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과 헌법의 인문학] 강좌 세번째 강의에서 최갑수 선생님이 아이티 혁명의 위대함에 대해서 잠깐 언급하셨는데, 관련해서 참고가 되실 수 있는 글을 나눕니다. 이 글은 아이티 대지진 이후 아이티 비극의 역사적 근원에 대해 최갑수 선생님이 참여연대 월간 <참여사회>에 기고하신 글입니다.
위대한 역사를 품은 작은 거인, 아이티
최갑수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지난 1월 12일, 카리브 해 연안의 소국가 아이티Haiti에 규모 7.0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지진의 진앙이 수도인
포르토프랭스에 가까워 사망자만 10만 명을 넘어서는 대참사를 불렀지만, 참으로 우리를 놀랍게 하는 것은 이 엄청난 사태를
수습하는데 정작 아이티 정부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할뿐더러 아예 국가의 존재감을 전혀 보이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흔히 말하는
‘실패국가’의 극단적인 전형이 아닐 수 없다. 가관인 것은 국제사회가 힘을 합쳐 구호활동을 벌여야 하는데도 미국과 프랑스가
꼴사납게 신경전을 벌여가며 주도권 싸움을 불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가 하면 캐나다 퀘벡 주나 브라질이 보이는 남다른 정성이나
베네수엘라 차베스 대통령의 끼어들기도 예사롭지 않다. 무슨 사연이 있기에 대지진 참사는 실패국가-제국주의 경쟁-국제적 유대라는
복합적 현실의 뒤틀린 층위들의 속살을 마치 용암의 분출처럼 드러내 보여주는가? 우리는 아이티 대참사의 비극을 통해 구미세계가
빚어낸 근대세계의 명암을, 아니 차라리 섬광처럼 보이다 사라지기에 평소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추악한 현실의 단면들을 한없는
절망으로 대면하게 된다. 진정 역사의 심연은 그렇게 무섭도록 처연하게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인지!
프랑스혁명과 동시에 발생한 흑인혁명, 최초 흑인신생국가 아이티 아이티가 어떤 나라인지 이제쯤은 낯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이티 하면 혹 ‘진흙 과자’를 먹는 중남미
최빈국에 관한 보도로 아는 이가 있었을 뿐, ‘정보통신기술’을 뜻하는 IT를 연상하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아이티는
참으로 위대한 과거를 가진 영웅국가이며, 근대성의 모든 요소들을 실험하고 변용하고 또 그 희생자가 되어 스스로 형극의 길을 걸어온
‘작은 거인’이다. 아이티의 역사는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결정적인 전환점이 프랑스혁명과 거의 동시기에 발생한
아이티혁명(1791∼1803)과 최초의 흑인신생국가 아이티의 탄생(1804년 1월 1일)이다. 이 앞 시기는 콜럼버스의
상륙으로부터 에스파냐와 프랑스의 식민지로 떨어지는 3세기에 걸친 식민시기이고, 뒤의 시기는 구미열강의 배제와 차별 속에서 꿋꿋이
버티다가 결국 미국의 사실상의 식민지로 전락한 독립시기이다.
20살도 못사는 노예들 ‘생도맹그 잔혹사’ 식민시기에 아이티가 겪은 역사적 행로의 대략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발견을 영유권의 근거로 삼는 유럽식 근대질서의 논리에 따라
아이티는 히스파니올라의 일부로서 에스파냐령이 되었다가 1697년에 그 서쪽의 1/3(한국의 경상도만한 크기)이 프랑스령이 되어
‘생도맹그’라는 이름을 가졌고 이후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다. 둘째, 이런 과정에서 적어도 3백만 명의 원주민이 사실상 전멸했고
프랑스의 식민지 경영으로 아프리카로부터 수입된 흑인노예들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했다. 셋째, 18세기 후반에 들어 생도맹그는 유럽
식민지 가운데 가장 번영하여서 혁명 직전 프랑스 대외교역의 거의 2/3를 차지했고, 설탕, 커피, 원면의 유럽 소비량의 절반을
공급했다. 대농장주들은 강력한 이해집단을 형성했고, 삼각무역에 입각한 유럽의 대서양교역은 효율적인 작동을 위해 인종주의라는 새로운
형태의 배제와 차별의 원리를 빚어냈다. 넷째, 대서양 노예제의 본질은 대농장에서 열대작물을 키워 수확하는데 최소의 비용으로
노예노동을 극대화하여 최대의 이윤을 창출하려는 극단적인 노동착취와 이로 말미암은 인신파괴이다. 생도맹그의 경우, 노예의 평균
수명이 20세를 넘지 못했으니 이들의 여건이 얼마나 악랄한 것이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노예들의 지속적인
수입이 불가피했을 뿐만 아니라 노예 가운데 아프리카 태생의 비율이 매우 높았다. 프랑스혁명 직전의 생도맹그에서 백인이
30,800명, 자유유색인은 24,800명인 반면에 흑인노예는 전 주민의 90%에 육박하는 50만 명 정도였고 이 가운데 아프리카
태생은 60∼70%에 달했다. 다섯째,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이 아프리카 태생의 노예들은 대부분 전사 출신이고 독자적인 문화와
전투능력을 지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흔히 이들이 혁명을 일으키는 데 계몽사상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강조해왔는데, 최근에는
이들이 고유한 정치문화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양자가 결합하여 크레올어를 매개로 하는 ‘노예 계몽사상’, ‘흑인
공공영역’이 형성되었고, 이것이 혁명의 바탕이 되었다.
노예들은 무감각한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프랑스혁명과의
동시성을 들어 흔히 아이티혁명을 그 아류로 간주한다. 서방의 교과서류는 아이티혁명에 대해 아예 언급하지 않거나 언급하더라도 그
역사적 중요성을 평가절하 한다. 하지만 아이티혁명은 프랑스혁명의 영향은 받았지만 그것에 못지않은 위대한 혁명이다. 프랑스혁명의
위대성을 운위할 때에 일반적으로 그것이 미국혁명과는 달리 노예해방과 노예제의 폐지를 이룩했음을 지적하는데, 사실 생도맹그에서
노예반란이 없었다면 국민공회는 대농장주들의 이익을 침해하면서까지 1794년 2월 4일에 그런 일을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현지에
파견된 혁명당국의 판무관이 영국과 에스파냐의 침공에 맞서 생도맹그를 지키기 위해 군복무를 대가로 반란노예들에게 자유를 주었던
것이고, 혁명의회는 이를 추인한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노예흑인들은 독자적인 전투능력을 지녔다. 이들은 주변의 영국이나
에스파냐와 같은 열강들을 제압했을 뿐만 아니라 당대 최강인 나폴레옹의 정예군도 물리쳤다.
유럽열강들 군대 물리친 5만의 흑인군 우리는 아이티혁명의 조숙성에 주목해야 한다. 아이티가 세워진 1804년은 유럽에서조차 근대성이 막 형성되기 시작하던 시기로, 이른바
근대화의 본보기랄 것도 없었고 그것을 이론화할 만한 사회과학은 아직 태동기에 머물고 있었다. 유럽의 우위라고 하는 것도 아직
이렇다 할 실체성을 가지지 못했다. 그러기에 5만의 흑인 군대가 유럽 열강의 군대를 차례로 물리칠 수 있었고, 아프리카의
게릴라전술과 유럽의 기병과 보병 연합전술을 함께 구사했던 혁명의 영웅 투생 루베르튀르Toussaint Louverture는
나폴레옹과 비교하여 조금도 뒤지지 않는 당대 최고의 군사전략가였다.
