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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명 | 강좌후기 | 글쓴이 | 날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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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숍: 소심한 사람들의 유쾌한 꼼지락 – 소리를 내면 세상이 바뀐다 | [소심한 사람들의 유쾌한꼼지락] 1강, 소심해도 괜찮아 그냥 한 번 꼼지락 | 느티나무 | 2012.11.5 | |||
'소심한 사람들의 유쾌한 꼼지락 : 소리를 내면 세상이 바뀐다' 1강 (10/29, 월)
1.
매우 흥미롭지만 한편으론 막연한 제목 탓이였는지,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질문을 동시에 받았던 강좌가 드디어 개강했다.
이 강좌 는 <민주주의학교>부류의 강좌에서는 몇 주 앞서 시작한 <평화교육워크숍>에 이어 처음으로 시도되는 워크숍 형태의 강의이기도 하다.
약 20명 정도의 인원이 워크숍 장소인 3층 중회의실에 모였다.
이들을 맞은 것은 난데없는 돗자리. 그러나 다들 주저 없이 신발을 벗고 돗자리에 둥글게 마주보고 앉았다. 그리고 언제 시작을 알리는 멘트도 없이 서로의 안부를 묻다가 자연스레 워크숍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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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중남미 역사와 문화 | [문학으로 읽는 중남미 역사와문화] 1강, 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 | 놀이정신 | 2012.11.3 | |||
[인문학교] 문학으로 읽는 중남미 문화와 역사, 1강(10/31) 구광렬지음 | 실천문학사
너에게 묻는다 1. 강의를 맡아주신 분은 구광렬.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기도 하지만 사실 그는, 시인이다. 한국어로 쓰기도 하지만 주로 스페인어로 시를 쓰는, 그리고 그 스페인어 시를 스스로 한국어로 번역도 하는, 아주 특이한 사람이다. 이토록 특이한 분이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강의를 했다. 그것도 맨발로...
2. 첫 강의는 ‘체게바라의 홀쭉한 배낭’을 읽고 모이는 자리. 체게바라가 볼리비아 정부군에게 사살 당할 당시 소지하고 있었다는 배낭 안에서 발견된 초록노트 그리고 그 안에 필사된 69편의 시들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의 주요 내용이다. 그 69편의 시는 총 4명의 시인들 작품이었다. 칠레 출신의 파블로 네루다, 페루의 세사르 바예호, 쿠바의 니콜라스 기옌, 스페인의 레온 펠리뻬. 책의 중간 중간 그들의 시가 실려 있어 체게바라가 게릴라전을 펼치던 전장에서 어둠을 밝혀가며 읽고 필사했던 시들을 함께 감상할 수 있던 시간이었다. 체게바라가 웬만한 월드스타 못지않게 유명한 탓도 있고 전에 평전을 읽었던 기억도 있고 해서 책의 내용이 새삼스럽진 않았지만 문학과 혁명의 그 이상하리만큼 끈끈한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 듯하다. 아니, 그저 상상을 해 보는 거다. 하루하루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장에서 배낭에 시집을 넣고 다니는 마음이란 어떤 걸까. 피곤한 육신을 누이고 쉬게 하는 그 짧은 휴식의 순간에 시 한편을 노트에 베껴 적는 마음이란 대체 무엇인가.
세계인들의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있긴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안티-체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도 많은 모양이다. 그 중에서 책에 소개된 유명한 안티-체 인사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칼럼니스트 후안 호세 세브렐리. 그는 다각도에서 체를 비판하고 있다. 그중 한 대목,
“게바라주의는 마르크스주의 혹은 정통사회주의와 충돌하는 것이다. 체게바라는 자연스런 해방을 교조적 카리스마로, 인민동원을 개인적 소집 차원에서, 사회민주주의를 정치적 독재로, 빈자와 노동계급을 농부로, 객관적인 조건들을 주관적인 의지로, 오로지 선진사회에서만 가능한 사회주의를 가장 가난한 국가에서 실현시키려 했다.”
내용이 어려워 몇 번 반복해서 들여다보니, 결국 이 비판의 많은 부분이 체의 개인적인 매력과 카리스마에 대한 것들이라 가벼운 웃음이 났다. 인민동원을 개인적 소집 차원에서 이끌어냈다는 비난의 부분이 무척 우습다. 게릴라 시절 그가 지나가면 사람들이 농기구를 들고 그의 뒤를 따라나섰다고 하는데, 이렇게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게 잘못이라고 지적하는 이 남자의 얼굴이 문득 궁금해졌다. 더욱 가관인 것은 객관적인 조건들을 주관적인 의지로 바꾸고 변화시키려 했다는 부분... 객관적인 조건들을 오로지 자신의 신념과 의지로 넘어서려 하는 게 게릴라들의 본분 아니던가, 그게 바로 혁명의 골자가 아니던가 말이다. 천식을 앓으면서도 평생 싸움의 현장을 누볐던 게바라의 착한 눈매에서,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밀림 속을 몇 십일씩 걸어다니며 투쟁했던 호치민의 깡마른 살갗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었던 건 그들의 지닌 그 강인한 의지와 정신력이 아니던가. 체를 향해 정치적 바보라 칭했다는 이 인사를 향해 더 이상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일은 여기서 그만 두는 게 오히려 체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싶다.
문학과 혁명으로 체를 그려내는 책의 내용 때문인지 문득 요즘 읽고 있는 다른 책이 떠오른다. 책과 혁명에 관해 쓴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이란 책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 책을 쓴다는 것은 책을 다르게 읽는다는 것과 책을 다르게 쓴다는 것이고 이 행위는 오로지 그 행위 자체로서도 이미 혁명임을 11-12세기에 걸쳐 일어났던 ‘중세해석자혁명’과 ‘루터의 대혁명’, 이 두 사건의 재조명을 통해 밝히고 있는 책이다. 어려운 논증의 과정을 거치지만, 거칠게 설명하자면 이런 거다. 신의 말씀의 왜곡되어 인간의 삶을 옭아매고 있던 중세에 루터가 한 일은 성경을 되풀이해서 읽는 행위, 오로지 그것 하나였다. 그 행위 하나를 통해 세상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 성경과 신의 말씀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치는 과정, 그것은 진정한 혁명의 행위였음을... 그래서 책을 읽는다는 건 곧 혁명이며 그런 불가능한 책읽기를 우린 어렵더라도 읽어내야 한다는 것.
체게바라도 그랬던 게 아닐까. 시를 읽으며 그 시가 자신의 눈앞에서 목격하는 낮은 자들의 남루한 삶과 별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던 날들, 시를 읽으며 분노하고 눈물짓던 그 시간을 자신의 삶에서 지워버리지 않으려 발버둥치던 순간들. 그의 배낭에 들어있던 시집은 학문과 예술의 한 갈래로서가 아니라 그저 가지지 못한 자들, 너무나 쉽게 모든 걸 빼앗겨야 하는 이들의 삶 한 조각이었는지도 모른다.
3.
그러고 보니 시를 찾아 읽은 지도 아니 서점에서 시집을 사지 않은 지도 너무 오래되었다. 젊은 날 읽었던 그 많고 많은 시 중에서 오늘은 유독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가 떠오른다.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결국 소설은, 시는, 문학은, 책은, 나에게 ‘묻는’ 놈들이다. 나의 부끄러움을 가리키며 말이다.
글 : 박현아 자원활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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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저자와 함께 읽는 한국 근현대사Ⅱ | [한국근현대사Ⅱ] 8강, 진주 외공리 산 속에 묻힌 사람들. | 우연필연 | 2012.10.31 | |||
10.18일에 있었던 한국근현대사 II 강좌 후기입니다. 늦은 후기 죄송합니다 ^^; 들어가며 오늘 강의는 이선생님께서 지방출장 다녀오신 관계로 조금 늦게 시작되었습니다.(그래봐야 5분정도 늦으셨습니다^^;) 눈에 띌 정도로 지난 시간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아카데미에 나와주셨습니다. 세어보니 대충 25분 오셨는데 남성은 저와 자원활동가 선생님 포함 여섯 명이었습니다. 다음 학기 역사 강좌에는 많은 남성분들이 관심 가져주시길 기대합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 다루지 못한 토지개혁 부분을 마무리하고 남북전쟁(6.25)과 관련한 쟁점들을 이야기 나눠보았습니다.
