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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명 | 강좌후기 | 글쓴이 | 날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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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한국 남자를 말하다 | [후기] 페미니즘, 한국 남자를 말하다 참여 후기 | Nut_cracker | 2019.3.26 | |||
1. <페미니즘, 한국 남자를 말하다> 강연 참가 후기
최태섭과 손희정 선생님 강연이었으니 무슨 말을 더 할까. 짬에서 흘러나오는 바이브를 그저 열심히 귀담아 듣고 필기했다.
일단 강연은 1, 2회 차 모두 참여자가 풀방에 가까울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두 쌤은 그에 보답하듯 지식을 쏟아내 주셨고 덕분에 속기는 가뿐히 열 장을 넘었다. 핸드폰도 반으로 접히는 시대에 대체 왜 아직도 인공지능 필기 기술은 대중화 되지 않은 걸까.
페미니즘 대중 강연을 들으러 꽤 싸돌아다닌 편인 것 같은데, 이렇게 ‘남성’을 주제로 또 대상으로 하는 강연은 처음인 것 같았다. 실제로 남성 참여자들도 적잖았다. 그래도 이런 강연이 하나 둘 생기고 강연을 들으러 오는 남성들도 조금씩 늘어난다는 건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좋은 징조가 아닐까? 꿈은 크고 위로가 흔했지만 험난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위해선 스스로라도 잦은 다독임이 필요하다.
2. 페미니즘이 말하는 한국 남자
두 분의 강연 내용은 제목에 충실히 ‘한국 남성’을 다루었다. 봉건적 남성성, 식민지 남성성, 해방과 건국 이후 국가주의 남성성, 70년대 군사주의 남성성, 80년대 자본주의 남성성, IMF이후 신자유주의 남성성, 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등장한 일베st 남성성(정확한 용어를 모르겠다.) 등. 유구한 역사 속에서 남성성은 어떻게, 얼마나 꾸준하고 부지런히 다채로운 똥을 싸 왔는가.
강연 분위기는 자못 유쾌했으나 마음 한 편은 뒤를 닦지 않고 나온 것처럼 찝찝했다. 지금 강연을 들으며 웃고 있는 나도 남성성에서 자유롭다 할 수 있을까? 남페미 활동을 둘러싼 우려와 회의는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손희정 선생님은 이 우려를 아래와 같이 말씀해 주셨다.
기존 사회 규범에 저항하고 변화를 요구하는 활동 특성상 그 길이 늘 꽃밭이기만을 바랄 수 없음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남페미의 태도가 언제까지 삼궤구고두례로 스스로 이마에 빵꾸 내는 행위에만 그친다면, 그 길은 결코 지속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효율적이지도 않다. 심지어는 그런 태도마저 자기연민에 불과할지 모른다.
남성에게도 페미니즘이 왜 꼭 필요한지 스스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주변에 그 필요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남페미의 언어가, 활동 동력이 될 것이다. 결국 남성들이 지난 과오를 반복하거나 저 혼자 가시면류관을 쓰고 죄인 행색으로 동정을 구걸하는 걸인 역할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3. 한국 남자가 만난 페미니즘
나는 땅콩과 아몬드 맛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대체로 미각이 둔한 편이라 다양한 맛의 오묘함 앞에서도 그저 ‘맛있네’와 ‘그저 그렇네’ 정도로 귀결될 뿐이었다. 미학에 대해서도 둔감했다. 미술작품이나 전시물을 두고도 큰 감흥이 없을 뿐 아니라 무엇이 아름답고 예쁜지, 무엇이 내 삶을 풍요롭게 하는지 무관심했다. 나는 이것이 내 특유의 무감각함, 무심함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난 후, 이런 내 삶의 태도가 일종의 부정적인 남성성에 기인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여린 감성, 다채로운 감정표현, 까다로운 선호는 주변인들에게 ‘유난’이라 낙인찍히는 방해물일 뿐이었다. 그저 씩씩하게 무엇이나 잘 주워 먹고 아프나 슬프나 호탕하게 웃어재끼는 쿨~한 남성을 주변에서도 원했고 스스로도 되고 싶었다.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음을 깨달은 것은 오랫동안 정들었던 해외봉사 활동을 정리하고 오면서였다. 슬픈데 눈물이 나지 않았다. 수도꼭지 같이 눈물 흘리진 않을지라도 아쉬움을 털어내며 눈물어린 환송을 상상했는데, 멀뚱히 서서 눈만 끔뻑였다. 몰아치는 부정적인 감정에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몰라 외면하고 또 도피했다.
온전한 나로 살지 못하는 불행한 삶이었다. 주변 친구들을 만나 꽃을 구경하고 쇼핑을 다녀도,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늘 감흥이 덜했다. 효율과 비효율, 좋음과 나쁨, 옳고 그름. 0과 1의 세상, 흑백의 세상에서 살았다.
다행히 좋은 친구들을 만나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변하게 됐다. 내가 바라보던 여성성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된 만큼 내가 지향하던 남성성도 의심할 수 있었다. 나아가 여성과 남성 기존 정상성에 의문을 품을 수 있게 되며, 0과 1 그 밖의 세상을 상상할 수 있게 됐다. 효율과 당위, 호오의 이분법을 지나 중간과 과정, 절차와 감정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이내 세상이 다채롭게 물들기 시작했다. 미식은 아니더라도 좋아하는 카페와 식당이 생겼다. 잘 어울리는 옷과 색깔이 있음을 알게 됐다. 여전히 예술은 어렵지만 그래도 시도함이 이전만큼 어렵지 않다. 내 취향이 무엇인지 찾고 고민할 수 있게 됐다.
4. 페미니즘, 한국 남자와 이야기할 수 있을까.
페미니즘을 공부하며 변한 게 어디 그 뿐 일까. 남성 집단 내 위계적인 문화와 나를 옥죄던 강박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고 관계와 미래의 다양한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게 했다. 하다못해 아주 작은 습관까지도 조금씩 변하고 달라졌다.
물론 늦게 배운 만큼 자주 어려움을 맞닥뜨리고 한계에 부딪히기도 한다. 배움과 실천의 괴리에서 고통 받을 때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젠 더 이상 페미니즘을 배우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러기에는 나도, 주변도, 세상도 이미 너무 많이 변해버렸다.
자신의 필요에 의해, 절박하게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남성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서로의 필요를 함께 배우고 나누어 언젠가 이런 필요가 주변까지 널리 옮아가 도저히 페미니즘을 배우지 않고는 모임에, 이야기에 낄 수가 없어 또 다시 절박하게 공부하는 남성들이 생길거라 믿는다.
페미니즘이 한국 남자를 말했다. 이제는 한국 남자가 대답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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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한국 남자를 말하다 | [후기] 페미니즘, 그 이로움에 대하여 | 김은진 | 2019.3.22 | |||
<'페미니즘, 그 이로움에 대하여'를 주제로 강연 중인 손희정 문화평론가 ⓒ참여연대> 어제,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요즘 최대 이슈인 페미니즘에 대한 강의여서 그런지 많은 분들이 강의를 듣기 위해 참여연대 건물에 모이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지난 주, 최태섭 선생님을 통해 한국 남성성의 변천사를 짚어보았다면, 이번 주 강의는 손희정 선생님의 <페미니즘, 그 이로움에 대하여> 강의를 통해, 한국 영화가 성과 사랑을 시대별로 어떻게 표현하였나, 한국 영화에서 '위기의 남성성'이 신화화 되고, 이야기의 형태로 만들어지고, 관객들에게 주입되는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영화를 많이 좋아해서 극장에 자주 가는데, 한국 영화는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해외 영화만 주로 보는 편이라서, 지금까지는 주변에서 (한국 영화를 거의 안 보는) 제가 별종처럼 취급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저처럼 한국 영화를 안 보시는 분들을 한 공간에서 이렇게 많이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강의는, 한국 영화에서 여성이 사라졌다는 도입과 함께, 성과 섹스도 사라졌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데, 한국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에 매우 큰 불만을 갖고 있었기에 한국 영화는 거의 보지 않았습니다만, '성과 섹스도 사라졌다'는 부분은 깊이 생각한 적이 없어서 왜 그런 것일까 궁금해서 강의에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 '한국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섹스 신이 무엇일까요' 질문을 던졌을 때, 한참 전의 영화인 <해피 엔딩>이 나왔던 것은 많이 놀라웠습니다. <해피 엔딩>에서 그려진 포스트 IMF, 포스트 IMF 시대의 만들어진 (왜곡된) 여성상과 여자 캐릭터가 어떻게 그려지고, 어떻게 단죄되었는가 쭉 듣다가, <해피 엔딩>의 감독이 20년 뒤 만든 영화와 비교하면서 두 영화 안에서 여성 캐릭터가 다루어진 방식, 여성 캐릭터가 어떤 모습으로 그려졌는가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그 후에 한국 사회에서, 한국 영화에서 여성을 보는 시각이 어떻게 드러났는지, '성과 자유를 갈망하는 것으로 비춰진 여성 캐릭터와 같이 등장하는 젊은 남성 캐릭터가 영화 결말에 어떻게 단죄되는가. 주인공 격인 중년 남성 캐릭터는 어떤 방식으로 위로를 받아야 할 대상으로 그려지고, 연민의 대상으로 표현되는가' 듣다보니, 그 동안 한국 영화가 별로라고 뭉뚱그려서 비판만 하고, 해외 영화만 찾아보던 제가 조금 부끄러워지기도 했습니다.
강의는 한국 영화에서 여성이 다뤄지는 방식에서 중년 남성이 그려지는 방식을 다루면서 이를 '아빠X'이라고 칭합니다. 한국 영화에서 한국의 시대 정신처럼 다뤄지는 중년 남성 가장에 대한 신화를 지적하면서, IMF 이후의 한국 영화의 주된 줄거리가 아버지의 성장 진화, 치유 과정이 한국 영화의 주류가 되었음을 지적합니다. 중년 남성 가장(여기에는 대부분 아내를 잃었다는 설정이 같이 따라오는)의 성장과 치유가 붐을 이룬 이후에는 그 다음 단계로 '유사 아버지'가 나오는 영화가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유사 아버지를 다룬 영화 역시, 소위 말하는 '정상가족'에서 벗어난 가족 형태를 다루지만, 여전히 남성이 중심이 되어 영화를 이끌어나간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소위 말하는 '아빠뽕'은 IMF이후 영화를 통해 대거 확산/소비 되었다. ⓒ참여연대>
그 다음 한국 남성이 주류를 이룬 영화가 계속 되던 와중에, 90년대에 여성이 중심이 된 영화 (특히 로맨틱 코메디)가 붐이 일었던 현상에 대해 짚어보게 됩니다. 7, 80년대 에로 영화, IMF 때의 중년 남성 가장이 중심인 영화, 요즘 추세인 남성이 주인공인 영화...이렇게 남성이 주류인 영화가 쭉 이어지는 중에 잠깐 여성이 중심이 되었던 영화가 제작이 된 적이 있는데, 선생님은 이 마저도 진정한 의미의 여성 중심 영화가 아니라, 전문적인 직업을 가진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등 여성에게 자유가 주어진 듯 보이지만 결국 영화는 여성이 남자 주인공과 결혼하거나 임신하는 상황이 행복한 결말인 것처럼 관객이 받아들이도록 끝난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이는 예전의 전통적인 방식의 가부장제가, 여성에게도 경제적 활동으로 가정을 책임지도록 이끄는 연대 형식의 공적가부장제의 영향 아래 놓여있는 것이라는 설명을 들으니 새로웠습니다.
