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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명 | 강좌후기 | 글쓴이 | 날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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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 생활정치, 나도 할 수 있다고! | [생활정치] 2강(1/24), 보충자료 | 대마왕 | 2013.1.18 | |
생각해보니 제가 녹색당 활동과 관련해 작년에 쓴 글이 있어 첨부합니다. 생활정치와 제도정치에 대한 고민을 담았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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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 생활정치, 나도 할 수 있다고! | [생활정치] 1강(1/17), 발제자료 | 놀이정신 | 2013.1.18 | |
ㅎㅎ 생활정치 강의를 들으시는 분들,
여러 수강생들과 함께 알찬 공부를 하게 너무 반갑구요^^ 세권의 책을 읽다 나름 정리가 필요하겠다 싶어 한번 발제해 보았습니다. 필요하신 분들 살펴 보셔요. 다음주에 또 뵙겠습니다.
정치의 발견』 5강 민주주의를 이해하기 위한 싸움 “현대 민주주의는 ‘대중과 정치 엘리트가 협력하는 체제’라고 정의할 수 있으며, 좋은 정당이라면 지지자와 정치가 사이의 좋은 협력의 체계를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중략) 시민은 단순히 유권자이기만 해서는 안 되며, 당원 내지 특정 정당의 적극적 지지자로도 활동해야만 민주주의가 좋아진다.” 143p. < 샤츠슈나이더의 『절반의 인민주권』> “아무리 민주주의 정치체제라 할지라도 정당정치가 사회갈등을 폭넓게 조직하고 동원하고 통합하지 못한다면 그때의 시민주권은 사실상 실현되지 않는다.” 145p. - 집단으로 호명되지 않고는 그 누구도 사회 속에서 존재할 수 없다. - 민주주의에서 사회 갈등을 공적 영역으로 전달하는 것이 정치의 기능이다. 갈등이 공적 영역에서 정당에 의해 조직되면 갈등의 규모는 커지지만 갈등의 수는 줄어든다. 민주정 치의 비결은 여기 있다. “정치, 정치인, 정당을 공격하고 비당파성에 찬사를 보내는 것은 갈등의 규모를 통제하고 갈등이 공적영역으로 전환되는 것을 막으려는 상층계급의 전략이다.” (반정치주의의 모략) "선거에서 투표율이 낮은 것, 그로인해 엉뚱한 후보가 당선되는 것을 두고 그 책임을 시민의 무지· 무관심· 무기력 탓으로 돌리는 것은 공동체 내의 좀 더 부유한 계층이 보여주는 전형적인 행태이다. 이는 어떤 정치체제에서나 늘 하층계급의 배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되어 왔던 논리이다. 좋은 정치, 좋은 정당이 기능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면, 시민 주권은 억압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고 그 경우 시민으로서의 역할은 발휘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대중권력의 한계를 감안하면서도 그것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정치체제를 조직하는 일... 즉 시민이 적극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정당 대안이 있는 정치체제를 어떻게 만들 것이냐 하는 문제로 집약된다. 자신의 정당 대안을 갖는 시민만이 주권자로서의 권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151p. ~ 154p. <생각할 문제> * 정당을 정치 엘리트들의 집단 정도로 이해하는 한국 → 정당 저발전이 가져온 결과 : 민주주의가 서구에 의해 이식되어 제대로 된 경험이 없다/ 민주화를 이룬 운동의 에너지 가 민주화 이후의 체제를 만드는 과정에서 배제되었다?/ 민주화 이후의 체제 형성은 구체 제에 기원을 둔 보수적 정치세력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진행 → 보수 독점적 정당체제 * 정당이 생활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클수록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일이 줄어든다. * 시민들의 자유의지를 위축시킨 것은 불평등이 급격히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깨어 나지 못한 시민이 아니라 이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정치세력에 있다.
『제3의 길』 엔서니 기든스 -2장 다섯 가지 딜레마 1. 세계화 경제적 세계화는 엄연한 현실, 금융시장에서는 완전히 세계화된 경제가 존재. 또한 통신혁명과 정보기술의 확산으로 인해 우리의 생활에서 시간과 공간의 변형을 초래 → 1989년 동유럽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tv없이 불가능/ 지방적 민족주의(스코틀랜드)/ 통치가 국가의 정부와 덜 동일시(비정부기구나 초국가적 기관들이 관리운영에 함께 참여) 2. 개인주의 자기중심세대의 등장을 놓고 좌파는 ‘국가에 대한 의존보다 개인의 자활을 강조하는 시장의 힘’에서 찾고 우파는 ‘1960년대 이후 도덕적 쇠퇴 때문으로 파악'. 그러나 이는 모두 잘못된 분석. 자기중심주의는 ‘새로운 개인주의’로 파악해야 → 이는 다른 말로 ‘제도화된 개인주의’/ 젊은 세대는 도덕적인 문제에 대하여 이전 세대보다 더 관심이 많음/ 복지국가에서 권리와 수혜의 자격이 개인 단위로 계획, 설계됨으로써 사람들은 자신을 개인으로 확립하도록 유도됨/ 생활에서 전통과 관습의 권위가 후퇴 →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 응집력은 국가의 권위에 기대는 상의하달식 작용이나 전통에 대한 호소로 이루어질 수 없음/ 우리는 보다 적극적으로 우리가 행하는 행위의 결과와 우리 생활스타일에 의해 야기되는 결과에 대해 책임져야 함/ 새로운 개인주의는 민주화를 향한 압력과 서로 협력하며 나란히 나아가고 있음/ *개인적인 책임과 집단적 책임 사이의 새로운 균형을 찾아야 함. 3. 좌파와 우파 좌파 우파의 성격은 늘 논쟁의 대상이었고 그 의미 또한 시대마다 변화되어 왔음. 그러나 정치란 필연적으로 대립적이기 때문에 어떤 것도 좌우 양쪽에 동시에 있을 수 없고 그러한 구분을 통해 한쪽은 다른 한쪽과 대비되는 다른 특성을 지니게 됨(따라서 좌우의 구분은 여전히 타당함. 특히 평등의 문제에 있어서). 이러한 대립에서 패배한 쪽의 전략은 ‘상대방의 입장을 끌어들여 그것을 중립화시킴으로써 상반되는 입장들의 종합’을 만들어내는 것. → 그럼에도 그 구분이 예전만큼 가치를 지니지 못하는 이유는 전통적인 좌파운동이 제기하지 않았던 문제들의 출현과 사회변혁을 위한 계획들의 몇 가지 가정들이 구체화되지 못했기 때문/ 좌파는 사회정의와 평등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정부가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 *산업국가들에 극좌파는 존재하지 않으나 극우파는 존재함/ 경제관리 이론으로서 사회주의의 패망은 자본주의를 대체할 대안까지 상실/ *이러한 상황에서 남은 논쟁은 ‘얼마만큼, 어떤 방법으로 자본주의를 관리하고 규제할 것인가’ 뿐. → 좌,우파 구도 속에 없던 문제들이 대두됨으로써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정치적 중도주의를 새롭게 인식해야 할 시기가 옴/ 좌파와 우파가 예전보다 포괄성이 축소되었으므로 적극적 중도, 급진적 중도라는 개념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함(중도 좌파가 곧 온전 좌파를 의미하지 않음)/ 새로운 사회민주주의는 중도 좌파여야 함(사회정의와 해방의 정치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 중도란 공허한 실체가 아니라 다양한 생활스타일들로부터 만들어낼 수 있는 연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4. 정치적 행위 세계적 시장에 의해 국가(정부)와 정치(정당)는 힘을 잃어가고 있음. 그러나 시장이나 다른 비정부기구 혹은 시민·사회운동 그 어느 것도 정부를 대체할 수는 없음. 현재 벌어지는 탈정치화(정부와 정당들의 영향력 고갈)는 다르게 보면 정치참여와 행동주의의 확산으로 이해할 수 있음(하위정치의 활성화/ *하위정치는 어느 정도까지 전통적 정치와 정부의 영역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인가) → 기술이 개인과 조직 사이의 관계를 재규정하면서 세계사회의 제도들이 새롭게 창조되고 있음(세계적 비정부기구들의 활약, 1989년 동유럽에서의 변화를 이끌어낸 시민단체들)/ 의회정치보다 하위정치의 쟁점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젊은 세대/ 정치, 국가, 경찰, 변호사 등 권위적인 것들에 대한 신뢰가 전반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상황/ → 새로운 쟁점들에 관해 좌파의 태도가 바뀌었다는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음/ 대부분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분열되어 있어 충분한 대안이 성숙하지 못하고 있는 어정쩡한 상태 →그러나 사회운동과 특수이익 집단들이 아무리 중요할지라도 그 자체가 통치를 할 수는 없으므로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그 시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려면 어떻게 정부를 재건해야하는지 고려해야함 5. 생태환경적 쟁점 하위정치 개념을 낳을 만큼 생태환경의 정치의 영향력은 괄목할 만한 함.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지속가능한 개발, 생태환경적 현대화의 개념들을 수용. 그러나 영국의 보수당 또한 비슷한 정책 원칙을 제시함으로써 이러한 개념들이 얼마나 모호하고 부정확한 것인지 알 수 있음. 또한 환경보호의 문제는 때때로 경제발전과 갈등을 일으키며 어떤 환경문제는 국경을 뛰어넘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침(개별적 국가 단위의 정책만으로는 뚜렷한 한계) → * ‘생태환경적 현대화는 정부와 업계, 온건한 환경주의자, 과학자들이 환경적으로 보다 옹호할 만한 노선을 좇아 자본주의 정치경제를 재구조화하는 데 협력하는 형식의 동반자적 관계를 의미한다.’ (*생태환경적 현대화가 산업계에도 이득이 될 것이라는 인식을 통해 산업계가 적극적으로 협력케 하는 것) → 과학의 진보에 대한 태도 등 과학기술과 관련된 것들이 정치 영역 안으로 들어오게 됨(광우병, 지구온난화)/ 환경문제와 관련해서 벌어지는 리스크들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므로 이와 관련한 의사결정에 정치가와 시민들도 참여해야 함(공개토론) →자연과 전통이 변형되면(환경이 바뀌면) 미래지향적인 제반 결정들이 취해져야 하고 그 결정이 낳는 결과에 책임을 져야함(개인이든 국가든)/ 누가 이런 문제에 책임을 질 것인가, 누가, 어떻게 안전을 제공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새로운 정치의 주요 관심사임/리스크 환경에 대한 적극적 탐색과 대처는 사회적, 경제적 동원의 필수 요소이며, 서로 각각 떨어져 있는 많은 정치 영역들을 하나로 통합함/ 생산적인 방식으로 리스크에 직면하고 무릅쓸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함.
