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북아프리카 민주화 혁명의 오늘과 내일

  • 강사

  • 기간

    • 2011. 4. 5 ~ 2011. 4. 26
  • 시간

    • 화요일 19:00~21:30 총4회
  • 수강료

    60,000

    • 파격 할인혜택
    • 참여연대 회원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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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세 정보

     

    강의소개 |
    밀레니엄의 첫해인 2001년은 미국 뉴욕 9·11 테러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이라는 충격적인 사건들로 장식됐습니다. 그 뒤 중동·이슬람 세계는 전쟁·테러·억압의 악순환 속에서 힘겨운 10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2011년 현재, 중동·이슬람 세계는 또 다른 변화를 맞고 있습니다. 민주화의 바람입니다. 튀니지 청년의 분신으로 시작된 ‘중동의 봄’은 이집트를 건너 리비아, 사우디아라비아, 예멘 등 북아프리카와 걸프 전역으로 퍼져가고 있습니다.
     
    글로벌화로 지구촌이 모두 하나로 묶인 지금, 우리는 중동의 봄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급박하게 돌아가는 리비아의 상황은 또 무엇을 말해주는 걸까요.
     
    중동·북아프리카 사람들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 나라들에선 20세기 이래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들은 수십 년 간 무슨 일을 겪어왔기에 지금 왜 목숨을 내걸고 거리로 나섰는지, 지금 그들 앞에 놓인 과제와 험난한 산들은 무엇인지, 우리는 하나로 이어진 지구에서 그들과 어떻게 손잡고 서로를 이해할 것인지 생각해봐야 할 때입니다. 현재 중동·북아프리카에서 벌어지고 있는 독재정권의 잇단 몰락은, 중동사의 새로운 획이 될 겁니다. 뿐만 아니라 세계사적으로도 엄청난 의미를 가질 겁니다.
     
    이 강의에서는 4회에 걸쳐 중동·북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일과 지나온 과거,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 등을 살핍니다. 미국의 이권을 대행해주며 정권을 유지해온 이집트 무바라크 체제의 몰락이 지역 내에서 갖는 의미, 리비아 카다피 독재정권의 갈짓자 행보, 중동 민주주의의 굴절된 역사, ‘재스민’ 이후의 중동의 향배, 그리고 이들의 투쟁을 통해 한국사회는 무엇을 성찰해야 하는지   짚어봅니다.
     
    특히 이번 강좌는 중동, 북아프리카를 취재해온 현장 기자, PD와 함께 합니다. 현장의 목소리를 좀더 가까이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강사소개 |
    구정은 경향신문 기자. 문화일보를 거쳐 경향신문에서 국제부 기자로 10년 이상 근무. 이라크, 요르단, 이집트, 우즈베키스탄, 인도네시아, 토고, 시에라리온, 가나, 코트디부아르, 케냐, 남아공 등을 돌아다니며 취재함. 『1000가지 얼굴의 이슬람, 나의 이슬람』등의 번역서가 있음. KBS 라디오 <함께 하는 세계, 이광용입니다> 등에서 국제뉴스 브리핑을 해왔고 지금은 CBS 시사자키에서도 브리핑을 하고 있음.
     
    안주식 KBS <세계는 지금> PD. 2003년과 2004년 이라크, 2011년 1월 수단에 이어 3월 이집트와 리비아 현지에서 취재함.
     
    강의 일정 |

     

    날짜
    순서
    주제
    04.05
    1
    중동 북아프리카의 현실과 재스민 혁명의 의미
    - 중동 북아프리카 국가 내부 정치의 취약성과 미국의 원조와 중동에서의 외교적 영향력
    - 이집트·튀니지(리비아·알제리·모로코 포함시킬 수도)의 구체적인 상황을 중심으로 봄
    04.12
    2
    중동 북아프리카 현대사의 두 개의 키워드 – 석유와 미국
    -  20세기 이후 중동사 개괄
    - 이라크·이란 민족주의 정권의 좌절과 근대적 입헌민주주의가 정착하지 못한 역사
    04.19
    3
    민주화 혁명 이후 중동 북아프리카는 어디로
    - ‘혁명 도미노’ 에서의 관건인 사우디 아라비아와 이란의 향배
    - 미국의 중동 전략의 변화 전망
    04.26
    4
    중동 북아프리카 혁명과 한국사회
    - 중동 민주화 투쟁에서 한국사회는 무엇을 성찰해야 하는가
    - 한국의 언론, 외교, 정치에 대한 반성
    - 시민사회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강의정보 |
    일시 : 2011. 04.05 ~ 04.26 화 오후 7시~9시 30분 총6회
    장소 : 참여연대 3층 중회의실
    수강비 : 6만원(참여연대 회원 50% 할인)
     
     

    후기 5

    • 중동 북아프리카 혁명과 한국사회

      2011.5.28 느티나무 중동 북아프리카 민주화 혁명의 오늘과 내일
      [강좌후기] 중동 북아프리카 혁명과 한국사회

      중동 북아프리카 민주화 혁명의 오늘과 내일


      이번 강의는 ‘중동 북아프리카 민주화 혁명의 오늘과 내일’의 네 번째 강좌입니다.  중동 민주화 혁명을 공부하는 마지막 시간으로 ‘중동 북아프리카 혁명과 한국사회’라는 소주제로 중동 혁명과 한국사회를 연관지어 보는 시간입니다. 한국사회는 중동 민주화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중동은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중점적으로 알아보고자 합니다. 더불어 이 시간은 중동지역을 경제적 이익의 관점으로만 보는 우리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첫번째 강의
      중동에서 한국의 위상과 파병에 대해서: 구정은 기자


      중동 교민과 교역 규모
      먼저 중동의 한국교민과 교역규모를 살펴보겠다. 외교통상부 자료를 보면 전년 대비 인구수의 증감률이 0%라고 나와 있다. 2010, 2011년까지 인구변화가 없는 게 이상하지만 경향성만은 뚜렷이 보여준다. 주목할 점은 교민들이 석유 나오는 국가에만 많이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보면 사우디에 교민 수가 많아야 하는데 외국인의 출입을 제한하기 때문에 14%정도이고, 중동 지역 전체 교민 수가 합쳐서 1만 5천 명에 불과하다.

      교역규모를 보면 2010년에 1000억 달러이다. 이것은 EU나 아세안보다 큰 것으로 우리의 석유의존도가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석유를 수입하는 곳은 중동 밖에 없다. 박정희 시절부터 유화산업을 키워왔고, 중동산 석유를 가져와서 수출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그래서 석유를 많이 수입해서 많이 쓰고 다시 수출하는 구조이다. 우리의 중동 의존도는 높지만 중동에 대해 가르치는 것도 없고 접하려는 노력도 없다. 단지 건설업체가 들어가 있고 석유를 사는 것 외에 문화적 정치적 교류는 거의 없는 상황이다.


      중동에서 한국은 ‘돈 버는 데 중점을 둔 나라’
      신문사설에서는 한국기업이 돈을 잘 벌기 위해서는 정부가 중동과의 관계를 잘 만들어 가야한다는 내용이 많다. 이는 결국 중동과의 관계가 돈으로 귀결된다는 의미이다. 이런 한국의 태도에 대해서 외국에서는 ‘한국 건설 시장의 이해관계 때문에 중동 현지 민중들의 민주화 시위에 한국이 입을 다물고 있다’고 비판한다. 한국은 대기업 건설회사가 돈을 더 많이 벌고 덜 버는 것에만 전전긍긍하는 것이 현실이다. 민주화 시위에는 관심이 없으면서 원전수주하면 그게 큰 이슈가 되는 것이 그 예이다. 그래서 국제사회에서 한국에 대한 평가는 냉정하다.

      그들은 한국의 경제규모가 12위라는 것을 모른다. 왜냐하면 국제사회에서 하는 역할이 없고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이 대접을 받기 위해서 책임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중동지역에서 ‘한국은 예전에는 민주화 과정을 겪었지만 이제는 돈만 버는 나라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아프간 파병에서 한국군의 역할은 미미
      이상현 박사가 쓴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 파병의 당위성과 과제’라는 글을 살펴보겠다. 한국군의 아프간에 대한 기여는 미미하다. 첫째, 아프간에서 한국군은 미군부대 옆에 있는 정체모를 부대였다. 파병부터 등 떠밀린 모양새였다. 우리나라에서 보수파들은 아프간 파병의 목적이 미국과의 동맹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진정 원했던 것은 전투병 파병이었다. 미국은 동맹국이라면 전투에서 함께 싸워주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미국의 입장에서 인도적 지원은 동맹이 아니라고 말한다. 아프간에서 한국군은 ‘의료지원부대’라는 정체가 모호한 부대였다. 

      둘째, 지원금액도 너무 적었다. 특히 김선일씨 피랍사태 때, 한국이 사건을 빨리 파악못한 이유가 돈 때문이었다. 한국 사람이 가서 현지 사람들을 도와 주면서 사람을 사귀었다면 그런 사태를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부대가 이라크 아르빌에 가서도 한 일은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현지 상황이 위험해서 막사 밖을 나가지 못 한 날이 이어졌다. 한국외국어대 아랍어과 학생들이 통역으로 차출돼서 이라크에 갔는데 실제로 이라크의 아르빌은 쿠르드지역이어서 아랍어를 쓰지 않는다. 이것이 파병의 현실이다. 그 나라에 대한 정보나 지식이 전혀 없다.

      이에 반해 동티모르는 성공적인 파병이라고 평가받고 있어 우리의 위상이 올라갔다. 동티모르 파병은 경제적 이득이 아니라 가장 가난한 나라가 독립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한국군이 가서 재건을 도와준 사례이다. 그 후에 동티모르 대통령이 방한하고 고마워했다.


      앞으로의 파병은
      앞으로 한국군의 파병은 이라크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 이라크 전쟁이 났을 때 국제사회가 크게 반대해서 여론이 다 그 쪽으로 쏠려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국익을 위해 파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랍권 방송에서는 전쟁에 찬성한 부시, 고이즈미, 노무현을 연속적으로 다루었다. 미국과 영국은 전쟁을 일으킨 나라였고 가장 처음 파병하겠다고 나선 나라가 일본과 한국이었던 셈이다. 그 때 나와 일본 기자는 창피해서 사람들한테 고개를 못 들었다. 이런 경우 국적이 도덕성과 연결된다. 그 나라 사람들은 ‘한국은 미국의 속국이니까’ 또는 ‘한국은 석유가 필요한가보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컸다. 우리는 파병이 어떻게 진행돼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두번째 강의
      국제시사 프로그램 ‘세계는 지금’을 만들면서 느꼈던 소회: 안주식 PD

      오늘은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느꼈던 소회 위주로 강의를 하겠다. 2002년에 ‘세계는 지금’ 프로그램을 맡았고 그 전에도 국제사회에 관심이 많았다. 입사 7년차라 프로그램 제작에 몸을 불사를 시절이었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을 겪고 국제시사를 못 하겠다고 생각했다. 김선일 씨가 죽고 나서 정신적 충격도 많이 받았고 전쟁을 취재하는 것이 인성을 피폐하게 한다고 생각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사회에 대한 실망이 컸다. 프로그램을 만들어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줘도 한국 사회는 쉽게 변화하지 않았다. 국제시사프로그램을 못하겠다는 생각은 무엇보다도 김선일씨 사건 때문이었다.