그 밖에도 90년대부터 2017, 2018년대까지 한국 영화에서 여성을 그린 방식, 한국 예능에서 여성을 대하는 방식과 왜 여성혐오 분위기가 미디어에 나타나는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위해 여성혐오가 어떻게 이용되었나, 어떻게 가부장제를 전제로 한 계급갈등이 요즘 남성들의 여성혐오와 젠더갈등의 원인이 되었는가 등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짧은 시간 발표 자료 안에 삽입된 한국 영화 포스터를 보면서, 한국 영화가 이렇게 많았던가 새삼 놀라고, 그 영화 중에 중년 남성이 주인공인 영화가 얼마나 많았는가 또 놀라고, 영화 안에서 여성을 다루는 방식이 노골적으로, 때로는 교묘하게 숨어있다는 것에 경악하고, 강의를 위해 그 영화들을 다 보시느라 고생하셨을 선생님께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강의 준비하시느라 고생하신 손희정 선생님과, 좋은 강의 들을 수 있는 기회 마련해주신 참여연대 아카데미에게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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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미술학교 - 인물페인팅 | [후기] 나를 되찾아가는 시간, 미술학교 - 김수현 | 느티나무 | 2018.12.19 | |||
<삶의 절반이 지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무렵, 막연한 희망으로만 있던 그림그리기를 시작했다 ⓒ 참여연대>
본격적인 한파가 시작되던 12월의 첫째 토요일, [인물화페인팅 그룹전] 전시회를 오픈하며 가을에 시작된 모든 수업의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수업을 신청할 당시 종강하며 전시회를 갖는다고 듣기는 했지만 실감나지도 않았고, 그 전시회라는 행사가 말그대로 형식적으로 다가올뿐 별다른 의미를 갖지 않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경험을 통과하고 거실에 걸어둔 그림 앞에 앉아 후기를 작성하는 지금의 나는 그동안의 어느 한 순간도 의미를 가지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는 고백을 하고 싶다.
첫 수업에서 강사님의 설명을 들으며 ‘아뿔싸!’, 아마추어를 대상으로 하는 수업이 아닌 것 같아 겁을 먹었던 일, 미술도구와 재료를 사기위해 더듬거리며 방문한 남대문 알파문고의 미로와 같은 좁은 계단들과 그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외계어와 같은 이름들이 난무하던 신세계, 내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나의 손과 대상을 다 담지 못하는 나의 눈이 주는 자괴감, 퇴근길 교보문고에 들러 화집들을 탐닉하던 시간들, 종강이 가까워질수록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은 붓질의 두려움과 그간 그려온 그림에 젯소를 덮어 일순간 모두 지워버리고 싶은 이상한 충동, 아침까지 다시 그리기를 반복하던 그림이 느티나무 갤러리에 걸리며 시작된 전시회와 내 작품을 설명하며 나조차 처음 듣게 되었던 나의 속 이야기들, 한없는 쓸쓸함에 쉽게 발길을 돌리지 못했던 작품의 철수까지... 2018년 나의 가을과 겨울은 이런 시간들이었다.
<30호 중간과정에서 피드백을 하고 있는 이상권 선생님 ⓒ 참여연대>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미술반 활동을 하며 어른이 돼서도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화가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잊고 지내던 올해 문득 내 삶의 1/2 지점을 통과하고 있다는 자각이 들며 그간 막연한 희망으로만 있던 그림그리기를 시작하였다. 굳이 참여연대에서 운영하는 느티나무 미술학교에서 그 시작을 가진 이유는, 이곳이라면 분위기가 왠지 자유롭고 평등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는데 내 예상이 딱 맞았다. 강사님의 수업내용이나 진행 방식, 담당 간사님의 배려, 함께 수업을 듣던 동료들이 참으로 그러하였다.
막상 수업이 진행되는 몇 주 동안은 금요일 저녁수업이기도 했고, 30호라는 큰 사이즈의 작품을 하느라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여유도 없이 그림만 그렸다. 그러나 막상 전시회 오픈 때 각각의 작품에 대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제서야 함께했던 동료들을 내 안에 들여놓게 된 것이 이 수업에서 느낀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다.
<김수현 Fold에서의 휴가, 70.7 * 90.9cm 캔버스에 아크릴>
미술수업의 안내글에 등장하는 ‘자신을 알아가는’ 혹은 ‘나를 되찾는’이라는 문구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나는 인물화 페인팅 수업의 경험을 통해 이젠 실존적으로 알고 있다. 나는 늘 있어왔지만 나는 나를 잘 몰랐고, 그 나와의 관계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하는지도 마치 마주한 순백의 캔버스처럼 막막했다. 그러나 강사님과 어떤 그림을 그릴지,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지, 왜 이 색깔을 사용하고, 선의 매무새에 이런 느낌을 더하면 좋을지 등을 의논하는 과정을 통해, 늘 가지고는 있지만 찾아들어 갈 길을 모르던 나의 내면으로 침잠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들여다본 나의 내면과 그 고민들을 전시회를 통해 다시 세상으로 꺼내는 일을 해본듯하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이런 작업일거라 상상도 못했지만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다. 늘 세상은 내 상상보다 멋진 많은 부분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새삼 가져보게 된다. 다시한번 희망을 잃지 않고 인내심으로 지도해주신 강사님께 감사드리고, 고민은 함께 나누어준 동료들과 엄마새처럼 간식부터 뒷정리까지 세심한 배려를 다해주셨던 강의 담당 간사님께 역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by 김수현 미술학교 인물페인팅前 작품보기(슬라이드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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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이슈 따라잡기 공부모임 | [후기] 한국사회 이슈 따라잡기 3. 사법농단 vs 사법개혁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님) | 개똥이 | 2018.12.19 | |||
사법농단 vs 사법개혁 민주적 사법을 위한 개혁을 꿈꾸다
오늘 모임에서는 사법계의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기 위해 전문가(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님)를 모셨다. 한 사회를 유지하고 이끌어 나가는데 있어서 과연 ‘법’이란 얼마나, 어떻게, 왜 중요한지, 우리나라가 현재 추구하고있는 ‘법치주의’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어떻게 실현되어야 하는지, 그러기 위해서 한국 법치의 구도는 안쪽부터 어떻게 구성 또는 개혁되어야 이상적일 수 있는지, 그렇다면 민주화 이후부터 한국의 법치주의는 어떤 모습 이였길래 지금의 사법농단 사태에까지 다다르게 되었는지, 사법의 문제를 과연 내부에서 바꾸는것이 가능한 것이고 옳은 것인가 아니면 외부의 개입하에 개혁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인가 등을 논의해 보았다.
저번 시간에 ‘Ism’에 대해서 얘기를 한 적이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공존하는 나라다. 공존을 선택한 이상 잘~해야 할텐데 그것의 한계가 지금에 와서 표면위로 떠오르고 있는것이라고 생각한다. ‘법’이란 사회를 이루는 3대 구성요소 중의 하나로서 법의 권위가 추락한다면 일상에서 수 많은 혼돈이 초래할 것이라는건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사법농단 사태를 맞이한 우리는 어떻게 사법을 잘 유지시킬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변은 우리나라 법의 역사를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이다.
민주화 이후에 한국의 법치는 구조적인 변화를 맞이한다. 권위주의가 쇠퇴하면서 법치의 토대는 마련이 되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와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공정성과 투명성이 보장되는 법치주의가 완성된 듯 보였다. 그러면서 시민사회가 법에 개입하기 시작하는것을 기점으로 전 사회영역에서 법화가 진행되었다. 즉, 법은 ‘권위’를 대신해서 사회통합의 수단이자 목표로 자리 잡은 것이다. 법을 기점으로 사회의 질서가 만들어지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옳아보였다. 하지만 권위주의적 권력이 빠져나간 새로운 법치구도에서 권력의 공백을 무엇으로 충당했느냐를 살펴보면 다른 결론이 도출된다. 그 공백의 한 편은 법률관료주의로 충당되었다. 그 결과로 검찰과 법원의 권력이 확대되었다. 또 한 편으로는 경제영역이 사회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면서 기업과 법의 유착으로 이루어진 권력이 채워졌다. 그 결과로 대기업의 정권유착과 대형로펌의 비상적인 권력강화가 이뤄졌다. 즉, 시민의 권리를 위해 정권을 통제한다는 ‘진정한 법치주의’의 이상은 이루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렇게 시민과 정치권력이 분리된 채로 현식적인 법치가 근 몇 십년간 이어져 온 것이다. 시민이 빠진 곳에 사법, 정치권력, 재벌이 들어섰다. 개인적으로는 여기서 부터 이미 사법농단 사태는 예견된게 아닌가 싶다. 특히 정치가 과도하게 사법화 되면서 법과 시민과의 괴리는 더 심해졌다. 입법과 행정의 문제가 사법화 되면서 정치적 대립의 해결을 다수자는 다수결로, 소수자는 헌법재판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보통이 되었다. 법관들은 정치의 사법화를 수단으로 본인의 권력을 더 높이고자한다. 재벌들이라고 다르겠는가. 무전유죄 유전무죄가 현실화 되면서 법의 정의는 돈으로 충분히 농락할 수 있는 대상이 된다. 이렇게 사법부에 대한 국민불신이 점차 쌓이다가 박근혜 정부에서 사법불신의 화룡점정을 찍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법관 사찰, 블랙리스트 사건, 재판거래 의혹, 공무상 비밀누설, 법원 비자금 조성 등이 그것이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기본이되는 사법권의 독립은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게 되었다.
사법권의 독립을 정의 내리자면 4가지가 있다.
사회 3대 구성요소 중에 사법만 사법’부’의 독립이 아니라 사법’권’의 독립이라는 말을 쓸 정도로 사법독립의 중요성은 특별하다. 현재 3000명의 법관이 활동하고 있다. 이 말은 즉, 3000명 개개인이 다 따로 독립되어서 법의 심판을 내리는 3000개의 사법권이 존재해야 한다는 말이다. 자신의 사건에 대해서는 어느누구의 간섭도 일체 받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특별재판부법안’이 논의되고 있다. 특별재판부법안의 위헌성에 대한 말이 많아서 교수님이 본인의 의견으로 정리를 해주셨다. 이 사건의 위헌 여부는 특별재판소의 출범여부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 재판소가 가지는 ’특별성’으로 인해 재판의 독립성이나 중립성이 훼손되는가의 여부가 중요하다. 재판의 중립성은 사건에 대한 편견과 이해관계의 충돌이 없어야하고 주관적 객관적으로 법관 스스로도 중립적이여야 하며 시민들이 보기에도 중립적이어야 한다. 법률에 따라서 이런 중립성이 보장된다면 헌법 제 27조에 의거한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는 지켜지기 때문에 위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법원 내에서 사건을 배당하는 것은 사법행정의 문제이고, 이 사법행정의 틀은 국회의 입법권 대상이므로 이 부분에서의 정권 개입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사법개혁의 다른 방안으로는 사법행정 구조를 바꾸는 방법도 있다고 한다. 외국의 사례를 기반으로 세가지 모델을 소개해 주셨다. 첫 번째로는 대법원 지명 법관이 지배하는 강한 위계적 모델. 두 번째로는 하급법원 법관이 지배하는 강한 비위계적 모델. 세 번째로는 법관이 지배하지 않는 정치화된 모델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같이 특수한 경우에 적합한 모델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마지막으로 교수님은 이번 사법농단의 원인을 세 가지로 정리해 주셨다. 사법의 정치화와 정치의 사법화, 법조계의 폐쇄집단화와 관료화, 권력과 권위와 돈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전관예우가 원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사법개혁의 과제는
한 마디로 국민 위에 군림하는 사법이 아닌 국민의 사법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사태가 벌어지고 세상에 알려지는 동안에도 무엇이 문제인지 조차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몇 몇 법조인들을 생각하면 과연 개혁이 가능하기나 한 것인지 회의감이 든다. 개혁에 앞서, 전관예우의 이름으로 ‘당연히’ 자행되어 왔던 ‘당연한’ 일들이 더이상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그들에게 일깨워주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법률가들의 사고가 먼저 바뀌지 않는다면 아무리 사법구조를 바꾸고 사법행정을 개혁한다고 해도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선배의 지나가는 한마디는 조언이 아니라 따라야만 하는 그들만의 불문율인 그런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고를 바꾸기 위해서도 이번 만큼은 법을 위반한 법률가가 어떻게 되는지 본보기를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성 : 정예지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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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규의 테라코타 - 자화상 만들기 | [후기] 나를 존재케하는 모든 것의 바탕, 테라코타 | 개똥이 | 2018.12.13 | |||
처음엔 먼저 테라코타를 접한 선배(?) 수강생들의 열화와 같은 강력한 추천으로 만나게 되었다. 인간은 흙에서 왔고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고 하였던가? 흙이 주는 이미지는 엄마의 젖가슴처럼 따뜻하고 애써 기억한다면 , 내가 지구에 존재하는 사슬구조속에 질을 결정하는 가장 근원적인 바탕인지도 모른다.
