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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 사건으로 보는 한국근현대사Ⅱ | [한국근현대사] 7강, 대통령과 재야의 대통령 : 박정희와 장준하 | 김혜수 | 2013.11.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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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재야의 대통령 : 박정희와 장준하
최근 다시금 주목 받고 있는(?) 박정희와 그와 반대편에 서있었던 장준하에 대한 연혁을 살펴보며, 그들의 삶과 그 시대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
1. 박정희 '박정희'에 대해서는 이미 많이 알고 계실텐데요~ 3개국에서 군사훈련을 받았던것, 쿠데타를 모의하던 과정 등 제가 새롭게 알게된 내용위주로 간단하게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문경/만주군관학교 -> 일본육사 3학년에 편입 -> 만주군 보병에 소위로 부임 1946 5.6 조선경비사관학교 제 2기생 재학 중 “10월 인민 항쟁” 발발 남노당 이재복이 박정희를 주목, 군사훈련경험/인맥/경상도출신/능력이 돋보였기 때문. 1949 박정희 무기징역(국방경비법 위반)-> 현역복귀, 육군8기생을 만나게 됨. 1952.5.29. 장면, 이종찬 -> 미대사관에 쿠테타 계획을 타진 1959.2 송요찬 – 부정선거를 명령 1960 박정희 – 쿠데타를 도모했으나 4.19로 인해 무산 1961 4.15 해병대 단독 쿠데타 모의 이후 몇 차례 준비했고 결국 5.16일에 실행하게 된다. - 박정희의 연혁을 통해 살펴 본 내용 외의 것 (전 왜 이런 내용이 더 기억에 남을까요....?) 정인숙 사건, 한일협정, 베트남 전쟁, 문익환
2. 장준하
- 독립운동가, 언론인, 정치가 - <사상계>를 출판 * 이는 당시 자유당 정권을 신랄하게 규탄하며 4·19 혁명의 단초가 되었으며, 대학생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통일운동의 중심세력=학생)
중요 연혁 (+ 수업시간에 다뤘던) 1944 학병 자원입대 1945 광복군에 편입 1963 이후 야당의 길을 걷게 됨 -> 제 7대 신민당 소속 국회의원당선 제 3공화국 당시, 한일회담 반대와 박정희 비판 내용(출처 : 위키백과) 대선에서 장준하는 일본 제국주의 군대에 있었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참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장준하는 박정희 정권의 한일 협정을 일본 제국주의 군인 출신이 침략자이며 전범자 집단인 일본 자민당과 매국협상을 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1964년 4월호를 긴급 임시증간호로 내놓았다. '한일회담의 제문제'는 한일회담을 반대하는 이 나라 지식층의 의사를 비판적으로 담아낸 한일회담 반대진영의 교과서가 됐다. 이어서 1965년 7월에 '신(新) 을사조약의 해부' 를 또다시 긴급 증간호로 발행해 한일회담 반대진영의 이론적 교두보가 됐다. 1966년 사카린 밀수 사건이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집권층과 삼성의 이병철 사이에 유착이 있었다는 정보가 새어 나왔고, 야당과 대학생들이 전국적인 규탄대회를 열었다. 1966년 10월26일 민중당 주최 '특정재벌 밀수진상 폭로 및 규탄 국민대회' 에 연사로 참석했다. 장준하는 규탄대회에서 재벌총수와 정부 고위층 사이에 오간 내용을 폭로하면서 “우리나라 밀수 왕초는 바로 박정희”라고 비판하였다. 이어 "존슨 대통령이 방한하는 것은 박정희 씨가 잘났다고 보러 오는 것이 아니라 한국청년의 피가 더 필요해서 오는 것" 이라는 발언도 주목을 받게 됐다. 장준하는 박정희와 재벌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다가, 박정희 밀수왕초 발언 등이 문제되어 구속, 한 달간 수감됐다가 1966년 12월 보석으로 석방되었다. 그 뒤 1967년 2월의 공판에서는 징역 6월을 선고받았다.
- 박정희의 반대편에 서있던 인물에 대한 탐구와 함께 더 생각해 볼 문제 1965 한일협정 이후 동아시아에 대한 개념 : 한·중·일+미국 중심으로 바뀌게 되었고 북한은 제외된 점
이상으로 후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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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민정치학교Ⅱ – 민주주의의 새로운 실험, 생활정치 | [나의 시민 정치학교Ⅱ] 6강, 나는 마을에서 논다 –마을공동체와 협동조합의 가능성 | 미요이 | 2013.11.23 | ||||
[나의 시민정치학교Ⅱ] 6강(11/19), 나는 마을에서 논다 - 마을공동체와 협동조합의 가능성 강의소개 보기 >> 클릭 1강 후기 보기 >> 클릭 2강 후기 보기 >> 클릭 3강 후기 보기 >> 클릭 4강 후기 보기 >> 클릭 5강 후기 보기 >> 클릭 1. 성미산마을에 대한 소개 성미산은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작은 야산이다. 성미산은 해발 70미터밖에 되지 않는 비교적 작은 산으로, 마을 어디에서 출발하든 어른 걸음으로 5분, 아이 걸음으로 십여 분이면 오를 수 있는 곳이다. 이 성미산 자락에는 성산동, 망원동, 합정동, 연남동, 그리고 서교동이라는 행정구역상의 동네들이 있다. 우리가 ‘성미산 마을’이라고 부르는 공간은 이 성미산 자락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마을’이라는 단어는 현대 도시인들에게 낯설다. 우리의 기억에 마을 하면 떠오르는 것들은 한적한 농촌이나 영화 속에만 머무르는 골목길 사람들뿐이 없기 때문이다. 마하트마 간디는 그의 저서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에서 이런 말을 했다. “현재 세계에는 두 부류의 사상이 있다. 하나는 세계를 도시로 나누려는 것이고, 하나는 마을들로 나누려는 것이다. 마을문명과 도시문명은 전적으로 다르다. 하나는 기계와 산업화에 의존하고, 다른 하나는 수공업에 의존한다. 우리는 후자를 택하고자 한다.” 그에 따르면 도시와 마을은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기 때문에 공존할 수 없다. 그리고 지난 역사 속에서 한국의 서울은 자본을 가진 사람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철저하게 도시화되어왔다. 90년대를 전후해서 도시에서 태어난 학생들이 마을을 기억할 수 없는 이유이다. 성미산마을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공동체이다. 사람들은 아이들을 행복하게 키우고 싶었고,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의 관계를 만들고 싶었고, 체벌이나 과잉 경쟁으로부터 안전한 학교를 원했고, 하고 싶은 문화생활을 생활공간에서 누리고 싶었고, 문화를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만들어내는 ‘주인공’이 되고 싶었고, 의식주와 관련된 소비생활을 좀 더 윤리적으로 하고 싶었다. 자신이 배운 바를 실천하는 삶을 나 혼자가 아닌 이웃들과 함께 하고 싶었던 것이다. 성미산마을은 이러한 정체성을 가진 ‘관계’에 기반을 둔 공간이다. 이는 마을 사람들이, 그리고 이 마을을 보는 마을 바깥의 사람들이 부여한 정체성이다. 성미산마을의 시작은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마을 운동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자!’라고 해서 모인 주민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1994년, 아이들에게 한글과 영어를 일방적으로 가르치기 보다는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어놀게 해주고 싶었던 부모들이 의기투합해 공동육아 협동조합 ‘우리 어린이집’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듬해 추가로 ‘날으는 어린이집’이 만들어지면서 입소문이 났고, 공동육아에 뜻을 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게 되었다. 이후 공동육아운동은 꾸준히 발전하여 2002년 ‘참나무 어린이집’이, 2005년에는 ‘성미산 어린이집’이 추가로 설립되었다. 공동육아로 시작한 공동체는 아이들이 크면서 대안교육에까지 관심을 넓혀가기 시작했고, 이후 부모들이 확장된 ‘마을 공동체 형성’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마을극장, 두레생협, 공동주거 등의 새로운 시도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현재 이 공동체에 소속감을 가지고 있는 가구 수는 500~700여개에 달하고, 그 안에서 약 70여개의 커뮤니티들이 운영되고 있다. 아는 사람들끼리의 친목 모임정도의 성격을 가졌던 공동체가 ‘마을’이라는 정체성을 갖게 되는 과정에는 수많은 걸림돌과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계기들이 있었다. 2001년 서울시는 성미산에 배수지를 만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이 지역의 유일한 녹지인 성미산은 주민들의 휴식, 산책, 운동 공간이며, 어린이집 아이들이 매일같이 오르는 놀이터이자 교육장이었다. 생태론에 기반을 둔 공동육아협동조합이나 두레생활협동조합은 당연히 이에 반대하였고, 환경단체의 도움을 받아 ‘성미산개발 저지를 위한 대책위원회’를 조직하여 본격적인 반대운동을 펼쳤다. 마침내 서울시가 기습적인 벌목을 시작하자 사람들은 사수대를 결성하여 물리적으로 개발을 저지하였고, 촛불집회나 음악축제 등 다양한 문화활동과 항의 전화 걸기, 시청 앞 집회, 공청회 등을 조직하여 2003년 서울시의 공사 유보 결정을 이끌어내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를 기념하는 마을축제를 열었다. 함께 어려움을 이겨냈던 ‘공유된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들은 본격적으로 목적의식을 가지고 ‘마을 만들기’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2004년에는 이러한 주민자치운동의 필요성을 자각하면서 이를 주도할 단체로 ‘참여와 자치를 위한 마포연대’가 결성되었고, 2005년에는 정부의 시범사업으로 소출력 마을 방송국 ‘마포FM’이 만들어졌다. 생협 조합원이 만든 유기농 반찬가게 ‘동네 부엌’, 협동조합으로 운영되는 자동차 정비소 ‘차병원’등도 이 때 만들어졌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2004년 9월 마을학교를 표방한 ‘성미산학교’가 개교하였고, 이듬해 건물이 완공되어 초·중·고등학교 신입생을 받았다. 2. 마을기업에 대한 이해 선생님은 마을기업을 ‘출자와 자원조달’, ‘운영과 마을고용’, ‘이용과 확보된 시장’, 이 세가지로 나누어 설명해주셨다. 우선 마을기업은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출자한 돈에서부터 시작한다. 관심이 많은 사람은 많은 구좌를 신청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조금만 신청해 돈을 출자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돈을 주고 끝나는 기부와는 다르다. (투자의 개념이기 때문에) 조합원이 곧 출자자이고, 출자자가 곧 주인이 되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두 번째로 마을기업은 ‘하고 싶은 사람’이 운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자기가 사는 마을 안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나 노인들에게는 큰 메리트일 것이다. 