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소감,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남겨주세요
강좌명 | 강좌후기 | 글쓴이 | 날짜 | |
---|---|---|---|---|
[와하학교] 일상의 ‘깨알’ 진행자 되기 | [후기]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잘하지 않아도 된다. - 문은옥 | 느티나무 | 2018.11.2 | |
<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잘하지 않아도 된다, 능숙하지 않아도 된다, 유쾌하지 않아도 된다.' ⓒ참여연대 >
당황과 부담스러움이 유쾌함과 기대로 변했다.
혼자 하는 일을 좋아한다. 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상황들이 이어지던 시기에 이 강의를 만났다.
강의소개에 나와 있는 -지금 여기 유쾌한 변화를 만들고 싶어요, 왜 이야기가 ‘산’으로 갈까, 그 다음에 뭐라고 말해야 하나, 의사 결정이 놀이가 될 수 있을까, ‘진정성’ 있는 진행이란 대체 뭐지, 업그레이드를 위한 ‘깨알’ 진행 팁- 은 내게 필요한 진행자의 스킬이었다. 나는 이 연수를 통해 진행자에게 필요한 진행 팁, 의견을 취합하는 팁 등을 습득해 유쾌하고 완벽한 진행자가 되길 바랬다. 편하게 앉아서 강사의 오래된 노하우를 쏙쏙 받아올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서클형식으로 진행되는 첫 모임이 매우 당황스러웠고, 나를 드러내지 않고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는 방식이 너무나도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당황스럽고 부담스러운 마음이 신기하고, 유쾌하고, 재밌고, 기대되는 마음으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모두가 합의한 규칙을 공유하고 그 어떤 이야기를 꺼내도 괜찮을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고 이야기가 산으로 가지 않도록 정리하며 진행을 몸으로 배워나갔다. 그렇게 6주간의 모임이 끝났다.
< 6주간 함께 공유한 우리들의 약속들. ⓒ 참여연대 >
처음 바랬던 대로 유쾌하고 완벽한 진행자가 되지는 않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던 ‘깨알 진행자’에 대한 정의가 바뀌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잘하지 않아도 된다, 능숙하지 않아도 된다, 유쾌하지 않아도 된다. 그 자리에 있던 우리 모두가 그랬듯 내 의견이 존중받음을 느끼도록, 그 모임에 계속 참여하고 싶음을 느끼도록, 자발적으로 말할 수 있도록, 나의 불편한 마음과 만족스러운 마음을 모두에게 진솔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만들어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훌륭한 진행자였다.
나는 여전히 혼자 하는 일이 좋고 앞에 나서는 것이 싫다. 그러나 나의 이런 마음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공유해도 된다는 자신감과 함께 성급하게 나 혼자 모든걸 결정하거나, 완벽하게 준비해야한다는 압박이 사라졌다. 나는 진행이 편해졌고 우리 모임 구성원들은 조금 더 친밀해졌다. 그렇게 나만의 깨알 진행스킬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기본을 다져준 진행자들의 진행자님께 감사를 표현한다. / 졸참(문은옥)님
<둘러 앉은 서클 가운데 놓여진 센터피스 ⓒ참여연대>
관련후기보기 |
||||
알쓸신집_알수록 쓸모있는 신기한 집 이야기 | [후기] 10/24 알쓸신집_알수록 쓸모있는 신기한 집 이야기 3강 (서종균 선생님) | 빛깔 | 2018.10.29 | |
오늘날 ‘공공임대주택’의 이미지는 부정적입니다. 편의시설을 분양아파트 입주자만 이용하고 임대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은 사용할 수 없도록 만들거나, ‘휴거(휴먼시아에 사는 거지)’라는 말이 아이들 사이에 퍼진지도 오래되었습니다. 임대주택이 차별의 꼬리표가 되었지만, 저렴하고 안정적인 주거가 보장되는 방법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이번 알쓸신집 세 번째 강좌는 공공임대주택의 특성과 서울시의 정책사례를 중심으로 알아보았습니다.
공공임대주택공급 유형이 바뀌고 있다!
과거 주택공급은 획일·단편적이었으며, 공급량을 중요시했습니다. 하지만 사회변화에 대응하면서 수요자 맞춤형 공급과 사회통합형 주거정책으로 전환해, 공급대상을 확대했습니다. 이는 ‘수요자 특성을 반영해 공급하고, 입주민의 삶의 질을 중요시 한다’가 전제가 됩니다. 나아가 입주민과 지역 사회의 필요에 대응하는 주거 서비스를 제공, 입주민 사회 통합과 지역사회 활성화를 추구했습니다.
공공임대주택은 건설형(SH같은 회사가 지으며, 행복주택이 대표적), 매입형(민간이 지은 걸 사서, 정부에서 분양하는데 재건축 장기전세가 해당됨) 그리고 임차형(민간이 가진 주택을 빌림, 전세임대가 이러함) 으로 나누어집니다. 최근에는 소득+자산을 보는 추세가 되어서 공공임대주택의 소득수준별 대상에 따라 신청할 수 있는 임대주택이 다릅니다. 앞에서 언급한 소득수준별 대상은 주식·부동산 등을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무엇보다 주택 유형마다 기준금액이 다르기 때문이죠.
공공임대주택 신청부터 당첨까지
공공임대주택에서 살려면 입주 신청을 해야 합니다. 대부분 1년에 한 두 번, 많게는 4번 정도 공고가 올라옵니다. SH나 LH 홈페이지에서 공고 알림 등록 서비스를 등록하면, 문자로 정보를 받을 수 있습니다. 입주자 모집공고를 확인한 후, 입주신청서를 접수하면 됩니다.
입주신청서를 작성하기전에 입주자 모집공고문을 꼼꼼히 읽어야 합니다. 글자도 많고, 복잡하고, 용어도 어렵지만, 여기에 입주 신청할 주택정보와 자격요건이 담겨져 있습니다. ‘무주택 세대구성원(세대구성원 모두 주택이 없는 사람)’, 주거전용(나만의 주거 공간 면적), 주거공용(같이 쓰는 공간의 면적, ex. 복도), 보증금 납부 등 여러가지 사항이 적혀 있습니다. 현재 공공임대주택은 부양가족, 나이, 소득, 재산, 해당지역 등의 조건이 충족되어야야 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공급대상이 청년과 신혼부부로 확대되었습니다. 청년 전세임대주택, 공공 리모델링 임대주택 등다양한 공급유형이 있습니다. 보증금을 지원하는 임차형 임대주택은 자신이 임차할 주택을 직접 찾아서 계약할 수 있습니다.
지방정부의 임대주택사업 in 서울
서울은 지방정부의 공공임대주택 사업이 활발한 곳입니다. 사회주택, 맞춤형 매입임대주택 등 공급 유형도 다양합니다. ‘역세권 2030 청년주택’은 역세권 건물주에게 건축규제를 완화해주는 조건으로 청년들에게 임대주택을 제공하는 방식입니다. 임대료는 주변시세보다 저렴합니다. 공공택지가 서울시에서 민간이 협력한 정책입니다. 문제는 역세권 지역은 임대료가 주변시세보다 약간 저렴하다고 해도 청년들이 부담하기는 비싸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서울시는 각 자치구에 주거 문제를 전문적으로 상담하는 주거복지센터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서울시 아파트 평균 7억, 내가 살 집을 내 힘으로 마련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평생을 열심히 일해도 내집을 마련하기 어렵습니다. 공공임대주택은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방안입니다. 임대주택을 반대하는 지역주의를 넘어서 집을 사는 것이 아닌 사는 곳으로 바라보고 이야기 나눠야 하지 않을까요? 지 않을까요?
작성 : 고은비 자원활동가
|
||||
[시민칼럼니스트되기] '죽이는 글쓰기, 죽여주는 이야기' | [후기] 나침반을 들고 글 여행을 떠나다 - 용신 | 느티나무 | 2018.10.24 | |
<성우로 활동 중인 이용신님. 가수로도 활동할 당시 발매한 음반을 참가자 한분 한분에게 선물해주셨어요. ⓒ 참여연대>
타임라인에서 ‘죽이는 글쓰기’를 발견했다. 스크롤 머신처럼 움직이던 나의 엄지손가락이 잠시 멈췄다. 6주간 매주 글쓰기과제가 있긴 하나 너도 무려 ‘시민 칼럼니스트’가 될 수 있다며 꼬신다. 참여연대에 후원회원으로 가입하면 자그만치 30%를 깎아 준다고 한 번 더 꼬신다. 2살, 4살 두 아들의 엄마가 평일 저녁 7시에 뭘 배우러 나간다는 건 가족의 협조 없이는 절대 불가. 엄마와 서방님께 6주간 아이들의 잠자리를 맡기고, 첫 번째 수업을 들으러 가는 월요일 저녁. 그냥 그 시간에 밖에 나왔다는 사실 만으로도 어찌나 행복한지. 어둑어둑한 도로를 달리며 배철수 아저씨의 목소리를 듣는 게 대체 얼마 만이더냐.
내게 강 같은 기쁨이 넘쳤던 첫 수업 이후 5번의 글쓰기과제를 제출했다. 무엇을 쓸까? 어떻게 쓸까? 어떤 단어를 쓸까? 를 고민하던 나에게 “왜 썼습니까?”라는 박 기자님의 질문은 이제까지 내가 글을 써오던 방식을 전면적으로 다시 돌아보게 했다. 목적을 분명히 하고 출발하자 글쓰기 여행이 점점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내비게이션이 가끔 먹통이 돼서 한 글자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멍 때리고 있을지라도 내가 가야 할 방향이 분명했다. 어떻게든 도착하겠지라는 믿음도 생겼다. 쓸데없는 짐을 내려놓아야 홀가분하게 진짜 여행을 즐길 수 있듯이, 이미 써 내려 간 글자와 문단들을 Delete와 Backspace로 가차 없이 쳐내고 나니 글은 점점 솔직해져 갔다. 보기에도 읽기에도 좋았다.
글을 써오긴 했지만, 목적지를 몰라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내가 나침반을 손에 넣은 느낌이다. 이제 동서남북만 어딘지 알아도 글쓰기 여행이 그리 막막하지는 않을 듯하다. 마지막 글쓰기과제를 다듬어서 ‘브런치’에 작가신청을 했고, 방을 하나 얻었다. 글쓰기 수업처럼 일주일에 한편 제출이라는 강력한 푸쉬는 없지만, 느릿느릿 차근차근 나만의 글쓰기 여행을 떠나보려 한다. 뒷주머니에 나침반 쏙 집어넣고. / 용신
● 연관 후기 보기 |
||||
[시민칼럼니스트되기] '죽이는 글쓰기, 죽여주는 이야기' | [후기] 나를 홀린 글쓰기 - 정효진 | 느티나무 | 2018.10.24 | |
<흑백으로 찍으니 좀 더 멋있어 보였다. ⓒ 이용신>
언제부턴가 글을 쓰고 싶었다. 회사에서 일하면서 쓰는 보고서 같은 것이 아닌 진짜 나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누군가 알면 큰일이 나는 것 마냥 몇 년을 마음속에만 혼자 품고 있었다. 그러다 최근에 ‘이렇게 살다가는 뭐 하나 이루는 것 없이 죽겠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오랫동안 마음속에만 품고 있던 글쓰기를 진짜 한 번 해봐야지 생각했다. 지금의 나의 삶에 조금이라도 변화를 주고 싶었다.
강사는 첫 번째 강의에서부터 굉장히 자극적인 이야기로 나를 홀려놓더니 마지막까지 매 시간마다 감동을 주었다. 그 과정을 통해 내가 진짜 나의 마음 속 이야기를 꺼내 글로 표현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었다.
강사가 직접 쓴 글을 읽고, 그 안의 깊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나의 주변사람들을 발견했다. 그 발견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글로 표현되었다. 이번 강의에서 좋았던 점은 강의에 함께 하는 참가자들과 글을 통해 서로의 삶을 들여다보고, 공감하고, 응원하였다는 것이다. 참가들은 각자의 삶 속에서 크고 작은 아픔, 고통, 사랑, 감사의 경험들이 있었다. 그것을 함께 나누는 과정을 통해 위로가 되고, 힘을 얻기도 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글쓰기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6주 동안의 글쓰기 경험을 통해 나의 마음이 더 편해졌고, 이런 저런 걱정과 우려로 주저하던 일을 하나씩 해볼 수 있겠다는 용기도 얻었다.
강사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생각해야 하는 것들을 본인이 직접 쓴 기사, 책, 블로그 글을 통해 알려주었다. 강사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담긴 글을 직접 읽으니 이해가 잘 되었고, 그것을 실전에서 내가 글쓰기를 할 때 적용해 볼 수 있었다. 물론 아직도 표현이 잘 안되고 부족한 점은 많지만, 말뿐인 가르침이 아니기에 실제 적용해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가 되는 것이다.
“결국은 개인이 고독하게 써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세상에 내보일 ‘용기’가 중요하다.” “고요하게 책을 읽고 고독하게 쓴다.”