      김선일씨 사건은 국가살인
      김선일씨 사건은 명백한 국가살인이라고 생각한다. 그 때 팔루자 현장에 있었는데 국가가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절절하게 들었다. 한국 언론의 여론주도층이 김선일씨를 바라보는 태도가  도저히 근대국가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김선일씨는 자기가 국가의 희생자라는 것을 안다. 납치범들이 명백히 잘못했지만 그 납치의 원인이 파병이라면, 상식적으로 봤을 때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제1원칙이다. 우리가 공화국인 이유는 시민으로서 국가에게 우리의 권한을 위탁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는 다음 날 바로 파병 강행을 확정했다. 며칠을 못 참고 바로 파병 결정하는 것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또 국가가 협상을 해서 국민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없어서 더 힘들었다. 

      이라크 파병을 둘러싼 여론에 실망
      두 번째로 한국사회에 실망한 이유는 당시 이라크 파병을 둘러싼 여론이 저급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사실 석유를 위한 전쟁이었다고 하더라도 대의명분으로는 이라크 독재국가를 없애고 민주주의를 확산한다는 것을 내세운다. 우리도 대의명분이나 큰 고상한 가치에 대해 논쟁을 해야 했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암묵적으로 ‘살고 봐야 한다’거나 ‘미국 없이는 못 산다’ 그리고 ‘중동의 석유자원 없이는 안 된다’등의 논쟁으로 이어졌다. 국제시사는 국경을 넘어선 보편적 가치, 인권, 자유, 민주주의 등 이런 것들을 논해야 한다. 국제적인 사건 앞에서 가장 정직한 목격자로 보도해야한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이런 것을 말하는 공간도 없고 시민사회도 없다.


      국제시사 프로그램의 시청률
      국제시사 프로그램의 평균 시청률은 3-4%이다. 이라크 전쟁 후에는 5%-6% 정도가 된다. 거의 시청률이 꼴찌에 가깝다. 이에 반해 제작비는 엄청 든다. 왜냐하면 다 해외 출장을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인원을 줄여서 피디랑 카메라맨만 가더라도 10분짜리 만드는 데 1500만원이 든다. 비용대비 효과를 볼 때 방송사가 좋아할 리가 없다. 그리고 목숨을 걸고 취재해도 알아주는 사람도 없다. 시청자들은 이미 외신보도를 통해 많이 접하기 때문이다.

      월드 뉴스는 BBC월드가 가장 잘 된다. 영국은 오래된 제국주의 국가니까 국제시사와 얽힌 군사, 경제문제가 시민들과 직접 관련이 깊다. 거기에 반해 우리는 국제사회와의 고리가 약하다. 이라크 전쟁 반전 시위 때 수만 명이 나온 데는 영국 시민들의 각성도도 그만큼 높다는 뜻이다. 국제시민의식에 대한 각성이 높은 만큼의 시청률을 가지고 있다.


      중동 민주화 문제는 석유, 국익, 미국과 연관돼 있어
      중동 민주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도 석유, 국익, 돈, 미국에 관한 이 논리들을 우리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는 리비아의 민주화 시위에는 관심이 있지만 중동지역의 민주화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 이집트에서는 한국사회가 광주 민주화 운동과 4.19도 겪은 걸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반해 우리는 이집트 민주화 시위 때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았다. 광주 경험을 바탕으로 이집트 민주화 시위에 대해 지지시위를 하고 영어로 블로그를 만들었으면 알자지라에서 취재했을 것이다. 아무도 그 생각을 못 한 게 안타깝다. 결국 우리 안에는 폭력, 속물주의, 사대주의가 들어 있는 것 같다.


      마땅히 해야 할 파병은 적극적으로
      파병에 대해서 말해보겠다. 해야 할 파병은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아프리카, 중동지역에 우리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많다. 전 세계가 분쟁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도 안전지대 구축을 위해서 기여해야 한다. 때로는 파병하더라도 일이 제한적이고 지역주민에게서 환영을 못 받기도 하지만, 없으면 심각한 내전이 생기는 지역이 많다. 예를 들어 수단의 경우, 북부는 이슬람, 남부는 가톨릭 흑인지역이다. 계속 내전이 이어져서 아비규환의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 상황에서 평화유지군의 필요성은 절실하다.


      한국정부의 파병은 원칙이 없어
      우리사회에서는 마땅히 필요한 파병에 대해서는 기초적인 자료 조사도 없다. 우리는 원전을 수주할 때나 미국이 필요로 할 때만 파병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는 파병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담론이 없다. 386세대가 갖고 있는 속물적이고 이중적인 스탠다드가 있다. 한국사회의 386세대는 미국을 미워하면서도 미국을 의식한다. 그들이 미국을 극복하려면 미국을 의식하지 않아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시민단체의 역할이 커져야
      외국에 있으면 한국인은 시민단체에 속한 사람보다 선교활동을 하시는 분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된다. 이에 반해 일본은 외교력에 비해서 시민사회의 활동이 활발하다. 일본은 국가적으로는 비웃음을 사는 약한 외교력을 지녔지만 시민사회는 활성화되어 있어 자원봉사자가 많다. 특히 인권과 관련된 부분에서 많은 활동을 한다. 우리사회 10,20대들이 세계화 척도지수가 높다고 하는데 젊은 사람들이 국제적으로 시민단체 활동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 시민사회와 언론의 역할이 일본만큼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앞으로 정부는 글로벌한 외교력을 가지되, 시민사회단체가 좀 더 조직적으로 국제기구와 상호협조하면서 활동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좋은 예로, 핀란드, 노르웨이의 시민단체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들은 지난 몇 십 년 동안 인권과 보편적 가치를 추구해 왔다는 점에서 국제적 위상이 높다. 이 국가들은 우리가 열심히 본받아야 하는 모델이 될 것이다. 



      Q&A

      Q. 한국 사람들이 국익과 경제적 논리 속에 점점 속물적으로 변해하는 것에 대해 어찌 생각하시는지?

      A. 구정은 : 결국 중동지역에 대해서는 우리도 가해자이다. 우리는 에너지 소비도 세계 10위 국가로 에너지 부문에서 석유의존도가 높다. 개인이 아무리 아낀다고 해도, 산업구조 자체가 에너지를 많이 쓰는 구조이다.

      우리가 국익과 돈에 집착하면서 속물적으로 변한 것은 왜일까. 한국인은 미국의 힘과 돈의 논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역사가 꼬였기 때문이다. 해방되고 나서 미국이 한국에 영향을 많이 끼치면서 미국이 하면 옳은 것이라 배우고 체화가 됐다. 신자유주의 논리, 경쟁논리가 팽배하다. 얼마 전 미군에서 지원병을 모집하는데 한국인 지원자가 가장 많았다. 이유는 영어를 배울 수 있고 연봉이 높으며 미국 시민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전쟁으로 누구를 죽이는 집단에 속하는 것에 대해 어떤 도덕적 판단도 없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과연 완성되어 있나. 가치판단은 성숙한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A. 안주식 : 한국 속물주의의 뿌리는 군사주의에 있다. 남자가 군대에 가야 한다는 사실은 폭력을 기반으로 속물로 변하기 쉽다는 것이다. 신병훈련소에 가서 총알을 쏘고 군사훈련을 받으면 ‘이것은 사람을 죽이기 위한 훈련이구나’를 느낀다. 이것은 한국 남자에게 심리적인 트라우마를 준다. 그 트라우마는 속물주의, 정글의 법칙, ‘죽여야 내가 산다’는 식의 제로섬 게임법칙을 몸소 익히는 계기가 된다.


      Q. 중동 지역에 다른 나라가 개입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A. 구정은 : 민주주의, 인권은 모두가 바라는 일이지만 그것을 이루는 방식은 다르다. 중동은 6차선 도로에 탱크가 다니는데 옆에서는 낙타가 다닌다. 우리나라나 미국이 초고속으로 발전한 경험을 중동지역에 강권하는 것은 폭력이 될 수 있다. 한 국가가 자기의 경험을 다른 나라에 억지로 이식할 수 없다. 문화적으로 역사와 전통이 깊은 나라에 부자연스럽게 이식한다는 것 자체가 억지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어느 나라에 얼마만큼 인도적 개입을 할 것인지는 깊은 고민을 해봐야 한다.


      Q. 남의 힘을 빌려서 민주화가 되었을 때 당당할 수 있을까?

      A. 구정은: 중동지역에서는 남의 손을 빌려서 민주화를 이루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이집트는 그 다음에 곡절은 많겠지만 최소한 우리나라의 노태우정부 정도로는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A. 안주식 :  중동은 한국과 비슷하게 갈 것이다. 자기 손으로 독재정권을 무너뜨렸으니 세세한 과정에서 반동은 있겠지만 민주의 물꼬는 돌리기 힘들 것이다.

      파병은 꼭 전쟁을 수행해서가 아니라 존재 자체로 분쟁을 방지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라크 파병은 최악이었다.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파병을 했기 때문이다. 분쟁을 막기 위한 파병과 정권타도의 파병의 차이는 크다. 이런 것을 유엔이 적절하게 선을 정해야 하는데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시리아 군사개입도 리비아 사태와 비교하면 어느 정도 군사 개입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경제제재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에 대한 토론의 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국제문제도 한국 사람이라는 국적을 떠나 보편적인 인류의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이것은 이상적이고 도덕적인 시각이지만 국제저널리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그래야 한다. 특히 KBS는 존재근거가 시민사회니까 이런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인은 한국의 시민이기도 하지만 세계의 시민이기도 한다.


      Q. 한국사람 대부분이 중동 민주화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이유는?

      A. 안주식 : 한국이 중동 민주화에 관심이 없는 이유는 한국정치 때문이다. 남북분단의 정치구조를 바꿔야 한다. 그래야 끊임없는 고민을 바탕으로 외교무대에서 결정을 하고 유엔의 규칙을 지키는 쪽으로 갈 수 있다. 리비아 사태에서 한국이 군사개입을 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적극적으로 리비아 사태에 대해 논쟁을 해야 옳다. 실망스러운 것은 리비아 사태에 관해 정당의 성명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정치구조에서는 제대로 된 논평이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중동의 석유에만 관심이 있을 뿐 민주화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이런 구조를 깨려면 정치구조에서의 변화가 있어야 하고 시민사회도 큰 역할을 해야 한다. 정부주도형, 반쪽이데올로기, 재벌과 결탁한 정치집단이 아직 깨어지지 않고 있다.
       