나를 존재케 하는 모든 것의 바탕. 그렇게 테라코타를 접하고, 한 애규 선생님을 접하고, 같이 작업하는 동료 선생님들을 접하고, 월요일 마다 집에서 출발하여 최소한 2~3번의 버스를 타고 대자동으로 향하는 내 총총 걸음들이 어느 새 일년이 넘었다. 무엇보다 나는 예술적 소질이 너무나도 부족하여 기초 드로잉 수업을 권고받은 사람으로서 , 더구나 지각대장을 도맡아 하는 퇴출 대상 학생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눈치 없이 이렇게 질기게 버텨서 두번째, 세번째 전시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재능은 잠시요, 지속적으로 계속하면 소질이 발휘된다’는 한애규 선생님 말씀에 힘입어 뭉턱한 손끝의 힘이 겨우 싹을 조금씩 내는 것 같다. ( 어디까지나 자평) 마치 한 줄기 빛을 기다리며 동굴속에 살던 원시인간의 마음처럼 , 내 두 손안에 흙을 가지고 있는 동안은 끝없이 내 안에서 침묵과 생각이 주는 강한 표현도 맛보았다.
테라코타 수업은 대자동이라는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점심시간이 되면 우리들만의 만찬이시작된다. 여기서, 우리들만의 낮술 파티도 있고 막걸리에 파전, 각기 집에서 가져온 음식, 특히, 애규선생님은 우리를 위해서 가끔 솜씨를 발휘해 주신다. 거기에 플러스 류규선 선생님의 솜씨도 매우 훌륭하다. 게다가 류선생님의 섬세하고 예리한 가끔 , 혹은 자주 테라코타에 문외한 수강생에겐 당근과 채찍을 적절하게곁들인 지도(?)는 작품에 대한 다른 면을 보게 해 주는 안목을 길러준다.
테라코타도 배우고 맛있는 음식도 함께 나누는 이런 수업! 나와 보라 그래 !(꽥) - 낮술했나 봅니다. 사실 흙으로 하는 작품이라서 만드는 과정이 매우 수고스럽다. 그냥 지도가 아니라, 어쩜 두 분의 지도 선생님께서 어린애가 걸음마를 잘 뗄 수 있도록 하나하나 신경써주신그 수고스러움은 말로 담아 낼 수 없을 정도이다. 흙을 파내고 말리고 그리고 굽고 , 또 뒷처리를 해야 하고 , 그 과정 하나하나에는 두 분의 선생님 , 한 애규, 류규선 선생님이 계신다.
우리 나라에서 내노라하는 테라코타의 대가인 한애규 선생님께서 기꺼이 재능기부를 해 주시는 덕분에 이뤄진 강좌임에 틀림없다. 그곳에는 흙이 주는 주는 충만한 감성이 있고 인간과 생명에 대한 예의를 알게 해 주는 애규선생님이 계신다. 사람이 사람을 잇고, 그 가운데 사랑이 있고 예술이 있는 것 같다.
테라코타 활동은 최근 몇 년동안 내게 찾아 온 가장 매력적인 분야 중 하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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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대로 힙합] 삶을 뱉는 랩 교실 | [후기] 시이자 말이자 노래였던 랩 - 비밥 | 느티나무 | 2018.12.13 | |||
<정형화된 틀안에서 더 높은 자유를 누린다 ⓒ 참여연대>
당신의 열정이 당신의 결정 이 한마디를 내뱉으며 [삶을 뱉는 랩 교실]이 시작됐다.
‘랩은 마디 안에 글자를 구겨 넣는 것이로군.’ 랩에 대한 첫 느낌이었다.
내가 왜 랩을 좋아했는지 그때서 알 수 있었다.
정형된 자유 정형시를 좋아한다. 3장으로 된 시조, 여덟 구로 된 한시, 17음으로 된 하이쿠, 그리고 16마디가 한 소절인 랩. 시조의 ‘각운’ 같은 랩의 ‘라임’ 틀로 갇혀 있는 부분에서 단계 높은 자유를 느낀다.
<개인 작업 곡 비트를 정하고 있다 ⓒ 참여연대>
랩이 현대의 정형시란 생각이 든다.
랩은 뱉고, 토하고, 부른다. 결국, 입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랩은 시이자 말이자 노래이다
랩 교실 [삶을 뱉는 랩 교실]에서 랩의 마디를 배우고 한 마디를 뱉어보고 두 마디, 네 마디를 써보고 결국 열여섯 마디를 만들었다.
첫 시간 아날로그 소년(랩 사부)가 마지막 여덟 번째 시간에 팀별로 곡을 발표할 거라고 했을 때 눈에 안 띄게 웃었다, 안 믿겨서. 결국, 그는 나와 우리를 조련(?)해서 16마디를 뱉게 했다. 그에게 감사한 건 기술의 습득뿐 아니라 ‘나’를 들여다보고 ‘우리’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곡을 발표한다고 했을때 살짝 웃었다. ⓒ 참여연대>
항상 드러내고 싶음과 감추고 싶음 사이에서 싸운다. 이번에는 드러내고 싶은 게 약 2점 정도 이겼다.
이긴 소감으로 두 마디만 더 드러내 뱉어야겠다.
미래나 제시, 걸크러시 꿈꿨는데 현실은 앙앙대는 코믹래퍼였었네 by 비밥
▶2019년 새해 첫 힙합강좌 <나의 삶을 랩으로> 강좌 신청>> http://bit.ly/2BHy8KZ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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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대로 힙합] 삶을 뱉는 랩 교실 | [후기] 랩을 하다 보니 어느덧 나 자신이 변했다 - 이현민 | 느티나무 | 2018.12.11 | |||
<고치고 또 고치고, 비트에 맞추어 가사를 쓴다 ⓒ참여연대>
안녕하세요 삶을 뱉는 랩 교실 수강생 이현민입니다. 저는 이번 강좌에 가장 마지막으로 신청한 강좌생 입니다. 그만큼 고민을 많이 하고 신청을 했다는 뜻이겠죠. 저에게는 강좌신청을 가로막는 두 가지가 존재했습니다. 바로 금전과 시간입니다.
저는 22살 휴학생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처음 솔직한 감정 그대로를 표현하자면 아까웠습니다. 어떻게 보면 수강료는 청년 대학생인 저에게는 매우 큰 돈입니다. 또한 시간도 문제였습니다. 주중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난 후의 수강날인 매주 금요일 저녁은 너무 아까운 시간대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우여곡절과 많은 고민 끝에 저는 이 강좌를 수강하기로 결정했습니다. 8주간의 삶을 뱉는 랩 교실은 한마디로 ‘도전’이었습니다. 흔히 남들에 일컬어지는 힙알못인 저에게 랩은 큰 도전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느꼈지만 저는 저 자신에게 음악적 재능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도서관 아니죠, 랩교실 입니다^^ ⓒ 참여연대>
하지만 이게 웬걸 랩 가사를 써 내려가고 뱉어내는 시간 시간동안 저는 엄청난 몰입감에 빠져 버렸습니다. 일주일 내내 랩 가사를 어떻게 쓸까 라임은 어떻게 맞출까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맴돌았죠. 수강하는 그 8주만큼은 저 또한 랩퍼였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음악을 즐기고 제가 직접 가사도 써보고 랩도 해냈던 저의 8주간의 열정은 도끼나 타블로 못지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랩 교실이 끝난 이후 그때의 시간을 돌이켜보면 너무너무 값지고 소중합니다. 나에게 재능이 없고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음악’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자신만의 곡을 쓰고 랩을 뱉는 저의 모습을 보니 너무나도 뿌듯하였습니다.
유명 랩퍼 바스코의 <못다한 이야기> 라는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그래, 쉽진 않겠지만 도전 없이 사는게”. 저도 삶을 많이 살아보지 않았고 나이가 아직 많이 어립니다. 그렇지만 삶에서 도전하며 산다는 게 저에게 큰 행복이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랩 교실을 통해 새로운 도전을 했습니다. 그 새로운 도전을 통해 자존감도 많이 높아졌고 저에 대한 확신도 많이 생겼습니다. 삶을 뱉는 랩 교실은 단순히 랩만 하는 시간은 아니었습니다. 나 자신이 달라지고 새로운 것을 도전하는 또 하나의 경험이었습니다. 이는 저뿐만 아니라 8명의 수강생 모두가 똑같이 느꼈을거라 생각합니다.
<힙합하면 이런 표정지어야 할것 같은 느낌.. ⓒ참여연대>
이 강좌는 한마디로 힙합을 배우는 강좌입니다. 쇼미더머니로 대세가 된 힙합은 지금 가장 핫한 키워드라 할 수 있죠. 강좌 초반에는 힙합의 역사와 힙합용어 등을 배웁니다. 이후에는 본인이 직접 랩 가사를 쓰고 랩을 뱉어냅니다. 최종적으로는 본인의 곡 팀별 곡을 만들어 발표하는 마지막 시간을 가지는 것으로 이 강좌는 막을 내립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이번 ‘나의 삶을 랩으로 강좌’를 고민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고민 하지마시고 신청하시길 바랍니다. 해보신다면 분명 새로운 나의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마지막으로 삶을 뱉는 랩 교실을 위해 8주간 고생해주신 아날로그소년 선생님과 김승환 간사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2019년 새해 첫 힙합강좌 <나의 삶을 랩으로> 강좌 신청>> http://bit.ly/2BHy8K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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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자 김만권과 함께 <인간의 조건> 한나 아렌트 읽기 | [후기] 11/19 철학자 김만권과 함께 <인간의 조건> 한나 아렌트 읽기_두 번째 강의 3장. 노동 | 고무곰돌 | 2018.12.4 | |||
생소한 개념으로 가득차 있어 읽고 이해하기가 결코 쉽지는 않지만 김만권 선생님의 열정 넘치는 강의와 수강생들의 향학열이 어우러져 겨울밤을 빛내고 있는 11월 19일 월요일 밤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을 훑어나가는 세 번째 시간이 펼쳐졌습니다. 제3장의 주제는 첫머리에 밝히고 있듯 마르크스의 ‘노동’ 개념 비판으로 요약하자면 근대세계에 내재된 심각한 문제는 노동과 작업의 구분이 없어졌다는 것과 존 로크, 아담 스미스, 칼 마르크스와 같은 석학들조차 이 두 용어를 동일한 것으로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큰 차이가 없어보이는 노동과 작업의 구별은 저자인 한나 아렌트조차 생소하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이 구별이 의미가 있음을 뒷받침하는 현상적 증가가 많다고 주장을 하면서 로크의 표현을 빌려 신진대사를 중심으로 하는 생명유지 활동으로서 소비와 필연적으로 연계되는 우리 신체의 노동과 창조적 성격을 띠며 세계성을 지니고 있는 활동인 우리 손의 작업으로 설명합니다.
고대 폴리스에서는 노동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노동은 사적 영역에서 ‘집’에 얽매여 있던 노예의 행위이고, ‘작업’은 공적 영역의 내부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작업인’의 행위였다고 대비하고 있는데, 다만 시민이 ‘노동’에 종사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던 까닭은 그것이 노예가 하는 일이기 때문이 아니라 생명 유지 행위인 ‘노동’에서 해방되기 위함이라고 아렌트는 주장합니다.
