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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명 | 강좌후기 | 글쓴이 | 날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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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권 정치철학] 변동하는 우리 정치 앞서보기 | [후기]6/19(화) 김만권의 정치철학 6강_헌법과 권력구조 | 가지 | 2018.6.27 | |
헌법과 권력구조 6월 19일, 6주 간 진행된 김만권의 정치철학 마지막 강의가 있었습니다! 6강에서는 ‘헌법과 권력구조’라는 주제로 강의가 진행되었습니다. 앞선 강의에서 헌법과 기본권을 배웠다면, 이번 강의에서는 배제된 구성원이 제도 안에서 스스로를 대표할 수 있는 제도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바탕으로 권력구조에 대하여 배웠습니다.
권력구조의 핵심 : 권력분립 선생님께서는 권력구조의 핵심은 권력의 견제와 균형라고 하셨습니다. 몽테스키외는 입법부를 견제할 목적으로 권력의 견제와 균형의 메카니즘을 제시하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몽테스키외가 제시한 권력구조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행정부가 견제의 대상인 반면, 유럽에서는 입법부가 행정부나 사법부에 비하여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었던 역사적 맥락에서 탄생했다고 설명하셨습니다. 몽테스키외가 주창한 권력구조의 핵심은 ‘인간이 인간답게 통치되는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는 제도가 통치하여야하고, 권력이 분립이 되고 견제와 균형을 맞추어야만 법의 통치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즉, 오로지 ‘권력을 잡을 수 있는 것은 권력뿐’이기 때문에, 권력을 분립시켜 서로 견제하며 균형을 이루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와 같이 시민법을 따르는 나라는 입법부/행정부/사법부 그리고 제4기구로서 헌법재판소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권력구조에서 헌법재판소의 위치나 역할이 절하되고, 행정부가 지나치게 부각되는 문제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입법이 헌법의 취지에 맞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구이기 때문에 헌법재판소의 역할 측면에서는 입법부의 보조기구로 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헌법재판소의 활동이 헌법정신을 지키려는 목적 아래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헌법재판소를 헌법의 수호자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하셨습니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헌법을 수호하는 역할과 책임은 대통령에게 명백히 지워져 있다는 점, 그리고 입법부/ 행정부/사법부는 헌법재판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헌법재판소는 3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행정부가 권력구조에서 지나치게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문제를 제기하셨습니다.
알아두면 좋은 정치체제(political systems) 이어서 다양한 정치체제에 대하여 배웠습니다. 정치체제는 정부나 국가를 구성하는 공식적인 법적 체제를 의미합니다. 크게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 그리고 그 둘을 융합한 이원집정부제로 나누어 보았는데, 위의 정치체제는 행정부와 내각의 존속이 의회의 신임에 근거하는지 여부에 따라 큰 차이를 보입니다. 1) 대통령제 대통령제는 행정부의 성립과 존속이 의회의 신임 여부와 무관한 정치체제입니다. 이는 행정부는 의회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으며, 의회와 행정부과 분리되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미국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미국에서는 의회가 대통령이 구성한 내각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입법부가 행정부의 권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예산법률주의를 채택하고 있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즉 정부의 예산 심의를 의회가 하도록 하며, 의회의 결정 없이는 예산을 집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내각을 구성하는 권한은 대통령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내각은 예산을 심의하는 의회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고 합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예산법률주의가 아니고 입법부는 예산안을 심사하는 역할에 그치기 때문에 행정부의 자율성이 더욱 크게 보장된다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하셨습니다.
2) 의원내각제 의원내각제는 행정부의 성립과 존속이 의회(입법부)의 신임에 근거하는 정부형태입니다. 의회에서 가장 많은 의석수를 가진 정당에서 총리가 선출되고, 의회에서 선출된 수반이 행정부를 구성하는 형식을 취합니다. 특징으로는 의원의 임기는 있으나, 의회의 신임에 근거하기 때문에 임기를 채우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3) 이원집정부제 선생님께서는 이원집정부제는 영어로는 semi-preseidential system으로 대통령제에 더 가까운 시스템이라고 하셨습니다. 입법부와 행정부 선거가 분리되지만, 대통령이 임명한 내각이 의회의 신임과 불신임의 대상이 되는 정부 형태입니다.
우리 헌법에서 대통령의 권한 다음으로는 현 헌법에서 대통령의 권한이 어떻게 규정되어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헌법 제4장 제1절 제66~68조에 명시된 대통령의 의무와 대통령 선출 방식을 살펴보았고, 제70~87조에 적힌 대통령의 권한에 대하여 보았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이 감사원, 대법원, 헌법재판소의 구성에 대하여 가진 권한을 보다 중점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감사원 구성에 대한 내용은 헌법 제98조에 나와 있는데, 감사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고 감사위원은 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되어있습니다. 즉, 감사원의 구성원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형태이므로 대통령에 대한 공정한 감시가 어려운 구조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대법원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헌법 제104조에 대법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고,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되어있었습니다. 헌법재판소 또한 재판관 9인 중 3인, 헌법재판소장을 임명하는 권한은 대통령에게 부여되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권력분립기구 중 입법부 이외의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장을 대통령이 임명하고, 뿐만 아니라 감사원장까지도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에서 과연 위의 기구들이 행정부를 적절히 견제할 수 있겠는가라는 의문을 던지셨습니다. 즉 권력구조가 대통령에 대한 견제가 매우 어려운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덧붙여, 대법원의 경우에는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행정부에 의해 구성되지만 대법원이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는 구조적으로 존재하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입법의 위헌여부 심판, 탄핵심판, 정당해산심판 등을 수행하는 헌법재판소 또한 다른 권력기구를 제어하는 장치가 역시나 부재하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즉, 대통령이 행사하는 권한은 지나치게 많은 대신, 입법부/사법부/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견제요소가 부족하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대통령 개헌 발의안 마지막으로 대통령 개헌 발의안에서 권력구조가 어떻게 개편되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2. 선거에 관해서도 어떠한 부분이 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첫 번째, 결선투표제를 도입하여 상대적 다수대표제의 문제점을 보완하고자 하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다만 결선투표제가 여당에 유리할지, 또는 야당에 유리할지는 보다 고민해보아야 할 문제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기존 대통령 피선거연령을 삭제하여 40세 미만이라도 출마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3. 의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조항이 추가되었습니다. 우선 발의안에는 예산법률주의가 반영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예산법률주의를 통해 의회의 권한은 강화시키면서 의원 개인의 권한은 약화시킬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행정부와 의회의 여당이 매우 의존적인 관계인 상황에서 예산법률주의가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 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정부 법안 제출 시 국회의원 10명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조항이 추가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정부의 법률안 제출은 유지되었다는 점과 국회의원 10명의 동의가 필요하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국회의 입법권을 강화하기에는 어렵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4. 행정부 고위 임명직 구성에 있어서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였습니다. 국무총리의 자율성을 없애는 헌법 구절을 삭제하였기 때문입니다.
5. 그러나 여전히 한계는 남아있는데, 실질적인 권력분립을 위해 대법원, 헌법재판소, 감사원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여전히 미진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헌법에 명시된 권력구조에 따르면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임명하고, 대법원장이 대법관 3명을 임명하는 방식이며, 헌법재판소장 또한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법부와 헌법재판소의 구성원을 임명하는 권한이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부여됨으로써, 권력의 견제와 균형이 약화되는 문제를 야기합니다.
개헌 발의안에는 대법원장의 인사권한을 조정하여, 대법관은 대법관추춴위원회의 추천을 거쳐 국회의 동의를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는 형태로 수정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 조항만 본다면 사법부에 많은 권한을 부여한 것처럼 보이나 위원회의 구성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대법관추천위원회 구성 시에, 대통령/대법원장/법관회의에서 각각 3명 임명가능한데 대법원장을 이미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행정부의 권한은 6명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헌법재판소의 재판관 자격을 현 판사로 제한했던 기존의 헌법과 달리 정부 발의안에는 재판관의 자격을 개방하는 방향으로 수정되었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대통령의 특별사면 통제를 강화함으로써 사법부에 대한 행정부의 권력을 견제하고 균형을 맞추고자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발의안에는 감사원의 독립기관화를 위하여 9명의 감사위원 중 의회/대법관회의/대통령이 각각 3명을 임명, 또는 선출하는 것으로 반영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감사원이 독립기관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존재합니다. 선생님께서는 헌법재판소, 의회, 사법부 등에 대하여 대통령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제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각각의 기구가 대통령을 어떻게 견제할 수 있는지를 명시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지금 설계되는 새로운 제도들은 기성세대뿐 아니라 미래세대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하시며, 헌법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끝으로 참여연대 옥상에서 뒤풀이를 하며 소회를 나누는 시간으로 즐겁게 마무리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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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권 정치철학] 변동하는 우리 정치 앞서보기 | [후기] 6/12(화) 김만권의 정치철학 5강 _ 헌법과 젠더 | 개똥이 | 2018.6.16 | |
김만권 정치철학 <5강 헌법과 젠더>
이번 5강에서는 젠더와 관련해 헌법을 설명하셨다.
0. 2물결 페미니즘과 분배, 인정의 영역
1세대 페미니즘은 투표권, 참정권을 얻고자 투쟁하는 운동이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중인 페미니즘은 1세대 페미니즘보다는 2세대 페미니즘에 가깝다.
오늘 강의에서는 2물결 페미니즘을 주되게 다뤘다. 2물결 페미니즘도 두 파트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분배’에 방점을 찍은 파트인 사회주의적인 운동의 물결과 두 번째는 ‘인정’의 영역이다. 페미니즘을 두 가지로 쪼개서 본다면 ‘분배’의 영역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보는 페미니스트들과 ‘인정’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들로 나뉜다.
페미니즘에서 분배와 인정의 영역을 다루면서 김만권 선생님은 낸시 프레이저의 이론을 가져와 설명하셨다. 2물결 페미니즘에 있어서 분배와 인정은 가장 논쟁적인 영역이다. 현재 우리나라 페미니즘은 2물결 페미니즘에서 ‘인정’의 영역에 쏠려있다. 분배와 인정이 함께 갈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현실에서는 노동의 영역에 해당하는 분배와 가치의 영역에 해당하는 인정은 접점이 잘 생기지 않는다.
낸시 프레이저는 페미니즘이 운동 과정에서 신자유주의와 만나 선진국 페미니스트들이 자신의 유리천장을 깨기 위해 나머지 사람들을 모두 공장으로 몰아넣었다고 비판한다. 남성 중심적인 임금구조를 허무는 데는 성공했으나, 이를 여성 정규직 임금 구조로 재구성하는 데는 실패했다는 점에서 페미니즘의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프레이저는 페미니즘을 위해선 다른 약자들과 연대해서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약자 중 가장 중요한 주체가 바로 노동자인데, 현실에서 노동자와 페미니스트가 합의점을 찾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프레이저는 인정 영역에서도 문화보다는 제도 내에서 페미니즘이 다뤄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대표의 영역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동등한 참여를 만드는 데 페미니즘이 실현해야 하는 핵심적인 목표가 있다고 말했다. 동등한 참여란 헌법을 구성할 때 여성이 대표로서 동등한 파트너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가의 문제다.
1. 오늘 날 정의의 두 수준 정의에는 일차원적 질문과 이차원적 질문이 있다.
1) 일차원적 질문 (정의의 내용) ‘정의가 얼마만큼의 경제적 불평등을 허용하는가?’ 일차원적 질문에서 정의는 허용할 수 있는 불평등의 크기가 얼마인가를 얘기하는 것이다. 모든 이들이 평등해야 한다는 것이 정의가 아니다. 어떤 분배정의 원칙에 따라서 얼마만큼의 재분배가 요구되는지, 동등한 존중의 내용은 무엇인지를 다루는 것이 일차원적 질문을 구성한다.
2) 이차원적 메타 수준 (정의의 틀) 이차원적 질문은 정의의 틀을 논하는 것이다. 이차원적 질문에선 정의의 내용도 문제지만 정의의 틀도 문제라고 본다. 제도의 당사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낼 수 있도록 틀 자체를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3)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결국 어떻게 기존의 정의의 내용과 새로운 정의의 필요성을 수용할 수 있는 틀을 만들 수 있을까하는 질문에 맞닥뜨리게 된다. 프레이저의 해결책은 삼차원적 정의론이다. 프레이저는 소수자 그룹은 다양하지만 그 소수자 그룹을 모두 대표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2. 삼차원적 정의론
1) 정의의 가장 일반적 의미 프레이저는 정의의 가장 일반적 의미는 ‘동등한 참여’라고 해석했다. 정의는 모든 사람이 사회 생활에 동등한 동료로서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드는 사회적 상태를 요구한다. 부정의를 극복한다는 의미는 누군가가 온전한 당사자로서 다른 사람들과 동등하게 사회적 상호작용에 참여하는 일에 방해가 되는 제도적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다.
2) 제도적 장애 1: 불평등한 분배 경제적 차원, 사회적 계급구조에 상응하는 것이다. 동등한 동료로서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길 거부하는 경제적 구조 때문에 온전한 참여를 방해받을 수 있다.
3) 제도적 장애 2: 제도화된 위계질서 필수적인 지위를 부여할 것을 거부하는 문화적 가치에 관한 제도화된 위계질서 때문에 동등한 상호작용을 방해받을 수 있다. 이는 문화적 차원이다.
4) 정의의 세 번째 차원: 정치적인 것 누구를 구성원으로 볼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정치적 차원이다. 정당한 분배와 상호인정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의 범위 안에 누가 포함되고 누가 배제되는지를 말해 준다.
3. 정치적 차원, “대표”의 문제 정의의 정치적 차원은 주로 대표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1) 누가 구성원인가? 구성원을 정하는 절차는 어때야 하는가? 정치공동체의 경계가 실제로 대표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을 잘못 배제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공동체의 의사결정 규칙이 공적인 토의에서 모든 구성원들에게 동등한 목소리를 보장하고 있는지, 그 규칙이 공적인 의사결정에서 모든 구성원을 공정하게 대표하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2) 두 수준의 대표 불능 - 일상적 대표불능 : 정치적 의사결정 규칙 자체가 공동체에 포함된 어떤 사람들이 동료로서 온전히 참여할 기회를 부정할 때 발생하는 부정의를 말한다. 예를 들어 소선거구제, 승자독식제 등이 있다. - 잘못 설정된 틀(misframing) : 대표의 경계 자체가 잘못 설정된 경우다. 여성의 문제를 이야기하는데 여성은 정작 없다거나, 인종 문제를 얘기하는데 백인이 다수거나 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이런 잘못된 틀의 설정은 정치적 대표의 문제와 관련해 당사자를 배제하는 문제점이 있다. 이 때문에 정치적 죽음이 발생한다.
따라서 프레이저의 이론은 한마디로 “운명 앞에 선 당사자들이 결정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당사자들이 틀의 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하며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4. 우리 헌법에 나타난 젠더
1) 기존 헌법 속 젠더 87년 헌법에서 젠더 내용은 거의 담기지 않았다. 우리헌법 제36조는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삼으며 성소수자를 배제하고 있다. 그나마 2018년 공직선거법이 개정되면서 “비례후보의 절반 이상을 여성으로 공천하고 여성후보를 홀수 순번으로 배치해야 한다는 규정을 어기면 등록신청을 무효로 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2) 발의안 속 성평등 - 발의안 제35조는 임신, 출산, 양육을 여성이 아닌 국민의 권리로 규정했다. 그러나 여전히 ‘현실적으로 임신,출산,육아의 직접 당사자가 여성인 것을 고려하여’라는 설명으로 앞 뒤가 맞지 않는 주장을 하고 있다. - 발의안 제39조도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바탕으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쓰고 있다. 여전히 ‘양성의 평등’이라 쓰며 87년 헌법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 조항은 국가가 생각하는 ‘정상가족’의 개념이 반영된 것이다.
