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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명 | 강좌후기 | 글쓴이 | 날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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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연극워크숍] 정기공연을 향해 | 시민연극 - 타인의 마음으로 나를 찾는 일 | 개똥이 | 2019.11.20 | |
![]() 연극을 하고 싶었다. 무엇 때문인지 정확하게 말할 순 없지만, 연극을 하고 싶었다. 중학교 때 잠깐 했던 연극반 때문인지(《한여름밤의 꿈》을 죽도록 연습했지만, 끝내 상연은 하지 못했다), 고등학교 때 수업은 안 듣고 책상 밑으로 돌려가면서 읽었던 『유리가면』 때문인지(“마야, 나무가 되어라!”), 대학교 때 들었던 교양 연극수업 때문인지(뭔지도 잘 모르고 감상문 쓰러《관객모독》보러갔다가 물벼락 맞았다)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연극을 하고 싶었다. 연극은 어째선지 지루한 일상을 조금은 바꿀 것 같았다. 밀려오는 정보에 쩌들고, 사고하지도 향유하지도 않고, 스스로에 대해서건 사회에 대해서건 밍숭맹숭하게 무뎌진 감각에 아주 조금은 각성제가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많은 걸 기대한 건 아니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배우들처럼 돌아가면서 대본을 읽고, 무대에 오르기 위해 몸을 움직이고, 사람들과 함께 한 가지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면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 매주 수요일마다 참여연대 지하 1층에서 연극을 연습하고 있다. 《그녀가 사라졌다》의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 남동훈 연출님은 한 호흡으로 읽을 수 있을 때 읽으라고 했다. 연극은 중간에 나갈 수 있는 게 아니고, 한 호흡으로 봐야 하는 공연이니까 그랬을 것이다. 자기 전 조명을 낮춰두고 방해 없이 문을 닫은 다음 한 호흡으로 읽었다. 인물들의 면면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녀’ 뿐만 아니라 모두의 ‘진짜 서사’는 무엇인지, 대본은 끈질기게 추적하고 있었다. 혼자 아서 밀러나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을 읽는 건 좋아했지만, 연극을 한다는 게 무엇인지는 몰랐다. 그건 외따로 글자와 만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다. 가장 놀라웠던 건, 연극은 대본을 읽으면서 완성된다는 것이었다. 희곡은 하나의 완성된 텍스트가 아니라, 상호개입을 요청하는 텍스트였다. 느티나무 시민연극단은 각자 자신을 교사, 학생, 직장인, 다양한 여러 가지 정체성으로 소개했다. 하지만 연극 앞에서는 모두 진지하게 배우가 되었다. 대본을 읽고 의견을 덧붙이는 과정을 처음으로 보았다. 이 인물이라면 어떻게 행동할지, 이 상황이 이 인물에겐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 사람들은 자신이 맡은 인물의 상황을 상정하고 추정해서 인물의 총체적 이야기를 새롭게 구성했다. 대본은 그저 종이였을 뿐인데 갑자기 공간감이 생겼다. 다 같이 극을 읽을수록 2차원이었던 인물이 뼈와 살을 가지고 텍스트 속에서 3차원으로 불쑥 솟아올랐다.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인물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기에, 볼 때마다 새롭게 놀랐다. 느티나무 시민연극단이 처음으로 상연한 연극은 세월호에 관한 연극이었다고 했다. 이 사회의 시민들에게 어떻게 공감하고 애도해야 하는지, 무엇으로 그 슬픔에 연결되어야 하는지 물어야만 했던 사건을 이들은 연극으로 만들었다. 그 연극을 보지 못했지만, 연극을 하면서 왜 그 마음을 굳이 ‘연극’이라는 형태로 표현했는지 약간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연극은 영화가 아니다. 한 번에 찍고서 똑같은 걸 반복해서 틀 수 없다. 매 순간마다 새롭게 상연해야 하고, 새로운 상연은 같은 대본으로 하더라도 결코 이전과 같지 않다. 호흡, 순간의 움직임, 눈빛, 모든 것이 조금씩 바뀐다. 관객은 카메라가 제공하는 시야를 수용하는 게 아니라, 작은 무대 안에서 자신이 집중하고 보고 싶은 걸 볼 수 있다. 공연자들은 그 작은 무대를 하나의 세계로 만들어 움직인다. 같은 대본을 몇 번씩 읽고 있지만, 읽을 때마다 달라진다. 화면이 아니라 실재하는 인간이 앞에서 움직인다는 게 만들어내는 공기는 특별하다. 인형도 아니고 스크린도 아닌, 언제든 내 삶에 뛰어들 수 있는 인간이 다른 인간의 마음으로 말을 걸어온다. 서사는 물론 ‘진짜’가 아니지만 사람은 ‘진짜’로 내 앞에 펼쳐진다. 참여연대 아카데미느티나무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공공의 힘을 키우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공공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다른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에서 나온다. 이 문제가 내가 아니라 저 사람에게는 어떻게 다가갔을지 상상하는 힘에서 나온다. 우리가 서로 어떻게 다른 배경에 서 있고, 다른 존재로 완성되었는지 오롯한 개인으로서 인정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연극은 그 모든 것들을 단단하게 훈련시킨다. 내가 맡은 배역은 주인공 ‘그녀’의 조카다. 서른이 넘은 나는 열아홉 살 소녀가 사라진 고모에 대해 느끼는 애정과 공감을 상상한다. 엄마 아빠에 대한 비죽임, 자기 삶의 외로움, 고모를 볼 때마다 곧잘 기꺼워지는 순간들. 열아홉 살 소녀는 나와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왔다. 내 삶에서 유추할 수 없는 수많은 시간들이 그녀의 삶에 켜켜이 쌓여 있다. 요즘에는 가끔『유리가면』의 마야가 했던 것처럼, 그 인물이 되어서 걷고 생각하고 밥을 먹어본다. 나와는 먼 곳에 있는 누군가에게 손을 뻗어본다. 이제는 몇 달 전까지는 알지도 못했던 열아홉 살 소녀에게 ‘연대’의 인사를 보낼 수 있다. 며칠만 더 지나면 공연이다. 12월 7일에는 내가 만난 소녀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게 될 것이다. 느티나무 시민연극단의 다른 모든 사람들도 자신이 발견한 연대의 마음을 관객 앞에서 드러낼 것이다. 그 순간을 생각하면 신기하고 따스하다. 사라진 그녀를 찾아내 줄 관객의 마음을 상상하게 된다. 나는 연극을 하고 있다. * 《그녀가 사라졌다》 공연 예고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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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역사공부 1] 사료와 ‘톡’하는 법 | [나의 역사공부 1] 사료와 '톡' 하는 법 - 정변의 시대를 함께 겪은 이방인 알렌, <알렌의 일기> | 빛깔 | 2019.11.15 | |
시대 흐름 간의 연결과 사진해석
'역사'라는 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시대에 맞춰서 해석하는 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죠. 설령 자유롭게 해석을 해도 오늘날 추구하는 가치 안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하며, 약간의 상식도 필요합니다. 사진해석도 중요하게 작용하고요. 그렇다면 당시 어떤 상황이었던 걸까요? 강화도조약(1876) 이후 조선은 개화기였습니다. 농민 투쟁이 많았고, 급진개화파들은 ‘평등’을 법제화하려고 했습니다. 특히 국왕권위는 낮아지고, 내각(의회)는 높아지는 이른바 ‘입헌군주제’ 도입을 추구했습니다. 하지만 조선의 서양화 속도는 늦었고, 근대화를 향한 의지도 낮았죠. 이를 보여 주는 것이 광혜원(廣惠院) 사진입니다. 고종과 명성황후가 지원해서 생긴 이 병원은 당시 홍영식의 집을 썼습니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은 이미 서양문화가 깊게 들어온 때였습니다.
선교사이자 관료였던 그, 안련(安連)
H.알렌(이하 알렌)은 1884년 제물포를 통해 조선에 들어옵니다. 신학과 의학을 공부한 후 미국 북장로교회 해외 선교부에 선교사 지원서를 제출하면서 중국으로 파송되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그는 주변 조언으로 한국으로 가게 됩니다. 그 후 갑신정변(1884)때 민영익을 치료해준 걸 계기로 신임을 얻어, 의료·선교뿐 아니라 미국 공사관 서기관(1890)에 역임하는 등 정치에도 관여했습니다. 특히 1903년 미국에 머무는 동안 동아시아 정책이 잘못되었다며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1905년 해임 이후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후에 그에 관한 평가는 두 갈래로 나뉘는데, 한국 독립을 위한 ‘친한적’인사 혹은 미국정부의 공식 외교관이었기에 ‘친한적’외교관이 될 수 없다는 평가로 봅니다. 전자의 경우 알렌이 고종의 독립 보전 및 근대화 정책을 지지했다는 것에 주목하지만, 후자는 미국이 한반도에서 금광, 철도, 전차 등의 이권을 차지할 수 있도록 하는, 즉 신문물이 도입했을 당시에 관여했음에 주목 했습니다. 그렇지만 의학 발전에 노력했다는 점, 주한미국공사로 활동하면서 한국의 입장을 알렸던 점은 인정되고 있습니다.