다음으로 생명(생명유지)과 노동을 살펴보면 우선 모든 구체적인 사물 가운데 가장 지속적이지 못한 것은 생명의 과정 자체를 위해 필요한 것들로서 그것들은 생산되자마자 거의 소비되어버리는 일시성을 가지고 있는데 탄생과 죽음 사이의 생명이라는 관점에서 종에 있어서는 순환적 성격을 개인에게는 직선적이라는 특징을 지닙니다, 원래 시작과 끝이라는 두 개의 근본사건에 의해 제약받을 수 밖에 없는 생명은 엄격히 직선운동을 따르기는 하지만 이 운동은 자연의 주기적 운동을 영원히 담지하는 생물학적 생명의 원동력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노동은 언제나 똑같은 순환 속에서 움직이면서 그 안의 ‘노고와 고통’은 유기체가 죽어야만 끝이 나는데 이 순환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소비가 필요함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생명유지의 관점에서 노동과 소비는 우리의 욕망과 관련되어 물질을 파괴하여 게걸스럽게 삼키는 과정으로 특히 아렌트에게 노동은 어떤 생산적 측면도 갖지 않는 대상입니다. 하지만 로크 이래 아담 스미스를 거쳐 마르크스에 이르러 노동은 인간활동 중 최고이자 가장 상위의 지위로 갑작스럽고도 눈부시게 상승하게 되며 생산성의 원천이자 인간성의 표현 그 자체가 됩니다. 그리고 노동도구 엄청난 개선을 통해 이전의 그 어떤 시기보다도 노동이 훨씬 용이하게 되었고 필요에 종속되는 조건이 생생하게 드러나지 않게되므로써 노동과 작업의 구분이 어려워졌습니다. 하지만 인간 삶으로부터 필요와 필연성에 예속되는 존재의 조건을 제거하지는 못했다는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by 민동섭 자원활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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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할 수 있는 북한역사의 비밀 | [후기] 11/15(목) 북한 경제 구조의 기원 - '자력갱생' 경제의 형성/ 김상헌 자원활동가 | 느티나무 | 2018.11.29 | |||
이제는 말할 수 있는 북한 역사의 비밀 세번째 강의 - 북한 경제구조의 기원 - '자력갱생’ 경제의 형성
#1. 들어가기에 앞서 이번 강좌를 맡아주신 조수룡 강사님은 18년도 1학기에 박사학위를 취득한 따끈따끈한 박사라고 자신을 소개하셨다. 이 따끈따끈하신 박사님은 이 북한강좌 홍보 게시물에 달린 따끈따끈한 댓글들도 정독하고 오셨나보다. 강사님은 이 댓글에서 상식적인 부분에서조차 엇갈릴 수밖에 없는 북한을 대하는 우리의 민낯이 보인다고 하셨다. 약간은 흥분한 듯한 어조 속에서 북한사학자들이 마주할 수밖에 없는 편견들에 대한 설움이 살짝 읽혔다면 나의 착각일까.
어쨌든, 폭발적인 댓글이 보여주듯 모두가 관심은 있지만 진실을 알 수 없는 국가가 북한이다. 이번 강좌는 진실에 그나마 근접할 수 있는 지표 중 하나인 경제를 들여다보는 강좌였다. 특히 공산권 진영과 구 자유주의 진영이 가장 극명하게 대조되는 부분이 경제분야이기도 하기에 남한과 북한의 차이를 들여다보기에는 제격이었다.
#2. ‘고난의 행군’과 ‘자력갱생’ 강사님은 북한 경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90년 대 말에 있었던 아주 중요한 경제난인 ‘고난의 행군’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고난의 행군’은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북한이 경험한 경제난이다. 이 경제난의 원인으로 다양한 것들(미국 경제 제재, 경제정책 실패, 흉작 등)이 지목됐으나, 내부적 문제라기보다는 외부적 요인, 즉 사회주의 붕괴가 원인이라는 것이 강사님의 의견이다. 미국 경제제재나 흉작 등은 언제나 있어왔던 것이기 때문에 결정적 원인으로 지목하긴 힘들다고.
이 ‘고난의 행군’은 북한 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대표적으로는 북한의 시장화를 꼽을 수 있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가장 큰 차이점은 과잉생산이냐 부족생산이냐이다. 자본주의는 생산의 무정부성이 특징으로 생산에 주체가 없어서 잉여가 무조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반면, 사회주의는 국가가 생산의 주체가 되어 적정량을 생산한다. 다만, 적정량을 생산해도 필연적으로 유통과정에서 유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에 부족생산현상이 발생한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 북한정부는 부족한 생산량을 넘어 생산의 주체가 될 능력(배급의 능력)을 상실했고 인민들에게 자력으로 생존할 것을 주문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암시장이 발달하게 됐고 이 암시장은 지금까지도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북한 주민의 83퍼센트 정도가 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현재, 북한은 공식경제(계획경제)와 비공식경제(암시장)가 사실상 공존하는 이중 경제 구조인데, 북한은 이 암시장을 제도권 내로 수용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계획경제 부문은 협동농장이나 국영 기업소의 형태로 운영되나, 계획 경제 부문의 원료와 자원이 시장으로 유출되고 있다. 결국 시장의 잉여는 일정 부분 국가에 의해 수취되어 계획경제를 보완하고 있다. 강사님에 따르면 이 시장(비공식)경제 분야는 경제제재로 억제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이 ‘고난의 행군’ 시기에 등장한 구호가 ‘자력갱생’인데, 인민 개개인이 자신의 삶을 알아서 영위하는 태도를 강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자력갱생’의 구호는 1960년 대 소련의 영향력에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립경제를 이루기 위해 김일성이 도입한 구호이다. 하지만 90년 대 사회주의진영이 붕괴하면서 북한 정부는 배급 능력을 상실했고, 위 구호는 각자도생의 구호로 재탄생한다. 이 각자도생의 태도는 시장활성화에 크게 기여하게 된다.
#4. 대외자립경제의 불가능성 북한은 60년대에는 소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90년대에는 소련권 붕괴로 인해 대외자립경제를 강조해왔다. 하지만 북한 경제는 그 시작부터 불안정했다. 분단 이전부터 식량자원생산은 남한 지역에 집중돼 있었기에 북한 경제는 식량자급을 한 번도 달성하지 못했다. 남한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으로 인해 상시적으로 안보위기를 경험하고 있었는데, 이는 20% 아래로 떨어진 적 없는 국방예산이 증명한다. 안보위협은 국방예산에의 과도한 투자 말고도 비효율적인 투자를 낳게 됐다. 단적인 예로 북한의 중공업 시설들은 대부분 지하에 위치한다. 이 외에도 동서로 이어지지 않는 철로와 같은 다양한 요인들로 인해 북한 경제는 대외자립이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맞다.
#5. 마치며 대외자립경제가 불가능한 북한의 상황과 시장을 적극적으로 육성하는 북한경제의 구조는 현재 북한의 태도를 이해하는 데 있어 큰 단초를 제공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이 의욕적으로 경제제재 완화를 향해 나아가는 이유는 자립경제가 애초부터 불가능하기 때문이리라.
또한 북한의 경제상황을 들여다보며 생각보다 낯설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강사님도 계속해서 북한경제는 우리나라 군대와 많이 닮아있다는 얘기를 하셨다. 확실히 많은 부분에서 공통점을 느낄 수 있었다. 북한을 가장 혐오하는 집단인 군대가 북한과 가장 많이 닮아 있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했다. 가장 오랫동안 바뀌지 않았던 집단이어서 그러지 않을까. 어쩌면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의 본질은 어떤 경제체제이냐가 아니라 상명하달 식의 권위주의 체제이지 않을까 싶었다.
/김상헌 자원활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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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자 김만권과 함께 <인간의 조건> 한나 아렌트 읽기 | [후기] 11/12 정치철학자 김만권과 함께 <인간의 조건> 한나 아렌트 읽기_두 번째 강의 2장. 공론영역과 사적영역 | 고무곰돌 | 2018.11.26 | |||
첫시간의 후기에도 드러나있듯 난해한 글을 더욱 미로로 빠지게 하는 번역 때문에 다가가기 어려운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의 주요 부분을 정리해나가는 김만권 선생님의 두 번째 수업이 지난 12일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제1장 인간의 조건에 이어 책의 순서에 따라 제2장 공론영역과 사적영역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공론영역과 사적영역의 구별은 아렌트 정치철학의 열쇠인데요, 공적 영역이 폴리스의 본질적인 부분인 반면, 사적영역은 폴리스를 뒷받침하는 가족의 영역으로 생명 유지를 위한 행위가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근대 자유주의도 공·사 이분법에 기초하여 인민의 합의로 성립한 통치에 속해야 할 영역과 개인이 자기 생각대로 행동을 해도 좋은 영역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는 사고방식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근대에는 누구나 간섭받지 않는 사적영역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던데 비해, 고대 폴리스에서는 활동이 이루어지는 공적 영역이야말로 자유롭다고 생각한 점이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공적인”이라는 용어는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나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두 현상을 의미하며 세계가 우리에게 공동의 것이고 우리의 사적 소유지와 구별되는 세계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대중사회를 사는 우리들이 견디기 힘든 것은 인간이 집단적으로 외로워지는 현상때문이며 이러한 현상에서 자신이 속할 공간을 만들어줄 강력한 권력을 갈망하는 나치즘과 같은 비극이 비롯되기도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비해 “사적인”은 본래 ‘박탈된’이라는 의미를 지니는데 여기서 완전히 사적인 생활을 한다는 것은 우선 진정한 인간에게 필수적인 것이 박탈되었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사적 소유는 자신만의 삶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참여하는 세계에 들어가는 사람이 된다는 의미와 더불어 각자가 정치적 삶을 살아가는데 재산을 사용하지 않고 재산을 늘리려고만 하면 자유를 희생하고 필연적으로 노예가 될 수 밖에 없다는 뜻을 동시에 가집니다. 여기서 아렌트는 토지나 가옥 등 개인에게 속하는 고유성을 가지고 있는 재산(property)과 단순한 소비대상인 부(wealth)를 구별하는데 사적 소유가 한 인간이 정치적 존재가 되는데 필요한 요소로 보고 있습니다.
한편 사적 소유가 사적인 돌봄의 대상에서 공적인 관심사로 변형되었을 때 사회적인 것이 나타납니다. 사
회는 근대의 출현과 더불어 나타난 현상으로 재산소유주의 조직체로 처음 공적영역에 등장하는데 소유주들이 공론영역에 자신들의 부를 보호해줄 것을 요구하면서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경계가 불분명해졌고 결국 공사 영역 구분의 경계가 사라져버리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조건에 나오는 개념을 다른 학자들의 주장과 겹쳐보며 비교해보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오늘은 다른 이들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통제하거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권력을 살펴보았는데 권력행사의 방법, 권력의 본질과 폭력과의 관계, 권력을 창출하는 지식의 힘 그리고 시대에 맞는 권력의 개념과 지향 방향 등을 마키아벨리, 홉스 등의 논의에 비추어 정리해보았습니다.
설립 초기 삼류대학으로 평가받던 미국의 시카고대학은 제5대 총장 로버트 허친스가 총장으로 부임하여 존 스튜어트 밀의 독서방법에서 착안한 고전 100권 읽기 계획을 시행하면서 지금과 같은 명성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존 스튜어트 밀의 독서법은 쉽게 쓰여진 책을 읽는다(저자나 책에 대해 설명된 책 읽기), 통독(그냥 읽기), 정독 및 필사의 4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데 한나 아렌트의 책은 쉽게 쓰여진 책은 아니지만 김만권 선생님의 친절한 해설이 곁들여지는 아카데미느티나무수업은 고전 읽기의 1~2단계를 한꺼번에 실행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앞으로도 계속될 고전 읽기 강의에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작성 : 민동섭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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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첫 사법감시 - 판결문 함께 읽기 | [후기] 내 생애 첫 사법감시 - 양유경 | 느티나무 | 2018.11.26 | |||
‘내 생애 첫 사법감시’라니! 처음엔 타이틀이 그렇게 부담스러울 수가 없었다. 학부 때 산 법전은 몇 년 간 눈이 닿지 않는 책장 아래칸에 꽂혀있는 상태였고, 제목대로라면 감시의 주체가 돼야 할 ‘나’는 법원은커녕 법관도 평생 한 번 만나본 기억이 없었다. 내가? 누구를? 어떻게? 사실 감시하리란 열의보다 앞섰던 건 궁금함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사법농단 사태가 뉴스 헤드라인을 매일같이 갈아치우곤 하던 때였다. 거긴 대체 어떤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곳인가 직접 알아보고 싶었다.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기에 얼른 판결문 읽기 강좌를 신청했다.
