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기술이란 바이러스 보다도 작은 물질단위를 다루는 기술을 의미한다. 흔히 분자의 조합구조를 변형시키거나 원자를 인위적으로조합하여 미립자 상태로 존재시킴으로써 화합물의 반응성을 극도로 향상시키는 것을 의미하곤 한다. 한때 인기를 끌었던 은나노세탁기는 은에 원래 존재하던 살균성을 나노기술로 극대화시킨 예이다.
나노물질은 매우 작은 입자들이 덩어리지지 않고 서로 간격을 유지하고 있어 표면적이 넓어지는 효과를 가져온다. 이에 따라 단위물질당 반응성도 급격하게 커지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나노기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나노물질은 크기가 매우 작으므로 표피세포 사이를 비집고 인체에 유입되거나 심지어 세포 안으로 투과될수도 있다. 만약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나노물질은 반응성이 극도로 높으므로 인체의 활동에 장애를 초래하거나 세포를 변형시킬 수도 있다.
다행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나노기술의 경우 발전 초기부터 기술에 대한 통제의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는 것이다. 덕분에 나노기술 연구소에 사회학자가 참여여 통제의 문제를 고민하고 정부 및 환경단체의 지속적인 감시가 이루어짐에 따라 기술의 진보와 통제가 비교적 동시성 있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기술에 대한 통제의 딜레마'라는 표현을 접하곤 한다. 이는 기술 발달 초기엔 기술 자체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지지 않아 통제가 불가능하고 기술이 어느정도 발전하면 기술이 통제가능 범위를 넘어섬에 따라 통제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나노기술은 다행히 기술 발달 초기부터 기술에 대한 사회의 통제가 꾸준히 추구되고 있는 최초의 기술 분야이다. 지금 인류는 기술에 대한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통제에 목마르다. 과연 나노기술이 그 첫 성공 사례가 될지 세상은 그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이번 수업은 노회찬의원이 강의해주셨습니다. 지금 진보정의당의 창당 준비위원회에 몸 담고 있다며 소개해주신 의원님, 진보가 초창기에 정치에서 보이기 시작했을 때부터 진보진영에 있었다고 말씀하시며, 이번이 세번째 창당 준비위원회에서 일하는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노회찬의원은 학생 때는 학생운동을 했고, 그 이후에는 노동운동을 했는데, 그 후 정치인이 되겠다고 하자 주변에서 만류가 많았다고 합니다. ‘어느 당에 갈 것이냐’라는 물음에 새로운 당을 만들겠다고 하니, 더욱 자신을 아끼는 사람들의 만류가 컸다고 합니다. 지난 30년간 진보 정치 세력에서 계속 있으면서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그 속에서 이뤄낸 성취도 많다고 자평하셨습니다. 또한 노회찬의원은 작년 통합진보당 창당을 할 때부터 여러 가지로 충돌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으나 이렇게 빨리 파열음이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고, 죄송한 부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번에 심상정의원의 대선출마와 관련해서는 그래도 진보에서 대선후보가 나와서 정책이라던지 국민들에게 메세지를 전달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다 나중에 특정 후보의 지지를 표명하는 것도 한 방법이고,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셨습니다.
군사정권이 무너지고 민주와 보수의 대결은 그 의미를 잃게 되었고, 이제는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 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진보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진보를 원하는 사람이 늘어났는데, 진보 정치인들이 이런 요구와 목소리에 잘 대응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고 송구스럽다고 전하셨습니다. 요즘 새누리당도 통합민주당도 복지정책을 보면 어느 쪽이 보수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런 공약들이 과연 거짓인지, 사탕발림인지는 봐야 아는 것이겠지만, 이렇게 보수가 지지 세력을 포섭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인해, 진보세력의 정책들이 그 빛이 바래지는 일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노회찬 의원은 덧붙여서 과거에 정책을 만들 때, 조언해주고 함께 했던 사람들이 민주당 행을 택하는 것을 보면, 진보세력의 힘이 약하구나, 세력을 구축하지 못했기 때문에 저 사람들을 포용하지 못했구나 라는 반성을 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진보,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 듣는 사람들은 요즘 여러 상황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에 대해 궁금했습니다. 또 ‘진보는 정말 안되나?’ , ‘언제쯤 진보가 제 목소리를 내고, 달라진 생활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던졌습니다. 브라질은 우리보다 10년정도 그 정치의 변화가 앞서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큰 흐름들이 10년정도 빨리 진행되었으니, 우리도 진보가 집권하는 시대가 곧 오지 않겠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진보가 집권해서 생활이 달라지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노회찬의원은 앞으로 어떤 진보를 지향하는지에 대해서는 ‘브라질’의 사례를 들며 ‘다원적 민주주의’가 이뤄지는 진보여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브라질 진보세력은 다수의 원칙 속에 각자 세력이 자신이 생각하는 정책을 연구하고, 표를 가장 많이 얻은 정책을 당의 뜻으로 내세우며, 진보라는 이름 속에 여러 진보 세력이 융합되어 있다고 합니다. 진보도 여러 방면의 진보 세력이 있습니다. 이 세력들이 권력을 잡으려면 싸우는 모습보다는 다원주의에 따라 서로 협력하는 모습이 보여야 사람들도 진보세력에게 실망하거나 등돌리는 일 없이 지지를 계속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참여연대는 10월 9일부터 30일까지 ‘2012년 가을 민주주의 학교’의 일환으로 <세계경제위기와 경제민주화>라는 시민 강좌를 열고 있습니다. 아래 후기는 지난 9일 1강 홍기빈 글로벌정체경제연구소 소장의 강연으로 진행된 '새계경제위기의 구조와 국가의 역할' 후기입니다. 이 후기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김종보 변호사가 작성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거울아 거울아 경제민주화가 뭐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홍기빈 소장은 오늘의 강연에서 이것 하나는 기억하라고 했다. 안데르센 동화 중 가장 똑똑한 것으로 이름난 백설공주 왕비의 거울이 실제로 있다는 점. 그 거울의 실체는 ‘주가’로 표현되는 금융시장의 평가라는 점. 그런데 영원히 깨지지 않을 것 같은 이 거울에 금이 가고 있다고 한다.
강연은 ‘경제 민주화’라는 단어의 의미가 뭔지에 대해서부터 시작되었다. 먼저 ‘민주화’란 무엇인가? 민주주의의 어원은 그리스어 ‘domokratia'로 ’demos(다중)‘와 ’kraots(지배)‘의 합성어이다. 그럼 다중이 지배자가 되어 권력을 가지는 것이 절대적으로 바람직한가? 이걸 그런 뜻으로 볼 수 있는가? 홍기빈 소장은 민주주의란 ’내가 인간으로서 자율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기 위해 필요한 만큼만의 권력을 가진다‘는 것으로 일컬었다. 한 명 또는 몇 명에게 집중된 권력을 위 이상에 부합할 만큼 재분배하는 것. 이것이 ’민주화‘라고 했다. 그렇다면 ‘경제 민주화’는 ‘경제 영역에서의 권력의 재분배’로 바꾸어 말할 수 있겠다. 홍기빈 소장은 이러한 뜻의 '경제민주화'를 바꾸어 말하면 '사회민주주의'에 가까운 것이라 소개했다.
이젠 세계경제위기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갈 차례. 홍기빈 소장은 물어본다. 도대체 뭐가 경제위기라는 건가? 코스피 지수는 2,000에 육박하고, 다우지수를 봐도 경제상황이 좋다. 한쪽에서는 경제위기라고 부르짖고 있는데, 실제 사람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없는 불편한 진실을 들춰졌다. 도대체 경제위기라는 말의 본질은 무엇일까? 홍기빈 소장은 세계경제위기란 바로 지난 몇 십년간 세계경제를 유지해 왔던, 바로 그 원리가 무너진 것이라고 답했다. 그 원리란 인간사회의 조직과 운영이 자본시장의 명령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서 왜 이러한 원리가 정착되었는지 설명이 이어졌다. 수익의 흐름, 즉 기업의 미래가치가 현재적으로 평가되는 곳은 바로 자본시장이고, 그 평가의 결과는 주가로 나타나며, 각종 경제 조직들은 그 평가에 따라 생산(투자)활동을 결정하게 된다. 결국 자본시장의 평가에 따라 경제가 움직이면 전체 경제가 잘 굴러가고 자원은 가장 고르게 분배될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만물박사 왕비의 거울 같은 자본시장의 명령에 따라 작동하기만 하면 바로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자본시장을 규제해선 안된다.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면 왜곡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또한 오늘날 경제는 더 이상 한 국가 차원에서 굴러가지 않는다. 자본시장에서 국경은 사라져가고 있다. 한편에서 정부는 괜히 복지정책을 시행하여 돈을 풀거나 세율을 높여 수입을 늘리는 것은 오히려 자본시장을 혼란시키는 우려를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문제는 자본시장을 정점으로 하는 경제의 원리는 이제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자본시장의 명령이 올바르다는 믿음은 헛되고 헛된 것임이 증명되었다. 기존의 경제 패러다임이 해체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이 세계경제위기의 본질임을 부인할 수 없다.
어느덧 강연은 마무리에 접어들었다. 요약하자면 경제민주화는 단순히 개인에게 돈을 나눠 달라는 요구가 아니라고 했다. 경제민주화란 경제적 권력의 편중을 해소하고 그 권력을 각 주체적 개인에게 분배하여 자신의 경제적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연을 들으며 세계경제위기의 대안으로 경제민주화가 설정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 영역이든 경제 영역이든 권력은 발생할 수밖에 없지만, 그 권력이 몇몇에게 집중되지 않도록 사회적으로 통제하는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는 것이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과제가 아닐까 한다.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의 가을학기 인문학교 강좌 ‘교과서 저자와 함께 읽는 한국근현대사II’ 는 여러 가지 이유로 검정 교과서에 담지 못했던 내용들을 저자가 설명해주는 강좌입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역사적 사건을 비판적으로 설명하여 시민들이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추도록 하는 취지의 강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균형 잡힌 역사관을 위하여
이번 시간에는 지난 시간에 다뤘던 미소공동위원회에 이어 해방 후 남북협상 및 정부수립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선생님께서는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한 남북 협상 과정에서 벌어지는 역사적 사건들을 상세하게 설명하셨는데, 특히 북한의 정부 수립 역사도 다룸으로써 참여자들이 다양한 시각에서 역사적 사건들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습니다.
이 선생님이 설명해주신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 세 가지 사항이 인상 깊었습니다.
1. 4.3 제주항쟁
오늘날 우리 정부는 4.3 제주항쟁 사건을 국가권력에 의한 폭력 행사로 규정하고 있으나 군대 등 일부 집단은 여전히 4.3 항쟁에 대해 국가를 전복하려는 시도로 간주한다고 합니다.
당시 군경과 더불어 서북청년단 등 어용단체들이 투입되어 수많은 무고한 제주도민들이 학살당했습니다.(슬라이드로 보여주신 그림들이 말보다 더 직접적으로 와 닿았고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한 사건이 아니라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역사적 사실이며, 정부가 제주 4.3항쟁에 대해 국가에 의한 폭력으로 분명하게 규정했다면 정부가 대중에 이를 널리 알리는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국민들이 진실에 눈을 떴을 때 다시는 우리 역사에 이러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을 것입니다.
