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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명 | 강좌후기 | 글쓴이 | 날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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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투사워크숍] 꿈 거울로 참 나를 만나다(온라인) | [꿈투사워크숍] 오늘밤 좋은 꿈 꾸세요! | 개똥이 | 2020.10.22 | |
'아, 이렇구나!‘ 인생 5학년이 되면서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4학년 때만 해도 '고민'이나 '감안', '고려'보다는 원하면 또는 필요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속에 현장 돌파를 통해 일의 성과를 내면서 일종의 자신감을 확인하는 삶이었다면, 5학년이 되면서부터는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변화를 실감하게 됩니다. 아직은 이것이 소위 여성호르몬이 더 많이 나온다는 신체의 변화 때문인지, 아니면 사회적인 위치의 변화 때문인지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아니, 사실은 아마도 두 가지 다 변화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다시 말하면, 시각과 청각, 미각 등 육체의 감각들을 기반으로 한 이성과 논리, 객관성, 전략 등을 중심으로 나는 판단하고 행동한다는 생각이 감정이나 직관, 영감 등 정신적인 감각에 더 의존하는 것으로 변하는 겁니다. 다만, 아내나 딸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미 예전부터 감정이나 직관을 더 우선시 했다는 것을 문득문득 느낍니다. 드라마를 볼 때 스토리의 전개나 플롯(구성)도 있지만, 배우들이 움직이는 배경의 감정들을 더 재미있게 보는 거지요. 한마디로 남성들은 보통 '아주 단순'합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남성들도, 일찍 변화한 남성들도 있습니다만. 이 같은 변화 속에서 '꿈투사워크숍' 프로그램 소개 글을 보면서, '아, 이건 뭔가, 어떻게든 꼭 참여해 봐야겠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내가 잘 모르는 세계가 있는 것만은 분명했으니까요. 그리고 바로 손에 잡은 책이 꿈투사워크숍을 이끄는 고혜경 박사님의 '나의 꿈 사용법'(한겨레출판, 2014)입니다. 의식보다 훨씬 더 큰 분량의 무의식을 사람들 각자 다 갖고 있고, 이 무의식 속에는 각 개인 삶의 역사와 가족의 역사, 민족의 역사, 종의 역사까지도 들어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 무의식을 보고 느끼고,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각자의 꿈을 통해서'입니다. 그리고, 각자의 꿈은 여러 사람이 함께 나눌 때에야 그 의미를 쉽게 알 수 있다는 겁니다. 혼자서는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지요. 그리고, 맞이한 첫 시간. 첫 참가자의 꿈투사를 14분의 친우(親友)들과 함께 나누면서, 바로 알게 됐습니다. '아, 이거구나' 군에 다녀와서 허리가 좋지 않아 기(氣)치료를 위해 '태극권'을 배우면서 느끼게 된 '氣의 감각', 인생 3학년 때 읽은 '자신을 멀리 하늘 위에서 바라볼 때 괴로움과 슬픔을 치유할 수 있다'는 내용의 책 '왓칭'(김상운, 정신세계사, 2011), 동물권 책읽기에 참여하면서 우연히 보게 된 '말하지 않고 동물과 대화하는 법'(피 호슬리, 김영사, 2018)에서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텔레파시', 타로카드를 배우고 나서 알게 된 '사람들은 타로카드 78장의 이야기들을 모두 품고 살아가고 있고, 이를 계속 확인하고 정리하고 싶어한다는 것' 등이 같은 묶음의 세계라는 것을. 더 큰 감동은 나의 꿈을 이야기하고 친우들이 꿈투사를 해줄 때였습니다. 모든 참가자들이 내 꿈을 집중해서 듣고, 내 꿈을 열심히 이해하려 하고, 그 의미를 해석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느끼면서, 한마디로 '아! 이런 거구나'라는 감탄과 함께 무척 행복했습니다.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괜히 쑥스럽고, 부담스럽고, 낯선 것이 아니라 꿈을 매개로 참가자들은 각자 자신의 경험과 이야기를 통해 그 꿈을 이해하고, 나누면서 함께 힐링을 하는 겁니다.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곳이라는 것을 온 몸으로 체험하는 것이죠. 자존감과 자신감이 높아지는 것도 꿈투사워크샵의 큰 장점입니다. 꿈은 의식과 무의식이 섞여 매일밤 빚어내는 자신만의 이야기와 영상입니다. 누구의 책을 본 것도, 드라마를 본 것이 아닌 자신만의 영화가 나타나는 것이죠. 이 스토리를 매일 기록해 놓고, 그 의미를 찾다보면 그건 가장 독창적인 예술작품이 되는 겁니다. 그래선지, 꿈을 적다보면 무언가 계속 채워지는 만족감을 느끼게 됩니다. 나만의 작업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지는 겁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을 통해서만 교류한다는 겁니다. 14분의 친우들을 PC의 작은 한 화면을 통해 보다보면 뭔가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입니다. 물론, 온라인영상 프로그램의 일부 기능을 이용하면 바로 옆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가깝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한바탕 수다를 떨고, 스트레스를 푸는 듯한 느낌이 쉽지 않은 거지요. 마지막으로 책 한권을 소개합니다. 매일 아침 모여 꿈투사를 통해 하루를 시작하는 말레이시아 산악지대에 사는 원시부족 '세노이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잠'(열린책들, 2017) 입니다. 꿈에 대한 과학적인 해석과 그 의미, 꿈투사법 등이 상세하게 소설형식으로 꾸며져 아주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아래 인사의 의미를 좀더 깊이있게 이해하게 됩니다. '오늘밤 좋은 꿈 꾸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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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격 분석! 코로나 예산 감시학교 | 코로나 시대의 시민강좌 - 예산 감시학교 후기_수빈 | 수빈 | 2020.10.21 | |
코로나로 시작한 2020년이 어느덧 끝을 향해 가네요. 봄만 해도 '조금 지나면 상황이 나아지겠지, 이번 학기만 교육 취소하면 다음 학기부터는 정상운영할 수 있겠지'라는 희망을 가졌는데, 어느새 코로나가 우리 곁을 쉽게 떠나지 않을 것임을 받아들이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봄/여름학기의 혼란을 이겨내고 9월엔 예년의 개강 분위기를 회복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강좌를 신청했어요. 이번 학기 9~10월 4주간 진행된 예산감시학교를 수강했는데요. <나라살림연구소> 이상민 선생님의 예산 분석 2강, 참여연대 간사님들께서 직접 진행하시는 예산감시 활동 2강을 듣고 나니, 뉴스에서 언급되는 예산 규모를 들을 때 최소한 '저게 뭐구나' 정도는 알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이상민 선생님의 강의는 정말 손꼽을 만한 명강의였고요, 직접 발품발아 얻은 정보와 경험을 토대로 한 강의가 얼마나 생명력이 있는지를 체감하게 되었어요. 참여연대 간사님들의 강의를 들으면서는 참여연대가 곳곳에서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를 새삼 느끼게 되었고요. 매 회차 성실히 참여하며 다양한 질문과 의견 주신 동료시민들도 대단하시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님의 자연스럽고 세심한 진행도 느티나무 강좌의 자랑거리인 것 같아요. 온라인으로 진행하면 아무래도 교육공간의 보이지 않는 '공기'같은 걸 느낄 수 없기 때문에 참여자들의 상태을 훨씬 더 민감하게 살피고 반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간사님께서 그런 것들을 고려하신 듯한 진행을 하고 계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강의 자체의 질뿐 아니라 환경의 질까지 잘 챙겨주신 간사님께 박수를!! 4강 진행해주신 모든 강사님과 수강하신 시민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요즘 많은 강좌를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것 같아요. 온라인이라 불편/불안하기도, 온라인이라 더 편하기도 하다는 의견을 주변에서 접하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온라인이 효과적인 것 같아요. 오가는 시간을 절약하여 그 에너지로 강의에 더 집중할 수 있고, 예전같으면 너무 피곤해서 출석하지 않았을 법한 날에도 침대에 누워 강의를 들었는데 이렇게라도 들을 수 있어 좋더라고요. 반면 온라인의 전달력이 약하다거나, 얼굴이나 환경을 타인에게 비추는 것이 불안하다거나, 물리적으로 온라인으로 참여할 수 없다거나(데이터 문제, 공간 문제 등)하는 의견도 적지 않은 것 같아요. 시대가 이미 변해서 과거로 돌아가긴 어려울 텐데.. 그렇다면 앞으로는 전략적으로 오프라인과 온라인 개강을 반반 시도해야 하나 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어요. 아마 느티나무 운영진께서도 많이 고민하고 계실 것 같네요. 마지막으로, 느티나무에 좋은 강좌가 많은데 기존 회원이 아니더라도 많은 시민이 접근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더 고민하면 어떨까 하는 의견 드립니다. 보다 더 다양하고 많은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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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연극워크숍 15기] 낭독연극 워크숍 | "그날도 연극하기 좋은 날씨였다." 낭독연극 워크숍 후기. 우정현 | 메링링 | 2020.8.21 | |
6.20.(토) 11:00 왜 연극을 하려고 하나요? 낭독연극 워크숍 발표날이다. 느지막이 일어나 커피를 마시며 워크숍의 첫 날을 떠올린다. 5월 13일, 참여연대 지하 1층 느티나무 홀에 열일곱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나를 더 잘 표현하고 싶어서” “나를 더 잘 알고 싶어서” “타인의 삶에 공감하고 싶어서” “실용적인 목적으로” 등등, 저마다 이유는 다르지만, 공통점은 하나, 연극을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란 것. 나는 “즐거움을 찾아서” 워크숍에 참여했다. 어릴 적 학교 수업시간에 교과서에 실린 희곡을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연기하듯 읽던 순간의 짜릿했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남아 있다. 그 순간의 느낌을 세월이 훌쩍 지난 지금 다시 경험할 수 있으리란 생각에 신청했고, 열일곱 명의 낯선 사람들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앞쪽에는 워크숍을 진행하는 남동훈 연출님이 있다. 시민들이 주축이 되어 연극을 꾸리는 시민 연극단을 이끈 경험이 여러 번 있는 분이라고 한다. 연출님은 내내 웃음 띤 얼굴과 여유 넘치는 표정으로 앞으로 워크숍이 어떻게 진행될지 안내했다. 그동안 많은 일이 벌어져서 그런가. 불과 한 달 전의 일인데 오래 전처럼 느껴진다.