위안부의 그림자 흔히들 ‘위안부 문제’ 하면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군에 강제로 동원된 위안부 여성들을 떠올리실 겁니다. 그러나 6.25 시절 한국군에서 기생촌을 운영하였는데 이 때 위안부에 동원되었던 여성들이 다시 동원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베트남 전쟁 시기 현지 여성들을 중심으로 우리 군대에 위안부와 유사한 형태의 조직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쩌면 위안부 문제는 과거에 벌어진 일제의 만행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를 포함한 전세계에서 자행되고 있는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출처 : http://www.koreahealthlog.com/719
북한사(史)? 그동안 우리는 한반도 3.8선 이남의 역사를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로 배웠습니다. 국사책은 8.15 해방 이후부터 한반도 남쪽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중심으로 근현대사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북한사는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 뿐 아니라 대부분 북한사를 알지 못하며 부정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해볼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헌법은 우리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 헌법을 따른다면 8.15 해방부터 지금까지의 북한 역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북한의 역사와 관련된 논쟁은 세 가지 정도로 말할 수 있습니다. 1.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에서 북한사를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할까요? 2. 남한에 진주한 미군은 해방군이고 소련군은 점령군일까요? 당시 미군은 직접통치를 하고 소련군은 간접통치를 했다고 합니다. 미군의 역할은 근현대사를 통해 잘 알고 있지만 소련군의 경우에는 잘 알지 못합니다. 당시 북측에 진주한 소련군의 입장은 “조선의 새로운 국가는 조선인이 건설하는 것이다.” 였다고 합니다. 대신 정치위원회 설립 시 소련이 강제로 민족주의자와 공산주의자를 1:1 비율로 구성했다고 합니다. 상대적으로 소수였던 공산주의자에게 유리한 조건인 것입니다. 3. 사회주의 혁명인가? 당시 북측에서는 조선노동당 창건을 전후한 1949년 8월부터 10월 사이의 사건들을 사회주의 혁명이라 하지 않고 인민민주주의 혁명으로 불렀다 합니다. 당시 레닌, 스탈린 등이 주장한 ‘사회주의 혁명’ 은 일반적으로 다음의 네 가지 조건을 갖춰야 했습니다. 첫째, 노동자와 농민이 연합한 정권, 둘째, 사유재산 불인정, 셋째, 상공업을 허용하지 않을 것, 넷째, 토지개혁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그 당시 북측은 토지개혁만 실시했기 때문에 사회주의 혁명이라 부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1970년대 이후 사회주의 혁명으로 규정한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왔다고 합니다.
북한의 토지개혁 북한의 역사는 우리 학교에서 다루지 않으며 일반 대중이 접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북한의 토지개혁은 북한 정권 수립 시기와 맞물려 있기에 우리들은 그 내막을 잘 알지 못합니다. 몰수대상은 일본인의 토지와 일본의 국유지, 친일파와 지주들의 토지였습니다. 지주들의 경우 5정보(1정보: 3천평)이상을 소유한 지주들의 토지를 전부 몰수했습니다. 법령 시행 전까지 기부하면 상관없기 때문에 지주들이 5정보가 안될 정도로만 남기고 다 기부하여 토지 강탈을 면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농사짓는 농민들만 분배대상이었으며 토지개혁에 대한 저항은 미미했고 상당수의 지주들이 월남했다고 합니다. 당시 종교단체의 토지도 몰수했기 때문에 종교적인 기반이 약화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특정 종교나 마을 지도자를 중심으로 잘 운영되던 마을 공동체가 토지개혁을 둘러싸고 계급 간 갈등으로 비화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한국전쟁? 남북전쟁? 1950년에 발발한 남측과 북측의 전쟁을 우리들은 6.25, 혹은 6.25사변, 한국전쟁으로 말합니다. 우리는 한국전쟁으로 통일했고, 북측은 조선 전쟁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민족의 비극인 한국전쟁에 대해 생각해볼 점들이 있다고 합니다. 우선 전쟁이 6월25일에 일어났는지의 문제입니다. 이선생님 말씀에 따르면1950년 6월 25일 전에도 38선을 중심으로 소규모 전투가 빈번하게 있었다고 합니다. 그 다음은 한국전쟁 혹은 남북전쟁이라 불리는 이 전쟁을 누가 시작한 것으로 볼 것인지의 문제입니다. 이 전쟁은 국제전으로 확대되었으며 총 21개 국가가 참여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 남측을 도와준 16개국과 남북, 그리고 중국, 소련, 일본 도합 21개 국가입니다. 전쟁 전 이승만 대통령은 북진통일을 주장했고 김정일 또한 남진통일을 주장했다고 합니다. 49년 당시에도 소규모 전투가 빈번했다고 합니다. 전쟁의 시작을 6.25로 보는 것이 문제 있다고 이선생님께서는 말씀하셨는데, 이 대목에서 저는 약간의 의문이 들었습니다. 비록 6.25 전에 소규모 전투가 계속되었다 해도, 만일 북측에서 6.25일에 맞춰 대대적으로 탱크와 무기를 준비하여 한꺼번에 밀고 내려왔다면 그때부터를 전면적인 전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날 연평도 사건과 같은 북측의 여러 군사적 시도들을 도발이라고 하지 전쟁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전투의 양상이 점점 확대되어 시작 시기를 가늠하기 어려운 경우는 있을지 몰라도, 대규모 군대를 동원해 전면적으로 밀고 내려왔다면 그때부터를 전쟁의 시작으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요?
이 땅에 전쟁이 남기고 간 깊은 상처들 하지만 전쟁을 이데올로기적인 시각이 아닌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면 우리가 그동안 보지 못한 참상들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진주 외공리에서 600여구의 유골이 머리에 총탄자국이 난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당시 유골의 의복에 달린 명찰로 경기도의 모 상고 학생도 포함된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대부분은 부녀자였다고 합니다. 한국전쟁 당시 누가 이들을 정확히 언제 죽였고, 이들이 왜 죽었는지 지금도 밝혀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한국전쟁의 미해결 사건들이 많다고 합니다. 한국전쟁 초기 남한 정부에서는 평택 이남의 형무소에 있는 사상범을 모두 처형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합니다. 보도연맹에 가입한 1500명이 처형되고 도합 3천여명이 처형된 사건이 보도연맹 사건입니다. 또한 전쟁 중에 많은 피난민들이 군인들에 의해 학살당했습니다. 한편 전쟁 초기 북측이 서울을 점령했을 때 잔류파 국회의원 중 54인의 국회의원이 전향했다고 합니다. 잔류파 국회의원들 중 김규식, 조소암과 같은 민족주의자는 자의로 남고 나머지는 한강다리가 폭파되어 못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인민군의 공작도 있었지만 전향한 사람들은 공산당 지지성명을 했습니다. 반면에 일반 민중들은 살기위해 부역을 했습니다. 이들은 훗날 북진할 때 공산당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처형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부역 혐의로 민간인을 학살한 사건들이 오늘날 많이 밝혀졌는데, 고양시 금정굴에서는 1천여명의 민간인이 부역혐의로 굴 안에서 처형되었고 그 유골이 발굴되었습니다. * 외공리 유골들. 출처 ; http://blog.ohmynews.com/malddug/
마치며 이선생님께서는 우리가 이데올로기적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데올로기가 아닌 전쟁의 참상 그 자체를 놓고 일반 백성, 시민들의 입장에서 바라보았을 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이데올로기적인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기에 아직도 이 땅에 많은 이산가족들과 여러 피해자들이 고통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왜 죽었는지도 모르는 수많은 유골들이 이 땅 어딘가에 묻혀있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인간 생명에는 이데올로기가 없습니다. 진정한 역사는 이데올로기가 아닌 휴머니즘으로 쓰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다음시간에는 답사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해방 직후에는 북촌이 정치적으로 중심지였다고 합니다. 여운형, 박헌영 등이 건국준비위원회로 활동하던 장소를 방문해 그들의 자취를 짚어보고 그 후에 박정희 대통령 시절과 관련된 청와대 주변의 여러 장소들을 둘러보는 코스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날 강의 후에는 강의실에서 간단한 안주와 함께 맥주를 마시며 뒤풀이를 했습니다. 많은 참여자분들이 남으셔서 열띤 토론을 했는데, 여러모로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언젠가는 강의실 밖에서도 이러한 자리가 마련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10월 18일 강좌 후기를 마치고자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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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위기와 경제민주화 | [세계경제위기와 경제민주화] 3강 장석준, 99%, Too big to fail | Oversmiler | 2012.10.30 | |||
3강, 99%, Too big to fail
[2012 강좌 후기 ③] 신자유주의가 답이 아니라면 우리의 미래는 어디로?
장석준 진보신당 상상연구소 부소장의 강의는 2008년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발생한 금융위기가 그 이후 어떻게 세계 전체에 영향을 미쳤고, 정치 사회적 변혁을 촉발시키게 되었는지를 소위 "1968 세계혁명"이라고도 불리는 68년 당시의 상황과 비교하며 설명한다. 이 강의에 귀를 기울이다보니, 1968년의 상황은 물론 2008 서브프라임 사태와 2011 아랍의 자스민 혁명 당시에 그 사태들이 인류와 역사에 주는 의미, 영향에 대해 무관심 했던 나를 돌아보게 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경제의 새로운 주류로 등장한 케인즈주의 경제는 44년 발동된 브레턴우즈 체제와 더불어 "자본주의의 호황기"를 누리며 30년 동안 승승장구한다. 이 기간 동안 한국을 비롯한 신생독립 국민국가들이 다수 생겨나고 유럽에서는 복지국가가 등장했으며, 노동자조합의 세력도 날로 번창하며 소위 "진보의 시대"가 꽃을 피운다. 그러다가 자본과 노동의 세력이 모두 막강해진 70년대에, 장석준 부소장에 따르면 이 두 세력간의 전면 대결이 불가피해졌고, 이 대결에서 자본의 세력이 승리함으로써 신자유주의가 등장하게 되는 배경이 된다고 그는 해석한다. 자본과 노동간의 '권력투쟁'이 신자유주의를 촉발하게 되었다는 정치, 사회학적인 해석은, 선뜻 수긍이 가지는 않았지만, 흥미로운 해석이라고 생각되었다.
