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소감,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남겨주세요
강좌명 | 강좌후기 | 글쓴이 | 날짜 | |||
---|---|---|---|---|---|---|
진보,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 | <진보, 다른이름으로 저장하기> 4강, 진보정치, 새로운 탄생은 가능한가 | 스피노 | 2012.10.19 | |||
아카데미느티나무 20102 가을강좌 [민주주의학교] 진보, 다른이름으로 저장하기 4강(10/15) 후기 ① 1강 <21세기 진보의 재구성> 후기 다시보기 >> 클릭 ② 2강 <21세기 진보의 재구성> 후기 다시보기 >> 클릭 ③ 3강 <21세기 진보의 재구성> 후기 다시보기 >> 클릭
이번 수업은 노회찬의원이 강의해주셨습니다. 지금 진보정의당의 창당 준비위원회에 몸 담고 있다며 소개해주신 의원님, 진보가 초창기에 정치에서 보이기 시작했을 때부터 진보진영에 있었다고 말씀하시며, 이번이 세번째 창당 준비위원회에서 일하는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노회찬의원은 학생 때는 학생운동을 했고, 그 이후에는 노동운동을 했는데, 그 후 정치인이 되겠다고 하자 주변에서 만류가 많았다고 합니다. ‘어느 당에 갈 것이냐’라는 물음에 새로운 당을 만들겠다고 하니, 더욱 자신을 아끼는 사람들의 만류가 컸다고 합니다. 지난 30년간 진보 정치 세력에서 계속 있으면서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그 속에서 이뤄낸 성취도 많다고 자평하셨습니다. 또한 노회찬의원은 작년 통합진보당 창당을 할 때부터 여러 가지로 충돌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으나 이렇게 빨리 파열음이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고, 죄송한 부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번에 심상정의원의 대선출마와 관련해서는 그래도 진보에서 대선후보가 나와서 정책이라던지 국민들에게 메세지를 전달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다 나중에 특정 후보의 지지를 표명하는 것도 한 방법이고,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셨습니다. 군사정권이 무너지고 민주와 보수의 대결은 그 의미를 잃게 되었고, 이제는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 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진보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진보를 원하는 사람이 늘어났는데, 진보 정치인들이 이런 요구와 목소리에 잘 대응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고 송구스럽다고 전하셨습니다. 요즘 새누리당도 통합민주당도 복지정책을 보면 어느 쪽이 보수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런 공약들이 과연 거짓인지, 사탕발림인지는 봐야 아는 것이겠지만, 이렇게 보수가 지지 세력을 포섭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인해, 진보세력의 정책들이 그 빛이 바래지는 일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노회찬 의원은 덧붙여서 과거에 정책을 만들 때, 조언해주고 함께 했던 사람들이 민주당 행을 택하는 것을 보면, 진보세력의 힘이 약하구나, 세력을 구축하지 못했기 때문에 저 사람들을 포용하지 못했구나 라는 반성을 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진보,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 듣는 사람들은 요즘 여러 상황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에 대해 궁금했습니다. 또 ‘진보는 정말 안되나?’ , ‘언제쯤 진보가 제 목소리를 내고, 달라진 생활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던졌습니다. 브라질은 우리보다 10년정도 그 정치의 변화가 앞서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큰 흐름들이 10년정도 빨리 진행되었으니, 우리도 진보가 집권하는 시대가 곧 오지 않겠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진보가 집권해서 생활이 달라지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노회찬의원은 앞으로 어떤 진보를 지향하는지에 대해서는 ‘브라질’의 사례를 들며 ‘다원적 민주주의’가 이뤄지는 진보여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브라질 진보세력은 다수의 원칙 속에 각자 세력이 자신이 생각하는 정책을 연구하고, 표를 가장 많이 얻은 정책을 당의 뜻으로 내세우며, 진보라는 이름 속에 여러 진보 세력이 융합되어 있다고 합니다. 진보도 여러 방면의 진보 세력이 있습니다. 이 세력들이 권력을 잡으려면 싸우는 모습보다는 다원주의에 따라 서로 협력하는 모습이 보여야 사람들도 진보세력에게 실망하거나 등돌리는 일 없이 지지를 계속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강연 : 노회찬의원 후기 : 강가혜 자원활동가 |
||||||
세계경제위기와 경제민주화 | [세계경제위기와 경제민주화] 1강 홍기빈, 세계경제위기의 구조와 국가의 역할 후기 | Oversmiler | 2012.10.16 | |||
세계경제위기와 경제민주화,1강, 세계경제위기의 구조와 국가의 역할,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홍기빈 소장
거울아 거울아 경제민주화가 뭐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홍기빈 소장은 오늘의 강연에서 이것 하나는 기억하라고 했다. 안데르센 동화 중 가장 똑똑한 것으로 이름난 백설공주 왕비의 거울이 실제로 있다는 점. 그 거울의 실체는 ‘주가’로 표현되는 금융시장의 평가라는 점. 그런데 영원히 깨지지 않을 것 같은 이 거울에 금이 가고 있다고 한다.
강연은 ‘경제 민주화’라는 단어의 의미가 뭔지에 대해서부터 시작되었다. 먼저 ‘민주화’란 무엇인가? 민주주의의 어원은 그리스어 ‘domokratia'로 ’demos(다중)‘와 ’kraots(지배)‘의 합성어이다. 그럼 다중이 지배자가 되어 권력을 가지는 것이 절대적으로 바람직한가? 이걸 그런 뜻으로 볼 수 있는가? 홍기빈 소장은 민주주의란 ’내가 인간으로서 자율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기 위해 필요한 만큼만의 권력을 가진다‘는 것으로 일컬었다. 한 명 또는 몇 명에게 집중된 권력을 위 이상에 부합할 만큼 재분배하는 것. 이것이 ’민주화‘라고 했다. 그렇다면 ‘경제 민주화’는 ‘경제 영역에서의 권력의 재분배’로 바꾸어 말할 수 있겠다. 홍기빈 소장은 이러한 뜻의 '경제민주화'를 바꾸어 말하면 '사회민주주의'에 가까운 것이라 소개했다.
이젠 세계경제위기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갈 차례. 홍기빈 소장은 물어본다. 도대체 뭐가 경제위기라는 건가? 코스피 지수는 2,000에 육박하고, 다우지수를 봐도 경제상황이 좋다. 한쪽에서는 경제위기라고 부르짖고 있는데, 실제 사람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없는 불편한 진실을 들춰졌다. 도대체 경제위기라는 말의 본질은 무엇일까? 홍기빈 소장은 세계경제위기란 바로 지난 몇 십년간 세계경제를 유지해 왔던, 바로 그 원리가 무너진 것이라고 답했다. 그 원리란 인간사회의 조직과 운영이 자본시장의 명령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자본시장을 정점으로 하는 경제의 원리는 이제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자본시장의 명령이 올바르다는 믿음은 헛되고 헛된 것임이 증명되었다. 기존의 경제 패러다임이 해체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이 세계경제위기의 본질임을 부인할 수 없다.
어느덧 강연은 마무리에 접어들었다. 요약하자면 경제민주화는 단순히 개인에게 돈을 나눠 달라는 요구가 아니라고 했다. 경제민주화란 경제적 권력의 편중을 해소하고 그 권력을 각 주체적 개인에게 분배하여 자신의 경제적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연을 들으며 세계경제위기의 대안으로 경제민주화가 설정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 영역이든 경제 영역이든 권력은 발생할 수밖에 없지만, 그 권력이 몇몇에게 집중되지 않도록 사회적으로 통제하는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는 것이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과제가 아닐까 한다.
|
||||||
교과서 저자와 함께 읽는 한국 근현대사Ⅱ | [한국근현대사Ⅱ] 7강, 정치가 김구와 제주‘항쟁’ - 균형 잡힌 역사관을 위하여 | 우연필연 | 2012.10.16 | |||
들어가며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의 가을학기 인문학교 강좌 ‘교과서 저자와 함께 읽는 한국근현대사II’ 는 여러 가지 이유로 검정 교과서에 담지 못했던 내용들을 저자가 설명해주는 강좌입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역사적 사건을 비판적으로 설명하여 시민들이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추도록 하는 취지의 강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균형 잡힌 역사관을 위하여 이번 시간에는 지난 시간에 다뤘던 미소공동위원회에 이어 해방 후 남북협상 및 정부수립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선생님께서는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한 남북 협상 과정에서 벌어지는 역사적 사건들을 상세하게 설명하셨는데, 특히 북한의 정부 수립 역사도 다룸으로써 참여자들이 다양한 시각에서 역사적 사건들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습니다. 이 선생님이 설명해주신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 세 가지 사항이 인상 깊었습니다.