『액체근대』 지그문트 바우만 - 1장 해방 <자유라는 축복의 양면성> - 상상(욕망)과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능력 간에 균형이 유지될 때 우리는 자유롭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 균형이 고스란히 유지되면 ‘해방’은 무의미한 구호가 된다. - 철학적으로 주관적 자유과 객관적 자유를 구분하여 논할 때 생겨나는 정치적 쟁점들 1. 자유처럼 느껴진 것이 전혀 자유가 아니었을 가능성 2. 객관적으로 만족스러운 상황이 아님에도 사람들이 자족할 가능성 3. 이러한 상황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자신을 해방할 어떤 필요도 느끼지 못한 채 참된 자유를 누릴 가능성을 박탈당할 가능성 →여기서 도출되는 가설들 1. 사람들이 자신의 상황을 파악하는데 무능할 수 있으므로 자유를 위해 싸우려는 결의와 용기를 갖게 하는데 강제 혹은 회유가 필요하다 2. 자유로움 누리기 위해 겪어야하는 곤경을 고려할 때 사람들은 자유로움 자체를 싫어하 거나 해방의 전망에 오히려 분노할 수도 있다(오디세이의 일화, 돼지가 된 선원들) -‘해방은 축복인가 저주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두 가지 대답 1. 평범한 사람들은 자유를 누릴 준비가 돼있지 않다(대중에 대한 경멸, 분노, 책임추궁) (밑바닥계층의 부르주아화, 대중문화-문화산업으로 인한 집단적 두뇌손상) 2. 자유가 가져다줄 이득이 있을지 의심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자유가 곧 행복 은 아니다/ 강제적 제제들에서 벗어난 인간은 자유로운 개인이라기보다 짐승) →이런 철학에서는 사회적 억압(규범)이 바로 해방적 힘이며 자유를 가능케 할 유일한 희망 이다. 규범은 맹목적이면서 분별없는 힘들로부터 보호해주며 그런 안식처 안에서 인간은 해방을 얻는다. #결론: 이 시대의 개인은 이미 많은 자유를 얻었다. 그리고 그만큼 공동체성은 사라졌다(?) <비판의 우연성과 그 변화하는 운명> -이러한 자유로운 개인들의 사회는 현실에 대한 비판을 수행해왔다. 그러나 그러한 비판과 반성은 우리 행동의 인과관계와 결과들을 규명해낼 만큼 심화되지는 못한다. 즉 우리의 비판은 자신의 정치적 선택에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있다.(전대미문의 자유가 전대미문의 무능을 동반) -다시 말해, 유동적 근대의 시기에는 소비자스타일의 비판이 과거 생산자스타일의 비판을 대체했다. 그 원인은 공적 공간이 변형된 방식, 현대사회가 작동하고 지속성을 유지하는 방식에 자리하고 있다. (?) -과거의 근대성 시기는 그 특성상(무겁고, 고체 같고, 체계적인) 전체주의가 될 경향이 다분했고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은 희생당했다. 따라서 당시의 비판이론은 이러한 획일화와 단일화에서 개인이 벗어나게 해주는 것을 해방의 목표로 간주했다. -그 이후 공공의 영역에서 이러한 공포가 줄어들자 ‘근대성의 종말’이 이야기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디스토피아적인 근대는 근대성의 한 유형일 뿐, 그 유형이 쇠약해졌다고 근대성이 사라지는 게 아니며 더불어 인간의 불행이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며, 나아가 비판의 소임이 없어진 것 또한 아니다. -21세기의 근대성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개간하는 근대성, 해체 제거 합병 대규모 감원의 근대성, 생산성과 경제력을 제고하는 일에 더 매진하는 근대성이다 -그러나, 21세기만의 근대성을 특징짓는 것들도 있다. 1. 초기 근대에 믿어졌던 환상들이 붕괴되고 있다(시간이 흐를수록 더 나은 미래와 사회 가 올 것이라는,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환상) 2. 근대화의 과제와 책임의 규칙이 폐기되고 사적인 것으로 변했다(집단적 차원의 문제와 책임이 개인의 영역에 맡겨졌다/ 윤리적, 정치적 담론이 정의로운 사회라는 구조를 벗 어나 인간의 권리라는 구조 속에 재배치→증간계층과 밑바닥 계층이 근대화 부담의 대 부분을 떠맡게 됨/대처 왈, 사회 같은 것은 없다) -하여, 경계해야할 빅브라더도 없지만,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위대한 지도자도 없다 <시민과 개인의 전쟁> -현대 사회의 개인화는 강제로 짜여진 조직에서의 해방을 말하던 시대에 그것이 의미하던 것과는 다른 것이 되었다. 즉, 이 시대의 개인화는 나의 ‘정체성’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행해야할 과제로 삼아 그것에 대한 책임과 결과를 행위자에게 지우는 것이다(개인의 사회적 위상이 개인의 결단에 맡겨짐/ 이 과정에서 위계로서의 신분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계급으로 대체) -적은 자원을 지녀 선택권이 좁아진 이들은(하층계급) 집단적이고 계급지향적인 행동을 하였으며 그렇지 않은 이들(고용주)은 삶의 목표를 개인적으로 추구하게 되었다 -하지만 계급은 상속된 신분과 별반 다르지 않고(계급의 구성원들을 견고하게 유지하려는 사회에서는) 이러한 상황에서 해체된 개인들이 새로운 기반을 구축할 전망은 없다 →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개인화는 정해진 운명이지 선택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결국 사회적 모순은 계속 생겨나는 데 그것을 해결할 의무는 개인의 차원에 머물게 된다(개인들의 비슷한 고충들은 나란히 놓이기만 할 뿐 하나로 응축되지 않아서, 공통된 대의명분의 합으로 이끌어지지 못한다) -이렇게 놓고 볼 때, 인간을 자유롭게 해방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들을 무관심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개인은 시민의 최대 적이 된다(개인화의 이면에는 시민의식의 부패와 점진적인 해체가 있다) -* 이러한 상황에서 공공의 선이나 공동의 삶을 위한 방안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려워졌으며 개인들은 단지 ‘네트워크’에 대한 필요로 친밀함에 기반을 둔 ‘말뚝공동체’(나약하고 산만하며 단명하는)만을 만들어낸다 -유동적 근대의 주요한 모순점은 자기주장을 할 권리와 그러한 주장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조정할 수 있는 능력 간의 간극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개인적으로 꿈꾸고 주장할 수는 있으나 실제로 사회 안에서는 실행이 불가능한 상태)-결국, 개인화는 ‘자아 안에 홀로 갇히는’ 형벌이라 할 수 있고, 현대의 개인들은 이러한 상황을 알아차릴 능력 또한 결여되어 있다 → 함께 살아가는 방식과 개인화의 충격을 해결하는 방식에 대한 논의는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 시행착오, 비판적 사고, 과감한 실험을 통해 집단적으로 대결하는 방식을 익혀야 한다) <개인들의 사회에서 비판이론이 처한 곤경> -삶의 모순, 체제의 모순들을 해결할 효과적인 해결책들이 없기 때문에 개인들은 원인과 그 곤경의 복잡성을 애써 축소하며, 두려움을 집단적으로 의지할 말뚝(희생양-범죄자, 이방인, 정치가, 음모 등)을 필요로 한다 -법률상의 개인과 실제로 자신의 운명에 대한 통제권을 쥐고 진정 원하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 사이에 존재하는 엄청난 간극→ *그러나 이런 간극은 개인이 생활정치 안에서 얻는 수단과 자원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공적 개념으로써의 ‘정치’의 문제이다 -* 이런 간극이 점점 커지는 이유는, 일상의 정치가 공적인 정치와 만나고, 사적인 곤경들에 대해 공공의 해결책들이 모색되고 조정되는 장소가 텅 비었다는 데서 연유한다 -이런 상황에서 비판이론의 과제는 완전히 전도되었다. 오늘날 비판이론의 임무는 사적인 자율성을 공공영역에서 구해해내는 것이 아니라, 사라져가는 공공영역을 수호하는 것, 빠르게 비어가는 공적 공간을 정비하여 사람을 채워 넣는 것이다(형식상의 개인화와 정치와 권력 간의 간극을 메우는 일) -사적인 것들에 의한 공적 공간의 식민화 →공적 공간에서 공적 현안들이 사라지고 있다 -법률상 개인은 먼저 ‘시민’이 되지 않으면 될 수 없으며, *진정한 시민이란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문제들을 스스로와 관련지을 이유가 있다고 보고, 그 이유에 따라 행동하는 자이다. 이렇게 망각된 시민으로서의 기술과 도구들을 다시 습득하고 사용하는 개인만이 우리시대의 간극을 메울 수 있는 유일한 자이다. <다시 생각해 보는 비판이론> -지혜와 그렇고 그런 신념 사이의 간극과 소통의 어려움은 곧 권력과 정치의 문제로 향함. 이는, 철학과 국가 간 관계의 문제로 정치에 참여할 것인가 아니면 정치적 관습과 거리를 둘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문제/ 이 선택은 달리 말해 무능할 수밖에 없는 진리와 진리를 위배할 수밖에 없는 권력 중 하나를 택하는 것 -철학의 진리와 현실 간의 간극이 메워지지 않은 채 남아 있는 한 국가가 독재의 형태를 취할 수 있다(철학적 진실과는 현저히 다른 현실을 수용하고 감안하지 않은 채 어떤 권위가 이끄는 관념과 행동을 시민들에게 강제로 부과한다면) → 독재를 독재로 만드는 것은 다른 이들의 생각과 요구를 무시하는 것이다/ 보편적 가치와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회적 현실 사이의 고리가 되는 것이 정치이다 -철학의 진리는 그것이 수용되고 인정받는 데 존재이유가 있으므로 철학자들의 언어가 정책의 몸이 되어야 한다 <생활정치 비판> -오늘날은 비판이론이 다루어야 하는 주제가 사라질 형국. 즉 담론이 진단하는 바는 오늘날의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되고 제안들은 더욱더 불명료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 해방이 지녔던 의미는 낡은 유물이 되었으나, 해방의 임무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고 여전히 많은 공적 의제들이 비판이론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그 의제란 법률상의 개인과 자기주장을 할 수 있는 실질적인 가능성 사이의 간극에서 발생하며, 이에 대해 비판이론가들이 제기하는 바는 사람들이 자기주장을 실현할 조건으로 제공받은 것은 불성실과 비효율이라는 점이다(선택의 자유에 너무 많이 부과된 강제요인들) -철저하게 개인적이고 주관적으로 일관한 삶의 경험을 공공의 의제에 맞게 가다듬는 일의 어려움, 제도적 뒷받침이 변변치 않아 더 커진 기대에 맞서기가 더욱 어려워진 상황, 의지할 곳이라곤 개인의 열정과 헌신 밖에 없는 환경에서 더 지속적인 접착력이 요구되는 공공행동의 허약함 등이 비판이론가들이 자신의 철학을 공공정책과 연관시키고자 할 때 맞닥뜨리는 난관들이다 -사적인 것이 공적인 것을 점령하는 상황에서 해방이라 함은, 오직 법적인 개인의 자율성을 실제적인 자율성으로 바꾸고자 하는 노력하는 것이다/ 오늘날 진정한 해방에는 공적인 영역과 공적권력의 필요성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더욱 요청된다(역설적이게도 공적영역의 보호는 개인의 해방을 강화하기 위해 필요하다) -이러한 해방의 과정에서 비판이론이 할 일 1. 사적인 문제들을 공적 현안으로 옮겨 쓰는 일 2. 고유하게 사적인 문제들을 개인적 요소들의 총합이 아닌 넓은 차원의 공적 관심사로 응축해내는 일 3. 생활정치의 사적인 이상향들을 통해 다시 한 번 좋은 사회와 정의로운 사회의 전망을 만들어내는 일 → *더 이상 이런 일들을 생활정치가 떠맡게 할 게 아니라 공공정치가 자신의 기능을 회 복하게 해야 한다/ 공동의 대안적 삶을 모색하는 일은 생활정치의 대안을 고찰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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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 생활정치, 나도 할 수 있다고! | [생활정치] 2강(1/24), 공부자료 | 대마왕 | 2013.1.17 | |
안녕하세요. 다음주(1/24) 생활정치 공부자료를 올립니다. 조금 있으면 만나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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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 ‘힐링’을 넘어 ‘성찰’로 | [힐링을 넘어 성찰로] 1강(1/14), 절망사회? 지금은 힐링과 성찰의 시간 | 느티나무 | 2013.1.16 | |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 ‘힐링’을 넘어 ‘성찰’로 : 1강 (1/14, 월) 강의소개 보러가기 >> 클릭 "반갑습니다" 사전순서#1 : 이름외우기 참여자들은 출석체크를 한 다음 스티커에 오늘 불리고 싶은 별칭을 적어 가슴에 붙였다.
