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나는 과거, 대한민국의 역주행

  • 강사

  • 기간

    • 2010. 3. 8 ~ 2010. 4. 12
  • 시간

    • 월요일 19:00~21:30 총6회
  • 수강료

    60,000

    • 파격 할인혜택
    • 참여연대 회원30,000

    각종 혜택 적용은 로그인 > 마이페이지에서 진행됩니다

    상세 정보

     

    기무사의 민간인사찰, 찬 겨울 철거민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용산참사, 서민에겐 엄정한 법치주의와
    이건희 회장 단독사면, 임기가 보장된 공공기관장 해임, 눈 밖에 난 연예인 밥줄 끊기,
    전직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검찰수사, 좌파빨갱이로 색칠하기 
    되돌리기 힘들 것이라 믿었던 민주주의의 성과들이 무너져 내리고 역사의 시계바늘을
    과거로 되돌리는 역주행이 거침없습니다. MB시대에 ‘되살아나는 과거’의 뿌리는 어디인지 살펴봅니다.
    MB시대 되살아나는 ‘대한민국의 맨얼굴’을 마주하며, 민주주의와 인권국가의 길을 함께 고민합니다.
     
    강사소개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교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냈으며,
    지은 책으로는 <전쟁과 사회>, <1997년 이후 한국사회의 성찰>, <근대의 그늘> 등이 있다.
     
    강좌 진행

     

     
    날짜
                강의 제목
    1
    3.8
    수사사찰기관은 어떻게 대한민국을 만들었나?
    방첩대(CIC)의 '빨갱이' 사냥과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
    2
    3.15
    누구를 위한 공권력이었나
    제주 4.3사건과 용산참사
    3
    3.22
    법치, 지키는 자와 어기는 자
    조작간첩 사건과 MB시대의 법치
    4
    3.29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
    보도연맹 사건과 태안 기름유출 사건
    5
    4.5
    빨갱이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여순사건과 좌파적출 발언
    6
    4.12
    기억의 정치와 인권국가의 길
     
    일 시 : 2010년 3월 8일 ~ 4월 12일 월 오후 7시~9시30분 총6회
    장 소 :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지하1층)
    수강비 : 6만원(참여연대 회원 50% 할인)

    후기 5

    • 되살아나는 과거, 대한민국의 역주행[5강]

      2010.4.13 부엉이의 눈 되살아나는 과거, 대한민국의 역주행

      3월 8일부터 김동춘 선생님의 <되살아나는 과거, 대한민국의 역주행> 강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강좌는 용산참사나 기무사의 민간인사찰 논란처럼 MB정부 시대에 되살아나는 '과거'를 통해 오늘 한국사회와 민주주의에 대해 성찰하는 자리로 마련되었습니다. 이 글은 수강자 자원활동가 박지숙 님이 작성하신 후기입니다.  <느티나무>

       

      되살아나는 과거, 대한민국의 역주행 5
      - '빨갱이'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

      “빨갱이 시비는 콤플렉스를 덮기 위한 자기 정당화”

       

      ‘빨갱이’ 만큼 한국사회에서 가장 비이성적이며 폭력적인 것이 또 있을까? ‘빨갱이’의 위력은 민주화 이후에도, 민주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여전하다.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히면 누구든지 언론과 여론의 마냥사냥을 감내해야한다. 전체주의에서나 있을 법한 ‘사상검증’이 왜 아직도 있는 것일까? 한사람의 삶을 그 자리에서 정지시키고 그 주변사람들까지 망가뜨리는 ‘빨갱이’는 무엇인가? 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되살아나는 과거, 대한민국의 역주행>5강은 이 물음에 대한 답이었다.

      ‘빨갱이’는 현재진행형인 주제다. 김동춘 교수는 “우리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코드가 바로 오늘의 주제”라고 했다. “국가보안법(1948.11)이 62년이 됐다. 여순사건(1948.10)과 같다. 이 둘은 지금의 현실을 이해할 수 있는 역사”다. 재밌는 것은 국가보안법이 60년이나 됐는데 이 법을 연구한 법학자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재야 변호사인 박원순씨만이 국가보안법에 대해 책을 처음으로 냈다고 한다. 김 교수는 “국가보안법은 헌법보다 상위법으로 행사됐다. 헌법을 위반한 사례가 무수하다. 그 이념은 극우반공주의와 빨갱이 사냥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한국을 지탱해온 것”이라고 했다.


      ‘빨갱이 사냥’은 어디서 왔는가?

      그럼 이 같은 빨갱이 사냥은 한국에만 있는 것인가? 김 교수는 유사한 형태의 빨갱이 사냥이 있다고 했다. 미국이다. “미국에서는 빨갱이를 ‘Reds’라고 쓴다. 미국에서 적색공포가 온 것은 러시아혁명(1917)발생 후였다. 차르황제 당시에 미국의 부자들이 러시아 국공채에 투자를 많이 했다.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 못 받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러시아에 괴물이 나타났다고 생각하게 된다. 미국에서는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러시아 혁명에 대한 공포감이 미국 부자들을 건드린 것이다. 이것이 빨갱이 사냥의 광기로 나타났다”고 한다. 그 이후 미국 노동자들의 운동에 대한 탄압도 거세지고 매카시즘이 50년에 나타났다고 한다. 매카시즘이 원조라고 생각했는데 러시아 혁명이 발단이었다니 ’돈‘이 무섭긴 무섭다.

      독일에서도 ‘빨갱이’사냥이 있었다. 히틀러 나치 하에서 벌어졌다. 독일 국가에 충성심을 표하지 않는 자들, 국적 없는 유대인들이 그 대상이었다. 김 교수는 “유대인이 좌파, 무정부주의, 마르크스주의자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상 이방인이었던 시간이 길기 때문에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낮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했다. ‘유대인=공산주의’라고 생각해 수용소 감금과 체포를 동시 진행하고, 러시아 스파이로 간주했다고 한다. 빨갱이 사냥의 원조는 미국, 독일인 것이다.

