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인의 착한 경제학 |
정태인의 착한 경제학 4강 : 복지국가의 성공조건 |
느티나무 |
2011.7.29 |
7월 5일부터 여름학기 강좌로 [정태인의 착한 경제학] 강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강좌는 인간의 본성과 인간 개개인이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연구(진화심리학)를 바탕으로 하는 행동경제학이라는 프리즘으로 경제학과 현실경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강좌소개 보기>> 4강의 정리후기는 자원활동가 박우용(웅진지식하우스 에디터) 님이 작성해 주셨습니다.
4강 사회경제와 복지국가
시장 경제와 공공 경제, 사회 경제의 세 박자가 잘 맞아떨어져야 한다. 시장 경제는 경쟁을 통해 효율성을 낳으며 공공 경제는 재분배를 통해 평등을 낳는다. 사회 경제는 상호성을 통해 연대를 가능하게 한다. 사회 경제의 대표적인 조직인 협동조합은 한국에도 그 전통이 있었으나 박정희 정부의 ‘새마을 운동’과 함께 사라졌다. 공공 경제의 원리로 전 사회를 조직하려고 했던 것이 ‘국가 사회주의’이고, 시장 경제의 원리로 전 사회를 조직하려고 했던 것이 ‘시장 방임주의’와 ‘신자유주의’이다. 한국의 2008년 총선 공약은 정당을 막론하고 ‘뉴타운 지정’과 ‘특목고 유치’였다. 그야말로 ‘탐욕의 정치’였던 것이다. 지금은 주제가 ‘복지 논쟁’으로 바뀌었으니 일면 진보된 부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의 복지 논쟁은 세 가지 측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1) 보편 복지 vs 선별 복지, (2) 증세가 수반된 복지 vs 증세 없는 복지, (3) (증세를 한다면) 부자에게 주로 세금을 더 걷자는 의견 vs 모두 함께 증세를 부담하자는 주장. 복지가 성공하려면 다음의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1) ‘목적세(복지세)’ 같이 용처를 정확하게 정의해 놓은 세금을 통해 증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건강 보험 하나로 운동’이 같은 맥락의 운동이다. 현재 한국의 건강 보험은 상당히 우수한 수준이지만 ‘보장성’이 낮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이 때문에 민간 보험 수요가 꾸준히 존재하고 있다. 한미 FTA의 큰 문제 중 하나는 건강 보험의 보장성 증가가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의료 민영화가 이루어지면 부자들은 건강 보험에서 빠져나가려고 할 것이고, 이는 건강 보험 제도의 붕괴를 가져올 것이다. (2) 수혜자 무임승차도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소위 ‘스웨덴 병’이라 불렸던 것(“공짜 점심은 없다”)이 이런 현상을 가리키는데, 실업 수당과 함께 적극적 노동 시장 정책을 펴는 등의 방법이 필요하다. 선별 복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선별 복지를 위해 ‘자산 조사’를 벌이면 그 비용이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고(자산을 숨기려는 국민과 그것을 밝혀내려는 정부 간의 경쟁) 결국은 비효율적 복지가 될 것이다. (3) 납세자의 무임승차도 해결되어야 한다. 탈세를 막는 강력한 정책이 수반되어야 한다. (4) 수혜자가 얻을 이익에 대한 확신도 필요하다. 그래야 세금 납부에 저항감을 갖지 않을 것이다. (5) 근거리 네트워크의 형성도 필요하다. 협력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있는 조직이 있다면 그곳은 굉장히 능률적으로 운영될 것이다.
(6) 복지의 ‘공급 측면’도 고려되어야 한다. 예컨대 한나라당에서 주장하는 ‘아동 수당’의 경우, 국공립 육아 시설이 부족한 한국의 실정 때문에 민간업자의 가격 상승을 부추겨 결국 그 효과가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이 크다. 설문조사 결과 스웨덴의 경우 복지의 우선순위는 다음과 같았다. 1위: 의료, 2위: 초중등 교육, 3위, 노인 복지, 4위: 아동 수당, 5위: 고용 정책. 여건이 다른 한국에서 같은 조사를 하면 당연히 순위는 다르게 나올 것이다. 복지와 함께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경제정책이 중요
복지는 당연히 재정 부담을 가져온다. 이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사전적 예방조치로 양극화가 해소되어야 한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복지 재정 지출 확대를 위해 노력했지만, 내외부의 여러 요인 때문에 사회 양극화를 줄이지는 못했다. 때문에 국민들이 느끼는 효과가 적었던 것이다. 복지 이전에 양극화를 줄이거나 해소할 수 있는 거시경제 정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미 FTA가 문제다. 한미 FTA의 반면교사는 1994년에 NAFTA를 체결한 캐나다인데, 이 나라의 양극화 현상은 NAFTA 체결 이후 지속적으로 악화되었다. 지니계수는 우리나라보다 높은 상황이다.
공공성 확보를 위한 시민의 참여가 중요
‘공공성’이란 무엇일까. 이와 비슷한 말로는 ‘공공의 가치’(Public Value)가 있다. 이것은 ‘어떤 시대의 사람들에게 필수적인 것을 정의하고, 그것을 보장하는 가치’를 말하는 것으로, ‘필수적인 것’의 범위에 대해서는 그 시대 사람들의 ‘합의’가 필요하다. 강의자는 공공성을 띈 재화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정의한다. (1) 필수재: 식량, 의료와 같은 것들로 롤즈(Rawls)의 기본재와 같은 성격을 갖는다. (2) 안보재: 국가 안보를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식량, 에너지 등이 있다. (3) 가치재: 사람들의 단견 때문에 덜 소비되는 것(미래를 준비하지 못하는 것)으로 예전에는 ‘교육’이 대표적인 것들이었다. ‘음의 가치재’(단견 때문에 지나치게 소비되는 것)도 있는데 술, 담배, 도박, 마약 등이며 이는 규제를 통해 소비를 줄여야 한다. (4) 시스템재: 사회 시스템을 구성하며, 무너지면 사회의 여러 부문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들로 금융과 언론 등이 있다. (5) 네트워크 산업: 초기 비용이 많이 들고, 지역에 따라 가격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 철도, 수도, 가스, 우편, 전기 등의 산업이다. (6) 자연: 우리가 공유하는 자연 환경도 공공성을 띈다. 공공성에 대한 합의와 그에 관련된 정책 시행은 결국 국민들이 모두 참여하는 민주주의를 통해 이루어져야 하며, 그 과정에는 반드시 ‘정의’(롤즈의 경우 그 핵심은 공정성<fairness>이다)에 대한 숙고가 필요하다. 공공성의 영역은 민주주의와 경제의 조화로 구성될 수 있으며 현재 가장 유력한 도구로 숙의 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가 논의되고 있다(롤즈, 하버마스<Habermas> 등).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은 사실 우리가 상식적으로 모두 알고 있었던 이야기이며, 공자 등의 성현들도 오래전부터 여러 번 이야기했던 부분이다.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방관해서는 안 된다. 조금 힘들고, 때론 불편하더라도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만이 민주주의, 더 나아가 공동체를 발전시킬 것이다. |
정태인의 착한 경제학 |
정태인의 착한 경제학 3강 : 사회경제와 협동조합 |
느티나무 |
2011.7.28 |
7월 5일부터 여름학기 강좌로 [정태인의 착한 경제학] 강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강좌는 인간의 본성과 인간 개개인이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연구(진화심리학)를 바탕으로 하는 행동경제학이라는 프리즘으로 경제학과 현실경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강좌소개 보기>> 3강의 정리후기는 자원활동가 박우용(웅진지식하우스 에디터) 님이 작성해 주셨습니다.
3강 사회경제와 협동조합
‘국가’와 ‘시장’이라는 두 영역을 넘어, 경제의 제3의 영역으로 ‘사회 경제’를 상정할 수 있다. 국가는 재분배를 통해 ‘평등’을 이루고자 한다. 시장은 경쟁을 통해 ‘효율성’을 이루고자 한다. 사회 경제는 ‘연대’를 통해 박애를 실천하고자 한다(각 영역의 역할은 프랑스 혁명의 세 가지 정신-자유, 평등, 박애-과도 조응한다고 볼 수도 있다).
인류는 예로부터 ‘식량 공유 습관’을 갖고 있었다. 사냥꾼들이 짐승을 잡아 식사를 해결할 가능성과 그렇지 못하고 굶어야 할 가능성이 각각 2분의 1씩이라고 가정해 보자. 많은 사람들이 ‘식량을 공유할수록’ 계속 사냥에 실패해서 굶어 죽을 가능성은 낮아진다(1/2 * 1/ 2 * 1/2...). 이는 ‘보험’과 같은 원리이다. 예전 강의에서 언급했던 ‘공유지의 비극’이 실제 역사에서는 드물게 나타난다는 사실도 인류가 예로부터 ‘연대’에 익숙했음을 반증한다.
잠깐 한국의 2007년 <경제> 과목 수능 문제를 함께 살펴보겠다(이 문제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놀이방에서 지각하는 부모들에게 ‘지각 비’를 걷기 시작하면, 지각하는 부모는 오히려 늘어난다. 일종의 면죄부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각 비의 액수를 대폭적으로 늘리면 지각하는 부모는 다시 줄어든다. 경제적 선택을 하는 것이다).
이 문제의 상황은 실제로 이스라엘 유치원에서 벌어졌던 실험을 토대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실험은 원래 ‘구축(Crowding out)’ 효과를 잘 보여 주는 것으로 유명한데, 수능 문제에서는 완전히 왜곡되어 인용되었다. ‘구축 효과’란 제도의 변화가 그 제도의 영향을 받는 ‘인간 자체’를 바꾸는 것으로, 원래의 실험은 ‘지각 비’를 더 이상 걷지 않더라도 늘어났던 지각생이 줄지 않는다는 점에 방점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수능 문제는 ‘물질적 인센티브’의 ‘양’이 근본 문제였던 것으로 오해하게 만들어 ‘인간은 역시 이기적이고 물질에 약한 존재’라는 통념을 강화시켰다.
정태인 선생님은 학술진흥재단에서 BK21 제도를 도입하면서 이와 비슷한 맥락의 경험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BK21은 교수들에게 (논문 게재 매체를 엄격히 한정하고, 그 수를 양화함으로써) 기존보다 꼼꼼하고 원칙있게 지원금을 나누어 주었다. 그러자 지원금 수령자의 평균 연령이 50대에서 1년 만에 40대로 바뀌는 등,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러나 ‘양화 정책’은 기초 학문, 특히 인문학 연구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려운 것이었다고 한다. 이 바뀌 제도에 맞춰 교수들은 천편일률적인 ‘지원금 타내기’ 프로젝트만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연구의 다양성을 크게 훼손되었고, 시간이 충분히 필요한 연구들도 위축되었던 것이다.
사회 경제의 가장 오래된 조직은 ‘협동조합’이다. 협동조합에는 ‘소비 협동조합’과 ‘생산 협동조합’이 있다. 협동조합에 통용되는 7원칙이 있는데, 이것은 예전 강의에서 언급했던, 노박의 ‘협력을 가능케 하는’ 5가지 원칙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이것은 협동조합을 운영하며 경험으로 체득한 원칙들이 학문 이론과도 일맥상통했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의 7원칙
1) 민주적 의사 결정: 1인 1표 (vs 기업의 1주(1원) 1표)
2) (국가와 시장으로부터의) 자율
3) 공동 소유와 공동 이용 (vs 사적 소유<배타적 이용>)
4) 개방성과 투명성
5) 협동조합끼리의 협동
6) 교육
7) 공동체에 대한 기여
많은 경제학자들은 협동조합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협동조합의 운영이 쉽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실제로 1980년대에는 ‘협동조합은 왜 희귀한가?’라는 주제의 논쟁이 벌어졌다. 이때 많은 학자들은 ‘자본과 인재 동원’이 수월하지 않기 때문에 협동조합의 운영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협동조합은 왜 희귀한가 라는 주제에 대한 정태인 선생님의 논쟁 정리글 보기>>
그러나 성공한 협동조합은 분명히 존재한다. 스페인의 몬드라곤 협동조합(Mondragon Cooperative)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는 여기서 이탈리아의 에밀리아 로마냐(Emilia Romagna)를 또 다른 성공한 협동조합의 예로 살펴보고자 한다.
에밀리아 로마냐는 이탈리아의 한 지역으로 1인당 GDP가 40,000$를 넘는 곳이다. 이곳의 인구는 460만 명 정도 되는데, 기업은 40만 개가 있다. 다양한 중소기업이 존재하는 곳으로 그 생산량의 50%는 수출한다. 이곳의 협동조합은 이 지역에 뿌리가 깊은 ‘공산당’ 계열로, 그들에게는 ‘협력’의 문화가 일종의 전통처럼 자리 잡고 있다. 고가 자동차를 만드는 페라리, 람보르기니와 오토바이로 유명한 두카티가 이 지역에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외에도 세라믹, 기계, 농산물, 패션 상품 등이 생산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노동자와 자본가의 구분이 희박하며, ‘생산 기술(지식)’은 일종의 ‘공공재’로 공유된다. ‘평판’이 좋고, 신뢰를 쌓은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생산 현장에서 활동할 수 있다. ‘기계 산업’이 탄탄하게 이 지역 산업의 토대가 되고 있으며, 기업과 협동조합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정태인 선생님의 에밀리아 로마냐에 대한 자세한 소개글 보기>>
언론의 에밀리아 로마냐에 대한 소개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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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한국인의 “바깥세상 보기” |
박노자의 <근대한국인..> 3강 후기 |
느티나무 |
2011.7.27 |
7월 8일부터 여름학기 강좌로[근대한국인의 "바깥세상 보기"]강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강좌는 근대 한반도인들의 러시아, 중국, 유럽 소국관에 관한 의식을 집중 조명함으로써
현재 남한인들의 자아의식에 각종 문제들을 제기해는 의도로 기획되었습니다. 강좌소개 보기>>
3강 <유럽소국관>의 정리 후기는 자원활동가 신다음님이 작성해 주셨습니다.
왜 유럽 소국관인가?
근대 한국인의 미국에 대한 생각이 긍정적 이지많은 않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에 제일 먼저 서울의 공사관을 철수 한 나라가 미국이었다. 미국은 대체로 일본을 지지하는 쪽이었고, 한국의 식민통치에 개입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한국인들의 마음에미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생겼다.
30년대 후반, 조선이 일본의 속국으로 대미항쟁을 준비하던 때부터는 미국에 대한 비판이 친일지식인에게 거의 의무화 되어 있었다. 주로 미국의 인디언 학살이나, 흑인 차별, 43년 44년 무차별 폭격, 이런 것들이 비판 대상이었다.
박노자 교수
한국전쟁 이후 미군정 때부터 미국에 대한 비판이 현실적으로 불가능 해졌지만 이미 구한말 때부터 미국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는 것을 위에서 알 수 있다. 지금도 미국에 대한 전적인 찬양은 극우주의자들 아니면 잘 없다.
그런데, 유럽에 대한 인식은 좀 다르다. 예컨대 프랑스의 경우, 사람들은 신식민주의 정책, 아랍이민자들에 대한 차별 보다는 똘레랑스(관용)를 먼저 떠올린다. 인권, 평등, 박애 등을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특히 덴마크나 노르웨이 같은 북부소국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긍정일방에 가깝다. 노르웨이를 생각하면 복지국가, 평등 재분배 이런 것들이 떠오르고, 핀란드는 교육제도 등을 떠올린다. 하지만 핀란드가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징용제를 시행하며, 철저히 군사화 된 나라라는 것은 잘 모른다.
축약해서 말하자만 미국에 대한 비판은 어느 정도 균형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유럽에 대한 시각은 거의 찬양적인 태도로 일관된다. 이것의 시작은 무엇인가.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을 짝사랑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것들을 알아보기 위해서 유럽 소국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다.
우리에게 유럽의 나라들은 어떠 의미인가?
이광수는 조선민족개조론을 주장했는데, 이 민족개조의 궁극적 목표는 앵글로색슨족으로의 개조, 성실, 자유지향, 책임감, 협동성과 독립심. 이 모든 덕목을 완벽히 갖추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유럽인들에 대한 찬양적 묘사는 극우파 이광수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중상층인 조선 지식인에게는 보편적 감정이었다. 박승철은 1920년대에 유학을 다녀 왔는데, 그가 본 영국신사는 완벽한 모델이었다.
이런 현상은 개화기 때부터 나타난다. 유럽영웅 전기는 조선에서 가장 잘 팔리는 책이었다. 특히 나폴레옹 전기는 최남선이 발행했던 잡지에 1호부터 연재되었다. 조선의 중산층에게는 유럽의 중산층이 모델이 되는 분위기였다.
유럽에 대한 조선인의 감정은 단연 압도감이었다. 박승철은 처음 파리에 방문 했을 때 “집이 아름답고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작은 차들이 소리를 안내고 달리고 있다. 화려하고 다채롭다”고 묘사했다.
박노자 교수
그렇다면 유럽에 대한 압도감, 모범으로서의 이미지 말고 다른 시각도 있었는가.
세기말적 유럽, 퇴폐적인 이미지의 시각이 있다. 2차 세계대전 이전에 유럽문명에 대한 환상이 일부분 깨지고, 유럽민족의 타락에 대한 관심이 고조 되었다. 이런 시각을 꼭 부정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식민지 조선 중산층은 유럽의 에로티즘이 섞인 센세이션적인 이야기를 은근히 즐기는 분위기였다.
나혜석은 파리에 다녀와서 쓴 기행문에서 ‘혼전동거’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기술하기도 했으나, ‘프랑스 여성에 대한 활동성, 전문성, 직업성 등을 본받아 조선의 여성들도 신여성으로 변화하자’고 전했다 한다. 하지만 이런 부분들도 따지고 보면 유럽의 대국에 관계된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 조선인의 유럽소국관
조선인들에게 영국이나 독일은 대국이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유럽의 대국처럼은 될 수 없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지만, 소국에 대해서는 대체로 우리도 닮아 갈 수 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소국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다 못해 긍정일변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개화기 1888년대부터 유럽 소국이 조선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모델로 제시된 것을 들 수 있다. 이때부터 조선에는 유럽 소국에 대한 자세한 역사적 이야기가 소개 되고, 소국에 대한 테마가 조선담론으로 제시 되곤 했다.
하지만 개화기 때에는 유럽 소국에 대한 기본적인 것들이 소개 되는 수준이었고, 본격적으로는 식민지 시대에 독립을 찾은 폴란드와 아일랜드가 조선에 가장 근접한 모범으로 제시 되곤 했다.
북부 소국에 대한 인식
유럽소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불대칭성이 명확했다. 북유럽사람들은 비교적 쉽게 조선에 왕래 할 수 있었고, 조선에 대한 기록도 남길 수 있었던 반면, 조선인이 북유럽게 가는 것은 극히 어려웠다.
개화기 때에는 스웨덴 기자들이 조선에 방문하여 자세한 기사를 쓰기도 하고, 1890년대 노르웨이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활동 했다. 덴마크 기술자들은 조선에 기술을 전하기도 하였지만, 조선인이 가서 활동을 하거나, 기록을 남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 했다고 할 수 있다.
2-30년대에야 비로소 스칸디나비아 반도로 갈 수 있었는데, 조선인들이 느낀 것은 강력한 압도감이었다. 사회적 조직성 안정, 단결, 기술, 문명과 자연의 균형 등 모든 측면에서 소국이지만 문명적이라는 느낌을 강력하게 받았다.
덴마크의 농업, 농민조합 이런 것들은 조선인들, 특히 개혁파나 민족주의자들에게 강력하게 와 닿았다. 특히 독일어권의 압도적 영향 안에서도 민족 언어, 정신을 고수했다는 측면이 보수적인 기독교 우파들에게 어필했고 자신의 언어와 민족성을 계승하며 나라를 잘 보존한 측면에서 덴마크는 꿈의 나라, 문명의 최상국이라고 느꼈다.
박승철은 덴마크에 다녀와서, 그 당시 가난한 독일에 비해 덴마크는 “부유하다, 자동차도 많다, 안정적이다”라고 느꼈다고 한다. 특히 덴마크를 여행한 사람들의 기록을 보면, 농업의 효율성, 생산성에 놀라고, 덴마크의 농업 기술, 국민조합, 소농경제에 도움이 되는 조합, 농업개량 등을 벤치마킹 하고자 한 것들이 많이 있다.
스웨덴은 조선유학생들이 잘 가는 나라였다. 최영숙은 스웨덴을 보고 인간이 만든 최고의 사회로 표현했고, 돌아와서 스웨덴에 대해 “낙원에 다녀왔다.”고 극찬 할 정도로 스웨덴을 좋아했다.
안정됨, 편리함과 같은 인식은 우리가 아직까지도 갖고 있는 유럽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들이다. 유럽 북부는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사회의 ‘모델’로서의 위치가 강하다. 해방 이후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의 의사들이 우리 나라에 많이 파견된 것긍정적인 인식이 더욱 강화된 계기의 이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북부가 조선의 현실적 모델이었다면, 아일랜드 같은 경우는 영국제국에서 독립을 되찾았다는 의미에서 조선인들에게 영감을 주는 나라였다. 하지만 유럽의 소국들 중에도 에스토니아처럼 가난하고 불안정한 사회들은 조선이 벤치마킹 할 만한 나라가 아니었다고 하고, 부유하지 않은 나라들은 배울 것이 없는 나라라고 치부하기도 하였다.
박노자 교수
마무리하자면, 대체로 스칸디나비아반도의 나라들에 대한 긍정일변은 안정성, 조직성, 문명과 자연의 공생적 관계 등을 긍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평형적으로 이런 유럽 소국과 우리를 비교하기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스웨덴 같은 경우에는 강력한 농업이 있고, 노르웨이나 덴마크는 농업사회였다고 해도 영국 독일같은 대국과 쉽게 교류할 수 있는 지형적 위치가 있다.
유럽 소국은 이를 이용하여 물질적 기반을 다질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20년대만 하더라도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은 19세기 말부터 발전해온 강력한 노동운동의 기반이 다져져 있다. 민중운동이나 사회주의 노동운동이 탄압대상이었던 조선과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였다.
또한 자본과 노동의 타협이 동등한 세력 대 세력으로서 위치를 갖고 있다. 이 바탕에는 강력한 노동 운동이 받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런 전제 위에 복지국가가 유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사회를 유지해주는 안정망 등의 배경이 조선과 상당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이런 차이는 간과되고, 보이는 이미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
근대 한국인의 “바깥세상 보기” |
박노자의 <근대한국인..> 2강 후기 |
느티나무 |
2011.7.20 |
7월 8일부터 여름학기 강좌로[근대한국인의 "바깥세상 보기"]강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강좌는 근대 한반도인들의 러시아, 중국, 유럽 소국관에 관한 의식을 집중 조명함으로써
현재 남한인들의 자아의식에 각종 문제들을 제기해는 의도로 기획되었습니다. 강좌소개 보기>>
2강 <중국관>의 정리 후기는 자원활동가 신다음님이 작성해 주셨습니다.
박노자 교수
- 들어가며
18세기 말까지 중국은 조선인에게 하나의 우주라고 할 수 있었다. 조선의 자아는 중국을 생각하지 않고는 상상 할 수 없고, 중국과 조선은 각각 다른 나라가 아닌 국민적 형제라고 하여도 비약이지 않았다.
조선 지식인에게 중국은 소우주로써 배움의 터전이며, 한편으로는 경계해야할 대상이기도 하였다. 이에 중국에 대한 정책은 조선의 가장 중요한 사안이었다. 이런 중국에 대한 견해는 19세기 후반 더욱 더 재미있게 변한다.
중국은 조선보다 서양기술배우기 운동을 먼저 시작했기 때문에 조선에게 중국은 외부세계와 연결 될 수 있는 통로였다.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분야는 책이었다. 중국에서 들여온 지도들은 김옥균 같은 개화파 들에게는 지리교과서로 사용 될 정도로 인기가 있었고, 한국 초기 신문 한성순보와 한성주보는 상해에서 발행됐던 상해신보에 쓰인 글들을 토대로 기사를 게재했다.
중국이 조선 개화의 관문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중국은 조선과 외부세계의 연결을 어느 정도 선까지만 허가하여 주었고, 조선이 지나치게 외부와 연결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이는 중국이 조선을 자신의 영향권 안에 두기 위함으로 보이게 되면서, 김옥균과 같은 급진개화파로 하여금 중국을 견제하게 만드는 구실이 된다.
고종의 명령으로 상해에 가게 된 윤치호의 눈에 비친 중국은 더럽고 반근대적인 나라로 보였다. 윤치호는 중국을 조선근대인들이 가장 멀리해야 하는 나라라고 이야기 하였다고 한다.
19세기 말 중국은 조선인에게 근대화의 산실이라는 생각부터 부정적 타자로서의 시각까지 다양하게 인식되었다. 각각의 인식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자.
1. 전근대로서의 중국
중국이 더럽고 비위생적인 나라라는 인식이다. 이런 인식이
잘 나타난 것은 바로 독립신문이다. 독립신문은 중국에 대
한 우호적 인식 깨뜨리기를 특기로 삼은 신문이었다고 할
정도다.
독립신문은 서양에는 우호적이었지만 중국에는 아주 적대
적이었다. 중국이 조선을 유교화, 보수화 시키고 발전을 가
로 막는다는 논조의 사설을 싣기도 하고, 특히 화교들에 대
해서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심지어는 ‘거머리같은 것들’이
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1882년 미국이 중
국노동자들의 이민을 금지시킨 법이 알려지자 조선 역시 화
교들을 강력 배척하자고 피력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중국을 전근대적이라고 보는 시각은 특히 식민지 시
대에 일본에서 공부하고 중산층 으로 안정적 생활을 영위한
조선인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조선의 여류작가 백
신애는 청도, 상해여행을 할 때에 본 중국인을 야만적이고
더럽다고 묘사했다.
2. 부정적 타자
개별적 중국인들은 어떻게 인식 되었는지에 대해 알아보자. 간도 같은 경우 소작인의 70% 정도가 조선인들이었다. 중국인 지주 밑에서 조선인 소작인들은 많은 착취와 억압을 당했다.
최서해는 가난한 간도 이주민의 아들이었다. ‘홍명(최서해 작)’에서 악질 중국인 지주 은씨는 소작농을 못살게 구고 심지어 아내를 빼앗는데, 결국 폭압을 견디지 못한 소작농은 지주를 살인하고 산으로 도망가는 것으로 끝난다. 주로 중국인은 되놈으로 불리며 비양심적이고 더럽고 음흉한 모습으로 많이 나타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감자’ 에도 이런 중국인 지주가 나온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최서해 같이 공산주의 계급갈등을 배우지 못한 작가들은 주로 중국인 지주와 조선인 소작농의 갈등을 종족간의 갈등으로 인식했다는 점이다. 이는 오랫동안 문학계의 주도적인 인식으로 자리잡아 중국을 매우 부정적인 타자로 인식시킨 계기가 되었다.
중국에 대한 무조건적인 부정적 시각은 아직도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다.
3. 근대적 희망
청나라 말기 청일전쟁에서 패한 중국은 뼈아픈 교훈으로 개혁을 단행했다. 이런 중국의 개혁에 조선의 지식인들은 상당히 관심을 갖고 주목했다. 중국이 입헌군주국이 된다면, “특유의 완고함을 벗고 강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었다.
혁명이 인민의 애국심을 배양하고 강력한 나라를 만든다는 인식은 구한말 지식인들이 공유하고 있는 생각이였다. 그래서 1911년 공화 혁명이 일어났을 때 조선의 지식인들은 이를 대단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후에 중국 공산당 활동이 본격화되는 20년대 같은 경우에는 조선 공산주의자들 사이에 중국 공산당과 연대 할 수 있겠다는 인식이 강해졌고, 이 와중에 간도에 있는 사람들(중국인 지주와 조선인 소작농의 갈등)의 문제도 계급연대 과정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의식이 강했다.
독립운동가들과 조선의 지식인들은 대체로 중국을 희망과 기대에 찬 눈으로 바라보고, 중국혁명으로 인한 폭력과 억압에서도 밝은 미래를 생각 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4. 다민족, 다문화, 나아가 서양을 접촉 할 수 있는 곳
상해는 국제적인 도시로서, 조선인에게는 작은 세계, 우주라는 인식이 강했다. 이런 도시에는 서양인들도 많이 살고 있어서 상해는 국제 도시, 작은 우주, 혁명 아지트라는 이미지가 강했고, 수많은 문화 예능계 조선인에게는 매력적인 도시의 이미지를 가졌다. 여기에 조선에서 철도를 타고 가장 쉽게 갈 수 있는 하얼빈도 위와 같은 이미지가 적용되었다.
박노자 교수
- 마치며
종합해보면 중국에 대한 인식은 근대에 접어 들어 극단적으로 양분화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은 조선에게 세계이자 미래였다. 상해나 하얼빈 같은 도시는 동경의 대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더럽고 비위생적인 문명의 이미지도 같이 공존했다.