5강을 들으며 김만권 선생님이 유학 시절 가르침을 받으셨던 낸시 프레이저의 분배와 인정에 대한 이론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대통령 발의안조차도 아직 젠더의 개념을 제대로 헌법에 반영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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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권 정치철학] 변동하는 우리 정치 앞서보기 | [후기] 6/4(화) 김만권의 정치철학 4강 _ 기본권으로서의 노동 그리고 분배 | 가지 | 2018.6.12 | |
김만권의 정치철학 4강 ‘기본권으로서 노동 그리고 분배’
이번 강의의 주제는 ‘기본권으로서 노동 그리고 분배’였습니다. 본격적인 강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왜 우리가 분배를 이야기하고 공부해야 하는가를 짚어보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2010년대 초반까지는 ‘분배’의 영역에 대한 논의가 주로 이루어졌다면, 현재는 권리와 존재에 대한 ‘인정’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분배와 인정은 다른 영역이자 환원될 수 없는 영역입니다. 그러나 인정의 욕구가 주로 기본적인 욕구와 생존이 보장될 때에 제기된다는 점에서 여전히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도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분배는 늘 노동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다고 설명하시면서, 노동은 무엇인지, 왜 노동자는 노동할수록 가난해지는지, 노동 중심의 분배는 지속가능한지에 대하여 강의해주셨고, 마지막으로 새로운 분배의 패러다임으로 기본소득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1. 왜 노동자는 노동할수록 가난해지는가?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는 노동하는 손과 노동하지 않는 손이 있고, 후자가 너무나도 많은 이윤을 가져간다고 나옵니다. 즉, 노동하는 이와 노동으로부터 이윤을 얻는 이가 다르며, 노동시장에서의 경쟁으로 인해 노동자의 임금은 점차 하락하는 것입니다. 일례로 초국가기업에 대하여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초국가기업은 노동시장의 범위가 전 세계로 확대된 경우입니다. 경제가 발전할수록 임금도 오른다는 논리는 합당하게 여겨졌으나, 노동시장의 범위를 국내에서 전 세계적 차원으로 확대하여 살펴보면 노동자들이 경쟁에서 얻는 것은 점차 값싸지는 임금뿐이라는 것이 명확히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이키의 문화를 만들어내고 마케팅을 하는 산업은 선진국에서, 생산과 같은 노동 중심 산업은 임금이 저렴한 국가에서 이루어지는데 이는 미국과 같은 노동시장의 임금이 비싸기 때문에 노동자의 임금을 올리는 대신에 노동시장을 임금이 더 저렴한 국가로 옮긴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2. 노동의 의미 (마르크스 노동관) 1) 노동의 본성 선생님께서는 노동의 의미를 마르크스 노동관에 입각하여 설명하셨습니다. 마르크스의 노동관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소외”라고 합니다. 즉, 노동자가 자신이 하는 노동행위로부터 소외되고, 인간의 본질이 노동으로부터 소외되고, 관계로부터 소외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마르크스가 문제 제기한 노동은 노동 그 자체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노동으로 한정됩니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노동관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노동을 자연과 인간 간의 창조적 상호작용이자, 활동적인 삶으로 보았습니다. 즉 노동의 본성을 창조적 잠재력을 발견하는 과정으로 여겼으며, 노동을 부여함으로써 자연을 변화시키고 동시에 자신의 본성도 변화시킨다고 설명하였습니다.
2) 인간적 노동의 결과 인간적 노동은 자본주의적 노동과는 반대되는 개념으로,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노동의 본성이 잘 드러나는 노동입니다. 또한 인간적 노동은 물질과의 관계 맺기인 동시에 인간과의 관계 맺기이기도 합니다. 인간적 노동의 결과 다음 4가지라고 합니다. - 생산 과정에서 창조성을 즐기고 타자에게 보여줄 수 있는 물건을 만듦으로써 개성을 객관화시킬 수 있게 함. - 다른 인간이 자신이 생산한 물건을 사용하는 것을 보며 인간의 필요에 부응했다는 점에서 즐거움을 느낌 - 다른 사람이 내 물건을 자신의 일부처럼 쓰는 것을 보며 내가 타인의 필요한 부분이라고 느끼게 되고, 이를 통해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음 - 내가 노동으로 나타난 내 삶의 표현에서 다른 사람들의 삶의 표현을 발견하면서 인류의 부분이라는 공동체적 본질을 발견한다.
3) 이윤극대화와 노동왜곡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적인 방식의 노동이 상실되었다고 지적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자본주의의 합리성이 임금과 이윤으로 이분화 되고, 양자가 반비례 관계에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였습니다. 즉, 이윤을 위해서는 값싼 노동이 최선의 선택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본의 성장이 임금의 성장을 필연적으로 동반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앞서 살펴본 초국적기업의 예시와 같이 ‘노동 분업의 심화’라는 개념을 통해 반박하였습니다. (초국적 기업이 더 넓은 소비시장과 더 저렴한 노동시장의 확보를 위해 전 세계로 확대하는 예시).
4) 자본주의적 노동은 노동소외라는 결과를 초래한다. 선생님께서는 자본주의 합리성이 극단적인 이윤 추구를 멈추지 않는 한 노동소외는 불가피하다고 설명하셨습니다, 노동소외는 구체적으로 다음 4가지의 형태로 분류하여 볼 수 있습니다. 생산물로부터의 소외 : 노동자가 자신이 생산하는 물건을 소비할 수 없는 상황을 의미한다. 생산활동으로부터의 소외 : 분업으로 인하여 노동자들이 생산 활동을 자기 삶의 일부로서 받아들이고 즐거움을 얻기 힘들며, 노동의 목적이 생존에 필요한 임금을 얻는 것에 한정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란 류적 존재로부터의 소외 : 유적존재는 개별적 존재방식이 아니라 자연적, 사회적 존재로서의 총체적인 존재방식이다. 노동이 서로에게 필요한 일부라는 것을 확인하는 방안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하면서 유적존재로부터 소외된다. 인간의 인간으로부터의 소외 : 내가 노동으로 생산한 물건에 나의 삶이 존재하지 않고, 타자 역시 노동으로 생산한 물건에 그들 삶의 표현을 불어넣지 못하기 때문이다.
5) 왜 인간소외인가? 선생님께서는 노동의 본질과 인간관계가 왜곡되며 결국 노동소외가 인간소외로 귀결된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견고한 것들은 공기 속으로 녹아들고, 모든 신성한 것들은 불경스러운 것이 되었다. 인간은 마침내 냉정한 사리분별, 자신의 삶의 현실적 조건, 자신과 같은 인간과의 관계를 직면하도록 강요되었다.”
3. 기본권으로서의 노동 1) 헌법과 노동 이탈리아 헌법 1조는 ‘이탈리아 공화국은 노동에 기초를 두는 민주공화국’이라고 명시하며 노동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다고 합니다. 독일 헌법에는 9조 ‘모든 독일인은 단체와 조합을 결성할 권리를 가진다.’고 되어있어 모든 국민의 노동권을 보호하며, 95조에 연방노동법원의 설치를 명시하면서 노동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법원을 두도록 되어있습니다. 한국 또한 대통령 개헌안에 기존 헌법에서 ‘근로자’로 표기된 것을 ‘노동자’로 바꾸기도 하였습니다. 노동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 중에 하나입니다.
2) 최초분배 노동은 기본권 중에서도 굉장히 중요하게 다루어지는데, 선생님께서는 그 이유를 노동이 자원을 분배하는 최초의 수단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최초분배란 노동자가 노동을 제공받은 자로부터 받는 임금을 통해 이루어지며, 재분배와는 상반되는 개념입니다.
최초분배의 건전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로 최저임금제를 설명하셨습니다. 최저임금은 노동자들이 값싼 노동력 제공 경쟁에서 벗어나 최저의 생계를 유지하게 하는 수단으로, 노동왜곡현상을 최소한의 수준에서 방지하는 역할을 목적으로 합니다. 그러나 최저임금은 그야말로 최저의 생계를 보장하는 제도이며, 중산층을 양산하는 제도는 생활임금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생활임금을 유지하는 데에 더욱 효과적이라고 말씀하시며, 영국의 한 시민단체의 예를 들어주셨습니다. 이 시민단체는 해당 년도의 생활임금을 공표하고, 생활임금을 주겠다고 약속한 기업의 리스트를 공개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시민들이 리스트에 올라간 기업의 물품을 구매하는 식으로 기업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생활임금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한다고 합니다.
강의 중에 함께 생활임금을 짜보기도 하는데, 1인 가구 기준으로 의(衣)15만원 / 식(食) 50만원 / 주(住) 70만원 / 교통비 15만원 / 사교비 10만원 / 생활자재구입비 / 교육비 / 감가상각비 / 의료비 등의 항목을 더해 대략 207만원이 나왔습니다.
4. 노동이 해결책이 될 수 있는가? 그러나 과연 노동을 기반으로 한 분배를 유지해야 하는가는 또 다른 질문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노동을 되살리는 것도 의미가 있겠으나 사회의 본질 자체가 변하였기에 전통적인 노동에 의한 분배의 재구성이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산업사회는 생산자 중심의 사회였고 노동이 불가결한 요소였던 반면, 현재는 포스트산업사회, 즉 소비중심사회이므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노동이 아닌 소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1) 낮은 노동조합 가입률 노동조합 가입률은 2005년 26.1%에서 2013년 21.3%로 하락하였다고 합니다. 이는 점차 많아지는 비정규직 일자리와도 연관이 되어 있다고 설명하셨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특히 용역업체에 고용되어 일하는 이들은 자영업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더욱이 노조를 결성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2016년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보고서에는 비정규직 숫자가 839만 명으로 집계되었는데, 사내 하청 노동자들은 자영업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실제 비정규직의 숫자는 천만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된다고 합니다.
2)높아지는 실업률 일자리를 양극화 해소의 방안으로 내놓았지만 청년 실업률은 낮아질 줄을 모릅니다. 2017년 실업률은 9.9%, 체감실업률을 보여주는 ‘고용보조지표3’은 22.7%에 달했다고 합니다. 일자리가 줄어드는 이 상황에서 노동 중심의 분배는 오히려 노동시장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 즉 복지가 필요한 이들을 오히려 소외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 선생님의 설명이었습니다. 물론 인구 절벽으로 인해 일자리 부족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는 의견이 존재하지만, 제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는 지금 과연 남아있는 일자리 중 양질의 일자리가 다수 존재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 또한 존재한다고 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노동 중심의 분배는 일자리 창출 이외의 해결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하시면서, 실업률이 점차 높아지는 지금 분배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5. 기본소득 그리고 분배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기본소득을 제시하셨습니다. 기존의 복지국가가 재분배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기본소득은 국가가 최초분배의 주체가 된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입니다. 선생님꼐서는 기본소득의 자격요건은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는 것이 전부라고 설명하셨습니다. 필립 반 파레이스는 기본소득을 “(1) 개인을 기반으로, (2) 자산조사 없이, 그리고 (3) 노동에 대한 요구 없이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무조건적으로 지급되는 소득”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노동을 최초분배의 요건으로 여겼던 기존의 복지와는 매우 다른 형태의 분배인 것입니다.
물론 선생님께서는 기본소득에 대한 의심도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기본소득이 갑작스레 유행하는 배후에는 기업의 영향력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노동자가 줄어드는 것은 노동 중심 분배 구조에서 소비자가 사라지는 것과 동일하기 때문에, 소비 시장을 꾸준히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본소득을 제공함으로써 사람들의 구매력을 유지하려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입니다. 또한 재원의 한정 때문에 기존의 복지제도를 모두 유지하면서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이 우세한데, 이 경우에 기존의 복지제도를 해체하고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라는 의구심 또한 든다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들이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경향도 보인다고 하셨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노동자들이 낸 세금을 낸 것으로 기본소득을 받는다는 것에 대한 반발이 주된 이유라고 하셨습니다.
추가적으로 기초자본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최초분배도 설명하셨는데, 이는 부유세를 통해 조달한 자금을 일정 연령에 이른 사람에게 사회가 상속을 하는 제도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물론 기본소득이 자본주의의 영속을 위하여 이용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심이 필요하지만, 노동중심의 분배에서 벗어난 새로운 분배구조는 분명히 필요한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실업률이 점차 높아지는 지금, 노동 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이들은 대부분은 비자발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노동을 제공한다고 하더라도 노동3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현실은 분명합니다. 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의 삶의 방식이 불투명하여 일자리의 질과 노동 시장의 규모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예상하기 어려워집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제의 해결방식이 노동에 대한 보상 또는 일자리 창출에 맞춰진다면 노동시장에 진입조차 하지 못하고, 극단에 배제되어 있는 이들이 보호의 영역에 들어오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마지막으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안전망을 제공하는 것이 노동 중심적 관점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한 지금이라고 하시며, 노동 중심 사회에서 노동 시장 바깥으로 밀려나 존재가 지워지고 잊힌 이들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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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권 정치철학] 변동하는 우리 정치 앞서보기 | [후기] 5/29(화) 김만권의 정치철학 3강 _ 헌법 제정과 기본권 | 개똥이 | 2018.6.1 | |
3강에서는 헌법 제정의 의미를 알아보고 대통령 발의안에 새로 추가된 기본법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가기 전, 김만권 선생님은 이번 대통령 발의안이 국회에서 심의조차 되지 않은 상황에 대한 아쉬움을 말씀하셨다. 대통령 발의안을 국회에서 부결을 시키더라도 심의를 했어야 하는데 국회가 심의조차 하지 않은 건 국회의 직무유기라는 것이다. 국회가 심의하는 것만으로도 헌법의 두 축인 기본권과 권력구조에 대해 국민들에게 여론을 환기시키고 공론화하는 기능을 하는데 이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비판하셨다.
1. 헌법을 쓰는 법을 아는 게 왜 중요할까?
헌법에서 한 구절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해석과 적용이 아주 달라진다. 예를 들어, 유신헌법 상 제18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제한받지 아니한다’고 쓰고 있다. 이는 겉보기에는 크게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다시 말하면 법률로 제한하면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얼마든지 제한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처럼 헌법이 어떤 언어로 쓰이는지 알아야 헌법의 의미를 제대로 볼 수 있다.
2. 헌법을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을까?
헌법을 만드는 일은 단지 헌법이라는 문서를 쓰는 것이 아니다. 헌법을 만들 때는 constitution making과 constitution building 두 가지로 나뉜다. 전자는 문자화시키는 과정이며 후자는 헌법을 만드는 모든 과정을 포괄하는 것이다.
전문가의 영역이 아닌 시민들이 관여하는 활동은 두 수준에서 이루어지는데, 실제 이 제작자들과 소통하는 시민대표자들 그리고 헌법에 담길 내용을 놓고 벌어지는 사회적 논의에 참여하는 일반시민들이다.
1) 이중헌법제정의회 이중헌법제정의회는 헌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두 개의 의회에 모여있다는 뜻이다. 제1의회는 헌법을 문자화시키는 전문가들이 모인 곳이며 제2의회는 시민의 대표들이 모인 곳이다. 제2의회를 구성하는 시민은 많을수록 좋다. 헌법 제정 의회가 2트랙으로 운영되는 구조다.
제1의회는 실제 헌법을 쓰고, 제2의회는 관련된 헌법적 이슈들을 검토하고 논의하는 역할을 나눠서 맡게 된다. 제1의회와 제2의회는 각각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기본권을 담당하는 네 개의 부위원회로 구성된다. 네 개의 부서가 함께 만나서 논의할 수 있는 주위원회는 제1의회, 제2의회에 각각 1개씩 존재한다.
예를 들어 제1의회가 기본권에 관련된 헌법을 쓰면, 제2의회 기본권 담당 부위원회에 속한 시민대표들이 제1의회 전문가들과 만나 논의하게 되는 것이다. 제2의회 시민대표들이 원하는 것을 제1의회에 요청하면 제1의회는 이를 검토해 헌법을 쓸 때 반영한다.
의회 내 기본권을 제외한 세 부서인 권력구조를 논의하는 세 개의 부의원회는 권력구조가 기본권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규정하는 논의과정을 거쳐야 한다.
헌법제정의회에서 합의된 중요조항은 미디어를 통해 적극적으로 그 내용을 알리고 사회적 논의를 유도해야 한다. 공영미디어는 헌법적 이슈가 무엇인지 공유된 내용을 알리는 역할을 맡고, 다른 미디어 매체들은 헌법적 이슈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을 표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이와 동시에 제2헌법제정의회는 전국을 돌며 공청회를 개최해서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시민들에겐 제2헌법제정의회를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내용을 제안할 수 있는 제도적 채널이 개방돼야 한다.