강의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강사의 말이다. 교육은 끝났지만 나는 앞으로도 이 말을 실천하면 살아가고자 한다. /정효진
<이 처방책이 꼭 도움이 되기를 ⓒ 참여연대>
● 연관 후기 보기 |
||||
[시민칼럼니스트되기] '죽이는 글쓰기, 죽여주는 이야기' | [후기] 나에게 용기와 위로를 준 글쓰기 | 느티나무 | 2018.10.24 | |
<안나까레니나를 글쓰기 처방으로 선물하고 있는 박상규 기자 ⓒ 이용신>
글쓰는 기술이 아니라 글쓰기의 즐거움을 깨닫게 해주고, 글을 쓸 용기를 북돋아 주는 수업이었습니다. 부담이었던 숙제가 나중엔 고해성사하고 위로를 받는 시간같았구요. 감사했습니다! / 최은식
< 6주간 너무 수고하셨습니다.^^ ⓒ 이용신 >
세종대왕님의 용안을 뵌다면 이 백성은 당신때문에 고민이 많다며 하소연을 털어놓을 것이다. 인터넷이나 주변 동료 등 글솜씨가 뛰어난 사람이 많아 고등학교때부터 언어영역 포기자인 쇤네는 한글을 알지만 한글을 마음껏 쓰지 못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세종대왕님의 용안을 뵙기 전 박상규 기자님의 얼굴을 먼저 뵈어 요즘은 글쓰는 일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여전히 글솜씨는 형편없지만 6주간의 응원과 용기로 이렇게 후기를 쓰는 것이 증거다. 함께 수업을 듣는 분들 또한 서로의 선생님이 되어 즐거운 6주간의 시간이였다. (이제 당신이 주인공! 망설이지 말고 신청하세요.) / 박선미
<이번 글쓰기 강좌에서 가장 많은 은혜(?)를 받은 하윤쌤 ⓒ 참여연대>
‘죽기 전에 책 한권 멋지게 남기고 가야지!’ 근거 없이(?) 막연하게 이런 소망 하나쯤 있으리라 생각한다.
단순히 글을 좀 더 멋지게 잘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수업에 참여하게 되었지만! 강사님의 아프고도 슬픈 지난 얘기를 풀어주시는 걸 보고, 용기 내어 써봤던 글들이 나는 단순한 글쓰기가 아니라 치유의 시간이 되었다는 것에 대해 아직도 놀랍고 감동이다.
나와 만나는 시간, 그리고 지난 시간속의 어린 나를 위로하는 시간, 그리고 감히 용서하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글쓰기를 넘어 화해하고 내 마음을 알아갔던 시간이었음에 무한 행복하다. 글쓰기 수업은 내게 인생을 다지는 큰 계기가 되었다.
어떻게 늙으면 후회가 없을까, 고민했던 내 인생에 글쓰기 하나가 더해지면서 ‘아,, 이제 시간이 흘러 늙는다 해도 괜찮지 않을까..’ 라고 안심까지 되어지니 내 이 기쁨이 얼마큼일지 이해가 될까 모르겠다. / 김하윤
<역시 강좌는 뒤풀이 하는 맛. 참여연대 옥상에서 그리고 호질에 모여 술과 함께 삶을 나누었다. ⓒ 참여연대>
● 연관 후기 보기 |
||||
[시민칼럼니스트되기] '죽이는 글쓰기, 죽여주는 이야기' | [후기] 나를 홀린 글쓰기/ 정효진 님 | 느티나무 | 2018.10.24 | |
<이 처방책이 꼭 도움이 되기를 ⓒ 참여연대>
언제부턴가 글을 쓰고 싶었다. 회사에서 일하면서 쓰는 보고서 같은 것이 아닌 진짜 나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누군가 알면 큰일이 나는 것 마냥 몇 년을 마음속에만 혼자 품고 있었다. 그러다 최근에 ‘이렇게 살다가는 뭐 하나 이루는 것 없이 죽겠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오랫동안 마음속에만 품고 있던 글쓰기를 진짜 한 번 해봐야지 생각했다. 지금의 나의 삶에 조금이라도 변화를 주고 싶었다.
강사는 첫 번째 강의에서부터 굉장히 자극적인 이야기로 나를 홀려놓더니 마지막까지 매 시간마다 감동을 주었다. 그 과정을 통해 내가 진짜 나의 마음 속 이야기를 꺼내 글로 표현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었다.
강사가 직접 쓴 글을 읽고, 그 안의 깊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나의 주변사람들을 발견했다. 그 발견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글로 표현되었다.
이번 강의에서 좋았던 점은 강의에 함께 하는 참가자들과 글을 통해 서로의 삶을 들여다보고, 공감하고, 응원하였다는 것이다. 참가들은 각자의 삶 속에서 크고 작은 아픔, 고통, 사랑, 감사의 경험들이 있었다. 그것을 함께 나누는 과정을 통해 위로가 되고, 힘을 얻기도 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글쓰기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6주 동안의 글쓰기 경험을 통해 나의 마음이 더 편해졌고, 이런 저런 걱정과 우려로 주저하던 일을 하나씩 해볼 수 있겠다는 용기도 얻었다.
강사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생각해야 하는 것들을 본인이 직접 쓴 기사, 책, 블로그 글을 통해 알려주었다. 강사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담긴 글을 직접 읽으니 이해가 잘 되었고, 그것을 실전에서 내가 글쓰기를 할 때 적용해 볼 수 있었다. 물론 아직도 표현이 잘 안되고 부족한 점은 많지만, 말뿐인 가르침이 아니기에 실제 적용해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가 되는 것이다.
“결국은 개인이 고독하게 써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세상에 내보일 ‘용기’가 중요하다.” “고요하게 책을 읽고 고독하게 쓴다.”
강의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강사의 말이다. 교육은 끝났지만 나는 앞으로도 이 말을 실천하면 살아가고자 한다.
/정효진 님 |
||||
알쓸신집_알수록 쓸모있는 신기한 집 이야기 | [후기] 10/17 알쓸신집_알수록 쓸모있는 신기한 집 이야기 2강 (박동수 선생님) | 빛깔 | 2018.10.22 | |
서울에 올라오기 전이나 이후에 겪는 첫 난관은 집을 얻는 것입니다. 10번 가까이 이사를 하든, 한 곳에서 오랫동안 살든 계약을 맺어야 하죠. 설령 집주인을 본 적이 없어도 문제가 생기면 연락해 해결해야 하지만, 그 흐름 속에서 갈등을 겪기도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현실적인 측면에서 우리의 주거 이익을 누릴 수 있을까요? 이번 알쓸신집 두 번째 강의는 임대차계약서 작성부터 수리비용 청구에 관한 내용을 다뤘습니다.
계약은 누구와, 주택은 어떻게 확인하죠?
우리가 알다시피 계약은 임대인과 임차인(이하 세입자)이 합니다. 간혹 대리인이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위임장+인감증명+위임받는 사람의 신분증)+(집주인과 통화, 집주인 계과 송금+잔금에 임대인 참석)의 요소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건물 관리인(혹은 공인중개사)이 대리인으로 전세계약을 한다면 위임장과 인감증명서는 필수로 해야 합니다. 주택도 이와 비슷합니다. 누구와 계약을 맺는지 알아야 하듯이, 자신이 거주할 주택은 건축물대장 확인이 우선입니다. 주택이 마음에 들어서 계약을 맺을 경우, 건축물대장을 보고 설명해야 합니다. 중요한 건 위법건축물을 확인해야 합니다.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는 임대차계약서만으로도 되지만, 보증금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건축물대장을 꼭 확인해야 합니다.
보증금 놓치지 않을 거예요
건축물대장도 확인했으니, 이제 임대차계약을 맺을 차례입니다. 하지만 깡통전세로 인해 보증금 전액을 받지 못하는 예도 있습니다. 사실 ‘전세보증보험’을 드는 게 안전한 방법이지만, 아파트 위주로 받기 때문에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부분에 주의해야 할까요? 먼저 등기부 등본 갑구에 경매기입 등기, 압류와 가압류의 기재 등의 내용이 있는 경우 계약 자체를 피해야 합니다. 특히 ‘주택가격 대비 부채비율’을 눈여겨 봐야 하는데, 비율이 높은데도 입주하고 싶으면 선순위근저당설정액(등기부등본 을구에서 확인)을 보증금으로 말소 요청, 전세보증금 협상 등으로 계약을 결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세입자가 기억해야 할 점은 ‘전입신고+확정일자+실제주거’가 보증금을 보호한다는 점입니다.
거주하지만 잊어서는 안 되는 사항들
계약을 맺고 열심히 살았는데 어느새 갱신해야 할 시기가 왔습니다. 주택 임대차보호법을 적용해 2년까지 보장하지만, 계약 만기일 한 달 전까지 임대인-세입자 간의 계약해지 의사가 없으면 계약기간과 임대료가 동일한 조건으로 자동으로 연장됩니다. 즉, 묵시의 갱신으로 계약이 연장되고, 세입자가 계약해지를 원하면 의사표현 후 3개월 후에 계약해지 효력이 발생합니다. 여기서 임대인은 해지권한이 없어서 보증금을 반환해야 합니다. 다만 임대료는 조금 다릅니다. 2년 동안은 처음 계약한 임대료로 지속되지만, 2년이 끝나면 무한정으로 임대료를 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 임대인이 임대사업자로 등록한 경우, 해마다 5% 인상제한 규정을 받습니다. 반면에 세입자는 같은 주택에 4년, 8년까지 거주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거주하는 동안 입주할 때 시설물 상태를 사진 등으로 촬영하거나, 임대인의 시설관리 책임 범위 대상(ex·상하수도, 현관문)을 인지해 단서조항을 달아야 합니다.
세입자는 이 팁을 알고 가시오!
첫 번째로 임대사업자 주택을 찾는 겁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4년, 8년 등록된 주택을 찾으면, 계속 4년, 8년 거주가 되며, 연 5% 상한선 적용, 임대인은 각종 혜택을 받기 때문이죠. 다음으로 월세 세액공제 제도입니다. 최근 노동자에서 자영업자까지 범위가 확대되었는데, 전입 신고를 하면 계약만료 후 5년 이내에 신청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공인중개사에게 전자거래계약을 제안하는 겁니다. 이 제도를 통해 세입자에게 여러 혜택이 부여되지만, 전자거래계약을 하려면 임대인+세입자+공인중개사가 동의하고, 대리인은 할 수 없으며, 자기 명의의 휴대전화가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묵시적 갱신으로 임대차계약이 자동 연장이 된 상태면, 임대인 몫 중개수수료는 세입자가 부담하지 않습니다.
떠나기 전 보증금 반환은 안전하게
지금까지 임대차계약의 대상과 과정 그리고 생각해야 할 점을 되새겼습니다. 이제는 보증금을 반환받고 깔끔하게 헤어져야 할 시기가 왔습니다. 세입자는 집주인이 보증금 반환을 준비할 수 있도록 3개월 전까지 계약해지를 통보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물론 제때 반환해주는 게 제일 좋지만, 그렇지 않은 일이 일어나는 법이죠. 만일 “늦어도 언제까지 주겠다.” 식의 연락을 받았다면, 집주인 말만 믿고 다른 집과 계약하지 말고, 서로 소통하면서 상황을 수시로 확인해야 합니다.
그런데 임대차 계약이 종료 후에도 새로운 세입자가 나타나지 않을 때는 이사를 갈지 아니면 재계약을 할 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재계약을 할 경우는 주변 임대료 시세를 파악해서 기존 임대료보다 시세가 낮으면 임대료를 감면해서 계약을 체결해야 합니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이사를 가야할 경우는 임차권 등기를 신청해서 설정이 완료된 후 이사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강의를 듣기 전 테이블마다 모여서 거주하면서 겪었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계약하고 살아도 주택 내 설비를 고쳐야 해서, 연락했더니 직접 고치라고 했던 일화, 세탁기가 자주 고장 나서 자기 부담으로 고친 후에 영수증을 찍어서 임대인에게 보냈다는 등 여러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씁쓸하기도 조금은 화가 나기도 했지만, 이번에 들었던 강의를 통해 조금은 당당하게 행동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입자 인 건 사실이지만, 이 사실에 묶여서 움츠릴 필요는 없으니까요.
작성 : 고은비 자원활동가
|
||||
알쓸신집_알수록 쓸모있는 신기한 집 이야기 | [후기] 10/10 알쓸신집_알수록 쓸모있는 신기한 집 이야기 1강 (이원호 선생님) | 빛깔 | 2018.10.14 | |
모두를 위한 주거권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주거권은 사람답게 살만한 집에 살 권리(적정 주거의 권리)입니다. 축소해서 보는 경향이 있지만, 누구나 누려야 할 보편적 권리입니다. 이 권리의 핵심은 ‘집’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서, 물리적으로 드러난 주택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적, 물리적 환경이 보장되어야 주거권을 누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UN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1966)’을 비롯한 관련 권리위원회에서 ‘적절한 주거’의 구성요소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어둡기만 한 한국의 주거권 현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에서의 주거권은 그림의 떡입니다. 헌법에는 환경권 규정에 ‘주택환경’으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적정주거기준(유도주거기준)이 필요하며, 주거기본법(2015)은 한계가 명확했습니다. 또한 주택의 상품화+도시개발, 이 두 가지 요소가 주거 불평등의 원인인데, 한국 상황은 집을 가진 사람이 더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상위 10% 주택 공시지가가 하위 10%와 48배 차이(약 797조 원, 2017년)가 나는 등 주거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특히 강제철거는 ‘인권에 대한 총체적인 침해’로 국제 사회에서 못 박은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주거권 실현을 위한 과제들
최근 ‘주거와 인권을 향한 변화’ 로 사고방식을 전환하자는 운동이 형성되었습니다. 인권영향평가와 같이, 인권에 기반을 두고 개발을 권리로 재구성해 평가를 해야 할 필요가 부각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정부는 주거권 실현을 위해 의무(적절한 주거에 대하 기준, 상황에 대한 점검, 보호의 의무, 실현의 의무)를 다해야 하며, 부동산 정책에서 주거 정책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책의 주거권 실현 3대 요소(공공임대 주택 확충, 민간 임대 시장의 공적 통제, 주거복지 확충)가 이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권리로 말하기
2016년 UN 헤비타트 3차 회의에서는 ‘주거권’에서 ‘도시권’으로 확장되면서 ‘도시에 대한 권리’가 부각되었습니다. 도시에 대한 권리로서의 주거권- 임대 주택에 대한 정책 우선순위 부여, 젠트리피케이션 문제 해결 등 - 을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의 권리로 말해야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누군가는 ‘집’이라는 공간 속에서 마음 편히 쉬고, 다른 이는 재산을 늘리기 위한 상품으로 봅니다. 정말 우리가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누려야 할 권리이기에 요구하는 건 당연한 것이 아닐까요?
