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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명 | 강좌후기 | 글쓴이 | 날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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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선워크숍] 온라인으로 모임을 즐겁게 진행하는 법 | [랜선워크숍] 온라인으로 모임을 즐겁게 진행하는 법 후기 - 모임 그 자체만으로도 힐링되는 시간! | 퐁당 | 2021.4.14 | |
코로나19 때문에 직접 만나서 강의를 듣고 워크숍을 하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오늘 뉴스를 보니- 단계 격상을 고민하고 있다고 하더라구요. ㅠㅠ) 그래도 만나지 않을 수 없으니 온라인으로 하는 회의/모임이 점점 늘고 있는 요즘, '온라인으로 하는 만남, 회의'를 더 잘할 수 없을까-라는 고민이 들었습니다.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시는 분을 통해 아카데미느티나무의 [랜선워크숍]을 소개받았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생긴 고민인데- 코로나19 덕분에 온라인으로 워크숍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대구에 살고 있거든요. 서울에서 진행하는 대면워크숍이었다면 매주 수요일 저녁, 서울에서 진행되는 좋은 워크숍에 참여하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인데 랜선워크숍이라 이렇게 좋은 워크숍을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총 네 번의 모임에서 다룬 주제 입니다. 1. 안전하고 즐거운 온라인 모임을 위한 약속 만들기 2. 서로를 알아가며 관계망 짜기 3. 모두의 의견을 좀 더 지혜롭게 모으기 4. 온라인에서 할 수 있는 정서적 돌봄 만나기
워크숍을 통해 배운 것들이 참 많습니다. 매번 다른 체크인과 체크아웃 방식은 '언젠가 온라인 모임에서 써먹어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했구요. 가르쳐주신 다양한 도구들도 적절하게 활용해 봐야지 싶었답니다. -잼 보드는 조만간 온라인 모임에서 써볼 예정이에요! 이런게 있다고 소개해드리니 다들 기대 중이십니다. 모임을 하는 과정에서 역할에 대해서 함께 고민하고 결정하는 것, 동의의 수준을 어디로 할 것인가 등등... 온라인 모임 뿐만 아니라, '모임' 그 자체를 운영하는 데에도 생각해봐야 할 것들을 잘 알려주시고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주셔서 너무 좋고, 감사했습니다.
워크숍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두 번 있습니다. 첫 모임의 체크인과 마지막 모임의 소그룹 활동이었습니다.
사실- 제가 이 워크숍을 듣기 전까지 나름의 우여곡절이 있었거든요. 다른 분들의 많은 배려 덕분에 매주 수요일을 두 시간씩 빼서 워크숍에 참여할 수 있었던거라... 진짜 잘 배워서 나눠야 한다는 생각에 긴장감 만빵(!)으로 첫 수업에 참여를 했더랬습니다. 그래서인지 첫 체크인 때 엄청 긴장 상태였답니다. 사실 그 긴장은 놀이를 하면서 사르르 풀려버렸지만요.
경청과 질문으로 서로를 돕는 활동을 한 마지막 차시는 감동의 순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온라인으로도 이런게 가능하구나- 나의 고민을 이렇게 진지하게 들어주시는 분들을 만나다니... 그리고 던져주시는 질문들은 진짜 나를 온 마음을 다해 생각해 주시는 것 같다고 느껴져서- 정말 눈물이 찔끔 날뻔 했다구요. ^^ (함께 해 주셨던 소그룹분들께 이 후기를 빌어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그 때 해 주신 질문들은 틈틈이 생각하며 나를 살피는 질문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워크숍이 끝난 4월부터- 매주 수요일이 다시 여러가지 회의들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온라인회의 이기도 하구요, 오프라인 회의 이기도 합니다. 3월 한 달간 [랜선워크숍]을 통해 쌓은 모임의 경험들이 이 회의들과 앞으로의 모임들에 조금씩 녹여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 [랜선워크숍] 자체가 너무 힐링되는 시간이었어서 - 정말 좋은, 안전한 모임을 하는 느낌이어서 그 자체만으로 좋았거든요. - 에너지를 많이 받았습니다.
랜선워크숍을 이끌어주신 이은주 선생님과 함께 좋은 모임을 만들어주신 많은 참가자분들과 이런 강좌를 온라인으로 열어주셔서 참여할 수 있게 해주신 아카데미 느티나무에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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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영혼의 언어, 동화 읽기 | [영혼의 언어, 동화 읽기] 당신의 삶에 마법이 일어나길 | moonlover | 2021.3.27 | |
해가 지고 달이 뜨는 마법의 시간, 당신을 초대합니다
라푼첼, 백설공주, 재투성이...이 고전 동화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디즈니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는 서양근대동화이다. 후에 그림형제에 의해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정리되었다. 이 동화를 우리가 꾸는 꿈의 구조와 같다는 전제에서 풀어보려고 한다. 동화에는 그리스로마 신화와 같은 큰 신들이 등장하기도 하고, 왕, 왕비, 공주, 왕자와 같은 작은 신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자연에서부터 온 이야기들이다. 꿈이 마음대로 컨트롤 되지 않듯 상상력도 자연으로부터 올라온다.
이 오래된 이야기들은 제작자가 누구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알 듯 모를 듯 내 인생의 힌트를 주기도 하는 기능을 한다. 자신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후대로 내려온 칼 구스타프 융과 함께 동화 안에서도 집단 무의식을 담고 있다고 해석한다. 이런 장르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누가 나를 가두는가 : 라푼젤
생명이 자라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신선하고 활발한 생명력이다. 라푼첼에서 욕망은 크게 두 가지로 표현될 수 있다. 한 가지는 ‘내가 가지고 있지 않지만 다른 사람은 가지고 있는 것’과 또 다른 한 가지는 ‘생명을 키우기 위해서 꼭 필요한 야생적인 생명력’을 뜻하는 것 같다.
간과 허파를 먹으면 아름다워질까 : 백설공주
여기서 벽 거울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굉장히 당당한 자세이다. 이때 핵심은 ‘예쁘냐, 안 예쁘냐’가 아니라 ‘누가 제일 빼어나냐?’ 즉, 최상급의 표현이다. 누가 제일이냐는 것이다. 우리 시대는 어느 때보다도 시각 중심의 시대이다. 이는 진실보다 시각 중심으로 재현된 모습에 어느 시대보다 집착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때, 우리가 내가 누구인지를 스스로 이해하고 인정할 때 시각적으로 복사된 이미지를 통해서 이해하려고 하면 진짜 모습을 찾기 어렵다. 거울에 비춰진 모습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때때로 어떻게 비춰지느냐가 더 중요할 때가 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보다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 지가 중요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 속에 사회적인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가 꿈틀거리고 있고 타인의 시선을 통해서 정체성을 찾고 싶을 때가 있다. 백설공주에서 왕비가 거울 속에서 이처럼 매일 되묻는 모습은 자신의 자존감을 타인의 반응을 통해 찾고자 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밖에서 눈이 펄펄 내리고 있는 날, 흑단 창틀 가에서 어느 여자가 바느질을 하다가 손이 찔렸다. 그것을 보고 나서 ‘아, 눈처럼 하얀, 피처럼, 붉은, 흑단처럼 검은 아이를 낳았으면’하고 바란다. 이 여자가 있는 공간은 겉으로는 결핍이 없어 보여도 내적으로는 결핍이 있고 고독이 있는 공간이다. 그 얼어붙은 공간에서 빨간 피가 생기니까 생명에 대한 영감 같은 것이 생겼다.
인간에게는 비슷한 것을 먹으면 비슷한 곳이 좋아진다는 관념이 있다. 간을 먹으면 간이 좋아진다고 믿기 때문에 곰의 쓸개를 먹기도 한다. 옛날에는 간이 영적인 공간이었다고 한다.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그렇다면 허파는 무엇일까? 허파는 숨 쉬는 공간이다. 숨 쉬는 공간은 문을 열고 닫는 것과 같아서 외부 세계에 대해 호흡을 열어서 바깥 공기를 흡수하고 뱉는다. 그리고 난 후 왕비가 사냥꾼에게 백설공주의 간과 허파를 가져오라고 명령을 내린다. 어머니, '몸, 감각, 감정의 우주’ 여신이라는 존재는 우리를 먹여살리기 위해서 자연으로부터 에워싸는 존재이다.
일곱 난쟁이는 지루할 정도로 ‘내 의자에 누가 앉았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일곱 난쟁이는 일곱 그릇을 골고루 먹고, 포도주도 한 방울씩 먹기도 한다. 난쟁이의 우주는 실제로 작은 게 아니라 이야기 속에서 작게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 몸에는 일곱 개의 센터와 연관되어 있다. 인도에서 일곱 개의 차크라와도 연관되어 있다. 이게 바로 어머니의 우주이다. 우리가 몸소 느끼는 우주이다. 우리가 이처럼 몸소 느끼는 감각은 매우 중요하다.
사과는 생명력을 가져다 주기도 하지만 먹으면 벌을 받는다는 이중성을 갖고 있기도 하다. 또, 오랫동안 우리가 우리 내면의 진실을 말하지 않을 때 목에 문제가 생기기 쉽다. 목에 뭔가 걸리면 말을 하지 못한다. 목소리는 요가 철학에서 진실의 통로라고도 한다.
재와 황금, 마법에 대하여 : 재투성이
언니들은 완두콩과 렌틸콩을 재 속에 뿌려놓고 골라내라고 시켰다. 재 속에서 어떤 것이 생명이 있는 것이고 어떤 것이 생명이 없는 것인지 가려내는 작업은 중요하다. 아버지에게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 모자에 걸리는 나뭇가지를 꺾어다주라고 했다. 모자가 걸려있다는 것은 과거에 신분을 잘 알려주는 페르소나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비둘기는 유럽에서 아프로디테의 상징이다. 아름다움 여신의 상징이다. 아까 말했던 콩 골라내기 작업 등은 프시케 신화를 상징하기도 한다. 위 작업들은 아프로디테 여신이 프시케를 훈련시키는 과정이다. 이 이야기 속에서 등장하는 세계는 순서가 있다. 집 비둘기는 훈련된 비둘기들이다. 그 다음에 산 비둘기는 야생 비둘기를 의미한다. 그 다음에 하늘 아래 있는 모든 새들에게 이야기한다. 이 공간에서는 세 단계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재투성이는 또 나무하고도 이야기를 한다. 이 개암나무는 저승으로 통하는 입구에 있는데 신성한 나무가 소원을 들어주기도 한다. 그녀는 비둘기집 뒤로 뛰어내려 개암나무로 뛰어가 아름다운 옷을 무덤에 놓았다. 만화 원작에서는 12시에 종이 땡 치면 마법이 풀리기 때문에 돌아와야 한다고 했지만, 이 시간은 날이 저물어 해가 지는 시간을 의미한다. 해가 진다는 것은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시간이다. 마법은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갈 때 일어난다. 우리가 변신할 수 있는 시간이다.
이 동화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바로 신발이다. 신발은 한 짝이 아니고 두 짝이다. 특히 재투성이는 신발을 양 쪽 다 신고 다녔는데 이는 주인공이 두 가지 세계를 다 끌고 가는 것을 의미한다. 신데렐라가 계단에서 신발을 흘린 것은 왼쪽 신발이다. 왼쪽 신발하고 오른쪽 신발은 다르다. 왼쪽과 관련된 것은 우뇌를 뜻하고, 이는 즉, 영감의 세계, 상상의 세계,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세계, 전체를 바라보는 생각들이다. 부분적, 분석적, 유용성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의미나 우리 삶의 정체성 등을 직관하고 느끼는 것이 왼쪽의 세계이다.
재투성이는 양 쪽 세계를 오가는 소녀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삶이 어느 한쪽 방면에 치우쳐서 양쪽에서 걷는 것이 아니라 한쪽 발로만 걷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되었다.
동화에는 정답이 없다
오래전 아트 앤 스터디에서 김융희 선생님 강의 <물, 불, 흙, 공기: 감각의 원형을 찾아서>, <삶의 길목에서 만난 신들의 이야기>, <색·인문학>, <이미지의 시학-바슐라르 바로보기>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참여연대 아카데미느티나무에서 <동화, 내 마음의 비밀언어>, <영혼의 언어, 동화 읽기> 수업을 듣게 되어서 반가운 마음에 신청하고 한주 한주 무슨 말씀을 하실지 내심 기다리며 강의를 들었다.
