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소감,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남겨주세요
강좌명 | 강좌후기 | 글쓴이 | 날짜 | |
---|---|---|---|---|
[느티나무 미술학교] 풍경페인팅 - 일상의 이야기 | 풍경페인팅 - 일상의 이야기 후기 | 개똥이 | 2020.6.17 | |
느티나무 미술학교 풍경페인팅 수업을 갔다. 코로나 19로 인해 수업은 열체크, 손소독, 책상 간격도 넓게, 마스크를 쓰고 시작했으며 첫 날은 동그랗게 앉아서 서로 인사와 소개, 수업에 참여하는 소감 등을 이야기했다. 낯선 사람들, 공간, 시간 아. 역시 불편했다. 내가 이 낯선 곳을 찾아온 이유는 이상권 선생님이 이곳에서 수업을 하시는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입시때 화실 선생님이었다. 29년이 지난 지금 우연히 알게되었고 이런 저런 걱정을 뒤로하고 무조건 찾아왔고 다행히 선생님이 내 얼굴을 기억해주셨다. 수업은 4번의 드로잉 수업, 3번의 아크릴수업으로 진행되었고 편안하고 안정적인 분위기에서 세심한 지도를 받을 수 있었다. 미술 전공을 했지만 처음 접해보는 아크릴물감이 뜻대로 되지않아 약간 멘붕이 왔을 때 누군가의 콧노래 소리가 들렸다., 그래. 그리는 즐거움을 그동안 잊고있었구나. 조급한 마음이 진정이되고 이런 시간과 공간에 내가 있을 수 있는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역시 무조건 오길 잘했어. 이번 봄학기 풍경페인팅의 주제는 <일상의 이야기>이다. 흔히들 그림은 멋진 풍경 완벽한주제를 생각하게 되는데 내 주변과 일상, 나에게 의미있는 것들을 나만의 표현방법으로 이루어냄으로써 그림의 주제를 폭넓게 생각할 수 있게 좀 더 다른 시선으로 익숙한 것들을 볼 수 있게 해준 수업이 되었다. 전시회 또한 코로나 19로 인해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지 못한것이 아쉬울 정도로 즐겁고 행복한 분위기에서 준비되었다. 후기에서나마 작가들의 작품 설명을 소개하고싶다.
이번 봄학기는 새로운 주제의 방향성을 선생님 지도 하에 모든 회원이 차분하게 이루어낸 시간이었던것 같다. |
||||
[특별기획] 막다른 전지구적 기후위기, 우리의 선택은? | [강좌 후기] 기후위기, 해답은 정치다.(하승우) | 누완다 | 2020.6.15 | |
먼저,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숨진 ‘조지 플로이드’로 인해 흑인 사회가 가진 절망감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보여주는 영상을 함께 보았습니다.(16세 아이들이 항의 시위에 나온 것을 보고, 31세 아저씨가 제발 다른 길을 찾으라고 하며 46세 아저씨와 말싸움하는 영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3번의 강의 내용을 다시 한 번 함께 떠올려 보았습니다. 일종의 복습 시간이었지요. 먼저 각 나라의 [CO2 누적배출량]에서는 ‘미국’이 가장 많이 배출하고 있는데, 그 증가속도만 놓고 본다면 ‘중국’도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 세계 여러 나라가 지구 온난화에 일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책임을 누구도 지려고 하지 않고, 서로 계속 떠넘기기만 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정작 심각한 피해는 제3세계 국가들이 겪고 있지요. 기후위기를 이야기하면, 그 이미지는 항상 북극 빙하가 녹아 북극곰이 살 곳이 없어진다는 문제만 주로 보여줍니다. 하지만 “곡물생산 변화”도 심각한 문제이기에, 결국에는 큰 갈등이 분출될 위험이 있습니다. 또한 기후위기에 대한 대안으로, 흔히 ‘지속 가능한 발전’과 ‘그린 뉴딜’이라는 두 낱말을 사용합니다. 물론 두 낱말 뜻은 대개가 비슷합니다. 그러나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낱말은 ‘발전’을 여전히 포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린 뉴딜’ 낱말은 생태위기를 더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지요. 무심코 사용하는 낱말에서도 이러한 인식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힘들게 겪고 있는 이 코로나 19 위기 이후에, 더 통제할 수 없는 지금보다 큰 위기가 올 수 있는데요, 코로나 19가 심화시킨 불평등과 생계위협에 놓인 이들은 야외노동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입니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코로나 19 위기 그 근본적인 바탕에는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위기에 연관된 다양한 이해관계들”에서는 1997년 IMF 사태를 다룬 영화 ‘국가 부도의 날’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아직 영화를 보지 못하신 분이 계시다면, 영화를 한 번 보실 것을 추천하셨습니다.) 영화에서 위기를 대하는 고위 관료들, 공무원들, 소시민들 모습이 지금 기후위기를 대하는 우리 사회 모습과도 겹치는 부분이 많습니다. 정부는 왜 ‘기후위기’ 이야기를 잘 하지 않으려 들까요? 연합체들 이해관계를 깨기가 힘들고, 지금 사회가 바뀌기를 싫어하는 이들 세력이 강고합니다. 어쩌면 이러한 위기들이 토건 세력들에게는 새로운 사업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결국 이러한 개발연대 세력들과 맞먹을 수 있는 새로운 단체가 필요합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이 사회를 바꿀 수 있습니다.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이 위기를 가속하기도 합니다. 물론 정부도 노력을 전혀 안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근본적 원인은 그대로 두고, 밖으로 보이는 모습만 신경 쓰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우리가 정치변화의 동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더 새로운 활동들이 필요합니다. 이번 4.15 총선에서도 드러났지만, 정치인 평균 연령은 여전히 50대입니다. 다가올 미래인 2050년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들이 정치를 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기업의 변화를 요구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이 필수입니다. 내부목소리가 중요한 것이지요. 기후위기는 여전히 추상적이고 아직도 체감을 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열악한 노동조건에 있는 이들은 갈수록 더 비가시화되고 있는 현실이구요. 선거 공약은 어쩌면 지역개발이 필수 공약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야만 표를 얻습니다. 대안적인 그림이 필요합니다. 이에 더해 ‘선거제도 개혁’은 더 중요합니다. 이번 “위성 정당” 논란을 보며,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을 합니다. 기후위기와 노동운동이 만나고, 그린뉴딜과 정의로운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에서 우리는 같이 갈 수 있는 접점을 찾아야 합니다. 코로나 19를 기점으로 더 나은 방법을 함께 찾아야 합니다. 이렇듯 다양한 싸움들이 모여 새로운 역사가 됩니다. 오랜 기간 이러한 활동들이 축적되어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끊임없이 함께 모여 이야기 나누고, 같이 고민하고, 공감해야 합니다. 다양한 형태의 플랫폼을 활용하는 것이 한 방법이 되겠네요. 기후위기를 정말 고민한다면, 먼저 ‘나에게 기후위기는 어떤 영향을 미치나?’ 진지하게 생각해 봅시다. 당장의 ‘폭염’보다도, 노동과 식량, 건강문제부터 올 것입니다. 내가 먼저 무엇인가를 시작하려 한다면 부담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옆에 있는 누군가의 힘을 믿고 다양한 역할을 할 많은 사람들과 함께 기후 정치력을 만듭시다. 리더보다 더 중요한 것은 첫 추종자입니다. 누군가가 나타나기를 기대하기는 현실 벽이 높습니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 지 스스로 질문해 봅시다.
마지막 시간은 강좌를 들은 분들이 함께 자유로운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개인적으로 심각한 기후위기를 다시 한 번 알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요, 앞으로 이러한 고민과 실천사항들을 공동체에서, 다른 동료들과 어떻게 함께 생활 안에서 알리고 행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작성 : 양두승 자원활동가 * 더보기(클릭) 05. 19 기후위기로부터 대전환 - 과학으로 보는 기후위기_조천호 |
||||
[특별기획] 막다른 전지구적 기후위기, 우리의 선택은? | [강좌 후기] 기후위기와 그린뉴딜 (이유진) | 누완다 | 2020.6.5 | |
6.2. 강의는 녹색전환연구소 이유진 선생님께서 ‘기후위기와 그린 뉴딜’을 주제로 강의를 해 주셨습니다.
먼저 영국 히드로 공항 제3활주로 불법 판결에 대한 이야기로 강의를 시작하셨는데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파리 협정을 지켜야 하기에, 이 활주로는 불법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나라는 곳곳에 공항을 설계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제주 제2공항 건설 계획은 다들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만큼 우리사회가 환경과 기후위기에 둔감하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그린뉴딜’에 관해서도 논의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이제야 그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 19 이후 세계에서는 지진과 폭염, 한파와 폭설 등 기후위기가 가져올 연속적인 재난이 비대면으로 대처가 어렵고 결국은 기본적인 인프라를 개선하여 지역사회의 회복력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반면, 코로나 19가 우리에게 준 교훈은 정은경 본부장에게서 볼 수 있는 ‘상세한 설명이 주는 리더쉽’과 화상회의와 재택근무를 통한 ‘거품 빼기’입니다. 굳이 비행기를 타고 먼거리를 이동해서 회의를 했어야만 하는가 묻고 있습니다.
‘그린 뉴딜’은 기후위기 대응과 불평등 타파를 목표로 하는 탈탄소 경제사회로의 대전환입니다.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은 1.5℃가 마지노선입니다. 만약 2℃만 되어도, 산호는 99% 이상 소멸하고, 북극 해빙 완전 소멸 빈도도 10년에 한 번이 되기에 복원이 어렵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온실가스를 45% 감축해야 합니다. 우리는 2020년 현재를 살아가고 있으니, 10년 이내에 온실가스 배출을 절반으로 줄여야하는 것이지요. 결국 ‘정의로운 전환’이 필요합니다. 그 예로 프랑스와 독일, 스웨덴과 네덜란드를 비롯하여 비행세를 도입하는 국가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항공유가 그만큼 CO2를 많이 배출하기 때문이지요. 독일은 육류세 도입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유럽은 교토 의정서를 시행하기 위해 정책적으로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논의조차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린 뉴딜’은 거대한 전환으로 ‘온실가스 감축’과 ‘일자리 창출’, ‘사회불평등 해소’가 함께 접근하는 융합적 정책이 필요합니다. “그린”에는 ‘정의’ 개념이 포함되고, “뉴딜”은 낱말 그대로 ‘새로운 약속’이기에 사회제도들을 얼마나 개혁시켰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음 우리나라 대선에서는 기후위기와 불평등에 대한 해법에 관한 공약을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 2019년 2월 7일 미국 민주당 그린 뉴딜 결의안은 IPCC 1.5도 특별보고서로 시작하며 미국사회 부의 불평들과 차별을 해결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그저 단순히 ‘재생 가능 에너지’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EU가 같은 해 11월에 발표한 기후 비상선언과 그린 딜 또한 전영역을 망라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경제 성장 전략 외에도 생물 다양성도 포함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또한 2021년 하반기 도입 예정인 ‘탄소국경세’에 관한 논의도 시작하고 있습니다.(수입품에 탄소배출에 비례하여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지요.)
우리나라는 현재 7억톤에 가까운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2030년까지 2000년 수준인 5억3천6백만톤 정도로 감축해야 합니다. 시민들에게 인식도 되어있지 않은 상황에서, 과연 준비는 되어 있는지 의문입니다. 2000년 대비하여 영국과 EU, 미국과 일본은 온실가스 배출을 다들 줄이는 추세이지만, 우리나라만 47%가 증가했습니다. 한국은 아직까지도 핵발전과 석탄발전 비중이 높습니다. 그 과정에서 송전탑 갈등도 계속될 것입니다.(발전소는 지방에 있고, 전기를 수도권까지 끌어와야 하니까요.) 그만큼 우리는 2000년 수준으로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장기과제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재생에너지 기술과 관련하여, “RE 100”(재생가능 에너지원으로 생산된 전력을 100% 사용)에 따라 국내 기업도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 예로, SK 하이닉스는 애플에서 납품 제품에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했습니다.
정의당과 녹색당, 더불어민주당 그린 뉴딜 정책 설계를 보면, 이 정부에서 에너지 정책은 더디게 진행됨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5월 12일 문재인 대통령의 그린 뉴딜 주문에서도 ‘배출 제로’와 ‘사회적 불평등 해결’에 관한 내용은 빠져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기후위기 관련 대응법과 제도는 많습니다. 감축목표와 그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행도, 점검도 하지 않으며 총괄적 조정 기능은 부족합니다. 예산과 조직도 부족하여, 실행력은 떨어집니다. 가시적 효과도 미흡한 것이 우리 현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기후 악당’으로 분류가 됩니다.
그렇다면, ‘그린 뉴딜’ 정책 과제와 대안은 무엇일까요? 1. 온실가스 감축을 최우선 정책으로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새로운 정부 조직을 만들고, 모든 정부 부처 정책과 사업에 탄소예산과 회계시스템을 도입하여 기획재정부 주도하에 예산 25%가 온실가스 감축에 투입될 수 있어야 합니다.