김구를 정치가로 인식했을 때 그의 정치적 선택과 행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민족주의자이며 기백이 넘치는 독립운동가인 김구 선생도 어쩌면 정치적인 선택의 기로에서 장고를 거듭했을지도 모릅니다.
(1차) 남북협상을 위해 김규식 선생과 북으로 건너갔을 때 그의 미래가 결정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만일 김구 선생이 북으로 가는 대신 남측만 시행한 총선거에 참여하였다면 여당의 수장 내지 야당의 수장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세력이 강성했으나 그에 반발하는 세력과 민족주의자들을 규합하여 대항했다면 김구로써도 충분히 승산 있는 선거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북측 회담에 참석한 것이 결과적으로 그의 정치적 입지를 약화시켰고, 한편 그 시기 이승만은 남한 총선거를 통해 실질적으로 물리력(군경)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을 획득하였습니다. 후에 김구가 돌아왔을 때는 이미 이승만 세력이 군경 집단을 장악하고 있었기에 김구가 민족주의자들과 이승만에 반발하는 세력을 규합하고 대항하는데 있어 한계가 드러났습니다.
3. 오래된 영상물 시청
해방 후부터 정부수립까지 북한의 생활상을 담은 영상물을 시청하였습니다. 당시 주거형태나 생활 전반이 남쪽 사람들과 다른 점이 없었습니다. 김일성을 위시한 세력들이 노동당을 창당하기 전까지 태극기를 사용했다는 점이 그나마 주목할 만한 사항인 것 같습니다.
그밖에도..
준비자 분들께서 맛있는 김밥을 마련해주신 덕분에 허기진 배를 채우고 더욱 열띤 자세로 강의를 경청할 수 있었습니다. 강의 시작과 말미에 멋진 멘트를 날리며 진행해주신 간사 선생님과 항상 애쓰시는 자원활동가 선생님의 노고에도 감사드립니다. 다음번 강좌와 함께 강좌 끝나고 진행되는 뒷풀이 또한 기대해 봅니다.
마치며
이번 시간에는 시간이 부족해 강의 진도를 다 나가지 못했으나 이러한 부분이 시민교육의 자유로움이자 ‘멋’이 아닐까 합니다. 정해진 진도를 어떻게든 채워 나가는 것보다 내용의 깊은 성찰을 통해 조각난 역사적 사실들의 연결고리를 찾고 빈틈을 매우는 작업을 참여자들과 함께 공유하는 것이 본 강좌의 취지와 성격에 더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이번 6강의 제목인 ‘홍명희는 왜 북한의 부수상이 되었나?’에서 홍명희는 김구 선생이 남북 협상을 위해 북으로 건너가셨을 당시 함께 동행했던 인물입니다. 그는 김구 선생이 다시 남쪽으로 돌아오실 때 함께 내려오지 않고 북쪽에 남았다고 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북한의 부수상이 된 홍명희가 과연 그 후에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해보며 제법 서늘해진 어느 가을날 밤에 열렸던 열띤 강좌의 후기를 마칠까 합니다.
아카데미 느티나무는 올 여름부터 평화교육에 대한 워크숍을 기획하고 있었습니다. 준비 과정도 길었고,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 분들이 기획과 진행에 대한 의견을 온,오프라인으로 수 없이 많이 교환했습니다. 참여연대 아카데미에서 평화교육워크숍을 할 수 있을까. 한다면 잘될까. 시작해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많은 질문과 고민들이 교차했지만, 뚜껑을 열기전에는 누구도 알 수 없었던 워크숍의 뚜껑이 드디어 지난 10월 10일 수요일에 열렸고 이제부터는 매 세션이 진행될 때 마다 그 기록을 남깁니다.
어서오세요. 반갑습니다!
저녁 7시에 가까워지자 한 두분씩 워크숍 장소인 참여연대 느티나무홀로 들어서기 시작합니다.
문 안쪽으로 들어선 분들에게서 약간의 긴장감과 기대감이 섞인 눈빛이 읽혀 집니다.
그도 그럴것이 느티나무홀에는 아무것도 놓여있지 않았습니다. 뻥 뚫린 공간에 돗자리 몇 장 그리고 방석 몇 개만이 깔려 있습니다.
군데 군데 색지에 적혀진 평화와 관련된 글귀와 전면에 걸려있는 플랭만이 이곳이 워크숍이 열리는 장소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가을밤과 어울리는 음악이 나지막히 홀을 가로 지르고 있습니다.
간단히 명단을 확인한 뒤 장내를 서성이며 준비된 다과와 김밥을 먹고 있습니다.
안면이 서로 있어 보이는 분들도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우리 어디서 뵙지 않았었나요?" "네, 지난 봄에 그 워크숍에서..."
대부분 서로 잘 모르지만, 눈짓 인사를 나눕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돗자리 가운데서 말하고 있진 않지만, 누군가 자신을 쳐다보기를 기다리는 존재의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짐작컨대 진행자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돗자리로 모여듭니다. 한 두명씩 신발을 벗고 반짝반짝 빛나는 은박 돗자리 위로 올라 섭니다.
진행자는 돗자리 위에서 편안한 느낌으로 잠시 걷기를 청합니다.
내가 익숙한 보폭으로, 한 걸음 두 걸음 걷습니다. 사뿐사뿐, 요리조리 움직이며 걷습니다.
걷는 사람들에게 다시 어깨 인사를 청합니다.
어깨를 서로 부딪치며.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인사를 나눕니다.
잠시 걸었을 뿐인데, 신기합니다. 땀도 나는것 같고, 몸이 따뜻해졌습니다.
모든 사람과 어깨 인사를 나누어 갈 즘에, 걷던 것을 멈추고 그 자리 앉았습니다.
바로 옆에 앉은 사람끼리 짝이 되어 등을 대로 앉아 서로 이야기 합니다.
"자신이 평화를 느낄 때가 언제인지,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내 자신은 어떤 존재인지"를 한 사람씩 3분동안 이야기 합니다.
상대방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종이에 그림으로 표현합니다. 그리고 그림의 제목을 붙입니다.
서로에게 그림을 전달하고, 진행팀에게 라벨지를 받아 그림 제목을 적어 몸에 붙입니다
그렇게 등을 마주대고 온전히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그림을 그리고, 그림에 제목을 붙여준 바로 그것이.
워크숍 내내 사용하게 될 나의 별칭이 되었습니다.
다시 홀 안을 걸어줄 것을 요청 받았습니다.
이번에는 손뼉을 마주치며 흥겹게 걷습니다. 짝짝! 여기저기서 웃음 함께 경쾌한 마주침이 울려 퍼집니다.
아까와는 다른 한 사람을 만나 등을 대고 다시 자리에 앉았습니다.
진행자가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내가 짓고 싶은 평화 농사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세요.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누어 어떤 일을 해야하며 누구를 만나야 할지 서로 이야기 나누어 봅시다"
역시 한 사람은 이야기하고 한 사람은 듣기만 합니다. 듣고 있는 사람은 떠오르는 이미지를 종이에 그립니다.
과정이 끝나고, 서로에게 그림을 선물했습니다.
큰 원으로 모두 모여,
나의 별칭과 선물받은 그림을 펼쳐 보여주며 내가 짓고 싶은 평화 농사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합니다.
참, 여러가지 별칭이 나왔네요.
비우는 평화, 잠평(잠자리의 평화), 돌멩이(나무그늘 아래 돌멩이), 알고파 평화, 풀어내기, 야옹, 산책, 재충전중, 숲 속을 걸을 때, 이동의 기쁨, 파장...
대부분 별칭이 자연과 연관된게 많았어요. 아무래도 자연에 들어 있을 때 가장 평화로움을 느끼나 봅니다.
내가 짓고 싶은 평화 농사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일상에서 부딪치는 사람들과의 관계, 활동을 할 때, 일을 할 때 느껴지는 폭력 혹은 조금 더 평화적 감수성을 가지고 어떻게 풀어 갈 것인지에 대한 스무명의 소중한 생각을 온전히 나누었습니다.
잠시 쉬는 시간이 있었네요.
느티나무홀 군데 군데 붙어 있던 평화와 관련한 다양한 글 귀들을 둘러보며 나의 마음을 잡아 끄는 문구 앞에 서 있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서로에게 그 이유를 공유했습니다.
십여가지의 글귀가 붙어 있었지만, 아래의 글귀가 참여자들의 마음을 잡아 끌었습니다.
들은 것은 잊어버리고 본 건 조금 기억나지만, 해보면 이해가 간다.
혼자 꾸는 꿈은 꿈이지만, 여럿이 함께 꾸면 현실이 된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
(911 이후)우리 모두 무슬림이다
어쨌든 세상은 강자가 지배한다
전쟁은 인간의 마음 속에서 생기므로 평화의 방벽을 세워야할 곳도 인간의 마음이다
국가와 폭력과 남성은 삼위일체
평화는 질서가 있은 이후에 가능하다
내가 타자가 되는 것
아프냐? 나도 아프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때로는 너무 싫었던 말인데...)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새삼 마음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마음을 잘 헤아리는 것, 타자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리고 소통 하는 것, 이 모두가 참여자들이 함께 공감하고 있는 화두임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워크숍은 조금도 시간을 허투로 사용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진행자는 서있던 순서대로 "하나, 둘, 셋" 으로 돌아가며 세 조를 만들었고,
<평화 장애물>, <교육 장애물>,<폭력의 원인>에 대해서 각기 세조의 사람들이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있는 힘껏 많이 적기를 시도했습니다.
3분 동안 칠판 가득 적힌 장애물들을 보며, '이것 모두 우리가 넘어야할 산' 이구나 싶었습니다.
여기저기 겹치는 장애물들도 있었고 생각지도 못했던 장애물도 발견했습니다.
장애물에 공감하시나요? 어떤 장애물이 커보이나요?
이쯤 되니 숨이 가빠왔습니다.
장애물들은 잠시 세워 둔채로 다시 차분하게 모두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서로가 서로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워크숍에 대한 기대치와 내가 워크숍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가만히 앉아 쓰다보니
기대되는 것은 금방 적을 수 있었는데,
내가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는 쉽사리 적기 참 어려웠습니다.
그 어려움에 여러분이 공감하는 것을 보면서 이것 또한 흥미로운 지점임을 발견할 수 있었답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 씩 이상은 기여를 하시겠다고 공언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참여자 모두의 '기대치'라는 물줄기가 '기여치'가 모여있는 아래로 흐르며
여러 갈래로 뻗쳐 나가는 형태의 아름다운 강물이 만들어 졌습니다.
6회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결코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서로가 함께 호흡하며
서로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는 것을
함께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가는 참여형 워크숍.
‘참여적(P)-낯설게하기(E)-예술적(A)-창의적(C)-대화식(E) 의 P.E.A.C.E. 페다고지’를
맛보고, 놀아보고, 실습해 보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아름답고도 큰 울림이 있는 시 한편을 함께 낭독하며
첫 번째 세션을 마무리했습니다.
여러분께도 그 울림이 전해지길...
두 가지 지식
- 젤랄루딘 루미
두 가지 종류의 지식이 있다. 그 하나는,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 책이나 교사로부터 개념을 배우고 암기를 하면서 배우는 지식, 전통으로부터, 또한 새로운 학문으로부터 배우는 지식이다.
