
     
    교재 |
    <고등학교 한국사, 천재교육> (주진오, 박찬승, 이신철 외)
     
    강의정보 |
    일시 : 2012. 4. 5 ~ 6. 7 (목) 총 10회 오후 7시~9시30분
    장소 : 참여연대 느티나무홀(B1)
    수강비 : 15만원(참여연대 회원 50% 할인) , 답사1회 포함
     

    후기 2

    • 한국근현대사 4강 - 갑신정변의 길을 따라 걷다 (4/28)

      2012.5.14 느티나무 교과서 저자와 함께 읽는 한국 근현대사 Ⅰ
       
      “자, 오늘 여러분은 저와 함께 갑신정변 군이 되어 그 길을 따라가 보는 겁니다.” 
       
       
      참여연대 교과서 저자와 함께 읽는 한국 근현대사 4강은 ‘갑신정변의 길을 따라 걷다’라는 제목의 답사로 진행되었다. 야외수업을 참여하는 수강생들의 눈빛은 초롱초롱했다. 화창한 날씨였다. 
       

      갑신정변은 1884년 음력 10월 17일 우정총국의 낙성을 기념하는 축하연을 틈타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재필 등 젊은 양반 관료들이 메이지 유신을 모델로 하여 일으킨 정변이다. 이들의 계획은 지금 풍문여고 자리인 안동별관에 화재를 일으켜 소동을 일으키고 전,후,좌,우 군영의 4영사를 죽이면서 시작되는 것이었으나 화재가 생각보다 쉽게 진압되자 민가에 불을 지르면서 거사를 시행하게 된다. 이때 축하연에 참석했던 민영익은 밖에 나갔다가 일본 무사에게 변을 당하였다. 그는 중상을 입었지만 다시 연회장으로 들어왔고 그 때 연회장에 있었던 독일공사 멜렌도로프는 그를 자신의 집에 옮기고 미국 의료 선교사 알렌의 치료를 받게 한다. 그는 몇 달 뒤 완쾌된다.

      교과서4강_2 교과서 4강_7
       [우정총국 입구]

       

       

      갑신정변군은 우정총국에서 창덕궁에 가기 전에 일본 공사관으로 향했다. 그 이유는 일본공사에게 자신들의 거사에 지원을 해줄 수 있는지에 대한 확답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 당시 갑신정변을 주도한 급진 개화파는 일본의 지원 없이는 움직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일본 공사관은 예전 공사관이 임오군란 때 전소되었기 때문에 부마 박영효의 집을 쓰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위치는 현재 인사동 안에 있는 경인 미술관 자리이다. 이곳에서 일본 공사에게 병력 지원에 대한 확약을 받은 갑신정변군은 비로소 창덕궁으로 향한다.

      교과서 4강_3 교과서 4강_4 교과서 4강_5 
       [인사동 안의 경인 미술관]                 [금호문]                             [대조전 :고종은 이 곳에서 잠을 자다가 정변군을 맞았다.]

       

       

      갑신정변군은 금호문을 거쳐 숙장문, 합문으로 들어가 고종에게 청이 쳐들어 왔다는 거짓보고를 하고 자신들은 고종을 보호하기 위해 왔다고 한다. 고종은 철종의 부인인 왕대비, 효명세자의 부인인 조대비 등 왕실 식구들을 거닐고 금호문으로 빠져나가 정변군의 비호를 받아 경우궁으로 향한다.

       

      개화파의 입장에서 경우궁은 창덕궁에 비해 규모가 작기 때문에 왕실 가족을 감시하기엔 훨씬 더 수월한 곳이었다. 그 당시 왕이 자리를 옮기면 신하들은 알현을 하게 되어있었는데 정변군은 경우궁에 고종에게 알현을 하러 온 신하들을 한 사람씩 죽였다.

       

      그러나 경우궁은 생활공간이 아니라 순조의 생모 수빈 박씨의 사당으로 죽은 이의 혼을 모신 곳이었기에 생활하기에 매우 불편했다. 왕과 왕비는 계속해서 환궁을 요청했지만 개화파는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 공사는 개화파와 상의도 없이 이를 수용했고 왕과 왕비는 다시 창덕궁으로 돌아간다. 정변이 일어난 그 다음날 저녁이었다.