       

      “미국의 정치는 일종의 파라노이드(낯선 사람에 대한 의심과 공포) 정치다”

      - 리차드 홉스테더

      리차드 홉스테더가 말한 ‘파라노이드 정치’는 낯선 사람을 과대포장해서 두려움을 갖는 증상을 의미한다. 김 교수는 “19세기 미국의 정치는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의 갈등이었다. 가톨릭은 앵글로색슨 주류에 밀려난 상태고 개신교는 미국의 주류였다. 개신교 사람들은 18세기 미국건국 때부터 가톨릭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기독교 근본주의가 빨갱이 사냥으로 된 것”이라면서 파라노이드(공포) 정치에 대해 설명했다. “한국기독교는 미국기독교 근본주의와 같다. 가톨릭에 대한 공포가 미국 정치에 바탕을 두고 있다. 빨갱이 공포는 단순한 반공주의와는 성격이 다르다. 정신의학적인 측면이 있다. 극도의 정신적 스트레스와 극도의 자기존재에 대한 위기의식을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익숙하지 않은 상대에게 공격적인 태도를 갖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별한 트라우마(PTSD)를 갖는 사람들은 공격적이고 비뚤어지게 생각한다. “이것은 (가톨릭에 공포를 가진)기독교 근본주의 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기독교 근본주의는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본다. 상대에 대한 관용이 없다. 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애야 한다. 그래야 평화가 온다고 생각한다. 이런 문화적, 종교적 태도가 전쟁과 결합했을 때 극히 극단적이고 공격적으로 나온다”고 했다. “상대를 악마로 모는 사고방식이 정치적 이해관계와 매스미디어의 선전, 선동 등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꼭 반공주의가 아니어도 이런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상대를 악마로 모는 심리는 외부에 의해 극단적인 공포가 발생했을 때 드러난다. 1923년 관동대지진(도쿄인근지역)때 동경에 살던 조선인 5천명이 학살당한 사건이 이를 잘 말해준다. 김 교수는 “당시 일본인들은 미친 듯이 조선인들을 잡았다. 지진이라는 위기상황에 조선인에게 광기를 휘둘렀다”고 했다. 전쟁 중인 데다가 대지진이 일어났으니 일본인들의 심리적 공항상태가 광기가 되어 만만해 보이는 조선인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얘기다. 민주화 운동의 정신적 지주인 고 함석헌 선생의 전집에 유학당시 경험담이 실려 있다고 한다. ‘내가 겪은 관동대지진’이라는 글인데 “당시 조선인들은 왜 학살을 많이 당했나? 위기에 처한 일본의 권력이 사회주의에 대한 공포감과 지진으로 인한 경제위기를 조선인들에게 퍼부은 것이다. 이것을 보면 정부에 쓴소리를 계속 하는 명진 스님을 ‘좌파’라고 모는 안상수 원내대표의 발언의 그 기본적 원리가 동일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빨갱이 사냥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김 교수는 미국과 다른 점으로 “의심 가는 사람을 빨갱이 사냥하는 것이 아니라 멀쩡한 사람을 빨갱이로 만드는 게 차이”라면서 “그 가족, 주변인에게 공포감을 느끼게 하는, (미국보다) 한 단계 더 나간 것”이라고 했다. 7~80년대 납북어부들은 “빨갱이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빨갱이를 사람이 아닌 동물로 간주해 동정심과 자비심, 공감 등의 감정을 없애고 죽어 마땅하다는 식의 감정을 이입해 도덕적 부채의식을 면제시키면서 폭력행사를 정당화했다”고 했다. 개인뿐 아니라 관련된 가족들, 지인들까지 빨갱이 취급을 한 것은 일종의 연좌제다. 이것은 국가보안법의 불고지죄를 행사한 것인데 여기서 ‘연’이 두 가지 의미라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연(連)-‘관련된 사람’과 연(緣)-‘혈연, 가족’을 의미한다. 아는 사람과 가족들 둘 다 적용한다는 말이다. 과장해서 말하면 “천륜을 파괴하면서 빨갱이 사냥을 한 것이다. 이것은 전체주의적인 논리”라면서 “MB정부의 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제고사 거부 교사 파면을 보면 알고 있는 교사들까지도 공포감을 느끼게 하고, '아는 체 하면 피해를 볼 수 있다', '모른 체 해야 살아남는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고 덧붙였다.

       

      정치적 반대세력은 무조건 ‘빨갱이’ - 여순사건 때부터

      제주 4.3사건, 여순사건은 그 연좌제가 명백히 드러난 사건이다. 연루된 민간인들은 다 처벌당했으니 말이다. 김 교수는 “500명 좌익계열 무장빨치산 중에는 산에 올라간 사람과 가족, 실종된 사람과 그의 가족, 단독정부 반대한 사람까지 다 섞여 있었다. 서북청년단은 태극기를 파는 척하며 빨갱이 사냥을 했다. 태극기를 사라고 강요하면서 돈이 없어 못 사는 사람도, 돈이 있지만 안사는 사람도 빨갱이로 만들어버렸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안 하고 애국가를 안 불러도 빨갱이 취급을 했다. 70년대 박정희 시절 애국가 나오면 벌떡 일어났다. 안 일어나면 욕먹었다”면서 비이성적 빨갱이 사냥을 지적했다.

      박찬길 검사사건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조만식(기독교 민족주의자)의 제자였던 박찬길 광주지검 검사는 사상적으로 좌익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양심적인 검사였다. 경찰이 ‘빨갱이’라고 잡아도 혐의가 없으면 풀어주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경찰들이 좋게 볼 리 없다. 박찬길 검사는 여순사건 때 도망가지 않고 여수에서 숨어있었는데 이를 경찰이 반란군 협조 혐의를 씌워 그 자리에서 총살을 한 것이다. 검사를 재판에 회부하지 않고 경찰이 총살했다는 것은 당시 경찰의 권력을 말해준다. 법무부 당시 권승렬 장관이 경찰 처벌을 요구했으나 경찰반대에 부딪혀 결국 박 검사는 빨갱이로 남게 되었다고 한다. 경찰들 위세가 커서 총살한 경찰을 용서한 이 사건은 사법부가 공안권력에 굴절당한 획기적 사건이다. 이후, 국가보안법 걸린 사람 풀어주면 빨갱이로 오해받을 수 있으니까 빨갱이 논리에 검사들이 공안권력에 겁을 냈다고 한다. '그 배후에는 김구가 있다'고 계속 이승만이 흘리고 나중에는 우파임에도 좌익의 배후로 몰려 49년 암살이 정당화 된다. 정치적 반대세력을 ‘빨갱이’로 모는 이분법이 여순사건부터 나타났다고 한다.