생도맹그의 노예흑인들이 인신해방과 궁극적으로
정치적 독립을 이룩해냈을 때, 이들이 택한 국호는 소멸한 원주민들이 사용했던 원지명인 ‘아이티’(‘산악이 많은 지방’이란 의미)
였다. 아프리카 출신의 노예들이 아이티를 새로운 정체성의 근거로 택했음은 이들이 당시 대서양 세계의 인종계서제의 같은 하층에 처해
있던 원주민들Amerindians과 공감대를 지녔음을 말해준다. 1810∼1820년대 라틴아메리카 혁명의 주역인
볼리바르Simon Bolivar가 두 번씩이나 아이티로 피신하고 당시 아이티의 대통령인 페티옹이 어려운 여건에서도 그를 지원했음은
혁명의 수출이라는 이데올로기 차원과 함께 중남미 특유의 국제적 유대감이 이미 형성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국제사회 떨게한 흑인노예해방 메시지 신생 아이티에게 가장 중요한 국내문제는 내전과 혁명의 와중에서 폐허가 된 경제를 어떻게 재건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크게 두 노선이
경합했는데, 하나는 식민지 시기의 대농장체제를 재건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토지를 광범위하게 분배하여 소농체제를 새롭게
구축하는 것이었다. 계급적인 성격을 갖는 이 논쟁에서, 크게 보아 아프리카 태생의 노예병사 일반이 소농체제를 선호했다면, 현지
태생의 물라토나 해방노예들은 집단 강제노동을 전제하는 대농체제가 그대로 유지되기를 원했다. 양 세력의 갈등과 대립이 독립 이후의
잦은 정변의 근본 요인이며, 소농체제론은 토지개혁을 요구하는 것이어서 혁명적 전통의 운반체 역할을 했다. 우리는 19세기 말까지도
비유럽세계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유럽의 농민들조차 대부분이 예속상태에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이티의 해방노예들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유를 지키기 위한 신생 경제의 건설을 고민하고 또 일정 수준에서 이룩했으며, 이는 당시의 세계사에서 결코
작지 않은 성취였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이런 아이티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아이티는 노예들이 최악의 조건에서
엄청난 희생(최소한 5만 명)을 치러가면서 당시 대서양 세계의 최강대국들을 물리쳐 세운 최초의 국가이다. 그것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노예제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만이 아니라 기존의 모든 국가들에게 위협이었다. 노예해방의 메시지는 노예제를 유지하는 사회적 비용을
엄청나게 끌어올려 결국 그것의 폐지를 이끌어냈을 뿐만 아니라 예속상태에 머물러 있던 모든 나라의 하층민을 자극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그 노예가 흑인이라는 점이다. 이는 자본주의 세계질서를 떠받치는 버팀목의 하나인 인종주의를 부정하는
‘상상할 수도 없는’ 사실이었다. 사정이 이렇기에 서방의 학계는 노예혁명이 터졌을 때부터 두 가지 배제와 차별의 전술을
구사해왔다. 하나는 그런 사실 자체를 묻어버리는 ‘침묵의 카르텔’이다. 오늘날까지도 구미의 교과서를 비롯하여 모든 개설서들은
아이티혁명에 대해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그런 사실의 현존을 부정할 수 없는 전문가들은 ‘평범화 전술’을 구사한다. 이들은 이
우렁찬 혁명이 있었음을 외면할 수 없기에 그 의미를 평가절하 하여 날카로움을 지워버리려고 한다. 이는 예컨대 프랑스의 좌파
역사학에도 해당한다. 그러기에 이들은 프랑스혁명이나 ‘백인 계몽사상’의 영향이나 혁명 과정에서 백인들이 행한 역할을, 그리고
아이티가 독립 이후에 오히려 더 빈곤해졌음을 강조한다. ‘그러면 그렇지! 흑인국가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하면서 말이다.
철저하게 기획된 아이티의 비극 우리는 실제로 아이티가 ‘실패국가’의 본보기가 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 나라는 중남미 최빈국이다. 오늘날 문맹자의 비율이 전
국민의 절반을 넘고 80%가 기아선상에서 허덕인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현실의 이면과 숨겨진 역사 속에서 아이티의 비극이 철저하게
의도되고 기획된 결과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최초의 성공한 노예혁명과 흑인국가는 그 휘광만큼이나 철저하게 망가져야 했다.
참으로 그것은 자본주의의 생존과 구미 중심의 세계질서 유지를 위해 실패국가의 전형이 되어야 했고, 또 실제 그렇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국제질서의 작동방식에 주목해야 한다. 아이티는 1804년에 독립하면서 국제적으로 고립됐다. 대서양 세계의 패권을
장악했던 백인 구미 국가들은 누구도 이 신생 흑인국가를 외교적으로 국가로서 인정하지 않았다. 그 정도가 아니라 혁명의 수출을
두려워하여 경제제재 조치를 취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실제로 아이티는 1822년에 같은 섬에 있는 에스파냐의 식민지인
산토도밍고(오늘날의 도미니카 공화국)를 침입하여 노예제를 종식시켰다. 19세기 전반기에는 식민 본국이었던 프랑스가 아이티에 대한
각종 압력을 주도했다. 프랑스는 1838년이 되어서야 아이티를 무조건적으로 승인하게 되는데, 아이티는 프랑스 대농장 소유주들의
‘손실’을 보상하기 위해 1억 5천만 프랑을 지불하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바꿔 말하면 가난한 신생국가는 출발부터 막대한 금액의
부채를 짊어져야 했고, 이는 두고두고 아이티에 부담이 되었다. 다른 나라들의 승인이 뒤따랐음은 물론이다. 노예제 국가인 미국은
이런 국제적 행렬에 낄 수 없었다. 미국이 아이티를 승인하게 되는 것은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2년에 이르러서였다.
먼로주의와 인도주의 앞세운 미국의 점령 19세기 후반이 되면 아이티는 프랑스의 놀이터에서 열강, 특히 미국과 독일의 각축장으로 바뀌었다. 미국은 19세기 말에 쿠바로부터
관타나모를 장악하고, 윈드워드 해협의 건너편에 있는 아이티에 개항장을 장악하기 위해 해병대의 상륙을 시도하기도 했다. 프랑스,
미국, 독일 자본들이 아이티 지배층을 장악해 들어갔고 1843∼1911년 사이에 대통령이 된 16명 가운데 11명이 민중에 의해
권좌에서 쫓겨났다. 아이티는 여전히 건강한 혁명의 활력을 지녔던 것이다.
20세기가 되면서 아이티는 미국의 놀이터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1911∼1915년이 결정적인 시기였다. 이 시기에 미국 자본의 승리가 확정되는데, 다섯 명의 대통령 가운데
한 사람은 대통령궁에서 폭사하고 다른 한 명은 독살되고 나머지 세 명은 혁명으로 쫓겨났다. 마지막 대통령인 삼V. G. Sam은
프랑스 공사관으로 피신했다가 무참하게 살해당했다. 민중의 저항을 제압하고자 미국은 아예 1915년 7월에 아이티를 군사적으로
점령했다. 미국의 자본가들은 즉각 중앙은행인 ‘아이티 은행’을 장악했고, 아이티는 미국의 보호국, 사실상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미국은 이런 범죄행위를 저지르면서 뻔뻔스럽게도 ‘먼로주의’와 ‘인도주의’를 앞세웠다.
이후 20세기 아이티의 역사는
미국의 직, 간접의 점령과 개입, 이로 말미암은 만성적인 정정의 불안, 뒤발리에Duvalier 부자의 30년에 걸친
무단독재(1957∼1986), 하지만 그런 속에서도 끊임없는 민중의 저항과 두 차례에 걸친 민중 신부
아리스티드Jean-Bertrand Aristide의 대통령 당선과 미국이 지원한 쿠데타로 인한 망명으로 점철된다. 현재 대통령인
프레발은 2세기가 넘는 아이티의 역사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되어 임기를 제대로 채운 두 번째 대통령으로서 민중의 상당한 지지를
받았지만, 현재 많은 아이티 인들은 아리스티드의 귀환을 바라고 있다.
과연 아이티는 대지진의 참사로부터 되살아 날
것인가? 아이티가 이보다도 더 어려운 여건에서도 새 나라를 만들고 끊임없이 민중의 활력을 되살려 왔음을 아는 우리로서는 아이티의
재생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인간성에 대한 신뢰, 이것이 아이티 역사의 교훈이기 때문이다.
복지가 화두다. 6.2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이 아젠다로 떠올랐다. 온 나라가 정의, 공정사회 타령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 바로 그 중심엔 복지가 있다. 복지가 진보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여야가릴 것 없이 모두 ‘복지’ 이야기들 뿐이다. 강력한 차기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조차도 복지를 강조한다, 그렇다. 2010년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은 복지이다.
오늘은 정태인 前청와대경제비서관의 강연이었다. 강의 주제는 시장, 국가 그리고 복지였다. 경제학자답게 경제이론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다. “인간은 이기적이지 않다.” 그의 첫마디였다. 주류경제학의 기본전제를 뒤집는 명제였다. 그 뒤 이어진 최후통첩게임과 독재자게임으로 이 명제가 어느 정도 증명이 됐다. 이 부분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우리 인간들은 의외로 이기적이지 못했다. 그 뒤 이론적 설명으로 인간의 협력을 위한 5가지 조건. 혈연선택, 직접상호성, 간접상호성, 네트워크상호성, 집단선택에 와선 더 명확해졌다.
또한 신자유주의 이후 종교가 된 ‘시장’에 대한 한계점도 명확히했다. 외부불경제와 수요곡선에서 배제된 이들이 바로 시장의 근본적 한계점이라는 것이다. 즉, 시장이 실현되는 부분만을 시장이 해결해 줄 뿐 균형점의 오른쪽 아래에 위치해 시장이 실현되지 않는 부분, 즉 돈이 없는 이들은 절대 시장이 해결해 주지 않는다. 아니 시장은 이들을 배제한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의 빈곤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국가의 한계점도 지적했다. 바로 현실사회주의의 실패가 그것이다. 정보의 왜곡으로 인해 국가주도의 경제 또한 대안은 아니었다.
그럼 방법이 무엇인가? 정태인 전비서관은 국가의 복지시스템과 시장시스템의 조화와 더불어 사회경제를 제시했다. 쉽게 말해 ‘협동조합’이 그것이다. 이탈리아의 연대경제, 프랑스의 시민경제 특히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의 예는 부럽기까지 했다. 바로 이 사회경제가 국가와 시장사이의 간극을 메울 수 있다. 한국에서는 의료와 교육 분야를 사회경제를 통해 해결할 수도 있다. 상당히 신선한 이야기였다. 그동안 시장, 국가 이데올로기의 흑백에선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이번 강의는 복지를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었다. 시장과 국가를 넘어선 사회경제가 바로 그것이라 하겠다. 시장과 국가는 한계점이 있으며 인간은 이기적이지 않다. 이 말을 마음에 새겨본다.
10월 7일 개강한 [자녀와 부모가 함께 행복해지는 길] 강좌가 이제 중반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내일(11/4)은 "공부, 얼마만큼 잘 해야 할까" 라는 제목으로 포도재무설계 이광구 이사님이 강의를 해 주십니다.
