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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명 | 강좌후기 | 글쓴이 | 날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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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은숙의 인권문헌읽기 | 인권문헌읽기 2강 '시민의 불복종' | 안녕 | 2009.11.3 | |||||||||||
류은숙 선생님과 함께 한 인권문헌읽기 2강의 주제는 “시민의 불복종”입니다. 사실 ‘시민의 불복종’은 뭐라고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려운데요. 아마 “인권이 뭐예요?”라는 질문이 인권활동하시는 분들이 제일 대답하기 어려운 것처럼 이번 강의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은 “시민의 불복종이 뭔가요?”가 아닌가 싶습니다. 시민불복종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공개성, 공공성, 의도성, 비폭력성, 위법성, 불가피성, 처벌감수 정도가 있습니다. 아, 너무 많아요. 이럴 때는 제 뇌를 딱딱하게 굳게 만드는 한 줄짜리 단답형 모범답안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이번 주에 시민의 불복종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함께 읽은 문헌은 소로우의 “시민의 불복종”, 마틴 루터 킹의 “버밍햄 감옥으로부터의 편지(Letter from Birmingham Jail)”, 1967년 <뉴욕타임스>에서 저술자들에게 요청한 베트남전을 반대하는 답변 중 하나인 노암 촘스키의 글 총 세 편입니다. 이 부분을 공부할 때는 류은숙 선생님의 저서 『인권을 외치다』 316-322쪽을 참고하면 좋아요. 먼저 ‘시민의 불복종’이란 용어의 창시자 격인 소로우에 대해 얘기를 나눴어요. 소로우는 인두세를 거부한 적이 있대요. 내가 낸 세금으로 인디언을 죽이는 데 사용하지 말라는 거죠. 고속도로를 만들거나 복지에 필요한 세금이라면 마땅히 내겠지만 내가 원치 않는 일을 정부가 하는 데는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거죠. 물론 소로우의 행동은 개인의 판단 하에 단독으로 한 일이기 때문에 이걸 ‘시민의 불복종’으로 볼 수 있냐는 점에는 이견이 있어요. 사람들을 집단적으로 조직하고 행동하는 걸 시민 불복종의 요건으로 보는 경우도 있거든요. 하지만 그 점은 차치하더라도 타인의 고통에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소로우의 인권에 대한 반응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예를 들어 소로우는 노예농장을 급습한 한 장군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적이 있어요. 당연히 일정 부분 군사병력이 투입되었으므로 물리적으로 폭력적인 행동이었겠지요. 그렇다고 소로우가 폭력을 지지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류은숙 선생님의 ‘시민의 불복종’이란 이름으로 한 행동이 정의로운지 혹은 폭력적인지를 결정하는 건 그걸 실천하는 시민과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이 결정하는 것이라 말씀하셨어요. 촛불집회 때 경찰들은 거리에 양초 하나 들고 나온 시민들 보고도 경계하고 감시했잖아요. 그럼 그 때 거리의 시민들은 폭력적인 행동을 했던 건가요? 완력의 여부가 폭력을 결정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방어적 폭력이라는 것도 있으니까요.
이번엔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쓴 편지로 넘어가볼까요. 사실 마틴 루터 킹은 목사 집안에서 자라서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은 평범한 목사였다고 해요. 그러다가 몽고메리 버스 사건 이후로 급부상한 거죠. 몽고메리란 사람이 피부색에 따라 자리를 차별하던 것에 반대해 백인에게 자리를 비켜주지 않아 시작된 사건은 다들 아시죠? 그 이후로 인종문제와 관련해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혜성처럼 등장했다고 해요.
이 <버밍행 감옥으로부터의 편지> 어떻게 쓰게 된 편지인지 알면 사연이 좀 복잡한데요. 지금은 그다지 진보적일 것조차 없이 당연해 보이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발언들은 그 당시에는 상당히 파격적이고 급진적인 것이었다고 해요. 운동을 하다가 킹 목사가 감옥에 잡혔는데 흑인해방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우리 흑인사회는 이 데모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다.」라는 글을 쓴 거예요. 어떻게 같은 이상을 바라보고 함께 하던 사람이 감옥에 갇힌 사람에게 이렇게 매정하게 등을 보일 수 있는 걸까요? 킹 목사는 이런 반응에 꽤 상심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이에 대한 답장으로 이 편지를 쓴 거죠. 버밍햄은 미국 내에서도 인종분리가 가장 철저하게 지켜진 도시였다고 해요. 여하튼 킹 목사는 동료 목사들에게 감옥에서 아주 긴 편지를 보냈어요. 그게 우리가 수업시간에 읽은 이 편지고요. 뒤 얘기를 조금 더 들려드리자면 이 글에 동료들은 또 우리는 시민권에는 찬성하지만 시민불복종에는 반대한다는 요지의 편지를 다시 썼다고 해요.
그들이 하는 얘기는 이런 거예요. 시민권은 이성에 호소하는 방법으로 확대되어왔는데 왜 너는 거리로 나가냐는 거예요. 그들이 예로 드는 건 브라운 판결인데요. 브라운 판결은 공립학교에서 인종을 분리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판결이에요. 그들은 시민권은 이런 식으로 확장시켜야 한다는 의견이었죠. 그러면서 킹 목사에게 공공의 목적으로 법을 어기는 당신이 다른 범법자보다 더 위험하고 나쁘다고 손가락질을 하죠. 여기에 킹 목사의 답변은 이래요. “왜 직접 행동하느냐고, 왜 연좌데모를 하느냐고, 협상이 더 나은 방도가 아니냐고? 이러한 당신들 의견은 전적으로 옳으며 협상이야말로 우리의 행동이 원하는 궁극 목표이다. … 우리 직접행동의 목표는 위기의식을 갖고 협상의 문호를 개방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일이다.” 반백년 전 이야기인데 왜 오늘날에 우리가 하고 싶은 답변과 이토록 닮아있는 건가요?
류은숙 선생님이 더 해주신 얘기엔 이런 게 있어요. 우리는 나치의 유태인 학살이 잘못된 거라고 배우잖아요. 그래서 당연하게 히틀러가 억지로 유태인을 수용소에 끌고 갔을 거라고 추측해요. 하지만 실은 유태인이 수용소에 가는 게 합법적이었던데다 차비까지 내야했다는 거예요. 그 비인간적인 행동들이 당시에 합리적이고 규칙에 어긋나지 않는 행동들이었다는 거죠. 그럼 그건 올바른 행동이었던 건가요?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하나하나 알 때마다 콩닥거리는 가슴!
노암 촘스키 이야기를 하면서 제가 인상적으로 들었던 부분은, 전쟁이 발발하면 정부는 국민들에게 “따스한 신체와 차가운 현금”을 바치라고 요구하는데 여기에 시민들이 너무 쉽게 응답한다는 거예요. 우리가 원치 않는 전쟁을 국가가 하려 할 때 우린 이에 반대할 수 있잖아요. 근데 이를 부정하는 것이 정당화되는 건 어렵게 느껴지는 걸까요? 히틀러의 심복이었던 나치 장교 헤르만 괴링이 “목소리를 내건 침묵하건 인민이 언제나 지도자들의 분부대로 하도록 할 수 있다. 아주 간단하다. 침략 받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애국심이 부족해 국가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평화주의자를 비난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걸 우리는 잊지 말아야겠어요.
매번 인권강좌는 류은숙 선생님의 열정에 압도된답니다. 가끔 선생님의 뜨거운 정열에도 제 눈꺼풀이 내려앉기는 하지만(아, 선생님! 죄송해요.) 다른 수강생 분들은 안 그러실 거예요. 후훗. 늘 새로운 인권 이야기는 다음 주에도 계속 됩니다. 기대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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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생애의 발견 :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는가 | 맛있는 간식과 함께하는 생애의 발견 강좌 | 안감독 | 2009.10.29 | |||||||||||
이번 가을강좌부터 느티나무 강좌에 한가지 변한 것이 있습니다. 다름 아니라 수강생 여러분이 직접 준비해 주시는 간식입니다. 강좌 시간에 맞춰서 오시기도 빠듯한 시간인데 다들 정성껏 간식을 준비해 주셔서 맛있는 간식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었네요. 오늘 <생애의 발견> 세번째 강의 시간에도 수강생이 준비해 주신 푸짐하고 맛있는 간식이 함께하였습니다. 느티나무 다른 강좌 수강생 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사진을 찍어 올립니다. 샌드위치, 인절미, 찐고구마, 녹두빈대떡입니다. 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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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은숙의 인권문헌읽기 | 인권문헌 읽기 1강을 듣고 | 자몽 | 2009.10.29 | |||||||||||
전체 8강 2달에 걸쳐 진행될 인권문헌 읽기 강의가 10월 22일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셨고 강의를 맡으신 류은숙 선생님께서도 열정넘치는 강의로 좋은 시간 함께 만들어 주셨습니다.
첫 시간은 본격적으로 인권에 대해서 공부하기 전에 오늘 날 인권 사상의 뿌리를 이루는 근대 이후의 세 가지 인권관련 문서를 다루었습니다. 영국의 권리장전 미국의 독립선언서 프랑스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이 그것입니다. 미리 준비해주신 각 선언의 전문을 가지고 세부적인 내용을 다 같이 검토해 보는 한편 각각의 그것이 같는 의미와 한계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셨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위 3가지의 인권선언문이 그것이 가진 한계를 간과하고 지나치게 최초로서의 의미를 강조함으로서 현실의 인권이 잘못 해석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이권과 인권을 혼용하는 것으로 이권을 위해 인권을 들먹이는 요즘의 추세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권리 장전이 가진 한계는 결국 귀족과 국왕이라는 나라에서 지극히 소수인 일부 특권계층들 사이에 권리와 의무를 명시한 일종의 계약서라는 것입니다. 비록 신민이라는 개념을 빌어다 쓰며 선언이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 처럼 보이나 기본적으로 국왕의 귀족에 대한 의무와 귀족들의 권리 보장에 그친 문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비판은 바로 권리장전의 개념적 토대를 이루는 로크의 사상입니다. 로크는 사적 소유권이 천부인권적인 권리를 가지며 그의 정당성을 주장한 학자입니다. "모든 인간은 자연상태에서 자유롭고 평등하다"라는 말은 권리장전 뿐만아니라 독립선언서와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에도 깊숙히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지만 자연상태가 아닌 사회상태에서의 인간의 권리를 미처 생각하지 못함으로서 오히려 자유의 제한과 불평등성을 정당화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고 지나친 낭비에 이르지 않는 선에서의 개인의 자유의 추구를 인정하고 노동을 통한 소유권을 지지한 그의 생각은 화폐의 등장으로 많은 모순을 안게 된 것입니다. 화폐의 등장으로 생산물의 직접축적이 아닌 화폐라는 상징적인 형태로서 무한히 축적하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재산의 무한 축적은 심각한 불평등 현상을 낳고 노동이 아닌 재산을 통한 재산 증식이 가능해져 더 심각한 불평등을 낳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독립선언서는 인권의 개념이 특권계층을 위한 수단으로 인식되었던 것이 아닌 만인을 위한 인권을 이야기하려 애썼다는 점에서 영국의 권리장전과 차별점을 갖습니다. 그러나 로크가 가진 사적 소유권의 근본적인 설명적 결함이 독립선언서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개인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구성하는 생명과 자유 행복추구권(재산권)에서 행복추구권에 대한 설명과 요구가 형식적인 수준을 넘어서지 않아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비록 만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실질적으로 인디언 흑인 노예등 사회적 약자계층에 대한 인권의 언급은 빠져있어 진정한 인권선언문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부족함이 있습니다.