한국의 열악한 노동환경 때문에 일을 하지 않고 가정을 돌보는 주부들이나 은퇴자분들이 활동적으로 일할 수 있는 마을기업의 역할에 사람들이 주목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마을기업은 ‘확보된 시장’을 가지고 있다. 조합원들이 곧 소비자이고, 마을에 사는 이웃들이다. 그들은 또한 가게에 어느 정도 출자를 한 주인이기도 하기 때문에, 깐깐한 소비자가 되기보다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기업의 발전을 바라는 고정적이고 안정적인 소비자층이 된다. 등가교환과 경쟁, 마케팅 공략 등이 떠오르는 일반 기업의 이미지와는 다른 점이다. 3. 수업에서 나온 질문들 서울시는 과연 지속적인 마을 만들기 사업을 펼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시행되고 있는 서울시의 마을 만들기 지원 사업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으며, 그 안에서의 어려움은 없을까? 시간과 자원이 풍부한 중산층 이상 사람들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까지도 마을 만들기 사업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아이디어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성미산마을이 가진 특수성과 보편성에는 무엇이 있을까? 4. 간단한 소감 변화를 만들어내려는 시도는 거창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았다. ‘세계평화’나 ‘사회개혁’과 같은 거창한 구호로부터 출발하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의 아이를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합리적인 조건에서 기르고자 한 노력으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공간이 공권력에 의해 불합리하게 침해당할 위기에 처하자 온몸을 다해 지켜내었다. 이러한 시도와 행동은 지금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주류적 문화와 방식이 옳지 않다는 문제의식으로부터 나왔다. 누군가가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상상을 할 때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다. 어쩌면 사회 변화는 항상 가장 가까운 곳으로부터,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세우려고 할 때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사회학도로서 항상 큰 그림과 구조를 보려고 하고, 책으로부터 익힌 일상적이지 않은 개념들을 쓰려다보니 글에는 거품이 끼어있다. 이 단계를 넘어서면 나도 ‘지켜보고 감상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몸을 직접 움직여 행동을 할 수 있을까? 내가 몸담은 학교, 학과에서조차 작게나마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망설여진다. 내가 망설이는 이유는 ‘아직 살만하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의 부조리함과 직접적으로 마주하기에 내 주변에는 생각보다 많은 보호막과 핑계들이 있다. 선생님은 분명 희망찬 마을 만들기에 대해서 말씀하셨지만, 내 상황이 상황인지라 주저리주저리 개인적으로 했던 생각들을 몇 자 적어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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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으로 이해하는 정치사상 - 근대편 | [고전정치사상] 2강, 보충자료 | 느티나무 | 2013.11.23 | ||||
김만권 선생님께서 2강 보충자료로 보내주신 내용을 올립니다. -------------------- 지난 참여연대 강의에서 로크는 정치권력에서 자연권에서 행사하는 권리를 양도하는 게 아니라 권리행사에서 빚어지는 불편을 없애기 위해 일정 정도의 권위와 권력을 부여하여 문제를 해결한다고 설명했었지요. 그랬더니 고등학교에서 법과 윤리를 가르치시는 선생님께서 교과서엔 홉스 모든 권리 양도, 로크 부분 양도, 루소는 그런 거 없음이라고 나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 역시도 고등학교 다닐 때 그렇게 배운 듯 한데요, 홉스에서는 "모든 사적 판단의 권리"는 포기하고 주권에게 객관적 3자로서 모든 판단권리를 넘겨주지만 "자기 보존의 권리" 그 자체는 양도되지 않습니다. 다만 모든 사적 판단을 포기함으로써 자기보존의 권리가 자연스럽게 행사되지 않다가 국가가 이 자기보존의 권리를 직접적으로 위반하면(예를 들어, "네 목숨을 끊어라"라고 명령하는 행위) 즉각적으로 이 권리가 행사되며 나아가 사적 판단의 권리까지 회수됩니다. 특히 여기서 '자기보존'은 계약을 맺게 되는 이유라 '자기보존의 권리'는 정치권위에게도 양도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적판단을 행사하여' 실행하는 '자기보존의 권리'는 '자연권'이라 저항은 항상 시민권이 아닌 자연권으로서 행사됩니다. 이로 인해 시민혁명, 시민저항 따위는 홉스의 체계 내에서는 존재하지 않지요. 로크에선 자연 상태에서 개인들이 다른 개인들에게 right to judge and punish를 갖는데요, 이 때 개인적으로 행사되는 이 권리로 인해 생겨나는 불편함(로크는 불편함이라고 표현한다)으로 인해 이 불편을 해소하기 정부에 power to judge and punish를 줘서 해결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원문을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정치권력과 관련된 부분에서 right to punish란 식의 표현을 거의 쓰지 않습니다. 심지어 개인들과 관련된 부분에서도 right to punish만큼 power to punish란 표현을 자주 씁니다.(아래 웹사이트는 스탠포드에서 로크 이론을 소개해놓은 곳인데요 개괄적으로 보기에 괜찮습니다. 이 소개문에서도 정부의 punishment와 관련하여 right이란 표현이 거의 등장하지 않고 오히려 power란 단어가 자주 쓰이고 있답니다. http://plato.stanford.edu/entries/locke-political/#LocPun.) 자연상태에서 갖는 개인들이 타자에 대해 갖는 권리는 right으로 쓰지만, 정부가 무슨 right을 양도받아 갖는다는 표현은 거의 없고 이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개인 대신 power를 지닌다는 식으로 표현하지요. (여기서 right과 power의 차이를 물으신다면, 로크가 지지하는 천부적 권리는 반드시 보호되고 지켜져야 할 것이지만, power, 특히 정치권력은 상황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 부분은 사실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주로 옛날 문헌이기는 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로크가 right to judge and punish를 넘겨준다고 실제로 해석하기도 하고, 반면 또다른 일부 학자들은 권리가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정치권위에게 이를 해결할 power를 부여하여 정치적으로 개인이 갖는 이 천부적 자연권이 행사될 필요가 없게 만든다고 봅니다. 사실상 양도되는 권리란 없다는 것으로 특히 이 입장은" 천부적 자연권은 계약상에서 시민의 권리 일부분이라 시민들은 계약을 위반한 왕을 암살하거나 정부를 전복시킬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라는 해석과 일치하는데요,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사실상 개인이 개인에 대한 right to judge and punish는 유보되어 있지만, 개인이 자신의 정부나 왕을 향한 right to judge and punish는 전혀 유보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로크에겐 혁명과 저항권이 시민의 권리가 됩니다. 이런 복잡한 논리를 도식적으로 전부 양도, 일부 양도 식으로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선생님들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더불어 저와 함께 수업하고 계시는 많은 학교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오히려 혼란을 줄 수 있는 이 내용을 어떻게 절충시키라 말씀드릴까?" 저도 고민이 됩니다. 아이들에게 "교과서가 잘못된 거야 혹은 논란이 될만해"라고 말하면 오히려 부작용만 일으키는 것은 아닌지...선생님들께 속시원한 해답을 못드리는 것은 해석이 분분한 내용을 이것이다라고 찍어 말할 수 없는 학자의 입장 때문이고, 제가 교과서와는 다른 해석(제 입장에서는 오히려 더 영향력이 있다고 판단하는 최근의 해석)을 지지하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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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으로 이해하는 정치사상 - 근대편 | [고전으로 이해하는 정치사상-근대편] 2강, 근대 국가주권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홉스 | 이나단 | 2013.11.22 | ||||
[고전으로 이해하는 정치사상-근대편] 2강(11/18), 근대 국가주권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홉스 강의소개 보기 >> 클릭 1강 후기 보기 >> 클릭
△ <리바이어던>표지, '폭력을 독점하고 있는 가장 이성적인 집단'인 국가를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다
0. 강의시작 2013년 11월 18일 첫눈이 내린 날, 느티나무 강의실에는 40여 명의 학생이 모였습니다. 김만권 선생님이 강의하는 ‘고전으로 이해하는 근대정치사상’ 두 번째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김만권 선생님은 지난 시간에 수강생이 남긴 쪽지질문에 답을 해주면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흥미로운 질문이 많았습니다. 이번 강좌에서 다루는 책을 모두 읽으셨는지, 또 그 책을 ‘고전’이라 할 수 있는지 등등. 김만권 선생님은 당황하지 않고(?),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홉스의 주저 [리바이어던]에는 근대국가주권은 어떻게 탄생하였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리바이어던] 원본은 4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보통 한국어 번역서는 1부와 2부까지 내용만 다루고 있답니다. 1부 ‘인간에 대하여’, 2부 ‘국가에 대하여’라는 타이틀이 달린 것을 보면, 홉스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국가를 설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참고로 3부와 4부는 기독교국가와 신학적 해석에 대한 인간의 무지(암흑)을 다룬 내용이라고 합니다.