       

      한국 빨갱이 사냥의 배경들 - 상처받은 영혼들의 몸부림.

      김 교수는 문제의 배경을 남북한의 분단 상황으로 꼬집으면서도 분단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도 있다고 강조했다. 그것은 이데올로기 이전에 정신적 스트레스다. “북한에 큰 책임이 있다. 북한 초기 사회주의 개혁과정을 무리하게 추진했다. 1945~6년 토지개혁 때 중립적인 사람들까지 친일로 몰고 자본가로 간주해 남한으로 쫓아냈다. 중도적 인사를 끌어안기보다 내치는 북한의 사회주의는 지금까지 남한에서 광기어린 반공반북에 대한 감정을 갖게 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사람은 동물이지만 식물적 존재라고 생각한다. 안정적인 것을 원한다. 식물적 존재인 인간을 삶의 터전에서 뽑아 다른 곳에 강제로 살게 했을 때 공포는 남쪽사람들까지도 전부 빨갱이”로 보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들은 대부분 기독교인들로 기독교 근본주의와 통하면서 반공색채는 더 진해진다.


      강한 친일콤플렉스

      제일 결정적인 배경은 한국 우익들의 친일 콤플렉스였다. 해방 후 친일세력들(한민당)은 이승만 하에서 친일경력을 은폐하려했고 그를 위해서는 맹목적인 반공주의로 정치적 입장을 취해야했다는 것이다. 친일행적이 심할수록 극도로 반공주의가 되었다. 빨갱이 시비 벌이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전쟁 때 민간인을 학살한 김창룡, 김종원 등이다. 이들은 일본헌병, 독립운동가를 잡으러 다녔던 비밀경찰출신이다. 가장 악질적인 친일파는 친일경력을 덮을 수 있는 것이 중요했다. 미국에 대한 절대적인 의존도 마찬가지다. 피신할 곳 없는 친일자들의 은신처였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의 행태를 이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조선일보를 이해하는 데 있어 우익반공주의만으로는 설명 안 된다. 조선일보는 일제 때 친일신문이라는 콤플렉스를 덮고 자기정당화하기 위해 이승만, 박정희 영웅만들기 기사를 계속 내보내는 것이다. 트라우마를 가진 자들과 행동이 유사하다”고 꼬집었다.

      그럼 87년 민주화 이후 빨갱이 사냥은 무엇인가? 비판적 지식인, 운동권 출신들이 한나라당으로 들어가면서 자신의 변신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김 교수는 또한 “한국에 자유주의자는 없다. 자유주의자가 없는 이유는 반공주의자들이 심각한 콤플렉스를 못 벗어났기 때문”이라면서, “이승만에게는 김구에 대한 콤플렉스, 박정희에게는 친일경력과 김일성에 대한 콤플렉스가 레드콤플렉스로 된 것이다. 레드콤플렉스는 분단 후 거시적으로 만들어졌다. 그것을 만드는 심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통일과 정상적인 국가로 가기 위해 극복할 부분이기 때문이다. 레드콤플렉스는 무의식적으로 정서에 깔려있다”고 했다.

       

      한국의 반공주의는 상처받은 자유주의

      정신적 상처가 심하면 공격적이 되고, 과도할 정도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으려고 한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한국 빨갱이 사냥의 논리다. 전향한 좌파나, 피해 입은 사람들이 극우적 행태를 더 보이는 것은 그만큼 상처가 깊다는 의미다. 김 교수는 마지막으로 “‘좌파’를 이야기하는 것은 한나라당내 입지를 높이고, 출세하기 위해 더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것이다. 특정인을 욕해야 내가 살고, 대세에 편승해야 자신의 안정을 보장받으려는 정치적 심리는 레드콤플렉스를 조장하는데 기여한다. 빨갱이 시비를 강하게 벌일수록 강한 콤플렉스를 의미한다.(친일, 군사정권, 비판적 지식인, 운동권, 애국과 관계없는 기회주의) 극복하지 않는 이상 한국 시민사회는 정상적인 발전은 어렵다”고 했다.

    • 되살아나는 과거 대한민국의 역주행 4강

      2010.4.7 방준호 되살아나는 과거, 대한민국의 역주행

      3월 8일부터 김동춘 선생님의 <되살아나는 과거, 대한민국의 역주행> 강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강좌는 용산참사나 기무사의 민간인사찰 논란처럼 MB정부 시대에 되살아나는 '과거'를 통해 오늘 한국사회와 민주주의에 대해 성찰하는 자리로 마련되었습니다. 이 글은 수강자 자원활동가 방준호 님이 작성하신 후기입니다.  <느티나무>

       

      되살아나는 과거, 대한민국의 역주행 4
      -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 -


      천안호가 침몰했다. 젊은이들이 죽었다.

      또다. 서해서 군인이 죽어나갔다. 누가 그들을 죽였나? 속 시원히 대답할 수 없다. 돌아보니 항상 그랬다. 차라리 북한이 그랬다면 속이라도 시원 하겠다. 욕지기 하고, 배상해 내라고 맘껏 따져라도 보겠다. 헌데 그럴 수 없는 상황, 들끓던 여론이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지고 책임소재는 흐지부지 되고 마는 일이 아마 이번에도 반복될 거다. 김동춘 선생은 이번 강의에서 ‘금새 잊혀지고 피해자들만의 외로운 싸움이 되버리는’ ‘공정하게 가해자를 가리지 않은 탓에 반성과 사과 없이 뭉개져버린’ 지난 일들을 끄집어냈다.

       

      누가 삼성 중공업을 용서했지?