       

      셋째 날, 창덕궁에서는 전투가 일어났다. 일본군과 청나라 군대와의 싸움이었다. 이 때 조선의 병사들은 우왕좌왕하다 청나라의 편에 서서 일본군과 싸웠다. 정변군이 일본으로부터 병력을 지원받았다고는 하지만 실상 이때 들어온 일본군은 300명이 채 되지 않는 숫자였다. 일본군은 수적인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후퇴하고 이 때 고종, 홍영식, 박영교는 북관묘로, 왕비, 대왕대비, 세자는 북문으로 피신한다. 그리고 개화파 일행은 거사에 실패하고 일본으로 망명을 가게 된다.

       

      급진 개화파들이 일본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이유는 그들의 지지기반이 취약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정변 개입을 승인하지 않는다는 훈령을 받게 되자 정변군은 힘을 잃고 결국 정변은 실패하게 된다. 그러나 거사가 실패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백성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백성들에게 갑신정변은 급진 개화파가 외세를 끌어 들여 국왕을 속이고 중신을 죽인 것으로 여겨졌다. 그만큼 개화파는 권력을 장악하는 것에 급급하여 백성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고 백성들은 그들에게 적대적인 반응을 보였다.

       

      갑신정변은 3일 천하라고들 말한다. 급진 개화파들은 그들이 정변만 일으키면 조선이 근대 국가가 되는 양 무리하게 거사를 거행했지만 그들의 천하는 그들이 왕과 있었던 3일 밖에 지속되지 못했던 것이다. 치기어린 꿈이었다.

       교과서 4강_6
       [2012봄 교과서 저자와 함께 읽는 한국근현대사 강좌 길동무]

       

      참여연대 4강 답사는 개화파의 이루지 못한 개혁의 꿈을 좇아 우정총국에서 일본 공사관으로, 마지막으로 창덕궁에서 일정이 마무리 하였다. 주진오 교수님은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에 사람들의 공감을 얻으려는 노력이 없다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라고 말씀을 끝맺었다. 공감을 얻는 것의 중요성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한 화두로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기작성 | 최혜진

    • 한국근현대사 1강 - 흥선대원군이 꿈꾼 나라 (4/5)

      2012.4.13 느티나무 교과서 저자와 함께 읽는 한국 근현대사 Ⅰ

      여러분들은 왜 역사를 공부하나요?”

       

      한 질문과 함께 교과서 저자와 함께 하는 근현대사 산책 첫 수업은 시작 되었다참여연대 느티나무 홀을 가득 메운 수강생들의 눈은 빛났다.근현대사 수업은 이번 학기 최대 수강생을 자랑하는 강좌이다.

       

      첫 강좌를 여는 주진오 교수의 말은 이어졌다.

      물론 옛 것에 대한 호기심알고 싶은 욕구 때문일 수도 있겠죠하지만 역사는 지금 현실을 이해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해 주기 때문에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우리는 역사를 배우며 어떤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떠한 선택을 했고 그것이 어떠한 결과를 낳았는지 볼 수 있죠그것들로 내가 이렇게 하면 이런 결과를 낳겠구나유추해 볼 수도 있습니다역사라는 것은 결코 내가 파묻고 싶다고 파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과거의 행동에 대해 평가는 결국 내려집니다누구나 과거의 행동에 대해 변명은 할 수 있겠지만 후대에게도 떳떳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그것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죠.”

       

       

       IMG_2173.pngIMG_2178.png

       

       


        [사진 : 주진오교수]                       

       

       

      흥선 대원군이 꿈꾼 나라라는 제목으로 시작된 참여연대 근현대사 첫 번째 강좌는 주진오 교수의 열띤 설명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흥선 대원군 하면 쇄국정책이라는 말이 바로 떠올리기 쉽다그러나 정작 우리나라 역사에 쇄국정책이라는 말은 없고 쇄국정책은 일본에서 쓰이던 표현이라 한다.