알렌의 일기 속 1884년 그날
오늘날 <알렌의 일기>는 한국을 둘러싼 극동 아시아의 외교사가 어땠는지, 한미 외교사를 연구할 때 중요한 사료입니다. 또한 도착할 때까지의 항로, 생활사, 의학사 등 다양한 부문을 알 수 있기도 하죠. 그러나 여기서 두드러지는 부분은 바로 1884년 12월 4일, 갑신정변과 삼일천하를 다룬 기록입니다. 서울에 거주하는 외국인에게는 아주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다(12월 5일 금요일) 며 시작했는데, 문득 보면 정세를 모른다는 걸 짐작할 수 있지만, 두렵고 신경이 세워지던 때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자신들의 삶이 위협받고, 청나라와 일본이 싸우던 찰나였으니 피신해야 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죠. 아무튼 민영익을 밤새도록 치료하고 간호한 그는 갑신정변을 ‘최초의 암살사건’으로 지칭하며 급진개화파의 배후에 일본이 있었다(12월 11일 목요일)고 추측합니다. 나아가 일기 후반부에는 계속 전투가 일어났으며, 외국인들이 계속 서울을 떠나고 있음(12월 20일 토요일)을 저술했습니다. 그리고 갑신정변에 가담했던 인물들을 처형한 후 시내에 보인 시체더미가 있었고, 반역자의 시체임을 알게 되었다(1885년 1월 30일 금요일)는 걸 썼는데, 이는 삼일천하가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당시 어떻게 흘러가고 있었는지 상상이 되고, 와닿았습니다. 물론 '일기'인 특성상 개인의 솔직한 마음도 드러나는 부분도 있었지만 말이죠. (알렌이 민영익을 정말 싫어했다든지) 그래도 사료를 읽는 것이 조금은 낯설지 않게 되어서 다행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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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재생을 위한 춤워크숍 | <참가기> 자기재생을 위한 춤워크숍 | 루나와주니 | 2019.11.12 | |
‘온전히, 움직이는 나의 몸만을 도구로 무엇인가를 표현해 낸다.’ 내 인생의 어려운 영역 중 하나다. 언젠가는 한번 도전해 보리라 막연히 꿈만 꿀 뿐, 그 비슷한 언저리를 배회하며 내가 할 수 없는, 혹은 해서는 안 되는 이유들을 먼저 생각하고 저만치 밀쳐 두었었다. ‘자기재생을 위한 춤 워크숍....몸치, 박치지만 마음 한 구석에 늘 춤을 갈망해 왔다.’ 이 매력적인 문구에 이끌리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그것도 4회밖에 안 된다고 하니 주먹에 힘을 불끈 줄 것도 없이 결제까지 일사천리로 신청 완료했다. 힘들었다. 몸풀기를 하는 초반 30분은 웬만한 개인트레이닝의 강도에 밀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양팔을 좌우로 펼쳤다고 모으기를 반복하고, 고등학교 이후로 처음인 듯한 제자리높이뛰기까지. 첫 날은 시계를 몇 번을 봤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땀이 윗옷의 등과 목둘레에 스며들 때쯤 몸풀기가 끝이 나면 어느새 몸은 한결 가벼워지고 다음 동작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신기했다. 두 번째 수업이었나? 선생님이 오늘은 안무를 창작해 보겠다고 했을 때, 올 게 왔구나 싶었다. 안무 창작이라니... 나에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그러나 1시간쯤 시간이 흐른 후에 나는 누구보다도 팔다리를 크게 움직이며 공간을 휘젓고 있었다. 처음에 선생님은 하루 중의 자신의 움직임을 살펴 5개의 동사로 적으라고 했고, 그 동작을 직접 자신의 몸으로 표현해 보도록 시간을 주었다. 책장을 넘기는 오른손의 아주 작은 움직임이, 계단을 오르내리는 의미 없던 양다리의 반복이, 그런 일상의 움직임들이 조금씩 커지더니 어느새 제법 모양을 갖춘 안무가 되고 있었다. 사전 조율이 전혀 없었던 전체 참가자들의 동작은 그 사이사이를 메우는 음악이 덧칠해져 훌륭한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 어쩌면 내 몸 안에도 ‘춤’이라는 유전자가 존재할 수도 있겠다는 위안이 생긴 수업이었다. 설령 없다할지라도, 마지막 수업 시간에, 나의 무게를 받아 주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등과 어깨를 내주었던 동료들이 있다면 춤, 그것도 별 거 아닐 수 있겠다. 나의 어려운 이 첫 걸음을 이끌어 주고 동행해 준 선생님과 동기 참가자들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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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워크숍] 난민과 나, 보이지 않는 실찾기 | [참가기] 예술워크숍_난민과 나 보이지 않는 길 찾기 | 느림보바 | 2019.11.10 | |
첫째날 _ 시선 참여연대에서 진행하는 워크숍에 참석했다. <예술워크숍_난민과 나 보이지 않는 길 찾기>라는 긴 제목의 워크숍이다. 예술과 교육을 접목하여 난민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디자인된 워크숍인데, 난민, 예술, 교육, 이 세 가지 키워드가 모두 내 관심사를 적중하고 있기에 두 번의 황금같은 토요일을 바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참가를 결정했다. <소설 워크샵> 둥글게 앉아 오전 세션이 시작되었다. 자리를 옮겨 가며 모든 참가자들과 한번씩 이야기를 나누고, 얼굴을 익히고 마음을 여는 시간 뒤에는 바로 소설 워크샵이 이어졌다. 떠오르는 책 제목을 말하면 참가자들이 그 제목에서 떠오르는 스토리를 무엇이든 이야기한다. 나는 '처음에는 사소했던 일'을 말했는데, 그 제목으로 사람들이 상상해 내는 이야기가 재미있다. 실은 어떤 이야기였는지 따로 밝히는 절차는 없다. 20세기 초 평양에서 태어나 인천으로 이주하고, 하와이를 거쳐 캘리포니아에 정착한 한 여성의 자서전의 대강의 줄거리를 진행자가 소개하고 그 책의 제목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이렇게 제목과 이야기를 서로 오가며 이야기를 나눈다. 다음에는 자기 인생의 어떤 부분에 대해 소설을 쓴다고 가정하고 제목을 붙여보라고 한다. 제목을 썼으면 딱 한 문장만 써 보라는 주문. 그리고 우리는 각자가 설정한 책의 제목과 첫문장에 이어서 자기의 상상을 덧붙여 나간다. 나는 이 작업에 단번에 매료되었다. 나는 누군가 화두처럼 던진 제목과 첫문장에서 점화된 이야기의 불꽃이 내 머리와 가슴에 단박에 들어차는 것을 느낀다. <망명의 패턴> 점심을 먹고 돌아오니 공간에 변화가 생겼다. 그 사이 진행자들이 벽에 사진작품들을 전시해 두었다. 사진은 모두 얼음을 근접촬영한 것이다. 겨울이면 우리가 흔히 보는 바로 그 얼음. 강이나 계곡에 생겨났다가 봄이면 사라지는 얼음. 익숙한 풍경인데도 대상과 눈 사이의 거리가 일상적인 수준을 뛰어 넘어 아주 가까워지자 낯선 아름다움이 펼쳐진다. 사진 속을 거닐면서 나는 시린 추위를 느낀다. 진행자는 사진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에 제목을 붙이고 그 제목으로 부터 뻗어나가는 이야기를 상상해 보라고 요구한다. 나는 한 사진 앞에 붙들려 '그해 여름'이라는 제목을 짓는다. 초여름이고, 계곡 물은 아직 얼음처럼 차가운데, 태양은 꼭대기에 걸려 있다. 한 소녀가 물 속으로 들어간다. 조용히 계곡 바닥으로 잠수하며 소녀는 자기 몸 어딘가에 얼음이 박혀 있다는 상상을 한다. 그 소녀는 왜 아직도 차가운 계곡에서 잠수를 하고 있을까? 상상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마침내 그 사진을 찍은 이와 만나는 시간이 왔다. 에티오피아에서 온 베레켓은 한국의 겨울과 충격적으로 조우한다. 그에게 한국의 겨울은 너무나 고통스럽고, 너무나 경이롭다. 그는 눈과 얼음을 찍는다. 서울은 콘크리트 정글이라 한강에 나가야만 숨이 쉬어지는 것 같아서 한강을 너무나 사랑한다고 말한다. 멀리서 온 이의 눈에 비친 나의 고향은 이제 다른 의미를 가지고 내게 다가온다. 그는 이 작품들의 제목을 "망명의 패턴"이라고 지었다. 계절이 순환하고 물이 얼어 얼음이 되고 다시 녹아 물로 돌아가듯, 우리는 어느 한 지점에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움직이고 있는 거라고, 에티오피아에서 한국으로 온 그는 말한다. 에티오피아에서의 삶이 지속되지 않았듯이 서울에서의 삶도 그럴 수 있다고. 맞는 말이다. 그 무엇도 영원하지는 않다. 정주의 기간과 안정성에서 개인차는 있겠지만 우리가 무에서 존재를 얻고 다시 무로 돌아가는 패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멀고 먼 길을 왔건만 그는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도 못했다. 그래도 자기에게 허락된 시간을 행복한 것으로 만들어내는 힘을 가졌다. 그는 유쾌하다. 곧 겨울이 닥칠 것이지만 그래도 견뎌 보겠다고 유쾌하게 말한다. 난민이 들어오면 우리는 그들에게 무조건 퍼주어야만 하는 것 아니냐고, 우리도 먹고 살기 힘든데 누굴 도와주냐고,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은 중요한 것을 모른다. 이방인에게 관대한 사회는 언제나 번성했다. 낯선 시선은 일상의 관성으로부터 우리를 끌어올려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해준다. 그의 사진은 나에게 내 조국의 겨울이 가진 색다른 아름다움을 일깨워주었고, 그의 유쾌한 삶의 자세는 일상의 무게에 지지 말라고 나에게 용기를 준다. 이미 그는 차고 넘치도록 자기 역할을 하고 있다. 근대에 연애 소설이 탄생하고, 소설의 등장인물에 감정이입이라는 것을 하게 되면서 '인권 의식'이 생겨났다는 이론이 떠올랐다. 타인의 감정을 내 감정처럼 느끼는 일, 그것이 내 가족이나 이웃이 아니라 생판 모르는 타인, 나아가 이야기 속 가공의 인물까지 확장될 수 있었던 것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알게 되면 우리는 그를 대상이 아니라 존재로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이건 정주자가 난민을 대할 때만이 아니라, 모든 만남에 적용될 수 있는 진실이다.