프랑스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에 이르러서 비로소 인권의 개념이 체계화되고 외부로 확산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몇 가지 모순점을 안고 있습니다. 우선 만인의 인권을 외치면서 인간과 시민을 구분지었다는 점 (특히나 이 시기 프랑스에서 인권의 보호를 받는 사람들은 모두가 아닌 정치적 투표권을 가진 일부의 계층만을 한정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법과 인권을 구분하여 인권보다 법이 우위에서는 법치 만능주의의 위험을 남겼다는 점 마지막으로 개인의 자유(특히 소유권)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평등을 훼손하게한다는 점을 간과했다는 사실입니다.
선생님께서 위의 세가지 대표적인 근대 이후 인권선언문을 통해 공통적으로 지적하신 내용은 모두 소유권, 재산권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물론 개인의 소유권이라는 것은 순수한 관점에서 본다면 부정할 수 없는 개인의 권리입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작동하는 재산축적의 불평등한 과정 그리고 계급의 특수한 구조에서 기인하는 잉여가치 획득과 자본의 독점적 소유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개인의 소유권을 더럽히고 있습니다.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하고 노력과 능력에 따른 정당한 보상이 이뤄지기가 어려운 빈곤층 사회적 약자 소외계층(여성, 장애인, 외국인 등)을 위한 실질적인 소유권의 개념이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근대적 인권 소유권은 사회경제적인 차이 권력구도를 인정하지 않은 형식적인 수준의 선언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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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생애의 발견 :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는가 | 생애의 발견 첫수업 | 개똥이 | 2009.10.15 | |||||||||||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강의를 들은 대학생 자원활동가입니다. '생애의 발견 :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대해 김찬호 교수님께서 강연해주셨습니다. 강좌 전 교수님께서 테이블에 미리 사진을 늘어놓는 것을 보고 어떤 용도일까.. 궁금했습니다. 강좌를 시작하고 수강생들에게 각자 마음에 드는 사진을 하나씩 골라 본인이 이 사진을 고르게 된 이유와 함께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강의를 시작하는 새로운 방법이라 신선했습니다.
한분 한분 씩 사진을 선택한 이유와 자기소개를 들으며 수강하시는 분들에 대해 더욱 잘 알게되었습니다. 폭포를 보면서 젊은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는 분도 계셨고 나무를 보며 노년과 사후에 대해 생각하는 분도 계셨습니다. 자연과 함께 하셨던 분도 계셨고 아이들을 가르치다 오신 분, 출판업에 종사하시는 분, 본인이 만든 이름과 이에 얽힌 사연을 말씀해주시는 분 등 사진과 이에 얽힌 자기소개를 통해 다양한 타인의 삶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단순한 자기소개일 수 있지만, 이것도 사진과 자기소개를 통해 자신의 생애를 story telling하는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 강의인만큼 무겁지 않게 시작했는데, 어른이 되려는 요새 아이들과 젊어지고자 노력하는 어른들은 얼핏보기에 가까워지는 듯 하지만 세대간 소통의 부재와 단절로 인해 오히려 간극이 벌어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셨습니다. 수강하시는 분들과 달리 저는 강좌를 들으시는 분들과 간극이 벌어진 20대이기에 반대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도 저와 10살 이상 차이나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적고 대화를 깊이 있게 나누어 본 적이 없습니다. 사실 아까 자기소개를 주의깊게 들은 것은 제가 아직 대학생이라 많은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다양한 경험을 가지신 수강생분들의 삶이 저와는 멀어서 신기하기도 하고 대단하게도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신선하고 새로운 느낌이었는데 그게 세대간의 간극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고 이렇게 대화를 통해 소통하며 세대간의 차이를 메꿀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도 들어서 앞으로의 강의가 기대되었습니다.
이 수업을 신청하신 이유에 대해서도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일상을 바쁘게 살아오신 분들이 '일생'을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이 자리에 오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죽음'과 '일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지친 몸을 회복하고 살아온 일생을 되돌아보고 다른사람과 이야기하며 또한 앞을 향해 나아갈 계획을 찬찬히 세울 기회가 되는 강의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교수님께서 오늘 강의안에 <생애의 발견>이라는 책을 통해 다른 생애 단계에 있는 삶을 살펴보고, 자신의 인생과 메세지를 후배들에게 물려주는 어른과 어른의 스토리텔링에 귀기울이며 발전해가는 젊은이 등 세대간 소통을 통해 각각의 라이프코스를 분석하고 이해하며 더 나아가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라이프 코스를 통과할 지 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겠다고 적혀있었습니다. 문구를 보자마자 '스토리텔링을 귀담아 듣고 발전하는 젊은이'가 되어야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5주간 교수님과 다른 수강생께서 이야기해주실 스토리텔링 강좌를 통해 '생애의 발견'을 할 시간이 기대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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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으로 만나는 혁명의 추억 | “여행으로 만나는 혁명의 추억” | 안녕 | 2009.10.12 | |||||||||||
이번에 처음으로 수강하게 된 느티나무의 강의는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손호철 교수님의 <여행으로 만나는 혁명의 추억>입니다. 이전에 참여연대 1기 인턴을 하면서 참여연대의 뛰어나고 유려한 명사들을 만나본 기억이 있는지라 참여연대에서 하는 시민교육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신뢰감이 들었고, 그래서 크게 고민하지 않고 자원 활동과 병행해 이번 강좌를 듣게 됐습니다. 이번 강좌는 라틴아메리카 혁명과 중국 대장정 크게 두 사건을 손호철 교수님이 다녀오신 여행을 토대로 다루었고요. 저는 특히 라틴아메리카에 관심이 많았는데 저 외에 다른 분들도 특히 라틴 선호도가 높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강좌는 총 5번이었는데, 앞 2강은 라틴아메리카 혁명을 3번째 강의는 혁명 안에서 잉태된 음악을 뒤 2강은 대장정을 통해 만난 중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첫 날 강연은 쿠바, 베네수엘라, 브라질, 칠레의 혁명에 대해 들었습니다. 어떻게 교수님이 라틴 아메리카를 방문하게 되셨는지 여행의 경로를 따라가면서 기본적으로 라틴아메리카의 국가 특성에 대해 배웠습니다. 예를 들어 라틴 아메리카는 크게 네 가지 인종으로 인디언과 백인 혼혈이 중심이 되는 멕시코 형, 지역상의 특징으로 순수 인디오가 많이 남아있는 페루 형, 기존의 인디언은 대부분 학살되고 백인들이 지배하는 아르헨티나·칠레 형,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강제 이주한 흑인이 많이 사는 쿠바, 브라질 형으로 유형을 나눌 수 있습니다. 이런 인종적 차이는 서로 다른 사회문제와 혁명의 문화를 만들어냈고요. 게바라가 구원하고 또 아직도 국민 절대다수를 먹여 살리는 쿠바는 우리가 금강산에 가듯 멕시코 국영여행사를 거쳐 입국하게 되는데요. 스페인의 식민지였다가 미국의 식민지 신세를 면치 못했던 쿠바는 카스트로의 혁명으로 몇 안 남은 사회주의 체제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입니다. 환율차로 인한 경제문제가 심각하지만 교육과 의료만큼은 어느 국가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만큼 잘 되어 있고요. 차베스와 미인, 앙겔 폭포와 석유로 유명한 베네수엘라는 볼리바르 혁명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1인당 위스키 소비량이 세계 최고인 만큼 상류층의 유럽주의는 심각하지만 빈민층에 대한 교육이 잘 이루어져있고 민중들이 자기 조직화하는 능력이 뛰어난 베네수엘라는 현재 차베스가 중국과 전략적 제휴를 하며 남미공동체를 만들려는 노력을 하고 있으니 앞으로 추이가 기대되는 국가입니다. 브라질에 대한 소개는 세계 3대 미항으로 손꼽히는 리우데자네이루가 사실은 노예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로 시작됐습니다. 또 그 뒷면에는 치외법권 지역으로 마약상이 지배하는 최대빈민촌이 있기도 하고요. 빈민지역이 전체 국토의 70%에 달하고 문맹률 또한 12%나 되지만 리우와 삼바로 대표되는 그들의 유희와 라틴적 삶의 모습은 일에 치여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기 어려운 우리에게 부러움을 살만하기도 합니다. 강연은 늘 알차고 재미있었지만 느티나무에 오면 공부만 열심히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중에 백미는 수강생들이 준비해오는 간식이었는데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하잖아요. 대부분 저녁도 거르고 퇴근 후 학업에 대한 열의로 달려오시는지라 몇몇 수강생 분들이 돌아가며 자원해 준비해주시는 간식은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직접 떡을 만들어서 오신 분도 있었고요.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한 속이 꽉 찬 김밥은 식단에 빠지지 않고 올라오고, 한살림의 오미자차는 늘 맛깔나답니다. 먹으며 나누는 담소는 언제나 즐거우니까요. ‘음악으로 본 혁명’ 수업시간에는 손호철 교수님께서 준비해온 음악을 감상했습니다. Ruben Blades는 파나마 사람이지만 쿠바의 살사를 대중적으로 알린 사람인데요. 그의 음악을 맛보고 싶은 분이라면 Buscando America(아메리카를 찾아서), Desapariciones(실종자들)을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포크송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Jose Marti의 시에 곡을 붙인 Pete Seeger의 Guantanamera를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음악은 각 국가별로 특성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중남미 국가별로 음악을 들어보고 싶으시다면 엘살바도르는 Charlie Haden의 The Ballad of the Fallen이나 Yolocamba Ita의 Song to the Revolutionary Homeland를, 니카라과는 Ballad Campestre, 페루는 el condor pasa, 베네수엘라는 Simon Bolinvar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칠레하면 영화 Missing으로 더 유명한 Victor Hara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요. 저는 그보다 Quilapayun의 음악이 좋았는데요. 다소 엄숙하고 장중하기는 하지만 그 점이 더 매력적이라 이 수업을 듣고 Serie De Oro라는 그들의 음반을 하나 사서 듣고 있답니다. 너무 무거워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자메이카 레게의 진수 Bob Marley & The Wailers의 Legend도 함께 말이지요. 배움은 항상 강의실에서만 이루어지는 건 아니지요. 우리는 우리의 배움을 더 확산하고 삶에 적용시켜보려 직접 살사 바에도 방문했답니다. 공식 뒷풀이 장소가 되지는 못했지만 수강생이 소개해준 홍대의 한 살사 바에서 멋진 살사 솜씨도 구경하고요. 흥겨운 라틴 음악과 함께 딱딱하게 굳은 몸을 열심히 놀려보기도 했답니다. 손호철 교수님이 적극 추천해주신 쿠바의 대표 술 모히또와 함께 하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그 바에서는 팔지 않더군요. 중남미에서의 아름다운 여행은 한가위의 두둥실 달과 떠나보내고 그 다음부터는 중국 대장정에 함께 했습니다. 1934년에 시작한 장정은 장시성에서 시작해 산시성 옌안으로 이어지는 1만 3,800km의 대이동을 통해 중화인민공화국을 만들어 낸 정치 대장정입니다. 중국 공산당의 중화인민공화국을 탄생시킨 모태이자 마오쩌둥을 중국의 1인자로 세운 결정적 계기이지요. 손호철 교수님께서 안식년 동안 베이징 올림픽을 맞이해 방문한 외국 언론에서도 완주한 경험이 드문 중국 대장정 길을 샅샅이 살피며 수집한 생동감 있는 자료를 수강생들에게 아낌없이 공개해주셨답니다. 중국공산당이 창설된 신톈디의 화려한 서구식 카페 거리에서 느낀 혼란, “모든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마오 말의 본의, 마오의 탄생지인데도 그 가는 길이 비포장도로인 것을 보면서 마오 우상화가 이뤄지지는 않았다는 안도감, 경유 품귀 현상을 마주치며 추후 중국의 에너지 문제에 대한 상념, 관념을 배제하고 경험과 생활에서 우러난 생생한 현장성을 바탕으로 한 홍군의 기본 규율을 보며 성공하는 혁명은 어때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진보에 대한 성찰은 물론이고 세계 제일의 장발촌인 야오족 마을과 햇빛에 반사되 더욱 아름다운 다랑논까지 두 번에 걸친 강연을 통해 손호철 교수님과 장정을 그대로 함께 한 것과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차마고도의 연출 담당자가 편집했다는 장정 소개 영상도 무척 좋았고요. 다섯 차례에 걸친 강연을 함께 하면서 여행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또 그 안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많이 느꼈습니다. 세계사 수업시간에도 배우지 않았던 라틴에 대해 그리고 이웃한 나라이면서도 관심이 없었던 중국의 장정과 내면의 힘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강연을 아쉽게 놓치신 분들이라면 손호철 교수님의 저서인 “마추픽추 정상에서 라틴아메리카를 보다”와 “레드로드”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아님 이 강의를 모두 촬영 편집한 한겨레의 하니TV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고요. 이번 강의를 듣고 나니 앞으로 느티나무가 준비하는 강연에 대해 더 욕심이 생겼습니다. 앞으로 느티나무에서 더 많은 얼굴들을 만나게 되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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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은숙의 인권문헌읽기 | [화제의 책] 가장 약한 사람들의 외침, 세상을 바꾸다 | 느티나무 | 2009.10.9 | |||||||||||
10월 22일부터 시작되는 [류은숙의 인권문헌읽기] 강좌의 강사인 류은숙 선생님이 얼마전 <인권을 외치다> 라는 책을 펴 내셨습니다. 이번 인권문헌읽기 강좌도 이 책을 바탕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아래 글은 참여연대 회원소식지인 월간 [참여사회]에 실린 조효제 선생님의 서평입니다.