오늘날 우리는 위에 살펴본 측면 중, 부정적 인식을 많이 계승 했다. 70년대 리영희 선생은 중국의 정치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후 중국에서 사회주의가 좌절되고 자본주의로 회귀하는 양상을 통해 중국에서 미래를 본다는 시선은 사라졌다고 생각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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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인의 착한 경제학 |
정태인의 착한 경제학 2강 : 사회적 딜레마 |
느티나무 |
2011.7.15 |
7월 5일부터 여름학기 강좌로 [정태인의 착한 경제학] 강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강좌는 인간의 본성과 인간 개개인이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연구(진화심리학)를 바탕으로 하는 행동경제학이라는 프리즘으로 경제학과 현실경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강좌소개 보기>> 2강의 정리후기는 자원활동가 박우용(웅진지식하우스 에디터) 님이 작성해 주셨습니다.
2강 사회적 딜레미와 그 해법 : 인간은 언제 협력하는가
이번 강의의 핵심 질문은 “인간은 언제 협력하는가”이다. ‘이기적 인간’만 존재하고 있었다면 우리 사회는 벌써 붕괴되어 버렸을 것이다. 우리는 ‘사회적 딜레마’의 문제를 살펴볼 것이다. ‘시장 실패’는 ‘사회적 딜레마’의 자본적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딜레마
1) 공유지의 비극 예를 들어 여러 농민들이 함께 양을 키우는 공유지가 있다고 가정하자. 각각의 농민이 자신의 이익을 늘리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양을 키우면, 결국 공유지는 황폐해지고 말 것이다. 이는 ‘지구 온난화’ 등의 환경 문제로 현대 사회에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1>‘사적 소유’(각자에게 공유지를 적당히 분할한다), 2>‘국가의 통제’ (예를 들어 공유지 사용 시간을 적절히 배분하는 등)가 있을 수 있으나, 전부 문제점을 갖고 있다. ‘사적 소유’의 경우에는, 예를 들어 물이나 공기와 같은 ‘분할할 수 없는 자원’의 문제가 있을 수 있고, ‘국가의 통제’의 경우 국가의 통제를 벗어나는 다국적 문제의 해결(‘지구 온난화’ 등)에는 적용될 수 없는 방법이다. 인류는 그동안 ‘공유지의 비극’을 어떻게 해결해 왔는지 연구한 사람이 오스트롬(Ostrom, 여성으로는 최초로 2009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이다. 그녀는 전 세계 문헌을 수집, 분류하여 공유지의 문제와 관련된 ‘일반 규칙’을 정리했는데, 이를 요약하면 ‘공동체의 자율적 규제’로 말할 수 있다. 약속을 어기는 사람에게 점점 더 강한 처벌을 가하는 것도 규칙의 일부이다.
이 밖에도 2) 공공재 문제, 3) 죄수의 딜레마, 4) 집단 행동의 논리(‘거리의 고장 난 공중전화는 아무도 고치지 않는다’ - 이와 비슷했던 상황이 참여연대가 벌였던 ’소액 주주 운동‘이다)가 사회적 딜레마와 밀접하게 연관된 문제들이다.
게임 이론을 통해 본 사회적 딜레마 1) 죄수의 딜레마 (위피키디아 설명보기>> )
| 상대방 | 나 | | 협력 | 배신 | 협력 | (3,3) | (1,4) | 배신 | (4,1) | (2.2) |
위의 표를 보자. 가로 안의 숫자는 각각 나와 상대방이 얻는 이득을 가리킨다. ‘죄수의 딜레마’ 상황의 경우, 상대방이 어떤 선택을 하든지 나는 ‘배신’을 택하는 편이 유리하다. 상대방이 협력할 것으로 예상될 때는 ‘탐욕’ 때문에, 상대방이 배신할 것으로 예상될 때는 ‘공포’ 때문에, 나는 결국 ‘배신’을 택하게 된다. 현재 한국의 ‘사교육’ 문제가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 상대방이 사교육이라는 배신을 할 것이라는 공포 때문에 누구나 ‘사교육을 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미국의 FTA 체결 전략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은 자국과 FTA를 맺게 여러 국가들을 경쟁시켰다. 결국 ‘다른 국가는 다 맺는 FTA를 우리만 안 맺으면 손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2) 사슴 사냥 게임 (위키피디아 설명보기>> )
| 상대방 | 나 | | 협력 | 배신 | 협력 | (4,4) | (1,3) | 배신 | (3,1) | (2.2) |
이는 ‘함께 사슴을 잡기로 약속하고 기다리는데, 내 앞에 토끼가 지나가는 상황’에 비견할 수 있는 상황이다. 나는 약속을 지켜 사슴을 잡던지, 아니면 당장 눈앞에 있는 토끼를 잡던지 선택해야 한다. ‘죄수의 딜레마’와 다른 점은 상대방이 ‘협력’을 택한다면, 나도 '배신'보다는 ‘협력’을 택하는 편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점이다. 이런 경우 나와 상대방이 함께 ‘협력’을 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3) 치킨 게임 (위키피디아 설명보기>> )
| 상대방 | 나 | | 협력 | 배신 | 협력 | (3,3) | (2,4) | 배신 | (4,2) | (1.1) |
치킨 게임은 ‘서로 마주 보고 달려오던 차 중, 끝까지 방향을 틀지 않는 차가 승리하는 게임’에 비견할 수 있다. 치킨 게임에서 이기는 법은 상대방에게 나를 ‘미친 놈’으로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핵무기 경쟁과 같은 상황이 치킨 게임이라 하겠다. 남북 관계의 경우, ‘햇볕 정책’은 사슴 사냥 게임의 상황을 만들었고, MB의 ‘상호주의 원칙’은 반복적인 죄수의 딜레마 상황을 만들었는데, 후자의 상황에서는 TFT(Tit for tat) 전략을 취하는 것이 가장 유리하다. 이는 쉽게 말해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대응하는 전략을 말한다. 이과 관련한 실험에서는 TFT 전략대로 바로 직전에 상대방이 택한 선택지를 따라 가는 것이 가장 높은 점수를 획득했다. 그런데 ‘반복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는 맹점이 있다. ‘한 번 배신이 시작되면 계속 배신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는 여유 있는 편이 한 번 협력을 택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 북한의 경우는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넘어서 ‘치킨 게임’ 전략을 택하고 있다. 일련의 경색국면이 그것이다. 결국 이렇게 대립적인 남북 관계는 ‘바보와 미친 놈의 싸움’으로밖에 볼 수 없다.
인간 협력의 다섯가지 규칙 사회적 딜레마의 해결책은 ‘이타적 인간이 되는 것’이다. 상황을 ‘사슴 사냥 게임’으로 만드는 것이 희망적이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개체의 희생’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예를 들어, 여왕벌을 지키기 위한 일벌의 희생이 어떻게 가능한가, 라는 물음이었다. 생물학자 노박(Nowak)은 <Five Rules for the Evolution of Cooperation>라는 논문에서 협력을 가능케 하는 5가지 법칙을 제시했다. 1) 혈연 선택 협력의 정도는 '혈연관계', ‘근친성’에 따라 좌우된다는 법칙이다. ≪이기적 유전자≫는 이 법칙의 일반론이라고 볼 수 있다. 2) 직접 상호성 A와 B가 상호적으로 (이득을 주고받으며) 협력한다는 법칙이다. TFT 전략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게임에서 한 번 협력을 취하게 된 양자가 계속 협력을 택하게 되는 상황이 바로 이와 같은 경우이다. 3) 간접 상호성 A가 B에게, B가 C에게, C가 D에게, 이와 같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쇄되는 협력 관계를 말한다. 이 경우 ‘평판(reputation)'이 주요한 협력 동기가 될 것이다. 4) 네트워크 상호성, 5) 집단 선택 세부적인 내용에는 약간 차이가 있지만, 공통적으로 ‘협력자들의 그룹이 배신자들의 그룹을 이긴다’는 명제를 담고 있다. 개인 간에는 ‘배신자’가 승리할 가능성이 높지만, 그보다 상위 층위인 ‘집단’ 수준에서는 협력자들의 그룹이 배신자들의 그룹을 이기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경우, ‘사회 규범’이 중요한 역할을 하며, 기제의 핵심은 ‘신뢰’이다. 한국의 경우, 세계 가치 조사(World Value Survey)에서 청소년들의 ‘신뢰’ 수준이 세계 최하위를 기록하고 말았다. 이런 세대가 성장할 경우, 소송이 남발되는 비효율적 사회가 만들어질 것이며, 청소년들이 이렇게 신뢰를 잃은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경쟁 교육’이다. |
근대 한국인의 “바깥세상 보기” |
박노자의 <근대한국인..> 1강 후기 |
느티나무 |
2011.7.11 |
7월 8일부터 여름학기 강좌로[근대한국인의 "바깥세상 보기"]강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강좌는 근대 한반도인들의 러시아, 중국, 유럽 소국관에 관한 의식을 집중 조명함으로써 현재 남한인들의 자아의식에 각종 문제들을 제기해는 의도로 기획되었습니다. 강좌소개 보기>> 1강 <러시아관>의 정리 후기는 자원활동가 신다음님이 작성해 주셨습니다. 근대한국인들이 갖은 '튀는' 인식, 러시아
러시아는 근대 한국인의 세계관에서 독특한 위치를 갖고 있다. 근대 한국인의 대외 인식은 철저하게 위계적이었다. 19세기 말 이전에는 중화가 중심이었지만 불과 몇 년 새에 그 중심이 미국이나 유럽으로 바뀐다. 이는 근대 한국인들 세계 인식에서 잘 나타난다.
조선시대 한학자 윤치호의 일기에는 흑인에 대한 인식이 나타나는데, 당시에 미국에서 흑인들의 위치는 가난하고 백인에게 대들 수 없는 하찮은 존재 임에도 불구하고 윤치호는 그들이 ‘영어를 쓰고 미국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이렇듯 철저히 중화 중심의 한학교육을 받은 윤치호조차 불과 몇 년 사이에 서열의 중심을 미국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또한 민경환은 영국에 가는 길에 거쳐야 했던 싱가포르에서 말레이 사람들을 보고 “옷도 안 입고 돌아다니는 미개인들. 심지어 반인반수다” 라고 표현 했지만, 갓 태어난 백인 아기를 보고는 “참 영특하게 보이고 광채가 난다” 라고 기록했다.
중화 중심에서 미국중심으로 바뀐 세계질서에 대한 인식은 일제시대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이렇듯 철저한 위계질서의 세계관을 가진 근대 한국인에게 러시아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근대 한국인들에게 러시아란? 근대 한국인들이 러시아를 인식하는 시각에서 는 3가지가 존재한다.
① 자연의 나라. 정글, 밀림이 살아 있는 나라. 이광수의 작품을 보면, 시베리아나 바이칼 호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 러시아에 대한 인식은 자연이 살아 있는 나라. 울창한 정글이나 숲이 있는 곳으로 묘사된다. 조선시대 여류작가 백신애의 작품에서도 러시아는 방랑의 나라, 원시림의 공간으로 나타난다.
② 공산주의, 사회주의의 나라 이태준, 백남훈의 해방직후 소련 기록을 보면, 러시아는 문명의 최전선이라고 정의했다. 이 시각은 비단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들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일제 시대의 지식인들의 상당수도 러시아를 문명의 최전선으로 생각했다. 당시의 시사잡지인 삼천리 잡지에서는 30년대 초반 기획특집으로 <우리는 아메리카의 문명을 취할까, 러시아의 문명을 취할까>라는 주제로 기사를 썼다. 이는 러시아의 문명이 아메리카와도 견줄 수 있는 고도로 발달된 문명이라고 생각하는 정서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일제시대에 러시아는 일면 미국보다 나은 문명이라는 인식을 가졌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③ 한국인들과 묘한 정서적 교감을 나눌 수 있는 나라 당시 하얼빈은 러시아 백계 망명인들이 가장 많이 살던 곳이었다. 하얼빈은 조선의 지식인들이 많이 가던 여행지 였는데, 러시아 백계노인들이 나라 잃은 슬픔, 애수 등을 느끼며 살아가는 모습은 당시 일제시대를 겪는 한국인들의 정서와 비슷한 동질감을 가졌다고 한다. 이는 한국인으로 하여금 같은 정서적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것이어서 러시아는 묘하게 한국인들과 닮은 나라로 인식 되곤 했다.
이 세 가지 시각으로 보아, 철저하게 위계 질서적인 한국인들의 세계관에서 러시아의 위치는 상당히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러시아 문명인식은 어떠했는가? 이제까지 러시아가 한국인들에게 딱 한가지로 분류 될 수 없는 위치의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이제 러시아 근대 문명의 핵심을 알아보자.
① 열강 한성순보에서는 러시아를 조선을 잡아 먹을 수 있는 무서운 나라라고 표현되었다. 유길준은 러시아 군대에 대한 과장된 통계치를 들어 막강한 군대를 가진 나라라고 인식, 이를 막기 위해 미국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1937년 이후로, 러시아는 열강이긴 해도 엄밀히 말하면 적국이었다. 우파 지식인은 소련을 가상의 적으로 설정 하고, 러시아 또는 소련을 악한 열강으로 파악하였다. 여기에 러시아 백계노인들까지 가담해 대일본제국 반공당체를 만들어 활동하면서 소련은 더욱 악한 열강으로 인식 되었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전향을 할 경우엔 적색 제국주의, 소련에 대하여 강한 반감을 드러내야 했다고 한다.
② 후진국 러일전쟁때 친일파들은 러시아를 후진국이라고 인식 하였는데, 왜냐하면 그때까지 러시아는 절대 왕정 국가였다. 공화제나 입헌군주제가 없는 나라는 후진국이라고 하여 무매한 나라로 인식이 되었다. 이렇게 정치적으로 후진성을 지닌 러시아를 바꾸기 위해서 허무당이 활약을 하였고, 이에 일본의 진보파들은 러시아 혁명에 굉장한 관심을 가졌다. 러시아 혁명 이후에는, 한국인들도 러시아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여성의 권리가 향상된 측면이나, 토지제도 관련 평가, 민족자치 법률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특히 공산주의 교육학에 대해서는 아주 긍정적이어서 동아일보나 조선일보는 이것을 집중 취재하기도 하였다.
이것으로 보아 소련에 대한 나름의 동경은 지속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30년대에 우파 지식인이나 자유지식인들 일부는 소련의 선진성을 인정함과 동시에 여전히 후진국으로 인지했다. 이는 나희석이 모스크바를 여행하고 쓴 글에서 모스크바의 사람들은 너저분한 누더기 옷을 입고 다니며 침울하고 우울한 회색의 도시라고 묘사한 것에서 확인된다.
③ 문학과 예술의 나라 최남선은 톨스토이가 죽자 잡지에 ‘토옹의 소고’ 라는 글을 쓰고 톨스토이를 자세히 소개했다. 이광수도 러시아 문학을 좋아했고 최승희 역시, 훗날 회고록에서 러시아에 가서 무용을 공부 하고 싶었다는 심정을 밝혔다. 이는 근대 한국인들이 러시아의 문학과 예술을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인식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제까지 살펴 본바 러시아는 근대 한국인에게 ‘다양한 관점과 인식을 가져다 준 독특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근대 한국인들에게 러시아의 이미지는 계속적으로 변해왔다. 한국을 침략할 수 있는 열강이기도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후진국, 나라 잃은 백계 노인들에게는 같은 정서를 공유할 수 있는 민족이기도 했다. 또한 높은 수준의 문학과 예술의 나라라는 인식도 있다.
러시아는 근대 한국인들의 위계적 세계관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이며, 위계 질서적인 한국인의 세계관에 균열을 준 나라라는 점에서 흥미롭게 평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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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인의 착한 경제학 |
정태인의 착한 경제학 1강 : 시장은 불패의 신화인가 |
느티나무 |
2011.7.8 |
7월 5일부터 여름학기 강좌로 [정태인의 착한 경제학] 강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강좌는 인간의 본성과 인간 개개인이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연구(진화심리학)를 바탕으로 하는 행동경제학이라는 프리즘으로 경제학과 현실경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강좌소개 보기>> 1강의 정리후기는 자원활동가 박우용(웅진지식하우스 에디터) 님이 작성해 주셨습니다.
1강 시장은 불패의 신화인가 :시장경제의 원리와 한계, 시장의 효율성과 시장실패 경제학은 인간과 시장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몇 가지로 나뉠 수 있다. 예를 들어, 완전한 인간과 완전한 시장을 상정하는 사무엘슨(Samuelson)과 애로(Arrow)류의 경제학이 있고, 인간은 완전하지만 시장은 불완전한 것으로 보는 제도 경제학이나 정보 경제학이 있으며, 인간도 시장도 모두 불완전한 것으로 보는 ‘행동 경제학’이 있다. 우리가 <착한 경제학>에서 궁극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분야는 바로 ‘행동 경제학’이다(이에 대한 훌륭한 참고 도서로 최정규의 ≪이타적 인간의 출현(뿌리와 이파리)≫을 추천한다). 인간은 과연 이기적인 동물인가, 만약 그렇다면 언제, 왜 서로 협력할까, 라는 문제는 경제학에서도 중요한 문제이다. 다윈주의, 심리학, 실험 경제학 등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한 탐구는 계속 있어 왔다.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는 언뜻 보면 간단한 문제인 것으로 보이지만, 위와 같은 의문들과 맞물리는 굉장히 심도 있는 문제이다. 경제학에서 가장 유명한 그래프는 바로 ‘수요-공급 그래프’이다. 수요량(D)과 공급량(S)의 접점인 ‘균형 가격’은 이윤 극대화와 효용 극대화가 만나는 최적의 지점으로 상정된다. 그리고 이렇게 효율적인 지점을 찾아 가는 기제를 흔히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부른다. 허나 우리에게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유명한 경제학자 스티글리츠(Stiglitz)는 ‘보이지 않는 손은 보이지 않는다(없다)’라는 말로 이런 기제의 허구성을 지적한다. 사실 애덤 스미스의 고전 경제학은 ‘왕권’이 아닌 ‘다수의 이기심’을 경제를 움직이는 동력으로 본,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생각으로, 그 밑바탕에는 계몽주의가 깔려 있다. 허나, ‘보이지 않는 손’을 상정하는 고전 경제학의 허구성은 여러 가지 이론으로 비판받아 왔다. * 옆의 <시장으로 가는 길>은 정태인 선생님이 스티글리츠의 책 중 번역이 가장 훌륭한 책으로 소개해주신 책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시장 실패 이론’이다. 그 내용은 1)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을 중심으로 하는 공공재(Public goods)의 존재와, 2) 과소 생산되는 ‘외부 선’과 과잉 생산 되는 ‘외부 악’으로 나뉘는 ‘외부성(Externality)’ 효과, 3) 경쟁 시장의 질서가 왜곡되는 독점 현상과 4-1) 필요성이 아니라 ‘가격’에 의해 재화가 배분되는 시장에서 가격의 다양화가 소비자 몫을 기업 몫으로 만드는 현상, 4-2) 가격의 유동성을 허락하지 않는 상품의 존재, 5) 정보의 비대칭 현상(정보 경제학의 연구 분야이다) 등으로 뒷받침될 수 있다. 이를 하나씩 살펴보자. 1) 공공재의 특징은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이다. 비경합성 때문에 ‘무임 승차’가 발생하며, 비배제성 때문에 ‘공공재를 위해 돈을 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차별되지 않는다. 강사가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공공재 중 하나는 민주주의이다. 민주주의는 양의 외부성을 발생시키지만, 이기적 인간은 굳이 추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방송도 대표적인 공공재이다. 그런데 공공재를 공공재 아닌 것으로 만드는 대표적인 방법이 ‘비배제성’을 제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료 CATV에 가입한 사람만 볼 수 있는 방송이라던지, 도로 진입을 선택적으로 차단하는 톨게이트의 존재, 수도 꼭지에 달아 놓는 (그리고 공급자가 언제든 수도 공급을 차단할 수 있는) 계량기 등이 이런 경우이다. 지금 종편의 허가 등 방송계에서 일어나는 일이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2) 외부성은 ‘시장을 거치지 않는’ 특징을 가지며, 외부 선과 외부 악으로 나뉜다. 외부 선의 대표적인 예는 ‘지식(예를 들어, 수학 공식 등)’이다. 이는 한 번 공개되면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것으로, ‘과소 생산’될 수밖에 없다. 외부 악의 대표적인 예는 ‘공해’이다. 이는 시장에서 ‘과잉 생산’되기 마련이다. 이런 현상을 바로잡기 위한 두 가지 대표적인 해법이 있다. 그 중 하나가 피구 해법이다. 이는 보조금과 벌금 등을 통해 외부성을 바로잡는 것이다. 또 하나는 코즈 정리이다. 이는 시장 구성원 간의 ‘차액’ 거래를 통해 이 현상을 바로잡는 것이다. 이는 외부성이 발생해도 국가의 개입이 불필요하다는 근거로 사용되며, 시카고 학파 등이 그들 이론의 주요 토대로 삼았다. 코즈 정리에 따르면 예를 들어 ‘공해’는, ‘배출권 거래’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피구 해법에 따르면 ‘탄소세’를 부과해여 할 것이다). 3) 독점은 대표적인 시장 실패 사례로, 사실 우리가 사용하는 TV, 자동차 등은 모두 대표적인 독점 상품이라 할 수 있다. 독점에는 ‘자연 독점’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생산량이 크면 클수록 생산 비용이 떨어지는 경우를 말한다. 이런 분야의 경우 무조건 대기업이 참여하는 것이 이득이다. 예를 들면 ‘네트워크 산업’이 대표적인 경우인데, 전기, 철도, 가스, 우편 등의 산업은 초기 비용은 많이 들지만,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의 경우 이득이 나기 쉽지 않은 구조로 되어 있다. 이런 산업의 경우 보통 공기업이 공공 서비스로 운영하고 있으며 ‘교차 보조’를 통해 인구 밀도가 높고 낮은 곳의 격차를 바로잡는다. 현재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기업 매각 같은 경우, 사실은 부자 감세로 생긴 적자를 메우기 위한 작업으로, 예정대로 진행될 경우 무시무시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한미 FTA까지 발효되면 되돌리기 어려운 재앙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공공 서비스의 위와 같은 특징 때문이다. 4) 강사가 가장 큰 ‘시장 실패’로 보는 것은 ‘가격’이 지배적인 수치가 되면서 발생하는 현상들이다. I) 시장은 ‘필요성’에 의해 재화를 배분하지 않고 ‘가격’에 의해 재화를 배분한다. 때문에 능력이 없더라도 재화가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재화가 제대로 배분되지 않는다. 제다가 가격을 다양하게 정함으로써 소비자의 몫이 기업의 몫으로 이전하기도 한다. II) 게다가 어떤 재화는 가격이 오르내리는 것이 ‘치명적’일 수 있다. ‘시행착오’를 허용하지 않는 필수적인 재화(식량, 약)의 경우, 가격의 변동성이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해를 가할 수 있다. 5) 정보 경제학은 시장에서의 ‘정보’ 문제를 고전 경제학이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애컬로프(Akerlof)의 ‘레몬 시장’ 이론이 대표적이다. 이는 재화의 판매자와 구매자 간의 정보 비대칭 때문에 발생하는 상황을 잘 보여 준다. 게다가 ‘이기적인 인간’을 상정하면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은 ‘최후 통첩 게임’과 ‘독재자 게임’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고전 경제학은 ‘타인 배려’와 ‘손해를 보더라도 불공정하다고 판단될 때는 응징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앞서 언급했던 스티글리츠는 시장은 ‘유사 외부성’에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예로 ‘금융 위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고전 경제학도 ‘국가 사회주의’도 ‘정보’의 복잡한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
중동 북아프리카 민주화 혁명의 오늘과 내일 |
중동 북아프리카 혁명과 한국사회 |
느티나무 |
2011.5.28 |
[강좌후기] 중동 북아프리카 혁명과 한국사회
중동 북아프리카 민주화 혁명의 오늘과 내일
이번 강의는 ‘중동 북아프리카 민주화 혁명의 오늘과 내일’의 네 번째 강좌입니다. 중동 민주화 혁명을 공부하는 마지막 시간으로 ‘중동 북아프리카 혁명과 한국사회’라는 소주제로 중동 혁명과 한국사회를 연관지어 보는 시간입니다. 한국사회는 중동 민주화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중동은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중점적으로 알아보고자 합니다. 더불어 이 시간은 중동지역을 경제적 이익의 관점으로만 보는 우리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첫번째 강의 중동에서 한국의 위상과 파병에 대해서: 구정은 기자
중동 교민과 교역 규모 먼저 중동의 한국교민과 교역규모를 살펴보겠다. 외교통상부 자료를 보면 전년 대비 인구수의 증감률이 0%라고 나와 있다. 2010, 2011년까지 인구변화가 없는 게 이상하지만 경향성만은 뚜렷이 보여준다. 주목할 점은 교민들이 석유 나오는 국가에만 많이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보면 사우디에 교민 수가 많아야 하는데 외국인의 출입을 제한하기 때문에 14%정도이고, 중동 지역 전체 교민 수가 합쳐서 1만 5천 명에 불과하다.
교역규모를 보면 2010년에 1000억 달러이다. 이것은 EU나 아세안보다 큰 것으로 우리의 석유의존도가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석유를 수입하는 곳은 중동 밖에 없다. 박정희 시절부터 유화산업을 키워왔고, 중동산 석유를 가져와서 수출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그래서 석유를 많이 수입해서 많이 쓰고 다시 수출하는 구조이다. 우리의 중동 의존도는 높지만 중동에 대해 가르치는 것도 없고 접하려는 노력도 없다. 단지 건설업체가 들어가 있고 석유를 사는 것 외에 문화적 정치적 교류는 거의 없는 상황이다.
중동에서 한국은 ‘돈 버는 데 중점을 둔 나라’ 신문사설에서는 한국기업이 돈을 잘 벌기 위해서는 정부가 중동과의 관계를 잘 만들어 가야한다는 내용이 많다. 이는 결국 중동과의 관계가 돈으로 귀결된다는 의미이다. 이런 한국의 태도에 대해서 외국에서는 ‘한국 건설 시장의 이해관계 때문에 중동 현지 민중들의 민주화 시위에 한국이 입을 다물고 있다’고 비판한다. 한국은 대기업 건설회사가 돈을 더 많이 벌고 덜 버는 것에만 전전긍긍하는 것이 현실이다. 민주화 시위에는 관심이 없으면서 원전수주하면 그게 큰 이슈가 되는 것이 그 예이다. 그래서 국제사회에서 한국에 대한 평가는 냉정하다.
그들은 한국의 경제규모가 12위라는 것을 모른다. 왜냐하면 국제사회에서 하는 역할이 없고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이 대접을 받기 위해서 책임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중동지역에서 ‘한국은 예전에는 민주화 과정을 겪었지만 이제는 돈만 버는 나라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아프간 파병에서 한국군의 역할은 미미 이상현 박사가 쓴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 파병의 당위성과 과제’라는 글을 살펴보겠다. 한국군의 아프간에 대한 기여는 미미하다. 첫째, 아프간에서 한국군은 미군부대 옆에 있는 정체모를 부대였다. 파병부터 등 떠밀린 모양새였다. 우리나라에서 보수파들은 아프간 파병의 목적이 미국과의 동맹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진정 원했던 것은 전투병 파병이었다. 미국은 동맹국이라면 전투에서 함께 싸워주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미국의 입장에서 인도적 지원은 동맹이 아니라고 말한다. 아프간에서 한국군은 ‘의료지원부대’라는 정체가 모호한 부대였다.
둘째, 지원금액도 너무 적었다. 특히 김선일씨 피랍사태 때, 한국이 사건을 빨리 파악못한 이유가 돈 때문이었다. 한국 사람이 가서 현지 사람들을 도와 주면서 사람을 사귀었다면 그런 사태를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부대가 이라크 아르빌에 가서도 한 일은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현지 상황이 위험해서 막사 밖을 나가지 못 한 날이 이어졌다. 한국외국어대 아랍어과 학생들이 통역으로 차출돼서 이라크에 갔는데 실제로 이라크의 아르빌은 쿠르드지역이어서 아랍어를 쓰지 않는다. 이것이 파병의 현실이다. 그 나라에 대한 정보나 지식이 전혀 없다.
이에 반해 동티모르는 성공적인 파병이라고 평가받고 있어 우리의 위상이 올라갔다. 동티모르 파병은 경제적 이득이 아니라 가장 가난한 나라가 독립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한국군이 가서 재건을 도와준 사례이다. 그 후에 동티모르 대통령이 방한하고 고마워했다.
앞으로의 파병은 앞으로 한국군의 파병은 이라크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 이라크 전쟁이 났을 때 국제사회가 크게 반대해서 여론이 다 그 쪽으로 쏠려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국익을 위해 파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랍권 방송에서는 전쟁에 찬성한 부시, 고이즈미, 노무현을 연속적으로 다루었다. 미국과 영국은 전쟁을 일으킨 나라였고 가장 처음 파병하겠다고 나선 나라가 일본과 한국이었던 셈이다. 그 때 나와 일본 기자는 창피해서 사람들한테 고개를 못 들었다. 이런 경우 국적이 도덕성과 연결된다. 그 나라 사람들은 ‘한국은 미국의 속국이니까’ 또는 ‘한국은 석유가 필요한가보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컸다. 우리는 파병이 어떻게 진행돼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두번째 강의 국제시사 프로그램 ‘세계는 지금’을 만들면서 느꼈던 소회: 안주식 PD
오늘은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느꼈던 소회 위주로 강의를 하겠다. 2002년에 ‘세계는 지금’ 프로그램을 맡았고 그 전에도 국제사회에 관심이 많았다. 입사 7년차라 프로그램 제작에 몸을 불사를 시절이었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을 겪고 국제시사를 못 하겠다고 생각했다. 김선일 씨가 죽고 나서 정신적 충격도 많이 받았고 전쟁을 취재하는 것이 인성을 피폐하게 한다고 생각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사회에 대한 실망이 컸다. 프로그램을 만들어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줘도 한국 사회는 쉽게 변화하지 않았다. 국제시사프로그램을 못하겠다는 생각은 무엇보다도 김선일씨 사건 때문이었다.
