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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명 | 강좌후기 | 글쓴이 | 날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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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첫 사법감시 - 판결문 함께 읽기 | [판결비평]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필요한 건 보다 민주적 대안 | 김승연 | 2021.11.8 | |
우리 사회는 한창 ‘가짜뉴스’로 인해 골머리를 앓았다. 일부의 목적을 위해 생산·가공된 거짓과 그로 인한 피해는 시민들의 진실을 향한 사회적 열망을 키워갔다. 최근 크게 논의됐던 ‘언론중재법’ 역시 진실을 추구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바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우리 법체계에서는 진실을 말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형법 제307조 제1항에 명시된 이른바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형법 제307조 제1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는 사실을 말하는 이의 ‘표현의 자유’에 앞서 사실로 인해 피해받을 이의 ‘인격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항이다. 우리가 이번에 살펴본 판결문은 이러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제기된 위헌확인 소송(2017헌마1113, 2018헌바330(병합))이다.
‘2017헌마1113’의 청구인 이모씨는 2017년 8월 반려견의 치료를 받았다. 이모씨는 자신의 반려견이 부당한 진료를 받아 불필요한 수술을 했고 그로인해 실명 위기까지 겪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에 책이나 정보통신망 등을 통해 반려견을 치료했던 수의사의 실명과 잘못된 치료행위 등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였다. 그 결과 이모씨는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였기에 형사 처벌을 받을 위기에 처했다. 이모씨는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사실적시 명예훼손’ 조항(형법 제307조 제1항)은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고 판단했다. 매체의 다양성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매체가 다양해지며 명예훼손적 표현은 이전보다 빠르고 넓게 퍼져나간다. 특히 온라인상에서 퍼져나간 정보는 완전히 삭제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 한번 명예가 훼손되면 ‘완전한 회복’이 어려운 까닭이다. 명예는 사회에서 개인의 인격을 발현하기 위한 기본조건이기에 중요하고 지켜져야 할 개인의 권리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명예훼손적 표현행위를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제한해야 할 필요성이 더 커지게 됐다고 판단했다.
헌법재판소는 형법 제307조가 보호하는 인격권을 표현의 자유와 견주어 우열을 쉽게 단정할 수 없다고 했으나 최종적으로 ‘인격권’의 손을 들어줬다. 그 판단은 ‘만일 사실적시 명예훼손 조항이 없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우리나라는 민사적 구제방법만으로는 형벌과 같은 예방효과를 확보하기 어려운 현실이므로, 이 조항이 없다면 개인이 숨기고 싶은 사생활의 비밀이 침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형법 제310조에 의하면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명시돼 있으므로 표현의 자유 제한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필자는 이러한 결정이 오히려 우리 사회가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새로운 민사적 구제방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논의로 나아가지 못하고 현실의 한계에 머문 데서 아쉬움을 느꼈다. 형법은 구속으로 신체의 자유를 박탈하고 낙인을 지울 수 있다는 데서 법익 보호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민사적 구제를 통해서 예방효과를 충분히 극대화할 수 있다면 부족한 구제방법을 보충하는 방식이 옳다. 상대의 명예를 침해한 이들에게 예방이 가능할 정도의 큰 책임을 물면 된다. 가령 디즈니의 치밀하고도 고액의 저작권 소송은 그 자체로 저작권을 지키게 만드는 예방책이 됐다. 우리 사회도 변화한 미디어 환경에 걸맞게 보다 강화한 구제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까지 기능은 약했지만, 개선의 여지가 있는 민사적 구제수단이 존재한다. ‘재판관 유남석, 재판관 이석태, 재판관 김기영, 재판관 문형배’의 반대의견에 따르면, 피해자는 형사처벌이 아니더라도 정정 보도와 반론 보도 청구, 손해배상 청구와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을 통해 구제받을 수 있다. 이러한 민사적 구제방법들을 강화해, 형법이 아닌 방식으로 인격권과 표현의 자유를 동시에 보호할 수 있는 방향을 찾는 것이야말로 헌법 정신에 부합하며 민주적인 방식이다.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방향이 ‘사회적 합의를 얻지 못했다’고 언급한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비범죄화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표현의 자유의 무게를 충분히 인식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가 없다’거나 ‘시기상조’라는 식의 답은 문제를 해결해나갈 논의 자체를 막는다. 결정문에 ‘사회적 합의가 없다’는 데에 대한 추가 근거는 없다. 헌법재판소는 결정문으로써 시민들에게 권리에 대해 생각해 볼 논의의 장을 제공한다. 이번 결정문은 ‘표현의 자유’가 갖는 무게에 대해 시민들이 논의해볼 기회를 다시 한번 미뤘다는 데서 한계가 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범죄화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지점인 ‘입막음용 소송’에 대한 언급이 부족하다는 아쉬움도 있다. 헌법재판소는 형법 제310조를 근거로 공적 사안에 대한 감시, 비판을 보장한다고 봤다. 그러나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이므로 악용의 여지가 여전히 존재한다. 공적인 목적으로 인해 위법성이 조각되더라도 형사절차가 진행되면 개인에게는 그 사실만으로 위축이고 압박일 수 있다. 결정문은 앞서 피해자가 민사 소송 과정을 겪으며 마주할 어려움을 결정 근거로 삼았으나, 사실적시 명예훼손 악용 여지에 있어서 소송 과정에 대한 우려는 언급하지 않았다.
매체가 다양해지며 자연스레 시민들의 매체 문해력도 상승했다. 시민들은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는 것에 앞서,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의 무게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은 변화한 매체 환경에서 시민들이 재정립해야 할 의식과 가치관을 지적하고 있다는데 의의가 있다. 그러나, 보다 적극적으로 민주적 방안에 대한 논의로 나아가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있다. 온라인 환경 속 무분별하게 떠도는 정보들에 대해 우리의 인격을 지키면서도 자유로운 발언을 지속해갈 수 있는 안전한 보호장치가 무엇일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글. 김승연 (느티나무아카데미 <내 생애 첫 사법감시 - 판결문 읽기 2021> 강좌 수강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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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과 함께하는 성교육 | 페미니즘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 | 개똥이 | 2021.11.7 | |
'남성의 목소리로 듣는 페미니즘은 과연 어떤 걸까?' '여성인 내가 들어도 되는 건가? 들었는데 반감이 생기거나 괜히 발끈하는 건 아니야?‘ 라는 제목만 보고 들었던 일차원적인 생각들이었습니다.
여성의 목소리로만 페미니즘을 접해봤던 저에겐 생소하면서도 주제가 신선해서 강의를 안 들어볼 수 없었습니다. 왠지 '이번에 안 들으면 나의 역량 강화에 굉장한 손실이 크겠구나...'하는 생각마저 들게했습니다. 이한 강사님께서 말씀하시는 페미니즘은 세상 그 어느 저울보다도 공평하고 공정했습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전혀 기울어짐이 없었고 그저 같은 인간으로써 생각을 공유하고 공감하고 대안 해보자는 시간이었습니다.
강의 시간동안 강제는 없었습니다. 강사님은 참여자의 생각과 의견을 함께 나누자며 질문을 던졌고, '성평등'이란 주제에 맞게 한사람씩 ‘초대’ 해주셨고 초대 받은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을 초대하고 그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을 초대하고... 하지만 그 초대를 누구 하나 거절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이며 카메라와 마이크를 켰습니다.
온라인 강의 방식인 주석 달기를 모두 함께 하고 목소리를 냈습니다. 덕분에 풍성한 나눔과 깊은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두 시간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짧았던가요? 20분, 30분이 지났어도 끝맺음의 시간이 아쉬웠던 우리는 이미 페미니즘으로 하나가 되고 있었습니다.
저에겐 어려웠던 페미니즘을 쉽게 풀어서 이해하도록, 오해하지 않도록 다뤄주셨는데, 기억하며 맞이한 첫 번째, 시간에는 특권과 사회적 차별, 성평등과 경계에 선 남성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단순하게 알고 있던 것 외의 것들을 알게 되었고 확장된 관점과 시각을 갖게 해주셨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두 번째 강의를 맞았는데 페미니즘 활동,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의 이야기 나눔을 통해 본격적인 페미니즘에 빠지도록 우리의 마음과 입을 열게 해 주셨습니다.
기다렸던 세 번째, 강의에서는 성평등하고 안전한 공동체 만들기로 페미니즘의 계보가 이미 존재하는데 그 계보에 우리가 직접 발을 담그어 이어 나갈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적극적인 활동들이 있었습니다.
페미니즘은 어려운 것이 아니었고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어렵게 만들고 어지럽게 만드는지 모르겠습니다. 수학, 영어, 국어처럼 이런 교육이 필수 교과목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공무원 시험 과목에도, 모든 시험에서도 필수 과목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차피 세상은 나 혼자 살 수 없고 다 같이 어우러져 살 수밖에 없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백번 저의 글을 보는 것보다 한번 이한 강사님의 강의를 듣는 것이 낫기에 여기서 후기를 마치려고 합니다.
좋은 강의 기획해주시는 관련자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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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조선후기 여성들의 꿈과 환상 | 꿈과 환상 사이의 간격, 그리고 꿈을 꿀 기회 | -_- | 2021.11.6 | |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지인의 추천으로 듣게 되었는데 지인의 멱살을 잡고 뽀뽀라도 해주고 싶을 만큼 재미있는 이야기가 가득했습니다. (가정이 있는 분이어서 차마…) 다른 지인으로부터도 조선을 하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며 소진형 선생님 이야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선생님이 들려주시는 이야기들이 궁금하던 차에 제목도 제 마음을 잡아끌기에 당장 신청했는데, 어머 이런 대만족. 정말 재미있게 많이 배웠습니다.
첫 강의에서는 조선 후기에 여협(여성 영웅 소설의 주인공들)과 열녀들이 동시에 쏟아져 나왔던, 이 복잡 미묘하고 기이했던 현상을 재미있게 따라다녔고, 두 번째 강의에서는 여성 영웅과 열녀의 서사들 외곽에 있었던 아주 흥미로운 두 작품, <삼한습유>와 <변강쇠전>을 통해 시선의 지평을 더 넓힐 수 있었습니다. 욕망을 수렴하여 실현해 줄 제도적 장치가 없었던 사람들. 그리고 제도적 장치는커녕, 아예 꿈을 꿀 수도 없었던 사람들. 남들이 한 번 부질없이 꾸어보는 꿈에서조차 배제되었던 사람들.
최근에 여성 서사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고 역사에서 의도적으로 지워진, 혹은 사라진 여성들의 이름을 다시 찾아주는 작업들도 활발한데요. 서양에서는 “여성이란 자연의 결점, 혹은 오류”로 인식되었던 중세적 여성관이 “여자는 어느 분야에서도 어떤 위대한 작품을 창조한 적이 없지 않은가”라는 기독교 철학자 드 메스트르의 헛소리가 통념으로 받아들여지던 19세기까지도 당최 고쳐질 줄을 몰랐죠. 조선이라는 시공간도 비슷했던 것 같은데, 소진형 선생님이 알려주시는 그 안에서의 의미 있는 꿈틀거림들이 참 흥미로웠습니다. 이런 부분들이 널리 알려지고 활발히 연구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드라마나 영화로 나와도 좋을 법한 놀라운 소재들의 향연. (남성 몰살의 서사들이라니, 대체 조선 후기의 평안도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단순하게만 생각했던 ‘열녀’라는 단어 안에 그렇게 많은 층위의 놀라운 이야기들이 들어있다는 것도, 납작하게만 알고 있던 변강쇠전 안에 그렇게 풍부한 서사가 들어있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되어 참 좋았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욕망은 존재했다는 점을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었던 점도, 경계에 서 있던 사람들의 역할에 시선을 놓아볼 수 있는 것도 좋았고요. 무엇보다 꿈과 환상이라는 두 단어 사이의 간격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어 주신 점이 특히 좋았습니다. 우리가 꾸는 꿈에는 사실 배제되어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 그리고 꿈이 제도화되지 않으면 환상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점.