난민 워크샵 두번째 시간이었다. 첫번째 날의 주제가 '시선'이었다면 둘째 날의 주제는 '경계'이다. 워크샵 장소에 도착해서 잠시 놀랐다. 멤버들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틀간 진행되는 워크숍을 두 번 다 참가하는 것도 이렇게나 힘든 일이구나. <마음 풀기> 간단히 지금 자신의 상황을 공유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자기에게 해당되는 말이 나오면 손뼉을 한 번 치면 된다. "오늘의 워크숍에 참가하면서 긴장이 된다." "추워지는 날씨가 반갑다." "아직 겨울옷을 꺼내지 않았는데 벌써 추워졌다." "시간 참 빨리 간다." "워크샵에 두 번 다 참가했다." "아침을 먹고 왔다." "오늘의 '맨발' 프로그램을 위해 발톱을 다듬고 왔다." 손뼉을 치며 반응하는 서로를 보며 재미있어 한다. <거울 놀이> 둘이 짝을 짓는다. 한 사람은 거울, 한 사람은 사람이다. 사람이 무언가를 하면 거울이 따라한다. 연극워크샵에서도 해본 활동인데 아주 재미있다. 장난기가 슬슬 발동하면서 야릇한 동작을 해서 상대방을 당황하게 만들 수 있다. 역할을 바꿔서 한 번 더 한다. 지난 시간에 언급되었던 주인공 '메리'가 되어 본다. 평양에서 인천을 거쳐 하와이, 그리고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메리가 16세가 되어 가정부로 입주하는 날이다. 다락방에서 난생 처음 전신 거울과 만난다.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일단 떠오르는 대로 메리가 되어 글을 써본다.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줄줄이 적는데 이걸 '내리적기'라고 한단다. 각자가 쓴 글을 가운데에 모아놓고 둘이 짝을 지어 한 사람은 메리, 한 사람은 거울이 된다. 내 짝꿍은 배우이다. 설렘과 두려움이 뒤섞여 있는 상황을 표정과 미세한 동작으로 표현한다. 따라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역할을 바꾸어 내가 메리가 되었을 때도 과한 몸동작을 자제하고 메리가 된 듯 조심스럽게 움직여 보았다. 백인 가정에 가정부로 간 열여섯살 소녀 메리도 조심스러웠을 테니까. 단순히 거울을 보는 장면일 뿐이지만, 이 순간 메리가 어떻게 했을지를 곰곰 생각해 보는 일이 재미있었다. 메리의 두려움을 생각하며 살짝 마음 한 구석이 아파온다. 그래도 메리는 열여섯살. 처음으로 전신거울에 비친 자기 자신을 보며 만족스러운 마음도 있었을 것 같다. 소감을 나누는 시간. 메리가 되어 본 경험을 통해 무슨 생각을 했는가 이야기를 나눈다. 낯선 곳에 내던져진 어떤 존재에 대해 상상해 보는 경험을 통해 우리는 수많은 메리들에 대한 상상으로 생각을 확장해본다. <출입국관리소> 걷는다. 직선으로도 걷고 곡선으로도 걷는다. 그러다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의 고압적이고 불친절한 목소리를 듣는다. 크고 딱딱 끊어지는 소리. 나를 밀어내고 거부하고 무시하는 소리. 그 소리가 연속해서 들려오자 걸음이 뚝뚝 끊긴다.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동선이 엉키지 않도록 유려하게 걷던 나는 사라지고 자꾸 동선이 끊기고 엉킨다. 어떤 참가자는 바닥만 바라보고 걷느라 주변의 것들이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노라고 고백한다. 소감을 나눈다. 경계를 넘었던 경험, 경계 밖에 있던 경험을 나눈다. 한 참가자는 방을 구할 때 그런 경험을 한다고 했다. 작아지고 보잘 것 없어지는 마음. 나는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그런 경험을 했던 것 같다. 나는 없어지고 자궁만 남는 느낌. 아무도 나의 존엄에는 관심이 없고, 나의 자궁에만 초점을 맞추는 느낌. 임신을 했던 안했건 나는 그대로 나인데 나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은 완전히 달랐다. 그 과정에서 나는 무수히 상처를 받았다. 어린 아이를 키울 때도 그렇다. 단지 아이를 안고 있을 뿐인데 온 세상 '육아 전문가'들이 나에게 간섭을 한다. 그들에게는 내가 아기 엄마라는 사실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난민으로만 보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지금 나를 구성하는 어떤 한 가지를 나의 전체인 양 부분을 전체로 환원해 버리는 순간 소외가 발생한다. <십시일반 몸풀기> 둥글게 서서 한 사람씩 돌아가며 몸풀기 동작을 보여주면 나머지 참가자들이 따라한다. 점심 식사 후 나른해진 몸과 마음을 깨우는데는 그만이다. <찬반토론> 난민 수용에 대한 찬반토론을 했다. 찬성과 반대 입장으로 나누고, 자료를 찾아보고, 각자 그 입장을 말하기에 적합한 어떤 인물을 상상한다. 오전에 메리가 되었던 것 처럼 오후에는 또 다른 사람으로 '빙의'를 해본다. 나는 반대 의견을 가진 인물을 선택했다. 제주도에서 딸을 키우는 가정 주부. 높은 의자를 두 개 놓고 한 의자에는 진행자가 앉고, 다른 의자에게는 발언자가 앉는다. 그 자리에 앉으면 발언권을 갖는다. 사람들은 각자 어떤 인물을 상상하며 그 자리에 앉아 그 사람이 가질 법한 입장으로 이야기를 한다. 생각보다 집중적으로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간다. 소감을 나눈다. 반대 의견은 단순하고 직관적이다. 논리를 펼치기에 유리하다. '상식'이라고 부르지만 실은 편견인 어떤 생각들이 우리 마음 밑바닥에 두텁게 깔려 있기 때문에 그냥 그것에 기반해서 살짝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려주면 된다. 찬성 의견을 펼치는 것은 보다 많은 논리와 자료를 필요로 한다. 왜 우리의 이야기는 항상 장황해지고, 그들의 이야기는 단순 명료해지는지 피부에 와 닿는다. 찬반토론이 왜 비생산적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찬성과 반대로 나뉠 수 없는 문제를 찬성과 반대의 대립 상황을 설정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구도가 되기 때문에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다. <경계 넘기> 방울이 군데군데 달려 있는 선들이 복잡하게 설치된다. 참가자들은 맨발이 되어 눈을 가리고 그 선들을 통과해서 반대편으로 가야 한다. 줄을 건드려 방울 소리가 나지 않도록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눈을 가리자 두려움이 몰려온다. 전혀 위험하지 않은 환경인데 무섭다. 다리와 발에 느껴지는 줄, 그냥 느낌만으로 알 것 같은 옆사람의 존재를 예민하게 느끼며 한 걸음 한 걸음 반대편으로 간다. 우리는 오각형으로 서 있었기 때문에 건너편은 사람마다 다르고 진행방향도 다 달라서 동선은 자꾸 얽히게 되어 있다.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한다. 누군가 내 귓가에 작은 소리로 "다 왔어요."라고 속삭여주는데 너무 반갑다. 빨리 건너편으로 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상황을 충분히 오감으로 느끼는 것이 목적이라고 하는데, 나는 유독 빠르게 장애물을 통과해 반대편에 도달한다. 왜지? 왜 나만 자꾸 빠르게 움직이지? 의아했다. 소감을 나누는 시간에 깨닫는다. 우리는 모두 동일한 미션을 부여받았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방식으로 미션을 해석하고 자기 방식으로 경계를 넘어 반대편으로 간다. 가장 천천히 이동한 참가자는 앉아서 손으로 줄을 만져보며 움직였다고 한다. 나는 손으로 줄을 만져볼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애초에, 절대로 달성할 수 없는 미션이 부과되었다는 사실에 기분이 나빠졌었다는 참가자도 있다. 나는, 나는 어차피 줄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약간의 종소리'는 그냥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자는 쪽이었다. 건드리면 안된다고 하지만 건드린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지 않나. 나도 모르게 목표 중심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나는. <정리> "나는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가요"라는 뜻의 문장을 로힝야 말로 노래로 만들었단다. 그 노래를 배워 함께 부른다. 파트를 나눠 부르기도 하고 다 함께 부르기도 한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가는 사람들. 어떤 사람은 고향을 떠나고, 어떤 사람은 떠난 곳으로 되돌아오기도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환영받고 어떤 사람은 거절을 경험할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모두 떠나는 존재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우리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도, 주장을 강요하지 않고도,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마음 깊이 공감하게 만들 수 있다. 나는 그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진심으로 믿고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두번의 토요일, 머리로만 알던 것을 몸으로 깨우친다. 머리로만 아는 것은 진짜 아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 모든 프로그램을 공들여 준비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섬세하게 디자인된 프로그램에 참여하자 내가 조금은 품위있어진 기분이었다. 이렇게 품위 있고 우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베풀어주신 진행팀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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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안 알려주는 ‘진짜’ 정치학] 야, 너두 유권자야 | [특강후기] 내가 불출마를 선언한 이유 -이철희 국회의원 | 개똥이 | 2019.11.7 | |
저는 우리나라가 ‘연정’을 통해 한 단계 더 성숙하길 바랍니다.
대부분의 정치인, 고위공무원, 시장에서 많은 자본을 획득한 사람들은 전부가 그러진 않더라도 대부분은 자신의 사회적 신분과 위치를 지키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한창 전성기를 누리고 더 높은 지위를 욕심낼 법한 국회의원이 불출마한다는 소식에 처음엔 너무 신기하였습니다. 물론 유권자로 돌아가면 더 큰 역할을 맡지 못하고 더 높은 지위를 가지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기회를 스스로 내려놓는다는 소식은 제가 이번 특강을 기대하게 하는 큰 이유가 되었습니다.
특강은 이철희 의원이 현재 정치에 관해 이야기해주는 1부 강연과 그의 지도교수와 함께 청중의 질문을 받는 2부 순서로 진행되었습니다. 보통의 특강과 다를 바 없었지만, 강사의 이야기들은 평소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이야기해주면서 제 생각의 폭을 더 넓힐 기회가 되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연합정치(이하 ‘연정’)’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우리가 흔히 있는 선진국(미국을 제외한 유럽의 복지국가)들은 대부분 집권 세력이 의회의 과반을 달성하지 못했지만, 연정을 통해 지금의 사회제도를 만들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평소 의문을 가지고 있던 ‘민주주의의 동력은 갈등에서 나온다.’라는 명제에 대해 품었던 의문점을 해결하였습니다. 지금의 국회는 ‘동물국회’, ‘식물국회’라는 이름으로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법을 만드는 기관에서 사법부에 법의 심판에 의존한다는 것도 아이러니했고요. 그래서 저는 ‘민주주의를 움직이는 동력은 정말 갈등이 맞는가?’라는 의문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특강을 통해 ‘갈등’은 맞지만, 우리 국회가 하지 못하는 것은 ‘연정’이었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유권자는 국회가 연정이 가능하게 할 수 있도록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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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안 알려주는 ‘진짜’ 정치학] 야, 너두 유권자야 | [학교에서 안 알려주는 ‘진짜’ 정치학] 야, 너두 유권자야 세 번째 강연 후기 | 따뜻한태양 | 2019.10.31 | |
[학교에서 안 알려주는 ‘진짜’ 정치학] 야, 너두 유권자야 세 번째 강연 후기
청년참여연대 김현우 회원
10월 24일 수요일 오후 7시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야, 너두 유권자야> 세 번째 강연을 들었습니다. 세 번째 강연에서는 국회 상임위원회가 필요한 이론적 배경을 배우고, 법안 심사 과정이 기록된 상임위원회 회의록 읽기를 했습니다. 이를 통해 국회의원과 정당 간의 관계에 대해 알 수 있었습니다. 본 후기에서는 무엇을 배우고 느꼈는지 적고자 합니다.
먼저,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이면서 의정감시센터 실행위원이신 조성대 교수님께서 ‘국회 상임위원회가 필요한 이론적 배경’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제가 이해한 바로는 ‘국회 상임위 중심’과는 대조 개념인 ‘국회 본회의 중심’으로 회의를 진행할 경우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정당들이 A(예를 들어 ‘교육’)사안에 대해서 논의해야 할 것을 B(예를 들어 ‘안보’)사안과의 타협, C(예를 들어 ‘복지’)사안과의 타협 등이 계속되어 정책 결정 과정이 공전 상태에 놓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안정적인 정책 결정 과정을 얻기 위해서 국회가 상임위 중심으로 운영된다고 했습니다. 교육위원회, 국방위원회, 보건복지위원회 등 상임위에서 정당 간 사안별로 충분한 논의를 하고 본회의에서는 통과 여부를 묻는 것이 원활한 정책 결정 과정이라고 본 것입니다.