그러한 지식의 힘으로 너는 세상에서 일어선다. 남을 앞서기도 하고 남에게 뒤처지기도 한다. 그 지식을 습득하는 능력에 따라, 그 지식의 장 안팎으로 드나들며, 네 안의 지식의 판에 더 많은 지식을 새긴다.
또 다른 종류의 지식이 있다. 네 안에 이미 완성되어 존재하는 지식, 샘 판에서 흘러넘치는 샘물 같은 지식- 그 신선함이 가슴 한가운데를 적신다. 이 지식은, 시들지도 썩지도 않는다. 그것은 늘 흐르며, 밖에서 안으로- 배움을 연마하는 통로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하승우 강사님은 영화 <풍산개>를 들며 사람들이 타인을 재단하려 하는 사회를 꼬집으셨습니다. 극 중 윤계상은 남과 북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기에, 양쪽 모두에게서 ‘어느 편이냐’는 질문을 듣습니다. 어느 한 편에 속하지 않으면 안전해질 수 없는 상황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듭니다. 강사님은 한국의 진보도 마찬가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이론이나 사상에 권위를 부여하고 자기 식으로 해석하고, 자신과 다른 해석을 내놓는 쪽은 변절자나 개량주의로 폄하하는 일부 진보 세력들을 비판하셨습니다. 인간은 각자 자라는 환경이 다르고, 각자 다른 감수성을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각자의 시선의 차이는 피할 수 없는 것이고, 토론과 합의하는 과정을 필요로 합니다. 같은 시선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동지’라는 말로 사람들을 한정지으면, 그 ‘동지’라는 말에 위화감을 느끼고 함께 연대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생겨납니다. 불편하지만 우리에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없도록, 조금 불편하고 어려운 사람들도 만나 우리 편을 늘려야 사회를 바꿀 수 있습니다. 한 살림과 의료생협, 그리고 강정과 쌍용이 서로 연대하는 모습을 보면, 서로가 서로의 삶에 관심을 가지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대의명분이 삶을 바꿀 수 있을까요? 공지영씨가 쓴 ‘의자놀이’의 논쟁을 기억하시나요? 공지영씨가 이 책의 수익금을 쌍용차 노조에 모두 기부한다는 좋은 뜻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휴머니스트의 나라말출판사 인수와 판권에 관련된 문제, 그리고 표절 문제 등을 전부 이 때문에 묻고 넘어가야 하는 것일까요? 수익금 기부로 인해 혹 좋지 않은 시각이 생길까 판단하여 과정 속에 생긴 문제들에 대한 논의들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약자가 강자를 이해하고 배려한 것입니다. 이는 이승만 정부가 잘 살게 해주겠다며 국민들을 억압했던 논리와 다를 바가 없다고 강사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울산 현대자동차에서 일어난 ‘밥.꽃.양’이라는 사건을 아시나요? 현대자동차 노조가 정리해고 반대를 내세워 한 무기한 전면파업이 277명의 정리해고로 타결되었습니다. 이들이 바로 식당아줌마들이었습니다. 이들 중 144명의 여성노동자들만 노조식당에 고용되었습니다. 이때 현대자동차 노조는 ‘아줌마들만 참으면 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아줌마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곳은 없었습니다. 민주노총 등 노동단체들도 가입되어 있거나, 관련된 일이 아니면 관심을 갖지 않으니 묻히기 쉽습니다. 기륭전자, KTX, 재능교육 등 여성노동자들이 일으킨 파업은 장기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회를 바꾸려는 곳에서도 가부장제는 남아있습니다. 우리는 누구와 연대해야 하는 것일까요?
몇 년 전 장애인들도 지하철을 탈 수 있게 해달라며 장애인들이 선로를 점거한 일이 있었습니다. 30분간 시민의 발을 묶었으나, 자신들은 30년을 집에서 기다렸다며, 지하철을 용이하게 이용할 수 있게 시설을 확충해달라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진보는 가장 아파하는 사람과 연대하고, 섬세해야합니다. 하지만 시민의 발을 묶었다는 점에서 비판이 두려웠고, 큰 이익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진보단체는 이들과 결합하지 않았습니다.
성공회대에 근무하던 계약직 행정직원이 비정규직으로 계약이 만료되어 학교를 떠나게 되자 행정직원 정규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서명을 받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명단에는 많은 진보적 교수들의 이름이 빠져 있었습니다. 진보적이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자기 공간에서 벌어지는 부조리함에 대해서는 눈을 감을까요? 자신의 생각과 주장이 삶에서 드러나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처사는 신뢰를 잃는 계기가 됩니다. 진보가 더 나은 진보, 올바른 진보가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과 연대하고, 자기책임성을 갖는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이번 강의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해방 이후의 다양한 정치인들에 대해 살펴보고, 신탁통치와 관련한 동아일보의 오보사건을 다뤘습니다.
오늘 후기에는 '신탁통치 오보사건'을 중점으로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1. 신탁통치 오보사건
혹자는 '신탁통치 오보사건'을 '역사를 뒤바꾼 10대 오보'중에 하나로 꼽기도 합니다. 그만큼 한반도와 세계정세에 엄청난 영향을 준 사건입니다.
광복을 맞은지 4개월이 지난 후에 미국과 소련, 그리고 영국의 외상은 모스크바에서 한반도를 어떻게 할지 협상합니다. 이 회담이 모스크바 3상회이지요. 이 때 회담에 참석한 미, 소, 영과 장제으의 중화민국을 포함하는 4개국이 한반도를 신탁통치 하자는 아이디어가 구상되기 시작합니다.
이런 움직임이 저 멀리 막사과(모스크바의 당시 표현)에서 이런 논의가 진행되던 때인 1945년 12월 27일, 동아일보에서 호외를 냅니다.
<1945년 12월 27일 동아일보 기사 -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소련의 구실은 삼팔선분할점령. 미국은 즉시독립 주장>
당췌 읽을수가 없군요. 하얀건 종이요 까만건 글자겠죠? 그나마 보이는 사진에서 스탈린과 미국의 외무상인 번즈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련과 미국이 만나서 뭔가 했나보군요!
<위 기사를 번역한 내용입니다. - 출처 : 네이버 뉴스캐스트>
보도 내용인 즉, 임시정부 수립에 대한 협상결과가 나왔으며, 소련은 신탁통치를 찬성하고 미국은 반대하는 입장이다 라는 것인데, 문제는 이게 사실관계가 뒤바뀐, 오보라는 것입니다.
모스크바 3상회의는 앞서 말했듯 12월16일부터 27일까지 미국·영국·소련 3개국의 외무장관들이 모스크바에서 모여 전후 처리 과정에 대한 문제들을 합의하려 진행한 모임이었는데, 이 기사가 나오던 시점인 12월 27에는 회의 내용이 채 공개되지 않았던 시기였습니다. (회의 내용은 이후 12월 30일에 공개됩니다.)
기사 내용을 잘 살펴보시면 아시겠지만 '조선 독립문제가 표면화하지 않는가 하는 관측이 농후하여 가고있다'는 등의 추측성 발언을ㅈ아볼 수 있습니다. 사실에 기반해서 쓴 기사가 아니라 회의 내용에 관한 하나의 추정, 그러니까 정확하지 않은 기사라는 사실을 엿볼 수 있는거죠.
2. 극렬한 좌우대립
하지만 사실은 이와 달랐습니다. 정작 신탁통치를 주장했던건 미국이었지요. 그리고 신탁통치에 관한 미국과 소련의 입장도 차이를 보이는데, 소련의 경우 일종의 '후견인'역할의 신탁통치를 주장했고 미국의 경우 완전한 신탁통치를 주장합니다.
이 보도가 발표되자 한반도는 '친탁'을 주장하는 좌익 진영과 '반탁' 주장하는 우익 진영으로 나뉘어 좌우대립이 극에 달하게 됩니다. 일제에 의한 강제통치에서 벗어난지 얼마 되지 않던 상황에서 또 다시 강대국에 의한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아주 유명한 사진입니다. 신탁통치 반대시위 사진>
이승만, 김구등의 유수의 정치가들은 일제히 '3상회의 결과 수용 불가!', '신탁통치 반대'의 구호를 내걸고 반탁운동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김구와 이승만의 재빠른 신탁통치 반대운동은 여운형, 박밀려있던 지지도를 회복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초기엔 좌익들도 "신탁통치는 우리 민족에 대한 모독"이라며 반탁을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박헌영이 소련을 다녀온 뒤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하여 찬탁으로 입장을 선회하지요. 이들은 결국 우익에 의해 찬탁세력으로 치부되어 범 국민적인 공격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반탁운동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친일세력들이 자신들의 과거를 세탁해버립니다. 친일파 세력들이 친/반탁운동으로 정세가 요동치는 틈을 이용해 자신들을 '반공투사','애국자'로 둔갑시켜버린 것이 이것입니다.
3. 교과서와 반탁운동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때 "소련은 찬성, 미국은 반대"라고 신탁통치 반대운동에 대해 외웠었습니다. 교과서에서는 동아일보의 오보내용이 역사적 사실으로 아직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2009년 교과서 개정안을 통해 이 내용에 변화가 오게 되는데, 2010년 3월 1일에 나온 금성출판사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258페이지에 "...소련이 38선 분할을 구실로 신탁통치를 주장한 반면, 미국은 즉시 독립을 주장하였다는 잘못된 보도였다"라고 설명한 구절이 첨가됩니다. 독립된 박스로 다룰 정도로 오보사건이 나름 비중 있게 등장합니다.
['재벌 공화국을 넘어' 강좌 ⑤] 토크쇼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 2012년의 선택'
"안철수 식 경제민주화, 사람 헷갈리게 해" : 정치권-시민사회 경제 민주화 토크
프레시안 김덕련 기자
경제 민주화에 관한 이야기가 시민사회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나오고 있다. 이렇게 말이 무성한 만큼 경제 민주화 논의가 내실 있게 이뤄지고 있는 것일까?
정치권과 시민사회 인사들이 25일 저녁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이 문제를 놓고 머리를 맞댔다. 참여사회연구소,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프레시안>이 공동 주관하고 5.18기념재단이 후원하는 강좌 '재벌 공화국을 넘어'의 마지막 순서로 마련된 자리다. 김민영 참여연대 전 사무처장이 사회를 맡고 이종걸 민주통합당 의원, 이병천 강원대 교수, 이동걸 전 한국금융연구원장(한림대 객원교수), 김성진 변호사(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부위원장)가 토론자로 나섰다. 주최 측에서 새누리당 의원도 섭외했으나 일정이 맞지 않아, 민주통합당 의원만 참석했다.
새누리당, 경제 민주화 추진한다는 당 차원 의지 있나?
이 자리에서는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경제 민주화 방안의 적절성 및 실행 가능성 등이 논의됐다. 새누리당과 관련해서는 주로 당 차원의 추진 의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이종걸 의원은 "개별 의원들이 체계 없이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이며, 후보에게 집중돼 관련 정책들이 준비되는 것 같지는 않다"고 평가했다. 이 의원은 "출자총액제한제, 금산분리, 순환출자 금지 등에 대해 새누리당의 몇몇 의원이 당론으로는 아니고 개별적으로 제출했고, 우리와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면서도 당 차원에서 "추진하려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법안과 관련해서는 대선 때까지 서두를 게 없다는 기조를 유지하는 듯하다"는 게 이 의원의 판단이다.