1. 4.3 제주항쟁 오늘날 우리 정부는 4.3 제주항쟁 사건을 국가권력에 의한 폭력 행사로 규정하고 있으나 군대 등 일부 집단은 여전히 4.3 항쟁에 대해 국가를 전복하려는 시도로 간주한다고 합니다. 당시 군경과 더불어 서북청년단 등 어용단체들이 투입되어 수많은 무고한 제주도민들이 학살당했습니다.(슬라이드로 보여주신 그림들이 말보다 더 직접적으로 와 닿았고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한 사건이 아니라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역사적 사실이며, 정부가 제주 4.3항쟁에 대해 국가에 의한 폭력으로 분명하게 규정했다면 정부가 대중에 이를 널리 알리는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국민들이 진실에 눈을 떴을 때 다시는 우리 역사에 이러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을 것입니다.
*출처 : 네이버블로그 http://blog.naver.com/gold_dragon/40030503119
2. 백범 김구 김구를 정치가로 인식했을 때 그의 정치적 선택과 행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민족주의자이며 기백이 넘치는 독립운동가인 김구 선생도 어쩌면 정치적인 선택의 기로에서 장고를 거듭했을지도 모릅니다. (1차) 남북협상을 위해 김규식 선생과 북으로 건너갔을 때 그의 미래가 결정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만일 김구 선생이 북으로 가는 대신 남측만 시행한 총선거에 참여하였다면 여당의 수장 내지 야당의 수장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세력이 강성했으나 그에 반발하는 세력과 민족주의자들을 규합하여 대항했다면 김구로써도 충분히 승산 있는 선거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북측 회담에 참석한 것이 결과적으로 그의 정치적 입지를 약화시켰고, 한편 그 시기 이승만은 남한 총선거를 통해 실질적으로 물리력(군경)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을 획득하였습니다. 후에 김구가 돌아왔을 때는 이미 이승만 세력이 군경 집단을 장악하고 있었기에 김구가 민족주의자들과 이승만에 반발하는 세력을 규합하고 대항하는데 있어 한계가 드러났습니다. 3. 오래된 영상물 시청 해방 후부터 정부수립까지 북한의 생활상을 담은 영상물을 시청하였습니다. 당시 주거형태나 생활 전반이 남쪽 사람들과 다른 점이 없었습니다. 김일성을 위시한 세력들이 노동당을 창당하기 전까지 태극기를 사용했다는 점이 그나마 주목할 만한 사항인 것 같습니다. 그밖에도.. 준비자 분들께서 맛있는 김밥을 마련해주신 덕분에 허기진 배를 채우고 더욱 열띤 자세로 강의를 경청할 수 있었습니다. 강의 시작과 말미에 멋진 멘트를 날리며 진행해주신 간사 선생님과 항상 애쓰시는 자원활동가 선생님의 노고에도 감사드립니다. 다음번 강좌와 함께 강좌 끝나고 진행되는 뒷풀이 또한 기대해 봅니다.
마치며 이번 시간에는 시간이 부족해 강의 진도를 다 나가지 못했으나 이러한 부분이 시민교육의 자유로움이자 ‘멋’이 아닐까 합니다. 정해진 진도를 어떻게든 채워 나가는 것보다 내용의 깊은 성찰을 통해 조각난 역사적 사실들의 연결고리를 찾고 빈틈을 매우는 작업을 참여자들과 함께 공유하는 것이 본 강좌의 취지와 성격에 더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이번 6강의 제목인 ‘홍명희는 왜 북한의 부수상이 되었나?’에서 홍명희는 김구 선생이 남북 협상을 위해 북으로 건너가셨을 당시 함께 동행했던 인물입니다. 그는 김구 선생이 다시 남쪽으로 돌아오실 때 함께 내려오지 않고 북쪽에 남았다고 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북한의 부수상이 된 홍명희가 과연 그 후에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해보며 제법 서늘해진 어느 가을날 밤에 열렸던 열띤 강좌의 후기를 마칠까 합니다.
홍명희(소설가, 1888-1968) *출처 : 네이버 인물정보
|
||||||
교사, 교육활동가 평화교육 워크숍: 누구나 맘대로 톡톡 | [첫번째 세션후기]평화교육워크숍:누구나맘대로톡톡 | 느티나무 | 2012.10.16 | |||
아카데미 느티나무는 올 여름부터 평화교육에 대한 워크숍을 기획하고 있었습니다.
어서오세요. 반갑습니다!
돗자리 가운데서 말하고 있진 않지만, 누군가 자신을 쳐다보기를 기다리는 존재의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진행자는 돗자리 위에서 편안한 느낌으로 잠시 걷기를 청합니다. ![]() ![]() 바로 옆에 앉은 사람끼리 짝이 되어 등을 대로 앉아 서로 이야기 합니다.
"자신이 평화를 느낄 때가 언제인지,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내 자신은 어떤 존재인지"를 한 사람씩 3분동안 이야기 합니다. 상대방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종이에 그림으로 표현합니다. 그리고 그림의 제목을 붙입니다. 서로에게 그림을 전달하고, 진행팀에게 라벨지를 받아 그림 제목을 적어 몸에 붙입니다 그렇게 등을 마주대고 온전히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그림을 그리고, 그림에 제목을 붙여준 바로 그것이. 워크숍 내내 사용하게 될 나의 별칭이 되었습니다. 다시 홀 안을 걸어줄 것을 요청 받았습니다. 큰 원으로 모두 모여, ![]() 잠시 쉬는 시간이 있었네요. 느티나무홀 군데 군데 붙어 있던 평화와 관련한 다양한 글 귀들을 둘러보며 나의 마음을 잡아 끄는 문구 앞에 서 있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서로에게 그 이유를 공유했습니다. 십여가지의 글귀가 붙어 있었지만, 아래의 글귀가 참여자들의 마음을 잡아 끌었습니다. 들은 것은 잊어버리고 본 건 조금 기억나지만, 해보면 이해가 간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때로는 너무 싫었던 말인데...)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새삼 마음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마음을 잘 헤아리는 것, 타자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리고 소통 하는 것, 이 모두가 참여자들이 함께 공감하고 있는 화두임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워크숍은 조금도 시간을 허투로 사용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진행자는 서있던 순서대로 "하나, 둘, 셋" 으로 돌아가며 세 조를 만들었고, <평화 장애물>, <교육 장애물>,<폭력의 원인>에 대해서 각기 세조의 사람들이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있는 힘껏 많이 적기를 시도했습니다. 3분 동안 칠판 가득 적힌 장애물들을 보며, '이것 모두 우리가 넘어야할 산' 이구나 싶었습니다.