2. 탈탄소 산업과 그에 따른 일자리 창출입니다. 이러한 제도적 기반은 결국 산업 전환을 가져옵니다. 물론 규제 타파나 인센티브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또한 그러한 규제가 오히려 새로운 시장을 만들기도 합니다.
기후위기 시대를 돌파하기 위해서 먼저 ‘기후위기 비상행동’과 같은 “인식”을 “확산”시키고(운동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구체적이고 정책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득권을 해체시키고, 대안을 현실화할 수 있는 “정치세력화”를 해야 합니다.
지난 조천호 선생님 강의에서처럼, “우리가 같은 배를 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각자도생은 결코 해답이 될 수 없습니다. 주어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지방 자치 분권, 에너지 분권과 그린 뉴딜 연계로 우리가 “그린 뉴딜”을 본격적으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판이 열렸습니다. 그 화두가 던져진 것입니다. 그린 뉴딜에 무엇을 녹여낼 것인지 계속 고민해야겠습니다. 환경 뿐만이 아니라, ‘불평등’도 중요한 의제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전환의 시대’에 따른 준비와 방향 설정, 조사와 파악도 중요합니다.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 지속적으로 지켜보고 문의할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질의응답 시간 중 그린뉴딜 정책 관련하여 교육부분이 빠져있는 데 대하여 지적하고 질문을 주신 분이 계셨습니다. 이에 대해, 물론 전방위적으로 모든 대상에 대하여 교육이 필요하지만, 특별히 고위 공무원(주요 장차관, 국장)과 정치인들부터 기후위기 심각성을 알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정책을 연구하고 입안하는 이들이기에, 가장 시급한 대상이 아닐까 합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많은 분들이 원격 강의를 청해주셔서 송희 간사님과 자원활동가 선생님께서 미리 리허설 시연을 해 보고 준비를 했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질문을 받는 과정에서는 소음이 울려서 차질이 조금 있었지만, 대체로 매끄럽게 잘 진행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색다른 시도가 어쩌면 코로나 19 이후에는 자연스러운 일상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강의 내용 뿐만이 아니라, 강의가 진행되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 번 ‘기후 위기’에 대해서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작성 : 양두승 자원활동가 |
||||
[독서클럽 - 와] 동물권 읽기 | [동물권 후기] 왜 나는 개까지 먹게 되었나 | 환2 | 2020.6.5 | |
나는 왜 돼지도 먹고 소도 먹고 개까지 먹게 되었을까 책을 주문하고 배송위치를 확인하며 3일을 꼬박 기다렸다.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드디어 도착. 새옷을 입는 것 같은 설렘으로 책을 읽다 문득 오늘의 마지막 식사가 감자탕이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퇴근 후 동물권 책을 읽으러 가는 길에 돼지고기로 허기를 채운 이 아이러니. 그날 저녁은 이 책의 문제의식을 메타적으로 드러내주었다. 동물권에 관심이 있다고 하지만, 식탁에 돼지고기가 올라오는 모습에 단 일말의 불편함이 없었던, 아니 오늘따라 감자탕에 고기가 식어있다고 오히려 투덜대던 나. 작년 가을부터 동물권 독서클럽에 참여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동물권 반년만에 대충 동물권의 세부 챕터만 봐도 무슨 이야기할지 눈에 보인다. 도축과정에서 동물이 얼마나 끔찍한 고통을 겪는지, 육식이 얼마나 건강에 안좋은지, 동물이 어떻게 대상화 되고 있는지. 동물권 하면 나오는 3종 세트에 익숙해진 나는 이미 알고 있는(혹은 있다고 착각하는) 내용들을 재확인 하며 읽는다. 저자는 지금 당신이 먹고 있는 스튜에 들어있는 고기가 ‘개’였다고 한다면 지금의 느낌이 어떨지 물어본다. 이건 아마 우리가 반려동물과 식육동물을 분리하는 모순을 지적하기 위함이었으리라. 하지만 저자가 던진 질문은 나에게는 육식에 대한 모순을 직면하기는 커녕 과거에 내가 개고기를 먹을 수 있게한 논리이기도 했다. 저자가 던진 “개고기는 못먹으면서 소/돼지/닭고기는 어떻게 거리낌없이 먹을 수 있을까?” 이 질문은 거꾸로 “소/돼지/닭고기도 먹는데 개라고 못먹을 이유는 무엇일까?”로 둔갑했다. 태어나서 두번 개고기를 먹었다. 첫번째는 무엇인지 모른 채 먹었고, 두번째는 지인의 집에서 지인의 어머니가 내어주신 요리였다. 두번째로 개고기를 먹었던 날 나는 “다른 동물도 먹는데 뭐..”라는 생각으로 탕을 한숟가락 떠 입에 쑤욱 넣었다. 육식에 대한 인지부조화 조차 일어나지 않는 나에게도 책이 던져준 의미있는 이야기는 두가지.
먼저, 육식은 정상적이고(Nomal) 자연스러우며 (Natural) 필요한 것(Necessary)이라는 생각자체가 ‘이.데.올.로.기’라는 것. 이 말은 육식은 사실 자연스러운 행위이기 보다 어떠한 신념체계의 산물 언제든지 허물어지고 재구성될 수 있다는 걸 말한다. 나 같은 뿌리깊은 육식인에게도 변화의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걸 의미했다. 두번째. 미각은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된다는 것. 예를 들어 캐비어의 경우 세련되고 품위있는 상징으로 인식한 이후에라야 사람들이 맛있게 먹기 시작한다는 사례는 내가 좋아하는 요리들이 실제로는 어떤 상징들로 구성되어있는지 돌아보게 했다. ‘난 언제부터 참치회를 먹게 되었을까’ ‘왜 장어를 먹을때는 몸이 든든해질 거라는 느낌을 받았을까?’ ‘어떻게 소고기는 명절 선물세트가 되었을까' ‘내가 한턱 쏠게의 코스는 왜 다 고기집일까?’ 어쩌면 우리의 음식 소비는 미각적인 욕구보다 특정한 문화소비적 측면이 더 클 수 있겠다. 책을 읽고 난 뒤 집에서 또띠아 피자를 만들어 먹었다. 이미 가지고 있는 음식을 버릴 순 없다는 핑계를 대며 토핑으로 베이컨을 구웠고, 어설프게 배운난 베이컨을 굽는 동안 이 너머에 존재했던 돼지를 상상해보려고 했다. 나에게도 어느 비건의 간증(?)처럼 고기를 씹는 행위가 불편해지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큰 변화는 없다. 하지만 실패일까? 아니다. 고기를 씹으면서 반드시 먹어야할 꽤 좋은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건 내가 요리를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조금씩 고기를 덜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식당에 가서도 되도록 고기가 없는 메뉴를 찾아보는 연습 중이다. 매달 6,16,26일 육이 들어간 날에는 육식을 하지 않는 날로 정했다. 하지만 내가 우유와 요커트, 생크림, 계란말이(?)까지 포기할 수 있을까. 회는 또 어떤가. 고기 소비는 줄지만 그 만큼 다른 유제품과 해산물 소비가 늘어나는 풍선효과가 일어나진 않을까. 동물과 생태계에 가하는 모든 폭력들이 비가시화된 이 도시라는 시공간 안에서 나는 지구와의 관계라는 끈을 늘 인지 할 수 있을까. 질문에 질문이 일어난다. 비폭력. 나에겐 머나먼 길이나. 덜폭력이 되기 위한 관계망을 새롭게 연결하고 있다. 지금보다 더 나은 길에 접속할 수 있도록 함께 공부하는 이들의 지혜가 늘 구한다. 글_승환 |
||||
[특별기획] 막다른 전지구적 기후위기, 우리의 선택은? | [강좌후기] 기후정의와 배출제로(한재각) | 달라이 | 2020.6.1 | |
2강은 '기후위기'라는 단어를 들으면 연상되는 키워드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녹고 있는 빙하', '북극곰' 등 우리가 그동안 많이 접했기에 조금은 익숙한 이미지들이 떠올랐는데요. "그렇다면, 여러분. 혹시 아는 북극곰이 있나요?" 한재각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소장님께서 그 다음으로 던지신 질문이었습니다. '기후위기'를 우리 일상과 조금 더 가까운 관계 안에서 이야기할 수 없을까, 중요한 질문을 던져주신 것이었습니다. 오늘 강의는 기후위기가 실제로 우리 삶에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지,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영국 전 외무부 장관인 마거릿 배킷은 기후변화의 충격이 "환경에만 머무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결과적으로는 "안보 문제의 핵심"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꼬집은 말입니다. 미국 국무부 장관인 존 케리 역시 오늘날의 난민사태를 극단주의가 아닌 기후위기로 인한 생존 문제로 비롯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바로 '환경난민'입니다. 호주와 미국을 비롯하여 많은 국가에서는 분쟁의 양상을 이해하기 위해 기후위기를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많은 국가에서 기후위기를 중요한 안보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파리 기후협약'의 주요 내용부터 알아보겠습니다. 본 협약의 주요 목표는 지구의 온도 상승을 1.5도 이하로 제한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각 나라가 각자 감축 목표를 제출하도록 하였더니 그 총합이 겨우 "3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1.5도" 인데 전 세계의 의지는 "3도"라는 것이지요. 더 과감한 목표가 필요합니다. 이후 IPCC에서는 '1.5도 특별보고서'를 통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50년까지 순 제로(net-zero) 배출 달성을 목표로 세웠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2050년까지 1차 에너지 공급의 50~60%, 전력 생산의 70~80%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해야 합니다. 과연, 세계는 목표달성이 가능할까요? 작년 타임지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그레타 툰베리는 2019년 프랑스 국민의회 연설에서 "지금처럼 배출한다면 남아있는 420기가 톤의 탄소예산이 대략 8년 반 안에 사라질 것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탄소예산'은 전 세계가 설정한 목표(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이하로 제한)를 넘지 않기 위해 우리가 배출할 수 있는 탄소의 총량입니다. 어린 소녀도 이해하고 있던 이 개념을 우리는 지금까지 들어본 적도 없었다니 개인적으로는 너무 부끄러운 순간이었지요. 2011년까지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였습니다. (1870년부터 2011년까지 누적 이산화탄소상당량: 1,890) 우리에겐 이제 1,000 이산화탄소상당량만 배출 가능합니다. 현재 우리가 배출하고 있는 양을 고려했을 때, 겨우 "8년"이 남은 것입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공동의 차별화된 책임>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파리 기후협약 이전에 있었던 '교통의정서'에서는 선진국들에만 온실가스 감축의무가 있었습니다. 개발도상국에는 어느정도 개발권을 인정해주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파리 기후협약에서는 보다 '공동의 책임'에 무게가 실렸습니다. 당사국 모두가 감축의무를 지닌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2009년을 기준으로 '연간 배출량'을비교했을 때에는 매우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이 배출 1위입니다. 하지만 1751년부터 '누적 배출량'을 추적해본다면 미국이 압도적 1위를 차지합니다. 배출량도 중국의 2배 정도인데요. (미국: 399.38 billion ton / 중국: 200.14 billion ton)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1인당 배출량'을 살펴보겠습니다. 역시 미국이 1위, 그 다음 캐나다, 러시아, 영국, 프랑스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후부정의(Climate Injustice)' 입니다. 개발도상국의 입장에서는 선진국들이 오래 전부터 개발을 위해 그렇게 많은 양의 탄소 배출을 해왔으면서 '인류 공동의 위기'라는 점을 내세워 그 책임을 모두에게 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재각 소장님께서는 "어떤 테이블에서는 2만원짜리 식사를 하고, 어떤 테이블에서는 3천원짜리 식사를 했는데 계산할 때에는 n분의 1로 하자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셨습니다. 실제로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난에 더욱 취약한 국가들도 개발도상국들입니다. 이런 논의들로 비롯된 대안이 '축소-수렴 모형'입니다. 전 세계 배출량을 전체적으로 감소하면서 동시에 국가별 배출량의 차이도 감소시키는 것입니다. 현재 배출량이 많은 국가들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더욱 많은 양을 줄이게 되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일상으로 보다 가깝게 돌아와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봅니다. 먼저, 영국을 비롯하여 프랑스, 캐나다, 아일랜드는 벌써 '국가 기후위기 비상사태'를 선포하였습니다. 현재 우리는 기후위기를 맞이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순 배출 제로를 위한 입법 혹은 입법예고를 선언한 국가들이 있습니다. 수리남 공화국과 부탄을 비롯하여 많은 유럽 국가들과 남아메리카 국가들이 입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화석연료 채굴을 중단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앞으로 새로운 화석연료 채굴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게 아닙니다. 현재 채굴 중에 있는 양만 사용하더라도 우리는 이미 목표달성을 실패하고 마는 것입니다. 석탄발전소 폐쇄,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 금지도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냐고요?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효율화'에 대한 고민과 발전이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때문입니다. 배출량 감소를 위해 재생에너지 산업에 더 많이 투자하면서 노동시장의 경제까지 확대하는 '그린뉴딜' 정책과 기존 중공업분야 종사자들이 재생에너지 산업으로 전환할 때 관련 생계지원과 필요한 교육 등을 지원하는 '정의로운 전환'까지 등장하였습니다. (이 부분은 다음 강의에서 더욱 자세하게 다룹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요?