무언가 선택을 해야 하거나, 갈팡질팡할 때, 혹은 주저할 때, 김융희 선생님 강의를 더 찾아 듣게 된다. 이번 동화 수업은 나의 내면적인 무언가를 건드리는 것 같았다. 수업이 끝난 후 여러 가지 질문을 통해 내 스스로에게 질문해보고 생각해보게 되었다. 동화를 해석 할 때 무엇보다 정답은 없다는 것이다. 또, 내가 등장인물의 어떤 역할에 좀 더 감정이입이 되는 지, 그 밖의 주어진 매체들은 훌륭한 모티브로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동화를 읽으면서 ‘왜?’라는 질문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김융희 선생님 말씀대로 고전 동화를 읽을 때 전체적으로 읽을 수도 있지만, 특정 부분에 끌려 그것을 주제로 해석해볼 수도 있었다. 동화 속 등장인물이 나라면 그 상황에 어떤 느낌이 들었을지 생각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느꼈다. 마지막으로 신데렐라 동화에서처럼 두 가지 세상을 살고 있을 때, 밤은 밤대로, 낮은 낮대로 두 가지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이 기억에 많이 남았다. 내면의 거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싶다면 김융희 선생님의 동화 강의를 꼭 추천드리고 싶다. 당신의 삶에 마법이 일어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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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성놀이학교] 밀랍과 <어린왕자> | [창조성놀이학교] 밀랍과 <어린왕자> 강좌후기 | jiyoon | 2021.1.12 | |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밀랍이라는 재료와 가까워지게 되어서 기뻤습니다. 밀랍을 녹여서 틀에 부어 형태를 만들기도 하고, 굳은 밀랍을 깎아내기도 하고, 녹은 밀랍에 초 심지를 담가 한 겹 한 겹 쌓기도 하고, 따뜻한 밀랍을 손으로 조물조물 만져서 모양을 내는 등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이 담겨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냈어요. 원활한 진행을 위해 옆에서 왁스를 계속 녹여주시고 한 명 한 명 챙겨주신 정원샘, 수진샘 정말 고맙습니다. 덕분에 따뜻한 왁스를 맘껏 만지고 놀 수 있었어요. 그리고 오랜만에 다시 만난 어린 왕자는 또 새로이 보이더라고요. 어린 왕자와 같이 울고 웃고 위로받는 시간이었습니다. 지금은 이런 만남을 갖기 더 어려워졌지만, 수업 당시에도 모임과 만남을 조심하는 분위기여서 사람이 그리웠는데 일주일에 한 번 외로운 일상에 단비 같은 날이었어요. 따뜻한 시간을 만들어주신 정원샘 수진샘 미란샘 고맙습니다! 또 함께 한 샘들 모두 정말 즐거웠고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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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미술학교] 사물, 그리고 이야기 | [미술학교 강좌후기] 그림, 그리움, 그리니, 그리워... | 김경혜 | 2020.12.12 | |
2020가을학기 느티나무 미술학교 <사물, 그리고 이야기> 그림, 그리움, 그리니, 그리워... 김경혜 “언제 밥 한번 먹읍시다.” “조만간 술 한잔 해요.” 예의상 나누는 인사말이긴 했어도 언제고 여지가 있었던 우리의 관계맺기, 그 시작점을 풍요롭게 해준 촉매제는 다름아닌 밥과 술이었다. 흩어지면 살고, 혼자 있으면 금상첨화인 이 황망한 코로나 펜데믹이 가져다 준 귀양살이 와중에 그것이 얼마나 눈물겹도록 고맙고, 그 숱한 역사가 가능했던 소박한 일상이 얼마나 그리운 지는 지금 우리들 모두가 절절히 경험하고 있을터. 오늘은 또 얼마나...늘어만 가는 숫자에 지치고, 끌어안고 사는 방구석이 마냥 지루할 와중에 새로이 집중할 꺼리가 필요했다. 실은 평생의 염원이기도 했다.
느티나무 미술학교 강사인 이상권 선생, 동료 선후배들과 함께한 <사물, 그리고 이야기>전시회 오프닝에서 한 컷! '그림, 그리움, 그리니, 그리워...' 몇 번이고 '그림'이라는 말을 되뇌다보면 이 아련한 언어의 신비에 이끌려 금방이라도 붓 한자루 들고 화폭 그 어디인들 대수랴. 마음껏 수놓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마음은 필경 화가 저리가란데, 정작 살면서 단 한번도 이를 실행에 옮기질 못했다. 핑계와 변명은 이제 그만! 마침 참여연대 느티나무 미술학교에서 수강생을 모집한단다. “이런 분을 초대합니다. 중고등학교 이후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으나, 일단 도전해보고 싶은 사람...” 감읍한 나머지 부지런히 공지가 떨어지기 무섭게 신청서를 작성했다. 지난 7월 말이었던가. 이 강좌를 신청하던 때가...(지나고 보니 벌써 아득하다) 하고많은 곳 중 왜 하필이면 참여연대? 마냥 그림만 그리면 무슨 재미. 적어도 눈꼽만큼 세상에 관심있는 이들이 모여 적기(?)가 되면 꼬물꼬물 나름 의미있는 작당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싶었다. 정작 복병은 코로나 바이러스....어쩌면 면대면 수업이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불행 중 다행히 마스크 착용을 전제로 오프라인 수업이 진행된다는 낭보가 날라왔다. 2020가을학기 느티나무 미술학교 <사물, 그리고 이야기> 전시회에 여러 선배들과 나란히 출품할 수 있어 감읍해 하고 있는 필자. 짜자쟌! 드디어 아기다리고기다리던 10월 19일 첫 수업날! 근 3개월 여를 기다린 터라 고마움과 설레는 마음은 기본이요 몸은 수업 시작보다 30분 먼저 가닿아 있었다. 강의실 전체를 환히 감싸는 어여쁜 미소의 주인공, 최인숙 간사의 환대를 받으며 발열 체크, 손 소독, 출석부에 이름을 기재한 연후 자리에 착석했다. 연단 한 켠에서는 까만 마스크로 포스를 내뿜던 우리의 강사 이상권 선생-마스크를 벗은 모습이 너무도 살짜쿵, 잠깐이었던 터라 비교적(?) 멋진 얼굴이었던 걸로 기억된다-도 역시 설레는 마음으로 학생들 한 명 한 명에게 눈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수업 시작인 7시가 다가올수록 강의실을 가득 메워가는 용감한 신청자들(총 18명?)–많아봐야 10명 남짓이겠거니 했다-에 놀라고, 이 선생의 <사물, 그리고 이야기> 강의 소개와 인사에 이어 한 분씩 앞으로 나가 자기소개를 하는데... 저마다 나름 한자락 읊어봤던 재야의 고수같은 분위기에 또 한 번 놀랐다. 왠지 내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기분이었달까? 본업인 취조(?)에 들어가 보니 함께 하시는 분들은 최소 3년, 최장 10년 이상 저마다 자유로이 다양한 재료를 녹여가며 나름 화폭 위를 맘껏 노닐던 분들이더이다. 다만 혼자서 지속적으로 그림 그리기가 쉽질 않아 함께 그리는 동지들을 통해 서로 배우고 성장하고 연단하고자 함이었다. 그 열의 또한 대단한 분들이다.
김경혜 <내가 나였던 순간들> 21*30 종이에 수채. 2020. 김경혜<운명> 21*30 종이에 수채. 2020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는 이 왕초보는 어디로 가야 할꼬?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던 물건이나 각별한 의미가 있는 사물을 찾아 종이 위에 옮겨 보세요. 그래도 생각나지 않으면 가끔 서랍 속을 한번 열어보세요. 뜻하지 않은 무궁무진한 보물들이 아마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스케치(구도 및 구성), 색감, 채색 등 아무 것도 모르는 백지 상태인 내가 하나 자신하는 건 선무당이 사람잡는다는 속담! 그러니 일단 무조건 도전 스타트!! 마치 수도승처럼 행복한 그림 그리기에 몰두했다. 그리다 보니 보이는 것들이 새록새록 생겨났다. 그림도 결국 돌아봄이요 성찰의 과정이었다. 참 고마운 일이다. 이상권 선생이 강의 목표로 삼았던 “기억, 환기, 표현의 즐거움”을 덕분에 온몸으로 경험했다. 그는 딱히 무엇을 어찌 하라 강권하는 법이 없다. 툭툭 내던지는 이야기 속에 답이 없지도 않다. 대신 영문도 모르고 내 멋대로 정하고 그린 사물에 한없는 용기와 격려 얹어주기. 실은 그 덕에 짧은 6번의 수업이었지만 얼떨결에 우리의 정해진 마지막 수업일인 전시회(11월 28일)에 내놓을 수채화 다섯점도 완성해 낼 수 있었다. 더불어 수업 시간 내내 최 간사가 들려주는 추억의 음악은 황홀경 그 자체였다. 그림 그리는 일이 그렇게 행복한 일이었던가. 나는 지금도 기회만 되면 본업인 글쓰기로부터 도망을 다닌다. 어쩌면 그래서 지금 목하 열애중인 그림 그리기가 그만큼 짜릿하게 다가왔는 지도 모른다. 허나 일탈치고는 작심삼일을 넘어서는 걸 보면 앞으로 내 삶을 풍요롭게 할 연장 하나 더 얻은 건 확실!한 듯하다. 그뿐인가. 세상에! 그간 밥 한번, 술잔 한번 기울이지 못하고 아직은 마스크 쓴 눈빛이 더 익숙한 얼굴들이지만 무엇보다 열정 가득한 선배 작가들을 내 동지로 두게 되었다는 점은 더할나위없는 큰 수확 아닌가. 그들과 함께 걸어갈 더불어 숲길이 몹시 기대된다. ‘고맙습니다~조만간 열릴 봄 학기에는 우리 기어코 한 잔 하시는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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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첫 사법감시 - 판결문 함께 읽기 | [판결비평] 우간다 성소수자가 난민으로 인정받기까지_김민주 | 아카데미느티나무 | 2020.12.5 | |
광장에 나온 판결 : 183번째 이야기 우간다 성소수자가 난민으로 인정받기까지성소수자 박해 위협 호소한 우간다 여성 난민 인정 판결 대법원 제1부 박정화 재판장 2017두51020 [판결문 보기 / 다운로드] 서울고등법원(파기환송심) 제2행정부 양현주 재판장 2018누30022 [판결문 보기 / 다운로드]
글. 김민주(느티나무아카데미 <내 생애 첫 사법감시 - 판결문 읽기> 강좌 수강생)
2014년 어학연수 자격으로 입국한 A씨는 같은 해 5월 성소수자 박해 위협을 호소하며 난민인정 신청을 냈고 서울출입국관리소의 난민 불인정 처분, 법무부에 제출한 이의신청 기각 처분을 받으며 난민 불인정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본 사건에 대한 재판부의 판결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삶의 많은 영역에서 '투쟁'하며 살아간다. 사회가 만든 위계질서에서 높은 위치를 점하지 못한 자는 스스로를 증명하며 권리보호를 위한 노동을 이어나간다. 이는 입헌 민주주의의 국가에서 국민성을 담보받은 자에 한하며, 자국을 떠날 수밖에 없는 서사를 가진 '난민'은 이러한 '권리투쟁을 위한 난민인정투쟁'이라는 난관에 부딪힌다.
우리가 이번에 살펴본 판결문은 우간다 성소수자 난민인정 판결인 '대법원 2017두51020'과 '고등법원 2018누30022'이다. 대법원은 난민불인정판결을, 환송판결인 서울고등법원은 제1심 판결을 취소하며 원고의 난민지위를 인정했다. 대법원과 고등법원의 판결문을 함께 읽으며 공감했던 '사법의 책무성' 초점을 맞춰 토론에서 수강생들과 함께 나눈 의견들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대법원의 수동태와 고등법원의 능동태
대법원은 박해를 받을 우려와 충분한 근거있는 공포성은 난민인정 신청을 하는 외국인이 증명해야 한다는 '대법원 2016두 56080'판결을 인용하며, 난민지위를 인정하는 요소로 원고 진술에 일관성과 신빙성이 결여된다는 데 방점을 둔다.
난민면접조사와 제1심 판결 진술에서 특정 사회집단에 속하는 양성애자로서 성정체성을 인지한 후 첫 관계를 가진 시점이 일치하지 않는 점, 출신국의 경찰에게 체포되어 구금되었을 당시 경찰이 원고에게 가한 고문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점, 나아가 체포 당시 공권력에 의한 성폭행을 난민면접 당시 경찰에 진술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재판부는 원고가 우간다 정부 등으로부터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서술한다.
대법원이 지엽적 사실관계에 매몰되어 있는 점에 주목하는 반면 고등법원은 대법원이 지적한 진술의 비일관성이 다양한 보고서와 통계를 들어 진술이 일관되지 않는다고 해서 사실관계 전체를 부정할 수 없다고 서술하고 있다. 수강생 다수는 고등법원이 인용한 다양한 근거와 같이 폭력적인 상황에서 자신을 억눌렀던 절대적인 힘이 작용한 상황을 서술하는 것 자체에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으며, 피해사실 디테일에 집중하기보다 삶이 놓인 맥락을 능동적으로 읽어낼 것을 요구하고 있다.