이광구 선생님은 재무설계 상담을 하면서, 많은 가정이 막대한 사교육비를 지출하면서도 부모와 자녀 모두 마음고생을 하는 실상을 많이 보아왔다. 사교육비를 들이지 않고도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하면서, 자신의 진로를 찾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고민하고 실천해오고 있습니다. 자녀들의 개성에 맞게 첫째는 대안학교, 둘째는 과학고, 셋째는 일반학교에 보내고, 키운 이야기를 담은 <희망교육 분투기>라는 책을 내기도 하였다.
첫째는 대안학교, 둘째는 과학고, 막내는 일반 학교…….
세 아이를 모두 다른 학교에 보낸 강화도 세 남매 아빠의 ‘다양성 교육’ 이야기
중학생인 막내가 ‘My(마이)’는 왜 주격이 될 수 없느냐고 물어도 답답해하지 않고, 큰딸이 초등학교 입학을 코앞에 두고도
한글조차 몰랐을 때도 딱히 불안하지 않았다. 걷기 시작할 때부터 영어 유치원이다 뭐다 온갖 사교육을 시키는 부모들과는 천양지차. 이
아빠,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아이들을 키우는 걸까?
이 책은 보통 부모들과는 ‘조금 다른’ 생각을 지닌 간 큰 아빠 이광구가 강화도에서 세 남매를 키우면서 쓴 교육 에세이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돈 잘 버는 직업을 가지며 흔히 말하는 ‘주류’로 사는 것보다 먼저 사람답게 키우기, 자신이 행복한 일을
하면서도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자신만의 자녀교육 철학을 바탕으로 공부보다는 생활의 기술,
살림의 지혜를 가르치면서 세 아이를 키운 과정을 솔직 담백하게 묶어낸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아이가 가지고 있는 재능과 적성을
‘진정으로, 있는 그대로’ 인정해준다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다.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난 아이들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달라도 너무 다른 세 남매와의 일상 속 에피소드, 누구나 우러러보는
서울 법대를 제 발로 뛰쳐나와 희망교육에 투신하게 되기까지의 사연, 자식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시행착오, 아이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울고 웃고 화내고 즐거웠던 기억, 세 아이들과 지지고 볶으며 사는 이야기를 엿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자, 한번 솔직하게 말해보자
당신은 정말 ‘아이가’ 행복하기를 바라고 있는가?
대한민국 부모들은 바쁘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한글은 당연히 떼야 하고 기본적인 영어회화와 덧셈, 뺄셈, 구구단
정도는 미리 가르쳐야 한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피아노에 태권도에 미술까지 시켜야 한다. 남에게 뒤처지지 않는 아이, 반에서 가장
주목받는 아이, 발표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고 사교성도 뛰어나고 반장도 하는 아이가 되어야 커서도 돈 잘 벌고 남들에게 지시하는
자리에 올라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어떻게 하면 아이가 공부를 더 잘할 수 있을지 늘 촉각을 곤두세운다.
대한민국 부모들은 고민한다. 상급 학교에 진학할수록 아이가 자신의 여러 가지 장점을 키우고 발휘하는 대신 성적으로만 평가받고,
그에 따라 자신의 가치까지 결정지어져 상처받고 좌절하는 아이를 지켜보면서 ‘과연 무엇이 더 중요한가?’라는 고민을 심각하게 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아이는 그림을 잘 그리고 유머 감각이 뛰어나고 남을 잘 돕는데, 공부 하나...
“1등을 하지 않아도 괜찮아.
스스로 이 세상을 신나게 살아갈 수만 있으면 돼!”
오늘도, 내일도, 10년 뒤에도 행복한 아이를 위한 교육 지침서
첫째는 대안학교, 둘째는 과학고, 막내는 일반 학교…….
세 아이를 모두 다른 학교에 보낸 강화도 세 남매 아빠의 ‘다양성 교육’ 이야기
중학생인 막내가 ‘My(마이)’는 왜 주격이 될 수 없느냐고 물어도 답답해하지 않고, 큰딸이 초등학교 입학을 코앞에 두고도
한글조차 몰랐을 때도 딱히 불안하지 않았다. 걷기 시작할 때부터 영어 유치원이다 뭐다 온갖 사교육을 시키는 부모들과는 천양지차. 이
아빠,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아이들을 키우는 걸까?
이 책은 보통 부모들과는 ‘조금 다른’ 생각을 지닌 간 큰 아빠 이광구가 강화도에서 세 남매를 키우면서 쓴 교육 에세이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돈 잘 버는 직업을 가지며 흔히 말하는 ‘주류’로 사는 것보다 먼저 사람답게 키우기, 자신이 행복한 일을
하면서도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자신만의 자녀교육 철학을 바탕으로 공부보다는 생활의 기술,
살림의 지혜를 가르치면서 세 아이를 키운 과정을 솔직 담백하게 묶어낸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아이가 가지고 있는 재능과 적성을
‘진정으로, 있는 그대로’ 인정해준다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다.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난 아이들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달라도 너무 다른 세 남매와의 일상 속 에피소드, 누구나 우러러보는
서울 법대를 제 발로 뛰쳐나와 희망교육에 투신하게 되기까지의 사연, 자식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시행착오, 아이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울고 웃고 화내고 즐거웠던 기억, 세 아이들과 지지고 볶으며 사는 이야기를 엿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자, 한번 솔직하게 말해보자
당신은 정말 ‘아이가’ 행복하기를 바라고 있는가?
대한민국 부모들은 바쁘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한글은 당연히 떼야 하고 기본적인 영어회화와 덧셈, 뺄셈, 구구단
정도는 미리 가르쳐야 한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피아노에 태권도에 미술까지 시켜야 한다. 남에게 뒤처지지 않는 아이, 반에서 가장
주목받는 아이, 발표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고 사교성도 뛰어나고 반장도 하는 아이가 되어야 커서도 돈 잘 벌고 남들에게 지시하는
자리에 올라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어떻게 하면 아이가 공부를 더 잘할 수 있을지 늘 촉각을 곤두세운다.
대한민국 부모들은 고민한다. 상급 학교에 진학할수록 아이가 자신의 여러 가지 장점을 키우고 발휘하는 대신 성적으로만 평가받고,
그에 따라 자신의 가치까지 결정지어져 상처받고 좌절하는 아이를 지켜보면서 ‘과연 무엇이 더 중요한가?’라는 고민을 심각하게 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아이는 그림을 잘 그리고 유머 감각이 뛰어나고 남을 잘 돕는데, 공부 하나만으로 평가하는 학교에서 아이는
작아지고, 주눅 들고, 위축된다.
이제 솔직하게 말해보자. 아이가 공부를 잘하고 명문대를 졸업해 돈 잘 버는 직업을 갖기를 바라는 것이, 가계부를 볼 때마다 한숨을
쉬면서도 학원과 과외를 끊지 못하는 것이, 정말로 아이가 행복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인생을 살길 바라서인가? 그 앞에 ‘이왕이면
남들 보기에도 그럴싸하고 부모 체면도 세워주는’ 이라는 조건을 붙이지는 않는가? 아이가 즐겁고 행복한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명문대 타이틀과 돈 잘 버는 직업을 가지기를 바라는 두 가지 바람을 모두 지닌 대한민국 부모들. 그래서
더욱 사교육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 부모들에게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이제는 어떤 부모가 될지를, 아이에게 어떤 교육을
시켜야 할지를 생각해야 할 때다. 서울대 법대생 → 자퇴 후 학생운동 → 대기업 직장인 → 재무설계사 → 희망교육 전도사…….
범상치 않은 아빠의 예사롭지 않은 ‘자녀교육 이야기’
이 책의 저자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서울대 법대를 일찍이 제 발로 뛰쳐나온 이력을 가지고 있다. 자퇴 후에는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매진했고, 새로운 형태의 노동자 협동기업을 시도하다 망한 후 강화도로 이사 와 14년째 살고 있다.
학교를 그만둘 때, 강화도로 이사할 때 사람들은 그를 보고 ‘후회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해본 적이 없다. 자신이 하고 싶어서 내린 결정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러한 철학은 자녀교육관과도 맞닿아 있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들의 재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그것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지, 아이들의 학교, 전공, 직업을 대신 선택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학교를
그만두고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뛰어든 것, 강화도로 이사하기로 한 것이 오로지 자신의 결정이듯, 세 아이 또한 자신의 앞길을
스스로 선택해서 살아가기를 바라고, 또 모든 아이들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저자가 범상치 않은 세 남매와의 일상 속 에피소드에서 느끼고 깨닫는 보석 같은 자녀교육
철학과 지침, 노하우를 담고 있다. 공부는 못해도 정리정돈 하는 버릇은 어릴 때부터 들여야 한다, 중학생이 되면 자기 밥은 자기가
차려 먹고, 자기 빨래는 자기가 챙겨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하는 아빠와 아이들 사이의 실랑이, 저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와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지내온 젊은 시절, 강화도로 이사하게 된 계기와 강화도에서 사는 모습 등 저자의 일상과 솔직한 생각들을 꾸밈없이
드러냈다.
2부는 큰딸 나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중, 고등학교를 대안학교로 다니고, 졸업 후에는 대학 진학 대신 사회적 기업에서 80여만
원을 받으며 씩씩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나리는, ‘겁 없는 아가씨’라는 아빠의 표현처럼 참으로 야무지고 당돌한 아이다.