“아마 성리학이 예측하지 못한 것이 여성들이었을 것이다. 서양의 민주주의 이론이 그랬듯, 성리학 역시 인간 본성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그들이 예측하지 못한 아주 불편한 존재들(여성들)을 만들어 낸 것이다.”라는 말씀을 강의 후에 재미있게 곱씹어 보고 있습니다. 홍계월과 영혜빙, 김소행 같은 매력적인 이름들을 알게 되어 기쁘고, 그 이름들과 더 만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소진형 선생님 이야기보따리가 엄청 크고 알록달록한 것 같은데 앞으로도 많이 펼쳐 주셨으면 좋겠어요. 좋은 강의 마련해 주신 참여연대 아카데미느티나무에도 감사 인사드립니다.
도덕적으로, 경제적으로 열녀라는 이름이 필요했던 집안 남성들로부터 죽음을 강요받았던 여성들의 숫자를 보며 입이 떡 벌어졌던 순간을 오래 기억하겠습니다.
출처 : 박주 <조선시대의 여성과 유교문화> 박학자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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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연극 워크숍 심화과정] 즉흥극을 이용한 공동 창작 | [손바닥연극] 일상에 균열을 낸다는 것 | 싸늘한와사비 | 2021.11.5 | |
인생의 크고 작은 실패의 순간, 연극과 함께였다. 손바닥연극 워크샵은 단비처럼 만난 10주의 시간이다. 직장에 입사하면서 연극은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직장 스트레스가 심해지는 순간 문득 연극을 떠올렸다.
워크샵은 열여섯 명의 사람들로 이루어졌다. 처음 참여한 사람도 있었고, 이미 자리 잡은 지 오래된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공통점은 서로에게 굉장히 살갑고 예의 바르다는 점이었다. 살가우면서 동시에 예의 바르기가 쉽지 않은데 그게 여기서는 되더라. 워크샵 전에 받았던 몇 가지 규칙을 기억한다. 직업, 나이, 학벌, 사는 곳, 성적 지향 등 사적인 질문은 서로에게 하지 않는다. 이름 대신 닉네임으로 서로를 부르고 반말하지 않는다. 이외에도 보편타당하지만 우리 사회에선 통용되지 않는 규칙들이 더 있었다. 여자나 남자의 화장실이 아닌 ‘모두의 화장실’도 반가웠다. 수차례 워크샵을 거듭하며 다듬었을 규칙이라고 생각하니 참 좋았다. 일상에서 느꼈을 부조리함을 수정하고자 하는 몸짓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워크샵은 규칙에 동의한 사람들이 모인 것이 아닌가. 마음이 따뜻했다. 연극을 하는 이유는 결국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워크샵 각 조는 작품을 만들었다. 작품의 형식은 자유였다. 움직임이어도 되고 영상이어도 되고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도 괜찮았다. 그저 우리가 상상한 것을 발표하는 형식이라면 무엇이든 괜찮았다. 머리를 모았다. 더 좋은 장면은 없을지 토의했고 연출님께 자문을 구했다. 괴롭기도 했다. 이런 말을 하려고 했던 게 아닌데 싶은 순간도 있었고, 그런 순간이 주는 재미와 감동도 있었다. 무엇보다 ‘함께’ 하는 사람이 좋아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그 메시지에 설득되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대화가 오가야 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연극의 틀을 획기적으로 깨지는 못했다. 시간에 쫓기며 최선이 아닌 차선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인생은 늘 그렇지 않나. 무용하다고 생각했던 시간에서 예상치 못한 가치를 발견하고, 그 발견을 시작으로 다음 스텝을 상상하고. 연극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다음 연극을 꿈꾸며 즐거워지는 것은, 연극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재미다. 그건 연극을 해본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 같은 거다.
소위 ‘일반적’인 것에서 멀어질수록 행위의 동기나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압박을 느낀다. 너는 왜 그걸 하고 있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살지 않아? 그냥 평범하게 살 수 없는 거야? 등등. 나를 책임지지 않는 말을 무시하고 싶지만 이따금 그런 말은 씨앗이 되어 마음에 자리 잡는다.
연극이 나에겐 그렇다. 지금껏 연극은 피난처가 되어주었지만 연극과 가까이 할수록 일상과는 거리가 생겼다. 그 괴리감을 이겨내는 날도 있었고 지고 마는 날도 있었다. 즐거우면 된 거 아닌가 싶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즐겁기만 해도 될까 불안함이 엄습했다. 아마 연극은 나에게 계속, 그런 존재이지 않을까.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연극은 정말 나를 망치러 온 구원자 같은 것이 아닐까.
연극에 매달리면서 일상에 균열을 내고, 균열을 보며 반가움을 느끼다가 이내 균열을 메울 방법을 찾아 나서는 과정. 이번이 진짜 마지막 연극이다 생각하지만 막이 내린 후 결국 다음 공연을 기약하고 마는. 멀어졌다가 가까워지는 과정을 반복하며 나는 평생 연극과 함께 하지 않을까 싶다.
<손바닥 연극 워크숍 심화과정: 즉흥극을 이용한 공동 창작> 강좌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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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독서서클과 북클럽 | [노년독서서클] 모두 서로에게 친구가 되는 세상을 꿈꾸며... 그리고 웰다잉 | 개똥이 | 2021.10.20 | |
영화 <인생 후르츠> 포스터
모두 서로에게 친구가 되는 세상을 꿈꾸며... 그리고 웰다잉
[노년배움 독서서클] 2021년 가을강좌 9월 첫 모임 후기
참가자 : 고현숙, 고현종, 김수동, 이성희, 정애자, 정헌원, 주은경
김수동샘의 진행으로 가을학기 첫 모임을 가졌다.
다큐 영화 인생 후루츠를 감상한 후 기억에 남는 장면, 각자가 경험한 아름다운 노년의 모습, 웰다잉에 대하여, 또 그들은 우리와 무엇이 다른지에 대하여 각자의 생각과 관점을 나누었다.
"인생후루츠"는 영화를 시작하면서 다음의 싯구가 나온다.
이 나레이션은 영화 중간 중간 여러차례 나온다.
자연을 닮아 서두르지 않고 알맞은 때에 알맞은 방법으로 씨뿌리고 열매 맺고 다시 토양으로 환원해 가는 모습을 두 노부부의 삶을 통해 잔잔하고 담담하게 보여준다.
이는 우리 삶의 풍경과 크게 대비되면서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는 김수영 시인의 '봄 밤'이라는 시를 떠올리게 해 그 시의 일부를 가져와 본다.
서둘지 않고 자연을 닮아 "천천히, 차근차근"의 삶을 살았던 슈이치씨는 도시와 숲의 공생을 제안했던 건축가로 개발에 급급한 회사를 뒤로하고 사람을 살리는 자연의 방식을 일생의 과업으로 삼아 자신의 삶 전반에 이를 몸소 실천해 나간다.
꽃과 화초마다 옆에 세워둔 다정한 마음들이 담긴 노란 표지판을 보고 있노라면 이들 부부는 주변의 모든 것들과 함께 조화롭게 살고 있음을 영화는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 노부부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영화에서 언급한 프랭크 조이드 라이트의 "오래 살수록 인생은 더욱 아름다워진다"라는 말에 비로소 공감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오래 살수록 아름다워지기는 커녕 가족과 사회에 부담이 되는 것으로 여기지 않는가? 우리의 녹녹하지 않은 현실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가치가 어느 방향인지 깨우쳐준다.
그것은 바로 안토니오 가우디가 말한바대로 "모든 해답은 위대한 자연 속에 있다"는 것을.
21세기 다윈의 계승자인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지도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답을 내놓는다. 이들은 ‘신체적으로 가장 강한 최적자가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의 통념에 반기를 들며 최후의 생존자는 친화력이 좋은 '다정한 자'라고 말한다.
슈이치 할아버지는 매일 편지를 10통을 써서 친구, 지인, 동네 마켓 점원 등에 보낸다. 노부부에게는 모두가 친구이다. 집에서 키우는 화초와 나무 새들까지. 이를 보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적보다 친구를 많이 만들어야 가야한다는 해리팔머의 뜻을 비로소 헤아리게 된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의 저자도 우리의 종은 더 많은 적을 정복했기 때문이 아니라, 더 많은 친구를 만듦으로써 살아남았다고 말한다. 우리는 사람뿐 아니라 동식물과도 슈이치씨처럼 따뜻하게 돌보는 다정한 태도로 대해야 함을 배운다.
인상적인 장면들
슈이치씨가 가슴에 손을 얹으며 아내를 가리켜 "내게 최고의 여자 친구"라고 말하는 장면.
그리고 손녀를 생각하며 멋진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기 위해 앞으로 어떤 사회 시스템이 필요할지를 생각해보는 모습,
꿈을 멀리 보는게 좋으니 '늘 멀리 본다'는 말, 생명 있는 모든 존재와 "더불어 함께"의 삶을 모색하고, 다음 세대를 아끼는 마음이 일상 생활 속에서 그대로 엿보인다.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자신의 가치를 실현시킬 희망이 있어 보이는 건축 일을 말년에 의뢰받았을 때 류이치씨가 한 말.
인생에서 단 한번 만날 수 있을 행복한 작업이라며 "살아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바람대로 슈이치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최선을 다해 자신의 소신대로의 삶을 지켜 나간다.
나는 가끔씩 생각한다. 내가 죽는 순간까지 가슴 뛰는 일을 하다가 간다면 그보다 더 성공적이고 기쁜 삶이 있을까? 류이치씨는 죽는 순간 마치 자연스레 잠들 듯 떠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한 사람이 평소 어떤 삶의 태도를 가졌느냐가 그의 죽음의 모습과 이어져 닮아 간다고 한다. 그는 정말 '남김없이 피고 지고' 자신의 소중한 가치를 그대로 실천하다가 생을 마감했다.
웰다잉에 대하여
웰다잉에 대해 참여자들이 다양한 시각에서 자신의 생각들을 나누었다. 그 과정에서 이야기가 풍성해지고 관점이 넓어지는 걸 경험했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각자의 각오와 다짐도 느껴졌다.
웰다잉과 관련해 내게 소중한 가르침을 준 것은 10여년전 인도 보드가야에서 달라이라마 존자님 법문이었다. 그때 달라이라마 존자님께서는 "당신이 임종의 순간에 바라는 것은 모든 생명있는 존재에 대한 한없는 자비심과 지혜로 세상에 이로운 존재가 되기를 염원하며 눈감게 되는 것"이라고 하셨다.
지혜와 자비심을 날마다 수행하다 보면 죽음의 순간에도 자연스레 몸에 익혀 그런 이타심의 마음가짐으로 가게 된다는 것, 우리가 죽는 순간 마지막으로 품은 의도가 다음 생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날은 우리가 사는 동안 '날마다 우리가 품고 있는 생각과 의도, 말, 행동'의 중요성을 다시금 돌아보게 된 시간이었다.
이와 관련해서 주은경 선생님의 말씀도 오래도록 남는다. 달라이라마께서 언급하신 바와 같이 자신도 "자비심"과 모든 생명체의 이로움을 위한 "보리심"의 마음가짐으로 삶과 죽음을 대하고 싶다고 했다. 그 말에 난 어떤 감동, 일깨움이 일어나 모임 후에도 오랫동안 여운이 남았다. 역시~ 주샘이 그동안 어떤 태도로 지금까지의 삶을 살아왔을지가 가늠되었다.
끝으로 김수동샘이 준비하신 시로 가을 학기 첫모임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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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노년을 위한 배움의 공동체 서클'을 소개합니다!
2015년 봄, 느티나무에서는 <푸른 시니어학교 - 새로운 노년 시대를 만들자>를 시작했습니다. 그후 매 학기 참여한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2017년 이 서클을 만들었습니다. 줄여서 노년서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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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한 노년은 무엇이며,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노년의 시간. 세상 가득한 두려움 속 가려진 노년의 삶을 찾아 보려 합니다.
다양한 시선을 통한 우리의 탐험은 계속 됩니다.
노년배움 독서서클은 매월 정해진 책을 읽고 생각과 질문을 함께 나눕니다. 2021년 가을학기에는 책과 영화, 그리고 회원의 활동 이야기까지 더욱 풍성한 소재를 가지고 만나려 합니다.