난민의 중층적인 서사 읽어낼 수 있는 법관의 책무성 필요
필자는 이번 판결을 읽으며 사회적 약자에게 요구되는 엄격한 자기증명이 모욕적이고, 개인 정체성에 큰 영향을 미쳤을 과거의 기억을 진술하는 부분에서 법이 개인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음을 느꼈다. 이러한 지점에서 성소수자와 같이 외부요인이 아닌 개인의 문제가 박해와 공포가 되어 난민화된 원고와 같은 이들의 판결에 있어 난민인정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진술일지라도, 이 진술이 개인의 사적영역을 침해할 수 있는 여지를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사회적 약자가 원고인 기존의 판결에서 사법부는 남성중심, 정상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설정된 '난민다움', '피해자다움'에 부합하는 이들의 삶을 선별하고 있다.
대부분 선별되지 못한 삶들은 자신을 보호해야 할 권리를 얻지 못해 박해받을 공포에서 멀리 떠나온 곳에서 또 다른 폭력을 마주하게 된다. 이를 두고 한 수강생은 법원이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기울어진 운동장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하고 있다.
가공된 '난민다움'에 부합하는 사람이 적을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식과 더불어, 판결에 있어 법관의 신념이나 과거 판결을 분석하는 '사법행태주의'적 입장에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법관을 많이 뽑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이 경우 다양한 배경을 가진 법관이 많아진다고 해서 판결의 사회적 형평성을 담보할 수 없지만, 다양한 시각의 갈등을 통해 최선의 판결을 도출해낼 수 있다는 점에서 혐오와 차별을 배제한 판결을 내릴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토론 전체를 관통했던 공통점은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위해 능동적으로 법과 판결에 임하는 법관의 책무성이다. 기후난민과 같이 난민화되는 배경이 더 복잡해지면서 국경을 두고도 난민수용과 관련해 더 넓은 영역에서의 고민도 함께 요구된다. 그 고민의 과정에서 난민의 권리를 위한 법관의 부지런한 노동이 난민 스스로 권리를 되찾으며 살아갈 수 있는 투쟁의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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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칼럼니스트 되기] 사적인 이야기의 반란 | 해방감 - 나를 짓누른 껍데기를 한 겹 벗겨내다_나봉 | 이나봉 | 2020.12.4 | |
해방감 by 나봉
이번 아카데미 느티에 참여하며 나를 꽉 짓누르고 있던 껍데기 한 겹을 벗겨낼 수 있었다. ‘정상성’의 범위에서 벗어나 있는 소수자들의 언어를 접하면서, 나를 더 확장시킬 수 있겠다는 해방감과 내가 틀린 게 아니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내가 나를 부정하고 미워했던 이유들을 다시 파헤쳐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나는 나의 섬세함을 예민함과 민감함, 연약함으로 치부했다. 사사건건 깊이 생각하고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나로 살아가는 것이 힘겨웠다. “생각 또 많아졌네~” “너무 깊게 생각 하지 마~”라는 가벼운 말들도 어느 순간부턴 나의 이야기를 외면당하고 찌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쩌다 한 번씩 어긋나는 대수롭지 않은 상황일 뿐인데, 내가 완전한 이해를 바라며 욕심내고 있는 걸까 생각했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았고 내 자신도 그런 내 모습이 피곤했다. 늘상 내 이야기를 지루해 하거나 어려워 하진 않을까 사람들의 눈치를 살폈고 어느 순간부터는 사람들이 허용할 수 있을 것 같은 선에서 멈추고 혼자 도망쳤다. 자꾸 내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 같았다. 나라도 나를 이해해보자는 일념으로 꿋꿋이 일기장에 나를 쏟아 냈다. 하지만 혼자만의 구역에 갇혀있는 일기는 점점 스스로에 대한 의심으로 채워졌다. 한 켠에 쌓여버린 나에 대한 의심과 부정이, 끝내 내 자신을 어디에도 서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감정들이 혼란스러웠다.
어쩌면 나는 ‘정상성’ 혹은 ‘일반적’ 범주에서 벗어나는 게 두려웠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느끼기에 사람들은 대개 복잡한 것 보다는 명쾌하고 빠른 것을 선호한다. 나 역시도 그렇다. 하지만 그것을 쫓아가기에 내가 가진 천성은 한참이나 부족했다. 난 대체로 더 많은 생각의 과정이 필요했고, 더 많은 이해의 시간이 필요했다. 남들이 봤을 때엔 큰 일도 아닌 일에 예민하게 반응하냐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내 모습이 드러나는 게 두려웠다. 내 스스로 이런 나를 온전히 인정하기 보다 계속해서 주변과 맞춰가야 하고, 변화시켜야 하는 모습으로 여겨왔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내 스스로 나를 채찍질했다. 일상속에 맴돌고 있는 대중적 분위기가 나를 가둔 것이라 해야 할 지, 내가 지레 겁을 먹은 것이라 해야 할 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늘 다함께 공유된 분위기에서 도태되는 것이 두려웠다.
또 한편으로는 마음 한 켠에서 내적 분열이 일어나기도 한다. 주변으로부터 난 충분히 사랑 받았고 인정 받아온 것 같은데 이제 와서 이런 울분을 이야기 하자니 나 스스로도 이질적이고 모순적으로 느껴진다. 누가 직접적으로 강요한 것은 아니니까. 어쨌거나 겉으론 무난히 지냈지만 습관처럼 눈치를 보고 치열하게 주변을 살폈다. 에너지와 여유가 남아있을 때엔 분위기에 거뜬히 발을 맞췄지만 지속적으로 분위기를 따라가는 것은 힘겨웠다. 자유롭고 편안하게 나의 생각을 펼치기가 어려웠고 대중적으로 공유된 견고한 분위기 자체가 나에겐 억압으로 다가왔다.
세상이 나에게 베풀어주는 이해와 존중은 교묘하게 한정적이다. 소속되어 있는 세계를 습득하고 따르는 만큼 나는 인정받았고, 그들이 납득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안정적으로 머무를 수 있었다. 내가 속한 바운더리는 대체로 안정적이긴 했지만 넓은 품은 아닐 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내 모습을 주변에 맞춰 축소시켜왔던 건 아닐까,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이 두려워서 나의 다양한 감각을 소외시켰던 것은 아닐까 돌아봤다.
“변두리스토리의 주인공들이 각자 ‘차별’로 지목하는 것과
변두리스토리를 읽는 독자들이 ‘차별’로 읽어내는 것이 다를 수 있는 이유는,
오히려 차별이 우리 모두의 삶에 일관되게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차별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너무나 막막하고 광대한 세상이지만
거기에서 불현듯 솟아오르는 어떤 사건들은 우리에게 실마리를 준다.
우리는 서로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다른 사건을 경험할 뿐이다.
‘사건’으로 기억할 만큼 소화되지 않은 이야기들은,
그러나 사라지지 않고 저마다 자신의 삶을 해석하는 배경이 된다.”
262p
6주동안 책속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다양한 감정이 교차했다. 나의 답답함은 틀을 벗어나기 두려워하는 나로부터 비롯된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두려워 할 수밖에 없는 커다란 외부적 벽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젠 외부로부터 이해받고 함께 머무르기를 바라는 것을 넘어서서 스스로 울타리를 허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개인적 이야기가 사회적 이야기로 연결되었던 이 해방감을 잊지 않고 싶다. 지나친 자기부정을 멈추고 날 두렵게 만드는 실체를 마주해야 할 것 같다. 적당히 타협하고 퉁치는 것이 아니라 작고 사소하더라도 내 감각으로부터 시작되는 구체적인 서사를 써나가고 싶다. 수업은 지난 주에 끝이 났는데 아직까지도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다. 그래서 좋다. 책을 읽고 내 생각을 관찰하는 걸 게을리하지 않고 싶은 마음이 더더 생겼다. 나를 비롯한 다양한 존재들에 대해, 조건 없는 존중을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언어들을 찾아가고 싶다. 정말정말 좋았고 감사했다. 옥수수님(홍승은 작가님), 디디(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 담당자님)님을 비롯하여 나비, 하늘, 라마, 가을, 커피콩, 민들레, 사과나무, 연주, 망고, 썬, 선비, 토닥, 모래, 구름, 먼지님 모두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시고, 정성스레 합평을 해주셔서 감사했다. 이번 아카데미 느티 '사적인 이야기의 반란' 정말 좋았다. #당신이글을쓰면좋겠습니다_홍승은 #삶을똑바로마주하고_최현숙 #임계장이야기_조정진 #난치의상상력_안희제 #붉은선_홍승희/당신의섹스는평등한가요?_부너미 #수신확인,차별이내게로왔다_인권운동사랑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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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칼럼니스트 되기] 사적인 이야기의 반란 | 한 뼘 더 넓어질 수 있었던 집필 공동체를 만나다_나비 | 나비♡ | 2020.11.27 | |
39살, 40대의 시작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 살 나이 더 먹는 게 별거냐’ 싶으면서도, 왠지 40대라는 숫자가 올 초부터 나에게 묵직한 기운을 전하고 있었다. 그 기운은 나에게 ‘40대를 어떻게 살아내고 싶은가?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라는 질문으로 늘 내 머리 속을 따라다녔다.
그러다 “시민칼럼니스트되기_사적인이야기의반란?” 뭐지? 일하는 나를 위한 역량강화로 글쓰기 교육을 찾다 우연히 만났다. 한참동안 많은 정보를 찾았는데 나는 뭐에 홀린 듯 월요일 저녁 9시30분까지 그것도 6주 동안이나 한다는 이 교육을 신청하고 있었다. 그런 뒤에 신랑에게 교육을 가도 될지 물었다. 고맙게도 당연히 가도 된다고, 신청하라는 신랑의 답이 왔다. 아들에게는 잘 설명하는 걸로 하고, 입금까지 완료!
이제와 말이지만 신청은 번개처럼 했어도, 들쑥날쑥한 코로나 상황과 워킹맘인 나의 피로함은 내 삶터와의 먼 거리, 월요일 저녁 7시, 매주 한 권의 책과 글쓰기 과제까지 교육을 시작하는 그날까지도 취소해도 될 것 같은 나의 당위, 이유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시작을 앞두고 했던 나의 걱정은 무색했다. 한 번의 빠짐없는 출석, 부족하지만 꾸준한 글쓰기, 중간에 반짝했던 뒷풀이까지 모두 충만하게 누리는 나였으니까 말이다. 하하^^
내 경험이 되기 전까지는 ‘집필 공동체가 참 좋구나.’라고 머리로 이해했다. 6주가 지난 지금의 나는 가족, 노동, 몸, 섹슈얼리티, 차별, 타자성이라는 다양한 주제의 책도 읽고, 나의 글을 나누고 합평, 퇴고해보는 집필공동체를 쉼과 에너지, 충만함 그 자체였음을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교육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11시가 다 되는 시간이었지만, 나는 이제껏 내가 알고 만난 세상보다 한 뼘 더 넓어질 수 있었던 집필 공동체의 살아있는 대화, 삶의 이야기에 감동하고 울고 웃었던 감정들을 시시콜콜 신랑에게 쏟아내고 있었다.
2021년을 맞이하는 나의 40대는 삶을 구석구석 살펴보고, 꺼내어보고, 상상하는 글쓰기를 하지 않을까? 더불어 존재로서 귀한 “생명”과의 공존, 삶을 옹호하는 글쓰기를 궁리 중이다. 오늘보다 조금 더 민감하게, 확장된 관점으로 살아내고 싶다. 내가 만나는 사회적으로 약자라고, 소수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옹호의 방식으로 글쓰기를 더해보고 싶어졌다. 뭔가 공허할 것 같았던, 나의 40대 인생이 기대된다.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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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첫 사법감시 - 판결문 함께 읽기 | [판결비평] 수면 위로 떠오른 '손정우 인도 송환 불허 결정'의 이면_국혜수 | 개똥이 | 2020.11.26 | |
광장에 나온 판결 : 182번째 이야기 수면 위로 떠오른 '손정우 인도 송환 거부 결정'의 이면아동 성착취물 공유 웹사이트 운영자에 대한 인도 송환 거부 결정 서울고등법원 형사20부 강영수 재판장 2020토1인도심사청구
글. 국혜수 (느티나무아카데미 <내 생애 첫 사법감시 - 판결문 읽기> 강좌 수강생)
참여연대 아카데미느티나무에서는 2020 가을 민주주의학교의 일환으로 '내 생애 첫 사법감시: 판결문 함께 읽기' 강좌를 진행한다. 이중 우리가 처음 읽은 판결문에서 대한민국 법원은 미국이 손정우에 대해 범죄인인도청구를 요청한 것을 거부한다. 이 판결문을 함께 읽고 토론하면서 다양한 쟁점들이 도출되었는데, 참여자들이 함께 논의한 쟁점들을 살펴보기 전 '손정우 사건'에 대해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특히 송환 거부 결정을 내린 데에는 단지 한국인 때문이어서도,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의 중대함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도 아니었다. 오히려 판결문에서는 네트워크 기반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범죄를 발본색원하여 사법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한국에서 손정우를 활용하는 것이 좋다는 논리에 따라 송환 거부 결정에 다다른다.