이동걸 전 원장은 "총선 이후 박근혜 후보 입에서 직접 나온 건 '신규 순환출자 금지' 딱 하나"라며 "내용이 매우 빈약하다"고 말했다. 또한 "새누리당에서 말하는 경제 민주화의 대전제는 기득권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이는 "본질은 놔두고 곁가지만 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제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재벌을 중심으로 뭉친 언론, 지식인, 관료 등 특권 카르텔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새누리당이 이 부분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와 관련, 김성진 변호사는 "특권 카르텔에 대항하고 경제 민주화를 이루기 위한 연대기구가 '경제 민주화와 재벌 개혁을 위한 국민운동본부'('경제 민주화 운동본부')"라고 말했다. '경제 민주화 운동본부'는 바로 이날 출범했으며, 전국에서 500여 단체가 함께할 뜻을 밝혔다. 김 변호사는 '경제 민주화 운동본부'가 3대 분야(시장, 일자리, 경제력 집중과 조세 정의)에서 13대 과제를 추진한다며 각각의 내용을 소개했다.
이 전 원장은 새누리당 내 경제민주화실천모임('경실모')과 관련해 "경실모가 낸 법안 중에는 '일감 몰아주기 규정을 어기면 계열 분리를 시키겠다'는 등 상당히 급진적인 것도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새누리당 쪽 실천 의지에는 의문을 표했다. 이 전 원장은 "지금 상태에서 '경실모'가 급진적으로 나오는 건 정치 전략 수준이며, 실제로 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고 말했다.
"민주통합당, 우선순위와 전략 정해야"
민주통합당에 대해서는 전략이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의원은 "민주통합당의 경제 민주화 방안은 '내용이 풍부하긴 한데 무엇에 집중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며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반성이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전 원장은 "우선순위와 전략을 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병천 교수는 "백화점식인 것도 문제이지만 무엇보다 신뢰 문제가 크다"며 "(신뢰 문제에서는) 새누리당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제시된 여러 경제 민주화 방안 중 "현재 조건에서 재벌을 규율하는 데 가장 파장이 큰 것이 무엇일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청중석에서도 민주통합당에 대한 주문이 나왔다.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은 "'새누리당 방안은 나쁘고 우리 것은 좋다'는 식으로는 안 된다"며 "경제 민주화 관련 법안을 단 몇 개라도, 어떤 식으로든 10월에 통과시킬 것"을 민주통합당에 주문했다. "그래야 국민들이 진정성을 조금은 믿어줄 것"이라는 말이다.
한편 안철수 후보와 관련해 이 전 원장은 "조금 더 지켜봐야겠다"고 말했다. "큰 방향은 민주통합당과 그리 다르지 않은데, 출마선언을 할 때 사람을 헷갈리게 해 앞으로 뭐가 들어갈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안철수 후보 측에 합류한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참여사회연구소,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프레시안은 8월 28일 부터 총 5회에 걸쳐 아카데미 느티나무 강좌 '재벌 공화국을 넘어'를 엽니다. 한국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전망하면서 재벌개혁은 왜 필요한지, 재벌에 대한 인식과 개혁방향을 둘러싼 논쟁 지점들은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또한 보수 정치세력이 말하고 있는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에 관한 주장의 허구성과 한계는 무엇인지, 재벌독식이 아닌 공생의 경제로 나가기 위한 방안들을 살펴봅니다.
‘진보.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 2강의 시작에 앞서서 폴리티컬 컴퍼스 설문 결과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폴리티컬 컴퍼스를 통해 수업 전에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알 수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어떤 성향을 갖고 있는지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번 ‘내게 진보는 □이다.’에 이어 ‘내게 정치는 □이다.’에 자신의 생각을 기입하고, 그 이유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네모 칸에 여러 가지 다른 답이 채워졌다. 교육감이 바뀌고 나니 아이들이 인권 관련한 가정통신문을 받아온 것을 보고, 아이들 보육 지원료가 나오는 것을 보며 정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활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하시며 ‘일상’이라고 답하신 분도 있었다. 또 정치는 자신의 숙명이라고 답하신 분도 계셨습니다.
강연해 주신 박상훈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께서는 진보라는 의미의 재정립화의 필요성을 역설하시며 정치는 공적인 일에 참여하고 관여하는 일이라고 정의를 하며 수업을 시작하였습니다. 과거 그리스에서는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으나 지금 우리 운동권들은 ‘자신은 정치적인 사람이 아니다. 권력에 관심이 있어서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말하는 세태를 꼬집었습니다.
*정치와 유리된 진보란 가능한가?
정치가 이상사회를 만들 수 없고, 일상에서 권력. 위계. 강제. 복종과 같은 요소들을 없앨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지지하는 정당이 있고, 그 정당이 유능함을 발휘하고 대중의 기대를 받을 때, 그 정당에 기대를 거는 사회적 약단 집단도 무시당하지 않고, 주체적 시민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런 정치가 가능하지 않다면, 소외된 사회집단은 좌절을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취약 계층들이 정치를 멀리하게 됨에 따라 특정 집단이 자신들에게 유익하도록 정치를 움직여 나가게 됩니다. 오늘날 한국 정치가 상층계급의 전유물일 수 있는 데에는, 진보의 책임도 큽니다. 진보적인 것을 앞세우고, 운동의 고결함과 진정성만을 고집하며, 반정치주의의 도덕성을 뒷받침했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정치 속에서 성과를 낼 유능함을 진보가 갖지 못했다는 게 문제이지 정치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진보가 정치에서 사회에 유익한 성과를 내려면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진보의 성장과제
정파 때문에 문제라는 말이 있는데, 정파를 만드는 것은 정치에서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다만 정당을 제대로 만드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정당의 형성기 내지 전환기에는 강한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이 없이는 강력한 대중권력은 불가능 하고, 정당은 정파 권력들의 놀이감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지는 용서되지 못한다’라는 말처럼 정치에서 무능력은 변명될 수 없습니다. 리더십과 권력의 문제를 회피하고 이룰 수 있는 정치적 성취는 없습니다, 권력을 통해 권력을 통제하려는 접근, 야심을 통해 야심을 견제하려는 접근이 필요합니다. 이 속에서 어떻게 목표를 성취할 지가 진보가 해야 할 일입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진보의 편향된 이해
그간 진보는 자신들만의 민주주의가 갖는 특별함을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정치에서 옳음은 하나가 아니라 복수입니다. 특히 민주주의는 여러 부분적 옳음을 말하는 정당들 사이의 경쟁을 통해 사회적으로 선한 결과를 낳고자 하는 체제입니다. 가끔 진보만이 옳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보수를 박멸의 대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수 없는 진보만의 세상이 가능하다면 그는 전체주의일 것입니다. 이견은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견을 갖는 집단들의 합리적인 경쟁과 공존을 통해서 만이 진보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은 성공한 진보정당들의 과거 경험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입니다.
*좋은 진보 정치가란?
정치에서 운동에 대한 헌신을 내세우거나 역사나 이념을 과도하게 이상화하는 접근은 진보적 엘리트주의에 불과하며 대중의 지지를 얻을 수 없습니다. 사보나롤라는 도덕주의적 진보파의 전형적 인물로 타락한 사회를 정화하고자 스스로 대속의 십자가를 지는 자세로 통치를 했습니다. 도박을 금하고, 매춘을 금하고, 후에는 술을 금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갈등과 분열 불안한 현실은 여전했고 시민들의 불만은 쌓여갔습니다. 이 때 교황과 귀족의 음모로 그의 통치는 처참하게 무너졌고, 화형에 처해지고 말았습니다. 탁월함이 정치에 기여해 좋은 정치를 할 수는 있으나 다수의 판단과 함께 가야만이 성공 가능하다는 것을 이 사례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치학을 잘 아는 사람이 정치를 잘 할 수 있을까요? 정치학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정치를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플라톤이나 루소도 현실 정치에서는 실패했습니다. 정치는 누구나 다 전문가가 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전문가가 더 이론에만 집중해 현실 정치를 파악하지 못하는 오류에 빠지기도 합니다.
*진보의 가치
보수가 ‘현실’을 고정시켜 해석하는 것만으로도 기반 층을 다질 수 있는 것과는 달리, 보수는 ‘현실의 변화와 개혁을 통해 발전된 미래상’을 제시해야 한다. 어떤 미래를 제시해야하는지에 대한 지향과 관점은 다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정파적 분열과 사상투쟁의 가능성이 큽니다. 뛰어난 누군가가 나와 미래상을 제시한다 해도, 불확실성을 띄므로 진보는 실력이 없으면 정치적으로 성장하기에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진보의 도전의 벽이 높은 것은 진보의 성취가 더 빛나고 효과가 오래갈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좀 더 인간적이고 좀 더 정치적 이성을 갖춘 실력 있는 진보파가 나와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는 현실 개혁을 이루어 졌으면 하는 것이 바람입니다.
경제정책에서 시장자율과 규제완화를 외쳤던 제 세력과 집단이 이구동성으로 자신들 주장의 근거로 든 것을 하나 꼽으라고 하면? '글로벌 스탠더드'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재벌공화국을 넘어' 네 번째 강좌를 진행한 김남근 변호사가 설명한 선진 각국의 생생한 정책 사례들을 살펴보면 무엇이 진짜 '글로벌 스탠더드'인지, 이 말이 경제적 기득권을 옹호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는지 의심이 갈 만하다.
지난 9월 18일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참여사회연구소,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프레시안>이 공동 주관하고 5.18기념재단이 후원하는 강좌 '재벌 공화국을 넘어'의 네 번째 강연을 김남근 변호사가 진행했다. '2012년 국회에서 추진해야 할 경제민주화의 과제'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강연에서 김 변호사는 선진 각국이 중소기업과 중소상인, 노동자를 보호하는 규제의 측면에서 본다면 "시장자율이 아니라 규제가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강조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글로벌 스탠더드를 얘기할 때 그 기준은 미국이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대형마트는 거의 도시 외곽에 있다. 월마트는 아직 뉴욕에 진출하지 못했고 시카고에만 1호점이 있다. LA에는 매장 규모를 5분의 1로 줄여서 진출하려고 했지만 결국 못했다. 대형마트가 들어설 경우 끼치는 영향에 대한 평가제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글로벌 스탠더드이다."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은 선진 각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
서유럽은 도시계획적 측면에서 대형마트 입점을 규제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독일의 경우 상업지역에만, 그것도 주변상인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매출영향가제 규제를 통과한 경우에만 대형마트가 들어설 수 있다"면서 "프랑스도 지역 상인들이 절반 이상의 위원을 차지하는 상업위원회가 영향평가제를 실시하는 방식으로 규제를 한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경우 대형마트 규제정책에 대해 미국의 대형마트가 국제소송을 걸어 규제법을 폐지한 대신 환경영향평가제를 도입해서 대형마트 입점을 규제하고 있다. 교통체증과 소음 등의 규제에 다 걸리기 때문에 사실상 허가제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교통과 지역상권에 끼치는 영향을 봤을 때 "지금 합정동에 홈플러스가 들어서는 것은 외국에서는 상상하기도 어렵다"고 한국의 실정을 비판했다.