1971년 닉슨쇼크로 말미암아 브레턴우즈 체제가 붕괴되면서 불안정성과 휘발성이 증폭된 경제는 영국의 외환위기, 프랑스 미테랑정부의 개혁 실패, 라틴아메리카의 외채위기, 동아시의 외환위기, 미국의 닷컴버블 붕괴 등 수많은 금융 및 경제위기를 촉발시킨다. 이 과정에서 자본주의는 노동과 남반구를 제압하는 금융자본주의가 주도하는 시대로 돌입한다. 그런데 금융세력의 경제지배, 민영화 등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대중자본주의"이론으로 설명되는, 노동자 세력들의 동의 과정이 있었다고 한다. 대중이 스스로를 자본가라고 여기고 자신도 주식투자, 부동산투자를 통해 큰 돈을 벌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안고 말이다.
그럼 이제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후 전세계에서 일어난 변화들을 살펴보자. 2009년 미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아이슬란드의 경제가 붕괴하고 영국 대학생들의 등록금 인상 반대시위 ,칠레에서의 시위가 일어나고 튀니지에서 한 대졸 무직자의 분신을 계기로 일어난 민주화 열풍이 이집트, 리비아, 시리아, 예멘 등 아랍세계로 퍼져 나갔다. 또한 금융위기의 여파로 재정위기에 몰린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 남부유럽에서도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연이어 일어났다. 일련의 사건들의 결과로 아이슬란드에서는 긴축정책을 거부한 좌파-좌파 연정이 들어섰고 아랍 일부 국가에서는 독재정권이 무너졌으며 그리스에서는 '급진좌파연합'이 2차 총선에서 27%의 득표를 받아 제1야당이 되었다. 그리고 2011년 드디어 위기의 본산지인 월스트리트에서 "월가를 점령하라", "우리가 99%다"와 같은 금융자본에 맞서는 시위가 일어나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2008년 이후 전세계적으로 일어난 시위, 투쟁이 1968 혁명과 같은 점은 청년층이 투쟁의 중심이라는 점이다. 반면 다른 점은 68년 시기의 청년들은 안정된 일자리가 보장되어 있었지만 현재의 청년들은 일자리가 막혀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차이점은 SNS 와 같은 정보통신기술로 말미암아 권력이 수평화되었다는 점이다.
한편 "점령하라"로 대표되는 청년층 주도의 사회운동의 한계와 도전과제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대다수의 노동자, 서민, 중산층은 신자유주의를 떠받치고 있는 세력으로도 볼 수 있지만, 이제는다수의 지지를 받는 개혁을 정말로 실현시킬 수 있도록, 이들이 개혁적인 정치세력과 결합하는 소위 '정치세력화'가 필요해 보인다.
현재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2008년 금융위기 이전 폭발적인 호황과 성장이라는 화려하기 그지없었던 잔치 후에 지금은 끝이 보이지 않는 긴 불황의 터널 속에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 하에서 서민들과 중산층의 삶은 더욱 어려워지고 양극화도 계속 심화되었다. 기득권과 가진 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을 내놓기에 인색하고, 권력을 쥔 자본세력은 정치권과 노동자들의 요구를 가능한 한 외면하려고 하고 있다. 게다가 기후변화를 포함한 전 지구적인 환경위기까지 겹쳐 인류의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이다. 쉽지 않겠지만, 희망을 가지고 인류가 앞으로 매진해야 할 과제는 화폐, 금융 제도 개혁을 통해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경제 체제를 구축하도록 노력하고, 안정된 경제체제하에서 정치, 경제, 사회 전반적인 민주화를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중 각자가 정치, 경제, 사회의 문제에 대해서 자신의 일처럼 관심을 가지고 적극 참여하며 끊임없이 개혁을 이루어나가도록 서로를 북돋워주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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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교육활동가 평화교육 워크숍: 누구나 맘대로 톡톡 | [두번째 세션후기]평화교육워크숍 : 평화의 비전 세우기 | 느티나무 | 2012.10.26 | |||
지난 10월 17일 평화교육 워크숍 두번째 세션의 문이 열렸습니다. 먹을 것이 있으면 낯빛이 밝아지고 기분도 좋아 지는 법^^ 출출함을 달래니, 오늘은 어떤 평화로의 여정을 걷게 될지 궁금했습니다. 손과 손이 만난 다는 것 동그란 원에 둘러 앉은 참여자들이 한 명씩 일어나 손을 내밀며 인사를 했어요. " 안녕 (산책) 좋은 아침이야" 한 바탕 인사를 하고 나서 피티의 첫 느낌은 '아주 예쁜 삽화가 그려진 동화책이구나' 였어요. 무심코 봤으면 삽화와 글을 읽어며 아는게 병이다? 갈등의 해결 나와 국가와 세계 폭력 이후의 상황 대안 어떤 지도력 어떤 정체성 동화책에 표현된 각종 상황을 키워드를 통해 짚어 내며 각 조별로 완성한 평화의 비전 꽃이 어떤가요? ^^ 각각의 생각을 협의를 통해 하나로 모으기에 시간이 참 많이 걸린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듬성듬성 비어있는 꽃 잎은 앞으로 네번의 세션이 진행되는 동안 채워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모든 결과물들은 워크숍 내내 느티나무홀 벽에 붙여 둡니다.) 10월 27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필리핀에서 오는 레아씨와 함께 웃고 뛰고 노는 세번째 시간을 기대하며! 소략한 2번째 세션 후기를 마칠게요. 소감은 참여자들 각자가 자유롭게 나눌 수도 있겠지요? ^^ 그럼, 다음 시간에 뵐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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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위기와 경제민주화 | [세계경제위기와 경제민주화] 2강 정세은, 유럽 재정위기와 복지의 미래 | Oversmiler | 2012.10.23 | |||
2강, 유럽 재정위기와 복지의 미래, 충남대학교 정세은 교수
경제학 용어는 외계 언어처럼 어렵습니다. 강의 서두에서 PIIGS라는 단어를 듣고 '읭? 웬 돼지?'라고 생각했던 경제바보는 유럽의 재정위기라는 말을 처음 딱 들었을 때, '과도한 복지지출'과 '방만한 재정 운용' 이 정도를 떠올렸습니다. 그런데 정세은 교수는 단호히 "복지 때문이 아니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의 재정위기는 사실 유로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은 나라라 볼 수 있어, 조기에 잘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유로존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도적인 두 나라, 독일과 프랑스는 그리스의 채권을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하지 못했고, 결국 이 불똥이 아일랜드와 포르투갈로 튀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의 경우에도 1997~8년 이러한 재정위기를 겪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국민들은 열심히 금도 모았지만, 결국 이를 극복하게 해주었던 중요한 두 가지 동력은 '원화환율의 절하'와 '수출의 증가'였답니다. 그러나 그리스는 유로존 안에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환율 정책을 쓸 수 없었고 확장적인 재정정책을 펴기도 불가능했다고 합니다. 즉, 그리스에서 촉발된 유럽재정위기의 원인은 과도한 재정지출 문제도 있지만 유로존 자체가 가진 문제가 더 컸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유로존 자체가 가진 문제는 상당부분 독일의 근린궁핍화 정책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유럽의 경우에는 임금의 결정방식이 나라마다 각자 다르며, 이러한 요인으로 인한 물가상승률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독일의 입김이 센 유럽중앙은행은 여전히 남유럽 국가들의 수출에 불리한 환율과 이자율을 적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독일은 1998년 사민당이 정권을 잡고 2년간의 좌우파 노선 투쟁 과정에서 슈뢰더가 집권하면서 우파사민주의가 득세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아젠다2010' 이른바 '하르츠개혁'이라는 개혁정책을 발표했는데, 이 주요 내용은 노동의 유연화와 사회보장의 축소, 즉 일하는 사람한테만 근로복지의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독일은 실제로 이 과정에서 노동자의 임금을 많이 낮췄고 가격경쟁력을 가지게 된 반면, 이러한 개혁을 하지 못했던 남유럽의 경우에는 실질이자율이 낮아지면서 주변 국가로부터 돈을 많이 꾸는 유인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부채가 증가하고 수출이 감소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 게다가 유로존에 가입함으로써 자본 이동이 수월해진 독일의 기업들이 자신들의 나라에 직접투자할 것이라던 기대는 실제로는 이러한 자본과 설비가 동유럽으로 집중되면서 산산조각 나고 말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 한 번 외쳐볼까요! 문제는 복지가 아냐! 그렇게 재정이 걱정되면 괜한 재벌이나 대기업들의 세금이나 왕창 깎아 주지마! 우리가 낸 세금으로 멀쩡한 4대강이나 파지마! 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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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사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 <위험사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5강 - 보이지 않는 위험, 나노기술 | 공채원 | 2012.10.20 | |||
아카데미느티나무 20102 가을강좌 [민주주의학교] 위험사회, 어떻게 살것인가 5강(10/10) 후기