작성 : 고은비 자원활동가
|
||||
한국사회 이슈 따라잡기 공부모임 | [후기] 9/27 한국사회 이슈 따라잡기 공부모임 1강 : 한국 민주주의 어디로 갈 것인가?(서복경/이태호) | 개똥이 | 2018.10.3 | |
한국의 촛불시민혁명과 사회운동 및 민주주의의 방향성
“이기적인 개인이 이타적인 개인을 이기는 반면, 이타주의자의 집단은 이기주의자의 집단을 이긴다.” - 에드워드 윌슨 -
“우리는 낡은 인간성에 저항할 수 있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인간성으로 나아갈 수 있다.” - 분노한 사람들에게, 스테판 에셀 -
2016년 늦가을부터 2017년 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인용이 결정되기까지 광화문에서는 촛불집회가 열렸고, 20차에 걸쳐 1600만 명이 참여한 평화적인 대규모 집회였다. 국회에서 탄핵안이 의결되고 헌재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파면함에 따라 조기대선이 치러지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광장의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사회운동조직? 단체구성원? 하지만 이 둘 다 아니었으며, 스스로 SNS를 통해 조직한 시민들이었으며, 연령, 성별 등 시민들의 구성은 다양했고, 광장을 만남의 장소로 사용하였다. 이들은 왜 촛불을 들게 되었을까? 표면적으로 ‘이게 나라냐’ 외침에는 국정농단에 대한 분노가 있지만 세월호 사건 이후 ‘국가는 없었다’처럼 ‘국민 없는 국가’에 대한 분노가 섞여 있었던 것이다.
‘국민 없는 국가’ 는 우리나라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자살율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으며 삶의 만족도는 낮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상위10%와 대기업이 경제성장의 과실을 독점하고 있으며, 노조조직률은 낮아 교섭력을 발휘하지 못하며 따라서 노동자에게는 적절한 과실이 분배되지 못하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으며, 성별 임금격차는 OECD 국가 중 1위를 차지하여 성불평등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출산율은 낮아지며 아이를 하나 낳는 것도 기적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투표율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으며, 10년 주기로 정치적 사건이 일어났던 역사를 가지고 있어 정치세대 갈등도 심한 편이다. 상대를 절멸의 대상으로 보는 전쟁정치와 독재에 대항하기 위한 1:1구도의 승자독식 정치는 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으며, 그동안 미완성된 민주주의로 유지되어 왔던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4:4:2의 구도를 만들어 대통령이 국민들의 민심에서 먼 정책을 밀어붙이게 되는 계기를 만든다.
문제의 조짐은 곳곳에서 보이고 있었다.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후 미국에서 월가시위가 일어났다고 하지만 한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쌍용자동차 파업과 농성, 한진중공업 비정규직 해고 반대 농성, 대학생 등록금 인하 집회, 4대강 반대운동, 친환경 무상급식 운동, 한미FTA반대 시위, 용산참사, 송전탑 건설 저지 운동, 제주 해군기지 건설공사 저지 운동 등 이었다.
2012년 대선쟁점은 경제민주화와 복지가 되었고, 보수정당의 후보인 박근혜 후보가 먼저 공약을 걸고 나왔지만 집권이후에는 공안통치에 의존하여 경제민주화와 복지는 실종되었다. 이후 2013년 연말에는 “안녕하십니까?” 대자보가 붙고, 이듬해인 2014년 4월 16일에는 세월호 사건이 터졌으며, 세월호 사건의 국가구조책임을 방기했던 것을 덮기 위해 보수단체와 권력기관들이 동원되었다.
결국 대의제의 한계도 드러나게 되었고, 시민들은 복지, 국가, 정치, 정당, 사회조직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로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대안으로 촛불이 등장하게 된 것이며, 2000년대 이후 촛불시위들의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또한 우리는 2016년 늦가을부터 2017년 봄까지 이어진 촛불항쟁의 결과 박정희식 발전국가에 대한 허상도 깨닫게 되었으며, 민주주의는 저절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며 민주주의가 없이는 다른 어떤 것도 보장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세계의 행동하는 시민들의 사례를 보았을 때 행동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고, 무대와 광장의 거리에서는 다수의 공통된 요구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와 각계각층의 요구도 반영될 수 있는 장이 되었다. 무대권력에 대한 시민들의 견제와 정당정치인은 무대에 초대하지 않는 원칙이 이를 보여주며, 여성비하 발언에 대한 거부감은 미투운동으로 이어졌다.
앞으로 우리는 적폐의 청산과 특권의 해체, 연동형비례대표제와 6:3:1 여론형성과 같은 정치개혁을 통하여 민심을 반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헌법개정안 지방선거 동시투표는 실패했지만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촛불 이후의 내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는 개헌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작성 : 하원배 자원활동가
|
||||
페미니즘과 민주주의 | [후기] 9/11 페미니즘: 왜 여성들은 ‘지금’ 분노하는가? (이나영 교수님) 2강 | 개똥이 | 2018.9.18 | |
페미니즘: 왜 여성들은 ‘지금’ 분노하는가? (이나영 교수님) 2강
“조선 남성 심리는 이상하외다. 자기는 정조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앗으려고 합니다. 서양 사람들은 내가 정조 관념이 없으면 남의 정조 관념 없는 것을 이해하고 존경합니다. 남의 정조를 유린하는 이상 그 정조를 고수하도록 애호해 주는 것도 보통 인정이 아닌가.” (「이혼고백서」, 나혜석, 1934)
근대 여명기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참으로 대단하다고 느껴집니다. 두 번째 페미니즘 강의에서는 익숙하고도 반가운 이름이 등장했습니다. 약간이나마 페미니즘에 대해 스스로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제일 와 닿았던 이름, 나혜석입니다.
그녀는 여러 서구권 국가를 여행하며 문물을 익힌 후 기존의 봉건질서에 대항하고, 여권 향상을 외치는 등 사회적 운동에 앞장섰습니다. 허나 1931년 이혼한 후 사회의 냉대와 경제적 어려움으로 신경쇠약증세를 겪고 병원에 입원했고 48년에 52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그 당시 사회는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기에 그랬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헌데 “여자도 인간이외다!”라고 외쳤던 그 정신은 사후 7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위험한 정신처럼 느껴집니다. 지금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여성인권을 외치는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것들을 보면 말입니다. 강도 높은 비난은 물론이고, 현실적인 위협으로까지 다가오니까요. 그런 점에서 이번 강의가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왜 여성들은 지금 분노하는가?”라는 주제로 시작한 강의는 그런 현실에 대해 먼저 짚었습니다. 2016년 문단 내 성폭행을 고발하는 움직임으로 시작된 ‘미투(Me Too)’ 운동은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추행 폭로’를 기폭제로 삼아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닫힌 공간에서 넘어와 전 사회적 운동으로 변했고 사회적 유명인사로 퍼져 김기덕 감독, 시인 고은, 배우 조재현 등 문화계 인사를 거쳤고 안희정 충남지사 등 정치권까지 퍼져나갔습니다.
반발은 극심했습니다. 개인의 좋지 못한 경험을 용기내어 고백한 피해자들에게 돌아오는 말은 가혹했습니다. 차명진 전 자유한국당 의원은 “성 상품화와 강간, 권력에 의한 성폭력을 구분해야 한다”면서 “현재 문제가 되는 것은 성 상품화나 강간이 아니다”와 같은 알 수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소리를 하기도 했고 시인 임보 등은 미투(美鬪)라는 시를 멋진척하며 작성해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여성들은 연대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이들의 ‘페미니즘 모먼트’였던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혹자는 ‘묻지마 살인사건’이라고도 합니다만) 이후 길거리를 지나 학교에서도, 나아가 광장에서도 모였습니다. 이런 흐름은 디지털 시대라는 배경과 합해 더 빨라지고, 커졌습니다.
SNS 등을 이용해 공론장을 형성하고 토론하며 합리적 언어의 영역(남성의 언어)에서 “이름 없던 부정의(여성혐오에 대한 반발적인 언어)”를 창조했습니다. 나아가 ‘세월호 사건’이나 ‘최순실 국정농단’ 등을 겪으며 상실감과 애도를 연대로써 극복해나가는 세대인 만큼 낙태죄 폐지 집회나 위안부 수요집회 등에 참가하며 여성들의 힘은 점점 강해졌습니다.
그에 힘입어서인지, 남성들은 겁을 먹기 시작한 것처럼 보입니다. 수 년간 집단 강간, 불법 포르노 촬영 등 여성혐오 범죄를 일삼았던 ‘소라넷’이 폐지되었고, ‘운동근육’과 ‘지식 근육’으로 무장한 여성운동 덕에 제도화된 부정의나 억압의 매트릭스에 대한 반성적 비판과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사회도 이에 응답했습니다. 일부 남성들도 일어나기 시작했고, 잘못되었음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허나 성차별은 여전합니다. 온/오프라인에서 존재하는 실질적 차별은 차치하더라도 배제, 멸시, 비하, 성적 대상화는 물론 여성들의 운동과 사상에 대한 비꼼 등이 그렇습니다. 지방출신이며 남중, 남고를 나온 입장에서 엄청나게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었던 것 같습니다. 친구(지인이 더 가깝겠지만)들에게 요즘 여성 운동에 대해 긍정적인 말 한 마디만 하면 ‘메갈’, ‘꼴페미’로 몰립니다. 공감을 안할 수가 없는 대목입니다.
지표로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주로 성평등 지수라고 오인하고 있고, 그 등급을 타국과 비교하며 우리나라는 평등하다고들 외치지만, 우리나라의 성 ‘격차’ 지수는 2016년 기준으로 116위입니다. 경제, 교육, 정치 등의 분야에서 점수를 매겼을 때 말입니다. ‘남자인 게 스펙’이라는 말이 최근 국민은행이나 하나은행 등의 채용과정에서 사실로 밝혀졌고, 여성 고용 지수에서 우리나라는 M자형 후진국 곡선을 나타내며 여성들의 경력단절 문제가 사회에 만연해있음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취업문을 뚫고 취직에 성공한 여성들은 직장 내 성희롱이라는 어려움에 직면합니다. 57%나 되는 여성이 성희롱 피해를 당했고, 이해 저항하는 경우 파면, 해임, 해고, 신분 상실 등의 불이익 조치를 겪었고, 결국 72%는 회사를 그만둡니다. 먼 과거의 일도 아닙니다. 2016년, 고작 2년 전의 통계입니다.
또한 열심히 공부해 들어간 학교에서는 여성의 성상품화, 성폭행 등 여성혐오 범죄가 행해지고 있습니다. 또 수도 없이 많이 재생되는 유튜브의 여성 성 상품화 광고, 남성잡지의 헐벗은 미녀들, 포르노 사이트에 넘쳐나는 몰카 등. 특히 몰카와 같은 경우에는 여성들에게 일상적 공포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그런 범죄를 행하는 사람들(주로 남성입니다)은 폭력의 대가를 치르지 않습니다. 치러도 낮은 수준입니다.
여성들은 이에 또 분노하고 있습니다. 누가 판단자인지, 어떤 집단이 권력을 쥐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합니다. 아니, 이미 알고 있습니다. 말하기 시작한 하위주체들인 여성들은 이제 아버지의 법과 세상, 나라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민주주의를 현실화해 자신들의 일상에 심고 싶어합니다. 거대하고도 다양한 부정의와 구조적 차별, 불평등에 맞섭니다. 또 남성만이 갖고 있는 보이지 않는 특권을 해체하고자 합니다.
문제는 여성이 아니라 성평등 의식이 결여된 사회이고, 시스템이며, 호모소셜입니다. 여성들 뿐 아니라 남성들도 젠더에 따른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인식을 갖고, 1인 남성노동자 생계부양자 모델에서 벗어나려는 노력, 부당한 권력관계에 대한 반발심, 민주주의를 내 곁에 심으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됩니다.
강의를 들으며 참 부끄러웠습니다. 나름대로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이라서, 이해하고 행동해야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스스로를 구별짓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보다 많은 공부가 필요하고, 행동이 필요함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던 좋은 강의였습니다. |
||||
페미니즘과 민주주의 | [후기] 9/4 페미니즘: 투쟁과 연대의 역사 (이나영 교수님) 1강 | 개똥이 | 2018.9.10 | |
젠더는 언제나 나를 사로잡는 단어였다. 최근 한국사회에서도 페미니즘운동이 거세지면서 젠더에서 페미니즘으로 관심을 넓혀가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자칭 좌파로서, 한 명의 여성으로서, ‘나도 페미니스트다’라고 쉽게 말 할 수 없는 점이 항상 맘에 걸렸다. 아니, 초반 한국의 페미니스트 운동이 시작했을 때에는 당당히 선언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과연 내가 페미니스트가 맞는가?’라는 의문이 생겼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강의는 -‘미투 운동’과 한국의 여성운동, 서구의 여성운동 간 관계 -왜 지금 한국의 페미니즘, 페미니스트 운동이 뜨거운가? 에 대한 명확한 답까지는 알 수 없어도, 꼬여있는 생각의 실타래의 시작점을 찾아줬던 강의였다고 생각한다.