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도 계속 증가해왔습니다. 영국과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 추이를 비교할 때, 영국은 배출량을 계속 감소시키고 한국은 배출량이 계속 증가하면서 2016년쯤 교차점을 기준으로 두 나라가 뒤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누적 배출량은 영국이 많습니다. 다만 연간 배출량을 조금씩 줄여가고 있는 추세라는 것이지요.) 안타깝지만 한국정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 시나리오를 보면 파리 기후협약은 물론 다른 나라 추세에 비해 훨씬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이에 2019년 8월, 전국 330개 단체들과 여러 시민들이 모여 <기후위기 비상행동>을 결성하였습니다. 9월 21일에는 3대 요구사항을 내걸고 전국에서 6,500명이 거리에 모여서 집회에 행진을 가졌습니다. 3대 對정부 요구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기후위기를 인정하고, 비상선언을 실시하라. 2) 배출제로 계획을 수립하고, 대응방안을 마련하라. 3)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독립적인 범국가기구를 구성하라. 이 외 전 세계에서는 그레타 툰베리를 비롯한 많은 청소년들의 외침과 행동(예: 등교거부), 영국의 멸종저항시위(Extinction Rebellion), 독일 토지의종말(Ende Gelande!) 등 다양한 모습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행동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지난해만해도 그레타 툰베리의 영상이 여기저기에서 보인 것을 감안하면 아주 조금씩이지만 전 세계는 공동의 목소리에 조금씩 귀를 기울이고 있고 앞으로는 더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이 세상은 사람들이 사람들과 어울려 살기 위해서 만든 곳이니깐요. 참, 질의응답 시간에서도 재밌는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아직 전기 혹은 수소자동차 가격이 내연 자동차보다 비싸다는 점과 관련하여 한재각 소장님께서는 내연자동차에 환경부채(사회적 비용)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이야기해주셨는데요. 탄소배출량이 그만큼 많은 산업(예: 내연자동차, 석탄발전소 등)에서 기준 배출량 이상에 대한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이었기에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흥미로운 지점이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동시에 '현재의'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함께 고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작성 : 정다람 자원활동가 |
||||
[특별기획] 지금 다시, 젠더를 묻는다 | [지금 다시 젠더] 차이를 가진 존재들을 살리는 길 | 개똥이 | 2020.5.31 | |
<여성과 퀴어운동의 분리주의를 넘어>를 제목으로 하여 '누가 여성이고, 진짜와 가짜 구분- 뭣이 중한가'를 논하였다. 지금다시 젠더를 묻는다 3강 시리즈 중 두 번째 강의였다. 가족구성권연구소 소장 역할하시는 김순남님은 장애여성공감에서 오래 활동하셨다고 한다. 두 시간 반이 짧았다. 공감과 연결, 확장을 통해 해방으로 나아가자. 서로 다른 경험을 지녔더라도 같은 의제로 연대하자는 간곡한 메시지가 특히 와 닿았다.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운동 혹은 정치 혹은 연구가 페미니즘이라는 작은 오해와 여남간 상호 적대, 혐오현상을 짚는다. 그러면 여자란 무엇인가. 누가 진짜 여성인가로 흘러가버리는 분리주의는 페미니즘의 본질과 닿는가. 강의는 이 질문으로 시작하여 다음과 같은 방향성을 확인한다. 페미니즘 운동이 만들 사회는 누구도 이성애 중심적인 가부장제에 의해 성별 규범에 맞춰 살도록 강요당하지 않는 사회,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이해하고 존중할 기회와 자원이 동등하게 주어지는 사회 그러므로 부당하게 해고되거나 학교에서 내쫓기지 않는, 법제도와 공동체가 인권을 다수결로 저울질하지 않는 사회여야 한다.(2020-02-12 언니네네트워크/ 퀴어여성네트워크 성명 인용) 나라는 개인은 정말로 단일한 정체성으로 구성되어 있나 묻는다. 흑인, 여성,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시인, 엄마, 연인, 전사 등으로 자기를 정의한 오드리 로드(Audre Lorde, 1934~1992)처럼 한 사람을 이루는 정체성은 다양하고 복잡하며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되새겼다. 진짜 여자인가 아닌가를 구분하고 누가 더 고통스러운가를 나누는 방식이 존재의 연결성을 차단하는 것에 주목한다. 내부를 분할하여 상대권력을 무력화한다. 페미니즘을 억압하는 사람들은 ‘나는 페미니스트가 싫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진짜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진짜 가짜 논쟁에 패대기치면 억압이 쉬워진다. 기존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이 문법을 충실히 따라 가부장제 사회에서 받은 피해와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성을 제거하고, 남성없는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것이 대안이 될까. 우리(페미니즘 옹호자, 운동가)는 누구인가 성찰한다. 여성만의 공간, 안전지대 설치와 유지 보존의 도구로써 페미니즘이 작동한다는 주장은 본질적(radical)인가. 분리는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가. 차이를 가진 존재들이 서로 살리는 길은 우리 삶의 복잡함을 자축하는 것에 있다. 긴장이 발생하는 그 장소로 들어가 머무르고 함께 흔들리고, 우리를 잡아당기는 다중적 관점을 받아들이자. 우리 삶과 세상의 모든 복잡다단함을 반영하는 정치를 건설하자. 이제까지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한계, 그 너머로 우리 욕망을 확장하자. 정체성의 범주로 구분되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과 함께 하자. 더 많은 공간을 만들자. 살아 있는 우리는 모두 섞이면서 변형되는 유기적 존재다. 마주하고, 연대하자. ※ 2강 참고도서 및 읽을거리 <우리는 자격 없는 여성들과 세상을 바꾼다> 트랜스젠더 여성 A씨를 향한 환대와 지지의 기록 (권김현영, A 외 23개 단체 지지성명을 묶음/와온) <시스터 아웃사이더> 갖가지 기준으로 서로 나누고 가르며 문제를 문제로만 남겨두려는 태도를 비판(오드리 로드/후마니타스) <망명과 자긍심> 교차하는 퀴어 장애 정치학(일라이 클레어/현실문화) <글로리아 안잘두아의 교차성 이론: 초기저작에서 「경계지대/경계선」까지 (2014)박미선/부산대여성연구소 글_김태정 자원활동가 |
||||
[특별기획] 지금 다시, 젠더를 묻는다 | 트랜스젠더 신입생 등록취소가 남긴 질문들 - 박수민 | 개똥이 | 2020.5.27 | |
트랜스젠더라는 단어는 더는 우리에게 낯설게 다가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을 한 사람의 개인으로 바라보는 데는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아직 서툰 것 같다. 박한희 변호사님과 함께한 이번 강의는 내가 그들의 삶에 나름대로 공감해보고, 그들이 느낄 막연함을 상상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원하는 학교에 입학하고, 선거에 참여하고,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는, 나에게는 일상적이다 못해 당연한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고민거리라니. 일각에서는 트랜스젠더 인권이 페미니즘과 대척점에 있다고 말한다. 사회가 규정한 성 역할을 고착시킨다는 이유에서다. 나는 생물학적 성별과 성별 정체성이 다른 기분은 알지 못하지만, 타고난 기질이 내 삶의 전제를 ‘희생’으로 만드는 상황이라면 숨도 쉬지 못할 만큼 갑갑할 것 같다. 사회가 개인에게 기대하는 여성상, 남성상을 타파할 필요가 있듯, 우리가 트랜스젠더에 갖는 전형적인 이미지에서 탈피해야 그들 또한 조금은 더 용기를 내어 개인으로서 자신을 보여주지 않을까. 이는 다양성의 문제로도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근력운동을 좋아하는 여성이 있고, 수공예를 즐기는 남성이 있듯, 그리고 누군가가 그 사람을 향해 ‘남자/여자가 되고 싶은 거 아냐?’라고 말하는 것이 무례한 일이듯, ‘근력운동을 좋아하는 트랜스젠더 여성’과 ‘수공예를 즐기는 트랜스젠더 남성’이라는 이 두 문장은 우리에게 더욱더 자연스러워져야 한다. 개인의 가치관, 사상, 취향 등을 온전히 존중하는 사회에는 여성과 남성, 트랜스젠더라는 구분이 무의미하고, 차별과 편견에서 한결 자유로울 것이다. 언젠가 올(것이라고 믿고 싶은) 이 사회에서는 성중립 화장실도 그저 개별 화장실이라고 불릴지 모른다. 사실 나는 성중립 화장실에 대해 잘 몰랐는데, 이번 강의를 통해 변기와 세면대가 한 칸에 있는 넓은 1인용 화장실과 다를 바 없음을 알게 되었다. 물론 몇 년 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공용화장실이 성별로 분리되고 있고, 나를 비롯한 많은 여성이 불법 촬영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이는 공간의 분리보다는 범법 행위에 대한 처벌 강화, 올바른 성교육 등의 제도적 개선으로 근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지금부터라도 이러한 논의를 활발히 한다면, 언젠가는 트랜스젠더 여성의 입학 소식이 다른 학생에게 위협으로 생각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페미니스트로서 트랜스젠더 인권에 대한 논의를 늘 회피했던 입장에서, 나에게 이 강의는 내 관점을 정립하고 인권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아직 질서 있게 내 생각을 정리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후기가 횡설수설한 듯하지만, 앞으로 남아있는 두 번의 강의까지 마치고 나면 한층 깊어진 논리로 내 의견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코로나19로 강의가 두 달 정도 미뤄졌지만, 따뜻한 공기와 색색의 꽃들이 아름다운 계절에 이 강의가 열리는 것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갖가지 색깔이 피어오르는 것이 무지개와 닮았기 때문이다. 혹시 나의 부족한 감수성 때문에 이 후기를 읽던 누군가가 상처받았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글. 박수민 자원활동가 |
||||
[특별기획] 막다른 전지구적 기후위기, 우리의 선택은? | [강좌후기] 기후위기로부터 대전환 - 과학으로 보는 기후위기(조천호) | 달라이 | 2020.5.25 | |
기후변화는 오늘날 우리에게 크게 낯설지 않은 단어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조금씩 기후변화의 영향을 경험하고 있지요. 하지만 아직 다가오지 않은 기후위기를 두고 우리의 대응은 미온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번 강의에서는 과학적 데이터를 통해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세상의 모습을 잠깐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인류세 기후변화를 이야기에 앞서 우주와 인류의 탄생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138억년 전 우주가 탄생하였고, 45억년 전 우리의 지구가 탄생하였습니다. 이후 자연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생명이 주고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였지요. 그러나 인류는 조금 달랐습니다. 정보를 모으고 가공하고 전달하면서 자연에 적응하는 과정을 겪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인류는 조금씩 지구의 모든 자원을 사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열대기후 생태계를 파괴하는 대신에 새우양식장이 증가하였고, '농업혁명'으로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3배나 증가하였지만 비료는 토지와 물을 오염시켰습니다. 기후변화 기후변화는 단순히 과학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류의 사회, 정치, 일상 모든 것이 얽혀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지구가 따뜻했던 기간에는 농업 생산량이 높았습니다. 인구가 증가하고, 문명이 발달하고, 제국이 팽창하였지요. 하지만 빙하기가 오면 식량 및 영양부족으로 사람들이 사망하였고, 천연두과 홍역과 같은 전염병이 성행하였습니다. 결국 인구가 감소하고 제국도 무너졌습니다. 제국의 흥망성쇠가 기후변화의 흐름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것입니다. 빙하기와 간빙기 때 지구의 온도를 살펴보면 고작 4도에서 5도 차이입니다. 문제는 속도입니다. 자연은 10,000년에 4도가 상승하는 반면 인간은 100년에 1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자연의 속도보다 약 20배~25배 빠른 것이지요. 지구이 온도가 1.5도 올라가면 전지구적 고통을 겪게 됩니다. 예를 들어 여름철에만 잠깐 겪었던 폭염이 정상화된 날씨를 경험하게 됩니다. 만약 2도가 올라간다면 복원력을 상실하고 문명을 벗어난 삶으로 들어갑니다.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는 것입니다. 기후위기 극단적인 기후는 발생 가능성(확률)이 높지는 않지만 피해(비용)이 매우 큽니다. 두가지 요소를 고려한다면 극단적인 기후(기온과 기후의 상승)일 때 위험이 더욱 커지게 됩니다. 이를 '살찐 꼬리의 위험'이라고도 부릅니다. 기후변화의 영향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무서웠습니다. 문제는 글로벌 시대를 맞이한 오늘날의 세계는 한 국가의 가뭄이 다른 국가의 배고픔을 초래하고 결국 국가체계의 무너짐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모든 국가는 같은 기후위기를 맞이하면서도 대응역량에 따라 각기 다른 위험을 맞이합니다. 더욱 심각해진 불평등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기후대응 인류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선의 적응은 온실가스의 저감입니다. 문제는 2050년까지 Net Zero(이산화탄소의 배출량과 흡수량이 0이 되는 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재생에너지 산업이 활성화되고 여러 부분에서 기술혁신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에너지의 구조가 바뀌고, 산업의 구조가 변화되고, 사회적 구조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을 낮출 수 있습니다. 결국 기후대응을 위해서는 '거대한 전환'이 필요한 것입니다.