나노기술이란 바이러스 보다도 작은 물질단위를 다루는 기술을 의미한다. 흔히 분자의 조합구조를 변형시키거나 원자를 인위적으로조합하여 미립자 상태로 존재시킴으로써 화합물의 반응성을 극도로 향상시키는 것을 의미하곤 한다. 한때 인기를 끌었던 은나노세탁기는 은에 원래 존재하던 살균성을 나노기술로 극대화시킨 예이다. 나노물질은 매우 작은 입자들이 덩어리지지 않고 서로 간격을 유지하고 있어 표면적이 넓어지는 효과를 가져온다. 이에 따라 단위물질당 반응성도 급격하게 커지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나노기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나노물질은 크기가 매우 작으므로 표피세포 사이를 비집고 인체에 유입되거나 심지어 세포 안으로 투과될수도 있다. 만약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나노물질은 반응성이 극도로 높으므로 인체의 활동에 장애를 초래하거나 세포를 변형시킬 수도 있다. 다행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나노기술의 경우 발전 초기부터 기술에 대한 통제의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는 것이다. 덕분에 나노기술 연구소에 사회학자가 참여여 통제의 문제를 고민하고 정부 및 환경단체의 지속적인 감시가 이루어짐에 따라 기술의 진보와 통제가 비교적 동시성 있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기술에 대한 통제의 딜레마'라는 표현을 접하곤 한다. 이는 기술 발달 초기엔 기술 자체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지지 않아 통제가 불가능하고 기술이 어느정도 발전하면 기술이 통제가능 범위를 넘어섬에 따라 통제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나노기술은 다행히 기술 발달 초기부터 기술에 대한 사회의 통제가 꾸준히 추구되고 있는 최초의 기술 분야이다. 지금 인류는 기술에 대한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통제에 목마르다. 과연 나노기술이 그 첫 성공 사례가 될지 세상은 그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강의 : 김병윤, 시민과학센터 운영위원 / 서강대 연구교수 후기 : 공채원 자원활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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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 | <진보, 다른이름으로 저장하기> 4강, 진보정치, 새로운 탄생은 가능한가 | 스피노 | 2012.10.19 | |||
아카데미느티나무 20102 가을강좌 [민주주의학교] 진보, 다른이름으로 저장하기 4강(10/15) 후기 ① 1강 <21세기 진보의 재구성> 후기 다시보기 >> 클릭 ② 2강 <21세기 진보의 재구성> 후기 다시보기 >> 클릭 ③ 3강 <21세기 진보의 재구성> 후기 다시보기 >> 클릭
이번 수업은 노회찬의원이 강의해주셨습니다. 지금 진보정의당의 창당 준비위원회에 몸 담고 있다며 소개해주신 의원님, 진보가 초창기에 정치에서 보이기 시작했을 때부터 진보진영에 있었다고 말씀하시며, 이번이 세번째 창당 준비위원회에서 일하는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노회찬의원은 학생 때는 학생운동을 했고, 그 이후에는 노동운동을 했는데, 그 후 정치인이 되겠다고 하자 주변에서 만류가 많았다고 합니다. ‘어느 당에 갈 것이냐’라는 물음에 새로운 당을 만들겠다고 하니, 더욱 자신을 아끼는 사람들의 만류가 컸다고 합니다. 지난 30년간 진보 정치 세력에서 계속 있으면서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그 속에서 이뤄낸 성취도 많다고 자평하셨습니다. 또한 노회찬의원은 작년 통합진보당 창당을 할 때부터 여러 가지로 충돌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으나 이렇게 빨리 파열음이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고, 죄송한 부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번에 심상정의원의 대선출마와 관련해서는 그래도 진보에서 대선후보가 나와서 정책이라던지 국민들에게 메세지를 전달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다 나중에 특정 후보의 지지를 표명하는 것도 한 방법이고,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셨습니다. 군사정권이 무너지고 민주와 보수의 대결은 그 의미를 잃게 되었고, 이제는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 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진보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진보를 원하는 사람이 늘어났는데, 진보 정치인들이 이런 요구와 목소리에 잘 대응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고 송구스럽다고 전하셨습니다. 요즘 새누리당도 통합민주당도 복지정책을 보면 어느 쪽이 보수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런 공약들이 과연 거짓인지, 사탕발림인지는 봐야 아는 것이겠지만, 이렇게 보수가 지지 세력을 포섭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인해, 진보세력의 정책들이 그 빛이 바래지는 일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노회찬 의원은 덧붙여서 과거에 정책을 만들 때, 조언해주고 함께 했던 사람들이 민주당 행을 택하는 것을 보면, 진보세력의 힘이 약하구나, 세력을 구축하지 못했기 때문에 저 사람들을 포용하지 못했구나 라는 반성을 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진보,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 듣는 사람들은 요즘 여러 상황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에 대해 궁금했습니다. 또 ‘진보는 정말 안되나?’ , ‘언제쯤 진보가 제 목소리를 내고, 달라진 생활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던졌습니다. 브라질은 우리보다 10년정도 그 정치의 변화가 앞서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큰 흐름들이 10년정도 빨리 진행되었으니, 우리도 진보가 집권하는 시대가 곧 오지 않겠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진보가 집권해서 생활이 달라지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노회찬의원은 앞으로 어떤 진보를 지향하는지에 대해서는 ‘브라질’의 사례를 들며 ‘다원적 민주주의’가 이뤄지는 진보여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브라질 진보세력은 다수의 원칙 속에 각자 세력이 자신이 생각하는 정책을 연구하고, 표를 가장 많이 얻은 정책을 당의 뜻으로 내세우며, 진보라는 이름 속에 여러 진보 세력이 융합되어 있다고 합니다. 진보도 여러 방면의 진보 세력이 있습니다. 이 세력들이 권력을 잡으려면 싸우는 모습보다는 다원주의에 따라 서로 협력하는 모습이 보여야 사람들도 진보세력에게 실망하거나 등돌리는 일 없이 지지를 계속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강연 : 노회찬의원 후기 : 강가혜 자원활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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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위기와 경제민주화 | [세계경제위기와 경제민주화] 1강 홍기빈, 세계경제위기의 구조와 국가의 역할 후기 | Oversmiler | 2012.10.16 | |||
세계경제위기와 경제민주화,1강, 세계경제위기의 구조와 국가의 역할,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홍기빈 소장
거울아 거울아 경제민주화가 뭐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홍기빈 소장은 오늘의 강연에서 이것 하나는 기억하라고 했다. 안데르센 동화 중 가장 똑똑한 것으로 이름난 백설공주 왕비의 거울이 실제로 있다는 점. 그 거울의 실체는 ‘주가’로 표현되는 금융시장의 평가라는 점. 그런데 영원히 깨지지 않을 것 같은 이 거울에 금이 가고 있다고 한다.
강연은 ‘경제 민주화’라는 단어의 의미가 뭔지에 대해서부터 시작되었다. 먼저 ‘민주화’란 무엇인가? 민주주의의 어원은 그리스어 ‘domokratia'로 ’demos(다중)‘와 ’kraots(지배)‘의 합성어이다. 그럼 다중이 지배자가 되어 권력을 가지는 것이 절대적으로 바람직한가? 이걸 그런 뜻으로 볼 수 있는가? 홍기빈 소장은 민주주의란 ’내가 인간으로서 자율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기 위해 필요한 만큼만의 권력을 가진다‘는 것으로 일컬었다. 한 명 또는 몇 명에게 집중된 권력을 위 이상에 부합할 만큼 재분배하는 것. 이것이 ’민주화‘라고 했다. 그렇다면 ‘경제 민주화’는 ‘경제 영역에서의 권력의 재분배’로 바꾸어 말할 수 있겠다. 홍기빈 소장은 이러한 뜻의 '경제민주화'를 바꾸어 말하면 '사회민주주의'에 가까운 것이라 소개했다.
이젠 세계경제위기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갈 차례. 홍기빈 소장은 물어본다. 도대체 뭐가 경제위기라는 건가? 코스피 지수는 2,000에 육박하고, 다우지수를 봐도 경제상황이 좋다. 한쪽에서는 경제위기라고 부르짖고 있는데, 실제 사람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없는 불편한 진실을 들춰졌다. 도대체 경제위기라는 말의 본질은 무엇일까? 홍기빈 소장은 세계경제위기란 바로 지난 몇 십년간 세계경제를 유지해 왔던, 바로 그 원리가 무너진 것이라고 답했다. 그 원리란 인간사회의 조직과 운영이 자본시장의 명령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자본시장을 정점으로 하는 경제의 원리는 이제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자본시장의 명령이 올바르다는 믿음은 헛되고 헛된 것임이 증명되었다. 기존의 경제 패러다임이 해체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이 세계경제위기의 본질임을 부인할 수 없다.
어느덧 강연은 마무리에 접어들었다. 요약하자면 경제민주화는 단순히 개인에게 돈을 나눠 달라는 요구가 아니라고 했다. 경제민주화란 경제적 권력의 편중을 해소하고 그 권력을 각 주체적 개인에게 분배하여 자신의 경제적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연을 들으며 세계경제위기의 대안으로 경제민주화가 설정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 영역이든 경제 영역이든 권력은 발생할 수밖에 없지만, 그 권력이 몇몇에게 집중되지 않도록 사회적으로 통제하는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는 것이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과제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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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저자와 함께 읽는 한국 근현대사Ⅱ | [한국근현대사Ⅱ] 7강, 정치가 김구와 제주‘항쟁’ - 균형 잡힌 역사관을 위하여 | 우연필연 | 2012.10.16 | |||
들어가며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의 가을학기 인문학교 강좌 ‘교과서 저자와 함께 읽는 한국근현대사II’ 는 여러 가지 이유로 검정 교과서에 담지 못했던 내용들을 저자가 설명해주는 강좌입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역사적 사건을 비판적으로 설명하여 시민들이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추도록 하는 취지의 강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균형 잡힌 역사관을 위하여 이번 시간에는 지난 시간에 다뤘던 미소공동위원회에 이어 해방 후 남북협상 및 정부수립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선생님께서는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한 남북 협상 과정에서 벌어지는 역사적 사건들을 상세하게 설명하셨는데, 특히 북한의 정부 수립 역사도 다룸으로써 참여자들이 다양한 시각에서 역사적 사건들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습니다. 이 선생님이 설명해주신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 세 가지 사항이 인상 깊었습니다.