      대원군은 임금이 대를 이을 자손이 없어왕위를 이은 임금의 친아버지에게 주던 벼슬로 우리나라에서 살아서 대원군으로 추대된 사람은 없기 때문에 흥선 대원군을 대원군으로 통칭해도 무방하다대원군이 권력을 잡게 된 배경도 그의 권력 실각과 연관되어 해석이 가능하다대원군이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은 실질적 수렴청정권이 있었던 조대비가 권력을 이임했기 때문인 것이었다대원군은 공식적으로 권력을 행사할 수 없는 권한의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대원군의 정책은 우리나라의 문호개방을 늦춰 우리나라 근대화에 부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의견들을 우리는 쉽게 접한다그런데 그 당시 외세는 평화적으로 문호 개방을 요청한 것일까대원군의 정책도 당시 시대 정황과 함께 판단해야 하지 않을까?  

       

      18세기 후반 조선은 서양으로부터 문호를 개방하라는 통상압력에 시달렸고 이양선도 빈번히 출몰했다. 1866년 제너럴 셔먼 호는 평양에 주둔한다통상·교역은 조선의 국법에 금지되어 있으며외국선의 입항은 국법에 어긋난 영토 침략·주권 침해 행위라고 지적한 조선관리의 만류를 거부하고 난폭한 행위를 자행평양 군민과 충돌이 벌어졌다이 과정에서 셔먼호의 대포에 맞아 조선 군민 중에 사상자가 발생하자 평양감사 박규수가 화공으로 셔먼호를 불태우고선원은 몰살하였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서양에게 문호를 개방하지는 않았지만 외국인에게 적대적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서양 열강의 통상요구를 거절하고 통상수교거부정책을 실시하였던 흥선 대원군의 전략은 왕실의 권위 회복을 꿈꾸고 혼란스러웠던 구질서를 안정화 시키려는 것이었다대원군은 실제 권력을 잡자 조선시대 마지막 법전이 된 대전회통을 편찬하고 1592년 임진왜란으로 불탄 경복궁을 중건하였다이것은 왕권의 강화를 위해 필수적인 것들이었다.

       

      대원군의 서양인에 대한 박해에는 그럴만한 계기가 있었다. 1866년 병인양요가 발생하여 프랑스 함대에 의해 강화도에 있는 외규장각 도서들이 불에 타 없어지는 큰 피해를 입었고 대원군의 아버지인 남현군의 묘를 오페르트라는 유대상인이 도굴하는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대원군은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고 무력으로 들어오는 서양 문물에 맞서 전통을 지키려는 명분이 있었던 것이다그것은 그 당시 대원군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이었다.

       

       

      그러나 권불십년이라는 말이 있듯이 대원군의 권력은 오래 가지 못했다거기에는 당시 대원군이 시행했던 호포제 개혁에 따른 여파도 있었음을 간과할 수 없다호포제는 포(옷감)를 가구(단위로 걷게 하는 세금 제도로당시 전세 · 군포 · 환곡 즉 삼정의 문란으로 큰 고통을 받고 있었던 백성을 위한 것이었다종래의 군포는 일반 양인 남성에게만 부과되고 양반에게는 부과되지 않았는데 대원군은 이를 개선해 양반층을 포함한 모든 가구마다 호포를 동등하게 부과하려고 했다그러나 이 정책으로 인해 양반층은 대원군에게 등을 돌리게 되고 이는 대원군이 권력을 잃고 실각하게 되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개혁이란 추진할 수 없는 역량으로 했을 때는 도리어 뒤집어 지고 마는 결과를 낳기도 하는 것이다.

       

      결국 대원군은 1874년 권력에서 물러난다그리고 1898년 사망했다그의 죽음에는 어느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이것은 그의 아들이었던 고종과의 불화도 하나의 이유였다조선 말기 정치사의 비극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교과서 저자와 함께 하는 참여 연대의 근현대사 첫 강의는 흥선대원군이 꿈꾸었던 시대에서 현재 지어진 박정희 기념관 까지 아우르면서 역사적 평가에 대한 다각적 해석을 권했다모든 사람이 한 역사적 사실을 똑같이 평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그게 설령 잘못된 선택이었다 할지라도 그것이 실제 삶 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는지를 인식하기 바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흥선 대원군박정희 그리고 많은 역사속의 사람들이 꿈꾸었던 나라와 우리가 꿈꾸는 나라를 비교해 보면서 우리가 바라는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자양분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그것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을 것이다.

       

      교과서와 함께 하는 근현대사 첫 강의는 이렇게 시작 테이프를 끊었다. ^^


      후기 : 최혜진(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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