      태안이 그렇다. 닦아도, 닦아도 끝내 남는 기름티에 수백만이 한숨 짓고, 눈물 흘렸던 게 고작 3년 전이다. 근데 벌써 기억이 가물 하다. 우리가 잊고 있는 지금도 태안의 외로운 고통은 진행 중이다. 한 마을서 평균치를 훨씬 웃도는 암 발병 있었다. 보상위원장을 포함해 4명이 자살했다. 주민들은 3조원대 피해규모 말한다. 하지만 손에 쥔 보상금은 아직 없다. 더 큰 문제는 가해자로 지목되는 삼성이다. 삼성중공업은 법원에 50억원의 책임제한을 신청했다. 법원은 끝내 삼성 편들었다.

       

      무책임한 공권력, 끔찍한 거리의 정의

      관동대지진, 일제 강제징용자, 제주 4.3, 전쟁기 피학살자, 4.19, 7-80년대 각종 고문조작, 군의문사 사건의 피해자들, 용산 참사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약자들이 무책임한 강자의 횡포에 목숨 잃었다. 언론, 대기업, 때로는 공권력 그 자체에 의해서였다. 절절한 피해자의 역사에 비해, 사과와 화해의 기억은 거의 없다. ‘이미 지난 일’ 이라며 모르쇠로 일관이다. 잘잘못 가리고 원한을 삭혀 주어야 할 국가도 비슷한 말을 한다.

      누구도 당신의 억울함을 풀어주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불신으로 가득 찬 개인의 선택은? 스스로 복수에 나서는 것이다. ‘호미부대’, ‘창녕사건’, ‘사북탄광사건’이 이런 맥락이다. 누군가 피해를 당하고, 그 피해자가 가해자로 돌변하는 악순환! 참담한 일이다.

       

      다시, 지금 우리를 생각하다

      책임을 가려야 한다. 책임져야 한다. 이미 늦어버렸다고? 선조들이 저지른 짓에 책임지는 건 억울하다고? 이렇게 말하는 일본 전후세대에게 테츠야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일본 시민권을 가진다는 것은 일본국민으로서 혜택을 누린다는 의미다. 과거의 잘못으로 얻은 것들을 포괄적으로 나눠 받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책임져야 한다.”

      같은 말을 우리 스스로에게도 던져봐야 할 때다. 그래설까. 2부에선 태안, 광주와 제주 그리고 또 수많은 피해자를 잊었던 것에 대한 반성이 먼저 오갔다. 그래서 시민단체와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단 이야기도 나왔다. 잊혀지는 역사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끊임없이 현재화하는 것의 중요성을 모두, 새삼 깨달았다. 김동춘 선생은 아이디어로 <7,80년대 부역했던 검사 사전 만들기>, <각 의원의 법안 별 찬/반 투표 내역, 표로 만들어 배부하기>등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차곡차곡 쌓인 원한들 위에 지어진 사회. 그럼에도 불구, 나만큼은 피해자가 아니라 생각 할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나대면 손해라는 생각에 고개부터 숙인다면, 누구도 믿지 말란 말에 공감한다면, 억울하면 출세하란 말을 버릇처럼 되뇌인다면 그건 이미 불신과 공포 속에 살고 있단 증거다. 모두 피해자인 우리는 때문에 더 큰 목소리로 가해자를 찾아야 한다. 사과 받고 맺힌 응어리 풀어 봅세다 !

       

    • <되살아나는 과거, 대한민국의 역주행> 3강

      2010.3.25 부엉이의 눈 되살아나는 과거, 대한민국의 역주행

      3월 8일부터 김동춘 선생님의 <되살아나는 과거, 대한민국의 역주행> 강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강좌는 용산참사나 기무사의 민간인사찰 논란처럼 MB정부 시대에 되살아나는 '과거'를 통해 오늘 한국사회와 민주주의에 대해 성찰하는 자리로 마련되었습니다. 이 글은 수강자 자원활동가 박지숙 님이 작성하신 후기입니다. 4강은 3월 29일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 라는 제목으로 보도연맹 사건과 태안 기름유출 사건을 중심으로  강의가 진행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느티나무

       

      “법을 지켜야 이익이 되는 사회가 돼야 권력자들은 법을 지킬 것”

      되살아나는 과거, 대한민국의 역주행 3
      - 법치, 지키는 자와 어기는 자 -


       

      ‘유전무죄 무전유죄’,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은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다. ‘법과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돈과 권력이 있어야만 법망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이 말들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 그러나 유난히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MB정부에서 고위공직자들의 범법행위가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나오는 것은 아이러니다. 국무위원들의 청문회는 ‘강부자, 고소영 정부’라는 비아냥대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되살아나는 과거, 대한민국의 역주행> 세 번째 강의는 MB정부 들어 언어의 의미가 변질되고 있는 ‘법치’에 대해 이야기했다.


      법 지키면서 살면 성공할 수 없어?

      강의는 한국인의 법의식에 대한 얘기부터 시작됐다. 아무도 없는 도로에서 신호를 칼같이 지키는 한국인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김동춘 교수는 무단횡단이나 교통법규위반을 웬만하면 하고, 안 걸리면 장땡이라 생각하는 법의식이 범법에 대한 민감성이 낮은 증거임을 설명했다. 사업을 하는 중소기업인이나 자영업자들이 세금을 제대로 내고서는 남는 게 없는 현실이기에 세금탈루를 하는 것이 보통이고 세금을 내면 바보취급을 하는 것이 한국인의 상식이라는 것이다. 법원과 검찰, 법관에 대한 신뢰도가 최하위인 것 역시 낮은 법의식을 보여준다. 그럼 이러한 낮은 법의식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김 교수는 그것은 바로 권력자들의 범법에서 출발한다고 단언한다. 


      권력자들은 자기들의 목적에 도움이 될 때만 법을 지킨다. / 스피븐 홈즈


      당신이 강자라면 링의 규칙을 지키겠는가? 안 지키겠는가?

      권투를 예로 들어보자. 권투는 같은 체급끼리 정확한 룰 아래에서 진행되는 경기다. 그래서 누가 이길지 모르는 진정한 승부가 펼쳐진다. 하지만, 이겼을 때 권력이 있는 당신에게 확실한 이익이 생긴다면 규칙을 지키겠는가? 김 교수는 “대부분은 권력자라면 법을 안 지킬 것이다. 법을 지켜서 이익이 되면 지키고, 불이익이 되면 법을 지키지 않는”게 권력이라고 지적했다.