김선일씨 사건은 국가살인 김선일씨 사건은 명백한 국가살인이라고 생각한다. 그 때 팔루자 현장에 있었는데 국가가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절절하게 들었다. 한국 언론의 여론주도층이 김선일씨를 바라보는 태도가 도저히 근대국가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김선일씨는 자기가 국가의 희생자라는 것을 안다. 납치범들이 명백히 잘못했지만 그 납치의 원인이 파병이라면, 상식적으로 봤을 때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제1원칙이다. 우리가 공화국인 이유는 시민으로서 국가에게 우리의 권한을 위탁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는 다음 날 바로 파병 강행을 확정했다. 며칠을 못 참고 바로 파병 결정하는 것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또 국가가 협상을 해서 국민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없어서 더 힘들었다.
이라크 파병을 둘러싼 여론에 실망 두 번째로 한국사회에 실망한 이유는 당시 이라크 파병을 둘러싼 여론이 저급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사실 석유를 위한 전쟁이었다고 하더라도 대의명분으로는 이라크 독재국가를 없애고 민주주의를 확산한다는 것을 내세운다. 우리도 대의명분이나 큰 고상한 가치에 대해 논쟁을 해야 했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암묵적으로 ‘살고 봐야 한다’거나 ‘미국 없이는 못 산다’ 그리고 ‘중동의 석유자원 없이는 안 된다’등의 논쟁으로 이어졌다. 국제시사는 국경을 넘어선 보편적 가치, 인권, 자유, 민주주의 등 이런 것들을 논해야 한다. 국제적인 사건 앞에서 가장 정직한 목격자로 보도해야한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이런 것을 말하는 공간도 없고 시민사회도 없다.
국제시사 프로그램의 시청률 국제시사 프로그램의 평균 시청률은 3-4%이다. 이라크 전쟁 후에는 5%-6% 정도가 된다. 거의 시청률이 꼴찌에 가깝다. 이에 반해 제작비는 엄청 든다. 왜냐하면 다 해외 출장을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인원을 줄여서 피디랑 카메라맨만 가더라도 10분짜리 만드는 데 1500만원이 든다. 비용대비 효과를 볼 때 방송사가 좋아할 리가 없다. 그리고 목숨을 걸고 취재해도 알아주는 사람도 없다. 시청자들은 이미 외신보도를 통해 많이 접하기 때문이다.
월드 뉴스는 BBC월드가 가장 잘 된다. 영국은 오래된 제국주의 국가니까 국제시사와 얽힌 군사, 경제문제가 시민들과 직접 관련이 깊다. 거기에 반해 우리는 국제사회와의 고리가 약하다. 이라크 전쟁 반전 시위 때 수만 명이 나온 데는 영국 시민들의 각성도도 그만큼 높다는 뜻이다. 국제시민의식에 대한 각성이 높은 만큼의 시청률을 가지고 있다.
중동 민주화 문제는 석유, 국익, 미국과 연관돼 있어 중동 민주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도 석유, 국익, 돈, 미국에 관한 이 논리들을 우리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는 리비아의 민주화 시위에는 관심이 있지만 중동지역의 민주화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 이집트에서는 한국사회가 광주 민주화 운동과 4.19도 겪은 걸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반해 우리는 이집트 민주화 시위 때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았다. 광주 경험을 바탕으로 이집트 민주화 시위에 대해 지지시위를 하고 영어로 블로그를 만들었으면 알자지라에서 취재했을 것이다. 아무도 그 생각을 못 한 게 안타깝다. 결국 우리 안에는 폭력, 속물주의, 사대주의가 들어 있는 것 같다.
마땅히 해야 할 파병은 적극적으로 파병에 대해서 말해보겠다. 해야 할 파병은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아프리카, 중동지역에 우리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많다. 전 세계가 분쟁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도 안전지대 구축을 위해서 기여해야 한다. 때로는 파병하더라도 일이 제한적이고 지역주민에게서 환영을 못 받기도 하지만, 없으면 심각한 내전이 생기는 지역이 많다. 예를 들어 수단의 경우, 북부는 이슬람, 남부는 가톨릭 흑인지역이다. 계속 내전이 이어져서 아비규환의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 상황에서 평화유지군의 필요성은 절실하다.
한국정부의 파병은 원칙이 없어 우리사회에서는 마땅히 필요한 파병에 대해서는 기초적인 자료 조사도 없다. 우리는 원전을 수주할 때나 미국이 필요로 할 때만 파병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는 파병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담론이 없다. 386세대가 갖고 있는 속물적이고 이중적인 스탠다드가 있다. 한국사회의 386세대는 미국을 미워하면서도 미국을 의식한다. 그들이 미국을 극복하려면 미국을 의식하지 않아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시민단체의 역할이 커져야 외국에 있으면 한국인은 시민단체에 속한 사람보다 선교활동을 하시는 분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된다. 이에 반해 일본은 외교력에 비해서 시민사회의 활동이 활발하다. 일본은 국가적으로는 비웃음을 사는 약한 외교력을 지녔지만 시민사회는 활성화되어 있어 자원봉사자가 많다. 특히 인권과 관련된 부분에서 많은 활동을 한다. 우리사회 10,20대들이 세계화 척도지수가 높다고 하는데 젊은 사람들이 국제적으로 시민단체 활동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 시민사회와 언론의 역할이 일본만큼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앞으로 정부는 글로벌한 외교력을 가지되, 시민사회단체가 좀 더 조직적으로 국제기구와 상호협조하면서 활동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좋은 예로, 핀란드, 노르웨이의 시민단체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들은 지난 몇 십 년 동안 인권과 보편적 가치를 추구해 왔다는 점에서 국제적 위상이 높다. 이 국가들은 우리가 열심히 본받아야 하는 모델이 될 것이다.
Q&A
Q. 한국 사람들이 국익과 경제적 논리 속에 점점 속물적으로 변해하는 것에 대해 어찌 생각하시는지?
A. 구정은 : 결국 중동지역에 대해서는 우리도 가해자이다. 우리는 에너지 소비도 세계 10위 국가로 에너지 부문에서 석유의존도가 높다. 개인이 아무리 아낀다고 해도, 산업구조 자체가 에너지를 많이 쓰는 구조이다.
우리가 국익과 돈에 집착하면서 속물적으로 변한 것은 왜일까. 한국인은 미국의 힘과 돈의 논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역사가 꼬였기 때문이다. 해방되고 나서 미국이 한국에 영향을 많이 끼치면서 미국이 하면 옳은 것이라 배우고 체화가 됐다. 신자유주의 논리, 경쟁논리가 팽배하다. 얼마 전 미군에서 지원병을 모집하는데 한국인 지원자가 가장 많았다. 이유는 영어를 배울 수 있고 연봉이 높으며 미국 시민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전쟁으로 누구를 죽이는 집단에 속하는 것에 대해 어떤 도덕적 판단도 없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과연 완성되어 있나. 가치판단은 성숙한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A. 안주식 : 한국 속물주의의 뿌리는 군사주의에 있다. 남자가 군대에 가야 한다는 사실은 폭력을 기반으로 속물로 변하기 쉽다는 것이다. 신병훈련소에 가서 총알을 쏘고 군사훈련을 받으면 ‘이것은 사람을 죽이기 위한 훈련이구나’를 느낀다. 이것은 한국 남자에게 심리적인 트라우마를 준다. 그 트라우마는 속물주의, 정글의 법칙, ‘죽여야 내가 산다’는 식의 제로섬 게임법칙을 몸소 익히는 계기가 된다.
Q. 중동 지역에 다른 나라가 개입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A. 구정은 : 민주주의, 인권은 모두가 바라는 일이지만 그것을 이루는 방식은 다르다. 중동은 6차선 도로에 탱크가 다니는데 옆에서는 낙타가 다닌다. 우리나라나 미국이 초고속으로 발전한 경험을 중동지역에 강권하는 것은 폭력이 될 수 있다. 한 국가가 자기의 경험을 다른 나라에 억지로 이식할 수 없다. 문화적으로 역사와 전통이 깊은 나라에 부자연스럽게 이식한다는 것 자체가 억지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어느 나라에 얼마만큼 인도적 개입을 할 것인지는 깊은 고민을 해봐야 한다.
Q. 남의 힘을 빌려서 민주화가 되었을 때 당당할 수 있을까?
A. 구정은: 중동지역에서는 남의 손을 빌려서 민주화를 이루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이집트는 그 다음에 곡절은 많겠지만 최소한 우리나라의 노태우정부 정도로는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A. 안주식 : 중동은 한국과 비슷하게 갈 것이다. 자기 손으로 독재정권을 무너뜨렸으니 세세한 과정에서 반동은 있겠지만 민주의 물꼬는 돌리기 힘들 것이다.
파병은 꼭 전쟁을 수행해서가 아니라 존재 자체로 분쟁을 방지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라크 파병은 최악이었다.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파병을 했기 때문이다. 분쟁을 막기 위한 파병과 정권타도의 파병의 차이는 크다. 이런 것을 유엔이 적절하게 선을 정해야 하는데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시리아 군사개입도 리비아 사태와 비교하면 어느 정도 군사 개입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경제제재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에 대한 토론의 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국제문제도 한국 사람이라는 국적을 떠나 보편적인 인류의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이것은 이상적이고 도덕적인 시각이지만 국제저널리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그래야 한다. 특히 KBS는 존재근거가 시민사회니까 이런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인은 한국의 시민이기도 하지만 세계의 시민이기도 한다.
Q. 한국사람 대부분이 중동 민주화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이유는?
A. 안주식 : 한국이 중동 민주화에 관심이 없는 이유는 한국정치 때문이다. 남북분단의 정치구조를 바꿔야 한다. 그래야 끊임없는 고민을 바탕으로 외교무대에서 결정을 하고 유엔의 규칙을 지키는 쪽으로 갈 수 있다. 리비아 사태에서 한국이 군사개입을 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적극적으로 리비아 사태에 대해 논쟁을 해야 옳다. 실망스러운 것은 리비아 사태에 관해 정당의 성명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정치구조에서는 제대로 된 논평이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중동의 석유에만 관심이 있을 뿐 민주화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이런 구조를 깨려면 정치구조에서의 변화가 있어야 하고 시민사회도 큰 역할을 해야 한다. 정부주도형, 반쪽이데올로기, 재벌과 결탁한 정치집단이 아직 깨어지지 않고 있다.
강의를 들으며
이번 강의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한국사회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한국이 중동 지역과 관련해서는 원전수주와 석유 외에 어떤 문화적, 정치적 관심도 없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불과 얼마 전까지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가슴 아픈 과정을 겪었음에도, 비슷한 과정을 겪고 있는 중동 지역의 민주화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습니다. 그만큼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보다 물질과 경제적 이득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경제성장을 이뤄 선진국가로 진입하려고만 했지 문화적 가치의 고양이나 민주주의 성숙에 열을 올린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또 하나 아이러니한 것은 정부가 국제사회에 기여하는 선진국가가 되겠다고 하지만 정작 세계 보편적인 가치인 민주주의, 인권, 기아방지 같은 것에는 큰 관심이 없다는 점입니다. 오직 1인당 국민소득을 높이는 일, 국가의 경제적 이익에만 치중하다보니 오히려 국제사회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외교에서 독립적인 국가로 우뚝 서지 못하고, 미국에 대한 ‘사대주의’적 사고방식이 강하게 주입되어 ‘미국에 잘 보여야 살 수 있다’는 논리가 만연한 게 안타깝습니다. 어쩌면 미국에서 공부한 교수님들의 강의를 듣고 미국 교재로 공부를 해 온 우리가 미국에 맞춰 사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미국을 벗어나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구조적으로 막혀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미국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던 역사와 교육, 분단체제가 우리의 현실을 이렇게 만든 것입니다. 한국사회에서 시민들을 깨우고 세계 보편적인 가치에 대한 인식을 퍼뜨리기 위해 시민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이 마음에 무척 와 닿았습니다. 머지않아 국제시사 프로그램을 보면서 ‘나와는 상관없는 먼 일’이 아니라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이웃의 일’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강좌 기록 및 후기: 국제연대위원회 인턴 장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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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에 대한 7가지 오해와 진실 |
보편주의 복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주는 복지?(복지국가 7강) |
느티나무 |
2011.5.17 |
3월 14일부터 [복지국가에 대한 7가지 오해와 진실] 강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강좌는 복지국가에 대한 막연한 오해나 두려움을 넘어, 복지국가를 통해 시민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복지국가의 구체적인 현실을 통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서구의 복지국가를 넘어서는 한국형 복지국가에 대한 시민의 상상력을 넓혀가고자 합니다. 7강의 후기는 자원활동가 김현민 님이 작성해 주셨습니다. 7강 보편주의 복지는 무책임한 퍼주기 복지인가 윤홍식 인하대학교 사회과학부/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
보편주의가 사회적 화두가 되었다. ‘보편적’이라는 말이 한국 사회에서 이토록 불편한 말이었는지 새삼 놀라게 된다.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서두는 늘 이렇게 시작된다. "그렇다면 삼성 이건희 회장 손주들도 무상급식을 주어야 하는가?" 찬성하는 쪽도 이 지점에서는 무언가 석연치 않다. 이번 강의는 바로 이 부분에서 불편한 양 쪽 모두에게 필요한 내용이었다.
보편주의 복지국가의 원칙은 무엇인가 참여연대에서 30여명의 각계 전문가들이 두 달 여간 매주 세미나와 토론을 벌여 한국사회에서 보편주의 복지를 한다면 어떤 원칙들이 지켜져야 할 것인가를 논의한 바 있다. 그 결과 6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번째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보장하는 복지국가이다. 우리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는 계급과, 성, 학력, 거주지역 할 것 없이 시민으로 태어난 그 자체만으로 가져야 한다는 시민권에 대한 이야기다.
두 번째 실질적 민주주의와 좋은 경제성장의 동반자인 복지국가이다. 최근 수치를 보면 97년 이후 빈곤과 불평등 수치가 97년 직전보다 훨씬 높다. 복지국가 하자는 것은 실질적 민주주의 이뤄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보편적 복지국가는 경제에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니라 견인차가 돼야 한다는 주장이 담겨있다.
세 번째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복지국가이다. 일자리에 대한 문제가 심각하다.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게 우리가 원하는 복지국가이다. 경쟁하는 사회가 됐지만 태반이 백수이고, 일자리를 가진 청년의 태반은 88만원을 받는다. 역사적 경험은 우리에게 결코 시장은 좋은 일자리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문의 지표 보라. 기업의 규모와 투자 규모는 늘지만 고용지수는 좋은 기업일수록 줄어들고, 나쁜 일자리는 늘어나고 있다.
네 번째 노동자, 농어민, 중소상공인, 저소득층, 중산층이 함께하는 복지국가이다. 사실 한국에서 불안한 계층이 중산층이다. 몸 하나 믿고 노동력을 파는데 직업을 잃으면 바로 빈곤층으로 미끌어질 수 있다. 이에 대비한 사회서비스도 없다. 이들 중산층을 포함해 다양한 계층의 이해와 요구를 포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운동하고 연대한다는 것은 이들 모두의 연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다섯번째 여성이 춤추는 복지국가이다. 한국사회는 지독히 성차별이 심하다. 일하는 여성이 늘어남도에 불구하고 홑벌이 부부와 맞벌이 부부의 남성 가사노동 시간 차이는 2분여 밖에 안된다. 돌봄의 책임이 여성에 강제되는 것이다. 우리가 꿈꾸는 복지국가는 남성도 돌봄에 참여하는 사회로 바꾸자는 것이다. ‘젠더’라는 측면이 중요한 원칙이다.
여섯째는 인간안보를 지키는 복지국가이다. 그동안은 외부의 위험만이 안보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 삶을 위협하는 것은 일상의 실업과 빈곤 등이다. 이같은 인간안보 지키는 사회로 변해야 한다. 이 여섯가지 원칙이 참여연대가 올 하반기부터 진행할 복지국가 운동을 관통하는 중요한 원칙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 준다? 보편주의에 대한 비판의 논점은 보편주의냐, 선별주의냐로 나뉜다. 보편은 진보고 선별은 보수라는 이분법적 구조다. 사실 쉽게 말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 주는” 복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복지는 세 가지 선별기제를 가진다. 우선 65세 이상이냐, 아동이 있냐와 같은 인구학적 특성을 기반으로 대상자를 선별하는 것이다. 이어 기여여부이다. 국민연금 납부 정도에 따라 대상자를 선별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자산과 소득에 따라 대상자를 선별한다. 돈 있고 없는 사람을 구분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선별원칙 중 어떤 것을 취하냐가 중요하다. 모든 복지 정책은 이 세 가지 중 하나를 가지거나 또는 세 가지를 조합하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앞의 두 가지 근거를 두고 선별 할 경우 보편주의 복지, 마지막을 적용하면 잔여주의적 복지라고 한다.
선별원칙은 보편주의 복지 원칙의 반대가 아니다. 보편주의 복지의 반대는 잔여주의 복지이다. 보편주의 복지도 차이를 인정한다. 아이가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보다 더 많은 육아/보육 욕구 비용 들 것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단 돈이 많은 사람에겐 하루 세끼, 적은 사람에겐 두끼를 주는 것처럼 경제수준과 소득에 따라 기본적 욕구도 다르다는 것을 인정 안한다. 자산조사와 소득에 따라 선별하는 잔여주의적 복지에 반대하는 것이다. 통상 선별주의는 원칙이 아니다. 선별적 잔여주의라고 부르는 게 맞다. 자산과 소득에 따라 정책대상에서 선별하는 이러한 정책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선별주의로 표현하고 있다. 이미 대중화 되어 되돌리기 힘들지만 보편주의 복지와 선별주의를 잘 구분해야 한다.
잔여주의적 선별주의 대 보편적 선별주의의 대립은 문제가 있다. 정치적으로 중요한 문제다. 보편주의 대 선별주의의 대립으로 가져갈 때 보편주의 복지의 반대 입장은 무조건 주자 아니냐고 지적한다. 결국 이런 지적에 취약해지고, 선별주의 복지를 대항으로 설정할 때 보편주의 복지는 방어가 어렵다. 선별적 잔여주의, 또는 잔여주의적 선별주의라 지칭하는게 타당하다.
보편주의의 재원은 어디서 와야 할까? 가장 중요하고 논란거리는 진보는 증세를 지지해야 하는가, 라는 물음이다. 부자들에게 부유세를 걷자고 하면 반대가 별로 없다. 돈 많은 이들이 돈 좀 내라는 것인데, 한겨레 조사에 따르면, 어떤 나라를 꿈꾸냐는 질문에 국민 70%가 스웨덴 같은 나라라고 답했다. 이어 스웨덴처럼 세금을 더 낼 용의가 있냐고 묻자 20%만 더 내겠다고 하고 나머지는 지금만큼만 내거나 덜 내겠다고 답했다. 그러면 재원조달 방식을 묻자 잘 사는 사람이 더 내야 다라는 답이 60% 이상이었다. 이게 맞을까? 가진 사람 것을 뺏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자는 것인데, 그들의 작태를 보면 당연하다는 입장도 있고, 통쾌해 보이기도 한다.
보편주의 복지국가는 사회보장세, 소득세, 담배 술 등에 부과하는 죄악세 등의 세금이 무척 강하다. 소득세, 부가가치세 등이 스웨덴에선 25%이다. 만원짜리 물건을 사면 2천5백원이 세금이다. 한국은 10%정도다. 소득역진적이라고도 지적된다. 볼펜 하나를 살 때 이건희 회장과 노동자가 같아서야 되겠냐는 것이다. 진보에서는 소비세, 부가가치세가 맞지 않다, 소득역진적이라고 지적한다. 비역진적인 소득세, 자산/법인세 확대 등을 이야기 한다. 이건 다시 말하고, 그런데 북유럽 세제를 보니 법인세와 자산에 대한 세금이 영국과 미국보다도 낮다. 80년대에 보면 법인세가 마이너스 수준이었다. 주류경제학에서는 시장친화적 조세는 소득세 등이라며 법인세 확대 등은 투자 의지 꺾는다고 말한다. 주류가 싫어하는 세금인 셈이다. 그런데 자유주의 경제 활성화 국가인 미국과 영국 등이 북유럽보다 훨씬 세다. 북유럽은 오히려 약하다. 역설적이다.
스웨덴 사민당은 소득세와 죄악세를 늘려야 한다고 밝힌다. 왜 그럴까. 그것은 보편주의 복지에 대한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보편주의 복지는 남의 것을 뺏어서 주는 것이 아니다. 보편주의 복지는 우리가 낸 것을 우리가 돌려받는 것이라고 말한다. 복지 확대를 위해선 보다 많은 사람이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고 본다. 복지 수급자가 재원 담세자와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 보편주의 복지의 핵심원리이다.
보편주의는 누가 주도하는가 한나라당을 보면 세출구조에서 조세감면을 말하고 민주당은 전면감세철회를 이야기 한다. 박근혜는 부분감세철회 입장이다. 이 그림을 보면 일반적인 상식과 다른 모습이다. 진보는 부유세에 대해 지지해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로 고민 중이다. 그렇다면 보편주의 복지는 진보의 것이냐는 문제도 나올 수 있다. 한나라당은 지난 대선 때 반값 등록금과 무상교육, 기초노령연금 확대 등을 이야기 했다. 열린우리당은 현실성이 결여 됐다며 국정운영 책임자로서 그것은 표퓰리즘이라고 말했다. 시간이 흐른 후 반값 등록금, 무상보육, 급식, 의료를 이야기 하면 한나라당이 현실성이 결여된 포퓰리즘이라고 말한다. 이것을 보면 과연 진보만 보편주의 복지를 말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서구를 보면 그렇지 않다.
보편주의 복지 국가인 스웨덴의 복지정책은 1930년대 사민당이 주요 정치세력으로 등장하기 전에 보수당에 의해 만들어졌다. 당시 사민당은 처음부터 보편주의 복지를 지지하진 않았다. 당시 사민당은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했는데, 좌파의 핵심 테제는 당파성이다. 그런데 맑스의 주장과 달리 노동자 계급은 전체 다수를 차지하지 못했다. 집권을 위해 노동자 외에 중소상공인, 소자본가, 쁘띠 브르주아 등 다른 계층과 연대가 필요했다. 사민당 초기 우선 농민과 손을 잡았다. 50~70년대에는 화이트칼라, 중산층과 손을 잡았다. 그래서 보편주의 복지 국가는 사실상 좌우 날개로 함께 날아야 한다. 노동자 중소상공인 농어민 중산층 여성 진보적 지식인 저소득층이 함께 이끌어야 한다.
이것을 오해하면 보수도 보편주의 복지를 할 수 있냐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한나라당은 자발적으로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서구도 마찬가지다. 왜 한나라당이 기초노령연금 공약을, 이명박 대통령이 무상보육과 반값등록금을 말했을까. 기층민중과 시민이 요구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보수도 조직된 시민이 요구했기에 보편주의 복지를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스웨덴 우파가 집권해도 보편주의 복지를 철회하지 못한 것은 스웨덴 시민이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좌우의 날개로 보편주의 복지는 난다.
이건희의 손자에게도 무상급식을! 지역아동센터 교사들에게 무상급식에 대한 설문을 돌렸더니 과반수가 반대의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편주의 복지 국가는 이건희 손자도 무상급식 대상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 그런 주장을 할까? 첫째는 중산층이 참여하지 않는 복지서비스는 질이 담보가 안되기 때문이다. 만약 지역아동센터를 중산층 아이가 이용한다고 보자. 지금과 같은 서비스에 대해 중산층은 만족 안할 것이다.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요구할 것이다. 보편주의 복지국가는 복지서비스 수준이 중산층에 맞춰져야 한다고 본다. 만약 공적 제공 서비스에 대해 중산층이 불만을 가진다면 서비스를 이용 안하고 시장에서 구매를 할 것이다. 대부분 이용을 안하면 세금도 안내려고 할 것이다. 이건희 손자도 같이 먹을 급식이 돼야 한다. 그래야 우리 꿈꾸는 평등한 사회에서 모든 아이들이 수준 높은 급식을 먹을 수 있다. 두 번째로 예전엔 열심히 일하면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97년 외환위기 이후에는 회사에 몸 바쳐 충성해도 언제든지 잘릴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빈곤층으로 떨어진다. 미국의 자료에 의하면, 75세가 될 때까지 빈곤을 한번 이상 경험한 확률이 76.0%였다. 미국이 경우지만 우리 시대에 살고 있는 대다수가 빈곤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보여준다. 공적복지는 가난한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가난해 질 가능성이 모두에게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세 번째, 그러면 부자에게 걷어 가난한 사람을 주면 불평등이 줄까? 그게 논리적임에도 실제는 나타나지 않는다. 미국은 전체 복지 지출에서 가난한 사람이 차지 비율이 60%이다. 북유럽의 최고 다섯 배인 점은 논리적으로는 빈곤과 불평등이 적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재분배의 역설이 일어나는 것이다. 왜 그럴까? 이유가 있다. 보편주의 복지의 핵심은 나와 우리가 낸 것, 보편적 증세를 통해 보편적으로 돌려받는 구조이다. 세금을 내야 하는데 나를 위해 쓰이지 않고 저소득층, 가난한 사람에게만 돌아간다면 고귀한 사회적 이상과 철학 때문에 일정 부분 기꺼이 낼 수는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그러긴 어렵다. 그것이 결정적이다. 보편적으로 세금을 내는 나라에선 복지자원총량이 훨씬 크다. 그 총량에서 n분의 일을 나누니 가난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이 커진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만 공적복지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한국은 보편주의에 어디쯤인가 한국사회를 보면 보편주의 복지가 첫 번째 가난한 사람들만 지지하느냐, 두 번째는 보편주의가 경제성장 도움이 되는가, 세 번째 정치적 조합이냐 시스템과 체제로 만들어야 하는가, 라는 문제가 남는다. 결국 보편주의 복지와 잔여주의 복지는 극명해 진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보편주의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박근혜는 잔여주의를 지지한다. 사회보장법 전부개정안 토론회 안을 보면 가능한 많은 사람을 포괄 구제하고 사각지대를 효율화시키자인데, 이게 주로 잔여주의 복지국가 방식이다. 시민권에 기반한 정책이 아니다. 반면 손학규를 제외한 민주당 주류를 보면 보편주의 복지 국가를 지지한다. 다만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는 뭘 지지하는지 모르겠다. 아동양육을 보면 시장지향적이고 일부는 진보적이다. 아직까진 판단이 어렵다.
이전까지 정치 쟁점은 민주 대 반민주, 친북 대 반북 등이었지만 2012년엔 보편주의 대 잔여주의 복지의 논쟁이 일 것이다. 시민들이 복지를 경험하게 되면 결국 복지의 확대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이에 조응하는 정치체제는 비례대표제라고 본다. 또한 조응하는 복지정책은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을 보장하는 보편주의 복지라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치와 철학에 대한 것이다. 북유럽의 경우 아동의 천부적 인권을 인정한다. 미래 사회를 이끌 동량이나 노동력 차원에서 보는 게 아니라 아동 자체를 완전히 인격체로 보는 것이다. 당연히 그들에게 필요한 질 높은 서비스에 대해 그 사회에서는 이견이 없다. 과연 한국사회에선 그 사람의 성격과 품성, 근로동기와 상관없이 인간의 존엄성에 따라 누구나 복지를 보장하는 가치에 동의할까? 우리나라는 경제중심적이다. 일하지 않고 게으른 사람에게도 복지를 준다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가 삼십년 넘게 걸려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박정희가 한국사회 모든 돈을 끌어들여 재벌에 집중투자를 하면서 나머지는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그리고 현재 복지가 이 수준이다. 그런데 다음 정권을 진보신당이 잡는다면 복지국가 될까? 보편주의는 정치적 결단의 출발점이지만 시간을 요구한다. 몇 개의 정책 조합이 아닌 체제 변화는 많은 변화를 요구할 것이다. 국민들도 다음 정권에서 진보정당이 집권해도 5년 내 다 한다 는 기대를 버려야 한다. 이것은 출발점이다. 집권 하자마자 5년간 복지 확대 마스터플랜을 보여주고 추진해야 하지만 그 5년이 모든 것 해결해 줄 것이라고 기대해선 안된다. 적어도 수 십년은 흘러야 한다. 앞으로 수 십년간 보편적 복지를 지지하는 정당이 집권해야 된다. 다른 세력이 집권한다 해도 이 방향으로 국민이 요구하는 힘을 가져야 한다. 시민의 조직된 힘으로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 일상에서도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조직된 힘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쉽지 않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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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북아프리카 민주화 혁명의 오늘과 내일 |
민주화 혁명 이후 중동 북아프리카는 어디로? |
느티나무 |
2011.5.6 |
[강좌후기] 민주화 혁명 이후 중동 북아프리카는 어디로?