6.20.(토) 12:00 민중의 연속극 워크숍에 참석하기 위해 집밖으로 나설 채비를 한다. 가방 안에 헨릭 입센의 ‘민중의 적’과 김은성 작가의 ‘달나라 연속극’ 책을 넣었다. 낭독연극 워크숍의 교재들이다. 첫 수업시간이 끝나고, 연출님이 알려준 대로 한 자리에서 멈추지 않고 마지막까지 대본을 읽어나갔다. 연극 대본을 읽는 게 얼마만일까. 생각만큼 장면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다음 시간부터 참가자들끼리 돌아가면서 대본을 읽어나갔다. 등장인물의 대사를 읽는 게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점점 익숙해졌다. 짧은 대사에 감정을 싣는 연습을 했다. 연출님은 대사 표현, 행동, 전사(前史) 파악 등 연기이론을 설명하며 초보 연기자들을 이끌었다. 두 대본 중 연기하고 싶은 배역과 장면을 선택해야 한다. 나는 ‘민중의 적’ 중 ‘시장’ 역할을 골랐다. 정의감 넘치는 주인공 ‘스토크만’ 대신 노회하고 야심 가득한 시장 역할을 선택한 데는, 세상에서 내게 주어진 배역과 다른 역할을 맡아보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나의 파트너는 시장 역할을 담당한 00쌤. 우리는 ‘민중의 적’ 4막에서 형과 동생이 대립하는 장면을 연기했다. 처음에는 겨우 대본을 따라 읽는 데 그쳤지만 차차 상대방의 연기에 감응하며 몸을 움직였다. 나는 “그 짓을 하고서도 나한테 원칙을 들먹여”란 대사를 할 때 가장 통쾌했고, 00쌤은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시오”라는 대사를 진정성(?)이 느껴지도록 읊었다. 열일곱 명의 참가자 중에는 ‘시장’ ‘스토크만’ 외에 ‘홉스타드’ ‘아스락슨’ ‘카트린’ ‘만자’ ‘은창’ ‘은영’ ‘미영’이 있었다. 연습 시간 동안 이들이 벌이는 ‘민중의 연속극’이 참여연대 건물에서 수도 없이 상연되고 끝마치고 다시 막이 올랐다. 6.20.(토) 12:20 마스크를 쓴 사람들 지하철에 탔다. 사람들이 죄다 마스크를 쓰고 있다. 올 초에는 상상하지 못하던 모습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워크숍이 중간에 위기(?)를 맞았다. 5월 말 코로나19가 다시 확산될 기미를 보이자, 정부에서 2주간 행사 및 모임 참가 자제를 권고한 것. 덕분에 워크숍도 1주일 이상 뒤로 미뤄졌다. 발표를 앞두고 한창 분위기를 탈 때쯤에 일어난 일이라 아쉬웠다. 그럼에도 모든 것이 불확실한 코로나19 시대에 적응할 수밖에 없는 법. 잠시 쉬는 기간 동안 대본 읽기를 연습한 후 2주 뒤 다시 모였다. 더 넓은 공간에서 참가자끼리 거리를 두고, 마스크를 꼭 착용한 채 연습에 임했다.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없는 집에서도 대사를 완전히 외우는 걸 목표로 대본을 읽으며 연습했다. 연극이나 영화에서 배우들이 긴 대사를 다 외워 연기하는 걸 보고 신기했는데, 나도 어느 정도는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비록 한 장면이지만 말이다. 이 대사를 할 때 인물의 감정은 어떨까. 이러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금씩 인물의 마음에 가까워진다.
6.20.(토) 12:40 연극하기 좋은 날씨 시청역 8번 출구. 이 곳에서 참여연대에 가는 마을버스를 타야 한다. 워크숍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주말에도 참여해야 할 때가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토요일 점심 무렵 정류장에서 마을버스를 기다리며 바라본 풍경이 보기 좋았다. 오늘 또한 그렇다. 이 날의 햇살, 바람, 풍경이 마음에 든다. 핸드폰을 열고 연출님이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에 남긴 메시지를 읽어 본다. 연출님의 말씀대로 “각자의 인생에서 단 한 번 밖에 없는 공연”이 시작되려 한다. 마침 “연극하기 좋은” 날씨다. 참. ‘낭독연극 워크숍’ 이후에는 ‘대본창작 과정’이 진행된다고 하던데, 어떤 내용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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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투사워크숍] 꿈거울로 참 나를 만나다(온라인) | [꿈투사워크숍] 잃어버린 통증을 찾아서 | jusibel | 2020.8.8 | |
나에게로 데려다주는 꿈여행 꿈투사 워크숍에 참여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저는 문제가 많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제 안에 풀리지 않은 문제들이 아주 많습니다. 꿈투사는 그 문제의 미로에서 길을 잃지 않게 도와주는 아드리아네의 실꾸러미 같습니다. 고혜경 선생님은 꿈이 우리를 언제나 도와주고 지지해주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 말 한 마디가 어두운 밤의 등댓불 같이 마음을 밝혀줍니다. 신이 보낸 러브레트가 우리에게 꿈의 모습으로 전달되고 있다구요. 우리 모두에게 공평히, 그렇게 꿈은 주어집니다. 매번 꿈투사 수업에서 새로운 것을 배웁니다. 그렇다면 이번 수업에서 저는 무엇을 배웠을까요. 이번 학기에 저는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게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배웠습니다. 상처가 나면 아픕니다. 아프면 쉬거나 병원에 가야겠지요.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 일들이 많습니다. 영혼에 상처가 나도 아프지 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영혼이 부서지고, 피가 나고, 심지어 죽기 일보 직전인데도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무감각하다고 생각했는데, 고통에 마비된 것이었습니다. 이겨냈다고 생각했는데, 상처에 반창고만 갈아 붙인 것이었습니다. 씩씩하거나 용감했던 것이 아니라, 무지했고 마비된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마비된 사람들이 다른 마비된 사람들을 만들고, 마비된 사람들이 아직 마비되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을 헤집습니다. 이번 수업에서 다룬 꿈을 통해서 저는 제 아픔을 찾아냈습니다. 제 인생을 돌이켜 보면 당연히 아파야하는 상처였는데, 거짓말처럼 아픔을 제대로 느낀 적이 없는 자리였습니다. 제대로 눈길 주어 멈추어 본 적이 없는 지점이었습니다. 꿈을 통해 여전히 열린 채 피를 쏟아내는 상처를 찾았고, 저는 마음으로 앓고 있습니다. 아픈 걸 알아야, 애도할 수 있고, 애도할 수 있어야 반성할 수 있고, 반성할 수 있어야, 그 온당하고 당연한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이렇게 쓰면 굉장히 힘든 과정인 것 같은데, 또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다룰 힘이 있을 때에만 꿈이 상처를 보여준다고 하거든요. 내 무의식이 나를 그토록 믿는다면, 나는 이겨나갈 힘이 있는 상태일 것입니다. 좋은 신발은 우리를 좋은 곳으로 데려가 주지만, 모든 꿈은 우리를 더욱더 더 내 자신으로 만들어 줍니다. 잠이 들기 전, 저의 영혼에 인사를 건냅니다. 오늘도 좋은 꿈 꾸길!! (꿈투사 수업을 듣고 있는 동료 수강생들과 신뢰할 수 있는 안전한 안내자가 되어주시는 고혜경 선생님께도 감사를 전합니다.)
2020년 봄학기 온라인으로 진행된 꿈투사 워크숍 캡처 화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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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데이클래스] 토요 보깅댄스 ‘Express yourself’ | [후기-토요보깅댄스] 천골의 통증이 사라지다 - 간증같은 보깅 후기 :) | 느림보바 | 2020.7.27 | |
어떤 일에 호기심을 느끼고 해보고 싶어졌을 때, 이리 재고 저리 재는 것은, 솔직히 말해 내 스타일은 아니다. 그런데 "토요보깅댄스" 강좌 공지를 앞에 두고는 망설임이 생겨났다. 분명 강좌 안내에는 이렇게 쓰여 있기는 했다. 이런분들 초대합니다.
※보깅은 누구나 할 수 있어요. 몸치, 박치, 남녀노소 모두 환영합니다. 그러나 "보깅 댄스"라는 것이 너무 젊어 보이는 느낌이라 반백년을 살아온 내 몸이 이걸 따라갈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컸다. 그래서 정말 나 답지 않게 아카데미 느티나무 간사님께 질문 문자를 보냈다. -질문. 보깅 댄스 저도 할 수 있는 걸까요? 젊은 사람들 틈에 끼어 분위기 망칠까봐 신청 전에 문의합니다. 솔직한 답변 부탁드립니다. -솔직하게 대환영합니다. 전 50대 중년분들이 오시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기획했습니다. "대환영"이라고, 50대 중년분들이 오시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는 대답이 돌아왔기에 덜컥 신청을 했다. 강좌가 열리는 토요일 아침, 컨디션이 영 별로다. 천골(여기가 어디냐 하면... 허리 아래 꼬리 바로 위 평평한 부분...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그 부분을 의식조차 하지 못한다.)부근이 꽤 아팠다. 펄펄 날 것 같은 컨디션이어도 빌빌 거릴텐데, 이대로 갔다간 민폐작렬 아닐까, 싶었지만 '노쇼'는 더 큰 민폐일 것 같아서 무거운 걸음을 참여연대로 옮겼다. 무슨 옷을 입고 가야 할지조차 막막하지만 지금 '드레스 코드'를 따질 처지는 아니지 않나. 강의실에 도착했을 때, 나는 '망했다'고 생각했다. 이런. 내가 예상한 것보다도 더 젊다. 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앞으로 두 시간 반 동안 보깅 댄스라는 낯선 춤을 추어야 하는가? 게다가 나는 춤알못인데. 어떤 춤을 추어도 체조로 만드는 탁월한 재능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가. 왜 이 자리에 왔는가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강의가 시작되었다. 나는 "참여연대가 안하던 짓을 하기에, 저도 안하던 짓을 해보기로 했습니다."라고 답했다. 100% 진심이다. 몸을 풀고, 보깅 댄스에 대한 간단한 안내를 받고, 그리고 춤을 추었다. Cat Walk, Duck Walk, Floor Performance, Hand Performance, Spin&Dip를 하나 하나 배웠다. 당.연.히 어렵다. 그런데, 이거 완전 재미있다. 선생님의 설명을 내 식대로 버무려서 표현하자면, 아주 과장되게, '나 예뻐' '나 멋져'라는 느낌을 팍팍 풍기며, 자뻑 가득한 동작을 해야 하는데, 이게 정말 재미있지 않은가. 근 10년은 움직여 본적이 없을 것 같은 골반을 이리 저리 움직이고, 한번도 해보지 않은 방식으로 움직이는 것이 이토록 재미있을 줄이야!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내 안에 숨겨져 있는 '자뻑 본능'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다. 