국회에 상임위원회가 필요한 이유를 살펴보고 난 후, 의정감시센터 오유진 간사님께서 법안 심사 과정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동수당법’에 대한 참가자들의 정책 성향 스펙트럼을 확인했습니다. 그 이후 참가자들은 국회 상임위 중 하나인 보건복지위원회의 회의록 읽기를 했습니다. 회의록 읽기 이후 회의록에 기록된 여야 의원들의 정책 성향 스펙트럼도 확인했습니다. 참가자들의 정책 성향은 보편적 아동수당이 가장 많았습니다. 하지만 회의록에 기록된 절반에 가까운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선별적 아동수당, 혹은 아동수당 자체를 부인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보편적 아동수당, 선별적 아동수당 등 다양한 입장을 가졌습니다. 이를 통해 유권자 강연을 듣고 있는 참가자들과 실제 국회에서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국회의원들의 정책 성향이 매우 다르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유권자의 정책 선호와 의회에서 정책 결정 권한을 가진 이들 간의 정책 선호가 다른 것에 큰 괴리감을 느꼈습니다. 그러한 현상은 우리나라의 선거제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았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선거제도는 지역구 1등 뽑기 게임과 같아 개인 중심으로 선출되는데(지역구 253석, 비례 47석, 병립형), 회의장에서 안건에 대해 협상을 할 때는 정당별로 의견이 수렴하기 때문에 유권자가 선택한 대리인의 모습과 국회 안에서 대리인의 모습이 괴리될 수밖에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정당 정책과 이념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회의장에서 안건에 대해 협상을 할 때 정당별로 의견이 수렴되는 이유는 회의장에 들어와서 집권 여당은 오른쪽, 야당은 왼쪽에 앉는다는 국회의 관행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공간적 개념으로 이미 그룹을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회의록 읽기를 통해 집권 여당은 보편적 아동수당 혹은 타협적 선별 아동수당을 지향하고, 제1야당은 선별적 아동수당 혹은 아동수당 자체를 부정했습니다. 상반된 입장을 가진 정당 간 협의의 과정에서 정당 내 의원들은 정당이 가진 입장에 대한 근거를 확립하면서 협의를 진행했습니다. 이를 통해 국회의원들은 정당에 귀속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정리하자면, 유권자가 선거를 할 때는 인물을 보게 되는 측면이 강하고 그에 따라 선출하지만, 막상 선출된 의원들은 국회 상임위원회라는 협상판에서 팀(정당 정책)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더욱이 유권자가 선거를 할 때부터 정당 정책을 우선으로 볼 수 있도록 하는, 비례성을 보장하는 선거제도 개혁의 중요성을 느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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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민주주의, 진정한 검찰개혁의 길을 묻다 | [후기]검찰개혁 강좌를 듣고 나서 | 개똥이 | 2019.10.29 | |
시대가 열리고 가장 먼저 개혁되어야 할 대상은 바로 검찰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 시간동안 검찰 개혁을 주장하는 나의 마음도 함께 식어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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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안 알려주는 ‘진짜’ 정치학] 야, 너두 유권자야 | <학교에서 안 알려주는 진짜 정치학 - 야, 너두 유권자야> 두 번째 강의 국회운영과 쟁점들을 듣고 | 선영이 | 2019.10.22 | |
<학교에서 안 알려주는 진짜 정치학 - 야, 너두 유권자야> 두 번째 강의 국회운영과 쟁점들을 듣고.... 안양시민 미카엘라 퇴근 후 들으러 가는 민주시민교육에 이토록 기대가 된 적이 또 언제였더라? 국회의원들이 우리 삶에 많은 영향을 줌에도 불구하고 그저 4년마다 한 번씩 관례적으로 투표를 했던 나는 도대체 왜 국회는 우리와 상관없어 보이는 행태를 보일까 궁금해서 이 강의를 들어보기로 했다.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듣는 기분도 좋았지만, 내가 모르고 관심도 없었던 지금까지의 국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이 부끄럽기도 하였다.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 국회의원 수가 국민의 수에 비해 적어서 비례성을 충분히 갖지 못하고 있음과 정당보다 개인을 선택하면 국회의원이 된 후 자율성이 강화되어 대의민주주의의 기능을 이행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도 알게 된 건 큰 얻음이다. 그러나 정책을 내놓는 정당이 국회를 구성함에 있어서 다수 정당들의 권한이 강해지고, 원구성과 교섭단체 구성에 있어서도 국회운영에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 특히, 상임위원회, 법사위에서의 소수당의 거부권 행사, 대통령제와 국회의 상충적 관계, 여기서도 거부권 행사를 들으면서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것일까? 각 정당의 국회의원들, 간사들간의 협의와 합의, 즉, 만장일치를 해야 안건상정이 된다면 결과적으로 민주적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더욱 어렵게만 느껴졌다. 민생문제와 시장경제의 이익관계, 정치적 특권에 대한 개혁이 정당간의 갈등안건이 된다는 것이 어쩌면 진정한 민주주의이고, 대의제 민주주의에 있어서 투쟁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시민들의 눈높이에 와닿는 갈등과 투쟁이 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못마땅한 국회의원들을 견제하는 좋은 방법으로 임기를 짧게 하여 선거를 현행 4년에서 2년마다 하자는 의견을 주신 조성대 교수님의 제안이 신선하게 들렸다. 할 수만 있다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근데 누가 국회의원 임기를 정하는 것이지 하는 생각에서 그것도 국회에서 정하는 것이라면 그들이 과연 힘들게 치루는 경선과 본선 선거를 바꿀까 하는 생각이 들자 결국 입법자들이 그들의 이익을 위해 바꾸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마감되었다. 다음 강의에서는 국회에서 하는 일을 알아본다니 무엇이 중요한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시간이 될 것 같아 새로운 기대감이 생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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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민주주의, 진정한 검찰개혁의 길을 묻다 | [강좌후기] 참여연대 검찰 개혁 강의를 듣고 | 개똥이 | 2019.10.22 | |
10월 15일 참여연대 아름드리 홀은 대한민국에 울려 퍼지고 있는 거대한 이슈인 검찰개혁에 대한 특강을 듣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저 같은 20대 청년에서부터 이 사안을 관심 있게 봐오신 참여연대의 오랜 회원님들, 서초동 집회에 직접 참여하셨다는 현직 교사 분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은 검찰개혁의 핵심인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이하 ‘공수처’)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 약 2시간 남짓 귀와 마음을 열고 임지봉 교수님의 설명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전날 조국 법무부 장관의 사퇴로 인하여 강의실 공기에는 조금 씁쓸함이 감돌았던 것 같습니다. 그곳에 계셨던 분들은, 자세히는 알 길이 없지만 대체로 조국 교수를 지지하셨던 것 같으니까요. 어쨌든 검찰개혁의 불쏘시개 역할을 하였다는 조국 교수 본인의 말대로, 검찰개혁 4글자는 그 어느 정부 때보다도 국민들에게 선명히 각인된 이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논란을 딛고 국회 패스트트랙에 올라탄 2개의 공수처 법안은, 여러 정치인들이 주장하듯 이번 검찰개혁 이슈의 핵심 사안이었습니다.
이 핵심 사안을 설명하기 위해 강단에 기꺼이 서주신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님께서는, 아주 매력적인 분이셨습니다. 호탕히 웃으시며 본인의 강의는 용두사미이다, 샛길로 자꾸 빠진다고 멋쩍게 자유분방하게 이야기하시는 모습에서 정말로 대학교 강의실에 와있는 착각마저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비록 교수님 말씀대로 강의의 흐름은 이리 저리 자유분방하게 흘러가긴 하였지만, 공수처라는 이슈를 짚고 넘어가기엔 전혀 모자람이 없던 강의였습니다.
공수처가 왜 필요한가의 당위성, 그리고 이 공수처 설치를 현실화하기 위하여 참여연대가 쏟아 온 노력들을 교수님께서 친절히 설명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패스트 트랙에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공수처 법안과 바른미래당의 공수처 법안의 내용을 상세히 비교해주시는 것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언론에서는 공수처법을 두고 여야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고만 전할 뿐, 공수처법의 구체적 내용을 다루는 기사는 그리 많이 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 점에서 공수처 법 그 자체의 핵심을 짚어내는 이번 강의는 언론으로 채울 수 없었던 지식에 대한 갈증 또한 시원하게 해결해준 강의였다고 생각합니다.
두 공수처 법안은 크게 다르지는 않았으나, 무엇보다 공수처의 기소권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큰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더불어민주당안이 공수처의 기소권 또한 현재 검찰의 기소권과 같이 부여하는 방안이라면, 바른미래당안은 공수처의 기소권을 기소심의위원회라는 기구를 통해 제한하고 있었습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가진 강력한 기구인 검찰을 개혁하면서 둘을 동시에 가진 공수처를 또 만드는 것에는 염려스러운 마음이 있었으나, 기소권을 가지지 않으면 공수처가 유명무실화 될 것이라는 임지봉 교수님의 말씀에도 강한 설득력이 있어 생각할 거리가 많은 강의였습니다.
또 야당이 지적하는 대통령으로부터의 독립성도 생각이 갈리는 지점이었습니다. 교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야당의 비토권이 충분히 보장되기 때문에, 대통령의 코드 인사는 불가능하다고 보셨습니다만, 현재 자유한국당의 주장은 선거법이 개정되어 제 2야당이 정의당이 되면 이러한 비토권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을 것이란 점이었습니다. 이 부분은 앞으로의 선거 정국과 한국 정치 생태계를 고려하여 독립성을 충분히 강화하는 방법으로 법안 수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생각할 거리도 많고, 가려운 곳도 시원하게 긁어주는 강의였습니다. 공수처가 무엇인지 알았으니, 공수처 법안의 향후 향방이 몹시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공수처가 탄생하든 그렇지 못하든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을 검찰 개혁에 대해 뜨거운 열망을 느끼고 있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모든 국민들이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이러한 열망이 제대로 국정에 반영되기를 바라며, 훌륭한 강의를 해주신 임지봉 교수님과 강의의 장을 기획하고 마련하여 주신 참여연대에 감사를 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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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시대, 북한경제의 변화 | 김정은 시대, 북한경제의 변화 - 우리의 시각을 점검해본 시간 | 고무곰돌 | 2019.10.21 | |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부 9년간 냉각되었던 남북관계가 문재인 정부 들어 개선되면서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연달아 개최되기도 했지만 지난 6월말 3국 정상의 판문점 만남 이후 북미협상의 교착상태와 남북교류 중단이 이어져 많은 사람들의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게다가 북한 김정은 정권은 계속 미사일 시험발사 등의 무력 시위를 감행해서 남한내 보수 극우파의 공격에 빌미를 주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럴수록 이성적 태도로 한반도 번영과 평화체제 수립을 위해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남북관계 개선의 활로를 찾으려는 노력이 지속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여기에 덧붙여 필요한 것이 우리 시민들의 북한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입니다. 한국전쟁과 기나긴 남북대결 지속, 그리고 폐쇄적인 북한체제의 특수성, 그리고 일부 언론의 왜곡 선정적 보도 등으로 인하여 북한의 모습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다 지난 2011년 12월 김정일 사후 김정은 체제가 수립되면서 기존의 사고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북한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 맞추어 참여연대 느티나무 아카데미에서는 김정은 시대의 북한경제의 변화라는 주제로 2회에 걸친 강의를 개설하여 지난 14일과 21일 수업이 진행되었습니다. 강사인 이영훈 선생님께서는 대북제재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북한경제가 불안 징후를 보이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출발하여, 우리가 북한의 경제변화를 너무 간과한 것은 아닌지라는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그리고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김정은 시대 출범 이후 북한경제 변화의 정확한 실체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최근의 국가전략 노선 전환, 개혁개방의 추진, 산업정책 전환 등의 순서로 이야기를 진행하셨습니다. [10.14(월) : 김정은 시대, 북한경제는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 국가전략노선의 전환 경제난, 빈곤 속에 시장화 및 정보화 진전으로 체제유지를 위한 타개책이 필요했을 뿐 아니라 핵무력 완성과 함께 북미협상의 계기가 마련되어 기존의 경제 핵 병진노선에서 경제발전 총력 집중 노선으로의 전환이 가능해졌습니다. 이를 부문별로 자세히 살펴보면 주요 군사훈련장 및 군사기지에 관광지구나 온실농장을 설치하는 등 공간의 변화가 두드러집니다. 또한 인민군대를 대규모 건설현장에 투입하므로써 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군이 인민경제에 기여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해내고 있습니다. 아울러 군수공장에서 민수용품을 생산하여 생필품 품평회도 개최하는 등 선언이나 선전에 그치지 않고 실체적인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 개혁개방 추진