      개인의 범법과 공권력의 범법 중 어느 것이 더 ‘법치’에 치명적일까? 김 교수는 “공권력의 범법은 그 사회의 중심이고 표준”이라고 말했다. 현 국무위원들 대부분이 위장전입은 기본으로 하고 탈세, 뇌물수여혐의, 다운계약 등 차마 셀 수 조차 없을 정도의 범법행위를 저질렀음에도 그들이 여전히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고 사과한마디 안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사회가 정당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기업비리에 대해서 눈감고 특별사면까지 단행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법치’를 하기엔 너무 버거운 당신

      김 교수는 “법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 법을 지켜야 하는 기관이 불법을 저질러서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전태일의 외침에서 알 수 있다. 김 교수는 “이 말은 법을 제정하라는 것이 아니라 지키라는 것”이라면서 헌법의 진보성을 역설했다. “정부수립이후 만들어진 헌법은 당시 사회보다 훨씬 진보적이었는데 그것은 미군정 시절 미국과 독일 헌법의 좋은 것만 들여와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법대로 살다간 사용자들과 권력자들이 내놓아야할 것들이 많았기에 법을 어기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수입되고 주어진 법이었기 때문에 언제나 힘(정치)의 논리가 앞섰고 결국 힘없는 약자들이 착취당하는 역사가 계속됐단 얘기다.


      역대 대통령들의 법 위반 사례들

      김 교수는 역대 대통령들의 법위반의 대표적인 사례로 이승만의 북진통일론, 부정선거, 5.16, 1212 등의 군사쿠데타, 사면권 남용을 들었다. 이명박 정부의 건국절 소동 역시 임시정부를 적통으로 하는 헌법을 위반한 사례라고 했다. 그러나 제일 많이 범법한 기관들은 1강에서 지적했던 CIC, 중정(국정원), 기무사 등 수사사찰기관들이다. 특히, 한국전쟁 후와 군사독재시절 정치적 논리에 의해 이들 기관들이 자행한 범법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한국전쟁후의 국가기관이 자행한 범법들

      한국전쟁 후에는 계엄법, 국방경비법이 오랫동안 지속되었다고 한다. 계엄이 무엇인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김 교수는 “계엄은 군사지도자가 입법, 사법, 행정을 장악하는 것”이 라면서  계엄을 설명했다. “재판에서 보통의 삼심제가 아닌 단심제로, 입법은 국회의원이 아니라 명령이 대신하고, 행정은 군사적 목적에 종속되는 것을 의미하며, 사실상 준 전제군주하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전쟁 후 여순사건 때 계엄이 선포되었으며, 80년 5월 광주가 마지막 계엄이었다. 계엄 시에는 사람을 재판 없이 죽여도 어쩔 수 없었다고 당시를 살았던 한국인들은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피해자가 국가폭력을 당연히 여기고 이해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경찰에게 두들겨 맞고도 어떻게 데드냐고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며, 설명 없이 주민등록증을 보여 달라는 경찰에게 거리낌 없이 보여주는 젊은이들도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랑 다를 바가 없다”고 꼬집었다. 계엄의 공포가 한국인의 내면까지 자리 잡아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 반증일 것이다.  

      제주 4.3사건과 여순사건은 당시 계엄법이 없었는데도 계엄령이 선포됐다고 한다. 또한 장기수 할아버지들이 한국전쟁후 처음에 잡혔을 때 국방경비법으로 체포가 됐는데 당시 국방경비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기록이 없다고 한다. 존재하지도 않은 법들이 헌법 위에 있었던 셈이다. 김 교수는 이 같은 “계엄법, 국방경비법, 국가보안법 등이 국민의 생사여탈권을 좌우했다”고 했다. 또한 재판기록이 없는 군사재판과 민간인을 재판 없이 살해한 약식처형은 사실은폐와 조작 등 모든 과정이 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전쟁과 시장은 쌍둥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오늘의 상황은 ‘준전시상태’가 아니라 전쟁을 하고 있는 상태라고 해야 할 것이다”(박정희 1974.7.16)

      군사독재시절에 활동했던 수사관은 당시의 불법구금, 불법수사를 관행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간첩이 아닌 학생, 노동운동가들을 잡아다가 고문, 구타, 심지어 범죄사실까지 조작한 것은 엄연한 불법이다. 특히, 유신말기와 80,81,85년 정권이 위기를 맞을 때 정치적 목적으로 간첩사건들을 조작한 의혹이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군사정권이 고기를 잡다가 파도에 밀려 이북으로 월경한 납북어부들을 이야기했다. 6.70년대 이북을 갔다 오고 중정에서 고문까지 받았지만, 한 참 지난 후에 다시 이들을 간첩으로 몰아 정치적 위기를 모면했다는 것이다. 또한 당시 군산 앞바다 위도 사람들이 간첩으로 오해받고 동네사람들끼리 밀고를 하면서 서로 원수가 됐다는 이야기에서는 조작간첩사건이 인간을 어떻게 파괴시키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김 교수는 “(박정희가 말한)준전시상태는 전쟁을 할 수도 있다는 얘기”라면서 이를 “오늘날은 글로벌 경제전쟁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전쟁은 이겨야 살 수 있으니 끊임없이 싸워 살아남아야 하고 경쟁지상주의인 오늘날의 시장은 1등만이 살아남으니 “전쟁과 시장은 쌍둥이”이라는 것이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어릴 때부터 스펙을 쌓고 친구를 사귈 때도 계산을 하는 게 당연시 되는 것을 생각해보면 손에 총만 안 들었을 뿐 전시상황임은 분명하다. 


      법치는 어떻게 가능한가? 민주주의의 질(質)을 높여야.

      김 교수는 독일 학자 베르너 마이호퍼의 <법치국가와 인간의 존엄>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민주주의의 질(質)을 이야기했다. “민주주의는 선거, 투표, 미디어, 관심에 의해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실제 민주주의가 지켜지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사람이 있어야한다. 이것은 스스로 인격적 자존심이 있는 사람만이 가능하다. 자신의 인격과 존엄성에 신뢰가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예, 아니오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인권이 보장될 때 가능하다. 인권이 보장되어야 참여하고 발언하기 때문이다.” 적극적 발언이라는 부분에서만큼은 민주주의는 인권과 비례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스스로 인격적 자존심이 있는 사람들은 완전 밑바닥 계층이 아닌 이들보다 조금 위에 있는 계층으로서, 이들은 상대적으로 교육수준이 있고 조직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의 참여가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권력자들이 법을 지키도록 하는 방법은 “법이 이익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며 이는 대중들의 저항이 셀 때”라면서 “대중의 저항이 없으면 권력은 견제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결국 적극적 발언으로 저항을 할 때 법치가 실현이 된다는 이야기다.