게다가 멋지지 않은가. 내가 조금은 힙해진 느낌? 완전 신문물을 접한 느낌? 중년분을 위해 기획했다고, 나를 낚기 위해 '뻥카'를 날린 간사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생겼다. 그가 '실은, 참가 신청을 해주신 분들은 대체로 2, 30대 분들이세요.'라고 솔직한 답변을 해주었다면 나는 이 자리에 오지 않았겠지? 때로 선의의 뻥카는 큰 도움이 된다. 천만 다행으로 참여연대 느티나무 홀에는 거울이 없고, 그래서 나는 나를 볼 수 없다. 선생님의 멋진 퍼포먼스를 반 정도는 따라가고 있을 것이라고 홀로 착각하며 두 시간 반을 함께 춤을 추었다. 아, 내 인생에 부족한 성분이 바로 '댄스'였구나! 못하더라도 자주자주 춤을 출 기회를 만들어 주기적으로 춤을 섭취해야지, 하고 야무진 다짐을 했다.(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난 주말에는 '훌라댄스' 원데이 워크숍'에 참가하기도 했다. 불행하게도 거기에는 거.울.이. 있.더.라. ㅠ.ㅠ) 혹시 다음 강좌가 개설되었을 때 참가를 망설이는 분을 위해 '춤알못'인 내가 알려주자면, 보깅은 정확히 4박자 리듬을 따르더라. 박자를 쪼개지 않아서 춤에 서툰 사람들도 일단 시작할 수는 있는 것 같았다. 보깅의 세계로 더 깊이 들어갔을 때도 그렇게 정직한 리듬을 타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허들이 높은 분야는 아니라는 것. 이름만 어려울 뿐이다. 그리고, 아주 아주 중요한 이야기. 즐겁게 춤추고 집에 돌아왔는데, 뭔가가 달라졌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지난 며칠 나를 괴롭히던 천골의 통증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러니까 이건 강좌 후기이면서 동시에 '간증'이다. 허리나 골반 같은 곳이 아픈 반백살들에게 보깅 댄스를 권한다. 원데이였다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나를 고통에서 건져주었으니 감사하는 마음으로 후기를 쓴다. 절대로 절대로 간사님의 '강요' 때문은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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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성놀이학교] 캠벨의 <여신들>과 함께 손작업을 하다 | 느티나무 창조성 놀이학교가 열리는 공간 ‘감우산방’... 그 곳에서 여신들의 광란의 축제가 열리다. | 예쁜여우 | 2020.6.17 | |
작년 가을에 우연히 잘못 배달된 참여연대 책자 ‘참여사회’에 소개된 “창조성 놀이학교” 강좌를 보고 바로 메일로 문의를 했다. 입모양을 보고 소통이 가능한 청각장애인인데 참여가 가능하냐?... 그에 대한 답은 말하기를 통해 이뤄지는 소통이 주인데 거기에서 내가 소외될까봐 걱정된다는 것이었다. 강좌에서 소외될 수 있는 부분은 나의 장애로 인해 생기는 어쩔수 없는 부분이고 대신 내가 미리 책을 읽고 따라갈 수 있는 만큼만 해도 괜찮으니 함께 하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낯설지만 새로운 만남이 시작되었다. 김 혜련의 <밥하는 시간> 이라는 책을 함께 읽고 서로의 생각을 말하면서 아픔과 슬픔의 추억을 함께 공감하고, 정성껏 준비해온 건강하고 맛있는 먹거리를 먹는 시간도 있고, 조각천을 함께 맞추고 이어가며 이불도 만들었다. 내가 우왕좌왕하면 슬쩍 내미는 손길에 다시금 제자리로 와서 같이 시작하는 등...이런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사람들의 따뜻함을 온 몸으로 느끼며 보이지 않는 진정어린 지지와 힘을 얻었다. 올해 봄학기 강좌가 시작되길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모든 일상이 멈춰지면서 입모양으로 소통하는 나에게는 마스크로 사람들과의 소통이 차단 되면서 본의 아니게 고립될 수 밖에 없었다. 들리지 않는 소리를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귀찮음, 짜증스러운 표정, 무시하고픈, 어디서나 환영받지 못함을 느껴질 때마다 말하는 법은 잊혀지고 눈치로 생존법을 찾아야 했다. 누군가를 원망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모두가 살고자 하는 것이려니 하고 이해하려고 했지만 지쳐가던 중이었다. 드디어 연기 되었던 느티나무의 “창조성 놀이학교”가 시작한다고 연락이 왔다. 그러나 코로나 상황이 악화되어 생활방역으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는 상황들은 몇날 며칠을 잠 못이루게 했다. 간단한 기본적인 소통조차도 애먹고 있는데, 서로의 생각을 주고 받는 소통으로 진행하는 감우산방 방식에 과연 내가 할 수 있을지, 얘기할 때 만이라도 잠깐 마스크를 내린다면... 그 또한 벗님들을 위험에 빠지게 할 수도 있다는 부담감에 결국 나 한사람만 빠지면 해결되니 포기하려던 참에 재미란 선생님의 카톡 답이 왔다. 감우산방의 진행은 서로 서로 지도하는 방식, 한 사람에게 집중해서 강의하는 것이 아니죠. 모두의 발언이 중한 서클방식에서 쌤과 소통을 위해서만 마스크를 벗게 되는 것은 아니죠.. 하하! 진짜 웃음이 나왔다. 나를 위한, 나를 위하여라는 말도 없었다. 나 때문에 감우산방 벗님들을 힘들게 할까 하는 생각은 오버하지 않았나 싶다. 감우산방의 벗님들의 “함께 하는 힘”의 위력을 잊고 있었다. 마스크때문에 벗님들을 못 따라간다 해도 내가 누구던가? 눈치밥으로 먹고 살아온 세월이 얼마인데... 이까짓꺼 못하겠어? 눈치껏 해보기로 결심했다. 감우산방의 여신들은 상상 외로 나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한 줄의 완성된 문장이 아닌 단어 하나만으로도 내게는 충분했다. 책이 있고 프린터물이 있고 종이와 볼펜이 있고 애정어린 벗님들의 눈길 덕분에 나는 눈치도 안보고 여신들의 축제를 맘껏 즐겼다. 매주 수요일, 감우산방으로 가는 길은 즐거웠다. 사람들을 통해 새로운 관점들을 알아가고 시야가 넓어지는 듯했다. 조제프 캠벨의 < 여신들 >을 읽으며 잊혀진 여신들을 찾아 떠나는 여행에서 ‘죽음과 재생’이라는 주제로 밀랍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함께 하는 시간이 지날수록 내 내면의 파장은 점점 퍼져갔다. 죽음은 그저 단순한 죽음이 아니었고 재생 역시 단순한 재생이 아니었다. 여신은 우물 안의 개구리인 나에게 자잘한 돌멩이를 마구 마구 던지더니, 기어코 커다란 바위덩어리를 던진다. 피할 틈도 주지 않았다. 결국 상처를 숨기며 괜찮아요, 괜찮아! 하던 내 입에서 결국 “아파요” 라는 말을 나오게 했다. 교착점, 충격, 잔인한 폭력과 파괴, 질문, 성배, 인간에 대한 연민, 물 위를 뛰어오르는 물고기.... 내 안에 숨어 있던 아픔들은 회오리치는 듯이 돌고 돌았다. 뭔가라도 잡고 있어야 해서 잡았던 철사는 뱀이 되고 메두사가 되어 다른 여신들과 광란의 축제를 즐겼다.
▲ 뱀이 되고 메두사가 되어... 나를 아프게 했지만 여전히 예쁜 여신, 행복한 단어인 내 짝, 내 짝이 되어준 여신과 함께 어울렸다. 생목소리로 들려주는 시 낭송과 떠나간 고인을 염원하는 소리에서 인간의 목소리도 감정을 담아낼 수 있음을 알게 해 준 여신들, 매 순간을 담아내려는 여신, 언제나 정정한 모습으로 모범을 보여 주는 여신, 멀리서 함께 즐기러 와 준 여신들, 함께 하지 못해 더욱 더 그리운 여신들, 그리고 메두사의 눈을 마주치면 슬그머니 마스크를 내리는 여신들의 모습에서 나는, 내가 그토록 부담스러워 했던 “배려”라는 단어를 기쁘게 받아들 수 있게 되었다. 그 많은 여신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러나 여신들은 나에게 삶의 부조리를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나눠주고 갔다. 마지막 남은 소원은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라는 말이 있었다. 나의 처음은 무엇인가? 나의 처음은 어디일까? 여신들이 나에게 나눠 준 그 힘으로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찾으러 다시 긴 여정을 떠나련다. 감우산방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여신들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나의 시를 바친다.
▲ 희생과 봉사의 생을 마감한 <평화의 우리집 쉼터> 손영미 소장님을 기리는 제단을 함께 만들었다. 인간들아! 인간들아! 너희들은 왜 나를 싫어 하느냐? 내가 너희들에게 제물을 바치라고 했느냐? 꽃을 바치라고 했느냐? 그러나! 나는 뱀의 여신! 자타공인된 사랑의 여신이 아니더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인간들아! 평화와 행복이 함께 하기를.. 나, 뱀의 여신... 모든 허물을 벗어버리고 억만겁의 시간을 뛰어넘어 또 다른 삶이 주어졌다. 나, 뱀의 여신.. 인간의 몸으로 이 따위에 다시 태어난다. 인간의 삶은 고되고, 고되고, 또 고되구나. 한 겁도 되지 않는 찰나. 그러나 얼마나 아름답고 생동감이 넘치는 삶인가..
▲ 뜨거운 밀랍을 손으로 조물조물거려 완성한 부엉이초를 선물 받아 참여연대 사무실 한 켠을 밝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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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미술학교] 풍경페인팅 - 일상의 이야기 | 풍경페인팅 - 일상의 이야기 후기 | 개똥이 | 2020.6.17 | |
느티나무 미술학교 풍경페인팅 수업을 갔다. 코로나 19로 인해 수업은 열체크, 손소독, 책상 간격도 넓게, 마스크를 쓰고 시작했으며 첫 날은 동그랗게 앉아서 서로 인사와 소개, 수업에 참여하는 소감 등을 이야기했다. 낯선 사람들, 공간, 시간 아. 역시 불편했다. 내가 이 낯선 곳을 찾아온 이유는 이상권 선생님이 이곳에서 수업을 하시는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입시때 화실 선생님이었다. 29년이 지난 지금 우연히 알게되었고 이런 저런 걱정을 뒤로하고 무조건 찾아왔고 다행히 선생님이 내 얼굴을 기억해주셨다. 수업은 4번의 드로잉 수업, 3번의 아크릴수업으로 진행되었고 편안하고 안정적인 분위기에서 세심한 지도를 받을 수 있었다. 미술 전공을 했지만 처음 접해보는 아크릴물감이 뜻대로 되지않아 약간 멘붕이 왔을 때 누군가의 콧노래 소리가 들렸다., 그래. 그리는 즐거움을 그동안 잊고있었구나. 조급한 마음이 진정이되고 이런 시간과 공간에 내가 있을 수 있는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역시 무조건 오길 잘했어. 이번 봄학기 풍경페인팅의 주제는 <일상의 이야기>이다. 흔히들 그림은 멋진 풍경 완벽한주제를 생각하게 되는데 내 주변과 일상, 나에게 의미있는 것들을 나만의 표현방법으로 이루어냄으로써 그림의 주제를 폭넓게 생각할 수 있게 좀 더 다른 시선으로 익숙한 것들을 볼 수 있게 해준 수업이 되었다. 전시회 또한 코로나 19로 인해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지 못한것이 아쉬울 정도로 즐겁고 행복한 분위기에서 준비되었다. 후기에서나마 작가들의 작품 설명을 소개하고싶다.