가장 약한 사람들의 외침, 세상을 바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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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 경성, 서울을 걷다 | 한성, 경성, 서울을 걷다 강좌 이렇게 진행되었습니다. | 느티나무 | 2009.9.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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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동 화백의 만화로 돌아보는 나의 삶과 배움 | 박재동 화백의 오픈특강, '만화가 박재동' 탄생의 비밀은? 낙서를 칭찬한 부모 | 느티나무 | 2009.9.3 | |||||||||||
9월 1일 박재동 화백의 오픈 특강을 시작으로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의 가을강좌가 시작되었습니다. 오픈 특강에 참석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아래는 프레시안에 실린 박재동 화백 오픈특강 정리기사입니다.
'만화가 박재동' 탄생의 비밀은? 낙서를 칭찬한 부모! 박재동 화백의 '만화로 돌아본 삶과 배움'만화는 유치하다? 그런 오명을 벗은 지는 오래다. 아직도 청소년들이 만화를 보는 걸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긴 하지만, 많은 이들은 만화의 긍정적인 면에 더 주목한다. 학습 만화 시장이 커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알려진 만화가 중 한 명인 박재동 화백. 그는 이제 만화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바로 "만화가 책의 역사 속에서 대단히 진화된 형식"이라는 것. 만화와 그림은 글보다 읽는 이가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뿐만 아니라 읽는 이의 상상력 공간이 확장되는 것도 만화가 가진 장점이다. 그러나 글과 그림은 여전히 '따로' 배워야 하는 존재이다. 미술 시간에 글을 쓰거나, 문학 시간에 그림을 그릴 때 칭찬해주는 교사가 몇이나 될까? 박재동 화백은 "초등학교 1학년은 그림일기를 쓰지만 6학년 일기장에는 그림 그리는 칸이 없다"며 "6학년이 그림을 그리면 선생님이 꾸짖는다"며 통탄스럽다고 말했다. 이처럼 만화가 우리 사회에서 천시됐던 이유를 두고 박재동 화백은 한 가지 원인 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바로 "시험에 안 나오기 때문"이다. 대학 입시에 만화가 등장한다면? 아마 태교 풍속부터 급격히 달라질지도 모른다. 지난 1일,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는 박재동 화백의 강연이 열렸다. 참여연대에서 주최하는 '아카데미 느티나무 2009년 가을 강좌'의 오픈 특강이었다. 고등학교 미술 교사에서 시사 만화가로 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살아온 박재동 화백이 들려준 강의의 주제는 '만화로 돌아보는 나의 삶과 배움'. 초등학교 시절부터 자신의 그림을 차곡차곡 모아놓았다는 박재동 화백은 슬라이드로 그 그림들을 보여주며 순식간에 청중을 자신의 삶 속으로 끌어들였다. 거기에는 만화를 꼭 닮은 그의 풍부한 제스처와 효과음도 톡톡히 작용했다. 그의 이야기는 비단 만화 뿐만 아니라 자녀 양육에 대한 지혜가 담긴 하나의 교육 강좌이기도 했다.
"아이의 낙서는 존재의 표현, 감상하고 칭찬해줘라" "초등학교 입학 전의 일이다. 너무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다른 도구는 없고, 송곳이 눈에 띠었다. 장판을 찍으면서 그 전날 봤던 바다를 그렸다. 내 자신에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 자랑스럽게 찍고 그렸다. 집에 오신 부모님이 보시곤 '잘 그렸네'하고 아무 말이 없었다. 그 사건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아이가 6~7살이 되면 주는 대로 그릴 때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선 하나에도 아이는 엄청난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 자기 나름대로는 너무 자랑스러운 거다. 마치 아기가 울면서 나는 소리를 낼 수 있다고 아는 것처럼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의 존재를 막 발현하는거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모는 자녀가 그 같은 일을 벌였을 때 정반대의 반응을 보인다. 아이가 낙서로 어딘가를 어지럽히면, 대개 어른들은 '본능'적으로 고함을 지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박재동 화백은 "쉽진 않겠지만, 그럴 땐 우선 아이의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감상을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아이가 그림을 그릴 때는 행복하고 기쁜 순간이다. 생각해보라, 벽지가 중요한가, 아이가 중요한가. 아이의 행복, 기쁨, 자신감, 표현력의 싹을 벽지 때문에 잘라버리면 다음부터 아이는 주춤한다. 아이가 신나게 그림을 그리는 대신 조용히 앉아 있다면 오히려 더 걱정해야 할 것 아닌가. 그림은 존재의 외침이다. 잠시 감상한 다음에 칭찬하라. 어차피 결과는 같다. 그 다음엔 종이를 벽에다 붙이고 앞으로 여기다가 하라고 하면 된다." "권총 그려주고 20원 받던 기억…초등학생도 경제 활동 해야 한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그때도 그림을 잘 그렸다. 어느 날 우리반 아이 하나가 나에게 오더니 정중하게 그림 하나를 주문했다. '권총을 하나 그려주면 20원 줄게'라고. 너무 뿌듯했다. '프로'라는 생각이 든 게 그때부터다." 박재동 화백이 두 번째로 강조한 것은 바로 "초등학생도 경제 활동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는 "얼마 전 동네에 사는 한 아이가 10쪽 정도 되는 그림 동화책을 직접 만들어 500원에 팔고, 자기 용돈을 만드는 걸 봤다"며 "그런 아이의 장래는 보나마나"라고 말했다. 박 화백은 "누군가 자신의 작품을 사겠다고 할 때, 내가 정말 하나의 작가로 존재한다는 자긍심과 책임감, 사명감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때부터는 누가 굳이 뭘 시킬 필요가 없다. 그런 사람은 남을 기쁘게 해 줄 수 있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할 일을 잘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게 된다"고 강조했다. "어렸을 때부터 내가 꿈꾸는 전시회가 있다. 초·중·고등학생, 일반인 가리지 않고 누구나 와서 자기가 그린 그림을 파는 일종의 '엑스포'다. 큰 돈이 오가지 않아도 된다. 어른이 사줄 수도 있고 친구가 사줄 수도 있다. 얼마나 스스로 존재감을 느끼고 뿌듯해 하겠나. 나 스스로 일해서 돈 벌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해줘야 한다."
"일상이 중단됐을 때 기회가 오기도 한다" "고등학교 재수를 했다. 시간이 남아서 만화를 그렸다. 초등학교 때부터 만화는 그렸는데, 그때 처음으로 114쪽짜리 만화를 그리고 '끝'을 썼다. 이걸 하나 그렸기 때문에, 든든하게 그 시기를 지낼 수 있었다. 계속 되어오던 일상이 중단됐을 때 자기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기도 한다." 청소년 박재동은 같은 영화를 몇 번 볼 정도로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았고, 결국 고등학교 재수라는, 당시로서는 힘든 일을 맞았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그때가 자신에게는 성숙의 시기였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그의 경험은 이후 자녀들에 대한 교육 철학에도 이어졌다. "초등학생으로만 여겼던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이 된 뒤, 문득 나 자신의 고1 때가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러면서 '얜 어른이구나'라고 생각하고 결심했다. 친구로 지내야겠다고. 인도 마누법전에 보면, 자식이 16살이 되면 친구로 대하라는 문구가 나온다. 그때는 이미 독립적 인격이 형성된다는 뜻이다. 아버지로서 뭘 시키려 하면 반항을 하고 트러블이 생기지만, 친구로 대하면 문제가 없다. 이건 분명 해봐서 안다. 아들이 어느 순간부터 자기 속내를 친구처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더라. 그 대화의 맛이 너무 좋다. 가끔 이러다 애를 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지만, 잘 지내고 있다. 만약에 죽는다고 해도 아이하고의 관계에서는 한이 없다."