이러한 짓기과정을 통해 수렴되고 제작의 과정을 통해 문자화된 내용은 주민전원투표(국민투표)를 통해 승인과정을 거치게 된다. 승인할 때도, 사안별로 분리해서 투표한다면 권력구조 부분을 먼저 투표하고 이후 기본권을 승인하도록 하는 것이 논의의 초점을 분산시키지 않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매우 중요한 조항(예를 들어, 대통령의 임기를 정하는 조항)은 구분하여 조항별 승인을 거치도록 해서 중요조항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모으고 그 내용을 숙지하는 데 교육적 효과를 낼 수 있다. 한 마디로, 헌법 짓기 과정은 시민들이 헌법을 배우고 그 내용을 숙지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
하버마스는 헌법을 짓는 과정을 통해 집단의 정체성을 만들 수 있다고 보았다. 제도적 통합을 통해 정치적 정체성을 만드는 것이다. 하버마스는 독일 통일 당시 새로운 헌법을 짓지 않고 서독의 헌법을 동독에 이식하는 과정을 거쳐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 기회를 놓쳤다고 지적했다. 현재 EU도 유럽연합이라는 제도적 통합을 통해 유럽인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3. 헌법의 기본권
기본권이란 인간의 권리를 시민의 권리 형식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인권과는 의미가 다르다. 인간으로서 가지는 권리가 아니라 시민으로서 마땅히 지녀야 하는 기본적 권리를 의미한다. 인권은 보편적 권리지만 시민권은 배타적 권리에 해당한다. 시민권은 비시민을 배제하기 때문에 항상 특권이다.
대통령 발의안에서 기본권은 “기본권 주체를 확대하고 공무원을 포함한 노동자의 권리를 강화”하고 “생명권과 안전권, 알권리, 자기정보통제권,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 및 성별‧장애 등에 따른 차별개선에 노력할 국가의 의무 등을 신설”하는 조항으로 강화됐다.
또한 일부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확대해 제2장의 제목을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서 ‘기본적 권리와 의무’로 변경했다. 신설되는 기본권으로서 생명권 및 자기정보통제권의 주체를 사람으로 규정했다. 권리의 주체를 사람으로 했다는 건 꼭 한국의 국민이 아니더라도 기본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규정한 것이다.
대통령 발의안에서는 평등권과 교육권, 노동자의 권리를 강화하고 생명권, 정보기본권, 사회보장을 기본권화하고, 임신,출산,양육 지원 받을 권리, 주거권, 건강권, 사회적 약자의 동등한 권리, 사회적 약자의 동등한 권리, 안전권, 국민소환권 및 국민발안권을 새로 규정해 국가가 책임져야 할 영역을 확대했다.
수업을 마치며 김만권 선생님은 이 외에도 우리가 헌법에 추가해야 할 기본권은 어떤 것이 있는지 논의해보자고 하셨다. 이번 수업을 통해 헌법을 쓴다는 것이 단순히 문자화하는 과정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헌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민주주의가 작동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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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권 정치철학] 변동하는 우리 정치 앞서보기 | [후기] 5/15(화) 김만권의 정치철학_'시민불복종, 혁명과 헌법' | 가지 | 2018.5.30 | |
5월 15일 진행된 김만권 선생님의 두 번째 강의는 ‘시민불복종, 혁명과 헌법‘을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지난 강의에 이어 기억을 제도화하는 방식으로 헌법을 이야기하였고, 기억을 구성하고 변화시키는 데에 있어 시민들이 스스로를 드러내고 참여하는 방식으로써 시민불복종과 혁명을 다루었습니다.
우리, 데모스는 통치하는가?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우리는 주권을 지닌 국민 개개인으로 존재합니다. 그러나 개인의 일상 속에서 스스로를 주권자로 정체화하고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기는 꽤나 귀찮은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무관심은 무지로 이어집니다. 김만권 선생님은 이러한 현상을 ‘구경꾼 민주주의’로 설명하시며, 민주주의가 도망쳐 버린 자리에는 정치 엘리트가 남용하는 정치가 만연하며 시민들은 결국 자발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구경꾼”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현재의 대의제 민주주의는 정치를 시민의 일상에서 분리하였기에, ‘도망자 민주주의’라고도 부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즉, 시민불복종이나 혁명과 같은 일상을 벗어난 순간에 주권자로서의 권력을 행사하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면 시민들은 다시 정치와 분리된 일상을 산다는 것입니다.
초일상의 정치 일상의 제도권 안에서 시민들이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경우는 선거로 극히 제한적입니다. 김만권 선생님께서는 일상의 제도권 밖에서 주권자로서 정치에 참여하고 자신을 드러내며 직접 결정을 내리는 것, 그것이 바로 초일상의 정치(extraordinary politics)이자 혁명과 시민불복종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일상의 정치가 정치 엘리트, 관료적 정당, 완고한 제도적 절차의 특징을 지니는 반면, 초일상의 정치는 높은 수준의 집단 동원,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광범위한 지지, 다양한 공론장의 출현 등을 포함합니다. 더불어 초일상의 정치 시기에는 초법적 행위가 존재한다고 하셨습니다. 시민불복종은 일부의 법을 의도적으로 무시하여 법정신을 지키려는 행위이며, 혁명은 궁극적으로 기존의 체제를 뒤집고 새로운 체제를 세우려는 노력입니다. 그렇기에 초일상의 정치에는 일상에서 통용된 합법과 불법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는 초법적인 행위가 존재하는 것이며, 변화 자체가 초법적 행위의 결과인 것입니다. 강좌에서 “법이 생겨나면 법은 실제 변화를 안정화하고 합법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변화 그 자체는 언제나 초법적 행위의 결과이다.”라는 한나 아렌트의 ⌜시민불복종⌟에 나오는 구절도 함께 읽었습니다.
시민불복종 시민불복종은 헌법이 보장하는 다른 목소리를 낼 권리(right of dissent) 중 핵심적인 것으로 법정신을 향한 근본적인 호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더불어 불복종의 4가지 조건에 대하여 설명하셨는데 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주제는 정체 전체에 미치는 공공사여야 한다. 두 번째, 다수의 동료 시민의 일반적 정의감을 향한 소수자들의 호소이다. 세 번째, 비폭력적 참여를 전제로 한다. 이는 장기적으로 비폭력이 시민들에게 신뢰를 줌으로써 참여의 지속성을 보장할 것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되는데, 이러한 믿음은 불복종의 목적이 폭력이 아니라 시민의 합의를 통한 변화라는 정치적 믿음과 헌법이 비폭력을 지지한다는 헌법적 믿음, 그리고 도덕적 신념에 기반한다. 네 번째. 시민 불복종에서 의도적으로 행해지는 법률 위반은 결코 은밀하게 이루어져서는 안되며 공개적인 장소에서 공개적인 행위로 이루어져야 한다.
즉, 시민 불복종은 일상의 시간 내에 존재하는 초일상의 정치로 정당한 이견의 권리, 다른 목소리를 낼 권리라는 것입니다.
혁명과 헌법 : 폭력 없는 혁명은 불가능한가. 한나 아렌트는 헌법은 ‘전적으로 혁명의 소산’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혁명은 체제의 변화를 목적으로 하는 초일상의 정치이지만 왠지 혁명이라는 말을 들으면 변화보다는 폭력을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선생님께서는 ‘폭력 없는 혁명은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혁명과 헌법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우선 4가지의 혁명론 (응집심리이론, 체제/가치 합의론, 정치갈등, 계급갈등이론)을 살펴보았는데, 모두 혁명 안에 폭력이 내재되어 있거나 또는 폭력을 혁명의 필수 요소로 여김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혁명의 폭력적 요소는 다수의 시민들로 하여금 혁명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곤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폭력 없는 혁명’에 대한 대답으로 한나 아렌트의 <혁명론>을 설명하셨습니다. 아렌트는 폭력의 반정치성에 대하여 이야기하였습니다. 폭력이 있을 때 다양한 요구와 목소리는 다시 침묵하게 되므로 결국 폭력은 새로운 논의를 만들어낼 수 없으며, 따라서 폭력과 정치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혁명은 폭력이 아닌 말과 행위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말을 통한 혁명은 결국 새로운 헌법을 제정함으로써 체제의 변화를 이루는 것을 의미합니다. 혁명의 목적이 공동체의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라면, 헌법은 그 자체로 방향성을 지시하는 문서이기 때문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누가 헌법을 쓰는가?’라고 하셨습니다. 구성권력(constituent power)은 넓은 의미에서는 정체를 구성하는 주체를 이르고, 좁은 의미로는 정체의 헌법을 제정할 권리를 의미합니다. 헌법은 정부의 행위가 아니라 정부를 구성하는 인민의 행위다”라는 토마스 페인의 말처럼 구성권력은 시민이 마땅히 행사해야 할 권리인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우리 헌법의 전문에서 ‘대한민국’이 아닌 ‘대한국민’으로 시작한다는 점에서 시민의 구성권력이 드러난다고 설명하셨습니다.
헌법 제정에서 혁명성을 찾지 못하는 이유 그러나 우리 사회가 헌법 제정을 통해 혁명을 이룰 수 있으리라는 공통의 신뢰가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오히려 헌법은 일상과 괴리된 이상적인 무언가로 여겨져 왔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헌법 제정에서 혁명성을 찾지 못하는 이유를 한국 사회에서는 헌법이 혁명의 결과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87년 6월 민주화운동을 통해 새로운 헌법을 썼다는 점에서 혁명으로 불려도 좋을 민주주의의 주요한 성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대중은 일상의 정치에서 정권교체의 실패를 경험하였고, 엘리트 위주의 헌법 개정으로 인해 대중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못하였습니다. 선생님은 그렇기에 더더욱 헌법을 개정하는 이번 시기가 시민의 목소리를 반영할 중요한 기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마종기 시인의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중 ‘대화(對話)’를 함께 읽으며 2강을 마쳤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지난 시간 우리가 헌법을 만드는 과정은 등불을 만들고, 등불이 다시 꺼지는 과정의 연속이었을지 모른다고, 그러나 구체제와 새로운 체제와의 대화인 헌법 제정에 다시금 참여하여 목소리를 내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집단적 기억을 구성하고 제도화 하는 과정에 주권자로서 참여하여 시민이 헌법을 만드는 일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배운 뜻깊은 강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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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숍] 사람의 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영상] '사람의 소리는 빛보다 멀리간다'-거리에서 소리내고 표현하기 워크숍 | 느티나무 | 2018.5.23 | |
우리의 몸과 일상의 도구로 함께 소리내며 자신을 표현하는 시간. 우리가 내는 소리가 변화의 봄바람을 만들어 가길 기원하며 세월호 4주기 광화문 사전행사에서 시민들과 함께 거리 공연을 했습니다.
* 유뷰브에서 영상보기 : https://youtu.be/iZODIDejAos * 참여연대 유튜브 채널 : https://goo.gl/L52MG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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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70년 역사기행] 제주 4·3 바람이 분다 | [역시기행후기] 제주, 그 어두운 동굴 속... 거기 사람이 살고 있었다 | 느티나무 | 2018.5.23 | |
제주, 그 어두운 동굴 속...거기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경희 역사기행참가자
영화 <지슬>이 개봉했을 때 나는 친구와 제주를 여행하고 있었다. 개봉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여행을 떠나며 우리는 제주에서 <지슬>을 보자고 했다. 마침 일정에 다랑쉬오름이 있어 영화를 제주에서 본다면 여행이 더 의미 있어질 거라고. 그러나 그 일을 실행하지 못했다. 여행 마지막 날, 극장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할 시간에 우리는 바다가 보이는 작은 레스토랑에서 커다란 새우가 들어간 크림 파스타를 먹었다. 그날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여행은 나에게 다른 의미를 남겼다. 제주에 살고 싶어졌고 매해 한두 번 제주여행을 다녀오게 만들었다. 4·3 역사기행을 신청한 것도 제주를 더 알고 싶어서였다. 수업 장소인 참여연대는 집에서 멀지 않았고, 제주로 1박 2일 간 답사를 다녀오는 강좌가 4월에 열렸으니까, 가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후기를 쓰기에 앞서 한 가지 고백을 하자면, 나는 수업을 듣고 제주4·3에 대해 알게 된 후 역사기행을 포기하고 싶었다. 엄두가 나지 않았다.
1947년 3월 1일 3·1절 발포 사건.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통행금지령 해제. 7년 7개월. 희생자 3만 명. 당시 제주 인구의 십분의 일. 첫 수업 날 노트에 적은 내용이다. 김종민 선생님은 칠판에 연대표를 그리고 당시 기사와 자료, 생존자의 증언을 토대로 4.3의 개요를 짚어 갔다. 얼마나 끔찍한 사건이었는지. 수업 내내 너무 참담해서 마음을 추스를 겨를도 없었다. 몇 년간 사건이 지속됐고 몇 명이 죽었다는, 노트에 적어둔 숫자도 그랬지만 사람들의 증언 때문에 더 그랬다. 생존자 7000명을 인터뷰하고 진상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던 김종민 선생님에게 듣는 4·3은 ‘역사’나 ‘사건’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였다. 가족이 총에 맞아 죽은 일을 길게 증언하는 할머니와 총 맞아 죽은 게 끔찍한 일도 아닌데 뭘 그리 길게 말하느냐 타박하는 옆에 다른 할머니들. 일곱 살에 토벌대에 의해 집이 불 타 가족을 잃고, 그때 가족을 구하지 못한 일을 평생 자책하며 살아온 할아버지. 다른 어떤 설명보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그 한마디에서 떠오르는 그 사람의 삶이 내겐 더 성큼 다가왔다.
<4·3평화공원 위령제단에서 참배 하는 역사기행 참가자들 ⓒ참여연대>
역사기행의 출발은 4·3평화공원이었다. 진상을 알리고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인 만큼 많은 자료와 글을 통해 사건의 참상을 설명하고 있었고, 다랑쉬굴과 제주공항 유해 발굴 현장 등을 재연해 놓기도 했다. 수업을 통해 이미 들은 내용이었지만 다시 보는 일은 수월하지 않았다. 나쁜 일을 두 번 목격하고 겪는 것처럼 더 생생하고 참혹하게 다가왔다. 또 그래서 실감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14,000여 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위패 봉안실에 들어갈 때는 많다, 너무 많다, 는 생각 말고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웅장하리만치 높은 천장까지 빼곡히 찬 위패를 보면서 슬프기보다는 무력감이 밀려왔고, 그건 행방불명자묘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형무소에 사람을 가두고, 죽이고,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그래서 시신을 찾을 수 없다. 생사를 확인할 수조차 없다. 한 명이 아니고, 열 명이 아니고, 삼천구백 명. 전국에서 제주 사람 삼천구백여 명이 그렇게 사라졌다. 행방불명자묘비 사이 기념비석에는 그들이 형무소에서 집으로 보내왔던 편지의 구절이 새겨져 있다. ‘이 편지를 받아보신 즉시 답장하여 주시고 종종 편지하여 주십시오’, ‘사랑하는 옥녀야 나는 네 생각만 나고 있다’, ‘매형에게 부탁하였으니 소와 말을 잘 관리하여 주기를 부탁합니다’ 글귀 앞에서 나는 그들이 편지를 쓸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들이 죽을 거라는 것을 알았을까, 몰랐을까, 헤아려 보았지만 알 수 없었다.