사전순서#2 : 몸풀기!
누가 내 등을 두드리는지 모를 정도로 서로서로 손을 잡아 서로의 등을 두드려줬다. 장면 #1 : 마음 속 단어 쏟아내기 대선 전 나의 마음, 대선 후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형용사>를 낱말카드에 적었다. 적어 낸 낱말카드를 모두 섞은 다음 비슷한 단어끼리 모아봤다. 장면 #2. 말로 못하는 이상한 감정 신체 언어로 표현하기 대선 이후의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단어를 한 가지만 고른 후 비슷한 부류의 단어를 선택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조를 만들었다.
장면 #3. 자신의 감정을 척도로 표현하기 각 조의 이름(투쟁, 아빠가싫어 이민가고 싶은, 어려운, 멘붕)을 주제로 ① <어려워> 라인 ② <멘붕>라인 ③ <투쟁>라인 ④ <아빠가 싫어 이민가고 싶어> 라인
장면 #4. 어둠속의 댄서 - 슬픔의 댄스, 분노의 댄스 수면안대를 쓴 참여자와 쓰지 않은 참여자들이 각각 짝을 이뤄 공간을 안내해주고, 함께 춤을 추는 시간을 가졌다. "이보다 더 즐거울 순 없으리~" 장면 #5. Six impossible things.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Six impossible things 이야기를 들어본 후
처음엔 어색하기만 했던 몸을 사용하는 워크숍이 흥겹고 기대에 찬 모습으로 가득찼을때 어느덧 끝날 시간이 되었다. 3주 변화될 나의 모습 기대하시라! 후기 글: 아카데미느티나무 천웅소 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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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를 찾는 사람들 – 박경신 교수 & 최승호 피디 | [참쇼] 표현의 자유를 찾는 사람들, 박경신 교수, 최승호 피디 | 웃으며,함께,끝까지 | 2012.12.21 | |
참되고 참신한 참여연대 토크쇼 후기 표현의 자유를 찾는 사람들 - 박경신 교수, 최승호 피디 글 : 자원활동가 김주호
피디수첩 제작진에 대한 중징계, 미네르바 사건, 민간인 사찰과 관련한 국정원의 명예훼손 소송, MBC파업, 음란물의 기준을 둘러싼 표현의 자유 논란, 공직선거법상 인터넷에서의 정치적 의사표현 금지 조항 위헌판결까지... 지난 5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수많은 사회적 갈등이 벌어졌다. 어떤 이들은 표현의 자유가 남용되고 있다고 말하고, 또 다른 이들은 표현의 자유가 억압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과연 어떠한 주장이 타당한 것일까? 그동안 크게 주목받지 않았던 대한민국 헌법 제21조 ‘표현의 자유’는 어떠한 이유로 이토록 뜨겁게 우리 사회를 달구고 있는 것일까?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시민들의 각성? 아니면 정권 차원의 강력한 제재?
# 이야기 나누기1. 박경신 교수 : 표현의 자유 현주소를 말하다 박경신 교수는 지난해 7월 남성의 성기 사진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관련 의결 결과를 비판하는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실어 정보통신법 상 음란물 배포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러나 지난 10월 열린 항소심에서 고등법원은 벌금 300만원의 유죄 선고를 내렸던 1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 진실유포죄, 미약한 문제제기를 자체를 봉쇄하다. 우리 형법은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은 물론 진실한 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또한 처벌하고 있다. 실제로 임금이 체불된 노동자가 사업장 앞에서 사용자에 관련된 내용을 피켓으로 들었다가 유죄로 처벌된 예가 있다. 당장 비리를 저지른 사람이 있어도 실명보도를 하게 되면 해당 언론사는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우려가 있고, 그렇다고 익명보도를 하게 되면 사람들이 그 정보를 정확히 알 수 없게 된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여러 현장고발 보도프로그램들은 익명처리와 모자이크로 인해 바닥만 보다가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솔로몬의 선택에 출연했던 한 여자 변호사를 비판하는 내용이 PD수첩을 통해 방영되자 거기에 같이 출연했던 또 다른 여자 변호사는 오히려 자기가 그 문제의 변호사로 오인 받는다며 실명보도를 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알고 보면 만두파동, 치킨파동의 경우에도 이물질이 나온 제품이 어떤 것인지 사실대로 보도를 하지 못하자 사람들은 어떤 제품이 문제의 제품인지 알 수 없게 되었고, 결국 모든 만두와 치킨을 먹지 않아 생긴 사건이었다. 즉, 서로가 서로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사회는 제대로 발전하기 어렵다.
- 모욕죄, 당신은 모욕당할 권리가 없다. 대한민국 형법 제311조에 규정된 모욕죄는 전 세계에서도 독일, 일본, 대만 그리고 우리나라에만 있는 죄이다. 말대로 남을 모욕하는 것을 처벌하는 규정이다. 몇 해 전, 배우 문근영 씨가 많은 기부활동을 통해 사람들의 찬사를 받자 보수논객인 지만원 씨가 ‘문근영의 외할아버지가 빨치산 이었다’는 문제 제기를 했고, 거기에 한 네티즌이 “지는 만원이라도 냈나”라는 댓글을 달았다가 모욕죄로 고소를 당해 유죄판결을 받았다.
모욕죄는 원래 전근대 유럽에서 중세적인 마인드로 만들어낸 법 규정이며, 이는 봉건제를 지탱하는 계급적 사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동양에서는 이러한 사상이 유교윤리로 나타났는데, 여기에는 사람들이 태어날 때부터 각자의 자리가 있고 그 사람에 대한 평가는 과연 자신에게 주어진 그 자리에서 얼마나 충실하게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 서로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관념이 내재되어 있다. 즉 진실을 말하더라도 그 사람의 사회적 평판을 저하시키면 처벌을 받도록 함으로써 귀족들이 비판으로부터 자유롭도록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었다. 따라서 모욕죄가 처음에 만들어질 때 귀족이 아닌 일반인들은 모욕죄를 주장할 수 없었다.
유럽의 경우에는 1930년대 나치가 봉건적 잔재를 없애면서 모욕죄 규정을 폐지하였지만 우리나라는 일본을 통해 모욕죄를 받아들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독일의 경우에는 모욕죄의 문턱이 높지 않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모욕죄의 문턱이 높아 법조인 친구라도 있지 않으면 사실상 모욕의 피해를 구제받기 어렵다. 모욕죄는 피해자가 직접 고소를 해야 하는 친고죄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자기가 당한 모욕의 피해를 검찰을 통해 보전받기가 상당히 힘들다. 결국 현재 우리나라에서 모욕죄는 일부 힘 있는 사람들, 즉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하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자기의 체면과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을 보호하는데 주로 작동한다. 실제로 모욕죄의 주요 처벌대상은 집회 시위 참가자나 철거반대 농성자이다.
미국에서는 욕설을 통제하는 경우도 사상통제일 수 있다는 판결이 있었다. 베트남전 당시 강제징용이 실시되자 많은 시민들이 반전시위와 함께 징병을 회피하기 위한 시도를 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옷에 “Fuck the draft”라는 말을 쓰는 것이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무죄판결을 내렸다. 언어란 정보를 전달하기도 하고 감정을 전달하기도 하는 두 가지 기능이 있는데 어떠한 감정은 꼭 그 단어를 써야만 전달될 수 있는 경우가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2002년 효순미선 촛불집회 때도 시위구호가 ‘Fucking USA’였지만 어느 누구도 문제삼지 않았다. 많은 욕설들은 주관적으로 증거가 있는 증오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감정의 표현들을 일일이 국가나 다른 누군가가 분석하고 판정해서는 안 된다는 게 다원주의와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원리이다. 그 모욕죄 역시도 검찰이 직접 개입하서 단속하는 경우는 우리 나라 뿐이다. 심지어 우리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모욕죄에 대한 형량이 높다.
명예훼손에 대한 우리의 형사처벌 제도도 바뀌어야 한다.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시민의 정치적 인권을 명시해놓은 두 개의 협약, 자유권협약과 사회권협약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둘 다 가입이 되어있는 반면에 미국은 자유권 협약만, 북한은 사회권협약만 가입되어 있다.
“언론사가 언론인에 의해서 이렇게 망가질 수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MBC가 과거에도 문제가 있었던 적이 있지만, 이 정도로 망가진 적은 없다. KBS, MBC, YTN, 연합뉴스의 연대파업 같은 정도의 싸움이라는 것은 대한민국 언론사에서 처음 일어났던 엄청난 일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현실을 바꿔내지 못한 점이 상당히 우려스럽다” 황우석 사건, 스폰서 검사, 4대강 등 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던 MBC PD수첩에는 늘 그가 있었다. 그러나 최승호 전MBC PD는 파업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지난여름 해고되었다. 또한 22년간 숱은 화제의 프로그램을 방송했던 PD수첩은 방송이 중단되었다. - 그들이 방송을 잡으려고 하는 이유 언론분야에서 방송은 상당히 중요하다. 광고주 협회가 조사하는 신뢰도 조사에서 KBS는 영향력 면에서 50%정도이고 여기에 MBC까지 합치면 약 70%에 이른다. 전문가들 조사에서는 한겨레도 높은 편이지만 광고주 협회 조사에서는 그 영향력이 0.8%에 불과하다는 것을 봐도 방송의 강력한 파워를 알 수 있다. 그러다보니 정권입장에서는 방송은 무조건 잡아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노무현 정부 때는 이러한 방송통제가 많이 사라졌고 그래서 황우석 보도라든지 큰 보도들을 할 수 있었는데, 이명박 정부 때는 마치 그동안의 통제를 모두 모아 한 방에 몰아치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러다 보니 그 영향력은 전두환 정부 정도는 되었을 것 같다.
- ‘4대강 수심 6m의 비밀’ 제작 비화 최승호PD는 그동안 4대강을 다룬 프로그램을 3번 만들었다. 시민단체들은 4대강의 본질을 대운하라고 하는데, 그는 MB정부에 이러한 내용을 방송해서는 안 된다는 지침 같은 것이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왜냐하면 프로그램마다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반응이 조금씩 달랐기 때문이다.
- 방송의 공정성, 점령하라! 최승호PD는 PD수첩을 둘러 싼 모종의 플랜을 짠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PD수첩을 없애고 담당PD들을 다 자르고 시사교양국을 아예 다른 곳으로 보내버렸으며 PD수첩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을 부장으로 앉혔다. 170일간의 파업을 푸는 과정에서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직접 노조에 약속을 하기도 했고 파업을 풀고 돌아가면 새누리당을 책임지고 설득하겠다, 김재철 사장 문제를 국민의 눈높이게 맞춰 처리하겠다고 해놓고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오히려 방문진 이사들이 김 사장의 해임을 막았다. 이것은 방송의 통제구조를 놓을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이러한 구조의 틀 속에서는 자신들이 이사회에 개입해 해임을 무산시킨다고 하더라도 저항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계산했던 것이다. 실제로 그러한 개입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던 일처럼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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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위기와 경제민주화 | [세계경제위기와 경제민주화] 4강 감세정책, 지속가능한가 | 느티나무 | 2012.12.15 | |
4강, 감세 정책, 지속 가능한가
일 년 넘게 연일 신문지상을 장식하는(나는 이직 종이신문을 열심히 보는 세대이다) 그리스와 스페인 등 유럽 국가들의 경제위기, 젊은이들의 시위, 자살소식 그리고 미국 경제의 불안과 미국 대선의 선거정책들, 아랍의 봄에서부터 오큐파이 운동까지 이어지는 그 현상에 대한 의견들. 그리고 대한민국의 현실과 난립하는 대선 정책들.