"요즘 세상 보면 '확 긁어버릴까' 생각도 들지만…" 요즘 박재동 화백은 한예종 교수로 재직하면서 애니메이션 제작에 힘을 쏟고 있고, 틈틈히 <한겨레>에 '손바닥 아트'를 연재하고 있다. 그의 예리한 시사 만화를 기억하는 관객들 사이에서 "다시 시사 만화를 그릴 생각은 안 드느냐"는 질문이 나올 법도 했다. 그러나 박재동 화백은 "지금도 행복하다"며 "후배들이 매우 잘 하고 있다"며 한 발짝 물러섰다. "그림을 실컷 그리고 싶어서 신문사에 갔다. 미칠 정도로 그렸고 소원이 이뤄졌다. 힘들지만 쾌감이 컸다. 그림이 사회에 영향을 줬을 때 행복했다. 이제 삶을 음미할 수 있는 나이가 됐다. 옛날처럼 예리하지는 않지만, 지금도 행복하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 한 번씩은 확 (펜으로) 긁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부드럽게 해보자 하는 생각도 들고…." 끝으로 최근 정세에 대한 전망을 묻는 질문이 나왔다. 그는 "사실 지금 우리가 언제 민주주의 사회였었나 싶을 정도로 역주행이 되고 있다"며 "요즘 외국에 나가도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라고 소개하지 못할 정도로 자긍심이 많이 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재동 화백은 "나는 근본적으로 낙관론자"라며 "역사는 발전해 왔고, 전진해 나간다고 늘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힘들지만 멀리 볼 수밖에 없다. 사회가 바뀌길 바란다면 작은 일이지만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작은 모임, 작은 자리에서 풀뿌리 민주주의를 이뤄나가자. 웃을 때 웃고, 걱정할 때 걱정하면서 조그만한 일이라도 하고 있다면 반드시 올바른 방향으로 간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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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변호사의 2009 세상 고민 | 박원순 변호사님 강연후기입니다. | 장호두 | 2009.9.1 | |||||||||||
8.27일 맥주한 캔과함께 나누는 박원순 변호사의 2009 세상 고민이라는 참여연대 창립 15주년 강연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강연회는 7시 30분에 시작되어 강연 30분과 질의응답과 토론 2시간을 포함하여 2시간 30분동안 진행되었으며 10시에 끝났다. 박원순 변호사님은 강연회를 통하여 2002년 6월까지 참여연대의 사무처장을 맡게 되었으며, 현재는 상임집행위원장에 있기 때문에 관여보다는, 관심과 조언의 자리를 통하여 참여연대의 총체적 발전을 기한다고 말씀하여 주셨다. 또한 현재엔 희망제작소의 사무처장으로 있으며, 아름다운 재단과 아름다운 가게를 통하여 참여연대와는 다른 새로운 시민사회의 시민운동의 창조적 대안담론 생성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으며 박변호사님이 떠났던 공백의 시간동안 더욱 굳건하며 발전되어지게 된 참여연대를 바라보며 감사함을 느낀다고 말씀하여 주셨다. 난 이 부분에서 박변호사님께선 참여연대라는 소중한 울타리를 만들어 내기 위하여 , 오로지 사다리처럼 솟아 있는 경쟁의 연결고리만 가득한 삭막한 시장과 경제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시대에서 상생과 연대의 소통하는 단체를 한국의 척박한 정치적 토양에 뿌리내리기 위하여 얼마나 궂은 노력을 하셨을까,를 생각하여 보았다. 또한 경기고-서울대법대라는 박변호사님의 개인적 이력을 살펴볼때에 확실한 기득권층에 들 수 있는 보증수표를 버리시고 어떻게 사회의 낮은 저층부에 내려오셔서, 끝없는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시며 참여연대라는 일군의 시민단체를 배양시켜내실 수 있엇을가에 대하여 깊게 고민과 성찰을 하여보자, 그 동안 생각없이 살아온 나의 모습에 엄청난 회의감이 몰려오며, 부끄러워지기 까지 했다. 박변호사님은 이제 시민사회가 어떠한 방식으로 나아갈지 그리고 그의 가운데 놓여있는 참여연대의 위치와 역할은 어떠한 것인지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하여 주셨다.즉, 작년 촛불운동이라는 인터넷 동호회와 개인블로그를 통한 참여연대와 같은 시민단체를 배제한 자생적 시민운동이 생겨난것은 어떻게 생각하여 보면, 한국 시민단체에 있어서의 총체적 발전 수준을 역력히 보여주는 현상이라 감사해야 할 듯 하지만 이미 관료화되어졌으며 생각이 굳어져 버린 현 시민단체의 보수적한계성을 반영한 현상일 수 도 있겠다며 씁쓸한 생각또한 든다고 말씀하셨다. 고로, 앞으론 참여연대가 좀 더 적극적으로 시민과 소통하고 개방을 향한 발걸음을 과감하게 내딪어서, 좀 더 많은 시민과 진솔한 소통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시민운동에 있어서의 구체적 대안은, 그리고 참여연대가 그려야 할 미래 시민 운동의 청사진은 어떠한 것이 있을까? 박원순 변호사님께서는 이와 관련되어 시민운동의 자기혁신성과 개인성을 기반으로 한 즐거움의 원천적 행동양식을 예로 들어 주셧따. 또한 박변호사님에 의하면 이제 한국에 있어서의 시민사회는 이전과는 훨씬 다른 방식의 민주주의와 권력 체계성을 지녀야 하는데, 이의 핵심은 지역 조합과 생협등을 통한 연대와 상생의 공동체를 기반으로 할 수 있는 방식의 풀뿌리 민주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 이에 대한 선진적인 선진국의 사례로서, 포루투갈,스페인의 온드라곤의 협동조합을(수정보완요구) 들어주셨다. 이 부분에서 난, 한국과 같은 경우엔 생협이라는 것과 지역조합이라는것의 영향력이 신자유주의경제정책기조에 의하여 무분별하게 성장한 대기업과 그의 유통업체들에 비하여 굉장히 미약한 영향력을 갖으나, 유럽은 그렇지 않다는것이었다.순간 우석훈 박사님이 자신의 88만원 대안세대 이론에서 설명하여 주신 뉴질랜드식의 젊은이들이 기반이 된 지역협동조합등이 떠오르며, 과연 저러한 것들이 우리나라에 토착적인 세력화를 견고히 다져나가기 위해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대안과 방법은 무엇일까?에 대해서 궁금증을 갖게 되었다. 특히 박변호사님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잠재적역량성과 영향력은 이번 2008년 미국대선의 오바마 당선을 통해서 역력히 들어나게 되었는데, 당선자인 오바마는 절대로 힐러리를 누르고 후보경선에서 누르고 대통령이 될 수 없을 거란 전망과 비관적 예측에 놓였던 후보였으나, 젊은 나이와 흑인이란 인종적 열세와 짧은 정치경력등란 핸디캡을 모두 극복할 수 있게 끔 하여준 것은 다름 아닌 오바마가 벌인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이었단 것이었다. 즉 국민과 소통을 하며 국민에게 최대한의 주체적인 정치자율권을 보장하여 주는 리더야 말로 현 민주주의 시대에 부합한 리더라고 말씀하여 주셨다. 이와 같은 연장선상에서 한국또한 유신독재체제와 군부정치세력을 민주화 투쟁을 통하여 극복하였으며, 이젠 문민 정부와 참여정부 그리고 시민사회라는 새로운 민주주의의 국면에 들어섰으니, 이와 같은 역사발전의 주역이 되어야 할 참여연대는 국미늘 위한 소통과 공감의 공동체로 거듭 발전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여 주셨다. 그러나 MB정권에 들어서서 참여정부와 함께 추진하던 대부분의 시민사회프로젝트가 좌초화 되어지며 시민사회를 통한 민주주의 발전이 공고화 되어지고 있는 현대 세계사회의 총체적 발전의 양태를 고려하여 볼 때 대기업중심의 신자유주의적 정치경제기조를 펼치고 있는, 이명박 정부를 '바보'라고 비판하여 주셨다. 나 또한 평소 이명박 정부에 대한 상식에 어긋난 정책과 그에 따르는 파시즘적인 국가폭력에 대하여 많은 비판적 회의감을 가지고 있어 왔기 때문에 이에 대하여선 적극 동조하였다. 후에 이어진 질의 응답시간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말하고 질문을 하였다. 박원순 변호사님께서는 이름표에 적힌 이름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불러주시며 친근하게 대답을 해 주셨고 나의 남북관계에 있어서 풀뿌리민주주의의 대안에 대한 질문에도 친절하게 대답하여 주셨다. 아주 많은 질문이 나왔던 것이 박원순 변호사님의 시민사회에 있어서의 일반국민들의 높은 대중적 지지도를 기반으로한 정치권의 진출이었는데, 박원순 변호사님께선 개인적 소신과 철학이 있으므로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선 자신은 정치권에 발을 디디지 않겠다는 대답을 하여주셨다. 사실 직접적인현실민주주의정치에 대한 경험이 어린 나의 사회적 나이(만 20세)를 고려하여 볼 시에 박원순 변호사님의 정치권 진출에 따른 사회적 파장과 여파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것들은 별 게 없었으나, 만약 박원순 변호사님의 개인적 철학과 소신이 정치권과 별개의 진영에서 자신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이상과 목표를 담지하여 나가시는것이라면 그 또한 존중이 되어야 하며, 만약 시민들이 구체적으로 원하는 것이 진정으로 박원순 변호사님이 정치지도자가 되어짐으로써 만들어지는 대한민주주의공화국이라면 그에 대한 요구또한 박변호사님의 말씀대로 충분히 존중되어져야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것이 박변호사님의 개인적 소신인 상호공존과 소통의 올바른 맥락적 결과와 의사결정이 아닐까? 사실 오늘 강연을 통해서, 얼마전 참여연대 아카데미를 통하여 공부했던, 시장을 사회총체적 관계의 하나의 개체물로 돌려놓자는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중반부의 제국주의와 파시즘을 비판한 폴라니의 사회대안이론과 매우 흡사한 맥락적 성격을 지니는것 같단 느낌이 들었다. 강연회가 끝나고 박원순 변호사님과 함께 짧지만 술 자리도 갖었으며 즐겁게사진을 찍는 시간도 갖게되어 너무 기뻤고 앞으로 독일에 유학을 가더라도 오늘 얻은 큰 깨달음과 가르침을 끝까지 가슴속에 상기시켜 두고 기억하며 행동하는 내가 되었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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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시대에 읽는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 | [홍기빈과 함께 읽는 칼 폴라니 1] 인간과 시장 | 느티나무 | 2009.7.14 | |||||||||||