1. 홉스의 시대적 배경과 사상적 위치 홉스의 정치사상을 깊이 공부해보기 앞서, 자연인으로서 그가 살았던 시대배경을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마키아벨리와 유사하게, 신의 시대를 벗어나는 과도기로서 가치다원주의, 신념의 사유화 문제는 당시의 큰 이슈였습니다. 게다가 홉스는 내전(영국 시민전쟁)을 겪고 프랑스로 망명하는 등 역사적인 격동기를 보냈습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최초로 영역한 홉스는 ‘전쟁을 두려움, 공포에서 비롯된 것’ 이라고 지적하면서 자신의 탄생 역시 두려움과 관련짓습니다. 홉스의 사상을 이해할 때, 두려움 또는 공포는 중요한 단어인 것 같습니다. 영국의 시민전쟁 당시 의회파와 대립한 왕당파임에도 불구하고, 홉스는 로크, 루소와 더불어 대표적인 사회계약론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모든 권력의 유일한 정당성은 인민(the people)으로부터 나온다는 주장은 마키아벨리와 홉스가 가진 공통점입니다. 근대국가에서 오로지 인민만이 정당한 권력의 원천이 된다는 이야기는 ‘불안과 공포에 기반한 인민의 동의’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김만권 선생님은 ‘인민주권의 이론적 탄생’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홉스의 이러한 발상은 로크의 시민정부, 루소의 인민주권이라는 이름으로 뻗어나간다고 합니다. 2. 사회계약론과 레비아탄 다시 말해, 홉스는 사회계약론으로 근대국가를 이론적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사회계약은 자연상태로부터 정치사회(국가)로 이행해 가는 과정을 정당화하는 일종의 이론적 도구인 것입니다. 여기서 자연의 상태란, 정치권위가 없는 아비규환의 상태를 의미하는데 홉스가 가설로서 만들어낸 상태입니다.(사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사회계약’이라는 것도 특정 시간, 장소에서 실제로 이루어진 ‘계약’은 아니지요.) 홉스가 이해한 인간의 모습을 따라가다보면, 자연상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분쟁이 발생하였을 경우 이를 공정하게 해결하면서도 안정된 질서속에서 불안감없이 활동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국가와 계약을 맺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리를 일부 양도합니다. 홉스는 국가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리바이어던’ 또는 ‘레비아탄’을 사용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바다괴물인 레비아탄은 고래, 용과 닮은 동물입니다. 왜 국가와 용의 이미지를 연결했을까요? 김만권 선생님은 홉스의 또다른 저작, [비히모스 – 1640~1660년 영국시민전쟁에 관한 대화]를 소개해주시면서, 근대정치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두 상징물을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질서, 법의 지배’를 상징하는 바다괴물 ‘레비아탄’과 ‘아나키, 혼란, 혁명, 혁명에 가담한 인민’을 나타내는 육지괴물 ‘비히모스’입니다. 유대인 성경에 나오는 두 짐승의 싸움 이야기는 레비아탄의 승리로 끝이 납니다. 아무래도 혁명, 아나키에 상태에서 법의 지배 상태로 바꾸는... 즉, 혼란을 잠재우고, 질서를 잡아주는 국가(레비아탄)의 승리를 암시하는 듯합니다. 3. 시민의 권리없이 인간의 권리도 없다. 강의 후반부에 김만권 선생님은 ‘정치권위가 없는 상태(자연의 상태)’에서의 인간이 갖는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셨습니다. 먼저 아래 지문을 살펴보시지요. 새로운 세계적 상황 때문에 수백만 명의 인간이 권리를 잃고 다시는 회복할 수 없어졌을 때, 우리는 권리를 가질 권리가 존재한다는 것과... 이 권리가 어떤 조직화된 공동체에 속할 권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평등하게 태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동등한 권리를 상호보장하는 우리의 결정이 강력한 힘을 갖는 집단의 구성원으로서만 평등하게 된다. 우리의 정치적 삶은 우리가 조직을 통해 평등을 만들어낸다는 가정에 기대고 있다. - 한나 아렌트 권리를 가질 권리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권리는 특정한 공동체 내부에 속할 권리라는 아렌트의 말이 처음에는 쉽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정치권위가 있을 때, 비로소 권리가 존재한다는 말로 풀어주었습니다. 시민의 권리가 없다면 인간의 권리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난민, 미등록노동자, 재일동포 등 속해있는 국가가 없는 사람에게 ‘평등, 정의, 인권’이 주어지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국가없는 이들이 갖는 권리와 한 국가, 공동체, 정치적 권위 아래서 누리는 시민권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시민권 없이는 인간으로서 어떤 보호도 받기 어려운 ‘현실’을 홉스의 정치사상 수업에서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질문>
<마음에 와 닿았던 문장>
글 : 자원활동가 이나단 / 편집 아카데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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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 사건으로 보는 한국근현대사Ⅱ | [한국근현대사] 답사① 현대 정치의 뿌리를 찾아서 : 북촌 일원 | 느티나무 | 2013.11.16 | ||||
2013년 11월 9일 토요일 오전10시, 인물과 사건으로 보는 한국근현대사Ⅱ (현대 정치의 뿌리를 찾아서 : 북촌 일원)을 답사했습니다. 서울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단풍이 아름다운 시기에 답사를 하게 되었는데요. 이신철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휘문고등학교 옛터> <송진우 집터> <김성수 고거> <여운형 집터> <홍증식 집터: 계동열성자대회> <건국준비위원회 터> <한규설 집터> <헌번재판소:박규수 집터> <수운회관> <건국빌딩>까지를 돌아보니 그 궤적을 이해하는데 수월했던것 같습니다. 답사에 함께 못하신 분들 참고하시라고, 아주 압축적으로 정리된 자료를 공유합니다^^ 지난 수업에서 잠시 공유했던 사진 구경도 제대로 하시라고 앨범도 공유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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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민정치학교Ⅱ – 민주주의의 새로운 실험, 생활정치 | [나의 시민 정치학교Ⅱ] 5강, 우리 마을은 얼마인가 - 생활정치와 예산 | 장경환 | 2013.11.16 | ||||
강의를 처음 시작할 때 어떤 강의에 가장 흥미가 있는지에 대해서 얘기를 나눴던 기억이 있다. 그 때 나는 이번 강의인 예산에 대한 강의를 꼽았었다. 그리고 많은 수강생분들 또한 예산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최근 주민참여예산제도에 대한 소식을 여기저기서 듣고 있었지만 사실 예산에 대해서는 잘 몰랐었다. 그냥 정부에서 쓰는 돈 정도로만 생각했고 주민참여예산제도는 그냥 잘 아는 사람들만 하는 그런 건가 싶었다. 이번 강의는 좋은예산센터의 최인욱 사무국장님께서 강의를 해주셨는데, 전문가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강의였다. 먼저 예산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셔서 ‘예산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강의를 해주셨다. 대학 수업에 온 것 같은 이론적인 강의였지만 예산에 대해 배우고 싶은 마음덕에 흥미있게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예산의 정의, 절차, 구성부터 시작해서 정부재정, 지방재정의 규모와 구조, 그리고 예산서 보는 방법같은 것들을 강의해주셨다. 이러한 예산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토대로 ‘지방재정의 위기’에 대해서 말씀해주셨다. 한 가지 사례로 일본의 ‘유바리 시’를 들어주셨는데 이 사례가 너무 웃겨서 집에 가는 길에서도 생각나서 웃었다. 탄광도시로 발전했으나 폐광 이후 쇠락한 도시인 ‘유바리 시’는 ‘탄광에서 관광으로’라는 슬로건을 걸고 개발사업 등에 몰입했다. 세입이 감소함에도 빚을 내고 민간사업을 인수하며 무리한 투자를 지속했고 재정 악화를 감추려 분식회계를 하기도 했다. 점점 재정상태는 악화되어 갔고 2006년 6월 파산을 선언하게 되었다. 이러한 ‘유바리 시’ 파산의 원인으로는 24년간 시장의 권력 독점, 지역의 견제역량 부족, 장기적 안목의 부재 등이 있었다고 하셨다. 중앙정부는 이렇게 파산한 ‘유바리 시’에 개입하게 되었고 공무원 감봉, 인력 감축, 공공서비스 축소, 세금인상 등으로 시의 파산의 부담을 주민들이 지게 되었다. 이 부분이 엄청 재밌었는데, 유바리 파산 후 유바리 다큐멘터리 투어라는 것이 생겼다. ‘이렇게 하면 파산한다’라는 걸 주제로 세계 여기저기서 견학을 온다고 한다. 정말 아이디어 하나는 놀라웠다. 그리고 ‘유바리 후사이’라는 캐릭터로 ‘돈은 없어도 사랑이 있다’는 메시지로 대회에서 수상도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사례로는 태백시가 있다. 태백시가 유바리 시와 많이 닮았다는 점이다. 과거 탄광도시다가 관광으로 부흥을 시도한 것도 같고 오투리조트 같은 대형 여가 시설을 만들기도 했다. 그로 인해 어마어마한 부채를 짊어지게 됐고 현재도 미래가 불투명 하다는 것이다. 재정 악화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도시는 태백 뿐만이 아니다. 2010 성남시는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기도 했고 2012년엔 인천, 화성, 천안이 분식회계 지자체로 적발되기도 했다. 근데 이런 예산과 재정에 관련된 것은 구조적인 문제를 띄고 있다. 첫 번째로 수입을 늘릴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지자체가 지출을 조절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또 설상가상으로 감세정책을 통해 세수가 크게 줄었고 세계 금융위기의 영향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지방재정 개선을 국가 차원에서, 지방정부 차원에서 해법에 대해서 설명해주셨다. 그리고 최근에 시행된 주민참여예산제도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모범사례로써 2011년 총리상을 받은 서대문구의 사례, 2012년 대통령상을 받은 은평구의 사례, 광역차원에서 최초로 적극 시행한 서울시의 사례를 보여주셨다. 이러한 제도들을 통해 재정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납세자로써 개인적인 공부를 통해 예산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균형잡힌 시각, 그리고 적극적인 참여의지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개인적으로 이번 강의는 강력한 메시지라기보단 예산에 대해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예산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다양한 사례들을 접하면서 나 스스로도 좋은 사례가 될 수 있게 지역에서 노력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후에 기회가 된다면 살고있는 구에서 주민참여예산 위원에 신청해볼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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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으로 이해하는 정치사상 - 근대편 | [고전으로 이해하는 정치사상-근대편] 1강, 마키아벨리-왜 도덕과 정치가 분리되었을까? | 기라 | 2013.11.14 | ||||
[고전으로 이해하는 정치사상-근대편] 1강(11/11), 마키아벨리-왜 도덕과 정치가 분리되었을까? 강의소개 > 클릭 ![]() 쌀쌀한 날씨가 무색하게 오늘 느티나무홀에는 뜨거운 기운이 돌았습니다. 김만권 선생님의 열정적인 강의는 물론, 홀을 꽉꽉 채우다 못해 의자만 놓고 앉은 수강생들의 공부 열기도 한 몫 단단히 했죠. <여러분들이 자신을 소개해 준 키워드입니다> 1. 이름(별칭), 2. 나를 오늘 웃음짓게 한 일, 3. 강의에 대한 기대(목표)