여기저기 겹치는 장애물들도 있었고 생각지도 못했던 장애물도 발견했습니다. 장애물에 공감하시나요? 어떤 장애물이 커보이나요? 그리고 이제 다시 서로가 서로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가만히 앉아 쓰다보니 참여자 모두의 '기대치'라는 물줄기가 '기여치'가 모여있는 아래로 흐르며 ![]() 6회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결코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서로가 함께 호흡하며 서로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는 것을 함께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가는 참여형 워크숍. ‘참여적(P)-낯설게하기(E)-예술적(A)-창의적(C)-대화식(E) 의 P.E.A.C.E. 페다고지’를 맛보고, 놀아보고, 실습해 보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 ![]() 마지막으로 아름답고도 큰 울림이 있는 시 한편을 함께 낭독하며
첫 번째 세션을 마무리했습니다. 여러분께도 그 울림이 전해지길... 두 가지 지식 - 젤랄루딘 루미 두 가지 종류의 지식이 있다. 그 하나는,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 책이나 교사로부터 개념을 배우고 암기를 하면서 배우는 지식, 전통으로부터, 또한 새로운 학문으로부터 배우는 지식이다. 그러한 지식의 힘으로 너는 세상에서 일어선다. 남을 앞서기도 하고 남에게 뒤처지기도 한다. 그 지식을 습득하는 능력에 따라, 그 지식의 장 안팎으로 드나들며, 네 안의 지식의 판에 더 많은 지식을 새긴다. 또 다른 종류의 지식이 있다. 네 안에 이미 완성되어 존재하는 지식, 샘 판에서 흘러넘치는 샘물 같은 지식- 그 신선함이 가슴 한가운데를 적신다. 이 지식은, 시들지도 썩지도 않는다. 그것은 늘 흐르며, 밖에서 안으로- 배움을 연마하는 통로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이 두 번째 지식은 샘의 근원이다. 네 안으로부터- 밖으로 흘러넘치는. |
||||||
진보,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 | <진보, 다른이름으로 저장하기> 3강, 진보에게 던지는 불편한 질문 | 스피노 | 2012.10.13 | |||
아카데미느티나무 20102 가을강좌 [민주주의학교] 진보, 다른이름으로 저장하기 3강(10/08) 후기 ① 1강 <21세기 진보의 재구성> 후기 다시보기 >> 클릭
② 2강 <21세기 진보의 재구성> 후기 다시보기 >> 클릭
3강은 ‘진보에 던지는 불편한 질문’이라는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하승우 강사님은 영화 <풍산개>를 들며 사람들이 타인을 재단하려 하는 사회를 꼬집으셨습니다. 극 중 윤계상은 남과 북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기에, 양쪽 모두에게서 ‘어느 편이냐’는 질문을 듣습니다. 어느 한 편에 속하지 않으면 안전해질 수 없는 상황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듭니다. 강사님은 한국의 진보도 마찬가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이론이나 사상에 권위를 부여하고 자기 식으로 해석하고, 자신과 다른 해석을 내놓는 쪽은 변절자나 개량주의로 폄하하는 일부 진보 세력들을 비판하셨습니다. 인간은 각자 자라는 환경이 다르고, 각자 다른 감수성을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각자의 시선의 차이는 피할 수 없는 것이고, 토론과 합의하는 과정을 필요로 합니다. 같은 시선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동지’라는 말로 사람들을 한정지으면, 그 ‘동지’라는 말에 위화감을 느끼고 함께 연대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생겨납니다. 불편하지만 우리에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없도록, 조금 불편하고 어려운 사람들도 만나 우리 편을 늘려야 사회를 바꿀 수 있습니다. 한 살림과 의료생협, 그리고 강정과 쌍용이 서로 연대하는 모습을 보면, 서로가 서로의 삶에 관심을 가지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대의명분이 삶을 바꿀 수 있을까요? 공지영씨가 쓴 ‘의자놀이’의 논쟁을 기억하시나요? 공지영씨가 이 책의 수익금을 쌍용차 노조에 모두 기부한다는 좋은 뜻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휴머니스트의 나라말출판사 인수와 판권에 관련된 문제, 그리고 표절 문제 등을 전부 이 때문에 묻고 넘어가야 하는 것일까요? 수익금 기부로 인해 혹 좋지 않은 시각이 생길까 판단하여 과정 속에 생긴 문제들에 대한 논의들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약자가 강자를 이해하고 배려한 것입니다. 이는 이승만 정부가 잘 살게 해주겠다며 국민들을 억압했던 논리와 다를 바가 없다고 강사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울산 현대자동차에서 일어난 ‘밥.꽃.양’이라는 사건을 아시나요? 현대자동차 노조가 정리해고 반대를 내세워 한 무기한 전면파업이 277명의 정리해고로 타결되었습니다. 이들이 바로 식당아줌마들이었습니다. 이들 중 144명의 여성노동자들만 노조식당에 고용되었습니다. 이때 현대자동차 노조는 ‘아줌마들만 참으면 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아줌마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곳은 없었습니다. 민주노총 등 노동단체들도 가입되어 있거나, 관련된 일이 아니면 관심을 갖지 않으니 묻히기 쉽습니다. 기륭전자, KTX, 재능교육 등 여성노동자들이 일으킨 파업은 장기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회를 바꾸려는 곳에서도 가부장제는 남아있습니다. 우리는 누구와 연대해야 하는 것일까요? 몇 년 전 장애인들도 지하철을 탈 수 있게 해달라며 장애인들이 선로를 점거한 일이 있었습니다. 30분간 시민의 발을 묶었으나, 자신들은 30년을 집에서 기다렸다며, 지하철을 용이하게 이용할 수 있게 시설을 확충해달라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진보는 가장 아파하는 사람과 연대하고, 섬세해야합니다. 하지만 시민의 발을 묶었다는 점에서 비판이 두려웠고, 큰 이익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진보단체는 이들과 결합하지 않았습니다. 성공회대에 근무하던 계약직 행정직원이 비정규직으로 계약이 만료되어 학교를 떠나게 되자 행정직원 정규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서명을 받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명단에는 많은 진보적 교수들의 이름이 빠져 있었습니다. 진보적이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자기 공간에서 벌어지는 부조리함에 대해서는 눈을 감을까요? 자신의 생각과 주장이 삶에서 드러나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처사는 신뢰를 잃는 계기가 됩니다. 진보가 더 나은 진보, 올바른 진보가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과 연대하고, 자기책임성을 갖는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이번 강의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강연 : 하승우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연구위원 후기 : 강가혜 자원활동가
|
||||||
교과서 저자와 함께 읽는 한국 근현대사Ⅱ | [한국근현대사Ⅱ] 5강, 오보가 뒤흔든 대한민국 | 서동호 | 2012.10.12 | |||
안녕하세요. 시작한지 얼마 안된거 같은데 벌써 강의가 중반부로 접어들었네요. 치열했던 독립투쟁을 거쳐 이제 해방후 한국의 모습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해방 이후의 다양한 정치인들에 대해 살펴보고, 신탁통치와 관련한 동아일보의 오보사건을 다뤘습니다. 오늘 후기에는 '신탁통치 오보사건'을 중점으로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1. 신탁통치 오보사건 혹자는 '신탁통치 오보사건'을 '역사를 뒤바꾼 10대 오보'중에 하나로 꼽기도 합니다. 그만큼 한반도와 세계정세에 엄청난 영향을 준 사건입니다. 광복을 맞은지 4개월이 지난 후에 미국과 소련, 그리고 영국의 외상은 모스크바에서 한반도를 어떻게 할지 협상합니다. 이 회담이 모스크바 3상회이지요. 이 때 회담에 참석한 미, 소, 영과 장제으의 중화민국을 포함하는 4개국이 한반도를 신탁통치 하자는 아이디어가 구상되기 시작합니다. 이런 움직임이 저 멀리 막사과(모스크바의 당시 표현)에서 이런 논의가 진행되던 때인 1945년 12월 27일, 동아일보에서 호외를 냅니다.
<1945년 12월 27일 동아일보 기사 -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소련의 구실은 삼팔선분할점령. 미국은 즉시독립 주장> 당췌 읽을수가 없군요. 하얀건 종이요 까만건 글자겠죠? 그나마 보이는 사진에서 스탈린과 미국의 외무상인 번즈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련과 미국이 만나서 뭔가 했나보군요! <위 기사를 번역한 내용입니다. - 출처 : 네이버 뉴스캐스트> 보도 내용인 즉, 임시정부 수립에 대한 협상결과가 나왔으며, 소련은 신탁통치를 찬성하고 미국은 반대하는 입장이다 라는 것인데, 문제는 이게 사실관계가 뒤바뀐, 오보라는 것입니다.
모스크바 3상회의는 앞서 말했듯 12월16일부터 27일까지 미국·영국·소련 3개국의 외무장관들이 모스크바에서 모여 전후 처리 과정에 대한 문제들을 합의하려 진행한 모임이었는데, 이 기사가 나오던 시점인 12월 27에는 회의 내용이 채 공개되지 않았던 시기였습니다. (회의 내용은 이후 12월 30일에 공개됩니다.) 기사 내용을 잘 살펴보시면 아시겠지만 '조선 독립문제가 표면화하지 않는가 하는 관측이 농후하여 가고있다'는 등의 추측성 발언을ㅈ아볼 수 있습니다. 사실에 기반해서 쓴 기사가 아니라 회의 내용에 관한 하나의 추정, 그러니까 정확하지 않은 기사라는 사실을 엿볼 수 있는거죠.