* 아래 기사는 7월 9일부터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시작된 홍기빈 선생님의 폴라니 강좌에 대한 프레시안의 정리기사입니다. "폴라니는 마르크스나 케인스 아류가 아니다" [홍기빈과 함께 읽는 칼 폴라니①] 인간과 시장지난해 9월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으로 본격화된 영미식 금융자본주의의 몰락이 한국에 가져다준 충격은 매우 컸다. 당장 환율이 급등하고 주가가 폭락하는 등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매우 컸지만, 못지 않게 지적, 심리적 충격도 컸다. '승승장구하던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로의 편입 만이 한국의 유일한 살 길'이라는 우파의 주장에 좌파 역시 거의 자포자기 상태로 대거리를 하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의 표상인 투자은행들이 줄줄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크게 3꼭지로 나눠서 얘기하려고 한다. 먼저 폴라니가 다른 경제사상가들과 어떤 다른가. 둘째, 인류역사에서 시장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가. 셋째, 산업혁명과 기계제의 문제. 1. 케인스, 하이에크, 마르크스 그리고 폴라니 내가 지난 20년 동안 가장 크게 상처받았던 질문 중 하나가 '그래서 대안이 뭐냐?'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은 끄떡없다. '당신들은 대안 있냐'고 물으면 누구도 대답하기 힘들다. 우선 대안담론의 허구성과 연결해서 얘기하고 싶다. 케인스, 하이에크, 마르크스. 이 세 사람과 폴라니의 대립점은 폴라니는 시장경제 자체를 허구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앞의 세 사람은 시장경제에 대한 입장은 각기 달라도 시장경제 존재 자체를 문제 삼지는 않는다. 폴라니는 시장경제라고 하는 틀로 사유하지 말라. 지금 살고 있는 사회도 시장경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현재 존재하는 시장경제를 도덕성과 경제적 합리성이라는 차원 두 가지로 판단할 때 완벽하다고 보는 게 하이에크다. 도덕성도 용납될 수 없고 합리성도 끝내 위기와 공황으로 갈 수밖에 없다면서 시장경제를 전면 부정하는 건 마르크스다. 시장경제는 도덕적으로도 완벽하지 않고 합리적으로도 문제가 있어서 법령이나 정책으로 조정하고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이 케인스다. 시장경제의 틀로 보면 완전 긍정(하이에크), 완전 부정(마르크스), 조건부 긍정/부정(케이즈) 세 가지 밖에 없다. 앞의 얘기로 돌아가 신자유주의 정치경제사상에서 제일 강력한 무기는 '대안이 뭐냐?'는 질문이었다. 이 말을 만들어낸 사람은 영국 대처 수상이다. 1976년 IMF 위기에 빠지고 79년 집권한 대처 수상은 영국의 복지자본주의를 싹 다 뜯어고쳐야 한다면서 신자유주의를 강행했다. 문제제기하면 "신자유주의 외에 대안은 없다"고 말했다. 이 말이 굉장히 천박하고 경박해 보이지만 조금만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 시장경제 입장은 3가지 밖에 없다. 70년대에는 완전 부정/긍정(케인스주의)이 한계에 부딪혔다. 90년대 초 현실에서 존재하는 공산주의가 무너졌다. 따라서 대안이 뭐냐는 게 정치가가 만들어진 경박한 조어가 아니라 무시무시한 역사철학이 담긴 말이다. 인류가 실험한 2개의 옵션이 무너진 상태에서 다른 제안이 뭐냐. 이걸 이론으로 정교화 한 게 후쿠야마다. 다른 옵션은 끝났다. 그래서 시장경제를 회피하는 게 말이 안 된다는 요지였다. 프리드만도 '황금구속복'의 착용을 강요당하고 있다면서 신자유주의 금융주의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신자유주의체제를 반대하고 비판하려는 사람들이 이 사고틀에 빠지면 도저히 헤어 나올 수가 없다. 그래서 서구의 좌파가 두 종류의 나뉘었었는데, 시장 경제에 대해 모호한 방식으로 거부하는 부류와 신자유주의에 대해 타협적으로 받아들이거나 둘 중 하나였다. 시장경제 중심에 놓고 생각하면 세 가지 경우의 수 밖에 없다. 이런 예를 들어 좀 그렇지만 콧물 한 사발과 고름 한 사발을 놓고 '어느 쪽을 마실래'라고 하면 어느 쪽이 나을까 고민한다. 정답은 안 마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프레임을 걸어 얘기하면 이런 바보 같은 고민에 빠질 수도 있다. 왜 시장경제에 대해 입장을 표명해야 하나? 왜 여기서 사고를 시작해야 하나? 그렇지 않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이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폴라니를 케인스의 아류나 마르크스의 아류로 얘기한다. 양쪽 다 잘못이다. 폴라니는 국가개입주의를 주장한 사람이 아니다. 우리나라 정치학계가 이런 식으로 폴라니를 전유한다. 국가 규제와 개입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주장한 사람이라고 단순화한다. 마르크스주의자는 폴라니가 마르크스를 이해하는데 굉장히 유익한 서브노트로 여긴다. 물론 폴라니가 시장자본주의의 비인간성을 고발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마르크스와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이게 폴라니의 중심적인 논지는 아니다. 폴라니는 인간의 존재에서 시장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역사적으로 살펴보자는 얘기를 하고 있다. 그 결과 폴라니의 결론은 시장경제는 허구다.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한 적도 없다. 바로 이 점이 21세기 들어 신자유주의가 중대 기로에 서 있는 현 시점에서 폴라니를 읽는 의의를 찾을 수 있는 지점이다. 2. 인류의 역사에서 시장의 존재란?
자유주의 경제학에서 사람은 어떤 존재냐? 이기적인 존재다. 개인적 이기심을 추구하게 돼 있다는 것을 첫 번째 속성으로 지적한다. 두 번째는 합리적인 존재로 본다. 합리적으로 자기 이익을 추구하고 다른 사람과 서로의 이익이 맞는다면 협조할 수 있다. 이를 이르는 말이 '호모이코노미쿠스'다. 가장 초기에 인간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혼자서 다 구했다. 로빈슨 크루소 같은 인간이다. 많은 분들이 어릴적 동화로 <로빈슨 크루소>를 읽으셨겠지만 사실 <로빈슨 크루소>는 18세기 사상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책 중 하나다. 루소, 아담 스미스 등의 사상에 큰 영향을 끼쳤다. 로빈슨 크루소는 경제학의 단위로서 호모이코노미쿠스를 생각하는데 기본 바탕이 됐다. 처음 자급자족하던 인간이 필요에 의해 물물교환(예를 들어 노루와 생선)을 하고, 여기서 더 나아가 노동분업이 생기고(노루만 잡는 '노루맨'과 물고기만 잡는 '낚시맨') 결과적으로 물물교환에 더 기대게 된다. 물물교환이 불편하니까 화폐가 만들어진다. 또 정당한 교환이 아니라 무력을 동원한 약탈을 하는 무리들이 생기고, 이런 무리들이 시장질서를 교란시키니까 시장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국가가 생겼다. 이기심과 교환, 즉, 시장을 만들고자 하는 본성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시장은 종교, 정치 등 어리석은 이유로 억압하지 않으면 어디서나 자유롭게 생겨나고 어디서나 풍요를 보장해준다. 이게 시장의 기원과 속성에 대한 자유주의 경제학의 기본 설명이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실제로 있었을까? 어이없는 일이다. 지금도 숱한 경제학 교과서에서 이게 진리인 것처럼 얘기하지만 인류학적으로 뒤져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거짓말 중에도 이런 거짓말이 없다. 학문의 이름으로 19세기 내내 울려 퍼진 주문이다. 폴라니는 인류학적 증거들을 통해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시장에 대한 이런 강력한 논리적 체계는 아담 스미스가 만들었다. 아담 스미스가 가상으로 만들어놓은 것을 후대 학자들이 진리로 받아들였다. 물론 아담 스미스가 어떤 목적으로 갖고 만든 것은 아니다. 당시 서양인들의 인류학적 지식은 실제로 지구가 기원전 4571년에 창조됐다고 생각하는 정도였다. 왜? 성서에 그렇게 돼 있으니까. 인류역사의 초기가 이랬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 '억측'이라는 방법을 썼다. 18세기까지는 문제가 안 됐다. 인류학적, 역사학적 발견은 19세기를 거치면서 폭발적으로 이뤄졌다. 역사학이 과학이라는 인식은 19세기에야 생겼다. 사실 제국주의 학문이라 할 수 있는 인류학은 제국주의 열강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 20세기 초엽부터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마르크스의 책을 보면 동양 고대사에 대한 설명이 굉장히 터무니없다. 헤겔의 역사철학강의도 마찬가지다. 역사학과 인류학 발전의 첫 번째 수혜자가 막스 베버다. 그 당시가 돼야 어느 정도 자료가 축적된 것이다. 폴라니가 이 책을 쓴 것이 1944년이다. 폴라니도 역사와 인류학 발전의 혜택을 입었다고 할 수 있다. 서양에서 신화(mytos)는 진위의 영역으로 여기지 않는다. 반면 로고스(logos)는 진실과 거짓을 꼬장꼬장하게 따지는 영역이다. 폴라니가 보기에 시장의 기원과 발전은 로고스 차원에서 어이가 없다는 것이다. 시장의 기원에 대해 아무도 로고스 차원에서 따지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200년이 지나서 신화가 됐다. 마르크스도 이런 식의 물물교환이 존재했을 것이란 가정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 폴라니가 이걸 따져보자는 것이다. 물물교환 과정이 불편해 화폐가 생겼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화폐의 가치는 단위가 커서는 안 된다. 세계 최초의 화폐 중 하나가 기원전 650년경 리디아 왕국(지금의 터키)의 동전이 있다. 이 동전은 소 5마리 가치였다. 또 페르시아에는 수도에 시장이 없었다. 페르시아를 통일했던 첫 번째 황제인 키루스가 그리스인들이 협상을 하자고 하니까 '도시 한가운데에 터 잡아놓고 조직적, 체계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과는 협상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페르시아에서는 시장을 죄악시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시장이 허구라면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과거에 있었던 경제는 어떻게 조직됐는가? 시장이 존재했는지는 모르지만 사회적 협업과 분업은 있었다. 인류는 처음 시작부터 노동분업을 했던 것은 틀림없다. 자유주의 신화의 맹점은 노동분업의 필연성에서 노동분업은 시장으로만 가능하다고 얘기한 것이다. 노동분업이 시장이 아닌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다면 시장의 신화는 무너지는 것이다. 여기서 상상력을 자극해야 한다. 시장이 아닌 노동분업을 조직하는 방법으로 상호성과 재분배를 찾아볼 수 있다. 상호성 : 선물경제 첫 번째 방법 상호성은 쉽게 말하면 선물을 주고받는 형태로 노동분업을 조직하는 것이다. 쌍대성을 특징으로 하는 사회적 관계에 있는 두 사람(친구, 애인, 선후배, 이웃 등)이 교환한다. 여기서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과연 이런 방식을 통해 곡식, 집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다 조달할 수 있을까? 인간 역사에서 대부분의 기간 동안 선물은 지극히 실용적인 개념이었다. 또 이런 방식으로 큰 규모의 경제적 분업이 가능했을까? 멜라네시아의 트로블리안 제도가 있다. 여러 개의 섬들로 긴 띠 모양으로 생긴 이 제도는 각 섬마다 생산되는 물건들이 다르다. 서로 교역의 필요성이 분명히 있다. 이걸 어떻게 조직했는가. 여기 사람들이 소위 '일촌'을 맺어 파도타기를 했다. A, B, C, D 등 여러 개의 섬에서 나는 물건들이 이런 교환을 통해 한 바퀴 도는데 여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수백명에 이르고, 10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주고받는다. 이게 바로 선물경제다. 아주 간단한 조작을 하면 선물경제에서 쌍대성을 극복할 수 있다. 선물을 받은 쪽과 주는 쪽을 일치하지 않게 만들면 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대학 다닐 때 선배들한테 술을 얻어 먹었다. 하지만 그 선배가 나중에 우리에게 자기가 쓴 술값만큼 술을 사라고 한다면? 그 선배는 이상한 사람 취급 받는다. 그 대가를 나중에 누구에게 지불하게 되나? 후배한테 하게 돼 있다. 줄줄이 내려가게 돼 있다. 그렇다면 선물경제는 시장경제를 넘어서는 좋은 것인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앞에 선후배를 예로 들었던 것처럼 위계구조와 연결돼 있다. 이게 선물경제의 암이다. 하지만 사회적 관계가 존재하는 상태에서 교환되기 때문에 굉장히 실용적이기도 하다. 따라서 사회적 관계를 따라 큰 규모의 경제를 조직하는 게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또 질문이 가능하다. 시장경제에 있어 시장참여자들 사이에 경쟁은 발전의 중요한 동력이다. 그렇다면 선물경제에서 경쟁은 어떻게 조직할 수 있는가? 앞에 얘기한 섬에서 보면 한 가족을 엄마의 오빠, 즉 외삼촌이 부양하게 돼 있다. 일년 농사를 다 지어서 여동생 집에 가져다준다. 이때 선물로 주기 전에 자기 집 앞에 곡식을 쌓아놓는다. 이는 자기가 얼마나 뛰어난 사람인가, 또 자기가 얼마나 관대하고 너그러운 사람인가를 과시하기 위한 행동이다. 