1. 4.3 제주항쟁 오늘날 우리 정부는 4.3 제주항쟁 사건을 국가권력에 의한 폭력 행사로 규정하고 있으나 군대 등 일부 집단은 여전히 4.3 항쟁에 대해 국가를 전복하려는 시도로 간주한다고 합니다. 당시 군경과 더불어 서북청년단 등 어용단체들이 투입되어 수많은 무고한 제주도민들이 학살당했습니다.(슬라이드로 보여주신 그림들이 말보다 더 직접적으로 와 닿았고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한 사건이 아니라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역사적 사실이며, 정부가 제주 4.3항쟁에 대해 국가에 의한 폭력으로 분명하게 규정했다면 정부가 대중에 이를 널리 알리는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국민들이 진실에 눈을 떴을 때 다시는 우리 역사에 이러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을 것입니다.
*출처 : 네이버블로그 http://blog.naver.com/gold_dragon/40030503119
2. 백범 김구 김구를 정치가로 인식했을 때 그의 정치적 선택과 행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민족주의자이며 기백이 넘치는 독립운동가인 김구 선생도 어쩌면 정치적인 선택의 기로에서 장고를 거듭했을지도 모릅니다. (1차) 남북협상을 위해 김규식 선생과 북으로 건너갔을 때 그의 미래가 결정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만일 김구 선생이 북으로 가는 대신 남측만 시행한 총선거에 참여하였다면 여당의 수장 내지 야당의 수장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세력이 강성했으나 그에 반발하는 세력과 민족주의자들을 규합하여 대항했다면 김구로써도 충분히 승산 있는 선거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북측 회담에 참석한 것이 결과적으로 그의 정치적 입지를 약화시켰고, 한편 그 시기 이승만은 남한 총선거를 통해 실질적으로 물리력(군경)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을 획득하였습니다. 후에 김구가 돌아왔을 때는 이미 이승만 세력이 군경 집단을 장악하고 있었기에 김구가 민족주의자들과 이승만에 반발하는 세력을 규합하고 대항하는데 있어 한계가 드러났습니다. 3. 오래된 영상물 시청 해방 후부터 정부수립까지 북한의 생활상을 담은 영상물을 시청하였습니다. 당시 주거형태나 생활 전반이 남쪽 사람들과 다른 점이 없었습니다. 김일성을 위시한 세력들이 노동당을 창당하기 전까지 태극기를 사용했다는 점이 그나마 주목할 만한 사항인 것 같습니다. 그밖에도.. 준비자 분들께서 맛있는 김밥을 마련해주신 덕분에 허기진 배를 채우고 더욱 열띤 자세로 강의를 경청할 수 있었습니다. 강의 시작과 말미에 멋진 멘트를 날리며 진행해주신 간사 선생님과 항상 애쓰시는 자원활동가 선생님의 노고에도 감사드립니다. 다음번 강좌와 함께 강좌 끝나고 진행되는 뒷풀이 또한 기대해 봅니다.
마치며 이번 시간에는 시간이 부족해 강의 진도를 다 나가지 못했으나 이러한 부분이 시민교육의 자유로움이자 ‘멋’이 아닐까 합니다. 정해진 진도를 어떻게든 채워 나가는 것보다 내용의 깊은 성찰을 통해 조각난 역사적 사실들의 연결고리를 찾고 빈틈을 매우는 작업을 참여자들과 함께 공유하는 것이 본 강좌의 취지와 성격에 더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이번 6강의 제목인 ‘홍명희는 왜 북한의 부수상이 되었나?’에서 홍명희는 김구 선생이 남북 협상을 위해 북으로 건너가셨을 당시 함께 동행했던 인물입니다. 그는 김구 선생이 다시 남쪽으로 돌아오실 때 함께 내려오지 않고 북쪽에 남았다고 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북한의 부수상이 된 홍명희가 과연 그 후에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해보며 제법 서늘해진 어느 가을날 밤에 열렸던 열띤 강좌의 후기를 마칠까 합니다.
홍명희(소설가, 1888-1968) *출처 : 네이버 인물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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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교육활동가 평화교육 워크숍: 누구나 맘대로 톡톡 | [첫번째 세션후기]평화교육워크숍:누구나맘대로톡톡 | 느티나무 | 2012.10.16 | |||
아카데미 느티나무는 올 여름부터 평화교육에 대한 워크숍을 기획하고 있었습니다.
어서오세요. 반갑습니다!
돗자리 가운데서 말하고 있진 않지만, 누군가 자신을 쳐다보기를 기다리는 존재의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진행자는 돗자리 위에서 편안한 느낌으로 잠시 걷기를 청합니다. 바로 옆에 앉은 사람끼리 짝이 되어 등을 대로 앉아 서로 이야기 합니다.
"자신이 평화를 느낄 때가 언제인지,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내 자신은 어떤 존재인지"를 한 사람씩 3분동안 이야기 합니다. 상대방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종이에 그림으로 표현합니다. 그리고 그림의 제목을 붙입니다. 서로에게 그림을 전달하고, 진행팀에게 라벨지를 받아 그림 제목을 적어 몸에 붙입니다 그렇게 등을 마주대고 온전히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그림을 그리고, 그림에 제목을 붙여준 바로 그것이. 워크숍 내내 사용하게 될 나의 별칭이 되었습니다. 다시 홀 안을 걸어줄 것을 요청 받았습니다. 큰 원으로 모두 모여, 잠시 쉬는 시간이 있었네요. 느티나무홀 군데 군데 붙어 있던 평화와 관련한 다양한 글 귀들을 둘러보며 나의 마음을 잡아 끄는 문구 앞에 서 있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서로에게 그 이유를 공유했습니다. 십여가지의 글귀가 붙어 있었지만, 아래의 글귀가 참여자들의 마음을 잡아 끌었습니다. 들은 것은 잊어버리고 본 건 조금 기억나지만, 해보면 이해가 간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때로는 너무 싫었던 말인데...)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새삼 마음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마음을 잘 헤아리는 것, 타자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리고 소통 하는 것, 이 모두가 참여자들이 함께 공감하고 있는 화두임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워크숍은 조금도 시간을 허투로 사용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진행자는 서있던 순서대로 "하나, 둘, 셋" 으로 돌아가며 세 조를 만들었고, <평화 장애물>, <교육 장애물>,<폭력의 원인>에 대해서 각기 세조의 사람들이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있는 힘껏 많이 적기를 시도했습니다. 3분 동안 칠판 가득 적힌 장애물들을 보며, '이것 모두 우리가 넘어야할 산' 이구나 싶었습니다.