첫 날, 가자마자 판결문을 읽는 건 둘째 치고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렵단 얘길 들었다. 국가법령정보 어플리케이션에 모든 판결이 다 올라오는 줄로 알고 있던 내겐 큰 충격이었다. 어쩐지 과제 하려고 아무리 키워드를 바꿔서 검색해봐도 뭐가 안 나오더라니. 법이란 무엇인지, 국민을 위해야 할 사법부가 어떤 문제점과 한계를 보이고 있는지에 대해 강의를 들은 후, 판결문을 검색하고 청구하는 방법 실습까지, 이 모든 게 첫 날에 이뤄졌다. 텍스트와 정보를 얻으러 갔던 수업에서 사법부를 함께 감시해야 한단 필요성을 인지하게 된 날이었다. 일종의 배신감과 경각심도 함께 느꼈다. 대승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개인적 차원에서도 사법부의 불합리성을 체감하게 되면서, 그간 멀게만 느껴지던 사법부와 어떤 식으로든 연을 맺기 시작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론 본격적으로 판결문을 읽기 시작하면서 시민으로서 사법부를 감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해보려 노력했다. 일단 열심히 읽었다. 모르는 부분은 검색해보거나 교수님께 여쭤봤고, 이해가 되지 않는 논리엔 반박하는 메모를 달아보기도 했다. 강의에선 참여자들이 각자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들고 와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통탄하는 사람도 있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고, 질문하는 사람도 있고, 잘 듣는 사람도 있고, 이걸 다 정리해 기사로 내는 사람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수업 중에 제일 자주 나왔던 말은 ‘법원이 이래서 되느냐’는 말이었고, 그 다음이 ‘판결문 문장이 길고 어렵다’는 얘기였던 것 같다. 그래도 우리 수업은 비평하는 수업이었지, 무조건 비난하는 수업은 아니었다. 한 판사 앞으로 배당되는 사건 수가 너무 많단 구조적 문제를 짚어보기도 하고, 판결문의 형태나 문장이 부득이하게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 교수님이 설명해주시기도 했다(물론 이렇게 어렵게 쓸 필욘 없다고 지적하시던 때도 많았지만.) 덕분에 수업이 끝난 후에 판결문을 쓰는 데 온전히 집중하기 어려운 법관들의 현실적 어려움에 대해 찾아보기도 했다. 그리고 판결문을 꼬고, 또 꼬아서 쓸 수밖에 없다면, 많은 것을 담아내느라 얽히고설킨 말과 논리를 풀어갈 줄 아는 눈을 더 열심히 길러야겠단 생각도 하게 됐다.
개인적으로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건을 다룬 판결문들이었다. 회계 얘기가 잔뜩 나오는 통에 단어를 이해하는 것부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1심과 2심을 열심히 읽어 갔다. 그런데 대법원에서 너무 짧고, 부족하며, 부적절한 논지로 뒤집어 엎는 걸 목도했다. 사실판단은 하지 않는다던 대법원은 판결문에 사실상 사실을 판단하는 주장들을 담아냈다. 사건이나 법리에 대해 잘 모르는 나였음에도, 원심 판결문을 읽은 상태에선 이 주장들에 여러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마지막 시간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비교적 다행스러운’ 판결문을 읽었지만, 강론을 듣고 토론하면서 좋은 판결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의문을 던지며 함께 고민해야 할 부분이 많단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어색해서 어렵던, 어려워서 어색하던 ‘사법감시’란 말이 익숙해질 때 즈음 강의가 끝났다. 사법부를 감시한다는 건 생각보다 쉽게 시작할 수 있었다. 수업을 듣고, 판결문을 읽으며 관련 이슈에 관심을 가지는 것부터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또 우리가 감시해야 할 사법부는 생각보다 가까웠다. 언제라도 우리 앞에 닥쳐올 수 있는 사건을 다루며, 우리 곁의 누구라도 옭아맬 수 있는 게 바로 사법 권력이었다. 그만큼 사법부가 잘 운용될 수 있도록 시민으로서 더 무거운 책임을 느껴야 한다는 걸 매번 상기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며, 져야 할 무게가 잘 느껴지지 않을수록 다시 생각해봐야 할 시민의 책임, 그게 바로 사법을 감시한다는 것의 의미였다. /양유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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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집_알수록 쓸모있는 신기한 집 이야기 | [후기] 알쓸신집_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 | 개똥이 | 2018.11.25 | |||
<알쓸신집> 강의진행기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
세입자에게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
주거권을 보장하라!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확대하라! 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제를 도입하라!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가 발족한 2007년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내용입니다. 주택 보급률은 100%를 넘었지만, 집값이 너무 올라서 내집 마련은 꿈꿀수 조차 없고, 전월세,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장기공공임대주택 재고량은 5%에 불과한 실정입니다. 그런데 법, 제도, 정책 개선 어느 것 하나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세입자들에게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라는 질문에서 알수록 쓸모있는 신기한 집이야기(이하 알쓸신집) 강좌가 시작되었습니다.
처음 써보는 주거 이력서
주거권을 보장하라! 민생희망본부 기자회견, 보도자료, 논평, 성명에 빠지지 않는 단골, ‘주거권’은 주거기본법에 “국민은 관계 법령 및 조례로 정하는 바에 따라 물리적·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환경에서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권리를 갖는다”라고 규정되어 있지만, 실제로 주거권은 보장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참여연대는 시민들이 안정적인 주거생활을 하려면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가 도입되어야 하고, 인간다운 주거 생활을 위해서는 주거빈곤층을 위한 주거급여가 상향되어야 하고, 공공임대주택 공급이 늘어나야 한다고 정부와 국회에 지속적으로 요구했습니다. 기존 방법과 달리 생활속에서 경험하는 주거권을 수강생들과 함께 이야기할 소재를 찾아야 했습니다.
나와 가족이 자라고 성장한 곳, 지친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곳, 내일을 준비하는 곳이 집입니다. 그런데도 막상 `당신은 집이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라고 질문하면 답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수강생들에게 개인 주거사를 기록할 ‘주거이력서’를 나눠주고, 과거에 내가 살았던 집,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집, 미래에 내가 살고 싶은 집을 종이에 적은 다음, 조별로 ‘어디서 태어났는지’. ‘이사를 몇 번이나 했는지’, ‘어디에 살고 싶은지’를 서로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이날 처음 만난 사람들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화기애애한 분위속에서 오래도록 이야기가 계속되었습니다. 수강생들은 대저택, 호화로운 주택이 아닌 빨래가 잘 마르고 햇볕이 잘 들고, 주인 눈치를 안 보는 집, 주거권이 보장되는 집에서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주거권에 대한 강의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수강생 모두가 당면하고, 관심있는 주제라도 ‘주거’, ‘주거권’의 개념을 전달하는 강사의 특강 위주로 진행했더라면 수강생들이 강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일상 생활 중심 길잡이 내 손으로 쓰는 임대차계약서
지금까지 나에게 계약서 작성법,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보증금을 안전하게 지키는 법, 임대인에게 수리비 청구하는 방법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학원을 다닐 수도 없고, 찾아서 공부할 시간도 없습니다. 임대차계약서는 공인중개사가 설명하는대로 작성하고 도장 찍기 바빠서 내용을 꼼꼼하게 읽어볼 겨를도 없고, 한파로 보일러가 고장나도 주인의 연락은 닿지 않고, 형광등, 대문, 열쇠, 창문이 고장날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현직 공인중개사가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세입자가 실생활에서 꼭 알아야 할 내용으로 강의를 구성했습니다. 강의 시작 전에 세입자로 살면서 부딪히는 "관리비에 유지보수비 추가됐는데 제대로 쓰이고 있는 거야?", "벽지 훼손해도 보증금에서 제한다는데 세입자 책임은 어디까지?" 고민들을 서로 나눠보았습니다. 계약서 작성법, 깡통전세 피하는 법, 계약시 주의사항, 보증금 떼이지 않는 방법 등을 알게 되었습니다. 강의 내용 대부분은 주택임대차보호법에 있는 내용입니다. 수강생들에게 주택임대차보호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현직 변호사가 법규 중심으로 강의를 진행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로 법과 제도를 찾는 시민은 많지 않습니다. ‘이것이 정답이다’, ‘이렇게 해야한다’고 일방적으로 전달하기보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안내해주는 길잡이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의를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체득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 이번 아카데미느티나무 강좌는 사업 현안을 시민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해결 방법을 고민하는 중요한 공간이었습니다. 법, 제도 개선은 시급한데 국회와 정부는 꿈쩍도 안 하니 마음은 더 다급해집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처럼 더 많은 시민들과 소통하고 함께 문제 해결 방법을 찾아서 세상을 바꿔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글귀,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를 떠올리게 됩니다. 좋은 세상은 우리가 더불어 숲이 되어 함께 지킬 때 가능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더불어 숲은 시민들에게 어떻게 말을 건네고, 어떻게 전달할지 더 깊이 고민하고, 더 좋은 방법을찾으려는 노력에서 얻어지는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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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하학교] 일상의 ‘깨알’ 진행자 되기 | [후기] 진정성 있는 대화가 있었던 값진 시간들 /심민호 | 느티나무 | 2018.11.19 | |||
<깨알진행은 기술이기 보다는 태도가 아닐까 생각했다 ⓒ 참여연대>
와하 가을 학기가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6주 만에 "회의 참여자들 모두가 만족하는 결론에 도달 할 수 있도록 회의를 이끄는 좋은 진행자"가 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은주 선생님이 이끌어 주시는 가운데 매주 실습을 통해 수업이 진행 되었기 때문인지, 강의자료를 쭉 훑어 보는 지금 그때의 상황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역시 가장 만족스러운 대화는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들어 줄 때 이뤄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대화를 18명의 참가자 분들과 연습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한편으로는, 관심 없는 사람과 관심 없는 대화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습니다. (그러한 상황을 피해가는 쪽으로 삶을 경영해야 할지, 어느 상황이라도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을 해야할지 말입니다)
진정성 있는 참가자들과 선생님을 만나서, 서로가 사는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어서 값진 시간 이었습니다 진정으로 소통하는 대화에 관심을 가진 우리 같은 사람들이 많아 질 수록, 가정과 사회와 국가가 더 따뜻해지겠죠? /나무(심민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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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할 수 있는 북한역사의 비밀 | [후기] 11/8(목) 이제는 말할 수 있는 북한 역사의 비밀_2강_북한 무력의 기원 /하원배 자원활동가 | 느티나무 | 2018.11.16 | |||
북한무력의 기원 -조선인민군 창설
1945년 8월에 한국인들은 식민지 상태에서 해방되었다. 하지만 한반도에는 미군과 소련군이 각각 38도선을 기준으로 진주함에 따라 해방과 동시에 분할되었고, 1948년에는 남과 북에 각각 단독 정부가 수립되면서 분단체제로 귀결되었다. 북한 무력의 형성과정은 이 같은 단독정부와 분단체제의 수립과정과 직결되어 있다.
조선인민군의 기원은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조선의용군과 동북항일연군, 그리고 고려인이 있었다. 조선의용군은 민족주의 좌파 김원봉이 만들었던 조선의용대가 분리되어 한국광복군에 편입되었던 일부 부대를 제외하고 만들어졌으며, 동북항일연군은 만주에서 활동하다가 1940년부터 1945년까지 소련군인으로써 활동하던 부대였으며 김일성도 이 부대에서 활동하였다.
마지막으로 스탈린에 의해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이후에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등지에 거주하다가 소련군의 지시로 입북한 고려인이 있었다.
조선인민군의 창설과정은 다음과 같다. 해방 후 연합국이 38도선을 경계로 남과 북에 진주하면서 반파시즘에서 진영대결의 방향으로 냉전이 탄생하게 되었다. 결국 아이러니하게도 가해국인 일본이 아닌 피해국인 한반도가 분할되었으며 서울엔 미군이, 평양엔 소련군이 진주하면서 연합군을 환영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남한은 영어가 제1외국어로 자리잡게 되었고, 북한은 러시아어가 제1외국어로 자리잡게 되었다.
북한에 김일성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1945년 8월에는 보안대가 창설되었다. 이후 12월에 모스크바 3상회의가 열렸으며, 1946년에는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개최되었지만 결렬되었으며, 이러한 사이를 틈타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보안국이 설립되었다. 또한 군사학교인 평양학원과 북조선 중앙보안간부학교가 탄생하였다. 평양학원은 군인들에게 정치교육을 담당하는 정치장교를 양성하고, 고급군사간부를 양성하는 곳이었으며, 북조선중앙보안간부학교는 초급군사간부를 양성하는 곳이었다.