1) 개혁 김정일 사후 김정은 체제 초기인 2013년부터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으로 공식화, 제도화된 개혁노선은 기업에 실질적 경영권을 부여하고 기업활동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동시에 개인별 과제 수행을 통해 일한 만큼 번만큼 개인에게 성과급을 지급 분배하는 제도를 도입하면서 경제활성화를 도모하는 한편, 개혁의 지속 확산이라는 두가지 특징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기업소법,농장법, 인민경제 관리법 등 법 제개정과 아울러 사회주의기업 책임관리제, 포전담당책임제(농장 관련)와 같은 제도개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개혁개방은 김정은의 관련 언급이 있으면 당의 결정과 김정은 담화와 같은 공식화가 확정되고 이를 제도화하는 절차를 거치고 있습니다. 2) 개방 대외관계 확대를 기본으로 신용준수 위한 규율 마련과 무역구조 개선 추진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현재 대북제재로 인해 실질적으로 가시화된 성과를 낼 수 있는 관광에 치중하는 것이 한계로 꼽힙니다. 하지만 경제개방을 위해 자본주의 침투를 두려워하지 말 것과 대담하게 대도시와 국경을 개방하라는 김정은의 언급에서 볼 수 있듯 그 의지는 뚜렷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으며 6개의 경제특구, 22개의 경제개발구와 같은 특수경제지대 설정과 김정은의 현지지도, 최고위층 관리들의 현지요회 등을 통해 현지에서의 개방을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 산업정책 전환 우리나라도 2016년 알파고와 이세국의 바둑 대국 이후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을 필두로 4차 산업혁명의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아직 실체도 확실치 않은데 논의가 중구난방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지만 북한 역시 과학기술 발전을 토대로 정보화, 대북제재에 장기화에 대처하기 위한 국산화를 추진하면서 민생경제 분야부터 성과를 가시화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제도 개편을 통해 중고등학교에서는 기술교육을 강화하고 대학에서는 연구의 국제교류를 활성화하면서 과학기술역량을 강화하고 있는데요, 이를 바탕으로 경제발전을 견인하는 전략을 구현하는데 힘을 쏟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IT강국으로 자처하고 있는 우리나라 처럼 생산공정의 자동화 지능화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핵과 ICBM 등 첨단무기의 고도화과정에서 보안, 해킹 등 기술이 고도화와 더불어 일용잡화의 국산화, 금속, 화학 등 부품, 소재 산업 부문의 국산화 제고에도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10.21(월) - 비핵화협상과 북한경제의 관계를 보는 두가지 시선] 두번째 시간에는 주민생활의 변화를 중심으로 강의와 동영상을 시청한 후 질의 및 토론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선 강의에서는 주민생활의 변화를 중심으로 지난 첫번째 시간에 다루어졌던 내용을 자료 화면과 슬라이드를 활용하여 상세히 알아봤습니다.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카드 사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우리가 북한의 경제사정을 얘기할때 떠올리는 식량문제도 뙈기밭의 산림으로의 변화, 북한 영유아의 영양상태 개선 등에서 알 수 있듯 많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레저문화 확산과 올해 들어 도입된 개인자유여행의 확대도 주목할 만한데, 스위스 유학을 경험한 김정은이 관심을 가지고 있어 놀이시설도 많이 짓고 있을뿐 아니라 올해들어 국경지역과 평양 외에는 자유여행도 가능합니다. 해외정보 접속을 차단하기 위해 인트라넷을 사용하는 한계가 있지만 3G 통신망을 토대로 휴대폰 사용 인구가 2018년 기준으로 580만명에 달하고 있고 '푸른 하늘'과 같은 휴대폰 브랜드와 무선 충전기능이 탑재된 스마트폰도 출시되는 등 나름 정보화사회로 향하고자 하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시장확산에 따라 물류와 교통량이 증가하면서 교통수단도 다양해지고 택시회사간 경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국가주도로 평양 지방 가릴 것 없이 건설붐이 보편화되어 '창전 거리'. '문화과학자 거리' 등을 연이어 조성하면서 그 길을 따라 35~55층에 달하는 초고층 아파트도 건설하는 등 면모를 일신하려는 움직임이 지속되고 있다는 선생님의 설명 속에서 면모를 일신하려는 움직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잠시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걸어서 평양 속으로>, <우리의 국경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은 동영상을 시청한 후 여러 궁금증을 질의하고 답변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낙후된 북한의 모습이 많이 각인되어 있다보니 여러 재미있는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북한도 입시전쟁이 격심하고 생각보다 청결하며 우리처럼 통신회사도 3개나 된다고 하는 사실도 알 수 있었고 관영방송의 그 선전용 소식의 사실 확인은 어떻게 해야되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선전 예술(영화, 음악 등) 제작이 몇 년간 전무한데 개방이 본격화되고 외부 소식도 자주 듣는 상황에서 자신들도 그런 방식이 촌스러운 걸 깨닫지 않았겠느냐는 선생님의 답에는 웃음이 터져나오기도 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는 북한과의 거리를 좁히려고 하는데 북한의 김정은은 중, 소와 더 긴밀하게 지내려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우리의 방식이 과연 효과가 있을지와 강의하신 내용이 북한을 너무 우호적인 방향에서 접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섞인 질문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차분하게 지금이 비핵화와 동북아 정세에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점을 강조하시면서 북한의 실상과 변화를 정확히 알고 대처하는 것이 우리의 대북정책 수립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답을 주셨습니다. 오늘 뉴스를 통해 김정은이 금강산 관광과 관련하여 우리의 미온한 대처를 비판하여면서 자신들의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할 뜻을 내비쳐 청와대 등에서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요, 북미, 남북 관계에 있어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는 시기라 세밀하고 전략적인 대북접근이 더욱 필요해보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럴때 필요한 것이 상대방의 현실을 정확히 직시하는 것일텐데요,. 이번 강의의 취지와 내용이 거기에 꼭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 참여연대 부설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바라보는데 도움이 될 시사적 내용과 더불어 개인의 행복 증진 등을 포함한 다양한 인문 사회 프로그램을 계절별로 개설하고 있으니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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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안 알려주는 ‘진짜’ 정치학] 야, 너두 유권자야 | [후기] <학교에서 안 알려주는 '진짜' 정치학 강좌 - 야, 너두 유권자야> | 개똥이 | 2019.10.17 | |
생명감수성을 떠올린다면 절대 좋은 표현이 아니지만, 국회를 ‘동물국회’라던가 ‘식물국회’라고 표현하는 일이 참 익숙해졌습니다. 국회법을 지키지도 않고 몸을 날리는가 하면 정치적 목적으로 국회 일정을 보이콧하는 일도 종종 있습니다. 이해관계에 따른 필연적인 갈등일지라도 영 볼썽사납기만 합니다. 조성대 선생님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국회는 싸울 수 밖에 없다고” 그렇다면 그들이 싸우는 이 방식이 정말 최선인 걸까요? 그들은 누구이고, 누구를 위해서 싸우는 걸까요?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와 아카데미느티나무는 <학교에서 안 알려주는 ‘진짜’ 정치학 - 야, 너두 유권자야> 강좌를 통해 국회와 유권자의 어그러진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이야기 나눠보고자 합니다. 국회의원은 4년마다 한 번씩 바뀌는데 우리가 보는 국회는 늘 똑같습니다. 왜 그런지 선거의 기본적인 성질에 대해 집중해 살펴봤습니다. 조성대 선생님은 선거는 귀족적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추첨식 선거로는 다양한 성격과 계층을 가진 사람이 뽑힐 수 있겠지만, 돈이 필요한 선거에서는 자본과 자원이 많은 사람이 당선될 수밖에 없겠지요. 정당의 힘을 빌리지 않고 개인의 힘으로 당선되는 사람은 그 자체로도 재산이 많겠지만, 정당 공천을 위해 공천 헌금을 활용하는 사건들을 본다면 역시 선거는 돈이구나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선거가 가진 귀족적 특성을 십분 이해하고서라도 우리는 보다 다양한 이해를 가진 의원들을 선출할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바로 ‘온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입니다. 투표율에 비례해 정당 의석수를 가져가자는 내용이라는건 알겠는데, 더 자세하게 알아보려니 산출 방법이 복잡해 어렵게만 느껴지곤 했습니다. 조성대 선생님의 계산법을 천천히 따라가며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가 이루어졌을 때 국회의 지형이 어떻게 바뀌는지, 원내에 진입하지 못한 소수 정당은 얼마나 늘어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글로 막연히 읽을 때와, 제도가 도입된 후의 변화를 눈과 머리로 직접 이해할 때의 느낌이 정말 달랐습니다.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서는 온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말고도 필요한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국회의원의 정수를 늘리는 것인데요. 중앙선관위에서 발표한 각국의 선거제도 비교에 따르면 2015년 기준, 한국의 의원 1인당 인구수는 17만 1,437명입니다. 많은건지 적은건지 감이 잘 안 잡히지 않았는데 강의에서 다른 나라와 비교한 수치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영국은 6,408만 8,222명의 인구와 650석의 의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의원 1인당 인구수로 나누면 9만 8,597명입니다. 이와 같은 계산으로 의원 1인당 인구수를 계산하면 노르웨이는 3만 815명으로 영국보다도 훨씬 적습니다. 한국 의원은 다른 국가의 의원보다 민의를 과다 대표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지요. 독일은 12만 8,137명, 스페인은 13만 7,560명인데 백 번 양보해 한국을 독일과 스페인 정도로 맞춰 의석수를 계산하면 360석 정도가 나옵니다. 360석이 민의를 반영할 수 있는 의석수의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의원 1명이 17만 여명을 대표해야 하는 현실에서는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다는건 충분히 예측 가능합니다. 하지만 싸우기만 하는 국회, 일하지 않는 국회가 분노스러워 의원을 축소하자는 주장은 국회의원의 특권만 강화할 뿐만 아니라 시민과의 소통창구를 줄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법안처리과정에 대해서도 맛보기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조 선생님은 기존의 교섭단체 제도는 의석이 적은 소수당에게 실질적 거부권을 부여하기도 하지만 쟁점이 큰 법안의 경우에는 상정조차 못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갈등이 심화되어 의정 활동이 마비되는 것을 실제 종종 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대안으로 채택된 것이 요즘 가장 많이 들리는 ‘패스트트랙’ 즉 ‘국회선진화법’이라고 하는 의안 자동상정제인데, 이것이 좋은 대안이 되고 있는지 조 선생님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상임위에서 법안이 의결되면 법사위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법사위는 법의 체계와 완성도 등의 심사가 중심이지만 법안 수정 권한까지 가지고 있어 이에 대한 폐지도 필요하다는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강의는 선생님의 말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질문과 답을 나누는 방식으로 흘러갔습니다. 애초 9시에 끝날거라 예상했던 강의가 10시가 되어 끝이 났습니다. 더 나누지 못한 질문들은 다음 강의 때 나누기로 하고 아쉽게 헤어졌습니다. 주고 받는 질문들이 흥미로워 앞으로의 강의들이 기대되는 시간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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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민주주의, 진정한 검찰개혁의 길을 묻다 | [강좌후기] 검찰이 ‘괴물’이 된 이유, 시민이 거리에 나선 이유 | 개똥이 | 2019.10.15 | |