2. 극렬한 좌우대립
하지만 사실은 이와 달랐습니다. 정작 신탁통치를 주장했던건 미국이었지요. 그리고 신탁통치에 관한 미국과 소련의 입장도 차이를 보이는데, 소련의 경우 일종의 '후견인'역할의 신탁통치를 주장했고 미국의 경우 완전한 신탁통치를 주장합니다. 이 보도가 발표되자 한반도는 '친탁'을 주장하는 좌익 진영과 '반탁' 주장하는 우익 진영으로 나뉘어 좌우대립이 극에 달하게 됩니다. 일제에 의한 강제통치에서 벗어난지 얼마 되지 않던 상황에서 또 다시 강대국에 의한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아주 유명한 사진입니다. 신탁통치 반대시위 사진>
이승만, 김구등의 유수의 정치가들은 일제히 '3상회의 결과 수용 불가!', '신탁통치 반대'의 구호를 내걸고 반탁운동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김구와 이승만의 재빠른 신탁통치 반대운동은 여운형, 박밀려있던 지지도를 회복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초기엔 좌익들도 "신탁통치는 우리 민족에 대한 모독"이라며 반탁을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박헌영이 소련을 다녀온 뒤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하여 찬탁으로 입장을 선회하지요. 이들은 결국 우익에 의해 찬탁세력으로 치부되어 범 국민적인 공격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반탁운동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친일세력들이 자신들의 과거를 세탁해버립니다. 친일파 세력들이 친/반탁운동으로 정세가 요동치는 틈을 이용해 자신들을 '반공투사','애국자'로 둔갑시켜버린 것이 이것입니다.
3. 교과서와 반탁운동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때 "소련은 찬성, 미국은 반대"라고 신탁통치 반대운동에 대해 외웠었습니다. 교과서에서는 동아일보의 오보내용이 역사적 사실으로 아직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2009년 교과서 개정안을 통해 이 내용에 변화가 오게 되는데, 2010년 3월 1일에 나온 금성출판사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258페이지에 "...소련이 38선 분할을 구실로 신탁통치를 주장한 반면, 미국은 즉시 독립을 주장하였다는 잘못된 보도였다"라고 설명한 구절이 첨가됩니다. 독립된 박스로 다룰 정도로 오보사건이 나름 비중 있게 등장합니다.
|
||||||
재벌공화국을 넘어 | ['재벌 공화국을 넘어' 강좌 ⑤] 토크쇼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 2012년의 선택' | 참여사회연구소 | 2012.9.29 | |||
['재벌 공화국을 넘어' 강좌 ⑤] 토크쇼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 2012년의 선택'
* 이 글은 프레시안((www.pressian.com) 기사입니다.
|
||||||
위험사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 <위험사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4강, 인간이 만들어낸 파멸의 날? | 우진아빠 | 2012.9.28 | |||
아카데미느티나무 20102 가을강좌 [민주주의학교] 위험사회, 어떻게 살것인가 4강(9/26) 후기
![]()
인류가 바이러스로 인한 재앙을 막기위해 만든 균주에 의해 오히려 바이러스의 대유행이 시작될 수 있을까?
<위험사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4강 '인간이 만들어낸 파멸의 날? : 변형 조류독감 바이러스 논쟁' 강의는
바로 이러한 질문으로부터 시작했다.
요즘 영화에서는 재난영화, 그 중 사고와 음모가 얽혀있는 바이러스 영화가 인기를 끌고 있다.
<둠스데이>, <28일 후>등...
나 또한 이러한 영화를 보면서 먼미래가 아니라고 생각했었지만, 이렇게 가까이 와 있었을 줄이야!
자꾸 안철수의 대선 출마 인용구가 떠오른다~
"미래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아직 널리 퍼지지 않았을 뿐...'
![]() ![]()
그런데 실제 영화와 같은 일들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좀더 잘살기 위해 아둥바둥 발버둥치면 사는 사회에서 어쩌면 전혀 엉뚱한 곳에서 재앙이 시작될지도 모른다니..
<변형조류독감 바이러스 논쟁>의 핵심은
과학자들의 '연구의 자유'를 어디까지 보장하고 어디까지를 규제해야 하는 것이다.
대중의 눈높이와 이해, 동의를 구한다는 것이 언뜻 생각할때는 합리적일 수 있겠지만,
과거부터 과학이라는 학문은 선구적일 수밖에 없고
과거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지동설', 다윈의 '진화론' 을 생각한다면,
입장에 따라선 연구의 자유를 심각히 침해하는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한편, 이러한 논란으로인해 관련 연구자들은
자성의 의미에서 이런논란(생물안전, 생물보안수준 검토,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 안착)이 해소 될때까지
관련 연구를 무기한 연기했다고 한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인류의 보편적 이익이 아닌
기업의 이익을 위해, 특정 집단의 목적달성을 위해, 개인의 영달을 위해
이러 위험한 연구들이 지속되고 있고 결과물이 나오고 있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과연 이러한 위험사회에서 시민들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앞으로 있을 6강 강의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강의 : 김명진, 시민과학센터 운영위원 / 서울대 강사
후기 : 천웅소 아카데미느티나무 간사 |
||||||
진보,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 | <진보, 다른이름으로 저장하기> 2강, 진보와 정치적 이성 | 스피노 | 2012.9.28 | |||
아카데미느티나무 20102 가을강좌 [민주주의학교] 진보, 다른이름으로 저장하기 2강(09/25) 후기 ① 1강 <21세기 진보의 재구성> 후기 다시보기 >> 클릭
‘진보.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 2강의 시작에 앞서서 폴리티컬 컴퍼스 설문 결과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폴리티컬 컴퍼스를 통해 수업 전에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알 수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어떤 성향을 갖고 있는지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번 ‘내게 진보는 □이다.’에 이어 ‘내게 정치는 □이다.’에 자신의 생각을 기입하고, 그 이유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네모 칸에 여러 가지 다른 답이 채워졌다. 교육감이 바뀌고 나니 아이들이 인권 관련한 가정통신문을 받아온 것을 보고, 아이들 보육 지원료가 나오는 것을 보며 정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활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하시며 ‘일상’이라고 답하신 분도 있었다. 또 정치는 자신의 숙명이라고 답하신 분도 계셨습니다. 강연해 주신 박상훈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께서는 진보라는 의미의 재정립화의 필요성을 역설하시며 정치는 공적인 일에 참여하고 관여하는 일이라고 정의를 하며 수업을 시작하였습니다. 과거 그리스에서는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으나 지금 우리 운동권들은 ‘자신은 정치적인 사람이 아니다. 권력에 관심이 있어서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말하는 세태를 꼬집었습니다.
*정치와 유리된 진보란 가능한가? 정치가 이상사회를 만들 수 없고, 일상에서 권력. 위계. 강제. 복종과 같은 요소들을 없앨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지지하는 정당이 있고, 그 정당이 유능함을 발휘하고 대중의 기대를 받을 때, 그 정당에 기대를 거는 사회적 약단 집단도 무시당하지 않고, 주체적 시민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런 정치가 가능하지 않다면, 소외된 사회집단은 좌절을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취약 계층들이 정치를 멀리하게 됨에 따라 특정 집단이 자신들에게 유익하도록 정치를 움직여 나가게 됩니다. 오늘날 한국 정치가 상층계급의 전유물일 수 있는 데에는, 진보의 책임도 큽니다. 진보적인 것을 앞세우고, 운동의 고결함과 진정성만을 고집하며, 반정치주의의 도덕성을 뒷받침했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정치 속에서 성과를 낼 유능함을 진보가 갖지 못했다는 게 문제이지 정치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진보가 정치에서 사회에 유익한 성과를 내려면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진보의 성장과제 정파 때문에 문제라는 말이 있는데, 정파를 만드는 것은 정치에서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다만 정당을 제대로 만드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정당의 형성기 내지 전환기에는 강한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이 없이는 강력한 대중권력은 불가능 하고, 정당은 정파 권력들의 놀이감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지는 용서되지 못한다’라는 말처럼 정치에서 무능력은 변명될 수 없습니다. 리더십과 권력의 문제를 회피하고 이룰 수 있는 정치적 성취는 없습니다, 권력을 통해 권력을 통제하려는 접근, 야심을 통해 야심을 견제하려는 접근이 필요합니다. 이 속에서 어떻게 목표를 성취할 지가 진보가 해야 할 일입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진보의 편향된 이해 그간 진보는 자신들만의 민주주의가 갖는 특별함을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정치에서 옳음은 하나가 아니라 복수입니다. 특히 민주주의는 여러 부분적 옳음을 말하는 정당들 사이의 경쟁을 통해 사회적으로 선한 결과를 낳고자 하는 체제입니다. 가끔 진보만이 옳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보수를 박멸의 대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수 없는 진보만의 세상이 가능하다면 그는 전체주의일 것입니다. 이견은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견을 갖는 집단들의 합리적인 경쟁과 공존을 통해서 만이 진보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은 성공한 진보정당들의 과거 경험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입니다.