강의를 진행하신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님께서는 기후대응은 정부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자유시장 매커니즘 안에서 수많은 경제적 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엇을 우선순위로 두는지에 따라 우리는 지금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기후위기가 우리를 변화시켜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작성 : 정다람 자원활동가 |
||||
[독서서클 - 와] 동물권 읽기 - 육식인, 채식주의자, 집사 모두 모여라 | [후기] '독서서클-WA' 동물권 읽기 | Jinny1028 | 2019.12.22 | |
젠더와 인종차별을 공부하며 타자화된 이들에 대한 관심은 삶을 구성하는 큰 일부가 되었다. 차별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며 불편한 것이 많아졌고, 많은 언어의 유입과 손실을 경험했다. 내 세계의 지각변동은 안정적으로 머물러 있는 타인에게 공격이자 도전이었다. 관성과 방어기제로 무장하고 논리의 오점을 파헤치는 사람들 때문에 지칠 때도 많았다. 하지만 다시 책을 집어들게 한 것은 사고의 경계를 허물며 존재를 새롭게 정의해갈 때의 희열이었다. 알고 있던 틀에서 벗어나 나와 너의 존재를 확장할 때 자유롭고 행복했다. 하지만 내 관심의 대상은 늘 인간이었다. 특별한 계기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간 동물권 독서 모임에서 또 한 번의 거대한 삶의 지각변동을 겪었다. 타자에 대한 관심을 인간이란 테두리 밖으로 확장시킨 것이다. 나에게 동물의 권리라 하면 운동화 속의 돌멩이였다. 성가시지만 걷다가 멈춰 신발을 벗는 것은 귀찮아서 어딘가 찝찝한 채로 안고 살아가는 문제였다. 깊이 생각해본 적도 없었고, 네덜란드에 살 때 만난 수많은 채식인에게 무지를 가장하여 무례한 질문을 던진 적도 많았다. 사고의 벽을 허물 때 행복하다고 말하면서도, 나는 스스로의 견고한 종차별주의적 사고를 제대로 성찰하지 못했다. 독서서클 ‘와’에서 <고기를 끊지 못하는 사람들>, <동물학대의 사회학>, <동물의 권리>를 읽고 토론하며 걸음을 자주 멈추고 운동화 속의 돌멩이를 빼내 이리 저리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동물학대에 어떤 행위가 포함하는지, 학대의 대상은 의식이 있는 동물이어야 하는지, 혹은 그러한 기준자체도 인간주의적인 것은 아닌지. 피부처럼 익숙했던 인간중심적 사고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불편할 수밖에 없기에 혼자였다면 금방 지쳤을 수 있다. 하지만 같은 문제에 천착한 이들과 생각을 공유하고 어려움에 공감하며, 겸허하게 사고의 한계를 반성하고 동물을 새롭게 사유하는 과정이 외롭지 않았다. 그리고 동물권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한 첫 걸음을 내딛었다. 육식을 해온 사람으로서, 처음 동물권에 관심을 가지며 가장 내면화하기 힘든 문제는 공장식 축산에 대한 논의였다. 촘촘하게 구조화된 자본과 산업화로 인해 우리는 식탁에 올려진 고기가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 알지 못한다. 알고 있어도 살생의 흔적을 말끔히 지운 채 포장된 고기는 문제를 비가시화하고 우리를 무감각하게 한다. 산업화에 길들여진 나 역시 보기 좋게 요리한 고기를 생명체로 보지 못하도록 훈련되었다. 하지만, <동물학대의 사회학>을 읽으며 보다 간접적인 폭력을 동물 학대의 범주에 넣고, <동물의 권리>에서 의식이 없는 식물인간과 온전한 의식을 가진 소에게 부여된 권리에 대해 생각해보자 입에 넣던 고기가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채식에 단계적으로 진입하는 요즘은 일상 자체가 도전이고 어려움 투성이다. “유별난” 사람이 되어야 하는 불편함을 감내해야 한다. 도시락을 싸오거나 채식 식당을 조사하는 부지런함이 없으면 많은 경우 배고픔을 느끼며 어딘가 아쉬운 식사를 하기 일쑤다. 유튜브에서 보던 비건들처럼 맛있고 건강하게 먹으면서도 신념을 지키려면 상당한 공부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특히 우리나라에서). 하지만 내가 무엇을 먹는지에 대해 고민해보며 그 어느 때보다 음식과 건강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단순히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을 떠나, 나의 몸이 어떤 영양소를 필요로 하고 무엇을 먹을 때 행복한지 진지하게 고민해보게 된 것이다. 고기를 못 먹어서 어쩌냐는 많은 이들의 염려와 달리,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간 음식을 찾아보고 나만의 요리를 시도해보는 요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다. 올 겨울 불편해야 할 일이 수십가지 늘었지만,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다. 계획되어 있던 세 번의 동물권 독서토론이 끝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단톡방에서 동물권 관련 책을 비롯하여 다양한 채식 식당을 서로 추천해주기도 한다. 1월에는 한 번 더 책을 선정하여 토론을 진행하기로 했다. 동질성이 강하게 작동하는 우리 사회는 동물권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척박한 환경이지만, 함께여서 든든하다. 차별과 폭력의 가장 깊숙한 곳을 찔러보며, 마땅히 느껴야 할 불편함과 사유를 확장시키는 즐거움으로 분주한 겨울이다. |
||||
[시민연극워크숍] 정기공연을 향해 | 연극 <그녀가 사라졌다> 관람 후 | 선애 | 2019.12.12 | |
연극을 보고, 삶을 삶답게 살고 싶어졌다. 느티나무 시민연극단의 연극 <그녀가 사라졌다>에서 명혜는 교사라는 직업과 그동안 부양했던 가족을 뒤로 한 채, 새로운 곳에서 새 삶을 시작한다.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고, 나는 자신의 행복을 만들어가는 명혜를 응원한다. 마지막에 춤추는 장면에서 명혜를 비롯한 여자 배우들은 참 아름다웠고, 남자 배우들은 웃음을 주었다. 극이 밝게 끝나서 좋았다. 연극을 본 뒤, 행복한 삶을 더욱 적극적으로 일구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드신 희수 엄마가 시를 읊는 장면은 특히 마음을 움직였다. 한 배우가 서로 많이 다른 두 인물을 연기한 것도 이번 연극의 묘미였다('희정/가수', '명우 처/일본인', '경로당 총무/쿠바 댄서' 등). 일상에서 우리도 자신 안에 있는 다양한 면을 인식하고, 최선의 나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연극이 더욱 특별한 것은 극작까지 시민연극단 안에서 직접 했다는 점이다. 극을 쓴다는 것, 연극을 무대에 올린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 대본을 쓰고 각색, 연출하신 선생님들, 모든 배우와 제작진께 큰 박수를 보낸다. 이번 연극은 삶에 새로운 기운과 영감을 주었다. 연극에 참여하신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영국의 연출가 피터 브룩은 말한다.
"어떤 공연을 보고 힘을 얻어 행복해진 관객에게도 같은 물음을 던질 수 있다. 그 이상의 무언가 가능할까? 우리는 그 순간 행복감을 경험하는 일시적인 해방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익히 안다. 그렇다면 짧은 순간을 넘어서서 무언가 우리 안에 어떤 자취를 남기는 것도 가능할까?" (<빈 공간>)
나는 연극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 공연을 코앞에 둔 리허설을 마치고(2019. 12. 7.). |
||||
[나의 역사공부 1] 사료와 ‘톡’하는 법 | [나의 역사공부 1] 사료와 '톡' 하는 법 - 계몽의 전사, <독립신문> | 빛깔 | 2019.12.7 | |
오늘날 정보를 SNS, 유튜브 등을 통해 접하지만, 이전에 그 역할을 한 건 ‘신문(新聞)’이었습니다. 단순히 사실을 알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그렇다면 1890년대 조선의 신문은 어떻게 등장했고, 영향력을 행사 했을까요? 사료와 ‘톡’하다, 네번째 시간은 ‘계몽의 전사, 독립신문’입니다.
독립신문과 독립협회가 등장한 1896년
독립협회보다 먼저 만들어진 독립신문은 최초의 민영 일간지였습니다. 갑신정변(1884) 실패 후, 김홍집 등 17명을 중심으로 한 군국기무처를 기반으로 갑오개혁(1894)을 추진했습니다. 개화정책을 단행했지만 신임을 얻을 수 없었죠. 갑신정변 후 미국에 망명했던 서재필이 귀국하면서 민중계몽과 개혁정책을 알림으로써 지지를 얻기 위해 ‘독립신문’이 탄생했습니다. 이승만, 윤치호 등 개화파를 중심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 후 정부의 외세의존정책에 반대, 자주독립과 내정개혁을 표방한 독립협회가 세워졌습니다. 초기에는 토론회와 연설회 등 민중계몽운동의 주축이 되었으며, 양성한 활동으로 지도적 역할을 담당하게 된 이들은 만민공동회를 열어 고종에게 개혁안을 실행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공화주의를 주장하는 이들이 정부를 무너뜨리려 한다는 유언비어로 인해 해산되었으며, 독립신문은 협회 해산 이후 정부의 탄압과 논조가 바뀌면서 1899년 폐간되었습니다.
순한글 사용, 권리, 그리고 문명화 독립신문은 국문판과 영문판을 내고, 세로쓰기를 하며, 투고를 받는 등 파격적인 구성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을 꼽자면, 국문 사용, 권리의 중요성 강조 그리고 문명화 교육으로 볼 수 있죠. 먼저 순한글을 사용함으로써 누구나 신문을 읽기에 수월하고, 신문 속에 있는 말을 자세히 알아보게 했습니다. 독립신문 창간 당시 주시경이 참여했는데, 국문을 통해 만들 수 있게 도왔으며, 띄어쓰기를 강조했으니까요. 권리의 경우 천부인권과 법적인 보호를 강조했습니다. ‘백성마다 얼마큼 하느님이 주신 권리가 있는데, 그 권리는 아무라도 빼앗지 못하는 권리요(이하 생략)’ 부분에서 하느님이 주신 권리, 즉 천부인권을 자각하고, 권리의식이 있어야 더욱 높아질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법으로 보호해야한다는 사실을 나타냈습니다. 마지막으로 문명화는 독립신문이 추구했던 민중계몽과 연관이 있지만, 절충적 요소를 덧붙여 문명을 설명했습니다. 문명이 바라는 시민상을 제기하는 거에 그치지 않고 어떤 세력에 상관없이 공평을 가지고 재판하는 까닭에 압제 받을 필요가 없으며, 무죄추정의 원칙을 서술했습니다. 다만 문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찾기 어렵다는 게 아쉽지만 말이죠.
자발적으로 모여서 비폭력으로 맞선다 독립협회는 크게 3가지 운동을 했습니다. 자주 국권 운동(독립문 건립, 이권 수호운동 전개, 고종의 환궁 요청), 자유 민권 운동(국민 기본권 확보 운동, 의회 설립 운동, 국민 참정 운동), 자강 개혁 운동(국가 재정 일원화 요구)을 말이죠. 다양한 사회운동을 했지만, 자발적 결사체였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전통적 가치와 근대 윤리를 절충해 독립을 기초로 하여 서울이든 지방이든 모든 이의 마음이 모였다는 걸 부각했습니다. 이를 행동으로 나타난 게 만민공동회(1898)입니다. 당시 러시아는 재정장악과 절영도 침략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만민공동회 이후 철회했죠. 이는 첫번째 비폭력시위 성공 사례로 였으며, 동학농민운동처럼 지방에서 일어났던 것과 달리 서울에서 먼저 열린 시위였습니다. 신문을 통해 민중 계몽을 하고, 여론이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있는 1896년의 독립신문. 그리고 민의를 반영하는 것이 중요한지를 드러낸 독립협회. 이 시점에서 민의를 파악하고, 깨어있는 것이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생각거리를 안겨주면서 말이죠. |
||||
서울드로잉 18기 | 서울드로잉 18기 전시작품 미리보기 | 느티나무 | 2019.12.5 | |
서울드로잉 18기 전시작품 미리보기 (전시안내 : http://academy.peoplepower21.org/Notice/24842 ) |
||||
[창조성놀이학교] 책읽기와 함께하는 인생 이불 짓기 | "일상은 예술이다." 제미란의 창조성 놀이학교 작품 발표회를 마치고 | 깨수기 | 2019.12.2 | |
창조성 놀이학교의 작품 발표회를 드디어 마쳤다. 막상 발표회라는 이름으로 전시를 하고 작품(?)을 설명하다보니 우리가 창조성이라는 예술의 세계로 함께 들어와 있음을 강하게 체험한다.