    • <되살아나는 과거, 대한민국의 역주행> 2강

      2010.3.19 방준호 되살아나는 과거, 대한민국의 역주행

      3월 8일부터 김동춘 선생님의 <되살아나는 과거, 대한민국의 역주행> 강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강좌는 용산참사나 기무사의 민간인사찰 논란처럼 MB정부 시대에 되살아나는 '과거'를 통해 오늘 한국사회와 민주주의에 대해 성찰하는 자리로 마련되었습니다. 이 글은 수강자 자원활동가 방준호 님이 작성하신 후기입니다. 3강은 3월 22일 '법치, 지키는 자와 어기는 자' 라는 주제로 MB시대 법치주의에 대해 강의가 진행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느티나무

       

      2009년 용산에서 1948년의 제주를 보다

      되살아나는 과거, 대한민국의 역주행 2강
      누구를 위한 공권력이었나 : 제주 4.3사건과 용산참사

       

       

       

      쉽지않다; 따듯한 정의ㅠ

       

      ‘따듯한 정의’를 말하는 것으로 강의 시작됐다. 김동춘 선생의 말대로다. 우리는 모두 따듯하고 싶다. 그래야 한다. 하지만 세상엔 여전히 차갑고 냉철한 정의가 필요하다. ‘이제는 좀...’ 안심하려는 순간, 용산에 불길이 솟구쳤다. 선생은 거기서 제주 4.3 떠올렸다. 강좌는 한국현대사에 영원한 상처로 남은 그 날과, 지금을 쉼 없이 오갔다.

       

       

       

      48년, 그리고 지금을 잇는 것은...?

       

      1948년, 그리고 2010년. 60년 간극을 매우는 어휘는 ‘공권력’이다. 선생이 묻는다. “무엇을 위한, 누구를 향한 공권력 인가?” 이미 몇몇 학자들 대답했다.

       

      ‘지금까지 역사 상 시민들은 외세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나라 국가권력에 의해서 훨씬 많이 죽었다
      -요한 갈퉁

       

      '경찰은 자기 주민에 대해서 마치 적을 대하듯 하는 경우가 많다 - 한나 아렌트

       

                                                                                                         

       

      4.3, 지나간 비극일까?

       

      4.3은 공권력 학살의 가장 비극적인 예다. 제주인구 15만 중 3만 정도가 죽었다. 인구 다섯 가운데 하나. 트라우마 아니 남을 수 없다. ‘어느 편에도 서지 말 것. 제주 사람임을 숨길 것’을 가슴에 새겼다. 긴 시간동안 제주사람은 그렇게 두려움에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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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기 위해 망루로 올라갈 수 밖에 없었던 철거민들은 도심 테러범이 되었고, 살기 위해 해안가 마을을 버리고
         한라산 중산간지대로 올라갈 수 밖에 없었던 제주 사람들은 빨갱이가 되었다

      
      죽은 자 대개는 평범한 민초였다. 우익청년단과 경찰의 괴롭힘이 힘겨워 산에 올랐을 뿐. 그 순간 빨치산이 됐고, 죽어 마땅한 적으로 명명됐다.

       

      그렇게 까지 집요하게 그들을 죽여야 했던 이유는? 이승만에게 정당성이 필요했다. 5.10 선거 반대로 불길이 번져선 안됐다. 그의 코드를 눈치 챈, 토벌대장 박진경의 공명심도 한몫했다. 여기에 향보단, 서북청년단, 실제로 학살을 자행한 경찰 끄나풀 조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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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력자의 코드에 맞추고, 국민을 위해 봉사하기 보다는 권력자에 보여줄 성과만을 생각했던 사람들

      
      살기위해 올라간 평범한 민초들. 정당성에 대한 최고 권력자의 위기감. 전과를 올리기 위한 실무자의 오바;; 권력 업은 비공식 폭력집단(혹은 깡패들). 무언가 떠오르지 않는가? 그렇다.
      작년 겨울, 용산이다
                                       

       

                                                                 

       

      끝나지 않은 그날의 악몽

       

      누군가 무리한 유추라고 말할지 모른다. ‘용산에선 겨우 여섯 명이 죽었다고, 요즘 같은 세상에 공권력 학살이라니 가당찮다’고 항변할지 모른다. 하지만 역사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좀 더 큰 그림이다. 구조와 구조를 가능케 하는 메커니즘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철거민은 살기위해 올라갔다. 정권은 두려웠다. 촛불이후 스스로의 정당성에 극도로 예민해 진 상태였다. 거기에 용산 4지구에는 28조원이라는 막대한 개발이익이 숨어있다. 갓 임명된 경찰청장은 의욕에 넘쳤다. 용역깡패들은 타이어를 태우고, 행패를 부렸다. 이 때 경찰은 그저 바라만 봤다. 끄나풀과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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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찰의 비호아래 활동했던 철거용역과 제주민의 치를 떨게 만들었던 서북청년단


      48년의 공권력과 2010년의 공권력. 가난한 국민을 바라보는 시각이 같다. 까닭 불분명한 성급함이 같다. 감정적 편향성, 권력을 업은 MOB의 횡포까지...
       

       

      OTLㅠ 그래도 힘을 합치면^_^

       

      이렇게 다시 한 번 느낀다. 공권력은 중립적이지 않다. 약자의 편 아니다. 국민에게는 강하고, 외세/강자 에게는 굴종적이다. 6.25가 터졌을 때 미국민 피난에만 전력을 다했던 일, 노근리에서 자국민을 차갑게 내친 일을 상기하게 된다. 