서울에서 진행된 수업 말미에 김종민 선생님은 이런 말을 했다. 많은 사람이 제주로 이주를 꿈꾸고, 제주가 아름답다고 한다. 당시 열 살 소년이 칠십 년이 지나 지금은 여든이 되었다. 가족을 잃은 일고여덟 꼬마가 끈질기게 살아남아 자식을 낳고 폐허가 된 마을을 일으켰다. 아름다운 제주를 만들어냈다. 4·3은 참혹했지만 그 극복의 역사는 자랑스러운 역사이다. 그날 오후 우리가 걸었던 북촌리가 그랬다. 오백여명의 사람들이 하룻밤사이 학교 운동장에서 사살됐고, 한때는 남자가 없어 무남(無男)촌이라 불리기도 했던 마을. 북촌리 우리가 걷던 길에는 4·3유적지 표식과 올레길 표식이 함께 걸려 있었다. 때마침 흔치 않게 날씨마저 좋아서, 그 길을 걸으며 마음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었다. 사람들 사이 조금씩 대화가 오갔고, 표정이 밝아졌고, 웃음을 터트리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제주 북촌4·3길에서 찍은 하늘. 4·3 사건 당시 마을 주민 300여명이 학살 당했지만 이후 주민들은 다시 마을을 재건했다. ⓒ강은주>
영화 <지슬>의 촬영지이기도 한 동광리 큰넓궤는 몇 년 전부터 출입이 통제돼 있었고, 허가가 쉽지 않다고 했다. 만약 큰넓궤에 들어가지 못했다면 나는 4·3을 희생자가 아주 많은 끔찍한 사건으로만 기억했을 것이다. 안내를 맡아준 한상희 제주교육청 4·3담당 장학사는 우리더러 무등이왓 마을 사람들이라고 했다. 초토화작전으로 마을을 잃고 큰넓궤에 은신해 지낸 무등이왓 마을 사람의 역할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한상희 장학사는 등장부터 떠들썩했고, 우리에게 역할을 주고 난 뒤에는 이제 토벌대에게 쫓기고 있으니 빨리 빨리 움직여라, 우리는 다시 나와서 마을을 재건할 거다, 죽으려고 들어가는 게 아니라 살려고 들어가는 거다, 마을 이장처럼 우리를 이끌었다. 그래서 나는, 아마 모두 그 역할에 충실했던 것 같다. 궤는 입구가 너무 좁아서 시작부터 포기하는 사람이 생길 정도였다. 그러나 입구를 지나자마자 통로는 점점 더 좁아져서, 엉금엉금 기어가다 곧 납작하게 엎드려야 했다. 어두워서 손전등을 비춰도 앞이 잘 보이지 않았고, 앞을 보려고 고개를 들면 천장에 머리를 부딪히기 일쑤였다. 헬멧을 쓰지 않았다면 머리를 다쳤을지도 모른다. 새어들어오는 빛조차 없었다. 이유나 원리는 모르겠는데, 한두 사람 뒤에서 혹은 앞에서 불빛을 비춰줄 때가 가장 잘 보였고, 우리는 서로의 빛에 의지해 이동했다. 중간에 내가 우비에 발이 걸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바람에 앞 사람과 거리가 생겼다. 뒤에서 불빛을 비쳐주어도 앞은 어둡기만 할 뿐 아무것도 없었다. 불빛과 앞사람이 모두 있어야 했다. 통로가 좁아 앞으로 가려고 몸부림을 칠수록 숨이 막혔고, 그렇다고 옆으로 비켜날 수도 없어서 이때가 가장 막막했다.
<동광리 큰넓궤 입구. 참가자들이 헬멧을 쓰고 천천히 동굴 입구로 들어가고 있다 ⓒ송명진>
포기하고 싶을 때까지 좁은 통로를 기어가니 다리도 허리도 펼 수 있을 정도로 높고 둥근 공간이 나왔다. 한쪽으로 다시 높은 곳에 이층처럼 공간이 있었는데, 거기가 무등이왓 사람들이 살았던 곳이다. 눕는 건 물론 앉기도 어려울 정도로 돌은 뾰족했지만 그래도 궤에서 가장 ‘쾌적한’ 공간이었다. 비교적 돌의 크기가 가장 작아 땅이 평평한 편이었고, 다리를 펴고, 똑바로 앉을 수도 있었고,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겠지만 마주 앉아 대화도 나눌 수도 있었다. 막상 들어와 보니 상상했던 것처럼 끔찍하다거나 무섭게 느껴지진 않았다. 그냥 그때, 사람이 살던 곳이었다. 밥은 어떻게 먹었어요? 누군가 한상희 장학사에게 물었다. 궤 안에서는 불을 피울 수 없어 한 사람이 밖으로 나가 밥을 해 와야 했다. 당번은 진짜 싫겠다, 진짜 무서웠겠다, 생각하는데 한상희 장학사가 말했다. 가족들, 마을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얼른 해가지고 빨리 가야겠다, 그랬겠지요. 뜻밖의 말이었다. 그곳에서 잠시 묵념을 했고, 모든 불빛을 껐을 땐 눈앞이 정말 새까맸다. 여기가 굴이라는 것도 사람들이 옆에 있다는 것도 알아챌 수 없고 모든 게 사라질 만큼 까맸다. 거기서는 낮도 밤이었고, 온종일 밤뿐이었다. 밤만 지속되는 궤에서 두 달이나 사람이 살 수 있었던 건, 같이 있던 마을 사람들 때문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한 가족만 됐어도 버티기 어려웠을 텐데, 한 마을이, 세 마을이 같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동광리 큰넓궤 끝. 손전등을 끄고 어둠과 정적이 흐르는 동굴에서 당시 주민들의 삶을 떠올려보았다 ⓒ 김수안>
나갈 때는 요령이 생겨서 들어올 때보다 수월했다. 조를 짜서 서로 떨어지지 않게 움직였고, 힘이 들면 같이 쉬었다. 마을 사람들이 밥 기다리고 있는데 이러다가는 전부 굶게 생겼다는 농담도 했다. 기어가는 것도 요령이 생겨서 앞으로만 기지 않고 옆으로도 기었고, 들어갈 때보다 속도가 훨씬 빨랐다. 동굴 입구를 나오면서 우리는 살아남은 사람들처럼 환호했다. 비가 아주 많이 내리는 흐린 날도 아주 밝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우비가 다 찢어지고, 바지도 찢어지고, 신발은 다음날 새로 사야했을 정도로 더러워졌지만 괜찮았다. 비가 너무 많이 오는 탓에 정작 우리 마을인 무등이왓에는 가지 못했지만 점심을 먹는 내내 다들 상기된 표정이었다.
섯알오름에 가서야 잊고 있던 사실을 기억해냈다. 무등이왓 마을은 불 타 전부 없어졌고, 궤 안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죽었다는 사실이었다. 무등이왓 사람들이 사살된 곳이 섯알오름은 아니었지만, 나는 사람들이 눈앞에서 사살되는 장면을 목격하는 것 같았다. 차례로 줄을 서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죽인다. 총살된 사람들은 웅덩이에 무더기로 떨어져 썩어가고 가족들이 시신을 수습을 하러 왔을 땐 팔, 다리, 머리, 몸통만 따로 있고 온전한 시신이 없다. 신원을 구분할 수 없어 큰 뼈를 대충 수습해 안장한다. 섯알오름과 백조일손지묘. 우리가 지나온 곳 중 사람이 끔찍하게 죽지 않은 곳이 없었는데 죽음이 너무 갑작스럽게 느껴졌다. 조금 전까지 사람이 살고 있던 곳에 있다 왔고,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4·3의 모든 죽음이 끔찍하고 참담했지만 삶이 있었다는 걸 알고 난 후 목격하는 죽음은 그 무게가 너무 달랐다. 한상희 장학사는 이동하는 동안에도 4·3 이야기,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 이야기, 살아남은 할머니들 이야기, 마을 이야기, 가족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섯알오름에 다녀온 뒤로는 아무 것도 듣고 싶지 않았다. 버스에서 얼른 내리고 싶기만 했다.
<섯알오름 예비검속 희생자 추모비. 해설사는 늘 희생자들의 나이를 눈여겨 보라고 했다. 어린이들도 학살을 피해갈 순 없었다. ⓒ참여연대>
백조일손지묘를 끝으로 기행은 끝났고, 나는 사람들과 헤어져 남은 일정의 숙소인 바다 앞 옛집으로 갔다. 아주 피곤해서 방에 들어가자마자 곯아떨어질 줄 알았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슨 생각을 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아 어딘가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한 번. 어쩌면 두 번쯤, 낮에 헤어진 사람들을 생각했다. 서울로 잘 돌아갔을까. 제주 숙소에 잘 도착했을까. 자고 있나. 그러나 새벽 네 시가 돼 겨우 잠들 때까지 내가 가장 많이 떠올린 건, 밤이라는 글자와 7000명을 인터뷰한 김종민 선생님과 한상희 장학사였다. 그 사람들은 잠이 안 올 때 어떻게 했을까 궁금하기도 했고, 아까 한상희 선생님 이야기 귀담아 듣고 많이 웃을 걸 싶기도 했다.
기행을 다녀온 지 보름이 지났다. 누군가 제주에 가 살고 싶으냐고 물으면 이젠 쉽게 대답을 못할 것 같다. 한상희 장학사에게 들었던, 가시리와 신흥리에는 꼭 가볼 생각인데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
<제주4·3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 ⓒ강은주>
끝으로 한 가지 더 고백하자면, 제주기행을 떠나기 전 나는 4·3에 관한 이야기를 써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옛집 방문을 닫고 침대에 누우면서 그건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이 상황에서 가장 이해가 안 되는 게 뭐냐 하면. 나는 4·3 이야기를 쓰지 않기로 백기까지 들고 손을 떼려는데, 칠십 년 전에 벌어진 일이 그때는 살지도 않고 우리 가족 누구도 겪지 않은 그 일이, 왜 며칠 전 나한테 일어난 일처럼 여겨지는 건지. 왜 나를 휩쓸고 지나가지 않고 계속 나를 휘감고 있는 건지. 이런 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람들과 말해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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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프레임과 언론, 정치와 프레임 | [후기] 5/10(목) 김진혁 특강 - 프레임과 언론, 정치와 프레임 | 개똥이 | 2018.5.16 | |
“지식채널e” PD로 활동하신 후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계시는 김진혁 교수님께서 [[프레임과 언론, 정치와 프레임]]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진행해주셨습니다!
김진혁 교수님은 “지식”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시작해 지식채널e를 제작하신 경험과 현대 사회에서 “프레임”이 활용되고 있는 상황을 소개해주셨습니다. 특강을 들으며 언론과 정치 속 프레임의 교묘한 작용을 살펴봤고, 세상을 보다 정확하게 바라보는 방법을 고민해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프레임”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는 책도 추천받았습니다. 교수님은 “진보와 보수, 문제는 프레임“이라는 부제목을 달고 있는 책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를 소개해주셨는데요. 아쉽게 강연에 참석하지 못한 분은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를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지식”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지식채널e를 시작하다 ‘지식 공급자’와 ‘지식 수용자’가 명확하게 나뉘어 있던 과거에는 지식 공급자의 입장에서 유용한 지식만이 중요했을 뿐, 지식 수용자가 ‘지식/교양/시사’에 관해 갖고 있는 생각과 기대는 소홀하게 여겨졌다고 합니다. 지식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역할은 철저히 지식 공급자의 손에 달려 있었고, 공급자는 수용자인 평범한 시민들이 미숙하다고 생각했죠. 이처럼 다분히 계몽주의적인 지식 공급자의 입장을 볼 때마다 교수님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지식 공급자의 판단처럼 대중이 생각할까?” “평범한 우리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와 같은 질문에서부터 지식채널e가 시작됐다고 합니다. 이전과는 다르게 지식 수용자의 입장에서 원하고 필요로 하는 지식을 생산하고 유통하기 시작한 거죠. 마침 (지식채널e가 시작할 때쯤인) 2002년에 대중은 집단 지성에 대한 자신감이 커졌고, 공급자 중심의 지식 체계에 대한 염증이 커진 상황이었기에 지식채널e가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교수님은 평가하셨습니다.
- “프레임”이 뭘까? “프레임”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떠오르나요? “말장난으로 사실을 왜곡한다,” “사람들은 속이려 든다,” 와 같은 부정적인 생각이 많이들 떠오르실 것 같은데요.
김진혁 교수님은 “프레임”이라는 개념에 대해 떠도는 부정적이고 부정확한 평가는 내려놓고, 더욱 면밀하게 “프레임”에 접근해보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 위해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 나온 개념과 사례들을 자세하게 소개해주셨는데요~ 교수님은 “프레임”은 다양한 단어와 개념들이 연결되어 있는 ‘일종의 네트워크’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우리는 “프레임”으로 인해 다양한 개념들이 연결되어 떠올려지도록 세팅 되어 있다고 합니다.
“프레임은 일종의 네트워크다”라고 하니 조금은 추상적이죠? 풀어서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 라는 말을 들으면 이 명령과는 반대로 코끼리가 머릿속에 떠오르죠? 문장의 의미에 반하여 코끼리가 바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처럼 “프레임”은 자동적이고 통제 불능적인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어떠한 단어를 들었을 때 그 단어의 의미와 더불어 그에 관해 함께 생각나는 정서적인 감정값들도 “프레임”에 의한 것이라고 합니다. 가령, “강아지”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사전적 정의를 넘어서서 누군가는 “귀엽다”를 떠올리고, 누군가는 “나를 물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처럼요. 즉, “프레임”은 다양한 개념과 감정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구조라는 것입니다.
- 현실세상에서 "프레임"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김진혁 교수님은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말을 배우고, 경험을 쌓고, 감정을 느끼면서 세팅된 정보들이 연결되어 효율적인 방향으로 발전한 것이 “프레임”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또한, 우리는 일상에서 단어를 하나씩 개별적으로 사용하기보다는 여러 개를 섞어서 사용하는데, 이 과정에서 언어가 구성된 방식에 따라 시너지가 생기거나 여타의 작용이 생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이러한 “프레임”의 효과를 더욱 쉽게 전달하고자 유명한 예시 세 개를 소개해주셨습니다!
1) 미국의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세금과 관련된 정책명으로 “tax cut 감세”를 내놓았을 때 시큰둥했던 미국 시민들은 “tax relief 세금 구제”라고 정책명을 수정하자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이성적으로 설명하기에는 어렵지만, 같은 정책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정책의 이름에 따라 사람들의 정책에 대한 호불호가 달라질 수 있다는 예시입니다.
2) 삼성 소유의 유조선 기름 유출 사건인 “삼성 유조선 허베이 스피릿 사건”을 “태안 기름 유출 사고”로 묘사한 언론의 프레임에 관해 이야기하셨습니다. 교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이는 프레임 왜곡이 노골적이었던 사건이었습니다. 모든 언론에서 이 사건이 “태안 기름 유출 사고”로 묘사된 것으로 인해 기름 유출이라는 사고/사건에서 삼성의 책임은 삭제됐고, 시민들은 이를 환경문제로서만 인식하게 됩니다. 수많은 시민이 봉사 활동에 참여하면서, 태안 기름 유출 사고는 건강한 시민의식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남았지만, 정작 삼성에 의한 보상이 어떻게 됐는지는 이후에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3) “IMF 외환위기” 또는 “IMF”로만 불렸던 1997년 외환위기 역시 프레임의 영향이 컸었던 사건이라고 합니다. “IMF"라는 다소 ‘엉뚱한’ 명칭으로 인해 심각한 경제 위기가 어떻게 비롯되었는지에 대한 고민은 생략되었고, 많은 시민들이 심정적으로 IMF라는 국제기구에 반감만 느끼는 현상이 생겼다고 합니다.
특강을 통해 위의 사례들을 함께 살펴보며, “프레임”의 영향력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김진혁 교수님은 “프레임 전쟁”이 중요한 시기가 온 것 같다는 말씀을 하시며 강의 후반부를 이어가셨습니다!
- 범람하는 "프레임"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 사고할 것인가? 앞서 살펴본 것처럼 “프레임”의 효과가 상당히 클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견지하면 좋을까요? 교수님은 “FACT,” “TRUTH,” “CONTEXT”라는 세 개의 개념을 이야기하셨습니다. 흔히들 어떠한 사건에는 단 하나의 팩트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한 사건이 갖고 있는 다양한 맥락들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사건에 대한 새로운 맥락이 추가될 때마다 사건에 대한 판단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죠.
맥락에 대한 고민과 프레임의 효과에 대한 인식을 놓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보다 정확하게 현실을 분석할 수 있겠죠. 김진혁 교수님과 함께한 [[프레임과 언론, 정치와 프레임]] 특강은 특히 다양한 말들이 가득한 지방선거를 앞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유익한 시간을 채워주신 김진혁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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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권 정치철학] 변동하는 우리 정치 앞서보기 | [후기] 5/8(화) 김만권의 ‘새로운 세계를 짓기 위한 변화의 매뉴얼 - 변동하는 우리 정치 앞서보기’ 1강 _ 기억(memory)과 정의 | 개똥이 | 2018.5.12 | |
이번 첫 강의에서는 6회에 걸쳐 진행되는 전체적인 강의의 흐름을 짚어보고 앞으로 우리가 함께 논의하게 될 이야기를 훑어보는 것부터 시작했다. 2017년 대통령 탄핵 이후 우리 정치는 결정적 갈림길에 서있다. 새로운 변화를 이룰 것인가 아니면 구체제의 유산에 남을 것인가. 김만권 선생님은 새로운 세계를 짓는다는 것이 정치학적으로 무슨 의미인지 말씀하시기 위해 헌법을 먼저 설명하셨다.