검찰이 ‘괴물’이 된 이유, 시민이 거리에 나선 이유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김태일 간사 조국 장관에 대한 수사를 계기로 서초동 앞에는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열렸습니다.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적 지지와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습니다. 돌이켜보면 3년 전, 박근혜정권을 탄핵하기 위한 촛불광장에서 검찰은 개혁 대상으로 벼랑 끝에 서있었습니다. 우병우 황제소환을 계기로, 수많은 국민들이 검찰개혁을 촉구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검찰의 위세는 그 어느때보다도 강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에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과 아카데미느티나무는 검찰개혁에 대해 시민들에게 제대로 알리자는 취지에서 특강 “민주주의, 진정한 검찰개혁의 길을 묻다”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그 첫 강좌가 10월 8일(화) 저녁 7시에 열렸습니다. 강사로 나선 하태훈 교수는 참여연대 공동대표로 과거 ‘검찰공화국, 대한민국’을 공저한 바 있습니다. 이번 강좌에 대한 수강생들의 열기는 매우 높았습니다. 강좌 날이 되자 시작 5분 전부터 수강생들이 거의 다 착석해있었습니다. 강좌를 공동기획한 아카데미느티나무의 주은경 원장도 이런 경우를 본 적이 별로 없다고 감탄했습니다. 또한 참석자들은 연령과 성별, 직업이 모두 다양했습니다. 자신의 지인들이 광화문과 서초동 집회로 완전히 양분된 상황에서 검찰개혁에 대해 듣고싶어 참여한 시민도 있었고, 검사가 되기를 목표로 하는 대학생도 있었습니다. ‘개혁대상’으로 궁지에 몰렸던 검찰이 다시 부활한 이유에 대해, 하태훈 교수는 검찰이 제대로 개혁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권이 고발장을 남발하여 ‘검찰의 정치화’ ·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 등 강력한 권한을 독점한 상황이 바뀌지 않았는데, 정치권이 검찰을 해결사로 활용하면서 검찰이 적폐청산의 기수로 부활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형사법으로 가고 있습니다. 가히 형법의 부흥기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만큼 검찰의 권력이 강해진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좋은 현상이 아니라고 지적했습니다. “통계적으로 봤을 때, 범죄로 죽는 사람은 하루 1명 꼴입니다. 반면 산업재해로 죽는 사람이 평균 하루 5명, 자살로 죽는 사람이 하루 38~9명 꼴입니다. 그럼 국가는 어디에 신경을 써야 할까요? 복지 등 자살 대책에 가장 신경을 써야 합니다. 하지만 정부도 국회도 별로 신경쓰지 않고, 범죄 처벌 법만 엄청 만듭니다. 국회 상임위에서도 법안 만들 때 다 처벌조항을 넣어주길 원합니다. 그래서 검찰의 권한은 점점 더 세집니다.” 형법을 전공한 하태훈 교수가 형법이 강화되는 사회적 현상에 대해 비판하는 모습이 아이러니하면서도 수강생들은 모두 이러한 문제의식에 수긍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조국 법무부장관 수사와 관련하여 검찰 권한의 무서움을 실감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현재 검찰에는 조국 장관의 혐의만이 아니라 패스트트랙 수사 등, 정치권에서 발생한 대부분의 의혹들이 고발되어 있습니다. 사건이 많아질수록, 검찰의 영역이 그만큼 더 많아진다는 것이고, 이 때문에 정치권이 검찰의 눈치를 보게 된다면 검찰개혁 입법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는 불안감이 엄습했습니다. 말미에 하태훈 교수는 검찰개혁의 과제로 수사와 기소의 분리, 특수부 축소, 고등검찰청 축소, 검사장 직선제 등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갔습니다. 검사장 직선제는 지방검찰청 검사장을 주민이 직접 투표로 선출하는 제도로, 검찰에 대한 민주적인 통제를 가능하게 하고 검찰권력을 분산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검찰이 괴물이라고 불릴 정도로 막강해진 맥락에 대한 강의가 끝난 후, 수강생들은 조별로 나뉘어 토론을 진행했습니다. 삼삼오오 모여앉은 테이블에 참여한 수강생들은 모두 열의가 넘쳐보였습니다. 제가 앉은 테이블에서는 검찰개혁 방안으로써 검사장 직선제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함께 테이블에 동석했던 수강생은 검사장을 선거로 뽑으면 지금보다 더 검찰이 정치화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표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교육감 직선제 도입 당시에도 같은 논의가 나왔다며, 지방자치단체장 직선제의 역사도 생각보다 짧은 만큼 모험을 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또한, 오늘은 검찰이 개혁대상으로 지목된 맥락에 대한 강의였던 만큼 다음 강의에서는 검찰개혁의 구체적 방향에 대한 강의를 들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토론이 끝난후 진행된 질의응답시간에도 검찰개혁의 방향과 대안에 대해 진지한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수강생들은 정치의 사법화를 넘어 사회의 사법화에 대한 우려와 이를 방지하기 위한 방법에 대한 고민을 나누며, 다음 강좌 주제로 예정되어 있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에 대한 기대를 간직한 채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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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쉽게! 나라예산 감시학교 | [강좌후기] 누구나 쉽게! 나라예산 감시학교 강의를 듣고 | 제니니 | 2019.10.8 | |
해마다 국정감사 기간이 되면, 뉴스에서 온갖 고성이 오고가는 것을 보면서 채널을 돌리기에 급급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국가예산이라는 것이 고함 소리를 치는 몇명의 국회의원들의 주장에 의해서만 조명될 뿐, 우리 국민들이 정작 자기 분야에 관한 상세한 예산 사용에 대해서는 어느 곳에서도 설명해주는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생활이 바쁘고 귀찮다는 핑계를 대며, 누군가는 하겠지..라고 생각하고도 몇년이 흘렀네요. 주변에 관공서에 다니는 지인들은 해마다 국감기간이면 얼마나 힘들고 자기 자신이 고된일을 하고 있는 지 만을 이야기했기 때문에 강자는 국회의원이고 약자는 공무원 또는 관공서 직원일 거라는 막연한 생각만 있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약자는 다름아닌, 국민들이 었다는 사실, 모르고 무관심하면 약자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침 눈에 확 띄는 강좌제목에 '나라예산 감시학교' 에 신청을 하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강의를 들었습니다. 생각보다 강좌 인원이 적었기에 놀랐고, 생각보다 국가 예산을 볼수 있는 방법이 폐쇄적이라는 사실에 놀랐고, 생각보다 어마무시한 금액의 국가 예산과, 수없이 많은 시행사업들이 있다는 사실에 아주 많이 놀랐습니다. 최근 몇년동안 시민의 정치참여로 시민의식이 성장을 하고, 정치를 감시하고 각종 권력기관을 감시하는 것으로 확대를 했다면. 이제는 국가예산이 바로 쓰여지는 지 끊임없는 감시와 토론으로 보다 투명하게 관리되고, 꼭 필요한 곳에 분배가 되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정부 비판을 위한 예산 감시가 아닌, 공정한 사회를 위한 예산 감시 활동이 생활화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강좌였습니다. 소수의 인원으로 많은 일들을 해오신 분들의 수고에 감사를 드립니다. 바란다면, 지방(자치)예산 관련 강의도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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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특강] 2019 아베의 일본, 한일관계의 과거와 미래 | [강좌후기] '아베의 일본'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 건우 | 2019.8.24 | |
‘아베의 일본’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최근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주전장>(2019, 미키 데자키)이 있다. 일본 극우세력이 어떻게 일본군 ‘위안부’라는 역사적 사실을 왜곡해왔는지 담담히 보여준다.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자들에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그야말로 전장이다. 패배가 아닌 승리로 역사를 수정하기 위한 시도하에 그것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 세계를 상대로 있는 일을 없는 일로 세탁하는 작업은 흡사 전쟁이다. 이들은 전장을 바꿔 은밀하게 전쟁을 수행 중인 것이다. 그 중심에는 아베 수상과 일본회의가 있다. 그림자 정부 또는 흑막정치가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그런 영화적 상상의 음모론이 아니다. 이는 정확히 일본사회를 지탱하던 여러 축이 점차 무너져가는 현실을 지시하고 있다.
극우 일본의 탄생
주지하다시피 현재의 한일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도 같다.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이 제기한 질문, 즉 식민지배 불법성은 흡사 시한폭탄처럼 양국에게 답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은 이를 국제법 위반이라 주장하고 경제보복 조치를 감행했고 한국 또한, 이에 응전하고 있는 형국이다. 게다가 22일 한국정부는 지소미아의 계약연장 중단을 결정했다. 역사-경제-안보로 확전되는 분위기다. 갈등은 일본이 식민지배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는 한 이 사태가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양국의 입장 차와 앞으로의 향로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일단 일본을 알 필요가 있다. 현재 아베 내각은 4기 즉, 장기집권에 접어들었다. 4기에 이르기까지 일본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강사로 나선 이영채 교수는 미디어와 언론에 주목했다. 1기 아베내각이 조기 종료되었고, 이후 장기집권의 초석을 다진 2기 내각이 들어섰는데, 1기와 2기의 큰 차이를 만든 것이 바로 미디어와 언론이라는 것이다. NHK를 비롯해 주요 방송에 요직에 자신의 측근을 배치하고, 일종의 ‘자민당 선전국’으로 만든 것이다. 실제로 최근 일본의 진보적으로 분류되는 방송들까지도 정권에 장악된 듯 비판적인 목소리는 거의 사라졌다. 국경없는기자회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언론자유지수 평가에서도 일본은 올해 67위에 머물렀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조건은 일본 내 사회당과 공산당 등 견제세력의 몰락 그리고 자민당 내 온건보수, 자유주의 파벌의 궤멸에 있다. 더불어 시민사회도 무너진 한 축이다. 한국에 잘 알려졌듯 ‘혐한’ 시위를 주동하는 제특회와 같은 단체의 성장, 그들이 쏟아내는 혐오발언(헤이트 스피치)과 국가주의적 발언에 점차 많은 시민들이 우경화되고 있다. 이는 경제-정치-운동이라는 삼중의 위기 속에 그 균열 틈으로 발호하는 극우 포퓰리즘의 맥락에서도 이러한 일본 시민사회의 우경화를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베와 극우세력이 정치세력화해나감에 있어 유효한 응전이 부재한 것, 즉 한국의 촛불항쟁과 같은 일이 벌어지지 못하는 것 또한 이런 이유다. 특히 60-70년대 여러 민주주의 투쟁에 큰 역할을 했던 시민사회단체의 고령화가 심각하고 확장성 높은 SNS에 대한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우월한 젊은 세대는 우경화가 심각하다. 이는 교육문제도 얽혀있다. 현재 일본에서는 어떤 교과서에서도 일본군 ‘위안부’가 수록되어있지 않다. 실제로 이영채 교수는 자신들의 학생들에게 일본군 ‘위안부’를 물었을 때 거의 모든 학생이 모른다고 답했다고 한다. 관련 과제를 내줄 때, 인터넷 검색을 최대한 제한한다는데 그 이유 또한, 위키백과를 비롯해 관련 정보의 오염이 심각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요컨대, 일본극우의 정치세력화를 추동하는 아베 1강의 제도정치의 위기, 교육과 미디어의 장악, 대안세력(시민사회단체와 야당)의 몰락이 마주치며 현재의 극우일본이 만들어진 것이다.
연대의 필요성
현재 일본은 전쟁과 식민지배가 몰고 온 아시아의 비참을 잊고 전전(戰前)으로 돌아가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와중에 한일은 어느 때보다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영채 교수는 시민사회 연대의 역할을 강조했다. 한국에 강제동원 피해 사실이 알려지기 전, 50-60년대 일본에서는 양심 있는 자들, 용기 있는 자들에 의해 일본 정부로부터 조직적으로 은폐되었던 관련자료가 수집·공개되었다. 그 밖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납치되었을 때 일본 시민사회는 자신들의 일인 것처럼 나서서 행동했다. 이렇게 일본 시민사회는 과거 한국의 민주화와 과거사 청산 등을 위해 함께 노력하고 연대했다. 그렇기 때문에 ‘NO Japan’이 아니라 ‘NO Abe’로의 구호 전환은 매우 유효했으며, 일본 시민사회에 큰 용기를 주었다고 한다. 미약하지만 일본에는 아베의 개헌에 반대하는, 재무장을 비판하는 이들이 있으며, 정치세력화된 극우에 맞서 힘겹게 싸워나가고 있다. 우리가 공유하는 역사적 기억들을 돌아봤을 때, 일본은 외면할 수 없는 존재다. 이영채 교수는 이런 상호연관에 대해 “일본은 한국을 이해 못하면 아시아에서는 친구가 없고, 한국은 일본과 협력하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고 말한다. 이는 결국 일본에 대한 다차원적 이해 제고의 필요성, 적대로부터 인정과 연대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이다.