중동 북아프리카 민주화 혁명의 오늘과 내일
‘중동 북아프리카 민주화 혁명의 오늘과 내일’의 세 번째 시간으로 ‘민주화 혁명 이후에 북아프리카는 어디로 갈지’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를 중심으로 중동지역이 민주화 이후에 어떻게 될 지에 대한 조심스런 전망과 함께, 미국이 이 지역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지난 주에 이어 구정은 기자와 안주식 PD가 강의를 맡았습니다.
첫 번째 강의 사우디아라비아 중심으로 본 민주화 혁명 이후: 구정은 기자
오늘은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역사와 전통은 없지만 사우디는 중요한 나라다. 석유지정학에서 사우디의 위상은 누구도 도전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 사우디만큼 자원을 가진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건국과정 사우디는 1902년 이븐 사우드가 건국했다. 그는 부족전쟁하면서 사우디를 장악해 나라를 건국했다. 이슬람 조직인 사우드족이 부패한 조직에 맞서 종교개혁을 일으키면서 와하비즘과 결합하여 1932년에 사우디라는 통일왕국을 만들었다. 미국 자본계열인 아람코가 석유를 발견해서 채굴을 시작했다. 그 후 이븐사우드가 죽고 나서 장남이 즉위했다.
수니파의 사우디 수니파와 시아파의 다른 점은 혈통을 중시하는가, 부족의 원로들이 과두지배처럼 논의해서 결정하는가 하는 것이다. 시아파에서는 부족장의 결정을 따르는 것이 순리여서, 장자 여부는 중요하지 않고, 왕정을 이끌만한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다. 사우디는 수니파이기 때문에 장자가 주로 왕권을 이어받는다. 압둘 아이즈가 사망한 후 장남인 사우드 빈 압둘 아지즈가가 OPEC창립을 주도했다. 사우드가 쫓겨난 이후 남동생인 파이잘이 즉위하였고 그 다음은 파드가 국왕이 되었다. 그는 미국에 대해 매우 호의적이었다.
1995년부터 2000년 중반까지 사우디에서 시위가 조금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사우디는 왕위가 형제간에 계승되었기 때문에 국정운영은 원활했으나 시위에 대해서는 강경 진압했다. 이때부터 테러가 자주 발생하자 미국으로부터 오는 압력도 강해졌다. 파드가 사망하자 형제계승의 관습에 따라 동생인 압둘라가 즉위했다. 그는 서방에서 긍정적으로 봤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시위가 늘어나자 시위대의 요구대로 복지지출을 늘리겠다고 하면서도 다시 시위 자체를 금지하고 강경진압했다.
사우디의 민주주의 사우디 민주주의의 발전 정도는 거의 최하위권이다. 경제성장과 민주주의의 연관성을 생각할 때 중동은 1인당 GDP에 비해 민주주의 정도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언론출판의 자유가 있고 민주주의의 틀을 갖춰나가고 있는 만큼 과소평가된 부분이 적지 않다. 여기에 비해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은 민주 선거가 실시되긴 했지만 부패와 유혈사태가 심각하다.
아랍의 혁명에 대해 아랍은 부족주의 전통, 군사독재정권, 전제군주정의 세 가지 억압이 있어왔다. 이번 혁명은 권위주의에 타격이 될 수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미완의 혁명이 될 가능성 크다. 혁명을 하고 나면 피를 흘린 만큼 정치판에서 시민들이 조금 더 입지를 넓힐 수는 있겠지만 역부족이 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이 혁명으로 새로운 민주주의가 탄생하지 않더라도 큰 변화를 모색해 볼 수는 있다. 미국도 아랍 지역의 민의를 조금 더 중요시하게 될 것이다.
타리크 알리(Tariq Ali)의 시각 60년 혁명의 아이콘이었던 타리크 알리는 이번 중동 사태에 대해서 두 가지로 요약했다. 1) 아랍세계 모든 이들이 전제권력에 도전했다. 2) 독재자를 지탱해주었던 서방을 향해 자유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왜 하필 지금 아랍에서 혁명이 일어났나 2008년 월가의 붕괴로 인한 세계경제위기가 있었다. 이 여파로 중동지역에 실업률이 올라가고 교육받은 노동자들이 대량 실직으로 거리에 쏟아졌다. 경제적 원인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생겨난 측면이 있다. 파키스탄 정부는 시위를 강경 진압한다. 인도네시아는 온건파 정당이 자리 잡아 당분간 온건파로 갈 가능성이 크다. 이집트 시민들도 독재자를 더 이상 받아주기 힘들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지지하던 무바라크도 전복된 만큼 시민 혁명이 더욱 힘을 발휘하고 있다.
중동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어떻게 될까 사우디가 바레인의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고 있다. 미국이 바레인에 자국 해군기지를 둔 것을 보면 전략적 요충지임을 알 수 있다. 미국이 사우디에 시위 진압을 암묵적으로 권유했을 가능성도 있다. 지금 미국은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있다. 민주주의를 위해 앞장서면서도 민주화를 위해 시위하는 사람들을 억압한다.
앞으로 중동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갈 것인가? 두 가지를 예측할 수 있다. 1) 아랍인들은 자기가 모르는 힘을 깨닫고 있다. 2) 어떤 방향으로 가든 자유를 맛보기 전 단계로는 가지 못한다. 튀니지, 예멘 모델 또는 정권뒤집기 모델 중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유혈충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유혈충돌을 방지하는 시스템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앞으로 사우디, 이집트, 이란은... 사우디의 경우 이집트와 다르게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 정권은 뒤집히되, 방향은 아주 다를 것이다. 사우디는 권력을 감시하는 시민단체가 없는 나라이다. 사우디의 민주화는 왜곡되어 있어 앞으로도 힘들 것이다. 사회적 자원도 없고 극단주의자가 장악할 가능성도 있다.
이집트는 야당이 있지만 시민단체는 거의 없다. 앞으로의 변화 방향은 미국이 이집트 정부가 전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어디까지 개혁을 원할 것인지에 달렸다. 미국은 시위대가 정부를 전복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쓸 것이다. 친미정권이 없어지면 미국의 영향력도 약화되기 때문이다.
이란은 지금 아랍국들의 시위를 즐거워하고 있다. 중동에서 영향력이 큰 나라는 미국, 사우디, 이란 순이지만 앞으로 이란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이란은 정치력과 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강의 이집트 혁명과 미국의 딜레마: 안주식 PD
지난주 목요일에 KBS '세계는 지금’에서 이집트 민주화 시위 이후 ‘격동의 중동’, ‘미국의 딜레마’ 두 편을 방영했다.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느낀 점을 정리해보겠다.
이집트의 민주화 혜택이 이슬람 단체에게로 이번에 이집트에서는 헌법을 바꾸자는 국민투표가 있었다. 국가위원회가 꾸려져있고 올해 9월에 대통령 선거와 총선거를 치르기 위해서 헌법을 수정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이집트 헌법은 독재를 합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집트 시위에 나섰던 청년, 시민단체, 재야단체는 헌법개정에 반대했다. 다가오는 6개월 내에 헌법을 수정하고 국민투표를 하면 자기들이 후보를 내고 조직화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천천히 하더라도 좀 더 근본적으로 헌법을 수정하기 위해 대대적인 반대캠페인도 벌였지만 결국에는 헌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무슬림 브라더스(Muslim Brothers)가 여기에 크게 한몫을 했다. 이것은 1920년대에 생긴 집단인데 이슬람주의 정치세력이고 공식적으로 샤리아 법(Sharia Law)을 지지하고 있다. 헌법 개정의 혜택으로 무슬림 브라더스가 제1야당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혁명은 형식적 민주주의, 일반민주주의 요구를 하고 있다. 즉 서구식 민주주의를 요구했던 혁명으로 결국 무슬림 브라더스가 가장 큰 수혜자가 될 수 있어 제2의 충돌이 예고되고 있는 실정이다.
*샤리아: 이슬람교에서, 코란을 바탕으로 한 법의 체계
이집트 엘리트 집단인 군부세력에 대해 이집트는 군부의 지위가 다른 아랍권에 비해 상당히 높다. 사회 최고 엘리트 집단이 바로 군부이다. 이들은 '국가의 수호자'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대부분의 장교가 엘리트 코스의 상징인 미국유학을 갔다와서 영어가 유창하다. 현실적으로 무바라크가 퇴진하게 된 데는 데모의 크기, 시위의 격렬함보다 군부가 무바라크를 버린 이유가 크다. 그럼 왜 군부는 무바라크를 버렸나? 군부는 무바라크를 버리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겠다는 뜻이 컸다. 이집트 군부대는 거대하며 지방 곳곳에 군부대 시설을 갖고 있어 지방권력을 갖고 있는 집단이다. 이들은 무바라트를 끝까지 지지할 수는 없었다. 이들은 앞으로 정치에 개입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세력을 넓히기 위해 움직일 가능성도 있다.
앞으로 이집트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추측은 유동적이다. 제2의 무바라크가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군부 기득권도 유지될 것이고 무슬림 브라더스도 세력을 유지할 것이다. 적어도 5-10년이상 민주화를 향한 과정을 겪게 될 것이다.
미국의 딜레마 미국의 핵심 중동 정책은 다음과 같다. 1) 극단적 이슬람주의 세력은 용납할 수 없다. 2) 안정적인 석유를 공급 받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 미국은 이 두 가지 모두에서 딜레마에 빠졌다. 미국은 극단적 이슬람주의가 나타나지 않도록 여러가지 방법을 써 왔다. 심지어 독재자 무바라크를 지원해 주기도 했다. 반카다피 세력에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있다. 미국은 이런 세력에게 권력이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아랍국가의 독재를 지원해 왔다. 이런 이유로 인해 형식적 민주주의가 아랍권에서 억제됐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일반민주주의를 무시한 현실이 한계에 부딪힌 것이다. 미국은 민주주의 확산으로 세계에 기여한다고 자부했지만 이번 일은 미국의 위상에 먹칠을 했다. 지금부터 이슬람이 민주화 되면 극단주의 세력 또한 정치에 반영될 수 밖에 없다. 시스템으로 이를 막을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중동의 GCC(Gulf Cooperation Counci:페르시아만협력회의)국가가 전세계에 공급하는 석유의 양은 전체 공급량의 40% 이상을 차지한다. 미국은 GCC국가들이 정치적으로 불안해지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세계적으로 석유 가격이 배럴당 200달러를 넘어가면 대공황이 올 것이라고 예측하는 사람도 있다. 미국은 중동에서의 더 큰 혼란을 막고 민주화 진행 과정을 늦추자는 의미로 자금을 지원해서 시위를 줄이려는 논의도 하고 있다고 한다. 관련하여 미국의 민주당 씽크탱크들은 마샬플랜을 중동전체에 실행해서 빈부 차이를 없애고 민주화 정도에 따라 대규모 지원을 해주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오바마도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라 현실적으로는 어렵다.
중동 민주화 시위에서 느낀 점 이슬람이든, 아프리카든, 북극에 살든 사람이 자유를 경험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이것은 세계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이다. 특히 제도적 자유를 경험하면 뒤로 가지 못한다. 중동 북아프리카의 정권은 앞으로 10-20년 동안은 터진 봇물을 어떻게 수습할까를 고뇌해야 할 것이다. 저널리스트의 감각으로 느끼는 것인데 중동이 아무리 이슬람 국가라도 형식적 민주주의의 단계는 어느 정도까지 오를 것이다.
Q&A
Q. '독재, 이슬람 근본주의, 외세'는 서로 적대적이지만 민주화의 도래를 지연시킨 공범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 이슬람 시민은 정교분리를 하면서 민주화를 실현하려하는가?
A. 구정은 - 이들은 적대적이지 않는 그냥 공범이다. 무바라크가 심할 때는 미국도 압박하지만 분명한 결탁관계에 있다. 민주화 이후에는 이슬람 근본주의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민주화된 사회에서는 히잡을 쓰고 싶지 않은데 안 썼다고 때리면 곤란하다. 이슬람 근본주의는 민주주의가 말하는 개인의 권리, 자유, 인권을 보장하지 못한다. 이런 측면에서는 위의 세 가지는 모두 민주주의의 적은 맞지만 공범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다. 이란의 호메이니 체제는 반미를 이용해 국민을 억압했다. 외세의 존재를 악용했다. 이슬람 근본주의의 역사는 오래됐지만 새로운 현상이기도 하다. 탈냉전시대의 새로운 현상이다. 앞날이 복잡하게 꼬일 것이다. 이슬람 세력이 민주화의 수혜자임은 확실하다.
Q. 기독교와 기독교 근본주의가 다르듯이, 이슬람교와 이슬람 근본주의는 굉장히 다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슬람과 근본주의를 비슷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시각 교정도 해야 한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A. 구정은 - 이슬람주의는 이슬람을 내세우는 사람을 얘기한다. 여자라는 이유로 재산권을 법적으로 제한을 두는 사람과, 부르카를 안 썼다고 염산을 뿌리는 사람은 둘 다 나쁘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둘 다 보편적 인권을 무시한 것이다. 도로에 폭탄을 설치하면 극단이고, 총을 놓고 집에 있으면 온건이니까 온건은 우리 쪽으로 용인하자고 하는 것도 지배의 방법일 뿐이다. 가장 피해를 입는 사람은 아프간 여성이다. 미국이 아프간에 와서 잘 한 것이 탈레반을 쫓아낸 것인데 다시 온건탈레반을 받아들이자고 했다. 이것은 여자들에 대한 온건한 탄압을 받아들이자는 것과 같다. 미국의 이런 접근은 아주 편의주의적인 것이다. 이슬람주의라는 것은 결국 맥락은 똑같다. 이슬람주의를 금지시키는 것은 탄압이 아니라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생각한다. 부르카 때문에 염산테러를 당한 사람이 나타나면 금지시켜야 한다.
Q. 혁명이 일어나는 이유가 실업과 관련이 깊다고 생각한다. 아랍은 경제체제가 없는 상황이다. 선진국에서 경제체제를 도입해서 성장해야하지 않나? 그러면 시민의 힘을 더 모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A. 안주식- 나라가 경제적으로 형편없다가 어느 정도 살만하니 민주주의를 해보자고 하는 시점이 되려면 돈이 그렇게 많지 않아도 된다. 사우디는 1인당 GDP가 높다. 경제적 수준은 민주주의를 진작 요구하고도 남았을 시점이다. 다만 어떻게 해서 일자리를 만들지는 얼마나 자원을 잘 팔아서 투자를 잘 할 것인지에 달렸다.
이것은 사회주의 분배체제와 비슷하다. 석유를 팔고 남은 돈으로 공무원을 만드니 중동 사회주의라고 말한다. 이스라엘의 경제구조처럼 IT 산업을 발전시키고 산업경제구조를 장기적으로 개선해야 민주화 시위의 성과가 온전히 유지될 것이다.
이슬람은 큰 고민에 빠졌다. 이라크전에서 미군의 횡포가 심해서 이슬람 사람들의 일부가 극단주의자로 바뀐 경우가 많다. 현대 민주주의는 정교 분리없이는 있을 수 없다. 이슬람은 미국제국주의와 종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트라우마를 가진 나라이다. 상황에 따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는 현실적인 문제이다.
강의를 들으며
강의에 앞서 구정은 기자가 몇 개의 두건과 히잡을 가져와 보여주었습니다. 구정은 기자는 모래 바람이 심해서 머리에 천을 두를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명하면서 직접 써보기도 했습니다. 색색의 히잡은 뉴스에서 탄압받는 여성의 머리에 두른 것과는 달라보였습니다. 어떤 문화가 생긴 데에는 이유가 다 있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중동 민주화에 대한 강의가 이어지고 현장에서 느낀 바를 들을수록 중동지역에서도 결정적 변수는 미국이라는 것이 뚜렷이 다가왔습니다. 지금까지 참고 있다가 폭발한 시민들의 분노도 미국경제의 위기로 맞은 경제난이 큰 이유였고, 앞으로 민주주의의 발전도 결국 미국이 결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미국은 세계에 ‘민주주의의 확산’이라는 명분으로 ‘선의의 개입’을 하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중동지역의 ‘석유이권’을 위해서는 민주주의에 반하는 행동을 했다는 것도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미국적 사고를 비판적 시각 없이 교육받아온 한국에서 중동 민주화를 아는 것은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때까지는 중동 북아프리카 지역은 멀리 떨어져 있고 문화적, 종교적으로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관심대상에서 빠져있었지만 아직도 인권이 유린당하는 곳이며, 투쟁을 해야 최소한의 인간적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번 민주화 혁명으로 이 지역에 관심을 가졌듯이 앞으로도 꾸준히 민주주의를 이뤄가는 과정을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강좌 기록 및 후기: 국제연대위원회 인턴 장유진
다음 강의 4월26일(화) 중동 북아프리카 혁명과 한국사회 강사: 구정은(경향신문기자) 안주식(KBS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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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에 대한 7가지 오해와 진실 |
성장과 복지는 동행이다(복지국가 6강) |
느티나무 |
2011.5.4 |
3월 14일부터 [복지국가에 대한 7가지 오해와 진실] 강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강좌는 복지국가에 대한 막연한 오해나 두려움을 넘어, 복지국가를 통해 시민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복지국가의 구체적인 현실을 통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서구의 복지국가를 넘어서는 한국형 복지국가에 대한 시민의 상상력을 넓혀가고자 합니다. 6강의 후기는 자원활동가 김현민 님이 작성해 주셨습니다.
6강 성장과 복지, 세계화와 복지는 상극인가
이정우 경북대학교 교수·경제학 / 참여정부 정책실장
분배와 성장, 이 두 가지는 복지에 관련된 아주 ‘오래된 이야기’이다. 한국 사회에서 복지와 관련된 가장 익숙하고 (또 거의 유일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여섯번의 강의를 들으며 복지를 선택하는 것이 곧 성장을 늦추는 것이 아님을 확인해 왔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성장과 더 친숙할 것 같은 경제학자는 또 어떠한 진실을 전해줄지, 기대와 설렘으로 강의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파이(pie)를 언제 맛보나?
이전 역대 보수정부는 성장이란 토끼만 잡으러 다녔다. 분배, 복지 토끼는 관심이 없었다. 다만 학계나 시민단체가 분배, 복지를 가끔 꺼냈는데, 무시당했다. 항상 선성장 후분배를 말했다. 성장을 먼저 하고 그 다음 파이가 커질 터이니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미리 나누면 파이가 안 커지니 성장이 안 돼 다 가난해진다, 사회주의가 그래서 망했다는 논리다. 철학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수준 낮은 주장이지만 이 주장은 오랫동안 국민들의 머리 속에, 특히 나이 먹은 사람들에게 고정관념처럼 박혔다. 떡을 키운 후 갈라먹자는 이야기는 그럴듯해 진리처럼 들린다. 그래서 쉽게 국민들의 머리를 지배할 수 있었다. 참여정부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이 성장도 낮고 분배도 개선되지 않은,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둘 다 놓쳤다고 말한다. 주로 쓰는 두 마리 토끼론이다. 성장과 분배 중 한 마리 토끼만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래도록 우리의 머릿속을 붙잡아 이분법적으로 사고하게 한 이 논리는 과연 진실일까?, 설득력이 있는가? 복지국가 담론은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위험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던 것이 98년 환란이 오면서 실업자도 많이 생기고, 빈부격차도 심해지고, 따라서 상당한 복지 확충을 위한 새로운 제도가 많이 일어났다. 의약분업도 그 때 생겼다. 200여개로 쪼개진 의료보험조합을 건강보험으로 통합한 것도 그 때 일이다. 국민의 정부가 복지국가의 기틀을 만드는데 공로가 많다. 이어 참여정부 때 복지국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분배에 민감한 한국사회
이 교수는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을 맡았었다. 그래서 그는 복지가 한국 정치 현장에서 어떠한 민감도를 가지고 있는지 또 얼마나 넓은 스펙트럼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보수언론에 ‘분배주의’라고 분류(?)되면서 비난받았다. 없는 말을 만들어서 참여정부를 분배주의라고, 또 좌파라고 공격했다. 그는 전공이 경제학 중 분배론/불평등론이다. 삼십년 전 미국 유학 시절에 그의 전공 때문에 좌파분배주의로 몰기 좋았을 것이다. 실제로 참여정부가 분배에 좀 더 신경을 쓴 것은 사실이다. 그 전 보수정부에 비해 복지예산을 늘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걸 분배주의, 좌파로 부를 만한가. 그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여전히 분배/복지가 약하다고 본다. 당시 중앙정부 예산 중 복지예산이 참여정부 시작 때 20%였다. 경제예산은 28%였다. 참여정부 말에는 그 숫자가 우연히도 거꾸로 된다. 복지예산이 28%, 경제예산이 20%였다. 이걸 가르켜 분배주의, 좌파라고 온갖 비난을 했다. 정말 과한 것일까? 정말 좌파적인가? 그것을 보려면 다른 나라를 봐야 한다.
OECD 평균 경제예산은 10% 대이다. 복지예산은 평균 55%이다. 10대55로 비교가 안된다. OECD 국가 중 미국은 가장 덜 복지국가이고, 가장 후진적인 복지국가이다. 하지만 미국도 중앙정부 예산을 보면 OECD 평균과 비슷하다. 그러나 한국은 오랫동안 경제예산이 복지예산보다 많았다. 나머지는 행정, 국방 등이었다. 유독 우리나라만 기형적인 예산구조를 가진 것이다. 다들 우리보다 다섯배 정도 쓰는데 우리는 반대했다. 이걸 조금 바꾼 것이 참여정부의 28%이다. 이게 과다한 것일까. 참여정부가 한 30~40%로 올렸으면 좋았겠지만 그랬다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우리의 복지수준은 굉장히 늦고 너무나 빈약해 이야기하기도 부끄러운 수준이다. 이를 정상화하려는데 분배주의/좌파라고 한다. 이런 보수언론 가진 것과 함께 학자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 보수이다. 9할이 보수 경제학자이고 보수이다. 분배복지에 대한 식견이 없다. 공부를 제대로 안하고 단순히 분배는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는 보수언론 말을 막연히 맞다고 믿고 있다. 경제학자조차 이러니 국민이 이걸 믿는 것이 이상한 게 아니다.
성장과 분배와 복지, 그들은 정말 삼각관계인가?
그러면 실제로 성장과 분배 복지의 관계가 발목 잡는 관계인가, 그렇지 않다. 보수 언론의 구호인 복지가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는 틀렸다고 많은 경제학자들이 증명하고 있다. 그 이유는 세 가지이다. 하나는 분배가 불평등할수록 재분배 요구가 많고 따라서 세금을 많이 걷어 소득을 재분배해야 하는데 그러면 성장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분배가 불평등하면 정치사회적으로 불안정해 외국의 투자가 안 들어오고, 그래서 성장을 저해한다. 세 번째는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문제이다. 분배가 불평등할수록 가난한 집의 인재가 공부를 할 수가 없다. 이렇게 지나친 불평등은 성장을 저해하는 세 가지 연결통로가 있다. 지난 20년간 경제학자들이 발견한 것이다. 압도적 다수 의견이 분배 개선은 성장에 유리하다고 말한다. 분배가 나쁠수록 성장에는 불리해 진다는 이야기이다. 이 교수는 참여정부 때 이 부분에 대해 강조하려고 글 쓰고 강연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는 2005년 2년 반 일하고 나올 때 글 하나를 남겼다. 다른 것은 알아서 맡겨도 걱정이 안되는데 분배론은 보수가 끊임없이 시비를 걸지만 안에서 잘 아는 사람 없어서 글을 적었다는 것이다. 최성수의 노래 동행의 가사를 인상깊게 들었고 이것을 따와서 “성장과 분배는 동행이다”, 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고 한다. 그렇게 최성수의 동행 이야기를 하면서 성장과 분배도 동행이라고 설명했다.
‘세 가지 메커니즘인 조세재분배, 인적 자본, 정치 불안정을 이야기 했다. 경제학 연구에서 밝혀져 있다, 더 이상 흔들지 마라, 보수는 근거를 가지고 비판해라, 말도 안되는 낡은 레코드를 계속 틀지 마라, 발목 잡는다 하지 말고 자신을 가지고 분배 복지 강화 정책을 계속 해달라’고 남기고 나왔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복지국가 논쟁이다. 그때는 성장분배, 지금은 복지국가로 이름만 다르고 내용은 같다. 지금도 낡은 레코드를 틀고 있다. 분배 복지는 성장의 발목, 복지는 성장을 저해한다, 복지국가는 재정이 나빠져 위기가 오고 국가부채는 늘어난다, 국가 부도로 신용등급이 떨어진다라고 말한다.
지난해 유럽의 포르투갈,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네 나라가 국가신용부도를 맞았다. 그래서 구제금융을 받고 그랬는데, 이들 국가를 호재로 삼아 복지국가를 격하는데 써먹고 있다. 복지를 너무 해서 국가 부도가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분배 복지가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는 언술이 틀렸듯이 복지국가가 성장 발목을 잡는다는 말은 틀렸다. 이들 국가가 복지 때문에 부도가 났다는 말도 틀린 말이다.
이들은 유럽에서 가장 복지 후진국들이다. 유럽국가들의 복지 발달 정도는 위도가 높을수록 복지 잘되고 낮을 수록 낮다는 게 정설이다. 북유럽은 세금 많이 걷고, 복지지출 많이해 웬만한 의료 보육 학교 급식 등은 무상이다. 이를 탈상품화 사회라고 한다. 그리고 중부유럽이 그 다음이다.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등이다. 이들은 2등급 복지국가이다. 아일랜드와 영국은 예외인데, 위도는 높지만 복지는 실제로는 낮다. 정말 복지 때문에 경제가 망가진다면 제일 먼저 북유럽이, 그다음 중부유럽, 그다음 남부유럽 순이어야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일본과 한국, 무엇이 문제인가
일본이 지진나기 전 신용등급이 한 등급 강등됐다. 이는 복지국가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되었다. 일본 자민당 집권시엔 괜찮다가 민주당이 복지 한다더니 망하지 않더냐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신용등급 하락은 국가 부채가 너무 커서이다. GDP 200%로 엄청 높다. 이 부채가 민주당 집권 일이년 사이에 온 것은 불가능하다. 약간 늘었을 뿐 일 것이다. 대부분 국가부채는 50년 장기집권 자민당의 작품이다. 일본의 별명은 토건국가이다. 토건국가는 복지국가의 반대말이다. 댐 도로 다리 놓고, 과잉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일본은 토건족이 있고, 이들의 이익 위해 정부는 충실히 경제정책을 운영한다. 건설회사들과 유착된 정치가와 관료들이 있고 이들을 토건족이라고 한다. 한국은 판박이다. 한국에도 있다. 이들은 기회만 있으면 건설경기 부양을 주장한다. 우리도 50년을 그래왔다. 참여정부 때 이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어 잠시 주춤했지만 그전에는 토건족이 원하는 데로 투자가 이뤄졌다. 이명박 정부는 토건족을 위한 4대강 사업에 엄청난 예산낭비를 하고 있다. 토건국가를 탈피해 복지국가로 가야 하는데 이를 막는 게 4대강이다. 22조원를 썼고 2012년에 끝나는데 성과가 없을 것 같으니 지류를 정비해야 한다고 또 20조원을 쓰겠다고 나온다. 이건 다음 정부에 넘겨야 한다. 임기 끝나는 정부가 거대사업을 또 시작할 권리는 없다. 다음 정부에 물어보고 해야 한다. 사실 한다면 지류를 먼저 하는 게 맞다. 홍수는 4대강에서가 아니라 지류에서 난다. 애초부터 순서가 틀린 것이다. 한다면 하천 지류 정비부터 해야 했다.
세계에서 토건 비중 제일 높은 나라 1,2등은 한국과 일본이다. GDP 대비 건설업 비중이 한국은 18%, 일본은 17%이다. OECD 다른 국가들은 절반 정도이다. 우리는 과잉 비대한 토건업 가지고 있고. 이것을 줄여서 복지로, 보건, 의료, 교육, 보육으로 투자해야 정상국가로 간다. 하지만 이를 가로막고 토건비중을 줄이지 않겠다고 한다.
모처럼 참여정부가 복지지출을 늘이고 첫걸음 뗀 것이었는데, 그나마 다른 나라의 절반정도 간 것인데, 더 가야 하는데 못했다.
우리의 파이는 복지를 통해 커진다.
복지국가에 대해 우리나라 보수에서 끊임없이 하는 이야기가 복지국가 위기론이고 한 때 잘나갔지만 위기라고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복지 안하는 나라가 먼저 복지를 줄인다. 진짜 복지국가는 복지를 안 줄인다. 진짜 복지국가에 문제가 있고, 노동이나 창의력, 인센티브를 저해하는 게 있어 성장을 죽이고 효율 줄인다면 제일 많이 하는 북유럽이 후퇴를 제일 많이 해야 하는 게 맞는데, 그렇지 않고 여전히 복지국가로 건재하다. 보수당이 집권을 안했을까. 스웨덴의 보수당은 올해 재집권에 성공했다. 그러면 보수당이 집권했으니 복지가 후퇴해야 하지 않을까? 집권구호가 복지국가 더 잘하겠다고 약속했다. 91년 한 때 복지삭감을 보수당이 시도했지만 결과는 3년 뒤인 94년 선거에서 참패했다. 그런 쓰라린 경험이 있어서 안다. 보수당도 복지삭감 후퇴 공약을 하지 않는다.