1장 한국에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대중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얼마 안됐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은 시간동안, 과연 냄비근성의 민족답게 페미니즘은 아주 넓고 깊게 우리의 사회를 파고들고 있다. 청년으로서 이런 현상을 바라보면서 과연 페미니즘이란 무엇을 추구하려하는 것인가? 남녀평등사상? 여권신장운동? 여성해방론? 아니면 더 넓은 의미의 여성주의? 라는 질문을 스스로도 하고 있었다. 그 점을 콕! 집어서 질문을 던지고, 강의를 듣는 모두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던 점 또한 좋았다.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교수님은 답이 없다고 하셨지만, 개중에 “여성을 위한 여성에 의한 정치적 행위 및 해방의 정치학”이라는 정의를 좋아하신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페미니즘이란 한마디로 정의 할 수 없다’ 이대로가 더 와 닿았다. 그리고 하나 더 깨달은 것이 있다. ‘페미니즘’은 어째서 다른 여타 이론들 보다 훨씬 더 많은 이견이 있고 논란이 있는것인가?라는 고민이 있었다. 이 강의를 통해서, 페미니즘 자체가 지역, 문화, 공간, 시대에 대한 감수성에 따라, 그리고 이 자체가 변혁의 정치학으로서 맥락적으로 변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이론 안에서도 무수히 많은 생각과 의견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2장 강의 중간부터는 ‘평등권을 위해 싸운 여성들’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가 옮겨갔다. 서양 페미니즘 운동을 이끌었던 여성들을 주로 다루었다. 그녀들은 주로 사회에 만연하는 편견체계에 따라 남녀가 다르게 교육받는 현실을 타개하고자 하였고, 변혁을 이루었다. 올랭프 드 구즈, 앙리에트 카요, 소저너 트루스, 에멀린 팽크허스트, 알렉산드라 미하일로브나 콜론타이....... 특히 여성의 공/사적 권리를 위해 투쟁했던 에멀린 팽크허스트가 한 말이 여운을 남겼다. “우리가 창문을 깨고 물건을 불태우는 건 남자들이 알아듣는 언어이기 때문이죠.” 물론 모든 이 시대에는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그 시대의 여성, 그리고 아직도 많은 곳의 여성들이 과격시위까지 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되었다.
3장 마지막으로는 <억압으로부터 해방을!>이라는 주제로 넘어갔다. 미국의 급진 페미니즘에서부터 영국의 사회주의 페미니즘까지 다뤘다. 먼저 급진 페미니즘은 여성 억압의 심오함에 대한 기록과 이를 설명하는 설득력 있는 이론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이론이다. ‘성 혁명’이라고도 불리었던 이 이론은, 여성경구용 피임약의 등장과 함께 일순 여성에게 성해방을 가져온 것 처럼 보였다. 하지만 곧 여성의 성해방은 좌파 남성들의 성해방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성해방으로 인해 빚어진 결과(예컨대 혼전 임신 등)는 성해방의 주인공인 당신(여성)이 책임질 일, 난 모르네~) 그녀들의 주요 슬로건은 다음과 같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페미니즘은 이론이고 레즈비어니즘은 실천이다! 자매애! -포르노는 이론이고 성폭력은 실천이다!
영국에서 일어났던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노동자 계급의 산업투쟁과 동일시되었다. 가부장제 안에서 여성은 노동력을 착취 당하고, 노동력을 출산하는 동시에 성적 대상이었다. 그러면서도 노동의 댓가는 모두 남성에게 돌아가는 불합리한 사회였다. 이들에게 페미니즘 운동은 그저 불편한 문제가 아니라 사활이 걸린 운동이었을 것이다.
마지막에 한국의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도 남아있었지만, 시간상의 문제로 다음시간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한국의 페미니즘 운동은 다른 나라의 어떤 페미니즘 운동과는 또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이 지역, 문화, 공간,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라서 그런게 아닐까. 세계 어디를 뒤져도 대한민국 만큼 특수한 사회모습을 띄는 곳은 드물기 때문이다.
강의를 마치면서 질문이 들어왔다. “이렇게 어려운 페미니즘을 어떻게 쉽게 공부할 수 있나요?” 교수님의 대답이 우리를 웃고울게 만들었다. “페미니즘도 이론입니다. 당연히 어렵죠. 어려워야죠.” 그리고는 오히려 반문하셨다. “왜 페미니즘은 쉬워야 하나요? 칸트나 에덤 스미스 이론은 아무리 어려워도 이론을 탓하진 않잖아요.”
그렇다. 페미니즘도 ‘ISM’, 즉 이론인 이상 간단하게 이해하려고 한 내가 오만한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페미니즘에 대해 알고 싶고, 다음 강의가 기대되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
||||
[특강] 박노자가 말하는 ‘세계 속의 North Korea’ | [후기] 7/13(금) 박노자가 말하는 세계 속의 North Korea - 2강 북한의 세계 자본주의 관계사 | 개똥이 | 2018.8.10 | |
‘북한’에 대한 잘못되거나 왜곡된 이미지가 많습니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북한 내 자본주의는 어떤 관계로 있었을까요? 박노자 선생님의 두 번째 강의는 북한의 개발모델 변화 그리고 이로 인한 우려되는 점에 대해 강의해주셨습니다.
1970년대와 적색 개발주의 북한의 개발 모델은 국내 수요에 맞춰진 균형 잡힌 각 부분의 내재·자립적 발전과 비교적 평등한 사회 건설 지향이 특징이었습니다. 이를 분명하게 드러낸 모델이 《적색 개발주의》였습니다. 중공업에 우위를 두었지만, 정밀기계 생산을 비롯한 기술 발전에 집중 투자를 했으며, 1970년대까지 북한의 1인당 총국민생산량은 산업화로 인해 꾸준한 성장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 개발 모델은 경제 영토와 대외 경쟁의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외부로의 자본이입이 정치적으로 제한된 상황이고, 더불어 남한과 군비 경쟁을 하려면? 소비억제를 할 수 밖에 없죠. 이는 생산력 저하를 시작으로 악순환이 생겼고, 위기극복을 위해 점차적으로 외국자본의 개방에서 찾으려는 선택을 했습니다.
외국 자본 유치와 함께한 1980~2000년대 1980년대로 들어오면 외국자본을 제한적으로 개방했습니다. 대외신용 상실해서 차관 도입은 어렵지, 화교 자본 및 일본·서방 자본은 중국에 투자해서 호황인 것이 시대적 상황이었으니까요. 여기서 눈여겨 볼 건 1984년에 제정한 《합영법》입니다. 간단히 말해 ‘합작회사’에 관한 법률입니다. 이러한 법 제정은 서방자본과 합작투자 가능성을 봤지만, 극도로 중앙집권화된 체제에서의 이윤 창출 및 송금의 가능성 등의 이유로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이 속에서 90년대는 중국의 경제특구(자유경제무역지대) 전략을 썼습니다. 나진-선봉 경제 무역 지대(1991)를 중심으로 특구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외국자본의 요구를 대폭 수용한 조건이었지만, 대일 수교의 실패, 핵위기로 인해 자본 유치는 되지 않았습니다. 즉, 중국과 같은 자본화는 북한에선 대외정치적 요인으로 인해 불가능하다는 것이 확실하게 알게 된 거죠. 하지만 2000년대 초반 남북한 관계가 해빙되면서 《제한된 자본화》를 단행했습니다. 이 과정 속에서 중국회사가 들어오면서 해외로부터의 자본·기술 유입은 경제 핵심 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2000년대 후반 이후엔 대외 환경이 경색되면서 중국이 대북 무역·투자국 위치에 독점으로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북한은 외국의 자본이 없으면 발전을 할 수 없는 개발 과정에 있습니다. 결국 계속 관심을 가져야 하고, 외부자본과 축적된 기술이 상호작용이 되는 지도 의문이죠. 더군다나 격차 사회의 정착, 중국 본위의 경제권 속 북한의 역할에 대한 위험성도 다분합니다. 지금까지의 북한의 자본주의 관계사를 보면서 남한은 북한에 대한 단순한 이미지에서 정밀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지금의 북한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
||||
[특강] 박노자가 말하는 ‘세계 속의 North Korea’ | [후기] 7/11(수) 박노자가 말하는 세계 속의 North korea - 1강 북한의 외교사 | 개똥이 | 2018.8.10 | |
노르웨이의 오슬로 대학의 박노자 교수님께서 ‘세계 속의 North Korea’ 라는 2부로 된 특강을 진행해주셨습니다. 올해 북한의 적극적인 외교 활동으로 인하여 북한에 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그러한 관심에 응답하시다시피 박노자 교수님께서 특강을 진행하셨고, 특강의 1부는 북한의 외교사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특강의 1부의 요점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북한의 외교사를 이해하여 북한을 소위 말하는 ‘은둔의 국가’라고 보는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매우 적극적인 외교를 지녔다는 거랑 둘째는 북한의 외교사를 이해함으로써 앞으로 북한의 행보를 이해할 틀을 마련한 거였습니다.
북한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외교적으로 고립된 나라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외교 활동이 매우 활발한 나라였습니다. 북한의 외교사를 북한 대외 수교의 연보로 요약을 할 수가 있습니다. 1940~50년대에는 소련과 중국과 같은 공산권 국가들과 대게 수교를 하며, 이를 북한 외교의 제1황금기라고 불립니다. 제2는 1960년대부터 시작하여 1970년대까지 이어져 제3세계 운동의 고조랑 겹쳐 제3세계 국가들의 독립 운동 등을 지원했습니다. 1980년대에는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하여 제3세계 지원이 줄자 외교에 침체기가 왔습니다. 1990년대에는 소련과 유고슬라비아의 붕괴로 구소련과 유고슬라비아 국가들과의 수교를 했고, 2000년대에는 유럽으로 대표되는 서방 국가들과의 수교를 하여 제3황금기를 펼쳤습니다. 결론적으로 2014년 기준 남북한 수교상황을 살펴보면 남한은 190개국과 북한은 160개국과 수교를 하고 있으며 미국의 영향으로 인한 이주(아시아)와 미주(아메리카)를 제외한 구주(유럽), 중동과 아프리카 수교 국가의 수에는 차이가 별로 없습니다.
또한 북한의 외교사를 교류한 국가들과의 관계에서도 살필 수 있습니다. 북한의 외교사는 대표적으로 소련/러시아, 중국, 제3세계, 동유럽, 그리고 서유럽과의 외교로 대표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중국과 소련 사이에 소위 ‘줄타기’를 하여 중국과 소련간의 갈등을 이용해 자주성을 최대화했습니다. 62년의 쿠바 미사일 위기와 66년~76년 중국 문화 혁명 등의 사건들을 이용해 중국과 소련간의 관계를 멀리 혹은 가까이 했습니다. 동유럽, 특히 동독과는 1960년대까지 교류가 매우 활발했고, 서유럽도 1970년대의 교역 활성화 시도 이후 2000년대 초반 이후 교역 및 투자 유치 활성화를 시도했습니다. 제3세계와는 1960년대 초반부터 1980년대까지 꾸준히 지원과 교류를 했으며 제3세계의 지도국 역할을 맡으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북한의 외교사를 보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은둔의 나라가 아닌 외교적으로 노력을 많이 한 나라라고 알 수 있습니다. 북한의 외교사를 바탕으로 최근 북한의 대외 관계 다변화의 이유를 소련의 붕괴와 중국의 성장으로 인해 생긴 대중 의존성을 줄이기 위함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대미, 대일 관계 수립의 가능성이 있지만 비핵화가 중국의 관계 정상화보다 오래 걸릴 예상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특강을 통해 여러 예상치 못한 지식을 접하게 됐습니다. 특히나 북한이나 북한의 외교사가 박노자 교수님의 전공 분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도 특강 주제에 대한 엄청난 지식과 전문성을 보유하셔서 매우 놀랐습니다. 지적할 점은 북한의 제3세계와의 교류의 규모가 과장된 감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강의 요점인 북한의 외교사와 외교사로부터 추론할 수 있는 앞으로의 북한의 외교적 행방에 대한 결론은 매우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작성자_고관현 자원활동가 |
||||
[김만권 정치철학] 변동하는 우리 정치 앞서보기 | [후기]6/19(화) 김만권의 정치철학 6강_헌법과 권력구조 | 가지 | 2018.6.27 | |
헌법과 권력구조 6월 19일, 6주 간 진행된 김만권의 정치철학 마지막 강의가 있었습니다! 6강에서는 ‘헌법과 권력구조’라는 주제로 강의가 진행되었습니다. 앞선 강의에서 헌법과 기본권을 배웠다면, 이번 강의에서는 배제된 구성원이 제도 안에서 스스로를 대표할 수 있는 제도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바탕으로 권력구조에 대하여 배웠습니다.
권력구조의 핵심 : 권력분립 선생님께서는 권력구조의 핵심은 권력의 견제와 균형라고 하셨습니다. 몽테스키외는 입법부를 견제할 목적으로 권력의 견제와 균형의 메카니즘을 제시하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몽테스키외가 제시한 권력구조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행정부가 견제의 대상인 반면, 유럽에서는 입법부가 행정부나 사법부에 비하여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었던 역사적 맥락에서 탄생했다고 설명하셨습니다. 몽테스키외가 주창한 권력구조의 핵심은 ‘인간이 인간답게 통치되는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는 제도가 통치하여야하고, 권력이 분립이 되고 견제와 균형을 맞추어야만 법의 통치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즉, 오로지 ‘권력을 잡을 수 있는 것은 권력뿐’이기 때문에, 권력을 분립시켜 서로 견제하며 균형을 이루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와 같이 시민법을 따르는 나라는 입법부/행정부/사법부 그리고 제4기구로서 헌법재판소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권력구조에서 헌법재판소의 위치나 역할이 절하되고, 행정부가 지나치게 부각되는 문제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입법이 헌법의 취지에 맞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구이기 때문에 헌법재판소의 역할 측면에서는 입법부의 보조기구로 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헌법재판소의 활동이 헌법정신을 지키려는 목적 아래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헌법재판소를 헌법의 수호자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하셨습니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헌법을 수호하는 역할과 책임은 대통령에게 명백히 지워져 있다는 점, 그리고 입법부/ 행정부/사법부는 헌법재판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헌법재판소는 3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행정부가 권력구조에서 지나치게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문제를 제기하셨습니다.