       

      강의를 들으며

      이번 강의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한국사회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한국이 중동 지역과 관련해서는 원전수주와 석유 외에 어떤 문화적, 정치적 관심도 없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불과 얼마 전까지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가슴 아픈 과정을 겪었음에도, 비슷한 과정을 겪고 있는 중동 지역의 민주화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습니다. 그만큼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보다 물질과 경제적 이득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경제성장을 이뤄 선진국가로 진입하려고만 했지 문화적 가치의 고양이나 민주주의 성숙에 열을 올린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또 하나 아이러니한 것은 정부가 국제사회에 기여하는 선진국가가 되겠다고 하지만 정작 세계 보편적인 가치인 민주주의, 인권, 기아방지 같은 것에는 큰 관심이 없다는 점입니다. 오직 1인당 국민소득을 높이는 일, 국가의 경제적 이익에만 치중하다보니 오히려 국제사회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외교에서 독립적인 국가로 우뚝 서지 못하고, 미국에 대한 ‘사대주의’적 사고방식이 강하게 주입되어 ‘미국에 잘 보여야 살 수 있다’는 논리가 만연한 게 안타깝습니다. 어쩌면 미국에서 공부한 교수님들의 강의를 듣고 미국 교재로 공부를 해 온 우리가 미국에 맞춰 사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미국을 벗어나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구조적으로 막혀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미국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던 역사와 교육, 분단체제가 우리의 현실을 이렇게 만든 것입니다. 한국사회에서 시민들을 깨우고 세계 보편적인 가치에 대한 인식을 퍼뜨리기 위해 시민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이 마음에 무척 와 닿았습니다. 머지않아 국제시사 프로그램을 보면서 ‘나와는 상관없는 먼 일’이 아니라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이웃의 일’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강좌 기록 및 후기: 국제연대위원회 인턴 장유진
    • 민주화 혁명 이후 중동 북아프리카는 어디로?

      2011.5.6 느티나무 중동 북아프리카 민주화 혁명의 오늘과 내일
       
      [강좌후기] 민주화 혁명 이후 중동 북아프리카는 어디로?

      중동 북아프리카 민주화 혁명의 오늘과 내일

       ‘중동 북아프리카 민주화 혁명의 오늘과 내일’의 세 번째 시간으로 ‘민주화 혁명 이후에 북아프리카는 어디로 갈지’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를 중심으로 중동지역이 민주화 이후에 어떻게 될 지에 대한 조심스런 전망과 함께, 미국이 이 지역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지난 주에 이어 구정은 기자와 안주식 PD가 강의를 맡았습니다.


      첫 번째 강의
      사우디아라비아 중심으로 본 민주화 혁명 이후: 구정은 기자

      오늘은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역사와 전통은 없지만 사우디는 중요한 나라다. 석유지정학에서 사우디의 위상은 누구도 도전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 사우디만큼 자원을 가진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건국과정
      사우디는 1902년 이븐 사우드가 건국했다. 그는 부족전쟁하면서 사우디를 장악해 나라를 건국했다. 이슬람 조직인 사우드족이 부패한 조직에 맞서 종교개혁을 일으키면서 와하비즘과 결합하여 1932년에 사우디라는 통일왕국을 만들었다. 미국 자본계열인 아람코가 석유를 발견해서 채굴을 시작했다. 그 후 이븐사우드가 죽고 나서 장남이 즉위했다.

      수니파의 사우디
      수니파와 시아파의 다른 점은 혈통을 중시하는가, 부족의 원로들이 과두지배처럼 논의해서 결정하는가 하는 것이다. 시아파에서는 부족장의 결정을 따르는 것이 순리여서, 장자 여부는 중요하지 않고, 왕정을 이끌만한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다. 사우디는 수니파이기 때문에 장자가 주로 왕권을 이어받는다. 압둘 아이즈가 사망한 후 장남인 사우드 빈 압둘 아지즈가가 OPEC창립을 주도했다. 사우드가 쫓겨난 이후 남동생인 파이잘이 즉위하였고 그 다음은 파드가 국왕이 되었다. 그는 미국에 대해 매우 호의적이었다.

      1995년부터 2000년 중반까지 사우디에서 시위가 조금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사우디는 왕위가 형제간에 계승되었기 때문에 국정운영은 원활했으나 시위에 대해서는 강경 진압했다. 이때부터 테러가 자주 발생하자 미국으로부터 오는 압력도 강해졌다. 파드가 사망하자 형제계승의 관습에 따라 동생인 압둘라가 즉위했다. 그는 서방에서 긍정적으로 봤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시위가 늘어나자 시위대의 요구대로 복지지출을 늘리겠다고 하면서도 다시 시위 자체를 금지하고 강경진압했다.

      사우디의 민주주의
      사우디 민주주의의 발전 정도는 거의 최하위권이다. 경제성장과 민주주의의 연관성을 생각할 때 중동은 1인당 GDP에 비해 민주주의 정도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언론출판의 자유가 있고 민주주의의 틀을 갖춰나가고 있는 만큼 과소평가된 부분이 적지 않다. 여기에 비해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은 민주 선거가 실시되긴 했지만 부패와 유혈사태가 심각하다.

      아랍의 혁명에 대해
      아랍은 부족주의 전통, 군사독재정권, 전제군주정의 세 가지 억압이 있어왔다. 이번 혁명은 권위주의에 타격이 될 수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미완의 혁명이 될 가능성 크다. 혁명을 하고 나면 피를 흘린 만큼 정치판에서 시민들이 조금 더 입지를 넓힐 수는 있겠지만 역부족이 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이 혁명으로 새로운 민주주의가 탄생하지 않더라도 큰 변화를 모색해 볼 수는 있다. 미국도 아랍 지역의 민의를 조금 더 중요시하게 될 것이다.

      타리크 알리(Tariq Ali)의 시각
      60년 혁명의 아이콘이었던 타리크 알리는 이번 중동 사태에 대해서 두 가지로 요약했다. 1) 아랍세계 모든 이들이 전제권력에 도전했다. 2) 독재자를 지탱해주었던 서방을 향해 자유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왜 하필 지금 아랍에서 혁명이 일어났나
      2008년 월가의 붕괴로 인한 세계경제위기가 있었다. 이 여파로 중동지역에 실업률이 올라가고 교육받은 노동자들이 대량 실직으로 거리에 쏟아졌다. 경제적 원인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생겨난 측면이 있다. 파키스탄 정부는 시위를 강경 진압한다. 인도네시아는 온건파 정당이 자리 잡아 당분간 온건파로 갈 가능성이 크다. 이집트 시민들도 독재자를 더 이상 받아주기 힘들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지지하던 무바라크도 전복된 만큼 시민 혁명이 더욱 힘을 발휘하고 있다.

      중동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어떻게 될까
      사우디가 바레인의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고 있다. 미국이 바레인에 자국 해군기지를 둔 것을 보면 전략적 요충지임을 알 수 있다. 미국이 사우디에 시위 진압을 암묵적으로 권유했을 가능성도 있다. 지금 미국은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있다. 민주주의를 위해 앞장서면서도 민주화를 위해 시위하는 사람들을 억압한다.

      앞으로 중동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갈 것인가?
      두 가지를 예측할 수 있다. 1) 아랍인들은 자기가 모르는 힘을 깨닫고 있다. 2) 어떤 방향으로 가든 자유를 맛보기 전 단계로는 가지 못한다. 튀니지, 예멘 모델 또는 정권뒤집기 모델 중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유혈충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유혈충돌을 방지하는 시스템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앞으로 사우디, 이집트, 이란은...
      사우디의 경우 이집트와 다르게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 정권은 뒤집히되, 방향은 아주 다를 것이다. 사우디는 권력을 감시하는 시민단체가 없는 나라이다. 사우디의 민주화는 왜곡되어 있어 앞으로도 힘들 것이다. 사회적 자원도 없고 극단주의자가 장악할 가능성도 있다.

      이집트는 야당이 있지만 시민단체는 거의 없다. 앞으로의 변화 방향은 미국이 이집트 정부가 전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어디까지 개혁을 원할 것인지에 달렸다. 미국은 시위대가 정부를 전복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쓸 것이다. 친미정권이 없어지면 미국의 영향력도 약화되기 때문이다.

      이란은 지금 아랍국들의 시위를 즐거워하고 있다. 중동에서 영향력이 큰 나라는 미국, 사우디, 이란 순이지만 앞으로 이란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이란은 정치력과 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강의
      이집트 혁명과 미국의 딜레마: 안주식 PD

      지난주 목요일에 KBS '세계는 지금’에서 이집트 민주화 시위 이후 ‘격동의 중동’, ‘미국의 딜레마’ 두 편을 방영했다.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느낀 점을 정리해보겠다.

      이집트의 민주화 혜택이 이슬람 단체에게로
      이번에 이집트에서는 헌법을 바꾸자는 국민투표가 있었다. 국가위원회가 꾸려져있고 올해 9월에 대통령 선거와 총선거를 치르기 위해서 헌법을 수정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이집트 헌법은 독재를 합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집트 시위에 나섰던 청년, 시민단체, 재야단체는 헌법개정에 반대했다. 다가오는 6개월 내에 헌법을 수정하고 국민투표를 하면 자기들이 후보를 내고 조직화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천천히 하더라도 좀 더 근본적으로 헌법을 수정하기 위해 대대적인 반대캠페인도 벌였지만 결국에는 헌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무슬림 브라더스(Muslim Brothers)가 여기에 크게 한몫을 했다. 이것은 1920년대에 생긴 집단인데 이슬람주의 정치세력이고 공식적으로 샤리아 법(Sharia Law)을  지지하고 있다. 헌법 개정의 혜택으로 무슬림 브라더스가 제1야당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혁명은 형식적 민주주의, 일반민주주의 요구를 하고 있다. 즉 서구식 민주주의를 요구했던 혁명으로 결국 무슬림 브라더스가 가장 큰 수혜자가 될 수 있어 제2의 충돌이 예고되고 있는 실정이다.

      *샤리아: 이슬람교에서, 코란을 바탕으로 한 법의 체계

      이집트 엘리트 집단인 군부세력에 대해
      이집트는 군부의 지위가 다른 아랍권에 비해 상당히 높다. 사회 최고 엘리트 집단이 바로 군부이다. 이들은 '국가의 수호자'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대부분의 장교가 엘리트 코스의 상징인 미국유학을 갔다와서 영어가 유창하다. 현실적으로 무바라크가 퇴진하게 된 데는 데모의 크기, 시위의 격렬함보다 군부가 무바라크를 버린 이유가 크다. 그럼 왜 군부는 무바라크를 버렸나? 군부는 무바라크를 버리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겠다는 뜻이 컸다. 이집트 군부대는 거대하며 지방 곳곳에 군부대 시설을 갖고 있어 지방권력을 갖고 있는 집단이다. 이들은 무바라트를 끝까지 지지할 수는 없었다. 이들은 앞으로 정치에 개입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세력을 넓히기 위해 움직일 가능성도 있다.

      앞으로 이집트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추측은 유동적이다. 제2의 무바라크가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군부 기득권도 유지될 것이고 무슬림 브라더스도 세력을 유지할 것이다. 적어도 5-10년이상 민주화를 향한 과정을 겪게 될 것이다.