이번 봄학기는 새로운 주제의 방향성을 선생님 지도 하에 모든 회원이 차분하게 이루어낸 시간이었던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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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막다른 전지구적 기후위기, 우리의 선택은? | [강좌 후기] 기후위기, 해답은 정치다.(하승우) | 누완다 | 2020.6.15 | |
먼저,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숨진 ‘조지 플로이드’로 인해 흑인 사회가 가진 절망감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보여주는 영상을 함께 보았습니다.(16세 아이들이 항의 시위에 나온 것을 보고, 31세 아저씨가 제발 다른 길을 찾으라고 하며 46세 아저씨와 말싸움하는 영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3번의 강의 내용을 다시 한 번 함께 떠올려 보았습니다. 일종의 복습 시간이었지요. 먼저 각 나라의 [CO2 누적배출량]에서는 ‘미국’이 가장 많이 배출하고 있는데, 그 증가속도만 놓고 본다면 ‘중국’도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 세계 여러 나라가 지구 온난화에 일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책임을 누구도 지려고 하지 않고, 서로 계속 떠넘기기만 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정작 심각한 피해는 제3세계 국가들이 겪고 있지요. 기후위기를 이야기하면, 그 이미지는 항상 북극 빙하가 녹아 북극곰이 살 곳이 없어진다는 문제만 주로 보여줍니다. 하지만 “곡물생산 변화”도 심각한 문제이기에, 결국에는 큰 갈등이 분출될 위험이 있습니다. 또한 기후위기에 대한 대안으로, 흔히 ‘지속 가능한 발전’과 ‘그린 뉴딜’이라는 두 낱말을 사용합니다. 물론 두 낱말 뜻은 대개가 비슷합니다. 그러나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낱말은 ‘발전’을 여전히 포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린 뉴딜’ 낱말은 생태위기를 더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지요. 무심코 사용하는 낱말에서도 이러한 인식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힘들게 겪고 있는 이 코로나 19 위기 이후에, 더 통제할 수 없는 지금보다 큰 위기가 올 수 있는데요, 코로나 19가 심화시킨 불평등과 생계위협에 놓인 이들은 야외노동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입니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코로나 19 위기 그 근본적인 바탕에는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위기에 연관된 다양한 이해관계들”에서는 1997년 IMF 사태를 다룬 영화 ‘국가 부도의 날’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아직 영화를 보지 못하신 분이 계시다면, 영화를 한 번 보실 것을 추천하셨습니다.) 영화에서 위기를 대하는 고위 관료들, 공무원들, 소시민들 모습이 지금 기후위기를 대하는 우리 사회 모습과도 겹치는 부분이 많습니다. 정부는 왜 ‘기후위기’ 이야기를 잘 하지 않으려 들까요? 연합체들 이해관계를 깨기가 힘들고, 지금 사회가 바뀌기를 싫어하는 이들 세력이 강고합니다. 어쩌면 이러한 위기들이 토건 세력들에게는 새로운 사업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결국 이러한 개발연대 세력들과 맞먹을 수 있는 새로운 단체가 필요합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이 사회를 바꿀 수 있습니다.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이 위기를 가속하기도 합니다. 물론 정부도 노력을 전혀 안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근본적 원인은 그대로 두고, 밖으로 보이는 모습만 신경 쓰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우리가 정치변화의 동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더 새로운 활동들이 필요합니다. 이번 4.15 총선에서도 드러났지만, 정치인 평균 연령은 여전히 50대입니다. 다가올 미래인 2050년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들이 정치를 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기업의 변화를 요구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이 필수입니다. 내부목소리가 중요한 것이지요. 기후위기는 여전히 추상적이고 아직도 체감을 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열악한 노동조건에 있는 이들은 갈수록 더 비가시화되고 있는 현실이구요. 선거 공약은 어쩌면 지역개발이 필수 공약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야만 표를 얻습니다. 대안적인 그림이 필요합니다. 이에 더해 ‘선거제도 개혁’은 더 중요합니다. 이번 “위성 정당” 논란을 보며,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을 합니다. 기후위기와 노동운동이 만나고, 그린뉴딜과 정의로운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에서 우리는 같이 갈 수 있는 접점을 찾아야 합니다. 코로나 19를 기점으로 더 나은 방법을 함께 찾아야 합니다. 이렇듯 다양한 싸움들이 모여 새로운 역사가 됩니다. 오랜 기간 이러한 활동들이 축적되어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끊임없이 함께 모여 이야기 나누고, 같이 고민하고, 공감해야 합니다. 다양한 형태의 플랫폼을 활용하는 것이 한 방법이 되겠네요. 기후위기를 정말 고민한다면, 먼저 ‘나에게 기후위기는 어떤 영향을 미치나?’ 진지하게 생각해 봅시다. 당장의 ‘폭염’보다도, 노동과 식량, 건강문제부터 올 것입니다. 내가 먼저 무엇인가를 시작하려 한다면 부담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옆에 있는 누군가의 힘을 믿고 다양한 역할을 할 많은 사람들과 함께 기후 정치력을 만듭시다. 리더보다 더 중요한 것은 첫 추종자입니다. 누군가가 나타나기를 기대하기는 현실 벽이 높습니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 지 스스로 질문해 봅시다.
마지막 시간은 강좌를 들은 분들이 함께 자유로운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개인적으로 심각한 기후위기를 다시 한 번 알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요, 앞으로 이러한 고민과 실천사항들을 공동체에서, 다른 동료들과 어떻게 함께 생활 안에서 알리고 행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작성 : 양두승 자원활동가 * 더보기(클릭) 05. 19 기후위기로부터 대전환 - 과학으로 보는 기후위기_조천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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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막다른 전지구적 기후위기, 우리의 선택은? | [강좌 후기] 기후위기와 그린뉴딜 (이유진) | 누완다 | 2020.6.5 | |
6.2. 강의는 녹색전환연구소 이유진 선생님께서 ‘기후위기와 그린 뉴딜’을 주제로 강의를 해 주셨습니다.
먼저 영국 히드로 공항 제3활주로 불법 판결에 대한 이야기로 강의를 시작하셨는데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파리 협정을 지켜야 하기에, 이 활주로는 불법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나라는 곳곳에 공항을 설계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제주 제2공항 건설 계획은 다들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만큼 우리사회가 환경과 기후위기에 둔감하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그린뉴딜’에 관해서도 논의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이제야 그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 19 이후 세계에서는 지진과 폭염, 한파와 폭설 등 기후위기가 가져올 연속적인 재난이 비대면으로 대처가 어렵고 결국은 기본적인 인프라를 개선하여 지역사회의 회복력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반면, 코로나 19가 우리에게 준 교훈은 정은경 본부장에게서 볼 수 있는 ‘상세한 설명이 주는 리더쉽’과 화상회의와 재택근무를 통한 ‘거품 빼기’입니다. 굳이 비행기를 타고 먼거리를 이동해서 회의를 했어야만 하는가 묻고 있습니다.
‘그린 뉴딜’은 기후위기 대응과 불평등 타파를 목표로 하는 탈탄소 경제사회로의 대전환입니다.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은 1.5℃가 마지노선입니다. 만약 2℃만 되어도, 산호는 99% 이상 소멸하고, 북극 해빙 완전 소멸 빈도도 10년에 한 번이 되기에 복원이 어렵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온실가스를 45% 감축해야 합니다. 우리는 2020년 현재를 살아가고 있으니, 10년 이내에 온실가스 배출을 절반으로 줄여야하는 것이지요. 결국 ‘정의로운 전환’이 필요합니다. 그 예로 프랑스와 독일, 스웨덴과 네덜란드를 비롯하여 비행세를 도입하는 국가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항공유가 그만큼 CO2를 많이 배출하기 때문이지요. 독일은 육류세 도입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유럽은 교토 의정서를 시행하기 위해 정책적으로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논의조차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린 뉴딜’은 거대한 전환으로 ‘온실가스 감축’과 ‘일자리 창출’, ‘사회불평등 해소’가 함께 접근하는 융합적 정책이 필요합니다. “그린”에는 ‘정의’ 개념이 포함되고, “뉴딜”은 낱말 그대로 ‘새로운 약속’이기에 사회제도들을 얼마나 개혁시켰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음 우리나라 대선에서는 기후위기와 불평등에 대한 해법에 관한 공약을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 2019년 2월 7일 미국 민주당 그린 뉴딜 결의안은 IPCC 1.5도 특별보고서로 시작하며 미국사회 부의 불평들과 차별을 해결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그저 단순히 ‘재생 가능 에너지’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EU가 같은 해 11월에 발표한 기후 비상선언과 그린 딜 또한 전영역을 망라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경제 성장 전략 외에도 생물 다양성도 포함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또한 2021년 하반기 도입 예정인 ‘탄소국경세’에 관한 논의도 시작하고 있습니다.(수입품에 탄소배출에 비례하여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지요.)
우리나라는 현재 7억톤에 가까운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2030년까지 2000년 수준인 5억3천6백만톤 정도로 감축해야 합니다. 시민들에게 인식도 되어있지 않은 상황에서, 과연 준비는 되어 있는지 의문입니다. 2000년 대비하여 영국과 EU, 미국과 일본은 온실가스 배출을 다들 줄이는 추세이지만, 우리나라만 47%가 증가했습니다. 한국은 아직까지도 핵발전과 석탄발전 비중이 높습니다. 그 과정에서 송전탑 갈등도 계속될 것입니다.(발전소는 지방에 있고, 전기를 수도권까지 끌어와야 하니까요.) 그만큼 우리는 2000년 수준으로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장기과제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재생에너지 기술과 관련하여, “RE 100”(재생가능 에너지원으로 생산된 전력을 100% 사용)에 따라 국내 기업도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 예로, SK 하이닉스는 애플에서 납품 제품에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했습니다.
정의당과 녹색당, 더불어민주당 그린 뉴딜 정책 설계를 보면, 이 정부에서 에너지 정책은 더디게 진행됨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5월 12일 문재인 대통령의 그린 뉴딜 주문에서도 ‘배출 제로’와 ‘사회적 불평등 해결’에 관한 내용은 빠져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기후위기 관련 대응법과 제도는 많습니다. 감축목표와 그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행도, 점검도 하지 않으며 총괄적 조정 기능은 부족합니다. 예산과 조직도 부족하여, 실행력은 떨어집니다. 가시적 효과도 미흡한 것이 우리 현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기후 악당’으로 분류가 됩니다.
그렇다면, ‘그린 뉴딜’ 정책 과제와 대안은 무엇일까요? 1. 온실가스 감축을 최우선 정책으로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새로운 정부 조직을 만들고, 모든 정부 부처 정책과 사업에 탄소예산과 회계시스템을 도입하여 기획재정부 주도하에 예산 25%가 온실가스 감축에 투입될 수 있어야 합니다.
2. 탈탄소 산업과 그에 따른 일자리 창출입니다. 이러한 제도적 기반은 결국 산업 전환을 가져옵니다. 물론 규제 타파나 인센티브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또한 그러한 규제가 오히려 새로운 시장을 만들기도 합니다.
기후위기 시대를 돌파하기 위해서 먼저 ‘기후위기 비상행동’과 같은 “인식”을 “확산”시키고(운동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구체적이고 정책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득권을 해체시키고, 대안을 현실화할 수 있는 “정치세력화”를 해야 합니다.
지난 조천호 선생님 강의에서처럼, “우리가 같은 배를 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각자도생은 결코 해답이 될 수 없습니다. 주어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지방 자치 분권, 에너지 분권과 그린 뉴딜 연계로 우리가 “그린 뉴딜”을 본격적으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판이 열렸습니다. 그 화두가 던져진 것입니다. 그린 뉴딜에 무엇을 녹여낼 것인지 계속 고민해야겠습니다. 환경 뿐만이 아니라, ‘불평등’도 중요한 의제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전환의 시대’에 따른 준비와 방향 설정, 조사와 파악도 중요합니다.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 지속적으로 지켜보고 문의할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질의응답 시간 중 그린뉴딜 정책 관련하여 교육부분이 빠져있는 데 대하여 지적하고 질문을 주신 분이 계셨습니다. 이에 대해, 물론 전방위적으로 모든 대상에 대하여 교육이 필요하지만, 특별히 고위 공무원(주요 장차관, 국장)과 정치인들부터 기후위기 심각성을 알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정책을 연구하고 입안하는 이들이기에, 가장 시급한 대상이 아닐까 합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많은 분들이 원격 강의를 청해주셔서 송희 간사님과 자원활동가 선생님께서 미리 리허설 시연을 해 보고 준비를 했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질문을 받는 과정에서는 소음이 울려서 차질이 조금 있었지만, 대체로 매끄럽게 잘 진행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색다른 시도가 어쩌면 코로나 19 이후에는 자연스러운 일상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강의 내용 뿐만이 아니라, 강의가 진행되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 번 ‘기후 위기’에 대해서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작성 : 양두승 자원활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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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클럽 - 와] 동물권 읽기 | [동물권 후기] 왜 나는 개까지 먹게 되었나 | 환2 | 2020.6.5 | |
나는 왜 돼지도 먹고 소도 먹고 개까지 먹게 되었을까 책을 주문하고 배송위치를 확인하며 3일을 꼬박 기다렸다.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드디어 도착. 새옷을 입는 것 같은 설렘으로 책을 읽다 문득 오늘의 마지막 식사가 감자탕이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퇴근 후 동물권 책을 읽으러 가는 길에 돼지고기로 허기를 채운 이 아이러니. 그날 저녁은 이 책의 문제의식을 메타적으로 드러내주었다. 동물권에 관심이 있다고 하지만, 식탁에 돼지고기가 올라오는 모습에 단 일말의 불편함이 없었던, 아니 오늘따라 감자탕에 고기가 식어있다고 오히려 투덜대던 나. 작년 가을부터 동물권 독서클럽에 참여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동물권 반년만에 대충 동물권의 세부 챕터만 봐도 무슨 이야기할지 눈에 보인다. 도축과정에서 동물이 얼마나 끔찍한 고통을 겪는지, 육식이 얼마나 건강에 안좋은지, 동물이 어떻게 대상화 되고 있는지. 동물권 하면 나오는 3종 세트에 익숙해진 나는 이미 알고 있는(혹은 있다고 착각하는) 내용들을 재확인 하며 읽는다. 저자는 지금 당신이 먹고 있는 스튜에 들어있는 고기가 ‘개’였다고 한다면 지금의 느낌이 어떨지 물어본다. 이건 아마 우리가 반려동물과 식육동물을 분리하는 모순을 지적하기 위함이었으리라. 하지만 저자가 던진 질문은 나에게는 육식에 대한 모순을 직면하기는 커녕 과거에 내가 개고기를 먹을 수 있게한 논리이기도 했다. 저자가 던진 “개고기는 못먹으면서 소/돼지/닭고기는 어떻게 거리낌없이 먹을 수 있을까?” 이 질문은 거꾸로 “소/돼지/닭고기도 먹는데 개라고 못먹을 이유는 무엇일까?”로 둔갑했다. 태어나서 두번 개고기를 먹었다. 첫번째는 무엇인지 모른 채 먹었고, 두번째는 지인의 집에서 지인의 어머니가 내어주신 요리였다. 두번째로 개고기를 먹었던 날 나는 “다른 동물도 먹는데 뭐..”라는 생각으로 탕을 한숟가락 떠 입에 쑤욱 넣었다. 육식에 대한 인지부조화 조차 일어나지 않는 나에게도 책이 던져준 의미있는 이야기는 두가지.