남들보다 더 좋은 곡식을, 더 많이 여동생 가족에게 선물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으려는 경쟁이 일어나게 된다. 시장에서 누가 1등을 하고, 2등을 하느냐. 이걸로만 경쟁이 조직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인간에 대한 모독이다. 고대 그리스 올림픽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선수들이 무엇 때문에 경쟁을 했는가. 상금 때문인가. 아니다. 서로의 뛰어남에 대란 경탄을 하면서 나도 뛰어난 인간이 되겠다는 자극을 받아 경쟁했다. 그리스 시인 핀다로스는 올림픽에서 경쟁하는 인간들을 보면서 인간의 뛰어남에 대한 찬가를 남겼다. 재분배 : 이집트의 피라미드 재분배를 통한 노동분업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수렵이다. 멧돼지를 잡을 때 여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사전에 돈을 받거나 계약서를 쓰고 하나. 아니다. 다 같이 멧돼지를 잡고 그 결과물을 놓고 재분배에 들어간다. 상호성과 마찬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런 방식을 통해 어느 정도 큰 규모의 경제를 조직할 수 있나? 국가 단위가 가능하다.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가 재분배로 경제를 조직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연인원 50만 명 정도가 참여하는 20년 정도가 걸리는 공사였다. 50만 명이 20년을 일하게 할 수 있는 경제는 그 스케일이 어마어마했을 뿐 아니라 여기에 필요한 계산과 회계 역시 대단히 발전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현존했던 공산주의 경제도 전형적인 재분배 경제였다. 사회적 행동과 경제적 행동 상호성에서 경제에 참여하는 이유가 뭔가? 이익인가? 그렇지 않다. 선물이 실용적 측면이 있기는 아니지만 순전히 실용성만은 아니다. 선물의 사회적 관계, 서로 간의 정과 사랑을 강화한다는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 서로간의 선의, 사랑이 밑받침돼 있다. 재분배에 참여하는 논리는? 의리, 충성 등 권력에 대한 복종의 논리가 깔려 있다. 참여 동기와 노동 분업이 조직되고 운영되는 원리가 순전히 경제적 돈 계산은 아니다. 위의 두 가지는 분명히 정치적, 사회적 동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경제적 행위는 어디 있느냐? '묻어 들어가'(embedded) 있다. 상호성과 재분배에서 경제적 행동은 사회적 행동에 '묻어 들어가' 있다. 우리 현실로 돌아가보자. 이 강의를 듣는 사람들 중에 직업을 순전히 경제적 이유에서만 선택한 사람이 있냐? 또 경제적 고려는 하나도 안 한 사람이 있냐? 다들 여러 가지 동기를 고려해 복합적으로 정한다. 고려해야 될 것 중의 하나로 경제적인 게 있다. 사람들의 실제 모습은 여기에 더 가깝다. 반면 시장경제는 어떤가? 참여하는 두 사람과 두 집단 사이에는 사회학 관계가 없다. 시장은 철저하게 돈 계산, 물질적 계획만 있다. 또 시장경제에서 참여 동기는 순전히 이익이다. 사회적 관계가 아니다. 그래서 막스 베버는 <경제와 사회>에서 '시장관계는 공동체 내에서는 절대 발생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시장은 공동체 바깥, 즉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에서만 발생한다고 했다. 여기서 인간의 본질이 뭐냐는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경제적 자유주의 신화에서는 인간의 본질을 호모이코노미쿠스로 본다. 철저하게 이익에 기반한 인간이다. 그러다보니 시장이라는 패턴 설명해낼 수밖에 없었다. 폴라니는 어떤 문제제기를 하고 있나. 총체적 존재로서의 인간, 영혼을 가진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서양에서 2000년 동안 인문학의 핵심은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뭔가였다. 이 질문의 답은 영혼이 있다는 것이고, 종교의 핵심 주제가 영혼을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였다. 영혼은 욕망과 이상을 창조하는 매커니즘이다. 영혼이 있는 존재는 욕망과 이상과 꿈을 계속 생산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의 가장 큰 특징으로 상상력을 꼽았다. 마르크스는 <경ㆍ철초고>에서 유적존재로서의 인간의 특징으로 동물과 다르게 욕망, 이상, 꿈을 창조하며, 그걸 현실화하는 게 노동이라고 지적했다. 폴라니는 잠시 몇백년 동안 잊고 있었던 것을 다시 끄집어냈다. 인간이 일을 할 수 있는 동기는? 배고파서가 아니다. 인간 경제의 패턴, 사람의 노동을 조직하는 동기는 무한히 다양하다. 실제로 그렇다. 사람의 영혼에서 어떤 욕망을 끌어내느냐는 사회에 달려 있다. 인간의 본성은 딱 규정할 수 없이 다양하다. 이걸 조직하는 것은 사회다. 19세기 근대 유럽을 제외하고 인류역사의 전 기간을 걸쳐 시장은 인간경제생활에서 액세서리에 불과했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핵심적인 물품과 욕망은 상호성과 재분배로 조직했다. 사회적으로 중요하게 요구되는 물품을 시장에 맡겨놓으면 사회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물론 시장은 구석기시대부터 있었다. 하지만 액세서리 이상의 위치를 넘어선 적은 한번도 없었다. 시장이 어느 정도 위상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하도록 하는 수많은 기제가 있었고, 실제 일정규모 이상 팽창하지 못했었다. 1957년 고대사연구회에서 폭탄 같은 책을 냈는데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장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그 논쟁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그 누구도 고대 경제가 시장경제였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3. 산업혁명과 기계제
어떤 사건은 그 사건을 어느 정도 시간이나 공간의 틀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산업혁명의 의의는 어느 정도 시간 틀에서 해석해야할까? 폴라니는 1만년 정도 시간 지평에서 볼 것을 요구한다. 산업혁명을 신석기 혁명과 대비 속에서 얘기하고 있다. 농경과 축산이 시작돼 정착이 시작된 신석기 이전의 인간과 이후의 인간은 다른 종이다. 군집을 이루는데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그런데 산업혁명은 신석기 혁명이 가져온 충격에 비해 작지 않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도구나 기계가 인간 신체의 능력을 연장하는 수단이었다. 인간이 여전히 생산 활동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의 기계는 사람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사람과 자연이 생산활동의 중심에 있는 게 아니고 기계의 투입물이 된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생산 활동을 조직하는 원리가 사람과 자연을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가 핵심이었다. 하지만 기계가 중심이 되면 경제적 과정을 조직하는 원리가 기계의 합리성과 효율성을 어떻게 극대화할 것인가다. 인간과 자연은 부수적 투입요소가 된다. 이처럼 신석기 혁명으로 인간과 자연이 만나는 방법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기계의 투입물로서 인간과 자연을 어떻게 다루면 제일 편한가? 상품으로 다루면 된다. 기업의 파산을 막기 위해선 투입되는 노동과 원자재의 양이 탄력적으로 바뀌어야만 한다. 필요할 때 투입하고 필요 없을 때 빼내기 위해서는 상품이 되는 게 필요하다. 이게 19세기 시장자본주의 경제였다. 폴라니는 과거 1만 년 동안 부수적이었던 시장이 인간과 자연을 먹어 버린 근본 이유가 산업혁명이라고 밝혔다. 앞서 중상주의 때도 많은 것이 상품이 됐지만 인간과 토지까지 상품의 형태가 된 것은 아니었다. 이게 일어난 것이 산업혁명이었다. 따라서 여기에서 풀어야할 과제의 성격은 총체적 인간이다. 인간과 자연이 기계의 투입물이 된 것의 가장 큰 문제가 뭔가. 경제적 착취나 쪼들림, 자연파괴가 아니다. 사람이 짐승이 됐다는 것이다. 사람이 스스로의 영혼을 인정 안하고 스스로를 동물로 여기게 됐다. 이게 발전하면 전체주의적 사회가 된다. 파시즘에 대한 고발이다. 폴라니가 보는 19세기 자유주의 사회와 파시즘의 연속성이다. 기계제(산업생산)와 영혼을 가진 존재로서의 인간이 병존하는 사회로 재조직해야 한다는 게 폴라니의 문제의식이다. /전홍기혜 기자(=정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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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시대에 읽는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 | 피터 드러커가 만난 칼 폴라니 | 느티나무 | 2009.7.5 | |||||||||||
며칠 후면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함께 공부하는 강좌가 느티나무에서 열립니다. 아래의 글은 참여연대가 펴내는 월간 회원소식지 <참여사회> 4월호 '최성각의 독서잡설' 코너에 실린 글로 미국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피터 드러커가 만난 칼 폴라니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칼 폴라니는 그에 대한 제대로된 전기를 가지고 있지 않아 그의 생애를 온전히 알기는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하지만 아래와 같이 몇몇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폴라니의 인간적인 면모만으로도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짐작할 수 있을 듯 합니다. 폴라니 강좌를 수강하시는 분들 뿐만 아니라 느티나무 그늘 아래를 찾아주시는 모든 분들과 함께 나누었으면 하는 마음에 이 글을 올립니다.
실현 불가능한 대의(大義) 에 헌신했던위대한 괴짜들 드러커의『방관자의 시대』(이길진 옮김, 갑인출판사 1979년)를 처음 만난 때는 1980년 가을께였다. 갑인출판사판 초판이 나온 해는 1979년이었는데, 내가 구한 책에는 ‘재조정가 1,500원’이라는 글자가 고무인으로 찍혀 있었다. 이 나라 80년대에 ‘방관자’라는 말은 어떤 종류의 사람에게는 금기어 중의 하나였다. 책의 속표지 하단에는 ‘80년 가을, 황지에서’라고 적혀 있었다. 석탄합리화정책이 시행되기 전의 황지는 이 나라에서 가장 거대한 광산촌이었다. 버스정류장 근처에 있던 책방 앞에는 늘 탄가루가 휘날리곤 했고, 책방 앞 레코드가게에서는 송창식의 노래가 자주 흐르곤 했다. “보이는 게 모두 돌아앉았으니 고래 잡으러 동해 바다로 가자”는. 폴라니 가문 사람들과의 운명적인 만남 대의를 위한 이상주의자로 자식을 키웠던 폴라니가의 부모 실현 불가능한 꿈을 꾸는 이들의 형언하기 힘든 감동과 압박감 발문 드러커는 폴라니 가문을 통해 배운 ‘인간의 도리’를 평생 동안 잊지 않았으나 공적 인간으로서의 이상이 현실에서 얼마나 실현되기 어려운 일인가를 또한 술회한다. 드러커의 반생에 스며든 인간들은 그 재능과 특출함에서라기보다 그들의 실현 불가능한 꿈 때문에 형언하기 힘든 감동과 압박감으로 읽는 이의 가슴을 조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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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주주의에 대한 성찰 | [사회정치교실 기사] 손호철, "그들은 민주주의를 '야금야금' 갉아먹는다" | 느티나무 | 2009.7.3 | |||||||||||
* 아래는 지난 6월 22일 사회정치교실 손호철 선생님의 마지막 강의를 정리한 프레시안의 기사입니다. "한국에 파시즘이 오는가?"