알아두면 좋은 정치체제(political systems) 이어서 다양한 정치체제에 대하여 배웠습니다. 정치체제는 정부나 국가를 구성하는 공식적인 법적 체제를 의미합니다. 크게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 그리고 그 둘을 융합한 이원집정부제로 나누어 보았는데, 위의 정치체제는 행정부와 내각의 존속이 의회의 신임에 근거하는지 여부에 따라 큰 차이를 보입니다. 1) 대통령제 대통령제는 행정부의 성립과 존속이 의회의 신임 여부와 무관한 정치체제입니다. 이는 행정부는 의회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으며, 의회와 행정부과 분리되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미국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미국에서는 의회가 대통령이 구성한 내각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입법부가 행정부의 권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예산법률주의를 채택하고 있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즉 정부의 예산 심의를 의회가 하도록 하며, 의회의 결정 없이는 예산을 집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내각을 구성하는 권한은 대통령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내각은 예산을 심의하는 의회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고 합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예산법률주의가 아니고 입법부는 예산안을 심사하는 역할에 그치기 때문에 행정부의 자율성이 더욱 크게 보장된다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하셨습니다.
2) 의원내각제 의원내각제는 행정부의 성립과 존속이 의회(입법부)의 신임에 근거하는 정부형태입니다. 의회에서 가장 많은 의석수를 가진 정당에서 총리가 선출되고, 의회에서 선출된 수반이 행정부를 구성하는 형식을 취합니다. 특징으로는 의원의 임기는 있으나, 의회의 신임에 근거하기 때문에 임기를 채우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3) 이원집정부제 선생님께서는 이원집정부제는 영어로는 semi-preseidential system으로 대통령제에 더 가까운 시스템이라고 하셨습니다. 입법부와 행정부 선거가 분리되지만, 대통령이 임명한 내각이 의회의 신임과 불신임의 대상이 되는 정부 형태입니다.
우리 헌법에서 대통령의 권한 다음으로는 현 헌법에서 대통령의 권한이 어떻게 규정되어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헌법 제4장 제1절 제66~68조에 명시된 대통령의 의무와 대통령 선출 방식을 살펴보았고, 제70~87조에 적힌 대통령의 권한에 대하여 보았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이 감사원, 대법원, 헌법재판소의 구성에 대하여 가진 권한을 보다 중점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감사원 구성에 대한 내용은 헌법 제98조에 나와 있는데, 감사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고 감사위원은 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되어있습니다. 즉, 감사원의 구성원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형태이므로 대통령에 대한 공정한 감시가 어려운 구조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대법원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헌법 제104조에 대법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고,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되어있었습니다. 헌법재판소 또한 재판관 9인 중 3인, 헌법재판소장을 임명하는 권한은 대통령에게 부여되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권력분립기구 중 입법부 이외의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장을 대통령이 임명하고, 뿐만 아니라 감사원장까지도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에서 과연 위의 기구들이 행정부를 적절히 견제할 수 있겠는가라는 의문을 던지셨습니다. 즉 권력구조가 대통령에 대한 견제가 매우 어려운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덧붙여, 대법원의 경우에는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행정부에 의해 구성되지만 대법원이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는 구조적으로 존재하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입법의 위헌여부 심판, 탄핵심판, 정당해산심판 등을 수행하는 헌법재판소 또한 다른 권력기구를 제어하는 장치가 역시나 부재하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즉, 대통령이 행사하는 권한은 지나치게 많은 대신, 입법부/사법부/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견제요소가 부족하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대통령 개헌 발의안 마지막으로 대통령 개헌 발의안에서 권력구조가 어떻게 개편되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2. 선거에 관해서도 어떠한 부분이 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첫 번째, 결선투표제를 도입하여 상대적 다수대표제의 문제점을 보완하고자 하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다만 결선투표제가 여당에 유리할지, 또는 야당에 유리할지는 보다 고민해보아야 할 문제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기존 대통령 피선거연령을 삭제하여 40세 미만이라도 출마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3. 의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조항이 추가되었습니다. 우선 발의안에는 예산법률주의가 반영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예산법률주의를 통해 의회의 권한은 강화시키면서 의원 개인의 권한은 약화시킬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행정부와 의회의 여당이 매우 의존적인 관계인 상황에서 예산법률주의가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 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정부 법안 제출 시 국회의원 10명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조항이 추가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정부의 법률안 제출은 유지되었다는 점과 국회의원 10명의 동의가 필요하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국회의 입법권을 강화하기에는 어렵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4. 행정부 고위 임명직 구성에 있어서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였습니다. 국무총리의 자율성을 없애는 헌법 구절을 삭제하였기 때문입니다.
5. 그러나 여전히 한계는 남아있는데, 실질적인 권력분립을 위해 대법원, 헌법재판소, 감사원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여전히 미진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헌법에 명시된 권력구조에 따르면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임명하고, 대법원장이 대법관 3명을 임명하는 방식이며, 헌법재판소장 또한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법부와 헌법재판소의 구성원을 임명하는 권한이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부여됨으로써, 권력의 견제와 균형이 약화되는 문제를 야기합니다.
개헌 발의안에는 대법원장의 인사권한을 조정하여, 대법관은 대법관추춴위원회의 추천을 거쳐 국회의 동의를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는 형태로 수정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 조항만 본다면 사법부에 많은 권한을 부여한 것처럼 보이나 위원회의 구성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대법관추천위원회 구성 시에, 대통령/대법원장/법관회의에서 각각 3명 임명가능한데 대법원장을 이미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행정부의 권한은 6명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헌법재판소의 재판관 자격을 현 판사로 제한했던 기존의 헌법과 달리 정부 발의안에는 재판관의 자격을 개방하는 방향으로 수정되었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대통령의 특별사면 통제를 강화함으로써 사법부에 대한 행정부의 권력을 견제하고 균형을 맞추고자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발의안에는 감사원의 독립기관화를 위하여 9명의 감사위원 중 의회/대법관회의/대통령이 각각 3명을 임명, 또는 선출하는 것으로 반영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감사원이 독립기관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존재합니다. 선생님께서는 헌법재판소, 의회, 사법부 등에 대하여 대통령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제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각각의 기구가 대통령을 어떻게 견제할 수 있는지를 명시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지금 설계되는 새로운 제도들은 기성세대뿐 아니라 미래세대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하시며, 헌법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끝으로 참여연대 옥상에서 뒤풀이를 하며 소회를 나누는 시간으로 즐겁게 마무리하였습니다. |
||||
[김만권 정치철학] 변동하는 우리 정치 앞서보기 | [후기] 6/12(화) 김만권의 정치철학 5강 _ 헌법과 젠더 | 개똥이 | 2018.6.16 | |
김만권 정치철학 <5강 헌법과 젠더>
이번 5강에서는 젠더와 관련해 헌법을 설명하셨다.
0. 2물결 페미니즘과 분배, 인정의 영역
1세대 페미니즘은 투표권, 참정권을 얻고자 투쟁하는 운동이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중인 페미니즘은 1세대 페미니즘보다는 2세대 페미니즘에 가깝다.
오늘 강의에서는 2물결 페미니즘을 주되게 다뤘다. 2물결 페미니즘도 두 파트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분배’에 방점을 찍은 파트인 사회주의적인 운동의 물결과 두 번째는 ‘인정’의 영역이다. 페미니즘을 두 가지로 쪼개서 본다면 ‘분배’의 영역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보는 페미니스트들과 ‘인정’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들로 나뉜다.
페미니즘에서 분배와 인정의 영역을 다루면서 김만권 선생님은 낸시 프레이저의 이론을 가져와 설명하셨다. 2물결 페미니즘에 있어서 분배와 인정은 가장 논쟁적인 영역이다. 현재 우리나라 페미니즘은 2물결 페미니즘에서 ‘인정’의 영역에 쏠려있다. 분배와 인정이 함께 갈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현실에서는 노동의 영역에 해당하는 분배와 가치의 영역에 해당하는 인정은 접점이 잘 생기지 않는다.
낸시 프레이저는 페미니즘이 운동 과정에서 신자유주의와 만나 선진국 페미니스트들이 자신의 유리천장을 깨기 위해 나머지 사람들을 모두 공장으로 몰아넣었다고 비판한다. 남성 중심적인 임금구조를 허무는 데는 성공했으나, 이를 여성 정규직 임금 구조로 재구성하는 데는 실패했다는 점에서 페미니즘의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프레이저는 페미니즘을 위해선 다른 약자들과 연대해서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약자 중 가장 중요한 주체가 바로 노동자인데, 현실에서 노동자와 페미니스트가 합의점을 찾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프레이저는 인정 영역에서도 문화보다는 제도 내에서 페미니즘이 다뤄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대표의 영역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동등한 참여를 만드는 데 페미니즘이 실현해야 하는 핵심적인 목표가 있다고 말했다. 동등한 참여란 헌법을 구성할 때 여성이 대표로서 동등한 파트너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가의 문제다.
1. 오늘 날 정의의 두 수준 정의에는 일차원적 질문과 이차원적 질문이 있다.
1) 일차원적 질문 (정의의 내용) ‘정의가 얼마만큼의 경제적 불평등을 허용하는가?’ 일차원적 질문에서 정의는 허용할 수 있는 불평등의 크기가 얼마인가를 얘기하는 것이다. 모든 이들이 평등해야 한다는 것이 정의가 아니다. 어떤 분배정의 원칙에 따라서 얼마만큼의 재분배가 요구되는지, 동등한 존중의 내용은 무엇인지를 다루는 것이 일차원적 질문을 구성한다.
2) 이차원적 메타 수준 (정의의 틀) 이차원적 질문은 정의의 틀을 논하는 것이다. 이차원적 질문에선 정의의 내용도 문제지만 정의의 틀도 문제라고 본다. 제도의 당사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낼 수 있도록 틀 자체를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3)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결국 어떻게 기존의 정의의 내용과 새로운 정의의 필요성을 수용할 수 있는 틀을 만들 수 있을까하는 질문에 맞닥뜨리게 된다. 프레이저의 해결책은 삼차원적 정의론이다. 프레이저는 소수자 그룹은 다양하지만 그 소수자 그룹을 모두 대표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2. 삼차원적 정의론
1) 정의의 가장 일반적 의미 프레이저는 정의의 가장 일반적 의미는 ‘동등한 참여’라고 해석했다. 정의는 모든 사람이 사회 생활에 동등한 동료로서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드는 사회적 상태를 요구한다. 부정의를 극복한다는 의미는 누군가가 온전한 당사자로서 다른 사람들과 동등하게 사회적 상호작용에 참여하는 일에 방해가 되는 제도적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다.
2) 제도적 장애 1: 불평등한 분배 경제적 차원, 사회적 계급구조에 상응하는 것이다. 동등한 동료로서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길 거부하는 경제적 구조 때문에 온전한 참여를 방해받을 수 있다.
3) 제도적 장애 2: 제도화된 위계질서 필수적인 지위를 부여할 것을 거부하는 문화적 가치에 관한 제도화된 위계질서 때문에 동등한 상호작용을 방해받을 수 있다. 이는 문화적 차원이다.
4) 정의의 세 번째 차원: 정치적인 것 누구를 구성원으로 볼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정치적 차원이다. 정당한 분배와 상호인정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의 범위 안에 누가 포함되고 누가 배제되는지를 말해 준다.
3. 정치적 차원, “대표”의 문제 정의의 정치적 차원은 주로 대표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1) 누가 구성원인가? 구성원을 정하는 절차는 어때야 하는가? 정치공동체의 경계가 실제로 대표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을 잘못 배제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공동체의 의사결정 규칙이 공적인 토의에서 모든 구성원들에게 동등한 목소리를 보장하고 있는지, 그 규칙이 공적인 의사결정에서 모든 구성원을 공정하게 대표하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2) 두 수준의 대표 불능 - 일상적 대표불능 : 정치적 의사결정 규칙 자체가 공동체에 포함된 어떤 사람들이 동료로서 온전히 참여할 기회를 부정할 때 발생하는 부정의를 말한다. 예를 들어 소선거구제, 승자독식제 등이 있다. - 잘못 설정된 틀(misframing) : 대표의 경계 자체가 잘못 설정된 경우다. 여성의 문제를 이야기하는데 여성은 정작 없다거나, 인종 문제를 얘기하는데 백인이 다수거나 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이런 잘못된 틀의 설정은 정치적 대표의 문제와 관련해 당사자를 배제하는 문제점이 있다. 이 때문에 정치적 죽음이 발생한다.
따라서 프레이저의 이론은 한마디로 “운명 앞에 선 당사자들이 결정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당사자들이 틀의 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하며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4. 우리 헌법에 나타난 젠더
1) 기존 헌법 속 젠더 87년 헌법에서 젠더 내용은 거의 담기지 않았다. 우리헌법 제36조는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삼으며 성소수자를 배제하고 있다. 그나마 2018년 공직선거법이 개정되면서 “비례후보의 절반 이상을 여성으로 공천하고 여성후보를 홀수 순번으로 배치해야 한다는 규정을 어기면 등록신청을 무효로 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2) 발의안 속 성평등 - 발의안 제35조는 임신, 출산, 양육을 여성이 아닌 국민의 권리로 규정했다. 그러나 여전히 ‘현실적으로 임신,출산,육아의 직접 당사자가 여성인 것을 고려하여’라는 설명으로 앞 뒤가 맞지 않는 주장을 하고 있다. - 발의안 제39조도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바탕으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쓰고 있다. 여전히 ‘양성의 평등’이라 쓰며 87년 헌법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 조항은 국가가 생각하는 ‘정상가족’의 개념이 반영된 것이다.