1946년 8월에는 육군의 모체인 보안간부훈련소 제1,2,3소가 만들어졌으며, 8월 15일에 군사지휘부인 보안간부훈련대대부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듬해인 1947년 남한에서는 안재홍을 수반으로 한 남조선과도정부가 만들어지고 북한에서는 김일성을 수반으로 한 북조선인민위원회가 창립되었으며,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 기간 중인 5월에 보안간부훈련대대부가 북조선인민집단군총사령부로 개편되었다.
1948년 북한은 군대를 기반으로 정부를 만들기에 이른다. 북한지도부는 1948년 2월 8일 조선인민군을 창설함으로써 남한 국군의 존재를 부정하고 한반도의 유일한 군대라는 인식을 심어주었으며, 인민군의 정통성을 김일성의 항일유격대에 부여하였다.
9월 9일에는 북한정부가 수립되었으며, 1948년 12월과 1949년 6월에 각각 소련군과 미군이 한반도에서 공식적으로 철수하였다. 그러나 소련군과 미군은 공통적으로 약 500명의 군사고문단을 남겨 인민군과 국군을 육성하였다. 그 시점을 전후하여 북한은 무기를 국산화하고 전쟁준비를 하였다.
이듬해인 1949년 3월 소련의 지원으로 이름만 경제문화협정인 조소경제문화협정을 체결하여 군사와 무기에 지원을 약속받는다. 또한 중국의 지원으로 병력을 지원받았으며, 소련군 교범을 번역해 육해공군교범과 공격전용 교범으로 활용한다. 소련과 중국의 지원으로 인민군은 급격히 증강되었으며, 남한에서는 제주4.3사건 진압을 거부한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여순사건으로 대대적인 숙군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숙군의 분위기 속에 국군 내 좌익세력이었던 강표부대와 킴블스마스호가 월북하였다. 인민군의 군사력은 더욱 증강되었으며 전쟁의 길은 다가오고 있었다. 1948년 이후 북한정부는 통일노선으로 국토완전론을 내걸었으며 대한민국정부는 북진통일론을 내걸었다.
분단과 전쟁의 원인으로는 자본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의 대립이라는 냉전질서와 좌익과 우익의 대립, 남과 북의 대립이 있다. 분단은 지금까지도 현재 진행중이며, 남한에서도 동서갈등을 비롯한 다양한 갈등이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가 북한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남한 내에서의 갈등도 극복하고 남북한의 평화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가야 한다. /하원배 자원활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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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자 김만권과 함께 <인간의 조건> 한나 아렌트 읽기 | [후기] 11/5 정치철학자 김만권과 함께 <인간의 조건> 한나 아렌트 읽기_첫 번째 강의) 1장. 인간의 조건 | 파오리 | 2018.11.13 | |||
후기를 작성하기에 앞서, 이 후기는 ‘아, 나는 한국어를 잘 못하는 사람인가?’라는 회의를 느끼면서 <인간의 조건>을 읽은 사람이 썼다는 말씀 올립니다.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이해한 만큼 이해한대로 적었습니다. 책과 강의를 제 이야기로 바꾸어 썼습니다. 바로 잡아야 하는 부분에 대한 의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치철학자 김만권과 함께 <인간의 조건> 한나 아렌트 읽기’의 첫 강의 <1장. 인간의 조건>은 11월 5일 (월) 19시 ~ 21시 30분에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에서 열렸습니다. 한나 아렌트의 철학에 관해 소개하고 ‘왜 책이 어려운지’를 설명하며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아렌트의 이야기는 ‘독자가 보기에 일관성이 없어서’ 어렵다고 합니다. 앞의 이야기에서는 ‘~는 ~하다.’라고 말하고는 뒤의 이야기에서는 ‘~는 ~하지 않다.’라고 할 때가 있어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고 합니다. (한국어인데도 이해를 못해서 자괴감을 느꼈는데, 다행스러웠습니다.^^)
‘한나 아렌트’라는 사람
아렌트는 좋은 설명을 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좋은 질문을 제시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의 이야기를 분석하기보다는 그의 질문과 시각, 설득방식에 주목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조건>의 서문은 각 장을 충분히 읽은 후에 다시 읽는 것이 낫다고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는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아렌트는 독일에서 태어난 유태인으로 근대성의 병폐(전체주의, 정치의 상실)에 관한 연구로 이름을 알린 정치이론가입니다. 급진적 악을 다룬 <전체주의의 기원>을 내면서 유명해졌는데, <전체주의의 기원>은 <인간의 조건>, <혁명론>과 함께 아렌트의 주요 3부작으로 꼽힙니다. 이외에도 본인 철학의 개념을 다룬 <과거와 미래 사이>, -그나마(?)- 가장 쉽다고 알려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가 있습니다.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그가 이야기한 ‘악’에 대한 관점은 그의 스승인 야스퍼스가 ‘악을 그렇게 정말 크고 엄청난 것이라고 하면, 마치 그 악이 신처럼 보일 수 있다.’라고 비판했다고 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사제관계와는 조금 다른, 학문적 동료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괴니히스베르크-칸트가 평생을 지낸-에서 태어난 아렌트는 마르부르크 대학교에서 하이데거의 지도를 받았으나, 하이델베르크로 옮겨 야스퍼스의 지도로 박사학위(사랑과 아우구스티누스, 1929)를 받습니다. 하지만,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독일에서 교수 자격을 얻을 수는 없었습니다. 1933년에는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었으나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곧 풀려났고, 프랑스에 머물던 1941년에는 나치수용소에 끌려가기도 했으나 탈출에 성공하여 미국으로 이주했습니다. 이러한 삶의 영향인지, 아렌트는 ‘삶을 둘러싼 구조보다 행위를 강조’했다고 합니다. (나치로부터 두 번이나 탈출하다니 대단한 사람.)
<인간의 조건>과 그 배경
<인간의 조건>은 그 제목과 달리, 제한된 실존조건에서의 인간의 활동과 그 활동들의 관계에 관한 탐구이며, 그 관계의 문제가 인간 삶의 다른 방식을 만들어냄을 알리고 있는 내용으로, 인간의 조건에 대해 진지한 탐구를 다루고 있지는 않습니다. 아렌트는 이 책을 Vita Activa(=활동적인 삶) 혹은 Amor Mundi(Love of the world)라 불러주길 원했는데, 이는 이 책이 인간의 조건을 탐구하는 책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제목을 믿고 ‘인간의 조건’이 언제 나오는지 찾으면서 읽으면, 끝까지 그 내용은 찾을 수 없다. 제목이 낚시(?)다.)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을 탐구하기보다는 다양한 인간의 조건 중 인간이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생명, 세계성, 다원성이라는 세 가지 조건을 이미 전제하고 그에 따른 활동의 본질이 무엇인지 탐구하고 있습니다. 이 기본적인 조건 세 가지는 이에 따른 활동 세 가지로 연결되는데 ‘노동, 작업, 행위’입니다. 원래 이 활동은 ‘행위>작업>노동’의 위계가 있었는데, 근대에 이르러 위계가 뒤집히면서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인간이 삶을 사는 데 주어진 세 가지 조건은 그 자체가 곧 제약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조건은 인간의 본성과 다르고, 또한 그 조건에 따른 인간 활동(행위, 작업, 노동)과 –활동을 해내는- 능력의 합이 인간의 본성을 구성하는 것도 아닙니다. 덧붙이면, 근대의 전체주의는 여기에서 말하는 인간(유대인)의 본성(=자발성)을 급진적 악(=수용소)을 통해 깨뜨려버립니다. (이해한대로, 이해한 만큼 적어서 이렇습니다...)
활동적 삶과 인간의 조건
활동적 삶은 ‘노동, 작업, 행위’라는 세 가지 근본활동을 담고 있습니다. 이 활동은 인간이 사는 데 주어진 기본조건(생명, 세계성, 다원성)에 따르는 것입니다. 각 활동에 관해 살펴보면, 노동은 인간 신체의 생물학적 과정에 상응하는 활동입니다. 인간이 먹고 사는 것은 일을 해서 얻는 것에 달려있습니다. 노동이 이루어질 수 있는 근본조건은 생명 그 자체입니다. (‘노동은 생명 때문에 하는 것이다.’라고 이해했습니다. 노동을 정글의 법칙에 나오는 물고기 잡기로 읽었습니다.) 작업은 인간실존의 비자연적인 것에 상응하는 활동입니다. 작업을 통해 자연환경과 구별되는 인간이 만든(natural이 아닌 artificial) 인공적인 것(제도, 법률, 국가 등)이 만들어집니다. 이것은 개인의 생명보다 오래 살아남습니다. 작업의 인간조건은 세계성입니다. (‘작업은 인간이 만든 메시지(?)다.’라고 이해했습니다. 작업을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로 읽었습니다.) 행위는 사물이나 물질 없이 인간 사이에 직접적으로 수행하는 활동입니다. 행위의 인간조건은 다원성입니다. “우리가 알기에 가장 정치적이었던 로마인의 언어에서 ‘살다’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다’는 말, ‘죽다’는 ‘더 이상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과 동의어로 사용된다.” (‘행위는 정치활동이다.’라고 이해했습니다. 행위를 창당(?)으로 읽기로 했습니다.)
“세 가지의 활동과 상응하는 조건 모두 인간 실존의 가장 일반적인 조건, 탄생성과 사멸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방인으로서 세상에 태어나는 새로운 손님의 항상적인 유입을 위해 세계를 마련하고 보존하는 그리고 이 유입을 예견하고 생각해야 하는 과제를 갖는 한, 노동과 작업은 탄생성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대한민국에 태어나는 아이를 위해서, 기존 사회구성원은 분유 값과 기저귀 값, 교육비를 벌고(=노동),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다양한 제도와 정책을 만듭니다(=작업).)
“세 가지 행위 중에서 행위는 탄성성의 조건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출생에 내재하는 새로운 시작은 새로 오는 자가 어떤 것을 새로이 시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때만 생각할 수 있다.” “ 이러한 새로운 시작으로서의 행위의 요소, 즉 탄생성의 요소는 모든 인간활동에 내재한다.” (...)
활동적 삶이란?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생계에서 벗어난, 더 나아가 도구를 만드는 삶과 탐욕적 살멩서 벗어난, 세 가지 삶의 방식을 제시한다.” 1) 아름다운 것이 주어진대로 소비되는 육체적 쾌락을 향유하는 삶 (개인의 영역) 2) 폴리스에서 탁월함을 발휘하며 정체(정치?)에 관여하는 삶 (=행위하는 삶) 3) 영원한 것의 탐구와 관조에 바쳐지는 철학적 삶 (플라톤 이후 최고로 치는 삶) (‘먹고 살기 충분한 사람들의 생각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활동적 삶은 중세철학에서 아리스토텔레서의 ‘정치적 삶’의 표준적 번역어로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나타납니다. 다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적 삶’은 명백한 행위를 강조하는 정치적 인간사의 영역만을 지시합니다. 노동과 작업은 자율적이고 참된 인간 삶의 방식인 비오스(bios)를 구성하기에 충분한 품위를 갖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필요와 욕구에 구속되어,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부지런히 움직이는 몸-노예의 역할-에 대한 경멸...(=사유할 수 없는 삶))
폴리스의 삶은 자유롭게 선택한 정치적 조직의 형식을 가리켰는데, 고대 도시국가가 몰락하면서 활동적 삶이라는 용어는 그것의 특별한 정치적 의미를 상실하고 모든 종류의 세상사로의 참여를 의미하게 되었다고 합니다(노동, 작업도 활동적 삶이라는 용어에 담김). 그러나 작업과 노동이 인간활동의 위계에서 부상하여 정치적 삶과 동일한 존엄성을 가진다는 뜻은 아닙니다.(위계는 ‘행위>작업>노동’ 순)
활동적 삶의 경쟁자: 관조적 삶
“행위를 포함한 모든 다른 활동보다 관조가 단연코 우월하다.” 플라톤, “폴리스의 삶을 완전히 이상적으로 재조직하는 것은 철학자의 탁월한 통찰에 지도받아야 하는 동시에 그것은 철학자의 삶의 방식을 가능하게 하는 것 이외에 어떤 다른 목적도 갖지 않아야 한다.” (무언가 대단한 선민의식 같다고 느꼈습니다.)