*좋은 진보 정치가란? 정치에서 운동에 대한 헌신을 내세우거나 역사나 이념을 과도하게 이상화하는 접근은 진보적 엘리트주의에 불과하며 대중의 지지를 얻을 수 없습니다. 사보나롤라는 도덕주의적 진보파의 전형적 인물로 타락한 사회를 정화하고자 스스로 대속의 십자가를 지는 자세로 통치를 했습니다. 도박을 금하고, 매춘을 금하고, 후에는 술을 금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갈등과 분열 불안한 현실은 여전했고 시민들의 불만은 쌓여갔습니다. 이 때 교황과 귀족의 음모로 그의 통치는 처참하게 무너졌고, 화형에 처해지고 말았습니다. 탁월함이 정치에 기여해 좋은 정치를 할 수는 있으나 다수의 판단과 함께 가야만이 성공 가능하다는 것을 이 사례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치학을 잘 아는 사람이 정치를 잘 할 수 있을까요? 정치학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정치를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플라톤이나 루소도 현실 정치에서는 실패했습니다. 정치는 누구나 다 전문가가 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전문가가 더 이론에만 집중해 현실 정치를 파악하지 못하는 오류에 빠지기도 합니다.
*진보의 가치 보수가 ‘현실’을 고정시켜 해석하는 것만으로도 기반 층을 다질 수 있는 것과는 달리, 보수는 ‘현실의 변화와 개혁을 통해 발전된 미래상’을 제시해야 한다. 어떤 미래를 제시해야하는지에 대한 지향과 관점은 다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정파적 분열과 사상투쟁의 가능성이 큽니다. 뛰어난 누군가가 나와 미래상을 제시한다 해도, 불확실성을 띄므로 진보는 실력이 없으면 정치적으로 성장하기에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진보의 도전의 벽이 높은 것은 진보의 성취가 더 빛나고 효과가 오래갈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좀 더 인간적이고 좀 더 정치적 이성을 갖춘 실력 있는 진보파가 나와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는 현실 개혁을 이루어 졌으면 하는 것이 바람입니다.
강연 : 박상훈 후마니타스 출판사 대표 후기 : 강가혜 자원활동가 |
||||||
재벌공화국을 넘어 | ['재벌 공화국을 넘어' 강좌 ④] 김대중ㆍ노무현도 못한 '서민의 호민관', 이제 누가? | 참여사회연구소 | 2012.9.25 | |||
['재벌 공화국을 넘어' 강좌 ④] 김남근 참여연대 집행위원회 부위원장(변호사)
|
||||||
재벌공화국을 넘어 | ['재벌 공화국을 넘어' 강좌 ③] "박근혜, 재벌의 은행 지배가 경제민주화인가?" | 참여사회연구소 | 2012.9.25 | |||
['재벌 공화국을 넘어' 강좌 ③] 이동걸 전 한국금융연구원장
|
||||||
진보,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 | <진보, 다른이름으로 저장하기> 1강, 21세기 진보의 재구성 | 웃으며,함께,끝까지 | 2012.9.24 | |||
아카데미느티나무 20102 가을강좌 [민주주의학교] 진보, 다른이름으로 저장하기 1강(09/18) 후기
드디어, 아카데미 느티나무의 가을 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새학기를 맞아 펼쳐진 느티나무의 새로운 시도! 시대의 요구죠, 바로 ‘소통’과 ‘참여’입니다. 수동적인 존재로 규정되는 ‘수강생’에서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주체인 ‘참여자’로, 일방향식 강의형식에서 참여자와 강사, 교육기획자가 함께 이야기하고 의견을 공유하며 함께 만들어나가는 SNS식 강의형식으로! 느티나무의 진화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뭐니뭐니해도 바로 이 강좌, [진보,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가 있는데요, 변화의 움직임은 강의실에 들어서는 순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조별로 마주보고 앉을 수 있게 배치된 책상들, 그 위에 놓인 형형색색의 종이와 펜들, 마치 어린 시절 유치원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느티나무의 새로운 모습이었습니다.
강의에 앞서 질문 하나! “진보는 나에게 □이다.” 이보다 짧고 어려운 질문이 또 있을까요? 참여자 여러분은 저마다 모험, 어려운 단어, 삶, 부끄러움 등등의 이야기를 펼쳐놓았습니다. 누구에게나 진보란 어렵지만 걷고 싶은, 우리의 삶과 가까운 그런 것인가 봅니다. 진보는 우리의 ‘가치’일까요, ‘삶’일까요? 김동춘 교수님의 친구 분 중에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분이 계신데, 그 분은 김 교수님을 보고 “서울의 아파트에 살면서 차도 끌고, 쌀 한 톨 생산하지 못하는 니가 무슨 진보냐?”라고 하신다는군요. 모 대학 앞에서 사회과학 서점을 했던 또 다른 지인 분은 10년 동안 달라지는 것 없는 책방을 보며 “이게 무슨 진보냐, 난 보수다.”라고 하셨답니다.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대표적인 친일단체였던 일진회의 전신은 바로 진보회라는 단체였는데요, 그들은 “조선도 문명개화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그 주역은 일본이며, 우리는 그들을 통해 문명의 진보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과연 이들이 말하는 진보는 무엇일까요? 우리에게 진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요?
진보? 보수? 1961년 군사쿠데타를 지지했던 세력의 상당수가 박정희를 지지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그를 진보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구체제로 비판을 받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우에도 64년 대선 때의 선거 전략은 못가진자, 가난한 농민의 자식이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것이었고요. 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진보운동은 반미와 계급해방에 초점이 맞추어졌고, 2000년대에 들어서는 기득권에 일부 편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그리고 그 역사 속에서 ‘진보’라는 개념은 계속해서 변화해 왔습니다. 그리고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들로 사람들은 진보와 보수를 헷갈려하기 시작했습니다. 분파투쟁, 권위적인 조직 운영, 비정규직에 대한 미온적 태도 등을 통해 대기업 노조가 보여주는 노동계의 모습, 이들을 보수라고 해야 할까요? 외국의 경우에는 60년대가 바로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68년 학생운동이 일어나기 전에는 노동운동-노동자정당이 진보의 중심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 반대-대학개혁-권위주의 타파를 주요 슬로건으로 한 68학생운동은 노동을 중심으로 한 진보의 공식을 깨뜨렸습니다. 68운동의 학생들은 기존의 노동운동이 이미 제도권화되어 기득권 세력이 되었다고 판단하였던 것이죠. 이들은 당시의 노동운동이 자본주의에 대해 더 이상 안티테제가 아닌 편승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에 실망했고, 노동운동에 기대지 않은 새로운 진보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페미니즘-평화-인권-환경운동으로 대표되는 New Left, 이른바 신사회운동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러한 노동운동과 신사회주의 운동이 90년대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그것도 동시에 일어나기 시작했고 이것이 민족주의, 분단 체제와 같은 한국의 특수한 상황들과 맞물려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데 큰 혼란을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김동춘 선생님은 진보의 범위를 규정하는데 있어 정치적 진보와 사회적 진보, 경제적 진보로 구별 지어 생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사회는 이 세 가지 개념이 뒤죽박죽 섞여있기 때문에 진보와 보수를 구별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원래 서구에서 민족운동은 보수의 가치에 속하였고 실제로 히틀러를 통해 극단적인 방식으로 표출되기도 하였지만, 한국에서는 유독 민족이 진보의 가치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논쟁 구조가 계급이 아닌 민족-남북관계 등을 통해 유지되어 왔기 때문이죠. 이런 의미에서 무상급식 문제는 한국사회에 나타난 최초의 계급적 논쟁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치적-경제적 진보와 보수의 논쟁이 이제야 시작된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사회적 진보와 보수에 대한 논쟁은 없습니다. 미국에서는 기독교-남부 백인들이 사회적 보수를 구성하는 반면, 한국의 사회적 보수는 지역주의의 형태로 나타나는 데 그쳤습니다. 앞으로의 진보는? 이 시대의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가장 대표적인 영역은 경제적 영역인데요, 경제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자본주의에서 진보와 보수의 갈림길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견해 차이를 통해 드러납니다. 그러나 21세기적 가치로 삶의 질 문제가 추가되고, 복지와 안전, 불안으로부터의 해방 등이 중요하게 다루어지면서 주관적 행복의 지수가 진보의 기준으로 작동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의 진보는 시장보다는 사회, 개인 중심의 경제보다는 공동체 중심의 경제를 이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의 진보는 민주주의를 심화·확대해 나가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입니다.