선진 각국은 FTA나 WTO 위반 시비를 피하기 위해 대형마트 규제정책의 표면적 이유로 지역상권이나 중소상인 보호 대신 도시계획과 환경, 노동권 보호 등의 공익적 목적을 내세우고 있다. 이 같은 목적의 규제에 대해 FTA나 WTO 위반 시비 사례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중소기업 보호정책에서도 글로벌 스탠더드는 우리가 아는 것과 다르다. 독일, 일본은 경제적 약자인 중소기업의 처지를 고려해 공동납품, 공동판매, 공동연구개발 등의 공동행위를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공정거래법상 공동행위는 담합으로 처벌을 받는다. 공정위의 인가를 받는 경우에는 예외가 인정되지만 지금까지 이 인가를 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
"대기업이 시장을 장악하다보니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는 대부분 하청구조의 형태를 취한다. 내가 '중소기업들은 1년에 한 번씩 납품단가 후려치기를 당한다'고 토론회에서 얘기를 했더니 어떤 중소기업 사장이 항의전화를 했다. 1년에 한 번이 아니라 분기별로 당한다고. 재벌대기업이 장악한 시장에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공정거래법 19조를 개정해 중소기업이 가격, 판매, 납품, 연구개발 등에서 단결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
볼보자동차와 쌍용차 정리해고의 차이
김 변호사는 역대 정부가 고용유연화를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외쳤지만 이것은 절반의 진실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EU 차원의 법정근로시간은 연장근로시간까지 포함해서 1주 48시간"이라며 "한국의 법정근로시간은 1주 40시간인데 연장근로시간까기 포함하면 1주 52시간이고, 연장근로시간을 계산할 때 휴일근로는 빼는 꼼수를 부린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정리해고제도 하나만 보더라도 한국이 선진 각국의 기준에서 얼마나 멀리 있는지도 설명했다.
"선진 각국은 기업의 해고 회피 노력이 제도화되어 있다. 가장 많이 쓰는 방식은 조업단축이다. 폭스바겐은 5교대제를 실시했다. 당연히 기업이 지급하는 임금은 줄었지만 임금의 50%는 정부가 지원했다. 프랑스는 정리해고에 대비해 전직지원계획이라는 일종의 '소셜 플랜(social plan)'을 둔다. 이 계획에 대해 노동부가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이 계약의 일부로서 기업은 직업훈련기관과 미리 계약을 맺어 해고 시에 실질적인 직업훈련을 받도록 한다. 스웨덴 볼보자동차가 2008년 2000명의 정리해고계획을 발표했을 때와 한국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 과정을 비교해보면 쌍용차 노동자들이 77일간의 격렬한 저항을 했던 이유가 설명된다."
김 변호사는 노동시장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명분으로 진행된 정책들의 허구성을 "고용유연화는 세계의 첨단을 달렸지만 고용 안정화는 걸음마도 떼지 못한 상태"라는 진단으로 요약했다.
이날 강연은 '왜 지금 경제민주화인가?', '어떻게 경제민주화를 해야 하는가?', 그리고 '경제민주화를 위한 정책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라는 순서로 진행됐다.
아래는 전체 강의의 대강이다. 경제민주화의 구체적인 정책 설명은 생략했다.
왜 경제민주화인가?
김영삼 문민정부가 내건 기치가 관치경제 극복이었다. 과거에는 물가가 많이 오르면 중앙정보부가 해결했다.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하면 사채동결 방식으로 해결했다. 더 이상 그런 방식이 작동하기 어려워지자 관치경제 극복이라는 구호가 나온 것이다. 그때는 (경제민주화가 아니라) 경제자유화가 목표였고, 세계적으로도 그런 분위기였다. 규제를 악으로 보았다.
과거에는 대기업들이 동네상권까지 들어오고 문구, 공구, 빵집을 다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부동산 정책을 보더라도 그렇다. 분양에서 무주택자 우선이었다. 유신시대에 분양가 상한제는 '강남이든 강북이든 평당 100만 원만 받아라' 그러면 다 100만 원이었다. 김대중 정부 들어와서 시장자율이라는 모토 아래 무주택자 우선분양제와 분양가 상한제가 폐지됐다. 이후 7년 동안 분양가가 4배 이상 폭등했다.
과거에는 기간제, 파견제, 사내하도급 형태의 비정규직이 거의 없었다. 일본식 평생고용에 가까웠다. IMF 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가 이런 비정규직 형태를 다 허용했다. 그랬더니 10년 동안 비정규직이 전체 고용인구의 절반을 넘었고, 청년의 정규직 취직이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
부동산 규제, 노동시장 규제, 중소상인·중소기업 보호 규제를 다 풀다보니까 결국 재벌이 독식하는 세상이 돼버렸다. 정부가 서민의 호민관 역할을 포기하니 시장독식으로 가버린 것이다. 20년 동안 경제를 이렇게 운용해봤는데, 이 방식은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과거의 중산층과 안정 노동자들이 신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소비자들도 독과점 시장에서 세계적으로 높은 물가를 부담하게 됐다.
이걸 근본적으로 바꿀 때가 된 것이고 이것이 경제민주화 요구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과거 유신시대나 군사독재 시절의 방식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이명박 정부와 같은 정부냐, 이런 의문도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정치민주화, 남북평화 이런 정책들에서는 잘했다고 보는데 서민의 호민관 역할은 못했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경제 문제들의 근원을 살펴보면 대부분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그 뿌리가 닿아 있다. 10% 이자율로 서민들에게 대출하던 저축은행이 지금 이렇게 된 것은 김대중 정부의 부동산 PF 대출 허용, 2005년(노무현 정부) 제로베이스 규제 완화가 근원이다. 은행에서 키코(KIKO) 같은 위험한 통화옵션 상품을 팔게 해준 것도 그 뿌리들은 이전 정부에 있다.
다시 그런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국가가 필요하면 시장에 개입하고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며 복지국가를 하자는 것이 새로운 기조이고, 이렇게 20년 체제를 바꾸자는 것이 경제민주화 요구로 나타나고 있다.
어떤 분야에서 경제민주화인가?
민주노총, 참여연대, 새사연, 중소상인 단체 등이 모인 경제민주화시민연대(준)라는 단위에서 경제민주화의 과제를 3대 분야, 12대 과제로 정리했다.
첫 번째가 시장에서 경제민주화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는 견제와 균형이다. 재벌대기업의 독식에 대항해 중소기업, 중소상인, 소비자, 노동자에게도 대항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자는 것이 시장 민주화다. 두 번째는 일자리 민주화다. 노동관계에서도 재벌대기업이 우위에 서다보니까 온갖 형태의 비정규직이 남발되고, 정규직은 정리해고에 시달리고,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하는 상태다.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청년에게 일자리가 돌아가게 일자리를 나눠야 한다. 그런 면에서 현대차노조가 주야 2교대제를 3교대제로 바꾸자고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이것만으로도 일자리가 1만 개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비정규직의 지위를 올려서 기업이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유인을 없애는 정책도 시급하다. 세 번째는 재벌대기업에 의한 경제력 집중을 막고 해소하는 경제민주화다.
어떤 방식의 경제민주화인가? 상생과 동반성장에서 제도적 재벌 규제로
상생이나 동반성장이라는 용어의 배경에는 재벌을 법과 제도로는 규제할 수 없다는 시장자율, 자유시장의 철학이 있다. 노무현 정부 때 시민단체가 정당과 관료들에게 재벌 규제를 주장하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런 배경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상생이다. 문제는 재벌이 상생 같은 듣기 좋은 말만 가지고는 상생의 의지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생이라는 이념적 도그마의 전형이 사업조정제도다. 대중소기업 상생촉진법에 따라 중소기업이 사업조정을 신청하면 대기업에 사업진행의 일시정지 권고를 하고, 1년 동안 조정해서 조정명령을 내리는 것이 핵심이다. 최근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 사례를 보면 중소기업청장이 홈플러스에 대해 입점을 일시 정지하라는 권고를 했는데, 따르지 않았다. 제재수단이 없으니 무시해 버리는 것이다. 그 결과 상생에서 사업조정 결과라고 나온 게 뭐냐면, 서울시에서 SSM이 소주, 쓰레기봉투 따위를 팔지 말라고 한 것이었다. 제재수단도 없는 이 권고를 하기 위해 1년 동안 논의를 질질 끌어왔다.
이명박 정부의 동반성장위원회는 민간자율기구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불러서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을 하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신사협정을 맺게 하는 방식이다. 이미 진출한 것은 사업이양권고를 한다. 그런데 대기업이 따르지 않더라도 제재수단이 없다보니 지난해 중소상인 적합업종 품목 지정 논의를 꺼내기만 하고 시작도 못했다. 결국 상생과 동반성장이 가능하기 위해서도 재벌대기업에 대한 법적 제재가 필요하다.
참여사회연구소,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프레시안은 8월 28일 부터 총 5회에 걸쳐 아카데미 느티나무 강좌 '재벌 공화국을 넘어'를 엽니다. 한국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전망하면서 재벌개혁은 왜 필요한지, 재벌에 대한 인식과 개혁방향을 둘러싼 논쟁 지점들은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또한 보수 정치세력이 말하고 있는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에 관한 주장의 허구성과 한계는 무엇인지, 재벌독식이 아닌 공생의 경제로 나가기 위한 방안들을 살펴봅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조그만 연못에 '30마리의 고래(30대 재벌)'가 붐벼 작은 생선들이 살 수 없는 상황이다. 고래들이 다 죽여 버려 서민들이 먹고살기 점점 힘들어지고 중소기업이 크지 못하며 (좋은) 일자리가 안 생기고 자영업자가 엄청나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동걸 전 한국금융연구원장은 11일 '재벌 지배구조,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주제로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한 강연에서 현재 상황을 이렇게 진단했다. 참여사회연구소,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프레시안>이 공동 주관하고 5.18기념재단이 후원하는 강좌 '재벌 공화국을 넘어'의 세 번째 강연이었다.
이 전 원장은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한 탓에, 임기를 절반밖에 못 채우고 2009년 한국금융연구원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관련 기사 : "이건희를 건드리니, 주변이 온통 적이 됐다"). 지금은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 전 원장은 이날 "재벌 지배구조의 핵심 문제는 외적 무한팽창과 내적 1인 수렴 성향"이라고 말했다. 10대 재벌 총수가 순환출자 등을 통해 "1.1원으로 53.5원의 내부지분율을 지배하는 구조"를 만들었고, 그 결과 총수에게는 이익이 되지만 국민에게는 손해를 끼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전 원장은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불공정거래 행위, 담합, 일감 몰아주기 등 재벌의 문제점을 비판한 후, "재벌 총수는 지배구조에 대한 도전이 들어오면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며 삼성 상속 소송을 예로 들었다.
"이맹희 씨가 이기면 삼성의 지배구조가 무너진다. 이건희 회장이 공개석상에서 형에게 몰이성적인 이야기를 한 것도 그 때문이다. 지배구조에 대한 도전을 받으면 그렇게 된다."