친구들과 다른 길을 가는 것이 때로는 두려울 때도 있지만, 언제나 자신의 선택을 믿고 지지해주는 부모님 밑에서 자란 덕에 당차게
자신의 뜻을 펼쳐가고 있다.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대안학교에 입학하느라 고군분투했던 이야기부터 시골 학교에서 치른 반장 선거
유세, 책을 읽고, 토론하고, 여행하고, 보고서를 만들고, 발표회를 준비하며 보고 듣고 느끼고 깨닫고 성장해가는 과정들을 엿볼 수
있다. 대안학교에 관심이 있거나 자녀의 대안학교 입학을 고려하고 있는 부모들에게 특히 도움이 될 것이다.
3부에서는 과학고에 진학한 둘째아들 온달이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온달이는 어렸을 때부터 친구들과 어울리는 대신 혼자 조용히 지내는
것을 좋아해 혹시 자폐 증상이 있거나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우려하기도 했지만,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 나중에는
좋은 공부 습관을 들이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아이가 활발하고 친구들 사이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기를 바라는 부모들, 반장이나
전교회장 같은 타이틀(?) 욕심이 많은 부모들에게, 아이가 내성적이고 사교성이 떨어지는 것이 무조건 걱정할 일만은 아니라는 점을
온달이를 통해 알 수 있다.
막내 보리의 이야기를 소개한 4부는 독자들이 가장 주목할 부분이기도 하다.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이 책의 집필 의도를 ‘보리 같은
평범한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라고 밝혔듯이, 보리야말로 우리 주변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보통 아이기
때문이다.
여느 집 같으면 잘난 언니와 오빠의 그늘에 가려 자신감 없고 소극적으로 자랄 경우가 많지만, 이 집에서는 막내가 고집도 제일 세고
목소리도 가장 크다. 책 한 권을 잡아도 이 방 저 방 왔다 갔다 하며 공부하고 무엇 하나를 배워도 진득하게 끝내지를 못하지만,
아빠는 아이가 집중을 못한다고, 끈기가 없다고 야단치지 않는다. 자기가 쓴 물건을 제자리에 두지 않을 때만 혼을 낼 뿐,
친구들보다 이웃집 동생들과 잘 노는 모습을 보고 ‘커서 유치원 선생님이 되면 딱이겠다.’라며 아이의 개성과 성향을 존중하는 저자를
통해, 부모가 흔들리지 않고 아이를 믿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5부에서는 저자가 최근 5년간 재무설계 상담을 했던 경험을 살려 자기만의 독특한 자녀교육관을 펼치고 있다. 일반적인 재무 상담이
‘어떻게 하면 고객을 부자로 만들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저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고객이 망하지 않게’ 하는 데
주력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많은 돈을 벌 확률은 매우 낮고 위험률이 높기 때문에 실패하는 경우가 태반이지만, 자신의 형편에 맞게
재테크를 하면 최악의 상황만큼은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잘 되면 좋고 안 돼도 딱히 손해 볼 일은 없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가정 경제를 지키는 최적의 방법이라는 것. 이 원칙을 자녀교육에 빗대면 ‘아이가 명문대를 가면 좋고, 설령 못 가더라도 삶을
재미있고 긍정적으로 살 수 있으니 딱히 나쁠 건 없다.’가 된다.
이처럼 교육의 모든 기준을 ‘아이의 행복하고 건강한 삶’에 맞추는 것. 이것이 저자가 생각하는 진정한 교육이자 진정한 부모
역할이다. 아이를 앞에서 잡아끌기보다 뒤에서 묵묵히 지켜봐주는 부모, 사회가 규정한 틀 때문에 좌절하지 않도록 기다려주는 부모,
학교에서 들이대는 잣대를 똑같이 들이대지 않고 다른 장점을 이끌어내는 부모, 다른 집 아이와 비교하지 않는 부모, 실수해도
“괜찮다”고 말하며 격려해주는 부모, 아이가 자신의 인생을 당당히 살 수 있도록 독립심을 길러주는 부모, 최고가 되어 혼자 잘사는
것보다 남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함을 몸소 보여주는 부모, 아이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부모, 존경받는 부모, 옳고 그름을
일깨워주면서도 구속하지 않는 부모가 되고 싶은 저자의 다짐이 페이지마다 녹아 있다. 공교육이 무조건 썩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안학교만이 희망이라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특목고가 마냥 입시 열풍을 조장한다고 비판하지도 않는다
아이에게 맞는 학교, 아이가 원하는 학교로 보내면 된다
세 아이의 프로필을 보고 어떤 독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뭐야? 둘째는 과학고에 보냈잖아. 셋 중에 하나라도 성공했으니 저런 한가한 소리를 하는 거지.’
하지만 책을 읽어보면 그런 생각이 오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른 교육서들과 달리 저자는 공교육에서 더 이상 희망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안학교만이 살 길이라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특목고가 입시 열풍을 조장한다고 무조건 비판하지도 않는다.
모든 아이들이 대안학교에 다닐 필요도 없고, 홈스쿨링을 할 필요도 없다. 아이의 성격과 특성에 맞는 학교라면 어디든 상관없다.
아이가 즐거워하고 흥미를 보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것이 저자의 교육관이다. 나리의 호기심, 탐구심 많고 정의감에 불타는 성격이
대안학교와 잘 맞았고, 온달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유독 수학에 대한 호기심이 크고, 높은 수준의 학문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기에
과학고에서 빛을 발휘한 것이며, 보리는 일반 학교에서도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하지 않고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기에 일반 학교로
진학시킨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아이의 의사를 듣는 것은 필수고, 최종결정 또한 아이가 내린다. 어느 학교를 보내든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가 잘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다르지 않기에 부모라면 꼭 한 번은 생각해보아야 할 것들, 부모로서 갖추어야 할
교육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는 것. 그것이 저자가 책을 통해 하고 싶은 진짜 이야기다. 경쟁에 지친 아이와 불안감에 사로잡힌 부모들에게
즐거운 교육, 행복한 삶을 사는 또 하나의 방법을 제시하다
저자는 “자기 아이를 창의적으로 키우고 싶어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막상 행동으로는 옮기지 못하는 부모들이 많다.”고
안타까워한다. 아이의 선택에 일일이 간섭하고, 심지어 어떤 옷을 입고 무슨 과목을 공부할 것인가까지 하나하나 결정해주는데 무슨
자발성이 생기고 창의력이 길러지겠느냐는 것이다. 아이가 부모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어린 시절엔 맞벌이를 하느라 관심조차 가지지
않으면서, 정작 부모에게서 독립할 준비를 해야 하는 청소년기엔 일일이 신경을 쓰고 간섭을 한다며 저자는 요즘 부모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물론 이 책에 담긴 내용들이 정답은 아니다. 하지만 입시 중심의 교육 방법과,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활개를 치는 사교육 시장
속에서 ‘꼭 이렇게까지 해서 키워야 하나’, ‘좀 편안하게, 다르게 키울 수는 없나’ 하는 생각을 해본 부모라면, 이 책을 통해
“이렇게 키울 수도 있구나.” 하는 희망과 위안을 얻고, 나는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지 고민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무슨 일을
하는 사람’으로 키울까가 아니라 ‘어떤 사람’으로 키울지 고민하고, 부모 스스로도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지 다시 고민해야 할
시점에서 이 책은 다른 길을 제시하는 또 하나의 나침반이 될 것이다.
요즘 ‘복지’혹은 ‘복지국가’라는 말들을 여기저기에서 심심찮게 많이 듣게 된다. 그러나 사회복지를 전공하지 않은 일반 시민들이 느끼는 ‘복지’라는 것은 정치권에서 얘기하는 의미와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이번에 참여연대에서 진행하는 ‘시민, 복지국가를 꿈꾸다’라는 6개의 강좌 하나하나가 모두 내가 개인적으로 의문을 가졌던 사항들이었으나 그런 생각을 른 사람과 공유하거나 들어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이번 느티나무 강의는 강의가 진행될수록 재미가 더해지는 것 같다. 물론 그만큼의 고민도 숙제처럼 늘어가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18일 첫 번째 강의가 보편적 복지국가에 대한 개념에 대해 이해하고 모두가 함께 문제에 대해 공유하고 또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면 이번 두 번째, ‘한국은 어떻게 복지국가로 갈 것인가?’에 대한 김연명 교수님 강의는 최근 학계에서 ‘한국’에 대해 바라보는 시각과 함께 다양한 복지국가의 형태 및 한국이 복지국가로 발전하기 위한 좀 더 구체적인 사항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는 그런 시간이었던 것 같았다.
기본적으로 복지에 대한 관심은 있었으나 지식이 굉장히 얕았던 나로써는 한국이 이미 복지국가에 들어선 것으로 봐야한다는 시각과 다양한 형태의 복지국가 형태 및 우리나라의 현재 위치 등에 대한 내용은 굉장히 새로웠다. 특히 우리나라가 단순히 경제성장위주의 생산주의 복지국가에서 벗어나기 위해 넘어야할 장애물들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중남미식의 선택주의적 직역주의(소득이 낮으면 복지혜택을 받을 수 없는 복지수혜 양극화)로 변질될 수 있다는 사실에는 정말 위기감을 느꼈다.