여기저기 겹치는 장애물들도 있었고 생각지도 못했던 장애물도 발견했습니다. 장애물에 공감하시나요? 어떤 장애물이 커보이나요? 그리고 이제 다시 서로가 서로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가만히 앉아 쓰다보니 참여자 모두의 '기대치'라는 물줄기가 '기여치'가 모여있는 아래로 흐르며 6회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결코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서로가 함께 호흡하며 서로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는 것을 함께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가는 참여형 워크숍. ‘참여적(P)-낯설게하기(E)-예술적(A)-창의적(C)-대화식(E) 의 P.E.A.C.E. 페다고지’를 맛보고, 놀아보고, 실습해 보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아름답고도 큰 울림이 있는 시 한편을 함께 낭독하며
첫 번째 세션을 마무리했습니다. 여러분께도 그 울림이 전해지길... 두 가지 지식 - 젤랄루딘 루미 두 가지 종류의 지식이 있다. 그 하나는,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 책이나 교사로부터 개념을 배우고 암기를 하면서 배우는 지식, 전통으로부터, 또한 새로운 학문으로부터 배우는 지식이다. 그러한 지식의 힘으로 너는 세상에서 일어선다. 남을 앞서기도 하고 남에게 뒤처지기도 한다. 그 지식을 습득하는 능력에 따라, 그 지식의 장 안팎으로 드나들며, 네 안의 지식의 판에 더 많은 지식을 새긴다. 또 다른 종류의 지식이 있다. 네 안에 이미 완성되어 존재하는 지식, 샘 판에서 흘러넘치는 샘물 같은 지식- 그 신선함이 가슴 한가운데를 적신다. 이 지식은, 시들지도 썩지도 않는다. 그것은 늘 흐르며, 밖에서 안으로- 배움을 연마하는 통로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이 두 번째 지식은 샘의 근원이다. 네 안으로부터- 밖으로 흘러넘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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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 | <진보, 다른이름으로 저장하기> 3강, 진보에게 던지는 불편한 질문 | 스피노 | 2012.10.13 | |||
아카데미느티나무 20102 가을강좌 [민주주의학교] 진보, 다른이름으로 저장하기 3강(10/08) 후기 ① 1강 <21세기 진보의 재구성> 후기 다시보기 >> 클릭
② 2강 <21세기 진보의 재구성> 후기 다시보기 >> 클릭
3강은 ‘진보에 던지는 불편한 질문’이라는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하승우 강사님은 영화 <풍산개>를 들며 사람들이 타인을 재단하려 하는 사회를 꼬집으셨습니다. 극 중 윤계상은 남과 북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기에, 양쪽 모두에게서 ‘어느 편이냐’는 질문을 듣습니다. 어느 한 편에 속하지 않으면 안전해질 수 없는 상황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듭니다. 강사님은 한국의 진보도 마찬가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이론이나 사상에 권위를 부여하고 자기 식으로 해석하고, 자신과 다른 해석을 내놓는 쪽은 변절자나 개량주의로 폄하하는 일부 진보 세력들을 비판하셨습니다. 인간은 각자 자라는 환경이 다르고, 각자 다른 감수성을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각자의 시선의 차이는 피할 수 없는 것이고, 토론과 합의하는 과정을 필요로 합니다. 같은 시선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동지’라는 말로 사람들을 한정지으면, 그 ‘동지’라는 말에 위화감을 느끼고 함께 연대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생겨납니다. 불편하지만 우리에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없도록, 조금 불편하고 어려운 사람들도 만나 우리 편을 늘려야 사회를 바꿀 수 있습니다. 한 살림과 의료생협, 그리고 강정과 쌍용이 서로 연대하는 모습을 보면, 서로가 서로의 삶에 관심을 가지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대의명분이 삶을 바꿀 수 있을까요? 공지영씨가 쓴 ‘의자놀이’의 논쟁을 기억하시나요? 공지영씨가 이 책의 수익금을 쌍용차 노조에 모두 기부한다는 좋은 뜻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휴머니스트의 나라말출판사 인수와 판권에 관련된 문제, 그리고 표절 문제 등을 전부 이 때문에 묻고 넘어가야 하는 것일까요? 수익금 기부로 인해 혹 좋지 않은 시각이 생길까 판단하여 과정 속에 생긴 문제들에 대한 논의들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약자가 강자를 이해하고 배려한 것입니다. 이는 이승만 정부가 잘 살게 해주겠다며 국민들을 억압했던 논리와 다를 바가 없다고 강사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울산 현대자동차에서 일어난 ‘밥.꽃.양’이라는 사건을 아시나요? 현대자동차 노조가 정리해고 반대를 내세워 한 무기한 전면파업이 277명의 정리해고로 타결되었습니다. 이들이 바로 식당아줌마들이었습니다. 이들 중 144명의 여성노동자들만 노조식당에 고용되었습니다. 이때 현대자동차 노조는 ‘아줌마들만 참으면 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아줌마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곳은 없었습니다. 민주노총 등 노동단체들도 가입되어 있거나, 관련된 일이 아니면 관심을 갖지 않으니 묻히기 쉽습니다. 기륭전자, KTX, 재능교육 등 여성노동자들이 일으킨 파업은 장기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회를 바꾸려는 곳에서도 가부장제는 남아있습니다. 우리는 누구와 연대해야 하는 것일까요? 몇 년 전 장애인들도 지하철을 탈 수 있게 해달라며 장애인들이 선로를 점거한 일이 있었습니다. 30분간 시민의 발을 묶었으나, 자신들은 30년을 집에서 기다렸다며, 지하철을 용이하게 이용할 수 있게 시설을 확충해달라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진보는 가장 아파하는 사람과 연대하고, 섬세해야합니다. 하지만 시민의 발을 묶었다는 점에서 비판이 두려웠고, 큰 이익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진보단체는 이들과 결합하지 않았습니다. 성공회대에 근무하던 계약직 행정직원이 비정규직으로 계약이 만료되어 학교를 떠나게 되자 행정직원 정규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서명을 받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명단에는 많은 진보적 교수들의 이름이 빠져 있었습니다. 진보적이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자기 공간에서 벌어지는 부조리함에 대해서는 눈을 감을까요? 자신의 생각과 주장이 삶에서 드러나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처사는 신뢰를 잃는 계기가 됩니다. 진보가 더 나은 진보, 올바른 진보가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과 연대하고, 자기책임성을 갖는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이번 강의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강연 : 하승우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연구위원 후기 : 강가혜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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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저자와 함께 읽는 한국 근현대사Ⅱ | [한국근현대사Ⅱ] 5강, 오보가 뒤흔든 대한민국 | 서동호 | 2012.10.12 | |||
안녕하세요. 시작한지 얼마 안된거 같은데 벌써 강의가 중반부로 접어들었네요. 치열했던 독립투쟁을 거쳐 이제 해방후 한국의 모습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해방 이후의 다양한 정치인들에 대해 살펴보고, 신탁통치와 관련한 동아일보의 오보사건을 다뤘습니다. 오늘 후기에는 '신탁통치 오보사건'을 중점으로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1. 신탁통치 오보사건 혹자는 '신탁통치 오보사건'을 '역사를 뒤바꾼 10대 오보'중에 하나로 꼽기도 합니다. 그만큼 한반도와 세계정세에 엄청난 영향을 준 사건입니다. 광복을 맞은지 4개월이 지난 후에 미국과 소련, 그리고 영국의 외상은 모스크바에서 한반도를 어떻게 할지 협상합니다. 이 회담이 모스크바 3상회이지요. 이 때 회담에 참석한 미, 소, 영과 장제으의 중화민국을 포함하는 4개국이 한반도를 신탁통치 하자는 아이디어가 구상되기 시작합니다. 이런 움직임이 저 멀리 막사과(모스크바의 당시 표현)에서 이런 논의가 진행되던 때인 1945년 12월 27일, 동아일보에서 호외를 냅니다.
<1945년 12월 27일 동아일보 기사 -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소련의 구실은 삼팔선분할점령. 미국은 즉시독립 주장> 당췌 읽을수가 없군요. 하얀건 종이요 까만건 글자겠죠? 그나마 보이는 사진에서 스탈린과 미국의 외무상인 번즈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련과 미국이 만나서 뭔가 했나보군요! <위 기사를 번역한 내용입니다. - 출처 : 네이버 뉴스캐스트> 보도 내용인 즉, 임시정부 수립에 대한 협상결과가 나왔으며, 소련은 신탁통치를 찬성하고 미국은 반대하는 입장이다 라는 것인데, 문제는 이게 사실관계가 뒤바뀐, 오보라는 것입니다.
모스크바 3상회의는 앞서 말했듯 12월16일부터 27일까지 미국·영국·소련 3개국의 외무장관들이 모스크바에서 모여 전후 처리 과정에 대한 문제들을 합의하려 진행한 모임이었는데, 이 기사가 나오던 시점인 12월 27에는 회의 내용이 채 공개되지 않았던 시기였습니다. (회의 내용은 이후 12월 30일에 공개됩니다.) 기사 내용을 잘 살펴보시면 아시겠지만 '조선 독립문제가 표면화하지 않는가 하는 관측이 농후하여 가고있다'는 등의 추측성 발언을ㅈ아볼 수 있습니다. 사실에 기반해서 쓴 기사가 아니라 회의 내용에 관한 하나의 추정, 그러니까 정확하지 않은 기사라는 사실을 엿볼 수 있는거죠.
2. 극렬한 좌우대립
하지만 사실은 이와 달랐습니다. 정작 신탁통치를 주장했던건 미국이었지요. 그리고 신탁통치에 관한 미국과 소련의 입장도 차이를 보이는데, 소련의 경우 일종의 '후견인'역할의 신탁통치를 주장했고 미국의 경우 완전한 신탁통치를 주장합니다. 이 보도가 발표되자 한반도는 '친탁'을 주장하는 좌익 진영과 '반탁' 주장하는 우익 진영으로 나뉘어 좌우대립이 극에 달하게 됩니다. 일제에 의한 강제통치에서 벗어난지 얼마 되지 않던 상황에서 또 다시 강대국에 의한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아주 유명한 사진입니다. 신탁통치 반대시위 사진>
이승만, 김구등의 유수의 정치가들은 일제히 '3상회의 결과 수용 불가!', '신탁통치 반대'의 구호를 내걸고 반탁운동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김구와 이승만의 재빠른 신탁통치 반대운동은 여운형, 박밀려있던 지지도를 회복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초기엔 좌익들도 "신탁통치는 우리 민족에 대한 모독"이라며 반탁을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박헌영이 소련을 다녀온 뒤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하여 찬탁으로 입장을 선회하지요. 이들은 결국 우익에 의해 찬탁세력으로 치부되어 범 국민적인 공격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반탁운동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친일세력들이 자신들의 과거를 세탁해버립니다. 친일파 세력들이 친/반탁운동으로 정세가 요동치는 틈을 이용해 자신들을 '반공투사','애국자'로 둔갑시켜버린 것이 이것입니다.