총수 1인 지배체제에서 벌어지는 형제 간 다툼은 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 이 전 원장의 판단이다. 또한 이 전 원장은 재직 시절 삼성그룹 등과 접했던 때의 경험을 소개하며 "삼성그룹은 대한민국의 중요한 자산인데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능력을 발휘해 성과를 낸 사람이 아니라 총수 일가의 세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작업을 한 사람이 그룹의 2인자로 인정받고 (…) 10명이면 10명 다 총수에게 아부하며 충성 경쟁을 하는 체제다. 위기가 닥쳤을 때 컨트롤할 능력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접하면서) '위기를 맞으면 이 기업은 망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전 원장은 기업에 대한 조세 지원이 재벌에 편중돼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2010년 조세 지원액을 살펴보면, 중소기업 지원액을 다 합쳐도 삼성그룹 지원액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이 전 원장은 "재벌에 의한 '이익 사유화, 비용 사회화' 구조가 고착되면서 경제가 실질적으로 재벌 사회주의화하고 있고, 재벌이 각종 특혜 지원을 독식하고 그것에 의존하는 재벌 복지병이 심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계열 확장은 이명박 정부 들어 더 심해졌다. 금산분리 완화 정책도 그 원인 중 하나다. 이 전 원장은 "피감시자(산업자본)가 감시자(금융자본)를 소유·지배해 시장경제 기능을 마비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보수 운동의 아교는 돈…재벌 개혁, 기득권 구조 전반의 개혁과 함께 가야"
이 대목에서 이 전 원장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도 비판했다.
"박근혜 후보는 자신이 5년 전 말한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가 경제 민주화(와 맥을 같이하는 것이)라고 한다. '줄푸세'는 강자의 논리를 대변하는 것인데, 워낙 창의적인 분이셔서…. 박 후보는 5년 전 금산분리 완화, 산업자본 즉 재벌의 은행 지배를 허용하자는 쪽이었다. 박 후보에게 꼭 묻고 싶다. 재벌이 은행 지배하는 게 경제 민주화인가?"
박근혜 후보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금산분리 완화 등 재벌 친화적 경제 정책을 주장한 점에서는 이명박 후보와 별 차이가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줄푸세'는 재벌 개혁을 중요한 축으로 삼는 최근의 경제 민주화 논의와는 결이 다른 주장이었다.
이 전 원장은 재벌 체제를 비호하는 관료, 언론, 보수 지식층 등으로 비판 대상을 넓혔다. 이 전 원장은 "보수주의 운동의 아교는 돈이다"라는 미국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의 말을 인용해 이 세력을 비판했다. 재벌이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기득권 카르텔을 공고하게 구축하고, 돈맛에 취한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지적 속임수"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전 원장은 "재벌을 비판하면 빨갱이라고 한다"며 "내가 아는 건 미국 경제학인데, 그럼 미국 경제학이 빨갱이(들의 주장이)라는 건가"라고 되물었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재벌 지배구조 개혁은 한국 사회 기득권 구조 개혁 작업과 함께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 이 전 원장의 생각이다.
이 전 원장은 헌법 119조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도 의견을 밝혔다. 119조 2항은 경제 민주화의 근거 조항으로 거론된다. 이와 달리 재벌 체제를 옹호하는 이들은 '개인과 기업의 경제적 자유와 창의'를 규정한 119조 1항을 강조한다. 이에 대해 이 전 원장은 "재벌 체제는 119조 1항을 침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전 원장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금융 시장에서 자금을 모아 성공하는 미국의 구글이나 애플 같은 사례가 최근 한국에 있나"라는 질문을 던졌다. 재벌 체제 때문에 그런 기업이 생겨날 수 없는 게 오늘의 한국이라는 것이 이 전 원장의 생각이다. 헌법 119조 2항 이전에 1항부터 재벌 체제가 막아서고 있다는 판단도 이와 관련 있다.
이 전 원장은 "중소기업->중견기업->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좋은 일자리가 많이 창출되는데, 한국에서는 중소기업이 성장하기가 매우 어렵다"며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려면 건강한 기업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이 전 원장은 지난 몇 년 사이에 베스트셀러 저자로 떠오른 김난도 서울대 교수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김 교수를 욕할 생각은 없지만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읽고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다. 사회가 문제인데, 개인에게 '네 탓이니 너만 잘해라'라고 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지금은 사회를 바꿔야 할 때다. 고쳐야 할 것 중 하나가 바로 재벌 문제다."
참여사회연구소,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프레시안은 8월 28일 부터 총 5회에 걸쳐 아카데미 느티나무 강좌 '재벌 공화국을 넘어'를 엽니다. 한국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전망하면서 재벌개혁은 왜 필요한지, 재벌에 대한 인식과 개혁방향을 둘러싼 논쟁 지점들은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또한 보수 정치세력이 말하고 있는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에 관한 주장의 허구성과 한계는 무엇인지, 재벌독식이 아닌 공생의 경제로 나가기 위한 방안들을 살펴봅니다.
수동적인 존재로 규정되는 ‘수강생’에서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주체인 ‘참여자’로, 일방향식 강의형식에서 참여자와 강사, 교육기획자가 함께 이야기하고 의견을 공유하며 함께 만들어나가는 SNS식 강의형식으로! 느티나무의 진화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뭐니뭐니해도 바로 이 강좌, [진보,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가 있는데요, 변화의 움직임은 강의실에 들어서는 순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조별로 마주보고 앉을 수 있게 배치된 책상들, 그 위에 놓인 형형색색의 종이와 펜들, 마치 어린 시절 유치원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느티나무의 새로운 모습이었습니다.
강의에 앞서 질문 하나!
“진보는 나에게 □이다.” 이보다 짧고 어려운 질문이 또 있을까요?
참여자 여러분은 저마다 모험, 어려운 단어, 삶, 부끄러움 등등의 이야기를 펼쳐놓았습니다. 누구에게나 진보란 어렵지만 걷고 싶은, 우리의 삶과 가까운 그런 것인가 봅니다.
진보는 우리의 ‘가치’일까요, ‘삶’일까요?
김동춘 교수님의 친구 분 중에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분이 계신데, 그 분은 김 교수님을 보고 “서울의 아파트에 살면서 차도 끌고, 쌀 한 톨 생산하지 못하는 니가 무슨 진보냐?”라고 하신다는군요. 모 대학 앞에서 사회과학 서점을 했던 또 다른 지인 분은 10년 동안 달라지는 것 없는 책방을 보며 “이게 무슨 진보냐, 난 보수다.”라고 하셨답니다.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대표적인 친일단체였던 일진회의 전신은 바로 진보회라는 단체였는데요, 그들은 “조선도 문명개화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그 주역은 일본이며, 우리는 그들을 통해 문명의 진보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과연 이들이 말하는 진보는 무엇일까요? 우리에게 진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요?
진보? 보수?
1961년 군사쿠데타를 지지했던 세력의 상당수가 박정희를 지지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그를 진보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구체제로 비판을 받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우에도 64년 대선 때의 선거 전략은 못가진자, 가난한 농민의 자식이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것이었고요. 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진보운동은 반미와 계급해방에 초점이 맞추어졌고, 2000년대에 들어서는 기득권에 일부 편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그리고 그 역사 속에서 ‘진보’라는 개념은 계속해서 변화해 왔습니다. 그리고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들로 사람들은 진보와 보수를 헷갈려하기 시작했습니다. 분파투쟁, 권위적인 조직 운영, 비정규직에 대한 미온적 태도 등을 통해 대기업 노조가 보여주는 노동계의 모습, 이들을 보수라고 해야 할까요?
외국의 경우에는 60년대가 바로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68년 학생운동이 일어나기 전에는 노동운동-노동자정당이 진보의 중심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 반대-대학개혁-권위주의 타파를 주요 슬로건으로 한 68학생운동은 노동을 중심으로 한 진보의 공식을 깨뜨렸습니다. 68운동의 학생들은 기존의 노동운동이 이미 제도권화되어 기득권 세력이 되었다고 판단하였던 것이죠. 이들은 당시의 노동운동이 자본주의에 대해 더 이상 안티테제가 아닌 편승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에 실망했고, 노동운동에 기대지 않은 새로운 진보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페미니즘-평화-인권-환경운동으로 대표되는 New Left, 이른바 신사회운동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러한 노동운동과 신사회주의 운동이 90년대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그것도 동시에 일어나기 시작했고 이것이 민족주의, 분단 체제와 같은 한국의 특수한 상황들과 맞물려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데 큰 혼란을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김동춘 선생님은 진보의 범위를 규정하는데 있어 정치적 진보와 사회적 진보, 경제적 진보로 구별 지어 생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사회는 이 세 가지 개념이 뒤죽박죽 섞여있기 때문에 진보와 보수를 구별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원래 서구에서 민족운동은 보수의 가치에 속하였고 실제로 히틀러를 통해 극단적인 방식으로 표출되기도 하였지만, 한국에서는 유독 민족이 진보의 가치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논쟁 구조가 계급이 아닌 민족-남북관계 등을 통해 유지되어 왔기 때문이죠. 이런 의미에서 무상급식 문제는 한국사회에 나타난 최초의 계급적 논쟁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치적-경제적 진보와 보수의 논쟁이 이제야 시작된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사회적 진보와 보수에 대한 논쟁은 없습니다. 미국에서는 기독교-남부 백인들이 사회적 보수를 구성하는 반면, 한국의 사회적 보수는 지역주의의 형태로 나타나는 데 그쳤습니다.
앞으로의 진보는?
이 시대의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가장 대표적인 영역은 경제적 영역인데요, 경제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자본주의에서 진보와 보수의 갈림길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견해 차이를 통해 드러납니다. 그러나 21세기적 가치로 삶의 질 문제가 추가되고, 복지와 안전, 불안으로부터의 해방 등이 중요하게 다루어지면서 주관적 행복의 지수가 진보의 기준으로 작동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의 진보는 시장보다는 사회, 개인 중심의 경제보다는 공동체 중심의 경제를 이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의 진보는 민주주의를 심화·확대해 나가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입니다.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한가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양적인 문제와 함께 질적민주주의의 향상도 고민해 봐야할 문제일 것입니다. 기업 경영의 민주화, 노조의 개입, 기업 내 권력의 분점 등을 통해 민주주의의 적용 영역을 최대화하고 검사·대법원의 구성에 시민들이 참여하여 정치-사회-경제적 민주제도를 더욱 심화시켜 나가는 방법이 있겠죠.
평화 또한 진보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도 여겨져야 합니다. 평화가 없이는 진보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진보의 가치에 가장 치명적인 것이 바로 전쟁이기 때문이죠. 전쟁은 모든 것을 비인간화시킬 뿐만 아니라 실제로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안보를 빌미로 한 인권침해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진보는 전쟁과 자본주의의 고리를 끊어내는 데에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Alt+V
지난 4월 벌어진 19대 총선에서는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통합진보당은 13석의 의석을 얻으며 진정한 전국구 정당으로 거듭났다는 평가받았습니다. 그러나 채 6개월도 지나기 전에 당은 분열되었고 국민들은 말 그대로 ‘멘붕’ 상태에 빠져버렸습니다. 진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해봐야 할 시점에 이른 것이죠.
대선이 90여일 앞으로 다가온 현재의 시점에서 보수와 진보를 구별해내는 능력은 우리에게 정말 꼭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구체제로 비판받아 온 후보가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외치고, 저마다 시대정신을 내세우는 상황에서 어떤 것이 보수의 가치인지 어떤 것이 진보의 가치인지 구별해내는 능력, 꼭 필요하겠죠?