이런 상황을 잘 알지 못하니 우리는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고 막연한 불안감만 느끼곤 한다. 최근에는 우리의 대선정국에서 각 정당이나 대선주자들이 발표하는 여러 정책에 대해 누가 맞는 말을 하고 누가 틀린 말을 하는지가 궁금했다. 사실 옳다 그르다 라는 표현보다는 누가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실현 가능한 대안을 모색하는지를 알고 싶다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그래서 참여연대 느티나무 가을학기 강의 <세계경제위기과 경제민주화>를 듣기로 했다. 내용이 어려울 것 같다는 걱정은 되었지만……….
네 번째 강의 ‘감세정책, 지속가능한가’ 의 강연자는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소장이기도 한, 강병구 인하대학교 교수였다. 마침 그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새해 예산안을 두고 열린 공청회에 무려 6시간 동안 진술자로 참석한 뒤 바로 야간 강의를 하러 달려오셨다. 힘드셨겠지만,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소장이라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 이 나라 경제를 걱정하는 선남선녀들이 모여 있기에 아마도 기쁜 마음으로 강의하셨겠지 라고 생각해본다.
현재까지의 자본주의 성장전략에 대한 고찰에서는 자본주의적 발전의 다양성, 분배와 성장의 관계 등을 살펴봤고 세제개편의 추이에 대한 부분에서는 국제적 흐름, 이명박정부의 세제개편 내용과 국가채무 규모 등에 대해 알아봤다. 이를 통해 현 정부와 참여정부의 국가채무가 그 규모를 떠나서 성격상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경제민주화와 조세정의가 어떤 뜻인지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또한 성장률, 고용지표, 경제력 집중, 양극화, 소득불평등의 심화, 자산분배의 양극화 심화, 사회보험 사각지대, 기초보장 사각지대 등 한국경제의 현황을 구체적인 수치로 접근할 수 있었다.(나에게 취약한 도표와 그래프로 말이다!)
우리나라 조세 및 재정체계의 특징이 무언지 아는가? 강병구 교수는 미약한 재분배기능, 낮은 조세부담률, 취약한 과세기반 등을 꼽았다. 구체적으로 소득세‧ 법인세 실효세율이 낮은 편인데 특히 둘 다 최고세율이 OECD국가들의 평균에도 미치지 못했다. 법인세의 경우 고용주 사회보장기여금 부담률이 상대적으로 낮았을 뿐만 아니라 일부 세액공제는 대기업에 편중되어 있기도 했다. 소득공제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상대적으로 상위소득에 유리하게 되어 있었다. 모두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는 것들이다.
마지막으로 강병구 소장은 우리사회가 해결해야 할 포괄적인 대안에 대해 설명했다. 사회보험과 기초보장제도의 사각지대 해소, 저출산‧고령화‧양극화‧고용없는 성장에 대한 대응으로 분배구조의 개선과 지속가능한 경제성장, 국가재정건전성 확보에 관한 것이었다.
또한 강병구 소장은 구체적인 세제개편 방안으로는 우선 ‘적정 세율, 넓은 세원’이 필요하다고 강변했다. 한마디로 ‘선 부자증세 후 보편증세’가 있다고 했으며, 그 밖에 여러 방안들에 대해서도 언급해 주셨다.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지금과 같은 감세정책이 지속된다면 국민들이 골고루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힘들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전문적인 강의 내용에 대해 여러 질문들이 나왔다. 조세형평성의 개념이 어떤 것인지, 증세의 필요성을 국민에게 어떻게 잘 설명하여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인지, 국내 외국인투자에 대한 과세현황은 어떤지, 세구간을 다양화하는 것이 필요한지, 파생상품거래세 부과움직임은 어떤지 등이었다. 공연히 나도 반 전문가가 된 듯 늦은 가을밤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대선 정국에서 한마디 하려면 수치를 잘 외워서 써먹는 것이 좋은데 그게 어렵긴 하지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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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중남미 역사와 문화 | [문학으로 읽는 중남미 역사와문화] 5강, 중남미 역사와 문화 | nataliemiri | 2012.12.7 | |
5강 중남미 역사와 문화
마지막 시간이었습니다. 4강까지는 문학작품을 위주로 한 강의였다면 마지막 5강 강의는 중남미 역사와 문화를 쭉 훑는 시간이었습니다. 구광렬 선생님께서는 중남미 역사와 문화를 두시간동안 다 설명한다는 것을 안타까워하시며 강의를 시작하셨습니다.
앵글로아메리카와 라틴아메리카로 부르는 것보다는 (지리적 지역구분), 문화적 요소를 포함하여 인권침해요소와 인종차별을 줄일 수 있는 북아메리카와 중남미아메리카로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고합니다.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cid=3436&docId=1525737&mobile&categoryId=3436 1.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발견'한 것이아니라 '침략'한 것이다. 콜럼버스의 1492년 신대륙을 발견한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지만 그는 인도의 일부를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이미 그 곳에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있었고 그들은 침략을 당했다. 정복자들은 그들에게 '인디오'라는 명칭을 붙였는데, 그 뜻은 인도사람이라는 것이다. 에스파냐어로 인디오, 영어로는 인디언이다. 정복자들 (에스파냐 사람들)은 3백 년 동안 남미를 지배하면서 원주민들에게 인종적 열등감을 심어 놓았다. 원주민의 유산은 미개한 것이며, 없애야 할 것으로 가르쳤다. 타완틴수요(잉카 제국) 시대의 수많은 신전을 부수고, 그 위에 가톨릭 성당을 지었다. 그리고 원주민들의 언어를 쓰지 못하게 했으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관습도 없애려고 하였다. 미국이 정복의 역사이며, 인디오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졌다는 걸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메스티조(mestizo) = 백인 + 인디오]
메스티조와같은 혼혈인은 두 나라의 피가 섞여있기때문에 국가적 정체성이 희미하다고한다. 중남미는 복합민족이며 현재도 백인들이 우위에 있으며 인디오들은 스스로가 하부계층에 고립되어있다고한다. 2. 식민지 독립의 아버지들 - 호세마르티 (쿠바독립의 아버지)
http://www.segye.com/Articles/NEWS/CULTURE/Article.asp?aid=20110803003623&subctg1=&subctg2= - 이달고신부 (멕시코독립영웅)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1072929051 3. 독립후~ 현재까지 멕시코와 쿠바혁명을 거쳐 현재에 이르러 체게발의 따님 알레이다게바라는 "사회주의의 완성은 우리의 과제"라며 연대성을 주장했다. 쿠바혁명당시 쿠바사회주의는 민생주의였다. 다른 중남미국가에 영향을 줬지만 제대로 작동하지는 못했다고한다.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68504 - 차베스 사회주의 관련기사 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7&artid=201210161132161&pt=nv 중남미는 황금만는사상이 지배적이며, 우리나라와는 달리 유교사상이 부족하다고한다. 국가관이 투철하지못하는 점이 국가발전에는 엄청난 저해가되는데, 이 점에는 복합민족의 구성도 한 몫하는 것 같다. 천연자원도 풍부하고 인구밀도가 적은 좋은 환경임에도 국민소득은 4~5천불이고 외채는 우리나라보다 몇 배는 많다고한다. 정치에있어서도 부패가 극에 달하였고, 대통령 한 명이 십년을 후퇴시킨다는 말도 있다고한다. 외부적으로는 미국에 종속되어있으며 백인들이 사회계층적으로 우위에 있다. 지리적으로도 미국에 큰 영향을 많이 받았고, 특히 멕시코와같은 경우는 다른 중남미와 달리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문물을 빨리 받아들였다고한다.
나에게 중남미는 미지의 세계이고 문화와 예술이 있는 나라이다. 이번 강의를 통해 '체게바라'의 뜨거운 가슴을 느낄 수 있었고, 현실적인 중남미 상황에 대해 알게되자 충격도 있었다. 현실적인 상황은 안타깝지만 나에겐 아직도 궁금한 곳이다.
글 : 이미리 자원활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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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숍: 소심한 사람들의 유쾌한 꼼지락 – 소리를 내면 세상이 바뀐다 | [소심한 사람들의 유쾌한꼼지락] 6강, 소심한 사람들의 꼼지락 발표 페스티벌 | 우진아빠 | 2012.12.6 | |
'소심한 사람들의 유쾌한 꼼지락 : 소리를 내면 세상이 바뀐다' 6강 (12/03, 월) 강의소개 >> 클릭 드디어 마지막 시간, 2012년 12월 3일 오후 7시 언제나 그랬듯이 첫 번째 놀이는 <길고양이>놀이다. 두 번째 놀이는 <조각가>놀이다. 네 번째 놀이는 4명씩짝을 지어, 이래은 선생님이 정해준 장면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또 지난 6주 간의 수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도 표현하고 맞추는 시간도 가졌다. 그렇게 서로 어울려 몸을 풀고 웃고 난 다음, 대망의 발표시간이 왔다. 첫 번째 발표자는
나는 아주 소심해요 유튜브동영상 보러가기 >> 클릭 (현재 미공개) 두 번째 발표자는 세 번째 발표자는 네 번째 발표자는 다섯번째 발표자는 마지막 발표자는 모든 발표가 끝난 후 마지막으로 - 세상을 바꾸지 전에 저부터 바꿀 용기를 주셨고, 제 주변과 연애 할 수 있게 할 시간을 가진 것 같아요! 6주간 함께해준 이래은 선생님을 비롯하여 "소심한 사람들의 유쾌한꼼지락" 다음 학기에 더 업그레이드 된 기획으로 찾아뵙겠습니다! 홍보영상 보러가기 >> http://youtu.be/CSEXEQmDefQ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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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숍: 소심한 사람들의 유쾌한 꼼지락 – 소리를 내면 세상이 바뀐다 | [소심한 사람들의 유쾌한꼼지락] 5강, 팀별로 기획하기, 리허설 | 우진아빠 | 2012.11.29 | |
'소심한 사람들의 유쾌한 꼼지락 : 소리를 내면 세상이 바뀐다' 5강 (11/26, 월)
5번째 강의는 평소보다 다소 적은 인원으로 시작했다.
첫 출발은 손가락 인형을 가지고 동영상을 만드것 부터 시작했다.
주제는 <소심한 사람들의 유쾌한꼼지락> 홍보영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두 조로 나눠 한 조는 노래를 선정해 개사했고, 나머지 한 조는 손 동작을 만들었다.
지난 시간에 가져갔던 손가락 인형을 깜박 집에 놓고온 참가자도 있었지만,
마침 간식으로 준비된 빵을 이용하여, 감쪽같이 인형을 만들어냈다.
30분 정도 시간이 흘렀을가, 정말 뚝딱 2분짜리 영상과 노래 안무가 만들어졌다.
결과물은 아래 유튜브를 확인해보시라~
보러가기 >> http://youtu.be/CSEXEQmDefQ
이제 지난 4주 간의 배움을 토대로 본인이 소심하게 꼼지락거리고 싶은 주제를 선정하는 시간을 가졌다.
각자 포스트 잇에 자신이 생각하는 주제를 적었다.