그리고 김만권 선생님의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한 시간 동안은 근대에 대해 고찰하며 강좌 커리큘럼을 훑어보았고, 나머지 한 시간 동안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중심으로 정치에서 도덕이 분리되는 이유를 살폈습니다. 1. 근대, 신이 사라진 시대의 가치 모든 견고한 것들은 공기 속으로 녹아들고, 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에 있는 구절입니다. 김만권 선생님은 이 글귀가 근대의 본질을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하십니다. 2.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 15세기 말과 16세기 초의 어지러운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마키아벨리는 널리 오해받고 있는 근대사상가들 중 한 명입니다. 마키아벨리의 대표 저작 <군주론>에서 정치가의 속임수나 간계를 허용함으로써 부패와 폭력의 여지를 남기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후의 저작인 <로마사 논고>를 보면 실제로 마키아벨리는 공화주의자였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3. 왜 <군주론>을 썼을까 공화주의자인 마키아벨리가 1인의 절대군주를 지향하는 듯한 <군주론>을 쓴 이유는 크게 네 가지로 풀이되는데 꽤 흥미로워서 후기에도 남깁니다. 4. 포르투나(fortuna)와 비르투(virtú) 운명이 우리가 하는 일의 절반을 지배하고 있다면, 나머지 절반은 인간이 통제할 수 있다. 포르투나는 운명의 여신입니다. 고대 사람들은 운명을 통제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았고, 대신 그를 당당하게 받아들임으로써 인간이 위대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나 <오디세이>를 보면 운명을 알면서도 피하지 않은 채 위험에 뛰어든 용기 있는 자들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5. 마키아벨리 군주론의 본질 예측할 수 없으나 저항하라, 그것이 인간의 자유다 포르투나가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는 나쁜 운명이 닥쳐와도 이를 잘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 훌륭한 군주일 것입니다. 절반의 가능성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군주 말입니다. 곧 '변화하는 환경을 끊임없이 살피고 적응'하는 것이 좋은 정부 또는 지도자의 비르투입니다. 6. 진보와 도덕주의 마키아벨리가 말한 정치의 목적은 ‘영광의 달성’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 즉 변화에 대응하는 과정에 거짓말이라던가 속임수라던가 엄한 형벌이라던가 하는 것들이 들어가도 괜찮습니다. 이 지점에서 정치와 도덕이 분리됩니다. 후기 마무리로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인 '임시야간숙소'를 떠올려 봅니다. 우리가 읽은 것처럼 임시야간숙소는 도덕적인 방편이긴 하나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습니다. <마음에 와 닿았던 질문>
<강의에서 들었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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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 사건으로 보는 한국근현대사Ⅱ | [한국근현대사] 5강, 권력을 향한 돌멩이질 : 이기붕과 김주열 | 김혜수 | 2013.11.14 | ||||
3강 후기 보기 >> 클릭 4강 후기 보기 >> 클릭 6강에서는 1950년대 이후 시대상황에 대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비교적 최근과 가까운 시점의 사건과 인물에 대한 것이어서 더욱 재미있었던 것 같은데요~!(그나마 조금 이해하기 쉬운 부분이 나와서 좋았어요!!!^^) 먼저, 격동의 시대에 대해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958년 경향신문 폐간, 보안법 파동 1959년 자유당 선거자금 모금 1960년 민주당, 부정선거 반대 운동(마산에서 시위를 시작) 3.15 부정선거(“부정선거무효”라는 시위 구문이 “이승만하야”로 바뀜) 4.18 고대생시위 4.19 비상계엄선포 4.25 교수단 데모 4.26 이승만하야 4.28 이강석(이승만의 양자), 이기붕, 박마리아, 이강옥 가족이 모두 자살 5.29 하와이 망명 여기서 이기붕(1896~1960)에 대해 좀 더 살펴보면, 그는 해방이후 이승만의 비서를 지냈으며, 자유당을 창단하였다. 1956년에는 자유당 공천으로 부통령에 입후보하였으나 낙선하고, 1960년 대통령선거 때 공개·부정 선거로 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4·19혁명이 일어나 결국 부통령을 사임하고, 경무대에 피신에 있다가 장남이 권총을 쏘아 전 가족이 자살하고 만다. 권력을 향했던 돌맹이질이 결국 자신에게로 되돌아간 것 같네요...! 수업의 주제가 이기붕과 김주열이니, 김주열에 대해서도 알아봐야겠죠? 그는(1943~1960) 1960년 마산상고 1학년의 몸으로 3.15 부정선거에 항거하는 데모에 참가했다가 행방불명, 4월 11일 왼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시체로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됩니다. 이 사건이 불씨가 되어 민중의 분노가 다시 터졌고 결국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게 된 것이죠. 저는 이렇게 안타까운 사건을 마주하게 될 때면 항상 ‘나라면 어땠을까, 데모에 참가했을까?’ 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글로 읽기는 쉽지만 정말 그 상황 속에 처해있다면 그저 당연한 것이 아니기에 한 번 상상해 보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그렇게 어려운 결정을 한 사람이 처한 상황이, 그 시대가 더욱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부정선거로 인한 국민의 분노는 당시의 시대상황인 것 같지만은 않기에 우리는(특히 저는) 역사를 배우고 그들을 기억해야만 할 것입니다.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럽게 수많은 희생으로 지켜낸 민주주의를 우리는 왜 또다시 위협받아야 하는 것일까요? . . . 다시 지켜낼 수도 있으리라 믿습니다. Q&A 시간에는 전교조 불법화의 영향에 대한 것과 독립운동/민주화운동이 근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내용을 언급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럼 다음주에 만나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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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민정치학교Ⅱ – 민주주의의 새로운 실험, 생활정치 | ['나'의 시민 정치학교Ⅱ] 4강, 지역 생활정치의 현실 | 미요이 | 2013.1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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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 사건으로 보는 한국근현대사Ⅱ | [한국근현대사] 4강, 전장의 민중 : 금순이는 어데로 가고 | 김혜수 | 2013.11.7 | ||||
3강 후기 보기 >> 클릭 굳세어라 금순아 - 월남과 피난 : 전쟁폭격을 피해서 내려간 사람들, 피난민/이산가족 - 월북과 납붑 : 단장의 미아리고개 - 국군포로 죽어간 민중들 - 평화에 대한 개념 -> 군대를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문화 - 보도연맹원 학살 ◆ 보도연맹 사건 :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은 초기 후퇴 과정 중 ‘보도연맹에 가입된 사람들이 조선 인민군이 점령한 지역에서 협조할 것.’이라는 의심을 했다. 보도연맹원이나 양심수가 북한과 내응하고 뒤에서 배신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우려한 대한민국 정부와 대한민국 국군(주로 헌병대), 경찰 또는 교도소 교도관들은 '북한군에 아직 점령되지 않고, 확보해두고 있는 남부 지역'의 보도연맹원들을 무차별 검속하고 즉별 처분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서북청년단같은 반공주의 성격의 극단적인 우파단체가 보조적인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에 보도연맹 학살사건은 우발적인 학살이 아닌 철저히 일관된 명령체계에 의해 자행된 조직적인 학살이었다. ※ 위키백과 참고
- 진주외공리 ‘사라진 사람들-1951년 외공리’ 는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에 관한 진상규명의 유형 속에 철저히 예외적 사건에 속하며, 국가차원의 그 어떤 조사자체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산청군 외공리 사건에 대한 전말을 밝히고자 하였다. 좀 더 생각해봐야 할 문제(키워드) 국가보안법, 빨갱이콤플렉스, 과거청산, 월북 살아있는 것이 역사,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 전쟁 이라는 말로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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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 사건으로 보는 한국근현대사Ⅱ | [한국근현대사] 3강, 계급과 민족, 그리고 좌우합작 :박현영, 김일성, 여운형 | 김혜수 | 2013.11.7 | ||||
안녕하세요. 인물과 사건으로 보는 한국근현대사∥ 의 자원활동가입니다. 인사가 늦어져서 너무나 죄송합니다. 앞으로 강의 후기를 부지런히! 열심히!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10.24(3강)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도록 하겠습니다. <계급과 민족, 그리고 좌우합작 :박현영, 김일성, 여운형>이라는 주제로 수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수업내용을 다시 한 번 살펴보기 전에, 근현대사 강의를 2학기 째 수강하고 있는 저를 항상 따라다니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바로 수업내용이 항상 새롭다는 것인데요, 좋게 말하면 새로워서 흥미롭다는 것이고 다른 쪽으로 생각해보면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름 사회과목을 제일 좋아하고 역사도 잘했던 것 같은데...저는 왜 수업시간 마다 처음 듣는 얘기로 가득한 걸까요? 혼자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고등학교1학년 이후로는 역사를 접한 기억이 없던 것이었습니다. 수능을 볼 때 역사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모를 수 있나 싶기도 하지만, 지금이라도 하나하나 알아갈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고 기쁜일인지요! 서론을 이렇게 길게 말하는 이유는, 그래서, 제가 아는 것이 너무 없어서 수업내용을 충실히 정리하여 옮기지는 못하겠고 저에게 있어 인상 깊었던 것, 중요한 것, 앞으로 생각해 볼 점 등을 위주로 후기를 작성하겠다는 말을 조심스레 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정말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
1. 김일성(1912~1994) 과 조선인민혁명군 김일성의 연혁을 살펴보며, 그가 어떤 생애를 살았는지, 어떻게 신화가 제작 되었는지 등 배울 수 있었습니다. 민족주의와 기독교의 영향, 중학생 때부터 중국에서 활동 1931년 중국공산당에 가입 1936년 조국광복회 조직 1937년 보천보 전투 ◆ 보천보 전투 : 중일전쟁 직전 함경남도 갑산군 혜산진 보천보에서 동북항일연군 항일군이 일제 관공서를 공격 후, 포고문과 격문 살포한 사건 -> 김일성의 존재를 알리고 신화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됨, 중국공산당 내 새로운 부대 대장 1945년 조선공작단 ◆ 조선공작단 : 동북항일연군에서 활동하던 세력 가운데 일본군의 공세로 1930년대 말부터 1940년대 초에 소련 지역으로 피신한 이들로 88여단이 구성되었다. 소련은 1945년 독일이 패배하고 일본제국의 패망이 임박하자 88여단 내에 있던 조선인들로 ‘조선공작단(단장: 최용건)’을 결성 하고 유사시 입북을 준비하게 하였다. 이때 김일성은 동북항일연군교도려단 조선공작단 정치군사 책임자였으며, 뒤에 소련군 소좌로 승진했다. /소련군과의 연합작전
◆ 민생단 사건 : 1930년대 간도 지역에서 수많은 조선인 항일운동가들이 민생단과 관련된 일본 첩자라는 혐의를 쓰고 중국공산당에 의해 체포, 살해된 사건이다.
2. 박헌영(1900~1955) 1925년 조선공산당 창립 : 1925년 조직된 우리나라 최초의 공산당. 러시아혁명의 성공은 우리나라 독립운동에 큰 영향을 미쳐 사회주의 사상이 적극 유입되고, 윌슨 미국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와 파리 강화회의 결과에 실망한 독립운동세력의 일부는 약소 피압박민족의 해방투쟁에 적극적인 코민테른에 기대를 걸면서 그 지원 하에 독립을 쟁취하고자 했다. 1946년 남조선노동당 조직 : 1946년 박헌영(朴憲永)을 중심으로 11월 조선공산당, 조선인민당과 남조선신민당(여운형이 창단) 3당이 합동하여 남한에서 좌익정당들은 세력을 재정비하기 위해 결성했다. ◆ 1945년 북조선 노동당 창당 : 강령으로 민주주의적 조선자주독립국가 건설, 일본인 ·민족반역자 ·지주의 토지몰수와 토지 없는 농민에게 무상분배[토지개혁], 일본인 및 민족반역자 소유의 공장 ·광산 ·철도 ·운수 ·통신기관 등의 국유화, 8시간 노동제 실시, 여자들에게 남자와 동등한 임금 지급 등을 내걸었다. 위원장에 김두봉, 부위원장에 김일성, 허가이가 선출되었다. ※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
김일성이란 인물과 당시 북과 남의 시대상에 대해 자세히 살펴 볼 수 있어 유익한 강의 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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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민정치학교Ⅱ – 민주주의의 새로운 실험, 생활정치 | ['나'의 시민 정치학교Ⅱ] 3강, 나의 필요가 정치와 만나는 순간 | 장경환 | 2013.11.4 | ||||
[나의 시민정치학교Ⅱ] 3강(10/29), 나의 필요가 정치와 만나는 순간 강의소개 보기 >> 클릭 1강 후기 보기 >> 클릭