보수 중에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복지는 작은 복지와 큰 복지가 있다는 것이다. 성장은 큰 복지라고 말한다. 이건 교묘한 신조어이다. 전에는 선성장 후분배로 세뇌를 했다. 그러다 복지국가 위기론을 말했다. 이제는 성장이 큰 복지고 복지는 작은 복지라고 한다. 이 말은 선성장 후분배를 교묘히 다르게 표현한 것으로 보여 진다. 성장하면 온 국민이 다 혜택을 받지만, 복지는 일부 가난한 계층만 혜택을 준다는 이야기는 그럴 듯 해 보인다. 따라서 큰 복지가 좋게 보이고 세뇌 받기 쉬운 셈이다. 복지국가는 거대한 세계화의 바람을 이겨낼 수 있을까?
세계화와 복지국가는 맞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세계화와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다면 임금이 싸야 투자가 들어오지만 복지국가는 세금도 많은데 어느 기업이 들어오려 하겠냐는 것이다. 세계화와 복지는 상극이란 것이다. 그럴 듯한데 실제 자료로 검증하면 맞지 않는다. 유력한 가설이 경주가설이다. 아래로 향하는 경주, 위가 아닌 밑으로 내려가는 경쟁이 있다. 외국자본의 유치를 위해 임금을 삭감하고 복지를 삭감한다. 그래서 외국자본에게 매력이 있는 투자처로 보이게 만든다. 그렇게 하다보면 복지국가가 안 된다는 것이 아래로의 경주가설이다. 그럴 듯한데 검증하니 맞지 않는다. 세계화 시대에도 복지국가가 후퇴한 것은 별로 없다. 후퇴한 것은 약한 복지국가이다. 강한 복지국가는 후퇴 안한다. 또 하나 외국자본이 어느 나라에 투자 하는가를 결정할 때 복지국가가 어느 정도 돼 있냐, 법인세가 높으냐 낮으냐, 이런 것은 별로 보지 않는다. 크게 중요한 요인이 못된다. 또 중요한 사실은 복지국가에 가보면 다국적 외국자본이 이들 복지국가에 투자하면 복지국가처럼 행동하고 저임금 저복지 3류 수준 나라에 투자하면 3류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높은 길과 낮은 길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세계화로 자본 이동이 활발하다고 복지국가가 쇠퇴할 이유가 없다. 검증하니 강한 복지국가는 전혀 후퇴가 없고, 약한 복지국가는 일부 후퇴했다. 높은 길은 더욱 높은 길, 낮은 길은 더욱 낮은 길로 간다. 한국은 전형적인 낮은 길을 걷고 있다. 밑으로의 경주가설에서 제일 타당한 가설은 수렵클럽 가설이다. 북유럽 복지국가는 강한 복지국가끼리 모이고 약한 복지국가는 원래 약한데다 더 약해지는 쪽으로 수렴돼 각각 자기들끼리 노는 클럽이 있다. 어느 클럽 속하는 게 중요하다. 그 클럽 중 복지국가는 복지국가 클럽끼리 놀면서 세계화의 영향을 안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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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의 인문학 |
<에로스의 인문학> 참고 도서 |
느티나무 |
2011.4.22 |
강의중에 언급되었던 여러 책이 있었습니다. 나중에라도 읽고 싶은 분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목록의 정리와 아래 글은 수강생 가운데 한분이 해주셨습니다. 감사...^^ 도 서 목 록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이고, 직관 없는 개념은 공허하다.” 칸트
“성 욕망이 개방되면 일하지 않고, 너무 행복하면 지배당하지 않으려 한다." 마르쿠제
<김융희 선생님>
1.『신통기』 - 헤시오도스/ 윤수종/ 중원문화사
2.『향연(사랑에 관하여)』 - 플라톤/ 박희영/ 문학과 지성사
3.『11분』 - 코엘류/이상해/문학동네
4.『성의 페르소나』 - 케밀 파야/ 이종인/ 예경
5.『팜므 파탈』 - 이명옥 /시공아트
6.『트리스탄 이졸데』 -조게프 베디에 /최복현/ 사군자
7.『아니무스와 아니마 』-에마 융/ 박해순/ 동문선
8.『디오니소스』 - 앤드루 달비 / 박윤정/ 랜덤하우스코리아
8-1.『에로스와 문명』 -마르쿠제/김인환/나남
<조광제 선생님 추천>
9.『오르가즘의 기능』 -빌헬름 라이히/윤수종/그린비
10.『히스테리연구』 -지그문트 프로이트 / 열린책들
11.『영원회기의 신화』 -미르치아 엘리아데/ 심재중/ 이학사
12.『우주와 역사: 영원회기의 신화』-엘리아데/정진홍/ 현대사상사
13.『존재의 심리학』 - 아브라함 메슬로/ 정태연, 노현정/ 문예
14.『지젝이 만난 레닌 』- 슬라예보 지젝, 블라드미르 일리치 레닌 / 정영목/ 교양인
15.『존재와무』- 장 폴 사르트르/정소정/동서문화사
16.『구토』-사르트르 /
17.『호모사케르』 - 조르조 아감벤/ 박진우/ 새물결
18.『성혁명』 - 빌헬름 라이히/윤수종/중원문화사
『성정치』 - 빌헬름 라이히/ 윤수종/중원문화사
19.『천국에서 지옥까지』 -헤이젤 로울리/ 김선형/ 해냄
20.『연인』 -마르크리트 뒤라스/김인환/민음
21.『 안티외디푸스』 - 들뢰즈, 가타리
22. 『죽음의 병기』- ?
추천: 욕망의 진화 -데이빗 부스/ 김용석/ 백년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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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에 대한 7가지 오해와 진실 |
복지국가는 도덕적 해이를 일으키는가?(복지국가 5강) |
느티나무 |
2011.4.21 |
3월 14일부터 [복지국가에 대한 7가지 오해와 진실] 강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강좌는 복지국가에 대한 막연한 오해나 두려움을 넘어, 복지국가를 통해 시민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복지국가의 구체적인 현실을 통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서구의 복지국가를 넘어서는 한국형 복지국가에 대한 시민의 상상력을 넓혀가고자 합니다. 5강의 후기는 자원활동가 김현민 님이 작성해 주셨습니다.
5강 복지국가가 도덕적 해이를 가져오는가 신광영 /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도덕적 해이는 마치 유령과도 같다. 실체도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가져다 준다.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 정책과 비용의 확대를 반대하게 하는 꽤 근거 있는 이유로 제시된다. 복지국가의 도덕적 해이 문제,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복지국가를 반대하는 근거로써의 도덕적 해이 첫 번째는 비용문제다.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이야기다. 특히 70년대 많이 제기됐다.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다른 것보다 특히 실업급여와 관련된 지출이 커지며 재정적 부담이 되는 상황이었다. 오늘날에는 노인 인구가 급증하면서 복지 재정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현재 고령화와 관련해 문제가 되는 나라는 네 명중 한 명이 65세 이상인 스웨덴과 일본이 있다. 하지만 같은 고령화 문제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문제는 일본이 안고 있다. 스웨덴은 큰 문제가 없다. 여기서 복지 비용 문제가 일상적인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번째는 도덕성의 문제이다. 오늘 이야기할 도덕적 해이와 직결되는 문제이다. 복지의존성이 커지면 일을 할 수 있음에도 일을 안한다는 것이다. 복지에 의존해 살아간다는 것이다. 또 가족의 해체를 이야기 한다. 가족이 알아서 해야 할 일을 국가가 개입해 의존하게 하면 가족구성원간 결속력과 책임의식이 약화되어 가족해체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이혼해도 빈곤하지 않으므로 이혼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 안한다는 논리이다. 도덕성을 가지고 복지국가를 비판하는 경우이다.
세 번째는 경영의 관점에서 복지국가를 이야기할 때 주로 관료화를 지적한다. 시장에서처럼 바로 수요공급의 원칙에 따라 복지서비스가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관료적인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서비스의 속도가 늦고 적재적소에 필요한 서비스를 공급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중앙집중화는 일선에서 필요한 복지서비스 실태를 모르고 책상에 앉아서 비효율적인 서비스를 한다는 지적이다.
마지막으로 저호응성이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다양한 형태로 분화되면서 복지수효가 다양화되면서 복지서비스의 내용이 달라져야 하는데 늦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 네 가지가 복지국가를 반대하는 핵심논리이다. 이번 강의는 두 번째 도덕적 해이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었다. 반복지 논리와 도덕적 해이, 반복지 논리는 19세기 말 자유주의 경제학에서 전형적으로 제기되어 온 것이다. 복지가 발전하기 이전의 논리이다. 주로 세금을 가지고 자유주의 경제학에서는 이야기를 한다. 세금을 많이 거두면 기업이 투자할 돈이 없다. 정부가 가져가면 그것은 비효율적인 자원이 된다. 그래서 세금을 가져가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본다. 더군다나 복지는 낭비라는 인식이다. 그리고 기업이 이윤으로 가져가면 투자를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또 높은 조세를 통한 복지가 이뤄지면 일을 안하려 하고 게을러지며 이에 따라 인적 투자 기피의 문제가 있다고 경제학자 린벡은 주장한다. 그 다음으로 복지혜택을 주면 저임금 노동을 기피한다는 주장이다. 일정 수준의 복지가 제공되니 임금이 크게 높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하지 않으려 하는 복지의존성의 강화로 이어진다는 게 경제학자 조지 길더의 주장이다. 이러한 논의는 대체적으로 70년대 말부터 80년대에 나온 논리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에도 논의되고 있다.
그 다음 다른 논리는 복지 개입을 하면 결국 공공부문이 확대되고, 확대되면 민간투자 자원을 흡수해 민간부분 노동력을 충분하게 공급하지 못하는 등 민간부문 노동력 고갈의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상당히 최근에 등장한 논의이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경제적으로는 복지국가가 여러 자원의 왜곡현상을 불러일으켜서 경제적으로 엉망인 상태로 될 수밖에 없다. 시장중심 경제시스템과 국가 재분배 경제시스템은 경제성과에서 큰 차이를 가져온다는 주장이다.
도덕적 해이에 대한 ‘그들’의 논리
앞에서 이야기한 것들을 통칭해서 한마디로 최근에 도덕적 해이라고 표현하는 것 같다. 도덕적 해이는 특수한 개념이다. 주로 보험 쪽에서 많이 사용하는 개념이다. 화재보험의 예를 들자. 화재보험을 드는 이유는 화재가 났을 때 그로 인한 피해를 완화하기 위한 하나의 자구책이다. 불의의 사고에 대비해 나름대로 대응하는 방식이 보험에 가입하는 것이다. 그런데 보험에 들면 가입자가 불조심을 덜한다는 것이다. 보험에 가입해 행동패턴이 부주의하게 달라지는 것을 도덕적 해이라고 불렀다.
이것을 복지와 관련시키면, 예를 들어 실업보험의 경우 실업을 해도 적극적으로 취업을 하려는 노력을 안하고 또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안 할 경우를 도덕적 해이라고 지목한다. 이 논리에 따르면 대체적으로 실업보험이 잘 된 나라에서 취업률이 낮고, 실업률이 높아야 정상이 된다. 그래서 복지가 발달된 나라는 국가 실업률이 높아지고 과도한 실업급여로 비효율적 경제자원에게 재정이 집중돼 비효율적인 경제체제가 된다. 경제성장이 안 이뤄지고 그럼에 따라 일자리는 더 적어지는, 경제적으로 악순환의 상황이 예상된다.
또 안 배운 사람과 배운 사림이 비슷하게 복지혜택을 받아 생활을 영유하면 굳이 공부를 안하려 할 것이고, 대학진학률은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 역시 도덕적 해이의 한 현상이란 설명이다. 때문에 복지국가에선 대학 진학률이 감소할 것이다. 또 당연히 실업급여에 의지해 실업률이 높아져도 일을 안하는 경제활동 참가율도 떨어진다. 다른 사회적 안전망이 있기에 이 또한 도덕적 해이로 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기업에선 여러 가지 교육을 받은 사람을 뽑으려 하는데 고등교육을 받지 않아 실질적으로 구인난이 발생하고 결국 실업률이 증가해 구인구직의 불균형 상태를 맞는다. 이런 등의 여러 가지 예측을 할 수 있다.
도덕적 해이의 문제, 그것이 정말 진실인가?
여러 자료를 비교해 보자, 앞서 말한 그들의 논리는 정말 진실일까?
2009년 OECD 국가별 대학진학률을 살펴보자. 주로 4년제 대학진학률을 보여준다. 한국은 71%로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폴란드가 83%, 스웨덴이 65%, 미국이 64%,이다. 주로 유럽의 경우 덴마크 59% 등 한국보다 낮은 편이다. 그러나 미국과 스웨덴, 덴마크가 질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일을 안해도, 고등교육을 받지 않아도 스웨덴, 덴마크는 살수 있는데 왜 그런 복지국가에서 대학진학률이 미국과 비슷할까.
보통 경제학에서는 인간을 이기적이라고 본다. 경제적 이해관계에서 선택하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자아실현 등은 경제학에서 중시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대학진학과 관련해서도 주로 비용을 가지고 설명하고 교육에 투자할 때 얼마의 수익률, 교육투자회수율 등을 가지고 고등교육을 받는 사람들의 선택을 설명하고자 한다. 그런데 그런 부분도 있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것, 자기 잠재능력을 발휘하고자 한다. 사회현상에 대해 경제학은 제한적인 설명력을 가진다. 그런데 많은 복지국가 비판담론은 경제학적 가정과 인간관에 기초해 현실과 다른 설명을 한다. 두 번째는 2008년 OECD 국가 취업률이다. 도덕적 해이를 강조하는 입장에서 보면 복지국가는 일 안해도 살 수 있는데 굳이 취업률이 높겠는가, 당연히 사람들이 일을 안하려 하고 취업률도 낮을 것이다, 라고 생각된다. OECD 국가 15~64세 평균 68%가 일을 한다. 미국이 71.8%, 영국이 72.3%, 스웨덴이 78.6%로 상당히 높은 비율이다. 한국은 63.9%이다. 덴마크는 거의 80%대에 이르고 있다. 사실 미국보다 너 높은 비율로 복지국가들의 취업률이 높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전통적인 방식의 설명은 교육받는 사람이 많으면 취업률이 떨어진다. 교육받는 비중이 커지면 일하는 사람 비중은 떨어진다는 방식으로 이런 것을 설명하려 했다. 미국도 대학진학률이 높고 한국, 일본도 높다는 부연설명이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그러한 차이는 7~8% 취업률 차이를 만들지 못한다. 2~3%는 가능하지만. 이런 점에서 복지국가가 발전하면 도덕적 해이가 나타나고 일을 안할 것이다, 란 주장은 경험적 현상과 맞지 않다. 물론 취업률이 다 말해주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다음으로 2000~2007년 OECD 국가 고용률의 변화를 살펴보자. 스위스, 노르웨이, 덴마크 등이 증가세를 보였고 이탈리아는 하락했다. 대체적으로 늘어가는 가운데 미국은 줄었다. 전반적으로 일하는 사람의 비율이 국가마다 늘었는데 미국은 반대로 감소 추세이다. 미국의 고용률과 복지국가로 불리는 나라의 고용률 차이도 있지만 추세의 차이도 있다. 미국은 사실 오리혀 떨어지는 국가로 도덕적 해이 논의와 반대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 문제는 두 가지를 보여준다. 하나는 도덕적 해이 현상이 복지국가와 관련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미국의 고용율 하락세는 경기와 관련돼 있다. 도덕적 해이라는 한가지 변수로 설명이 되는 것이 아니라 고용의 문제는 경제사이클에 큰 영향을 받는다. 이 시기 전세계적으로 경기불황을 준비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자동화 등도 고용률에 변화를 촉발시킨다.
여기에서 두 번째 문제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50년대~90년대 초는 복지국가가 가장 잘 발달된 시기이다. 유럽에서 복지국가가 완성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유럽의 경우 이른바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이뤄진 역사적으로 유일한 시기이다. 전쟁이 없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복지국가는 이 시기에 안착했다. 50년대~70년대 실업률이 대체적으로 낮았다. 덴마크는 2.6%, 프랑스는 2.0% 수준이었다. 스웨덴 경우 거의 완전고용이었다. 직장을 구하기 위해 실업률에 포함된 마찰적 실업 이외에는 구조적 실업이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이에 비해 이 시기 미국은 4.5%로 상당히 높은 실업률을 보였다. 그러다 1974년, 1979년 두차례 걸쳐 석유파동이 일어났다. 산유국들이 이스라엘에 대항해 자원을 무기삼아 유가가 4배가 올랐다.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 경제위기 이후 실업률이 높아졌다. 덴마크도 7.6%에 이르렀다. 많은 나라에서 7%대 실업률을 보여 전후 최초의 심각한 경제위기를 맞이했다.
이 경제위기를 둘러싸고 새로운 정치적 변화가 일어났다. 영국에서는 보수당의 마거릿 대처 총리 후보가 경제위기를 빌미로 복지병을 영국병이라고 선언하고 선거에 나섰다. 노동자파업과 더불어 노동당 정책을 비판하는 정치담론을 제시한 것이다. 그 결과 신보수주의를 내세우는 정치집단이 등장한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민주당 카터 정부를 향해 공화당 레이건 후보는 복지지출이 많아서 일을 안하고 복지에만 의존하고, 그래서 실업률이 높다고 공격했다. 반복지, 감세반대를 앞세워 복지정책을 만성적 빈곤의 덫에 빠트리는 정책이라는 정치적 수사를 만들어 민주당 정책을 공격했다. 그러나 사실 이 시기 핵심문제는 앞서 말한 석유파동에 따른 경기불황이었다. 외부적 충격이 팩트였지만 그럼에도 국내 정치에서 집권당을 공격하는 정치담론으로 만들어져 과학적으로 타당한지는 검증되지 못한 채 선거에 이기기 위한 공세가 이뤄졌다. 그 바탕에는 신보수주의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내세우는 것은 신자유주의였다. 신자유주의는 복지축소, 감세확대를 이야기 한다.
이 시기 스웨덴의 실업률은 2.3%로 상대적으로 양호한 낮은 실업률을 유지했다. 신자유주의적 견해에 따르면 스웨덴의 실업률은 매우 높아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정치 공세는 과학적 근거에 따르기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정치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등장했다. 그것은 영국과 미국에서 성공을 했다. 많은 사람들은 경제위기의 이유는 모른 채 눈에 보이는 정치공세에 표를 던졌다. 당장 생활이 어려워 졌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도덕적 해이 문제
한국사회에서 복지문제를 이야기하는 경제학자 중 구체적 통계를 모르고 한국의 공공부문은 크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이 이미 작은 정부인 줄은 모른다. 더 이상 줄이려면 경찰을 줄여야 할 상황일 정도로 한국의 정부는 작은 정부이다. 한국은 고용률도 낮고 실업률도 낮은 조금 이상한 경우이다. 남성보다 여성에서 고용문제가 집중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한국과 유럽 국가들의 결정적인 차이가 여성이다. OECD 평균 56.7%의 경제참여가능 여성인구가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이보다 낮은 나라는 가톨릭 국가인 독일 정도이다. 우리나라는 조금 특수한 맥락에서 이야기 되어야 한다. 여성 고용문제와 정부의 규모들을 배제한 체 단순 비교를 통해 도덕적 해이의 문제를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인간관이란 노동기피현상이 일어날 것이라는 게 핵심이다. 그런데 왜 복지국가들에서는 그런 행동 방식이 보이지 않을까. 스웨덴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정립된 핵심적인 정책원리 중 하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것은 막는 것이 노동시장정책의 중요한 이념이다. 그래서 스웨덴은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근속연수가 짧다. 다른 유럽국가들에 비해 자주 일자리를 옮긴다는 이야기다. 복지라는 것이 심리적 차원에서 먹고 살기 위한 호구지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을 국가가 도와주는 것을 노동시장 정책의 중요한 원리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는 이른바 산업민주주의 문제가 있다. 이것이 70년대 스웨덴에서는 큰 문제였다. 노조가 경영에 참여를 요구했고, 적극적인 방식으로 입법화했다. 그래서 경영참여라는 것이 제도화됐다. 노동자 대표가 중요한 기업의 경영과 관련된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산업민주주의 문제는 우리 사회에선 거의 이야기가 안된다. 그런데 이 일 자체가 권위주의적 기업 조직 체제 아래 일방적인 명령으로 이뤄지는 기업조직에서 일이 즐겁지 않은 상황을 개선시킨다.
그런 점에서 일이라는 게 돈만 가지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자기 자신의 인격이 걸린 문제이고, 대접받고 환경을 만들고 궁극적으로 자기실현이 된다면 일을 기피하고 복지의존의 방식을 선택하지 않는다. 남성이나 여성이나 적극적으로 일에 참여하려하고 재교육을 통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 한다. 그러다 보니 실업률이 낮은 상황들을 보여주고 있다. 도덕적 해이는 끊임없이 지적되는 문제이지만 실제로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도덕적 해이 문제로 복지국가를 지적하는 논리는 현실을 모르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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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북아프리카 민주화 혁명의 오늘과 내일 |
중동 현대사의 두 키워드 : 미국과 석유 |
느티나무 |
2011.4.21 |
[강좌후기] 중동 북아프리카 현대사의 두 개의 키워드 - 석유와 미국
중동 북아프리카 민주화 혁명의 오늘과 내일
4월 12일, ‘중동 북아프리카 민주화 혁명의 오늘과 내일’의 두 번째 시간으로 ‘중동 북아프리카 현대사의 두
개의 키워드-석유와 미국’이라는 주제로 강의가 열렸습니다. 특별히 이번 주는 KBS <세계는 지금>의 안주식 PD가
리비아 취재 현장을 생생히 전달해 주었습니다. 곧 이어 구정은 기자가 중동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석유와 미국이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를 설명했습니다.
서방공습의 윤리적 문제에 대해: 안주식 PD
먼
저 취재경로에 대해 얘기하겠다. 리비아는 튀니지와 이집트 사이에 있다. 리비아를 중간으로 나누면 서쪽으로 트리폴리, 동쪽에 내가
다녀온 벵가지가 있다. 국토면적은 큰데 사람이 별로 없고 해변에만 인구가 밀집해 있다. 또 트리폴리를 중심으로 카다피가 머물며
정부군을 주군시키고 있다. 벵가지를 중심으로 반군이 국가위원회 임시정부를 만들었다. 동서를 가르는 지역에는 상호공방이 이뤄지고
있다.
1. 왜 벵가지가 반군의 중심이 됐을까?
리
비아의 동부와 서부의 부족은 다르다. 카다피는 동부 부족을 중심으로 특혜를 주어 온 반면, 서부 부족은 박해를 받아왔다. 벵가지는
왕정 때 도시가 부흥했던 곳이며 반카다피 성향이 짙다. 이 곳 벵가지에서 처음 시위가 벌어졌다. 광장에서 데모가 시작되고 바로
무력투쟁으로 발전했다. 튀니지, 이집트와 다른 것은 군부의 선택이었다. 리비아 군은 철저하게 카다피에 종속되어 있고 용병이
바로 시위를 진압하면서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벵가지 시민이 무기창고를 급습해 무장을 하고 트리폴리까지 진격했다. 내가 리비아에
들어갔을 때는 카다피군이 재정비하여 벵가지 반군을 공격하기 시작했을 때이다.
2. 어떻게 분쟁지역을 취재하나
저
널리스트들 사이에 ‘국경이 열렸다’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것은 저널리스트들이 한 명이 들어가서 안 죽었다는 얘기다. 최초로
들어간 사람이 CNN기자다. 접경지역에 있는 사람이 차량을 제공하고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장사를 하게 된다. 그 일대에
통역해주는 사람들로 난전이 이뤄진다. 시장이 형성되는 셈이다. 주로 코디네이터가 생겨 차량을 제공해준다.
3. 왜 싸우나?
대부
분 반군은 비조직적이고 비계획적이었다. 쉽게 정리하면 ‘카다피가 부정부패가 심한데 왜 나한테는 한푼도 돌아오지 않느냐. 그런데 왜
때리기까지 하느냐?’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경제가 어려워서 무언가를 해보려하면 관료주의가 극심해서 뭘 못하게 하고, 억울하다고
한 마디 하면 때리는 것에 대한 반감이 심하다.
반군에게는 정부군이 진격해왔을 때 물자를 수송하고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 석유항을 점령하는 것이 중요했다. 즉 아즈다비아 점령이 중요했다. 반군 입장에서 아즈다비아가 함락되면 벵가지가
포위되고, 대규모 학살이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내가 들어간 후에 아즈다비아가 함락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반군이 미디어 센터를 제공해줬는데 거기서 빠져나가지 않으면 죽을
상황이었다. 저널리스트로서 어디까지 취재를 하는 것이 맞는지를 고민하기도 했다. 나는 일단 나가기로 했다. 거기에 알자지라 방송과
CNN만이 남아서 취재를 계속했다.
4. 비행금지구역과 개입의 문제
아
즈다비아 함락 다음 날 비행금지구역이 설정됐다. 반군은 무기고에서 빼온 총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상황이었고 정부군의 무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비행금지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았으면 반군은 다 죽을 수도 있었다. 시민도 비행금지구역이 설정되길
원했다. 서방은 근접 포격을 하고 대규모 군사시설은 미사일로 폭격했고, 벵가지 주변도 폭격했다.
여기에서
R2P(Responsibility to Protect 국민보호책임)라는 개념을 두고 논란이 있다. 2005년에 유엔정상회의에서
채택된 이 개념은 코소보와 르완다 대학살이 재현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미국이 이라크에 개입할 때는 ’인도적 개입‘이라는
용어를 썼다. 유엔은 '인도적 개입'이라는 용어가 오염되어서 새로운 뭔가가 필요했다. R2P원칙의 적용은 내전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 내전이면 서로 무장 세력끼리의 싸움이므로 외부에서 개입할 수 없다. 리비아의 무장반군은 시민이냐 아니냐가 논란이
됐다. 그러나 리비아의 반군은 제대로 된 조직체계가 없는 시민이다. 현장에서도 느꼈지만 명백히 시민이라는 판단이 든다.
5. 주권을 침해했나 안했나
80
년 광주항쟁과 북한 사례를 비교해 볼 수도 있다. 광주와 북한문제 사이에 리비아 문제가 있다. 광주항쟁 당시 유엔이나 미국이
한국정부에 경제제재를 했다면 정부가 시민을 공격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카다피가 유엔이나 미국의 경제제재에 대해 콧방귀를 뀔
인물이라는건 국제사회가 다 알고 있었다. R2P는 시민이 요구해야 한다. 북한은 시민이 요구하지 않으므로 적용되지 않는다.
북한의 민주화를 이루려면 북한 내부에서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집단이 있어야 한다. 리비아에서는 시민의 목숨을 구했으니 리비아에서의
R2P는 정당하다고 본다.
중동 북아프리카 역사와 석유와 미국에 대해: 구정은 기자
오
늘은 중동의 역사를 살펴보겠다. 그러나 20세기에 한정해서 설명하겠다. 16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오스만쿠르크가 이 일대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었다. 20세기는 이것이 쪼개져 나가는 과정이다. 그 사이 서구열강들이 식민지를 차지하고 다시 독립하면서
중동지역의 20세기 역사가 만들어졌다. 다음은 중동 북아프리카 지역 역사에 핵심이 되는 사실이다.
1. 아랍의 국가수립은 굴절되어 독재로 이어졌다. 2. 북아프리카는 반제국주의 투쟁을 해서 힘들게 독립했다. 3.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 이 지역 역사를 꼬이게 했다. 4. 이란은 맥락이 다르다 5. 현재 큰 국가인 사우디 아라비아는 20세기 역사에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
1. 중동의 역사
1914년 1차 대전이 일어났는데 모두가 오스만 땅을 나눠서 땅따먹기를 했다. 터키는 거대제국이었는데 입장이 바뀌었고 1915년에 오스만이 무력화됐다. 2차 대전 후 카다피가 리비아를 집권하기까지 미국이 점령국 행세를 했다.
중동은 나세르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이 지역의 영웅이다. 카다피도 '나세르 키즈'를 자칭할 만큼이다. 나세르의 범아랍사회주의가 그에게도 영향을 크게 미쳤다.
1960년대는 독재체제의 틀이 만들어졌다. 이라크에서는 알 바크르 대통령이 취임하고 2년 후에 사담 후세인이 취임했다.
1969년에는 카디피가 리비아를 장악하고 그의 독재체제는 석유 민족주의로 간다. 1970년에는 이집트의 나세르가 사망하고 알
사다트 대통령이 당선됐다. 시리아에서는 알 아사드가 쿠테타로 집권했다. 10년 동안 아랍공화국으로 합쳐졌다가 다시 갈라지고
1971년에는 아랍에미레이트연합이 출범했다. 1973년에는 중동전쟁이 발생했고 1979년에 아라크 후세인이 대통령이 되고 몰락하기
전까지 자기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미국과 거래했다. 이란의 이슬람 혁명이 미국에 영향을 끼쳤다.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을 보면 냉전시대에 이란이 미국에 미친 영향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련의 아프간 침공도 중요하다.