      미국의 딜레마
      미국의 핵심 중동 정책은 다음과 같다. 1) 극단적 이슬람주의 세력은 용납할 수 없다. 2) 안정적인 석유를 공급 받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 미국은 이 두 가지 모두에서 딜레마에 빠졌다. 미국은 극단적 이슬람주의가 나타나지 않도록 여러가지 방법을 써 왔다. 심지어 독재자 무바라크를 지원해 주기도 했다. 반카다피 세력에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있다. 미국은 이런 세력에게 권력이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아랍국가의 독재를 지원해 왔다. 이런 이유로 인해 형식적 민주주의가 아랍권에서 억제됐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일반민주주의를 무시한 현실이 한계에 부딪힌 것이다. 미국은 민주주의 확산으로 세계에 기여한다고 자부했지만 이번 일은 미국의 위상에 먹칠을 했다. 지금부터 이슬람이 민주화 되면 극단주의 세력 또한 정치에 반영될 수 밖에 없다. 시스템으로 이를 막을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중동의 GCC(Gulf Cooperation Counci:페르시아만협력회의)국가가 전세계에 공급하는 석유의 양은 전체 공급량의 40% 이상을 차지한다. 미국은 GCC국가들이 정치적으로 불안해지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세계적으로 석유 가격이 배럴당 200달러를 넘어가면 대공황이 올 것이라고 예측하는 사람도 있다. 미국은 중동에서의 더 큰 혼란을 막고 민주화 진행 과정을 늦추자는 의미로 자금을 지원해서 시위를 줄이려는 논의도 하고 있다고 한다. 관련하여 미국의 민주당 씽크탱크들은 마샬플랜을 중동전체에 실행해서 빈부 차이를 없애고 민주화 정도에 따라 대규모 지원을 해주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오바마도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라 현실적으로는 어렵다.

      중동 민주화 시위에서 느낀 점
      이슬람이든, 아프리카든, 북극에 살든 사람이 자유를 경험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이것은 세계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이다. 특히 제도적 자유를 경험하면 뒤로 가지 못한다. 중동 북아프리카의 정권은 앞으로 10-20년 동안은 터진 봇물을 어떻게 수습할까를 고뇌해야 할 것이다. 저널리스트의 감각으로 느끼는 것인데 중동이 아무리 이슬람 국가라도 형식적 민주주의의 단계는 어느 정도까지 오를 것이다.

      Q&A

      Q. '독재, 이슬람 근본주의, 외세'는 서로 적대적이지만 민주화의 도래를 지연시킨 공범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 이슬람 시민은 정교분리를 하면서 민주화를 실현하려하는가?

      A. 구정은 - 이들은 적대적이지 않는 그냥 공범이다. 무바라크가 심할 때는 미국도 압박하지만 분명한 결탁관계에 있다. 민주화 이후에는 이슬람 근본주의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민주화된 사회에서는 히잡을 쓰고 싶지 않은데 안 썼다고 때리면 곤란하다. 이슬람 근본주의는 민주주의가 말하는 개인의 권리, 자유, 인권을 보장하지 못한다. 이런 측면에서는 위의 세 가지는 모두 민주주의의 적은 맞지만 공범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다. 이란의 호메이니 체제는 반미를 이용해 국민을 억압했다. 외세의 존재를 악용했다. 이슬람 근본주의의 역사는 오래됐지만 새로운 현상이기도 하다. 탈냉전시대의 새로운 현상이다. 앞날이 복잡하게 꼬일 것이다. 이슬람 세력이 민주화의 수혜자임은 확실하다.

      Q. 기독교와 기독교 근본주의가 다르듯이, 이슬람교와 이슬람 근본주의는 굉장히 다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슬람과 근본주의를 비슷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시각 교정도 해야 한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A. 구정은 - 이슬람주의는 이슬람을 내세우는 사람을 얘기한다. 여자라는 이유로 재산권을 법적으로 제한을 두는 사람과, 부르카를 안 썼다고 염산을 뿌리는 사람은 둘 다 나쁘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둘 다 보편적 인권을 무시한 것이다. 도로에 폭탄을 설치하면 극단이고, 총을 놓고 집에 있으면 온건이니까 온건은 우리 쪽으로 용인하자고 하는 것도 지배의 방법일 뿐이다. 가장 피해를 입는 사람은 아프간 여성이다. 미국이 아프간에 와서 잘 한 것이 탈레반을 쫓아낸 것인데  다시 온건탈레반을 받아들이자고 했다. 이것은 여자들에 대한 온건한 탄압을 받아들이자는 것과 같다. 미국의 이런 접근은 아주 편의주의적인 것이다. 이슬람주의라는 것은 결국 맥락은 똑같다. 이슬람주의를 금지시키는 것은 탄압이 아니라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생각한다. 부르카 때문에 염산테러를 당한 사람이 나타나면 금지시켜야 한다.

      Q. 혁명이 일어나는 이유가 실업과 관련이 깊다고 생각한다. 아랍은 경제체제가 없는 상황이다. 선진국에서 경제체제를 도입해서 성장해야하지 않나? 그러면 시민의 힘을 더 모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A. 안주식- 나라가 경제적으로 형편없다가 어느 정도 살만하니 민주주의를 해보자고 하는 시점이 되려면 돈이 그렇게 많지 않아도 된다. 사우디는 1인당 GDP가 높다. 경제적 수준은 민주주의를 진작 요구하고도 남았을 시점이다. 다만 어떻게 해서 일자리를 만들지는 얼마나 자원을 잘 팔아서 투자를 잘 할 것인지에 달렸다.

      이것은 사회주의 분배체제와 비슷하다. 석유를 팔고 남은 돈으로 공무원을 만드니 중동 사회주의라고 말한다. 이스라엘의 경제구조처럼 IT 산업을 발전시키고 산업경제구조를 장기적으로 개선해야 민주화 시위의 성과가 온전히 유지될 것이다.

      이슬람은 큰 고민에 빠졌다. 이라크전에서 미군의 횡포가 심해서 이슬람 사람들의 일부가 극단주의자로 바뀐 경우가 많다. 현대 민주주의는 정교 분리없이는 있을 수 없다. 이슬람은 미국제국주의와 종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트라우마를 가진 나라이다. 상황에 따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는 현실적인 문제이다.

      강의를 들으며

      강의에 앞서 구정은 기자가 몇 개의 두건과 히잡을 가져와 보여주었습니다. 구정은 기자는 모래 바람이 심해서 머리에 천을 두를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명하면서 직접 써보기도 했습니다. 색색의 히잡은 뉴스에서 탄압받는 여성의 머리에 두른 것과는 달라보였습니다. 어떤 문화가 생긴 데에는 이유가 다 있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중동 민주화에 대한 강의가 이어지고 현장에서 느낀 바를 들을수록 중동지역에서도 결정적 변수는 미국이라는 것이 뚜렷이 다가왔습니다. 지금까지 참고 있다가 폭발한 시민들의 분노도 미국경제의 위기로 맞은 경제난이 큰 이유였고, 앞으로 민주주의의 발전도 결국 미국이 결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미국은 세계에 ‘민주주의의 확산’이라는 명분으로 ‘선의의 개입’을 하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중동지역의 ‘석유이권’을 위해서는 민주주의에 반하는 행동을 했다는 것도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미국적 사고를 비판적 시각 없이 교육받아온 한국에서 중동 민주화를 아는 것은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때까지는 중동 북아프리카 지역은 멀리 떨어져 있고 문화적, 종교적으로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관심대상에서 빠져있었지만 아직도 인권이 유린당하는 곳이며, 투쟁을 해야 최소한의 인간적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번 민주화 혁명으로 이 지역에 관심을 가졌듯이 앞으로도 꾸준히 민주주의를 이뤄가는 과정을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강좌 기록 및 후기: 국제연대위원회 인턴 장유진


      다음 강의
      4월26일(화) 중동 북아프리카 혁명과 한국사회
      강사: 구정은(경향신문기자) 안주식(KBS피디)

    • 중동 현대사의 두 키워드 : 미국과 석유

      2011.4.21 느티나무 중동 북아프리카 민주화 혁명의 오늘과 내일


      [강좌후기] 중동 북아프리카 현대사의 두 개의 키워드 - 석유와 미국

      중동 북아프리카 민주화 혁명의 오늘과 내일

      4월 12일, ‘중동 북아프리카 민주화 혁명의 오늘과 내일’의 두 번째 시간으로 ‘중동 북아프리카 현대사의 두 개의 키워드-석유와 미국’이라는 주제로 강의가 열렸습니다. 특별히 이번 주는 KBS <세계는 지금>의 안주식 PD가 리비아 취재 현장을 생생히 전달해 주었습니다. 곧 이어 구정은 기자가 중동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석유와 미국이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를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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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방공습의 윤리적 문제에 대해: 안주식 PD

      먼 저 취재경로에 대해 얘기하겠다. 리비아는 튀니지와 이집트 사이에 있다. 리비아를 중간으로 나누면 서쪽으로 트리폴리, 동쪽에 내가 다녀온 벵가지가 있다. 국토면적은 큰데 사람이 별로 없고 해변에만 인구가 밀집해 있다. 또 트리폴리를 중심으로 카다피가 머물며 정부군을 주군시키고 있다. 벵가지를 중심으로 반군이 국가위원회 임시정부를 만들었다. 동서를 가르는 지역에는 상호공방이 이뤄지고 있다.


      1. 왜 벵가지가 반군의 중심이 됐을까?

      리 비아의 동부와 서부의 부족은 다르다. 카다피는 동부 부족을 중심으로 특혜를 주어 온 반면, 서부 부족은 박해를 받아왔다. 벵가지는 왕정 때 도시가 부흥했던 곳이며 반카다피 성향이 짙다. 이 곳 벵가지에서 처음 시위가 벌어졌다. 광장에서 데모가 시작되고 바로 무력투쟁으로 발전했다.
      튀니지, 이집트와 다른 것은 군부의 선택이었다. 리비아 군은 철저하게 카다피에 종속되어 있고 용병이 바로 시위를 진압하면서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벵가지 시민이 무기창고를 급습해 무장을 하고 트리폴리까지 진격했다. 내가 리비아에 들어갔을 때는 카다피군이 재정비하여 벵가지 반군을 공격하기 시작했을 때이다.

      2. 어떻게 분쟁지역을 취재하나

      저 널리스트들 사이에 ‘국경이 열렸다’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것은 저널리스트들이 한 명이 들어가서 안 죽었다는 얘기다. 최초로 들어간 사람이 CNN기자다. 접경지역에 있는 사람이 차량을 제공하고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장사를 하게 된다. 그 일대에 통역해주는 사람들로 난전이 이뤄진다. 시장이 형성되는 셈이다. 주로 코디네이터가 생겨 차량을 제공해준다.

      3. 왜 싸우나?

      대부 분 반군은 비조직적이고 비계획적이었다. 쉽게 정리하면 ‘카다피가 부정부패가 심한데 왜 나한테는 한푼도 돌아오지 않느냐. 그런데 왜 때리기까지 하느냐?’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경제가 어려워서 무언가를 해보려하면 관료주의가 극심해서 뭘 못하게 하고, 억울하다고 한 마디 하면 때리는 것에 대한 반감이 심하다. 