- 10월 모임 : 10. (수) 오전 10시. 퓨즈만이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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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독서서클과 북클럽 | [노년배움 독서서클] 퓨즈만이 희망이다 | 저녁집 | 2021.10.19 | |
‘노년배움 독서서클’ 10월에 읽은 책 <퓨즈만이 희망이다>, 신영전, 한겨레출판, 2020
토론일 : 2021.10.06. (수) 10:00-12:00 (zoom 토론) 참여자 : 김수동(진행), 고현숙, 안미성, 정애자, 정헌원, 주은경, 황미정
오랜만에 아카데미느티나무 홈페이지를 둘러보다 ‘노년배움 독서서클’에 가입을 할 수 있는지 문의를 했더니 서클에서 흔쾌히 수락해주셨다. 이곳저곳에서 줌(zoom)을 통해 독서토론 모임을 하고는 있지만 참여자들이 삼사십 대 여성이 주류인지라 일에서 은퇴하고 육십이 넘어가는 나로서는 생각의 밀도나 방향에서 뭔가 착 달라붙는 느낌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노년배움 독서서클’에도 다양한 연령대가 참여하겠지만 노년에 대한 관심과 새로운 삶의 방식에 고민을 하는 구성원이 많이 있을 것 같아 가입하게 되었다.
이번 달에는 건강정치학이라는 분야를 공부하는 신영전 교수의 <퓨즈만이 희망이다>를 읽었다. 책은 8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의 제목은 성찰, 책임, 자본, 건강, 평화, 경계, 싸움, 희망이다. 첫 장의 ‘성찰 : 우리가 놓친 것들’에 있는 ‘없다’ 시리즈의 글은 우리의 인식에 잘못 덮인 껍질을 여지없이 깨준다. 우월한 생은 없다, 건강은 없다, 노인은 없다, 자살은 없다, 아픔은 없다 등등. 좋은 유전자와 건강과 젊음을 욕망하는 잘못된 신화에 도전하여 본질을 가로막고 있는 뿌연 막을 걷어내고 문제의 핵심을 보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없다’ 시리즈의 글이 이 책의 핵심이며 이 시리즈의 글로 깨우치게 되는 현실에 대한 재인식이 우리를 새로운 희망으로 끌어간다고 생각한다.
이후의 장과 관련해서는 개인적인 경험과 관련된 몇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첫 번째는 의료급여 수급권자의 방만한 의료기관 이용 실태와 관련된 것이다. 이 부분은 참여정부 시절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했으나 개선하지는 못했다. 이명박 정부가 시작되었을 때, 나는 서울시 자치구에서 의료급여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그때 정부에서 국민기초수급권자의 부양의무자 재산 조회를 더욱 철저하게 실행하기 위해 새로운 전산시스템을 도입했다. 국민기초수급자로 책정되면 생계비 지원과 의료급여서비스를 받게 되는데 그 비용을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의료급여일수 과다사용자 명단이 구청으로 전송되고 이 사람들을 관리하기 위해 의료급여관리사 인력을 채용하게 되는 일까지 진행되었다. 결국은 복지 분야에서 일하는 공무원이 의료급여 서비스를 받는 국민들을 범죄자처럼, 문제아처럼 명단 관리를 하게 된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구절처럼 ‘낭비도 줄이지 못하면서 가난한 이들을 아프게만 하는 정책’에 말단으로나마 복무했던 한 사람으로 정부의 의료와 복지 분야 정책에 대한 저자의 뼈아픈 지적에 마음이 아팠다. 이 책을 통해 이전에는 인식하지 못했던 의료와 복지 분야의 개선 방향에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되었다.
또 하나의 개인적 경험은 의료비와 관련한 것이다.
“정부와 국회의 책임을 늘리고 주치의 등록제, 총액계약제 등 지출구조를 합리화하면서 사회적 합의를 이루면 국내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p.320)
이 글을 용하면서 빠진 주어는 ‘1년 의료비 100만원의 개혁’이다. 1년 의료비 100만원의 개혁이 우리 사회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구절을 읽으면서 2006년에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을 했다. 어머니는 여러 가지 질병으로 오랫동안 앓다 돌아가셨는데, 90년대 중반부터 12년간 엄청난 진료비를 병원에 쏟아 부었다. 90년대 중반, 연말에 소득증명서를 받아보니 연소득이 1800만원 정도였는데 그해 의료비로 나간 금액이 1,400만원 정도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나는 억대에 달했던 의료비의 짐이 순전히 개인의 불운이라고만 생각했다. 책 속에 나오는 10대의 아들처럼 내가 자살하지 않고 어머니의 임종까지 볼 수 있었던 것은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볼모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의료비 부담에 따라 늘어나는 빚과 간병으로 인한 직장에서의 배제와 차별, 간병했던 가족의 삶까지 위협하는 이러한 문제들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1년 의료비 100만원의 개혁’이 우리 사회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니!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생각에, 왜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개혁이 아직도 실행되지 않고 있는지 고민하게 하는 지점이었다.
이 책에서 또 인상적이었던 것은 북한 어린이들을 위한 예방접종 지원이 끊긴 것에 대한 저자의 안타까움이 곳곳에 묻어났던 부분이다. 방송매체에서도 언론 지면에서도 잘 다루지 않았던 것들이 이 책에 저자의 소망과 함께 표현되어 있다. “인도적 지원은 무기가 아니다.”라는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 묵직하게 울렸다.
책에서 저자는 인간이 독립적인 개체라기보다는 생래적인 취약성과 개방성, 유한성, 불완전성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역설한다. 그러기에 우리의 아픔들과 고통에 더욱 큰 관심을 갖고 서로 연대하며 삶을 확장해 가기를 희망한다. 책을 덮으면서 최근에 읽었던 박경리 작가의 <토지>의 문장들이 떠올랐다. 조금 길지만 인용해본다.
아픔과 고통 속에 매몰되지 않고 그 어둠과 눈물을 뚫고 길을 만들어나갈 때에야 진짜 소중한 삶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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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노년을 위한 배움의 공동체 서클'을 소개합니다!
2015년 봄, 느티나무에서는 <푸른 시니어학교 - 새로운 노년 시대를 만들자>를 시작했습니다. 그후 매 학기 참여한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2017년 이 서클을 만들었습니다. 줄여서 노년서클.
새로운 노년시대를 만드는 데 관심 있는 모든 분들이 참여합니다. 이름과 달리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더 보기(클릭)
[노년배움 독서서클] 노년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 두려움 너머 희망을 찾다 >>보기
“존엄한 노년은 무엇이며,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노년의 시간. 세상 가득한 두려움 속 가려진 노년의 삶을 찾아 보려 합니다.
다양한 시선을 통한 우리의 탐험은 계속 됩니다.
노년배움 독서서클은 매월 정해진 책을 읽고 생각과 질문을 함께 나눕니다. 2021년 가을학기에는 책과 영화, 그리고 회원의 활동 이야기까지 더욱 풍성한 소재를 가지고 만나려 합니다.
- 11월 모임 : 11. 10(수) 오전 10시. 딸에 대하여 + PTC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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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을 위한 명상워크숍 | 마음을 가볍게 하는 독특한 명상 워크숍 | 개똥이 | 2021.9.17 | |
마음은 점점 조급해지는데 몸은 점점 무거워져 내일을 상상하는 일이 날 숨막히게 하던 어느날, 마지막으로 내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 본게 언제였더라 문득 생각이 들던 어느날, 해야할 일들을 미뤄두고 이것저것 둘러보다 오랜만에 우연스럽게 들어오게 된 아카데미 느티나무 사이트에서 눈에 딱 들어온, 운명스럽게 수강하게 된 워크숍이었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정말 별생각 별기대 없이, "가서 오랜만에 가볍게 명상이나 하고 와야겠다"라는 마음으로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초면에, 평소 사용하지 않던 몸뚱아리를 움직여 인사를 나누고, 어쩌다 일번 타자로 출루한 고해성사(?)의 자리에서 폭풍눈물을 쏟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렇게만 들으면 대체 뭘하는 수업인가.. 이상하게 들릴수도 있겠지만 집으로 돌아온 후 단테라 선생님께서 알려주신 '생각 뒤집기'를 일상에 조금씩 접목해 보면서 마음이 하루하루 가벼워짐을 느낍니다. 특히나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타인 또는 이 세상과 엮인 일들, 그러니까 내가 어찌할수 없는 일들에 관해서, 그건 나의 일이 아니다, 나는 내가 해야할 일을 하자. 라고 단순하지만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시선 돌리기'는 제 마음을 가볍게하고 여러일들에 초연해지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자진해서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이야기를 타인에게 나누는 일이 처음에는 쉽지않았습니다. 가볍게 이야기하려 했던 일들이 갑자기 바닥에 꾹꾹 눌러놓았던, 숨기고 싶었던 제 감정들을 마구 자극해서 한마디 한마디 내뱉는게 힘겨워졌는데, 단테라 선생님께서 스텝 바이 스텝 정말 잘 끌고 나가주셔서 결과적으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짐을 느꼈습니다. 특히나, 같이 수강하셨던 분들이 말 한마디 나누지 않은 사이임에도 굉장히 수용적으로 저를 받아준다는 느낌이 들었고, 무언의 따뜻한 공감을 얻은것 같습니다. 개인상담은 과거에 여러번 경험해 봤었지만, 이렇게 집단 상담을 해본건 처음인데, 처음 입을 떼는데에는 좀 어려울 수 있으나 결과적으로는 훨씬 더 만족스러웠고, 겨울학기에 또 수강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꼭 참여하고 싶습니다. 다른 분들의 각기 다르면서 비슷한 사연들을 듣는것, 그리고 그 사연마다 단테라 선생님께서 아주 유연하게 생각의 전환을 만들어 주시는 과정을 보는것이 때로는 제 이야기를 하는 것 보다 더 영양가 있는 시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항상 조급하게 이기적으로 사는 사람이라 '수업 후기' 라는걸 태어나서 처음 써보는데, 적은 비용을 내고 수업을 통해 얻은게 참 많았다고 느끼기에 글 남겨봤습니다ㅎ
오랜만에 따듯하고 좋은분들 만나서 덕분에 저도 얼었던 마음이 조금 뎊혀진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해 단테라 선생님께 배운 것들을 잊지않고 항상 연습해 볼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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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을 위한 명상워크숍 | 단테라 선생님과 함께한 '정신이 번쩍 드는' 명상워크숍 | 개똥이 | 2021.9.15 | |
9월, 두 번의 화요일을 참여연대 아카데미느티나무와 함께 했습니다. (아직) 참여연대 회원은 아니지만 늘 지켜보고 있는 시민이지요. 또 명상에 급격히 관심을 갖게된 시민이기도 합니다. 마음정리, 마음수련, 내 안의 평화… 이런 걸 구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혼자는 막막하고 일상에 치여 생각도 못 하다가, (정말 이런 것이 우연일까요?!) 어쩌다 들어온 아카데미느티나무 홈페이지에서 '2021 가을 자아탐색학교' '청년을 위한 명상워크숍'을 발견했습니다.
9월, 두 번의 화요일을 단테라 선생님 그리고 10명 내외의 다른 수강생들과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결과는 대만족!
강좌소개에서 '매 회차 두 분씩 스트레스를 주는 평소 생각들을 나눠주실 분을 초대합니다'라거나 '우리 모두는 신성한 목격자로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나는 것을 지켜봅니다'라고 보았기 때문에, 가부좌를 틀고 호흡법을 배우는 (우리가 명상하면 떠오르는 스테레오 타입) 그런 명상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명상하는 법, 명상의 정의, 명상의 역사. 이런 이론을 알려주는 강좌도 아닐 거라고 생각했고요.
하지만 이렇게 깊이 있게 내 내면을 들여다 볼 기회가 될 거라고 까지는 상상 못 했습니다.
첫 번째 화요일에서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단서를 갖게 됐고 두 번째 화요일에서 실제로 내면을 들여다보는 힘을 갖게 됐습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종교적인 느낌도 나고, 어딘가 사이비(?) 같은 느낌도 나지만 우리가 우리 마음과 정신과 영혼을 평소 들여다 보지 않기 때문에 괜히 판타지 같고, SF소설 같고, 사이비(?) 같다고 여기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음과 정신과 영혼을 들여다 보겠어! 하는 의지를 같고 마음의 문을 열고 이런 워크숍에 참여한다면 더 많이 깨우치고 마음의 평화도 더 많이 얻게 될 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나를 괴롭히던 생각들이었는데, 패러다임을 전환해보니 전혀 괴롭지 않더라고요.