2. 중동에 대한 미국의 개입과 석유
중
동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이해하려면 석유의 특징을 이해해야 한다. 석탄, 구리, 은, 금은 전세계적으로 나온다. 그러나 석유는
1)지리적 편중성이 강하다. 2)또 채굴 비용이 커서 대규모로 투자를 해야 생산할 수 있다. 3) 석유는 (생산) 탄력이 없어
독식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미국이 석유 때문에 중동지역의 독재정권을 지지해 주었고 이 지역이 민주화되는데 걸림돌이 되었다.
석유산업을 국유화한 것이 이 지역의 민족주의로 이어졌다.
이라크 전쟁의 모든 이유가 석유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일부는 석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노암 촘스키가 지적했듯이
미국의 중동 석유 이권이 유럽과 아시아의 재정을 떠받치는 역할을 한다. 이는 냉전 이래 미국의 세계패권전략의 일환이다.
중동 독재국가는 세금이 없고, 에너지가 무상이고 교육도 무상이다. 모두 석유 수입에 기반하고 있다. 중동 독재자들은
시민들에게는 반발이 없을 정도로만 최소한의 석유 이익을 나눠주고 나머지는 자기의 이익으로 챙긴다. 석유수출은 시민들에게 최소한의
당근이기는 하지만 중동나라들은 자원을 팔아 기득권의 이익을 챙기고 산업은 정체된 ‘자원의 덫’에 걸리게 되었다.
Q & A 안주식 PD.구정은 기자와 수강생과의 대화
Q. 리비아에서 반군과 시민군은 어떻게 구분하나?
A. 안주식 : 준정부 체제를 갖추느냐 안 갖추느냐가 관건이다. 리비아 사태는 중동전문가 누구도 예측 못 한 형태로 '조직이
없는 운동'이다. 10여 년 전부터 재야단체가 꾸준히 활동은 했다. 대표적으로 이슬람 브라더스(형제단)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반정부적 행동을 할 역량을 갖추지는 못했다.
임시정부인 국가위원회도 체계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일부 흥분한 시민이 친카다피 측을 축출해서 고문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국가위원회가 주도한건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국가위원회가 통제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리비아 반군은 군사체계를 갖지
않고 시민연합으로 움직이고 있다. 앞으로가 문제다. 리비아 반군세력에서 유일하게 무기를 쓸 줄 아는 집단이 이슬라미스트들이다.
정치체제가 와해된 상황에서 그나마 무장투쟁은 극단주의자들인 것이다. 알카에다와 비슷한 일부세력들이 국가위원회의 무장 군사훈련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앞으로 체계적으로 무장집단화될 가능성이 있고 그때는 내전이라 불러야 한다. 그렇게 되면
국제사회의 개입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그렇지 않다.
Q. 리비아 시위대는 주로 남자인데 여자들의 역할이 있었나? 여성의 지위는 어떻게 될 것인가?
A. 안주식 : 중동지역은 내외를 많이 한다. 물론 참여가 있었고 여성들만 따로 모여있기도 하고 남성들이 보호를 하기 위해 둘러싸고 있어서 언론에 잘 보여지지 않은 측면도 있다. 벵
가지는 젊은 청년 위주다. 이집트는 투표할 때도 남녀 따로 한다. 현재 중동은 베이비붐 세대인 30세 이하가 60%로 젊은 층이
높다. 어느 전문가는 ‘이들이 데모할 나이가 되어서 이번 시위가 일어났다’고 한다. 이들 가운데는 직업 없이 30세가 된 사람이
많다. 리비아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비해서 국제화 수준이 높고 일반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 수준이 높다. 여성들의 자각도 높았다.
구정은: 리비아는 굉장히 보수적이어서 여성의 역할이 다른 나라보다 적다. 가부장제가 뿌리 깊어서 거의 여성이 안 보였다.
이집트는 1920년부터 여성운동이 활발해 최초 여성연맹이 있었는데 근래에 이슬람화가 진행되면서 사라졌다. 사우디에서는
이슬람주의자들이 돈을 주고 배우, 밸리댄서에게 히잡을 쓰고 텔레비전에 나와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하게 하고 있다. 최근에는 여성에
대한 억압이 심해졌다. 페미니스트들을 탄압하고 이슬람식으로 행동하게 한다. 이란에서 여성에 대한 억압사례들이 많지만 1997년에
부통령이 나오는 등 많은 여성의 활동이 있었다. 이란의 혁명은 여성이 이끄는 운동이라고 한다.
이번 시위를 통해 여성의 지위가 높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혁명을 주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직화된 세력이 이슬람조직세력이다. 여성의 입장에서는 독이 될지 약이 될지 모르겠다. 미완의 혁명이 될 가능성이 높다.
Q. 반군이 조직화가 되지 않았을 때 노동조합이 시민진영이었을 것 같은데 어떤가?
A. 구정은: 조직화되어 움직이면 정치다. 조직화가 되지 않은 움직임이기에 혁명이다. 무슬림형제단은 1920년 대에 만들어진 근대 최초의 조직으로 이번 시위에서도 조직적으로 움직인 면이 있다. 조직되어 움직이면 혁명이 아니다.
안주식 : 이집트 민주화 시위를 봤을 때 군부가 중심이었다. 튀니지도 마찬가지였다. 이집트의 경우는 군부가 무바라크를 버린
형국이다. 이집트는 리비아와 다르게 군부엘리트 체제가 정치의 상당부분을 차지해 왔고 이를 계속 보장받고 있다. 대신 무바라크를
물리쳐 주겠다는 약속이 정치지도부 사이에 있었다. 이집트에서는 제2의 무바라크가 군부에서 나올 것이다. 리비아는 노동조합같은
조직력을 갖고 있는 세력이 없다. 산업구조가 달라 노동자 조직이 있을 수 없다.
Q. 중동지역 젊은이의 시위가 일자리와 관련이 있나?
A. 구정은 : 88만원은 우리 산업구조의 문제이다. 중동은 근대산업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와는 다르다. 경제구조
자체가 직업을 갖기 힘들게 되어 있다. 공무원이 제일 많다. 석유를 팔아서 나눠주는 구조로 되어 있어 공장은 아예 없다. 카다피가
일자리를 만들어 나눠줬지만 어느 순간까지만 유지되고 인구는 폭발하는 시점에 도달했다.
안주식 : 중동의 산업은 역사가 다르다. 중동은 갑자기 돈이 생기고 인구가 늘어났지 그 전에는 인구가 없다. 교역만 있지
산업을 할 수 있는 지역이 아니다. 중동은 애당초 다르다. 노동집약 농업이 가능했던 데가 아니다. 유목민이 교역하거나 유목 활동을
통해서 먹고 살았다. 최근에 석유 때문에 인구가 폭발했고, 또한 인구의 절반이 외국인이다.
Q. 중동지역에서 정치와 종교지도자의 관계는 어떠한가?
A. 구정은 : 근대국가는 종교와 정치를 분리하면서 탄생했다. 그러나 이슬람 종교 자체가 독특한 면이 있다. 무슬람형제단은
불법이었는데 살아남았다. 종교주의자들이 학교와 병원을 꾸리기 때문이다. 탈레반도 학교와 병원을 쥐고 있다. 그래서 이들의 뿌리가
매우 광범위하고 깊다. 중동에서 종교는 따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구조이다. 종교는 하나의 정치 주체로 중동 사회에 들어와
있다. 그 속에서 온건주의자와 극단주의자의 성향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지역의 민주화는 종교와 같이 가야 한다. 아랍권에서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강좌 기록 및 후기: 국제연대위원회 인턴 장유진 |
복지국가에 대한 7가지 오해와 진실 |
복지국가는 쇠퇴하고 있는가?(복지국가 4강) |
느티나무 |
2011.4.14 |
3월 14일부터 [복지국가에 대한 7가지 오해와 진실] 강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강좌는 복지국가에 대한 막연한 오해나 두려움을 넘어, 복지국가를 통해 시민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복지국가의 구체적인 현실을 통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서구의 복지국가를 넘어서는 한국형 복지국가에 대한 시민의 상상력을 넓혀가고자 합니다. 4강의 후기는 자원활동가 김현민 님이 작성해 주셨습니다.
복지국가는 쇠퇴하고 있는가? 강의 : 양재진 교수(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이번 복지국가 강좌 강사진에 행정학 전공 교수가 있는 것을 보고 순간 의아했다. 하지만 그 마음은 금새 반가운 마음으로 변했다. 복지는 다양한 층위에서 또 동시에 총체적으로 논의되어야 하는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자리를 쉽게 접할 수 없었다. 느티나무 강좌에 대한 고마운 마음까지 들었다. 기쁜 기대로 강좌를 시작했다. 복지국가 쇠퇴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
복지국가 쇠퇴론은 역사적으로 다양한 관점에서 제기돼온 문제다. 세 가지 정도의 주장이 있다.
첫 번째 이야기. 우선 네오맑시스트들의 주장이다. 60~70년대 제임스 오코너, 클라우스 오페 등의 학자들은은 복지국가는 자본주의와 함께 망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에 따르면,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국가는 계급간 모순을 감추기 위해 정당화를 추구하는데, 복지가 가장 유용한 수단이라고 지목했다. 그런데 복지는 기본적으로 투자가 아닌 소비이므로 자본주의 체제 모순이 깊어 감에 따라 정당화 비용도 늘어 생산 쪽에 투자되어야 할 자원이 자꾸 소비적인 복지로 바뀔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체제 전반의 이윤율이 감소되며 정당화 비용은 상대적으로 더 크게 성장하게 되면 결국 악순환을 거쳐 복지국가 역시 종말을 고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지난 1965년부터 OECD 국가의 경제규모와 사회지출 규모의 증가를 비교해 보면 자본주의 국가들이 경제발전 이상으로 복지에 돈을 쓰고 있다. 네오맑시스트들의 예상과 달리 자본주의 국가가 아닌 소련 사회주의가 무너져도 복지국가 체제를 자본주의 국가들은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별 공공사회지출 변화 추이를 살펴보더라도 서구 복지국가의 재정적 위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네오맑시스트의 예견이 현실화 되고 있지 않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진 않다.
오히려 재정적 위기에 시달리는 나라는 복지국가의 발달이 뒤쳐진 일본, 미국 등이다. 대륙형 또는 조합주의 복지국가 모델인 독일, 라틴 복지국가 대표모델인 이탈리아 등도 마찬가지다.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 모델이라는 스웨덴, 덴마크는 오히려 재정적으로 안정됐다.
국내에서는 복지가 재정위기를 불러온다고 하는데, 따져봐야겠지만 복지국가의 재정적 위기는 현실에선 부합하지 않고 있다. 복지국가의 대표격인 덴마크와 스웨덴 등은 가장 재정적으로 안정돼 있는데, 이것을 보면 복지지출이 자본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네오맑시스트의 주장과 다르게 복지 잘하는 나라가 재정적으로도 안정돼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두 번째 이야기. 공공선택론자들의 큰 정부 실패론이다. 우파지식인들인 공공선택론자들의 비판은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관료들의 자기이익극대화이다. 관료들은 이익집단처럼 자기 조직의 예산증대와 조직확대에만 관심을 가지므로 복지분야를 포함해 정부 규모가 커지고 자원의 비효율적 분배가 생산부문을 압도할 것이란 이야기다. 다시 말해 자기 조직이 생기면 되도록 조직의 일감을 줄어들지 않게 유지하려 하고, 예산을 더 많이 확보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복지국가의 성장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그 다음 거버먼스 오버로드(Government Overload)이다. 과부하란 이야기인데, 민주주의는 과도한 기대를 시민들에게 부여해 정치가들은 지키지 못할, 지켜서는 안될 복지공약을 남발한다는 것이다. 결국 자기 무게에 짓눌려 파산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어 관료제의 병폐를 지목했다. 조직이기에 큰 정부가 되지 않고 복지생산과 전달을 위해 큰정부가 되었다 하더라도 숙명적으로 관료제와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복지국가의 몸은 커졌지만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거대한 조직만 군림할 것이라는 비판이다. 이는 좌파운동가/지식인들도 공감하는 내용이다. 스웨덴도 80년대 들어 사회서비스 전달체계의 지방분권화와 민영화, 주민참여 등의 개혁에 나선 바 있다.
위의 세 가지 논리로 보수적인 우파 지식인/경제학자/공공선택론자들은 복지국가 성장을 비판한다. 그들의 해법은 간단하다 작은 정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나서서 복지를 하지말고 민영화 혹은 위탁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작은 정부는 관료주의의 병폐도 없을 뿐 아니라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시민사회가 잘 알아서 할 것이란 설명이다.
하지만 시장의 실패가 엄연히 존재했고, 시민사회 역시 결국 사익의 총집합이란 점을 감안하면 자율적 역량을 과신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사익의 충돌장인 시민사회가 언제나 지고의 선일 수만은 없다. 작은 정부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러면 무조건 큰 정부로 할 것인가? 이것도 아닐 것이다. 해답으로는 말하기만 쉬운 이야기일지 몰라도 능력 있고 신뢰받는 제대로 된 큰 정부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실증적으로도 중요한 결과를 가져왔다.
세 번째 이야기. 그 다음은 세계화와 복지국가의 위기론이다. 세계화로 인한 자본의 이동 때문에 국가와 노동에 비해 협상력이 월등히 높아짐에 따라 국가가 친자본적인 조치들을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 결과 조세하향 경쟁 등으로 복지국가의 재정적 기초가 무너지고 빈부격차가 커지며, 민영화와 노동시장유연화 조치 등으로 조직노동의 기반이 약화되고 좌파정당이 쇠약해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결국 복지국가의 축소와 영미형으로의 수렴을 예견케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말한 것처럼 많은 나라들이 법인세와 소득세의 한계소득세율이 낮아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가의 조세추출능력이 쇠퇴하고 있다는 것은 틀린 말이다. 복지국가인 스웨덴의 경우 1991년 세제개혁을 통해 개인소득세 최고세율 72%를 50%로 인하했다. 법인세는 57%에서 30%로 인하했다. 미국은 개인소득세 최고세율이 1960년 91%였던 것이 레이건 집권 후 감세정책의 시행으로 1980년 70%, 1986년 50%, 최저 28%로 인하됐다가 1996년 39.6%로 재조정했다. 세계화론자들 말이 맞아 보인다.
그런데 모든 나라가 그렇다고 재정기반이 약화되진 않았다. 우리나라의 윤증현 장관이 가끔 하는 말이 낮은 세율, 넓은 조세기반 실천인데, 세율 낮춰도 각종 공제제도 없애고, 그 다음 직접세 부분을 낮춘다. 그런 식으로 하향평준화했다. 그리고 조세부담율과 사회보험료 걷는 것. 지디피 대비를 보면 주요국가들 중 높은 나라는 높고, 낮은 나라는 계속 낮다. 그렇다고 해서 하향은 아니고, 세계화론자 주장처럼 세율이 낮아졌지만 조세추출능력은 그렇게 약화되지 않았다. 특히 북유럽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올라가고 있다. 재정문제가 숙명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다음으로 신자유주의자/세계화론자들은 재정과 함께 노동의 약화를 지목한다. 그러나 이것이 곧 좌파정당의 약화, 그리고 복지국가에 대한 지지의 약화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조합주의적 사회적 타협의 제도화, 여성/노인 등 신규 복지국가 지지자들의 증가, 보편주의 복지국가에서는 중산층의 지지 상승, 시장주의에 따라 발생하는 취약계층의 증가로 복지의 잠재적 지지자는 늘어갈 수 있다. 네덜란드의 바세나 협약이나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결정, 국민연금위원회 등의 노조 참여 등을 보자. 유럽은 특히 각 분야에서 제도화했다. 조직노동의 숫자는 줄어들어도 이미 제도적으로 노동자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시스템이 갖춰진 것이다. 복지국가의 수혜자는 이제 여성/노인이 많다. 연금, 의료, 각종 보험, 요양서비스 등을 받는 노인인구가 늘면 늘수록 유권자의 수가 늘어나는 것이다. 이들이 노동자를 대신하는 굳건한 지지자가 된다. 또한 여성 등 조직노동이 빠진 자리를 다른 지지자들이 대신하는 것이다. 보편주의 복지국가는 중산층의 지지를 이끈다. 그래서 좌파정당이 아닌 우파정당이 집권해도 그들의 모토가 복지일 수 밖에 없다. 스웨덴 사민당이 두 번 연속 총선에서 졌다. 그래도 승리한 보수당이 복지를 없앤다고 절대 내세우지 않는다. 우리가 더 효율적이다, 더 많은 복지 선택권과 질을 높이겠다고 주장한다. 그 다음 또 한 논리는 신자유주의 노동시장 유연화로 자본주의 경제의 피해 받는 이들 늘어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늘고 취약계층이 복지의 잠재적 지지자가 되므로 노조 조직율이 약화돼도 복지국가 지지가 약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복지국가의 바탕은 무엇이어야 할까?
로드스타인이라는 스웨덴 복지국가 연구자의 자료에 따르면, 스웨덴 복지국가가 커지게 된 것은 단순이 노동자의 힘, 사민당의 힘이 세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은 정부가 신뢰를 받을 정도로 일을 잘하고 깨끗했기 때문이다. 공공선택론자들 이야기한 문제의 정부가 아닌 일 잘하는 정부는 사민주의 국가에서 많았다. 이런 정부가 서 있어야 시민들이 세금을 믿고 납부한다. 그 기반으로 복지국가가 성장한다. 복지국가의 성공 요인은 믿을 수 있고, 일 잘하고, 책임 있는 정부다. 그걸 만들어야 한다.
정부의 크기를 가지고 복지국가의 성패를 예단할 수 없다. 정부의 질이 중요하다. 지속적인 정부개혁을 통해 정책결정의 민주화, 행정의 효율화, 재정운용의 투명성을 높여나가 국민의 신뢰를 획득하는 게 중요하다. 정부의 질이 높은 나라일수록 같은 좌파정당이나 노동자의 힘이 세더라도 복지수준이 높게 형성돼 있다. 믿을 수 있는 정부를 가지는 것도 복지국가 건설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다시 공공선택론자들의 문제제기를 보자. 마치 모든 정부와 관료제는 조직의 논리 때문에 큰 정부의 실패를 불러오는 것처럼 이야기 하지만 결과는 아니었다. 사민주의 국가 정부들은 국민의 신뢰를 받았다. 큰 정부가 다 잘못된 것은 아니다.
우리의 길은 무엇일까? 시장과 시민사회 다 맡길 수 없으므로 정부가 역할 해야 하고 그 정부에 무조건 맡기는 것이 아니라 효율성과 투명성을 가진 정부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좌파정당 지지도 변화추이를 보면 세계화가 진전된 80~2000년대 일본은 좌파정당 지지가 뚝 떨이지고 이탈리아도 마찬가지다. 다른 주요 나라, 사민주의 국가나 독일을 보면 세계화론자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좌파정당이 뚝 떨어지고 그런 것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90년대 좌파정당이 제3의 길을 선언하며 과거 모델보다 신자유주의 우파 논리를 더 많이 받아 안는 새로운 사민주의를 앞세웠다. 그 자체가 개량이다 비판도 하지만 세계화론자 말처럼 좌파의 종말은 아니다. 의석 점유율도 유지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네오맑시스트나 보수우파경제학자, 세계화론자 세 주장 들어보면 그들의 주장대로 현실은 가고 있지 않다. 일부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경향이 있지만 그들의 복지국가 쇠퇴론은 이론적 비약이다.
한국이 가야할 방향 지금까지 논의를 바탕으로 한국은 어떤 복지를 지향할 것인가, 고민을 해야 할 때다. 물론 쇠퇴하지 않는 복지국가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2007년 기준 OECD 국가 공공사회지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분야를 살펴보면 연금과 의료보장 등 전통적인 복지프로그램을 주로 하는 나라와 전통적인 프로그램 외 더 많은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등이 대척점에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OECD 평균 이상으로 많이 지출하는 사민주의 국가들의 북유럽 모델과 사회지출이 낮은 일본, 미국, 평균 이상이지만 전통적인 프로그램에 집중돼 있는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이 있다.
한국은 이제 복지의 시작이다. 금융위기 등에서 보듯 미국은 휘청대는 국가다. 복지를 잘 하는 거소 아니고. 일본도 마찬가지다.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폴란드, 그리스, 포르투갈 모델을 따라갈 것도 아니고. 스웨덴, 덴마크 모델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2005년 기준 OECD 국가 사회지출 규모와 프로그램별 비중을 살펴보면 한국은 연금이 GDP대비 1.5% 정도다. 아직 연금이 성숙되지 않았다. 대부분은 의료보장이다. 나머지는 발달하지 않았다. 더 발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대학원(IMD)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선정한 결과를 보면 종합지수에서 미국이 항상 수위다. 그 다음이 스웨덴, 덴마크이다. 복지국가이지만 기업하기 좋다. 그 다음이 독일, 일본, 이탈리아 등이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나라는 경쟁력을 지켜가면서도 복지국가인 나라일 것이다. 그 나라의 경쟁력이 높은가 낮은가의 지표는 노사관계가 안정되고, 구조조정이 원활하며, 우수한 노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쉬운가 등이다. 평생교육을 통해 우수한 노동력을 갖고 있는 사민주의 국가에선 쌍용차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구조조정을 당하면 높은 실업수당을 받으며 직업훈련과 고용서비스로 안정감 가지고 실직에 대처하는 등 노동시장이 안정돼 있있다. 이게 사실 경제효용을 높이는 정책이다. 낙후된 산업에서 성장하는 산업으로 이동하고, 이것을 복지가 뒷받침해주는 시스템이다. 복지의 제도적 경쟁력을 우리도 찾을 필요가 있다.
미국을 제외하고 보면 스웨덴, 덴마크의 출산율이 높다. 노동력도 보전되고 성장도 확보되면서 갱쟁력을 갖는 구조다. 근로자가 아이를 낳고 키우고 자기 스스로 인적자원을 개발하는 구가 제도가 많이 발달돼 있다.
개인적으로 한국이 그 길로 가는 것은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노조의 힘도 세고, 좌파정당도 마찬가지고, 정부의 질도 높아야 하는데, 우리가 거기까지 가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다. 복지국가의 행위자들을 만드는 대표적 세 주체가 노동자, 자본가, 정치가이다. 한국은 노동자들이 복지국가/공공복지를 지향하면서 투쟁하는 구조는 아닌 상황이다. 유럽 사민주의 국가와 비교할 때 우리는 기업별노조로 분절도 심하다. 기업별 노조가 공공복지를 위해 희생할 이유가 없다. 사민주의 국가의 노조는 국가를 상대로 전체 계급을 위한 복지를 요구하는 차이가 있다.
재벌경제가 아닌 중소기업경제라면 대만이나 덴마크처럼 국가를 상대로 요구하게 된다. 기업에서 얻을게 없으니까. 그러나 우리는 대기업에서 노조가 얻을 것이 많다. 이 두 조건이 마나서 공공복지를 요구하는 힘이 약하다. 시민단체 밖에 없는데, 힘이 없다. 또 소선구제라는 제약이 복지를 요구하지 못하게 한다. 만일 정치인들이 복지가 재선에 도움이 된다면 열심히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본적으로 소선거구제이다. 재선을 위해선 신공항 사업처럼 지역사업에 목을 매달아야 한다. 복지는 립서비스일 뿐 열성을 가지고 매달리지 않는다. 대통령 선거가 마지막 희망이다. 전국을 상대로 지지와 동원을 이끌어야 하는데, 복지는 중요한 주제이다. 한국이 방향을 잘 잡아서 다양한 복지프로그램을 만들어 중간 수준 이상의 복지국가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제도적 기반이 뒷받침돼야 한다. 만일 대통령이 보수라면 복지로 방향을 잡더라도 지출 수준이 낮은 쪽으로 약하게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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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북아프리카 민주화 혁명의 오늘과 내일 |
중동 북아프리카의 현실과 재스민 혁명의 의미 |
느티나무 |
2011.4.13 |
[강좌후기]중동 북아프리카의 현실과 재스민 혁명의 의미 중동 북아프리카 민주화 혁명의 오늘과 내일
참여연대는 4월 한 달 동안 중동 북아프리카 지역의 민주화 혁명에 대해서 강좌를 엽니다. 최근 중동의 반정부 시위는 튀니지에서 청년의 분신으로 시작해 이집트, 리비아,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등으로 퍼져가고 있습니다. 이 강의는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지역과도 같았던 중동 아프리카 지역의 변화양상과 그 의미를 구체적으로 살펴봅니다. 강의는 중동 현장의 경험이 많은 구정은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가 맡았습니다. 4월5일, 첫 강의에서는 중동 북아프리카의 현실과 재스민 혁명의 의미에 대해 짚어봤습니다.
리비아 사태에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바람으로: 사회자 주은경 이 강의를 기획한 것은 이집트 혁명이 승리를 이루면서 중동지역의 ‘프랑스 혁명’이 되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이 있어서였다. 구정은 기자는 문화일보의 국제부 거쳐 지금은 경향신문 국제부기자로 있다. 교수보다 오히려 현장에 강한 강사라 좋은 시간이 될 것 같다. 중동 북아프리카의 혁명을 배움으로써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방법이나 한국인이 국제사태에 갖고 있는 감수성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강의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리비아 사태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강좌의 시작: 구정은 기자 나는 중동 북아프리카의 역사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살아본 것도 아니다. 단지 10년 동안 일하다보니 이 지역 뉴스를 남보다 관심을 갖고 살펴보게 됐다. 지금은 이 지역에 많은 애정과 문화적 매력을 느끼고 있다. 비록 민주화에서 뒤쳐져 있지만 아픔을 최소화하면서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크다. 이 지역 상황은 지금도 진행형이어서 강의가 끝나는 4월 말이면 어떤 상황이 될지 모른다. 진행되는 걸 보면서 같이 공부한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일단은 중동 아프리카의 지리를 머릿속에 넣어두는 것이 필요하다. 보통 중동 북아프리카라고 하면 터키와 이란은 빼고 생각한다. 오늘은 북아프리카 쪽에 초점을 두겠다. 앞으로 이어지는 2,3강은 걸프 지역에 초점을 둘 것이다. 최근은 리비아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리비아는 이집트 옆에 위치한다. 리비아는 민주화 시위가 지속되어 지금은 내전상황이다.
1. 튀니지는 민주화 혁명이 아닌 시민혁명, 그리고 SNS(소셜네트워크) 일단 튀니지 혁명에 대해 알아보겠다. 이것을 민주화 혁명이라고 볼 것인지 시민혁명으로 볼 것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아직까지 민주화라는 결과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시민혁명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사람들은 ‘중동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지금까지 이런 혁명을 볼 수 없었다’라는 말을 하는데, 여기에는 중동사회가 가부장적이고 억압적이라 저항적이지 않다고 보는 서구적인 사고가 들어가 있다. 중동 북아프리카가 민주화에서 후진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종교나 아랍의 문화 때문만은 아니다. 그러나 이곳은 지금 역사적인 혁명의 시기를 겪고 있다.
‘튀니지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의 SNS 혁명'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또한 중동 지역에는 '알자지라'라는 24시간 위성방송을 하는 방송국이 있는데 시위현장을 마치 CCTV처럼 생중계한다. 아랍어를 쓰는 국가 모두가 이 방송을 보기 때문에 이번 혁명 과정에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기존에 존재하던 분노와 억압의 강도가 셌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므로 시민의 분노와 SNS의 역할이 합쳐져 촉발됐다고 볼 수 있다.
2. 무바라크 시절 이집트와 중동 지역의 혁명 이 지역은 공통점이 있다. 1) 종교는 이슬람교이고, 언어는 아랍어라는 점 2) 근대 이전까지 아랍지역이었다가 오스만투르크의 영토로 한 나라였던 점, 즉 광범위한 공통의 역사 3) 30-40년간의 독재정권을 겪으며 형성된 계층갈등의 심화 그리고 4) 산업 성장 기반이 없고, 외부 의존적이라는 점 이다. 이집트는 이 지역에서 중요한 나라이다. 이집트에서는 아랍연맹사무총장, 노벨상 수상자, 유엔총장 등이 나와 국제적으로 힘이 있는 국가이지만, 팔레스타인을 누르고 자국민을 억압하면서 버텨 왔다. 통계는 없지만 1/3이 유형, 무형의 미국원조로 살아간다. 독재가 지속되다 보니까 미국에도 무바라크 정권이 짐스러운 시점이었고, 시민의 힘이 압도적으로 드러나자 무바라크는 미국이 버리는 카드가 됐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미국에 달렸다’는 건 믿을 말이 못된다. 오히려 시민의 손에 달렸다. 그것이 진정한 권력 투쟁이고 이집트는 지금으로선 시민이 이긴 상태다.
지금 중동은 2차대전이 끝난 것보다 더 큰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들은 자기들 손으로 혁명을 만들어 가고 있다. 프랑스 혁명만큼 중요한 것이 아니지만, 이번 혁명은 시대를 앞서 가는게 아니라 마무리하는 혁명이라는 큰 의미가 있다. 20년 전 냉전시대가 끝나면서 사라졌어야 할 미국의 패권을 등에 업은 독재정권이 중동이라는 특수성과 석유의 이익 때문에 지속되어 온 것이다. 지금 카다피는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고 있는 형국이다. 정치적 패러다임으로 봤을 때 이미 끝났다는 의미이다.