      반군에게는 정부군이 진격해왔을 때 물자를 수송하고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 석유항을 점령하는 것이 중요했다. 즉 아즈다비아 점령이 중요했다. 반군 입장에서 아즈다비아가 함락되면 벵가지가 포위되고, 대규모 학살이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내가 들어간 후에 아즈다비아가 함락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반군이 미디어 센터를 제공해줬는데 거기서 빠져나가지 않으면 죽을 상황이었다. 저널리스트로서 어디까지 취재를 하는 것이 맞는지를 고민하기도 했다. 나는 일단 나가기로 했다. 거기에 알자지라 방송과 CNN만이 남아서 취재를 계속했다.

      4. 비행금지구역과 개입의 문제

      아 즈다비아 함락 다음 날 비행금지구역이 설정됐다. 반군은 무기고에서 빼온 총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상황이었고 정부군의 무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비행금지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았으면 반군은 다 죽을 수도 있었다. 시민도 비행금지구역이 설정되길 원했다. 서방은 근접 포격을 하고 대규모 군사시설은 미사일로 폭격했고, 벵가지 주변도 폭격했다.

      여기에서 R2P(Responsibility to Protect 국민보호책임)라는 개념을 두고 논란이 있다. 2005년에 유엔정상회의에서 채택된 이 개념은 코소보와 르완다 대학살이 재현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미국이 이라크에 개입할 때는 ’인도적 개입‘이라는 용어를 썼다. 유엔은 '인도적 개입'이라는 용어가 오염되어서 새로운 뭔가가 필요했다. R2P원칙의 적용은 내전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 내전이면 서로 무장 세력끼리의 싸움이므로 외부에서 개입할 수 없다. 리비아의 무장반군은 시민이냐 아니냐가 논란이 됐다. 그러나 리비아의 반군은 제대로 된 조직체계가 없는 시민이다. 현장에서도 느꼈지만 명백히 시민이라는 판단이 든다.

      5. 주권을 침해했나 안했나

      80 년 광주항쟁과 북한 사례를 비교해 볼 수도 있다. 광주와 북한문제 사이에 리비아 문제가 있다. 광주항쟁 당시 유엔이나 미국이 한국정부에 경제제재를 했다면 정부가 시민을 공격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카다피가 유엔이나 미국의 경제제재에 대해 콧방귀를 뀔 인물이라는건 국제사회가 다 알고 있었다. R2P는 시민이 요구해야 한다. 북한은 시민이 요구하지 않으므로 적용되지 않는다. 북한의 민주화를 이루려면 북한 내부에서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집단이 있어야 한다. 리비아에서는 시민의 목숨을 구했으니 리비아에서의 R2P는 정당하다고 본다.

      중동 북아프리카 역사와 석유와 미국에 대해: 구정은 기자


      오 늘은 중동의 역사를 살펴보겠다. 그러나 20세기에 한정해서 설명하겠다. 16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오스만쿠르크가 이 일대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었다. 20세기는 이것이 쪼개져 나가는 과정이다. 그 사이 서구열강들이 식민지를 차지하고 다시 독립하면서 중동지역의 20세기 역사가 만들어졌다.
       
      다음은 중동 북아프리카 지역 역사에 핵심이 되는 사실이다.

      1. 아랍의 국가수립은 굴절되어 독재로 이어졌다.
      2. 북아프리카는 반제국주의 투쟁을 해서 힘들게 독립했다.
      3.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 이 지역 역사를 꼬이게 했다.
      4. 이란은 맥락이 다르다
      5. 현재 큰 국가인 사우디 아라비아는 20세기 역사에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


      1. 중동의 역사

      1914년 1차 대전이 일어났는데 모두가 오스만 땅을 나눠서 땅따먹기를 했다. 터키는 거대제국이었는데 입장이 바뀌었고 1915년에 오스만이 무력화됐다. 2차 대전 후 카다피가 리비아를 집권하기까지 미국이 점령국 행세를 했다.

      중동은 나세르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이 지역의 영웅이다. 카다피도 '나세르 키즈'를 자칭할 만큼이다. 나세르의 범아랍사회주의가 그에게도 영향을 크게 미쳤다.

      1960년대는 독재체제의 틀이 만들어졌다. 이라크에서는 알 바크르 대통령이 취임하고 2년 후에 사담 후세인이 취임했다. 1969년에는 카디피가 리비아를 장악하고 그의 독재체제는 석유 민족주의로 간다. 1970년에는 이집트의 나세르가 사망하고 알 사다트 대통령이 당선됐다. 시리아에서는 알 아사드가 쿠테타로 집권했다. 10년 동안 아랍공화국으로 합쳐졌다가 다시 갈라지고 1971년에는 아랍에미레이트연합이 출범했다. 1973년에는 중동전쟁이 발생했고 1979년에 아라크 후세인이 대통령이 되고 몰락하기 전까지 자기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미국과 거래했다. 이란의 이슬람 혁명이 미국에 영향을 끼쳤다.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을 보면 냉전시대에 이란이 미국에 미친 영향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련의 아프간 침공도 중요하다.

      2. 중동에 대한 미국의 개입과 석유

      중 동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이해하려면 석유의 특징을 이해해야 한다. 석탄, 구리, 은, 금은 전세계적으로 나온다. 그러나 석유는 1)지리적 편중성이 강하다. 2)또 채굴 비용이 커서 대규모로 투자를 해야 생산할 수 있다. 3) 석유는 (생산) 탄력이 없어 독식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미국이 석유 때문에 중동지역의 독재정권을 지지해 주었고 이 지역이 민주화되는데 걸림돌이 되었다. 석유산업을 국유화한 것이 이 지역의 민족주의로 이어졌다.

      이라크 전쟁의 모든 이유가 석유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일부는 석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노암 촘스키가 지적했듯이 미국의 중동 석유 이권이 유럽과 아시아의 재정을 떠받치는 역할을 한다. 이는 냉전 이래 미국의 세계패권전략의 일환이다.

      중동 독재국가는 세금이 없고, 에너지가 무상이고 교육도 무상이다. 모두 석유 수입에 기반하고 있다. 중동 독재자들은 시민들에게는 반발이 없을 정도로만 최소한의 석유 이익을 나눠주고 나머지는 자기의 이익으로 챙긴다. 석유수출은 시민들에게 최소한의 당근이기는 하지만 중동나라들은 자원을 팔아 기득권의 이익을 챙기고 산업은 정체된 ‘자원의 덫’에 걸리게 되었다.

      Q & A 안주식 PD.구정은 기자와 수강생과의 대화

      Q. 리비아에서 반군과 시민군은 어떻게 구분하나?

      A. 안주식 : 준정부 체제를 갖추느냐 안 갖추느냐가 관건이다. 리비아 사태는 중동전문가 누구도 예측 못 한 형태로 '조직이 없는 운동'이다. 10여 년 전부터 재야단체가 꾸준히 활동은 했다. 대표적으로 이슬람 브라더스(형제단)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반정부적 행동을 할 역량을 갖추지는 못했다.

      임시정부인 국가위원회도 체계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일부 흥분한 시민이 친카다피 측을 축출해서 고문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국가위원회가 주도한건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국가위원회가 통제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리비아 반군은 군사체계를 갖지 않고 시민연합으로 움직이고 있다. 앞으로가 문제다. 리비아 반군세력에서 유일하게 무기를 쓸 줄 아는 집단이 이슬라미스트들이다. 정치체제가 와해된 상황에서 그나마 무장투쟁은 극단주의자들인 것이다. 알카에다와 비슷한 일부세력들이 국가위원회의 무장 군사훈련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앞으로 체계적으로 무장집단화될 가능성이 있고 그때는 내전이라 불러야 한다. 그렇게 되면 국제사회의 개입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그렇지 않다.

      Q.  리비아 시위대는 주로 남자인데 여자들의 역할이 있었나? 여성의 지위는 어떻게 될 것인가?

      A. 안주식 : 중동지역은 내외를 많이 한다. 물론 참여가 있었고 여성들만 따로 모여있기도 하고 남성들이 보호를 하기 위해 둘러싸고 있어서 언론에 잘 보여지지 않은 측면도 있다.
      벵 가지는 젊은 청년 위주다. 이집트는 투표할 때도 남녀 따로 한다. 현재 중동은 베이비붐 세대인 30세 이하가 60%로 젊은 층이 높다. 어느 전문가는 ‘이들이 데모할 나이가 되어서 이번 시위가 일어났다’고 한다. 이들 가운데는 직업 없이 30세가 된 사람이 많다. 리비아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비해서 국제화 수준이 높고 일반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 수준이 높다. 여성들의 자각도 높았다.  

      구정은: 리비아는 굉장히 보수적이어서 여성의 역할이 다른 나라보다 적다. 가부장제가 뿌리 깊어서 거의 여성이 안 보였다. 이집트는 1920년부터 여성운동이 활발해 최초 여성연맹이 있었는데 근래에 이슬람화가 진행되면서 사라졌다. 사우디에서는 이슬람주의자들이 돈을 주고 배우, 밸리댄서에게 히잡을 쓰고 텔레비전에 나와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하게 하고 있다. 최근에는 여성에 대한 억압이 심해졌다. 페미니스트들을 탄압하고 이슬람식으로 행동하게 한다. 이란에서 여성에 대한 억압사례들이 많지만 1997년에 부통령이 나오는 등 많은 여성의 활동이 있었다. 이란의 혁명은 여성이 이끄는 운동이라고 한다.

      이번 시위를 통해 여성의 지위가 높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혁명을 주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직화된 세력이 이슬람조직세력이다. 여성의 입장에서는 독이 될지 약이 될지 모르겠다. 미완의 혁명이 될 가능성이 높다.

      Q. 반군이 조직화가 되지 않았을 때 노동조합이 시민진영이었을 것 같은데 어떤가?

      A. 구정은: 조직화되어 움직이면 정치다. 조직화가 되지 않은 움직임이기에 혁명이다. 무슬림형제단은 1920년 대에 만들어진 근대 최초의 조직으로 이번 시위에서도 조직적으로 움직인 면이 있다. 조직되어 움직이면 혁명이 아니다.

      안주식 : 이집트 민주화 시위를 봤을 때 군부가 중심이었다. 튀니지도 마찬가지였다. 이집트의 경우는 군부가 무바라크를 버린 형국이다. 이집트는 리비아와 다르게 군부엘리트 체제가 정치의 상당부분을 차지해 왔고 이를 계속 보장받고 있다. 대신 무바라크를 물리쳐 주겠다는 약속이 정치지도부 사이에 있었다. 이집트에서는 제2의 무바라크가 군부에서 나올 것이다. 리비아는 노동조합같은 조직력을 갖고 있는 세력이 없다. 산업구조가 달라 노동자 조직이 있을 수 없다.

      Q. 중동지역 젊은이의 시위가 일자리와 관련이 있나?

      A. 구정은 : 88만원은 우리 산업구조의 문제이다. 중동은 근대산업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와는 다르다. 경제구조 자체가 직업을 갖기 힘들게 되어 있다. 공무원이 제일 많다. 석유를 팔아서 나눠주는 구조로 되어 있어 공장은 아예 없다. 카다피가 일자리를 만들어 나눠줬지만 어느 순간까지만 유지되고 인구는 폭발하는 시점에 도달했다. 