먼저, 육식은 정상적이고(Nomal) 자연스러우며 (Natural) 필요한 것(Necessary)이라는 생각자체가 ‘이.데.올.로.기’라는 것. 이 말은 육식은 사실 자연스러운 행위이기 보다 어떠한 신념체계의 산물 언제든지 허물어지고 재구성될 수 있다는 걸 말한다. 나 같은 뿌리깊은 육식인에게도 변화의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걸 의미했다. 두번째. 미각은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된다는 것. 예를 들어 캐비어의 경우 세련되고 품위있는 상징으로 인식한 이후에라야 사람들이 맛있게 먹기 시작한다는 사례는 내가 좋아하는 요리들이 실제로는 어떤 상징들로 구성되어있는지 돌아보게 했다. ‘난 언제부터 참치회를 먹게 되었을까’ ‘왜 장어를 먹을때는 몸이 든든해질 거라는 느낌을 받았을까?’ ‘어떻게 소고기는 명절 선물세트가 되었을까' ‘내가 한턱 쏠게의 코스는 왜 다 고기집일까?’ 어쩌면 우리의 음식 소비는 미각적인 욕구보다 특정한 문화소비적 측면이 더 클 수 있겠다. 책을 읽고 난 뒤 집에서 또띠아 피자를 만들어 먹었다. 이미 가지고 있는 음식을 버릴 순 없다는 핑계를 대며 토핑으로 베이컨을 구웠고, 어설프게 배운난 베이컨을 굽는 동안 이 너머에 존재했던 돼지를 상상해보려고 했다. 나에게도 어느 비건의 간증(?)처럼 고기를 씹는 행위가 불편해지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큰 변화는 없다. 하지만 실패일까? 아니다. 고기를 씹으면서 반드시 먹어야할 꽤 좋은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건 내가 요리를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조금씩 고기를 덜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식당에 가서도 되도록 고기가 없는 메뉴를 찾아보는 연습 중이다. 매달 6,16,26일 육이 들어간 날에는 육식을 하지 않는 날로 정했다. 하지만 내가 우유와 요커트, 생크림, 계란말이(?)까지 포기할 수 있을까. 회는 또 어떤가. 고기 소비는 줄지만 그 만큼 다른 유제품과 해산물 소비가 늘어나는 풍선효과가 일어나진 않을까. 동물과 생태계에 가하는 모든 폭력들이 비가시화된 이 도시라는 시공간 안에서 나는 지구와의 관계라는 끈을 늘 인지 할 수 있을까. 질문에 질문이 일어난다. 비폭력. 나에겐 머나먼 길이나. 덜폭력이 되기 위한 관계망을 새롭게 연결하고 있다. 지금보다 더 나은 길에 접속할 수 있도록 함께 공부하는 이들의 지혜가 늘 구한다. 글_승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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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막다른 전지구적 기후위기, 우리의 선택은? | [강좌후기] 기후정의와 배출제로(한재각) | 달라이 | 2020.6.1 | |
2강은 '기후위기'라는 단어를 들으면 연상되는 키워드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녹고 있는 빙하', '북극곰' 등 우리가 그동안 많이 접했기에 조금은 익숙한 이미지들이 떠올랐는데요. "그렇다면, 여러분. 혹시 아는 북극곰이 있나요?" 한재각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소장님께서 그 다음으로 던지신 질문이었습니다. '기후위기'를 우리 일상과 조금 더 가까운 관계 안에서 이야기할 수 없을까, 중요한 질문을 던져주신 것이었습니다. 오늘 강의는 기후위기가 실제로 우리 삶에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지,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영국 전 외무부 장관인 마거릿 배킷은 기후변화의 충격이 "환경에만 머무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결과적으로는 "안보 문제의 핵심"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꼬집은 말입니다. 미국 국무부 장관인 존 케리 역시 오늘날의 난민사태를 극단주의가 아닌 기후위기로 인한 생존 문제로 비롯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바로 '환경난민'입니다. 호주와 미국을 비롯하여 많은 국가에서는 분쟁의 양상을 이해하기 위해 기후위기를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많은 국가에서 기후위기를 중요한 안보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파리 기후협약'의 주요 내용부터 알아보겠습니다. 본 협약의 주요 목표는 지구의 온도 상승을 1.5도 이하로 제한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각 나라가 각자 감축 목표를 제출하도록 하였더니 그 총합이 겨우 "3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1.5도" 인데 전 세계의 의지는 "3도"라는 것이지요. 더 과감한 목표가 필요합니다. 이후 IPCC에서는 '1.5도 특별보고서'를 통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50년까지 순 제로(net-zero) 배출 달성을 목표로 세웠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2050년까지 1차 에너지 공급의 50~60%, 전력 생산의 70~80%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해야 합니다. 과연, 세계는 목표달성이 가능할까요? 작년 타임지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그레타 툰베리는 2019년 프랑스 국민의회 연설에서 "지금처럼 배출한다면 남아있는 420기가 톤의 탄소예산이 대략 8년 반 안에 사라질 것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탄소예산'은 전 세계가 설정한 목표(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이하로 제한)를 넘지 않기 위해 우리가 배출할 수 있는 탄소의 총량입니다. 어린 소녀도 이해하고 있던 이 개념을 우리는 지금까지 들어본 적도 없었다니 개인적으로는 너무 부끄러운 순간이었지요. 2011년까지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였습니다. (1870년부터 2011년까지 누적 이산화탄소상당량: 1,890) 우리에겐 이제 1,000 이산화탄소상당량만 배출 가능합니다. 현재 우리가 배출하고 있는 양을 고려했을 때, 겨우 "8년"이 남은 것입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공동의 차별화된 책임>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파리 기후협약 이전에 있었던 '교통의정서'에서는 선진국들에만 온실가스 감축의무가 있었습니다. 개발도상국에는 어느정도 개발권을 인정해주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파리 기후협약에서는 보다 '공동의 책임'에 무게가 실렸습니다. 당사국 모두가 감축의무를 지닌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2009년을 기준으로 '연간 배출량'을비교했을 때에는 매우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이 배출 1위입니다. 하지만 1751년부터 '누적 배출량'을 추적해본다면 미국이 압도적 1위를 차지합니다. 배출량도 중국의 2배 정도인데요. (미국: 399.38 billion ton / 중국: 200.14 billion ton)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1인당 배출량'을 살펴보겠습니다. 역시 미국이 1위, 그 다음 캐나다, 러시아, 영국, 프랑스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후부정의(Climate Injustice)' 입니다. 개발도상국의 입장에서는 선진국들이 오래 전부터 개발을 위해 그렇게 많은 양의 탄소 배출을 해왔으면서 '인류 공동의 위기'라는 점을 내세워 그 책임을 모두에게 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재각 소장님께서는 "어떤 테이블에서는 2만원짜리 식사를 하고, 어떤 테이블에서는 3천원짜리 식사를 했는데 계산할 때에는 n분의 1로 하자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셨습니다. 실제로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난에 더욱 취약한 국가들도 개발도상국들입니다. 이런 논의들로 비롯된 대안이 '축소-수렴 모형'입니다. 전 세계 배출량을 전체적으로 감소하면서 동시에 국가별 배출량의 차이도 감소시키는 것입니다. 현재 배출량이 많은 국가들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더욱 많은 양을 줄이게 되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일상으로 보다 가깝게 돌아와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봅니다. 먼저, 영국을 비롯하여 프랑스, 캐나다, 아일랜드는 벌써 '국가 기후위기 비상사태'를 선포하였습니다. 현재 우리는 기후위기를 맞이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순 배출 제로를 위한 입법 혹은 입법예고를 선언한 국가들이 있습니다. 수리남 공화국과 부탄을 비롯하여 많은 유럽 국가들과 남아메리카 국가들이 입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화석연료 채굴을 중단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앞으로 새로운 화석연료 채굴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게 아닙니다. 현재 채굴 중에 있는 양만 사용하더라도 우리는 이미 목표달성을 실패하고 마는 것입니다. 석탄발전소 폐쇄,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 금지도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냐고요?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효율화'에 대한 고민과 발전이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때문입니다. 배출량 감소를 위해 재생에너지 산업에 더 많이 투자하면서 노동시장의 경제까지 확대하는 '그린뉴딜' 정책과 기존 중공업분야 종사자들이 재생에너지 산업으로 전환할 때 관련 생계지원과 필요한 교육 등을 지원하는 '정의로운 전환'까지 등장하였습니다. (이 부분은 다음 강의에서 더욱 자세하게 다룹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요?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도 계속 증가해왔습니다. 영국과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 추이를 비교할 때, 영국은 배출량을 계속 감소시키고 한국은 배출량이 계속 증가하면서 2016년쯤 교차점을 기준으로 두 나라가 뒤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누적 배출량은 영국이 많습니다. 다만 연간 배출량을 조금씩 줄여가고 있는 추세라는 것이지요.) 안타깝지만 한국정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 시나리오를 보면 파리 기후협약은 물론 다른 나라 추세에 비해 훨씬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이에 2019년 8월, 전국 330개 단체들과 여러 시민들이 모여 <기후위기 비상행동>을 결성하였습니다. 9월 21일에는 3대 요구사항을 내걸고 전국에서 6,500명이 거리에 모여서 집회에 행진을 가졌습니다. 3대 對정부 요구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기후위기를 인정하고, 비상선언을 실시하라. 2) 배출제로 계획을 수립하고, 대응방안을 마련하라. 3)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독립적인 범국가기구를 구성하라. 이 외 전 세계에서는 그레타 툰베리를 비롯한 많은 청소년들의 외침과 행동(예: 등교거부), 영국의 멸종저항시위(Extinction Rebellion), 독일 토지의종말(Ende Gelande!) 등 다양한 모습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행동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지난해만해도 그레타 툰베리의 영상이 여기저기에서 보인 것을 감안하면 아주 조금씩이지만 전 세계는 공동의 목소리에 조금씩 귀를 기울이고 있고 앞으로는 더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이 세상은 사람들이 사람들과 어울려 살기 위해서 만든 곳이니깐요. 참, 질의응답 시간에서도 재밌는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아직 전기 혹은 수소자동차 가격이 내연 자동차보다 비싸다는 점과 관련하여 한재각 소장님께서는 내연자동차에 환경부채(사회적 비용)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이야기해주셨는데요. 탄소배출량이 그만큼 많은 산업(예: 내연자동차, 석탄발전소 등)에서 기준 배출량 이상에 대한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이었기에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흥미로운 지점이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동시에 '현재의'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함께 고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작성 : 정다람 자원활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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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지금 다시, 젠더를 묻는다 | [지금 다시 젠더] 차이를 가진 존재들을 살리는 길 | 개똥이 | 2020.5.31 | |