3. 교과서와 반탁운동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때 "소련은 찬성, 미국은 반대"라고 신탁통치 반대운동에 대해 외웠었습니다. 교과서에서는 동아일보의 오보내용이 역사적 사실으로 아직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2009년 교과서 개정안을 통해 이 내용에 변화가 오게 되는데, 2010년 3월 1일에 나온 금성출판사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258페이지에 "...소련이 38선 분할을 구실로 신탁통치를 주장한 반면, 미국은 즉시 독립을 주장하였다는 잘못된 보도였다"라고 설명한 구절이 첨가됩니다. 독립된 박스로 다룰 정도로 오보사건이 나름 비중 있게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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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공화국을 넘어 | ['재벌 공화국을 넘어' 강좌 ⑤] 토크쇼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 2012년의 선택' | 참여사회연구소 | 2012.9.29 | |||
['재벌 공화국을 넘어' 강좌 ⑤] 토크쇼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 2012년의 선택'
* 이 글은 프레시안((www.pressian.com)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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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사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 <위험사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4강, 인간이 만들어낸 파멸의 날? | 우진아빠 | 2012.9.28 | |||
아카데미느티나무 20102 가을강좌 [민주주의학교] 위험사회, 어떻게 살것인가 4강(9/26) 후기
인류가 바이러스로 인한 재앙을 막기위해 만든 균주에 의해 오히려 바이러스의 대유행이 시작될 수 있을까?
<위험사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4강 '인간이 만들어낸 파멸의 날? : 변형 조류독감 바이러스 논쟁' 강의는
바로 이러한 질문으로부터 시작했다.
요즘 영화에서는 재난영화, 그 중 사고와 음모가 얽혀있는 바이러스 영화가 인기를 끌고 있다.
<둠스데이>, <28일 후>등...
나 또한 이러한 영화를 보면서 먼미래가 아니라고 생각했었지만, 이렇게 가까이 와 있었을 줄이야!
자꾸 안철수의 대선 출마 인용구가 떠오른다~
"미래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아직 널리 퍼지지 않았을 뿐...'
그런데 실제 영화와 같은 일들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좀더 잘살기 위해 아둥바둥 발버둥치면 사는 사회에서 어쩌면 전혀 엉뚱한 곳에서 재앙이 시작될지도 모른다니..
<변형조류독감 바이러스 논쟁>의 핵심은
과학자들의 '연구의 자유'를 어디까지 보장하고 어디까지를 규제해야 하는 것이다.
대중의 눈높이와 이해, 동의를 구한다는 것이 언뜻 생각할때는 합리적일 수 있겠지만,
과거부터 과학이라는 학문은 선구적일 수밖에 없고
과거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지동설', 다윈의 '진화론' 을 생각한다면,
입장에 따라선 연구의 자유를 심각히 침해하는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한편, 이러한 논란으로인해 관련 연구자들은
자성의 의미에서 이런논란(생물안전, 생물보안수준 검토,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 안착)이 해소 될때까지
관련 연구를 무기한 연기했다고 한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인류의 보편적 이익이 아닌
기업의 이익을 위해, 특정 집단의 목적달성을 위해, 개인의 영달을 위해
이러 위험한 연구들이 지속되고 있고 결과물이 나오고 있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과연 이러한 위험사회에서 시민들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앞으로 있을 6강 강의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강의 : 김명진, 시민과학센터 운영위원 / 서울대 강사
후기 : 천웅소 아카데미느티나무 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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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 | <진보, 다른이름으로 저장하기> 2강, 진보와 정치적 이성 | 스피노 | 2012.9.28 | |||
아카데미느티나무 20102 가을강좌 [민주주의학교] 진보, 다른이름으로 저장하기 2강(09/25) 후기 ① 1강 <21세기 진보의 재구성> 후기 다시보기 >> 클릭
‘진보.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 2강의 시작에 앞서서 폴리티컬 컴퍼스 설문 결과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폴리티컬 컴퍼스를 통해 수업 전에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알 수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어떤 성향을 갖고 있는지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번 ‘내게 진보는 □이다.’에 이어 ‘내게 정치는 □이다.’에 자신의 생각을 기입하고, 그 이유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네모 칸에 여러 가지 다른 답이 채워졌다. 교육감이 바뀌고 나니 아이들이 인권 관련한 가정통신문을 받아온 것을 보고, 아이들 보육 지원료가 나오는 것을 보며 정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활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하시며 ‘일상’이라고 답하신 분도 있었다. 또 정치는 자신의 숙명이라고 답하신 분도 계셨습니다. 강연해 주신 박상훈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께서는 진보라는 의미의 재정립화의 필요성을 역설하시며 정치는 공적인 일에 참여하고 관여하는 일이라고 정의를 하며 수업을 시작하였습니다. 과거 그리스에서는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으나 지금 우리 운동권들은 ‘자신은 정치적인 사람이 아니다. 권력에 관심이 있어서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말하는 세태를 꼬집었습니다.
*정치와 유리된 진보란 가능한가? 정치가 이상사회를 만들 수 없고, 일상에서 권력. 위계. 강제. 복종과 같은 요소들을 없앨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지지하는 정당이 있고, 그 정당이 유능함을 발휘하고 대중의 기대를 받을 때, 그 정당에 기대를 거는 사회적 약단 집단도 무시당하지 않고, 주체적 시민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런 정치가 가능하지 않다면, 소외된 사회집단은 좌절을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취약 계층들이 정치를 멀리하게 됨에 따라 특정 집단이 자신들에게 유익하도록 정치를 움직여 나가게 됩니다. 오늘날 한국 정치가 상층계급의 전유물일 수 있는 데에는, 진보의 책임도 큽니다. 진보적인 것을 앞세우고, 운동의 고결함과 진정성만을 고집하며, 반정치주의의 도덕성을 뒷받침했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정치 속에서 성과를 낼 유능함을 진보가 갖지 못했다는 게 문제이지 정치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진보가 정치에서 사회에 유익한 성과를 내려면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진보의 성장과제 정파 때문에 문제라는 말이 있는데, 정파를 만드는 것은 정치에서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다만 정당을 제대로 만드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정당의 형성기 내지 전환기에는 강한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이 없이는 강력한 대중권력은 불가능 하고, 정당은 정파 권력들의 놀이감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지는 용서되지 못한다’라는 말처럼 정치에서 무능력은 변명될 수 없습니다. 리더십과 권력의 문제를 회피하고 이룰 수 있는 정치적 성취는 없습니다, 권력을 통해 권력을 통제하려는 접근, 야심을 통해 야심을 견제하려는 접근이 필요합니다. 이 속에서 어떻게 목표를 성취할 지가 진보가 해야 할 일입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진보의 편향된 이해 그간 진보는 자신들만의 민주주의가 갖는 특별함을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정치에서 옳음은 하나가 아니라 복수입니다. 특히 민주주의는 여러 부분적 옳음을 말하는 정당들 사이의 경쟁을 통해 사회적으로 선한 결과를 낳고자 하는 체제입니다. 가끔 진보만이 옳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보수를 박멸의 대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수 없는 진보만의 세상이 가능하다면 그는 전체주의일 것입니다. 이견은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견을 갖는 집단들의 합리적인 경쟁과 공존을 통해서 만이 진보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은 성공한 진보정당들의 과거 경험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입니다.
*좋은 진보 정치가란? 정치에서 운동에 대한 헌신을 내세우거나 역사나 이념을 과도하게 이상화하는 접근은 진보적 엘리트주의에 불과하며 대중의 지지를 얻을 수 없습니다. 사보나롤라는 도덕주의적 진보파의 전형적 인물로 타락한 사회를 정화하고자 스스로 대속의 십자가를 지는 자세로 통치를 했습니다. 도박을 금하고, 매춘을 금하고, 후에는 술을 금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갈등과 분열 불안한 현실은 여전했고 시민들의 불만은 쌓여갔습니다. 이 때 교황과 귀족의 음모로 그의 통치는 처참하게 무너졌고, 화형에 처해지고 말았습니다. 탁월함이 정치에 기여해 좋은 정치를 할 수는 있으나 다수의 판단과 함께 가야만이 성공 가능하다는 것을 이 사례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치학을 잘 아는 사람이 정치를 잘 할 수 있을까요? 정치학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정치를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플라톤이나 루소도 현실 정치에서는 실패했습니다. 정치는 누구나 다 전문가가 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전문가가 더 이론에만 집중해 현실 정치를 파악하지 못하는 오류에 빠지기도 합니다.
*진보의 가치 보수가 ‘현실’을 고정시켜 해석하는 것만으로도 기반 층을 다질 수 있는 것과는 달리, 보수는 ‘현실의 변화와 개혁을 통해 발전된 미래상’을 제시해야 한다. 어떤 미래를 제시해야하는지에 대한 지향과 관점은 다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정파적 분열과 사상투쟁의 가능성이 큽니다. 뛰어난 누군가가 나와 미래상을 제시한다 해도, 불확실성을 띄므로 진보는 실력이 없으면 정치적으로 성장하기에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진보의 도전의 벽이 높은 것은 진보의 성취가 더 빛나고 효과가 오래갈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좀 더 인간적이고 좀 더 정치적 이성을 갖춘 실력 있는 진보파가 나와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는 현실 개혁을 이루어 졌으면 하는 것이 바람입니다.