      안주식 : 중동의 산업은 역사가 다르다. 중동은 갑자기 돈이 생기고 인구가 늘어났지 그 전에는 인구가 없다. 교역만 있지 산업을 할 수 있는 지역이 아니다. 중동은 애당초 다르다. 노동집약 농업이 가능했던 데가 아니다. 유목민이 교역하거나 유목 활동을 통해서 먹고 살았다. 최근에 석유 때문에 인구가 폭발했고, 또한 인구의 절반이 외국인이다.

      Q. 중동지역에서 정치와 종교지도자의 관계는 어떠한가?

      A. 구정은 : 근대국가는 종교와 정치를 분리하면서 탄생했다. 그러나 이슬람 종교 자체가 독특한 면이 있다. 무슬람형제단은 불법이었는데 살아남았다. 종교주의자들이 학교와 병원을 꾸리기 때문이다. 탈레반도 학교와 병원을 쥐고 있다. 그래서 이들의 뿌리가 매우 광범위하고 깊다. 중동에서 종교는 따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구조이다. 종교는 하나의 정치 주체로 중동 사회에 들어와 있다. 그 속에서 온건주의자와 극단주의자의 성향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지역의 민주화는 종교와 같이 가야 한다. 아랍권에서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강좌 기록 및 후기: 국제연대위원회 인턴 장유진

    • 중동 북아프리카의 현실과 재스민 혁명의 의미

      2011.4.13 느티나무 중동 북아프리카 민주화 혁명의 오늘과 내일
       
      [강좌후기]중동 북아프리카의 현실과 재스민 혁명의 의미
      중동 북아프리카 민주화 혁명의 오늘과 내일


      참여연대는 4월 한 달 동안 중동 북아프리카 지역의 민주화 혁명에 대해서 강좌를 엽니다. 최근 중동의 반정부 시위는 튀니지에서 청년의 분신으로 시작해 이집트, 리비아,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등으로 퍼져가고 있습니다. 이 강의는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지역과도 같았던 중동 아프리카 지역의 변화양상과 그 의미를 구체적으로 살펴봅니다. 강의는 중동 현장의 경험이 많은 구정은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가 맡았습니다. 4월5일, 첫 강의에서는 중동 북아프리카의 현실과 재스민 혁명의 의미에 대해 짚어봤습니다.

      리비아 사태에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바람으로: 사회자 주은경 
      
      이 강의를 기획한 것은 이집트 혁명이 승리를 이루면서 중동지역의 ‘프랑스 혁명’이 되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이 있어서였다. 구정은 기자는 문화일보의 국제부 거쳐 지금은 경향신문 국제부기자로 있다. 교수보다 오히려 현장에 강한 강사라 좋은 시간이 될 것 같다. 중동 북아프리카의 혁명을 배움으로써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방법이나 한국인이 국제사태에 갖고 있는 감수성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강의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리비아 사태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강좌의 시작: 구정은 기자
      
      나는 중동 북아프리카의 역사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살아본 것도 아니다. 단지 10년 동안 일하다보니 이 지역 뉴스를 남보다 관심을 갖고 살펴보게 됐다. 지금은 이 지역에 많은 애정과 문화적 매력을 느끼고 있다. 비록 민주화에서 뒤쳐져 있지만 아픔을 최소화하면서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크다. 이 지역 상황은 지금도 진행형이어서 강의가 끝나는 4월 말이면 어떤 상황이 될지 모른다. 진행되는 걸 보면서 같이 공부한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일단은 중동 아프리카의 지리를 머릿속에 넣어두는 것이 필요하다. 보통 중동 북아프리카라고 하면 터키와 이란은 빼고 생각한다. 오늘은 북아프리카 쪽에 초점을 두겠다. 앞으로 이어지는 2,3강은 걸프 지역에 초점을 둘 것이다. 최근은 리비아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리비아는 이집트 옆에 위치한다. 리비아는 민주화 시위가 지속되어 지금은 내전상황이다.

      1. 튀니지는 민주화 혁명이 아닌 시민혁명, 그리고 SNS(소셜네트워크)
      
      일단 튀니지 혁명에 대해 알아보겠다. 이것을 민주화 혁명이라고 볼 것인지 시민혁명으로 볼 것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아직까지 민주화라는 결과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시민혁명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사람들은 ‘중동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지금까지 이런 혁명을 볼 수 없었다’라는 말을 하는데, 여기에는 중동사회가 가부장적이고 억압적이라 저항적이지 않다고 보는 서구적인 사고가 들어가 있다. 중동 북아프리카가 민주화에서 후진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종교나 아랍의 문화 때문만은 아니다. 그러나 이곳은 지금 역사적인 혁명의 시기를 겪고 있다.

      ‘튀니지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의 SNS 혁명'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또한 중동 지역에는 '알자지라'라는 24시간 위성방송을 하는 방송국이 있는데 시위현장을 마치 CCTV처럼 생중계한다. 아랍어를 쓰는 국가 모두가 이 방송을 보기 때문에 이번 혁명 과정에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기존에 존재하던 분노와 억압의 강도가 셌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므로 시민의 분노와 SNS의 역할이 합쳐져 촉발됐다고 볼 수 있다.

      2. 무바라크 시절 이집트와 중동 지역의 혁명
      
      이 지역은 공통점이 있다.
      
      1) 종교는 이슬람교이고, 언어는 아랍어라는 점 2) 근대 이전까지 아랍지역이었다가 오스만투르크의 영토로 한 나라였던 점, 즉 광범위한 공통의 역사 3) 30-40년간의 독재정권을 겪으며 형성된 계층갈등의 심화 그리고 4) 산업 성장 기반이 없고, 외부 의존적이라는 점 이다.
      
      이집트는 이 지역에서 중요한 나라이다. 이집트에서는 아랍연맹사무총장, 노벨상 수상자, 유엔총장 등이 나와 국제적으로 힘이 있는 국가이지만, 팔레스타인을 누르고 자국민을 억압하면서 버텨 왔다. 통계는 없지만 1/3이 유형, 무형의 미국원조로 살아간다. 독재가 지속되다 보니까 미국에도 무바라크 정권이 짐스러운 시점이었고, 시민의 힘이 압도적으로 드러나자 무바라크는 미국이 버리는 카드가 됐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미국에 달렸다’는 건 믿을 말이 못된다. 오히려 시민의 손에 달렸다. 그것이 진정한 권력 투쟁이고 이집트는 지금으로선 시민이 이긴 상태다.

      지금 중동은 2차대전이 끝난 것보다 더 큰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들은 자기들 손으로 혁명을 만들어 가고 있다. 프랑스 혁명만큼 중요한 것이 아니지만, 이번 혁명은 시대를 앞서 가는게 아니라 마무리하는 혁명이라는 큰 의미가 있다. 20년 전 냉전시대가 끝나면서 사라졌어야 할 미국의 패권을 등에 업은 독재정권이 중동이라는 특수성과 석유의 이익 때문에 지속되어 온 것이다. 지금 카다피는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고 있는 형국이다. 정치적 패러다임으로 봤을 때 이미 끝났다는 의미이다.

      3. 리비아의 시민혁명
      
      카다피가 어떻게 정권을 잡게 되었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상황이 진행될 가능성이 있는지를 살펴보겠다. 카다피는 20대 때 쿠데타로 집권한 후 42년간 권좌에 있었다. 그는 카다파 족이어서 카다피가 됐다고 한다. 그는 60-70년대 이집트 낫세르의 영향을 많이 받아 아랍사회주의와 부족주의 성격을 띄는 범아랍주의 성향이 강하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은 카다피의 패션이 체게바라와 비슷하고 사회주의적 성격을 보여주는 패션을 고수한다는 점이다.

      리비아는 이슬람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 국영으로 운영되는 영역이 많다. 또한 리비아는 70년 대 대의민주주의가 아닌 ‘자마리아’ 즉 인민공화국이라고 선언한 바가 있다. 독특한 점은 카다피와 그의 측근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카다피는 직책이 없다는 점이다. 이때까지 카다피는 권력을 잡은 후 시민에게 고문, 감금은 했지만 처음 집권과정에서 사람을 많이 죽이진 않았다. 미국도 카다피를 두고 막무가내이지만 실용주의라고 인정했다. 또한 그는 석유자원을 팔아서 아랍권을 통합하려 했고 역내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이런 기반을 통해 그는 40년간 정권을 이어 올 수 있었다. 그는 석유를 팔아 번 돈으로 대외정치에 개입하려는 움직임을 계속 보여왔지만 이집트만큼 국제정치에 영향을 미치기는 어려웠다.
      
      카다피는 이슬람 사회주의를 내세우면서 반미제국주의 투쟁을 진행해 왔다. 미국과의 관계가 최악일 때는 레이건 대통령 때였다. 이란의 팔레비왕조가 무너지면서 미국의 중동전략에 혼란이 왔다. 미국이 이라크를 시켜서 이란을 침공하게 만들 때 카다피는 이란을 지지했다. 이것 때문에 레이건 때 양국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카다피를 ‘중동의 미친개’라고 불렀다. 그 때부터 카다피 전복공작을 시작하게 됐다. 사실 이런 사건들이 없었다면 크게 그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테러사건의 배후였다는 이유로 트리폴리가 공습당하면서 그의 수양딸이 죽었고 90년대 말에는 중동에서는 영향력이 없어서 아프리카주의로 전환했다.

      그는 정서적으로 문제가 생긴게 아니가 싶을 정도로 돌출행동을 많이 했다. 아프리카 왕같은 옷을 입고 나오기도 하고, 아프리카연합의 의장국을 맡으면서 부족장을 모아놓고 자신을 왕중왕으로 일컫거나, 외국에 순방가면서 천막을 지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카다피와 서방과의 관계를 보면 그는 영국의 전 총리인 블레어와는 친하게 지냈다. 3년 전 총리직 그만두기 전에 리비아 유전개발권을 따 줄 정도로 친했다. 그리고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과도 가까웠다. 리비아에서 카다피가 잘못한 게 있다면 이번에 혁명이 발발한 후 전투기까지 띄워서 사람을 죽인 것이다. 미국이 석유 이익 때문에 편을 들어 주고 싶어도 국내에서 표가 깎여서 그렇게 못하는 상황이다. ‘앞으로 리비아는 어디로 갈 것인가?’는 국민의 힘에 달렸다.