2강 후기 보기 >> 클릭
이번 3강에서는 ‘나의 필요가 정치와 만나는 순간’이라는 주제로 생활의제가 어떻게 정책으로 반영되고 결정되는지에 대해 서강대학교 현대정치연구소에 계신 서복경 선생님께서 강의를 해주셨다. 처음엔 수강생들의 관심사들에 관해서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1. 현재 내 생활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무엇인지? 2. 이 문제는 어떤 정부정책이 바뀌면 해결될 수 있을까? 3. 정책변화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떤 과정이 필요할까? 4. 이 문제는 언제쯤 해결이 가능할까? 위 문제들에 대해서 각자 종이에 적어보면서 강의를 계속 들었다. 그리고 생활정치란 정의하기 나름이지만 우리의 필요가 정치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가 중요한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다. 지난 두 번의 강의가 생활에 관련된 내용이었다면 이번 강의는 중앙정치가 유권자들의 삶의 문제를 어떻게 다뤄왔는지,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법의 개정과정이나 역사에 관한 강의형식이어서 평소에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재밌게 들을 수 있었다. 먼저 선생님께선 어르신들은 어떻게 “기초노령연금을 받게 됐는가“에 대한 역사적인 부분을 강의해주셨다. 기초노령연금은 현행제도이고 국가재정으로 지급하고, 65세 이상, 하위 70% 노인들에게 10만원을 지급하는 연금이다. 이 연금은 자신의 보험료로 연금을 받는 국민연금제도를 보완하는 연금제도이다. 기초노령연금의 제정과정은 1988년 첫 시행되었고 IMF를 거쳐 구조조정이 단행되고 2000년부터 우리나라의 노인인구가 7.1%를 넘어가면서 고령사회로 진입하게 되었다. 2002년엔 국민연금이 4-50년 뒤에 고갈될 것이라는 10대 의혹이 확산됐다. 그 후 2003년에 국민연금제도의 정상화를 위해 노무현 정부가 국민연금제도 개정안을 제안했다가 무산되었고 2004년에 한나라당이 국민연금제도를 보완하기 위한 기초노령연금제도의 도입을 제안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07년 기초노령연금법과 국민연금법의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게 되었고 그것이 이어져 현행제도가 되었다. 이러한 제정과정에 대한 설명 후 ‘한나라당이 기초연금제를 도입했던 이유’에 대해서 말씀해주셨다. 2002년 대선 토론 때 국민연금에 대한 고갈 의혹에 대해 당시 노무현 후보는 국민연금을 감액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반면 이회창 후보는 국민연금 감액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첨예한 대립 가운데 노무현 후보가 당선됐고 2004년 총선때 탄핵의 역풍으로 열린우리당이 제 1당이 됐다. 대선에서 패배하고 총선에서도 수세에 몰린 한나라당 측은 2002년 대선에서 65세 이상 국민들에 대해 잃어버린 100만 표를 절치부심하는 뜻으로 되찾기로 결심했다. 그 결과 2004년 12월 기초연금제도 도입을 주장했다. 이 기초노령연금의 사례는 사회집단의 선거 득표파워가 정책으로 연결된 사례라고 설명해주셨다. 보통 득표파워가 꼭 정책파워로 이어지지는 않는데 말이다. 65세 이상의 인구가 많아서 노령연금이 생긴게 아니다, 즉 머리수가 많다고 꼭 그것이 정책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 머리수가 자발적이든 동원된 것이든 조직되어있어야 한다. 이 사례에서 65세 이상의 노인들은 자발적으로 조직됐다기 보단 동원된 집단이었다. 그리고 그 노인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조직하는 데 큰 공을 세운 건 대한노인회였다. 생활의제가 정책으로 연결된 사례인 기초노령연금이 아쉬웠던 건 자발적으로 조직된 집단이 아니었다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동원되지 않은 자발적으로 조직되어야되고 집단적으로 원하는 게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모인 머리수가 정책형성에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강의내용의 중심이었다. 두 번째로는 전교조가 법 밖으로 쫒겨난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주셨다. 1989년 결성되서 불법 노조형식으로 유지되었던 전교조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OECD에 가입할 때 OECD가 교사/공무원의 결사의 자유를 요구한 것이 계기가 돼서 1999년 교원노조법으로 인해 합법화되었다. 그 후 이명박 정부 때 전교조 규약계정을 요구했고 박근혜 정부 때 대통령 령 9조 2항에 의해 설립 신고서가 반려되었다. 즉, 전교조를 법외단체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에 대해 OECD가 왜 교사 공무원 결사의 자유를 요구했는지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교사 공무원 결사의 자유는 사회결사의 자유의 바로미터가 되기 때문이고 결사의 자유는 그 사회 민주주의 질의 바로미터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익/견해에 따른 결사체는 민주적 다수형성의 뿌리가 되기 때문에 이익집단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원되지 않은 자발적 결사가 가능해야 민주적이고 안정적인 다수형성이 가능하다는 말씀도 해주셨다. 1,2강을 통해서 생활정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포괄적인 설명을 들었다면 이번 3강에서는 생활정치가 실제 중앙정치와 어떻게 연관될 수 있는지 그리고 결사체에 대한 의미와 자발적인 결사체가 어떤 의미에서 중요한지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선생님의 강의를 마치고 위에서 얘기했던 1번부터 4번까지 내용을 토대로 테이블 별로 얘기를 나눴다. 개인적으로 테이블 토크를 하면서 과연 정책이 내 삶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라는 약간은 회의적인 생각도 해봤다. 글 : 자원활동가 장경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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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민정치학교Ⅱ – 민주주의의 새로운 실험, 생활정치 | ['나'의 시민 정치학교Ⅱ] 2강, 생활정치의 쟁점과 과제 | 미요이 | 2013.10.31 | ||||
[나의 시민정치학교Ⅱ] 2강(10/22), 생활정치의 쟁점과 과제 강의소개 보기 >> 클릭 1강 후기 보기 >> 클릭 ![]() 오늘은 ‘생활정치의 쟁점과 과제’라는 주제로 서원대 사범대학의 정상호 교수님이 수업을 해주셨다. 나는 첫 수업 때 빠졌던 터라 생활 정치에 대해 어느 정도의 느낌만 가지고 있었는데, 저번 시간과 다르게 이번 시간에는 좀 더 학문적으로 주제에 대해 접근하는 것 같았다. 한국의 풀뿌리 민주주의와 관련된 여러 자료들을 제시하면서 선생님은 다음과 같은 설명을 하셨다. <지방정치, 생활 자치에 대하여> 1. 2004년 1월 법 시행 이후 현재까지 8번의 주민투표가 시행될 만큼 그동안 법적·제도적 측면에서의 지방자치제도의 진전이 있었다. 2. 브라질로부터 도입한 주민참여예산 설정에 있어서 주민들의 더 많은 참여가 필요하다. 3. 그러나 지방정치의 정당정치화, 미약한 지방분권, 여전한 무능과 부패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 또한 실질적인 권한 부여보다는 단순한 의견수렴에 치중한 주민참여예산도 문제. 4. 생활정치는 노동계급이나 국민이 아닌 새로운 정치적 주체로서 ‘성찰적 시민’을 만들어낸다. 또한 기존에 간과되었던 정치적 의제와 영역을 새롭게 부각시키고 지역 공동체에 기반한 주민들 간의 수평적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생활정치 모델의 과제, 풀뿌리 생활경제와 2014년 지방선거> 1. 풀뿌리 생활경제는 비가격적 요소인 사회적 요소과 강화되는 생산과 소비를 통해 기존 시장에 대한 의미변화를 가져온다. 2. 자본 중심의 세계경제보다는 사람 중심의 지역경제가 더 나은 세계화의 토대라고 보는 관점. 3. 경제는 원래 ‘사회적’이었다는 개념적 접근 4. 내년이 선거인데도 불구하고 지방선거의 ‘정당공천제’ 논란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음. 5. 이제는 외국의 견학을 넘어 우리만의 자생적 마을 모델을 만들어야 함. ![]() 설명이 끝난 후 각 조는 수업내용을 주제로 토론을 하며 몇 가지 질문들을 준비했다. 10대와 고령화 인구가 서로를 상호보완하며 함께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 아파트 동 대표를 중심으로 구성되는 한국형 풀뿌리 민주주의, ‘생산’이 없는 도시로서의 서울에서 소비자로서의 서울 시민의 특성을 잡아보는 것, 대학교 안에서의 풀뿌리 민주주의, 사회적 기업들을 시민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축제, 지방선거제도 확립을 통한 생활정치의 한국화, 토착화 등 생활정치와 관련된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다. 이에 대해 답변하면서 선생님은 이 강좌를 수료하기 전 까지 ‘자신의 지역에 맞는 5대 생활정책’을 만들어 보내달라는 숙제를 남기시고 수업을 마무리 하셨다. 아직 대학생인 나에게 생활정치는 크게 와 닿는 무언가가 아니다. 선거 경험도 한 번밖에 없을뿐더러 꽉 채워진 학교 일정 때문인지 지역 중심의 활동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노원구에 거주하는 나는 동네 구석구석에 여러 가지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들에 관련된 홍보물이 붙어있는 것을 보면서 ‘이런 것들이 운영되고 있구나.’ 하고 뿌듯해할 뿐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우리 과 과장오빠가 나에게 학과 행사에 동참해달라는 것도 문자를 보내는 것도, 아파트 동장 아저씨가 놀이터를 주차장으로 바꾸는 것에 대해서 주민투표를 받았던 것도 하나의 생활정치인 것 같다. 법안 발의 등의 손에 잡히지 않는 큰 차원의 정치보다 생활정치는 좀 더 우리의 일상과 맞닿아있고, 그렇기 때문에 더 깨끗하고 시민 중심적으로 운영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오늘 강의를 들으면서 앞으로 듣게 될 수업들에 대해 더 많은 기대를 하게 되었다. 또 선생님이 던져주셨던 숙제(5대 생활정책)를 수업을 듣는 나머지 기간 동안 고민하게 될 것 같다. 글 : 자원활동가 전미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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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종교의 이해Ⅱ | 세계종교의 이해2를 듣고 | 오하나 | 2013.10.30 | ||||
오강남 선생님께 선생님, 매주 월요일 저녁마다 좋은 이야기를 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다양한 종교를 간략하게나마 소개받으면서 시공간적 태생이 서로 다른 종교 모두가 결국 어떤 '하나'에 가까워지기 위해 고뇌한 인간들의 정수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님의 유머와 유머 사이의 쉼표 같았던 순간들도 기분 좋았습니다. 소통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이 강의를 위해 힘써주신 관계자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이 강의를 수강하진 못했지만 무척이나 듣고 싶어 했던 친구의 이야기를 남깁니다. ------------------------------------------------------------------ ㅎㄴ가 오강남 선생님의 강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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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종교의 이해Ⅱ | [세계종교의 이해Ⅱ] 8강<노장와 장자 그리고 신도와 동학> 종강후기 전합니다^^ | 느티나무 | 2013.10.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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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어렸을 때 부터의 ‘의문’ ... 종교에 대한 모든 의문들이 많이 풀렸습니다. 건강하세요.
-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 동학에 대한 새로운 발견. 동학 공부를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장자도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듭니다. 선생님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 여러 종교에 대한 깊이 있는 설명, 감사하게 잘 들었습니다.
- 감사합니다. 뭔가 정학하게 딱 집어서 말할 수는 없겠지만 뭔가 외연이 넓어진 느낌입니다. 다시 한번 만나 뵐 수 있는 강좌가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장자는 꼭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더 자유로워지는 그날까지 많이 이끌어주세요.
- 너무 좋았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 그 간 유연하고 유쾌한 명강의! 감사합니다. 넓어진 느낌 자축합니다!
- To. Sir ... With love & respect!