활발한 시민/민중운동을 통해 과거 한국의 복지정책들이 구체적으로 현실화되어 왔다라는 부분에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이 제시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복지국가로 한발 더 나아가기 위해 책임감 있는 논의와 지속적인 대안제시가 있어야 한다는 점 또한 해결해야할 숙제로 남은 것 같다.
우리사회가 가지고 있는 복지관련 사안들을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완전하진 않겠지만 조금은 객관적으로 보게 된 것, 그리고 그 시각 속에서 또 다른 희망을 발견하게 된 것, 그것이 이번 강의를 통해 얻은 큰 소득이 아닐까 싶다.
어제(10/21) 느티나무에서는 [자녀와 부모가 함께 행복해지는 길] 세번째 강의가 있었습니다. 김찬호 선생님이 강의해주신 주제는 '소통의 어려움과 즐거움'이었습니다. 우리가 일상속에서 가족간에 나누는 대화를 돌아보며, 왜 소통이 어려운지, 소통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무엇인지, 소통의 기술을 넘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짧은 시간의 강의와 나눔만으로 소통의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지요 김찬호 선생님께서 소통과 관련해서 추천하신 두 권의 책을 아래에 소개합니다. <비폭력 대화>를 우선 추천해 주셨습니다만, <대화의 심리학>의 경우에는 업무나 협상과 관련한 소통에 있어서도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입니다.
6.2지방선거를 통해 복지는 정치적 화두로 떠올랐고, 그 이후 복지국가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민주주의와 진보, 한국사회의 바람직한 발전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복지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상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복지국가는 어떤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과 결부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진보의 것만은 아니고, 보수의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복지국가에 대한 논의가 더욱 필요하다. 이러한 취지에서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는 ‘시민, 복지국가를 꿈꾸다’라는 주제로 6주간 복지국가 강좌를 준비했고, 그 첫 번째 시간으로 인하대학교 윤홍식 교수가 '보편주의 복지국가'를 주제로 강연을 진행하였다.
강연의 시작부분에서 복지국가의 역할이 확대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1,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 초기 복지국가의 모습은 노동시장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위험에 대응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면, 1970년대 이후 오일쇼크, 산업구조의 변화를 거치면서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가 이루어지고, 여성이 가지고 있던 돌봄의 기능에 대해서도 국가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즉, 과거에는 자본과 남성의 타협만이 주된 관심이었지만, 70년대 이후는 남성과 여성, 여성과 자본의 관계를 어떻게 타협할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를 통해 복지국가의 관점이 확대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러한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대해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서구의 경우와 다르게 우리나라의 경우 두 가지 위험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복지국가가 나타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6.2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을 필두로 복지가 쟁점이 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물론 이것은 보편주의 복지국가를 실현하자는 것이 아니라, 온정주의적 정서가 작용했다고 봐야한다. 여전히 사람들은 보편주의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하지만 무상급식의 문제가 보편주의 복지국가로 가는 하나의 돌파구일 수 있는 것이다. 이 한 가지 사안이 큰 효과를 보여준다면 보편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보편주의 복지국가는 무엇일까? 이 강연에서 보편주의에 대한 개념과 쟁점에 대해서 잘 알 수 있었다. 보편주의의 개념에 대해 윤홍식 교수는 상대적으로 광범위한 인구를 포괄하는 정책이고, 고정된 정책이 아니라 포괄하는 대상범위에 따라서 연속선상 어딘가에 위치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있다, 없다’의 문제가 아니라 수준의 문제이고, 여과장치를 가지고 있는 선별적인 것인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편주의와 선별주의를 대립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에 대해 선별주의는 보편주의를 보완하는 것이라고 했다. 시민들이 모두 똑같은 욕구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다양성을 인정하고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편주의가 실제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선별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오히려 잔여주의(자산조사에 의해서 기반한 선별주의)가 보편주의의 반대되는 개념이며, 잔여주의는 반대할 수 있지만, 선별주의를 반대할 수 없다고 했다. 선별주의를 반대하는 것은 시민들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설명을 들으면서 보편주의 복지국가라는 막연한 개념에 대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상적인 보편주의가 아니라 현실적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는 상대적 개념이라는 것과 단순히 보편주의만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보편주의라는 개념에 시민의 다양성과 이해관계를 풀어내는 것이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에서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도 설명이 이루어졌다. 복지는 진보 혹은 사민주의의 전유물이 아니라, 보수의 것이기도 하고, 심지어 파시즘에서 조차 중요한 정책이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과거에는 사민주의 정당이 지금의 보수에서 주장하는 것과 같은 논리로 보편주의를 반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보편주의 복지를 반대했던 사민주의 정당도 정권장악을 위해서는 결국 다른 계급들의 동의가 필요했고, 이질적인 계급간의 연대가 이루어지면서 보편주의가 가능해진 것이다.
하지만 서구와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 초기 서구의 보편주의는 완전고용을 전제로 하였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은 그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완전고용이 없는 상황에서 어떤 복지국가를 꿈꿔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 보아야한다. 즉, 소득보장을 넘어서서 비정규직, 자영업자, 노동시장 비참여자의 욕구를 모두 담아내기 위해서는 어떠한 연대를 이루어 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연대라는 것은 내가 가진 자유를 내놓는다는 것이 어느정도 수준이 될지도 논의되어야 한다.
보편적인 복지국가를 만드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다양한 집단의 이해를 포괄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모임에 가도 사람들이 각기 이해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이 보편적의 복지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이 문제만 해결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너무나 많았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증세의 문제였다.
보편주의 복지국가는 조세제도의 개혁(증세) 없이는 불가능하다. 감세와 복지확대는 같이 갈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한 수강생의 질문에서도 나왔지만 증세에 대해 시민들의 반감이 큰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해 윤홍식 교수는 중요한 것은 국가에 대한 신뢰라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매우 낮은 수준인 국민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 선복지확대 후증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민들로 하여금 보편주의 복지국가의 장점을 보여준 다음에 그에 동의하면 증세가 가능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증세 없이는 복지도 없다는 것은 중요한 원칙이며, 감세와 복지확대를 같이 말하는 것은 믿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했다.
이 밖에도 소득보장 중심에서 벗어나서 상품화, 일자리문제, 돌봄노동 등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중산층의 욕구를 반영하면서 저소득층을 포괄할 정책은 어떻게 구상할지, 공적부문과 민간부문을 어떻게 조화할지 등 아직까지 보편적인 복지국가로 가기 위해 논의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너무나 많았다. 하지만 윤홍식 교수가 말했듯이 보편주의 복지국가는 아직 누구도 걸어가지 않은 길이었기 때문에 실패해도 좌절하지 않고 계속해서 도전해 나가야 한다. 인내심을 가지고 중장기적인 관점하에, 당장의 합의가 아니라 실천적 경험을 통한 '연대'를 해야 한다.
보편주의 복지국가를 하자는 것은 시민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평등을 주는 것이 보편주의 복지국가의 힘이다. 너무 조급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 더 멀리 희망을 가지고 본다면 보편적인 복지국가가 실현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언젠가는 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세상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10월 13일 ‘디자인, 사회를 바꾸다’ 강좌의 마지막 강의(한국 도시디자인과 정체성) 후기는 임재홍 자원활동가가 작성했습니다. - 느티나무
김민수 교수는 도시를 디자인 한다는 것은 문화와 상징 사이의 변증법적 관계를 통찰하고 해석함으로써 삶을 약속하는 일이라고 정의했다. 이어 그는 “우리의 도시이미지는 역사와 문화를 가꿔나가는 의식이 결여되어 끊임없는 건설과 공사판 만들기의 토건국가식 개발정책이 만들어낸 산물이며, 지속가능하게 가꿔나가는 삶보다는 볼거리 위주의 개발과 전시행정, 부동산투기를 위해 끝없이 변경되는 공사판 속의 삶과 욕망이 만든 도시풍경의 미학적 특징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모습으로 불연속적이고 덧없는 희극적 키치도시가 되고 있으며, 급조된 도시이미지는 인스턴트적인 컵라면과 같은 즉각적 만족을 위한 불연속의 미학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도시정체성의 문제는 다름 아닌 각각의 도시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을 무시한데 있다. 따라서 이러한 도시들마다의 고유한 역사성을 살리는 도시디자인이 절실하다.
새로운 것은 더욱 새롭게, 오래된 것은 오래된 대로 가꿔나갈 때 도시의 새로움이 빛을 발하게 되며, 그것이 구도시와 신도시가 공존하는 길이다. 도시의 ‘시간의 켜’를 느낄 수 있는 살아 숨 쉬는 그런 도시 말이다.
강의 말미에 김민수 교수는 5주차 강의로 그동안 디자인에 대한 잘못된 시선의 재조정, 치유, 재맥락화에 대한 공감이 이루어졌던 시간이었기를 바란다는 말로 강의를 마쳤다.
마지막 강의 이후 뒷풀이
기다림과 즐거움의 시간이 오늘의 마지막 강의로 많은 아쉬움을 남긴 채 끝이 났다. 그렇게 강의는 끝이 났지만 무언가 새로 시작되는 느낌이 드는 것은 아마도 디자인에 대한 관점이 조금은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관심이 없었던, 어쩌면 당연하게 느꼈던 눈앞에 펼쳐진 모든 것들에 미안한 마음을 그리고 호기심 어린 눈을 찾아주신 김민수 교수께 감사드린다.