아렌트, “전통적 위계에서 관조에 지나친 무게를 두는 것이, ‘활동적 삶’ 그 자체 내의 구별과 명료성을 흐릿하게 하며, 겉보기와는 달리 이 조건(활동적 삶)은 근대의 ‘전통과의 단절’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마르크스와 니체의 종국적인 전통 위계질서의 전복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행위>작업>노동’이라는 위계는 여전하다.) “내가 활동적 삶이라는 용어를 쓸 때, 이 활동 모두의 근저에 놓여있는 관심은 관조적 삶이라는 하나의 포괄적 원리를 지향하는 관심과 동일하지 않으며, 동시에 이 활동적 삶이 관조적 삶보다 우월하거나 열등하지도 않음을 전제한다.”
영원성과 불멸성
불멸성 생물학적으로 사멸하는 인간은 자신의 이름을 후세에 남겨 불멸하고자 하고 이런 일은 기억되는 역사를 만드는 행위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활동적 삶에서 행위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어떤 유명 만화에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사람들에게서 잊혀질 때다.”라는 명대사가 있다고 하는데, 그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영원성 관조적 삶은 사유하는 인간으로서 영원한 것, 바로 진리와 함께하는 삶입니다. 플라톤은 이 영원성이 폴리스를 지배했던 원리를 대체할, 더 높은 원리의 근원이라고 보았습니다. 아렌트는 이것에 관심이 없던 것이고요.
정리 : 이남수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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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할 수 있는 북한역사의 비밀 | [후기] 11/1(목) 이제는 말할 수 있는 북한 역사의 비밀(1강)_북한 체제의 기원 /김상헌 자원활동가 | 느티나무 | 2018.11.12 | |||
북한 체제의 기원- 인민 위의 계급, 계급 위의 국가(김재웅)
1. 들어가기에 앞서
한국에서 북한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으려면 제법 용기가 필요하다.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과분한 사회적 관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참여연대도 이런 관심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나보다. 보통 활발하지 않은 아카데미 느티나무 페이스북 페이지 댓글 창에 어마어마한 수의 댓글이 달린 것을 보면 말이다. 북한은 언급만으로도 사회적 관심을 끌고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주제이지만 동시에 알려진 것이 없이 베일에 싸여 있기도 하다. 폭압적인 독재와 비참함이라는 추상적인 이미지만 떠다닐 뿐이다. 그래서인지 6월 남북회담 당시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매우 먼 줄 알았는데 따로 통역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단 것을 생중계로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번 강좌가 반가웠던 이유도 한 번 제대로 알아볼 기회가 있겠구나 싶었다.
드디어 드러나는 참여연대의 정체를 확신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일부 애국자분들의 기대와는 달리 매우 차분하고 상식적인 역사수업이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든지 집에서 열람할 수 있는 자료들을 바탕으로 한 강의였다.
2. 진보적인 개혁과 함께 시작된 북한정권
북한 정권의 시작은 일제 잔재의 청산으로 시작됐다. 항일운동을 하던 인물들을 위주로 구성된 북한정권은 친일청산활동과 더불어 다양한 진보적 정책들을 내놓으며 개혁을 실시한다. 지주계급에게서 토지를 몰수하는 토지개혁을 중심으로 남녀평등권법령 제정 등, 다양한 민주개혁도 이뤄졌다. 내용을 살펴보면 4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상당히 진보적인 정책들도 많았다. 특히 여성들의 자살률이 세계 2위였던 일제강점기를 고려한다면 이런 사회개혁이 민중의 큰 환영을 받았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3. 본격적인 계급투쟁노선과 2차 토지개혁
일제강점기의 지주소작제는 소작농계층을 핍박하는 폐해를 낳기에 토지개혁에 대한 지지도는 높았다. 물론 지주계층의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대다수가 노동자, 소작농이었던 북한의 인구비율상 적극적인 저항은 힘들었다. 또한 본격적으로 계급투쟁노선이 강화되면서 지주들의 입지가 약화되었다.
토지개혁 이후 북한은 본격적으로 계급투쟁노선을 추진하게 된다.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계급투쟁노선을 부과했기 때문이다. 2차 토지개혁은 이런 배경에서 실시된다. 계급투쟁노선은 민족주의 투쟁 노선을 약화시키기 위해 실시됐다. 이후 북한정권은 인민들을 출신성분과 사회성분으로 본격적으로 나누기 시작하며 인민국가의 형식을 띨 뿐인 본격적인 계급사회로 진입하게 된다. 소작농과 노동자들은 이런 계급사회에서 우대받으며 정치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고위직으로 진출하게 된다. 과거 지주 계층에게 수탈당했던 경험이 개입되며 지주출신들에 대한 제도적, 법적 차별을 낳게 된다. 2차 토지개혁도 이 경향에서 벗어나지 않아 항일 운동을 했거나 토지를 자진 헌납했던 양심적 지주들마저 2차 토지개혁의 축출 대상이 됐다. 지주 출신들은 저항보다는 월남을 선택했고, 훗날 서북청년단에 가입하여 북한에서 학살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4. 자서전을 통해 보는 북한
현재 북한연구는 6.25 전쟁 당시 미군이 북진하며 노획한 문서들을 바탕으로 진행되고 있다. 미국은 이 문서들을 National Archive에 보관해오고 있다. 북한연구의 메카가 한국이 아니라 미국인 이유다. 노획한 문서들 중에는 특히 자서전이 많았는데, 이를 통해 전쟁 전 북한인민들의 일상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동시에 이 자서전은 인민에 대한 정부의 통제 수단임을 알 수 있는데, 이를 바탕으로 사상검열이나 출신성분 검토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자서전들은 현재 한국에서도 쉽게 검색해서 찾아볼 수 있다.
다만 한국전쟁 이후의 자료는 상대적으로 적다고 한다. 학술적 자료와 1차 자료가 전전 시기에 비해 부족하므로 역사를 촘촘히 재구성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북한 사회가 그만큼 폐쇄적이라는 얘기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대한민국에서 자료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적다는 얘기로 들리기도 했다.
5. 강좌를 마치며
현재 북한학의 메카는 미국이라는 말이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몇 년 전, 북한 정권을 조롱할 의도로 북한의 공식트위터를 리트윗했던 음악인이 국가보안법으로 기소됐던 일이 있었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자료임에도 시민들이 북한에 대한 지식을 얻기 쉽지 않은 이유는 이와 같은 선례들 때문에 생긴 심리적 요인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 신기했던 점은 동아시아 4개 국(중국, 북한, 남한, 일본)중에서 미국을 아름다울 미美로 쓰는 것은 우리나라뿐이란 것이다. 다른 국가는 모두 쌀 미米자를 사용한다. 이런 얘기를 듣고 나니 어딘가 기묘했다. 우리가 얻는 지식과 사용하는 글자에마저 특정한 의도가 들어있다는 얘기니 말이다.
더 이상 북한을 공부할 때 금기의 지식을 얻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기를 바라며 다음 강의들도 기대가 된다. /김상헌 자원활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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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하학교] 일상의 ‘깨알’ 진행자 되기 | [후기] 교육이 아닌 배움으로, 가랑비에 옷 젖듯 스며드는 '깨알진행러 되기' - 홍리 | 느티나무 | 2018.11.8 | |||
<이왕하는거 푹 빠져보자고 생각했다 ⓒ참여연대>
교육이 아닌 배움으로, 가랑비에 옷 젖듯 스며드는 '깨알진행러 되기'
처음 강의실에 들어섰을 때 '아.. 써클, 초..' 평화학교(?)의 향기가 물씬. 그래서 바로 내려놓았습니다. 부끄러움과 어색함 뒤에 머물렀다간 6주가 고난일 수 있겠다 싶어서요. 이왕하는 거 푹 빠져보자 마음 먹었습니다.
매번 나를 열고, 풀어 놓고, 익혀도 보고, 오늘의 활동을 돌아보며 닫기를 반복하다 보니 묘하게 편안하더라구요. 돌이켜보면 그 안에는 환대, 부탁, 거절, 침묵, 기다림, 경청, 자진, 기여, 감사, 믿음 등의 여러 키워드가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는 우리가 머문 공간, 사람과 사람 사이, 함께한 시간 내내 녹아들어 있어 단기 속성 쪽집게 과정이 아니 스스로 깨달아가는 배움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너도 나도 비슷 비슷한 진행자가 되고 싶다면, 패스- 나만의 색깔을 살려 한뼘씩 커가는 진행러가 되고 싶다면, 답은 와하학교 '깨알진행러 되기'에 있다는.
함께 배우고, 서로를 키워준 동기들에게 감사드려요.
p.s. 저는 오늘 침묵을 견딤으로 자진하여 역할하겠다는 동료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함께한 모든 동료들이 그에게 감사를 전했습니다. 긍정의 에너지로 모두의 기운을 북돋고, 서로와 서로를 연결해 줌을 느낄 수 있었어요. 깨알진행러 홧팅~ /홍리
<서클로 모여 앉을때 우리는 다른 배움의 시공간을 경험한다 ⓒ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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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집_알수록 쓸모있는 신기한 집 이야기 | [후기] 11/1 알쓸신집_알수록 쓸모있는 신기한 집 이야기 4강 (최경호 선생님) | 빛깔 | 2018.11.7 | |||
자신이 벌어온 소득의 반 이상을 주거비로 내는 오늘날, 안정적으로 머물 공간에 대한 불안함은 여전합니다. 이러한 흐름 속 셰어(share)하우스, 빈집 살리기 등 다양한 형태의 집이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게 뭐길래 하나의 대안으로서 부각되는 걸까요? 알쓸신집의 마지막 강의는 국내외 사회주택의 현황과 대안으로서의 3자협력형 주거모델의 과제에 대한 것입니다.
사회주택, 대체 무엇이길래?
통용되는 사회주택 ‘정의’들의 특징은 목적(대상), 소유주체, 재정 부담 기준이지만, 사회부문을 토대로 간략히 정리하면 ‘호혜성에 기초해 공공의 지원을 바탕으로 주거선택권을 확장하는 주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를 국가(재분배, 정당성)-시민사회,사회적경제주체(호혜성,자발성,자치)-시장(선택,경쟁,효율성)의 3자 대면 형태로 보는데, 어느 쪽에 더 가깝게 생길 수도 있지만, 이윤을 고려하지 않고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의 사회주택은 시민사회와 국가정책의 중간에 있습니다. 서울시 사회주택 조례에는 대상, 공급(관리)주체 등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유럽의 사회주택을 알아봅시다
우리나라는 자가점유율이 높은 반면, 유럽 각국의 주거점유형태는 자가점유와 더불어 사회임대의 비중도 높습니다. 제도(주거보조비+임대료 통제, 주민등록)와 비례대표제를 통해 세입자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정치를 한다는 부분을 차이점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유럽 각국마다 주거레짐은 다른데, 그 중에서도 네덜란드와 오스트리아는 공공과 사회영역의 역할분담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반면 노르딕, 지중해 등은 복지체계에 넣거나, 우리나라와 유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이번 강의에서는 네덜란드와 오스트리아 사례를 집중적으로 설명해주셨습니다.