1. 헌법(constitution)의 의미
김만권 선생님은 우리가 흔히 헌법을 문서라고 생각하지만 본래 의미는 구성(constitution)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셨다. 정치에서는 헌법은 정체를 구성하는 원리이며 정체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헌법(constitution)의 의미는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1) 헌법(문서) 2) 정체의 구성 3) 정체
김만권 선생님은 ‘성공한 혁명은 새로운 헌법을 쓴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헌법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은 촛불혁명 이후에 새롭게 만들어질 정체는 곧 헌법에 어떤 내용을 새로 담아내야 하는가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계를 짓기 위해 우리는 새로운 체계가 필요하고 그 내용을 담아내는 것이 바로 헌법이다. 우리는 헌법에 어떤 내용을 담아내야 할까? 바로 거기서 이번 수업의 주제인 ‘기억과 정의’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됐다.
2. 기억(memory)의 중요성
모든 기억은 외부 충격이나 역사적 사건에서 시작된다. 촛불혁명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억의 계기를 제공했다. 김만권 선생님은 우리나라 정치사에서 기억이라는 단어가 국가적 키워드가 된 첫 번째 사건은 ‘세월호’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잊지않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아있다.
김만권 선생님은 기억이 과거의 행위를 되짚어보는 의미를 넘어 미래의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는 현재의 정의로 연결되기에 중요하다고 말씀하신다. 기억하는 자들만이 같은 부정의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억은 과거를 향한 정의이자, 미래의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는 현재의 정의라는 것이다.
기억은 반성의 계기가 된다. 기억하지 못하는 자들의 삶의 문제는 반성 없는 삶을 살기에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우리는 같은 실수를 다시 저지르지 않기 위해, 더 나아가 우리가 그런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지 않기 위해 기록하고 기억해서 정의를 세워야 한다.
기억이라는 활동의 목적은 과거를 돌아보는 것을 넘어, 미래를 위한 일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진실과 화해를 위한 협의회는 이전에 인종 범죄를 저질렀던 가해자들이 피해자 앞에서 공개적으로 자신이 행한 일을 고백하고 이 활동을 기록해서 모두에게 공유했다.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록으로 남기고 사람들이 용서를 하는 과정에서 다시는 이런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만들게 되고 그 결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헌법이 만들어졌다. 이런 기억의 과정을 통해 집단은 ‘다시는 이런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새기게 된다.
기억의 결과는 정체, 즉 새로운 헌법에 담기게 된다. 다시 말해 헌법은 집단이 어떤 과거와는 단절하고 어떤 내용은 기억할 것인가 결정한 결과물이 담기는 것이다.
3. 행위와 사유
김만권 선생님은 집단이 제대로 된 기억을 만들기 위해서 한계상황을 마주하는 것과 그에 따르는 사유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하이데거는 “인간은 웬만해선 사유하지 않는다. 인간은 한계 상황에 마주했을 때만 사유한다”고 말했다. 한계 상황은 죽음을 앞뒀을 때를 말한다. 하이데거 같은 존재론자는 인간이 존재에 대해 질문하게 되는 건 그런 한계상황일 때뿐이라고 봤다. 이를 정치 상황에 비춰 본다면 일반적인 정치상황이 아니라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고 충격이 일어났을 때 우리를 생각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표현되고 기억되어야만 의미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 마주했을 때 사유하지 못하고 명확히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다면 문제가 발생한다. 김만권 선생님은 우리가 공론장에 참여하는 정치참여의 경험을 후대에 넘겨주는 것이 ‘집단적 사유의 장’이고 그 장에서 제대로 된 기억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만약 집단적 사유의 장 없이, 기억을 하나의 이미지로 공유한다면 집단의 기억이 왜곡되거나 아예 기억 자체가 부재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이런 정치참여 경험을 곱씹는 사유의 과정을 거쳐 후대에 제대로 전달했을까? 김만권 선생님은 이에 대한 답을 1987년 6월 혁명으로 설명하셨다. 우리는 6월 혁명의 결과로 만들어진 87년 헌법 체제를 ‘민주정체로서 새로운 시작’이란 긍정적 평가보다는 ‘낡은 독재의 유산에서 완전히 헤어 나오지 못한 실패한 혁명’이란 부정적 평가에 방점을 찍고 바라본 경향이 있다.
김만권 선생님은 87년 헌법 체제가 우리가 민주주의를 기억하는 데 실패한 사례라고 말씀하셨다. 87년 헌법은 ‘법치’와 ‘민주적 정치’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탓에 헌법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명확한 지식과 개념이 제대로 자리 잡지 않은 상태였다는 시대적 한계도 있었다. 하지만 사실상 일반 ‘데모스’의 의지가 군사정권이라는 과거와 완전히 결별하고 우리 역사상 민주적 주권자가 만들어낸 첫 민주헌법이라는 점에서 유의미한 헌법이다.
87년 민주헌법을 쓴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 결과, 현재 우리는 민주주의를 단순히 다수결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87년 전후 독재를 민주주의로 대체한 세대마저 사건의 온전한 의미를 곱씹고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어질 2강에서는 시민불복종과 혁명에 대해 배우게 된다. 그 뒤로는 헌법과 새로 쓰일 헌법에 어떤 내용이 담겨야 하는지에 대한 강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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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70년 역사기행] 제주 4·3 바람이 분다 | [후기] 4/16 제주 4·3 바람이 분다(2) - 국제법으로 본 제주 4·3 | 개똥이 | 2018.4.28 | |
제주 4·3 특강 2회차에는 이재승 교수님이 '국제법'이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제주 4·3사건을 해석해주셨습니다. 1회차 강의를 해주셨던 김종민 위원장님의 시각과 많이 달라서 인상깊었어요. 강의 자료와 내용을 같이 정리했습니다 :)
1) 제주 4·3사건은 국제법적 책임이 존재한다. "국내에서 일어난 문제인데 왜 국제법으로 본다고 하는 걸까?" 강의 제목을 봤을 때부터 조금 의아했던 부분입니다. 시작부터 이 점을 짚어주셨는데요, 제주 4·3사건은 군대가 동원되어 대략 3만명에 이르는 민간인을 학살한 사건이기 때문에 국가폭력의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이 때 책임과 문제해결에 관한 국제적 기준이 존재하기 때문에 '국제법'으로 해석이 가능하며, 국제법은 단순히 국가 간의 문제뿐만 아니라 국가와 해당 국가 국민 간의 권리도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합니다.
[국제법적 근거] 국제인도법/전쟁법 - 집단살해, 전쟁범죄, 침략범죄, 인도에 반한 범죄를 규정 반보벤-바시오우니 원칙(피해자 권리장전) 불처벌투쟁원칙 국가책임법(2001) (- 관습의 조문화)
위에서 열거한 법이나 스피치액트는 국가에 의해 자행된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해 국가책임을 물을 수 있는 관습법으로서 존재합니다. 즉, 연성법(Soft Law)으로 직접적인 법적 권위(근거)로서 활용되지는 못하지만 입법이나 결정에서 국제관습이나 관례로 원용될 여지는 있는 것이죠. 구속력은 없지만 진실 규명과 과거 청산에 관한 기준과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2) 제주 4·3사건은 미국의 책임도 있다. 1948년 당시 미국이 남쪽을 분할 통치하는 가운데 미국의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에 따라 자주권을 침해당했기 때문입니다. 점령체제 아래의 미군정은 공산당불법화(규정), 정당등록규칙, 군정위반죄 등을 만들었습니다. 점령체제 하에서는 민족자결의 원칙을 침해하지 않도록 점령 국가가 [중립성, 점령지주민의 이익, 잠정성]을 지켜야 합니다. 중립성은 정치적 역학관계에 개입하지 않는 것으로, 특히 정당등록규칙은 미군정의 좌익 통제를 의도한 규칙이므로 중립성 원칙에 위배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3) 이러한 맥락에서는 제주 4·3사건을 '항쟁'으로 볼 수 있다. 사실 제주 4·3사건을 두고 아직 이 사건을 어떻게 정의해야할 지 의견이 분분합니다. 지난주 김종민 위원장님은 항쟁으로 볼 수 없다고 잘라 말하셨는데, 이재승 교수님은 당시 정치·사회적 맥락에서 본다면 이를 '항쟁'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미군정의 통치 아래 주권을 침해받은 상황에서 미군정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미군정은 이들을 천천히 서울에서부터 진압해나갔습니다. 특히 제주 4·3사건이 일어날 당시에는 헌법(1948.7.17)에 제정되기 전이었고 미군정이 만든 '국방경비법'을 적용해 군사재판을 진행했습니다. 제대로 공포된 적도 없는 이 법 조항들을 날림으로 만든 것은 당시 미군정이 즉결처형할 권리를 마음대로 규정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미군정의 개입에 대한 반발이 전국적으로 진행되고 있었고 그 마지막이 제주 4·3사건이라고 평가한다면 '항쟁'으로 볼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4) 국제법적으로 제주 4·3사건의 해결은 어떻게 해야할까? 국가책임법의 초안에는 피해자의 권리를 밝히고 있습니다. 진실과 정의, 피해회복에 대한 권리를 가지며, 이중 피해회복에 대한 권리는 피해자의 만족을 비롯해 원상회복, 금전배상, 재활조치와 재발방지를 보증하는 것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피해자에게 '만족'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명시하고 위반의 인정, 유감의 표시, 공식사과 등의 방식이 있다고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점이 새로웠습니다.
교수님이 중요하게 짚고 넘어간 것은 '재발방지의 보증'인데요. 이 조치에는 악법의 개폐도 포함됩니다. 지난 2000년, 제주 4·3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었던 것은 진상규명운동과 함께 수평적 정권 교체를 이뤄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시 특별법도 사건의 국가적 책임을 인정만 했을 뿐, 2007년 개정한 뒤에도 피해자 지원과 보상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물론 특별법 제정으로 인해 도민 전체의 명예회복이 이뤄진 점은 짚고 넘어가야겠지만, 지난 강의 때도 지적됐던 것처럼 아직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도 꽤 많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국가 폭력으로 인한 피해는 '완전한 해결'이나 '최종 해결'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시며, 애초에 발생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고 지적했던 부분이 인상깊었습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피해자'의 범위가 어떻게든 제한이 될 수밖에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간접 피해자도 있고, 보상을 인지하지 못하는 등의 사례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혹은 보상 당시에는 몰랐는데 후유증이 심각하다던가 하는 등의.. 정말 애초에 발생하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 같습니다.
5) 다른 나라는 어떻게 처벌&보상 했을까? 독일/한국/아르헨티나를 대표적으로 비교했습니다. 독일의 경우 패전국이었기 때문에 비교적 전범과 나치 처벌이 강제성이 있어 쉬웠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와 아르헨티나는 주체적으로 과거청산을 추진했다는 점이 과거청산을 어렵게 만든 원인이었다고 해요. 교수님은 아르헨티나의 과거청산을 선례로 꼽았는데, 아르헨티나 또한 1986년부터 청산 작업을 진행하다 중단이 됐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다시 재개되어 완료됐다는 점에서 우리가 참고할 만하다고 평가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86년 청산작업을 시작해 2011년까지 군경 259명을 처벌했습니다. '비뇨데'라는 독재자를 처벌하는 데 성공하면서 청산작업이 본격화했고, 인권침해 관여자를 사면해주는 사면법을 폐기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독일의 경우는 다들 아시는 것처럼 전범을 '발본색원'하는 데 충실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데, 20년이 넘도록 전범을 추적하고, 행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고 방조했더라도 유죄를 선고해 엄격한 기준을 세워 적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억책임미래재단법'을 제정해 역사를 기억하고 다시 인권이 침해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적극적인 조치를 실행하고 있습니다.
* 이런 사례들로 살펴봤을 때, 아직 제주 4·3사건의 경우 갈 길이 먼 것 같습니다. 아직 피해 규모가 제대로 밝혀지지도 않았고, 연좌제 피해 등을 어떻게 보상해야할 지도 논의가 필요합니다. 현재 공동체배상에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도 많다고 합니다. 제주도의 경우 마을 단위의 피해가 행정구역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미 사라진 마을에 대한 지원으로 마을이 복구될 수 있는가 등등의 문제도 있어서 복잡한 사안인 것 같습니다. 그 뿐아니라 당시 군사재판의 피해자들 중에는 판결문이 없어 재심조차 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어 군사재판의 무효화조치가 꼭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제주 4·3 사건에 대한 추가 진상조사와 사건에 대한 정의가 문제 해결의 시작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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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형의 ‘경제 토크’ - 알아두면 삶이 바뀌는 경제지식 | [후기] 4/3(화) 주진형의 '경제 토크' 4강 _국민소득 3만불 시대라는데- 일자리 | 봄날목화 | 2018.4.18 | |
주진형선생님은 인구구조와 현대 산업구조의 불일치 내지 불균형으로 저생산성과 고임금화의 결과를 초래했고, 인력투자에 소홀히 한 채 실물자산위주의 경제성장 3%와 실업률 증가로 이어졌다고 보셨다. 노동을 필요로 하는 산업은 줄어들고 노동시장은 경직되고 자본집약형 산업은 발달되었는데, 인적자본의 효율성을 높여야 현대산업구조에 맞는 일자리가 창출될 거라고 하셨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첫번째 원인으로 1차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들 수 있다.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정규직의 법적 보호와 강한 노조의 보호는 과보호를 완화하고 임금체계 개선, 해고규제 완화, 파업시 대체근로 허용, 성과중심 임금체계를 도입함으로써 부문간 노동이동이 활발해지면 이중구조가 완화될 수 있다는 견해가 있다. 두번째 원인은 산업구조의 이중구조로 노사관계가 파편화되어 있고 산업안전망도 취약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노무도급의 불법화, 최저임금의 대폭인상 등 법규강화로 2차부문의 근로자 지위를 상승시키면 이중구조는 완화될 수 있다는 견해가 있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임금이 높고 복지혜택도 좋은 1차노동시장(전체근로자의 23.4%)과 저임금, 낮은 복지혜택의 2차 노동시장(전체근로자의 76.6%)으로 분류된다. 1차 노동시장에는 대기업 정규직(근로자의 14.5%), 공공부문의 정규직(근로자의 8.9%)으로 구성된다. 2차 노동시장에는 중소기업 정규직(근로자의 43.7%), 대기업의 비정규직(근로자의 9.7%)과 중소기업의 비정규직(근로자의 21%), 공공부문 비정규직(근로자의 2.1%)으로 구성된다.
노동시장 이중화의 문제가 단순히 정규직 대 비정규직의 문제가 아니고, 기업규모간 격차의 문제와 중첩되어 있다. 2015년 기준으로 대기업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정규직은 모두 대기업 정규직 대비 60%의 임금수준을 보인다. 국민연금 가입율은 대기업 비정규직 80%, 중소기업 비정규직 35%이며 평균근속기간에도 대기업 정규직은 145.5개월, 대기업 비정규직은 44.8개월, 중소기업 정규직은 76.4개월,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26.9개월로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기업규모, 노조유무, 고용형태에 따라 지속되며, 2015년 기준으로 대기업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정규직은 모두 대기업 정규직 대비 60%임금수준이며, 월평균 임금(명목)에서 무노조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유노조 대기업 정규직의 34.3%수준이며, 근속기간, 신규채용률, 사회보험(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적용면에서 월등히 낮은 편이다. 국민연금 가입율은 대기업 비정규직 80%, 중소기업 비정규직 35%, 2009년 통계에 따르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율은 22.2%이다
안정된 노동시장을 만들고 노동기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근로시간 단축, 사회공공서비스부문 일자리와 의료복지부문 일자리를 확대해야 한다고 본다.
최저임금 미만 임금근로자가 빈곤선보다 큰 경우 23.7%, 빈곤선 아래인 경우 75.2%이며, 2000년부터 2015년까지 최저임금인상률과 소비자물가상승률+경제성장률의 차이는 평균 8.5%이다.
복지분야 재원분배(OECD SOCX)에서 한국은 2011년 기준자료에 따르면 GDP대비 노령 2.1%, 유족 0.3%, 근로무능력자 0.5%, 보건4.0%, 가족 0.9%, 적극적 노동시장 0.3%, 실업 0.3%, 주택 0.0%, 기타 0.6% 이다.
우리 사회 일자리는 인구구조와 산업구조가 매칭이 되어 자본위주의 산업보다는 산업구조에 맞는 인적 투자로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동시에 고용도 증대될 것이라고 견해를 보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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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짓는 기예, 사랑 | 세계를 짓는 기예 사랑 5강 - 사랑의 정치적 가능성 & 다시 세계를 짓는 사랑은 가능한가? | 개똥이 | 2018.4.9 | |
세계를 짓는 기예 사랑 5강 - 사랑의 정치적 가능성 & 다시 세계를 짓는 사랑은 가능한가?