- 여러 종교에 대한 흥미와 자극을 환기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사유를 확장시키는데 앞으로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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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종교의 이해Ⅱ | [세계종교의 이해Ⅱ] 7강, 유교와 신유학 | 기라 | 2013.10.28 | ||||
1강 후기 보기 > 클릭 2강 후기 보기 > 클릭 3강 후기 보기 > 클릭 4강 후기 보기 > 클릭 5강 후기 보기 > 클릭 6강 후기 보기 > 클릭 오늘은 지난번의 유교 강의에 이어 공자를 마저 배우고, 차례로 맹자, 신유학까지 함께 공부했습니다. 1. 공자의 의(義)와 맹자의 사양지심(辭讓之心) 공자가 말한 ‘의’는 옳은 일이면 상관하지 않고 하는 태도입니다. 이득을 추구하는 태도인 ‘이’와 대조되는 개념이죠. 교수님께서는 요즘은 다들 ‘이’를 따져서 문제라고 하셨습니다. ‘이’를 요즘 말로 바꾸면 ‘경제’잖아요. 우리는 자본주의, 경제제일주의를 당연하게 여기고 ‘이’를 따지는 데 익숙한 나머지 그 폐해에 대해서는 간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생각하면 경우에 상관없이 자연히 ‘의’가 상하게 됩니다. 교수님께서는 그 이치를 나무 베는 것에 비유해서 풀어주셨는데 참 잘 와 닿더라고요. 맹자 또한 양혜왕이 나라에 무엇이 이로울지 말해 달라 하자 ‘왜 이를 말하느냐’고 꾸짖었습니다. 왕이 이를 말하면 신하도, 백성도 할 것 없이 이를 추구하게 될 것이고 나라가 어지러워질 것이라면서요. 이러한 유교 사상 때문에 전통적으로 우리나라는 사농공상이라 하여 상인을 가장 천하게 보았던 것이고, ‘이’를 추구하는 자는 도둑이라는 말까지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지금은 시민, 공무원, 대통령 할 것 없이 ‘이’를 말하지, ‘의’를 말하는 사람이 드뭅니다. 교수님께서는 각 나라의 지도자들은 남의 나라, 내 나라 할 것 없이 나라를 훔쳐 먹고, 성직자들은 사람의 마음을 훔쳐서 먹는다고 지적하셨습니다. 공자는 “언제나 사람의 인격을 목적으로 대하고 수단으로 대하지 말라” 했거늘 이 세상에는 물질을 갖기 위해 사람을 이용하는 일이 너무 비일비재합니다. 저는 오늘날의 사양지심이 드문 세태 또한 ‘이’를 추구하는 태도와 연결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양지심은 유교에서 중시되는 맹자의 '사단'의 세 번째 덕목입니다. 사양하고 양보할 줄 아는 마음이죠. 교수님께서는 우리나라에는 이제 사양지심이 없다며 아는 사람끼리만 양보하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고 비판하셨습니다. 남을 모르고, 내 인격은 뒷전으로 한 채 이익 챙기는 데 급급한 현대인들의 생활방식에서는 양보와 사양을 기대하기가 힘들겠죠. 2. 고래도 춤추게 하는 성선설, 노력하도록 채찍질해주는 성악설 맹자는 성선설을 말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반대로 순자는 성악설을 가르치죠. 중학교 때 친구들과 성선설이냐 성악설이냐를 놓고 옥신각신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데, 교수님께서는 이 둘이 궁극적으로는 같은 바를 지향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소인에서 군자, 성인으로 ‘변화’하는 것이지요. 단지 변화를 위한 성선설의 방법과 성악설의 방법이 다른 겁니다. 맹자의 성선설은 ‘너는 군자의 기질이 있으니 최선을 다해 성인으로 거듭나거라’하면서 칭찬을 통해 동기부여를 합니다. 순자의 성악설은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너는 소인배에 불과하니 정신 차리고 열심히 노력해서 위대한 성인이 되거라’는 식으로 자극하여 변화를 유도합니다. 오강남 교수님께서는 요즘의 트렌드는 맹자의 성선설에 가깝다고 하시네요. 제가 보기에도 기왕이면 좋은 말로 격려를 해주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3. 우리나라의 보배, 신유학 신유학은 유교 2탄이라기 보다는 불교, 도가 사상까지 아우르는 일종의 거대한 종합 사상체계입니다. 수, 당대를 지나 송대에 와서 일종의 유교 부흥 운동처럼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 지금 우리가 신유학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성인이 되기 위한 가르침을 모았다고 하여 성학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만주족의 청 왕조가 들어서면서 신유학의 계보가 거의 끊기다시피 했습니다. 대신 우리나라에서 주자학을 중심으로 계속해서 신유학이 발전할 수 있었고, 현재 한국은 유교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생활 속에 유교 전통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어떤 학자는 ‘한국에 이렇게 기독교인이 많은 게 부끄러운 거다’라고 까지 말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좋은 우리의 유교를 놔두고 왜 남의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냐는 거죠. 다소 과장된 표현이긴 하지만 유교를 청산해야 할 악습처럼 생각하는 현대인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말이기도 합니다. 남녀, 스승과 제자, 부모, 형제 등의 관계 간에 서열을 만든 것은 유교의 잘못된 형식주의입니다. 사실 유교는 ‘의’를 비롯하여 마음에 새기고, 머리에 담아두었다가 계속해서 꺼내보아야 할 좋은 가르침을 듬뿍 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세계에 공헌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신유학을 연구하는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저부터도 그동안은 ‘유교’하면 고리타분하다거나 딱딱하다는 인상부터 떠올렸으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유교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늘은 강의 내용 중에서도 몇 가지만 추려서 후기를 썼습니다. 맹자의 다른 가르침들이나 신유학의 구체적인 내용, 도교 이야기를 빠뜨려 성에 차지는 않지만 간결한 후기도 괜찮지요? 사실 이 게 저의 마지막 후기입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다음 주에 있을 마지막 강의에는 갈 수가 없어서요. 성대한 뒷풀이도 있을 텐데...... 씁쓸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도교를 마저 배우고 동학에 대해서도 알아볼 수 있다고 하니 다른 분들이 잘 들으신 뒤에 저 대신 후기 좀 올려주세요.ㅎㅎ 저의 굴곡의 2013년을 세계종교 강의로 어루만져주신 오강남 교수님 감사드립니다! 강의를 위해 힘쓰신 참여연대 분들, 함께 수업을 들은 다른 수강생 분들도 모두 수고하셨어요. 또 만나요. 언젠가, 어딘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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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종교의 이해Ⅱ | [세계종교의 이해Ⅱ] 6강, 자이나교와 시크교, 동아시아의 종교. | 기라 | 2013.10.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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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 2강, 불교 3강을 지나 벌써 여섯 번째 강의에 이르렀습니다. 오늘은 공자의 말씀과 제자들과의 대화를 모은 논어 몇 구절로 시작해서 인도의 자이나교와 시크교, 동아시아 종교의 특징을 공부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유교에 대해 진도의 절반 정도를 나가고 나니 두 시간 반이 꽉 차더군요. 오늘의 강의 후기는 강의 내용보다 강의를 들으며 제가 생각한바 위주로 적어나가려 합니다. 자세한 강의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오강남 교수님의 저서 <세계 종교 둘러보기>를 참고하세요. 그동안의 제 후기보다 잘 정리되어 있답니다. ^^ 1. 인도의 종교, 자이나교와 시크교 자이나교와 시크교 파트에서는 ‘아힘사(불살생)’ 이야기를 하고 가겠습니다. 아힘사는 인도 대부분의 종교에서 이야기하는 가치입니다. 특히 자이나교는 코로 들어가는 벌레가 없도록 마스크를 쓰고, 밝혀 죽는 생명이 없도록 빗자루를 쓸며 길을 지나다니기도 할 만큼 아힘사를 철저하게 실천한다고 합니다. 일찍이 우리는 간디가 아힘사를 중시했다는 것, 슈바이처 박사가 생명 경외를 추구했다는 것을 배웠었죠. 둘 다 자이나교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인도 종교 중에서 유일하게 시크교만은 아힘사를 반드시 따를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신이 창조한 것 중에서 최고의 창조물이기 때문에 다른 동물들을 잡아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때 사회생태주의의 북친이 생각났습니다. 모든 생태주의자들이 동등한 생물권을 말할 때 북친 역시 ‘다른 생물들과 동등하게 보기에 인간은 너무 진화했다’고 말했거든요. 그러므로 북친은 인간이 환경을 파괴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다른 생물들을 돌볼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말하긴 합니다. 어쨌든 인간이 다른 생물들과 다를 바 없는 하나의 생명인가, 아니면 좀 더 특별한 의미를 갖는 창조물인가 하는 점이 불교에서도, 생태주의에서도 갈리네요. 답은 우리 각자의 판단에 맡기는 걸로 하겠습니다. 아힘사를 지켜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사람마다, 종교마다, 주의마다 의견이 다릅니다. 인간이 생태계의 먹이사슬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살생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 있을 수 있고, 그렇더라도 생명을 존중하고 아끼며 노력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을 수 있습니다. 단지 제 나름대로는 아힘사가 옳지만 나의 덕이 부족하여 실천에 어려움이 있을 따름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특히 요즘과 같이 비윤리적인 대량 살충·살육과 자연의 순환 고리에서 벗어난 공장형 축산업의 세상에서는 더욱 불필요한 살생을 경계해야 할 것 같아요. 교수님께서도 이에 대해서 꽤 시간을 들여 말씀해 주셨답니다. 2. 동아시아의 종교 동아시아는 예로부터 유불도, 또는 유불선이라 하여 서로 다른 종교들이 적대감 없이 공존했습니다. 1886년에 한국에 왔던 선교사 헐버트는 이렇게 말했죠. “사회생활을 할 때는 유교인, 철학적 사색을 할 때는 불교인, 그리고 문제에 부딪혔을 때는 영혼숭배자(무속인)가 된다." 잠깐 삼천포로 빠지자면 역시 비교종교학이 중요한 학문이네요. 헐버트가 종교들이 갈라져 싸우던 서양에서 자라난 외부인이기 때문에 동양 종교에 대한 이러한 관찰이 가능했을 겁니다. 전 대한민국 사람인데도 헐버트의 말을 듣고 나니 ‘아 그렇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전통적으로 조화를 이루던 동양인의 종교관은 서양의 종교관에 익숙해진 현대의 우리들에게 경종을 울립니다. 저번 강의 때 제 옆에 앉으셨던 분의 말씀이 기억나네요. ‘종교의 믿음에 매몰되지는 않지만 각 종교마다 우리보다 먼저 삶을 겪고 고민을 했던 위대한 성인들의 가르침이 있어 그 지혜들을 쏙쏙 뽑아내면 내 인생에 좋은 지침이 된다.’ 믿음이 꼭 하나여야 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세계 종교 강의를 들으니 모든 종교들이 훌륭한 가르침을 가지고 있고, 배울 점들이 있습니다.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해도 전체를 배척할 필요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자이나교의 천의파는 하늘의 옷을 입었다는 의미로 나체로 다닙니다. 저는 오히려 여기서는 참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천의파에서는 여자는 유혹자일 뿐 해탈에 이를 수 없다고 믿는다고 해서 실망스럽더라고요. 그렇다고 ‘천의파 나쁘다!’가 아니라 천의파에서 배울 점도 있지만 당시의 인도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받아들이는 게 옳은 것이겠죠. 동아시아의 종교들이 공통적으로 뿌리박고 있는 몇 가지 개념 중 하나인 음양도 동양의 조화로운 종교관을 잘 드러내줍니다. 음양은 우주가 음과 양의 상관관계로 이루어졌다는 믿음입니다. 우리도 잘 알다시피 음은 여성, 차가움, 어둠, 습함, 부드러움 등을 대표하는 원리이고 양은 남성, 더움, 밝음, 건조함, 강함 등을 대표하는 원리입니다. 언뜻 이분법적 사고가 아닌가 싶어도 음양의 원리는 두 가지가 상호작용하여 세상을 이룬다고 보는 조화로운 사고의 산물입니다. <그림 1>음양의 상징물. 흑과 백이 균형잡힌 모습으로 어우러져 있다.