오는 11월 13일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자신의 몸에 스스로 불을 붙인 고 전태일 열사의 40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와 아카데미 느티나무는 40년이 흐른 2010년 오늘, 전태일을 다시금 생각해보는 강연과 답사 프로그램을 마련하였습니다.
지난 주 김남근 변호사의 첫 강의에 이어 이번 주 2강은 「부동산 계급사회」의 저자이신 손낙구 강연자를 만나는 자리였다. 강의 주제는 ‘대한민국은 부동산 계급사회다’ 였는데, 한국사회의 부동산으로 인한 경제적 사회적 문제점들을 계급적으로 다루어보고 또한 주요 통계들을 살펴보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대부분의 내용이 내 피부에 와 닿는 얘기들이라 그런지 자연스레 내가 어릴 때 살던 집이 생각났다.
어렸을 때 난 단독주택 반지하 셋방에 살았다. 어리기도 했었고 그때부터 나빴던 기억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집에서의 기억은 하나밖에 없다. 시끄럽게 집 마당을 뛰어다니는 나 때문에 연신 허리를 숙여가며 사과를 하던 어머니의 모습.
일곱 살이 되던 해에 우리 네 식구는 방 두 칸짜리 아파트를 사서 이사했다. 처음 봐서 너무 신기했던 엘리베이터, 하지만 엘리베이터를 탈 필요가 없는 1층이라는 게 속상하긴 했지만 아무리 뛰어놀아도 뭐라고 할 사람 없는 진짜 우리 집이 생겨서 너무 좋았다. 한동안 밥만 먹으면 동생이랑 집을 나와서 다음 밥 먹을 시간이 될 때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놀았는데 그것도 금방 질렸다. 역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집이 최고였다.
난 아직도 그 집에 살고 있다. 7살 때는 운동장 같던 집이 스물아홉이 된 지금은 그렇게 좁을 수가 없다. 이사를 가고 싶지만 주변엔 평수를 늘려서 갈 곳이 없다. 22년이란 시간동안 집값은 10배가 넘게 올랐지만 다른 곳도 마찬가지라 소용이 없다. 7살 때 천만 원만 더 보태면 옮길 수 있던 집이 이제는 3억 이상을 더 줘야 갈 수 있단다. 전에는 꿈이라도 꿀 수 있었지만 지금은 더 이상 꿈 꿀 수 없는 집이 되어버렸다. 자산이라고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전부인데 집값은 계속 오르니 전세로 옮겼다간 전에 살던 집마저도 가질 수 없게 될까 두려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그래도 아버지는 당신 소유의 집이 있으니 행복한 사람이다. 손낙구 강연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난 지금까지 아버지 덕에 '6계급'에서 '2계급'으로의 승급해서 호화스런 생활을 해왔지만 결혼을 하고 독립을 하게 되면 다시 '6계급'으로 강등되는 도시빈민의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너무 겁이 난다. 행복하기 위해서 결혼 하는 것일 텐데 결혼이 행복을 생각나게 하기 이전에 이리 저리 옮겨 다니며 뿌리 없는 삶을 살고 있는 내 모습, 마치 쓸개에 튜브가 꼽혀 죽을 때까지 쓸개즙을 빼앗기는 곰처럼, 돈을 버는 족족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집을 마련하는 데 올인해야 할 상황들 앞에 놓인 내가 가엾어지기까지 했다.
그래서 더 강연이 기다려졌는지 모르겠다. 당연히 그럴 수 없다는 걸 잘 알지만 마음의 위안이라도 삼게 거짓말로라도 내게 명쾌한 해답을 줄 수 있기를 기대했었다. 내게 부동산 문제는 답이 보이지 않는, 풀 수 없는 문제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 여부를 떠나 손낙구 강연자가 제시하는 대안인 계급별 맞춤형 주택정책이나 점진적 택지국유화를 통한 공공주택 공급 등을 들으니 공감이 가면서 조금은 위안이 된다.
그러나 사실 강연 후에도 여전히 마음은 무겁다. 당신이 살고 있는 집이 재건축 대상이 되어 집값이 오르길 바라면서도 한편으론 세 들어 장사하던 가게 주변이 재개발이 되어 보증금도 못 받고 쫓겨나 이리저리 시위하러 다녔던 우리 어머니처럼, 부동산 문제는 부동산 5적(건설재벌)이 구조화되어 있는 것 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의 이해관계 또한 복잡하게 얽혀 있어 더욱 더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내가 아버지가 될 때, 22년 전 우리 어머니처럼 집주인에게 연신 허리를 숙이는 모습이 재연 되는 일이 없기를, SH공사 광고 문구처럼 더 이상 집이 사는 것이 아닌 사는 곳이 되기를, 지금까지 내 걱정이 기우이기를 희망해 본다.
1강 부동산 덫에 걸린 한국사회와 시민운동 2009년은 하룻밤새 여섯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용산참사로부터 출발했다. 그러나 그 여섯 죽음은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부동산 문제라는 빙산의 상징적 정점일 뿐이다. 2006년 전국을 강타한 뉴타운․재개발 열풍은 불과 2년도 지나지 않아 문제점을 드러냈고 그 열기마저 식은 지금은 한국사회 전체를 침몰시킬 수도 있는 덫이 될 수도 있다는 공포감마저 퍼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2010 참여연대 부동산강좌는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꼭 필요한 강좌다. 그 첫 강의를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장인 김남근 변호사와 함께 했다.
이번 강의는 10개의 부동산 관련 쟁점과 그에 따른 3~4개의 유제로 이어진 질문들을 가지고 토론 및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이어졌다. 현재 부동산과 관려된 많은 논쟁들을 집약시켜 놓다보니 워낙 광범위해서 아쉽게도 한정된 시간 안에 모두 내용을 다루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김남근 민생희망본부장
한국의 법․경제 질서에도 부합한 ‘토지정의’
이번 강의를 들으며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토지공개념 도입이 그 자체로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토지공개념 3법인 ‘토지초과이득세법’이나 ‘택지소유상한에 관한 법률’이나 ‘개발이익환수에 관한 법률’이 보수언론이 선전하는 대로 대한민국 헌법을 위배하거나 자본주의 경제 근간을 뒤흔들겠다는 불온한 발언이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대체로 시행되고 있고 세부적인 부분에 조금씩 수정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오히려 건강한 경제 질서를 위해 꼭 필요한 개념들이라는 사실이었다.
대한민국 기득권의 대부분이 토지로 인한 불로소득과 특권을 누린 계층이다 보니 토지에 대한 조그만 제한조차 격렬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지금까지 토지정의를 둘러싼 담론이 왜곡되어, 건전한 토론들이 너무 왜곡되어 온 것은 아닌지 생각도 들었다. 토지재산의 특성과 헌법의 재산권의 사회적 귀속성에 대한 설명과 함께 토지공개념 3법의 역사를 추적하는 것은 좋은 공부가 되었다.
투기 억제의 진짜약과 가짜약
이번 강의에서는 투기를 억제하기 위한 주택공급정책, 세금정책, 금융정책들을 두루 살펴보며 효과 있는 정책과 거의 효과를 보지 못한 정책 등이 소개되었다. DTI와 LTV, 양도소득세와 토지보유세 그리고 논란 많았던 분양가상한제의 효과 여부 등 각종 부동산 정책이 끼친 영향을 굵직굵직하게 검토해 보았다. 흥미로우면서도 또한 우울한 사실은 정부가 투기억제에 효과를 많이 거둔 정책보다는 효과를 보지 못한 정책에 치중하고, 그나마 효과 없는(부족한) 정책마저도 실천할 의지가 희박해 보인다는 사실이다.
특히 최근에 정부가 발표한 8.29 부동산 대책에서는 DTI를 한시적이나마 전면 해제되었다. 미국에서는 ‘약탈적 대출’이라서 엄격히 금지하는 정책이 국내에서는 오히려 정부가 나서서 해제하고 국민들에게 빚을 내서 집을 사도록 부추기는 것은 정말 납득하기 힘들다.
뉴타운․재개발 환상과 거짓에 기초한 사업
뉴타운․재개발에 대한 환상이 깨진 것은 조금 됐지만 이번 시간에는 그중에서 뉴타운․재개발 사업의 근거가 되었던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 도시개발법 등에 대한 불법, 편법운용과 관련한 이야기도 나눴다.
김남근 본부장은 재개발 사업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짚어 주었다. 재개발의 원래 목적은 열악한 주거환경에 있는 서민들의 주거환경 개선을 위함이다. 하지만 정부와 서울시가 추진하려고 하는 강북을 강남으로 만들겠다는 발상은 결국엔 재개발을 통해 그곳에서 살던 사람이 중산층으로 올라가던가 아니면 원주민들이 쫓겨나면서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이 바뀌어야 하는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게 된다. 김남근 본부장은 대안적 재개발 방식으로 ▲ 공공의 단계적 지원을 통해 도로, 학교, 공원 등의 기반 정비가 이뤄지고, 주민은 자기 집의 일부를 고치는 식으로 나가야 한다고 했다. ▲ 또한 처음부터 사업 비용 등을 정확히 공개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너무나 당연한 행정절차인데도 제대로 되지 못했던 부분이다. 많은 주민들이 뉴타운 재개발 바람에 휩쓸려 도대체 수억이 들지도 모를 사업에 함부로 끼어들었던 그 많은 사례들을 생각하면 순간 아찔해진다.