5강을 들으며 김만권 선생님이 유학 시절 가르침을 받으셨던 낸시 프레이저의 분배와 인정에 대한 이론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대통령 발의안조차도 아직 젠더의 개념을 제대로 헌법에 반영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
||||
[김만권 정치철학] 변동하는 우리 정치 앞서보기 | [후기] 6/4(화) 김만권의 정치철학 4강 _ 기본권으로서의 노동 그리고 분배 | 가지 | 2018.6.12 | |
김만권의 정치철학 4강 ‘기본권으로서 노동 그리고 분배’
이번 강의의 주제는 ‘기본권으로서 노동 그리고 분배’였습니다. 본격적인 강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왜 우리가 분배를 이야기하고 공부해야 하는가를 짚어보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2010년대 초반까지는 ‘분배’의 영역에 대한 논의가 주로 이루어졌다면, 현재는 권리와 존재에 대한 ‘인정’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분배와 인정은 다른 영역이자 환원될 수 없는 영역입니다. 그러나 인정의 욕구가 주로 기본적인 욕구와 생존이 보장될 때에 제기된다는 점에서 여전히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도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분배는 늘 노동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다고 설명하시면서, 노동은 무엇인지, 왜 노동자는 노동할수록 가난해지는지, 노동 중심의 분배는 지속가능한지에 대하여 강의해주셨고, 마지막으로 새로운 분배의 패러다임으로 기본소득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1. 왜 노동자는 노동할수록 가난해지는가?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는 노동하는 손과 노동하지 않는 손이 있고, 후자가 너무나도 많은 이윤을 가져간다고 나옵니다. 즉, 노동하는 이와 노동으로부터 이윤을 얻는 이가 다르며, 노동시장에서의 경쟁으로 인해 노동자의 임금은 점차 하락하는 것입니다. 일례로 초국가기업에 대하여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초국가기업은 노동시장의 범위가 전 세계로 확대된 경우입니다. 경제가 발전할수록 임금도 오른다는 논리는 합당하게 여겨졌으나, 노동시장의 범위를 국내에서 전 세계적 차원으로 확대하여 살펴보면 노동자들이 경쟁에서 얻는 것은 점차 값싸지는 임금뿐이라는 것이 명확히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이키의 문화를 만들어내고 마케팅을 하는 산업은 선진국에서, 생산과 같은 노동 중심 산업은 임금이 저렴한 국가에서 이루어지는데 이는 미국과 같은 노동시장의 임금이 비싸기 때문에 노동자의 임금을 올리는 대신에 노동시장을 임금이 더 저렴한 국가로 옮긴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2. 노동의 의미 (마르크스 노동관) 1) 노동의 본성 선생님께서는 노동의 의미를 마르크스 노동관에 입각하여 설명하셨습니다. 마르크스의 노동관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소외”라고 합니다. 즉, 노동자가 자신이 하는 노동행위로부터 소외되고, 인간의 본질이 노동으로부터 소외되고, 관계로부터 소외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마르크스가 문제 제기한 노동은 노동 그 자체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노동으로 한정됩니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노동관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노동을 자연과 인간 간의 창조적 상호작용이자, 활동적인 삶으로 보았습니다. 즉 노동의 본성을 창조적 잠재력을 발견하는 과정으로 여겼으며, 노동을 부여함으로써 자연을 변화시키고 동시에 자신의 본성도 변화시킨다고 설명하였습니다.
2) 인간적 노동의 결과 인간적 노동은 자본주의적 노동과는 반대되는 개념으로,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노동의 본성이 잘 드러나는 노동입니다. 또한 인간적 노동은 물질과의 관계 맺기인 동시에 인간과의 관계 맺기이기도 합니다. 인간적 노동의 결과 다음 4가지라고 합니다. - 생산 과정에서 창조성을 즐기고 타자에게 보여줄 수 있는 물건을 만듦으로써 개성을 객관화시킬 수 있게 함. - 다른 인간이 자신이 생산한 물건을 사용하는 것을 보며 인간의 필요에 부응했다는 점에서 즐거움을 느낌 - 다른 사람이 내 물건을 자신의 일부처럼 쓰는 것을 보며 내가 타인의 필요한 부분이라고 느끼게 되고, 이를 통해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음 - 내가 노동으로 나타난 내 삶의 표현에서 다른 사람들의 삶의 표현을 발견하면서 인류의 부분이라는 공동체적 본질을 발견한다.
3) 이윤극대화와 노동왜곡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적인 방식의 노동이 상실되었다고 지적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자본주의의 합리성이 임금과 이윤으로 이분화 되고, 양자가 반비례 관계에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였습니다. 즉, 이윤을 위해서는 값싼 노동이 최선의 선택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본의 성장이 임금의 성장을 필연적으로 동반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앞서 살펴본 초국적기업의 예시와 같이 ‘노동 분업의 심화’라는 개념을 통해 반박하였습니다. (초국적 기업이 더 넓은 소비시장과 더 저렴한 노동시장의 확보를 위해 전 세계로 확대하는 예시).
4) 자본주의적 노동은 노동소외라는 결과를 초래한다. 선생님께서는 자본주의 합리성이 극단적인 이윤 추구를 멈추지 않는 한 노동소외는 불가피하다고 설명하셨습니다, 노동소외는 구체적으로 다음 4가지의 형태로 분류하여 볼 수 있습니다. 생산물로부터의 소외 : 노동자가 자신이 생산하는 물건을 소비할 수 없는 상황을 의미한다. 생산활동으로부터의 소외 : 분업으로 인하여 노동자들이 생산 활동을 자기 삶의 일부로서 받아들이고 즐거움을 얻기 힘들며, 노동의 목적이 생존에 필요한 임금을 얻는 것에 한정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란 류적 존재로부터의 소외 : 유적존재는 개별적 존재방식이 아니라 자연적, 사회적 존재로서의 총체적인 존재방식이다. 노동이 서로에게 필요한 일부라는 것을 확인하는 방안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하면서 유적존재로부터 소외된다. 인간의 인간으로부터의 소외 : 내가 노동으로 생산한 물건에 나의 삶이 존재하지 않고, 타자 역시 노동으로 생산한 물건에 그들 삶의 표현을 불어넣지 못하기 때문이다.
5) 왜 인간소외인가? 선생님께서는 노동의 본질과 인간관계가 왜곡되며 결국 노동소외가 인간소외로 귀결된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견고한 것들은 공기 속으로 녹아들고, 모든 신성한 것들은 불경스러운 것이 되었다. 인간은 마침내 냉정한 사리분별, 자신의 삶의 현실적 조건, 자신과 같은 인간과의 관계를 직면하도록 강요되었다.”
3. 기본권으로서의 노동 1) 헌법과 노동 이탈리아 헌법 1조는 ‘이탈리아 공화국은 노동에 기초를 두는 민주공화국’이라고 명시하며 노동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다고 합니다. 독일 헌법에는 9조 ‘모든 독일인은 단체와 조합을 결성할 권리를 가진다.’고 되어있어 모든 국민의 노동권을 보호하며, 95조에 연방노동법원의 설치를 명시하면서 노동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법원을 두도록 되어있습니다. 한국 또한 대통령 개헌안에 기존 헌법에서 ‘근로자’로 표기된 것을 ‘노동자’로 바꾸기도 하였습니다. 노동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 중에 하나입니다.
2) 최초분배 노동은 기본권 중에서도 굉장히 중요하게 다루어지는데, 선생님께서는 그 이유를 노동이 자원을 분배하는 최초의 수단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최초분배란 노동자가 노동을 제공받은 자로부터 받는 임금을 통해 이루어지며, 재분배와는 상반되는 개념입니다.
최초분배의 건전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로 최저임금제를 설명하셨습니다. 최저임금은 노동자들이 값싼 노동력 제공 경쟁에서 벗어나 최저의 생계를 유지하게 하는 수단으로, 노동왜곡현상을 최소한의 수준에서 방지하는 역할을 목적으로 합니다. 그러나 최저임금은 그야말로 최저의 생계를 보장하는 제도이며, 중산층을 양산하는 제도는 생활임금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생활임금을 유지하는 데에 더욱 효과적이라고 말씀하시며, 영국의 한 시민단체의 예를 들어주셨습니다. 이 시민단체는 해당 년도의 생활임금을 공표하고, 생활임금을 주겠다고 약속한 기업의 리스트를 공개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시민들이 리스트에 올라간 기업의 물품을 구매하는 식으로 기업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생활임금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한다고 합니다.
강의 중에 함께 생활임금을 짜보기도 하는데, 1인 가구 기준으로 의(衣)15만원 / 식(食) 50만원 / 주(住) 70만원 / 교통비 15만원 / 사교비 10만원 / 생활자재구입비 / 교육비 / 감가상각비 / 의료비 등의 항목을 더해 대략 207만원이 나왔습니다.
4. 노동이 해결책이 될 수 있는가? 그러나 과연 노동을 기반으로 한 분배를 유지해야 하는가는 또 다른 질문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노동을 되살리는 것도 의미가 있겠으나 사회의 본질 자체가 변하였기에 전통적인 노동에 의한 분배의 재구성이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산업사회는 생산자 중심의 사회였고 노동이 불가결한 요소였던 반면, 현재는 포스트산업사회, 즉 소비중심사회이므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노동이 아닌 소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1) 낮은 노동조합 가입률 노동조합 가입률은 2005년 26.1%에서 2013년 21.3%로 하락하였다고 합니다. 이는 점차 많아지는 비정규직 일자리와도 연관이 되어 있다고 설명하셨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특히 용역업체에 고용되어 일하는 이들은 자영업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더욱이 노조를 결성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2016년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보고서에는 비정규직 숫자가 839만 명으로 집계되었는데, 사내 하청 노동자들은 자영업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실제 비정규직의 숫자는 천만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된다고 합니다.
2)높아지는 실업률 일자리를 양극화 해소의 방안으로 내놓았지만 청년 실업률은 낮아질 줄을 모릅니다. 2017년 실업률은 9.9%, 체감실업률을 보여주는 ‘고용보조지표3’은 22.7%에 달했다고 합니다. 일자리가 줄어드는 이 상황에서 노동 중심의 분배는 오히려 노동시장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 즉 복지가 필요한 이들을 오히려 소외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 선생님의 설명이었습니다. 물론 인구 절벽으로 인해 일자리 부족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는 의견이 존재하지만, 제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는 지금 과연 남아있는 일자리 중 양질의 일자리가 다수 존재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 또한 존재한다고 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노동 중심의 분배는 일자리 창출 이외의 해결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하시면서, 실업률이 점차 높아지는 지금 분배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5. 기본소득 그리고 분배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기본소득을 제시하셨습니다. 기존의 복지국가가 재분배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기본소득은 국가가 최초분배의 주체가 된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입니다. 선생님꼐서는 기본소득의 자격요건은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는 것이 전부라고 설명하셨습니다. 필립 반 파레이스는 기본소득을 “(1) 개인을 기반으로, (2) 자산조사 없이, 그리고 (3) 노동에 대한 요구 없이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무조건적으로 지급되는 소득”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노동을 최초분배의 요건으로 여겼던 기존의 복지와는 매우 다른 형태의 분배인 것입니다.
물론 선생님께서는 기본소득에 대한 의심도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기본소득이 갑작스레 유행하는 배후에는 기업의 영향력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노동자가 줄어드는 것은 노동 중심 분배 구조에서 소비자가 사라지는 것과 동일하기 때문에, 소비 시장을 꾸준히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본소득을 제공함으로써 사람들의 구매력을 유지하려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입니다. 또한 재원의 한정 때문에 기존의 복지제도를 모두 유지하면서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이 우세한데, 이 경우에 기존의 복지제도를 해체하고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라는 의구심 또한 든다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들이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경향도 보인다고 하셨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노동자들이 낸 세금을 낸 것으로 기본소득을 받는다는 것에 대한 반발이 주된 이유라고 하셨습니다.
추가적으로 기초자본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최초분배도 설명하셨는데, 이는 부유세를 통해 조달한 자금을 일정 연령에 이른 사람에게 사회가 상속을 하는 제도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물론 기본소득이 자본주의의 영속을 위하여 이용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심이 필요하지만, 노동중심의 분배에서 벗어난 새로운 분배구조는 분명히 필요한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실업률이 점차 높아지는 지금, 노동 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이들은 대부분은 비자발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노동을 제공한다고 하더라도 노동3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현실은 분명합니다. 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의 삶의 방식이 불투명하여 일자리의 질과 노동 시장의 규모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예상하기 어려워집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제의 해결방식이 노동에 대한 보상 또는 일자리 창출에 맞춰진다면 노동시장에 진입조차 하지 못하고, 극단에 배제되어 있는 이들이 보호의 영역에 들어오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마지막으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안전망을 제공하는 것이 노동 중심적 관점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한 지금이라고 하시며, 노동 중심 사회에서 노동 시장 바깥으로 밀려나 존재가 지워지고 잊힌 이들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
||||
[김만권 정치철학] 변동하는 우리 정치 앞서보기 | [후기] 5/29(화) 김만권의 정치철학 3강 _ 헌법 제정과 기본권 | 개똥이 | 2018.6.1 | |
3강에서는 헌법 제정의 의미를 알아보고 대통령 발의안에 새로 추가된 기본법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가기 전, 김만권 선생님은 이번 대통령 발의안이 국회에서 심의조차 되지 않은 상황에 대한 아쉬움을 말씀하셨다. 대통령 발의안을 국회에서 부결을 시키더라도 심의를 했어야 하는데 국회가 심의조차 하지 않은 건 국회의 직무유기라는 것이다. 국회가 심의하는 것만으로도 헌법의 두 축인 기본권과 권력구조에 대해 국민들에게 여론을 환기시키고 공론화하는 기능을 하는데 이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비판하셨다.
1. 헌법을 쓰는 법을 아는 게 왜 중요할까?
헌법에서 한 구절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해석과 적용이 아주 달라진다. 예를 들어, 유신헌법 상 제18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제한받지 아니한다’고 쓰고 있다. 이는 겉보기에는 크게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다시 말하면 법률로 제한하면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얼마든지 제한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처럼 헌법이 어떤 언어로 쓰이는지 알아야 헌법의 의미를 제대로 볼 수 있다.
2. 헌법을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을까?
헌법을 만드는 일은 단지 헌법이라는 문서를 쓰는 것이 아니다. 헌법을 만들 때는 constitution making과 constitution building 두 가지로 나뉜다. 전자는 문자화시키는 과정이며 후자는 헌법을 만드는 모든 과정을 포괄하는 것이다.