<여성과 퀴어운동의 분리주의를 넘어>를 제목으로 하여 '누가 여성이고, 진짜와 가짜 구분- 뭣이 중한가'를 논하였다. 지금다시 젠더를 묻는다 3강 시리즈 중 두 번째 강의였다. 가족구성권연구소 소장 역할하시는 김순남님은 장애여성공감에서 오래 활동하셨다고 한다. 두 시간 반이 짧았다. 공감과 연결, 확장을 통해 해방으로 나아가자. 서로 다른 경험을 지녔더라도 같은 의제로 연대하자는 간곡한 메시지가 특히 와 닿았다.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운동 혹은 정치 혹은 연구가 페미니즘이라는 작은 오해와 여남간 상호 적대, 혐오현상을 짚는다. 그러면 여자란 무엇인가. 누가 진짜 여성인가로 흘러가버리는 분리주의는 페미니즘의 본질과 닿는가. 강의는 이 질문으로 시작하여 다음과 같은 방향성을 확인한다. 페미니즘 운동이 만들 사회는 누구도 이성애 중심적인 가부장제에 의해 성별 규범에 맞춰 살도록 강요당하지 않는 사회,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이해하고 존중할 기회와 자원이 동등하게 주어지는 사회 그러므로 부당하게 해고되거나 학교에서 내쫓기지 않는, 법제도와 공동체가 인권을 다수결로 저울질하지 않는 사회여야 한다.(2020-02-12 언니네네트워크/ 퀴어여성네트워크 성명 인용) 나라는 개인은 정말로 단일한 정체성으로 구성되어 있나 묻는다. 흑인, 여성,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시인, 엄마, 연인, 전사 등으로 자기를 정의한 오드리 로드(Audre Lorde, 1934~1992)처럼 한 사람을 이루는 정체성은 다양하고 복잡하며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되새겼다. 진짜 여자인가 아닌가를 구분하고 누가 더 고통스러운가를 나누는 방식이 존재의 연결성을 차단하는 것에 주목한다. 내부를 분할하여 상대권력을 무력화한다. 페미니즘을 억압하는 사람들은 ‘나는 페미니스트가 싫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진짜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진짜 가짜 논쟁에 패대기치면 억압이 쉬워진다. 기존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이 문법을 충실히 따라 가부장제 사회에서 받은 피해와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성을 제거하고, 남성없는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것이 대안이 될까. 우리(페미니즘 옹호자, 운동가)는 누구인가 성찰한다. 여성만의 공간, 안전지대 설치와 유지 보존의 도구로써 페미니즘이 작동한다는 주장은 본질적(radical)인가. 분리는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가. 차이를 가진 존재들이 서로 살리는 길은 우리 삶의 복잡함을 자축하는 것에 있다. 긴장이 발생하는 그 장소로 들어가 머무르고 함께 흔들리고, 우리를 잡아당기는 다중적 관점을 받아들이자. 우리 삶과 세상의 모든 복잡다단함을 반영하는 정치를 건설하자. 이제까지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한계, 그 너머로 우리 욕망을 확장하자. 정체성의 범주로 구분되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과 함께 하자. 더 많은 공간을 만들자. 살아 있는 우리는 모두 섞이면서 변형되는 유기적 존재다. 마주하고, 연대하자. ※ 2강 참고도서 및 읽을거리 <우리는 자격 없는 여성들과 세상을 바꾼다> 트랜스젠더 여성 A씨를 향한 환대와 지지의 기록 (권김현영, A 외 23개 단체 지지성명을 묶음/와온) <시스터 아웃사이더> 갖가지 기준으로 서로 나누고 가르며 문제를 문제로만 남겨두려는 태도를 비판(오드리 로드/후마니타스) <망명과 자긍심> 교차하는 퀴어 장애 정치학(일라이 클레어/현실문화) <글로리아 안잘두아의 교차성 이론: 초기저작에서 「경계지대/경계선」까지 (2014)박미선/부산대여성연구소 글_김태정 자원활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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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지금 다시, 젠더를 묻는다 | 트랜스젠더 신입생 등록취소가 남긴 질문들 - 박수민 | 개똥이 | 2020.5.27 | |
트랜스젠더라는 단어는 더는 우리에게 낯설게 다가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을 한 사람의 개인으로 바라보는 데는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아직 서툰 것 같다. 박한희 변호사님과 함께한 이번 강의는 내가 그들의 삶에 나름대로 공감해보고, 그들이 느낄 막연함을 상상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원하는 학교에 입학하고, 선거에 참여하고,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는, 나에게는 일상적이다 못해 당연한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고민거리라니. 일각에서는 트랜스젠더 인권이 페미니즘과 대척점에 있다고 말한다. 사회가 규정한 성 역할을 고착시킨다는 이유에서다. 나는 생물학적 성별과 성별 정체성이 다른 기분은 알지 못하지만, 타고난 기질이 내 삶의 전제를 ‘희생’으로 만드는 상황이라면 숨도 쉬지 못할 만큼 갑갑할 것 같다. 사회가 개인에게 기대하는 여성상, 남성상을 타파할 필요가 있듯, 우리가 트랜스젠더에 갖는 전형적인 이미지에서 탈피해야 그들 또한 조금은 더 용기를 내어 개인으로서 자신을 보여주지 않을까. 이는 다양성의 문제로도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근력운동을 좋아하는 여성이 있고, 수공예를 즐기는 남성이 있듯, 그리고 누군가가 그 사람을 향해 ‘남자/여자가 되고 싶은 거 아냐?’라고 말하는 것이 무례한 일이듯, ‘근력운동을 좋아하는 트랜스젠더 여성’과 ‘수공예를 즐기는 트랜스젠더 남성’이라는 이 두 문장은 우리에게 더욱더 자연스러워져야 한다. 개인의 가치관, 사상, 취향 등을 온전히 존중하는 사회에는 여성과 남성, 트랜스젠더라는 구분이 무의미하고, 차별과 편견에서 한결 자유로울 것이다. 언젠가 올(것이라고 믿고 싶은) 이 사회에서는 성중립 화장실도 그저 개별 화장실이라고 불릴지 모른다. 사실 나는 성중립 화장실에 대해 잘 몰랐는데, 이번 강의를 통해 변기와 세면대가 한 칸에 있는 넓은 1인용 화장실과 다를 바 없음을 알게 되었다. 물론 몇 년 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공용화장실이 성별로 분리되고 있고, 나를 비롯한 많은 여성이 불법 촬영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이는 공간의 분리보다는 범법 행위에 대한 처벌 강화, 올바른 성교육 등의 제도적 개선으로 근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지금부터라도 이러한 논의를 활발히 한다면, 언젠가는 트랜스젠더 여성의 입학 소식이 다른 학생에게 위협으로 생각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페미니스트로서 트랜스젠더 인권에 대한 논의를 늘 회피했던 입장에서, 나에게 이 강의는 내 관점을 정립하고 인권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아직 질서 있게 내 생각을 정리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후기가 횡설수설한 듯하지만, 앞으로 남아있는 두 번의 강의까지 마치고 나면 한층 깊어진 논리로 내 의견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코로나19로 강의가 두 달 정도 미뤄졌지만, 따뜻한 공기와 색색의 꽃들이 아름다운 계절에 이 강의가 열리는 것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갖가지 색깔이 피어오르는 것이 무지개와 닮았기 때문이다. 혹시 나의 부족한 감수성 때문에 이 후기를 읽던 누군가가 상처받았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글. 박수민 자원활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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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막다른 전지구적 기후위기, 우리의 선택은? | [강좌후기] 기후위기로부터 대전환 - 과학으로 보는 기후위기(조천호) | 달라이 | 2020.5.25 | |
기후변화는 오늘날 우리에게 크게 낯설지 않은 단어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조금씩 기후변화의 영향을 경험하고 있지요. 하지만 아직 다가오지 않은 기후위기를 두고 우리의 대응은 미온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번 강의에서는 과학적 데이터를 통해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세상의 모습을 잠깐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인류세 기후변화를 이야기에 앞서 우주와 인류의 탄생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138억년 전 우주가 탄생하였고, 45억년 전 우리의 지구가 탄생하였습니다. 이후 자연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생명이 주고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였지요. 그러나 인류는 조금 달랐습니다. 정보를 모으고 가공하고 전달하면서 자연에 적응하는 과정을 겪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인류는 조금씩 지구의 모든 자원을 사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열대기후 생태계를 파괴하는 대신에 새우양식장이 증가하였고, '농업혁명'으로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3배나 증가하였지만 비료는 토지와 물을 오염시켰습니다. 기후변화 기후변화는 단순히 과학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류의 사회, 정치, 일상 모든 것이 얽혀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지구가 따뜻했던 기간에는 농업 생산량이 높았습니다. 인구가 증가하고, 문명이 발달하고, 제국이 팽창하였지요. 하지만 빙하기가 오면 식량 및 영양부족으로 사람들이 사망하였고, 천연두과 홍역과 같은 전염병이 성행하였습니다. 결국 인구가 감소하고 제국도 무너졌습니다. 제국의 흥망성쇠가 기후변화의 흐름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것입니다. 빙하기와 간빙기 때 지구의 온도를 살펴보면 고작 4도에서 5도 차이입니다. 문제는 속도입니다. 자연은 10,000년에 4도가 상승하는 반면 인간은 100년에 1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자연의 속도보다 약 20배~25배 빠른 것이지요. 지구이 온도가 1.5도 올라가면 전지구적 고통을 겪게 됩니다. 예를 들어 여름철에만 잠깐 겪었던 폭염이 정상화된 날씨를 경험하게 됩니다. 만약 2도가 올라간다면 복원력을 상실하고 문명을 벗어난 삶으로 들어갑니다.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는 것입니다. 기후위기 극단적인 기후는 발생 가능성(확률)이 높지는 않지만 피해(비용)이 매우 큽니다. 두가지 요소를 고려한다면 극단적인 기후(기온과 기후의 상승)일 때 위험이 더욱 커지게 됩니다. 이를 '살찐 꼬리의 위험'이라고도 부릅니다. 기후변화의 영향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무서웠습니다. 문제는 글로벌 시대를 맞이한 오늘날의 세계는 한 국가의 가뭄이 다른 국가의 배고픔을 초래하고 결국 국가체계의 무너짐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모든 국가는 같은 기후위기를 맞이하면서도 대응역량에 따라 각기 다른 위험을 맞이합니다. 더욱 심각해진 불평등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기후대응 인류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선의 적응은 온실가스의 저감입니다. 문제는 2050년까지 Net Zero(이산화탄소의 배출량과 흡수량이 0이 되는 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재생에너지 산업이 활성화되고 여러 부분에서 기술혁신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에너지의 구조가 바뀌고, 산업의 구조가 변화되고, 사회적 구조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을 낮출 수 있습니다. 결국 기후대응을 위해서는 '거대한 전환'이 필요한 것입니다.