<그네와 두환은 하나>, <남영동1985와 26년 관객 3백만돌파>
<눈을 마주치면>
<차를 마셔요, 우리 따뜻해 져요^^>
<12월 20일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싶어요>
<주 20시간 노동제가 되어야 해요>
<이 세상 수많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연말을 따뜻하게 집에서 보낼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나도 그렇듯이>
<모두가 내가, 모두의 자신을 찾기를 나의 참나가 되기를>
그리고 각자 이러한 주제를 생각하게 된 이유와 부연설명을 나눈 뒤 각자의 실천방법을 정했다.
여럿이 함께 생각하고 의견을 나누니 막연하기만 했던 주제도 금방 <행동계획>이 정해졌다.
때로는 소심한 사람들을 위해 함께 자리에 나서주기로 약속도 했다.
그런한 행동들을 영상과 사진으로 담아 다음 주 마지막 시간에 발표할 예정이다.
하기에 자세한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이번 후기에서는 생략~
궁금하신 분은 다음시간에 꼭 오세요!
소심한 사람들의 6주간의 대장정, 드디어 그 끝에 다가서다! 두둥! coming soon
글 : 아카데미느티나무 천웅소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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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인의 여성 예술가, 6가지 정체성 | [6인의 여성 예술가, 6가지 정체성] 종강 후기(멋진 시 한편^^) | 느티나무 | 2012.11.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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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중남미 역사와 문화 | [문학으로 읽는 중남미 역사와문화] 4강, <활과 리라> | 놀이정신 | 2012.11.23 | |
[인문학교] 문학으로 읽는 중남미 문화와 역사, 3강(11/14)
옥타비오 파스 저/김홍근,김은중 공역 | 솔
옥타비오 파스의 『활과 리라』
'문학으로 읽는 중남미 역사와 문화'라는 강의를 신청하고 커리큘럼에 나와 있는 도서들을 한꺼번에 인터넷 서점에서 구입했다. 그래서『활과 리라』가 소설이나 혹은 시집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은 감히 해보지도 않았다. 강의순서대로 책들을 읽고 책장 어느 구석엔가 놓여있던 『활과 리라』를 찾아 첫 장을 펼쳤을 때, 그 때의 당혹감이란...『활과 리라』는, '시론집'이었다. 시도 아니고 시론집이라, 과연 내가 읽어낼 수 있을까?
물론, 읽어낼 수 없었다. 두 장 정도를 읽고 일말의 고민도 없이 책을 덮었다. 이건 내가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구입한 모든 책을 읽어야하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읽으면서 괴롭기만 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내 독서시간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라고 변명하며... 근데 이렇게 책을 읽지 않고서도 강의를 듣는 데 무리가 없을까, 쪼게 걱정하며 느티나무홀에 들어섰다.
옥타비오 파스의 시는 어려워! 느티나무홀에 들어서자마자 교안을 챙겨 읽었다. 책을 안 읽었으니 강의 시작 전 교안이라도 대충 훑어봐야했다. 그러다 빵 터졌다. 역시 구광렬 선생님은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솔직하시다.
필자는 사실 파스의 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의 시는 지나치게 지적이고 관념적이어서 뼈다귀 부딪히는 소리를 내는 듯해서다 …… 그의 시를 읽노라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의 시세계를 옳게 이해하지 못함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의 시가 그만큼 철학적이고 이성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강의도 '왜 옥타비오 파스의 시는 어려운가?'라는 화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파스의 시세계에 영향을 준 것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당시(1940년대) 유행하던 초현실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동양사상으로 주로 중국과 인도, 일본의 시나 그림 등이다.
강의는 먼저 초현실주의를 낳기까지 세계를 관통했던 사상사의 흐름을 훑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니카라과의 시인 루벤 다리오( 1867-1916)가 파리의 에펠탑을 보고 '예술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시작되었다는 모더니즘. 하지만 당시는 '모던'하다고 할 만한 것들의 등장이 너무 뜸하게 이루어졌고 이러다보니 모던한 것들을 찾기 어려웠던 이들은 신비한 것, 지금 볼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져 고답주의를 낳았다는 이야기들... 그리고 이어지는 모더니즘 이후의 흐름. 이러한 모더니즘이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파괴되자 그 자리에 가장 먼저 허무주의가 등장했고 그 뒤를 이어 초현실주의, 다다이즘, 미래파, 울트라이즘, 아방가르드 등등이 나타났다....
대강의 흐름만을 알면 된다고 자위하며 강의를 흐름을 숨 가쁘게 쫓는다. 어쨌든 모더니즘에 대한 반동으로 등장한 초현실주의의 직격탄을 맞고 자란 파스는 어릴 적부터 그와 관련된 서적들을 많이 접했고 그래서 그런 詩作들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 그에게 또 다른 전기가 된 것은 동양에서의 외교관 생활이었다. 일본과 인도에서 머문 기간 동안 그는 탄트라 불교와 일본의 하이쿠(俳句)에 매료되었다.
결국 파스의 시가 어려운 이유는 가뜩이나 어렵게 느껴지는 초현실주의적인 글쓰기(자동기술법)에 동양의 선사상까지 접목시켰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그는 '언어의 모호성'에 대해 비트겐슈타인만큼이나 고뇌했으니, 그는 자신의 시에서 언어를 초월하는 언어를 찾고자 노력했다. 언어에 예속되어 있는,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모두 모호해질 수밖에 없는 철학의 개념들. 그 안에서 파스는 말로서 표현할 수 없는 실체가 있음과 말로써만 표현될 수 있는 실재가 있음을 동시에 인정한다.
잃어버린 말을 찾아야 한다. 안으로든 밖으로든 또 그것을 꿈꿔야 한다. 밤의 문신을 읽어내고 정오의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가면 또한 벗겨내야 한다. 햇볕으로 목욕하고 밤의 과실을 따먹으며 별과 강이 쓰는 글자를 해독해야 한다.
-옥타비오 파스의 시 '깨어진 항아리' 中
교안에는 파스의 시 세 편이 발췌되어 실려 있었다. 그 시들을 강의 시간에 함께 낭독해 가며 읽었다. 시낭독 후, 수강생들의 반응은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네요, 였다. 나의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의미의 해체와 의사소통을 거세한 기호들의 나열이라.... 음, 이렇게 되면 그의 시를 읽어보겠다는 생각은 점차 멀어져 가는군...
불교의 선사상 그리고 시간 개념 파스에게 가장 감명적이었던 동양사상은 불교였다. 특히 서양의 직선적인 시간 개념과는 사뭇 다른 동양의 순환적인 시간 개념, 과거와 미래, 현재가 혼재하는 시간관, 찰라와 선불교의 '여기 그리고 지금'의 개념. 그런데 여기서, 구광렬 선생님이 파스에게 강한 태클을 거신다. 자신의 박사 논문으로 옥타비오 파스의 시들을 연구했던 지라 그의 시세계에 나타난 동양사상을 이해하기 위해 불교관련 책들을 엄청 읽으셨다면서, 과연 그가 동양사상에 대해서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시를 쓴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셨다. 그러면서 다시 동양의 불교 역사에 대한 기나긴 설명에 들어가신다.
불교는 크게 교종과 선종으로 나뉘고 교종은 텍스트 중심의 공부와 그를 통한 깨달음을 추구하는 반면 선종은 명상과 선 중심의 깨달음을 추구한다. 선종의 1祖는 달마이고 그 뒤를 이어 2조, 3조 쭉 내려오다가 6조인 혜능에까지 이어진 이야기, 그리고 그 뒤를 이는 임제종과 그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의 임제종 이야기까지. 일본인에 의해 서구에 널리 알려진 '젠' 사상은 결국 우리나라의 임제종 영향을 받은 것인데, 파스는 그런 것들에 대한 통합적인 이해도 없이 동양사상에 대해 떠들고 글에 흉내를 내고 있는 것 같다는.... 강력한 태클!!! 실제로 고광렬 선생님은 파스와 인터뷰를 할 기회가 왔을 때 그것에 대해 물었다 한다.
인터뷰 말미에 한국의 정토불교나 화엄사상 그리고 이조의 성리학 등을 전혀 공부하지 않았던 그에게 필자가 뼈있는 질문을 던졌다. "선생께서는 중국, 일본, 인도 등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하시지만 좀처럼 한국에 관해선 말씀하지 않고 계십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지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한국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것이 없습니다 …… 무엇보다 한국문화가 서양에 소개되어있질 않아요. 제가 의도적으로 한국에 관해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한국에 관해 알고 싶어도 번역된 책들이 없었습니다."
뭐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생각하는 찰나, 그 밑에 그가 덧붙인 부분에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故 김남주 시인은 파블로 네루다의 작품을 읽기 위해 옥중에서 스페인어를 공부했다고 한다. 근 5개 국어를 하던 파스에게 김남주 선생의 열정의 반 정도만 있었더라면, 아마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을 지도 모른다.
에휴, 작가가 되기란 참 어렵네요... 쩝~
파스여, 안녕~ 파스의 시라면 꼭 알아두어야 한다며 구광렬 샘이 'Blanco(흰색)'을 추천해 주셨다. 음양오행 사상을 소재로 삼아 쓴 시란다. 왼쪽에는 음에 해당하는 단어들을 나열하고 오른쪽에는 양에 해당하는 단어들을 쭉 나열한 시. 그러다보니 시가 엄청 길어져 보통의 책과는 다른 형태를 지닐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나온 시집의 모양은 아코디언처럼 주름이 잡혀 있는 모양새란다. 여러모로 독특하구나, 파스는. 그러시면서 그 시를 읽어보면 파스가 잘못 적어놓은 단어들이 무척 많다며 동양사상에 대한 그의 이해의 폭과 질에 대해 또 다시 성토의 말씀을... ㅋㅋㅋ
이제 다음 주면 마지막 강의다. 함께 공부하기로 예고돼 있던 루이스 세풀베다의 『파타고니아 특급열차』가 절판이어서 강의는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중남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전반적이고도 총체적인 강의를 해 주실 계획이라고... 수강생들의 반응이 뜨겁다. 나처럼 모두들 이번 강의를 들으며 중남미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 얼마나 얄팍한 것이었는지를 뼈저리게 깨달은 것이리라. 다음 주 강의가 무척 기대된다. 그러나 혹 강의에 못 오시거나 강의를 듣지 못한 다른 분들을 위하여 중남미 문화와 역사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책을 추천해달라고, 강좌지기를 맡은 내가 질문했다(기특해^^).
『메스티조의 나라들』(단국대 출판부) 『중남미사』(김창환, 송산출판사)
근데 어째 이 책들도 쉽게 구하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흑!