*후기는 강연 내용과 강연에서 배부된 프린트에서 발췌했습니다. 이 글의 저작권은 참여연대와 엄기호 사회학자님께 있습니다.*
어린 아이와 청소년은 그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오늘날 노동세계에서 제외되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들을 ‘준비하는 사람’으로 보고 그들의 주체성을 박탈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따라서 어린 아이를 노동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자는 주장이 있지만 몇 세 아이부터 어떤 노동까지 포함시켜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이 된다. 오늘날에는 아이에게 드는 경제적 비용이 증가하고 아이로부터 얻는 경제적 이득이 감소한다. 자식은 경제적 가치보다는 사랑의 가치를 지니게 된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책임의 주체보다 권리의 주체가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책임지는 주체가 되었을 때 인간은 자신의 존재감과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생긴다. 하지만 오늘날은 책임감이 강할 성인일수록 아이를 갖지 않으려한다. 아이의 미래가 걱정되어서,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이를 갖지 않는 것이다. 만약 아이를 갖게 된다면 자신을 무장하고,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모든 정보를 ‘전부’ 알기 원한다. 고안된 출산과 육아 방법 등 산모보다는 아이에게만 관심을 쏟는다. 아이를 키우기 위한 최적의 준비를 하려하고 부모나 조부모의 지혜는 쓸모없는 것으로 규정된다. 현대에는 오직 최고만이 있을 뿐이다. 부모에게 그들의 본분을 다하라는 압력이 가해진다. 가장 먼저 육아에 대한 정보를 최신으로 업데이트하는 것이 그 중 하나이다. 끊임없이 과학과 정보를 통해 더 나은 출산과 육아를 공부한다. 엄마는 ‘적절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아이는 대처 능력이 없을 것이라는 공포를 가진다. 이는 현대인이 신자유주의적 관리의 주체로서 사랑으로 키우는 자식조차도 투자와 관리를 통해 기르려는 모습이다. 비정한 엄마들, 아이를 가질 자격이 없는 엄마들만이 새로운 규칙을 따르기를 거부할 수 있다는 역설이다.
인간의 동물성이란? 말의 머리를 가지고 사람의 몸을 가진 인간. 그는 인간의 합리적 이성을 해방하고 본능적인이고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허용하는 사람이다. 그는 인간의 음성보다 인간의 소리를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다. 아이를 잃고 슬퍼하는 부모의 절규를 듣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오늘날 서로에게 무관심해진 이 사회에서 꼭 필요한 사람일 것이다.
사랑의 형식 중 하나인 필리아. 필리아는 성찰보다는 반사에 가깝다. 친한 사람을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계산을 넘어 미소부터 짓는 것, 대가를 바라지 않고 타인의 존재만으로 기쁨을 느끼는 것, 현존 자체를 기뻐하는 사랑이다. 개인주의가 익숙해지는 현대사회에서 사라지고 있는 필리아적 사랑. 사랑은 계산하고 안전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기뻐하는 것이다.
위험 없는 사랑을 당신에게. [세계를 짓는 기예 사랑 5강 -(3) 2에서 3페이지 중] 사랑에 빠지지 않고서도 우리는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공통된 취향이 사랑이며, 사랑이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서 저들의 삶에 그 밀도와 의미마저 부여하는 것이라고 확신하는 제 입장에서 볼 때, 위험이 부재하는 체제에서 존재에 부여하는 이런 증여는 결코 사랑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안전한 사람만을 사랑한다는 것은 위험이 오직 타자들에게서만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타인이라는 존재를 포기하는 것, 열정을 절약하면서 쾌락으로 채워진 즐거운 성적 타협을 우리가 소유할 수 있다는 논리, 안전과 안락에 대항하여 위험과 모험을 다시 창안해야 합니다. 사랑의 경험은 일종의 도약입니다. 서로의 이익만을 챙길 단순한 교환처럼 인식되지 않으며, 미리 수익성을 기대하고 진행하는 투자처럼 장기간 계속 견디는 것도 아니므로 사랑은 우연으로 인해 발생되는 믿음입니다. 결국은 주체가 자기 자신을 넘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나르시즘을 넘어서는 게 바로 사랑 안에서입니다. 사랑은 타자 존재 자체, 단절되고 재구성된 자신의 인생에서 자신의 존재로 완전히 무장하고서 불쑥 솟아난 타자 그 자체와 관련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시련을 받아들이고 지속될 것을 약속합니다. 우연 속에서 시작된 만남을 지속성과 끈덕짐, 약속, 충실성을 통해 우연을 고정시키고 운명에 이르는 것이 사랑입니다. 당신에게 하나의 가능성처럼 주어지지 않았던 무엇을 존재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어떤 불가능성을 극복하고 둘이 등장하는 무대를 만드는 것입니다.
+) 타자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타자성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 이후부터는 타자성이 없다고 생각하고 무시하고 살면 안 된다.
강연을 마치며... 강연 도중 사람들과 사랑에 대해 토론해볼 시간이 있었다. 우리는 사랑을 이런 강연과 이론으로 배워야하게 되었을까에 대해 고민해 보게 되었다. 사랑은 우리의 삶과 공동체 안에서 자연스럽게 알아가는 것일 텐데 경쟁이 과열되고 개인의 삶이 고단해지면서 사랑이란 하나의 이상을 가리키는 우리와 거리가 먼말이 되어버렸다. 강의에 온 사람들도 사랑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현재의 사회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온 것일지 모른다. 우리는 우리가 강연에서 배운 사랑에 대한 이론과 지식을 삶에 어떻게 적용시킬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경쟁이 치열해지는 사회 속에서 사랑이 가능한지에 대해 토론헀다. 물론 명확한 결론은 나지 않았지만 각자의 삶을 되돌아보며 사랑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공유할 기회를 얻었다. 우리는 이 강연을 통해 사랑의 면모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고 자신이 살고 있는 삶과 사회를 되돌아 볼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삶과 가치관에 다시 한번 확신을 가지고 강의실을 나갈 것이고 어떤 사람은 사랑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터덜터덜 발을 옮길 것이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 없다. 문제를 인지하면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분명 어려울 것이다. 관성적으로 살고 있는 삶에 변화를 주는 건 사랑에 대한 지식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보고 들은 강연의 내용에 대한 고민은 의식적이든 아니든 삶을 사는데 내려야 하는 크고 작은 선택들에 영향을 줄 것이다. 위험을 감수하고, 인정을 베풀며, 개인에서 나아가 타인으로, 타인에서 나아가 사회로, 사랑을 하는 일은 쉽진 않겠지만 우리가 배운 사랑의 다양한 면모와 올바른 방법이이 존재한다는 걸 안 이상 우리는 사랑을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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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형의 ‘경제 토크’ - 알아두면 삶이 바뀌는 경제지식 | [후기] 3/27(화) 주진형의 '경제 토크' 4강 <연금> _ 가난한 노인이 넘치는 나라 | 개똥이 | 2018.4.8 | |
3월 27일, 주진형 선생님의 네 번째 경제학 특강이 시작되었다. 4주차 강의의 주제는 <연금>이었다. 주진형 선생님의 이야기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국민연금 제도는 잘못된 설계로 인해 많은 오해가 생기고 구조적인 문제가 심화되고 있었다.
1. 국민연금제도에 대한 한국인들의 흔한 오해
대한민국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국민연금에 가입이 되어있고 매달 소득분위에 따른 금액을 납부하면서 나중에 노후를 대비할 수 있는 보험이 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그러한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 말씀하신다. 원래 국민연금이라는 제도의 목적은 서민들에게 노후 대책을 마련해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생산 활동을 하지 않게 된 노인들이 경제적 빈곤에 처하지 않도록 일정 금액을 통해 생활을 지원해주는 제도라는 것이다.
또한 직장인들이 현재의 내가 열심히 벌어서 낸 돈을 나중에 노인이 되어 돌려받는 것이 ‘국민연금’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 또한 큰 착각이라고 하셨다. 첫째, 애초에 내가 낸 돈보다 더 많이 받게 되어 있고, 둘째, ‘내 돈을 내가 돌려받는’ 개념이 아니라 ‘현 세대의 생산인구가 내는 세금으로 비생산인구(노인)를 부양’하는 것으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국민연금 제도는 도입 시기에 정책에 대한 이해와 설명이 국민들에게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채 설계되었기 때문에 많은 오해를 불러 일으켰고 이제는 그것이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제도의 잘못된 설계는 공적연금기금의 운용 측면에서도 그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한국은 공적연금을 위해 거대한 기금을 조성해놓은 상태인데, 문제는 돈을 쌓아만 두고 제대로 쓰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공적연금의 운용방식에는 가입자에게 지급해야할 돈을 100% 적립해놓는 완전적립방식, 가입자에게 지급해야 할 돈의 일부만 적립된 경우로 “거대한 기금을 가진 부과방식”인 부분적립방식, 가입자에게 지급해야 할 돈이 전혀 적립되지 않은 채 기금 없이 노인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완전부과방식이 있다. 완전적립방식은 칠레가 유일한 사례이며 한국과 미국, 일본 등 5개국이 부분적립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밖에 독일 등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완전부과방식에 해당된다. 즉 대부분의 나라가 돈을 쌓아두지 않고 그때그때 걷은 세금으로 노인인구를 부양하고 있다.
2. 풍요 속의 빈곤 – 노인빈곤율과 세대 착취론의 덫
2011년 기준으로 대한민국 전체인구의 빈곤율은 약 15%였으며 그 중에서도 노인계층의 빈곤율은 45%로 OECD 평균 노인 빈곤율(13.3%)을 3배 이상 웃돌고 있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한국은 부분적립방식을 통해 거대한 공적연금기금을 조성하고 있음에도, 이 돈을 노인빈곤 해결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있다. 어마어마한 기금을 쌓아두고 제대로 쓰지를 않으니 노인 빈곤을 해결하지 못해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대한민국의 2010년 GDP 대비 공적연금 지출액은 0.9%에 불과했다. 2050년에는 9.8% 정도를 지출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는데, 이는 이미 일본이 2010년에 지출한 비율(9.7%)과 같다. 꾸준히 지급 비율을 늘려온 결과 일본의 2011년 노인 빈곤율은 한국의 절반 정도 수준에 머물렀다. 문제는 2050년에 일본과 한국의 노인 인구비율이 각각 39.6%, 38.2%로 거의 같아질 전망이라는 것이다. 훨씬 먼저 고령화 시대를 맞이한 일본을 대한민국이 빠르게 추격하고 있음에도, 공적연금의 지출 측면에서 인구 구조의 변화를 반영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심각한 노인 빈곤 사회에서도 연금 지급율을 높이지 않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저부담 저복지 기조의 제도 내에서 내가 내는 세금이 비생산인구를 부양하는 데에 지출되어야 한다는 개념을 내면적으로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앞에서 밝혔듯이 대다수의 국민들이 연금을 자기가 낸 돈을 다시 돌려받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고, 노후대책으로 여긴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이는 모든 문제를 개인의 차원으로 전환시키는 것으로, 세금을 내는 생산인구(부양의무를 진 사람들)와 비생산인구(부양 받는 사람들, 즉 노인) 간에 빈곤으로부터의 보호와 상생이라는 연대감이 형성되지 못한 결과이다.
또한 그 결과는 노인이 젊은이들을 착취한다는 세대 착취론으로 발전했다. 주진형 선생님께서는 참여정부 시절 유시민 복지부장관마저도 이러한 세대 착취론에 속아 국민연금의 소득 대체율을 낮추는 데 일조했다며 ‘유시민의 저주’라고 표현하셨다. 또 한국은 특이하게도 공적연금 기금이 고갈될 것을 쓸데없이 크게 두려워하고 있다고 비판하셨다. 실제로 세대 착취론과 기금 고갈에 대한 두려움이 맞물리면서 2007년 유시민 장관이 소득 대체율을 낮추는 연금개혁을 단행한 이후, 기금 고갈 예정 시기는 2060년으로 예정(2047년)보다 13년가량 늦춰졌지만 노인 빈곤율은 급등했다.
3. 국민연금,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복지 수준이 저조하니 노인 빈곤율이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인 국가가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중요한 것은 소득 대체율이나 기금 고갈 따위가 아니라 당장의 노인 빈곤 해결이라고 말씀하셨다. 여러 관료들이나 정책 담당자들은 다들 기금이 고갈되고 나면 큰일이 날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미 연금 기금이 고갈된 나라들이 다수 존재하고 있으며 잘만 살고 있다는 것이다. 독일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애초에 우리는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을 절대 막을 수 없다. 아직 생산인구에 속해 있는 베이비부머 세대까지 비생산인구로 전환되면 대한민국은 순식간에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게 된다.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40%를 차지하게 되면 공적연금 기금의 고갈은 언제가 되었든 대한민국 정부가 반드시 맞닥뜨리게 될 현실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은 기금 고갈을 늦추기 위해 노인 빈곤을 방치하고 기초연금 지급율이나 국민연금의 소득 대체율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인구 구조에 맞춰 납부율, 즉 세금을 늘리는 것이 우선 아닐까?
이 문제에 발언권이 있는 이들 대다수가 당장 자기 일이 아니기 때문에 깊게 관여하지 않는다. 교수들은 사학연금, 관료들은 공무원 연금이 있다. 그들에게 상대적으로 낮은 금액인 국민연금은 사실상 기초연금 버전2에 불과하니 국민들을 설득하여 납부율을 높이는 것보다 고육지책으로 지급율을 낮추는 데에 더 큰 동기를 가지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회보장제도에 익숙하지 않은 국민들에게 증세하자고 설득하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의 인구 구조 변화에 따른 복지 국가로의 이행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다.