끝까지 함께한 수강생 분들이라면, 이 후기를 보고 공감할 것 같습니다. (내심 뿌듯하네요. 같이 수강한 분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함께 했기 때문에 더 힘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1:1 명상보단 워크숍 형태로 했기 때문에 함께 위로를 주고 받고 있구나, 같이 패러다임을 전환해보고 있구나 생각하게 됐답니다.
겨울학기가 열린다면 그때 또 참여해보고 싶습니다.
단테라 선생님과 함께 수강했던 여러분, 그리고 아카데미느티나무 관계자 여러분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음 만남까지 수련하기로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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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클럽 동글동글] 사람과 동물의 윤리적 공존을 위해 | [독서클럽] 동글동글한 사람이 되기 위해 | soobee | 2021.7.20 | |
어느 순간 먹는 행위가 불편해졌다. 비건 친구와 만나는 날이 잦아지면서 식사를 함께할 때마다 내가 먹는 것들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그렇게 애써 외면하고 눌러왔던 내 안의 불편함들은 여기저기서 튀어나와 온 마음을 덮쳤다. 어린 시절 축산에 관한 영상을 보고 끔찍함을 느꼈던 순간들, 털이 다 뽑혀 발가벗겨진 닭은 쳐다보지도 못하지만 치킨은 잘 뜯어 먹으면서 느꼈던 모순,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경제동물’을 설명하고 축산의 현실에 관한 자료를 준비하면서도 급식을 골고루 먹으라고 지도해야 하는 괴리. 이 모든 감정들이 물밀 듯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걷잡을 수 없었다. 육식에 대한 죄책감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좋아하고 즐겼던 육식을 끊고 살아갈 수 있을지. 부지런해져야 할 것만 같았다. 채식은, 비건은 나에게 너무 먼 듯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두 끼 정도 고기 없는 식단으로 먹는 것을 목표로 해 보았다. 그러나 일주일의 죄책감을 하루에 미룬 꼴이 되었을 뿐, 지켜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편해지고 싶어서, 내 죄책감을 내려놓고 싶어서, 괴롭지 않으려고, 2021년 4월 1일 채식을 시작했다. 학교 급식을 중단하고 도시락을 싸는 것에서 시작했다. 그 즈음 친구가 동물권 독서클럽을 함께 나가지 않겠냐고 추천했고 그렇게 <사람과 동물의 윤리적 공존을 위해, 동글동글 독서클럽>을 만나게 되었다. 한 달에 한 권씩, 총 네 번의 만남이 계획되어 있었다. 나의 비건생활은 이 독서클럽과 함께 시작되었다.
2021 봄 학기 <독서클럽 동글동글>에서 읽은 책
첫 번째 책, <고기로 태어나서>는 가히 노골적이고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우리나라 축산 공장의 현실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어 읽는 내내 머릿속에 상상되는 상황들을 애써 지우느라 힘들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동물성 식품들을 차례로 끊는 것이 아니라 한 번에 중단하게 되었다. 살이든 젖이든 알이든 비인간동물들을 먹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 단호한 결정을 할 수 있음에 놀라기도 했고 지속가능성에 대한 걱정도 생겼다. 그래서인지 더욱 독서클럽 모임이 궁금하고 기대되었다. 첫 모임은 1:1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었고 덕분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나의 이야기를 꺼내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받아들이면서 앞으로 나는 어떤 선택들을 쌓아갈지 어느 정도 방향성을 정하게 되었다.
두 번째 책, <동물복지 시대가 열렸다>에서는 농장동물뿐만 아니라 전시동물 등 다양한 곳에서 동물들이 처한 현실을 보여주었다. (현실이라 함은 ‘착취’의 다른 이름일 뿐이지만.) 더불어 이 ‘현실’이 어떻게 개선되어야 하는지, 동물복지의 현재와 미래를 다루고 있었다. 음식으로 소비되는 동물이 가장 먼저 와 닿아서인지 다르게 소비되고 있는 동물들을 돌아보지 못했다. 강사님의 저서인 만큼 동물복지의 전반적인 내용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기에 음식으로 소비되는 동물들에 국한되어 있던 나의 시각이 또 다른 곳에서 인간에게 소비되는 동물들에게까지 넓어질 수 있었다.
세 번째 책, <동물 안의 인간>은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 비인간동물들도 인간과 다르지 않고 인간도 결국 같은 ‘동물’의 위치에 놓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이 책은 허무함을 주었다. 인간이 아닌 동물들은 하나의 개체로 인정받기 위해 인간의 기준에 의해 실험을 당하고 많은 인증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는 게 허탈했다. 독서클럽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을 나누는 과정에서 내가 고른 구절들은 그런 나의 감정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네 번째 책,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는 동물윤리를 가장 심도 깊게 논한 책이다. 규범윤리학 측면에서 쓰인 책인 만큼 굉장히 어려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아직 동물윤리에 대해 명확히 정리된 개념은 없다는 것이고, 이러한 책들이 늘어나고 더 많은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자리에 모인 다른 분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고, 혼자서는 난해하다고 느꼈을 주제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감사했다. 마지막 자리인 만큼 책에 대한 논의에서 나아가 동물에 대한 다양한 시사점을 각자의 삶에 비추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더욱 뜻 깊었다.
어느덧 계절이 바뀌고 네 달이 지나 끝이 난 독서클럽을 돌아보니 더욱 감회가 새롭다. 처음 걱정하고 두려워했던 것과 달리 나의 비건 생활은 아주 순조롭게 이어지고 있다. 더 이상 착취에 일조하지 않는다는 해방감 덕에 마음이 편안하고 자유로워졌다. 또한 식성이 좋았음에도 내가 먹고 있는 게 무엇인지 딱히 생각해보지 않았던 과거와 달리 매번 성분표를 살피고 스스로 식단을 꾸리다보니 생활에 체계가 생겼고 나를 더 아끼고 보살피게 되었다. 먹는 재료들은 신선해졌고, 간혹 있던 소화불량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제야 제대로 된 ‘음식’을 먹는 기분이 들었다. 비건은 생활 전반에 걸쳐 동물을 착취하지 않는 것인 만큼 다른 방면에서도 변화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 모든 게 귀찮고 어렵고 힘들며 육식이 그리울 줄 알았는데, 나의 기우였을 뿐 오히려 이 삶은 나에게 활력을 주고 있다.
물론 내가 하는 것이 완벽한 정답이 아닐 수도 있고, 앞으로 어떤 어려움을 마주할 수도, 지치거나 조금은 쉬어갈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생각을 같이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힘을 얻고 공부하면서 스스로 단단하게 다시금 나아가고 싶다. 끝으로 나에게 또 하나의 전환점이 되어준 독서클럽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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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히는 글쓰기 | [잘 읽히는 글쓰기] 넘쳐나는 메모장 | 개똥이 | 2021.7.5 | |
#달과6펜스 #서머싯몸 #민음사 #잘읽히는글쓰기 #아카데미느티나무 #편성준
책을 읽다 보면 그 책 속에 인용된 다른 책, 작가가 추천하는 다른 책들이 나오는데 그런 책들을 메모해두었다가 사기도 하고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도 한다. 그런데 그 메모의 양은 줄어들기는 커녕 계속 계속 늘어만 갈 뿐이다. 고전도 신간도 국내도 해외도 얼마나 좋은 책들이 많은지.
처음의 시작은 페북이었다. 지인을 통해 추가된 편성준 작가의 페북을 즐겨보았고 책, 영화 리뷰를 종종 올리는데 리뷰를 보고 나면 꼭 보고 싶게 만드는 남다른 재주를 가졌다.
재주가 빛을 발휘하여 <부부가 둘다 놀고 있습니다>라는 책을 냈고 인기리에 북콘서트도 하면서 카피라이터에서 작가로 자리를 잡아 가는듯 하다. 그러던 중 <잘 읽히는 글쓰기>라는 6주 코스의 글쓰기 강좌를 참여연대에서 한다니...용기를 내서 신청했다.
월요일 저녁7시. 아침형 인간인 나에겐 쉽지않은 시간이었다. 하루를 마무리 해야하는 시간에 수업을 듣기위해 광화문으로 향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직장생활을 마치고 헐레벌떡 달려오는 다양한 연령대의 낯선 사람들속에 전업주부인 나란 존재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나 스스로.
그러나 새로운 시도가 주는 역경(?)정도는 잘 극복해 나갈 나이 아닌가. 그런것이 싫어 쭈뼛거릴 나이는 지나간 걸 다행으로 여기며 6주의 수업을 잘 마쳤다.
메모의 양은 또 늘어 났다. 매 수업때마다 좋은 예시로 보여주는 책속의 구절 구절들. 참 좋은 책이니 기회되면 꼭 읽어보라고 작가님은 무심하게 말하지만, 좋으면서도 밉다. 너무 무심한 진심이라. 세번째 강의 무릎을 치게 만드는 글쓰기 시간에 예시된 책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달과 6펜스>를 읽었다.
=그 사람 정말 천재일세. 확실해. 지금부터 백 년 후에 말일세. 사람들이 자네나 나를 조금이라도 기억해 준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찰스 스트릭랜드와 알고 지낸 덕분일 걸세 ( p100 )
화가 찰스 스트릭랜드의 천재성을 알아본 더크 스트로브가 한 말이다.
고갱을 모델로 하여 쓰여진 이 책은 둥글고 빛나지만 성질이 전혀 다른 달과 6펜스를 제목으로 하여 달은 영혼과 감성의 세계를, 6펜스는 돈과 물질, 세속적 세계를 상징한다.
한 중년의 사내 스트릭랜드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 모든것을 버리고 떠나 오로지 자유로운 정신속에서 창작활동을 추구하다 죽어가는 모습을 통해 6펜스의 세상에 지나치게 갇혀있는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게 만든다.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날 천재성을 가진 것도 아니고, 주변의 천재성을 알아볼 능력이 있는것도 아니고,
내가 할 수있는 것은 미워도 다시 한번 메모장에 적힌 책들을 읽어 나가는 것뿐.
6주간의 강의동안 늘어난 메모 양만큼이나 배운것도 많았다.
작가님이 말하는 글쓰기의 태도, 글쓰기를 하기 위해서 내 삶을 들여다보고 글쓰기를 통해서 삶이 변한다는 거. 삶에 대한 고민은 20대도 60대도 여전하다는 거. 글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도 글 잘 쓰는 사람들도 참 많다는거.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삶들이 참 많다는거. 그래서 더 겸손한 마음으로 배워야 한다는 거.
6주간의 강의는 끝났고 또 다시 시작이다.