3. 리비아의 시민혁명 카다피가 어떻게 정권을 잡게 되었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상황이 진행될 가능성이 있는지를 살펴보겠다. 카다피는 20대 때 쿠데타로 집권한 후 42년간 권좌에 있었다. 그는 카다파 족이어서 카다피가 됐다고 한다. 그는 60-70년대 이집트 낫세르의 영향을 많이 받아 아랍사회주의와 부족주의 성격을 띄는 범아랍주의 성향이 강하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은 카다피의 패션이 체게바라와 비슷하고 사회주의적 성격을 보여주는 패션을 고수한다는 점이다.
리비아는 이슬람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 국영으로 운영되는 영역이 많다. 또한 리비아는 70년 대 대의민주주의가 아닌 ‘자마리아’ 즉 인민공화국이라고 선언한 바가 있다. 독특한 점은 카다피와 그의 측근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카다피는 직책이 없다는 점이다. 이때까지 카다피는 권력을 잡은 후 시민에게 고문, 감금은 했지만 처음 집권과정에서 사람을 많이 죽이진 않았다. 미국도 카다피를 두고 막무가내이지만 실용주의라고 인정했다. 또한 그는 석유자원을 팔아서 아랍권을 통합하려 했고 역내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이런 기반을 통해 그는 40년간 정권을 이어 올 수 있었다. 그는 석유를 팔아 번 돈으로 대외정치에 개입하려는 움직임을 계속 보여왔지만 이집트만큼 국제정치에 영향을 미치기는 어려웠다. 카다피는 이슬람 사회주의를 내세우면서 반미제국주의 투쟁을 진행해 왔다. 미국과의 관계가 최악일 때는 레이건 대통령 때였다. 이란의 팔레비왕조가 무너지면서 미국의 중동전략에 혼란이 왔다. 미국이 이라크를 시켜서 이란을 침공하게 만들 때 카다피는 이란을 지지했다. 이것 때문에 레이건 때 양국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카다피를 ‘중동의 미친개’라고 불렀다. 그 때부터 카다피 전복공작을 시작하게 됐다. 사실 이런 사건들이 없었다면 크게 그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테러사건의 배후였다는 이유로 트리폴리가 공습당하면서 그의 수양딸이 죽었고 90년대 말에는 중동에서는 영향력이 없어서 아프리카주의로 전환했다.
그는 정서적으로 문제가 생긴게 아니가 싶을 정도로 돌출행동을 많이 했다. 아프리카 왕같은 옷을 입고 나오기도 하고, 아프리카연합의 의장국을 맡으면서 부족장을 모아놓고 자신을 왕중왕으로 일컫거나, 외국에 순방가면서 천막을 지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카다피와 서방과의 관계를 보면 그는 영국의 전 총리인 블레어와는 친하게 지냈다. 3년 전 총리직 그만두기 전에 리비아 유전개발권을 따 줄 정도로 친했다. 그리고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과도 가까웠다. 리비아에서 카다피가 잘못한 게 있다면 이번에 혁명이 발발한 후 전투기까지 띄워서 사람을 죽인 것이다. 미국이 석유 이익 때문에 편을 들어 주고 싶어도 국내에서 표가 깎여서 그렇게 못하는 상황이다. ‘앞으로 리비아는 어디로 갈 것인가?’는 국민의 힘에 달렸다.
이집트는 인구의 97%가 국토의 3%에 모여 살고 있다. 반면 리비아는 전체가 사막이고, 사람들이 흩어져 살기 때문에 결집된 시민의 힘이 없다. 지금 리비아는 카다피가 있는 상태에서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으면 카다피를 축출할 방법이 없다. 가장 좋은 방향은 인명피해가 최소화 되는 선에서 카다피가 멈추는 것이며, 리비아인의 힘으로 민주적인 새로운 정부를 꾸리는 것이다. 반군은 전력이 큰 게릴라군이 아니기 때문에 힘든 상황이다. 그러나 지상군 투입은 못 하기 때문에 현 상황이 유지될 것이다. 그렇다고 다시 카다피가 장악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4. 인도적 개입, 해야 한다 vs 말아야 한다 인도적 개입을 두고 국제적으로 논란이 많다. 왜냐하면 군사행동이 목숨을 빼앗는 전례들이 많기 때문이다. 옳으냐 그르냐는 결과를 중심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코소보는 인구가 밀집된 도시였다. 공습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서 누가 학살자인지 학살받는 사람인지 구분이 안 됐고 악천후까지 겹쳐 실패했다. 코소보 사태에 대한 군사적 개입에 대해 좌파지식인은 개입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 90년대 시에라리온이 절망의 땅이 되어버렸을 때 영국군이 개입했고 이는 성공적이었다. 군벌세력을 몰아내는데 성공했고 학살의 주범인 라이베라 대통령을 잡아서 국제전범재판에 붙였다. 그 후 라이베리아에서는 여성대통령이 당선되었고 결과도 그런대로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인도적 개입이 성공하지 못한 다른 케이스들이 더 많이 있다. 90년 대 이라크는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고 10년 간 엠바고를 실시했는데, 이라크의 어린이와 병든 사람들이 죽는 결과를 낳았다. 지금도 죄를 저지른 당사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징벌을 주는 집단징벌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유엔의 금수조치 책임자였던 사무차장이 금수조치를 반대하는 일까지 생겼다. 90년대 르완다는 300만명이 학살됐는데도 국제사회가 개입하지 않았다. 왜 그런지 알 수 없다. 또한 90년대 아프간 내전에도 개입하지 않았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인도적 개입’이라는 명분으로 이행됐다. 이라크에는 알카에다도 없었고 대량살상무기도 없었는데 인도적 개입이라고 용어를 붙여, 결국 인도적 개입이라는 말만 오염시켜 놨다.
Q & A: 구정은 기자와 수강생과의 대화
Q. 혁명 후는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나? 시민의 힘이라고 하는 데 시민의 힘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을까? A. 한국의 386 세대가 시민의 힘을 의심하는 경향이 더 강하다. 동시에 그들은 미국의 힘을 믿는다. 이라크 전이 개시되기 전 몇 달 전부터 세계 곳곳에서는 반전시위를 비롯한 움직임이 많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유명한 교수나 학자,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반대해 봤자지’ 하는 회의론이 대세였다. 시민들의 움직임이 미국이 일으킨 전쟁을 막지는 못했지만, 건전한 시민들의 반대가 있었기 때문에 이라크의 사상자를 줄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국제사회가 반대하는 이라크전쟁을 했고, 이 과정에서 미군들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많았지만, 만약 모두가 전쟁에 무관심했다면 더 심하게 사상자를 냈을 것이다. 미군 측에서 오폭 사고를 내면 시민들이 민간인학살이라고 크게 반발하면서 공습자체를 많이 바꿨다. 그것이 바로 시민의 힘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시민의 힘은 작용을 한다. 지난 30년 동안 민주화를 이루지 못한 이집트의 경우, 부시 전 대통령은 중동민주화를 원했는데 오바마는 무바라크를 끌어안았지만 이집트 국민의 힘에 밀려 무바라크를 버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시민의 힘은 결정적인 순간에 보이는 것 같다. 중동에 있는 사람들은 이집트를 싫어한다. 매춘부, 사기꾼 등이 이집트를 묘사하는 단어이다. 이집트인들은 부패한 정권 밑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시민들 뼈 속 깊이 부패했기 때문이다. 지금 시민혁명 이후 집권한 이집트 총리는 1년 간 교통부장관을 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주변에는 노벨화학상을 받은 저명한 물리학자와 나사에서 근무한 과학자 지식인 그룹이 그 주변에 있다. 이집트에서는 시민사회가 축적한 힘이 현 상황에서도 이집트가 아수라장이 되지 않게 하고 있으며, 군부가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Q. 과연 인도적 개입이라는 명분하에 타국민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옳은가? A. 인도적 개입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너무나 원론적이라는 문제가 있지만 원칙적으로 사람의 목숨을 죽여도 되는 정권은 없다. 인권을 넘어서는 주권은 없다고 본다. 그러나 실제적인 군사행동은 또 다른 인명피해를 가져오는 것이다. 리비아의 경우는 군사시설에만 폭격하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 그러나 북한정권에도 인도적 개입을 해야 하나? 평양 같이 인구가 밀집한 곳은 일반인들이 수 천명, 수 만명이 죽는 것이 뻔한 사실이다. 사건 하나하나에 따라 달라 ‘옳다 그르다’하기 어렵다. 지금까지는 리비아에 대해서는 군사개입을 했어야 하는 상황이라는 평가가 많다. 벵가지 공습 함락 때 카다피 군에 타격을 주면서 민간인 거주구역이 아닌 곳에 폭격하는 것은 합당한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점은 국제법을 연구하는 분들도 혼란스러워한다.
Q. 중동 지역에 특별히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십 수년 전에 국제부에 갔을 때 막내였고 선배들이 미국과 유럽을 담당했다. 국제부에서 일하다가 사회부로 옮겼다가 다시 2001년 다시 국제부로 갔을 때 9.11이 터졌고 역시 막내였다. 그때 또 중동을 맡아서 공부를 하면서 출간된 책을 섭력하였다.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 실크로드 그런 것들을 좋아했고 문화적 매력도 느꼈다. 막내라서 중동 아프리카 지역을 맡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느새 인생의 중심이 되었고, 국제정세 역시 지금에 와서는 유럽은 어떤 영향도 없고 변수도 아닌 상황이 되었다. 2001년 후반 9.11 이후부터는 날마다 집에 가면서 이라크 가는 생각을 했다. 요르단에 한국대사관에 비자를 신청했는데 어느 날 비자가 나왔다. 사담후세인이 국민투표를 한 적 있는데 이 때 해외기자초청을 하면서 바로 다음날 요르단으로 갔다. 이라크에 들어가 있다가 최후통첩 때 요르단으로 나와서 이라크전을 보았다. 나야 달랑 나오면 그만이지만 남아 있는 사람은 죽을 수도 있었다. 인생에 가장 마음이 아픈 부분이었다. 그 다음에는 관심사가 아프리카로까지 넘어갔다.
Q. 중동 아프리카 지역에서 미국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 A. 그들은 미국을 굉장히 싫어한다. 이 지역은 미국의 위선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독재정권인 무바라크 정권을 밀어주었고, 이라크 전쟁을 통해서 미국의 위선은 극명하게 드러났다. 역사가 7000년이나 된 세계 최초의 국가이자 문명이 중첩된 국가인 이라크에 대해 미국은 오만하기까지 했다. 미국은 한국 전쟁 때 남한을 지원했고 한국은 미국을 상대로 돈을 벌기도 하는 가까울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중동에게는 그렇지 않다. 필요성을 인정하는 정도이지 미국을 옹호하는 것은 중동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이다.
첫 강좌를 듣고서: 국제연대위원회 인턴 장유진
우연히 몇 해 전 세바스티앙 살가도 사진전을 보게 됐습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미국중심의 동북아 정세만 공부하던 때,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우리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지구 반대편에서 고통 받는 이들에게 관심을 갖게 했고, 참여연대의 중동 북아프리카의 강의를 듣는 계기가 됐습니다. 구정은 기자의 생생한 강의는 이 지역의 상황을 ‘학문적 성찰의 눈’이 아닌 ‘기자의 예리한 눈’으로 현장의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받았습니다. 특히 체험담과 그 지역사람들의 시각에 대한 설명은 책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이어서 값졌습니다. 지도자의 성향이나 국민성 등 체험한 사람에게만 나오는 소소한 일화들이 많아 흥미로웠습니다. 강의가 끝나자마자 ‘왜’라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됐습니다. 좀 더 깊이 있는 내용으로 이어질 두 번째 강의가 기대됩니다.
강좌 기록 및 후기: 국제연대위원회 인턴 장유진
다음 강의 4월5일(화) 중동 북아프리카의 현실과 재스민 혁명의 의미 강사: 구정은(경향신문기자), 안주식(KBS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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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에 대한 7가지 오해와 진실 |
복지국가는 비효율적인가?(복지국가강좌 3강 후기) |
느티나무 |
2011.4.6 |
3월 14일부터 [복지국가에 대한 7가지 오해와 진실] 강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강좌는 복지국가에 대한 막연한 오해나 두려움을 넘어, 복지국가를 통해 시민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복지국가의 구체적인 현실을 통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서구의 복지국가를 넘어서는 한국형 복지국가에 대한 시민의 상상력을 넓혀가고자 합니다. 3강의 후기는 자원활동가 김현민 님이 작성해 주셨습니다.
3강 복지국가는 비효율을 초래하는가? 신광영 /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복지국가에 대한 7가지 오해와 진실, 그 제목에 딱 들어맞는 주제였다. 복지국가에 대한 가장 큰 비판지점인 ‘비효율’의 문제. 신광영 교수는 여러 나라의 다양한 지표를 통해 어디까지가 오해였고 또 무엇이 진실인지 쉽고 정확하게 전해주었다.
무엇이 큰 정부인가?
‘큰 정부’라고 말할 때 대체적으로 세 가지로 정리한다. 국가로 이야기 할 때 국가가 시민사회(국민) 위에 군림하는 국가를 말한다. 권력집중이 심하고, 시민들의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하지 않고, 시민들 또한 저항수단을 가지지 못한 경우를 말한다. 그런 국가의 정부는 강력하고 큰 정부로 인식된다.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국가/정부의 이미지와 유사하다.
다음으로 국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거나 시장 자체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규제가 심한 정부를 큰 정부로 부른다. 완벽하게 시장을 지배하는 계획경제와 자유방임경제 양극단 어디엔가 대체로 많은 국가들이 속해 있다. 한국의 경우 60~80년대 초반까지 계획경제와 시장경제의 혼합형 경제체제였다. 동아시아와 일본, 대만, 현재의 중국이 그런 방식으로 시장을 관리한다. 자유방임 경제의 경우 작은 정부, 계획 정부는 큰 정부, 이런 식의 분류가 암묵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 다음으로 새로운 이해가 필요한 부분으로 정부의 규모가 상대적인 경우다. 대체로 이런 경우는 공무원 혹은 공기업을 줄인다거나 축소하는 차원에서 공무원과 정부지출의 비중이 큰 국가와 작은 국가를 기준으로 한다. 공공부문이 큰 국가이냐 작은 국가이냐를 두고 말하는 것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의 경우는 정치적으로 독재정부이거나 경제에 개입하는 경우가 큰 경우를 큰 정부라고 말한다. 세 번째 기준으로는 정부지출이 상대적으로 큰 경우 큰 정부라고 한다. 복지지출의 규모가 아니라 앞의 두 기준으로 살펴본다면 한국은 큰 정부로 분류할 수 있다. 민간부분 경제 기관/주체의 활동에 정부가 개입하고 있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국가가 민간/시장에 개입하는 정도가 상당히 강하다. 국가주도형 산업발전국가의 유산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한국의 경우 정부의 권력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강하고 이는 정부 활동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것은 단순한 느낌이 아니다. 우리에겐 소통의 경험이 없다. 정부의 큰 권력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대화의 장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큰 정부에 대한 논의는 더욱 다양한 층화에서 논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통큰 국가? 정말 통이 큰가?
신 교수는 큰 복지에 대한 몇 가지 기준점을 제시했지만 그것이 그대로 적극적인 복지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몇 가지 지표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첫번째는 OEDC 정부부문 고용비율을 들 수 있다. 노르웨이가 28%로 가장 높다. 유럽국가들이 대체로 높은 편이고 미국은 14% 정도, 한국은 5.3%로 맨 끝에서 두 번째이다. 가장 낮은 비율의 나라는 일본이다. 이같은 수치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것보다 공공부문 종사자가 한국에서 많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왜 우리는 공무원이 많고, 공공부문이 크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공무원이 국민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대가 아니라 군림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공무원이 많아서 더 많은 편익을 제공받고 삶의 질이 높아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부담이 되고 요구가 많아지고 불편함을 겪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인들 마음속에는 공공부문이 굉장히 커서 줄여야 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과거 권위주의의 유산들이 사람들의 뇌리 속에 남아있다. 그러나 실질 공공부문 종사 비율은 미국의 절반도 안되는 실정이다. 이런 통계를 보면 한국은 큰 정부가 아니다.
또한 OEDC국가 GDP 중 정부수입 비중은 한국이 33%, 노르웨이가 59% 정도다. 여기서도 한국은 상대적 비중이 낮다. 한국보다 낮은 나라는 터키, 멕시코 정도다. 이것은 정부의 역할과 관련이 있다. 국가별 GDP 중 정부 총지출 비중을 보면 한국의 특징은 일단 전체적으로 공공부문 종사자의 비율이 낮다. 정부가 전체 경제에서 정부의 지출이나 정부가 걷어 들이는 수입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고, 그 낮은 가운데에서도 복지보다 경제적 차원의 정부지출에 집중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정부는 큰 정부인가, 작은 정부인가? 이러한 기준을 두고 보면 작은 정부이다. 정부의 역할이나 전체 국민총생산에서 차지하는 정부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낮다. 그래서 인적 차원이나 경제적 비중을 보더라도 한국정부는 너무 작은 정부이다. 다른 나라에선 하고 있는데, 한국 정부는 안하고 있는 부분이 많다. 이것과 복지에 대한 국가의 태도를 연결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교육비에서 공적 지출이 차지하는 OECD 국가별 통계이다. 정부 지출이 교육과 관련해서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는지 살펴보면, 한국은 60% 이상을 개인과 가족이 부담한다. 정부 지출은 38% 정도이다. 유럽 쪽으로 갈수록 압도적으로 정부의 공적인 부담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교육만 놓고 보더라도 한국은 보통 기대되는 선진국으로서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을 상대적으로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가별 근속기간 비교이다. 공공부문의 국가 비중이 작고 모든 것을 개인들이 사적으로 시장을 통해 해결하는 경우를 시장화라고 부른다. 우리의 삶이 주로 일을 해서 먹고 사는 것을 얻게 되는데, 그것이 얼마나 시장에 의해 쉽게 좌지우지 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가 바로 근속연수이다. 상대적으로 시장으로부터 안정된 고용을 확보하는가, 아니면 시장에 의해 보장받지 못하고 쉽게 해고당하는 방식인가를 보는 것이다. 또한 한국은 전체국가 중 근속연수가 가장 짧다. 미국은 신자유주의를 대표하는 가장 상징적인 사회체제로 말하지만 근속연수를 보면 한국이 미국보다 짧다. 많은 것들이 결국 시장변화에 따라 개인 고용의 질도 달라지는 양상이다. 유럽국가들의 경우 프랑스는 12년으로 한국보다 거의 3배나 길고, 스웨덴, 벨기에 등 유럽국가들이 대체적으로 길다. 특히 한국 여성의 경우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삶을 살고 있다. 근속연수가 평균 2.9년으로 대단히 짧다. 그것은 그만큼 시장화되어 개인들의 고용이나 삶이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한국과 주요 OECD 국가들의 공공병상 비율을 비교해 보면 이 역시 매우 낮은 수준이다. 일하거나 생활하다 아프면 결국 의료서비스를 어떤 방식으로든 제공을 받는데, 얼마나 이런 서비스가 시장을 통해 이뤄지는가, 공적인 방식으로 제공되는가를 보면, 이 경우에도 한국은 대체적으로 사설병원에 의해 대부분 의료서비스가 제공된다. 공공서비스의 경우 보건소나 국립의료원의 비중이 상당히 낮고 평가도 낮은 평가를 받기도 한다. 한국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는데, 정부가 개입해 전 국민 의료보험 체제이지만 사적인 의료서비스는 시장에 의해 주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오이시디 국가 공공병상비율을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종합적인 특징을 살펴보자. GDP 중 사회적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주로 삶의 안전을 보장하는 다양한 형태의 지출이 사회적 지출이라고 본다. 공적지출의 경우 멕시코와 한국이 거의 같은 수준으로 낮다. 프랑스, 벨기에, 스웨덴, 덴마크, 독일 등이 상당히 높은 사회적 지출을 보여준다. 보통 경제활동자들의 가장 위협적 요소가 실업이다. 실업을 겪게 되면 소득이 상실되는데, 근대국가는 그것을 완화시키는 제도를 도입했다. 문제는 실업보험의 수준이다. 실업 전 월급과 실업수당 비율을 보면, 가장 높은 나라는 노르웨이로 72%가량이다. 삶이 위협받지 않는 형태다. 오이시디 통계를 보면 가장 낮은 곳은 미국으로 28%에 1년, 한국은 31%에 6개월을 보장한다. OECD 국가 전체적으로는 평균 5년을 보장하는데 비해 낮은 수준이다. 노르웨이를 제외한 그 외 유럽 여러 나라가 비슷한 수준이나 한국과 미국은 낮은 수준이다. 미국이나 한국에서 개인들은 고용부문의 보장을 받지 못한 채 상당히 위험한 살얼음판 삶을 산다. 물론 실업을 겪는 사람들에 한해 이런 위협이 존재하지만 실업이란 것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공적인 방식의 보호는 그래서 의미가 있다.
한국 내에서 여러 가지 큰 정부 논란을 보면 사실 정치적인 차원에선 오랜 기간 권위주의적 통치의 전통이 있었고, 경제적 차원에서 보면 실질적으로 공공부문 지출 규모는 작지만 개입의 방식 정도는 상당히 심한 것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81년 공중 분해된 국제그룹이다. 요즘은 세무조사 등을 통해 기업에 대해 직접적인 개입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반면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정부의 공적인 기능은 시민을 보호하고 사회적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다양한 서비스 분야이지만 제대로 발달이 안 되어 있다. 개인들의 삶은 시장에 상당히 의존하는 모습이다. 시장의 특징은 경쟁과 불확실성이다. 삶이 굉장히 피곤해지고 스트레스도 많다. 안정된 삶보다는 불안한 삶이다. 바로 이 지점이 우리가 효율의 문제를 ‘다시’생각해 보아야 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을 피곤하고 불안하게 하는 것-우리는 이것을 효율의 문제 속에서 고려해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효율이라 말하는가.
효율성의 차원에서 보면, 문제는 사회적 차원에서 어떤 사회가 효율적 또는 비효율적인지 이야기를 할 때이다. 가족차원, 기업차원, 사회차원이 일치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기업의 효율성과 사회의 효율성은 다르다. 개별 기업은 투입 산출 차원에서 고려한다면 임금을 적게 주는 것이 효율성을 높이는 중요한 방식이다. 기술수준도 같고 인력규모도 같고 재료도 같다면, 비용을 줄이는 게 효율성을 높이는 방식이다. 모든 기업이 그럴 경우 전국 가구의 구매력이 떨어지게 될 것이다. 소비력이 떨어져 내수위축의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결과적으로 기업이 생산을 해도 소비를 안하게 되어 경기는 침체된다. 개별기업은 상당히 합리적으로 선택해 임금을 낮췄지만 노동자는 생산자이자 소비자이다. 생산비용을 줄이기 위해 월급을 줄이면 소비자로서의 구매력도 함께 떨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는 무엇이 효율적인것인가. 복지가 낮을 경우 생기는 여성노동력의 문제는 어떨까. 복지가 뒷받침 안 되면 출산을 안한다. 그래서 인구가 감소하면 연금 부담이 생긴다. 연금 받을 사람과 연금 재정을 부담해야 할 사람들 사이에서 불균형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젊은 세대가 출산율을 더 낮출 수밖에 없다. 인구감소가 가속적으로 벌어지는 상황이 된다. 사교육비가 높은 나라인 우리의 경우 여성이 남성만큼 대학을 진학하지만 취업하기는 어렵다. 고용별이 심하고, 채용되더라도 출산 등을 이유로 오래 있지 못한다. 사회적 차원에서 엄청난 낭비로 나타나는 것이다. 지난해 사교육비가 21조원이라고 한다. 이 중 절반이 여성에게 들어간 비용이라면, 10조는 어쩌면 쓰레기통에 들어간 셈이 될지도 모른다. 들어간 비용만큼 인력을 제대로 활용 못한다면 그 사회는 굉장히 낭비적인 사회이다. 결국 이 모든 상황을 볼 때 개별기업의 이익이 전체 사회의 이익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나 주로 공공기관이 담당해야 할 것은 개별 기업의 이해가 아닌 사회적 차원의 이익을 적극 고려하는 정책이어야 하며, 이것이 국민의 세금을 걷어서 기능하는 정부의 존재 이유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기업의 논리를 가지고 정치를 한다거나 기업의 논리로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은 굉장히 위험할 수 있다.
복지국가는 기본적으로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형적인 접근이다. 복복지가 되면 왜 사회가 효율적인 사회가 되는지, 복지를 둘러싼 많은 생각들과 복지를 강화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자. 복지를 둘러싼 많은 생각들 가운데 돈을 많이 쓴다는 생각이 먼저 들 수도 있다. 돈을 집행하려면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 일을 관장하는 공공무분 일자리와 일을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복지가 증가하면 가장 먼저 일어나는 게 고용증대다. 그들은 소비를 하고 또한 세금을 낸다. 세수의 증가는 복지지출의 재정적 뒷받침이다.
복지효과의 세 가지를 단기, 중기, 장기로 구분해 살펴보자.
단기효과는 복지서비스 일자리의 증가다. 우리나라 공공부문 일자리는 미국과 비교해도 절반이 안된다. 미국 수준만 가도 일자리가 120만개 정도 늘 수 있다. 아주 간단한 산술계산이지만, 복지서비스 담당 일자리의 증가는 단기적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중기효과는 수혜자들의 경제활동참여 증가이다. 이런 부분에서 복지가 발전하면 바로 그 혜택은 여성에게 돌아간다. 아이를 돌봐야 할 여성들이 직접 혜택을 받는 것이다. 여성경제활동의 증가는 복지가 사회적 제약으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이들에게 희망을 실현시킬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임을 보여준다. 소위 말하는 복지가 발전한 국가는 일 안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아니라 남녀 모두 경제활동 참여율이 높은 수준을 보인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각종 복지 서비스이다. 장기적 효과는 보육/탁아/교육 부문의 복지가 보장돼 출산율이 높아지는 것을 말한다. 출산율 저하 문제는 한국경제의 쓰나미이다. 현재 대표적인 고령화 사회 국가가 일본과 스웨덴이다. 고령화 비율이 20%대로 비슷하다. 다섯 명 중 한명이 노인이다. 그런데 두 나라가 굉장히 다른 제도를 가지고 있다. 일본은 복지가 거의 없고, 스웨덴은 체계적으로 잘 발전돼 있다. 일본은 복지가 낙후돼 저출산, 인구감소, 노동력 감소 현상이 나타나고 출산 회피로 이어진다. 그러면서 저출산 고령화의 악순환이 이뤄진다. 인구문제가 곧 경제문제로 직결된다. 그래서 일본은 장기불황과 더불어 미래가 상당히 암담하다. 많은 나라들이 저출산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독일이나 이탈리아의 경우도 인구가 감소추세이다. 그 이유는 특히 가족/여성과 관련해 복지에 대해 북유럽보다 보수적 정책을 취했기 때문이다.
복지문제는 시혜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개념이 아니라 사회를 유지하고 삶의 질을 높이며 일상의 위협으로부터 안전의 보장을 재구성하는 중요한 제도적 장치이다.
복지가 경제성장에는 도움이 안된다, 필요악 또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복지는 실질적으로 효율적이고 경제성정에 직접 기여하는 근대사회의 중요한 발명품이라는 것이 지난 20여년간 연구로 밝혀지고 있다. 복지가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경제성장에 저해요소인가? 경제학자들은 그렇게 많이 이야기한다. 경제학자들은 높은 복지혜택을 받는 개인은 근로 동기가 약화돼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복지가 근로의욕을 약화시킨다면 나타날 현상은 일하는 사람은 줄고, 실업률은 높아진다. 그런데 복지국가가 발전될 수록 더 많은 사람이 일하고 실업률이 낮아지는 결과가 60~70년대 나타났다. 막연한 생각과 현실은 달랐다는 것이다. 2004년 경제사학자 피터 린더트가 지난 200년간의 자료를 가지고 연구한 결과 내린 결론이 일반적으로 경제학자들이 경제활동에 도움이 안된다고 한 복지가 결국 경제 성장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것을 밝혔다.
한국사회에서 사람들은 긴장감 속에 살고 있다. 우리의 불안과 긴장은 한국사회에 분명한 마이너스이다. 복지국가에 담길 내용이 무엇인지 더 구체화되고 있단 생각이 드는 3주차 강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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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북아프리카 민주화 혁명의 오늘과 내일 |
[라운드테이블] 리비아 사태와 군사적 개입, 어떻게 볼 것인가 |
느티나무 |
2011.4.6 |
4월 5일(화)부터 중동 민주화 혁명의 오늘과 내일이라는 제목으로 최근 중동 민주화 혁명과 관련한 강좌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번 강좌와 관련해서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에서 진행된 리비아 사태에 대한 라운드 테이블의 논의 내용을 소개합니다.