글 : 자원활동가 박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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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숍: 소심한 사람들의 유쾌한 꼼지락 – 소리를 내면 세상이 바뀐다 | [소심한 사람들의 유쾌한꼼지락] 4강, 치열할수록 즐겁게! 유쾌한 상상 101가지 | 우진아빠 | 2012.11.22 | |
'소심한 사람들의 유쾌한 꼼지락 : 소리를 내면 세상이 바뀐다' 4강 (11/19, 월) 강의소개 >> 클릭 4번째 강의는 '서로의 얼굴을 그려보자'는
그림을 한 번 씩 주고받고 난 후에는 간단한 놀이를 했다. 때로는 '쇼음악중심'의 방청객이 되었다가 '아침마당'방청객이 되었다가 '코메디프로' 방청객이 되었다. Q1. '무슨 일이 있어나요?' '감정노동을 했어요'. '남의 이름을 많이 불렀어요' '반응하기가 힘들어요' 등등 진행자는
2.1 리액션 이번 강의의 초대손님은 이번이 두 번 째 방문인 김민식 피디는 김민식 피디는 연출자로서 중요하게 보는 것은 바로 배우들의 리액션인데, 주변의 상황과 어울리지 않고 오로지 본인의 연기만 몰입하는 사람들이 속칭 '발연기'를 한다는 평을 듣는다고 했다. 우리가 자주쓰는 SNS의 주요 기능에도 바로 이러한 리액션기능이 있는데, 한 참 리액션의 중요성을 설명하 신 후, 마지막으로 김진숙의 한진중공업 크레인 농성이 바로 이러한 반응, 리액션으로 성공적으로 끝나다는 말로 마무리! 2.2 블로그, 유튜브 두 번째 이야기는 블로그, 유튜브이야기다. 이어 <MBC프리덤>, <MBC프리덤-서울역편> 영상을 보여주며, 제작 배경, 뒷 얘기 등을 정말 재밌는 입담으로 설명해주셨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강의가 끝난 후 커밍순.... 글 : 아카데미느티나무 천웅소 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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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중남미 역사와 문화 | [문학으로 읽는 중남미 역사와문화] 3강, 백 년 동안의 고독 | 느티나무 | 2012.11.21 | |
[인문학교] 문학으로 읽는 중남미 문화와 역사, 3강(11/14)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 1. 수강생들이 들고 온 책들 제목이 저마다 각각이다. 백 년 동안의 고독이 있는가 하면 백 년의 고독도 있다. 어느 것이든 약간은 어색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구광렬 선생님의 말씀인즉, 제목이 잘못 번역되었다고... 문장 구성 상 제대로 된 제목은 『고독의 백 년』이란다. 고독과 백년 중 백년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또한 여기서 백년의 의미는 a hundred가 아니라 long time이다.
사실 내가 이 책을 처음 읽게 된 계기도 이런 설명들과는 거리가 있었다. 책께나 읽는다는 유명인들의 추천 목록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백 년 동안의 고독』... 대체 어떤 소설이길래, 가 이유였다. 그리고 읽고 나서,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도 강한 역사적 의미 내지 억압된 역사의 상징 같은 것을 떠올리진 않았다. 그저 팍팍한 인생살이 대한 담담한 시선과 길고 험한 역사의 흐름 앞에 휘둘리는 인간 군상들에 대한 초월적인 묘사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여전히 내게 잔잔하고 따뜻한 느낌으로만 각인되어 있을 뿐이다.
2. 구광렬 선생님의 강의는 여전히 매력적이고 재밌다. 추운 날씨 탓인지 저번처럼 신발을 벗진 않았지만 전보다 열정의 강도가 떨어지거나 그러지도 않았다. 그의 이야기를 2시간 남짓 듣고 있다 보면 그의 꼬드김에 넘어가 언젠가 우리와 인종학적으로 같은 핏줄(몽고인)인 아메리카의 인디언들의 구원을 위해 그와 함께 행동에 나서게 될 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3. 강의가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에 『고독의 백 년』에서 대체 ‘고독’은 뭘 의미하는지 물었다.
글 : 박현아 자원활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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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중남미 역사와 문화 | [문학으로 읽는 중남미 역사와문화] 2강, 네루다 자서전 | 느티나무 | 2012.11.21 | |
[인문학교] 문학으로 읽는 중남미 문화와 역사, 2강(11/07)
두 번째 강의.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편의 절망의 노래” 중 ‘스무 번째 사랑의 시’>라는 시로 강의를 시작했다. 사랑했던 연인을 그리며 쓴 감성적인 시였다. 네루다가 스무 살 때 냈다는 이 시는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품이다. 체가 전장에서도 이 시를 자주 읽었다는데 그만큼 네루다의 시를 사랑했다. 네루다는 체게바라가 가장 존경했던 사람이며 세계적인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시인이지만 중남미의 정치, 경제가 연관된 사람이다. 공산당에 입당하였고 정치가이기도 한 그는 혁명투사에게 영향을 많이 주는 시인이었다. 칠레의 민중시인인 네루다의 삶을 구광렬 강사님의 유쾌한 강의로 들었다. ‘네루다’ (1904~1973)는 원래 필명이었다고 한다. 가부장적이고 마초적인 아버지가 시인이 되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에 아버지의 탄압을 피하고자 처음엔 필명을 썼다. 필명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찾아보니 체코의 작가 얀 네루다의 성을 빌리고, 파울로에서 영감을 얻은 듯 한 파블로라는 이름을 만들었다고 한다. 네루다는 가브리엘라 미스트랄이라는 선생을 만나서 그의 문학적 능력을 인정받고 발전시켰다. 놀라웠던 점은 네루다와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두 사람 모두 훗날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거였다. 네루다는 여성편력이 심했다고 한다. 부인도 여러 명이라고 한다. 작가의 개인사를 접하니, 세계적인 시인 네루다도 평범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사님이 말씀하시길 네루다에 대해 너무 많이 포장 돼있는데 그 부분을 지적하고싶다(?)라고 하신 게 기억에 남는다.
△ 네루다의 첫 번째 결혼식 사진
칠레에 민중 시인이자 세계적인 시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일포스티노>라는 영화로 유명한 네루다의 삶을 강사님의 유쾌한 강의로 들여다 본 기분이다. 체가 너무나도 존경했던 네루다. 민중 시인이지만 ‘사랑’을 화두로 한 시로 더 유명하다고 한다. 물론 나중에는 저항의식이 가득한 민중시도 집필했다. 네루다의 시를 몇 편 찾아본 결과 <시>라는 작품이 기억에 남는다. 체게바라로 시작해서 네루다까지 온 강의를 들으면서 중남미 역사와 문화를 훑는 기분이다. 앞으로의 강의가 기대된다. -------------------------------------------------------------------- 시(時) - 파블로 네루다
그리고 나, 티끌만 한 존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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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숍: 소심한 사람들의 유쾌한 꼼지락 – 소리를 내면 세상이 바뀐다 | [소심한 사람들의 유쾌한꼼지락] 3강, 소심하고 유쾌한 체험담 나누기 | 우진아빠 | 2012.11.21 | |
'소심한 사람들의 유쾌한 꼼지락 : 소리를 내면 세상이 바뀐다' 3강 (11/12, 월)
세 번째 강의는 1층 카페통인에서 진행됐다. 1층 카페에 책상은 다 치워져 있었고, 그동안 참여자들을 반긴 돗자리 대신에 큰 원으로 놓여진 각양각색의 의자들이 참여자들을 맞이했다. 큰 원 가운데에는 사무실에서 나온 각종 재활용품들과 색연필, 크레파스등 사무용품들이 쌓여 있었다. 1. 진행자는 참여자들에게 가운데 있는 잡동사니를 3개만 잡아 서로 붙이고 그려 아무거나 만들어 보라고 했다. 이 수업에는 정말 상상력이 특출난 사람들만 모였나보다. 모두들 5분 도 채 안 되는 시간에 무언가를 뚝딱 만들었다. 사슴벌레 모자, 재활용 필통, 앞머리, 과대포장 등 그리고 다시, 앞에 놓인 잡동사니로 '나무'를 만들어보라고 했다. 이 역시.. 2. 카페 바닥에 포스터 6장을 이어 붙인 큰 종이를 깔았다. 그리고 그 위에 나무를 그리고 다시 포스터를 12등분으로 자른 후 나눠가지고, 각자 가지고 있는 조각을 그림 모양대로 자른다음 그 모양을 예쁘게 꾸민 후 자기가 가장 적극적이었을 때의 모습을 적었다. 마지막으로 각자가 갖고 있는 그림조각들을 벽에 붙여, 원래의 모습이었던 나무모습을 완성했다. '혼자 밥을 먹을때' '이 강의를 들으러 올때, 운동(줄넘기) 할때' '컴퓨터 오락을 2박3일 내내 한 적이 있다' '수업시간에 딴짓을 할때' '6시30분에 출근할때' 한 참여자는 '연인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할때' 가 가장 적극적인 행동이었다고 말하면서 그런 적극적인 행동은 적극적인 후회를 불러왔다고 말해 참여자에게 큰 웃음을 줬다. 진행자인 이래은 선생님은 참여자 한 명 한명의 적극적 행동을 소개해주며 소심한 우리들도 이렇게 적극적으로 행동할 때가 있다면서, 이때 함께 사회적 발언을 하면 우리도 할 수 있다고 했다. 혹시 서로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도 있지만, 아까 아무런 상관없는 것들을 이용해 각자가 새로운 작품을 창조했듯이 이러한 행동과 발언이 서로 어울리지 않을꺼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설상 서로 안 맞더라도, 뭐가 어떤가? 내가 할 수 있는 것, 잘 하는 것으로 그런 행동을 시작하면 어떨까? 3. 이번 강의의 초대손님은 문화연대 신유아 활동가였다. '삶을 위해 싸우는 농성과 연대의 예술활동은 하나다' 신유아님은 포크코 비정규직 농성장, 콜트콜텍, 용산참사 농성장 등에서 싸우는 노동자, 예술가들과 함께 공공미술을 설치했으며 한진중공업 희망버스를 기획하고 함께 했었다. 그런 신유아님의 활동경험을 통해 문화행동에 대해 보고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많은 시민들에게 관심도 받고 서로 교감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는 신유아님의 행동들이 운동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마중물이 되었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4. 항상 강의의 마지막은 사회자의 질문에 답하는 시간으로 마무리된다. '무엇을 보았나요?' '무엇이 달라졌나요?' 그리고 이 번 강의는 특별히 과제를 내주셨다. 각자 오늘 발표한 적극적 행동을 하면서 유쾌하게 꼼지락거리는 자신의 모습을 찍어오는 것이다. 글 : 아카데미느티나무 천웅소 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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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 | [진보, 다른이름으로 저장하기] 5강, 나의 삶은 진보적인가? | 웃으며,함께,끝까지 | 2012.11.12 | |
아카데미느티나무 20102 가을강좌 [민주주의학교] 진보, 다른이름으로 저장하기 5강(10/22) 후기 ① 1강 <21세기 진보의 재구성> 후기 다시보기 >> 클릭 ② 2강 <21세기 진보의 재구성> 후기 다시보기 >> 클릭 ③ 3강 <21세기 진보의 재구성> 후기 다시보기 >> 클릭 ③ 4강 <21세기 진보의 재구성> 후기 다시보기 >> 클릭