송환 거부 결정을 뉴스에서만 접했을 때는 그 사실에 대해 분노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판결문을 직접 읽어가면서 관련 쟁점들이 수면 위로 떠 올랐다.
이미 아동·청소년음란물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진 시점에서 미국으로 송환하는 것이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범죄인인도가 사법주권을 침해하지 않는가?
손정우 사건과 관련된 우리의 분노에는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범죄에 대해 충분한 처벌을 받지 못했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송환이라는 사안 자체만을 봤을 때 송환하는 것이 우리의 사법주권을 침해할 여지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이와 관련해 또 다른 참여자는 혹시 자국민이 자국에서 저지른 범죄에 대해 인도를 하는 게 우리나라 사법부의 '무능함'을 보이는 것으로 여겨지는지, 사법부의 '자존심'이 달린 일인지에 대해 질문하기도 한다.
이는 비교적 쟁점이 크지는 않은 질문이다. 이전에는 국가 간 사법주권이 중요하게 강조되기도 했지만, 특히 손정우 인도 송환 거부 결정과 관련된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은 전 세계적으로 인도주의에 반하는 범죄로 보편성이 인정되며, 특히 인터넷을 통해 음란물 공유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한 국가만의 문제라고도 보기 어렵다.
이 사안과 관련해서 국제형사사법공조가 이루어지고 있기에 이러한 범죄에 대해 사법정의를 실현하고자 할 때는 주권의 개념이 약해진다. 실제로 판결문에서도 형사사법 관할 분할권을 언급하는 것은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관련 사법정의가 실현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손정우가 송환되지 않는 것인가? 네트워크 기반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처벌에 대한 사법정의는 무엇인가?
인도 송환 거부 결정의 핵심논리는 D사이트를 이용한 '소비자'에 대한 발본색원적인 수사를 위해 손정우가 한국에 남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법원이 이러한 논리에 따라 인도 송환 거부 결정을 내린 것이 검찰에 대한 법원의 명령으로 여겨지는가?
그렇지 않다. 엄밀히 말하면 법원은 3권 분립의 원칙에 따라 검찰에게 명령할 수 없다. 또한 미국과 달리 한국은 법정모욕죄라는 명목 자체가 없다. 따라서 법원 판결에서 '소비자'에 대한 수사를 권고했지만, 검찰이 이를 따르지 않는다고 해도 이에 대해 제재가 가해질 수 없다.
이런 점을 고려했을 때 인도 송환 결정 거부가 절대적 사유에 해당되는 것도 아닌, 판사의 재량이 있는 부분인데 단지 '소비자'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리라는 가능성 하에 자금세탁이라는 사실관계에 대한 송환 거부 결정을 한 것이 빈약한 근거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특이한 점은 인도 송환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판결이었지만, 미국이 송환을 요청한 항목인 자금세탁에 대해서만 판단하고 송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닌, 많은 분량을 할애해서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근절해야 한다는 점을 명시하며 이를 위해 송환 거부를 했다는 점이다.
이처럼 인도 송환 여부 결정과 뗄 수 없는 포괄적인 사안들을 파악하려는 판사의 접근방식은 타당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송환하지 않아야 한다는 결정은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에 대해 이미 손정우가 충분한 처벌을 받았고, 사법부가 관련 범죄를 철저히 수사하리라는 사법부에 대한 시민의 신뢰가 뒷받침될 때 타당하다고 여겨질 수 있다.
또한 역으로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에 대한 사법정의를 이루기 위해서라도 손정우를 송환했어야 한다는 논리가 가능하다. 이미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에 대해 처벌을 받았다 하더라도, 아직 처벌을 받지 않은,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사이트 운영과 뗄 수 없는 것이 바로 자금세탁 혐의다.
온라인을 통해 이루어지는 불법활동이 외국에 송환되어 처벌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포함한 다양한 온라인 네트워크 기반 범죄에 경종을 울렸을 것으로 생각한다.
오히려 국내에서 D사이트의 '소비자'에 대한 수사를 '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만을 믿기보다 손정우를 미국에 송환하여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판결문에서 근거로 삼고 있는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에 대한 사법정의를 더 효과적으로 실현하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덧붙여 말하면, 판결문에서는 D사이트 회원들을 '소비자'라고 지칭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들은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제작 또는 유포에 대한 공범이다. 이미 손정우를 송환하지 않기로 했기에, 이에 대해 분노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이러한 공범인 '소비자'들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지 않는 현실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소비자' 처벌에 대해 목소리를 밝히고, 이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쪽으로 관심을 환기하는 것이 현재로서 우리가 사법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할 수 있는 활동이다.
법과 판결 자체가 사법정의에 대한 대중의 기대와 어긋나는 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참여자들 모두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에 중죄라는 점에 동의하고 있었지만, 그게 두 측면에서 법이나 형량이 사법정의에 대한 대중의 기대와 어긋나고 있었다. 첫 번째는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에 대한 처벌 자체가 미약하다는 여론이며, 두 번째는 범죄인인도법에 의거해 손정우를 미국으로 송환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 대중의 정서와 달랐다는 점이다.
두 번째 사안인 손정우 인도 송환 거부 결정에 대해 '비동의'를 선택하지 않고 중립적인 입장을 택한 이들은 현재 정해진 법규의 형량이 우리의 기대와 다르기 때문에 생겨난 충돌이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따라서 기존의 제도와 법에 따라서 내린 결정이라면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지 않을까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는 것이다.
법치주의의 기반은 여론에 따라 법이 집행되는 것이 아닌, 정해진 법규에 의거하여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현재 법과 제도가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이에 맞게 판결을 내렸다는 이유로 판결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어디까지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이 가능하다.
다른 한편으로 법이라는 것이 답이 정해져 있는 체계라기보다는 판사의 재량이 작용되는 측면들이 많다는 점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 지적된다. 판사의 성향에 따라 판결도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나타나며, 법에 의거한 판단이라 하더라도 상당히 높은 정도의 불안정성이 내재한다.
그런 점에서 손정우 인도 송환 거부 결정을 내린 판사들의 기본 논리는 국가중심주의의 또 다른 표현일 수 있다는 점이 제기된다. 이러한 해석이 반영되었다면 과연 보편적으로 인도주의에 어긋나는 범죄를 우리나라에서 수사하고 처벌하는 것이 가장 타당할까에 대한 쟁점이 제기될 수도 있다.
손정우 사건에 대한 상당수 분노는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관련 범죄에 대해 지극히 약한 처벌을 받았다는 데 있다. 손정우의 불법적 행동은 해당 범죄가 법체계의 틈으로 처벌을 면한 긴 역사의 누적된 결과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성을 고려할 때 손정우 사건으로 인해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이 사회 전반적으로 공유되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특히 해당 수업을 수강한 이들 모두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유포는 중죄이며, 현재 이를 처벌하는 한국의 법이 약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손정우 사건 이후로 네트워크형 성범죄에 대한 시민의 관심이 증폭되었고, 보다 높은 형벌을 선고받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을 고려할 때 법은 결코 영구불변 고정된 것이 아닌, 사회 맥락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해감이 나타난다.
국민 정서에 반하는 판결이 무조건 나쁘지도 않고, 판결이 무조건 국민 정서를 따라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법의 민주성이라는 측면에서 수많은 이들이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에 대한 한국 법의 처벌이 약하다고 생각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관련 법규를 사회 맥락에 맞춰 정비하는 것에 대한 시민과 전문가들의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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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토크라시, 메리토크라시 그리고 공정성 | [강좌후기] 11/17 플루토크라시, 메리토크라시 그리고 공정성 (3주차) | 양종원 | 2020.11.20 | |
3주라는 시간이 너무나도 빠르게 흘러 어느덧 마지막 수업에 이르렀습니다. 첫 주차에는 금권정치의 개념과 영향에 대해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두 번째 수업에서는 능력주의와 그 속에 담겨있는 모순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주차에는 앞선 수업들을 바탕으로 과연 공정성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롤스의 정의론을 공부하며 공정성과 정의를 연결해 ‘공정성으로서의 정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롤스는 사회 제도의 제 1 덕목을 정의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정의는 정당성을 기반으로 형성되기에 정의가 보장하는 권리들은 절대적이라 여겼습니다.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롤스가 주장한 사회정의 원칙은 구성원의 권리와 의무를 할당하는 방식과 함께 자원의 분배방식을 결정합니다. 첫째, 권리와 의무의 할당은 정치적 원리로 이어집니다. 즉, 기본적인 권리와 의무의 할당에 있어 평등을 요구하는 권리를 의미합니다. 둘째, 자원의 분배는 사회·경제적 원리로 연결됩니다. 분배에 있어서의 불평등은 사회의 최소수혜자에게 그 불평등을 보상할만한 이득을 가져오는 경우에만 정당하다는 것이 그 내용입니다. 즉, 선천적 능력과 같은 우연적 요소들을 배제한 채 기회균등을 적용할 수 없으며, 이를 바탕으로 발생한 불평등은 최소수혜자의 기대치를 향상시킬 때에만 인정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롤스의 주장은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데 있어 사회구성원이 동의해야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 성찰거리를 줍니다.
이번 수업을 들으며 크게 두 가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우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데 있어 제도의 역할입니다. 현대사회 속 자원의 차등적 분배는 불가피하며, 이는 우리 사회 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불평등은 능력이나 환경과 같은 우연적 요소로 결정되는 성향이 강하기에, 이에 대한 재조정이 필수적이라 생각했습니다. 즉, 불성실함, 노력의 부족과 같은 개인적 이유에만 집중해 사회적 구성원의 실패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점에 주목해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야한다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번 수업을 들으며 이 과정에서 제도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여기게 되었습니다. 제도는 사회구성원이 생활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침과 더불어 사고방식에 역시 큰 영향을 미칩니다. 분배를 중시하고, 기회의 균등을 강조하는 제도가 사회의 근간이 된다면 사회구성원 역시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특정한 이유 없이, 단순히 사회의 일원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자원을 분배하고,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제도가 구성되어야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초자산제, 기본소득과 같은 최근 우리사회의 정치적 이슈에 대해 필요성을 공감할 수 있었고, 공론장에서의 토론과 공동체의 적극적 의견 교류가 이뤄져야한다 느꼈습니다.
다음으로, 자원 분배의 공정한 기준입니다. 수업을 듣기 전에는 능력주의가 자원 분배에 있어 가장 공정한 기준이라 생각했었습니다. 노력이 곧 능력으로 들어난다고 여겼고, 이에 대한 보상은 정당하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수업을 들으며 능력주의 이면에 담긴 모순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평소 생각하던 능력의 대부분은 결국 우연성에 의해 결정되는 요소였습니다. 지능, 성실성, 더 나아가 노력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받는 것 모두 하나같이 선택사항이 아닌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사항입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우연성은 세대가 지날수록 체계적인 교육과 상속을 통해 세습화되고 있는 모습을 보입니다. 즉, 능력주의라는 포장 아래 오히려, 부의 세습화가 정당화되고 다른 이들의 실패는 오로지 개인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능력주의의 폐해를 이해하며 우리 사회 속 자원 분배의 공정한 기준은 무엇인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자원의 차등적 분배가 불가피해 능력주의가 도입될 수밖에 없다면, 우연성에 의해 좌우되는 요소를 최대한 줄여야한다 생각했습니다. 교육과 같은 사회적 제도를 통해 사회구성원들 모두가 일정 수준의 기회를 제공받는 것이 그 해결책 중 하나라 생각합니다.