네덜란드는 주택협회(비영리 주택회사)중심 모델로 운영됩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주택협회 보유 물량 중 규제부문에 속하는 물량만이 사회주택으로 간주되지만, 주거 중립성(보편 복지/단일임대시장/주거선택권 보장)을 실현해 양,질적 측면에서 성공했습니다. 19세기 말 도시화,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기독교 박애주의+온건 사회주의로 시작되었다가, 전후 복구 이후 민간 이양을 하면서 규모화와 전문화(1970년대)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1995년 재정 독립 및 자율을 추구한 후, 2015년 신주택법이 제정되면서, 풀뿌리 강화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이후 각 공동체의 특성마다 여러 사회주택이 세워졌습니다. (ex. ‘물거미’ 생태공동체 주택- 자원재활용, 분양+임대 공존)
다음으로 오스트리아는 공공부문과 사회부문이 병존한 모델을 중심으로 했습니다. 지자체 공급 ’공공임대주택(60%)’+민관협력형 ‘제한영리 주택’을 통칭합니다. 네덜란드보다 공동체성이 강한 터라 공동체를 먼저 구성한 후 공공기금을 활용해 건설했으며, 이에 따라 임대료 통제/입주자 선정 방식이 연동되었습니다. 비엔나 주택부문에는 사회주택의 비중이 45%에 달했으며, 섞여있는 유형이 많습니다. 또한 ‘시설’복합형 공동체 사회주택을 설립, 지역주민과 같이 사용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서울시의 사회주택 사례들
서울시의 사회주택은 조례 제정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조례를 세우기 이전은 지방자치단체와 풀뿌리의 협업, 마을공동체 브랜딩과 제안, 제도화(조례, 협회, 센터)의 흐름이었습니다. 사회적 경제 주체의 사업 확장(아이부키), 임팩트 금융(사회적금융) 등의 풀뿌리 실험과 사회주택 용어가 도입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금천구의 보린주택을 들 수 있습니다. 홀몸 어르신을 대상으로한 맞춤형 공공주택이었으며, 설계에 주민이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30대부터 인구가 감소되는 한편, 청년 주거빈곤 문제가 부각되면서 개선방안연구용역(2014.08)을 시작으로 사회주택과 중간지원조직이 세워졌습니다. 이후 이를 기반으로 사회주택 사업이 진행됐는데, 3가지 유형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바로 토지임대부, 비주택 리모델링형 그리고 글머리에서 언급했던 빈집살리기입니다. 첫번째로 토지임대부(토지 it’s)는 서울주택공사가 공공토지로 매입한 민간토지를 30~40년간 저리임대하고, 민간이 신축하거나 리모델링을 하는 유형입니다. 녹색친구들과 금천구의 홍시주택이 해당되는데, 특히 녹색친구들은 정미소를 세워서 지역주민들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의 역할을 했습니다.
두번째로 비주택 리모델링형입니다. 이 유형은 민간이 비주택을 장기임대하고, 서울시는 임차기간에 따라 공사비를 보조합니다. 제일 많이 리모델링되는 건물은 고시원인데, 셰어하우스로 리모델링하는 게 주입니다. 갈현동의 셰어하우스 ‘자몽’이 이에 해당됩니다.
마지막으로 빈집살리기는 비주택과 마찬가지로 민간이 도심내 빈집을 장기임대한 후, 서울시로부터 공사비 보조를 하고있습니다. 대학생과 지방출신의 취업준비생을 대상으로 한 두꺼비 하우징 ‘공가’가 대표적입니다. 다만 빈집살리기 유형은 공사에 어려움이 따르며, 빈집이 된 요인도 다양합니다. 물론 입주민과 공급자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지 등의 한계점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서울시의 사회주택은 공공-사회-민간이 3자협력으로 진행되면서 고용창출 및 사회적 경제 영역이 활성화가 되었다는 점, 도시재생의 유용한 수단인 점, 복지국가의 4대 기둥으로 자리잡음 등의 의의가 있습니다.
여전히 과제는 있다
지금까지 훑어봤던 것처럼 사회주택은 종교와 사회적 바탕을 기반으로 형성되었다가 주거복지, 나아가 도시재생과 큰 관련이 있는 하나의 키워드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해결해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사업성과 공동체성의 기준을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 협동조합의 임대료 문제를 비롯한 경제적 문제 등이 즐비합니다. 특히 공간인지, 인구에 관한 인지적 사고가 바뀌어야 한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기존의 공간은 ‘4인지구+초등학교’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20~30대/50대 1인 가구’의 친화적인 공간으로 재편해야 하며, 커뮤니티 공간을 활성화해 지역사회와 공존할 필요가 있습니다.
며칠 전, 주거 대안 중 하나로 ‘퍼즐주택(임차인의 의견에 맞춰서 설계하는 주택)’이 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여러 형태의 사회주택이 나오면서 ‘집’을 단순히 소유의 대상이 아닌 날이 올까하는 막연한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까지 네 번의 강의를 들으면서 우리가 원하는 주거를 당당히 요구하는 것이, 작지만 큰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꼭 그런 날이 올 거라는 믿음과 함께 말이죠.
작성 : 고은비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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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이슈 따라잡기 공부모임 | [후기] 10/25 한국사회 이슈 따라잡기 공부모임 2강 : 소득주도성장, 일자리를 중심으로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조혜경 실행위원) | 개똥이 | 2018.11.6 | |||
이번달 공부모임 주제는 “소득주도 성장에 대하여”였다. 저번 달에 현장에서 바로 나온 ‘우리가 알아보고 싶은 한국사회’의 주제였다. 너무 방대한 이야기가 될 수 도 있어서 오늘은 일자리를 중심으로 키워드를 줄였다.
첫 시작은 ‘소득주도 성장’을 올바르게 명명하는것에서 출발했다. 경제학계 명칭으로는 ‘임금주도성장’이 맞는 말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임금주도성장이 학계에서는 비주류 측에 속한다는 사실에 한 번 놀랐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서 제시한 정책이라서 그런지 임금주도성장이 주류라고 무의식 중에 생각하는 경향이있었나 보다. 하지만 경제학 측면에서 곰곰히 생각해보면 당연히 비주류의 경제학이라고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주류 경제학에서는 자본의 공급, 즉 투자를 통해서 수요할 물건들이 생산되고, 그렇게 생산된 물건을 소비자가 소비함으로써 이윤이 창출되기 때문이다. 즉, 물적자본을 투자하는것에서 부터 사회경제의 사이클이 시작하는 것이다. 때문에 주류경제학에서는 ‘소득’보다는 ‘공급’에 치중될 수 밖에 없는 ‘이윤주도성장’을 지향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윤주도성장이란, 투자중심의 친자본주의의 성장이론이다.)
거기에 반하는 비주류 이론이 ‘임금주도성장’ 이론이다. 쉽게 말하자면, 이윤주도성장은 친親자본가 이론이고, 임금주도성장은 친親노동자 이론이라 할 수 있다.
임금주도성장은 포스트 케인즈주의자들이 지향하는 이론으로써, 완전고용을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서 직접고용을 할 수 있다는 개념을 담고있다. 고용률이 높아져서 노동자들이 늘고, 노동자들이 높은 임금을 받게되면, 그 임금으로 소비를 하게되서 경제 사이클이 돈다는 말이다. 여기서 포인트는, 자본가들의 ‘투자’로 부터 경제 사이클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임금’이 있음으로써 경제 사이클이 돌게된다는 점이다. 결국 ‘소득’이 성장의 원천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 소득향상은 어떻게 이뤄질 수 있을까? 간단하게 예를 들어서, 100을 벌던 고용주(자본가)가 다음달에 110을 벌게 된다면 그 10을 노동자에게 주면 간단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추가이윤 10을 노동자에게 줄 고용주가 과연 몇이나 될까? 자신의 더 많은 이윤을 위해 노동자의 임금을 줄이려고 하는 고용주가 더 많을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서 ‘플랫폼 자본주의’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플랫폼 자본주의는 비배제성, 비경합성, 한계비용이 제로인 디지털 재화의 개념이 도입되면서 기존의 노동의 성격을 변화시킨다. 플랫폼 자본주의의 좋은 예시로서 Google, Facebook, Twitter 또는 YouTuber나 파워 블로거, 개인 VJ들 같은 것들이 있다. 이들의 특징은 기존의 고용관계를 넘어서서 노동 투입이 없는 가치생산 활동을 한다는 점이다. 고용된 노동자의 물건 생산이 아닌, 개인의 자발적인 컨텐츠나 서비스 생산으로써, 강제적 노동이 없는 생산활동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기존 경제학에서 벌어지는 이윤의 분배에 관한 논쟁이 희미해진다. 뿐만 아니라 물건의 소비에서 가치의 소비로 들어서면서 ’9 to 6’의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 것이다.
그렇다면 소득을 낼 수 있는 일자리는 과연 어떻게 만들어낼까? 이는 다시 ‘일자리 보장’과 ‘기본소득’의 두가지 해결법으로 의견이 나뉠 수 있다. 전자는 일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생활임금을 위한 일자리를 보장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후자는 강제된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고 적극적 자유 실현을 추구한다. 따라서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분배하는 의무를 지게된다.
현재 실리콘벨리의 CEO들은 후자를 지지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들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치 창출의 시대에는 더이상 기업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이다. 여기서 기업의 일자리는 ‘9 to 6’의 직장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에 과연 ‘기본소득’의 개념이 도입되는것이 가능할까?? 이 점에 관해서는 강사님의 말씀에 동의했다. ‘일하지도 않는자, 먹지도 말라’라는 관념이 공공연하게 깔려있는 한국사회에서는 아직은 ‘일하는 자들에게만 먹을 것이 허락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청년일자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100세시대에 일자리를 구하는 장년층이 늘어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노동력을 우리사회가 포용할 수 없다면, ‘기본소득’은 언젠가는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구는 메인이슈로 떠오르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언젠가 올 그 날을 위해서 우리는 지금 기본소득에 관해서 알아가고 논의해 나가는 시간을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 매번 일이 터지고 나서야 부랴부랴 찬반부터 갈라져서 흑백 잣대로 표면적인 토론을 벌이기에는, 먹고사는 문제는 모든사람들에게 너무나 중요한 주제이기 떄문이다.
강의를 마치면서 질문시간을 가졌다.
질문 하나. 청년 일자리 문제에 관한 양적 말고, 질적인 연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질문에 대한 답이 참 씁쓸했던게 기억에 남는다. 질적인 고민을 하는 정책전문가 또는 경제전문가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거시적인 면에서는 실업자가 4.1% 밖에 안돼, 거의 완전고용을 이룬 상태이고, 또한 청년일자리 문제는 몇 년 지나면 청년 수 자체가 줄어들어서 자연스럽게 해결 될 것이라는 것이다. 다른 나라랑 다르게 우리나라는 고高스펙 청년들이 많기때문에 개개인의 노동력은 올라가는데 비해 고용시장은 많이 변하지 않았다는게 문제라는 말씀도 하셨다.
질문 둘. 플랫폼 자본주의가 도래하더라도 이윤의 재분배 정책이 잘못 된다면 결국에는 소득양극화가 더 심해질텐데, 이를 뒷받침 할 수 있는 기본소득 재화는 어디서 끌어오나요?
이 문제에 대한 답은 결국에는 정부가 더 강하게 규제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임금소득 격차 보다는 자산소득 격차가 더 커지는걸 막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것.
이번 공부모임은 이미 도래한 4차산업혁명과 AI 및 Big Data의 상용화와 연관해서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 시간이었다. 지금 닥쳐있는 일자리 문제를 넘어서서 미래에 대한 문제점에 머리가 아파오는 하루였다.
작성 : 정예지 자원활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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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하학교] 일상의 ‘깨알’ 진행자 되기 | [후기] 스킬이 아닌 사람을 알아갔던 시간들 - 임지은, 강수지 | 느티나무 | 2018.11.2 | |||
<책상없이 나를 드러내야 했던 당황 그리고 기대가 교차했던 순간 ⓒ참여연대>
스킬이 아닌 사람을 알아갔던 시간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단순 강의가 아닌 함께 이야기나누고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진행자의 역할이 무엇인지,
좋은 진행은 무엇인지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또한, 나의 평소 언어생활을 돌아볼 수 있어 좋았고 배운 내용들을 쉽진 않겠지만, 작은 부분이라도 적용해보고 싶습니다. 6주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가서 아쉬움이 있는데, 좀 더 심화된 강의로 다시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단순한 진행스킬을 알고싶은 분 보다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의견을 자연스럽게 하나로 만드는 방법을 알고 싶은 분께 추천드립니다. / 가을(임지은)
<일상에서 힘을 빼는 말들. 우리는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 참여연대>
완벽하지 않아도
언제부턴가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모으로 무언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일들을 자주 만나게 되면서 어떻게 하면 더 민주적으로, 상처받는 사람 없이, 시간의 지체 없이 의견을 모으고 결정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그런 찰나에 만난 일상의 '깨알' 진행자되기는 깨알같은 연습을 통해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준 시간이었어요. 완벽하지 않더라도 조금씩 노력하다보면 더 나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함께 연습하고, 경험을 나눠주신 분들께 감사드려요. 참 즐거웠습니다. / 쿠쿠(강수지)
<기념촬영이라고 찍고 보니 삐뚤다. 와하학교에 사진촬영 능력자가 오시기를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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