본 후기는 [긴급특강] <2019 아베의 일본, 한일관계의 과거와 미래> 중 1강, 이영채 교수의 '한일갈등,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후기입니다. 다음 강좌는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의 [잘못 꿰어진 첫 단추, 1965 한일협정을 다시 본다]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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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 함께 <미투의 정치학>읽기 | [후기] 저자와 함께 <미투의 정치학> 읽기 4 - 춘향에겐 성적 자기결정권이 필요했다 (한채윤) | 빛깔 | 2019.8.2 | |
‘권리’와 ‘존중’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권리 개념의 핵심은 존중이며, 이를 침해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되려 정확한 뜻을 알 수 없거나 제대로 쓰이지 않고요. 그렇다면 이 의미를 어떻게 짚고 넘어가야 할까요? <미투의 정치학> 마지막 시간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크게 3개의 덩어리로 두고 춘향전에 빗대어 설명해주셨습니다.
춘향이 진정 원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18C에 창작 되었을 거라고 추정하는 <춘향전>은 다양한 매체에서 소비되었습니다. 이 고전 소설은 신분 차이를 뛰어넘은 사랑이고, 고난을 극복하고 ‘정조’를 지킨 여성은 신분상승을 얻으나, 이를 건드린 악인은 벌을 받는다는 권선징악을 담고있죠. 하지만 찬찬히 분석하면 춘향은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거나 맺은 언약이 영원할 거라고 믿지않습니다. 위험과 이익을 빠르게 파악하고, 처신까지 치밀하게 판단했습니다. 반면 변학도는 무조건적으로 춘향을 데려오라고 명령했으며, 이를 거부하자 공권력을 행사해 자신의 안위를 지키려 했죠. 여기서 눈 여겨 봐야할 건 이 두 인물의 대립의 핵심이 ‘정조’가 아니라 위선적인 가부장제 제도를 ‘정조’라는 관념으로 덮었다는 점입니다. 이를 토대로 여성의 삶을 재단했고, 모순을 남겼기 때문이죠.
형법 속에 여전히 존재하는 정조
조선시대 유난히 여성에게만 작동했던 ‘정조’라는 억압은 지금도 존재합니다. 이를 드러낸 것이 2013년에 신고죄 폐지와 경찰의 즉시 조사가능으로 개정 된 형법 297조 (강간과 추행의 죄, 이하 강간죄) 입니다. 우선 형법은 보호법익(어떤 행동이 범죄인지 판단하기 위해 그 법이 보호하려는 이익, 가치가 무엇인지 명확히 정하는 일)이 중요한데, 예를 들어 ‘절도죄’의 보호법익은 ‘재산권’인 셈이죠. 그렇다면 강간죄의 보호법익은 무엇일까요? 1953년 생성 당시 강간죄를 다루던 형법 제32조의 명칭은 ‘정조에 관한 죄’였고, 보호법익은 ‘정조권’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조가 여성의 안전을 비롯 삶 전체를 좌지우지 할 수 없으며, 단적으로 성폭력 문제를 다루는 데 또다른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피해자의 저항 여부 등으로 말이죠. 이를 바꾸려면 보호법익으로 된 정조권을 대체할 새로운 권리 개념이 필요하다고 1980년 말부터 논의되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권리개념이 ‘성적자기결정권’이었습니다.
성적 자기결정권? 명확하게 짚고 이해해야 하는 권리
국내 법조계에서 처음 등장한 건 1990년 간통죄 위헌 여부에 대한 헌법소원 때 였습니다.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10조 1항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규정했습니다. 그 후 동성동본금혼법(1997), 혼인빙자간음죄(2009), 간통죄 위헌(2015) 에서 주요한 권리 개념으로 다뤄졌습니다. 위헌 판결 때 국가가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있는지, 침해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에 큰 비중을 두었죠. 그러나 이 개념을 단순히 동의 - 거부의 형태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동의와 거부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성적 자기결정권’이 아닙니다. 상대의 거부는 의사 표현이자 소통의 과정이며, 피해자는 처음부터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상황 자체를 원한 적이 없으니까요. 더불어 이 개념은 ‘신체에 대한 자기 통제’, ‘몸에 대한 권리’ 정도로 축소하는 일도 있는데, 권리를 잘 지켜서 손해 보지 말라는 형태가 아닌, 상대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자신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존중 받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자신의 의지대로 꾸려나가는 자율적 주체임을 존중받는 것이다. 또한 누구나 자기 삶의 주체로서 당연히 사랑, 연애, 결혼, 성관계를 언제 어떻게 누구와 할지 혹은 하지 않을지를 타인의 간섭 없이 스스로 결정하는 권리를 지닌다는 것이다. 이것이 '성적 자기결정권' 이다. (p.131~132)” 기억에 남았던 책 한 줄입니다. 모든 권리의 바탕에는 ‘존중’이 들어갑니다. 과연 우리는 당연한 이 전제를 잘 실천하고 있는 걸까요. 이제는 이분법적인 시각이 아닌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시기인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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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 함께 <미투의 정치학>읽기 | [후기] 저자와 함께 <미투의 정치학> 읽기 3 - 젠더 개념과 젠더 폭력 (루인) | 빛깔 | 2019.7.28 | |
젠더(Gender)는 이원적으로 남성·여성을 구분합니다. 후에 사회적으로 구성된 문화적 규범의 분류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죠. 하지만 젠더 개념과 젠더 폭력의 본질적인 의문을 짚었던 적은 적습니다. <미투의 정치학> 세 번째 시간은 트렌스젠더퀴어의 관점에서 바라본 젠더 개념·폭력을 재구성해 트랜스젠더퀴어와 비(非)트랜스를 가로지르는 젠더 폭력 개념의 모색을 중심으로 다뤘습니다. 이 개념 속의 논쟁점
여성 단체마다 ‘성폭력 개념’이 다르지만, 크게 2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가장 포괄적인 개념은 ‘젠더 폭력 혹은 여성에 대한 폭력(Violence Against Woman)’입니다. 한국여성의전화연합 등을 중심으로 남성과 여성 사이의 권력 관계에 따른 폭력을 포괄, 여성에 대한 전반적인 폭력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다만 규범적인 형태로써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죠. 다음으로 협소한 개념은 한국성폭력상담소 등을 중심으로 한 ‘성적 폭력(Sexual Violence)’입니다. 여성에 대한 전반적 폭력보다 강간, 성추행 등으로 의미를 제한합니다. 이는 성적 폭력으로 해석할 때 동성 간 성폭력, 군대 내 성폭력을 재해석 할 수 있지만, 분리되지 않은 경우가 많죠. 하지만 이 논쟁의 연장선상에서 트랜스젠더퀴어가 겪는 폭력을 살폈던 건 드뭅니다. ‘여성’이라는 범위 구성은 무엇이며, 누가 ‘여성’인지에 대해 활발히 논의하지 않았으니까요. 깊이 생각해야 할 관계와 질문들
“어디까지 갔냐?”, “할 껀 다했다.”는 말처럼 연애관계 중 성관계를 맺는 걸 당연시 여깁니다. 그렇다면 외부 성기 형태를 확인해야만 상대의 젠더 범주를 알 수 있는 걸까요? 아니면 섹스-젠더 공식처럼 맞춰서 봐야하는 걸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어렵습니다. ‘태어날 때 지정받은 젠더’, ‘외부성기 형태’ 그리고 ‘살며 자기 자신을 설명하는 젠더 범주’ 사이의 관계에 대해 한 번도 합의된 적은 없으며, 엄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만 ‘다른 어떤’걸 얘기 하는 게 젠더인 듯 마냥 받아들여졌죠. 이렇듯 섹스 혹은 젠더를 둘러싼 논의의 역사는 어떤 여성이 되고자 하는지, 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여성/남성은 원래 그렇다는 등의 만들어내는 형태로 사유하게 했으며, 외부성기 형태는 젠더와 관련해서 혹은 어떤 개인에 대해 과학적인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는 듯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제는 다시 정립해야 할 시기 물론 젠더 폭력을 여성과 남성 간 권력 위계에 따른 폭력으로 해석한 기존 설명 방식은 이 위계를 밝힐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지만, 여전히 이원 젠더 구조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젠더 폭력을 해석하자면 '각 개인에게 여성이나 남성과 같은 특정 젠더 범주를 지정하고, 지정한 젠더에 적절한 역할을 수행하도록 강압하는 실천'인 셈인거죠. 젠더 규범이 신체적 젠더와 같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트랜스젠더퀴어든 아니는 불쾌감을 느끼고 있다는 건 매한가지입니다. 또한 사회에 맞는 젠더 주체로 살도록 하는 장치 중 하나로 '젠더 지시어'를 들 수 있는데, 분명하게 고착된 대상이 있다고 가정했습니다. 이는 관계 맺음 자체가 젠더 규범에 들어가는 흐름이지만, 삶을 특정 양식으로 규정하는 젠더 폭력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떤 범주로 바뀔 지의 가능성마저 차단할 위험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원적으로 젠더를 구분하고, 그 안에서 이 범주가 모든 가능성을 차단한 것이 아닐까하는 고민이 컸습니다. 무엇보다 이를 사유하게 하는 권력 그 자체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반응해야 폭 넓게 이 문제를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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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공유 or 착취? 플랫폼 자본주의의 본질을 말하다. | [후기] 공유 or 착취? 플랫폼 자본주의의 본질을 말하다(19.7.15.) | 고무곰돌 | 2019.7.24 | |
여러분들은 까대기라는 말을 아시나요? 지옥의 아르바이트라고 불리는 택배 상하차 작업을 뜻하는데요, 택배노동자를 비롯한 특수 고용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나 고통에 대해서는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해보셨을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요즘은 정보통신기술과 스마트 폰 등의 대중화에 힘입어 소위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노동 방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택배의 경우에도 자가용을 보유한 공급자에게 로켓배송 고객까지의 스트마일 배송수요를 위탁하는 ‘쿠팡플렉스’란 서비스가 출현했고 배달의 민족 앱을 통해 우리에게 주문음식을 배달하는 우아한 형제들의 ‘배민라이더스’ 등은 우리 주변 곳곳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풍경입니다. 그간 기본소득과 정치철학 관련 강의를 통해 청년과 시민을 꾸준히 만나온 김만권 선생님께서 플랫폼 자본주의 시대의 노동이라는 주제로 지난 7월 15일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에서 특강을 해주셨습니다. . 상징적으로 표현
요약하자면 플랫폼이란 공급자, 수요자 등 복수그룹이 참여하여 각 그룹이 얻고자하는 가치를 공정한 거래를 통해 교환할 수 있도록 구축하는 환경 2. 플랫폼 자본주의 출현 배경과 성격
3. 플랫폼 노동자 유형
5. 향후 전망 작성 민동섭 자원활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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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 함께 <미투의 정치학>읽기 | [후기] 저자와 함께 <미투의 정치학> 읽기 2 - 여성에 대한 폭력과 미투 운동 (정희진) | 빛깔 | 2019.7.19 | |
오랜 가부장제 문화에서 여성은 독립된 주체가 아니라 남성의 공간, 소유물로 여겨졌습니다. 그 속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은 계속 이어졌고요. 그러나 2018년 봄부터 지속된 미투(Me Too)운동은 수많은 눈물과 침묵 그리고 생각거리를 담고있습니다. <미투의 정치학> 두번째 시간은 여성에 대한 폭력과 미투 운동을 요약하고, 담아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가부장제의 틀 그리고 사문화된 법
착취적 성매매와 가정폭력은 가부장제의 매트릭스(母型)에 해당됩니다. <어머니 – 창녀>라는 형태가 가부장제 사회 속 여성이 다뤄지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으며, 벗어나지 못합니다. 가부장제가 생계를 구성하는 원리이기 때문에 무의식으로 작동되기 때문입니다. 근대 이후 대중교육을 거쳐 한국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이 논의된 건 1994년도에 성폭력 방지법 제정 이후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여성폭력에 관한 관련 법이 생겼습니다. 성매매, 성폭력 그리고 가정폭력 이 3가지로 크게 나눌 수 있지만, 사문화(死文化)된 문제에도 들어갑니다. 다시 말해, 여성 관련 법들은 불법과 합법의 경계가 불분명하고, 공식적으론 불법이나 비공식적으론 인정하는 셈 입니다.