"억압성의 전면화, 대중의 자발적 지지 따져봐야" 손호철 교수는 우선 파시즘 논쟁에 앞서 파시즘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 파시즘 논쟁은 굉장히 감정적이고 정치 선동적 측면이 많았기 때문"이라며 "정치적 코드, 선정적 용어로서의 파시즘이 아니라면 파시즘에 대한 좀 더 과학적인 정의가 무엇일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우선 독일과 이탈리아를 파시즘의 전형으로 생각하는 시각이 있다. 손호철 교수는 "히틀러 동원에 움직이는 대중들을 연상하듯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와 동원, 그리고 파시스트당이 전형적인 파시즘에 대한 인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두 번째 시각은 파시즘이 독일과 이탈리아 등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1920~30년대 동유럽과 남유럽에서 전반적으로 일어난 광범위한 현상이라고 보는 관점"이라며 "파시즘에서 대중적 지지는 일반적 현상이 아니며 출현 과정은 나라에 따라 다르다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손호철 교수는 "따라서 현재 한국에 파시즘이 오는가의 여부를 따질 때 억압성의 전면화냐, 또는 광범위한 대중의 자발적 지지에 기반하느냐라는 두 개의 이슈가 개입돼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파시즘의 기본은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 여부가 아니라 20세기 초반에 나타난 독점자본주의로 성장하면서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반동적 재편이 있었느냐의 문제라고 본다"며 "이승만 정권을 두고 파시즘이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그 정권이 덜 억압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독점 자본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파시즘이 나오게 된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며 "결국 경제 공황 속에서 자유주의 정권들의 경제 위기 극복 능력이 무능했고, 그것에 따라서 첨예한 계급 갈등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도 비슷하다. 민생의 위기와 양극화가 바로 파시즘이 나오게 된 계기라고 볼 수 있다"며 "자유주의 정권의 무능, 사회적 갈등의 첨예화라는 점에서 우리도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신자유주의 정책 속에서 '크리핑 파시즘' 경향 나타나고 있다" 손호철 교수는 "MB 정부는 현재까지 두 시기로 구분될 것 같다"며 "집권 이후 2008년 광복절까지가 촛불 시위 방어에 급급했던 수세기라면 광우병 집회 이후 공세로 전환됐고, 월스트리트발 금융 위기를 핑계로 이같은 공세를 더욱 강화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2기를 중심으로 얘기한다면, 이명박 정부는 우파 신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적 토건 국가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파시즘 체제가 나오게 되는 기본적 틀은 국가의 경제 개입"이라며 "대공황을 가져온 것은 시장이었고, 미국이 그 위기를 뉴딜을 통해 해결했다면, 독일과 이탈리아는 억압적 국가 개입을 통해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그것과 전혀 다른 신자유주의적 방식이 이뤄지고 있다"며 "금산 자본 분리 완화, 비정규직 법안 추가 개악, 최저임금제 부분적 해제, 부유층 감세, 삽질 경기 부양책 등 기본적으로 친자본주의고 반동적인 경향을 동일하게 나타나지만 국가 개입이 아니라 규제 완화라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신자유주의 위기를 해결할 때, 부유층에 증세하고 빈곤층에 감세하는 부의 이전을 하는 오바마적 해법이 있다면 MB식 해법은 정반대"라고 지적했다. 그는 "오히려 부자를 감세하고, 재정 적자가 나니까 부가가치세 높이는 방식을 통해서 부가 더욱 더 부유층에 이전되게 하며 위기를 극복하려 하고, 다양한 저항을 억압적 방식으로 누르는 신파시즘으로 가는게 아닐까"라고 덧붙였다. 손호철 교수는 "또한 정권의 성격과 상관없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게 되면 민중의 저항이 나오기 때문에 이를 누르고 진행하기 위해 경찰국가의 특성이 나타난다"며 "이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도 어느 정도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신자유주의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양극화를 가져오고, 그래서 경찰국가로 갈 수밖에 없다"며 "그래서 항상 레이건, 부시 정부가 작은 국가를 얘기하면서도 법과 질서, 경찰 증원을 요구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손 교수는 "결국 정부가 민주 정부이냐에 상관없이 신자유주의적 정치를 펴게 되면 경찰 국가 경향이 내재돼 있다"며 "그런데 MB 정부는 플러스 알파"라고 덧붙였다. 그는 "현재 정치적 민주주의의 핵심인 언론의 자유, 집회의 자유, 사상의 자유 모두 후퇴하고 있다"며 "더군다나 MB악법들이 통과될 경우 이는 더 가속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뿐만 아니라 제왕적 대통령이 부활하고 있다"며 "최근 이뤄진 검찰청장, 국세청장 임명이 제왕적 대통령 부활을 또 다시 예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그럼에도 아직까지 예외적인 파시즘 국가라고 보기에는 헌정 질서의 중단이나 의회 민주주의적 틀의 철폐와 같은 극단적 조치는 아직 없다"며 "나는 이것이 야금야금 갉아먹는 것 같은 '크리핑 파시즘(creeping fascism)의 경향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MB 정권 끝난다고 파시즘이 끝날까?" 손호철 교수는 "그런데 중요한 것은 파시즘이 MB 정권이 끝난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다"라며 "또 우파 신자유주의도 꼭 MB 문제로 환원해선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는 한국적 특수성과 관련해 봐야할 문제"라며 "한국적 파시즘의 대중적 기반이 인구가 많은 영남에 있다는 지역주의적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또 50대 노령층과 근본주의적 기독교층도 한국적 파시즘의 대중적 기반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손 교수는 "그러나 낙관적 요소도 있다"며 "한국의 경우 이념적 정체성이 뚜렷한 것이 아니라 최장집 교수의 표현대로 일종의 열망·실망의 사이클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즉 현 국면은 국민의 반동화가 아니라 실망의 사이클 때문이라고 본다"며 "10년쯤 뒤에는 다시 냉전세력에 대한 실망으로 국민의 재진보화가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이어 손호철 교수는 "또한 25~30%의 무당파가 계속 침묵하거나 한나라당을 지지할 경우 MB의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에도 70~75%가 지지 내지 침묵을 하는 것이 돼 '파시즘적 경향'이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움직이지 않는 25~30%를 어떻게 끌어내고 조직할지가 중요할 것"이라며 "단순히 상층부 연합이 아니라 오바마처럼 풀뿌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는 파시즘이 뭐냐에 대한 훈고학적 논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민주주의가 공격받고, 이에 대해 다수가 침묵한다면 이미 파쇼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체제로서의 파시즘은 아니더라도. 결국 민주주의냐 파시즘이냐는 것은 예측이 아니라 실천의 문제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강이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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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주주의에 대한 성찰 | [사회정치교실 기사] 손호철, "아직도 진보 보수 타령인가?" | 느티나무 | 2009.6.25 | |||||||||||
* 아래는 지난 6월 15일 사회정치교실 손호철 선생님의 강의를 정리한 프레시안의 기사입니다.
"더 이상 진보와 보수라는 이분법으로 한국 정치를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강이현 기자(정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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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주주의에 대한 성찰 | [사회정치교실 6강] 강의교안 올립니다. | 느티나무 | 2009.6.19 | |||||||||||
안녕하세요, 한국 민주주의를 되돌아보았던 사회정치교실이 손호철 선생님의 마지막 강의교안 파일을 올립니다. 다음주 월요일 손호철 선생님은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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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주주의에 대한 성찰 | [사회정치교실 5강] 강의교안 및 참고기사입니다. | 느티나무 | 2009.6.12 | |||||||||||
손호철 선생님의 두번째 강의의 교안 파일을 첨부해 드립니다. 그리고 6월 9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한국 민주주의와 87년 체제'라는 제목으로
토론회 자료집 파일도 첨부해 드리니, 관심있는 분들은 내려받아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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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어 보는 종교, 전쟁, 평화 | 인문강좌 "뒤집어 보는 종교 전쟁 평화" 강좌 소감문 입니다... | 개똥이 | 2009.6.11 | |||||||||||
우리들은 각자의 삶 만큼 이나 서로 다른 도덕적 가치관과 새롭고 다양한 감각, 그리고 욕망이 분출되고 있는 혼돈과 시련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또한, 우리는 스스로의 제대로 된 모습, 흐트러지지 않은 인간 본래의 모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문명의 발달로 인해 인간의 순수한 마음은 혼탁해져 가고 있으며, 마음을 정화시키기 위하여 종교에 찾게 된다. 종교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고 믿음 생활에 철저한 사람은 흐트러지지 않은 자신 본연으로 돌아가 이 혼란의 시대를 헤쳐 나갈 힘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이 종교가 주는 힘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일부 종교의 집단화로 인해 혼란을 가중시킨다. 태어남에는 우리의 의지가 반영되지 않았지만 인생은 순간 순간이 선택이라는 말처럼 종교도 선택적인 요소가 있다. 어느 종교가 옳거나 그르다는 개념과는 다른 것이다. 종교를 가져도 되지만 안 가져도 된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종교를 가지고 ‘신’이라는 존재를 믿으며 그에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인류가 최초로 생겨나면서부터 시작되었으며 원시인들은 주술적인 의식을 통해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는 행위를 하였다. 시대가 달라지고 사회가 발전하면서 종교는 더욱더 구체적이고 체계화되었다. 다양한 종교들이 생기고 또한 ‘신’들도 생겼다. 원시시대의 ‘종교’라는 형태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을 만큼 종교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하지만 그 ‘개념’에 있어서는 현대시대나 원시시대나 다른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근원적인 물음인 왜 인간은 종교를 찾는 것일까? 나약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세상에 나와 많고 다양한 경험 속에서 살지만 항상 외로움과 나약함의 그늘을 지우지 못하는 것이 나의 모습이자 우리의 모습이다. 이를 극복하고 좀 더 나은 내일을 위하여 종교를 갈구하는지 모르겠다. 어떤 이는 외로움을 여러 활동을 통해 해결하기도 하나 근원적인 답은 되지 않을 것 이다. 각 종교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의 행복추구 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종교의 현실은 어떠한가?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한 싸움터가 되어 버린 지 오래며 자기의 이익과 배치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끔찍한 일을 자행하고 타인의 문명과 역사 등은 무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안타까운 일이다. 종교 본연의 기능이 무엇이라 단정 짖기는 어렵지만 원래의 인간됨으로 회귀함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종교마다 그들이 추구하는 바는 사랑, 자비, 평안, 내세의 안식 등의 목표를 설정하였으나, 그들이 행동하고 대처하는 방식은 종교마다 다를 수 밖에 없다. 문제는 그들이 행동하는 바가 비종교인이나 타인의 행동을 구속하거나 배타시하지 말아야하는데 이게 잘 되지 않는데 있다.
2000년 이상 된 종교인 불교, 기독교, 이스람교 등의 교리는 성직자들에 의하여 연구되고 수정되면서 오늘날까지 내려왔고, 개인차는 있지만 종교를 접하는 나이나 교리를 공부하는 기간을 생각한다면 이성적으로 교리를 따지고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종교를 조상대대로 이어내려 왔다는 이유로, 아니면 부모님의 영향으로 또는 학교 교육 등을 통하여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 종교가 우리의 생활을 지배하고, 영혼을 지배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제는 종교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돌아볼 수 있는 지혜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많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종교가 내세우는 이상보다는 종교간 이권내지 영향력의 확대를 위한 투쟁으로 변질되었으며 종교를 정략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사람(국가)이 있는 것이 현실이며 반성이 필요하다. 나는 종교로 인하여 사람을 나누지 않겠으며, 종교로 인하여 사람을 미워하지 않겠다. 종교로 인하여 어느 누구도 배척하지도 않겠으며 종교로 인하여 사람을 차별하지 않겠으며 나의 뜻을 타인에게 강요하지도 않겠으며 타 종교인을 존중하며 함께 공동선을 추구하겠다. 나는 종교를 스펀지가 아닌 혼탁함을 걸러 정화해주는 거름종이로 받아들이며 살아갈 것 이다. 나는 어느 곳에도 메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
참여연대의 뒤집어 보는 종교 전쟁 평화라는 주제를 처음 접했을 때 호기심이 일었으며 막연한 기대가 앞섰다. 강좌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9주를 되돌아보았을 때 최근 몇 년간에 일어난 일련의 일들에 대하여 좀 더 깊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고 지식을 넓히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 그러나 좀 더 깊게 접근치 못한 점(공부하지 않은 점)은 개인적인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점은 앞으로의 과제로 삼고자 한다.