현대 사회는 ‘외로움 사회’로 일컬어지기도 합니다. 많은 이들이 공감과 인정을 갈망하고 있지만, 이들에게 비판이 가해지는 것도 일쑤입니다. 이들에게는 단순히 자신을 표현하고 사회와 함께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이는 제공되지 않고 있으며, 모든 것은 단순히 개인의 탓으로 돌려지고 있습니다. 사회적 인정도 결국 자원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자원의 공정한 분배가 이뤄지는 사회를 형성하는데 우리 모두가 함께한다면, 모두에게 ‘기회’가 제공되는 정의로운 사회가 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번 수업을 통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신 김만권 교수님, 함께 수업을 들은 수강생들 모두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자원활동가 양종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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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토크라시, 메리토크라시 그리고 공정성 | [강좌후기] 11/10 플루토크라시, 메리토크라시 그리고 공정성 (2주차 - 메리토크라시) | 양종원 | 2020.11.15 | |
공정성은 현대사회를 관통하는 중요한 가치입니다. 이에 대한 관심은 결국 ‘누구에게 어떤 경로로 무슨 기회가 제공되는가?’에 대한 집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공정성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우리 사회 속 경쟁이 치열해지며 공정성 논란은 더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2020년 올해만하더라도 인천공항공사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갈등, 교통공사 비정규직 전환 논란 등 수많은 공정성 관련 갈등들이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근본적으로 공정한 기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이번 주차 수업은 공정성 있는 기준은 무엇인지, 능력주의가 과연 공정한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분배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살펴보며 이번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한국 사회는 능력과 노력에 따른 차등적 분배가 공정하다고 여기며, 필요에 의한 분배에 대해서는 공감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또한 경쟁의 부작용을 인정하지만, 경쟁의 효과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성향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이러한 분배 형식을 띠고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 사회 속 경쟁의 기회가 공정하지 않다고 여깁니다. 개인의 노력보다 가정환경, 인맥 등의 외적 요인이 성공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인식하며, 외적 요인으로부터 자유로운 평가 기준을 열망합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메리토크라시가 우리 사회에 대두되었습니다.
메리토크라시(혹은 능력주의)는 사회적 재화를 능력에 따라 사람들에게 할당하자는 발상에서 비롯됩니다. 이러한 사상은 개인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사회가 아닌 전적으로 개인에게 돌림으로써 능력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 정당화합니다. 메리토크라시를 처음 언급한 마이클 영(Michael Young)은 이를 비판과 경계의 대상으로 설정하였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오히려 찬사 혹은 분배에 있어 공정한 기준으로써 이해되고 있습니다.
개인이 가진 능력에 따라 재화를 분배한다는 명제는 얼핏 들었을 때 굉장히 설득력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합리적인 기준이라는 생각 역시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수업을 들으며 능력주의 이면에 담긴 불평등성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현대 사회의 엘리트들이 인적 자본을 축적하고, 이를 자녀들에게 대물림함으로써, 엘리트들은 소위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엘리트들의 자녀들은 어린 나이부터 다양한 고품질의 교육을 접하고, 부모들의 뛰어난 재능을 물려받음으로써 경쟁에서의 우위를 점합니다. 이들이 미래의 엘리트가 됨으로써 현대사회의 불평등을 더욱 고착화됩니다. 즉, 공정성의 잣대로 등장한 메리토크라시의 능력 역시 사회경제적 선에 있어 불공정하게 시작되었으며, 분배에 있어 공정한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수업 중 김만권 교수님께서 말씀한 것처럼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능력이 떨어진다고 해서 재화나 권력을 받을 자격이 다른 이들에 비해 덜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능력에 따른 차등분배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집니다. 분배에 있어 충돌하는 주요 두 명제에 대해 고민하며 우리 사회의 발전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분배 기준이 요구되는지, 메리토크라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보게 되는 수업이었습니다.
모두 함께 분배의 공정한 기준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성찰한다면 더욱 더 뜻깊은 수업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됩니다.
자원활동가 양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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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토크라시, 메리토크라시 그리고 공정성 | [강좌후기] 11/3 플루토크라시, 메리토크라시 그리고 공정성 (제1주차 - 플루토크라시) | 개똥이 | 2020.11.9 | |
지난 연말 중국 우한에서 알 수 없는 괴질이 유행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만 해도 비위생적인 중국의 식문화가 초래한 일시적인 해프닝으로 그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2020년이 저물어가고 있는 지금 여전히 코로나 19는 우리를 비롯한 전세계인들의 일상을 옥죄고 있고 많은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세계적 대유행 사태를 맞은 지구촌 사회는 코로나 19이전과 이후의 세계를 가르는 여러 가지 담론들을 쏟아냈습니다. 경희대 김재영 선생님은 언택트 시대를 대표하는 뉴노멀로 기후위기, 인공지능, 대규모 감염병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강의는 현재 한국사회의 담론을 지배하고 있는 공정성과 그를 뒷받침하고 있는 능력주의, 능력주의를 태동시킨 사회적 배경으로 꼽히는 금권주의를 정치철학적 측면에서 살펴보자는 취지에서 개설되었습니다. 강의를 맡아주신 김만권 선생님은 본격적인 강의에 들어가기 앞서 코로나 19 팬데믹이 가져온 가장 큰 폐해로 사회적 연대의 훼손과 그로 인한 민주주의의 약화를 강조하셨습니다.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이에 따른 디지털기술 활용의 확대 속에서 접촉과 만남이 중시되는 사회적 연대의식이 퇴색하고 있다는 우려가 바탕에 깔려 있었습니다. 이런 만질 수 없는 시대를 맞아 사회적 연대를 어떻게 살려나갈 수 있을까가 새로운 과제라는 점이 화두로 제시되면서 오늘 강의 주제인 플루토크라시의 이야기로 넘어갔습니다.
오랜만에 이루어진 현장 강의였지만 다양한 연령대에서 남녀 모두 골고루 참여해주셔서 다들 뜻깊은 시간을 보내셨을거라 생각합니다. 다음 시간(11.10일<화> 저녁 7시~9시 30분)에는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신화로 자리잡고 있는 능력주의에 대해 배워보고 서로의 생각을 나눠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배우고자 하는 의지는 충만한데 ZOOM 이나 네이버 밴드를 통한 온라인 강의가 지겨우셨던 분들...모두 관심을 갖고 꼭 참여해보세요.
자원활동가 민동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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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하는 리더십 워크숍 - 존중과 협력이 있는 소모임 만들기 | <소통하는 리더십 워크숍 -존중과 협력이 있는 소모임 만들기> 후기 | 생기있는소윤 | 2020.10.29 | |
올해부터 네살 아이를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내며 협동조합 생활에 대한 기대로 한껏 부풀어 있었다. 비슷한 뜻을 가진 부모들과 크고 작은 다양한 행사를 통해 깊이 소통하고 두터운 친분을 쌓을 수 있으리라는 그 기대는 코로나시대가 열리면서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전체가 다 모이는 행사는 도무지 기약이 없고,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서로의 마음에 가 닿을 수 있을까. 그 답은 소모임이었다. 비슷한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열명 남짓하게 모이는 소모임을 다양하게 갖는 것. 이를 추진하면서 내 눈에 들어온 이 강의의 제목은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소통, 리더십, 소모임. 이거면 끝난거 아닌가! 첫 활동. 상대방의 말을 끊지 않고 들은 뒤 그대로 다시 말해보기. 둘씩 짝지어 상대의 말을 ‘상대방이 쓴 단어’를 이용하여 다시 말하는 것이었는데 미처 예상치 못했던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했다. 이렇게까지 에너지를 들여가며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준 적이 있던가. 말 끝나면 내가 할 말만 생각하고 있었지. 놀라운 것은 상대의 얘기를 열심히 암기하듯 들은 뒤 그대로 반복하려고 해도 나도 모르게 ‘상대의 언어’가 아닌 ‘나의 언어’로 자꾸 바꿔서 얘기를 하더라는 것이다. 딱히 어떤 의도가 있다기보다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내 나름대로 소화시키려는 것이었는데, 그러지 않으려고 꽤나 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상대방의 말을 ‘판단 없이 끝까지’ 듣는것 뿐만 아니라, 들은 ‘그대로’ 얘기하는것도 사실 평소에 거의 못하고 있다는 점을 자각할 수 있었다. ‘즐겁고 유익한 모임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들’ 살펴보기. 모두가 말하는 것을 큰 전지에 적어본 뒤 가장 공감 가는 것에 스티커를 붙여보았다. 가장 많은 공감을 얻은 것은 ‘모임 끝날때, 불편한 것 있으면 쌓아놓지 말고 얘기하기’, 그 다음으로 ‘관계에 대한 걱정으로 할 말 못하면 안돼요’, ‘스트레칭’이 이어졌다. 앞의 두가지가 생각이나 마음의 불편함 해소라면 세번째 것은 몸의 불편함 해소. 모임에서 몸과 마음 모두 편안해야 한다는 바램이 읽혔다. 모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 마음에 맺힌 말에 홀로 고뇌에 빠지고 끙끙대며 곪아본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일단 툭 털어야 모임에서 즐겁고 유익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했다.
두번째 시간. 소모임 내에서의 질문법. 1) 서로 다른 의견들이 충돌할 때, 우리가 지금 이 논의를 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한번 되돌아본다. 각자 자기 의견만 내세울 때에는 시야가 좁아져 상대의 의견이 들리지 않고, 그렇게 평행선을 그리며 맹렬히 돌진하다가 서로 감정을 다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럴때 잠깐 논쟁을 멈추고 이 논의를 하게 된 처음의 ‘의미’로 되돌아가 우리가 왜 이것을 하려하는지 넓은 시야로 다시 한번 짚다 보면 합의점을 찾기도 하고, 새로운 방법이 떠오르기도 하며, 생각지 않게 다른 길이 열리기도 한단다. 2) 모임 속에서 나 자신을 돌봄과 동시에 전체도 돌보고 살핀다. 구성원 모두가 각자의 심정을 살핌과 동시에 전체를 돌본다면 모임을 이끌어 가는 역할과 힘을 자연스레 나눠가지게 될 것이다. 내가 모임의 리더가 아닐 때 전체를 돌본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는데 모임 구성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었다. 3) “이 사람도 서툴구나.” 이 강의 전체에서 얻은 단 한 문장을 말하라면 나는 이 것을 말할 것이다. 모임에서 누군가가 상처되는 말을 할때(의도했든 하지 않았든간에) 그것을 바로 상처로 받아들이기 전에 나, 또는 모임을 보호함과 동시에 그 사람도 품을 수 있는 말. ‘이 사람도 서툴구나, 내가 그렇듯.’ 상호작용의 연속인 삶 속에서 새롭게 반응하는 법을 배웠다. 다른 사람을 넓게 품을 수 있는 실마리를 얻었다. 가상의 모임 ‘행복 품앗이’ 활동. 처음엔 이게 뭐지?하는 느낌으로 따라가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가상임을 잊고 모두가 몰입해서 열띤 논의를 벌였다. 우리 진짜 다음에 행복 품앗이 시작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개소리를 할 정도였다. 가상의 모임에서 각자가 하고 싶은 각양각색의 활동들 중 한가지를 도출해내는 과정은, 모두의 의견을 녹여내 합의를 이끌어내는것이 정말 힘들지만 대단한 과정이구나 새삼 체감한 값진 시간이었다.