창조성 놀이학교는 참여연대 아카데미느티나무의 강좌이다. 인왕산 산자락에 위치한 제미란 선생님의 감우산방에서 진행된 놀이학교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놀이터로 모여드는 아이들이다. 함께 작업을 하고 먹고 놀지만 사실 개인적으로 아는 바가 거의 없다. 소위 고향이 어디고 자녀가 몇이고 무슨 일이 하는지 요즘 고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런 것들은 아무 의미가 없다. 해질 무렵까지 놀이터를 떠나줄 모르는 아이들처럼 “지금 여기” 놀이터에서 함께 어울려 노는 것만이 있다. 나에게 감우산방의 벗들은 그저 나와 다른 존재, 타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느슨한 친구들이다. 마법의 공간 감우산방에서는 그 타자들로 인해 <내>가 선명해진다. 책읽기는 문자를 읽는 것이 아니고, 바느질은 천을 꿰매는 것이 아니라 매 시간 우리를 다른 차원으로 인도하는 통로가 된다. 느슨한 관계이기에 꺼내놓은 아픈 감정이, 어린 시절의 상처가 우리의 깊은 마음속으로 들어가 삶의 고유한 무늬와 결로 다시 떠오른다. 그리하여 선명해진 나는 외면할 수 없는 타자와 손을 맞잡게 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와 함께 하나의 서사로 이어져간다. 마치 바느질의 한 땀 한 땀이 조각들을 이어 옷을 만들고 가방을 만들고 이불을 만들었듯이. 그래서였을까? 작품을 발표하는 산방식구들의 이야기는 다시 하나의 서사가 된다.
겁 없이 뛰어들어 바늘을 잡는 게 시작인 줄 알았는데 욕심을 내려놓는 것이 출발이었음을, 그리하여 한 땀 한 땀 막내아들에 대한 깊은 서원과 응원을 담은 이불을 완성했다는 *희샘과 천의 성질을 수용하여 기본에 충실하게 바느질하고, 나에게 조금 너그러워지니, 완벽하지 않아도 자유롭고 그래서 즐겁다는 *원샘의 이야기는 욕심을 내려놓고 나의 취약함을 받아들이는 게 우리가 강하게 단련되는 첫 걸음임을 알려주었다. 함께 읽은 책의 한 구절 “ 강해지는 유일한 방법은 취약함을 받아들이는 것이다.”가 바느질로 나타나는 순간이다.
늘 정해진 길로만 가던 내가 바느질 하나로 일탈을 표현할 수 있었다는 *숙샘! 버려진 것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었던 *정샘! 나에게 첫 딸이듯 딸에게도 첫 엄마구나 하는 마음으로 곱디 고운 딸의 이불을 완성한 혜*샘! 어린 자신과 조우해서 엄마도 예술가였구나를 고백하며 눈시울을 붉히게 해준 *경샘! 무엇이 이런 공명을 만들어냈을까? 벗님들의 한땀 한땀 내어주는 이음의 풍만함으로 겨울을 따듯하게 나눌 수 있을 거라 한 *녀샘과 서로의 가슴 이야기를 풀어낸 시간, 조각보를 이어가던 순간이 우리가 연결되어 가는 것이라 알려준 *선샘에게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민샘은 바느질이 다른 시공간으로 넘어가는 다리라고 했다. 그렇게 바느질은 그것이 가져온 내 안의 어떤 <사태>를 들여다보게 한다. 저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 있어서 쉽게 드러나지 않았던 어떤 것들과 마주보게 한다. 나는 내 안의 아이를 깨울 수 있었고 그 아이가 놀게 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미*샘도 우리 벗님들과 함께였기에 추억을 잇고 기억을 깁을 수 있었으리라. 바느질하며 책읽기를 한다는 것이 하루를 채워가는 소중한 밥상이며 일상이 된다는 혜*샘과 드디어 나의 이불을 찾고 그 이불을 덮은 내 마음을 달구어 나도 누군가를 품고 싶다는 윤*샘의 이야기는 고로 일상이 예술이고 예술이어야만 한다는 제미란 선생님의 선포로 이어진다. 함께해서 영광이며 귀하다는 *자샘의 고백은 그렇게 우리의 고백이 된다. 창조성 놀이학교의 작품 발표회는 성찰과 고백으로 공명하며 일상이 곧 예술이라는 선포로 하나의 서사가 된다.
그러나 책무감과 도덕성으로 자신을 괴롭히기 일쑤인 나 자신은 여전히 쓸데없이 진지한 물음을 던진다. 놀이학교 수업의 과정과 결과물을 나는 어떻게 확장해가야 하나? 감우산방을 내려간 후 일상과의 괴리감은 어찌할까? 여전히 산 아래 일상은 그저 일상으로 그치고 마는데..... 유한마담처럼 이렇게 먹고 마시고 놀아도 되는 걸까? 겨우 만난 내 안의 아이에게 자꾸 훈계하려는 내 안의 꼰대를 어쩌지 못한다. 여전히 나에게 고민을 안겨주는 창조성 놀이학교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노는 마음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산방에서의 시간은 그렇게 나란 존재가 드러나고 알려오는 시간이기에 모두 기쁜 흥분으로 취할 수 있다. 아하! 나 여기 있다! (Here I am!) 나 여기 있다 ! 나 여기 있었구나!의 발견에 감탄하는 시간이 된다. 하고자 일에 “예술”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순간 우리는 완벽으로부터 면제될 권리를 얻는다고 했던가! 우리의 작품이 예술이듯 우리 자신도 예술가라면 불완전이야말로 우리의 권리이자 정체성이지 않을까? 나의 화두 온전함(wholeness)이란 완벽하게 흔들리지 않는 절대성이 아니라 불완전하기에 변화와 시련에 흔들흔들, 흔들리며 적응해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지식과 이성을 쌓으려는 나에게 필요한 것은 그래서 “ 노는 마음” 일 것이다. 창조성 놀이학교는 앞으로도 놀이<터>를 만들어주고 나는 반짝거리는 서로의 눈을 맞추며 놀 궁리를 하게 되겠지! 현장사진
|
||||
[나의 역사공부 1] 사료와 ‘톡’하는 법 | [나의 역사공부 1] 사료와 '톡' 하는 법 - 한국인의 역동성을 발견하다, 비숍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 | 빛깔 | 2019.11.29 | |
일부 고등국어(하) 교과서에 한 기행문에서 발췌된 [외국인의 눈에 비친 19세기 말의 한국]라는 지문이 있습니다. 이 기행문은 4번의 조선 방문과 급변했던 시대적 상항 그리고 인상 깊었던 모습까지 상세히 적혔습니다. ‘정확성’이 자신의 제일 목표였고,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는 이 근대적 사료를 한 번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사료와 ‘톡’하는 법, 세번째 시간으로 이사벨라 비숍의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Korea and Her Neighbours》’입니다.
허약했던 어린 시절과 장기선박여행
여성 지리학자, 대단한 필력, 크리스천. 이사벨라 비숍(Isabella Bird Bishop, 이하 비숍)의 생애를 짚을 수 있는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공회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려서부터 독실한 빅토리아풍의 기독교적 가정교육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병약했던 터라 정규 학교를 다니지 않고, 부모님께 많은 것을 배우거나 혼자서 공부(생물학, 시, 화학)했죠. 늘 허약하고 우울증으로 고생하자 의사는 그녀에게 장기 선박 여행을 권유했습니다. 캐나다와 북미주를 방문한 후 쓴 ‘미국에 온 영국 여인(The Englishwoman in America (1856))이 팔리게 되면서 글과 여행을 자기 업처럼 여기게 됩니다. 그러나 부모님의 사망 이후 다시 병이 재발했는데, 이 시기에 만난 비숍 박사와 결혼했지만, 병으로 남편을 잃었습니다. 우울증과 고독으로 괴로워하던 그녀는 다시 여행을 떠났고, 1894년 1월 요코하마를 경유해 그 해 2월에 조선에 도착합니다. 그녀는 1897년까지 4차례 방문해 장기 체류를 했으며, 그 후 중국과 모로코를 여행했으나, 여독으로 사망했습니다.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1897년 발간한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urs》’은 1894년 1월부터 1897년 3월까지 4차례에 걸친 조선 방문을 다뤘습니다. 당시 그녀가 조선을 방문했던 건 몽골 인종의 중요한 특성에 관한 자신의 연구 계획의 한 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이죠. 원작자 머리말-서장-각 장 별 내용(ex.사회적 상황, 문화)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머리말에선 자신이 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어떤 점을 우선시 했는지 밝혔습니다. 서장은 기존에 출판된 책에 조선이 어떻게 적혀 있는지, 자연지리와 가족제도, 광물, 통치형태, 개항 이후의 상황 등을 구체적으로 적었습니다. 여기서 두드러지는 점은 ‘정확성’ 입니다. 기행문의 특성상 자연지리와 인문적 요소가 필요한데, 지리학적 정보가 뚜렷했습니다. 더불어 쇄국을 유지하다가 강화도조약 이후 개항을 하게 된 외교적 상황과 한글 등의 사회문화도 기록했습니다. 바탕지식 같은 느낌으로 말이죠. 역동성과 격변의 시기를 외국인의 눈으로 바라보다 ‘역동성’을 잘 묘사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머리말에선 시베리아에 갔을 대 봤던 조선인을 보고 다른 국가와 성격의 특성을 짧게 언급했지만, 이를 낱낱히 쓴 건 제 13장 1896년의 서울 에서 잘 드러났는데, ‘서울이 여러 면에서, 특히 남대문과 서대문 방향으로는 너무 변하여 옛 모습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고 운을 뗐습니다. 있는 걸 보수하면서 때때로 주민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건설되었으며, 새로 건물을 짓는 유럽식과 달랐죠. 또한 도로를 넓히고, 좋은 부지에 호텔을 세우려는 준비가 이뤄지고, 상점들이 즐비 해지기 까지. 1894년 자신이 책을 쓰기 위해 찍어둔 빈민촌 사진이 아무짝에도 쓸모 없어졌다고 단언했을 정도로 말입니다. 또한 조선에 왔을 때의 상황도 언급했습니다. 동학농민운동, 갑오개혁, 을미사변, 단발령과 아관파천까지 급박하게 돌아가던 상황을 기록했습니다. 예를 들어 동학농민운동의 경우 동학 교도와 정부군 사이의 전국적 충돌에 관한 소문을 들었으며, 이 일이 일어난 것을 이해하게 된 걸 나타내는 부분도 있습니다.