[라운드테이블] 리비아 사태와 군사적 개입, 어떻게 볼 것인가
3월1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리비아 무장갈등에 군사적 개입을 승인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한 후, 리비아 상공에 비행금지구역이 설정되고 다국적군의 군사적 개입이 시작되었습니다. 41년간의 독재를 종식시키고자 들고 일어선 시민들을 카다피 정권이 유혈진압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기구나 강대국이 군사적 개입에 나선 것에 대해 다양한 견해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에 참여연대는 리비아에 대한 군사개입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인도주의적 개입(humanitarian intervention)혹은 R2P(Responsibility to Protect) 등의 개념을 적용할 수 있는지, 이 개념을 둘러싼 논란은 없는지, 더불어 군사적 개입이 가장 실효성이 있는 방안인지 등을 토론하는 라운드테이블 「리비아 사태와 군사적 개입, 어떻게 볼 것인가」를 개최하였습니다. 참여연대 박정은 팀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 자리에는 한국외대 유달승 교수, 이화여대 평화학연구소 서보혁 연구교수, 경계를 넘어 최재훈(까밀로) 활동가, 그리고 평화네트워크 정욱식 대표가 패널로 나와 의견을 개진하였습니다.
이번 라운드테이블에서는 ▷ 중동아프리카지역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한 리비아에 대한 군사적 개입에 대한 평가, ▷ 중동아프리카, 서방국가들 각각의 내부정치와 석유라는 에너지원을 둘러싼 국제정치의 실상, ▷ 국제사회의 보호의 책임(R2P)을 어디까지 한정하고 이에 필요한 장치는 무엇인지, ▷ 이러한 국제사회 담론이 국제평화운동과 한반도 평화에 함의하는 바는 무엇인지 등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각 패널의 주요 발제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민간인 보호가 아닌 민간인 피해 초래하는 군사적 개입
최재훈 활동가(경계를 넘어)는 과거 역사를 되돌아볼 때 군사력과 경제력을 가진 몇몇 패권국가들에 의해 선택적으로 취해진 군사개입이 애초 의도한 민간인 보호라는 목적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군사적 개입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한다고 밝혔다. 최재훈 활동가는 몇 가지 논거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 리비아 사태에 대한 성격을 내전 또는 민주화항쟁 가운데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따라 국제사회의 대응 방식이 달라짐. 리비아에서 정치적 폭압에 항거하고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시작되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음. 그러나 처음부터 일관되게 비상사태해제, 무바라크 퇴진, 개헌을 통한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주장해온 이집트 민주화 항쟁과는 달리 반카다피 진영의 정치적 비전은 불명확함. 민주화를 요구하는 민중들의 항쟁을 정치적, 외교적 차원 등에서 지원하고 독재자에 압력을 가하는 것과 내전의 한 축을 지원함으로써 다른 한축을 몰아내는 것은 분명 다른 차원의 문제임.
▷ ‘비행금지의 준수를 강제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처들을 취하도록 승인’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 1973호가 몇몇 회원국들에게 자의적 판단에 의한 포괄적 수단 동원의 길을 허용한 점에서 ‘정당하다’고 할 수 없음.
▷ 리비아뿐만 아니라 예멘, 바레인, 요르단, 모로코, 사우디아라비아 등등 중동아프리카 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유사한 사태에 대한 군사적 개입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음. (레바논, 팔레스타인을 침공한 이스라엘, 2010년 한 해 동안 무인기를 동원해 929명의 파키스탄인들을 사망하게 한 미국 등에 대한 논의도 없다는 점에서) 형평성이 부족함.
▷ 민간인 보호를 내세웠던 비행금지구역 설정은 오히려 민간인 피해를 초래할 수밖에 없고 지상에서 쌍방간의 보복학살을 격화시켜 오히려 민간인 피해를 더 초래한다는 점에서 실효성도 도덕성도 부족함.
최재훈 활동가는 카다피의 해외자산 동결, 무기 금수, 국제형사재판소 회부, 아프리카 연맹이나 역내 국가의 중재 등 지금이라도 정치적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리비아 사태와 군사적 개입, 과연 ‘최선의, 최후의’ 수단이었나
서보혁 교수(이화여대 평화학연구소)는 R2P(Responsibility to Protect*)의 개념에서 이번 리비아 사태를 분석하였다. R2P는 국가가 국민보호의무를 실패할 때 국제사회가 시의적절한 집단행동을 취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주요골자로 한다며, 카다피정권에 대해 군사적 개입을 하지 않았다면 어떤 형태로든 폭력이 계속되거나 확대되었을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에 이를 중단시키기 위한 수단의 강구, 즉 광의의 인간안보의 관점에서 리비아 군사적 개입은 필요한 부분이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나 서보혁 교수는 비록 R2P를 명분으로 리비아 군사적 개입을 단행했으나 실제 R2P 목적이 제대로 수행되었는가는 별도의 평가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인간안보관여(Human Security Engagement) 가 목표로 하는 개입의 6가지 전제조건은 다음과 같다 : right authority(정당한 권위), ▷just cause(정당한 명분), ▷right intention(정당한 의도), ▷last resort(최후의 수단), ▷proportional means(수단의 비례성), ▷reasonable prospects(합리적 전망).
유엔안보리에 대한 구조적 문제점은 이번 논의에서 차치하고 유엔 결의안은 정당한 권위, 명분, 의도의 조건은 충족하지만, 과연 군사적 개입이 다른 모든 가용할 수 있는 수단이 동원된 뒤에 최후의 수단으로 이뤄진 것인지(최후의 수단), 현 수준의 군사조치가 리비아 사태와 비례하는 것인지(수단의 비례성), 인간안보 관여가 중장기적으로 시민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사후 재건 비전 등에 대한 구체적 계획(합리적 전망)을 동반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번 리비아 군사적 개입에 대한 문제점과 한계점이 존재한다고 서교수는 지적했다. 즉 리비아에 대한 군사적 개입은 R2P를 명분으로 시작됐으나 실제 진행된 양상은 이를 충족시키기 어려운 상황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서보혁 교수는 유엔에서 R2P 개념을 내세워 이번 리비아 결의안을 통과시켰지만 합의절차와 행동절차 등이 제도화가 안된 상태에서 R2P 개념을 도입하여 결의와 개입이 이뤄진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하며, 인간안보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으로서 R2P를 공론화하고 제대로 달성하기 위한 장치를 고안하는 데 국제시민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리비아 사태와 서방 군사개입의 목적
유달승 교수(한국외대)는 리비아 사태는 민주화운동, 내전, 전쟁 등으로 이름을 달리 붙여야 할 만큼 그 양상이 계속 변화하고 있다고 하면서, 리비아 사태에 대해 미국과 유럽의 대응양식이 다르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리비아에서의 시위는 극단적 무장투쟁을 강조하는 이슬람 투쟁세력과 민족해방운동을 하는 소수 엘리트 장교, 그리고 아프간 내전에 참가했던 리비아 전사들이 조직했기 때문에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처음부터 급격한 총격전과 무장투쟁이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즉, 2011년 리비아 사태는 1995년에 있었던 유혈폭동과는 다른 다양한 세력이 결합되어 시위대를 구성하고 있다는 점과 다른 국가와는 달리 카다피에 반대하는 이슬람세력이 군부와 결합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반카다피 세력으로 인해 군주제로 복귀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 등 리비아만의 특이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유교수는 왜 이 시점에서 리비아에 대한 서방의 군사적 개입이 이뤄졌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리비아 내전은 서방의 군사적 개입으로 전쟁으로 확대된 반면, 이들 국가들은 예멘과 바레인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주화 시위에 대한 학살은 침묵하고 있다. 미국이 발을 빼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시민군에 알카에다가 개입했다는 카다피의 주장과 연관되어 있는 듯 보이며, 리비아의 원유 수출량은 세계12위에 불가하지만, 원유가 질적으로 좋으며 이 석유의 85%가 유럽에 수출된다는 점이 서방 국가들의 군사적 개입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유교수는 환기시켰다.
유교수는 어떤 사람들은 이번 아랍 지역의 민주화 혁명이 1989년에 있었던 동유럽에서의 도미노현상과 비슷하다고 하지만 몇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유교수에 따르면 1989년 사건을 통해서는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무너지면서 미국 중심의 세계패권으로 이어졌지만, 이번에는 친미 국가와 반미국가 모두에서 혁명적 시위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집트는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이라는 점에서 친미 아랍국가가 더 이상 미국에 의존할 수 없는 상황이며, 앞으로 중동 지역에서 탈이데올로기 실용주의가 주도하는 새로운 정치지형을 점쳐보게 한다고 말했다.
리비아 군사개입이 한반도 평화에 주는 함의
정욱식 대표(평화네트워크)는 평화운동의 입장에서 무력사용 자체는 원칙적으로 반대하나, 무력개입을 해도 되느냐 안되느냐 하는 이분법적인 관점으로 보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정대표는 대량학살이 벌어지기 전에 무력 개입을 선택한 것은 정당하고 적절했다는 찬성론도 존재하지만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보았다.
▷ 우선 국제사회가 리비아 사태 초기 국면에 갈등해결의 가장 중요한 수단인 중재노력을 거의 보이지 않았음.
▷ 리비아 사태를 통상적인 의미의 민주화 운동으로 볼 것인지, 반군 세력과 카다피 정권 사이의 무력충돌, 내전으로 볼 것인지 살펴봐야 하며, 서방의 군사적 개입은 실질적으로 반군을 지원하는 성격이 큼.
▷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 등 서방국가들이 내부정치용으로 리비아 사태 이용함.
▷ 리비아와는 달리 예멘, 바레인, 시리아, 요르단 등에는 개입하지 않는 국제사회의 모습에서 R2P의 허구성, 강대국의 이중잣대를 드러냄.
▷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넘어선 과도한 군사행동과 군사행동에 내재된 ‘자기증식성’의 문제점.
▷ 민간인 보호 목적의 무력 개입이 초래한 민간인 피해. 이를 소위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라 할 수 있는지 문제.
▷ 리비아에 대한 군사적 개입이 민주화 운동세력에게 연대의 희망을 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다른 독재국가들이 민주화 운동의 싹을 자르기 위한 무자비한 탄압에 나서는 현실.
마지막으로 정대표는 북한이 핵을 포기한 리비아의 현실을 보고 자신들의 선군정치와 핵보유 의지를 강화하고자 한다는 점을 볼 때, 이번 국제사회의 군사적 개입이 핵비확산체제의 확립에 기여하는가 하는 점에서 현재로서는 긍정적 평가를 내리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 했다.
리비아 군사개입을 둘러싼 국내정치와 국제정치
최재훈 활동가는 서구가 왜 리비아에 직접 군사개입을 했는지를 보면 석유이권이나 국내 정치상황등의 요인도 있지만, 더 크게 보면 미국이 중동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불확실성'이라는 점에서, 미국의 가장 큰 고민이 현 독재자들의 축출 후 어떤 정권이 들어설 것인가를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현 반카다피 측의 과도정부 인사들의 면면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미국이 직접 개입해서 포스트 카다피 시대의 판을 짜 보려는 것처럼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보혁 교수는 현재 아랍 민주화 바람에 대응하는 미국의 태도는 제국으로서의 미국이 약화되고 있는 현상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며, 이번 사태를 미국 중심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어렵다고 보았다.
유달승 교수는 튀니지와 이집트는 미국의 신자유주의 정책과 국제금융기구의 정책을 잘 따르던 국가에서 양극화, 실업 등의 문제를 갖고 일어난 사태들이므로 이후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동반될 것이라고 보았다.
정욱식 대표는 이번 리비아 사태에 미국이 개입한 것에 대해서는 석유 등으로 단순히 설명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 보았다. 특히 미국 주류의 전쟁방식인 대규모 지상군 파견을 피하는 전쟁수행방식의 변화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현 리비아 사태는 한반도 문제에 여러 가지 함의를 갖고 있는데 특히 북의 핵신봉 시나리오가 강화되는 현 상황에서 대화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유달승 교수는 리비아 사태를 보도하는 미디어의 내용들을 보면 매우 신뢰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리비아사태에 대한 왜곡 보도가 심하며, 알자지라 방송도 리비아사태에서는 미국과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방이 군사개입을 한 이후 미디어에서 카다피 체제의 붕괴와 동서분할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도 그런 측면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참고로 리비아 동부는 리비아 원유생산의 80%를 차지한다.
마치며
서보혁 교수는 인간안보의 개념으로 봤을 때는 사람만 교체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밑바탕이 되는 사회경제적 개혁, 빈곤으로부터의 자유와 같은 광의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유엔 거버넌스를 개혁하여 기존의 안전보장이사회가 결정을 독점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인간안보이사회와 같은 새로운 논의 구조가 필요하며, 엔지오와 전문가집단과 수평적 네트워크를 갖도록 해야 하다고 주장했다.
R2P를 부실하게 선택적으로 적용하는 국제사회를 비판하면서 그 개념과 정신까지도 없앨 것인지 아니면 취지를 제대로 살려서 국제사회의 평화와 인권증진을 위한 개념으로 발전시킬 것인지를 시민사회가 판단해야 한다는 서보혁 교수의 발언처럼 이번 리비아 군사적 개입은 시민사회에 큰 과제를 남기고 있다.
* 정리 손연우(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간사) 김희순(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간사)
* R2P(Responsibility to Protect) 흔히 '국민보호책임'으로 번역됨. 2005년 유엔세계정상회의 결과문서에서는 the responsibility to protect its populations 으로 표현되어 있음.
* 국제연대위원회 원문 http://blog.peoplepower21.org/International/40500 |
복지국가에 대한 7가지 오해와 진실 |
한국은 복지국가인가 (복지국가 2강 후기) |
느티나무 |
2011.3.28 |
3월 14일부터 [복지국가에 대한 7가지 오해와 진실] 강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강좌는 복지국가에 대한 막연한 오해나 두려움을 넘어, 복지국가를 통해 시민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복지국가의 구체적인 현실을 통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서구의 복지국가를 넘어서는 한국형 복지국가에 대한 시민의 상상력을 넓혀가고자 합니다. 2강의 후기는 자원활동가 김현민 님이 작성해 주셨습니다.
‘숫자는 거짓말을 안한다. 그러나 거짓말쟁이들은 숫자를 좋아한다.’라는 말이 있다.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 또 누가 어느 시점에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숫자는 우리에게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전해준다. 김연명 교수는 한국의 2011년 사회복지비 구성 도표를 통해 정부가 주장하는 복지국가의 실체(?)를 명쾌하게 드러내었다. 다양한 수치들 속에 숨겨진 진짜 이야기들이 강의 내내 이어져 갔다.
복지예산, 역대최고?
이명박 대통령은 작년 연말, 보건복지부의 새해 업무보고를 받고 “정부의 복지예산은 매년 늘어나고 있으며, 내년 복지예산은 역대 최대”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참조한 정부재정 기준 한국의 사회복지비 구성이다. 이를 살펴보면, 2011년 정부재정 중 복지재정은 모두 86조3천929억원 가량이다. 전체 재정이 309조원 가량 이므로 정부 총지출 대비 복지재정 비율은 28% 가량이다. 그렇다면 이것으로 오롯이 한국의 복지 성격을 파악할 수 있을까? 기초생활보장의 지출 구성비를 살펴보자. 예전에 영세민들에게 쌀과 생활비를 주던 생활보호제도를 말한다. 2011년 예산액이 7조2천억원 가량이다. 이중 4조원 정도는 절대빈곤층인 기초생활보장 대상자에게 돌아간다. 그 대상자는 4인 가족 기준 소득 160만원 미만이다. 7조2천억원 중에서 4조원 가량은 의료비이고 나머지 3조2천억원 가량이 생계비로 나간다.
이 돈이 과연 많은 것일까. 일단 그 규모는 복지비 전체 규모에서 비율로 크다. 대상자 규모는 160만명으로 잡고 있다. 그러나 통계분석을 해보면 대략 400만 정도가 절대빈곤층으로 나온다. 160만명을 제외한 240만명은 소위 복지 사각지대에 있다. 이와 같이 한국의 상황이 가지는 특수한 특징들은 의료비용과 기타 사회정책 지출이 .크고 노인에 대한 지출이 작은 점들을 꼽을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가난한 사람을 많이 돕는 형태인걸까? 그렇지 않다. 다른 부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것일 뿐이다. 한국은 담보형태를 제외한 주택부문 전혀 지출을 하고 있지 않다.
이렇게 복지 지출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연금지출, 임대주택, 건강보험료 등이다. 정부의 산출은 86조원 가량이지만 여기서 차감과 추가 요소를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복지비 국가 지출은 100조원(30%) 가량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 비율은 별 의미가 없다. 복지재정을 이야기 할 때 어느 항목을 집어넣고, 빼느냐에 따라 규모가 틀려지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86조원이 정부 총지출 대비 복지재정의 28%를 차지한 것으로 보면 복지 재정이 적지 않은 것 같지만, 이것은 국내용일 뿐이다. 국제적으로 비교 가능한 GDP대비 사회복지 지출 비중을 나누면 우리나라는 7.5% 정도이다.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2010년은 약 10% 가량이 될 것으로 보인다. 28%냐, 7.5%, 10%냐는 분모의 차이다. 어떤 지표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냐에 따른 차이인 것이다.
복지국가에 대한 대통령의 위와 같은 언급은 그렇게 인식할 만한 근거가 있기는 하지만 수준의 차원에서 고려한다면 여전히 받아들이기 불편한 부분들이 있다.
무엇을 복지국가라고 하는가
복지국가에는 몇 가지 지표가 있다. 우선 ‘국민복지기본선(national minimum)이 보장되는가’이다. 현대복지국가의 토대를 만드는데 기여한 영국의 베버리지 보고서(1942)의 기본 사상이기도 한 이 지표는 그 사회가 이룩한 문명의 수준에서 최저의 삶을 공공부문이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 메시지이다. 소득, 의료, 주거, 교육 등에서 최저생계를 보장(생존권)하고, 사회적 권리로서의 복지를 제공(국민기초생활보장법 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지표에 근거한다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유럽과 같은 형태의 완벽한 시스템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세팅은 됐다는 것이 김연명 교수의 주장이다.
두 번째 지표는 ‘사회적 위험에 대처하는 제도가 구비되어 있는가’이다. 노령, 질병, 산재, 실업, 출산, 빈곤 등에 대한 위험 대비책이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한국은 건강보험, 국민연금 등 웬만한 사회복지제도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그 내용, 질의 차이가 있다. 사각지대가 많고 급여수준이 높이 않다는 문제가 있다. 현금수당 및 사회서비스 제도가 약하다. 선진국 중 아동수당이 없는 나라는 우리나라 뿐이다.
세 번째 지표는 ‘복지비 지출은 어느 정도 되는가’이다. GDP 3%, 5% 정도면 복지국가의 시작단계, 20%면 성숙된 복지국가란 설이 있다. 20% 이상 국가는 전 세계에서 10개국 내외이다. 김연명 교수는 개인적으로 5%가 넘고 제도가 셋팅되면 시작단계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제도가 셋팅되면 자기발전논리에 따라 그 비율은 계속 늘어난다. 2000년 초반 건강보험이 10조원 규모였는데 10년 만에 30조원이 된 경우만 봐도 그렇다. 복지제도 성숙으로 인한 자동증가 가능성이 높다. 특기 연금지출이 늘어나기 때문에 10%를 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복지국가인가?
한국이 복지국가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의는 학자들 사이에서 꽤 오래도록 진행되어 왔다고 한다. 김 교수는 한국이 초기 복지국가의 진입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를 뒷받침 하는 국내외 학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하였다.
일본 동경대학 다케가와쇼고 교수는 1998년 이후 한국은 복지국가 형성기에 들어갔다는 입장이다. 싱가포르 국립대학 미쉬라 라메스 교수는 한국이 초기적 형태의 복지국가라고 진단한다. 그는 “현재 우리가 한국에서 목격하고 있는 것은,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새로운 복지프로그램이 도입되지 않아도 인구고령화와 복지프로그램의 성숙으로, 끊임없이 팽창하게 될 ‘초기적 형태의 복지국가’(an embryonic welfare state)이다”고 말했다.
국내학자들 중에서는 서울대 송호근 교수와 성균관대 홍경준 교수가 복지국가의 태동 단계라고 보고 있다. 이들은 “우리는 적어도 제도적으로는 ‘복지국가’의 초기단계에 돌입했으며 복지제도의 발전을 촉진할 수 있는 사회적 요인들이 과거에 비해 훨씬 늘어났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말하자면, ‘본격적인 복지국가’에 도달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될 터이지만, 복지국가를 향한 시동은 이미 걸었다고 판단 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에 덧붙여 후진국에서 복지국가로의 진입 가능성을 말한 바 있다. 아시아권에서 복지국가로 진입한 유일한 나라는 일본이고, 2000년대 초반을 넘어서며 한국의 복지제도 발전 수준은 아시아권에서 일본 다음의 위치를 차지한 점, 전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최근에 우리나라와 같이 국가복지의 팽창속도가 급격히 진행되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을 들어 한국은 세계 2차 대전 이후 후진국에서 출발해 복지국가로 진입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로 볼 수 있다고 한다.
외국의 학자들 가운데 홍콩대학교의 이안 홀리데이 교수는 한국은 아직 복지국가로 이동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한다. 그는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사회복지 개혁은 어느 정도 이뤄졌으나 이것이 동아시아의 생산주의적 복지체제를 벗어나 복지국가로의 체제이동(paradigm shift)을 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김 교수는 “한국은 금융위기 이후 동아시아의 생산주의적 복지체제를 넘어섰다. 그리고 생산주의 복지체제론은 한국 복지체제의 새로운 발전적 흐름을 해석하는데 이론적 설득력을 잃어버린 것으로 보인다”고 맞받은 바 있다.
이같은 논쟁에 대해 맨체스터 대학의 폴 와일딩 교수는 한국은 복지국가적 특성과 비복지국가적 성격을 모두 갖고 있다는 중립적 입장을 내놓았다. 그는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의 사회복지발전은 인상적이며, 한국은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생산주의적 복지체제와 복지국가의 두가지 특성을 갖고 있는 일종의 혼합형”이라고 밝혔다.
짚고 넘어가야 할 개념들
김 교수는 에스핑 엔더슨의 복지에 관련된 개념들을 소개하기에 앞서 복지국가를 유형화는 것에 대한 의의를 설명하였다. 유형화된 틀을 통해 특징을 잡아낼 수 있게 되며 이것은 10년 뒤 우리나라가 어떤 유형의 복지국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밑바탕을 그릴 수 있게 한다.
에스핑 앤더슨은 복지체제(welfare regime)란 국가, 시장, 그리고 가계(가족) 사이에서 복지생산이 배분되는 방식으로 정의하고 복지체제를 세 가지로 분류했다.
이러한 분류의 우선 탈상품화(de-commodification)이다. 탈상품화란 복지를 통해 시장에 의존하지 않고 생계를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실업수당, 연금 등을 사회적 위험에 노출됐을 때 시장에서 노동력을 거래하지 않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실업수당이 월급의 90%라면 노동자는 실업을 걱정하지 않는다. 사용주도 해고에 부담이 적다. 탈상품화 정도가 높을수록 노동자들이 시장에 대응할 힘이 생긴다. 탈상품화가 높으냐 아니냐는 노동자들에게 중요하므로 그 사회의 계급관계를 판별하는 중요 지표가 되기도 한다.
그 다음 계층화(stratification)이다. 계층화는 복지제도가 불평등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조합주의가 대표적이다. 직종별 사회보험방식은 노동시장에서의 지위를 복지제도가 그대로 유지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사학연금을 받는 교원들은 241만원(2008), 공무원연금은 210만원(2008)을 받는데 반해 국민연금은 26만원(2010)에 불과하다. 노동시장에서 좋은 위치를 차지하는 사람들이 은퇴 이후에도 연금을 더 많이 받는 것이다. 복지제도라고 하면 빈곤을 줄이고 계층을 통합하는 것이지만 어떤 복지제도는 계층을 나누는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다. 공공부조를 받는 층과 일반제도의 수혜를 받는 계층간의 구별이 보이는 이중주의(dualism)도 계층화에 포함된다.
일단 이 두 가지 분류를 유형화해 OECD 20여개 국가에 대비해 보니, 그룹을 형성했다. 탈상품화의 정도가 높고, 계층화 유형이 없는 나라는 스웨덴/핀란드가 대표적이었다. 이를 사민주의 복지체제(Social Democratic welfare regime)라고 부른다. 탈상품화의 정도가 높으면서 계층화의 유형이 직종별 사회보험제도와 같은 지위차별화(status segmentation)로 정착된 나라는 독일/프랑스 등이었다. 이를 보수주의/조합주의 복지체제(Conservative/corporatist welfare regime)라고 부른다. 탈상품화의 정도가 낮으면서 계층화의 유형이 공공부조 수혜자와 일반제도 수혜자로 나뉘는 이중주의(dualism)가 정착한 나라는 미국/영국 등이었다. 이를 자유주의 복지체제(Liberal welfare regime)라고 부른다.
이후 탈가족주의(defamilialization)가 복지체제 분류의 마지막 기준으로 포함된다. 탈가족주의란 가족의 보호 영역을 국가화 시장이 대체하는 것을 말한다. 국가를 통한 탈가족주의는 보육서비스가 공공보육시설을 통해 제공되는 것을 말한다. 시장을 통한 가족주의는 보육서비스를 시장을 통해 구매하는 경우다. 북유럽 국가들은 공공보육이 중심이었다. 중부/남유럽 국가들은 보육을 가족 내에서 해결하며 여성 취업률이 대단히 낮다. 영미국가들은 민간보육시설이 중심이었다. 탈가족주의 지표를 통계 분석하니 역시 세가지 유형으로 그룹핑 됐다. 북유럽은 공공보육, 중부/남유럽은 가족이, 영미는 시장이었다. 이 지표를 앞서 지표에 넣어도 세 가지 유형 구분은 변함이 없었다.
한국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렇다면 이 복지국가의 세 가지 유형을 기준으로 볼 때 한국은 어떤 모델일까? 또 앞으로 10년 뒤에는 어떤 유형으로 가게 될까? 이에 대해 학자들은 다양하고 상이한 주장들을 펼친다. 조영훈 교수는 “한국은 영국, 미국과 같은 자유주의 복지체제의 특징을 갖고 있으며 앞으로 이런 복지국가로 이동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공공부조가 발달하면서 민간보험시장 역시 발달한 특징을 지목한 것이다. 실제로 국내 4대 보험 총액은 약 65조원, 개인보험 역시 60조원에 이른다. 민간보험의 팽창 속도는 세계 5위권이다. 공공보험에 대한 신뢰가 약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남찬섭 교수는 “한국은 유럽 대륙의 독일과 같은 보수주의 복지체제의 특징이 드러나 있고, 이 방향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회보험의 사각지대가 많이 보이는 등 계층화가 눈에 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우리나라가 여러 복지체제의 특징이 결합된 혼합형적 특징을 가질 것으로 내다본다. 최근 일어나는 4대 보험 통합 논의 등은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이념에 가까운 반면 복지 사각지대 등의 계층화도 동시에 보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가능성으로 남미형 복지체제로 갈 가능성도 높다고 지적했다. 왜냐하면, 비정규직 때문이다. 지금처럼 비정규직이 전체 근로자 중 5할에 이른다면, 이들은 퇴직금을 받는 비율도 정규직의 20%에 불과하고, 10명중 6명은 실업수당도 못 받으며, 절반은 직장 국민보험의 혜택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건강보험도 마찬가지다. 일등시민과 이등시민으로 갈라져 노동시장 핵심계층은 복지혜택, 나머지 집단은 복지에서 배제되는 ‘분리된 복지국가’(divided welfare state)갈 가능성이 있다. 스웨덴은 고사하고 소박하게 말하자면, 남미로만 안가도 다행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2011년 현재 우리나라는 복지국가 초기 단계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야당의 무상복지가 논쟁이 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야당의 주장대로 무상의료, 무상급식, 무상주택에 대학 등록금 반값이 실현된다면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에 가까워 질 것이다. 그러나 반대 세력이 집권하면, 복지가 이미 사회적 화두가 된 상황이므로 안 할 수는 없지만 다른 행로를 찾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이미 지금 한국 사회는 복지논쟁이 붙어서 누가, 어떤 세력이 집권하던지 복지 정책을 벌이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은 유권자의 판단에 달려있다. 물론 아무것도 안한다면, 특히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남미형으로 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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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에 대한 7가지 오해와 진실 |
김연명 선생님이 소개하신 책과 논문 안내(복지국가 2강) |
느티나무 |
2011.3.24 |
[복지국가에 대한 오해와 진실]강좌의 두번째 강의가 3월 31일(월)에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연명 선생님의 강의로 진행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열정적이면서 시원시원한 강의 덕분에 복지국가에 대한 이해를 한층 더 넓힐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 강의 중에 소개하신 책과 논문을 안내해 드립니다.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 한국 복지국가 성격논쟁』 제1권. 김대중 정부에서 시행되었거나 개혁된 사회복지정책의 성격을 어떻게 볼 것이며, 이 정책들이
한국의 사회복지체제 형성에 미칠 영향은 무엇인가를 학술적 입장에서 다소 논쟁적으로 조망하였다. 한국 사회복지정책의 성격, 김대중
정부 사회복지정책의 신자유주의론,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비교, 발전국가 사회복지 패러다임의 붕괴와 김대중 정부의 과제 등의
내용을 수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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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참여정부의 핵심적 복지담론이었던 사회투자에 대한 학계의 평가와 논쟁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2002년에
펴냈던 「한국복지국가성격논쟁Ⅰ」은 김대중 정부에서 실제 시행된 복지정책들을 복지국가론의 관점에서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이
담겨져 있는 반면 이 책은 노무현 정부가 내세운 사회투자담론이 한국 사회의 복지발전과 사회발전에 유용한 전략인가에 대한 학계의
논쟁을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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