서클로 둘러앉아 한 명도 빠짐없는 적극적인 참여를 끌어내며 다섯시간 동안 이어지는 강의를 두번에 걸쳐 이끌어주신 이은주 선생님, 발언자와 따뜻하게 눈을 맞춰주며 공감의 눈빛을 끊임없이 발사해주신 간사님들, 열정적으로 의견을 내고 또 열린 마음으로 귀기울여주신 참여자들 모두가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진 귀한 시간이었다. 모두에게 감사드리고 박수보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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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하는 리더십 워크숍 - 존중과 협력이 있는 소모임 만들기 | <소통하는 리더십 워크숍 -존중과 협력이 있는 소모임 만들기> 후기 | 생기있는소윤 | 2020.10.29 | |
올해부터 네살 아이를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내며 협동조합 생활에 대한 기대로 한껏 부풀어 있었다. 비슷한 뜻을 가진 부모들과 크고 작은 다양한 행사를 통해 깊이 소통하고 두터운 친분을 쌓을 수 있으리라는 그 기대는 코로나시대가 열리면서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전체가 다 모이는 행사는 도무지 기약이 없고,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서로의 마음에 가 닿을 수 있을까. 그 답은 소모임이었다. 비슷한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열명 남짓하게 모이는 소모임을 다양하게 갖는 것. 이를 추진하면서 내 눈에 들어온 이 강의의 제목은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소통, 리더십, 소모임. 이거면 끝난 것 아닌가! 첫 활동. 상대방의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들은 뒤 그대로 다시 말해주기. 둘씩 짝지어 상대의 말을 ‘상대방이 쓴 단어’를 이용하여 다시 말하는 것이었는데 미처 예상치 못했던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했다. 이렇게까지 에너지를 들여가며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준 적이 있던가. 말 끝나면 내가 할 말만 생각하고 있었지. 놀라운 것은 상대의 얘기를 열심히 암기하듯 들은 뒤 그대로 반복하려고 해도 나도 모르게 ‘상대의 언어’가 아닌 ‘나의 언어’로 자꾸 바꿔서 얘기를 하더라는 것이다. 딱히 어떤 의도가 있다기보다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내 나름대로 소화시키려는 것이었는데, 그러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꽤나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상대방의 말을 ‘판단 없이 끝까지’ 듣는것 뿐만 아니라, 들은 ‘그대로’ 얘기하는것도 사실 평소에 거의 못하고 있다는 점을 자각할 수 있었다. ‘즐겁고 유익한 모임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들’ 살펴보기. 모두가 말하는 것을 큰 전지에 적어본 뒤 가장 공감 가는 것에 스티커를 붙여보았다. 가장 많은 공감을 얻은 것은 ‘모임 끝날때, 불편한 것 있으면 쌓아놓지 말고 얘기하기’, 그 다음으로 ‘관계에 대한 걱정으로 할 말 못하면 안돼요’, ‘스트레칭’이 이어졌다. 앞의 두가지가 생각이나 마음의 불편함 해소라면 세번째 것은 몸의 불편함 해소. 모임에서 몸과 마음 모두 편안해야 한다는 바램이 읽혔다. 모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 마음에 맺힌 말에 홀로 고뇌에 빠지고 끙끙대며 곪아본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일단 툭 털어야 모임에서 즐겁고 유익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했다. 두번째 시간. 소모임 내에서의 질문법. 1) 서로 다른 의견들이 충돌할 때, 우리가 지금 이 논의를 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한번 숨고르며 되돌아본다. 각자 자기 의견만 내세울 때에는 시야가 좁아져 상대의 의견이 들리지 않고, 그렇게 평행선을 그리며 맹렬히 돌진하다가 서로 감정을 다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럴때 잠깐 논쟁을 멈추고 이 논의를 하게 된 처음의 ‘의미’로 되돌아가 우리가 왜 이것을 하려하는지 넓은 시야로 다시 한번 짚다 보면 합의점을 찾기도 하고, 새로운 방법이 떠오르기도 하며, 생각지 않게 다른 길이 열리기도 한단다. 2) 모임 속에서 나 자신을 돌봄과 동시에 전체도 돌보고 살핀다. 구성원 모두가 각자의 심정을 살핌과 동시에 전체를 돌본다면 모임을 이끌어 가는 역할과 힘을 자연스레 나눠가지게 될 것이다. 내가 모임의 리더가 아닐 때 전체를 돌본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는데 모임 구성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었다. 3) “이 사람도 서툴구나.” 이 강의 전체에서 얻은 단 한 문장을 말하라면 나는 이 것을 말할 것이다. 모임에서 누군가가 상처되는 말을 할때(의도했든 하지 않았든간에) 그것을 바로 상처로 받아들이기 전에 나, 또는 모임을 보호함과 동시에 그 사람도 품을 수 있는 말. ‘이 사람도 서툴구나, 내가 그렇듯.’ 상호작용의 연속인 삶 속에서 새롭게 반응하는 법을 배웠다. 다른 사람을 넓게 품을 수 있는 실마리를 얻었다. 가상의 모임 ‘행복 품앗이’ 활동. 처음엔 이게 뭐지?하는 느낌으로 따라가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가상임을 잊고 모두가 몰입해서 열띤 논의를 벌였다. 우리 진짜 다음에 행복 품앗이 시작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개소리를 할 정도였다. 가상의 모임에서 각자가 하고 싶은 각양각색의 활동들 중 한가지를 도출해내는 과정은, 모두의 의견을 녹여내 합의를 이끌어내는것이 정말 힘들지만 대단한 과정이구나 새삼 체감한 값진 시간이었다. 서클로 둘러앉아 한 명도 빠짐없는 적극적인 참여를 끌어내며 다섯시간 동안 이어지는 강의를 두번에 걸쳐 이끌어주신 이은주 선생님, 발언자와 따뜻하게 눈을 맞춰주며 공감의 눈빛을 끊임없이 발사해주신 간사님들, 열정적으로 의견을 내고 또 열린 마음으로 귀기울여주신 참여자들 모두가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진 귀한 시간이었다. 모두에게 감사드리고 박수보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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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금맥톡] 비독점 다자연애 - 폴리아모리에 대하여 | 내 삶의 편견의 한 조각이 떨어졌다 - 폴리아모리 토크쇼 후기 | 환2 | 2020.10.22 | |
지난 16일 저녁 참여연대 1층 카페통인에서는 <불금맥톡 - 비독점다자연애 폴리아모리에 대하여> 토크행사가 열렸다. 사전에 신청하지 않았지만, 한번 와보라는 담당자의 말에 불쑥 찾아온 호경(아카데미느티나무 미술학교 참가자)을 붙잡고 그날의 경험을 들어보았다. 폴리아모리라는 말을 처음접했을때 어땠나. "관심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관심도 없고 반대한다는 생각도 있었고 불가능한 관계라는 생각을 했다. 조금더 극단적으로 생각하자면 소위 '바람'을 정당화 시키기 위한 우아한 용어라고 생각했다." 불금맥톡에서 승은 지민 우주를 봤을때 느낌 궁금하다. "운동권 학생들인가? 싶었다. 세명이 앞자리에 앉아서 가족이라고 소개할때 오늘 초대손님인걸 알았고, 이번행사가 당사자들이 직접 말하는 컨셉이란걸 알았다." 폴리아모리 토크 내용을 들으면서 전반적인 느낌은 어땠나. "점점 빠져들었다. 그리고 폴리아모리가 특수한 관계인데, 단순히 우리가 연애 소설에서 보는 사랑 질투가 아니라, 이 세사람이 관계 전반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다는 걸 알았고, '굉장히 건강하다'라고 생각했다" 인상적이었던 이야기 한 두가지 나누어 달라. "이 토크쇼에 참여할때 가장 궁금했던 것이 질투를 어떻게 다루었는지, 가족들이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궁금했는데 그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질투에서는 지민의 말처럼 '자신의 열등감의 발로가 질투가 아닌가 한다'라는 부분이 인상적이었고, 서로가 느낀는 감정적인 어려움들을 서로가 솔직하게 나누고 합의점을 찾아가는게 인상적이었다. 당사자들끼리 논의하면서 합의해나가는 것이 좋았다. " "부모님들의 반응을 내놓았을때 - 예상되는 부모님들의 반응이 있었지만 부모에게 지지않고, 부모와 독립된 존재로 살아가는게 멋있었다." 이번 행사에서 남아있는 키워드가 있다면 "토론 사회자가 '결국은 민주주의네요'라고 말한 것 처럼, <합의의 갱신 가능성>이라는 말이 되게 멋있었다. 바운더리가 없는 서로가 각자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게 좋았다. 우리가 어릴때 '너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라고 희망을 주는데 크면 사실은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들이 보이는데 이 세사람은 그 한계들을 확장시키며 삶을 만들어 가는 것 - 사회의 정상성에 저항하며 살아가는 '전사들' 같았다." "혁명적이었다. 사회전반적인 통념에 대해 혁명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말. 내 삶에 남아있는 연결지점들이 있다면 "나는 사랑에 대한 로맨틱한 생각으로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이 세사람이 서로가 지속적으로 협의하고대화나누며 사랑을 지속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다. 결혼제도 같은 법적 제도를 새롭게 전환하는 것뿐 아니라 추상적인 관념들까지도 깨뜨려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 " "마지막으로 나의 편견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되었다." 인터뷰를 하는내내 미소를 머금은 호경의 얼굴이 기억에 남는다. 누군가 그랬다. 폴리아모리라는 개념을 통해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것 같아서 좋았다고. 지민 승은 우주 이 세사람이 처음엔 뭔가 특별해 보였지만. 실은 일상에서 끊임없이 조율하고 소통하며 평등한 관계를 위해 애쓰는 보통의 사람들이었다. 나 또한 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지난 날의 인간관계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거창한 말로 들릴 수 있지만 일상의 민주주의를 치열하게 실천하는 실천가로 느껴졌다. 편견을 드러내면 서로가 함께 공유하고 배울 수 있는 점들이 얼마나 많은지. 갑작스러운 인터뷰 요청에 응해준 호경샘에게 감사를 드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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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투사워크숍] 꿈 거울로 참 나를 만나다(온라인) | [꿈투사워크숍] 오늘밤 좋은 꿈 꾸세요! | 개똥이 | 2020.10.22 | |
'아, 이렇구나!‘ 인생 5학년이 되면서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4학년 때만 해도 '고민'이나 '감안', '고려'보다는 원하면 또는 필요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속에 현장 돌파를 통해 일의 성과를 내면서 일종의 자신감을 확인하는 삶이었다면, 5학년이 되면서부터는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변화를 실감하게 됩니다. 아직은 이것이 소위 여성호르몬이 더 많이 나온다는 신체의 변화 때문인지, 아니면 사회적인 위치의 변화 때문인지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아니, 사실은 아마도 두 가지 다 변화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다시 말하면, 시각과 청각, 미각 등 육체의 감각들을 기반으로 한 이성과 논리, 객관성, 전략 등을 중심으로 나는 판단하고 행동한다는 생각이 감정이나 직관, 영감 등 정신적인 감각에 더 의존하는 것으로 변하는 겁니다. 다만, 아내나 딸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미 예전부터 감정이나 직관을 더 우선시 했다는 것을 문득문득 느낍니다. 드라마를 볼 때 스토리의 전개나 플롯(구성)도 있지만, 배우들이 움직이는 배경의 감정들을 더 재미있게 보는 거지요. 한마디로 남성들은 보통 '아주 단순'합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남성들도, 일찍 변화한 남성들도 있습니다만. 이 같은 변화 속에서 '꿈투사워크숍' 프로그램 소개 글을 보면서, '아, 이건 뭔가, 어떻게든 꼭 참여해 봐야겠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내가 잘 모르는 세계가 있는 것만은 분명했으니까요. 그리고 바로 손에 잡은 책이 꿈투사워크숍을 이끄는 고혜경 박사님의 '나의 꿈 사용법'(한겨레출판, 2014)입니다. 의식보다 훨씬 더 큰 분량의 무의식을 사람들 각자 다 갖고 있고, 이 무의식 속에는 각 개인 삶의 역사와 가족의 역사, 민족의 역사, 종의 역사까지도 들어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 무의식을 보고 느끼고,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각자의 꿈을 통해서'입니다. 그리고, 각자의 꿈은 여러 사람이 함께 나눌 때에야 그 의미를 쉽게 알 수 있다는 겁니다. 혼자서는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지요. 그리고, 맞이한 첫 시간. 첫 참가자의 꿈투사를 14분의 친우(親友)들과 함께 나누면서, 바로 알게 됐습니다. '아, 이거구나' 군에 다녀와서 허리가 좋지 않아 기(氣)치료를 위해 '태극권'을 배우면서 느끼게 된 '氣의 감각', 인생 3학년 때 읽은 '자신을 멀리 하늘 위에서 바라볼 때 괴로움과 슬픔을 치유할 수 있다'는 내용의 책 '왓칭'(김상운, 정신세계사, 2011), 동물권 책읽기에 참여하면서 우연히 보게 된 '말하지 않고 동물과 대화하는 법'(피 호슬리, 김영사, 2018)에서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텔레파시', 타로카드를 배우고 나서 알게 된 '사람들은 타로카드 78장의 이야기들을 모두 품고 살아가고 있고, 이를 계속 확인하고 정리하고 싶어한다는 것' 등이 같은 묶음의 세계라는 것을. 더 큰 감동은 나의 꿈을 이야기하고 친우들이 꿈투사를 해줄 때였습니다. 모든 참가자들이 내 꿈을 집중해서 듣고, 내 꿈을 열심히 이해하려 하고, 그 의미를 해석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느끼면서, 한마디로 '아! 이런 거구나'라는 감탄과 함께 무척 행복했습니다.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괜히 쑥스럽고, 부담스럽고, 낯선 것이 아니라 꿈을 매개로 참가자들은 각자 자신의 경험과 이야기를 통해 그 꿈을 이해하고, 나누면서 함께 힐링을 하는 겁니다.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곳이라는 것을 온 몸으로 체험하는 것이죠. 자존감과 자신감이 높아지는 것도 꿈투사워크샵의 큰 장점입니다. 꿈은 의식과 무의식이 섞여 매일밤 빚어내는 자신만의 이야기와 영상입니다. 누구의 책을 본 것도, 드라마를 본 것이 아닌 자신만의 영화가 나타나는 것이죠. 이 스토리를 매일 기록해 놓고, 그 의미를 찾다보면 그건 가장 독창적인 예술작품이 되는 겁니다. 그래선지, 꿈을 적다보면 무언가 계속 채워지는 만족감을 느끼게 됩니다. 나만의 작업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지는 겁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을 통해서만 교류한다는 겁니다. 14분의 친우들을 PC의 작은 한 화면을 통해 보다보면 뭔가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입니다. 물론, 온라인영상 프로그램의 일부 기능을 이용하면 바로 옆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가깝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한바탕 수다를 떨고, 스트레스를 푸는 듯한 느낌이 쉽지 않은 거지요. 마지막으로 책 한권을 소개합니다. 매일 아침 모여 꿈투사를 통해 하루를 시작하는 말레이시아 산악지대에 사는 원시부족 '세노이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잠'(열린책들, 2017) 입니다. 꿈에 대한 과학적인 해석과 그 의미, 꿈투사법 등이 상세하게 소설형식으로 꾸며져 아주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아래 인사의 의미를 좀더 깊이있게 이해하게 됩니다. '오늘밤 좋은 꿈 꾸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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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격 분석! 코로나 예산 감시학교 | 코로나 시대의 시민강좌 - 예산 감시학교 후기_수빈 | 수빈 | 2020.10.21 | |