급변하던 상황을 제3자 시각에 바라보고, 저술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료(史料)로 인정받고 있으나,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의 조선 입항은 광물을 노린, 이권침탈이 있다는 것과 사회진화론 시각이 있다는 건 아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안에선 차마 알 수 없었던 관점, 생생하게 묘사하되 정확성을 잃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녀가 조선이라는 나라에 깊은 관심이 있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
||||
[나의 역사공부 1] 사료와 ‘톡’하는 법 | [나의 역사공부 1] 사료와 '톡'하는 법 - 서양을 빌어 새 길을 말하다- 유길준의 서유견문록 | 느티나무 | 2019.11.27 | |
서양을 빌어 새 길을 말하다- 유길준의 서유견문 위의 제목은 사료로 ‘톡’하는 역사 시간을 이끌고 계신 김정인 교수의 ‘서유견문’에 대한 핵심적 제목이다. 유길준이 서유견문에 밝히고자 하는 내용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고 봐도 좋다. 서양에서는 성경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이 마르코폴로가 쓴 ‘동방견문록’이라고 한다. 마르코폴로의 큰 뻥치기 언어의 기술은 동방은 ‘황금이 가득한 나라’라고 환상을 심어 주는 바람에 이후 서양의 국가들이 앞 다투어 신대륙의 포문을 열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유길준의 서유견문은 결코 서양이 황금이 가득한 나라이니 우리도 빨리 힘을 길러 쳐들어가자 그런 류는 아니다. 어쩌면 그가 찾고 있던 황금은 당시 그가 본 서양의 사회정치적인 면모가 황금이었을지 모른다. 서유견문에서는 19세기 말 조선이 나아가야 할 길을 밝히고 나아가서 세계의 정치적 시스템도 알려 주고 있다. 그는 일본과 미국에서 수준 높은 학자들과 교류하며 공부를 하였고 심지어는 일본으로 망명하기도 하였던 그는 친일파나 친미파로 분류되지 않는다. 강한 세력에 빌붙어서 한 자리 탐을 내던 그런 사람들의 부류도 아니었다. 오직 조선의 개혁을 꿈꾼 진정한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동방견문록을 읽고 탐험을 떠난 사람들이 많았지만- 실은 탐험을 빙자하여 금 쟁탈전- 유길준의 서유견문이 조선의 개혁을 주도적으로 이끌거나 행동으로 옮긴 견인차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 할지라도 그 당시 많은 개화파 지식인들이 얼마나 왕정 전제국가에 머물러 있던 조선을 개혁하려고 했는지 유길준의 행적을 통해서도 그 고민과 의지를 알 수 있었다. 겨우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이 주로 이끌던 개화파 지식인들이 뭘 알았겠냐고 하던 역사 시간 선생님들이 개화파에 대한 미숙함에 대한 언급이 오버랩 되기도 하면서 한국 현대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민주화의 거센 파도 맨 앞에도 늘 젊은 20대가 있었던 것을 보면, 500년 지속되던 왕정국가에서 다른 정치 체제로의 변혁을 꿈꾸던 그들은 아마도 디지털도 따라 가기 힘든데 인공지능시대로 넘어가는 현 시대가 직면한 과도기보다 더한 요동치는 변화의 물결위에서 조선을 구하고 살리고자 하는 정치적 몸부림을 하였는지도 모른다. 앞으로 개화기 지식인들을 알고 싶어하는 강한 호기심을 이끌게 되었다. 사실은 서유견문이라는 책 제목만 알고 있는 수준에 머물던 내가 이번 사료와 ‘톡’ 하는 시간을 통하여 ‘역사 까막눈’이 조금씩 눈 떠가는 새로운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은 나에게 정말 소중한 계기가 아닐 수 없다. 첫 시간인 ‘알렌의 일기’를 통해서도 이방인이 본 갑신정변이 결코 3일 천하로만 끝나지 않은 시각을 가지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사료가 가지는 힘이 객관성 뿐만 아니라, 시사하는 가치가 다양하게 접근할 수 있으며 새로운 쟝르를 재창출 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하게 되었다. 서유견문은 성리학을 공부한 조선말의 지식인이 서양의 문물을 접하면서 조선이 앞으로 어떻게 개혁을 하며 어떤 사회로 나아가야 할 지 치밀하게 고민하고 또 자신이 본 것 중에서 나은 정치 제도 개혁을 통하여 그 꿈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으며, 국한문을 혼용하면서 책을 출간한 이유는 궁극적으로는 모든 국민들이 읽을 수 있게 ‘적극적인 계몽’에 염원을 두었다는 강력한 의지를 서문에 밝혔다. 우리나라의 글자는 우리 선왕(세종대왕)께서 창조하신 글자요, 한자는 중국과 함께 쓰는 글자이니, 나는 오히려 우리 글자만을 순수하게 쓰지 못한 것을 불만스럽게 생각한다. 외국 사람들과 국교를 이미 맺었으니, 온 나라 사람들-상하, 귀천, 부인, 어린이를 가릴 것 없이 저들의 형편을 알지 못해서는 안 될 것이다. 유길준의 국한문 혼용쓰기는 훗날 국민이 갖고 있는 힘이 나라의 근본이 된다고 생각하여 한글로 펴낸 독립신문 창간에도 연결된다. 김정인 교수님에 의하면 이것은 서재필이 독립신문을 창간하면서 이왕이면 한글쓰기에 띄어 쓰기로 함으로써 한글을 더 읽기 쉽게 만든 주시경 선생과도 연결이 된다고 하셨다. 이렇게 그들은 서로 서로 다 연결되어서 국민 계몽과 개혁에 앞장서고 있었다. 유길준은 1881년 26살 신사유람단에 참가해 후쿠자와 유키치가 운영하는 게이오 의숙에 입학을 하여 공부를 하였다. 1883년 28살에는 민영익을 전권대신으로 하는 보빙사의 수행원으로 미국행을 하면서 피바디 관장인 모스 박사로부터 한국 최초의 미국 유학생이 되기도 하였다. 이완용이 미국에 갔다 오면 친미파가 되고, 일본을 갔다 오면 친일파가 된 것 과 달리 유길준은 부정적인 의미의 친일이니 친미가 아닌 진정으로 그 나라로부터 조선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하고 고민하는 관계의 친미,친일이었기 때문에 개인의 영달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유길준은 이 책에서 천부인권 사상과 같은 자유와 통의를 설명하고 있으며, 입헌군주제를 주장하고 있다. 다양한 정치 제도를 설명을 하면서, 조선의 왕권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영국의 입헌군주제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그 체제가 가지는 장점에 대해서 많이 할애하고 있다. 김정인 교수에 의하면 고종이 입헌군주제를 취했더라면 조선은 일본에게 국권침탈이 쉽게 되지도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주장과 함께, 조선이 입헌 주제가 되는 것을 가장 막은 것은 당시 일본이었다고 한다. 입헌군주제 체제에서는 내각이 모두 찬성해야 하기 때문에 국권침탈이 쉽지 않기 때문에 한 절대권력자의 도장인 옥새로 일사천리로 처리되는 과정과 다르다고 하였다. 개화파들이 고종에게 끊임없이 입헌군주제의 장점을 이야기하면, 고종이 하루는 신하들에게 일본의 이토우 히로부미는 다른 나라 신하인데 나에게 입헌군주제를 절대 하면 안된다고 하는데 너희들은 어째서 입만 열면 입헌군주제를 하자고 하느냐고 하였다는 일설이 있다고 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이치는 천자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털끝만큼의 차이도 없다. 서유견문은 조선에서 출간되지 못했다. 1895년 일본 교문사에서 출간을 하였다. 서유견문의 목차를 눈 여겨 둘 필요가 있다. 서유이니 여행에 빠질 수 없는 세계의 바다나 강, 산 그리고 지리적인 면도 포함되어 있으며, 정치, 사회적 풍습도 소개되어 있다. 무엇보다 김정인 교수는 제 4편의 국민의 권리에서 ‘통의’ 라는 정의와 제15편 여자를 대접하는 예절편을 소개하면서 서로 토론하는 과정도 가졌다. . 지유와 평등이라는 계몽주의 이후에 개념에서 유길준은 통의通義라는 용어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국민의 권리라고 하는 것은 자유와 통의를 말한다. 자유는 나라의 법률을 삼가 받들고 정직한 도리를 굳게 지니면서,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사회적인 직분 때문에 다른 사람을 방해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의 방해도 받지 않으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하는 권리이다. 통의를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당연한 정리正理- 바른 이치, 도리-하고 할 수 있다. 통의는 인간에게 천연과 인위의 두 가지 형태로 존재한다 . 천연이라고 하는 것은 자연히 생겨난 것이니 동요되거나 고쳐지지 않는 것이다, 인위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지혜로 법률을 세우고 그에 따라 나아가거나 물러나는 것이다. 또 통의를 자세히 논의하자면 유계와 무계의 구별이 있다. 무계의 통의는 한 사람에게만 소속되어 다른 사람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며, 유계의 통의는 세속에 살면서 세상 사람들과 사귀어 서로 관계되는 것이다. 무계한 통의는 사람이 타고난 것이다. 하늘 아래 사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막론하고 세속안에서 어울리며 교제하는 자나 세속 밖에 처하여 혼자 살며 의지할 곳이 없는 자라도 다 도달 할 수 있는 올바른 이치인 것이다. 유계한 통의는 인위적인 법률로 , 법률의 근본 취지로 사람들의 행동거지를 바로 잡으려고 하는 것이다.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사람답게 사는 권리는 현명함과 우둔함, 귀함과 천함, 가난함과 부유함, 강함과 약함에 따라 구별되지 않는다. 사람답게 사는 권리는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고도 올바른 원리다. 대중이 이 원리에 의하여 그들의 인성을 저마다 펴간다. 어떤 사람이 말하길, ‘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권리는 각 사람에 따라 각각 일정하게 정해져 있다.’ 고 하였는데,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이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권리는 하늘이 내려 준 공도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이치는 천자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털끝만큼의 차이도 없다." 유길준은 현 시대로 비유하자면 관직에 나가지 않고 시민단체를 만들어 교육과 계몽운동을 다방면에서 평생 하였으며, 59세로 숙환으로 사망하였다고 전해진다. 정리 _백미정 |
||||
[시민연극워크숍] 정기공연을 향해 | 시민연극 - 타인의 마음으로 나를 찾는 일 | 개똥이 | 2019.11.20 | |
연극을 하고 싶었다. 무엇 때문인지 정확하게 말할 순 없지만, 연극을 하고 싶었다. 중학교 때 잠깐 했던 연극반 때문인지(《한여름밤의 꿈》을 죽도록 연습했지만, 끝내 상연은 하지 못했다), 고등학교 때 수업은 안 듣고 책상 밑으로 돌려가면서 읽었던 『유리가면』 때문인지(“마야, 나무가 되어라!”), 대학교 때 들었던 교양 연극수업 때문인지(뭔지도 잘 모르고 감상문 쓰러《관객모독》보러갔다가 물벼락 맞았다)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연극을 하고 싶었다. 연극은 어째선지 지루한 일상을 조금은 바꿀 것 같았다. 밀려오는 정보에 쩌들고, 사고하지도 향유하지도 않고, 스스로에 대해서건 사회에 대해서건 밍숭맹숭하게 무뎌진 감각에 아주 조금은 각성제가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많은 걸 기대한 건 아니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배우들처럼 돌아가면서 대본을 읽고, 무대에 오르기 위해 몸을 움직이고, 사람들과 함께 한 가지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면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 매주 수요일마다 참여연대 지하 1층에서 연극을 연습하고 있다. 《그녀가 사라졌다》의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 남동훈 연출님은 한 호흡으로 읽을 수 있을 때 읽으라고 했다. 연극은 중간에 나갈 수 있는 게 아니고, 한 호흡으로 봐야 하는 공연이니까 그랬을 것이다. 자기 전 조명을 낮춰두고 방해 없이 문을 닫은 다음 한 호흡으로 읽었다. 인물들의 면면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녀’ 뿐만 아니라 모두의 ‘진짜 서사’는 무엇인지, 대본은 끈질기게 추적하고 있었다. 혼자 아서 밀러나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을 읽는 건 좋아했지만, 연극을 한다는 게 무엇인지는 몰랐다. 그건 외따로 글자와 만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다. 가장 놀라웠던 건, 연극은 대본을 읽으면서 완성된다는 것이었다. 희곡은 하나의 완성된 텍스트가 아니라, 상호개입을 요청하는 텍스트였다. 느티나무 시민연극단은 각자 자신을 교사, 학생, 직장인, 다양한 여러 가지 정체성으로 소개했다. 하지만 연극 앞에서는 모두 진지하게 배우가 되었다. 대본을 읽고 의견을 덧붙이는 과정을 처음으로 보았다. 이 인물이라면 어떻게 행동할지, 이 상황이 이 인물에겐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 사람들은 자신이 맡은 인물의 상황을 상정하고 추정해서 인물의 총체적 이야기를 새롭게 구성했다. 대본은 그저 종이였을 뿐인데 갑자기 공간감이 생겼다. 다 같이 극을 읽을수록 2차원이었던 인물이 뼈와 살을 가지고 텍스트 속에서 3차원으로 불쑥 솟아올랐다.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인물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기에, 볼 때마다 새롭게 놀랐다. 느티나무 시민연극단이 처음으로 상연한 연극은 세월호에 관한 연극이었다고 했다. 이 사회의 시민들에게 어떻게 공감하고 애도해야 하는지, 무엇으로 그 슬픔에 연결되어야 하는지 물어야만 했던 사건을 이들은 연극으로 만들었다. 그 연극을 보지 못했지만, 연극을 하면서 왜 그 마음을 굳이 ‘연극’이라는 형태로 표현했는지 약간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연극은 영화가 아니다. 한 번에 찍고서 똑같은 걸 반복해서 틀 수 없다. 매 순간마다 새롭게 상연해야 하고, 새로운 상연은 같은 대본으로 하더라도 결코 이전과 같지 않다. 호흡, 순간의 움직임, 눈빛, 모든 것이 조금씩 바뀐다. 관객은 카메라가 제공하는 시야를 수용하는 게 아니라, 작은 무대 안에서 자신이 집중하고 보고 싶은 걸 볼 수 있다. 공연자들은 그 작은 무대를 하나의 세계로 만들어 움직인다. 같은 대본을 몇 번씩 읽고 있지만, 읽을 때마다 달라진다. 화면이 아니라 실재하는 인간이 앞에서 움직인다는 게 만들어내는 공기는 특별하다. 인형도 아니고 스크린도 아닌, 언제든 내 삶에 뛰어들 수 있는 인간이 다른 인간의 마음으로 말을 걸어온다. 서사는 물론 ‘진짜’가 아니지만 사람은 ‘진짜’로 내 앞에 펼쳐진다. 참여연대 아카데미느티나무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공공의 힘을 키우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공공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다른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에서 나온다. 이 문제가 내가 아니라 저 사람에게는 어떻게 다가갔을지 상상하는 힘에서 나온다. 우리가 서로 어떻게 다른 배경에 서 있고, 다른 존재로 완성되었는지 오롯한 개인으로서 인정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연극은 그 모든 것들을 단단하게 훈련시킨다. 내가 맡은 배역은 주인공 ‘그녀’의 조카다. 서른이 넘은 나는 열아홉 살 소녀가 사라진 고모에 대해 느끼는 애정과 공감을 상상한다. 엄마 아빠에 대한 비죽임, 자기 삶의 외로움, 고모를 볼 때마다 곧잘 기꺼워지는 순간들. 열아홉 살 소녀는 나와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왔다. 내 삶에서 유추할 수 없는 수많은 시간들이 그녀의 삶에 켜켜이 쌓여 있다. 요즘에는 가끔『유리가면』의 마야가 했던 것처럼, 그 인물이 되어서 걷고 생각하고 밥을 먹어본다. 나와는 먼 곳에 있는 누군가에게 손을 뻗어본다. 이제는 몇 달 전까지는 알지도 못했던 열아홉 살 소녀에게 ‘연대’의 인사를 보낼 수 있다. 며칠만 더 지나면 공연이다. 12월 7일에는 내가 만난 소녀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게 될 것이다. 느티나무 시민연극단의 다른 모든 사람들도 자신이 발견한 연대의 마음을 관객 앞에서 드러낼 것이다. 그 순간을 생각하면 신기하고 따스하다. 사라진 그녀를 찾아내 줄 관객의 마음을 상상하게 된다. 나는 연극을 하고 있다. * 《그녀가 사라졌다》 공연 예고편 보기
|
||||
[나의 역사공부 1] 사료와 ‘톡’하는 법 | [나의 역사공부 1] 사료와 '톡' 하는 법 - 정변의 시대를 함께 겪은 이방인 알렌, <알렌의 일기> | 빛깔 | 2019.11.15 | |
시대 흐름 간의 연결과 사진해석
'역사'라는 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시대에 맞춰서 해석하는 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죠. 설령 자유롭게 해석을 해도 오늘날 추구하는 가치 안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하며, 약간의 상식도 필요합니다. 사진해석도 중요하게 작용하고요. 그렇다면 당시 어떤 상황이었던 걸까요? 강화도조약(1876) 이후 조선은 개화기였습니다. 농민 투쟁이 많았고, 급진개화파들은 ‘평등’을 법제화하려고 했습니다. 특히 국왕권위는 낮아지고, 내각(의회)는 높아지는 이른바 ‘입헌군주제’ 도입을 추구했습니다. 하지만 조선의 서양화 속도는 늦었고, 근대화를 향한 의지도 낮았죠. 이를 보여 주는 것이 광혜원(廣惠院) 사진입니다. 고종과 명성황후가 지원해서 생긴 이 병원은 당시 홍영식의 집을 썼습니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은 이미 서양문화가 깊게 들어온 때였습니다.