크나큰 파급력으로 조금씩 움직이다
어찌 보면 미투는 범죄 신고 ’캠페인’에 불과한데 왜 사회적 파장을 불렀던 걸까요? 신고를 하면 파출소에선 사소한 일로 취급하고, 설령 피해 사실을 말하려면 자신의 평판을 버릴 각오로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여성 의식의 고양, 다양한 사회적 인프라 그리고 구조적 요인이 맞물리면서 파급력을 일으켰습니다. 또한 SNS의 발달로 인해 기존의 성별 정보 격차를 ‘극복’, 숨겨진 범죄를 즉각 가시화된 것도 하나의 요소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극히 일부 현상이 드러난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짚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미투의 ‘선별성’입니다.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쟁점들
먼저 특정한 형태의 폭력만 ‘성폭력’으로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사회에서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 일 때만 지지를 받고, 올라가는 것이죠. 그러나 폭력의 유형이 다 다르고, 조직 내 성폭력은 은폐 구조에 따라 심한 곳이 달라지는 기준이 됩니다. 이는 노동 시간과 관련이 깊습니다. 여성 노동자들은 남성 노동자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하기 때문에 착취 아닌 착취인 겁니다. 나아가 노동문제인데 젠더문제로 바꿔서 피해를 가시화, 사소하게 하거나 분열시키는 흐름으로 이어졌습니다. 다음으로 남성 네트워크 상에서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서 성폭력이 되거나 안 되거나 한다는 점 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남성의 성폭력, 특히 유명 인사일 경우 자신의 명예가 훼손되었다는 분노가 크며, 사회는 피해자의 신고 자체를 원인으로 봅니다. 또한 사건 후에도 자신이 활동하는 커뮤니티에서 계속 활동하고, 다시 복귀하는 형태로 이어졌습니다. 정리하자면, 미투의 선별성은 사회의 문화권력에 의해 선택되는 것이며, 정권이 바뀔 때 마다 달라져도 여전히 완벽한 ‘피해자(말을 하지 않는다는 등)’ 와 압도적인 폭력만 ‘성폭력’으로 바라보는 덫에 갇힌 겁니다. '그들에게 요구되는 새로운 '성 역할'은 스스로를 책임지는 것이다. (p. 107)' 이번 강의를 듣기 전 읽는 내내 눈길이 갔던 문장입니다. 어떠한 사회에서 살고있는지, 어떻게 바로 잡아야 하는건지 곰곰히 생각했습니다. 인식을 바꾸는 것 만큼 어려운 일은 없지만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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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이슈 따라잡기 공부모임 | [한국사회 이슈 따라잡기] 7/4 언론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 시민 _정수영 교수 | 마백 | 2019.7.19 | |
어느덧 ‘기레기’라는 말도 제법 익숙하게 되었습니다. 언론산업에 종사하는 저널리스트들에게는 매우 모욕적인 말임이 분명한데, 언론인이라는 사람들부터 스스로를 기레기라 부르며 저들끼리 낄낄거리기도 합니다. 그만큼, 언론을 바라보는 시민들과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들 모두 언론의 사회적 기능과 책임에 대해 무시와 체념이 일상화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언론에 대한 이런 사회적 맥락에서, 이번 [한국사회 이슈 따라잡기] 강좌는 ‘언론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 시민’이라는 주제를 선정했습니다. 발표는 정수영 교수님이 맡아 주셨는데요, 현재 성균관대학교에 몸담고 계시면서 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도 겸임하고 있습니다. ![]() 강의의 첫 부분은 한국의 언론이 얼마만큼 고장 나있는 지 살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세월호 사건 당시에 보여준 언론의 모습은 참담하기 그지없어서, 시민들 개개인에게 언론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가지게 하는 계기였습니다. ‘기레기’라고 하는 표현도 이때 등장했는데요, 그만큼 언론에 대한 실망과 분노는 매우 컸습니다. 저는 80~90년대를 거치면서, 주류언론의 사회적 순기능에 대한 기대를 일찌감치 접었습니다. 이로 인해, 거의 이들 언론을 소비하지 않았는데요, 이렇게 기대감이 거의 없는 제가 보기에도 세월호에 대한 언론 보도는 끔찍할만큼 처참했습니다. 다만, 세월호를 거치면서, 언론의 사회적 기능과 책임에 대해 시민사회 전체가 다시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게 된 것이 그나마 순기능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강의에 참석하신 분들과 발표하신 정수영 교수님도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계셨는데요, 이런 문제의식은 촛불혁명이 일어나 정권이 바뀌어도 여전히 유효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조중동을 중심으로 한 주류 신문과 지상파 방송의 문제점은 뭘까요? 정교수님은 언론의 자유에 대해 말씀하셨는데요.. 국경없는 기자회가 매년 발표하는 언론자유지수에 의하면 한국은 민주주의 정부 시절에는 30~40위, 권위주의 정부 때는 60~70위의 순위에 위치합니다. 언론을 대하는 권력의 자세에 따라 자유지수가 크게 변하는데, 문제는 이렇게 언론의 자유도가 변하는 것과 시민들이 체감하는 언론의 순기능 사이에 아무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올해 한국은 전세계 41위, 아시아 1위의 언론자유도를 가지고 있는데, 자유가 커진만큼 언론이 제 기능을 다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언론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일이고, 시민들이 정권을 견제해야 하겠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자유가 언론 종사자들의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특권은 아닐 것입니다. 한국의 주류 언론들이 이 점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 지 따져 볼 일입니다.
그렇다면, 언론의 자유가 훼손되지 않으면서, 언론의 사회적 책임과 규제를 어떻게 마련할 수 있는 지가 궁금해집니다. 정교수님의 설명에 의하면, 한국의 언론들은 다양한 윤리강령, 취재보도준칙, 방송강령 등을 자율적으로 수립하고 공유하면서 사회적 책임에 대한 틀을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한국의 언론 산업이 자유와 규제가 부족해서 현재와 같은 상황에 빠진 것은 아니라는 것인데요.. 실제로 시민들의 평가도 언론에 대해 매우 부정적입니다. 조사 기관에 관계없이, 언론의 신뢰도에 대해 한국은 거의 취하위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대책은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대해서는 정교수님과 참석자들 모두 선명하게 설명하지 못 하는 것 같습니다. 원론적으로 시민의 참여를 늘리고, 시대착오적인 규제들을 혁신해 나가야 합니다만, 조금 더 구체적인 방향으로 모아지기에는 아직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한 것으로 보입니다. 정교수님의 의견으로는 현재와 같은 언론 산업 구조와 사업 모델, 즉 수입의 90% 이상을 광고로부터 얻는 경영 구조가 개혁되지 않으면, 자본의 이익에 의해 언론은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다고 합니다. 특히, 세상이 디지털 환경으로 전환되면서, 미디어가 다양해지고 있는데, 이로인해 언론사간의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경쟁이 치열해지고 수익성이 낮아지면서 언론은 자본의 손아귀에 더욱 놀아나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한국 언론은 권력과 자본 사이에서 건강한 조정자와 감시자라는 본연의 역할을 팽개치고,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언론사의 이익에만 충실하게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 모든 참가자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문제를 풀기 참 어렵다는 생각을 여러 번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시민사회가 당장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은 일본, 영국과 같이 공영방송 중심의 지상파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요, 세금과 다름없는 시청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은 적극적으로 시민들이 개입하여 BBC나 NHK와 같은 신뢰도의 언론사로 거듭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정교수님의 대안이었는데요, 참가자 모두 공감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사기업인 신문사와 방송사들은 시장의 논리에 맡기는 대신, 공영방송에 대해서는 끈임없이 혁신할 것을 요구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한국 언론의 답답한 상황에 대해 이번 강의로 부터 제가 얻은 한가지 교훈이고 다짐이었습니다. 후기 작성: 전병옥 (자원활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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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고전읽기 1] 애덤 스미스 <국부론> | [후기] 경제학 고전 읽기 <국부론> 제5강('19.7.2.) - 스미스의 경제적 자유주의 | 고무곰돌 | 2019.7.19 | |
숨가쁘게 달려온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읽는 시간이 종강을 맞이하였습니다. 지난 4주에 걸쳐 스미스의 생애와 주요 저작의 내용을 살펴보고 도덕감정론의 시각으로 스미스의 경제이론을 바라보기도 하였으며 <국부론>에 담긴 시장이론·분업론·가치론·분배론을 훑어보았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시간으로 경제적 자유주의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경제적 자유주의는 모든 개인이 정의의 법률을 위배하지 않는 한 자신의 이익을 자신의 방식대로 추구하게끔 자유롭게 놓아주는 즉 개인주의를 기반으로 하여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하라는 주장입니다. 아울러 자기 절제(self-control)를 전제로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와 같이 개인들이 각자의 자연적 자유를 발휘하게 된다면 소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연적 조화 또는 질서가 달성되어 개인과 사회 전체가 균형적인 상태에 이르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시장의 측면에서 보면 개인의 이기심을 바탕으로 하는 경제활동이 공정한 경쟁의 상태에서 이루어질 경우 효율성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죠. 또 경제적 자유주의는 경쟁과 노동이동 등을 제한하는 불합리한 정부의 규제활동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것이 특징인데 이러한 규제가 전반적으로 산업의 자연적 균형을 왜곡하기 때문입니다. 책의 구성에서도 알 수 있듯 보호관세 및 보조금 지급 등 자유무역을 해치는 중상주의에 대한 비판도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스미스는 중상주의에 맞서 불합리한 규제철폐와 법치주의의 바탕에서 잘살려는 인간의 본성과 보이지 않는 손이 효율적 경쟁시장을 형성하게 되고 저축·투자의 증대와 분업발달 등이 맞물려 경제발전에 이르게 된다는 경제발전의 길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할 것은 그가 도덕감정론에서 밝힌 것처럼 공정함이 토대가 되는 시장경제체제를 구축해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신자우주의자들이 정부는 경제에 일절 개입하지 말고 시장에 맡기라는 주장과는 결이 다른 얘기입니다. 이번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읽는 시간을 통해 많은 분들이 그런 점을 명확히 인식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앞으르도 계속될 경제학 고전읽기 강의에 오늘날 경제 현실을 고민하고 그 기원을 파헤치면서 대안을 모색하는데 관심있는 시민 학생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자원활동가 : 민동섭 <더보기> [후기] 경제학 고전 <국부론> 제1강(19.6.4) 애덤 스미스의 생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