코로나로 시작한 2020년이 어느덧 끝을 향해 가네요. 봄만 해도 '조금 지나면 상황이 나아지겠지, 이번 학기만 교육 취소하면 다음 학기부터는 정상운영할 수 있겠지'라는 희망을 가졌는데, 어느새 코로나가 우리 곁을 쉽게 떠나지 않을 것임을 받아들이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봄/여름학기의 혼란을 이겨내고 9월엔 예년의 개강 분위기를 회복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강좌를 신청했어요. 이번 학기 9~10월 4주간 진행된 예산감시학교를 수강했는데요. <나라살림연구소> 이상민 선생님의 예산 분석 2강, 참여연대 간사님들께서 직접 진행하시는 예산감시 활동 2강을 듣고 나니, 뉴스에서 언급되는 예산 규모를 들을 때 최소한 '저게 뭐구나' 정도는 알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이상민 선생님의 강의는 정말 손꼽을 만한 명강의였고요, 직접 발품발아 얻은 정보와 경험을 토대로 한 강의가 얼마나 생명력이 있는지를 체감하게 되었어요. 참여연대 간사님들의 강의를 들으면서는 참여연대가 곳곳에서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를 새삼 느끼게 되었고요. 매 회차 성실히 참여하며 다양한 질문과 의견 주신 동료시민들도 대단하시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님의 자연스럽고 세심한 진행도 느티나무 강좌의 자랑거리인 것 같아요. 온라인으로 진행하면 아무래도 교육공간의 보이지 않는 '공기'같은 걸 느낄 수 없기 때문에 참여자들의 상태을 훨씬 더 민감하게 살피고 반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간사님께서 그런 것들을 고려하신 듯한 진행을 하고 계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강의 자체의 질뿐 아니라 환경의 질까지 잘 챙겨주신 간사님께 박수를!! 4강 진행해주신 모든 강사님과 수강하신 시민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요즘 많은 강좌를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것 같아요. 온라인이라 불편/불안하기도, 온라인이라 더 편하기도 하다는 의견을 주변에서 접하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온라인이 효과적인 것 같아요. 오가는 시간을 절약하여 그 에너지로 강의에 더 집중할 수 있고, 예전같으면 너무 피곤해서 출석하지 않았을 법한 날에도 침대에 누워 강의를 들었는데 이렇게라도 들을 수 있어 좋더라고요. 반면 온라인의 전달력이 약하다거나, 얼굴이나 환경을 타인에게 비추는 것이 불안하다거나, 물리적으로 온라인으로 참여할 수 없다거나(데이터 문제, 공간 문제 등)하는 의견도 적지 않은 것 같아요. 시대가 이미 변해서 과거로 돌아가긴 어려울 텐데.. 그렇다면 앞으로는 전략적으로 오프라인과 온라인 개강을 반반 시도해야 하나 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어요. 아마 느티나무 운영진께서도 많이 고민하고 계실 것 같네요. 마지막으로, 느티나무에 좋은 강좌가 많은데 기존 회원이 아니더라도 많은 시민이 접근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더 고민하면 어떨까 하는 의견 드립니다. 보다 더 다양하고 많은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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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연극워크숍 15기] 낭독연극 워크숍 | "그날도 연극하기 좋은 날씨였다." 낭독연극 워크숍 후기. 우정현 | 메링링 | 2020.8.21 | |
6.20.(토) 11:00 왜 연극을 하려고 하나요? 낭독연극 워크숍 발표날이다. 느지막이 일어나 커피를 마시며 워크숍의 첫 날을 떠올린다. 5월 13일, 참여연대 지하 1층 느티나무 홀에 열일곱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나를 더 잘 표현하고 싶어서” “나를 더 잘 알고 싶어서” “타인의 삶에 공감하고 싶어서” “실용적인 목적으로” 등등, 저마다 이유는 다르지만, 공통점은 하나, 연극을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란 것. 나는 “즐거움을 찾아서” 워크숍에 참여했다. 어릴 적 학교 수업시간에 교과서에 실린 희곡을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연기하듯 읽던 순간의 짜릿했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남아 있다. 그 순간의 느낌을 세월이 훌쩍 지난 지금 다시 경험할 수 있으리란 생각에 신청했고, 열일곱 명의 낯선 사람들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앞쪽에는 워크숍을 진행하는 남동훈 연출님이 있다. 시민들이 주축이 되어 연극을 꾸리는 시민 연극단을 이끈 경험이 여러 번 있는 분이라고 한다. 연출님은 내내 웃음 띤 얼굴과 여유 넘치는 표정으로 앞으로 워크숍이 어떻게 진행될지 안내했다. 그동안 많은 일이 벌어져서 그런가. 불과 한 달 전의 일인데 오래 전처럼 느껴진다.
6.20.(토) 12:00 민중의 연속극 워크숍에 참석하기 위해 집밖으로 나설 채비를 한다. 가방 안에 헨릭 입센의 ‘민중의 적’과 김은성 작가의 ‘달나라 연속극’ 책을 넣었다. 낭독연극 워크숍의 교재들이다. 첫 수업시간이 끝나고, 연출님이 알려준 대로 한 자리에서 멈추지 않고 마지막까지 대본을 읽어나갔다. 연극 대본을 읽는 게 얼마만일까. 생각만큼 장면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다음 시간부터 참가자들끼리 돌아가면서 대본을 읽어나갔다. 등장인물의 대사를 읽는 게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점점 익숙해졌다. 짧은 대사에 감정을 싣는 연습을 했다. 연출님은 대사 표현, 행동, 전사(前史) 파악 등 연기이론을 설명하며 초보 연기자들을 이끌었다. 두 대본 중 연기하고 싶은 배역과 장면을 선택해야 한다. 나는 ‘민중의 적’ 중 ‘시장’ 역할을 골랐다. 정의감 넘치는 주인공 ‘스토크만’ 대신 노회하고 야심 가득한 시장 역할을 선택한 데는, 세상에서 내게 주어진 배역과 다른 역할을 맡아보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나의 파트너는 시장 역할을 담당한 00쌤. 우리는 ‘민중의 적’ 4막에서 형과 동생이 대립하는 장면을 연기했다. 처음에는 겨우 대본을 따라 읽는 데 그쳤지만 차차 상대방의 연기에 감응하며 몸을 움직였다. 나는 “그 짓을 하고서도 나한테 원칙을 들먹여”란 대사를 할 때 가장 통쾌했고, 00쌤은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시오”라는 대사를 진정성(?)이 느껴지도록 읊었다. 열일곱 명의 참가자 중에는 ‘시장’ ‘스토크만’ 외에 ‘홉스타드’ ‘아스락슨’ ‘카트린’ ‘만자’ ‘은창’ ‘은영’ ‘미영’이 있었다. 연습 시간 동안 이들이 벌이는 ‘민중의 연속극’이 참여연대 건물에서 수도 없이 상연되고 끝마치고 다시 막이 올랐다. 6.20.(토) 12:20 마스크를 쓴 사람들 지하철에 탔다. 사람들이 죄다 마스크를 쓰고 있다. 올 초에는 상상하지 못하던 모습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워크숍이 중간에 위기(?)를 맞았다. 5월 말 코로나19가 다시 확산될 기미를 보이자, 정부에서 2주간 행사 및 모임 참가 자제를 권고한 것. 덕분에 워크숍도 1주일 이상 뒤로 미뤄졌다. 발표를 앞두고 한창 분위기를 탈 때쯤에 일어난 일이라 아쉬웠다. 그럼에도 모든 것이 불확실한 코로나19 시대에 적응할 수밖에 없는 법. 잠시 쉬는 기간 동안 대본 읽기를 연습한 후 2주 뒤 다시 모였다. 더 넓은 공간에서 참가자끼리 거리를 두고, 마스크를 꼭 착용한 채 연습에 임했다.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없는 집에서도 대사를 완전히 외우는 걸 목표로 대본을 읽으며 연습했다. 연극이나 영화에서 배우들이 긴 대사를 다 외워 연기하는 걸 보고 신기했는데, 나도 어느 정도는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비록 한 장면이지만 말이다. 이 대사를 할 때 인물의 감정은 어떨까. 이러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금씩 인물의 마음에 가까워진다.
6.20.(토) 12:40 연극하기 좋은 날씨 시청역 8번 출구. 이 곳에서 참여연대에 가는 마을버스를 타야 한다. 워크숍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주말에도 참여해야 할 때가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토요일 점심 무렵 정류장에서 마을버스를 기다리며 바라본 풍경이 보기 좋았다. 오늘 또한 그렇다. 이 날의 햇살, 바람, 풍경이 마음에 든다. 핸드폰을 열고 연출님이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에 남긴 메시지를 읽어 본다. 연출님의 말씀대로 “각자의 인생에서 단 한 번 밖에 없는 공연”이 시작되려 한다. 마침 “연극하기 좋은” 날씨다. 참. ‘낭독연극 워크숍’ 이후에는 ‘대본창작 과정’이 진행된다고 하던데, 어떤 내용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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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투사워크숍] 꿈거울로 참 나를 만나다(온라인) | [꿈투사워크숍] 잃어버린 통증을 찾아서 | jusibel | 2020.8.8 | |
나에게로 데려다주는 꿈여행 꿈투사 워크숍에 참여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저는 문제가 많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제 안에 풀리지 않은 문제들이 아주 많습니다. 꿈투사는 그 문제의 미로에서 길을 잃지 않게 도와주는 아드리아네의 실꾸러미 같습니다. 고혜경 선생님은 꿈이 우리를 언제나 도와주고 지지해주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 말 한 마디가 어두운 밤의 등댓불 같이 마음을 밝혀줍니다. 신이 보낸 러브레트가 우리에게 꿈의 모습으로 전달되고 있다구요. 우리 모두에게 공평히, 그렇게 꿈은 주어집니다. 매번 꿈투사 수업에서 새로운 것을 배웁니다. 그렇다면 이번 수업에서 저는 무엇을 배웠을까요. 이번 학기에 저는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게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배웠습니다. 상처가 나면 아픕니다. 아프면 쉬거나 병원에 가야겠지요.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 일들이 많습니다. 영혼에 상처가 나도 아프지 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영혼이 부서지고, 피가 나고, 심지어 죽기 일보 직전인데도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무감각하다고 생각했는데, 고통에 마비된 것이었습니다. 이겨냈다고 생각했는데, 상처에 반창고만 갈아 붙인 것이었습니다. 씩씩하거나 용감했던 것이 아니라, 무지했고 마비된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마비된 사람들이 다른 마비된 사람들을 만들고, 마비된 사람들이 아직 마비되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을 헤집습니다. 이번 수업에서 다룬 꿈을 통해서 저는 제 아픔을 찾아냈습니다. 제 인생을 돌이켜 보면 당연히 아파야하는 상처였는데, 거짓말처럼 아픔을 제대로 느낀 적이 없는 자리였습니다. 제대로 눈길 주어 멈추어 본 적이 없는 지점이었습니다. 꿈을 통해 여전히 열린 채 피를 쏟아내는 상처를 찾았고, 저는 마음으로 앓고 있습니다. 아픈 걸 알아야, 애도할 수 있고, 애도할 수 있어야 반성할 수 있고, 반성할 수 있어야, 그 온당하고 당연한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이렇게 쓰면 굉장히 힘든 과정인 것 같은데, 또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다룰 힘이 있을 때에만 꿈이 상처를 보여준다고 하거든요. 내 무의식이 나를 그토록 믿는다면, 나는 이겨나갈 힘이 있는 상태일 것입니다. 좋은 신발은 우리를 좋은 곳으로 데려가 주지만, 모든 꿈은 우리를 더욱더 더 내 자신으로 만들어 줍니다. 잠이 들기 전, 저의 영혼에 인사를 건냅니다. 오늘도 좋은 꿈 꾸길!! (꿈투사 수업을 듣고 있는 동료 수강생들과 신뢰할 수 있는 안전한 안내자가 되어주시는 고혜경 선생님께도 감사를 전합니다.)
2020년 봄학기 온라인으로 진행된 꿈투사 워크숍 캡처 화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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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데이클래스] 토요 보깅댄스 ‘Express yourself’ | [후기-토요보깅댄스] 천골의 통증이 사라지다 - 간증같은 보깅 후기 :) | 느림보바 | 2020.7.27 | |
어떤 일에 호기심을 느끼고 해보고 싶어졌을 때, 이리 재고 저리 재는 것은, 솔직히 말해 내 스타일은 아니다. 그런데 "토요보깅댄스" 강좌 공지를 앞에 두고는 망설임이 생겨났다. 분명 강좌 안내에는 이렇게 쓰여 있기는 했다. 이런분들 초대합니다.