전문가의 영역이 아닌 시민들이 관여하는 활동은 두 수준에서 이루어지는데, 실제 이 제작자들과 소통하는 시민대표자들 그리고 헌법에 담길 내용을 놓고 벌어지는 사회적 논의에 참여하는 일반시민들이다.
1) 이중헌법제정의회 이중헌법제정의회는 헌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두 개의 의회에 모여있다는 뜻이다. 제1의회는 헌법을 문자화시키는 전문가들이 모인 곳이며 제2의회는 시민의 대표들이 모인 곳이다. 제2의회를 구성하는 시민은 많을수록 좋다. 헌법 제정 의회가 2트랙으로 운영되는 구조다.
제1의회는 실제 헌법을 쓰고, 제2의회는 관련된 헌법적 이슈들을 검토하고 논의하는 역할을 나눠서 맡게 된다. 제1의회와 제2의회는 각각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기본권을 담당하는 네 개의 부위원회로 구성된다. 네 개의 부서가 함께 만나서 논의할 수 있는 주위원회는 제1의회, 제2의회에 각각 1개씩 존재한다.
예를 들어 제1의회가 기본권에 관련된 헌법을 쓰면, 제2의회 기본권 담당 부위원회에 속한 시민대표들이 제1의회 전문가들과 만나 논의하게 되는 것이다. 제2의회 시민대표들이 원하는 것을 제1의회에 요청하면 제1의회는 이를 검토해 헌법을 쓸 때 반영한다.
의회 내 기본권을 제외한 세 부서인 권력구조를 논의하는 세 개의 부의원회는 권력구조가 기본권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규정하는 논의과정을 거쳐야 한다.
헌법제정의회에서 합의된 중요조항은 미디어를 통해 적극적으로 그 내용을 알리고 사회적 논의를 유도해야 한다. 공영미디어는 헌법적 이슈가 무엇인지 공유된 내용을 알리는 역할을 맡고, 다른 미디어 매체들은 헌법적 이슈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을 표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이와 동시에 제2헌법제정의회는 전국을 돌며 공청회를 개최해서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시민들에겐 제2헌법제정의회를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내용을 제안할 수 있는 제도적 채널이 개방돼야 한다.
이러한 짓기과정을 통해 수렴되고 제작의 과정을 통해 문자화된 내용은 주민전원투표(국민투표)를 통해 승인과정을 거치게 된다. 승인할 때도, 사안별로 분리해서 투표한다면 권력구조 부분을 먼저 투표하고 이후 기본권을 승인하도록 하는 것이 논의의 초점을 분산시키지 않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매우 중요한 조항(예를 들어, 대통령의 임기를 정하는 조항)은 구분하여 조항별 승인을 거치도록 해서 중요조항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모으고 그 내용을 숙지하는 데 교육적 효과를 낼 수 있다. 한 마디로, 헌법 짓기 과정은 시민들이 헌법을 배우고 그 내용을 숙지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
하버마스는 헌법을 짓는 과정을 통해 집단의 정체성을 만들 수 있다고 보았다. 제도적 통합을 통해 정치적 정체성을 만드는 것이다. 하버마스는 독일 통일 당시 새로운 헌법을 짓지 않고 서독의 헌법을 동독에 이식하는 과정을 거쳐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 기회를 놓쳤다고 지적했다. 현재 EU도 유럽연합이라는 제도적 통합을 통해 유럽인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3. 헌법의 기본권
기본권이란 인간의 권리를 시민의 권리 형식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인권과는 의미가 다르다. 인간으로서 가지는 권리가 아니라 시민으로서 마땅히 지녀야 하는 기본적 권리를 의미한다. 인권은 보편적 권리지만 시민권은 배타적 권리에 해당한다. 시민권은 비시민을 배제하기 때문에 항상 특권이다.
대통령 발의안에서 기본권은 “기본권 주체를 확대하고 공무원을 포함한 노동자의 권리를 강화”하고 “생명권과 안전권, 알권리, 자기정보통제권,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 및 성별‧장애 등에 따른 차별개선에 노력할 국가의 의무 등을 신설”하는 조항으로 강화됐다.
또한 일부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확대해 제2장의 제목을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서 ‘기본적 권리와 의무’로 변경했다. 신설되는 기본권으로서 생명권 및 자기정보통제권의 주체를 사람으로 규정했다. 권리의 주체를 사람으로 했다는 건 꼭 한국의 국민이 아니더라도 기본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규정한 것이다.
대통령 발의안에서는 평등권과 교육권, 노동자의 권리를 강화하고 생명권, 정보기본권, 사회보장을 기본권화하고, 임신,출산,양육 지원 받을 권리, 주거권, 건강권, 사회적 약자의 동등한 권리, 사회적 약자의 동등한 권리, 안전권, 국민소환권 및 국민발안권을 새로 규정해 국가가 책임져야 할 영역을 확대했다.
수업을 마치며 김만권 선생님은 이 외에도 우리가 헌법에 추가해야 할 기본권은 어떤 것이 있는지 논의해보자고 하셨다. 이번 수업을 통해 헌법을 쓴다는 것이 단순히 문자화하는 과정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헌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민주주의가 작동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
||||
[김만권 정치철학] 변동하는 우리 정치 앞서보기 | [후기] 5/15(화) 김만권의 정치철학_'시민불복종, 혁명과 헌법' | 가지 | 2018.5.30 | |
5월 15일 진행된 김만권 선생님의 두 번째 강의는 ‘시민불복종, 혁명과 헌법‘을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지난 강의에 이어 기억을 제도화하는 방식으로 헌법을 이야기하였고, 기억을 구성하고 변화시키는 데에 있어 시민들이 스스로를 드러내고 참여하는 방식으로써 시민불복종과 혁명을 다루었습니다.
우리, 데모스는 통치하는가?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우리는 주권을 지닌 국민 개개인으로 존재합니다. 그러나 개인의 일상 속에서 스스로를 주권자로 정체화하고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기는 꽤나 귀찮은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무관심은 무지로 이어집니다. 김만권 선생님은 이러한 현상을 ‘구경꾼 민주주의’로 설명하시며, 민주주의가 도망쳐 버린 자리에는 정치 엘리트가 남용하는 정치가 만연하며 시민들은 결국 자발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구경꾼”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현재의 대의제 민주주의는 정치를 시민의 일상에서 분리하였기에, ‘도망자 민주주의’라고도 부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즉, 시민불복종이나 혁명과 같은 일상을 벗어난 순간에 주권자로서의 권력을 행사하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면 시민들은 다시 정치와 분리된 일상을 산다는 것입니다.
초일상의 정치 일상의 제도권 안에서 시민들이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경우는 선거로 극히 제한적입니다. 김만권 선생님께서는 일상의 제도권 밖에서 주권자로서 정치에 참여하고 자신을 드러내며 직접 결정을 내리는 것, 그것이 바로 초일상의 정치(extraordinary politics)이자 혁명과 시민불복종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일상의 정치가 정치 엘리트, 관료적 정당, 완고한 제도적 절차의 특징을 지니는 반면, 초일상의 정치는 높은 수준의 집단 동원,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광범위한 지지, 다양한 공론장의 출현 등을 포함합니다. 더불어 초일상의 정치 시기에는 초법적 행위가 존재한다고 하셨습니다. 시민불복종은 일부의 법을 의도적으로 무시하여 법정신을 지키려는 행위이며, 혁명은 궁극적으로 기존의 체제를 뒤집고 새로운 체제를 세우려는 노력입니다. 그렇기에 초일상의 정치에는 일상에서 통용된 합법과 불법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는 초법적인 행위가 존재하는 것이며, 변화 자체가 초법적 행위의 결과인 것입니다. 강좌에서 “법이 생겨나면 법은 실제 변화를 안정화하고 합법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변화 그 자체는 언제나 초법적 행위의 결과이다.”라는 한나 아렌트의 ⌜시민불복종⌟에 나오는 구절도 함께 읽었습니다.
시민불복종 시민불복종은 헌법이 보장하는 다른 목소리를 낼 권리(right of dissent) 중 핵심적인 것으로 법정신을 향한 근본적인 호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더불어 불복종의 4가지 조건에 대하여 설명하셨는데 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주제는 정체 전체에 미치는 공공사여야 한다. 두 번째, 다수의 동료 시민의 일반적 정의감을 향한 소수자들의 호소이다. 세 번째, 비폭력적 참여를 전제로 한다. 이는 장기적으로 비폭력이 시민들에게 신뢰를 줌으로써 참여의 지속성을 보장할 것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되는데, 이러한 믿음은 불복종의 목적이 폭력이 아니라 시민의 합의를 통한 변화라는 정치적 믿음과 헌법이 비폭력을 지지한다는 헌법적 믿음, 그리고 도덕적 신념에 기반한다. 네 번째. 시민 불복종에서 의도적으로 행해지는 법률 위반은 결코 은밀하게 이루어져서는 안되며 공개적인 장소에서 공개적인 행위로 이루어져야 한다.
즉, 시민 불복종은 일상의 시간 내에 존재하는 초일상의 정치로 정당한 이견의 권리, 다른 목소리를 낼 권리라는 것입니다.
혁명과 헌법 : 폭력 없는 혁명은 불가능한가. 한나 아렌트는 헌법은 ‘전적으로 혁명의 소산’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혁명은 체제의 변화를 목적으로 하는 초일상의 정치이지만 왠지 혁명이라는 말을 들으면 변화보다는 폭력을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선생님께서는 ‘폭력 없는 혁명은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혁명과 헌법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우선 4가지의 혁명론 (응집심리이론, 체제/가치 합의론, 정치갈등, 계급갈등이론)을 살펴보았는데, 모두 혁명 안에 폭력이 내재되어 있거나 또는 폭력을 혁명의 필수 요소로 여김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혁명의 폭력적 요소는 다수의 시민들로 하여금 혁명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곤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폭력 없는 혁명’에 대한 대답으로 한나 아렌트의 <혁명론>을 설명하셨습니다. 아렌트는 폭력의 반정치성에 대하여 이야기하였습니다. 폭력이 있을 때 다양한 요구와 목소리는 다시 침묵하게 되므로 결국 폭력은 새로운 논의를 만들어낼 수 없으며, 따라서 폭력과 정치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혁명은 폭력이 아닌 말과 행위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말을 통한 혁명은 결국 새로운 헌법을 제정함으로써 체제의 변화를 이루는 것을 의미합니다. 혁명의 목적이 공동체의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라면, 헌법은 그 자체로 방향성을 지시하는 문서이기 때문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누가 헌법을 쓰는가?’라고 하셨습니다. 구성권력(constituent power)은 넓은 의미에서는 정체를 구성하는 주체를 이르고, 좁은 의미로는 정체의 헌법을 제정할 권리를 의미합니다. 헌법은 정부의 행위가 아니라 정부를 구성하는 인민의 행위다”라는 토마스 페인의 말처럼 구성권력은 시민이 마땅히 행사해야 할 권리인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우리 헌법의 전문에서 ‘대한민국’이 아닌 ‘대한국민’으로 시작한다는 점에서 시민의 구성권력이 드러난다고 설명하셨습니다.
헌법 제정에서 혁명성을 찾지 못하는 이유 그러나 우리 사회가 헌법 제정을 통해 혁명을 이룰 수 있으리라는 공통의 신뢰가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오히려 헌법은 일상과 괴리된 이상적인 무언가로 여겨져 왔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헌법 제정에서 혁명성을 찾지 못하는 이유를 한국 사회에서는 헌법이 혁명의 결과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87년 6월 민주화운동을 통해 새로운 헌법을 썼다는 점에서 혁명으로 불려도 좋을 민주주의의 주요한 성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대중은 일상의 정치에서 정권교체의 실패를 경험하였고, 엘리트 위주의 헌법 개정으로 인해 대중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못하였습니다. 선생님은 그렇기에 더더욱 헌법을 개정하는 이번 시기가 시민의 목소리를 반영할 중요한 기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마종기 시인의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중 ‘대화(對話)’를 함께 읽으며 2강을 마쳤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지난 시간 우리가 헌법을 만드는 과정은 등불을 만들고, 등불이 다시 꺼지는 과정의 연속이었을지 모른다고, 그러나 구체제와 새로운 체제와의 대화인 헌법 제정에 다시금 참여하여 목소리를 내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집단적 기억을 구성하고 제도화 하는 과정에 주권자로서 참여하여 시민이 헌법을 만드는 일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배운 뜻깊은 강좌였습니다.
|
||||
[워크숍] 사람의 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영상] '사람의 소리는 빛보다 멀리간다'-거리에서 소리내고 표현하기 워크숍 | 느티나무 | 2018.5.23 | |
우리의 몸과 일상의 도구로 함께 소리내며 자신을 표현하는 시간. 우리가 내는 소리가 변화의 봄바람을 만들어 가길 기원하며 세월호 4주기 광화문 사전행사에서 시민들과 함께 거리 공연을 했습니다.
* 유뷰브에서 영상보기 : https://youtu.be/iZODIDejAos * 참여연대 유튜브 채널 : https://goo.gl/L52MGb |
||||
[제주 4·3 70년 역사기행] 제주 4·3 바람이 분다 | [역시기행후기] 제주, 그 어두운 동굴 속... 거기 사람이 살고 있었다 | 느티나무 | 2018.5.23 | |
제주, 그 어두운 동굴 속...거기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경희 역사기행참가자
영화 <지슬>이 개봉했을 때 나는 친구와 제주를 여행하고 있었다. 개봉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여행을 떠나며 우리는 제주에서 <지슬>을 보자고 했다. 마침 일정에 다랑쉬오름이 있어 영화를 제주에서 본다면 여행이 더 의미 있어질 거라고. 그러나 그 일을 실행하지 못했다. 여행 마지막 날, 극장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할 시간에 우리는 바다가 보이는 작은 레스토랑에서 커다란 새우가 들어간 크림 파스타를 먹었다. 그날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여행은 나에게 다른 의미를 남겼다. 제주에 살고 싶어졌고 매해 한두 번 제주여행을 다녀오게 만들었다. 4·3 역사기행을 신청한 것도 제주를 더 알고 싶어서였다. 수업 장소인 참여연대는 집에서 멀지 않았고, 제주로 1박 2일 간 답사를 다녀오는 강좌가 4월에 열렸으니까, 가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후기를 쓰기에 앞서 한 가지 고백을 하자면, 나는 수업을 듣고 제주4·3에 대해 알게 된 후 역사기행을 포기하고 싶었다. 엄두가 나지 않았다.