강의를 진행하신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님께서는 기후대응은 정부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자유시장 매커니즘 안에서 수많은 경제적 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엇을 우선순위로 두는지에 따라 우리는 지금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기후위기가 우리를 변화시켜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작성 : 정다람 자원활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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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서클 - 와] 동물권 읽기 - 육식인, 채식주의자, 집사 모두 모여라 | [후기] '독서서클-WA' 동물권 읽기 | Jinny1028 | 2019.12.22 | |
젠더와 인종차별을 공부하며 타자화된 이들에 대한 관심은 삶을 구성하는 큰 일부가 되었다. 차별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며 불편한 것이 많아졌고, 많은 언어의 유입과 손실을 경험했다. 내 세계의 지각변동은 안정적으로 머물러 있는 타인에게 공격이자 도전이었다. 관성과 방어기제로 무장하고 논리의 오점을 파헤치는 사람들 때문에 지칠 때도 많았다. 하지만 다시 책을 집어들게 한 것은 사고의 경계를 허물며 존재를 새롭게 정의해갈 때의 희열이었다. 알고 있던 틀에서 벗어나 나와 너의 존재를 확장할 때 자유롭고 행복했다. 하지만 내 관심의 대상은 늘 인간이었다. 특별한 계기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간 동물권 독서 모임에서 또 한 번의 거대한 삶의 지각변동을 겪었다. 타자에 대한 관심을 인간이란 테두리 밖으로 확장시킨 것이다. 나에게 동물의 권리라 하면 운동화 속의 돌멩이였다. 성가시지만 걷다가 멈춰 신발을 벗는 것은 귀찮아서 어딘가 찝찝한 채로 안고 살아가는 문제였다. 깊이 생각해본 적도 없었고, 네덜란드에 살 때 만난 수많은 채식인에게 무지를 가장하여 무례한 질문을 던진 적도 많았다. 사고의 벽을 허물 때 행복하다고 말하면서도, 나는 스스로의 견고한 종차별주의적 사고를 제대로 성찰하지 못했다. 독서서클 ‘와’에서 <고기를 끊지 못하는 사람들>, <동물학대의 사회학>, <동물의 권리>를 읽고 토론하며 걸음을 자주 멈추고 운동화 속의 돌멩이를 빼내 이리 저리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동물학대에 어떤 행위가 포함하는지, 학대의 대상은 의식이 있는 동물이어야 하는지, 혹은 그러한 기준자체도 인간주의적인 것은 아닌지. 피부처럼 익숙했던 인간중심적 사고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불편할 수밖에 없기에 혼자였다면 금방 지쳤을 수 있다. 하지만 같은 문제에 천착한 이들과 생각을 공유하고 어려움에 공감하며, 겸허하게 사고의 한계를 반성하고 동물을 새롭게 사유하는 과정이 외롭지 않았다. 그리고 동물권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한 첫 걸음을 내딛었다. 육식을 해온 사람으로서, 처음 동물권에 관심을 가지며 가장 내면화하기 힘든 문제는 공장식 축산에 대한 논의였다. 촘촘하게 구조화된 자본과 산업화로 인해 우리는 식탁에 올려진 고기가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 알지 못한다. 알고 있어도 살생의 흔적을 말끔히 지운 채 포장된 고기는 문제를 비가시화하고 우리를 무감각하게 한다. 산업화에 길들여진 나 역시 보기 좋게 요리한 고기를 생명체로 보지 못하도록 훈련되었다. 하지만, <동물학대의 사회학>을 읽으며 보다 간접적인 폭력을 동물 학대의 범주에 넣고, <동물의 권리>에서 의식이 없는 식물인간과 온전한 의식을 가진 소에게 부여된 권리에 대해 생각해보자 입에 넣던 고기가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채식에 단계적으로 진입하는 요즘은 일상 자체가 도전이고 어려움 투성이다. “유별난” 사람이 되어야 하는 불편함을 감내해야 한다. 도시락을 싸오거나 채식 식당을 조사하는 부지런함이 없으면 많은 경우 배고픔을 느끼며 어딘가 아쉬운 식사를 하기 일쑤다. 유튜브에서 보던 비건들처럼 맛있고 건강하게 먹으면서도 신념을 지키려면 상당한 공부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특히 우리나라에서). 하지만 내가 무엇을 먹는지에 대해 고민해보며 그 어느 때보다 음식과 건강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단순히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을 떠나, 나의 몸이 어떤 영양소를 필요로 하고 무엇을 먹을 때 행복한지 진지하게 고민해보게 된 것이다. 고기를 못 먹어서 어쩌냐는 많은 이들의 염려와 달리,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간 음식을 찾아보고 나만의 요리를 시도해보는 요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다. 올 겨울 불편해야 할 일이 수십가지 늘었지만,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다. 계획되어 있던 세 번의 동물권 독서토론이 끝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단톡방에서 동물권 관련 책을 비롯하여 다양한 채식 식당을 서로 추천해주기도 한다. 1월에는 한 번 더 책을 선정하여 토론을 진행하기로 했다. 동질성이 강하게 작동하는 우리 사회는 동물권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척박한 환경이지만, 함께여서 든든하다. 차별과 폭력의 가장 깊숙한 곳을 찔러보며, 마땅히 느껴야 할 불편함과 사유를 확장시키는 즐거움으로 분주한 겨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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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연극워크숍] 정기공연을 향해 | 연극 <그녀가 사라졌다> 관람 후 | 선애 | 2019.12.12 | |
연극을 보고, 삶을 삶답게 살고 싶어졌다. 느티나무 시민연극단의 연극 <그녀가 사라졌다>에서 명혜는 교사라는 직업과 그동안 부양했던 가족을 뒤로 한 채, 새로운 곳에서 새 삶을 시작한다.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고, 나는 자신의 행복을 만들어가는 명혜를 응원한다. 마지막에 춤추는 장면에서 명혜를 비롯한 여자 배우들은 참 아름다웠고, 남자 배우들은 웃음을 주었다. 극이 밝게 끝나서 좋았다. 연극을 본 뒤, 행복한 삶을 더욱 적극적으로 일구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드신 희수 엄마가 시를 읊는 장면은 특히 마음을 움직였다. 한 배우가 서로 많이 다른 두 인물을 연기한 것도 이번 연극의 묘미였다('희정/가수', '명우 처/일본인', '경로당 총무/쿠바 댄서' 등). 일상에서 우리도 자신 안에 있는 다양한 면을 인식하고, 최선의 나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연극이 더욱 특별한 것은 극작까지 시민연극단 안에서 직접 했다는 점이다. 극을 쓴다는 것, 연극을 무대에 올린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 대본을 쓰고 각색, 연출하신 선생님들, 모든 배우와 제작진께 큰 박수를 보낸다. 이번 연극은 삶에 새로운 기운과 영감을 주었다. 연극에 참여하신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영국의 연출가 피터 브룩은 말한다.
"어떤 공연을 보고 힘을 얻어 행복해진 관객에게도 같은 물음을 던질 수 있다. 그 이상의 무언가 가능할까? 우리는 그 순간 행복감을 경험하는 일시적인 해방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익히 안다. 그렇다면 짧은 순간을 넘어서서 무언가 우리 안에 어떤 자취를 남기는 것도 가능할까?" (<빈 공간>)
나는 연극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 공연을 코앞에 둔 리허설을 마치고(2019. 12.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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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역사공부 1] 사료와 ‘톡’하는 법 | [나의 역사공부 1] 사료와 '톡' 하는 법 - 계몽의 전사, <독립신문> | 빛깔 | 2019.12.7 | |
오늘날 정보를 SNS, 유튜브 등을 통해 접하지만, 이전에 그 역할을 한 건 ‘신문(新聞)’이었습니다. 단순히 사실을 알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그렇다면 1890년대 조선의 신문은 어떻게 등장했고, 영향력을 행사 했을까요? 사료와 ‘톡’하다, 네번째 시간은 ‘계몽의 전사, 독립신문’입니다.
독립신문과 독립협회가 등장한 1896년
독립협회보다 먼저 만들어진 독립신문은 최초의 민영 일간지였습니다. 갑신정변(1884) 실패 후, 김홍집 등 17명을 중심으로 한 군국기무처를 기반으로 갑오개혁(1894)을 추진했습니다. 개화정책을 단행했지만 신임을 얻을 수 없었죠. 갑신정변 후 미국에 망명했던 서재필이 귀국하면서 민중계몽과 개혁정책을 알림으로써 지지를 얻기 위해 ‘독립신문’이 탄생했습니다. 이승만, 윤치호 등 개화파를 중심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 후 정부의 외세의존정책에 반대, 자주독립과 내정개혁을 표방한 독립협회가 세워졌습니다. 초기에는 토론회와 연설회 등 민중계몽운동의 주축이 되었으며, 양성한 활동으로 지도적 역할을 담당하게 된 이들은 만민공동회를 열어 고종에게 개혁안을 실행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공화주의를 주장하는 이들이 정부를 무너뜨리려 한다는 유언비어로 인해 해산되었으며, 독립신문은 협회 해산 이후 정부의 탄압과 논조가 바뀌면서 1899년 폐간되었습니다.
순한글 사용, 권리, 그리고 문명화 독립신문은 국문판과 영문판을 내고, 세로쓰기를 하며, 투고를 받는 등 파격적인 구성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을 꼽자면, 국문 사용, 권리의 중요성 강조 그리고 문명화 교육으로 볼 수 있죠. 먼저 순한글을 사용함으로써 누구나 신문을 읽기에 수월하고, 신문 속에 있는 말을 자세히 알아보게 했습니다. 독립신문 창간 당시 주시경이 참여했는데, 국문을 통해 만들 수 있게 도왔으며, 띄어쓰기를 강조했으니까요. 권리의 경우 천부인권과 법적인 보호를 강조했습니다. ‘백성마다 얼마큼 하느님이 주신 권리가 있는데, 그 권리는 아무라도 빼앗지 못하는 권리요(이하 생략)’ 부분에서 하느님이 주신 권리, 즉 천부인권을 자각하고, 권리의식이 있어야 더욱 높아질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법으로 보호해야한다는 사실을 나타냈습니다. 마지막으로 문명화는 독립신문이 추구했던 민중계몽과 연관이 있지만, 절충적 요소를 덧붙여 문명을 설명했습니다. 문명이 바라는 시민상을 제기하는 거에 그치지 않고 어떤 세력에 상관없이 공평을 가지고 재판하는 까닭에 압제 받을 필요가 없으며, 무죄추정의 원칙을 서술했습니다. 다만 문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찾기 어렵다는 게 아쉽지만 말이죠.
자발적으로 모여서 비폭력으로 맞선다 독립협회는 크게 3가지 운동을 했습니다. 자주 국권 운동(독립문 건립, 이권 수호운동 전개, 고종의 환궁 요청), 자유 민권 운동(국민 기본권 확보 운동, 의회 설립 운동, 국민 참정 운동), 자강 개혁 운동(국가 재정 일원화 요구)을 말이죠. 다양한 사회운동을 했지만, 자발적 결사체였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전통적 가치와 근대 윤리를 절충해 독립을 기초로 하여 서울이든 지방이든 모든 이의 마음이 모였다는 걸 부각했습니다. 이를 행동으로 나타난 게 만민공동회(1898)입니다. 당시 러시아는 재정장악과 절영도 침략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만민공동회 이후 철회했죠. 이는 첫번째 비폭력시위 성공 사례로 였으며, 동학농민운동처럼 지방에서 일어났던 것과 달리 서울에서 먼저 열린 시위였습니다. 신문을 통해 민중 계몽을 하고, 여론이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있는 1896년의 독립신문. 그리고 민의를 반영하는 것이 중요한지를 드러낸 독립협회. 이 시점에서 민의를 파악하고, 깨어있는 것이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생각거리를 안겨주면서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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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드로잉 18기 | 서울드로잉 18기 전시작품 미리보기 | 느티나무 | 2019.12.5 | |
서울드로잉 18기 전시작품 미리보기 (전시안내 : http://academy.peoplepower21.org/Notice/2484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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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성놀이학교] 책읽기와 함께하는 인생 이불 짓기 | "일상은 예술이다." 제미란의 창조성 놀이학교 작품 발표회를 마치고 | 깨수기 | 2019.12.2 | |
창조성 놀이학교의 작품 발표회를 드디어 마쳤다. 막상 발표회라는 이름으로 전시를 하고 작품(?)을 설명하다보니 우리가 창조성이라는 예술의 세계로 함께 들어와 있음을 강하게 체험한다.