선교사이자 관료였던 그, 안련(安連)
H.알렌(이하 알렌)은 1884년 제물포를 통해 조선에 들어옵니다. 신학과 의학을 공부한 후 미국 북장로교회 해외 선교부에 선교사 지원서를 제출하면서 중국으로 파송되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그는 주변 조언으로 한국으로 가게 됩니다. 그 후 갑신정변(1884)때 민영익을 치료해준 걸 계기로 신임을 얻어, 의료·선교뿐 아니라 미국 공사관 서기관(1890)에 역임하는 등 정치에도 관여했습니다. 특히 1903년 미국에 머무는 동안 동아시아 정책이 잘못되었다며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1905년 해임 이후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후에 그에 관한 평가는 두 갈래로 나뉘는데, 한국 독립을 위한 ‘친한적’인사 혹은 미국정부의 공식 외교관이었기에 ‘친한적’외교관이 될 수 없다는 평가로 봅니다. 전자의 경우 알렌이 고종의 독립 보전 및 근대화 정책을 지지했다는 것에 주목하지만, 후자는 미국이 한반도에서 금광, 철도, 전차 등의 이권을 차지할 수 있도록 하는, 즉 신문물이 도입했을 당시에 관여했음에 주목 했습니다. 그렇지만 의학 발전에 노력했다는 점, 주한미국공사로 활동하면서 한국의 입장을 알렸던 점은 인정되고 있습니다.
알렌의 일기 속 1884년 그날
오늘날 <알렌의 일기>는 한국을 둘러싼 극동 아시아의 외교사가 어땠는지, 한미 외교사를 연구할 때 중요한 사료입니다. 또한 도착할 때까지의 항로, 생활사, 의학사 등 다양한 부문을 알 수 있기도 하죠. 그러나 여기서 두드러지는 부분은 바로 1884년 12월 4일, 갑신정변과 삼일천하를 다룬 기록입니다. 서울에 거주하는 외국인에게는 아주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다(12월 5일 금요일) 며 시작했는데, 문득 보면 정세를 모른다는 걸 짐작할 수 있지만, 두렵고 신경이 세워지던 때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자신들의 삶이 위협받고, 청나라와 일본이 싸우던 찰나였으니 피신해야 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죠. 아무튼 민영익을 밤새도록 치료하고 간호한 그는 갑신정변을 ‘최초의 암살사건’으로 지칭하며 급진개화파의 배후에 일본이 있었다(12월 11일 목요일)고 추측합니다. 나아가 일기 후반부에는 계속 전투가 일어났으며, 외국인들이 계속 서울을 떠나고 있음(12월 20일 토요일)을 저술했습니다. 그리고 갑신정변에 가담했던 인물들을 처형한 후 시내에 보인 시체더미가 있었고, 반역자의 시체임을 알게 되었다(1885년 1월 30일 금요일)는 걸 썼는데, 이는 삼일천하가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당시 어떻게 흘러가고 있었는지 상상이 되고, 와닿았습니다. 물론 '일기'인 특성상 개인의 솔직한 마음도 드러나는 부분도 있었지만 말이죠. (알렌이 민영익을 정말 싫어했다든지) 그래도 사료를 읽는 것이 조금은 낯설지 않게 되어서 다행이었습니다. |
||||
자기재생을 위한 춤워크숍 | <참가기> 자기재생을 위한 춤워크숍 | 루나와주니 | 2019.11.12 | |
‘온전히, 움직이는 나의 몸만을 도구로 무엇인가를 표현해 낸다.’ 내 인생의 어려운 영역 중 하나다. 언젠가는 한번 도전해 보리라 막연히 꿈만 꿀 뿐, 그 비슷한 언저리를 배회하며 내가 할 수 없는, 혹은 해서는 안 되는 이유들을 먼저 생각하고 저만치 밀쳐 두었었다. ‘자기재생을 위한 춤 워크숍....몸치, 박치지만 마음 한 구석에 늘 춤을 갈망해 왔다.’ 이 매력적인 문구에 이끌리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그것도 4회밖에 안 된다고 하니 주먹에 힘을 불끈 줄 것도 없이 결제까지 일사천리로 신청 완료했다. 힘들었다. 몸풀기를 하는 초반 30분은 웬만한 개인트레이닝의 강도에 밀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양팔을 좌우로 펼쳤다고 모으기를 반복하고, 고등학교 이후로 처음인 듯한 제자리높이뛰기까지. 첫 날은 시계를 몇 번을 봤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땀이 윗옷의 등과 목둘레에 스며들 때쯤 몸풀기가 끝이 나면 어느새 몸은 한결 가벼워지고 다음 동작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신기했다. 두 번째 수업이었나? 선생님이 오늘은 안무를 창작해 보겠다고 했을 때, 올 게 왔구나 싶었다. 안무 창작이라니... 나에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그러나 1시간쯤 시간이 흐른 후에 나는 누구보다도 팔다리를 크게 움직이며 공간을 휘젓고 있었다. 처음에 선생님은 하루 중의 자신의 움직임을 살펴 5개의 동사로 적으라고 했고, 그 동작을 직접 자신의 몸으로 표현해 보도록 시간을 주었다. 책장을 넘기는 오른손의 아주 작은 움직임이, 계단을 오르내리는 의미 없던 양다리의 반복이, 그런 일상의 움직임들이 조금씩 커지더니 어느새 제법 모양을 갖춘 안무가 되고 있었다. 사전 조율이 전혀 없었던 전체 참가자들의 동작은 그 사이사이를 메우는 음악이 덧칠해져 훌륭한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 어쩌면 내 몸 안에도 ‘춤’이라는 유전자가 존재할 수도 있겠다는 위안이 생긴 수업이었다. 설령 없다할지라도, 마지막 수업 시간에, 나의 무게를 받아 주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등과 어깨를 내주었던 동료들이 있다면 춤, 그것도 별 거 아닐 수 있겠다. 나의 어려운 이 첫 걸음을 이끌어 주고 동행해 준 선생님과 동기 참가자들께 감사드린다.
|
||||
[예술워크숍] 난민과 나, 보이지 않는 실찾기 | [참가기] 예술워크숍_난민과 나 보이지 않는 길 찾기 | 느림보바 | 2019.11.10 | |
첫째날 _ 시선 참여연대에서 진행하는 워크숍에 참석했다. <예술워크숍_난민과 나 보이지 않는 길 찾기>라는 긴 제목의 워크숍이다. 예술과 교육을 접목하여 난민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디자인된 워크숍인데, 난민, 예술, 교육, 이 세 가지 키워드가 모두 내 관심사를 적중하고 있기에 두 번의 황금같은 토요일을 바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참가를 결정했다. <소설 워크샵> 둥글게 앉아 오전 세션이 시작되었다. 자리를 옮겨 가며 모든 참가자들과 한번씩 이야기를 나누고, 얼굴을 익히고 마음을 여는 시간 뒤에는 바로 소설 워크샵이 이어졌다. 떠오르는 책 제목을 말하면 참가자들이 그 제목에서 떠오르는 스토리를 무엇이든 이야기한다. 나는 '처음에는 사소했던 일'을 말했는데, 그 제목으로 사람들이 상상해 내는 이야기가 재미있다. 실은 어떤 이야기였는지 따로 밝히는 절차는 없다. 20세기 초 평양에서 태어나 인천으로 이주하고, 하와이를 거쳐 캘리포니아에 정착한 한 여성의 자서전의 대강의 줄거리를 진행자가 소개하고 그 책의 제목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이렇게 제목과 이야기를 서로 오가며 이야기를 나눈다. 다음에는 자기 인생의 어떤 부분에 대해 소설을 쓴다고 가정하고 제목을 붙여보라고 한다. 제목을 썼으면 딱 한 문장만 써 보라는 주문. 그리고 우리는 각자가 설정한 책의 제목과 첫문장에 이어서 자기의 상상을 덧붙여 나간다. 나는 이 작업에 단번에 매료되었다. 나는 누군가 화두처럼 던진 제목과 첫문장에서 점화된 이야기의 불꽃이 내 머리와 가슴에 단박에 들어차는 것을 느낀다. <망명의 패턴> 점심을 먹고 돌아오니 공간에 변화가 생겼다. 그 사이 진행자들이 벽에 사진작품들을 전시해 두었다. 사진은 모두 얼음을 근접촬영한 것이다. 겨울이면 우리가 흔히 보는 바로 그 얼음. 강이나 계곡에 생겨났다가 봄이면 사라지는 얼음. 익숙한 풍경인데도 대상과 눈 사이의 거리가 일상적인 수준을 뛰어 넘어 아주 가까워지자 낯선 아름다움이 펼쳐진다. 사진 속을 거닐면서 나는 시린 추위를 느낀다. 진행자는 사진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에 제목을 붙이고 그 제목으로 부터 뻗어나가는 이야기를 상상해 보라고 요구한다. 나는 한 사진 앞에 붙들려 '그해 여름'이라는 제목을 짓는다. 초여름이고, 계곡 물은 아직 얼음처럼 차가운데, 태양은 꼭대기에 걸려 있다. 한 소녀가 물 속으로 들어간다. 조용히 계곡 바닥으로 잠수하며 소녀는 자기 몸 어딘가에 얼음이 박혀 있다는 상상을 한다. 그 소녀는 왜 아직도 차가운 계곡에서 잠수를 하고 있을까? 상상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마침내 그 사진을 찍은 이와 만나는 시간이 왔다. 에티오피아에서 온 베레켓은 한국의 겨울과 충격적으로 조우한다. 그에게 한국의 겨울은 너무나 고통스럽고, 너무나 경이롭다. 그는 눈과 얼음을 찍는다. 서울은 콘크리트 정글이라 한강에 나가야만 숨이 쉬어지는 것 같아서 한강을 너무나 사랑한다고 말한다. 멀리서 온 이의 눈에 비친 나의 고향은 이제 다른 의미를 가지고 내게 다가온다. 그는 이 작품들의 제목을 "망명의 패턴"이라고 지었다. 계절이 순환하고 물이 얼어 얼음이 되고 다시 녹아 물로 돌아가듯, 우리는 어느 한 지점에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움직이고 있는 거라고, 에티오피아에서 한국으로 온 그는 말한다. 에티오피아에서의 삶이 지속되지 않았듯이 서울에서의 삶도 그럴 수 있다고. 맞는 말이다. 그 무엇도 영원하지는 않다. 정주의 기간과 안정성에서 개인차는 있겠지만 우리가 무에서 존재를 얻고 다시 무로 돌아가는 패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멀고 먼 길을 왔건만 그는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도 못했다. 그래도 자기에게 허락된 시간을 행복한 것으로 만들어내는 힘을 가졌다. 그는 유쾌하다. 곧 겨울이 닥칠 것이지만 그래도 견뎌 보겠다고 유쾌하게 말한다. 난민이 들어오면 우리는 그들에게 무조건 퍼주어야만 하는 것 아니냐고, 우리도 먹고 살기 힘든데 누굴 도와주냐고,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은 중요한 것을 모른다. 이방인에게 관대한 사회는 언제나 번성했다. 낯선 시선은 일상의 관성으로부터 우리를 끌어올려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해준다. 그의 사진은 나에게 내 조국의 겨울이 가진 색다른 아름다움을 일깨워주었고, 그의 유쾌한 삶의 자세는 일상의 무게에 지지 말라고 나에게 용기를 준다. 이미 그는 차고 넘치도록 자기 역할을 하고 있다. 근대에 연애 소설이 탄생하고, 소설의 등장인물에 감정이입이라는 것을 하게 되면서 '인권 의식'이 생겨났다는 이론이 떠올랐다. 타인의 감정을 내 감정처럼 느끼는 일, 그것이 내 가족이나 이웃이 아니라 생판 모르는 타인, 나아가 이야기 속 가공의 인물까지 확장될 수 있었던 것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알게 되면 우리는 그를 대상이 아니라 존재로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이건 정주자가 난민을 대할 때만이 아니라, 모든 만남에 적용될 수 있는 진실이다.