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한가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양적인 문제와 함께 질적민주주의의 향상도 고민해 봐야할 문제일 것입니다. 기업 경영의 민주화, 노조의 개입, 기업 내 권력의 분점 등을 통해 민주주의의 적용 영역을 최대화하고 검사·대법원의 구성에 시민들이 참여하여 정치-사회-경제적 민주제도를 더욱 심화시켜 나가는 방법이 있겠죠. 평화 또한 진보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도 여겨져야 합니다. 평화가 없이는 진보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진보의 가치에 가장 치명적인 것이 바로 전쟁이기 때문이죠. 전쟁은 모든 것을 비인간화시킬 뿐만 아니라 실제로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안보를 빌미로 한 인권침해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진보는 전쟁과 자본주의의 고리를 끊어내는 데에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Alt+V 지난 4월 벌어진 19대 총선에서는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통합진보당은 13석의 의석을 얻으며 진정한 전국구 정당으로 거듭났다는 평가받았습니다. 그러나 채 6개월도 지나기 전에 당은 분열되었고 국민들은 말 그대로 ‘멘붕’ 상태에 빠져버렸습니다. 진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해봐야 할 시점에 이른 것이죠. 대선이 90여일 앞으로 다가온 현재의 시점에서 보수와 진보를 구별해내는 능력은 우리에게 정말 꼭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구체제로 비판받아 온 후보가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외치고, 저마다 시대정신을 내세우는 상황에서 어떤 것이 보수의 가치인지 어떤 것이 진보의 가치인지 구별해내는 능력, 꼭 필요하겠죠? 강의 : 김동춘/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글 : 자원활동가 김주호
|
||||||
위험사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 <위험사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2강, 핵에너지의 역사와 미래 | 공채원 | 2012.9.22 | |||
우리나라의 원자력발전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얼마 전, UAE로부터의 원전 수주로 국내외 여론이 들끓었던 적도 있다. 우리는 우리 영토, 영해에서 석유 한 방울 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름이면 관공서부터 교통수단, 가정, 직장, 식당 등 모든 실내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며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살고 있다. 물론 올해엔 전기를 절약한다고 권장온도를 지정하고 절전을 강요하여 평소 여름보다는 더 더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대다수 후진국에서 전기가 수시로 나가 에어컨은 꿈도 못 꾼 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충분히 시원한 삶을 살고 있다. 밤이 되어도 도시의 불빛은 꺼지지 않고 블랙아웃이 일상이 아니라 공포가 되어야 할만큼 우리는 블랙아웃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원자력 발전의 덕분이다. 통계에 따르면 2030년에는 전력 사용에 있어 원자력 의존도가 60%대에 진입할 것이라는 통계분석도 있다. 이처럼 우리의 삶은 원자력, 즉 핵에너지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과연 우리가 하루종일 에어컨을 틀고 살아야 할 만큼 더운가? 과연 우리가 이렇게 새벽까지 불을 밝혀야 하는가? 우리가 에어컨을 자제하고 안 쓰는 형광등은 꺼두며 산업체에서는 에너지효율을 위해 노력한다면 원자력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 물론 당장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기에 정부 차원에서 탈 원전에 대한 장기적 플랜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세부적인 플랜을 세워 단계적으로 에너지 사용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절약을 생활화하여 환경과 미래를 생각하는 에너지소비를 추구해야 한다. 이제는 에너지 문제에 접근할 때 비용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미래도 고려해야할 때이다. 글 : 자원활동가 공채원 |
||||||
교과서 저자와 함께 읽는 한국 근현대사Ⅱ | [한국근현대사Ⅱ] 3강, 그 섬에 가고 싶다 - 완도의 항일운동 | 서동호 | 2012.9.21 | |||
[한국근현대사Ⅱ] 3강, 그 섬에 가고 싶다 - 완도의 항일운동 안녕하세요. 강좌가 없는 주를 틈타 재빠르게 후기를 올리고 있는 자원봉사자 서동호 입니다. 지난 토요일 답사는 잘 다녀오셨나 모르겠네요. 저는 성묘하러 고향에 가야해서 답사에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역사공부의 꽃은 현장답사라는 말을 들었었는데 정말 아쉽더라구요. 그래도, 다녀오신 회원분들은 뜻깊은 시간 되셨으리라 믿습니다. 지난 강좌는 박찬승 선생님의 마지막 강의인 만큼 강의자료부터 엄청났지요. A4용지로 서른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자료를 보고 ‘학점을 달라고 말씀드려볼까...’하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사실 지난 시간에도 임시정부에 대한 연구나 관심이 높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왔었고, 이번 강의가 끝난 후 뒷풀이 자리에서도 선생님은 “역사학과 신입생들에게 ‘이동휘를 아느냐?’고 물으면 아는 학생이 없다”며 독립운동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크지 않은데 아쉬움을 드러내셨었죠. 그래서인지 이번 학기 강의에 대한 선생님의 열정이 남다르신 것 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3회 강좌에서는 '완도의 항일운동'과 '친일파의 계보와 변명담론' 그리고 마지막으로 '위안부 문제'를 다뤘습니다. 각각의 주제를 하루에 강의하기에도 벅찰만큼 무거운 주제들인데 선생님의 짜임새 있는 강의로 두 시간동안 쉴틈없이 강의가 진행됐지요. |
||||||
꿈 투사 워크숍, 성찰과 치유를 위한 꿈작업 | [꿈투사] 첫날 | 별밤 | 2012.9.14 | |||
공부하길 싫어하는 저는 강좌 같은건 들어본적이 없는 사람이랍니다. 하하 그런데 참여연대 아카데미 꿈강좌는 리플렛이나 포스터를 볼때마다 꼭 듣고 싶었어요. 올 가을이 아니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지난주에 신청했지요.
그렇게 듣고 싶던 꿈강좌 첫날 아침부터 도망가고 싶더라구요. 비가 오고 몸이 쑤셔서 그런건 아니었어요. 겁이 났어요. 대충 숨겨도 되는 그런 시간은 아닐텐데.. 왠지 피하고 싶고 불안한 마음이었지만 아닌척 카페통인에 들어섰죠. 열댓분이 오셨고, 두분 빼고 모두 여성이었고, 기수강자들도 여럿 계시더라구요. 헬스 끊듯이, 감을 잊지 않기 위해 계속 수강하신다는 말씀도 인상적이었어요. 인기 강좌에 어떤 연으로든 앉아 있구나 싶으니 감사했어요.
고혜경 선생님이 앞으로의 10주를 어떻게 보낼지 인트로 설명을 해주셨어요.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확실한건 이번 강좌가 제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숙제도 내주셨어요. 꿈을 상세히 적어오라구요. 오늘 꿈노트를 마련하려구요. 숙제를 잘 해보고 싶네요. 흔들거리는 나를 위해, 나의 무의식의 세계에 손을 내밀어 볼꺼예요. 기대돼요. |
||||||
위험사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 <위험사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1강 축산 산업화가 빚어낸 공포, 광우병 | 공채원 | 2012.9.12 | |||
광우병의 공포로 광화문광장이 뜨거웠던 이명박 정권의 집권 초기에 나는 고등학교 1학년생이었다. 그 때 벌써 내 친구들 중엔 집회에 참석해 촛불을 드리운 녀석들도 있었지만 나는 축구와 같은 것들에 더욱 관심을 가졌던 기억이 난다. 이번 강의의 주제는 ‘축산 산업화가 빚어낸 공포, 광우병’ 이다. 그러나 이번 강의의 핵심은 광우병이 아니었다. 물론 화두는 광우병이었지만, 주 내용은 축산 산업화를 통한 극단적 이익추구가 어떻게 인간사회와 환경을 황폐화시키고 피폐하게 만드느냐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광우병은 그 축산 산업화가 가져온 다른 수많은 폐해 중의 하나였다.
이것은 육류소비의 풍조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곡물 소비량은 2배, 4배, 8배 증가하게 됨을 의미한다. 유럽과 미국, 한국, 일본 등의 산업국들의 부유한 국민들이 소고기 1Kg을 소비할 때마다 곡물 8Kg이 소비되고 곡물이 부족해져 곡물가격의 상승을 가져오게 되어 개발도상국의 빈민들의 밥그릇을 위협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 축산업에 소요되는 곡물은 인간 식량의 1/3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축과 인간이 한정된 식량을 두고 경쟁하고 있는 셈이다. 제레미 리 프킨이 『육식의 종말』에서 지적하였듯이 한쪽에서는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식량자원을 갈망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육식위주의 식습관으로 비만이 문제시되는 것이다.