#무한화사 #직업으로서의소설가 #글쓰기바이블 #우나기선생 #나의가장나종지니인것 #염소의축제 #관계의물리학 #나를부르는숲 #노매드랜드 #멀베이니가족 #까대기 #킨
* 글쓴이 인스타그램 @kyungjae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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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히는 글쓰기 | [잘 읽히는 글쓰기] 독자를 혼내지 않겠습니다 | 개똥이 | 2021.7.5 | |
6주에 걸친 글쓰기 수업이 끝났다. 지난 6주 동안 매주 월요일마다 수업을 듣고, 일요일마다 숙제를 냈다. 수업은 딱 한 번 빼먹었지만, 숙제는 항상 데드라인을 지켰다. 매주 짧게는 반 페이지에서 길게는 한 페이지 이상을 써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신문이나 잡지에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는 분들은 참 대단하신 분들이라는 생각이 숙제하다 문득문득 들었다.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를 쓴 편성준 선생님은(이하 편샘) 책에서만큼이나 유쾌한 사람이었다. 강의는 편샘이 매주 주제에 맞는 짧고 긴 길들을 잔뜩 들고 와 그것들을 하나하나 소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칫하면 지루할 수 있는 방식이었지만, 편샘 특유의 유머와 해학으로 풀어내 흥미진진했다. 만약 글만 잘 쓰고 재미는 없는 사람이 강의를 했다면 한 번만 듣고 떼려 쳤을지도 모른다. 80% 청년 할인을 해주길래 냉큼 신청한 이번 수업에서 꽤 많은 걸 배웠다. 편샘은 팬티와 책장을 연결해라 (엉뚱한 두 가지를 연결해라), 독자에게 친절한 글을 써라, 제목을 꼭 붙여라, 글 맨 밑바닥에 인생이 보여야 한다, 너무 액기스만 쓰지 말고 군더더기도 좀 써라 등의 주옥같은 노하우를 푸짐하게 전수해 주셨다. 근데 강의 내용 중에 내게 가장 와닿았던 얘기는 따로 있었다. 바로 싫어하는 것 말고 좋아하는 것을 쓰라는 말이 긴 여운을 남겼다. 좋아하는 것을 쓴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내가 싫어하는 것 말고 좋아하는 것에 관해 쓰라는 얘기다. 6주 동안 내가 숙제로 제출한 글 대부분은 내가 싫어하는 것을 쓴 글들이었다.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쓰다 보니 그렇게 됐다. 나는 자타공인 평소에 꽤 긍정적인 사람인데 내가 쓴 글들은 전반적으로 삐딱했다. 내가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회문제, 내가 보고 실망한 영화 등에 대해 신랄하게 물고 늘어지는 글을 써서 냈다. 내 딴에는 무언가를 집요하게 파헤쳐가며 구체적으로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를 요목조목 따지는 글이 지적이고 멋있는 글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썼다. 한번은 편샘이 내 글을 다 읽고 혼난 기분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너무 옳은 소리를 옳게 하는 것보다, 심각한 얘기일수록 헐렁하게 하는 게 더 좋은 방법일 수 있다는 피드백을 주셨다. 편샘 얘기를 듣고 보니, 읽는 사람 입장에선 내 글이 좀 재수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영양가 있는 글도 친절해야 읽히기 마련인데, 내 글은 시종 까칠했다. 마지막 강의 때 편샘은 정세랑 작가의 글귀 하나를 들고 오셨다. “무엇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싫어한다고 말하는 것이 쉬워진 세상이지만, 좋아하는 것이 많은 사람이 분명 더 행복하지 않을까.” 읽자마자 괜히 찔려서 편샘이 나 보라고 특별히 들고 오신 게 아닌가 하는 근거 없는 의심이 들었다. 또 아주 근거가 없지는 않은 게, 나는 수업 시간에 종종 편샘의 표적이 되어 나쁜 예로 소개되곤 했다. 편샘이 나를 지그시 쳐다보며 “양일수 씨”라고 운을 뗄 때마다 난 까임을 당할 마음의 자세를 갖췄다. 근데 난 편샘의 까임이 좋았다. 내 글을 비판적으로 보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난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라 나 자신을 비판적으로 보는 걸 잘 못 한다. 그걸 편샘이 대신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6주 동안 편샘의 가르침 덕분에 내 글쓰기는 분명 성장했다. 글을 쓸 때 고려해야 할 것과 경계해야 할 것, 그리고 내 글쓰기 실력이 또 한번 도약하기 위해선 지금부터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힌트를 조금이나마 얻은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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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히는 글쓰기 | [잘 읽히는 글쓰기] 시키지 않은 6주차 과제와 뒤늦은 고백 | 개똥이 | 2021.7.2 | |
다시는 글쓰기 강의 근처를 기웃거리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내 발걸음은 매주 월요일 7시마다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로 향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글쓰기를 헤어진 연인쯤으로 여기고 내게 남은 미련을 확인하는 시간 정도로 생각하려 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매주 과제가 있고, 소리 내어 함께 읽는 시간도 갖겠다고 하셨다. 아차. 글쓰기 과제는 예상했지만 직접 읽을 줄은 몰랐는데. 이제 와서 강의실에 몸을 실은 나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김유신은 애꿎은 말 목을 베었지만 나는 뚜벅이 신세라 베어낼 거라곤 내 발목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어쩔 수 없었다. 열심히 듣는 수밖에.
사실 트림 한 번 했습니다
카프카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라는 문장을 모티브로 하여, 나의 독서가 생각을 확장하는 게 아니라, 편견을 강화하고 있었음을 고백하는 글을 써서 첫 과제로 제출했다. 그다음 과제는 이 글을 수정해오는 거였는데, 카프카를 도끼를 파는 직장인으로, 나는 도끼를 사놓고 바다를 두드려보지도 않은 블랙컨슈머로 등장하는 짧은 소설을 썼다. 카프카의 사유서와 나의 고객만족도 조사표를 첨부하여 책을 읽고도 나의 제한된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건 책이 아니라 나의 독서법의 문제였음을 인정하게 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려 했다.
써놓고 보니 장난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소설의 개연성도 떨어지는 게 아닌가 싶었다. 다른 분들이 내 글을 읽고 '아무래도 얘는 좀 이상한 애가 아닌가?' 생각하시진 않을까. 선생님께서 '열심히 하셨지만... 이건 좋은 글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라고 하시진 않을까.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자 회피 본능이 쑤욱 올라와 '뭘 고민하고 있어~수업 안 가면 되는데~' 하고 속삭였다. 유혹은 강력했으나 내 속에는 만만치 않은 라이벌이 하나 있었다. 이 녀석의 이름은 '강박'인데, '강의실에 갈 수 없을 정도의 질병이나 직계가족의 조사가 아닌 경우 수업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강력 주장한 덕분에 나는 강의실에 다시 도착했다.
의자에 앉는 순간부터 속이 답답했다. 급히 먹은 저녁이 문제였나. 물을 몇 모금 마셔봤지만 그때뿐이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호흡이 가빠지고, 시야가 좁아졌다. 팔과 다리가 뜨거워지는 동시에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괜히 마스크를 만지작거리며 심호흡을 해봤지만 불안은 더 심해졌다. 이런. 이 기분 전에도 몇 번 느껴본 적 있다. 인정하기 싫지만 공황 증상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강의실을 뛰쳐나가기 직전에 선생님께서 내 이름을 부르셨고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글을 읽어 내렸다. 다행히(당연히) 나를 비난하는 사람도 없었고, 선생님께서도 표를 사용하는 건 좋은 아이디어였고 소설의 캐릭터에 개성과 핍진성을 강화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해보라는 피드백을 남겨주셨다.
글을 읽고 나니 공황 증상은 온데간데없고 막힌 것 같던 속도 싸악 내려갔다. 얼마나 시-원했는지 체증이 올라와서 몰래 속으로 트림 한 번 했다.
얼어붙은 바다에 금이 간 거 같기도 하고요
마지막 강의가 끝났다. 빙 둘러앉아 소감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다른 분들의 말씀과 질문에 묻어나는 삶의 무게와 깊이를 음미하며 고개를 끄덕끄덕 하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는 동안에는 '이번 강의 참 좋았는데. 집 가서 글로 정리해봐야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이 이야기를 꼭 글로 써야 할까? 말로 해보는 건 어떨까?'
싶어 속으로 손을 들었다 내렸다 들썩들썩거렸다. 근데 내가 정리되지 않은 말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근데 지금 말을 안 하면 평생 후회할 거 같았다. 에라 모르겠다 손을 들었다.
"이전에 글쓰기 수업을 몇 번 들었는데요. 문장 간의 논리를 찾거나, 문단을 분석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강의에서는 글쓰기 스킬이나 테크닉보다는 태도에 대해 말하는 게 신선했습니다. 나쁜 점을 지적하는 글은 되도록 쓰지 말라는 말씀에 몇 주간 끙끙 앓았기도 했고요. 저는 소설이나 영화에서 부족한 점을 찾으려 애쓰는 편이었으니깐요."
"에세이를 주로 다루다 보니 자연스럽게 글에 '나'를 담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생각해보게 되고 논리만 중요하게 여겼던 글에 균형도 조금 찾지 않았나 싶습니다."
"또 하나는, 다들 부족한 글이라며 수줍게 내놓으셨지만 그 글들에서 삶이 생생하게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이름을 빼놓고 읽어도 어느 분이 쓰셨겠다 하는 느낌이 올 정도로 개성이 있었고요. 이런 생각을 나누고 싶어서 말씀드렸습니다."
이야기가 끝나자 간사님을 비롯한 여러분들께서 나의 글이 좋았다고 격려를 해주셨다. 이번 주에는 어떤 글을 썼을지 기대하면서 기다리셨다는 말씀에는 안경 밖으로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칭찬이 한없이 어색해 로봇처럼 삐걱거리며 간신히 감사인사를 드렸다. 집에 오는 길에는 수업을 함께 들은 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지하철역까지 걸었다. 짧지만 즐거운 시간이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칭찬을 들으면 온 몸이 간지러워지고, 몸이 흐느적거리고 뇌의 활동이 멈추는 증상이 있어서요. 죄송합니다. 저는 이만 총총)
나는 내 글의 부족한 점을 개선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의 피드백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에 대한 가혹한 평가는 글쓰기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던 거 같다. 완벽을 기본으로 생각해서 항상 좌절하고 실망하길 반복했으니 말이다. 완벽한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잘못된 방식의 글쓰기 동력이었다는 걸 인정하고 나니, 조금 더 써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내 마음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정말 관심이 없었으면 '나는 글쓰기 강연을 다시는 안 들을 거야'라는 말을 했을까? 관심이 있으니깐 주변을 기웃거리며 엣헴, 엣헴 헛기침을 했던 것 같다. 안에서 소리를 들은 누군가 나타나서 '나으리, 여긴 어인 일이신지요?'하고 말 걸어주면 '어허, 내가 여길 오려던 건 아니고 날이 좋아 마실 나온 길에 어디서 북적이는 소리가 들려 경사라도 났나 지켜보던 차인데...' 하며 체면을 차리려던 거다. '오신 김에 들어와서 탁주라도 한 잔 하고 가시지요' 하면 엄지와 검지로 수염을 두 번 정도 쓸어내리며 '어허..내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이 아니거늘...'하면서 마지못해 문지방을 넘었을 것이고 말이다.
내 마음 나도 모르고 살았다. 쓰고 싶지 않다는 거짓말은 그만 해야겠다. 사실 난 쓰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는데 부족한 글을 보여줬을 때 돌아 올 비난이 두려웠던 것이다. 좋은 글을 쓰려면, 그 글을 통해 내가 단단해지려면 대장간의 달궈진 쇠처럼 탕탕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무진장 두드려 맞는 수밖에는 없을 거다. 근데 두드려 맞을 용기는 어디서 생기나. 모르겠다 뜨겁게 두드려 맞다보면 생기겠지.
그리하여 씌여진 첫 번째 글은 바로 이것.
아무도 시키지 않은 6주차 마지막 과제를 남긴다.
* 글쓴이 브런치 다면 @foodb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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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내 인생의 시의적절한 성교육 | 우리들의 다정하고 다채로운 섹스를 위해 | 개똥이 | 2021.5.3 | |
한채윤 선생님 강의는 19년도에 한 번 들었고, <여자들의 섹스북>이라는 책도 열심히 읽었었다. 요즘 들어 성교육을 제대로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한채윤 선생님 강의가 있다고 해서 망설임 없이 수강신청을 했다. 거기다 청년은 매우 저렴한 가격에 들을 수 있던 것도 매우 감사했다.
포인트 다섯 가지를 꼽자면 이런 것들이 있었다.
강의를 들으며, 우리는 어떤 사랑과 섹스를 위해 나아가야할까, 사랑을 그저 태어났으니 하게 되는 것이 아니고 보다 주체적으로 내가 원하는 대로 이끌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성욕은 누구에게나 있고, 생물학적으로 성적인 에너지는 여성이 더 강하고 오래 지속된다. 하지만 성욕이 강하다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그 욕구를 해소해야한다는 말로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다. 그런 의미로 섹시한 여자를 보면 남성들은 참지 못한다는 말이 미디어 곳곳에서 쉽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여자들도 똑같이 섹시한 사람들을 보면 욕구를 느낀다. 그러니 짧은 치마를 입어서, 화장을 진하게 해서 등의 말들은 이해해서는 안 되는 말들이다.
기혼 남성들이 바람을 피우거나 성매매하는 것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보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성적 욕구를 해소하는 것에는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자위’라는 것이 있다. 21세기에는 매우 다양한 섹스토이가 존재하고, 자위를 더 다채롭게 해준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여성와 남성 모두에게 자위를 가르치지 않았고(2000년대에 학교를 다녔지만 현실적인 성교육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그 행위를 숨겨야하고 하면 안되는 것으로 가르친다. 사실 유아기 때부터 생식기를 부비며 자위를 하기도 한다는 데 말이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오르가즘을 느낄 권리가 있다.