난민 워크샵 두번째 시간이었다. 첫번째 날의 주제가 '시선'이었다면 둘째 날의 주제는 '경계'이다. 워크샵 장소에 도착해서 잠시 놀랐다. 멤버들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틀간 진행되는 워크숍을 두 번 다 참가하는 것도 이렇게나 힘든 일이구나. <마음 풀기> 간단히 지금 자신의 상황을 공유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자기에게 해당되는 말이 나오면 손뼉을 한 번 치면 된다. "오늘의 워크숍에 참가하면서 긴장이 된다." "추워지는 날씨가 반갑다." "아직 겨울옷을 꺼내지 않았는데 벌써 추워졌다." "시간 참 빨리 간다." "워크샵에 두 번 다 참가했다." "아침을 먹고 왔다." "오늘의 '맨발' 프로그램을 위해 발톱을 다듬고 왔다." 손뼉을 치며 반응하는 서로를 보며 재미있어 한다. <거울 놀이> 둘이 짝을 짓는다. 한 사람은 거울, 한 사람은 사람이다. 사람이 무언가를 하면 거울이 따라한다. 연극워크샵에서도 해본 활동인데 아주 재미있다. 장난기가 슬슬 발동하면서 야릇한 동작을 해서 상대방을 당황하게 만들 수 있다. 역할을 바꿔서 한 번 더 한다. 지난 시간에 언급되었던 주인공 '메리'가 되어 본다. 평양에서 인천을 거쳐 하와이, 그리고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메리가 16세가 되어 가정부로 입주하는 날이다. 다락방에서 난생 처음 전신 거울과 만난다.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일단 떠오르는 대로 메리가 되어 글을 써본다.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줄줄이 적는데 이걸 '내리적기'라고 한단다. 각자가 쓴 글을 가운데에 모아놓고 둘이 짝을 지어 한 사람은 메리, 한 사람은 거울이 된다. 내 짝꿍은 배우이다. 설렘과 두려움이 뒤섞여 있는 상황을 표정과 미세한 동작으로 표현한다. 따라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역할을 바꾸어 내가 메리가 되었을 때도 과한 몸동작을 자제하고 메리가 된 듯 조심스럽게 움직여 보았다. 백인 가정에 가정부로 간 열여섯살 소녀 메리도 조심스러웠을 테니까. 단순히 거울을 보는 장면일 뿐이지만, 이 순간 메리가 어떻게 했을지를 곰곰 생각해 보는 일이 재미있었다. 메리의 두려움을 생각하며 살짝 마음 한 구석이 아파온다. 그래도 메리는 열여섯살. 처음으로 전신거울에 비친 자기 자신을 보며 만족스러운 마음도 있었을 것 같다. 소감을 나누는 시간. 메리가 되어 본 경험을 통해 무슨 생각을 했는가 이야기를 나눈다. 낯선 곳에 내던져진 어떤 존재에 대해 상상해 보는 경험을 통해 우리는 수많은 메리들에 대한 상상으로 생각을 확장해본다. <출입국관리소> 걷는다. 직선으로도 걷고 곡선으로도 걷는다. 그러다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의 고압적이고 불친절한 목소리를 듣는다. 크고 딱딱 끊어지는 소리. 나를 밀어내고 거부하고 무시하는 소리. 그 소리가 연속해서 들려오자 걸음이 뚝뚝 끊긴다.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동선이 엉키지 않도록 유려하게 걷던 나는 사라지고 자꾸 동선이 끊기고 엉킨다. 어떤 참가자는 바닥만 바라보고 걷느라 주변의 것들이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노라고 고백한다. 소감을 나눈다. 경계를 넘었던 경험, 경계 밖에 있던 경험을 나눈다. 한 참가자는 방을 구할 때 그런 경험을 한다고 했다. 작아지고 보잘 것 없어지는 마음. 나는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그런 경험을 했던 것 같다. 나는 없어지고 자궁만 남는 느낌. 아무도 나의 존엄에는 관심이 없고, 나의 자궁에만 초점을 맞추는 느낌. 임신을 했던 안했건 나는 그대로 나인데 나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은 완전히 달랐다. 그 과정에서 나는 무수히 상처를 받았다. 어린 아이를 키울 때도 그렇다. 단지 아이를 안고 있을 뿐인데 온 세상 '육아 전문가'들이 나에게 간섭을 한다. 그들에게는 내가 아기 엄마라는 사실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난민으로만 보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지금 나를 구성하는 어떤 한 가지를 나의 전체인 양 부분을 전체로 환원해 버리는 순간 소외가 발생한다. <십시일반 몸풀기> 둥글게 서서 한 사람씩 돌아가며 몸풀기 동작을 보여주면 나머지 참가자들이 따라한다. 점심 식사 후 나른해진 몸과 마음을 깨우는데는 그만이다. <찬반토론> 난민 수용에 대한 찬반토론을 했다. 찬성과 반대 입장으로 나누고, 자료를 찾아보고, 각자 그 입장을 말하기에 적합한 어떤 인물을 상상한다. 오전에 메리가 되었던 것 처럼 오후에는 또 다른 사람으로 '빙의'를 해본다. 나는 반대 의견을 가진 인물을 선택했다. 제주도에서 딸을 키우는 가정 주부. 높은 의자를 두 개 놓고 한 의자에는 진행자가 앉고, 다른 의자에게는 발언자가 앉는다. 그 자리에 앉으면 발언권을 갖는다. 사람들은 각자 어떤 인물을 상상하며 그 자리에 앉아 그 사람이 가질 법한 입장으로 이야기를 한다. 생각보다 집중적으로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간다. 소감을 나눈다. 반대 의견은 단순하고 직관적이다. 논리를 펼치기에 유리하다. '상식'이라고 부르지만 실은 편견인 어떤 생각들이 우리 마음 밑바닥에 두텁게 깔려 있기 때문에 그냥 그것에 기반해서 살짝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려주면 된다. 찬성 의견을 펼치는 것은 보다 많은 논리와 자료를 필요로 한다. 왜 우리의 이야기는 항상 장황해지고, 그들의 이야기는 단순 명료해지는지 피부에 와 닿는다. 찬반토론이 왜 비생산적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찬성과 반대로 나뉠 수 없는 문제를 찬성과 반대의 대립 상황을 설정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구도가 되기 때문에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다. <경계 넘기> 방울이 군데군데 달려 있는 선들이 복잡하게 설치된다. 참가자들은 맨발이 되어 눈을 가리고 그 선들을 통과해서 반대편으로 가야 한다. 줄을 건드려 방울 소리가 나지 않도록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눈을 가리자 두려움이 몰려온다. 전혀 위험하지 않은 환경인데 무섭다. 다리와 발에 느껴지는 줄, 그냥 느낌만으로 알 것 같은 옆사람의 존재를 예민하게 느끼며 한 걸음 한 걸음 반대편으로 간다. 우리는 오각형으로 서 있었기 때문에 건너편은 사람마다 다르고 진행방향도 다 달라서 동선은 자꾸 얽히게 되어 있다.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한다. 누군가 내 귓가에 작은 소리로 "다 왔어요."라고 속삭여주는데 너무 반갑다. 빨리 건너편으로 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상황을 충분히 오감으로 느끼는 것이 목적이라고 하는데, 나는 유독 빠르게 장애물을 통과해 반대편에 도달한다. 왜지? 왜 나만 자꾸 빠르게 움직이지? 의아했다. 소감을 나누는 시간에 깨닫는다. 우리는 모두 동일한 미션을 부여받았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방식으로 미션을 해석하고 자기 방식으로 경계를 넘어 반대편으로 간다. 가장 천천히 이동한 참가자는 앉아서 손으로 줄을 만져보며 움직였다고 한다. 나는 손으로 줄을 만져볼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애초에, 절대로 달성할 수 없는 미션이 부과되었다는 사실에 기분이 나빠졌었다는 참가자도 있다. 나는, 나는 어차피 줄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약간의 종소리'는 그냥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자는 쪽이었다. 건드리면 안된다고 하지만 건드린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지 않나. 나도 모르게 목표 중심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나는. <정리> "나는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가요"라는 뜻의 문장을 로힝야 말로 노래로 만들었단다. 그 노래를 배워 함께 부른다. 파트를 나눠 부르기도 하고 다 함께 부르기도 한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가는 사람들. 어떤 사람은 고향을 떠나고, 어떤 사람은 떠난 곳으로 되돌아오기도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환영받고 어떤 사람은 거절을 경험할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모두 떠나는 존재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우리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도, 주장을 강요하지 않고도,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마음 깊이 공감하게 만들 수 있다. 나는 그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진심으로 믿고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두번의 토요일, 머리로만 알던 것을 몸으로 깨우친다. 머리로만 아는 것은 진짜 아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 모든 프로그램을 공들여 준비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섬세하게 디자인된 프로그램에 참여하자 내가 조금은 품위있어진 기분이었다. 이렇게 품위 있고 우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베풀어주신 진행팀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
||||
[학교에서 안 알려주는 ‘진짜’ 정치학] 야, 너두 유권자야 | [특강후기] 내가 불출마를 선언한 이유 -이철희 국회의원 | 개똥이 | 2019.11.7 | |
저는 우리나라가 ‘연정’을 통해 한 단계 더 성숙하길 바랍니다.
대부분의 정치인, 고위공무원, 시장에서 많은 자본을 획득한 사람들은 전부가 그러진 않더라도 대부분은 자신의 사회적 신분과 위치를 지키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한창 전성기를 누리고 더 높은 지위를 욕심낼 법한 국회의원이 불출마한다는 소식에 처음엔 너무 신기하였습니다. 물론 유권자로 돌아가면 더 큰 역할을 맡지 못하고 더 높은 지위를 가지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기회를 스스로 내려놓는다는 소식은 제가 이번 특강을 기대하게 하는 큰 이유가 되었습니다.
특강은 이철희 의원이 현재 정치에 관해 이야기해주는 1부 강연과 그의 지도교수와 함께 청중의 질문을 받는 2부 순서로 진행되었습니다. 보통의 특강과 다를 바 없었지만, 강사의 이야기들은 평소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이야기해주면서 제 생각의 폭을 더 넓힐 기회가 되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연합정치(이하 ‘연정’)’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우리가 흔히 있는 선진국(미국을 제외한 유럽의 복지국가)들은 대부분 집권 세력이 의회의 과반을 달성하지 못했지만, 연정을 통해 지금의 사회제도를 만들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평소 의문을 가지고 있던 ‘민주주의의 동력은 갈등에서 나온다.’라는 명제에 대해 품었던 의문점을 해결하였습니다. 지금의 국회는 ‘동물국회’, ‘식물국회’라는 이름으로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법을 만드는 기관에서 사법부에 법의 심판에 의존한다는 것도 아이러니했고요. 그래서 저는 ‘민주주의를 움직이는 동력은 정말 갈등이 맞는가?’라는 의문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특강을 통해 ‘갈등’은 맞지만, 우리 국회가 하지 못하는 것은 ‘연정’이었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유권자는 국회가 연정이 가능하게 할 수 있도록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