나의 삶은 진보적인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어느 가을, 다섯 번에 걸친 만남을 통해 우리는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진보’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 사회에 떠도는 수많은 진보 담론들 중에 어떤 것이 진보이고 어떤 것이 진보의 탈을 쓴 보수인지를! 우리는 만남이 이어질수록 ‘멘붕’에 빠져들었고 드디어 마지막 수업, 우리는 “나의 삶은 진보적인가?” 라는 질문 앞에 섰습니다. 마지막 강의답게 세 분의 선생님이 오셨는데요, 각자 젊음, 돈, 예술이 어떻게 진보와 만났는지 재밌게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삶은 과연 어떤 진보와 맞닿아 있을까요? ‘네 멋대로 해라’ ‘뜨겁게 안녕’ ‘ 불량소녀 백서’ 등 김현진 선생님은 여러 저작을 통해 젊음과 진보의 만남에 대해서 이야기해 왔습니다. “진보적 매체에 지면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나를 진보적 인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매체와 나의 글이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을 뿐”이라는 김 선생님은 진보가 무엇인지 솔직히 아직도 잘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다만,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그때그때 비위에 맞는 일을 하는 것뿐이라고요. 김현진 선생님이 처음으로 삐딱(?)하게 나가게 된 계기는 대안학교 1세대인 자신이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교장선생님과 대판 싸운 일이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계속 어떤 것이 내 비위를 상하게 하는지, 그것을 면밀히 검토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고요. 한예종 사태 때 취재를 통해 처음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고, 그러한 고민은 홍대청소노동자 문제, 고공농성장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김현진 선생님은 RT진보, 입진보를 경계하자고 합니다. 내 자식이 식당에서 서빙 일을 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내 자식만큼은 서울대에 다니는 진보적인 청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말과 생각이 따로 노는 입진보가 될 뿐이라고요. 진보란 주변 사람들에게 비난을 듣더라도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할 수 있는 각오와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에듀머니, 대부업체의 냄새가 강하게 나는 이 이름의 사회적 기업은 말 그대로 ‘돈을 가르칩니다.’ 돈, 엄밀히 얘기하면 ‘돈을 쓰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죠.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돈을 주체적으로 쓰는 법’을 가르쳐준다고 합니다. 이 회사의 대표인 제윤경 선생님은 신용카드를 버리라고 말합니다. 광고를 가급적 멀리하고, 보게 되면 욕을 하라고도 합니다. 신용카드나 광고는 사람들이 필요와 선호를 생각하기 이전에 우선 충동적으로 그 물건을 구매하게 함으로써 결국 제돈 쓰고 유쾌하지도 않은 소비를 하게 한다는 것이죠. 그렇다고 돈을 쓰지 말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자신을 유쾌하게 하는 소비를 오히려 최우선순위에 두라고 합니다. 저축을 하되 자산을 형성하지 않는 저축을 하라고도 하십니다. 제 선생님이 만난 한 택시기사 분은 자신도 사업이 망해서 노숙을 하다 택시운전을 하게 되었는데, 승객들이 동전까지 탈탈 털어 택시를 타는 모습을 보고 짠한 마음이 들어서 이와 관련된 정책을 제안하시더랍니다. 진보란 함께 공감하고 더불어 살며 분노하고 그래서 뭔가 실천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그 실천을 위해서는 쫄지 말고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겠죠. 헤어스타일과 복장이 예사롭지 않은 김강 선생님은 강의 내내 혁명가에 어울릴 법한 엄청난 스케일의 사진들을 보여주시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아님 말고!”를 외칩니다. 문래동 예술인 마을에서 오신 김강 선생님은 진보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얘기하면서 다만 “문래동에 처음 들어갈 때 우리 예술인들은 가난했고, 저기 빈 공간이 있으니 한번 들어가보자. 안되면 말고!”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문래동의 빈 건물에 들어가기 위해, 그러니까 남의 건물에 불법적으로 들어가기 위해 점거연습까지 하는 철저한 이들은, 점잖은 윗분들이 보시기에는 정말 위험한 사람들임에 틀림없습니다. 나름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우리 수강생들조차도 “저래도 되나~” 싶었을 겁니다. 온 몸을 이용한 의사 표현은 물론이고, 주거권이나 공간의 확보 등을 위해 대사관 앞에서 침낭을 칭칭 감고 자면서 1인 시위를 한다거나, 캠핑카를 주거공간으로 개조해서 유쾌한 주장을 펼칩니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만의 진보의 틀 안에 갇혀 유쾌한 저항의 상상력을 자꾸만 상식 또는 법체계의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우선 저질러 놓고 보는 거죠, 안되면 말고! 그게 원래 늘 ‘합리’를 얘기하는 ‘보수’와는 다른, ‘진보’의 무기 아니었나요? 진보에 대한 다섯 번의 강의를 듣고나니, 언젠가 혜민스님의 페이스북을 통해 들은 이외수 선생님의 ‘존버 정신’에 대한 얘기가 생각납니다. 이외수 선생님이 혜민 스님을 만나 “우리에겐 존버 정신이 필요합니다.”라고 했답니다. 혜민 스님은 “존버 정신이 뭐죠?” 라고 물었고 이외수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스님, 존버 정신은 ‘존나게 버티는 정신’입니다.”라고요. 진보들의 ‘멘붕 탈출’을 위한 우리의 여행은 끝이 납니다. 누군가는 그 답을 찾고 누군가는 여전히 멘붕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적어도 하나의 깨달음은 얻은 것 같습니다. 진보의 길은 한계도 없고 끝도 없다. 다만 늘 고민하고, 버티며, 계속해서 걸어하는 것 뿐이라고요.
후기 글 : 자원활동가 김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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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저자와 함께 읽는 한국 근현대사Ⅱ | [한국근현대사Ⅱ] 9강 답사 - 여운형에서 박정희까지 비운의 정치가들 | 느티나무 | 2012.11.9 | |
교과서 저자와 함께 읽는 한국 근현대사Ⅱ | [한국근현대사II] 10강, 5.16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나 | 우연필연 | 2012.11.8 | |
들어가며 안녕하세요. <교과서 저자와 함께 읽는 한국 근현대 II> 도 어느덧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한국전쟁(남북전쟁) 이후 이승만 정권과 장면, 그리고 박정희 정권을 아우르는 역사를 다루었습니다. 이날 26분 정도가 참석하셨습니다^^ 이날 강의장에 한 시간 일찍(6시) 도착했는데 영상물을 상영하고 있었습니다. 영상물은 이 강의에 참여하시는 한 참여자께서 제공해주셨는데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이승만의 행적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제 학창시절 근대사를 배우며 막연하게 생겼던 의문들이 이 영상물을 통해 점점 해소되어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단절되어 있던 사건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발견하거나 또는 그동안 잃어버렸던 퍼즐 조각들을 찾아 기억의 빈자리에 끼워넣는 것 같았습니다. 특히 중반에 윤봉길 의사가 남기신 글귀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개인의 자유는 민중의 자유로부터 얻어진다.” 로 얼추 기억하는데, 보이는 글귀 자체에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무언가가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이날도 이 선생님께서는 조금 늦으셨습니다..(30분^^;;;).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강의에 대한 기대도 더욱 커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선생님의 강의는 역시 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전후 한국의 역사를 다루었습니다.
국군포로 문제 한국전쟁은 근본적으로 같은 민족 간의 전쟁이다 보니 포로 교환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전쟁 초기 북한은 포로들에게 사상 교육을 실시하고 전향 여부를 물었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풀려나지 못한 포로들을 우리 남쪽에서 추정하기로는 약 5만명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그중 254명 정도가 파악되고 있는데 국군포로문제는 오늘날까지 복잡한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또한 그동안 우리 쪽에서 북으로 보냈던 북파공작원의 수도 정확히 추산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이들을 대략 7천명 정도로 추정하는데 이중 미귀환자가 얼마정도 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아마 정부는 알 수 도 있겠죠..) 이들의 송환은 정치적으로 더욱 민감한 문제일 겁니다.
2005년 8월 열린 제11차 이산가족 상봉에서 정현한 할아버지(왼쪽)가 국군포로로 생이별한 북측의 형 정진현 할아버지를 만나 얼싸안고 있다. 북한은 국군포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날 만남은 ‘특수이산가족 상봉’이라는 이름으로 이뤄졌다. 출처 : 세계일보
어느 국군포로의 수기에 따르면, 북한군 포로 수용소에서는 정신교육을 매일 실시했다고 합니다. 전쟁 직전에 월북했던 사람들이 선동하여 인민군에 입대를 권유했답니다. 이때 국군포로의 실상은 하루 식량은 안삶은 옥수수 배급 두 차례가 전부였기에 춥고 배고픈 현실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전향, 북한군에 입대했다고 합니다. 특이한 점은 당시 이렇게 북한군에 재입대 했다가 다시 국군에 포로로 잡힌 경우, 전향을 다시 하면 원래 소속인 국군으로 편입시켰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포로수용소에서 자대 배치를 받은 뒤, 전후 1980년대까지 감시를 당했다고 합니다. 이 수기는 이러한 처지에 놓인 국군포로가 증언한 내용이며, 이 분은 자신의 처지와 현실에 울분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남북 모두 포로의 출신성분을 의심했습니다. 사실 상상조차 할 수 없이 힘들었던 당시이기에 우리가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현재 북한에 있는 5만명의 포로들이 자발적으로 남은 것인지, 강제로 남은 것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또한 우리의 경우 인민군인데 전후에 귀환하지 못한 사람들은 지리산에 빨치산으로 남겨졌습니다. 이들을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간주하여 처벌했습니다. 여담으로 이 선생님은 한국전쟁 때 세균전이 있었는지에 대한 의혹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몇몇 증언이 있었다고 했는데, 만일 실제로 있었다면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국제적으로 금지된 대인지뢰가 전쟁중, 전후에 매설되어 한반도 도처에 있다고 합니다.
민주주의의 부재, 50년대 한국 정치 1948, 50, 52, 54, 56, 58, 60 순서대로 대선, 총선, 대선, 총선.... 이 실시되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은 한민당과 연합하여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당시 연합 정당인 한민당은 내각제를 선호했지만 이승만이 대통령 중심제를 주장했습니다. 결국 대통령 중심제가 관철되었고 나아가 내각 임명에서도 한민당은 배제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한민당은 야당으로 돌아서게 됩니다. 48년 초대 대통령 선거는 간접선거인 반면 52년에는 직선제로 바뀌게 됩니다. 이때부터 이승만의 위기이자 고민이 시작됩니다. 52년 5월 부산 정치 파동으로 헌법을 개정하는데 이때를 가리켜 ‘발췌개헌‘ 이라고 합니다. 대통령은 중임이 불가하기 때문에 이승만이 56년에 다시 대통령을 출마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이승만은 다시한번 꼼수를 써 54년 초대 대통령에 한해 그 조항을 적용하지 않는 취지의 사사오입 개헌을 단행합니다. 60년대 선거에서 이승만은 대중의 인기가 없었습니다. 사실 이미 56년 선거 때 부통령에 장면이 당선되었고, 대통령 후보로 2등을 했던 조봉암도 이승만을 위협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장면암살을 시도하고 58년에는 가장 강력한 대통령 후보였던 조봉암을 간첩죄로 처형합니다. 그래도 불안해서 1960년 우리도 잘 아는 3.15 부정선거를 저지르게 됩니다. 60년대의 3.15 부정선거는 참 웃기는(?) 선거였습니다. 크게 세 가지 부정이 있었습니다. 사전 투표를 조작하여 지지율을 기본 4할로 맞추고, 3,6,9인을 짝지어 공개 투표를 실시했습니다. 그리고 야당 참관인을 투표 당일날 투표소에서 퇴장시킵니다. 자유당 유세에 버스와 트럭으로 청중을 동원하는 모습.
출처: http://dugok.x-y.net/kor-his/eve/3.15masan.htm
한마디로 말하면 50년대 한국의 정치는 이승만을 어떻게 대통령 만들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고 봐도 무방한 것 같습니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고 했던가요. 우리 국민들의 피와 투쟁으로 얼룩진 4.19 시민혁명을 통해 이승만 정권이 몰락하고 새 선거가 실시되었습니다. 이때 민주당이 당선되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아쉽게도 혁신과 개혁의 정치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5.16 군사쿠데타가 벌어지게 됩니다.