우리나라의 원자력발전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얼마 전, UAE로부터의 원전 수주로 국내외 여론이 들끓었던 적도 있다. 우리는 우리 영토, 영해에서 석유 한 방울 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름이면 관공서부터 교통수단, 가정, 직장, 식당 등 모든 실내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며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살고 있다. 물론 올해엔 전기를 절약한다고 권장온도를 지정하고 절전을 강요하여 평소 여름보다는 더 더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대다수 후진국에서 전기가 수시로 나가 에어컨은 꿈도 못 꾼 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충분히 시원한 삶을 살고 있다. 밤이 되어도 도시의 불빛은 꺼지지 않고 블랙아웃이 일상이 아니라 공포가 되어야 할만큼 우리는 블랙아웃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원자력 발전의 덕분이다. 통계에 따르면 2030년에는 전력 사용에 있어 원자력 의존도가 60%대에 진입할 것이라는 통계분석도 있다. 이처럼 우리의 삶은 원자력, 즉 핵에너지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그러나 인도와 중국 등 개발이 진행되는 국가들과 우리 대한민국이 원자력에 열광하는 현재까지 전 세계 어디에도 폐 연료 등으로 이루어진 고준위 핵폐기물을 장기간 보관하고 처리할 수 있는 시설은 존재하지 않는다. 당장 고리원전의 핵폐기물 임시 저장 공간이 포화상태이지만 저준위핵폐기물 처리장이 겨우 건설단계에 들어갔을 뿐 세계 그 어디에도 고준위폐기물 처리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많은 안전장치와 높은 안전기준에도 불구하고 후쿠시마 사태는 원자력 사고는 인간의 통제 밖의 능력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드리마일, 체르노빌, 후쿠시마 등 50여년도 안 되는 역사 속에서 벌써 세 번 도 넘는 사고가 일어났다. 체르노빌 사태의 경우 아직도 인간과 환경에 악영향을 지속적으로 끼치고 있다.
태양광발전이나 풍력발전의 단가가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반면, 원자력 발전의 경우 사용후폐기물 처리나 사고시의 수습비용 등을 감안하면 원자력발전의 비용은 생각보다 낫지 않다는 보고가 존재한다. 따라서 태양열이나 풍력발전으로 선회해야 할 당위성이 조금씩 커져가고 있다.
과연 우리가 하루종일 에어컨을 틀고 살아야 할 만큼 더운가? 과연 우리가 이렇게 새벽까지 불을 밝혀야 하는가? 우리가 에어컨을 자제하고 안 쓰는 형광등은 꺼두며 산업체에서는 에너지효율을 위해 노력한다면 원자력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 물론 당장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기에 정부 차원에서 탈 원전에 대한 장기적 플랜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세부적인 플랜을 세워 단계적으로 에너지 사용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절약을 생활화하여 환경과 미래를 생각하는 에너지소비를 추구해야 한다. 이제는 에너지 문제에 접근할 때 비용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미래도 고려해야할 때이다.
안녕하세요. 강좌가 없는 주를 틈타 재빠르게 후기를 올리고 있는 자원봉사자 서동호 입니다. 지난 토요일 답사는 잘 다녀오셨나 모르겠네요. 저는 성묘하러 고향에 가야해서 답사에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역사공부의 꽃은 현장답사라는 말을 들었었는데 정말 아쉽더라구요. 그래도, 다녀오신 회원분들은 뜻깊은 시간 되셨으리라 믿습니다.
지난 강좌는 박찬승 선생님의 마지막 강의인 만큼 강의자료부터 엄청났지요. A4용지로 서른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자료를 보고 ‘학점을 달라고 말씀드려볼까...’하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사실 지난 시간에도 임시정부에 대한 연구나 관심이 높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왔었고, 이번 강의가 끝난 후 뒷풀이 자리에서도 선생님은 “역사학과 신입생들에게 ‘이동휘를 아느냐?’고 물으면 아는 학생이 없다”며 독립운동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크지 않은데 아쉬움을 드러내셨었죠. 그래서인지 이번 학기 강의에 대한 선생님의 열정이 남다르신 것 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3회 강좌에서는 '완도의 항일운동'과 '친일파의 계보와 변명담론' 그리고 마지막으로 '위안부 문제'를 다뤘습니다. 각각의 주제를 하루에 강의하기에도 벅찰만큼 무거운 주제들인데 선생님의 짜임새 있는 강의로 두 시간동안 쉴틈없이 강의가 진행됐지요.
광우병의 공포로 광화문광장이 뜨거웠던 이명박 정권의 집권 초기에 나는 고등학교 1학년생이었다.
그 때 벌써 내 친구들 중엔 집회에 참석해 촛불을 드리운 녀석들도 있었지만 나는 축구와 같은 것들에 더욱 관심을 가졌던 기억이 난다. 이번 강의의 주제는 ‘축산 산업화가 빚어낸 공포, 광우병’ 이다. 그러나 이번 강의의 핵심은 광우병이 아니었다. 물론 화두는 광우병이었지만, 주 내용은 축산 산업화를 통한 극단적 이익추구가 어떻게 인간사회와 환경을 황폐화시키고 피폐하게 만드느냐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광우병은 그 축산 산업화가 가져온 다른 수많은 폐해 중의 하나였다.
현대사회에서 축산은 대개의 경우 기업적으로 이루어진다. 소의 경우 한평 남짓의 축사에 한 마리씩 넣어 최대한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면서 근육을 줄이고 살을 찌운다. 이런 과정으로 소고기를 얻기 위해서는 소고기 1Kg당 8Kg의 곡물이 소요된다. 닭고기 1Kg을 기르기 위해서는 2-3Kg이, 돼지고기 1Kg을 위해서는 4Kg의 곡물이 소요된다.
이것은 육류소비의 풍조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곡물 소비량은 2배, 4배, 8배 증가하게 됨을 의미한다. 유럽과 미국, 한국, 일본 등의 산업국들의 부유한 국민들이 소고기 1Kg을 소비할 때마다 곡물 8Kg이 소비되고 곡물이 부족해져 곡물가격의 상승을 가져오게 되어 개발도상국의 빈민들의 밥그릇을 위협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 축산업에 소요되는 곡물은 인간 식량의 1/3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축과 인간이 한정된 식량을 두고 경쟁하고 있는 셈이다.
제레미 리 프킨이 『육식의 종말』에서 지적하였듯이 한쪽에서는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식량자원을 갈망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육식위주의 식습관으로 비만이 문제시되는 것이다.
또한 축산업은 엄청난 양의 수자원을 소비하며 전 세계 물 부족의 큰 원인이다.
소를 키우기 위해서는 곡물 재배에 비해 15배 이상의 물이 필요하다고 하며, 다른 가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가축에게 먹이로 주는 곡물을 기르기 위해서도 수자원이 들어가는 것을 고려하면 참으로 엄청난 양의 수자원이 육식을 위해 고갈되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아가 소 1마리는 하루에 23Kg의 분뇨를 배출하고 1만 마리의 소를 가진 농장이 배출하는 쓰레기는 11만 명의 인구를 가진 도시의 쓰레기의 양과 유사할 정도로 그 양이 많다고 한다. 그밖에도 소의 트림이나 방귀로 인해 발생하는 메탄가스가 공해 및 환경오염에 심각한 위해를 끼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아마존에서는 축산을 위해 산림을 불태우고 불탄 산림을 바탕으로 자라난 초목들을 먹이로 주면서 산림파괴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광우병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광우병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병이 아니다.
육식에 대한 욕망으로 굶주린 아이들에게 돌아가야 할 곡식을 빼앗아 가축에게 먹이고, 소를 빨리 살찌우기 위해 초식동물인 소에게 죽은 소를 갈아 만든 사료를 먹이는 인간. 그렇다면 광우병은 육식과 이윤추구의 욕망으로 자연의 질서를 깨뜨린 인간에게 내려진 자연의 경고가 아닐까?
강의 내용은 선생님께서(작성하시고 제가)수업 전에 나눠드린 강의안에 너무 자세히 나와있어서 제가 따로 요약하거나 정리할 필요가 없을것 같습니다. 대신 다음강좌 부터는 매주 제가 강의를 들으며 흥미로웠던, 혹은 새로 알게된 사실에 대해서 간략하게 적는걸로 후기를 대신하려 합니다.
그 전에, 지난 강좌 쉬는시간에 봤던 영상을 링크했습니다. 소리도 좀 작았고, 뒤에 계신 분들은 잘 안보이시는지 기웃기웃 거리시는 모습을 봤거든요. 같은 영상이니 다시 보기를 원하는 분들은 다시 한 번 감상하세요. ^^
임시정부의 설립
2강에서는 1강에 이어 본격적인 독립운동의 시기를 다룹니다. 3.1운동 이후 4월 13일(아래 영상에는 11일이라고 나와있습니다만,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이 사실을 공표한 날이 13일 입니다.) 중국 상해에서 드디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설립됐습니다. 그리고 이 임시정부를 기반으로 독립을 위한 무장투쟁과 외교운동이 벌어지게 됩니다.
임시정부의 수난
과거 임시정부가 설립되는 과정에서처럼 임시정부가 세워진 이후에도 임시정부 내부에서 꽤나 많은 잡음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국내와의 연락체제의 두절과 임시정부 내의 계파간의 의견차 등이 주된 원인인데, 이승만의 위임통치(미국의 위임통치를 요청하겠다는 이승만의 주장), 이동휘의 레닌 자금 사건(이동휘가 레닌에게 받은 독립운동자금을 자신의 사회주의운동을 위해 사용한 사건)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처럼 어렵게 설립된 임시정부는 역시나 순탄치 않은 항해를 계속합니다.
임시정부 중심의 좌우파 결집
이후 김구가 이끌던 한국국민당, 이청천이 이끌던 조선혁명당, 조소앙이 이끌던 재건한국독립당의 3당 통합을 이루어 내고 임시정부 역시 이를 계기로 조직을 확대하고 구조를 개편합니다. 그리고 1940년 9월에 한국광복군이 창설됩니다. 이로서 임시정부는 한국독립당과 광복군, 그리고 임시정부의 당, 군, 정의 체제를 확립했습니다. 이에 41년 4월, 미주와 하와이의 모든 한인단체들이 총집결해 만들어진 재미한족연합회의 지지와 후원으로 이어져 해외 한국독립운동과 통일/단결의 구심점으로 자리잡습니다. 이후 41년 11월에 '대한민국 독립헌장'을 발표합니다.
최초로 발표된 대한민국 독립헌장에서 눈에 띄는것은 바로 경제적 형평성을 헌장에 명시했다는 점입니다. 임시정부는 '대한민국 임시헌장' 3장(건국)에 토지와 대기업에 대해서는 국유/국영화를 그리고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민간이 소유할수 있다는 조항을 명시했습니다.
"재벌 개혁 과정에서 분배정의와 민주적 참여는 어디로 실종해 버렸나? 이것이 문제에 대한 나의 물음이다. 지난 시기에는 재벌 개혁이 실질적 경제민주화와 분리되거나, 경제민주화 자체가 공정경쟁시장 수립이라는 경쟁절차 문제로 좁혀졌다. 공정경쟁시장이나 소액주주권의 문제만이라면 공정거래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고, 굳이 헌법 119조 경제민주화 조항을 끌어들일 필요도 없는 것 아닌가?"
재벌 개혁이 곧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극복하면서 민생을 살리는 실질적 경제민주화를 위한 길이 되기 위해서는 절차적인 공정경쟁시장을 수립하는 과제와 함께 반드시 실질적인 분배정의, 민주적 참여도 그 필수적 과제로 제기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이병천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가 지난날은 물론, 현재의 재벌 개혁과 경제민주화 논의에 대해 하고 있는 기본 생각이다.