강좌와 동 떨어진 이야기 같지만 어떤 일이나 사물을 봄에 있어 중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 하다. 모든 사람들이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의 바른 판단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비일비재 한 것이 현실이며 이런 것들을 잘 극복하여 소화하는 것은 본인의 노력에 달려있으며 이런 측면에서 이번 강좌는 종교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는 의미를 찾고 싶다. 종교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정확한 시각을 기르는 것일 것이며 이번 인문강좌는 도움이 되었다고 판단되며 감사한다. 참여연대의 깊은 배려(관련 자료의 이메일을 통한 미리 배부, 김밥, 차, 등의 간식준비등)에 감사를 드립니다. *****어느 책에 인용된 글을 소개합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나는 울었고 ,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기뻐하고 즐거워하였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나는 웃었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슬피 울고 괴로워하였다. ******법정스님 특별 기고---김수환 추기경을 떠나보내며 (2009. 2. 19 조선일보 1면)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 안의 벽 우리 밖의 벽 그 벽을 그토록 허물고 싶어 하던 당신 다시 태어난다면 추기경이 아닌 평신도가 되고 싶다던 당신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이 땅엔 아직도 싸움과 폭력, 미움이 가득 차 있건만 봄이 오는 이 대지에 속삭이는 당신의 귓속말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 하라 사랑하고, 또 사랑하라 그리고 용서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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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주주의에 대한 성찰 | [ 월요사회정치교실] 3강 토론정리입니다 | 쉼ㅋ | 2009.6.6 | |||||||||||
모두들 길게 쓰셔서 2쪽 분량입니다. 문장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제가 이해한 수준에서 다듬었고, 알아보기 힘든 단어는 부득이 뺐습니다. 참고하세요. p.s. 필요하시면 손으로 쓰신 원본을 돌려드릴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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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어 보는 종교, 전쟁, 평화 | [설문결과] 화요인문학교 '뒤집어보는 종교, 전쟁, 평화' | 느티나무 | 2009.6.6 | |||||||||||
<뒤집어 보는 종교, 전쟁, 평화> 설문조사결과 * 주관식 답변 중심으로 올립니다~~~ 혹시 못 하신 분이 있으면 첨부파일에 설문지를 첨부하오니 체크하셔서 people@pspd.org 로 보내주세요. 그리고 간단히 더 추가해주실 분은 댓글로 달아주세요. 설문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중한 의견 열심히 반영하여 하반기 더욱 좋은 프로그램을 준비하겠습니다. 1. 화요인문학교 <뒤집어보는 종교, 전쟁, 평화> 강좌를 신청하신 동기는? -이슬람이 궁금 2. 이 강좌를 신청하였을 때의 동기를 충족하셨습니까? 2-1. 위의 답변에 대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다양한 종교의 측면에서 역사 속의 분쟁을 이해하는데 도움,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무지 에 대한 오해가 줄어들 듯 3. 전체 강좌의 진행에 대한 평가와 건의사항을 적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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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어 보는 종교, 전쟁, 평화 | [화요인문] 6월9일 수료기념토론회 안내 - 지금 나에게 종교는 무엇인가 | 댄스주은경 | 2009.6.6 | |||||||||||
<6월 9일 수료기념 토론회 안내>
지금 나에게 종교는 무엇인가 부제 - 현대인의 고통과 종교, 그리고 나의 삶 안녕하세요. 애초에는 6월 9일을 주제발표심포지움 - 종교간 평화운동, 그 비전을 향하여로 설정하였으나, 그래서 우리 강좌의 마무리로 수강생들이 소감문을 제출하고, 그 주제들을 분류해서 그동안의 강사들이 코멘트를 덧붙이는 식으로 진행하려 했어요.(느티나무의 교육 목표는 성찰과 소통이거든요.) 그런데... 우리 참가자들... 소감문 제출이 영 부담스러우신가봐요. 반응이 썰렁... 하하. <지금 나에게 종교는 무엇인가> - 현대인의 고통과 종교, 그리고 나의 삶 1. 기획취지 - 지난 9회의 강의를 통해 기독교와 이슬람을 중심으로 종교와 국가권력이 역사적으로 어떤 관계였는지, 종교가 전쟁에 어떤 입장과 개입을 해왔는지, 현대의 종교분쟁의 본질이 무엇인지, 한국현대사에서 종교는 전쟁에 어떤 태도를 보여왔는지 등을 를 생각해봤다면 - 마지막회에서는 현재의 시점에서 <나에게 종교는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 현실 정치상황에서공부나 일이 과거처럼 쉬운 성과와 보상을 주지 못하고, 합리적 삶의 개선에 대한 기대가 낙관적이지 않은 상황입니다. 사람들은 몰락의 위기의식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런 위기의식을 일상의 합리적 공간에서 위안을 받을 수 없는 시대상황입니다. 광장의 소통, 정치참여가 차단된 상태에서 상담치료, 영성 운동 등 유사한 종교행위를 찾기도 합니다. - 나를 포함해 현대인의 고통과 종교성을 연결해봅시다. 2. 주요 촛점 - 나는 어떤 때 종교에 다가가고, 어떨 때 종교를 거부하고 싶은가 3. 순서(7시 정시 시작) (1시간) 김진호, 박현도 선생님 두 분이 각 주제에 대해 30분씩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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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주주의에 대한 성찰 | [사회정치교실 4강] 강의교안 및 참고 기사 안내입니다. | 느티나무 | 2009.6.5 | |||||||||||
6월 8일부터 서강대 손호철 선생님이 사회정치교실 4강 이후 강의를 진행해 주십니다. 그리고 참고자료로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해서 프레시안에 실린 손호철 선생님 칼럼을 아래 소개합니다. 노무현, 그 이후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느냐고 묻지 말라. 그것은 너를 위해 울리는 것이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사실 사회운동가로서 그리고 정치평론가로서 개인적으로 노 전 대통령과 적지 않은 인연을 가져왔습니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뒤 국가보안법 폐지투쟁, 과거청산 등 개혁 작업에는 지지를 보내면서도 이라크파병, 한미 FTA, 비정규직 확대법안, 한나라당과의 연정 제의 등과 관련해서는 비판적 시각에서 반대해온 악연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불명예 속에서 최소한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비극적 방법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사실 문제가 된 금액의 수백 배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비자금을 챙겨서 수천억 원의 추징금을 선고받고도 해외여행에, 골프에, 할 것은 다하면서 재산이 29만 원에 불과해 낼 돈이 없다고 버티고 있는 다른 전직 대통령의 뻔뻔함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나 사라진 생명의 숨결을 되살릴 수는 없는 일이고, 문제는 '노무현, 그 이후'입니다. 그를 추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성대한 장례식도, 기념물 건립도 아니고, 그의 정신을 계승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즉 5.18처럼 화려한 기념물 건설과 금전적 보상 등에 밀려 정신계승이 소홀해지는 어리석음을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첫째, '바보 노무현'을 양산해야 합니다. 노무현 정신의 핵심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불가능할 것 같은 기득권의 벽에 부단히 도전하고 쓰러지면서도 다시 도전한 '바보정신'이었습니다. '노무현 DNA'를 물려받아 '제2의 바보 노무현', '제3의 바보 노무현'이 나타나 우리 주위에 널려 있는 다양한 기득권의 벽에 도전하고 이를 무너트리는 것이야 말로 그를 되살리는 길입니다. 둘째, 특히 지역주의를 넘어서야 합니다. '바보 노무현'의 핵심에는 망국적인 지역주의에 대한 도전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도전은 결국 실패하고 말았고 지역주의는 아직도 강고하기만 합니다. 그가 그처럼 열망했듯이 지역주의가 사라질 때 그는 저 먼 곳에서 환히 웃을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지역주의는 이를 아무리 비판해도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지역주의 보다 강력한 다른 정치적 균열구조가 생기지 않는 한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낡은 '민주대 반민주'의 구도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한국정치가 본격적인 '진보 대 보수'의 경쟁으로 나아갈 때 지역주의가 깨어질 수 있습니다. 이런 자리에서 긴 이야기를 하기는 뭐합니다만, 현재처럼 영남은 영남대로, 호남은 호남대로, 재벌부터 노동자까지 모두가 한 후보와 정당을 찍는 '초계급적 지역연합'을 호남의 노동자와 영남의 노동자는 지역을 초월해 노동자라는 자신의 입장에 기초해 진보후보를 지지하고 영남의 자본가와 호남의 자본가는 자신의 입장에 따라 보수후보를 지지하는 '초지역적 계급연합'으로 나가야 합니다. 셋째, 제왕적 대통령과 사당정치의 부활을 막아야 합니다. 물론 대통령으로서의 노무현의 공과는 논쟁적인 주제입니다. 그러나 고난의 길을 걸었던 정치인으로서의 노무현의 가장 큰 공헌이 '바보 노무현'이라는 도전정신이었다면, 대통령으로서의 노무현의 가장 큰 공헌은 '대통령의 탈권위주의화' 내지 '탈3김정치'라는 사실만은 확실합니다. 그는 검찰, 정보기관, 국세청, 감사원 등 권력기관을 대통령의 손발로 이용하던 낡은 관행과 단절했고 국회와 집권여당을 대통령의 시녀로 만들던 3김정치와 제왕적 대통령을 혁파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명박 정부 들어 권력기관과 국회, 집권여당을 대통령의 시녀로 만드는 제왕적 대통령이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사실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노대통령 후원자들(박연차와 강금원씨)에 대한 세무조사와 검찰수사 자체가 이 같은 '권력기관의 재시녀화'의 증표입니다. 그 많은 기업인들 중에서 왜 하필 이 둘이, 하필 그 시점에서, 세무조사와 검찰조사의 대상이 됐겠습니까?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의 발표대로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진정으로 "애석하고 비통하게" 생각한다면, 지금과 같은 제왕적 대통령의 부활을 중단해야 합니다. 그것이 이 대통령이 할 수 있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최고의 예우입니다. 넷째, 국가보안법 폐지 등 그가 이루지 못한 민주개혁을 완성해야 합니다. 2004년 가을 노 전 대통령은 탄핵의 역풍 덕으로 차지한 국회의 다수의석을 가지고 국가보안법 폐지 등 야심적인 민주개혁을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전략부재와 한나라당의 반대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소위 MB악법 등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을 막아내고 그 때 이루지 못한 민주개혁을 완성하는 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추모 사업입니다. 다섯째, '박연차 게이트'의 남은 반쪽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물론 노 전 대통령의 유언대로 누구도 원망해서는 안 되고 그의 죽음이 또 다른 정쟁과 분열의 씨앗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목숨을 던져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책임을 진만큼 이제 검찰은 천신일 씨를 넘어서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의혹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정략수사였다는 오명을 씻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특검에 의한 재조사가 불가피할 것입니다. '바보 노무현'은 죽었습니다. 그러나 영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