우리는 원래 우리가 연금제도를 만들었던 이유를 다시 고민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노인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GDP대비 기초노령연금 지출의 비율을 늘리고, 국민연금의 소득 대체율 또한 높여야 한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 근본적으로는 납부율을 올려야 한다. 세대 간 상생과 연대의 구조를 정착시키고 그러한 돌봄의 문화가 당연해지기 위해서는 ‘내가 낸 돈, 내가 돌려받는다.’는 개인적 차원에서 ‘내가 제공한 부양 서비스, 나도 돌려받는다.’는 공동체적 차원으로 사고방식을 전환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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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짓는 기예, 사랑 | 세계를 짓는 기예 (엄기호 선생님) 4강 후기 | 미요이 | 2018.4.2 | |
나는 평생을 여자로서 살아왔다. 하지만 오늘 강의를 들으면서, 정말 그러한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남성성’이라는 것이 근대의 산물인 것처럼, 오늘날의 ‘여성성’ 또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근대 이후의 남성성의 이미지는 성인, 자유인, 의지대로 살아가는 사람 등으로 재현되며, 무엇보다 힘을 타자(대상)에게 가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여성의 이미지와 확연히 구별된다. 남성들은 도덕적 감성을 가지고 사회와 공익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사람들이고, 그렇기 때문에 시민권과 자유 또한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남성의 범주에 들지 못한 사람들은 마찬가지의 이유로 배척과 차별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들은 여성, 장애인, 동성애자, 그리고 (유대인으로 대표되는)이방인들이었다. 특히 이방인들은 가장 오랜 기간 동안 혹독한 차별을 견뎌내야 했는데, ‘뿌리’, ‘땅’이 없는 민족은 정치공동체를 가질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언제든 국가를 배반할 수 있다는 통념이 그 주된 이유였다. 남성성을 이야기할 때 나 자신에 대한 성찰을 피해갈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생물학적으로는 여자이지만 남성적 가치들을 내면화한 나는 결코 완전한 여성성을 대표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남성성에 대한 문제는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하는 주제이고, 어느 성별 집단에 대한 맹목적 비난이나 조롱으로 이어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에 분명히 존재하는 성별 간 위계구조가 문제화되어야 한다는 점은 여전히 중요한데, 이는 견고한 동성사회집단에 대한 문제제기이기도 하다. 기쁨을 주고받는 관계가 연인관계를 제외하고는 동성관계에서밖에 없는 Homo-erotic한 문화, 그리고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만 어울리는 Homo-social한 문화가 만연한 한국 사회 전반의 비공식영역은 동성집단화 되어 있다. 지혜의 전승이 일어나는 비공식영역에서의 경험이 차별적으로 행해지면서 성별 차이는 실질적 능력과 기회의 차이로 이어진다. 엄기호 선생님은 한국에서 동성 간의 성적 관계가 금기시 되는 이유는 이러한 동성집단 중심의 연대가 위기를 맞이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는데, 나는 이를 거꾸로 되짚어 ‘동성애에 개방된 사회일수록 동성집단의 엄격한 분리가 옅어질 것이다’라고 해석해보았다. 엄기호 선생님은 또한 ‘비장미’를 잃어버린 일베의 남학생들의 대화를 관찰함으로써 오늘날 청년들에게 ‘무기 없는 아들들’이라는 이름을 붙인 배경을 설명하였다. 부친을 살해함으로써 이룩했던 청년세대들의 정당성, 그리고 정치적 진보가 오늘날에도 가능한 것인가? 사회에 대한 주도권을 젊은 세대들로부터 빼앗기거나 그들에게 스스로 넘겨지는 아버지의 역할을 지금의 아버지 세대(386세대)는 이행하고 있는가? 베트남전 참가와 해외노동자 파견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열악한 공장에서 모진 노동을 감내해야 했던 ‘태극기 세대’들은 어쩌면 한국 역사상 최초로 아버지의 역할을 다 했던 세대일 것이고, 5.18 이후 87년 6월 항쟁으로 이들을 물러나게 한 현재의 아버지 세대는 일종의 ‘살부(殺父)’를 행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아직까지도 건재하다는 것이며, 정치적 정당성과 경제적 능력, 사회적 지위, 수적 강세 모두를 손안에 쥐고 있다는 사실인 것이다. 한국의 청년인구는 기득권을 가진 부모님의 자식들과 그렇지 못한 부모님의 자식들로 분화되어 있다. 물론 그 스펙트럼은 다양하겠지만, 굳이 ‘살부(殺父)’를 행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끼는 청년들의 목소리는 이전보다 작을 수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와 잇따른 사회적 재난들 이후, 자신들의 생존과 안녕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분명 높아졌다. 그러나 그 목소리가 과연 청년의 언어와 서사로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이다. 청년들에게는 좀 더 많은 공통의 공간과 시간과 경험, 그리고 이것들의 총체인 사회가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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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형의 ‘경제 토크’ - 알아두면 삶이 바뀌는 경제지식 | [후기] 3/20(화) 주진형의 '경제 토크' 3강 _ 우리가 낸 세금, 우리에게 써야 | 개똥이 | 2018.3.26 | |
3월 20일, 주진형 선생님의 세 번째 경제학 특강이 시작되었다. 3주차 강의의 주제는 <조세와 지방자치>였는데, 조세에 대한 강의가 주를 이루었다. 주진형 선생님의 이야기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조세제도는 ‘적게 내고 적게 받는 형태’이며, 대한민국은 그래서 ‘부자일수록 살기 좋은 나라’로 특징지을 수 있다. 낮은 조세부담률과 낮은 사회보장제도 관련 지출의 정도가 그러한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 미국, 일본형 조세제도 - 소득세가 왜 이리도 적을까?
1. 낮은 조세부담률, 세제 개편이 시급하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함께 미국형 조세제도를 따오면서 약 20% 정도의 낮은 GDP 대비 조세부담률을 갖게 되었는데, 그중에서도 한국은 아주 독특하게 누진세율이 ‘실질적으로’ 높지 않은 나라이다. 이상한 점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았을 때 대한민국의 세율이 그리 낮은 것이 아님에도 세금의 대상에서 빠지는 소득이 많다보니 소득세의 총량이 줄어든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부동산 임대소득, 주식판매 등에 의한 소득, 양도소득 등 소득 중에서 세금 대상이 아닌 것이 많고, 지난 20년간 세제가 거의 바뀌지 않아 그 구조적 문제가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고 한다. 선생님께서는 그러한 소득의 대부분이 돈 많은 사람들이 얻는 소득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조세를 제대로 매겨야만 실효적인 세제개편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 한국의 열악한 사회보장제도 - 증세를 이야기 하지 않는 사람들
2. 낮은 국민부담률, 복지 혜택을 늘려야한다.
국민부담률은 조세 외에 사회보장으로 내는 건강보험료, 국민연금보험료 등을 포함시킨 것으로, 실질적으로 한 국가의 사회보장제도가 얼마나 탄탄한지를 평가할 수 있는 지표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조세제도의 문제점은 앞서 언급한 낮은 조세부담률과 함께 낮은 국민부담률, 즉 빈약한 사회보장제도로 인한 복지 혜택의 부재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이었다. 애초에 대한민국은 빈곤을 벗어나기 급급했던 시절, 조세와 예산을 국가경제의 성장에 대부분 활용해왔기 때문에 관료들과 정치엘리트들이 복지정책에 대해 깊이 고민하기 어려웠다. 그러한 관행이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고 복지정책과 여러 사회보장제도들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도 비교적 얼마 되지 않았을 뿐더러, 심지어 일반 국민들도 증세를 통한 사회복지 확대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경우가 많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사회보장 복지예산은 약 18%로 OECD 평균인 36%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특히 아동수당 등 사회보장을 위한 현금지급비율이 매우 낮기 때문에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출산할 경우 얻게 되는 경제적 이익(사회보장정도)이 전무하다시피 하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은 젊은이들이 굳이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봤자 좋을 게 없는 나라인 것이다. 관련제도가 이토록 빈약하고 조세제도가 분배적 기능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데, 가진 것 없는 청년들에게 과연 결혼하라고, 출산하라고, 노오력을 하라고 강요할 수 있을까? 선생님은 우리나라와 소득세 비율이 비슷하지만 사회보장제도를 점차 늘려나가면서 고령화를 대비해온 일본의 사례를 들면서, 결국 한국도 일본의 모습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 ‘나의 혜택’에 관심을 갖지 않는 국민들 - 법인세보다는 재산세부터
3. 조세제도,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주진형 선생님께서는 평소에 꾸준히 세금을 내오던 사람들도 막상 대한민국의 조세제도와 복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점을 언급하셨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다. 20대 청년이고 앞으로 사회에 진출하여 생활을 꾸려나갈 나조차도 인생을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국가와 정부로부터 어떠한 사회보장혜택들을 받아오고 있었는지, 앞으로 받게 될 혜택들이 무엇인지 깊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오랜 시간동안 각자 벌어서 각자의 씀씀이에 따라 아등바등 살아가는 각자도생의 삶을 살아오고 있었다. 사회로부터 내게 필요한 혜택과 권리를 보장받을 것이라는, 내가 세금을 낸 만큼 내 삶의 편의와 복지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 자체가 성립되지 않은 상태인 것이다. 이제는 차라리 ‘워낙 소득세를 적게 내니까 세금으로 뭘 하는지 관심이 없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면서 선생님은 웃으셨다. 물론 애초에 내는 게 적으니 받을 것이 적은 것은 당연하다. 다만 조금씩 바꾸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소득세를 점점 늘리고, 사회보장기금의 비율도 더욱 늘려야 한다. 누진세율이 실효적으로 반영되도록 세제를 꼼꼼히 다시 짜야 한다.
문제는 정치인들 그 누구도 조세에 대해 명확하게 얘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증세는 다수의 국민들이 부정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전반적인 증세를 통해 복지 확대를 실현하자는 여론을 형성하기를 꺼려하는 것이다. 그렇게 20여 년이 흘러왔고 암묵적인 계급이익의 반영은 현 제도를 공고히 해왔다. 부자일수록 이득을 보는 구조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국민들을 설득하고 논의를 통해 개혁을 이루어내는 데에는 당연히 시간이 걸리고 적지 않은 비용이 치러질 것이다. 그러나 다소 시행착오가 있고 느리더라도 조세제도의 개혁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국민들이 국가와 사회의 보호능력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 법인세에 대한 주진형 선생님의 생각 : 법인세보다는 재산세부터 우선 해결해야 한다. 방안의 코끼리부터 치워야하는데 바깥에 돌아다니는 쥐를 잡으려 하다보면 이도저도 해결하지 못한다. 법인세는 기업들이 어떻게든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하도록 만들어 실질적인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자. 또 법인세가 높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다. 영업이익은 결국 배당이나 기업의 투자로 돌아갈 텐데 이는 소득세나 재산세, 차익세 등을 통해서 충분히 거두어들일 수 있는 부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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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짓는 기예, 사랑 | 세계를 짓는 기예 (엄기호 선생님) 2강 후기 | 미요이 | 2018.3.20 | |
엄기호 선생님 강좌 (제 2강: 사랑, 세상을 짓는 기예) 후기
전미영 (참여연대 자원활동가)
근대 초기의 혼인은 개인의 선택 이라기 보다는 도덕적, 법적 질서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근대 후기에 해당하는 오늘날, 결혼은 ‘선택의 일대기’적 성격을 띠게 되었으며 우리는 선택하는 개인으로서 강박과 자유를 동시에 안고 살아간다. 배우자를 찾는 과정에서 우리는 상대뿐 아니라 스스로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자문하고 성찰한다. 이 결혼이 과연 최선이 될 수 있을지, 내가 잃게 되는 것은 없는지를 따져보며 때로는 결혼으로 인해 누리지 못할 미래 어느 것들에 대해서 이른 후회를 하기도 하는 것이다.
엄기호 선생님은 이를 ‘미리 앞당긴 실망’이라 표현하며, 사랑을 시작하는 동시에 실망할 준비되어 있는 청년들의 일면에 대해 설명하였다. 청년세대가 중요시 하는 ‘등가성의 원리’에 충실하면서도 아프지 않은, 또한 합리적인 사랑은 기존의 ‘에로틱’한 사랑과는 분명 결이 다르며, 이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새로운 관계의 방식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결혼에 대한 인식 또한 달라지고 있다. 결혼 이후 자신이 개인, 주체적 인간으로서 살 수 없다는 두려움이 있을 때, 과거의 여성들은 희망을 버렸지만, 오늘날 여성들은 결혼을 버린다.
그렇다면 지속 가능한 사랑은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까? 서로의 타자성을 존중하면서 상호 호혜적 돌봄을 오래도록 주고 받을 수 있는 동등한 관계는 실제로 가능한 것인가? 엄기호 선생님에 따르면 열정이 ‘다르게’ 코드화 되어야 한다. 사랑하는 존재로서의 남자, 사랑받은 이후 돌봄의 역할을 다 해야 하는 여자라는 기존의 코드는 연애기간동안의 짧은 남자의 구애 이후 장기간의 여성의 일방적 사랑/돌봄을 요구하는 불평등한 코드였기 때문에 그 열정이 지속되기 어려웠다. 남/녀 역할이 아니라 서로가 다 해야 하는 것으로서의 사랑의 코드를 우리는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자신을 내적으로 확장, 강화시키며 끊임없이 과거와는 다른 ‘차이’들을 만들어내고, 그 차이들 속에서 나 다움을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 즉, 성장하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이와 동시에 관계 안에서 스스로를 계속적으로 드러내는 용기를 내야 한다. 진실한 드러냄은 사랑하는 관계 속에서만 적절하고 또한 가능하다. 나의 존재감을 인정 받고 또 상대의 존재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여전히 서로에게 타자로, 그러나 매우 친밀하고 진실한 태도로 사랑할 수 있다.
<단속사회>에서 엄기호 선생님은 듀이를 인용하며 성장이란 자기 삶을 연속적으로 흐르는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려는 의지와 그것이 의미 있고 가능할 때에만 이루어진다고 했다. 사랑한다는 것은 나의 서사를 넘어 ‘우리’의 서사를 함께 만들어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 나는 파트너 관계를 넘어선 사회 공간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랑이 실현되어야 한다고 믿는다.이에 대한 고민은 앞으로의 강의들을 통해 이어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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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형의 ‘경제 토크’ - 알아두면 삶이 바뀌는 경제지식 | [후기] 3/13(화) 주진형의 ‘경제 토크’ 2강_ 어렵고도 불안한 이것 '금융' | 개똥이 | 2018.3.17 | |
오늘 주진형 선생님의 강연 주제는 금융이었다. 먼저 현재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현황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보통 금융권과 달리 자기자본금의 비율이 대략 8% 정도 밖에 안 된다고 하셨고 매우 큰 대마불사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고 하셨다. 또한 정부의 압박(관치금융)으로 인해 은행이 수익을 많이 못 낸다고 하셨다.
그리고 금융은 기본적으로 신뢰로 움직인다고 하셨다. 금융의 발전을 위해서는 사회적 신뢰, 공정한 감독과 법 집행 그리고 사회적 상벌제도가 필수적이라 하셨다. 이를 금융기업이 윤리 신뢰경영, 위험 경영 그리고 인재 경영에 신경 써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금융기업은 본인의 이익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이익을 윤리적으로 신경 써야 하고 인위적인 대마불사의 경영은 경계해야 하며 인재를 뽑을 때는 경영진의 우수 인재를 알아보고 지휘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 모든 게 문제를 갖고 있다고 하셨다. 금융산업 고유의 특성을 고려한 경영체제 구축에 실패했으며 고객의 신뢰는 상실했고 전문성보다는 내부 충성도를 중요시해 인재양성에 등한시하였다. 또한, 기업은 단기 실적 위주의 경영으로 대규모 부실 발생과 장기 성장 기반이 훼손되어 그 후유증으로 불건전한 기업문화가 유지됐다고 하셨다.
결국 금융산업의 기본에 충실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셨다. 금융산업은 우수 인력 선발과 이직률이 높지만, 체계적인 내부 교육 프로그램을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하고 잠재적 리스크나 나쁜 소식을 숨기지 않는 내부 고발, 윤리 중심 경영이 이루어져서 적정 규모의 기업 유지가 필요한 것이다. 이를 위해 투명성과 공정한 법 집행, 사회적 권력 견제 장치 운영 그리고 투명하고 독립적인 금융 감독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하지만 주진형 선생님은 결국 사회 수준의 발전이 있어야 금융산업 발전으로 이어진다고 강조하셨다. 왜냐하면, 금융산업은 사회 수준에서 잘해봐야 한 발짝 정도만 앞설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여러 가지 구조적인 문제들 지금까지 부동산 값이 내려가는 걸 감내하지 못하고 이자비용을 이익으로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들도 유지한 즉 경제규모가 줄어드는 내수 구조조정을 감내하지 못했기에 20년 동안 가계대출은 계속 커지고 소비는 줄어 기업 간의 격차, 빈부격차는 점점 더 심해지지만 공공부문은 계속 거대해지는 현상과 금융산업의 문제점이 지속한 것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많은 국민들이 이 문제점을 인지하고 금융개혁에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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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짓는 기예, 사랑 | 엄기호 사회학자 '세계를 짓는 기예, 사랑' 1강 _ 사랑, 존중을 말하다 후기 | 개똥이 | 2018.3.12 | |
엄기호 사회학자는 성장이 불가능한 시대의 페다고지를 만드는 것을 삶의 화두로 삼고 있다. ‘교육공동체 벗’에서 발간하는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을 하고 있다. 그의 강연 ‘세상을 짓는 기예, 사랑’에는 30명 남짓한 사람이 와 강의실을 채웠다. 모두 그의 강연에 관심을 갖고 모인 사람들이었다.
# 제 1강 : 사랑, 존중을 꿈꾸다 강연 이름은 ‘세상을 짓는 기예, 사랑’ 이다. 기예는 예술로 승화될 정도로 갈고닦은 기술이나 재주를 뜻한다. 풀어서 얘기하면 세상을 짓는 사랑의 기술을 의미한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사랑의 기술은 무엇인가? 사랑의 특별한 기술이 있단 말인가? 엄기호 사회학자는 첫 수업에 존중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사랑에 대해서 설명했다.
#사랑은 평등을 전제한다. 먼저 사랑은 평등이 전제한다. 인간 대 인간으로 동등한 위치에 있어야지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노예와 주인 사이에서 개인적인 우정이 존재할지는 몰라도 서로를 사랑하기까지 나아갈 수 없다. 공적인 자리에서 주인은 노예에게 맞는 대우를, 주인은 노예에게 맞는 대우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를 존중해주는 것이 사랑이다.