받는 사랑, 기다림, 수용 등등 수동적인 형용사로 점철된 것이 여성의 사랑 방식이다. 그런데 그게 과연 사실일까. 하지만 여성에게도 어마어마한 욕망이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파트너와 안전에 대해 서로 합의가 되었다면 하고 싶은 것을 모두 쏟아부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아직 발현되지 않은 여성의 욕망. 범죄만 아니라면 그 어떤 무엇도 우리는 시도해볼 수 있고 표출해도 되지 않을까. ‘질’이라는 상대방의 생식기가 들어오는 공간이 있기에 ‘받아들임’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한채윤 선생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빨아들임’이라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주도적인 섹스를 하는 여성들이 많아지려면, 자신의 몸을 잘 알고 어떠한 자극에 흥분하고 어떤 방법으로 오르가즘에 도달하는 지 등을 알아가야한다. 하지만 그건 한채윤 선생님의 <여자들의 섹스북>에서 알기 쉽게 다루어져 있다. 다채로운 섹스를 위한 필독서다.
많은 사람들이 전형적인 사랑하니까 해야하는 섹스가 아닌, 서로 맞춰나가고 배워나가는 섹스를 하게 되면 좋겠다. 분명 파트너와 서로의 성감대와 원하는 체위 등을 이야기한다면, 다정하면서도 다채롭고 아름다운 섹스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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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내 인생의 시의적절한 성교육 | 덕질로 시작하여, 나에게로 집중하는 시간 | 아카데미느티나무 | 2021.5.1 | |
한채윤 님 너무 멋있다며, 친구들과 자주 얘기하곤 한다. 물론 퀴퍼에서 선글라스를 끼시고 안전요원을 하셨던 모습도 포함되겠지만, 그런 모습과 함께 한 분야에 엄청난 깊이가 있으시고, 애써 배우시려는 모습이 한채윤님의 멋있음을 더욱 깊이 있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한다. (너무 덕질 같습니다만, 덕질 맞습니다)
제주에 사는 사람이-그것도 서귀포에 살고 있는 사람이-, 한채윤 님의 강의를 듣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고 내내 생각을 하고 있었다. 때마침 나는 메일함을 정리했고, 아카데미느티나무 강좌소개를 보게 되었다. 한채윤, 이라는 글자가 엄청 크게 보였다. 그렇게 나는 조금의 (사실 많은) 덕질하는 마음으로 강의신청을 했다.
내가 한채윤 님을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닥친 일을 해치워야 할 때가 있다. 그렇게 한 번은 서귀포에서, 한 번은 서울에서 강의를 듣지 못했다. 그때도 물론 강의를 듣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주어진 일을 처리하느라, 라고 생각을 하며 넘겼는데, 이렇게 남은 강의를 듣고 나니, 이렇게 땅을 치며 후회할 줄은 몰랐다. 정말 이 강의 앵콜, 앵콜, 앵콜!
한채윤 님 강의가 정말 재미있다고 느끼는 이유 중 큰 부분은 아마 쉽고 그림이 그려지는 비유들을 섞어가며 강의를 이어나가시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여성에게 2차 성징이 올 때 몸의 기관들에게 ‘연락’을 한다는 표현하며 –채윤 님도 말씀하셨지만- 연락하는 제스쳐를 취한다든가 하는, 암튼 그런 것들 말이다– 이후의 것은 공식적으로 쓰기에 내가 좀 민망하다고 생각 했다- 그래서 한채윤 님 강의를 특히나 더 좋아한다. 정말 웃을 수 있는 비유와 표현들이 들어있어서 더 좋아한다. 아니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사랑에 대한 파트가 인상 깊었다고, 또 온라인으로 해달라고, 그러면 또 나처럼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겠다는, 그런 이야기이다.
그렇게 3강과 4강을 들었다. <나는 평생 사랑하며 살 수 있을까? 관계의 불안을 다루는 법>이라는 주제의 4강이 난 정말 인상 깊었는데, 그것은 아마도 연애의 끝자락을 움켜쥔 친구들이 떠올라서, 그들과 같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서일 것 같다. 만족 욕구에 대한 부분, 일치의 황홀함, 보살핌, 사랑을 현재진행형으로 이어나가려는 노력, 상대에게 맞추어 내 사랑을 준다는 부분, 에 대한 이야기들 말이다. 후.... 할많하않.... 친구들아, 건강한 연애하자…!
물론 강의의 모든 순간이 다 좋고 도움이 되었지만 특히 꼽는 부분은, 내가 사랑 혹은 연애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떤 사랑(혹은 연애)를 원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해야 한다는 부분이다. 요컨대, 내가 연애하는 상대와 어떤 만족감을 주고 받고 싶은지, 내가 어떤 사랑을 줄 수 있고, 어떤 사랑을 받고 싶은지 말이다. 사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연애할 때 이런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고, 설레는 감정에 집중하는 것 같다. 그래서 어떤 어긋남이 발생하는 것 같은데, 이런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등- 고민이 그 어긋남을 완화하지 않을까. 지금 당장에 답을 내릴 수 있는 질문들은 아니지만, 이후의 내게(혹은 머나먼 미래의 내게) 도움이 많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또 한가지는 섹스와 사랑의 신비화에 대해 여러 차례 말씀하신 부분이다. 사실 섹스와 사랑(혹은 연애)도, 운동(exercise, not movement)의 근육, 관찰의 근육, 글쓰기의 근육과 같이 공부하고 애써야 늘고 성장한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내가 애써야 할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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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내 인생의 시의적절한 성교육 | [시의적절 성교육] 섬세하게 행복해지려면 | 준하25 | 2021.4.29 | |
<내 인생의 시의적절한 성교육> 정말 좋은 강의였습니다.
제가 친구가 그리 많지 않고 그리 추천 같은 걸 신경쓰지 않는 성격이지만, 그럼에도 제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추천하고 싶은 강의라는 말을 일부러라도 쓰고 싶은 강의였고 선생님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많은 것을 생각해볼 수 있는, 혹은 피상적으로 알던 것들을 정리하고 돌이켜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소위 사회성(이라고 불리는 것?)을 굉장히 느리게 익힌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다른 사람과 교류를 하지 않았고(뭐랄까 굳이 그럴 필요를 잘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친구든 연인이든 그런 관계가 많지 않았어요.
또 개인적인 성향이 상처 받는 것에 민감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에게 상처 줄지도 모르는 그런 일들을 피하다 보니 주로 수동적인(이라고 느껴지는 그런) 어린 시절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대학생이 되어, 또 페미니즘이나 퀴어 이론, 비거니즘 등 여러 가치관을 접하게 되며 사고의 폭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젠더 문제를 공부하며 다른 것보다 우선 기성 사회에 있는 혹은 내 주변에 있을 수 있던 옳지 않은, 나쁜 일들에 대해서 먼저 의식했고 계속해서 많은 것들을 접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것이 잘못인가, 나와 주변 사람들이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잘못된 행위가 뭐가 있을까-에 대해 주로 배우고 잘못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내 인생의 시의적절한 성교육> 강좌에서 이야기하는, 몸이든 마음이든 올바른 관계를 만들고, 나를 기쁘게 하는 것 혹은 상대방을 기쁘게 하는 것을 알아가고, 그러기 위해서 우리의 몸에 대해 감정에 대해 그 자체로 생각하는 것을 그 전에는 해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 와중에 두어 해 전부터 개인적으로 많이 아프면서 외로운 시기를 보내기도 했고, 정체화 과정을 거치기도 하고 하면서 나 스스로에 대해서 좀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쭉 하게 됐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이 강의를 알게 되었고요.
이전부터 한채윤 선생님 이름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소심하게 페이스북 팔로우 하는 것을 제외하고 직접 얼굴 보고 목소리를 들은 적은 없었고 내적으로만 존경하는 그런 상황이었어요. (언젠가 집회 혹은 퍼레이드 때 들은 적이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만요ㅎㅎ;) 이번 강의에서 얼굴 뵙고 여러가지 꼭 필요하지만 잘 알기 힘들었던 혹은 사소화되었던 그런 것들을 상세히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잘못과 실수를 하지 않으려는 노력 만큼이나 좋은 관계 그리고 행복한 감각을 잘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 깨달았어요. 앞으로 저 스스로나 혹은 앞으로 맺게 될 다양한 관계 속에서 몸을 어떻게 알아갈 수 있을지, 어떻게 행복해지는 방향을 상상할 수 있을지 그런 실마리들을 얻을 수 있었어요. 막연함, 두려움, 무지를 하나 하나 지나보내고 섬세하게, 느리지만 정확하게 행복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다시 생겼습니다.
앞으로 다시 비슷한 것을 배울 때에도, 또 새로운 고민을 가질 때에도, 짧은 강의지만 이 시간에 배운 것들을 잣대로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또 다른 강의들을 많이 하시겠지만, 아마 그 강의들도 굉장히 알찬 내용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런 외로운 팬데믹 시절을 보내다가 앞으로 맺을 관계들을 상상하고 그에 대한 저의 마음가짐을 만드는 데 참 시의적절한 성교육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연이 닿으면 언젠가 또 뵙고 싶습니다.
선생님도 함께 강의를 듣던 분들도 이 글만 읽게 되실 분들도 모두 앞으로도 몸도 마음도 건강할 수 있는 시간이 되셨으면 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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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선워크숍] 온라인으로 모임을 즐겁게 진행하는 법 | [랜선워크숍] 온라인으로 모임을 즐겁게 진행하는 법 후기 - 모임 그 자체만으로도 힐링되는 시간! | 퐁당 | 2021.4.14 | |
코로나19 때문에 직접 만나서 강의를 듣고 워크숍을 하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오늘 뉴스를 보니- 단계 격상을 고민하고 있다고 하더라구요. ㅠㅠ) 그래도 만나지 않을 수 없으니 온라인으로 하는 회의/모임이 점점 늘고 있는 요즘, '온라인으로 하는 만남, 회의'를 더 잘할 수 없을까-라는 고민이 들었습니다.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시는 분을 통해 아카데미느티나무의 [랜선워크숍]을 소개받았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생긴 고민인데- 코로나19 덕분에 온라인으로 워크숍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대구에 살고 있거든요. 서울에서 진행하는 대면워크숍이었다면 매주 수요일 저녁, 서울에서 진행되는 좋은 워크숍에 참여하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인데 랜선워크숍이라 이렇게 좋은 워크숍을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총 네 번의 모임에서 다룬 주제 입니다. 1. 안전하고 즐거운 온라인 모임을 위한 약속 만들기 2. 서로를 알아가며 관계망 짜기 3. 모두의 의견을 좀 더 지혜롭게 모으기 4. 온라인에서 할 수 있는 정서적 돌봄 만나기
워크숍을 통해 배운 것들이 참 많습니다. 매번 다른 체크인과 체크아웃 방식은 '언젠가 온라인 모임에서 써먹어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했구요. 가르쳐주신 다양한 도구들도 적절하게 활용해 봐야지 싶었답니다. -잼 보드는 조만간 온라인 모임에서 써볼 예정이에요! 이런게 있다고 소개해드리니 다들 기대 중이십니다. 모임을 하는 과정에서 역할에 대해서 함께 고민하고 결정하는 것, 동의의 수준을 어디로 할 것인가 등등... 온라인 모임 뿐만 아니라, '모임' 그 자체를 운영하는 데에도 생각해봐야 할 것들을 잘 알려주시고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주셔서 너무 좋고, 감사했습니다.
워크숍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두 번 있습니다. 첫 모임의 체크인과 마지막 모임의 소그룹 활동이었습니다.
사실- 제가 이 워크숍을 듣기 전까지 나름의 우여곡절이 있었거든요. 다른 분들의 많은 배려 덕분에 매주 수요일을 두 시간씩 빼서 워크숍에 참여할 수 있었던거라... 진짜 잘 배워서 나눠야 한다는 생각에 긴장감 만빵(!)으로 첫 수업에 참여를 했더랬습니다. 그래서인지 첫 체크인 때 엄청 긴장 상태였답니다. 사실 그 긴장은 놀이를 하면서 사르르 풀려버렸지만요.