※보깅은 누구나 할 수 있어요. 몸치, 박치, 남녀노소 모두 환영합니다. 그러나 "보깅 댄스"라는 것이 너무 젊어 보이는 느낌이라 반백년을 살아온 내 몸이 이걸 따라갈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컸다. 그래서 정말 나 답지 않게 아카데미 느티나무 간사님께 질문 문자를 보냈다. -질문. 보깅 댄스 저도 할 수 있는 걸까요? 젊은 사람들 틈에 끼어 분위기 망칠까봐 신청 전에 문의합니다. 솔직한 답변 부탁드립니다. -솔직하게 대환영합니다. 전 50대 중년분들이 오시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기획했습니다. "대환영"이라고, 50대 중년분들이 오시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는 대답이 돌아왔기에 덜컥 신청을 했다. 강좌가 열리는 토요일 아침, 컨디션이 영 별로다. 천골(여기가 어디냐 하면... 허리 아래 꼬리 바로 위 평평한 부분...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그 부분을 의식조차 하지 못한다.)부근이 꽤 아팠다. 펄펄 날 것 같은 컨디션이어도 빌빌 거릴텐데, 이대로 갔다간 민폐작렬 아닐까, 싶었지만 '노쇼'는 더 큰 민폐일 것 같아서 무거운 걸음을 참여연대로 옮겼다. 무슨 옷을 입고 가야 할지조차 막막하지만 지금 '드레스 코드'를 따질 처지는 아니지 않나. 강의실에 도착했을 때, 나는 '망했다'고 생각했다. 이런. 내가 예상한 것보다도 더 젊다. 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앞으로 두 시간 반 동안 보깅 댄스라는 낯선 춤을 추어야 하는가? 게다가 나는 춤알못인데. 어떤 춤을 추어도 체조로 만드는 탁월한 재능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가. 왜 이 자리에 왔는가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강의가 시작되었다. 나는 "참여연대가 안하던 짓을 하기에, 저도 안하던 짓을 해보기로 했습니다."라고 답했다. 100% 진심이다. 몸을 풀고, 보깅 댄스에 대한 간단한 안내를 받고, 그리고 춤을 추었다. Cat Walk, Duck Walk, Floor Performance, Hand Performance, Spin&Dip를 하나 하나 배웠다. 당.연.히 어렵다. 그런데, 이거 완전 재미있다. 선생님의 설명을 내 식대로 버무려서 표현하자면, 아주 과장되게, '나 예뻐' '나 멋져'라는 느낌을 팍팍 풍기며, 자뻑 가득한 동작을 해야 하는데, 이게 정말 재미있지 않은가. 근 10년은 움직여 본적이 없을 것 같은 골반을 이리 저리 움직이고, 한번도 해보지 않은 방식으로 움직이는 것이 이토록 재미있을 줄이야!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내 안에 숨겨져 있는 '자뻑 본능'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다. 게다가 멋지지 않은가. 내가 조금은 힙해진 느낌? 완전 신문물을 접한 느낌? 중년분을 위해 기획했다고, 나를 낚기 위해 '뻥카'를 날린 간사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생겼다. 그가 '실은, 참가 신청을 해주신 분들은 대체로 2, 30대 분들이세요.'라고 솔직한 답변을 해주었다면 나는 이 자리에 오지 않았겠지? 때로 선의의 뻥카는 큰 도움이 된다. 천만 다행으로 참여연대 느티나무 홀에는 거울이 없고, 그래서 나는 나를 볼 수 없다. 선생님의 멋진 퍼포먼스를 반 정도는 따라가고 있을 것이라고 홀로 착각하며 두 시간 반을 함께 춤을 추었다. 아, 내 인생에 부족한 성분이 바로 '댄스'였구나! 못하더라도 자주자주 춤을 출 기회를 만들어 주기적으로 춤을 섭취해야지, 하고 야무진 다짐을 했다.(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난 주말에는 '훌라댄스' 원데이 워크숍'에 참가하기도 했다. 불행하게도 거기에는 거.울.이. 있.더.라. ㅠ.ㅠ) 혹시 다음 강좌가 개설되었을 때 참가를 망설이는 분을 위해 '춤알못'인 내가 알려주자면, 보깅은 정확히 4박자 리듬을 따르더라. 박자를 쪼개지 않아서 춤에 서툰 사람들도 일단 시작할 수는 있는 것 같았다. 보깅의 세계로 더 깊이 들어갔을 때도 그렇게 정직한 리듬을 타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허들이 높은 분야는 아니라는 것. 이름만 어려울 뿐이다. 그리고, 아주 아주 중요한 이야기. 즐겁게 춤추고 집에 돌아왔는데, 뭔가가 달라졌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지난 며칠 나를 괴롭히던 천골의 통증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러니까 이건 강좌 후기이면서 동시에 '간증'이다. 허리나 골반 같은 곳이 아픈 반백살들에게 보깅 댄스를 권한다. 원데이였다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나를 고통에서 건져주었으니 감사하는 마음으로 후기를 쓴다. 절대로 절대로 간사님의 '강요' 때문은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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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성놀이학교] 캠벨의 <여신들>과 함께 손작업을 하다 | 느티나무 창조성 놀이학교가 열리는 공간 ‘감우산방’... 그 곳에서 여신들의 광란의 축제가 열리다. | 예쁜여우 | 2020.6.17 | |
작년 가을에 우연히 잘못 배달된 참여연대 책자 ‘참여사회’에 소개된 “창조성 놀이학교” 강좌를 보고 바로 메일로 문의를 했다. 입모양을 보고 소통이 가능한 청각장애인인데 참여가 가능하냐?... 그에 대한 답은 말하기를 통해 이뤄지는 소통이 주인데 거기에서 내가 소외될까봐 걱정된다는 것이었다. 강좌에서 소외될 수 있는 부분은 나의 장애로 인해 생기는 어쩔수 없는 부분이고 대신 내가 미리 책을 읽고 따라갈 수 있는 만큼만 해도 괜찮으니 함께 하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낯설지만 새로운 만남이 시작되었다. 김 혜련의 <밥하는 시간> 이라는 책을 함께 읽고 서로의 생각을 말하면서 아픔과 슬픔의 추억을 함께 공감하고, 정성껏 준비해온 건강하고 맛있는 먹거리를 먹는 시간도 있고, 조각천을 함께 맞추고 이어가며 이불도 만들었다. 내가 우왕좌왕하면 슬쩍 내미는 손길에 다시금 제자리로 와서 같이 시작하는 등...이런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사람들의 따뜻함을 온 몸으로 느끼며 보이지 않는 진정어린 지지와 힘을 얻었다. 올해 봄학기 강좌가 시작되길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모든 일상이 멈춰지면서 입모양으로 소통하는 나에게는 마스크로 사람들과의 소통이 차단 되면서 본의 아니게 고립될 수 밖에 없었다. 들리지 않는 소리를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귀찮음, 짜증스러운 표정, 무시하고픈, 어디서나 환영받지 못함을 느껴질 때마다 말하는 법은 잊혀지고 눈치로 생존법을 찾아야 했다. 누군가를 원망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모두가 살고자 하는 것이려니 하고 이해하려고 했지만 지쳐가던 중이었다. 드디어 연기 되었던 느티나무의 “창조성 놀이학교”가 시작한다고 연락이 왔다. 그러나 코로나 상황이 악화되어 생활방역으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는 상황들은 몇날 며칠을 잠 못이루게 했다. 간단한 기본적인 소통조차도 애먹고 있는데, 서로의 생각을 주고 받는 소통으로 진행하는 감우산방 방식에 과연 내가 할 수 있을지, 얘기할 때 만이라도 잠깐 마스크를 내린다면... 그 또한 벗님들을 위험에 빠지게 할 수도 있다는 부담감에 결국 나 한사람만 빠지면 해결되니 포기하려던 참에 재미란 선생님의 카톡 답이 왔다. 감우산방의 진행은 서로 서로 지도하는 방식, 한 사람에게 집중해서 강의하는 것이 아니죠. 모두의 발언이 중한 서클방식에서 쌤과 소통을 위해서만 마스크를 벗게 되는 것은 아니죠.. 하하! 진짜 웃음이 나왔다. 나를 위한, 나를 위하여라는 말도 없었다. 나 때문에 감우산방 벗님들을 힘들게 할까 하는 생각은 오버하지 않았나 싶다. 감우산방의 벗님들의 “함께 하는 힘”의 위력을 잊고 있었다. 마스크때문에 벗님들을 못 따라간다 해도 내가 누구던가? 눈치밥으로 먹고 살아온 세월이 얼마인데... 이까짓꺼 못하겠어? 눈치껏 해보기로 결심했다. 감우산방의 여신들은 상상 외로 나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한 줄의 완성된 문장이 아닌 단어 하나만으로도 내게는 충분했다. 책이 있고 프린터물이 있고 종이와 볼펜이 있고 애정어린 벗님들의 눈길 덕분에 나는 눈치도 안보고 여신들의 축제를 맘껏 즐겼다. 매주 수요일, 감우산방으로 가는 길은 즐거웠다. 사람들을 통해 새로운 관점들을 알아가고 시야가 넓어지는 듯했다. 조제프 캠벨의 < 여신들 >을 읽으며 잊혀진 여신들을 찾아 떠나는 여행에서 ‘죽음과 재생’이라는 주제로 밀랍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함께 하는 시간이 지날수록 내 내면의 파장은 점점 퍼져갔다. 죽음은 그저 단순한 죽음이 아니었고 재생 역시 단순한 재생이 아니었다. 여신은 우물 안의 개구리인 나에게 자잘한 돌멩이를 마구 마구 던지더니, 기어코 커다란 바위덩어리를 던진다. 피할 틈도 주지 않았다. 결국 상처를 숨기며 괜찮아요, 괜찮아! 하던 내 입에서 결국 “아파요” 라는 말을 나오게 했다. 교착점, 충격, 잔인한 폭력과 파괴, 질문, 성배, 인간에 대한 연민, 물 위를 뛰어오르는 물고기.... 내 안에 숨어 있던 아픔들은 회오리치는 듯이 돌고 돌았다. 뭔가라도 잡고 있어야 해서 잡았던 철사는 뱀이 되고 메두사가 되어 다른 여신들과 광란의 축제를 즐겼다.
▲ 뱀이 되고 메두사가 되어... 나를 아프게 했지만 여전히 예쁜 여신, 행복한 단어인 내 짝, 내 짝이 되어준 여신과 함께 어울렸다. 생목소리로 들려주는 시 낭송과 떠나간 고인을 염원하는 소리에서 인간의 목소리도 감정을 담아낼 수 있음을 알게 해 준 여신들, 매 순간을 담아내려는 여신, 언제나 정정한 모습으로 모범을 보여 주는 여신, 멀리서 함께 즐기러 와 준 여신들, 함께 하지 못해 더욱 더 그리운 여신들, 그리고 메두사의 눈을 마주치면 슬그머니 마스크를 내리는 여신들의 모습에서 나는, 내가 그토록 부담스러워 했던 “배려”라는 단어를 기쁘게 받아들 수 있게 되었다. 그 많은 여신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러나 여신들은 나에게 삶의 부조리를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나눠주고 갔다. 마지막 남은 소원은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라는 말이 있었다. 나의 처음은 무엇인가? 나의 처음은 어디일까? 여신들이 나에게 나눠 준 그 힘으로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찾으러 다시 긴 여정을 떠나련다. 감우산방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여신들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나의 시를 바친다.
▲ 희생과 봉사의 생을 마감한 <평화의 우리집 쉼터> 손영미 소장님을 기리는 제단을 함께 만들었다. 인간들아! 인간들아! 너희들은 왜 나를 싫어 하느냐? 내가 너희들에게 제물을 바치라고 했느냐? 꽃을 바치라고 했느냐? 그러나! 나는 뱀의 여신! 자타공인된 사랑의 여신이 아니더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인간들아! 평화와 행복이 함께 하기를.. 나, 뱀의 여신... 모든 허물을 벗어버리고 억만겁의 시간을 뛰어넘어 또 다른 삶이 주어졌다. 나, 뱀의 여신.. 인간의 몸으로 이 따위에 다시 태어난다. 인간의 삶은 고되고, 고되고, 또 고되구나. 한 겁도 되지 않는 찰나. 그러나 얼마나 아름답고 생동감이 넘치는 삶인가..
▲ 뜨거운 밀랍을 손으로 조물조물거려 완성한 부엉이초를 선물 받아 참여연대 사무실 한 켠을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