1947년 3월 1일 3·1절 발포 사건.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통행금지령 해제. 7년 7개월. 희생자 3만 명. 당시 제주 인구의 십분의 일. 첫 수업 날 노트에 적은 내용이다. 김종민 선생님은 칠판에 연대표를 그리고 당시 기사와 자료, 생존자의 증언을 토대로 4.3의 개요를 짚어 갔다. 얼마나 끔찍한 사건이었는지. 수업 내내 너무 참담해서 마음을 추스를 겨를도 없었다. 몇 년간 사건이 지속됐고 몇 명이 죽었다는, 노트에 적어둔 숫자도 그랬지만 사람들의 증언 때문에 더 그랬다. 생존자 7000명을 인터뷰하고 진상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던 김종민 선생님에게 듣는 4·3은 ‘역사’나 ‘사건’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였다. 가족이 총에 맞아 죽은 일을 길게 증언하는 할머니와 총 맞아 죽은 게 끔찍한 일도 아닌데 뭘 그리 길게 말하느냐 타박하는 옆에 다른 할머니들. 일곱 살에 토벌대에 의해 집이 불 타 가족을 잃고, 그때 가족을 구하지 못한 일을 평생 자책하며 살아온 할아버지. 다른 어떤 설명보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그 한마디에서 떠오르는 그 사람의 삶이 내겐 더 성큼 다가왔다.
<4·3평화공원 위령제단에서 참배 하는 역사기행 참가자들 ⓒ참여연대>
역사기행의 출발은 4·3평화공원이었다. 진상을 알리고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인 만큼 많은 자료와 글을 통해 사건의 참상을 설명하고 있었고, 다랑쉬굴과 제주공항 유해 발굴 현장 등을 재연해 놓기도 했다. 수업을 통해 이미 들은 내용이었지만 다시 보는 일은 수월하지 않았다. 나쁜 일을 두 번 목격하고 겪는 것처럼 더 생생하고 참혹하게 다가왔다. 또 그래서 실감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14,000여 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위패 봉안실에 들어갈 때는 많다, 너무 많다, 는 생각 말고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웅장하리만치 높은 천장까지 빼곡히 찬 위패를 보면서 슬프기보다는 무력감이 밀려왔고, 그건 행방불명자묘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형무소에 사람을 가두고, 죽이고,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그래서 시신을 찾을 수 없다. 생사를 확인할 수조차 없다. 한 명이 아니고, 열 명이 아니고, 삼천구백 명. 전국에서 제주 사람 삼천구백여 명이 그렇게 사라졌다. 행방불명자묘비 사이 기념비석에는 그들이 형무소에서 집으로 보내왔던 편지의 구절이 새겨져 있다. ‘이 편지를 받아보신 즉시 답장하여 주시고 종종 편지하여 주십시오’, ‘사랑하는 옥녀야 나는 네 생각만 나고 있다’, ‘매형에게 부탁하였으니 소와 말을 잘 관리하여 주기를 부탁합니다’ 글귀 앞에서 나는 그들이 편지를 쓸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들이 죽을 거라는 것을 알았을까, 몰랐을까, 헤아려 보았지만 알 수 없었다.
서울에서 진행된 수업 말미에 김종민 선생님은 이런 말을 했다. 많은 사람이 제주로 이주를 꿈꾸고, 제주가 아름답다고 한다. 당시 열 살 소년이 칠십 년이 지나 지금은 여든이 되었다. 가족을 잃은 일고여덟 꼬마가 끈질기게 살아남아 자식을 낳고 폐허가 된 마을을 일으켰다. 아름다운 제주를 만들어냈다. 4·3은 참혹했지만 그 극복의 역사는 자랑스러운 역사이다. 그날 오후 우리가 걸었던 북촌리가 그랬다. 오백여명의 사람들이 하룻밤사이 학교 운동장에서 사살됐고, 한때는 남자가 없어 무남(無男)촌이라 불리기도 했던 마을. 북촌리 우리가 걷던 길에는 4·3유적지 표식과 올레길 표식이 함께 걸려 있었다. 때마침 흔치 않게 날씨마저 좋아서, 그 길을 걸으며 마음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었다. 사람들 사이 조금씩 대화가 오갔고, 표정이 밝아졌고, 웃음을 터트리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제주 북촌4·3길에서 찍은 하늘. 4·3 사건 당시 마을 주민 300여명이 학살 당했지만 이후 주민들은 다시 마을을 재건했다. ⓒ강은주>
영화 <지슬>의 촬영지이기도 한 동광리 큰넓궤는 몇 년 전부터 출입이 통제돼 있었고, 허가가 쉽지 않다고 했다. 만약 큰넓궤에 들어가지 못했다면 나는 4·3을 희생자가 아주 많은 끔찍한 사건으로만 기억했을 것이다. 안내를 맡아준 한상희 제주교육청 4·3담당 장학사는 우리더러 무등이왓 마을 사람들이라고 했다. 초토화작전으로 마을을 잃고 큰넓궤에 은신해 지낸 무등이왓 마을 사람의 역할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한상희 장학사는 등장부터 떠들썩했고, 우리에게 역할을 주고 난 뒤에는 이제 토벌대에게 쫓기고 있으니 빨리 빨리 움직여라, 우리는 다시 나와서 마을을 재건할 거다, 죽으려고 들어가는 게 아니라 살려고 들어가는 거다, 마을 이장처럼 우리를 이끌었다. 그래서 나는, 아마 모두 그 역할에 충실했던 것 같다. 궤는 입구가 너무 좁아서 시작부터 포기하는 사람이 생길 정도였다. 그러나 입구를 지나자마자 통로는 점점 더 좁아져서, 엉금엉금 기어가다 곧 납작하게 엎드려야 했다. 어두워서 손전등을 비춰도 앞이 잘 보이지 않았고, 앞을 보려고 고개를 들면 천장에 머리를 부딪히기 일쑤였다. 헬멧을 쓰지 않았다면 머리를 다쳤을지도 모른다. 새어들어오는 빛조차 없었다. 이유나 원리는 모르겠는데, 한두 사람 뒤에서 혹은 앞에서 불빛을 비춰줄 때가 가장 잘 보였고, 우리는 서로의 빛에 의지해 이동했다. 중간에 내가 우비에 발이 걸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바람에 앞 사람과 거리가 생겼다. 뒤에서 불빛을 비쳐주어도 앞은 어둡기만 할 뿐 아무것도 없었다. 불빛과 앞사람이 모두 있어야 했다. 통로가 좁아 앞으로 가려고 몸부림을 칠수록 숨이 막혔고, 그렇다고 옆으로 비켜날 수도 없어서 이때가 가장 막막했다.
<동광리 큰넓궤 입구. 참가자들이 헬멧을 쓰고 천천히 동굴 입구로 들어가고 있다 ⓒ송명진>
포기하고 싶을 때까지 좁은 통로를 기어가니 다리도 허리도 펼 수 있을 정도로 높고 둥근 공간이 나왔다. 한쪽으로 다시 높은 곳에 이층처럼 공간이 있었는데, 거기가 무등이왓 사람들이 살았던 곳이다. 눕는 건 물론 앉기도 어려울 정도로 돌은 뾰족했지만 그래도 궤에서 가장 ‘쾌적한’ 공간이었다. 비교적 돌의 크기가 가장 작아 땅이 평평한 편이었고, 다리를 펴고, 똑바로 앉을 수도 있었고,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겠지만 마주 앉아 대화도 나눌 수도 있었다. 막상 들어와 보니 상상했던 것처럼 끔찍하다거나 무섭게 느껴지진 않았다. 그냥 그때, 사람이 살던 곳이었다. 밥은 어떻게 먹었어요? 누군가 한상희 장학사에게 물었다. 궤 안에서는 불을 피울 수 없어 한 사람이 밖으로 나가 밥을 해 와야 했다. 당번은 진짜 싫겠다, 진짜 무서웠겠다, 생각하는데 한상희 장학사가 말했다. 가족들, 마을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얼른 해가지고 빨리 가야겠다, 그랬겠지요. 뜻밖의 말이었다. 그곳에서 잠시 묵념을 했고, 모든 불빛을 껐을 땐 눈앞이 정말 새까맸다. 여기가 굴이라는 것도 사람들이 옆에 있다는 것도 알아챌 수 없고 모든 게 사라질 만큼 까맸다. 거기서는 낮도 밤이었고, 온종일 밤뿐이었다. 밤만 지속되는 궤에서 두 달이나 사람이 살 수 있었던 건, 같이 있던 마을 사람들 때문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한 가족만 됐어도 버티기 어려웠을 텐데, 한 마을이, 세 마을이 같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동광리 큰넓궤 끝. 손전등을 끄고 어둠과 정적이 흐르는 동굴에서 당시 주민들의 삶을 떠올려보았다 ⓒ 김수안>
나갈 때는 요령이 생겨서 들어올 때보다 수월했다. 조를 짜서 서로 떨어지지 않게 움직였고, 힘이 들면 같이 쉬었다. 마을 사람들이 밥 기다리고 있는데 이러다가는 전부 굶게 생겼다는 농담도 했다. 기어가는 것도 요령이 생겨서 앞으로만 기지 않고 옆으로도 기었고, 들어갈 때보다 속도가 훨씬 빨랐다. 동굴 입구를 나오면서 우리는 살아남은 사람들처럼 환호했다. 비가 아주 많이 내리는 흐린 날도 아주 밝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우비가 다 찢어지고, 바지도 찢어지고, 신발은 다음날 새로 사야했을 정도로 더러워졌지만 괜찮았다. 비가 너무 많이 오는 탓에 정작 우리 마을인 무등이왓에는 가지 못했지만 점심을 먹는 내내 다들 상기된 표정이었다.
섯알오름에 가서야 잊고 있던 사실을 기억해냈다. 무등이왓 마을은 불 타 전부 없어졌고, 궤 안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죽었다는 사실이었다. 무등이왓 사람들이 사살된 곳이 섯알오름은 아니었지만, 나는 사람들이 눈앞에서 사살되는 장면을 목격하는 것 같았다. 차례로 줄을 서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죽인다. 총살된 사람들은 웅덩이에 무더기로 떨어져 썩어가고 가족들이 시신을 수습을 하러 왔을 땐 팔, 다리, 머리, 몸통만 따로 있고 온전한 시신이 없다. 신원을 구분할 수 없어 큰 뼈를 대충 수습해 안장한다. 섯알오름과 백조일손지묘. 우리가 지나온 곳 중 사람이 끔찍하게 죽지 않은 곳이 없었는데 죽음이 너무 갑작스럽게 느껴졌다. 조금 전까지 사람이 살고 있던 곳에 있다 왔고,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4·3의 모든 죽음이 끔찍하고 참담했지만 삶이 있었다는 걸 알고 난 후 목격하는 죽음은 그 무게가 너무 달랐다. 한상희 장학사는 이동하는 동안에도 4·3 이야기,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 이야기, 살아남은 할머니들 이야기, 마을 이야기, 가족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섯알오름에 다녀온 뒤로는 아무 것도 듣고 싶지 않았다. 버스에서 얼른 내리고 싶기만 했다.
<섯알오름 예비검속 희생자 추모비. 해설사는 늘 희생자들의 나이를 눈여겨 보라고 했다. 어린이들도 학살을 피해갈 순 없었다. ⓒ참여연대>
백조일손지묘를 끝으로 기행은 끝났고, 나는 사람들과 헤어져 남은 일정의 숙소인 바다 앞 옛집으로 갔다. 아주 피곤해서 방에 들어가자마자 곯아떨어질 줄 알았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슨 생각을 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아 어딘가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한 번. 어쩌면 두 번쯤, 낮에 헤어진 사람들을 생각했다. 서울로 잘 돌아갔을까. 제주 숙소에 잘 도착했을까. 자고 있나. 그러나 새벽 네 시가 돼 겨우 잠들 때까지 내가 가장 많이 떠올린 건, 밤이라는 글자와 7000명을 인터뷰한 김종민 선생님과 한상희 장학사였다. 그 사람들은 잠이 안 올 때 어떻게 했을까 궁금하기도 했고, 아까 한상희 선생님 이야기 귀담아 듣고 많이 웃을 걸 싶기도 했다.
기행을 다녀온 지 보름이 지났다. 누군가 제주에 가 살고 싶으냐고 물으면 이젠 쉽게 대답을 못할 것 같다. 한상희 장학사에게 들었던, 가시리와 신흥리에는 꼭 가볼 생각인데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
<제주4·3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 ⓒ강은주>
끝으로 한 가지 더 고백하자면, 제주기행을 떠나기 전 나는 4·3에 관한 이야기를 써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옛집 방문을 닫고 침대에 누우면서 그건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이 상황에서 가장 이해가 안 되는 게 뭐냐 하면. 나는 4·3 이야기를 쓰지 않기로 백기까지 들고 손을 떼려는데, 칠십 년 전에 벌어진 일이 그때는 살지도 않고 우리 가족 누구도 겪지 않은 그 일이, 왜 며칠 전 나한테 일어난 일처럼 여겨지는 건지. 왜 나를 휩쓸고 지나가지 않고 계속 나를 휘감고 있는 건지. 이런 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람들과 말해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