       

      강의실 안, 모두가 숨죽였다. 두렵고 섬뜩했다. 지키기 위한 것인 줄로만 알았던 칼날이 목 아래 차고 들어온다. ‘그들의 일이다.’ 애써 체념하고, 고개 돌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차마 그럴 수 없다. “공권력을 누가 쥐는가? 이건 철저하게 힘의 관계를 반영합니다.”는 선생의 말을 듣는다. 외따로 떨어진 약자인한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언제 갑자기 살기위한 몸짓이 욕심어린 선동질로 낙인찍힐지 모를 일이다. 

       

      죽어도 싼 국민은 없다. 안보 혹은 법치라는 이름 아래 죽어 간 사람들을 떠올린다. 마음이 서늘해진다. 역시 어쩔 수 없다. 아직은 따듯한 정의보다, 날 선 정의가 더욱 필요하다. 선생의 마지막 당부가 귓가에 남는다.

       

      “공짜 점심은 없다. 힘없는 시민들이 모여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귀찮고, 괴로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작고 소소한 실천부터 시작하자.”

    • <되살아나는 과거, 대한민국의 역주행> 1강

      2010.3.11 부엉이의 눈 되살아나는 과거, 대한민국의 역주행

      3월 8일부터 김동춘 선생님의 <되살아나는 과거, 대한민국의 역주행> 강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강좌는 용산참사나 기무사의 민간인사찰 논란처럼 MB정부 시대에 되살아나는 '과거'를 통해 오늘 한국사회와 민주주의에 대해 성찰하는 자리로 마련되었습니다. 이 글은 수강자 자원활동가 박지숙 님이 작성하신 후기입니다. 2강은 3월 15일 '누구를 위한 공권력이었나' 라는 주제로 제주 4.3사건과 용산참사에 대해 강의가 진행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느티나무

       

      “감시받지 않는 권력이 있는 한 민주주의는 오지 않는다”

      되살아나는 과거, 대한민국의 역주행 1강
      - 수사사찰기관(국가정보기관)은 어떻게 대한민국을 만들었나?

       

         민주주의학교가 다시 문을 열었다. 지난해 참여연대가 처음으로 열었던 느티나무
         <월요민주주의 학교>가 꼬박 1년 만에 시민들을 맞이한 것이다. 경제, 사회로 분야를
         나눠 했던 지난해 강의는 ‘민주주의의 퇴행’을 실감했던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올해 민주주의 학교는 지난해 전쟁으로 인한 국가와 사회의 모순점을 짚어주 었던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를 첫 강사로 모셨다. <되살아나는 과거, 대한민국의 역주행>
         이라는 다소 무거운, 그렇지만 꼭 알아야만 하는 주제로 6주간 진행된다. 시린 바람이
         불던 지난 8일 첫 강의가 시작됐다.

       

         만 명의 구술기록, 물어보는 이 하나 없어

      강의는 김 교수가 지난 4년 동안 진실화해위원회 활동을 마감하면서 느꼈던 단상들을 이야기하면서 시작됐다. “한국현대사 자료들에서 만 명의 구술기록을 살펴본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연구자로서 오랫동안 공직자로 활동한 사람은 나뿐일 텐데 물어보는 사람들이 없다. 오히려 미국이 필요로 하고 미국 7개 대학에 순회강연을 하고 돌아왔다”며 과거에 무관심한 국내사정에 대해 씁쓸해했다. 우리보다 미국이 더 큰 관심을 보이는 것에 대해서 “왜 우리는 이렇게밖에 살 수 없나? 결국은 힘센 나라에 종속이 되고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건가”라고 말했다. 반복되는 역사를 막는 길은 스스로 지난 역사를 살펴보고 반성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메시지였다. 또한 경술국치 100년인 올해 일본은 3,4년 전부터 NHK에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는데 우리는 준비하는 게 없다는 것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김 교수는 “경술국치 100년이 중요한 것은 오늘의 주제인 수사사찰기관의 뿌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면서 본격적으로 수사사찰기관에 대해 강의했다.

       

      네가 알고 있는 게 아는 게 아냐.

      흔히 민주주의라고 하면 시민의 손으로 직접 투표권을 행사해 국회의원과, 정치를 바꿀 수 있다 생각한다. 하지만 김 교수는 우리가 선출하지 않은 권력에 의해, 우리가 모르고 있는 힘에 의해 대한민국 역사가 가려져 왔다고 설명했다. “우리가 모르는 그 음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의해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와 사건들이 좌우됐다면 민주주의와 선거, 국회는 왜 필요한가”라고 물으며 “국회와 국민의 통제를 받지 않는 기관이 있는 한 민주주의”는 없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는 반만 아는 민주주의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조지오웰의 <1984년>에서 사람들을 감시하는 텔레스크린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사상경찰’과 수사사찰기관인 기무사와 국정원을 비교하기도 했다. “음지의 기관들이 개인과 그 가족, 주변인까지 파괴하는 것은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면서 MB정부에서 부활한 수사사찰기관들의 활동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 증거물로 이정희 의원이 공개한 수첩 [출처: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실]


      부활의 징후들, 과거의 영광을 돌려다오.

      쌍용자동차 파업현장에서 민노당 당직자를 기무사가 사찰한 기록이 발견된 것을 첫 번째로 꼽았다. 기무사는 원래 법적으로 군인들에 대한 기록만 하는 곳인데 일반인을 기록하는 것은 엄연히 불법이라는 것이다. 이 기록을 언론에 공개하자 기무사는 휴가 나온 군인을 사찰한 것이라고 했지만 파업현장에는 군인들이 없었기 때문에 이 또한 거짓말이라고 김 교수는 말했다. 또한 일본 행사에 참석한 어느 노래패와 노동자, 농민 사찰 등이 여러 언론에 보도된 것도 거론했다. 그러나 수사사찰기관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2,30년 전 공공연히 있었던 일을 지금도 벌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감시와 사찰을 하는 것일까? 김 교수는 군사정권에서 빛났던 이들의 업무가 민주정권 10년 동안 소용이 없게 됐다가 다시 MB정부가 들어서면서 과거의 영광을 되살리려 활약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과거의 영광이란 감시와 사찰업무를 했던 이들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의미한다. “관료조직의 기본속성이 자신들의 업무영역을 보호하고 키우는 것”이기 때문에 그 기회를 잡은 것이라는 이야기다. 더욱이 “이명박 대통령이 국방부 장관 밑에 있는 기무사령관에게 독대보고를 받게 한 것이 관련기관들끼리 충성경쟁을 일으키게 해 감시와 사찰이 부활한 것”이라고 했다. “권력자가 어떤 조직에게 힘을 실어주느냐가 그 기관의 요원들을 오만하게 만들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만든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이런 상황을 “이승만 정권 때는 경찰, 군사독재시절에는 군, 중앙정보부에서 동일하게 나타났다”고 했다.