소를 키우기 위해서는 곡물 재배에 비해 15배 이상의 물이 필요하다고 하며, 다른 가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가축에게 먹이로 주는 곡물을 기르기 위해서도 수자원이 들어가는 것을 고려하면 참으로 엄청난 양의 수자원이 육식을 위해 고갈되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육식에 대한 욕망으로 굶주린 아이들에게 돌아가야 할 곡식을 빼앗아 가축에게 먹이고, 소를 빨리 살찌우기 위해 초식동물인 소에게 죽은 소를 갈아 만든 사료를 먹이는 인간. 그렇다면 광우병은 육식과 이윤추구의 욕망으로 자연의 질서를 깨뜨린 인간에게 내려진 자연의 경고가 아닐까? 글 : 공채원 자원활동가 |
||||||
교과서 저자와 함께 읽는 한국 근현대사Ⅱ | [한국근현대사Ⅱ] 2강 임시정부 이야기 - 머 나먼 혁명의 길 | 서동호 | 2012.9.11 | |||
안녕하세요 교과서 저자와 함께 읽는 한국 근현대사 참여자 여러분. 이번 교과서 저자와 함꼐읽는 한국 근현대사 시즌2 자원봉사자 서동호 입니다. 지난 강좌가 끝나고 벌써 3일이 지났네요! 늦어도 강좌가 있었던 주에는 후기를 올려야 한다는 강한 심리적 압박감에 컴퓨터 앞에 앉긴 했습니다만 글재주도 없고, 그렇다고 선생님이 강의해주시는 내용을 빠삭하게 알고 있는 것도 아니라 고민이 많습니다. 어떤 식으로 매주 후기를 써야하나 고민하던 차에, 그냥 '내 블로그에 쓴다'는 생각으로 편하게 써보려고 합니다.
강의 내용은 선생님께서(작성하시고 제가)수업 전에 나눠드린 강의안에 너무 자세히 나와있어서 제가 따로 요약하거나 정리할 필요가 없을것 같습니다. 대신 다음강좌 부터는 매주 제가 강의를 들으며 흥미로웠던, 혹은 새로 알게된 사실에 대해서 간략하게 적는걸로 후기를 대신하려 합니다.
그 전에, 지난 강좌 쉬는시간에 봤던 영상을 링크했습니다. 소리도 좀 작았고, 뒤에 계신 분들은 잘 안보이시는지 기웃기웃 거리시는 모습을 봤거든요. 같은 영상이니 다시 보기를 원하는 분들은 다시 한 번 감상하세요. ^^
임시정부의 설립 2강에서는 1강에 이어 본격적인 독립운동의 시기를 다룹니다. 3.1운동 이후 4월 13일(아래 영상에는 11일이라고 나와있습니다만,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이 사실을 공표한 날이 13일 입니다.) 중국 상해에서 드디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설립됐습니다. 그리고 이 임시정부를 기반으로 독립을 위한 무장투쟁과 외교운동이 벌어지게 됩니다.
임시정부의 수난 과거 임시정부가 설립되는 과정에서처럼 임시정부가 세워진 이후에도 임시정부 내부에서 꽤나 많은 잡음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국내와의 연락체제의 두절과 임시정부 내의 계파간의 의견차 등이 주된 원인인데, 이승만의 위임통치(미국의 위임통치를 요청하겠다는 이승만의 주장), 이동휘의 레닌 자금 사건(이동휘가 레닌에게 받은 독립운동자금을 자신의 사회주의운동을 위해 사용한 사건)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처럼 어렵게 설립된 임시정부는 역시나 순탄치 않은 항해를 계속합니다.
임시정부 중심의 좌우파 결집 이후 김구가 이끌던 한국국민당, 이청천이 이끌던 조선혁명당, 조소앙이 이끌던 재건한국독립당의 3당 통합을 이루어 내고 임시정부 역시 이를 계기로 조직을 확대하고 구조를 개편합니다. 그리고 1940년 9월에 한국광복군이 창설됩니다. 이로서 임시정부는 한국독립당과 광복군, 그리고 임시정부의 당, 군, 정의 체제를 확립했습니다. 이에 41년 4월, 미주와 하와이의 모든 한인단체들이 총집결해 만들어진 재미한족연합회의 지지와 후원으로 이어져 해외 한국독립운동과 통일/단결의 구심점으로 자리잡습니다. 이후 41년 11월에 '대한민국 독립헌장'을 발표합니다. 최초로 발표된 대한민국 독립헌장에서 눈에 띄는것은 바로 경제적 형평성을 헌장에 명시했다는 점입니다. 임시정부는 '대한민국 임시헌장' 3장(건국)에 토지와 대기업에 대해서는 국유/국영화를 그리고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민간이 소유할수 있다는 조항을 명시했습니다.
|
||||||
재벌공화국을 넘어 | ['재벌 공화국을 넘어' 강좌 ②] "안철수 할아버지가 집권해도 봉착할 문제는 바로…" | 참여사회연구소 | 2012.9.10 | |||
['재벌 공화국을 넘어' 강좌 ② : 이병천 강원대 교수]
|
||||||
재벌공화국을 넘어 | ['재벌 공화국을 넘어' 강좌 ①] "'대마불사' 재벌, 한국 사회 위기의 근원" | 참여사회연구소 | 2012.9.4 | |||
['재벌 공화국을 넘어' 강좌 ① : 정태인 새사연 원장]
"'대마불사' 재벌, 한국 사회 위기의 근원"
프레시안 허완주 기자
A와 B가 있다고 하자. 이 둘이 있는데 하늘에서 만 원이 A에게 떨어졌다. A는 내키는 대로 그 돈의 일부를 B에게 준다고 하자. 얼마든 상관없다. 그 돈을 받고 B가 흡족해서 '예스'라고 하면 끝난다. 하지만 B가 만족하지 못하고 '노'라고 하면 둘 다 돈은 한 푼도 가지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 이 글은 프레시안(www.pressian.com) 기사입니다.
|
||||||
반란의 소리, 저항의 노래 | 반란의소리 저항의노래 - 3강 한국의 저항가요, 독립군가에서 <헌법 제1조>까지 | 웃으며,함께,끝까지 | 2012.8.4 | |||
반란의소리 저항의노래 - 3강 한국의 저항가요, 독립군가에서 <헌법 제1조>까지 2004년의 늦은 봄, 교정 한 켠에 세워진, 선배열사의 기념비 앞에서 불렀던 노래가 기억납니다. 비록 최루탄 연기의 매퀘함은 사라졌어도 자못 젖은 목소리였던 것 같습니다. 무엇이 우리들을 젖어들게 했는지는,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다시 한 번 2008년의 늦은 봄, 광화문 거리에 노래가 다시 울려퍼졌습니다. 촛불 사이를 스치는 노래 속에는 웃음이 함께 했습니다. 사람들은 높이 막아선 명박산성 앞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율동을 나누었지요. 노래가 변한 것이었을까요? 시대가 변해서였을까요? 아니면 우리가 변했던 것일까요? 참여연대 아카데미느티나무 2012 여름강좌 [반란의 소리, 저항의 노래] 그 마지막 이야기는 서양과 일본을 지나 드디어 이 곳, 우리들의 노래에 다다랐습니다. 한국 저항가요의 특성 박노자 선생님께서는 첫 시간에 서양 그리고 러시아 저항가요의 경우, 그 가사를 통해 무엇을 주장하려고 하는지 선명하게 알 수 있다고 하셨었죠. 그렇지만 한국의 저항가요는 어떠한 주장을 담기보다는 감성적인 경향을 보입니다. 즉, 그 시대에 있었던 저항운동의 감성적 경향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그 안에 담겨진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 저항가요의 특징은 생산과 보급의 과정을 기성의 전문가가 아닌 수용자 집단이 주도하였다는 점입니다. 전문 창작자가 만들어서 대중에게 불리는 것이 아니라, 수용자 대중이 부르기 때문에 만들어지거나 저항가요로 소환되는 것이지요. 노래의 주인이 창작자가 아닌 수용자이기 때문에 전승과정에서 작품이 변형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방직후 시기와 1988년 이후 시기는 상대적으로 전문가의 개입이 강했던 시기였습니다. 여기에는 그 이전의 저항가요의 축적이 많았고, 민중의 조직된 힘이 강해 권력의 통제 영역 바깥의 활동이 활발해진 시기였다는 배경적 조건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그렇지만 정작 막강한 민중가요 문화가 형성되고 향유된 시기는 7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였습니다. 여기에는 평소에도 대중가요보다는 다른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집단적인 자발성 욕구와 이러한 욕구를 시간적-공간적으로 지속시킬 수 있는 힘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강력한 민중가요 문화가 형성되는데 에는 결국 주구장창 생활을 함께 하며 함께 먹고 함께 노는 학생운동권과 노동운동권이 중심이었습니다. 또한 한국의 민중가요는 분단이후 해외사회주의 운동의 영향을 거의 받지 못하게 되면서 특유의 자생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식민지시대 저항가요, 기성노래의 가사 바꾸기 전통시대에는 이러한 저항가요가 있었을까요? 동학에서 불리워진 가사 등은 존재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식민지 저항가요의 태반은 기성가요를 개사한 것이었습니다. 못갖춘마디를 특징으로 하는 서양 어법의 음악체계는 전통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것이었지요. 그래서 처음에는 기존의 서양 노래를 가사를 바꿔 부르는 형식으로 저항가요가 만들어졌는데, 이러한 운동을 이끌면서 노래를 가르치고 부르며 이 문화를 향유한 사람들은 대부분 신교육을 받은 지식인층이었습니다. 이 시기 저항가요의 가장 많은 원천은 일본의 노래, 특히 일본 군가를 개사하여 부른 노래가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노래인 <봉기가>의 경우에는 일본 군가인 <아무르강에 흐르는 피>를 개사한 것입니다.