경청과 질문으로 서로를 돕는 활동을 한 마지막 차시는 감동의 순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온라인으로도 이런게 가능하구나- 나의 고민을 이렇게 진지하게 들어주시는 분들을 만나다니... 그리고 던져주시는 질문들은 진짜 나를 온 마음을 다해 생각해 주시는 것 같다고 느껴져서- 정말 눈물이 찔끔 날뻔 했다구요. ^^ (함께 해 주셨던 소그룹분들께 이 후기를 빌어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그 때 해 주신 질문들은 틈틈이 생각하며 나를 살피는 질문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워크숍이 끝난 4월부터- 매주 수요일이 다시 여러가지 회의들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온라인회의 이기도 하구요, 오프라인 회의 이기도 합니다. 3월 한 달간 [랜선워크숍]을 통해 쌓은 모임의 경험들이 이 회의들과 앞으로의 모임들에 조금씩 녹여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 [랜선워크숍] 자체가 너무 힐링되는 시간이었어서 - 정말 좋은, 안전한 모임을 하는 느낌이어서 그 자체만으로 좋았거든요. - 에너지를 많이 받았습니다.
랜선워크숍을 이끌어주신 이은주 선생님과 함께 좋은 모임을 만들어주신 많은 참가자분들과 이런 강좌를 온라인으로 열어주셔서 참여할 수 있게 해주신 아카데미 느티나무에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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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영혼의 언어, 동화 읽기 | [영혼의 언어, 동화 읽기] 당신의 삶에 마법이 일어나길 | moonlover | 2021.3.27 | |
해가 지고 달이 뜨는 마법의 시간, 당신을 초대합니다
라푼첼, 백설공주, 재투성이...이 고전 동화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디즈니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는 서양근대동화이다. 후에 그림형제에 의해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정리되었다. 이 동화를 우리가 꾸는 꿈의 구조와 같다는 전제에서 풀어보려고 한다. 동화에는 그리스로마 신화와 같은 큰 신들이 등장하기도 하고, 왕, 왕비, 공주, 왕자와 같은 작은 신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자연에서부터 온 이야기들이다. 꿈이 마음대로 컨트롤 되지 않듯 상상력도 자연으로부터 올라온다.
이 오래된 이야기들은 제작자가 누구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알 듯 모를 듯 내 인생의 힌트를 주기도 하는 기능을 한다. 자신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후대로 내려온 칼 구스타프 융과 함께 동화 안에서도 집단 무의식을 담고 있다고 해석한다. 이런 장르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누가 나를 가두는가 : 라푼젤
생명이 자라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신선하고 활발한 생명력이다. 라푼첼에서 욕망은 크게 두 가지로 표현될 수 있다. 한 가지는 ‘내가 가지고 있지 않지만 다른 사람은 가지고 있는 것’과 또 다른 한 가지는 ‘생명을 키우기 위해서 꼭 필요한 야생적인 생명력’을 뜻하는 것 같다.
간과 허파를 먹으면 아름다워질까 : 백설공주
여기서 벽 거울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굉장히 당당한 자세이다. 이때 핵심은 ‘예쁘냐, 안 예쁘냐’가 아니라 ‘누가 제일 빼어나냐?’ 즉, 최상급의 표현이다. 누가 제일이냐는 것이다. 우리 시대는 어느 때보다도 시각 중심의 시대이다. 이는 진실보다 시각 중심으로 재현된 모습에 어느 시대보다 집착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때, 우리가 내가 누구인지를 스스로 이해하고 인정할 때 시각적으로 복사된 이미지를 통해서 이해하려고 하면 진짜 모습을 찾기 어렵다. 거울에 비춰진 모습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때때로 어떻게 비춰지느냐가 더 중요할 때가 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보다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 지가 중요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 속에 사회적인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가 꿈틀거리고 있고 타인의 시선을 통해서 정체성을 찾고 싶을 때가 있다. 백설공주에서 왕비가 거울 속에서 이처럼 매일 되묻는 모습은 자신의 자존감을 타인의 반응을 통해 찾고자 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밖에서 눈이 펄펄 내리고 있는 날, 흑단 창틀 가에서 어느 여자가 바느질을 하다가 손이 찔렸다. 그것을 보고 나서 ‘아, 눈처럼 하얀, 피처럼, 붉은, 흑단처럼 검은 아이를 낳았으면’하고 바란다. 이 여자가 있는 공간은 겉으로는 결핍이 없어 보여도 내적으로는 결핍이 있고 고독이 있는 공간이다. 그 얼어붙은 공간에서 빨간 피가 생기니까 생명에 대한 영감 같은 것이 생겼다.
인간에게는 비슷한 것을 먹으면 비슷한 곳이 좋아진다는 관념이 있다. 간을 먹으면 간이 좋아진다고 믿기 때문에 곰의 쓸개를 먹기도 한다. 옛날에는 간이 영적인 공간이었다고 한다.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그렇다면 허파는 무엇일까? 허파는 숨 쉬는 공간이다. 숨 쉬는 공간은 문을 열고 닫는 것과 같아서 외부 세계에 대해 호흡을 열어서 바깥 공기를 흡수하고 뱉는다. 그리고 난 후 왕비가 사냥꾼에게 백설공주의 간과 허파를 가져오라고 명령을 내린다. 어머니, '몸, 감각, 감정의 우주’ 여신이라는 존재는 우리를 먹여살리기 위해서 자연으로부터 에워싸는 존재이다.
일곱 난쟁이는 지루할 정도로 ‘내 의자에 누가 앉았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일곱 난쟁이는 일곱 그릇을 골고루 먹고, 포도주도 한 방울씩 먹기도 한다. 난쟁이의 우주는 실제로 작은 게 아니라 이야기 속에서 작게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 몸에는 일곱 개의 센터와 연관되어 있다. 인도에서 일곱 개의 차크라와도 연관되어 있다. 이게 바로 어머니의 우주이다. 우리가 몸소 느끼는 우주이다. 우리가 이처럼 몸소 느끼는 감각은 매우 중요하다.
사과는 생명력을 가져다 주기도 하지만 먹으면 벌을 받는다는 이중성을 갖고 있기도 하다. 또, 오랫동안 우리가 우리 내면의 진실을 말하지 않을 때 목에 문제가 생기기 쉽다. 목에 뭔가 걸리면 말을 하지 못한다. 목소리는 요가 철학에서 진실의 통로라고도 한다.
재와 황금, 마법에 대하여 : 재투성이
언니들은 완두콩과 렌틸콩을 재 속에 뿌려놓고 골라내라고 시켰다. 재 속에서 어떤 것이 생명이 있는 것이고 어떤 것이 생명이 없는 것인지 가려내는 작업은 중요하다. 아버지에게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 모자에 걸리는 나뭇가지를 꺾어다주라고 했다. 모자가 걸려있다는 것은 과거에 신분을 잘 알려주는 페르소나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비둘기는 유럽에서 아프로디테의 상징이다. 아름다움 여신의 상징이다. 아까 말했던 콩 골라내기 작업 등은 프시케 신화를 상징하기도 한다. 위 작업들은 아프로디테 여신이 프시케를 훈련시키는 과정이다. 이 이야기 속에서 등장하는 세계는 순서가 있다. 집 비둘기는 훈련된 비둘기들이다. 그 다음에 산 비둘기는 야생 비둘기를 의미한다. 그 다음에 하늘 아래 있는 모든 새들에게 이야기한다. 이 공간에서는 세 단계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재투성이는 또 나무하고도 이야기를 한다. 이 개암나무는 저승으로 통하는 입구에 있는데 신성한 나무가 소원을 들어주기도 한다. 그녀는 비둘기집 뒤로 뛰어내려 개암나무로 뛰어가 아름다운 옷을 무덤에 놓았다. 만화 원작에서는 12시에 종이 땡 치면 마법이 풀리기 때문에 돌아와야 한다고 했지만, 이 시간은 날이 저물어 해가 지는 시간을 의미한다. 해가 진다는 것은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시간이다. 마법은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갈 때 일어난다. 우리가 변신할 수 있는 시간이다.
이 동화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바로 신발이다. 신발은 한 짝이 아니고 두 짝이다. 특히 재투성이는 신발을 양 쪽 다 신고 다녔는데 이는 주인공이 두 가지 세계를 다 끌고 가는 것을 의미한다. 신데렐라가 계단에서 신발을 흘린 것은 왼쪽 신발이다. 왼쪽 신발하고 오른쪽 신발은 다르다. 왼쪽과 관련된 것은 우뇌를 뜻하고, 이는 즉, 영감의 세계, 상상의 세계,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세계, 전체를 바라보는 생각들이다. 부분적, 분석적, 유용성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의미나 우리 삶의 정체성 등을 직관하고 느끼는 것이 왼쪽의 세계이다.
재투성이는 양 쪽 세계를 오가는 소녀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삶이 어느 한쪽 방면에 치우쳐서 양쪽에서 걷는 것이 아니라 한쪽 발로만 걷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되었다.
동화에는 정답이 없다
오래전 아트 앤 스터디에서 김융희 선생님 강의 <물, 불, 흙, 공기: 감각의 원형을 찾아서>, <삶의 길목에서 만난 신들의 이야기>, <색·인문학>, <이미지의 시학-바슐라르 바로보기>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참여연대 아카데미느티나무에서 <동화, 내 마음의 비밀언어>, <영혼의 언어, 동화 읽기> 수업을 듣게 되어서 반가운 마음에 신청하고 한주 한주 무슨 말씀을 하실지 내심 기다리며 강의를 들었다.
무언가 선택을 해야 하거나, 갈팡질팡할 때, 혹은 주저할 때, 김융희 선생님 강의를 더 찾아 듣게 된다. 이번 동화 수업은 나의 내면적인 무언가를 건드리는 것 같았다. 수업이 끝난 후 여러 가지 질문을 통해 내 스스로에게 질문해보고 생각해보게 되었다. 동화를 해석 할 때 무엇보다 정답은 없다는 것이다. 또, 내가 등장인물의 어떤 역할에 좀 더 감정이입이 되는 지, 그 밖의 주어진 매체들은 훌륭한 모티브로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동화를 읽으면서 ‘왜?’라는 질문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김융희 선생님 말씀대로 고전 동화를 읽을 때 전체적으로 읽을 수도 있지만, 특정 부분에 끌려 그것을 주제로 해석해볼 수도 있었다. 동화 속 등장인물이 나라면 그 상황에 어떤 느낌이 들었을지 생각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느꼈다. 마지막으로 신데렐라 동화에서처럼 두 가지 세상을 살고 있을 때, 밤은 밤대로, 낮은 낮대로 두 가지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이 기억에 많이 남았다. 내면의 거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싶다면 김융희 선생님의 동화 강의를 꼭 추천드리고 싶다. 당신의 삶에 마법이 일어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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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성놀이학교] 밀랍과 <어린왕자> | [창조성놀이학교] 밀랍과 <어린왕자> 강좌후기 | jiyoon | 2021.1.12 | |
![]()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밀랍이라는 재료와 가까워지게 되어서 기뻤습니다. 밀랍을 녹여서 틀에 부어 형태를 만들기도 하고, 굳은 밀랍을 깎아내기도 하고, 녹은 밀랍에 초 심지를 담가 한 겹 한 겹 쌓기도 하고, 따뜻한 밀랍을 손으로 조물조물 만져서 모양을 내는 등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이 담겨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냈어요. 원활한 진행을 위해 옆에서 왁스를 계속 녹여주시고 한 명 한 명 챙겨주신 정원샘, 수진샘 정말 고맙습니다. 덕분에 따뜻한 왁스를 맘껏 만지고 놀 수 있었어요. 그리고 오랜만에 다시 만난 어린 왕자는 또 새로이 보이더라고요. 어린 왕자와 같이 울고 웃고 위로받는 시간이었습니다. 지금은 이런 만남을 갖기 더 어려워졌지만, 수업 당시에도 모임과 만남을 조심하는 분위기여서 사람이 그리웠는데 일주일에 한 번 외로운 일상에 단비 같은 날이었어요. 따뜻한 시간을 만들어주신 정원샘 수진샘 미란샘 고맙습니다! 또 함께 한 샘들 모두 정말 즐거웠고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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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미술학교] 사물, 그리고 이야기 | [미술학교 강좌후기] 그림, 그리움, 그리니, 그리워... | 김경혜 | 2020.12.12 | |
2020가을학기 느티나무 미술학교 <사물, 그리고 이야기> 그림, 그리움, 그리니, 그리워... 김경혜 “언제 밥 한번 먹읍시다.” “조만간 술 한잔 해요.” 예의상 나누는 인사말이긴 했어도 언제고 여지가 있었던 우리의 관계맺기, 그 시작점을 풍요롭게 해준 촉매제는 다름아닌 밥과 술이었다. 흩어지면 살고, 혼자 있으면 금상첨화인 이 황망한 코로나 펜데믹이 가져다 준 귀양살이 와중에 그것이 얼마나 눈물겹도록 고맙고, 그 숱한 역사가 가능했던 소박한 일상이 얼마나 그리운 지는 지금 우리들 모두가 절절히 경험하고 있을터. 오늘은 또 얼마나...늘어만 가는 숫자에 지치고, 끌어안고 사는 방구석이 마냥 지루할 와중에 새로이 집중할 꺼리가 필요했다. 실은 평생의 염원이기도 했다.