      이집트는 인구의 97%가 국토의 3%에 모여 살고 있다. 반면 리비아는 전체가 사막이고, 사람들이 흩어져 살기 때문에 결집된 시민의 힘이 없다. 지금 리비아는 카다피가 있는 상태에서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으면 카다피를 축출할 방법이 없다. 가장 좋은 방향은 인명피해가 최소화 되는 선에서 카다피가 멈추는 것이며, 리비아인의 힘으로 민주적인 새로운 정부를 꾸리는 것이다. 반군은 전력이 큰 게릴라군이 아니기 때문에 힘든 상황이다. 그러나 지상군 투입은 못 하기 때문에 현 상황이 유지될 것이다. 그렇다고 다시 카다피가 장악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4. 인도적 개입, 해야 한다 vs 말아야 한다
      
      인도적 개입을 두고 국제적으로 논란이 많다. 왜냐하면 군사행동이 목숨을 빼앗는 전례들이 많기 때문이다. 옳으냐 그르냐는 결과를 중심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코소보는 인구가 밀집된 도시였다. 공습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서 누가 학살자인지 학살받는 사람인지 구분이 안 됐고 악천후까지 겹쳐 실패했다. 코소보 사태에 대한 군사적 개입에 대해 좌파지식인은 개입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 90년대 시에라리온이 절망의 땅이 되어버렸을 때 영국군이 개입했고 이는 성공적이었다. 군벌세력을 몰아내는데 성공했고 학살의 주범인 라이베라 대통령을 잡아서 국제전범재판에 붙였다. 그 후 라이베리아에서는 여성대통령이 당선되었고 결과도 그런대로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인도적 개입이 성공하지 못한 다른 케이스들이 더 많이 있다. 90년 대 이라크는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고 10년 간 엠바고를 실시했는데, 이라크의 어린이와 병든 사람들이 죽는 결과를 낳았다. 지금도 죄를 저지른 당사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징벌을 주는 집단징벌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유엔의 금수조치 책임자였던 사무차장이 금수조치를 반대하는 일까지 생겼다. 90년대 르완다는 300만명이 학살됐는데도 국제사회가 개입하지 않았다. 왜 그런지 알 수 없다. 또한 90년대 아프간 내전에도 개입하지 않았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인도적 개입’이라는 명분으로 이행됐다. 이라크에는 알카에다도 없었고 대량살상무기도 없었는데 인도적 개입이라고 용어를 붙여, 결국 인도적 개입이라는 말만 오염시켜 놨다.

      Q & A: 구정은 기자와 수강생과의 대화

      Q. 혁명 후는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나? 시민의 힘이라고 하는 데 시민의 힘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을까?
      
      A. 한국의 386 세대가 시민의 힘을 의심하는 경향이 더 강하다. 동시에 그들은 미국의 힘을 믿는다. 이라크 전이 개시되기 전 몇 달 전부터 세계 곳곳에서는 반전시위를 비롯한 움직임이 많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유명한 교수나 학자,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반대해 봤자지’ 하는 회의론이 대세였다. 시민들의 움직임이 미국이 일으킨 전쟁을 막지는 못했지만, 건전한 시민들의 반대가 있었기 때문에 이라크의 사상자를 줄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국제사회가 반대하는 이라크전쟁을 했고, 이 과정에서 미군들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많았지만, 만약 모두가 전쟁에 무관심했다면 더 심하게 사상자를 냈을 것이다. 미군 측에서 오폭 사고를 내면 시민들이 민간인학살이라고 크게 반발하면서 공습자체를 많이 바꿨다. 그것이 바로 시민의 힘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시민의 힘은 작용을 한다.
       
      지난 30년 동안 민주화를 이루지 못한 이집트의 경우, 부시 전 대통령은 중동민주화를 원했는데 오바마는 무바라크를 끌어안았지만 이집트 국민의 힘에 밀려 무바라크를 버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시민의 힘은 결정적인 순간에 보이는 것 같다. 중동에 있는 사람들은 이집트를 싫어한다. 매춘부, 사기꾼 등이 이집트를 묘사하는 단어이다. 이집트인들은 부패한 정권 밑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시민들 뼈 속 깊이 부패했기 때문이다. 지금 시민혁명 이후 집권한 이집트 총리는 1년 간 교통부장관을 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주변에는 노벨화학상을 받은 저명한 물리학자와 나사에서 근무한 과학자 지식인 그룹이 그 주변에 있다. 이집트에서는 시민사회가 축적한 힘이 현 상황에서도 이집트가 아수라장이 되지 않게 하고 있으며, 군부가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Q. 과연 인도적 개입이라는 명분하에 타국민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옳은가?
      
      A. 인도적 개입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너무나 원론적이라는 문제가 있지만 원칙적으로 사람의 목숨을 죽여도 되는 정권은 없다. 인권을 넘어서는 주권은 없다고 본다. 그러나 실제적인 군사행동은 또 다른 인명피해를 가져오는 것이다.
      
      리비아의 경우는 군사시설에만 폭격하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 그러나 북한정권에도 인도적 개입을 해야 하나? 평양 같이 인구가 밀집한 곳은 일반인들이 수 천명, 수 만명이 죽는 것이 뻔한 사실이다. 사건 하나하나에 따라 달라 ‘옳다 그르다’하기 어렵다. 지금까지는 리비아에 대해서는 군사개입을 했어야 하는 상황이라는 평가가 많다. 벵가지 공습 함락 때 카다피 군에 타격을 주면서 민간인 거주구역이 아닌 곳에 폭격하는 것은 합당한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점은 국제법을 연구하는 분들도 혼란스러워한다.

      Q. 중동 지역에 특별히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십 수년 전에 국제부에 갔을 때 막내였고 선배들이 미국과 유럽을 담당했다. 국제부에서 일하다가 사회부로 옮겼다가 다시 2001년 다시 국제부로 갔을 때 9.11이 터졌고 역시 막내였다. 그때 또 중동을 맡아서 공부를 하면서 출간된 책을 섭력하였다.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 실크로드 그런 것들을 좋아했고 문화적 매력도 느꼈다. 막내라서 중동 아프리카 지역을 맡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느새 인생의 중심이 되었고, 국제정세 역시 지금에 와서는 유럽은 어떤 영향도 없고 변수도 아닌 상황이 되었다.
      
      2001년 후반 9.11 이후부터는 날마다 집에 가면서 이라크 가는 생각을 했다. 요르단에 한국대사관에 비자를 신청했는데 어느 날 비자가 나왔다. 사담후세인이 국민투표를 한 적 있는데 이 때 해외기자초청을 하면서 바로 다음날 요르단으로 갔다. 이라크에 들어가 있다가 최후통첩 때 요르단으로 나와서 이라크전을 보았다. 나야 달랑 나오면 그만이지만 남아 있는 사람은 죽을 수도 있었다. 인생에 가장 마음이 아픈 부분이었다. 그 다음에는 관심사가 아프리카로까지 넘어갔다.

      Q. 중동 아프리카 지역에서 미국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
      
      A. 그들은 미국을 굉장히 싫어한다. 이 지역은 미국의 위선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독재정권인 무바라크 정권을 밀어주었고, 이라크 전쟁을 통해서 미국의 위선은 극명하게 드러났다. 역사가 7000년이나 된 세계 최초의 국가이자 문명이 중첩된 국가인 이라크에 대해 미국은 오만하기까지 했다. 미국은 한국 전쟁 때 남한을 지원했고 한국은 미국을 상대로 돈을 벌기도 하는 가까울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중동에게는 그렇지 않다. 필요성을 인정하는 정도이지 미국을 옹호하는 것은 중동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이다.

      첫 강좌를 듣고서: 국제연대위원회 인턴 장유진

      우연히 몇 해 전 세바스티앙 살가도 사진전을 보게 됐습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미국중심의 동북아 정세만 공부하던 때,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우리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지구 반대편에서 고통 받는 이들에게 관심을 갖게 했고, 참여연대의 중동 북아프리카의 강의를 듣는 계기가 됐습니다. 구정은 기자의 생생한 강의는 이 지역의 상황을 ‘학문적 성찰의 눈’이 아닌 ‘기자의 예리한 눈’으로 현장의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받았습니다. 특히 체험담과 그 지역사람들의 시각에 대한 설명은 책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이어서 값졌습니다. 지도자의 성향이나 국민성 등 체험한 사람에게만 나오는 소소한 일화들이 많아 흥미로웠습니다. 강의가 끝나자마자 ‘왜’라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됐습니다. 좀 더 깊이 있는 내용으로 이어질 두 번째 강의가 기대됩니다.

      강좌 기록 및 후기: 국제연대위원회 인턴 장유진

      다음 강의
      4월5일(화) 중동 북아프리카의 현실과 재스민 혁명의 의미
      강사: 구정은(경향신문기자), 안주식(KBS 피디)

    • [라운드테이블] 리비아 사태와 군사적 개입, 어떻게 볼 것인가

      2011.4.6 느티나무 중동 북아프리카 민주화 혁명의 오늘과 내일

      4월 5일(화)부터 중동 민주화 혁명의 오늘과 내일이라는 제목으로 최근 중동 민주화 혁명과 관련한 강좌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번 강좌와 관련해서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에서 진행된 리비아 사태에 대한 라운드 테이블의 논의 내용을 소개합니다.


      [라운드테이블] 리비아 사태와 군사적 개입, 어떻게 볼 것인가

      3월1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리비아 무장갈등에 군사적 개입을 승인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한 후, 리비아 상공에 비행금지구역이 설정되고 다국적군의 군사적 개입이 시작되었습니다. 41년간의 독재를 종식시키고자 들고 일어선 시민들을 카다피 정권이 유혈진압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기구나 강대국이 군사적 개입에 나선 것에 대해 다양한 견해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에 참여연대는 리비아에 대한 군사개입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인도주의적 개입(humanitarian intervention)혹은 R2P(Responsibility to Protect) 등의 개념을 적용할 수 있는지, 이 개념을 둘러싼 논란은 없는지, 더불어 군사적 개입이 가장 실효성이 있는 방안인지 등을 토론하는 라운드테이블 「리비아 사태와 군사적 개입, 어떻게 볼 것인가」를 개최하였습니다. 참여연대 박정은 팀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 자리에는 한국외대 유달승 교수, 이화여대 평화학연구소 서보혁 연구교수, 경계를 넘어 최재훈(까밀로) 활동가, 그리고 평화네트워크 정욱식 대표가 패널로 나와 의견을 개진하였습니다.

      이번 라운드테이블에서는 ▷ 중동아프리카지역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한 리비아에 대한 군사적 개입에 대한 평가, ▷ 중동아프리카, 서방국가들 각각의 내부정치와 석유라는 에너지원을 둘러싼 국제정치의 실상, ▷ 국제사회의 보호의 책임(R2P)을 어디까지 한정하고 이에 필요한 장치는 무엇인지, ▷ 이러한 국제사회 담론이 국제평화운동과 한반도 평화에 함의하는 바는 무엇인지 등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각 패널의 주요 발제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민간인 보호가 아닌 민간인 피해 초래하는 군사적 개입

      최재훈 활동가(경계를 넘어)는 과거 역사를 되돌아볼 때 군사력과 경제력을 가진 몇몇 패권국가들에 의해 선택적으로 취해진 군사개입이 애초 의도한 민간인 보호라는 목적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군사적 개입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한다고 밝혔다. 최재훈 활동가는 몇 가지 논거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 리비아 사태에 대한 성격을 내전 또는 민주화항쟁 가운데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따라 국제사회의 대응 방식이 달라짐. 리비아에서 정치적 폭압에 항거하고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시작되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음. 그러나 처음부터 일관되게 비상사태해제, 무바라크 퇴진, 개헌을 통한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주장해온 이집트 민주화 항쟁과는 달리 반카다피 진영의 정치적 비전은 불명확함. 민주화를 요구하는 민중들의 항쟁을 정치적, 외교적 차원 등에서 지원하고 독재자에 압력을 가하는 것과 내전의 한 축을 지원함으로써 다른 한축을 몰아내는 것은 분명 다른 차원의 문제임.