창조성 놀이학교는 참여연대 아카데미느티나무의 강좌이다. 인왕산 산자락에 위치한 제미란 선생님의 감우산방에서 진행된 놀이학교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놀이터로 모여드는 아이들이다. 함께 작업을 하고 먹고 놀지만 사실 개인적으로 아는 바가 거의 없다. 소위 고향이 어디고 자녀가 몇이고 무슨 일이 하는지 요즘 고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런 것들은 아무 의미가 없다. 해질 무렵까지 놀이터를 떠나줄 모르는 아이들처럼 “지금 여기” 놀이터에서 함께 어울려 노는 것만이 있다. 나에게 감우산방의 벗들은 그저 나와 다른 존재, 타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느슨한 친구들이다. 마법의 공간 감우산방에서는 그 타자들로 인해 <내>가 선명해진다. 책읽기는 문자를 읽는 것이 아니고, 바느질은 천을 꿰매는 것이 아니라 매 시간 우리를 다른 차원으로 인도하는 통로가 된다. 느슨한 관계이기에 꺼내놓은 아픈 감정이, 어린 시절의 상처가 우리의 깊은 마음속으로 들어가 삶의 고유한 무늬와 결로 다시 떠오른다. 그리하여 선명해진 나는 외면할 수 없는 타자와 손을 맞잡게 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와 함께 하나의 서사로 이어져간다. 마치 바느질의 한 땀 한 땀이 조각들을 이어 옷을 만들고 가방을 만들고 이불을 만들었듯이. 그래서였을까? 작품을 발표하는 산방식구들의 이야기는 다시 하나의 서사가 된다.
겁 없이 뛰어들어 바늘을 잡는 게 시작인 줄 알았는데 욕심을 내려놓는 것이 출발이었음을, 그리하여 한 땀 한 땀 막내아들에 대한 깊은 서원과 응원을 담은 이불을 완성했다는 *희샘과 천의 성질을 수용하여 기본에 충실하게 바느질하고, 나에게 조금 너그러워지니, 완벽하지 않아도 자유롭고 그래서 즐겁다는 *원샘의 이야기는 욕심을 내려놓고 나의 취약함을 받아들이는 게 우리가 강하게 단련되는 첫 걸음임을 알려주었다. 함께 읽은 책의 한 구절 “ 강해지는 유일한 방법은 취약함을 받아들이는 것이다.”가 바느질로 나타나는 순간이다.
늘 정해진 길로만 가던 내가 바느질 하나로 일탈을 표현할 수 있었다는 *숙샘! 버려진 것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었던 *정샘! 나에게 첫 딸이듯 딸에게도 첫 엄마구나 하는 마음으로 곱디 고운 딸의 이불을 완성한 혜*샘! 어린 자신과 조우해서 엄마도 예술가였구나를 고백하며 눈시울을 붉히게 해준 *경샘! 무엇이 이런 공명을 만들어냈을까? 벗님들의 한땀 한땀 내어주는 이음의 풍만함으로 겨울을 따듯하게 나눌 수 있을 거라 한 *녀샘과 서로의 가슴 이야기를 풀어낸 시간, 조각보를 이어가던 순간이 우리가 연결되어 가는 것이라 알려준 *선샘에게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민샘은 바느질이 다른 시공간으로 넘어가는 다리라고 했다. 그렇게 바느질은 그것이 가져온 내 안의 어떤 <사태>를 들여다보게 한다. 저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 있어서 쉽게 드러나지 않았던 어떤 것들과 마주보게 한다. 나는 내 안의 아이를 깨울 수 있었고 그 아이가 놀게 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미*샘도 우리 벗님들과 함께였기에 추억을 잇고 기억을 깁을 수 있었으리라. 바느질하며 책읽기를 한다는 것이 하루를 채워가는 소중한 밥상이며 일상이 된다는 혜*샘과 드디어 나의 이불을 찾고 그 이불을 덮은 내 마음을 달구어 나도 누군가를 품고 싶다는 윤*샘의 이야기는 고로 일상이 예술이고 예술이어야만 한다는 제미란 선생님의 선포로 이어진다. 함께해서 영광이며 귀하다는 *자샘의 고백은 그렇게 우리의 고백이 된다. 창조성 놀이학교의 작품 발표회는 성찰과 고백으로 공명하며 일상이 곧 예술이라는 선포로 하나의 서사가 된다.
그러나 책무감과 도덕성으로 자신을 괴롭히기 일쑤인 나 자신은 여전히 쓸데없이 진지한 물음을 던진다. 놀이학교 수업의 과정과 결과물을 나는 어떻게 확장해가야 하나? 감우산방을 내려간 후 일상과의 괴리감은 어찌할까? 여전히 산 아래 일상은 그저 일상으로 그치고 마는데..... 유한마담처럼 이렇게 먹고 마시고 놀아도 되는 걸까? 겨우 만난 내 안의 아이에게 자꾸 훈계하려는 내 안의 꼰대를 어쩌지 못한다. 여전히 나에게 고민을 안겨주는 창조성 놀이학교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노는 마음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산방에서의 시간은 그렇게 나란 존재가 드러나고 알려오는 시간이기에 모두 기쁜 흥분으로 취할 수 있다. 아하! 나 여기 있다! (Here I am!) 나 여기 있다 ! 나 여기 있었구나!의 발견에 감탄하는 시간이 된다. 하고자 일에 “예술”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순간 우리는 완벽으로부터 면제될 권리를 얻는다고 했던가! 우리의 작품이 예술이듯 우리 자신도 예술가라면 불완전이야말로 우리의 권리이자 정체성이지 않을까? 나의 화두 온전함(wholeness)이란 완벽하게 흔들리지 않는 절대성이 아니라 불완전하기에 변화와 시련에 흔들흔들, 흔들리며 적응해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지식과 이성을 쌓으려는 나에게 필요한 것은 그래서 “ 노는 마음” 일 것이다. 창조성 놀이학교는 앞으로도 놀이<터>를 만들어주고 나는 반짝거리는 서로의 눈을 맞추며 놀 궁리를 하게 되겠지! 현장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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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역사공부 1] 사료와 ‘톡’하는 법 | [나의 역사공부 1] 사료와 '톡' 하는 법 - 한국인의 역동성을 발견하다, 비숍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 | 빛깔 | 2019.11.29 | |
일부 고등국어(하) 교과서에 한 기행문에서 발췌된 [외국인의 눈에 비친 19세기 말의 한국]라는 지문이 있습니다. 이 기행문은 4번의 조선 방문과 급변했던 시대적 상항 그리고 인상 깊었던 모습까지 상세히 적혔습니다. ‘정확성’이 자신의 제일 목표였고,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는 이 근대적 사료를 한 번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사료와 ‘톡’하는 법, 세번째 시간으로 이사벨라 비숍의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Korea and Her Neighbours》’입니다.
허약했던 어린 시절과 장기선박여행
여성 지리학자, 대단한 필력, 크리스천. 이사벨라 비숍(Isabella Bird Bishop, 이하 비숍)의 생애를 짚을 수 있는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공회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려서부터 독실한 빅토리아풍의 기독교적 가정교육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병약했던 터라 정규 학교를 다니지 않고, 부모님께 많은 것을 배우거나 혼자서 공부(생물학, 시, 화학)했죠. 늘 허약하고 우울증으로 고생하자 의사는 그녀에게 장기 선박 여행을 권유했습니다. 캐나다와 북미주를 방문한 후 쓴 ‘미국에 온 영국 여인(The Englishwoman in America (1856))이 팔리게 되면서 글과 여행을 자기 업처럼 여기게 됩니다. 그러나 부모님의 사망 이후 다시 병이 재발했는데, 이 시기에 만난 비숍 박사와 결혼했지만, 병으로 남편을 잃었습니다. 우울증과 고독으로 괴로워하던 그녀는 다시 여행을 떠났고, 1894년 1월 요코하마를 경유해 그 해 2월에 조선에 도착합니다. 그녀는 1897년까지 4차례 방문해 장기 체류를 했으며, 그 후 중국과 모로코를 여행했으나, 여독으로 사망했습니다.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1897년 발간한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urs》’은 1894년 1월부터 1897년 3월까지 4차례에 걸친 조선 방문을 다뤘습니다. 당시 그녀가 조선을 방문했던 건 몽골 인종의 중요한 특성에 관한 자신의 연구 계획의 한 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이죠. 원작자 머리말-서장-각 장 별 내용(ex.사회적 상황, 문화)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머리말에선 자신이 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어떤 점을 우선시 했는지 밝혔습니다. 서장은 기존에 출판된 책에 조선이 어떻게 적혀 있는지, 자연지리와 가족제도, 광물, 통치형태, 개항 이후의 상황 등을 구체적으로 적었습니다. 여기서 두드러지는 점은 ‘정확성’ 입니다. 기행문의 특성상 자연지리와 인문적 요소가 필요한데, 지리학적 정보가 뚜렷했습니다. 더불어 쇄국을 유지하다가 강화도조약 이후 개항을 하게 된 외교적 상황과 한글 등의 사회문화도 기록했습니다. 바탕지식 같은 느낌으로 말이죠. 역동성과 격변의 시기를 외국인의 눈으로 바라보다 ‘역동성’을 잘 묘사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머리말에선 시베리아에 갔을 대 봤던 조선인을 보고 다른 국가와 성격의 특성을 짧게 언급했지만, 이를 낱낱히 쓴 건 제 13장 1896년의 서울 에서 잘 드러났는데, ‘서울이 여러 면에서, 특히 남대문과 서대문 방향으로는 너무 변하여 옛 모습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고 운을 뗐습니다. 있는 걸 보수하면서 때때로 주민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건설되었으며, 새로 건물을 짓는 유럽식과 달랐죠. 또한 도로를 넓히고, 좋은 부지에 호텔을 세우려는 준비가 이뤄지고, 상점들이 즐비 해지기 까지. 1894년 자신이 책을 쓰기 위해 찍어둔 빈민촌 사진이 아무짝에도 쓸모 없어졌다고 단언했을 정도로 말입니다. 또한 조선에 왔을 때의 상황도 언급했습니다. 동학농민운동, 갑오개혁, 을미사변, 단발령과 아관파천까지 급박하게 돌아가던 상황을 기록했습니다. 예를 들어 동학농민운동의 경우 동학 교도와 정부군 사이의 전국적 충돌에 관한 소문을 들었으며, 이 일이 일어난 것을 이해하게 된 걸 나타내는 부분도 있습니다.
급변하던 상황을 제3자 시각에 바라보고, 저술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료(史料)로 인정받고 있으나,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의 조선 입항은 광물을 노린, 이권침탈이 있다는 것과 사회진화론 시각이 있다는 건 아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안에선 차마 알 수 없었던 관점, 생생하게 묘사하되 정확성을 잃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녀가 조선이라는 나라에 깊은 관심이 있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