#완벽한 상호존중은 없다. 상호존중은 평등한 위치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완벽한 상호존중을 이룰 수 있는 기간은 극히 짧다. 두 사람의 관계에서 시간의 차이를 두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더 존중하고 마찬가지로 반대인 시기가 온다. 마치 시소처럼 서로의 관계가 역전된다. 존중은 역동성을 지닌다. 따라서 인간관계에서 단면적인 부분만 보고 그 관계를 판단하는 건 위험하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그 관계가 어떤 경향성을 띠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상대에 대한 소극적 존중 엄기호 사회학자는 두 가지의 존중을 말했다. 소극적 존중은 상대에 대한 무관심이다. 흔히 ‘취존합니다(취향 존중합니다)’ 라는 말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타자에 대한 관심을 거두고 타인의 취향이나 개인사에 깊이 관여하지 않는 것이다. 엄기호 사회학자는 이러한 존중이 직장에서 꼭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그곳에서는 비인격적 관계를 맺는 것이 오히려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이다. 흔히 우리 사회에서는 직장을 또 하나의 가족이라고 여기며 업무 시간이 끝난 후에도 만남을 갖고 업무 이외의 사적인 일에도 관심을 둔다. 사회에 이런 분위기를 가진 직장이 많다는 건 가족과 직장 간의 기능 분화가 덜 된 증거라고 말했다. 사적인 관심과 애정이 필요한 곳은 친밀한 관계를 수행하는 가족과 친구, 이웃들이다. 위계질서가 존재하는 회사에서 이러한 역할을 하면 애정이라는 이름의 폭력이 된다. 업무에 사적인 감정이 개입되면 업무에 차질이 생긴다. 따라서 공적인 자리에서는 익명성과 서로에 대한 적당한 무관심이 요구된다.
#상대에 대한 적극적 존중 하지만 친밀한 관계에서 이러한 무관심은 방목이다. 존중하기 때문에 무관심해질 수는 있어도 서로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관계에서 무관심이 존중이 될 수는 없다. 친밀한 관계에서는 그 사람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상대방의 인격을 아는 건 엄청난 노력을 요하는 일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그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만약 인지 작용을 멈추면 위계질서를 강요하는 일 밖에 없다. 사르트르는 말했다. ‘타자는 지옥이다.’ 타자를 아는 것은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일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진실이 아닐 수 있다고 반문해보는 일이다. 타자를 알고 사랑하는 것은 자신의 언어를 바꿀 수 있는 커다란 일이다. 사랑은 나르시즘을 극복하게 한다. 타자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존재, 내가 완전히 알 수 없는 존재라는 걸 깨달을 때 스스로 작아지고 세상에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게 있다는 걸 인정할 수 있다. 타자를 만났을 때 타자를 조심조심 다루기, 있는 그대로 두기, 물러나기 등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건 타자의 타자성을 거세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자발적 위축이 있다. 자발적 위축은 사랑에서 나오는 기쁜 위축이다. 상대방에게 여지를 주기 위해서 자신을 작게 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슬픈 위축도 있는데 이는 상대방이 먼저 우리를 포기에 이르게 하는 경우이다. 이 때는 사랑이 아니라 분명한 폭력이다.
#엄기호 사회학자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엄기호 사회학자가 생각하는 사랑은 그 사람 그 자체로 알아주는 것이다. 이 사람에게는 다른 무언가로 환원할 수 없는 그 사람만의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는 것이다. 그 사람의 무엇을 규정할 수 없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사랑하는 것이 그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에 대한 반문이나 반박 또한 그 사람에 대한 걱정과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면 괜찮다. 그 사람에게 기능을 기대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인격을 봐주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을 위해서 어떤 기능을 수행할 수 있지만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사랑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 사람에게 기능과 역할만을 기대하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인격 모독이다.
#강의를 마치며 사랑하는 자와 사랑받는 자가 분명히 존재한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는 번갈아가면서 일어난다. 하지만 자신이 사랑 받지 못했다고 자신이 사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억울함, 피해의식, 자괴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럴 때면 오히려 더 사랑하는 자가 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수 있다. 다음 시간에는 이에 대해 더 자세히 말씀해주신다 했다. 다음 강의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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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형의 ‘경제 토크’ - 알아두면 삶이 바뀌는 경제지식 | [후기] 3/6(화) 주진형의 ‘경제 토크’ 1강_ 이상한 아파트의 나라 '부동산' | 개똥이 | 2018.3.8 | |
3월 6일 ’‘주진형의 경제 토크’ 강의가 드디어 시작되었다. 이 강의는 주진형 선생님께서 쓰신 ‘경제, 알아야 바꾼다’ 라는 책을 읽어오는 걸로 하였는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강의실이 꽉 차도록 찾아주셨고 강의 이후에도 책 사인회를 방불케 할 만큼 주진형 선생님의 인기도 실감할 수 있었다.
먼저 처음에는 ‘뉴스타파 분양가 왜?’라는 동영상을 보았다. 대략적인 그 영상의 내용은 과천시에 공공택지에서 지어진 공공임대주택의 가격이 터무니없이 높게 잡힌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뉴스타파에서는 그것의 원인을 분양가 심사위원회와 LH공사의 유착 그리고 LH공사가 폭리를 취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뉴스타파는 정부가 제도와 규칙을 바로잡아야 하고 분양가 심사위원회를 투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영상을 보고 난 후 주진형 선생님은 우리에게 영상에 대해 궁금한 점에 대해 물어보고 그것을 직접 정리하셨다. 그것을 요약하면 대략
이런 점이 나왔다. 하지만 주진형 선생님은 이 질문을 정리하면서 공공택지에 공공임대주택을 짓는 것과 추첨에 따라 주택가격을 분양가 상한제도로 제공하는 것 자체에 문제점을 지적하셨다. 즉 부동산 심사위원회가 어떻든 그리고 어떤 기업이 관여하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주진형 선생님의 영상에 대한 의문을 정리하면
결국 주진형 선생님은 정부가 개인의 땅을 정부가 수용(주진형 선생님은 이것을 Eminent Domain이라고 표현하셨다.) 하여 그것을 공지로 만들고 민간에 팔아서 건물을 짓게 한 후 그것을 다시 주택 추첨과 분양가 상한제로 통제하는 이 상황 자체를 문제로 보셨다.
그리고 이것은 국가의 수용권을 통해 특정 당첨된 자들에게만 이익을 몰아주는 제도라고 설명하셨다. 즉 공공임대주택은 주택복지정책이 아니라 주택투기정책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문제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주진형 선생님은 전 세계 공공임대주택이 임대주택이라면서 주거 안정이 무주택자에게 집을 소유하게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셨다. 이 말은 정말 공감이 되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안심하고 살만한 집이 있다는 것이지 무주택자에게 집이라는 재산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정부는 원래 분양가보다 주택가격이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해 정부의 우선순위가 가격유지에만 치우치고 있다고 지적하셨다. 그래서 결국 정부는 부동산에 개입하지 말고 민간 업체의 공공임대주택 제공을 위한 인센티브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하셨다. 즉 중앙정부가 아닌 시의회가 공공임대주택을 얼마나 제공할지 정하고 민간이 스스로 지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도가 낫다는 것이다.
그 이후의 질의 시간에도 다양한 질문이 나왔는데 주진형 선생님은 그것에 답하면서도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부동산세 인상, 후분양제도 도입 등 각종 제도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 거라고 보셨다. 결국, 우리나라 빈부격차의 큰 틀은 원청과 하청문제 그리고 부동산이라고 말씀하셨다.
주진형 선생님의 강연을 들으면서 새로운 것들을 정말 많이 배울 수 있었다. 특히 부동산 문제의 해답이 규제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중요한것은 아파트 가격 그 자체가 아니다. 우리는 비싸지 않은 아파트의 공급, 우리나라의 높은 가계부채 그리고 우리에게 집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작성_이원희 자원활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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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강 <한국사회 분석, 희망을 찾아서> |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 신년특강 「한국사회 분석, 희망을 찾아서」- 희망 근육을 키우는 삶의 힘 편 | 개똥이 | 2018.1.20 | |
1월 16일 진행된 두 번째 강의는 김진숙 최고위원님의 ‘희망 근육을 키우는 삶의 힘’이란 강의입니다. 김진숙 의원님은 20여 년을 노동운동가로 활동하셨으며 본인의 삶과 투쟁을 담은 ‘소금꽃나무’의 저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2011년 1월 6일부터 2011년 11월 10일까지 309일간의 고공 농성 끝에 노사합의를 끌어내 사회에 큰 울림을 주셨습니다.
1월 9일 날 김동춘 교수님의 강의 시작은 영화 ‘1987’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16일 강의 또한 87년에서 강의가 시작됬습니다. 영화 1987의 스토리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한 1월부터 시작됩니다. 그 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려는 양심 있는 사람들의 노력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됩니다. 결국 진실이 밝혀지며 서울 시민들이 모여 ‘그 날이 오면’을 부르면서 장엄하게 결말을 맺습니다. 하지만 이번 강의는 87년 6월 그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7월부터 시작된 노동자 대항쟁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또한 87년 6월 항쟁 이후의 사건들은 잘 알지 못했습니다. 김진숙 의원님은 자신이 경험한 87년 노동자 대항쟁을 매우 흥미롭게 그리고 감동적이게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셨습니다.
<주요강의 내용>
주요 강의 내용은 두 가지로 이루어진다.
첫째는 김진숙 씨가 경험한 1987년 노동자 대항쟁에 대한 내용이다. 1987년 6월 항쟁은 대학생뿐만 아니라 노동자들도 많았다. 6.29일 노태우는 선언을 통해 직선제 개헌 요구를 수용한다고 발표하였고 대학생을 비롯한 대부분 사람은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이에 굴복하지 않고 완전한 개혁을 위해 남아서 싸웠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대학생들만큼 조직하여 싸우는 법을 몰랐고 그래서 각자 공장에 돌아가 노조를 만들자고 약속 후 해산하였다. 그 이후 87년 7월 노동자 대투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많은 30여 가지 요구조건 중 두발 자유화, 간부들의 폭력 행위 금지 등 인간으로서의 매우 기본적인 요구조건들이 많았다. 한진 중공업 노조도 그 당시 만들어졌다. 그 당시 한진 중공업 노동자들은 어용노조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한진 중공업의 노동자 1500여 명이 모인 후 그들은 가장 먼저 노조사무실로 이동했다. 그리고 노조 사무실을 파괴했다. 사무실의 모든 것이 분해될 정도로 부서졌다고 한다. 그리고 길을 막고 도로점거 농성을 했다. 그 당시 노동자들은 가요가 없어 군가를 불렀다고 한다. 그 이후 부산 운동장에 부산 출신 노동자 3만여 명이 결집. 함께 ‘늙은 노동자의 노래’ 불렀다. 그리고 이 사건 이후 대부분의 민주노조가 탄생하게 된다.
두 번째는 김진숙 의원 본인의 이야기이다. 그 당시 한진 중공업에는 나이 어린 여성 노동자들이 많았다. 김진숙 본인도 검정고시를 공부하기 위해 야학을 신청했는데 잘못 신청하여 노동야학을 듣게 되었다고 한다. 노동야학에서 근로기준법을 배우면서 뜨거운 감동과 분노를 동시에 느꼈다 한다. 그때는 노조위원장을 간선으로 뽑는 시대였는데 대의원 88명이 노조위원장을 뽑았다고 한다. 노조위원장이 국회의원으로 가는 길이었기 때문에 대의원 또한 매우 권력 있는 자리였다. 김진숙 씨는 대의원 선거에 출마하였고 압도적인 표 차로 대의원이 되었다. 그 당시 어용노조는 순진해서 자신의 비리를 다 기록했다. 그걸 알게 된 김진숙 씨는 돈을 다시 내놓으라며 어용노조를 찾아갔다. 비리를 저지를 의원의 집 앞에 대자보를 쓰고 머리띠를 매고 앉아 있었다고 한다. 결국, 이러한 끈질긴 싸움 끝에 돈을 다시 돌려받게 된다. 그리고 그 사건 이후 현장의 분위기는 완전히 변하였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모르는 사실들을 알게 되었고 자신들 또한 투쟁하면 자신의 정당한 몫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깨닫고 어용노조와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 86년도 26살 김진숙 씨는 얼굴에 보자기를 뒤집어쓴 채 대공분실에 끌려갔다. 그리고 대공 수사관들의 무자비한 고문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8개월 후 박종철 열사가 고문에 의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한다. 그 시대에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거나 실종되는 사건이 많았다고 한다. 박종철 열사 또한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다면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기록됐을 것이다. 91년도 박창수 열사 또한 3자 개입법 위반으로 구속되었을 당시 의문사 했다고 한다. 경찰을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백골단을 이용 영안실의 안치된 시신을 강제로 탈취하여 자살 처리하였다. 노동자들의 고난은 계속되었고 김진숙 씨 또한 2011년 고공 크레인에 올라가 309일 고공농성을 벌였고 최장시간 농성기록을 세웠다. 그 이후 408일 굴뚝 농성을 끌어낸 차광호 씨로 인해 이 기록은 깨지게 된다. 김진숙 씨는 더는 노동자들끼리 서로의 기록을 깨는 일은 없어야 하고 노동자들에게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 안전망이 구축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하면서 강의를 마쳤다.
<질의 및 답변 요약>
1. 사람들은 87년이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노동자들에게 귀 기울이지 않고 차가운 시선을 보낸다. 그 원인은?
답) 대한민국 사람들은 학생 때부터 노동에 대한 천시를 배운다. 노동 천시의 속에 자란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노동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된다. 민주정권이라 부르던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또한 노동에 대한 부정적 정책이 있었다. 정책적 변화를 통해 학교마다 노동인권 교육 등 다양한 노력이 시행되어야 한다.
2. 시민들의 부정적 시선 속에서 노동조합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답) 대기업 노동조합이 비정규직 탄압을 묵인하면서 사회적으로 지탄을 많이 받았다. 노동 천시 프레임에 갇힌 언론들의 매도 또한 거세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노동조합 위축되고 활동이 무뎌졌다. 이런 부정적 상황 속에서도 노동조합은 지속해서 운동을 진행해야 한다.
3.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연대하는 방법은?
답) 최저임금이 상승하면서 해고 또한 많아지게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노동자들이 취해야 할 가장 좋은 방법은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이다. 노동조합이 필요한 사람들이 노동조합을 거부한다. 노동조합에 가입하면 기업에 찍혀 해고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강해지지 않는 한 모두가 해고당할 수 있다. 사용자 측은 조합원은 건들지 못한다. 그것이 노동조합이 가진 힘이다.
4. 독일, 핀란드 등 서구 선진국들은 동일 노동, 동일 임금제를 하고 있는데도 해외로 공장을 이전한다거나 임금을 낮추지 못한다. 왜 우리는 불가능한가?
답) 서구 선진국들은 노동조합의 힘이 강하다. 사회적으로 노조를 자랑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 그런 나라는 임금이 높고 근무 시간은 적다. 하지만 망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의 국제적 연대 또한 중요하다. 타국의 노동자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전 세계 노동자들이 단결해야 한다.
5. 사무직도 노동운동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답) 사무직들의 조직화 필요성은 매우 크다. 정리해고는 사무직에서 많이 이루어진다. 사무직이 가입된 노동조합은 힘이 강하지만 현장만 가입된 노조는 힘이 약하다. 사무직이란 산업예비군을 기업에서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현장이 파업하면 사무직으로 대신하게 된다. 하지만 아쉽지만, 사무직의 절박성이 약하다. 사무직의 조직된 활동이 필요할 때이다.
이밖에도 직장 내 노동 인권 교육의 필요성과 인권교육의 의무화라는 좋은 제안이 있었습니다. 더 많은 질문이 나올 수 있었지만 아쉽게도 김진숙 최고 의원님이 부산으로 돌아가셔야 하므로 여기서 마치게 되었습니다. 노동자 대투쟁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현재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매우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저 또한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과거 노동자들의 힘든 삶을 경험해 보지 못했습니다. 강의를 들으면서 과거 독재 정권이 반민주적이고 반인륜적인 방법으로 노동자들을 탄압한 사실을 알고 매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 같은 젊은 세대들에게는 노동자의 삶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돌아볼 수 있는 뜻깊은 경험이었습니다. 9일 강의와는 다르게 청년 공익학교활동가 분들의 많은 참여로 인해 더욱 빛났던 것 같습니다. 87년을 영광스러운 민중의 승리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픔만 가지고 돌아가신 분들도 있습니다. 불행한 시대를 타파하기 위해 자신의 한목숨 바쳐 싸우신 고귀한 노동자들 분들께 존경을 표합니다. 하지만 87년이 30년이 지난 지금도 노조에 대한 안 좋은 시선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직도 노조가입률은 10%에 머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타 선진국처럼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것이 자랑인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나라를 만드는 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자원활동가 고범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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