      ▷ ‘비행금지의 준수를 강제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처들을 취하도록 승인’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 1973호가 몇몇 회원국들에게 자의적 판단에 의한 포괄적 수단 동원의 길을 허용한 점에서 ‘정당하다’고 할 수 없음.

      ▷ 리비아뿐만 아니라 예멘, 바레인, 요르단, 모로코, 사우디아라비아 등등 중동아프리카 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유사한 사태에 대한 군사적 개입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음. (레바논, 팔레스타인을 침공한 이스라엘, 2010년 한 해 동안 무인기를 동원해 929명의 파키스탄인들을 사망하게 한 미국 등에 대한 논의도 없다는 점에서) 형평성이 부족함.

      ▷ 민간인 보호를 내세웠던 비행금지구역 설정은 오히려 민간인 피해를 초래할 수밖에 없고 지상에서 쌍방간의 보복학살을 격화시켜 오히려 민간인 피해를 더 초래한다는 점에서 실효성도 도덕성도 부족함.


      최재훈 활동가는 카다피의 해외자산 동결, 무기 금수, 국제형사재판소 회부, 아프리카 연맹이나 역내 국가의 중재 등 지금이라도 정치적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리비아 사태와 군사적 개입, 과연 ‘최선의, 최후의’ 수단이었나

      서보혁 교수(이화여대 평화학연구소)는 R2P(Responsibility to Protect*)의 개념에서 이번 리비아 사태를 분석하였다. R2P는 국가가 국민보호의무를 실패할 때 국제사회가 시의적절한 집단행동을 취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주요골자로 한다며, 카다피정권에 대해 군사적 개입을 하지 않았다면 어떤 형태로든 폭력이 계속되거나 확대되었을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에 이를 중단시키기 위한 수단의 강구, 즉 광의의 인간안보의 관점에서 리비아 군사적 개입은 필요한 부분이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나 서보혁 교수는 비록 R2P를 명분으로 리비아 군사적 개입을 단행했으나 실제 R2P 목적이 제대로 수행되었는가는 별도의 평가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인간안보관여(Human Security Engagement) 가 목표로 하는 개입의 6가지 전제조건은 다음과 같다 : right authority(정당한 권위), ▷just cause(정당한 명분), ▷right intention(정당한 의도), ▷last resort(최후의 수단), ▷proportional means(수단의 비례성), ▷reasonable prospects(합리적 전망).

      유엔안보리에 대한 구조적 문제점은 이번 논의에서 차치하고 유엔 결의안은 정당한 권위, 명분, 의도의 조건은 충족하지만, 과연 군사적 개입이 다른 모든 가용할 수 있는 수단이 동원된 뒤에 최후의 수단으로 이뤄진 것인지(최후의 수단), 현 수준의 군사조치가 리비아 사태와 비례하는 것인지(수단의 비례성), 인간안보 관여가 중장기적으로 시민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사후 재건 비전 등에 대한 구체적 계획(합리적 전망)을 동반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번 리비아 군사적 개입에 대한 문제점과 한계점이 존재한다고 서교수는 지적했다. 즉 리비아에 대한 군사적 개입은 R2P를 명분으로 시작됐으나 실제 진행된 양상은 이를 충족시키기 어려운 상황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서보혁 교수는 유엔에서 R2P 개념을 내세워 이번 리비아 결의안을 통과시켰지만 합의절차와 행동절차 등이 제도화가 안된 상태에서 R2P 개념을 도입하여 결의와 개입이 이뤄진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하며, 인간안보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으로서 R2P를 공론화하고 제대로 달성하기 위한 장치를 고안하는 데 국제시민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리비아 사태와 서방 군사개입의 목적

      유달승 교수(한국외대)는 리비아 사태는 민주화운동, 내전, 전쟁 등으로 이름을 달리 붙여야 할 만큼 그 양상이 계속 변화하고 있다고 하면서, 리비아 사태에 대해 미국과 유럽의 대응양식이 다르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리비아에서의 시위는 극단적 무장투쟁을 강조하는 이슬람 투쟁세력과 민족해방운동을 하는 소수 엘리트 장교, 그리고 아프간 내전에 참가했던 리비아 전사들이 조직했기 때문에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처음부터 급격한 총격전과 무장투쟁이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즉, 2011년 리비아 사태는 1995년에 있었던 유혈폭동과는 다른 다양한 세력이 결합되어 시위대를 구성하고 있다는 점과 다른 국가와는 달리 카다피에 반대하는 이슬람세력이 군부와 결합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반카다피 세력으로 인해 군주제로 복귀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 등 리비아만의 특이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유교수는 왜 이 시점에서 리비아에 대한 서방의 군사적 개입이 이뤄졌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리비아 내전은 서방의 군사적 개입으로 전쟁으로 확대된 반면, 이들 국가들은 예멘과 바레인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주화 시위에 대한 학살은 침묵하고 있다. 미국이 발을 빼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시민군에 알카에다가 개입했다는 카다피의 주장과 연관되어 있는 듯 보이며, 리비아의 원유 수출량은 세계12위에 불가하지만, 원유가 질적으로 좋으며 이 석유의 85%가 유럽에 수출된다는 점이 서방 국가들의 군사적 개입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유교수는 환기시켰다.

      유교수는 어떤 사람들은 이번 아랍 지역의 민주화 혁명이 1989년에 있었던 동유럽에서의 도미노현상과 비슷하다고 하지만 몇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유교수에 따르면 1989년 사건을 통해서는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무너지면서 미국 중심의 세계패권으로 이어졌지만, 이번에는 친미 국가와 반미국가 모두에서 혁명적 시위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집트는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이라는 점에서 친미 아랍국가가 더 이상 미국에 의존할 수 없는 상황이며, 앞으로 중동 지역에서 탈이데올로기 실용주의가 주도하는 새로운 정치지형을 점쳐보게 한다고 말했다.

       

      리비아 군사개입이 한반도 평화에 주는 함의

      정욱식 대표(평화네트워크)는 평화운동의 입장에서 무력사용 자체는 원칙적으로 반대하나, 무력개입을 해도 되느냐 안되느냐 하는 이분법적인 관점으로 보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정대표는 대량학살이 벌어지기 전에 무력 개입을 선택한 것은 정당하고 적절했다는 찬성론도 존재하지만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보았다.

      ▷ 우선 국제사회가 리비아 사태 초기 국면에 갈등해결의 가장 중요한 수단인 중재노력을 거의 보이지 않았음.

      ▷ 리비아 사태를 통상적인 의미의 민주화 운동으로 볼 것인지, 반군 세력과 카다피 정권 사이의 무력충돌, 내전으로 볼 것인지 살펴봐야 하며, 서방의 군사적 개입은 실질적으로 반군을 지원하는 성격이 큼.

      ▷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 등 서방국가들이 내부정치용으로 리비아 사태 이용함.

      ▷ 리비아와는 달리 예멘, 바레인, 시리아, 요르단 등에는 개입하지 않는 국제사회의 모습에서 R2P의 허구성, 강대국의 이중잣대를 드러냄.

      ▷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넘어선 과도한 군사행동과 군사행동에 내재된 ‘자기증식성’의 문제점.

      ▷ 민간인 보호 목적의 무력 개입이 초래한 민간인 피해. 이를 소위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라 할 수 있는지 문제.

      ▷ 리비아에 대한 군사적 개입이 민주화 운동세력에게 연대의 희망을 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다른 독재국가들이 민주화 운동의 싹을 자르기 위한 무자비한 탄압에 나서는 현실.

      마지막으로 정대표는 북한이 핵을 포기한 리비아의 현실을 보고 자신들의 선군정치와 핵보유 의지를 강화하고자 한다는 점을 볼 때, 이번 국제사회의 군사적 개입이 핵비확산체제의 확립에 기여하는가 하는 점에서 현재로서는 긍정적 평가를 내리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 했다.


      리비아 군사개입을 둘러싼 국내정치와 국제정치

      최재훈 활동가는 서구가 왜 리비아에 직접 군사개입을 했는지를 보면 석유이권이나 국내 정치상황등의 요인도 있지만, 더 크게 보면 미국이 중동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불확실성'이라는 점에서, 미국의 가장 큰 고민이 현 독재자들의 축출 후 어떤 정권이 들어설 것인가를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현 반카다피 측의 과도정부 인사들의 면면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미국이 직접 개입해서 포스트 카다피 시대의 판을 짜 보려는 것처럼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보혁 교수는 현재 아랍 민주화 바람에 대응하는 미국의 태도는 제국으로서의 미국이 약화되고 있는 현상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며, 이번 사태를 미국 중심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어렵다고 보았다.

      유달승 교수는 튀니지와 이집트는 미국의 신자유주의 정책과 국제금융기구의 정책을 잘 따르던 국가에서 양극화, 실업 등의 문제를 갖고 일어난 사태들이므로 이후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동반될 것이라고 보았다.

      정욱식 대표는 이번 리비아 사태에 미국이 개입한 것에 대해서는 석유 등으로 단순히 설명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 보았다. 특히 미국 주류의 전쟁방식인 대규모 지상군 파견을 피하는 전쟁수행방식의 변화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현 리비아 사태는 한반도 문제에 여러 가지 함의를 갖고 있는데 특히 북의 핵신봉 시나리오가 강화되는 현 상황에서 대화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유달승 교수는 리비아 사태를 보도하는 미디어의 내용들을 보면 매우 신뢰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리비아사태에 대한 왜곡 보도가 심하며, 알자지라 방송도 리비아사태에서는 미국과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방이 군사개입을 한 이후 미디어에서 카다피 체제의 붕괴와 동서분할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도 그런 측면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참고로 리비아 동부는 리비아 원유생산의 80%를 차지한다.


      마치며

      서보혁 교수는 인간안보의 개념으로 봤을 때는 사람만 교체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밑바탕이 되는 사회경제적 개혁, 빈곤으로부터의 자유와 같은 광의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유엔 거버넌스를 개혁하여 기존의 안전보장이사회가 결정을 독점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인간안보이사회와 같은 새로운 논의 구조가 필요하며, 엔지오와 전문가집단과 수평적 네트워크를 갖도록 해야 하다고 주장했다.

      R2P를 부실하게 선택적으로 적용하는 국제사회를 비판하면서 그 개념과 정신까지도 없앨 것인지 아니면 취지를 제대로 살려서 국제사회의 평화와 인권증진을 위한 개념으로 발전시킬 것인지를 시민사회가 판단해야 한다는 서보혁 교수의 발언처럼 이번 리비아 군사적 개입은 시민사회에 큰 과제를 남기고 있다.


      * 정리 손연우(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간사) 김희순(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간사)

      * R2P(Responsibility to Protect) 흔히 '국민보호책임'으로 번역됨. 2005년 유엔세계정상회의 결과문서에서는 the responsibility to protect its populations 으로 표현되어 있음.

      * 국제연대위원회 원문  http://blog.peoplepower21.org/International/4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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