3. 공자가 창시한 유교 공자는 겸손하게도 술이부작(옛날부터 내려오던 것을 그대로 전수할 뿐 새롭게 창작한 것은 없다)이라 했지만 그는 분명 유교의 창조적 전수자입니다. 우리들에게도 유명한 다음 글귀는 그의 삶을 집약하고 있다고 해요. 내가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고(지학), 삼십에 일어서고(립), 사십에 흔들림이 없어지고(불혹), 오십에 하늘의 뜻을 알게 되고(지천명), 육십에 하늘의 뜻을 쉽게 따를 수 있게 되고(이순), 칠십에 하고 싶은 바를 해도 올바름에서 벗어나지 않게 되었다(종심소욕불유구). -<논어> 2장 4절 누구나 다음과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왜 나는 이런 세상에 태어난 것일까.’ ‘이 세상의 근원은 어디일까.’ ‘가끔씩 괜찮고, 종종 힘들어야 하는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럴 거면 대체 누가 나에게 생명을 준 건가.’ ‘도대체 나 같은 인생이 있는 이유가 있긴 한가.’ 어릴 적 농담 삼아 생일축하 노래를 개사해서 부르던 <왜 태어났니> 노래(가사: 왜 태어났니 왜 태어났니 인구도 많은데 왜 태어났니)가 단지 재밌게만은 들리지 않는 순간이 있는 것이죠. 그럴 때 공자의 저 말이 큰 위로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법륜스님이 ‘이미 태어난 것을 어쩌겠느냐, 왜 사는지를 찾기보다는 어떻게 살지를 고민하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일단 ‘어떻게’를 위해 노력하다 보면 어느 순간 공자처럼 흔들리지 않는 때가 있고, 하늘의 뜻을 알게 되고, 하고자 하는 바를 해도 그 뜻에 거슬리지 않는 날이 오는 거라고 생각해야겠습니다. 인생 길게 봐야죠!ㅎㅎ 중학교 도덕시간에 저 글귀를 배웠던 거 같은데 그 때는 뜻도 이해 못하고 그저 외우기만 했네요. 이제 보니 위대한 스승 공자의 70년 생이 모두 녹아있는 말인데 말입니다. 그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는 유교에서 수없이 많은 덕목들을 이야기합니다. 그 중에서도 교수님께서는 핵심적으로 정명(正名), 인(仁), 의(義), 충(忠)과 서(恕)를 꼽아주셨는데 저는 특히 ‘의’가 좋더라구요. 의는 이(利)와 대조를 이루는 덕목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에 따라 판단한다면 군자는 ‘옳은 일인가?’를 묻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나에게 이롭든 아니든 실천한다는 것이죠. ‘군자는 의에 밝고 소인은 이에 밝다’ 이 말이 근 며칠 동안 시시때때로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라졌다 또 다시 떠오르곤 했습니다. 내가 얼마나 그동안 이를 따지던 인간이었나 하는 한심함과 함께 앞으로는 ‘옮음’을 굳건히 따르리라 다짐했습니다. 마침 진로에 대한 것이나 미래에 대해 많이 혼란스러웠었는데 이제 좀 간단해진 것 같아요. 옳은지 아닌지를 따지는 일만 해도 머리가 복잡하니까 옳은 길을 갈까, 이득이 되는 길을 갈까 가지고는 고민하지 않으려 합니다. 정명(이름을 바르게 한다)은 주어진 이름에 맞도록 행동하라는 뜻입니다. 전 사실 여기에는 첫째, 이름 중에는 내가 택하지 않은 것도 있고, 둘째, 나의 여러 가지 이름들에 주어진 역할들이 충돌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동의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 걸 사회학적으로 이야기하면 전자는 귀속지위, 후자는 역할갈등 쯤 되겠네요. 사람 나고 이름났지, 이름나고 사람이 난 건 아니잖아요? 공자가 말하고자 한 것을 제가 오해한 걸지도 모르지만 공자는 당시 신분, 나이, 지위 등에 따른 서열이 엄격하던 시대에 맞추어서 큰 혼란이나 문제가 없길 바라며 이러한 가치를 말한 게 아닐까 합니다. 인도 참 좋은 가치인데요, 사람됨을 의미합니다. 사람됨에 대해서는 공자의 대답도 늘 바뀐다고 하고, 쉽게 정의내리기 힘들지만 직(直)과 예(禮)를 두 가지 요소로 설명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직은 솔직하게 남을 속이지 않고 마음을 거짓 없이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고, 예는 그렇더라도 남에게 실례가 되지 않게끔 예의를 갖추는 것인데 이 둘을 균형 있게 유지해야 인입니다. 제가 이번 여름에 엄마와 크게 다투고 나서야 절실히도 깨달았던 것을 역시 수천 년 전부터 공자가 이야기하고 있었네요. 솔직한 것일 뿐이니까 괜찮을 거라는 생각에 속마음을 이야기한다 해도, 이해와 배려를 놓친 솔직함은 폭력에 가깝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맹자, 순자와 함께 유교를 마저 공부하고 노자, 장자가 있는 도교까지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그들의 인생은 우리에게 또 어떤 의미를 남기고 떠났을지 기대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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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민정치학교Ⅱ – 민주주의의 새로운 실험, 생활정치 | ['나'의 시민 정치학교Ⅱ] 1강, 내가 만드는 생활정치-왜 생활정치와 민주주의인가 | 장경환 | 2013.10.19 | ||||
[나의 시민정치학교Ⅱ] 1강(10/15), 내가 만드는 생활정치 - 왜 생활정치와 민주주의인가 강의소개 보기 >> 클릭
늘 정치에 대해 생각하면 답답한 마음이었지만 사실 정치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했다. 언제나 감정이 앞서기 마련이었고 제한된 신문이나 뉴스등 언론으로 접하는 정치가 전부였다. 그러던 중 이번 ‘나’의 시민정치학교Ⅱ는 제도적인 정치영역에서 특정인들만 할 수 있는 정치가 아닌 시민 누구나 할 수 있는 ‘생활정치’를 주제로 하고 있다는 것에 흥미를 가졌고 조금이나마 더 생각하고 실천하는 시민이 되고자 강좌를 신청하게 되었다. 1부 강의에서 하승우 선생님께서는 생활정치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다. 먼저 생활정치가 한국사회에서 등장한 맥락에 대해서 설명해주셨다. 우리는 한 가지 선입견에 매여 있는데, 그 선입견은 일제 식민지를 거치면서 정치과정은 일개 시민으로서의 나는 참여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학습된 데서부터 시작됐다고 하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치에 대해 생각할 때 대통령 이름만 생각하고, 누가 몇 년도에 뭘 했는지만 배워왔기 때문에 정치는 내가 개입해선 안되는 것처럼 생각한다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선입견을 벗어나고자 등장한 것이 생활정치라는 것이었다. 더 이상은 관(官)이 결정하고 서비스(service)를 주는 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생활정치인 것이다. 개개인의 시민들이 정치를 바라보는 관객이 아니라 주체라고 생각하는 생활정치는 현실정치의 대안이 아니라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으로써 가치가 있다고 하신 설명도 이어주셨다. 그리고 생활정치는 한국에서 어떻게 자리잡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도 이어주셨다. 한국에서는 생활정치임에도 생활이 강조되고 있고 생활정치가 제도정치로 이어져서는 안된다고 생각되고 있다. 이것은 생활정치의 제도정치 개입을 기득권이 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제는 지방마다 생활정치의 사례들이 있는데 사회를 바꾸지 못한다는 것이다. 원주의 사례를 언급하시며 시민들의 조직력이 지역사회를 바꾸지 못했다는 설명도 이어주셨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힘을 가졌다는 것을 잘 모른다. 이미 주민들의 힘에 대한 제도는 다양하게 갖추어져 있지만 그 제도를 쓸 수 있는 문화가 아직 갖추어지지 않았기에 그런 문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로부터 시작되는 필요와 욕구를 우리의 욕구로 조직할 수 있어야되는데 지금의 정치문화에서는 아직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에 조그만 경험들을 축적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하셨다.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바뀌지는 않는다. 사람들의 의식은 느리기 때문이다. 조금씩 경험을 쌓아가는 과정을 통해 시민들이 정치에 익숙해질 때 정치가 달라질 수 있지 않나 싶다. 그리고 그저 강의를 수강하고 공부할 생각으로 갔지만 그 곳의 분위기는 낯설었다. 1부 강의가 끝나고 다 같이 뒤로 나와 둥글게 서서 서로의 얼굴들을 익히고 옆사람과 손을 잡아보기도 하고 현실 정치에 대해 생각하면 어떤 느낌을 받는지를 몸이나 말로 표현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몇 번 경험을 해보신 분들은 자연스럽게 감정을 표출하기도 했고 처음인 사람들은 약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하지만 금새 웃음이 돌았고 몸도 풀고 자연스럽게 수강생들을 익힐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자리로 돌아가 강의를 신청하게 된 이유, 강의 계획 중 가장 기대가 되는 부분, 그리고 자신을 한 단어로 표현한 것을 쓰고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 2부 강의가 이어졌고 하승우 선생님이 생활정치의 영역으로 만들어나가고 있는 여러 모임들에 대해서 설명해주셨다. 개인적으로 모임을 만들어 나가는 중이어서 참고할 부분도 많았고 특히 모임을 이끌어 나가는 사람으로서 어떤 것을 중점으로 해야 하고 어떻게 구성원들을 조율할 수 있는지에 대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건 강의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인데 보통의 전달식 강의와는 다르게 수강생들이 참여해서 대화하고 문제의식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개인적으로 생활정치에 대한 경험이 있는지에 대해서 조별로 나누고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마지막으로 첫 강의를 수강하면서 느낀 건 ‘생활정치’에 대한 기대감과 일개 시민에 불과하지만 나도 할 수 있고,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다. 이어지는 다른 강의들도 기대가 된다.