5.16 군사 쿠데타와 박정희 사실 이승만이 퇴진하고 5.16이 벌어지기 전까지 장면 정부가 있던 시기를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를 두고 의견이 갈립니다. 5.16 쿠데타를 지지하는 세력은 4.19 혁명 이후의 대한민국을 큰 혼란의 시기로 인식합니다. 이러한 시기에 유일하게 근대화 교육을 받은 세력은 군대라고 주장하며 군대에 의한 쿠데타에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합니다. 반대의 입장에서는 이 시기를 일종의 과도기로 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민주화와 근대화를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가야 하는지의 문제입니다. 이를 둘러싸고 이 선생님은 몇 가지 논점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 4.19 혁명 이후 장면 정부의 혼란이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한 필요한 혼란이었는가 아니면 그냥 무능한 정부로 인한 혼란이었는가? - 박정희 대통령이 아니었어도 유사한 수준의 경제 성장은 가능했는가? - 민주화와 산업화가 같이 이루어질 수 있는가? 마지막으로 이선생님은 역사적 근거를 토대로 박정희의 행적을 알려주셨습니다. 박정희는 일제 강점기 일본의 위성국인 만주국의 군관이었으며 군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혈서까지 썼습니다. 만주군 소위로 임관 한 뒤의 행적은 나타나 있지 않는데, 일본 패망 후 즉시 일본군을 탈출해서 광복군의 중위로 가입하게 됩니다. 한편 해방 후 친형 박상희가 남로당의 선전부장이었는데 경찰에 사살되자 이에 남로당에 가입하여 승승장구 하게 됩니다. 그러다 여순 사건을 계기로 군대 내 이른바 빨갱이 색출작업이 진행되자 박정희는 붙잡히게 됩니다. 옛 만주군관학교 출신들의 구명운동과 함께 남로당 내부 조직 정보를 누설하는 조건으로 석방되어 국군 정보 계통의 군인으로 근무합니다. 특이한 점은 박정희가 쿠데타 후에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북한에서 친형의 절친한 친구를 특사로 파견합니다. 초창기에는 남북관계가 긍정적인 분위기였지만 미국에 발각되자 돌변, 친형의 절친한 친구이자 특사를 간첩혐의로 처형시킵니다. 여담으로 이 시기 박정희의 과거 기록을 지우기 위한 작업들이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국내 기록은 이미 거의 없앴고, 그나마 미국에 있는 자료들은 문서보관소에 가서 대출하고 반납을 하지 않는 방법을 통해 경력 ‘세탁’을 시도하였다고 합니다.
마치며 이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경제성장과 관련하여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미국의 원조는 50년대 이후 중단되었으며 박정희 정부 시절 경제 성장 계획을 수립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산업화를 함께 진행할 수는 없었을까요? 박정희 정부의 집권 동안 경제 성장을 위해, 또는 정권 유지를 위해 희생된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경부고속도로의 신화 이면에는 경부고속도로를 짓다가 사망한 사람들, 또 중단되었다가 막바지 작업을 위해 투입된 군인들의 희생이 있습니다. 당시 학교 진학률이 저조했고 대부분이 공장으로 가서 일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보면 경제 성장은 한 개인의 공로나 업적이라기보다 우리 국민, 시민의 힘으로 이룩한 것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경부고속도로 추풍령 휴게소에 있는 경부고속도로 준공 기념탑
출처 : 루리웹 http://ruliweb.daum.net/news/view/MD20100204143607107.daum
끝으로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과 관련하여 이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을 제 나름대로 재구성하면서 후기를 마치고자 합니다. 우리가 어떤 인물이 기념할만한 인물인지 아닌지 판단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해답은 훗날 우리가 그 인물을 기념하는 동상이나 기념관으로 우리의 자녀들을 데려갔을 때, 자녀들에게 이 인물을 본받으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지 여부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충북 옥천 옥천군 금강휴게소 인근에 세워진 '경부고속도로 순직자 위령탑'
건설현장에서 순직한 77명의 순직자를 기리기 위해 세운 탑. “조국근대화를 향한… 거룩한 초석이 된 것이니… 우리 어찌 그들이 흘린 피와 땀의 은혜와 공을 잊을 것이랴….” 출처 : 지역정보포털 http://www.oneclick.or.kr/contents/nativecult/area09.jsp?cid=805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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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숍: 소심한 사람들의 유쾌한 꼼지락 – 소리를 내면 세상이 바뀐다 | [소심한 사람들의 유쾌한꼼지락] 2강, 뭐든지 괜찮아 아님말고 | 우진아빠 | 2012.11.8 | |
'소심한 사람들의 유쾌한 꼼지락 : 소리를 내면 세상이 바뀐다' 2강 (11/05, 월)
1.
두 번째 강의다. 첫 강의의 여파(?)였는지~ 다들 익숙하고 편안한 모습이었다.
손체조를 시작으로 자연스럽게 강의가 시작됐다.
각자 이면지 종이 한 장씩을 갖고, 마음 내키는대로 3등분으로 잘랐다. 그리고서
첫번째 종이에는 '오늘 제일 많이 들었던 감정'
두번째 종이에는 '그런 감정 때문에 했던 행동'
마지막 종이에는 '그런 오늘의 나의 모습을 명사로 적었다.'
진행을 맡은 이래은 선생님은
각자 돌아가면서 발표를 시키며, 이것이 오늘의 작품명이라 했다.
각자가 발표하는 작품명을 듣고있자니 마치 '늑대와 춤을' 영화에서 나온 인디언들의 이름같았다.
'무덤덤해서 일을 잘한 토끼'
'초초해서 열심히 공부하려 한 빵순이'
'어이가 없어서 웃은 겨울'
'부끄러워 하루종일 쳐박혀 있던 감자'
'조마조마한걸 무시한 사슴벌레'
'약간 따스한 기분에 즐겁게 얘기한 양지쪽에 앉은 곰'
2.
세 명씩 짝을 지어 앉았다.
한 장의 종이에,
첫 번째 사람은 점,선,면을 기하학적으로 그리고
두 번째 사람은 이것을 기초로 그림을 완성하고
마지막 사람은 작품의 제목을 적었다. 그리고 매 번 순서를 바꿨다.
1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작품이 하나씩 튀어나왔다.
이를 두고 한 참여자는
'생각이 역전되는 재미, 예측불허의 즐거움 있다'고 표현했다.
3.
이어서 오늘 초대손님으로 오신 박재동 선생님의 강의가 시작됐다.
너무 주옥같은 그리고 감명깊은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 중 가장 인상깊었던 말씀을 인용하면서 강의 내용은 대신한다.
"일을 잘 하고 못하고의 차이는 목표르 어느정도까지 뒀냐? 라는 것에 차이다"
"1cm를 그려도 그림이다"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미 여러분은 목표에 가까이 온것이다. 가능성이 있다. 너무멀리 있으면 그런 생각조차 안 든다"
"정치민주화, 경제민주화에 이어 예술민주화의 시대도 곧 올것이다"
"우리는 모두 그림을 그릴 권리가 있다"
그리고 모두다 눈을감고 머리속의 그림을 함께 그리는 시간이 있었는데,
가슴을 울리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아~ 짧은 글로는 그 감동을 전할 수가 없네~ 머리 속으로 그리는 그림, 장면#1 "푸른 바다가 있습니다" "흰 구름이 떠 있습니다." "큰 조개 안에 코끼리가 있습니다." "배가 떠 있고, 날치(?)떼가 배 위를 넘나듭니다." "갈매기가 날치떼 중 한 마리를 낚아 챕니다." 4.
마지막으로
요즘 선생님이 굉장히 관심을 갖고 계신 "낙서예술"을 모두가 함께 하면서 강좌는 마무리 됐다.
그리고 뒷풀이 시간때는 박재동 선생님이 손수 참여자들의 캐리커쳐를 그려주시는 팬 서비스도 함께^^
글 : 아카데미느티나무 천웅소 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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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교육활동가 평화교육 워크숍: 누구나 맘대로 톡톡 | [네번째 세션후기]평화교육워크숍:누구나맘대로톡톡 - 나와 세계 | 느티나무 | 2012.11.6 | |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10월의 마지막 날, 평화교육 워크숍의 네번째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진행자가 잔잔하게 안부 인사를 건네며, 지난 시간 레아씨와의 오감을 자극 받았던 워크숍을 놓친것을 안타까워 했어요. 1. 어떤 그림이 나왔을까요? 에그머니나! 한 사람씩 차례가 돌아갈 수록 갈등을 하게 되더라구요. 간단한 그림 그리기에서 무엇을 생각해 보셨나요? 2. 정체성 모자 예쁜 고깔모자를 써보았어요. '이주노동자'라는 고깔은 쓴 분에게 "냄새나 절루가", "짜증나",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 라는 말을 내뱉었을 때, 3. 서울 v s비서울, 젋은 vs 나이듦, 학사이하 vs 석사이상, 영어가능자 vs 불가능자 제목만 봐도 짐작이 되셨나요? "내가 속한 그룹이 계속 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한쪽은 한국사회에서 우열하다고 여겨지는 그룹이고, 다른 한쪽은 그 반대의 경우같았습니다. 나는 한 쪽에 계속 서있었는데, 마지막에 다른 한쪽으로 불편한 다리를 잡고 옮겨 걸어가면서(몇주전 다리에 부상을 입어 거동이 조금 불편한 참가자였다)이렇게 나뉘어져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속했던 그룹에 있던 사람들도 계속 바뀌고 있는 것을 관찰했습니다" 우리는 그저 다를 뿐인데, 이렇게 다름이 차별이 되는구나! 앞서 진행한 모든 활동을 정리하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내가 겪은 차별의 순간을 한 문장으로 적고 다른 사람과 교환한 뒤, 바뀐 내용의 차별에 대해서 마치 내가 겪은 이야기 처럼 조원들에게 그 상황을 설명하는 활동을 갖었습니다. 참 다양한 상황의 차별 이야기가 있더군요. 나이 많은 할아버지에게 차별 받은 젊은 여성의 사례, 차남으로서의 집안 내의 차별, 직장에서 권위에 대한 복종 강요... 내가 받은 차별이야기를 다른 사람이 설명해 주면서, 또 다른 사람이 동조해 주고 조언해 줄 때 나에게 따뜻한 위로의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질문, 여기 모여있는 16명의 생각이 얼마만큼 다를 수 있을까요? 결론적으로 각자의 생각은 "달라도 너무~" 달랐지요. <독재자가 군림하는 이웃나라에 미군과 한국군이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연합공격을 할 수 있다>라는 두번째 질문은 첫 번째 질문을 받고 협상하는 과정보다 조금 더 여유있고 빨리 줄이 세워졌다. 역시 이유는 다양했고 정도의 차이도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같이 돌림노래를 배웠습니다. 아프리카 지역에서 평화를 이야기 할 때 많이 부르는 노래라는 설명이 기억이 납니다. "툴라툴라마마 툴라 툴라마마 툴라 투라 에투투 - 움 움마에 움 움마에 움 투루루.......아에! 툴라투 툴라마마 툴라 예~띠 툴라투 툴라마마 툴라 오마에-띠" 그리고 오늘 세션을 모두 마친 뒤 짧은 소감을 날씨로 표현해 보았습니다. 여러분 오늘 날씨가 어떤가요? '기분 좋을 정도로 쌀랑한 바람이 부는 시원할 날'. '해가 쨍쨍한데, 그렇게 너무 쨍쨍하지 않아서 좋은 날', '비가 내려 나뭇가지 위에 물방울이 ㅤ맺혀 있고 그 사이로 쌍무지개가 떠있는날'. ' 구름 가득낀 하늘 어딘가 구름 사이 빛이 내리 쬐는 날', '맑은 하늘에 바람이 쉭-하고 지나가는 날', '무슨일이 벌어질 듯한 느낌의 따뜻한 바람이 지나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