해방 직후 시기와 전쟁기 이 시기에는 매우 드물게도 전문 창작자가 적극적으로 개입한 시기였습니다. 여기에는 좌우의 인사가 함께 개입하였고 <독립행진곡>의 경우에는 <해방가>라는 제목으로 90년대까지 전승되기도 하였습니다. 해방직후 시기는 이전까지의 저항가요를 집대성한 마지막 시기였고, 저항가요조차도 분단을 통해 완전히 갈라지면서 이후세대로 전승되지 않았습니다. 4.19혁명을 전후한 시기 1950년대에는 관제 궐기대회를 제외한 데모가 없었던 시대였기 때문에 민중가요의 문화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그러한 이유로 4.19혁명 당시에도 <학도호국단가>, <애국가>, <삼일절노래>, <6.25노래>등의 노래가 불렸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당시 세대가 사회주의 운동과 절연하고 1950년대의 반공 제도교육을 받은 새로운 세대임을 보여줍니다. 한일수교반대데모 이후 유신체제 초기까지 한일수교반대투쟁 등에서부터 지식인들의 反박정희 태도가 분명해지고 결집하는 한편, 학생운동이 가열되면서 새로운 노래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흥미롭게도 이 시기부터는 행진을 위한 노래 이외에 구전가요 스타일의 노래 등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이러한 현상은 점차 시위가 오랜 기간의 농성과 지속성을 수반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 시기에는 <농민가>나 <정의가>와 같이 다소 구호적이고 계몽적인 경향의 행진곡 풍의 노래 등이 만들어졌습니다. 1970년대 후반, 민중가요 문화의 형성 이 시기에 이르면 적게 잡아 수십곡, 많게는 2-300여곡의 노래가 민중가요 문화로 축적되었고, 단순한 데모용 기능요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경향의 노래들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1975년 긴급조치 9호 이후 총학생회가 사라지고 학내에서 집회가 불가능해지면서 학생운동이 양적으로 축소되었는데, 오히려 질적으로는 더욱 심화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이슈 파이팅에 머물지 않는 이른바 ‘과학적 학생운동’이 시작되면서 운동권 학생들은 자신의 일상을 재조직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국내 대중가요, 복음성가 등 다양한 노래들을 민중가요로 소환하고 재해석하게 됩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미국-서구 근대를 모델로 한 민주주의가 우리 사회의 모델이었던 시대였기 때문에 이 시기는 복음성가를 비롯한 미국발 저항가요가 적극적으로 계승된 시대였습니다. 음악적으로 볼 때, 일제시대를 경유하며 형성된 행진곡의 전통보다 미국식 포크의 영향력이 강해진 시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김민기, 김영동, 서유석, 한대수 등 국내 대중음악인들의 노래를 저항가요의 영역으로 소환하게 되고, <아침이슬>, <친구>, <상록수> 등이 불려진 것이 바로 이 시기였습니다. 제5공화국 시기, 포크의 쇠퇴와 비장한 단조의 노래들 1980년 봄은 민중가요 문화가 전 대학생 사회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고, 향후 10년동안 민중가요의 최고 전성기를 맞게 됩니다. 70년대까지의 노래만으로는 수용자의 요구를 충족할 수 없었기 때문에 기성의 노래를 소환하는 것을 넘어서서 수용자 스스로 창작하고 그 안에서 전문가들을 창출해냈습니다. 포크의 자유로운 분위기, 명랑한 미국적 질감 등이 퇴조되면서 대신 비장한 단조의 노래로 급격한 경향의 변화를 맞게 됩니다. 이전의 행진곡들은 구호성과 계몽성을 벗고 서정성을 획득함으로써 인간의 고통과 절망, 이를 극복려는 의지를 비장한 정서로 표현하게 되었습니다. 저항가요 중에서도 행진곡 이외에 ‘서정가요’로 지칭된 노래들이 생겨났는데, 여기에는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타는 목마름으로>, <민중의 아버지>, <부활하는 산하>, <솔아 푸르른 솔아> 등이 있습니다. 1980년을 계기로 노래운동의 지향을 확실히 한 대학 포크 서클 출신들이 1984년부터는 대학 바깥에서 전문적인 노래운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즉, 비전문가 사이에서 전문가가 탄생하게 된 것인데 그렇다고 이들이 상대적으로 음악적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노래운동 활동가들의 주도로 노동자 기타반 지도가 이루어지면서 노동자 창작품들이 생겨나기도 했고, 마당극 운동의 흐름에서 파생된 민요연구회는 전통민요의 적극적 계승과 새로운 창작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저항가요를 만들어냈습니다. 6월 시민항쟁과 노동자대투쟁 이후 문민정부 초기까지 1980년대 후반에 이르면 초중반의 노래 경향이 지속되면서 좀더 다양하고 일상적인 노래들이 생산됩니다. 운동이 대중화되면서 ⓵노동자 대중으로의 계층적 확산 과 함께 ⓶대중가요 공간에서의 합법적 활동이 성공하게 됩니다. 이로써 노래의 경향은 더욱 다양해지고 전문 노래운동 창작자들의 작품도 급증하게 됩니다. 이 시기에 접어들면 노동자가 수용하는 노동가요가 민중가요를 주도하면서 노동자노래단, 예울림, 꽃다지 등이 활발히 활동하였고, 특히 김호철 씨는 <파업가>, <단결투쟁가>, <끝내 살리라>, <포장마차> 등을 통해 노동자들의 독특한 감수성을 노동가요 속에 잘 담아냈습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 노래마을 등은 대중가요 공간에서 활동하면서 <사계>, <솔아 푸르른 솔아> 등을 통해 가요순위와 악보피스 판매에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집단의 목소리에서 개인의 목소리로 이 시기에는 점차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의 조직력이 하락하면서 생활의 대부분을 공유하는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민중가요 문화의 쇠퇴로 이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민중가요는 시위장 기능요의 방향으로 나아가거나 개인의 목소리로 이어져가는 두 갈래 길에 접어들게 됩니다. 결국 수용자들의 취향에 따라 새로운 길을 걸어 나가게 된 셈입니다. 2012년 오늘, 그리고 우리의 노래 다시 늘어난 ‘촛불’ 광화문 모여 ‘난장 공연’ http://news.nate.com/view/20080620n15669 MBC파업콘서트에 '나가수' 가수들도 동참 http://news.nate.com/view/20120625n12379 노찾사·꽃다지 잇따라 공연 http://news.nate.com/view/20120419n33000 트로트가수 현빈이 부른 <빠라빠빠>를 개사한 <한미FTA반대가> http://news.nate.com/view/20120419n33000 집회에 모인 시민들이 ‘난장공연’을 벌이고, 비교적 성공한 대중가수들이 ‘파업콘서트’라는 이름의 새로운 무대에 오르며, 또 한켠에서는 기존의 노래운동 활동가들이 공연을 여는... 2012년을 사는 오늘 우리에게 저항가요란 어떤 의미일까요? 노래가 변하고 시대가 변하고 우리가 변해도 오늘도 내일도, 우리의 노래는 계속될 것입니다. 첫 시간에도 이야기했듯이, 노래란, 그런 것이니까요.
글 : 자원활동가 김주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