강연 : 박상훈 후마니타스 출판사 대표 후기 : 강가혜 자원활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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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공화국을 넘어 | ['재벌 공화국을 넘어' 강좌 ④] 김대중ㆍ노무현도 못한 '서민의 호민관', 이제 누가? | 참여사회연구소 | 2012.9.25 | |||
['재벌 공화국을 넘어' 강좌 ④] 김남근 참여연대 집행위원회 부위원장(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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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공화국을 넘어 | ['재벌 공화국을 넘어' 강좌 ③] "박근혜, 재벌의 은행 지배가 경제민주화인가?" | 참여사회연구소 | 2012.9.25 | |||
['재벌 공화국을 넘어' 강좌 ③] 이동걸 전 한국금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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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 | <진보, 다른이름으로 저장하기> 1강, 21세기 진보의 재구성 | 웃으며,함께,끝까지 | 2012.9.24 | |||
아카데미느티나무 20102 가을강좌 [민주주의학교] 진보, 다른이름으로 저장하기 1강(09/18) 후기
드디어, 아카데미 느티나무의 가을 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새학기를 맞아 펼쳐진 느티나무의 새로운 시도! 시대의 요구죠, 바로 ‘소통’과 ‘참여’입니다. 수동적인 존재로 규정되는 ‘수강생’에서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주체인 ‘참여자’로, 일방향식 강의형식에서 참여자와 강사, 교육기획자가 함께 이야기하고 의견을 공유하며 함께 만들어나가는 SNS식 강의형식으로! 느티나무의 진화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뭐니뭐니해도 바로 이 강좌, [진보,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가 있는데요, 변화의 움직임은 강의실에 들어서는 순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조별로 마주보고 앉을 수 있게 배치된 책상들, 그 위에 놓인 형형색색의 종이와 펜들, 마치 어린 시절 유치원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느티나무의 새로운 모습이었습니다.
강의에 앞서 질문 하나! “진보는 나에게 □이다.” 이보다 짧고 어려운 질문이 또 있을까요? 참여자 여러분은 저마다 모험, 어려운 단어, 삶, 부끄러움 등등의 이야기를 펼쳐놓았습니다. 누구에게나 진보란 어렵지만 걷고 싶은, 우리의 삶과 가까운 그런 것인가 봅니다. 진보는 우리의 ‘가치’일까요, ‘삶’일까요? 김동춘 교수님의 친구 분 중에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분이 계신데, 그 분은 김 교수님을 보고 “서울의 아파트에 살면서 차도 끌고, 쌀 한 톨 생산하지 못하는 니가 무슨 진보냐?”라고 하신다는군요. 모 대학 앞에서 사회과학 서점을 했던 또 다른 지인 분은 10년 동안 달라지는 것 없는 책방을 보며 “이게 무슨 진보냐, 난 보수다.”라고 하셨답니다.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대표적인 친일단체였던 일진회의 전신은 바로 진보회라는 단체였는데요, 그들은 “조선도 문명개화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그 주역은 일본이며, 우리는 그들을 통해 문명의 진보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과연 이들이 말하는 진보는 무엇일까요? 우리에게 진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요?
진보? 보수? 1961년 군사쿠데타를 지지했던 세력의 상당수가 박정희를 지지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그를 진보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구체제로 비판을 받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우에도 64년 대선 때의 선거 전략은 못가진자, 가난한 농민의 자식이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것이었고요. 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진보운동은 반미와 계급해방에 초점이 맞추어졌고, 2000년대에 들어서는 기득권에 일부 편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그리고 그 역사 속에서 ‘진보’라는 개념은 계속해서 변화해 왔습니다. 그리고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들로 사람들은 진보와 보수를 헷갈려하기 시작했습니다. 분파투쟁, 권위적인 조직 운영, 비정규직에 대한 미온적 태도 등을 통해 대기업 노조가 보여주는 노동계의 모습, 이들을 보수라고 해야 할까요? 외국의 경우에는 60년대가 바로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68년 학생운동이 일어나기 전에는 노동운동-노동자정당이 진보의 중심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 반대-대학개혁-권위주의 타파를 주요 슬로건으로 한 68학생운동은 노동을 중심으로 한 진보의 공식을 깨뜨렸습니다. 68운동의 학생들은 기존의 노동운동이 이미 제도권화되어 기득권 세력이 되었다고 판단하였던 것이죠. 이들은 당시의 노동운동이 자본주의에 대해 더 이상 안티테제가 아닌 편승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에 실망했고, 노동운동에 기대지 않은 새로운 진보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페미니즘-평화-인권-환경운동으로 대표되는 New Left, 이른바 신사회운동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러한 노동운동과 신사회주의 운동이 90년대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그것도 동시에 일어나기 시작했고 이것이 민족주의, 분단 체제와 같은 한국의 특수한 상황들과 맞물려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데 큰 혼란을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김동춘 선생님은 진보의 범위를 규정하는데 있어 정치적 진보와 사회적 진보, 경제적 진보로 구별 지어 생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사회는 이 세 가지 개념이 뒤죽박죽 섞여있기 때문에 진보와 보수를 구별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원래 서구에서 민족운동은 보수의 가치에 속하였고 실제로 히틀러를 통해 극단적인 방식으로 표출되기도 하였지만, 한국에서는 유독 민족이 진보의 가치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논쟁 구조가 계급이 아닌 민족-남북관계 등을 통해 유지되어 왔기 때문이죠. 이런 의미에서 무상급식 문제는 한국사회에 나타난 최초의 계급적 논쟁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치적-경제적 진보와 보수의 논쟁이 이제야 시작된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사회적 진보와 보수에 대한 논쟁은 없습니다. 미국에서는 기독교-남부 백인들이 사회적 보수를 구성하는 반면, 한국의 사회적 보수는 지역주의의 형태로 나타나는 데 그쳤습니다. 앞으로의 진보는? 이 시대의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가장 대표적인 영역은 경제적 영역인데요, 경제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자본주의에서 진보와 보수의 갈림길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견해 차이를 통해 드러납니다. 그러나 21세기적 가치로 삶의 질 문제가 추가되고, 복지와 안전, 불안으로부터의 해방 등이 중요하게 다루어지면서 주관적 행복의 지수가 진보의 기준으로 작동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의 진보는 시장보다는 사회, 개인 중심의 경제보다는 공동체 중심의 경제를 이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의 진보는 민주주의를 심화·확대해 나가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입니다.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한가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양적인 문제와 함께 질적민주주의의 향상도 고민해 봐야할 문제일 것입니다. 기업 경영의 민주화, 노조의 개입, 기업 내 권력의 분점 등을 통해 민주주의의 적용 영역을 최대화하고 검사·대법원의 구성에 시민들이 참여하여 정치-사회-경제적 민주제도를 더욱 심화시켜 나가는 방법이 있겠죠. 평화 또한 진보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도 여겨져야 합니다. 평화가 없이는 진보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진보의 가치에 가장 치명적인 것이 바로 전쟁이기 때문이죠. 전쟁은 모든 것을 비인간화시킬 뿐만 아니라 실제로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안보를 빌미로 한 인권침해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진보는 전쟁과 자본주의의 고리를 끊어내는 데에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Alt+V 지난 4월 벌어진 19대 총선에서는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통합진보당은 13석의 의석을 얻으며 진정한 전국구 정당으로 거듭났다는 평가받았습니다. 그러나 채 6개월도 지나기 전에 당은 분열되었고 국민들은 말 그대로 ‘멘붕’ 상태에 빠져버렸습니다. 진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해봐야 할 시점에 이른 것이죠. 대선이 90여일 앞으로 다가온 현재의 시점에서 보수와 진보를 구별해내는 능력은 우리에게 정말 꼭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구체제로 비판받아 온 후보가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외치고, 저마다 시대정신을 내세우는 상황에서 어떤 것이 보수의 가치인지 어떤 것이 진보의 가치인지 구별해내는 능력, 꼭 필요하겠죠? 강의 : 김동춘/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글 : 자원활동가 김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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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사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 <위험사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2강, 핵에너지의 역사와 미래 | 공채원 | 2012.9.22 | |||
우리나라의 원자력발전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얼마 전, UAE로부터의 원전 수주로 국내외 여론이 들끓었던 적도 있다. 우리는 우리 영토, 영해에서 석유 한 방울 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름이면 관공서부터 교통수단, 가정, 직장, 식당 등 모든 실내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며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살고 있다. 물론 올해엔 전기를 절약한다고 권장온도를 지정하고 절전을 강요하여 평소 여름보다는 더 더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대다수 후진국에서 전기가 수시로 나가 에어컨은 꿈도 못 꾼 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충분히 시원한 삶을 살고 있다. 밤이 되어도 도시의 불빛은 꺼지지 않고 블랙아웃이 일상이 아니라 공포가 되어야 할만큼 우리는 블랙아웃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원자력 발전의 덕분이다. 통계에 따르면 2030년에는 전력 사용에 있어 원자력 의존도가 60%대에 진입할 것이라는 통계분석도 있다. 이처럼 우리의 삶은 원자력, 즉 핵에너지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과연 우리가 하루종일 에어컨을 틀고 살아야 할 만큼 더운가? 과연 우리가 이렇게 새벽까지 불을 밝혀야 하는가? 우리가 에어컨을 자제하고 안 쓰는 형광등은 꺼두며 산업체에서는 에너지효율을 위해 노력한다면 원자력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 물론 당장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기에 정부 차원에서 탈 원전에 대한 장기적 플랜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세부적인 플랜을 세워 단계적으로 에너지 사용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절약을 생활화하여 환경과 미래를 생각하는 에너지소비를 추구해야 한다. 이제는 에너지 문제에 접근할 때 비용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미래도 고려해야할 때이다. 글 : 자원활동가 공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