글 : 자원활동가 장경환 / 정리 : 천웅소
<기내나누기 & 마음열기> 참여자들 발표내용 - 1.궁금함, 2.마을에서 논다, 3.빛 - 1.관심을 갖고 싶어서, 2.우리 동네 정치이야기, 3.변화 - 1.정치, 2.정당 지역 활동, 3.버티기 - 1.탈 뒷담화, 2.생활정치=지역?, 3.? - 1.관심/필요, 2.마을공동체, 3.활동가 - 1.실현/방법, 2.생활/의제, 3.나 - 1.정치에 관련해서 배우고 싶어서, 2.정당(지역단위정치)/예산, 3.학생 - 1.‘생활정치’의 본뜻에 절대 동감, 2.필요-욕구와 정치의 만남, 3.울림 - 1.시민 생활정치 참여 구체화, 2.나의 필요가 정치와 만나는 순간, 3.가을-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1.큰 그림, 2.공동체, 3.나무 - 1.공부, 2.생활정치, 그것이 궁금하다-생활정치의 쟁점과 의문, 3.평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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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투사 워크숍 - 꿈거울로 참나를 만나다 | [꿈 투사 워크숍] 1강, 꿈 작업 왜 할까? 꿈을 기억하는 요령과 기법 | 횬디 | 2013.10.15 | ||||
[꿈투사 워크숍] 1강(10/10), 꿈 작업 왜 할까? 꿈을 기억하는 요령과 기법 강의소개 보러가기 >> 클릭 오늘은 어떤 기분으로 아침을 맞이하셨나요? 쫓고 쫓기는 꿈에 밤새 시달린 날엔 하루 종일 찝찝한 기분을 갖기도 하고, 문득 스쳐 지나간 한 장면을 오래 동안 잊지 못하기도 합니다. 마음 한 켠으로는 이 꿈들이 나에게 어떠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고 느끼면서도, 일상에 쫓겨 흘려보내고 있지는 않나요? 10월 10일 진행된 꿈 투사 워크숍 첫 강의는 무의식과 대화하는 끈으로서의 꿈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졌습니다. 고혜경 선생님께서는 꿈은 끊임없이 의식세계와 무의식세계에 다리로서 작용을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의식의 세계에만, 물질세계에서의 풍요에만 집착해 더 큰 무의식의 세계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로인해 현대인들은 자기 자신과의 소통의 부재로 인한 정신적 빈곤에 아파하고 있습니다. 이는 근원적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합니다. 강의를 들으면서 저 또한 스스로의 그림자를 돌아보지 않는 삶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 잠이 많은 저는 꿈을 되새기기 보다는 자는 시간을 아까워하며 스스로를 혹사시키곤 했습니다. 그러나 잠이 단순히 육체의 회복을 넘어 무의식 속 깊은 나를 조우하는 시간이라면 그 의미가 달라지겠지요. 강의에서 정의 했던 꿈의 의미 중 가장 와 닿았던 것은 ‘신이 매일 밤 보내는 연애편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과 소통하기 위해 간절한 기도를 하면서 동시에 그토록 소중한 편지는 ‘봉투도 뜯지 않은’ 채 무심하게 버리곤 합니다. 이제껏 무심히 버려왔던 수없이 많은 편지들을 오늘부터라도 하나하나 소중히 열어 마주해야 하지 않을까요? 다음 시간부터는 단순한 꿈 해몽을 넘어 꿈을 펼쳐내는 과정을 통해 무의식을 탐색하여 온전한 나를 발견하는 시간들로 채워질 것입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나의 꿈은 물론이고 서로의 꿈을 나누게 될 텐데요, 연기처럼 사라지는 꿈을 잡아 스스로를 마주할 수 있길 바랍니다. 글 : 참여연대 인턴 박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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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종교의 이해Ⅱ | [세계 종교의 이해Ⅱ] 5강, 동아시아의 불교 | 기라 | 2013.10.14 | ||||
1강 후기 보기 > 클릭 2강 후기 보기 > 클릭 3강 후기 보기 > 클릭 4강 후기 보기 > 클릭 10월에 어울리지 않는 후텁지근한 날씨를 피해 많은 분들이 느티나무 그늘 아래 모였습니다. 오늘은 강의 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부원장님께서 반야심경으로 시작을 여시네요. 반야심경은 불교에서는 매우 중요한 경이라서 그리스도교들이 주기도문 외우듯이, 불자들은 반야심경을 거의 외운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수강생 대부분은 불교를 잘 몰라서 배우러 온 사람들이지요. 해서 알아들을 수 없는 법어 반야심경 대신 시처럼 예쁘게 다듬어진 한글본 반야심경을 함께 음미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수행이 부족해서 그런가 좋은 말인 것은 알겠는데 제대로 이해가 닿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역시 오강남 교수님은 저 같은 속인들을 위해 강의안에 들어있지도 않은 반야심경에 대해 즉석에서 척척 풀이하십니다. 멋져요! 서양에서 불교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선불교가 가장 큰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합니다. 선종이라고도 하는 선불교는 원래의 범어로는 명상이라는 뜻의 ‘dhyana[자나]’라고 합니다. 이것이 중국에 오면서 ‘찬나(禪那)’가 된 것이 우리나라에 와서 ‘선(禪)’으로 읽히게 되고, 일본에서 ‘젠[zen]’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서양에서는 스즈키 다이세쯔로부터 처음 선불교를 전해 받았으므로 그 영향이 지금까지 이어져 Zen buddhism이라고 합니다. 한국불교는 융합하려는 노력을 통해 중국에서 갈라졌던 여러 종파들이 교와 선으로 통합되어 통불교라고도 합니다. 통불교인 한국불교에서는 교보다 선을 중시하여 ‘선주교종(선이 주고 교는 따른다)’, ‘사교입선(이론을 버리고 선에 든다)’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선불교는 붓다의 제자였던 마하카샤파를 1조로 시작되었습니다. 붓다가 영취산에서 설법하던 중 연꽃을 들어 보이니 마하캬사파만이 뜻을 알고 웃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염화시중(꽃을 들어서 사람들에게 보였다.), 염화미소(꽃을 드니 마하카샤파가 웃었다.)가 여기서 나온 말이지요. 시간이 흘러 기원후 6세기경, 28조인 보디다르마가 인도를 떠나 중국으로 갔습니다. 이 보디다르마가 바로 우리가 아는 중국 선의 1조 ‘달마’이고, 여기서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라는 화두가 생겨났습니다. 선의 가장 기본 가르침은 깨달음, 바로 각(覺) 또는 오(悟)입니다. 무엇을 깨닫는 것이냐고 한다면 바로 내 속에 불성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강남 교수님께서 도마복음에도 “네 속에 하느님을 깨달아라.”라는 비슷한 말이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리스도교의 복음서에 대해 재밌는 비밀(?)을 알려주셨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는 꼭 서양 종교에 대한 교수님의 강의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다시 돌아와 선의 가르침에 의하면 내가 지금 힘든 것은 내 안에 부처님이 있는 걸 몰라서입니다. 이 상태를 무명, 법어로는 avidya, 영어로 ignorance라고 합니다. 교수님은 무명의 상태를 원숭이에 비유하여 말씀해주시네요. 아프리카에서는 코코넛에 작은 구멍을 내서 원숭이를 잡습니다. 코코넛 구멍에 손을 넣은 원숭이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손을 움켜쥐고 있다가 결국 팔이 빠지지 않아 잡아먹히고 맙니다. 무명의 우리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으며 여기서 벗어나는 것이 바로 자유입니다. 무명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는 것은 많은 종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입니다. 신체의 자유나 내 마음대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자유가 아니라 내 안의 부처를 깨달음으로써 얻는 자유인 것이죠. 전 이상하게도 여기서 갑자기 노래 ‘마법의 성’의 ‘자유롭게 저 하늘을 날아가도’라는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무명에서 벗어나면 이 노래처럼 구름을 뚫고 하늘로 날아올라 자유를 만끽할 수 있을 것만 같지 않나요? 그런데도 막상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놓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결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돈도 사랑도 명예도, 지금의 이 안락도 계속 쥐고 있고 싶습니다. 원숭이를 비웃을 일이 아니네요.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깨달아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걸까요? 선불교는 그 방법으로 사물을 여여(如如), 여실(如實)하게, 곧 있는 그대로 볼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불언지교(不言之敎), 깨달음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니며 불립문자, 교외별전, 직지인심, 견성성불 등을 통해 마음으로 다스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 대목 역시나 힌두교를 떠올리게끔 하는군요. 심층종교들이 보편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들이 비슷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깨달음에 대한 가르침을 담은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달이 깨달음이고, 손가락이 깨달음에 이르는 수단이라면, 손가락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손가락이 달을 가려서는 안 되고, 우리들도 손가락이 아닌 달을 보려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살불살조(殺佛殺組)로 이어집니다. ‘내 깨달음에 조사가 방해되면 그 조사를 죽여라. 내 깨달음에 부처가 방해되면 부처도 죽여라. 죽어 마땅하다.’라는 겁니다. 아무리 부처라 할지라도 내 깨달음에 도움을 주지 않고, 방해만 된다면 성이 아닌 속으로 분류됩니다. 교수님께서는 ‘예수를 죽여라’라는 가르침은 기독교에서는 어림도 없을 거라고 말씀하시네요. 그렇죠, 바로 그래서 불교가 참 매력이 있습니다. ^^ 선의 깨달음에 대해서는 서양의 철학자, 심리학자들이 다양한 견해를 내놓고 있는데 그 중 켄 윌버의 해석이 흥미롭습니다. 켄 윌버는 우리의 의식을 미이분법적 의식(pre personal consciousness), 이분법적 의식(personal consciousness), 초이분법적 의식(trans personal consciousness)으로 나눕니다. 미이분법적 의식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기 이전, 자의식이 없던 상태와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교수님은 6~70년대의 히피들이 이 단계에 있었던 거라고 하셨습니다. 자신들은 이성을 초월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이성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입니다. 보통의 우리들은 이분법적 의식으로 살아갑니다. 부끄러움과 모자람을 알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역사를 만듭니다. 마지막으로 초이분법적 의식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깨달음을 통해 넘어갈 수 있는 단계입니다. 이성을 초월하는 종교의 영역이죠. 선불교에 이어 우리나라, 일본, 티벳, 서양의 불교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졌습니다. 조선시대까지의 우리나라 불교 역사에 대해서는 고등학교 때 국사 공부를 하면서 자세히 외워서 기억이 나는데 근대 불교에 대해서는 오강남 교수님으로부터 처음 들었습니다. 억불정책의 조선에서 일제시대로 넘어가면서 우리나라 불교는 일본의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스님들도 더 이상 괄시받지 않았고, 절도 사대문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대처승이 많아졌다는 점입니다. 일본의 불교는 거의 다 대처승이어서 지금까지도 절을 아들에게 세습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해방 이후 비구승만 남고 대처승들은 다 나가라는 명령이 떨어졌다는 데 있습니다. 당시에는 대처승이 수천 명이었고 비구승은 불과 수백 명 정도가 있을 뿐이어서 소수가 다수를 밀어내기 위해선 외부의 힘이 필요했습니다. 결국 조폭들이 동원되었죠. 지금도 그 때 조폭들이 불교계에 개입했던 영향이 남아있어 과거 청산은 우리나라 불교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입니다. 일본 불교 중에서는 료부신토 같은 재밌는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니치렌슈가 기억에 남습니다. 니치렌슈는 매우 국수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성격의 불교로 일본을 대일본이라고 부르거나 욱일승천기를 그린 것도 니치렌슈에서 나왔습니다. 아름다운 종교의 가르침을 계승하는 과정에서 보수적이고 배타적인 성향을 띠게 된 다른 종교들이 생각나며 씁쓸한 기분이 들었네요. 티벳 불교는 토속 종교와 어우러지면서 독특한 모습을 갖게 되었습니다. 밀교의 특징을 가졌다고 말해지는데요, 주술을 강조하며 주문을 많이 외웁니다. 특히 우리나라 드라마를 통해 유행어가 되기도 했던 ‘옴마니 반메흠(Om mani padme hum)’이 가장 많이 외워집니다. 티벳 불교에는 큰 학파가 두 개 있는데 이름이 참 귀엽습니다. 노란모자 학파와 빨간모자 학파입니다. 이 중 다수를 차지하는 노란모자 학파의 지도자가 우리가 잘 아는 달라이 라마입니다. 달라이 라마의 뜻이 ‘큰 바다 같은 스승’이라는 것을 아셨나요? 학파 이름도 그렇지만 정치적·종교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의 이름에 바다가 담겨있다니 티벳 불교는 꽤 감각적인 듯합니다.^^ 서양 불교는 elite buddhism, white buddhism, new buddhism이라고도 부릅니다. 기복적이거나 의례를 중시하기보다는 참선을 중시하고, 현재 불교의 가장 큰 문제이기도 한 남녀 차별 대신 남녀평등을 지향합니다. 또한 종파주의 대신 연합주의, 종교적 고립 대신 종교 간의 대화를 추구하여 몇몇 학자나 스님들은 서양불교를 역수입해 배워야 한다고 보기도 한답니다. 강의의 마지막 30분은 둘씩 짝을 지어 세계 종교의 이해를 수강하며 변화한 점이나 느낀 점 등을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서로 발표해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강의 후 카페통인에서 두 번째 뒷풀이를 함께했습니다. 수강생 중 한 분이 가져오신 와인이 어찌나 맛있던지 저는 제 안의 부처를 깨닫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와인의 매력을 깨달았네요! 성함을 까먹었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아무래도 강의를 몇 번 듣고 나서인지 첫 뒷풀이 때와 달리 어색함이 풀린 채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서로 궁금한 점이나 생각한 점들을 이리저리 나누다 보니 다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시계 보고 깜짝 놀라서 일어났죠. 강의도 강의이지만 이렇게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배우는 점도 많은 것 같습니다. 밤이 깊어가는 만큼 종교에 대한 이해도 깊어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