이렇듯 개발의 필요성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현재의 뉴타운․재개발 사업은 모든 면에서 무리한 사업이라는 것을 스스로 편법 운용을 통해 반증하고 있는 듯 했다. 이제 막연한 환상에 근거해 무모하게 사업을 밀어붙이는 식은 지양되어야만 한다.
1강 부동산 덫에 걸린 한국사회와 시민운동
환상을 넘어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
투기의 열풍 뒤에는 진실과 맞대하는 충격을 피할 수 없다. 더 오랫동안 환상을 붙잡고 있을수록 그 충격은 크고 아플 수밖에 없다. 또한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면 막연한 공포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 일본을 20년 불황에 몰아넣은 부동산 버블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도 투기의 환상이 그리고 그에 비례해 닥쳐온 공포가 사태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고 고통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인정하기 싫어도 진실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대안이고 방법이다. 정책입안자도 투기의 당사자도 투기의 피해자도 현재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이 최선인가를 가감없이 바라보고 답을 찾아야 한다. 비록 조금 늦은 것 같지만 언제나 그렇듯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행동하기엔 가장 빠른 때이다.
한편으론 김남근 본부장이 진행한 이번 강의가 첫 강보다는 마무리 강의였으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도 있다. 전 강의를 듣고 난 후 통합하고 마무리하는 의미에서 자리 했다면 보다 많은 논의가 오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후에라도 강좌를 같이하는 분들과 뒤풀이 자리 겸 토론회를 갖는다면 흥미로울 시간이 될 것 같다.
끝나지 않은 세계경제위기와 G20 (강사: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현재 한국은 11월에 있을 G20 정상회의로 소란스럽다. 정부에서는 G20이 국가 올림픽마냥 국격을 높이는 계기라고 홍보하고 있고, 일정에 맞춰 도심 안전 시스템을 재정비하기 바쁘다. 그런데 과연 G20은 무엇일까? 우리는 그 실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러한 의문을 가진 시민들을 위해 참여연대에서는 ‘G20 톺아보기’ 시민강좌를 마련했다. 그리고 오늘은 그 첫 번째 마당으로 홍기빈 강사의 ‘끝나지 않은 세계경제위기와 G20'라는 주제로 강의가 진행되었다.
현재 우리 나라의 경우 G20에 대한 태도는 ‘G20 만세’ ‘G20 때려잡자’ ‘관심없다’ 크게 이 세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이번 강의를 통해 이 세가지 태도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G20 만세’의 경우는 G20의 실효성에 대한 고찰없이 정부의 홍보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다. 그와는 반대로 무조건 ‘G20 때려잡자’는 주장 역시 G20이 형성된지 2년밖에 안되어서 이렇다 할 행적이 없는 G20을 무조건적으로 비난하는 것 역시 적절하지 않다. 아울러, ‘관심없다’는 관점은 현재 한국 사회에 팽배한 ‘무관심=쿨함=멋짐’의 이상한 논리와 맥을 같이하는, 정치적 시민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방기하는 무책임한 태도이다. 그렇다면 ‘G20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는?’ 여기에 대해서 홍기빈 강사는 ‘개입’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끝까지 개입해 보고 안되면 그 때 그만둬도 됨을, 그러므로 지금의 상황에서는 앞 선 세 가지 태도 모두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두를 통해 G20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를 교정하게 되었다. 뭔가 콩고물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니 올림픽 마냥 좋아할 필요도 없고, 지배계급의 모임이라면서 분노의 반대를 할 필요도 없으며, 나아가 난 그런 거 관심 없다면서 토익 공부만 해서도 안 됨을 알았다. 그런데 뭔가 허전하다. 그래, 그래서 G20이 대체 뭔데?
G20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세계 경제적 흐름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1970년대 세계 금융체제와 재정체제는 미국이 환율을 정하는 ‘고정 환율제’를 채택하면서 그 전제로 국가 간에는 자유로운 자본의 이동이 없음을 명시하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미국이 더 이상 고정 환율을 유지할 수 없게 되면서 기존의 체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는 결국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을 유발하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70년 대 후반에는 사적 은행이 자금을 융통하게 되면서 국가 간 자본에 대한 규제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980년대 금융체제를 국가적으로 관리할 수가 없게 되면서 자본을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맡기기로 한다. 가능한 한 규제를 풀고 수요와 공급에 의한 균형을 토대로 시장의 자율성에 무한한 신뢰를 부여하게 된 것이다. 특히 부자에 대한 감세를 주장하였는데 그 근거로 감세를 통해서 투자를 확대하면 이를 통해 부의 순환이 더 원활함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자본의 자유시장 경제 모델을 맹신한 채 20여 년이 흐른 오늘 날, 역사적으로 유래가 없는 경제 위기가 발생하고 있다. 바로 금융위기와 재정위기가 동시 다발적으로 지구상의 여러 국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G20 정상회의는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기존의 경제 모델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새로운 대안적 모델을 제시하기 위한 자리로서 의미가 크다.
그렇지만, 2009년 런던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한 G20 정상회의는 2010년 6월에 있었던 토론토 회의에 이르러서는 ‘G20 leaders agree to disagree. 합의하지 않기로 합의하다’라는 맥빠지는 결론을 내렸다. 금융개혁골격을 마련해야 하는 자리에서, 금융위기의 해결은 각 국가가 알아서 하자고 결론을 내리다니.... 이처럼 확고한 해결책 하나 세우지 못한 상황에서 오는 11월 한국에서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게 된 것이다. 더욱이 그리스 경제 위기를 통해 새로운 경제 모델에 대한 대안이 긴요해진 시점에서, 한국 정상회의는 앞으로의 한국 경제 모델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더욱 주의깊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쯤되니 G20이 나와 동떨어진, 관심 갖지 않아도 되는 고위 간부들의 간단한 회담은 아니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G20 이 지구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기존의 ‘신자유주의 경제 모델’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것을 요청하면서 새로운 대안적 모델을 제시하기를 촉구하는 것이 아닐까.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손’에 의지하지 않고, 우리들의 목소리로 ‘보이는 손’으로 규제를 하라고 요청하고, 부자에 대한 증세를 통해 국가재정을 확보하도록 촉구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더불어 지금껏 전문가의 영역으로 넘겨왔던 금융과 재정의 문제를 시민들 스스로가 더 많은 논의와 연구를 통해 새로운 모델을 제시해보는 것 역시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아직, G20에 대해서 뚜렷한 감은 잡히지 않는다. 그렇지만 5주 간의 강의를 다 듣게 된다면, 하나 둘 더욱 명료하게 G20의 실체를 파악하게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려운 경제용어가 많아서 머리가 지끈거리기도 했지만, G20에 대해 보다 더 진지하게 고찰해 볼 수 있었던 계기가 된 홍기빈 강사님의 강좌에 기립박수를 보내며-.
두번째 G20강좌 G20: 기대와 우려, 가능성과 한계 한국 지구촌빈곤퇴치 시민네트워크(GCAP-Korea) G20 실무분과 의장이자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성훈 한국인권재단 상임이사를 모시고 G20 정상회의를 국제정치적 관점으로 이해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지난 목요일(9월 2일) 느티나무 가을 강좌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그 첫 마당은 <삶과 문화가 있는 맥주 이야기> 입니다. 1강에는 <나의 맥주이야기>를 주제로 푸르메 재단 백경학 이사님과 수강생들이 함께 맥주에 관련된 즐거운 수다를 나눴습니다.
즐거운 분위기에서 진행된 맥주 강좌
첫 대화 주제 : "맥주는 나에게 [ ]이다." ' 추억','친구','한 여름밤의 시원한 맛' 등 다양한 대답이 나왔습니다. 한 수강생이 이야기한 의외의 대답이 있습니다. 바로 "바나나" 맥주와 바나나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바나나맛 맥주일까요? 생각만 해도.. -_-;) "나이가 많지는 않지만.."이라고 운을 띄운 수강생은 "지금은 바나나를 싸고 쉽게 먹을 수 있지만, 어렸을 때 바나나는 비싸서 쉽게 먹을 수 없었다. 처음 술을 접하게 된 대학 입학 때 선배들이 비싸다고 맥주를 안사주고 소주만 사줬다."라고 옛 추억을 떠올리며 바나나와 맥주의 관계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나의 맥주 이야기 : 푸르메 재단 백경학 상임이사 1부에서 백경학 상임이사님은 본인이 맥주와 관계를 맺게 된 이야기를 짧게 들려주셨습니다. 이사님은 독일에서 아내가 불의의 사고를 당하면서 장애를 갖게 되고, 이때 겪었던 어려움 때문에 장애인을 위한 재활병원을 만들기로 결심하게 됐습니다. 병원을 만들기 위한 재단 설립을 위해 하우스 맥주집으로 지금은 너무나 유명해진 "옥토버 훼스트"를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푸르메 재단"이 만들어졌습니다. 소외되고 약한자를 위한 선생님의 진솔한 이야기가 마음에 남는 시간이었습니다.