       

      군-CIC, 경찰-사찰계, 민간CIA(중앙정보부 ->국정원)

      군대와 경찰, 민간부문에서 감시와 사찰을 맡았던 부서들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군의 내부정보를 담당하는 방첩대(CIC(Counter Intelligence Corps)-지금의 기무사), 경찰 사찰계(정보과, 형사과), 민간 부문인 중앙정보부(지금의 국정원)가 그들인데 김 교수는 “사실 이들은 국가안보를 위해 대한민국을 지킨 애국자이다. 하지만, 거꾸로 보면 대한민국을 지킨다는 명목 하에 끔찍한 범죄를 일으키는 곳”이라고 했다. 특히, 역사적 사건들 중 미스테리로 남은 김구와 케네디 암살사건들을 거론하며 만약 그들이 죽지 않았다면 역사는 분명 달라졌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분명 이들이 죽어 이득을 본 집단들이 있었고, 그들이 죽음으로써 역사의 물길이 달라진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고 했다.

       

      한국의 수사첩보기관 누가 만들었나?

      그렇다면 이런 수사첩보기관은 언제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일까? 김 교수는 미국과 미군을 그 배후로 지목했다. 2차 대전 후 미군이 남한을 점령하고 통치하면서 일본식민지 시절 활동했던 친일경찰, 군인들을 재기용한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김 교수는 바로 재기용된 친일경찰 특히, 식민지시절 경찰 사찰계였던 특별고등경찰출신들과 군 방첩대(CIC)를 미군이 대거 기용해 당시 일어났던 사회주의 운동 정보를 수집하고 감시, 사찰하는 업무를 맡겼다고 했다. 일그러진 역사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배후조종자들. 제임스 만, 도날드 니콜스를 아시나요?

      친일 경찰과 군인들을 재기용하고 음지에서 활약했던 미군들에 대해서도 설명이 이어졌다.  대한민국 군대의 아버지라 불린다는 제임스 하우스 만.(J. Hausman)과 이승만 대통령과 독대보고를 할 정도의 파워를 가졌던 도날드 니콜스가 그 주인공들이다. 제임스 하우스 만은 48년 여수순천반란사건 진압에 배후에 있었던 사람이었다. 또한 “육사 좌익색출 당시 남로당 간부 경력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색출 당했을 때 구명한 것은 정일권이라는 사람이었지만 실제는 당시 28세의 미 육군 중위였던 제임스 하우스 만이었다”면서 “정보요원으로서 최고의 노하우가 있어서 다시 군에 기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임스 하우스 만은 공식적으로 직위가 없으면서 이승만 정부시절 장관회의에 참석할 정도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김 교수는 “비록 회고록은 없지만 이 사람을 빼고 한국 군대를 말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승만과 독대를 하고 이승만 정적들을 사찰했던 사람이 도날드 니콜스(D. Nichols)였다면서 그는 북한 인민군의 동향을 알고 북한이 전쟁을 준비하는 것을 손바닥 보듯 알았다”고 했다. 도날드 니콜스는 회고록을 썼지만 출간되자마자 미 CIA에 의해 수거 당했다고 한다.    

       

      군 방첩대(CIC)가 오늘날의 기무사

      김 교수는 “젊은 세대는 기무사가 어떤 것인지 잘 모를 것”이라면서 “80년대 보안사 군인들은 사복에 머리를 기르고 일반 군인들을 폭행할 정도의 권력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군인들 비리를 캐고 정보 다 쥐고 있어 지위에 상관없이 방첩대(CIC)에 꼼짝 못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50년대 국민보도연맹사건을 방첩대(CIC)의 권력을 말해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꼽았다. 국민보도연맹사건은 전향한 좌익들과 이승만 정권에 반대한 사람들을 전부 사찰하고 처형한 사건이다. “오늘날 기무사인 방첩대(CIC)가 사찰하고 처형 결정과 명령까지 한 사건 이었다”고 했다. 7,80년대 군사독재시절에는 중앙정보부와 보안사가 그대로 장악했고 노조위원장 선거에 개입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 <태극기 휘날리며>의 한 장면 영화의 여주인공인 영신(고 이은주 분)은 보도연맹에 가입되어 있었다는
          이유로 총상당하게 된다 ⓒ 태극기 휘날리며

      국가의 안보에만 집중해야

      이라크 대량살상무기가 나오지 않았음에도 미 청문회에서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 CIA를 두고 “첩보기관의 권력 속성상 자기 권력을 키워 기득권을 지키고 자신들의 과오를 숨기려 하기 때문”이라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또한 “과거 수사사찰기관에서 활동했던 사람들 중에는 국회의원과 장관이 된 사람도 있지만 이들은 증언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사람들의 역할은 틈만 나면 확대될 수 있다”면서 “감시, 통제되지 않은 권력에 보통사람들의 인권이 위협받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했다.

      김 교수는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작은 병력으로 쿠데타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소수의 집단이 정보 장악했기 때문”이라면서 “국가 안보에 상관없는 사찰기록들을 알아야 하는 것은 국민의 신성한 권리이고 견제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김 교수는 최근 연구자들과 작가들에게 서명을 요구하고 거부하면 연구비 지원을 중단하는 데에 국정원과 기무사가 개입한 것을 두고 “연구원으로서, 작가로서 내가 누려야할 권리를 차단당하는 것은 사찰당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공포를 주는 것이 주목적”이라고 지적했다. 수사첩보기관의 권력남용에 대해서도 “첩보는 필요하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국가의 존망을 위해서 적의 정보는 알아야하니까 당연하다. 하지만 첩보부대 권력을 강화해 국내 반대세력까지 사찰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이것이 남용”이라며 강의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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