느티나무 미술학교 강사인 이상권 선생, 동료 선후배들과 함께한 <사물, 그리고 이야기>전시회 오프닝에서 한 컷! '그림, 그리움, 그리니, 그리워...' 몇 번이고 '그림'이라는 말을 되뇌다보면 이 아련한 언어의 신비에 이끌려 금방이라도 붓 한자루 들고 화폭 그 어디인들 대수랴. 마음껏 수놓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마음은 필경 화가 저리가란데, 정작 살면서 단 한번도 이를 실행에 옮기질 못했다. 핑계와 변명은 이제 그만! 마침 참여연대 느티나무 미술학교에서 수강생을 모집한단다. “이런 분을 초대합니다. 중고등학교 이후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으나, 일단 도전해보고 싶은 사람...” 감읍한 나머지 부지런히 공지가 떨어지기 무섭게 신청서를 작성했다. 지난 7월 말이었던가. 이 강좌를 신청하던 때가...(지나고 보니 벌써 아득하다) 하고많은 곳 중 왜 하필이면 참여연대? 마냥 그림만 그리면 무슨 재미. 적어도 눈꼽만큼 세상에 관심있는 이들이 모여 적기(?)가 되면 꼬물꼬물 나름 의미있는 작당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싶었다. 정작 복병은 코로나 바이러스....어쩌면 면대면 수업이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불행 중 다행히 마스크 착용을 전제로 오프라인 수업이 진행된다는 낭보가 날라왔다. 2020가을학기 느티나무 미술학교 <사물, 그리고 이야기> 전시회에 여러 선배들과 나란히 출품할 수 있어 감읍해 하고 있는 필자. 짜자쟌! 드디어 아기다리고기다리던 10월 19일 첫 수업날! 근 3개월 여를 기다린 터라 고마움과 설레는 마음은 기본이요 몸은 수업 시작보다 30분 먼저 가닿아 있었다. 강의실 전체를 환히 감싸는 어여쁜 미소의 주인공, 최인숙 간사의 환대를 받으며 발열 체크, 손 소독, 출석부에 이름을 기재한 연후 자리에 착석했다. 연단 한 켠에서는 까만 마스크로 포스를 내뿜던 우리의 강사 이상권 선생-마스크를 벗은 모습이 너무도 살짜쿵, 잠깐이었던 터라 비교적(?) 멋진 얼굴이었던 걸로 기억된다-도 역시 설레는 마음으로 학생들 한 명 한 명에게 눈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수업 시작인 7시가 다가올수록 강의실을 가득 메워가는 용감한 신청자들(총 18명?)–많아봐야 10명 남짓이겠거니 했다-에 놀라고, 이 선생의 <사물, 그리고 이야기> 강의 소개와 인사에 이어 한 분씩 앞으로 나가 자기소개를 하는데... 저마다 나름 한자락 읊어봤던 재야의 고수같은 분위기에 또 한 번 놀랐다. 왠지 내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기분이었달까? 본업인 취조(?)에 들어가 보니 함께 하시는 분들은 최소 3년, 최장 10년 이상 저마다 자유로이 다양한 재료를 녹여가며 나름 화폭 위를 맘껏 노닐던 분들이더이다. 다만 혼자서 지속적으로 그림 그리기가 쉽질 않아 함께 그리는 동지들을 통해 서로 배우고 성장하고 연단하고자 함이었다. 그 열의 또한 대단한 분들이다. 김경혜 <내가 나였던 순간들> 21*30 종이에 수채. 2020. 김경혜<운명> 21*30 종이에 수채. 2020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는 이 왕초보는 어디로 가야 할꼬?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던 물건이나 각별한 의미가 있는 사물을 찾아 종이 위에 옮겨 보세요. 그래도 생각나지 않으면 가끔 서랍 속을 한번 열어보세요. 뜻하지 않은 무궁무진한 보물들이 아마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스케치(구도 및 구성), 색감, 채색 등 아무 것도 모르는 백지 상태인 내가 하나 자신하는 건 선무당이 사람잡는다는 속담! 그러니 일단 무조건 도전 스타트!! 마치 수도승처럼 행복한 그림 그리기에 몰두했다. 그리다 보니 보이는 것들이 새록새록 생겨났다. 그림도 결국 돌아봄이요 성찰의 과정이었다. 참 고마운 일이다. 이상권 선생이 강의 목표로 삼았던 “기억, 환기, 표현의 즐거움”을 덕분에 온몸으로 경험했다. 그는 딱히 무엇을 어찌 하라 강권하는 법이 없다. 툭툭 내던지는 이야기 속에 답이 없지도 않다. 대신 영문도 모르고 내 멋대로 정하고 그린 사물에 한없는 용기와 격려 얹어주기. 실은 그 덕에 짧은 6번의 수업이었지만 얼떨결에 우리의 정해진 마지막 수업일인 전시회(11월 28일)에 내놓을 수채화 다섯점도 완성해 낼 수 있었다. 더불어 수업 시간 내내 최 간사가 들려주는 추억의 음악은 황홀경 그 자체였다. 그림 그리는 일이 그렇게 행복한 일이었던가. 나는 지금도 기회만 되면 본업인 글쓰기로부터 도망을 다닌다. 어쩌면 그래서 지금 목하 열애중인 그림 그리기가 그만큼 짜릿하게 다가왔는 지도 모른다. 허나 일탈치고는 작심삼일을 넘어서는 걸 보면 앞으로 내 삶을 풍요롭게 할 연장 하나 더 얻은 건 확실!한 듯하다. 그뿐인가. 세상에! 그간 밥 한번, 술잔 한번 기울이지 못하고 아직은 마스크 쓴 눈빛이 더 익숙한 얼굴들이지만 무엇보다 열정 가득한 선배 작가들을 내 동지로 두게 되었다는 점은 더할나위없는 큰 수확 아닌가. 그들과 함께 걸어갈 더불어 숲길이 몹시 기대된다. ‘고맙습니다~조만간 열릴 봄 학기에는 우리 기어코 한 잔 하시는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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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첫 사법감시 - 판결문 함께 읽기 | [판결비평] 우간다 성소수자가 난민으로 인정받기까지_김민주 | 아카데미느티나무 | 2020.12.5 | |
광장에 나온 판결 : 183번째 이야기 우간다 성소수자가 난민으로 인정받기까지성소수자 박해 위협 호소한 우간다 여성 난민 인정 판결 대법원 제1부 박정화 재판장 2017두51020 [판결문 보기 / 다운로드] 서울고등법원(파기환송심) 제2행정부 양현주 재판장 2018누30022 [판결문 보기 / 다운로드]
글. 김민주(느티나무아카데미 <내 생애 첫 사법감시 - 판결문 읽기> 강좌 수강생)
2014년 어학연수 자격으로 입국한 A씨는 같은 해 5월 성소수자 박해 위협을 호소하며 난민인정 신청을 냈고 서울출입국관리소의 난민 불인정 처분, 법무부에 제출한 이의신청 기각 처분을 받으며 난민 불인정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본 사건에 대한 재판부의 판결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삶의 많은 영역에서 '투쟁'하며 살아간다. 사회가 만든 위계질서에서 높은 위치를 점하지 못한 자는 스스로를 증명하며 권리보호를 위한 노동을 이어나간다. 이는 입헌 민주주의의 국가에서 국민성을 담보받은 자에 한하며, 자국을 떠날 수밖에 없는 서사를 가진 '난민'은 이러한 '권리투쟁을 위한 난민인정투쟁'이라는 난관에 부딪힌다.
우리가 이번에 살펴본 판결문은 우간다 성소수자 난민인정 판결인 '대법원 2017두51020'과 '고등법원 2018누30022'이다. 대법원은 난민불인정판결을, 환송판결인 서울고등법원은 제1심 판결을 취소하며 원고의 난민지위를 인정했다. 대법원과 고등법원의 판결문을 함께 읽으며 공감했던 '사법의 책무성' 초점을 맞춰 토론에서 수강생들과 함께 나눈 의견들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대법원의 수동태와 고등법원의 능동태
대법원은 박해를 받을 우려와 충분한 근거있는 공포성은 난민인정 신청을 하는 외국인이 증명해야 한다는 '대법원 2016두 56080'판결을 인용하며, 난민지위를 인정하는 요소로 원고 진술에 일관성과 신빙성이 결여된다는 데 방점을 둔다.
난민면접조사와 제1심 판결 진술에서 특정 사회집단에 속하는 양성애자로서 성정체성을 인지한 후 첫 관계를 가진 시점이 일치하지 않는 점, 출신국의 경찰에게 체포되어 구금되었을 당시 경찰이 원고에게 가한 고문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점, 나아가 체포 당시 공권력에 의한 성폭행을 난민면접 당시 경찰에 진술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재판부는 원고가 우간다 정부 등으로부터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서술한다.
대법원이 지엽적 사실관계에 매몰되어 있는 점에 주목하는 반면 고등법원은 대법원이 지적한 진술의 비일관성이 다양한 보고서와 통계를 들어 진술이 일관되지 않는다고 해서 사실관계 전체를 부정할 수 없다고 서술하고 있다. 수강생 다수는 고등법원이 인용한 다양한 근거와 같이 폭력적인 상황에서 자신을 억눌렀던 절대적인 힘이 작용한 상황을 서술하는 것 자체에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으며, 피해사실 디테일에 집중하기보다 삶이 놓인 맥락을 능동적으로 읽어낼 것을 요구하고 있다.
난민의 중층적인 서사 읽어낼 수 있는 법관의 책무성 필요
필자는 이번 판결을 읽으며 사회적 약자에게 요구되는 엄격한 자기증명이 모욕적이고, 개인 정체성에 큰 영향을 미쳤을 과거의 기억을 진술하는 부분에서 법이 개인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음을 느꼈다. 이러한 지점에서 성소수자와 같이 외부요인이 아닌 개인의 문제가 박해와 공포가 되어 난민화된 원고와 같은 이들의 판결에 있어 난민인정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진술일지라도, 이 진술이 개인의 사적영역을 침해할 수 있는 여지를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사회적 약자가 원고인 기존의 판결에서 사법부는 남성중심, 정상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설정된 '난민다움', '피해자다움'에 부합하는 이들의 삶을 선별하고 있다.
대부분 선별되지 못한 삶들은 자신을 보호해야 할 권리를 얻지 못해 박해받을 공포에서 멀리 떠나온 곳에서 또 다른 폭력을 마주하게 된다. 이를 두고 한 수강생은 법원이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기울어진 운동장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하고 있다.
가공된 '난민다움'에 부합하는 사람이 적을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식과 더불어, 판결에 있어 법관의 신념이나 과거 판결을 분석하는 '사법행태주의'적 입장에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법관을 많이 뽑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이 경우 다양한 배경을 가진 법관이 많아진다고 해서 판결의 사회적 형평성을 담보할 수 없지만, 다양한 시각의 갈등을 통해 최선의 판결을 도출해낼 수 있다는 점에서 혐오와 차별을 배제한 판결을 내릴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토론 전체를 관통했던 공통점은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위해 능동적으로 법과 판결에 임하는 법관의 책무성이다. 기후난민과 같이 난민화되는 배경이 더 복잡해지면서 국경을 두고도 난민수용과 관련해 더 넓은 영역에서의 고민도 함께 요구된다. 그 고민의 과정에서 난민의 권리를 위한 법관의 부지런한 노동이 난민 스스로 권리를 되찾으며 살아갈 수 있는 투쟁의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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