푸르메 재단 백경학 상임이사
거품 : Krone를 아시나요 2부에는 본격적으로 맥주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보통 맥주집에 가면 "거품 빼고 가득주세요"라는 이야기를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맥주를 잘 모르시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독일에서 맥주 거품은 krone라고 합니다. 영어의 크라운(crown), 즉 왕관입니다. 맥주잔의 70% 정도는 맥주로 채우고 나머지 30%는 거품을 채웁니다. 이사님은 "맥주는 눈으로 색을 즐기고, 코로 향을 맡고, 입으로 맛을 음미하는 것입니다"라고 이야기 해 주셨습니다. 맥주 양이 조금 줄어들기는 하겠지만 다음부터는 꼭 거품과 함께 맥주를 음미해 봐야겠습니다.
이외에도 맥주의 본고장 독일에서 맥주가 가지는 의미, 역사와 제조과정 등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맥주에 대해 알고나니, 물처럼 벌컥 벌컥 마시거나, 다른 음료(?)와 섞어 마시는 것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앞으로는 '맥주에 대한 예의'를 가지고 눈, 코, 잎으로 즐겨봐야 겠습니다.
맥주 강좌는 9월 9일과 9월 16일 두번의 강좌가 더 남았습니다. 2강에는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조관연 교수님이 <유럽문화 속의 맥주>를 3강에는 전 한겨레신문 문화부장으로 <술꾼의 품격>의 저자 임범 선생님과 함께 진행됩니다. 맥주에 대한 여러 이야기와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유쾌한 대화를 원하시는 분은 지금이라도 오셔도 됩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기대합니다. 문의 02-723-0580 김민수 간사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던가. 한국의 냉전적 사고, ‘좌파’낙인 등 현재 한국사회의 부조리를 만날 때마다 들었던 의문은 “우리나라는 대체 언제부터 이랬던 거야?”였다. 숨막히는 경쟁을 해야 하는 지금에는 외환위기라는 과거가 있었고, 부패와 기만의 정치 너머에는 청산되지 못한 역사가 있었다. 천안함 사고로 전작권 환수를 연기해야한다는 극우들의 외침에는 ‘한국전쟁’이 자리하고 있음을 4번째 강의에서 깨달았다.
김동춘 교수
한국전쟁은 남과 북만의 전쟁이 아닌 동아시아 전쟁
4번째 강사로 나선 김동춘 교수는 천안함 사고와 관련한 일본의 후텐마기지 문제 해결이 우연인 듯하지만 국제적으로 보면 같은 문제라고 했다. 후텐마기지는 대만을 보호하면서 중국을 견제하고 동아시아에 미국의 영향력을 유지, 확대할 수 있는 곳이다. 후텐마기지문제가 일본사회에 대두되면서 하토야마 전 총리가 기지이전을 약속했기 때문에 민주당이 정권을 교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전을 반대하는 미국과 협상이 지연되면서 지지율은 곤두박질 쳤고 때마침 천안함 사고가 발생하면서 이전문제가 없던 일로 결론이 났다. 비록 우연의 일치일지라도 천안함 사고가 북한어뢰로 판명나면서 후텐마기지문제까지 해결되어버린 것은 국제적인 외교문제로 볼 때 ‘미국의 영향력’면에서 같은 문제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한국전쟁 역시 국제적으로 보면 남과 북만의 내전이 아닌 미국, 소련, 중국 등이 가세한 동아시아 전쟁”이라고 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전쟁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이다. 오늘날까지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한국전쟁을 어떻게 살아있는 역사로 기억하는가”이다. 그것만이 오늘과 같은 천안함의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는 방법일 것이다.
먼저 김교수는 한국전쟁에 참여한 국가들이 전쟁 후 어떤 것을 잃고 얻었는지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북한이 러시아, 중국 먼저 의견조율한 것은 맞지만 먼저 내려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 중국, 소련, 일본 등 결과적으로 이득을 얻었다. 최대 수혜자는 경제적 부흥을 할 수 있었던 일본이고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한 미국, 중국도 막 혁명을 마친 국가가 미국과 대등한 전쟁을 했다는 면에서 국제적으로 각인되었으니 나름대로 혜택을 얻었다” 일본이 기지국가라고 불린 것도 ‘한국전쟁’ 때문이었다. 일본은 한국전쟁 3년 동안 미국의 무지를 제조하고 물자조달을 하면서 비약적으로 경제성장을 했다. 한마디로 전후 패망으로 힘들었던 일본에게 한국전쟁은 “신이 내린 전쟁”이었다.
김동춘 교수
전쟁의 명분은 정치적 득실
하지만 미국이 한국전쟁으로 이익을 얻었다는 말은 생소하다. 미국은 남한을 위해 북한과 싸워준 고마운 우국이 아니었던가. 도와주기만 했다는 생각은 순진한 착각이었다. 김 교수는 “미국이 무엇을 얻었는지 한국사회에서는 거의 거론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은 한국전쟁 후 주가가 폭등했다, 45~9년에 경기침체를 겪으며 실업률이 증가하고 문제점이 대두됐었는데 한국전쟁이 호재가 됐다. 메카시즘도 50년 1월 한국전쟁 후 부활하면서 당시 미국공산당, 미국노동계(당시 전체 노동자의 30%를 차지하면서 세력이 강했다고 함)를 일거에 없애버렸다. 미국의 진보세력이 루스벨트가 있던 30년대부터 강해지다 한국전쟁 후 약해진 것이다. 또한 군사무기와 산업이 만나면서 미국보수인 군산복합체가 만들어졌다” 지금 미국 보수의 핵인 네오콘도 한국전쟁에서 출발한다고 봐야할까. 김 교수는 한국전쟁이 세계질서를 바꾸었다고 말했다. “냉전체제를 굳히고 미국우익세력의 헤게모니가 확고하게 자리잡게 됐다. 미-소간의 관계가 고착된 것이다” 남북한의 희생자만 300만-이것 역시 정확한 통계가 아님-혹은 그 이상인 큰 전쟁에서 남북한만 폐허가 되고 가담했던 나라들은 제 이익만 챙겨 돌아간 전쟁이 아니었나 싶다.
한국전쟁을 도와준 영웅으로 보는 ‘맥아더’는 어떤 이해관계에 있었을까? 맥아더는 이승만식의 북진통일을 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트루먼은 그에 반대하고 있었다. “이북까지 김일성 세력을 쫓아내면 중국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고, 북한까지 갔다면 러시아와 전쟁이 일어나 3차 대전의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트루먼 입장에서는 “북진통일을 할 이유가 없었으며 정치적으로는 전쟁보다 전쟁을 통한 국민단합과 전쟁을 통한 경제 살리기”가 먼저였다. 맥아더는 군인이었기 때문에 전쟁에서는 무조건 이겨야한다는 생각이 었다. 김 교수는 “전쟁터에서 군인은 정치에 종속되는 것이다. 전쟁은 정치 중에 하나일 뿐이므로 최종지휘관은 정치가인 대통령이다. 정치는 국가의 이해관계를 고려해야하기 때문에 단순한 군인과는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트루먼은 미국의 기득권, 자본가의 이해관계를 반영해 전쟁에서 지지도 이기지도 말자는 생각이었다”고 지적했다.
김동춘 교수
일방적 기억이 ‘전쟁불사론’을 만든 것.
김교수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지금까지 비극이 이어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 설명했다. 우선 북한의 비극이다. “한국전쟁 후 김일성 단일권력체제가 만들어졌는데 이것은 비극의 시작이다. 내부의 견제권력이 없으니 권력이 썩게 되고 실패한 공산국가가 된 것이다. 또한 ‘선군정치’하는 것도 군을 앞세운다는 이야긴데 여전히 전시체제라는 이야기다. 60년 전과 똑같다.” 남한 역시 전쟁논리가 유지되고 있다. “천안함 발생 후 전쟁기념관에서 성명발표하고 전작권 환수를 연기하려는 것은 국가와 국민의 미래보다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더 고려했다는 것이다. 이승만도 권력이 유지된다면 수백만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맥아더가 핵 사용하려고 할 때 이승만이 OK했다”는 점에서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전쟁논리는 60년 전과 같다. 바로 “분단됐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한국전쟁은 60년 전에 일이지만 문제는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이것을 생각하는 것이 지금 정치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소설과 영화로 다루어지지 않은 사건은 역사가 아니다. 일반 시민들 속에 없기 때문이다. 전쟁 때 미군이 도와준 것은 맞지만 미군이 학살한 것은 없는 역사, 객관적으로 사실이어도 우리의 기억 속에 없으면 없는 역사다. 미디어와 교육이 만들어가야 할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보수신문이 수개월 동안 지면을 활애해 전쟁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해서도 “기억정치다. 기억을 누가 선점하느냐, 과거문제가 아니라 현실정치다. 여론에 의해 정치가 바뀌는 것이다. 문제는 전쟁불사론을 잠재울 수 없는 사회라는 것”이라고 했다. 전쟁에 대한 일방적인 역사만 기억하기 때문에 ‘전쟁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김 교수는 한국전쟁에 대한 기억의 문제가 결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고 했다. “지금 젊은이들의 목숨에 대한 문제이고 현실로서 전쟁준비체제로서의 한국사회, 국가보안법, 징집체제, 미국에 무기구입에 돈을 퍼부어야하는 체제에 대한 것”이라면서 “우리사회가 어떻게 건강한 민주적인 사회가 되느냐. 건강한 시민의식을 가진 군인이 되느냐”로 확장될 수 있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남북한이)한국전쟁 영향 아래 여전히 있기 때문에 끌려다니지 말고 남북간의 민족적인 대타협이 필요“하다며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