4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이병천 교수가 '재벌 개혁, 왜 실패했나?'를 주제로 강연했다. 참여사회연구소와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프레시안>이 공동 주관하고 5.18기념재단이 후원하는 강좌 '재벌 공화국을 넘어'의 두 번째 강연이었다.
이 교수는 "분배정의 및 참여경제 그리고 공정경쟁은 재벌 개혁에서 불가결한 이중과제이며, 이 실질적, 절차적 이중과제를 어떻게 통합적으로 파악하면서 개혁 운동을 전개할 것인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그간 정치권 그리고 시민운동의 재벌 개혁은 절차적인 공정경쟁 수립 문제를 중심에 둠으로써 재벌 개혁을 (구)자유주의적 과제로 좁혔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재벌이 독점-독식하는 특권적 시장경제체제에서 공정경쟁은 분명히 중요한 역사적 과제"라면서, "그러나 분배정의와 참여경제를 빼놓고 재벌 개혁과 경제민주화를 얘기하면, 민주화 시대까지 이어진 선성장 후분배 시대에 국민적 지원과 희생을 통해 오늘날 세계적 반열까지 올라선 재벌의 사회적, 역사적 책임이 기억에서 지워지게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대목에서, 이 교수는 공정경쟁시장 수립이나 소액주주권 중심의 재벌 개혁 정책과 운동의 한계를 비판하고 보편적 복지국가 수립을 주장하는 장하준 교수의 생각에 동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이 교수는 "장하준 교수는 놀랍게도 신자유주의 지배체제에서 재벌을 빼놓는다"는 말로 장 교수에 대한 자신의 비판점을 압축했다. 한국식 신자유주의 양극화체제에서 소수 재벌이 그 지배체제의 정점에 자리 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 교수는 이 지배체제에서 재벌을 빼내고 복지국가를 위해 '대타협'을 해야 한다고 공허하게 외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강의 주제인 재벌 개혁의 실패 원인과 관련, 분배정의와 참여경제의 문제를 밀어낸 '개혁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인식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이 교수는 "1997년 이후 민주개혁정부는 분배정의와 참여경제 확립을 자기 과제로 삼지 않았으며 공정경쟁 수립과제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면서, "그래서 비틀거렸는데도 지금 민주통합당은 철저한 자기반성을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추진과 IMF 환란 자초, 김대중 정부 집권 후반기 재벌 개혁의 완연한 후퇴, 그리고 노무현 정부와 삼성 재벌의 밀월 등은 보수세력에 포위된 '민주 정부'의 객관적 조건과 함께, 중도 자유주의 정권 자체에 내재된 자기 한계도 동시에 보여주는 교훈적 사례들이다.
앞으로 전개될 상황에 대해 이 교수는 아래와 같이 봤다.
"지금은 재벌 개혁의 실패냐 성공이냐, 이런 이분법적 상황은 아닌 것 같다. 한참 '줄푸세' 정책을 얘기하던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조차 지금 경제민주화를 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적어도 부분적인 소개혁은 이뤄질 것 같고, 그래서 지금은 성공이냐 실패냐보다는 재벌 개혁이 어느 정도 폭과 깊이로 될 것이냐, 이렇게 가고 있는 것 같다. 세계적으로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있었고, 내부적으로는 이명박 정부의 역주행이 워낙 민생을 파탄으로 내몰았고 나라경제를 망쳐놓아서 민심이 영 좋지 않다. 이런 상황 때문에 재벌 개혁도 조금은 진행될 것 같다. 그러나 부분적인 소개혁 정도로 신자유주의적 양극화 구체제가 극복될 수 있을지, 그래서 더불어 사는 선순환 선진경제로 갈 수 있을지, 이게 문제다."
이 교수의 이번 강의는 개발독재의 유산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여, 재벌 개혁의 실패라고 하지만 "어떤 실패인지"하는 문제로 넘어가,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로 끝을 맺었다.
아래는 전체 강의의 대강이다.
민주화 시대에 어떤 일이 일어났나 - "길들이기에는 너무 강한 괴물" 그리고 허약한 개혁정부
먼저, 개발독재의 유산으로서 재벌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재벌의 힘은 워낙 강고하고 강력한 반면 이에 대한 개혁의 힘은 취약한 것이 우리가 처한 엄중한 역사적 조건이 되었다. 우리는 대마불사(too big to fail)라는 말을 많이 한다. 2008년 위기 이후 월가 점령운동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미국 월가의 금융권력이 한국 재벌의 위치와 비슷하다. 대마불사는 대자본이 지배하는 시장경제에서 늘 부딪히는 문제다. 잘못하면 책임지고 퇴출되어야 하는 것이 공정경쟁시장의 기본 원리다. 그렇지만 한국 재벌의 경우, 대마불사도 불사지만 오히려 "길들이기에는 너무 강하다"(too strong leviathan to get disciplined)라는 말이 더 적절해 보인다. 대마불사가 공정경쟁 시장의 관점에서 보는 말이라면, "길들이기에는 너무 강하다"라는 건 민주적 규율의 시각에서 보는 말이다.
우리 재벌은 개발독재 시기 특혜금융 등 온갖 방식의 정부 특혜를 누렸고, 자기 노력만으로 지금의 위치에 오른 것이 아니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성장방식은 국민, 정부, 재벌이 일종의 '불완전 계약' 상태에서 협력하여 파이를 키우는 식이었다. 그러나 그 공동 협력의 성과를 거의 재벌이 독식했고 민주화 시대에 후분배의 약속은 깨어졌다. 따라서 지금 재벌을 비판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재벌의 이익이 국민적 이익으로 연결되게, 국민적 이익 공유 메커니즘을 구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장하준 교수도 지적한 바지만, 그간 우리가 국민 대중의 지원과 희생으로, 피땀으로 재벌을 키웠는데 주로 외국자본이 달라붙어 그 이익을 챙겨간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런 문제의식은 나도 공유한다. 그러나 거기까지고 다음부터는 의견이 갈린다.
재벌을 길들인다는 것은 재벌을 민주적으로 규율하고 거듭나게 해 국민적 이익이 되도록 다시 제도적 틀을 짠다는 얘기다. 삼성재벌처럼 온갖 방법으로 국가기관이나 검찰을 마음대로 조정하고 구워 삼도록 놔둬선 안 된다. 제대로 작동하는 시장경제체제에서 재벌이 책임을 진다는 것은 잘못된 기업 활동에 대해 퇴출시켜야 한다는 의미도 있다. 그러나 삼성이 잘되는 것이 나라경제와 민생에도 좋은 일이 되게 재벌을 거듭나게 하는 것이 재벌 개혁의 기본목표가 되어야 하지, 삼성을 해체하는 것이 목표는 아니다. 이익을 독식하지 않고 국민적으로 공유하게 사회적 책임을 지우는 것이 기본 목표다.
그런데, 길들이기엔 너무 강고하고 강대한 재벌의 힘, 이것이 바로 개발독재의 유산이다. 박정희 체제는 마치 공룡과 같은 강력한 재벌권력과 경제력 집중 구조를 물려준 반면에, 노동계급과 민주적 시민사회의 성장은 억압하고 그 발언권을 통제했다.
재벌의 고삐를 잡아 길들이는 일, 다시 말해 재벌을 민주적으로 규율하는 일과 공정한 경쟁시장을 수립하는 것이 바로 재벌개혁의 이중 과제라 할 수 있다. 재벌의 이익이 노동자, 중소기업, 골목상권, 지역사회, 소비자 등 이해당사자들에게도 균점되게 하고, 나아가 이해당사자들이 열린 시장경제에 참여해 활동하게 실질적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 민주적 규율의 과제라고 한다면, 통상 언급되는 출자총액제한, 순환출자 금지, 금산분리 등은 공정한 경쟁질서와 관련된 과제들이다.
고삐가 풀려 마구 날뛰는 재벌의 고삐를 다시 잡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불편한 이야기지만, 재벌의 고삐를 잡는 데는 어쩌면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이 더 능력을 발휘했다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박정희 체제 아래서는 재벌에 엄청나게 특혜를 퍼줬지만 그것에 상응하는 대가도 요구했다. 수출을 잘못하면 퇴출하는 식으로 성과 규율을 강제했다. 그리고 오늘날의 공정거래법이 전두환 정권 시절에 만들어진 건 우리가 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는 재벌개혁의 과제를 수행함에 있어 곧 민주화 시대가 그만큼 허약했다는 뜻이다. 강력한 재벌 대 허약한 연성(軟性) 민주정부, 이것이 우리가 처한 역사적 조건이 되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봐도, 한국은 매우 특수한 역사적 상황에 놓여 있다. 스웨덴의 경우, 강한 노동과 재벌(발렌베리 그룹)의 타협 결과, 재벌시스템의 맨 꼭대기에 공익재단이 자리 잡고, 이 공익재단이 사회적 책임과 국민적 이익 공유 활동을 하게 됐다. 미국의 경우 노동세력은 전통적으로 힘이 약하지만 반독점 경쟁질서의 전통이 가장 강한 나라다. 그래서 루즈벨트가 주도한 뉴딜 개혁으로 강력한 반독점 개혁 관문을 통과했다. 그리고 미국도 스웨덴과는 다르지만 공익재단이 많이 발전했다. 재벌이 워낙 악행을 많이 저질렀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사회적 정당성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전후 미군 점령 하에서 외부의 힘으로 재벌이 해체됐다. 재벌체제가 가장 급진적으로 해체된 경우에 해당된다. 마지막으로, 동아시아에서 대만, 싱가포르는 국가 부문이 매우 크고 한국처럼 재벌이 독식하고 국민경제를 볼모로 잡는 문제가 없다.
민주화 시대에 재벌에 의한 국가기관과 시민사회의 포섭 및 지배 문제는 여러 말 필요 없이 김용철 변호사가 쓴 <삼성을 말한다>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삼성 X파일 사건이나 삼성 특검의 결말 등을 보면 생생하게 알 수 있다. 또, 재벌은 단지 힘으로만 밀어붙이는 게 아니다. 이른바 '경제위기'나 '경제 살리기' 이데올로기를 통해 개혁 노력을 무산시킨다. 그리고 재벌은 개혁정부를 길들이기 위해 투자 스트라이크를 벌이기도 한다. 파업은 노동자만 하는 게 아니라 자본도 한다. '자본파업'이라고 한다. 특히 경기가 침체할 때 혹은 선거국면에서 정부는 속이 터지고 재벌은 이 상황을 적절히 잘 활용한다.
시장개혁에 내재된 딜레마 - '전환의 계곡'
나는 1987년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시대에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실질적 내실을 확보하지 못하고 허약한 개혁정부로서 계속 비틀거렸다는 의미로 '물탄 민주주의' 혹은 '물탄 개혁'이라는 말을 쓴다. 개혁정부는 재벌과 보수세력의 압박에 밀리고 포위되었고, 이 상황에서 재벌은 대내적 자유화(규제완화), 대외적 자유화(무분별한 개방)를 끊임없이 요구했다. 김영삼 정부의 1997년 IMF 외환위기 자초, 김대중 정부 집권 말기의 재벌개혁의 완연한 후퇴, 노무현 정부와 삼성의 밀월 등이 이런 대표적 사례들이다.
그런데 이런 경과는 개혁정부가 밀려서 재벌에 발목이 잡혀 그런 부분도 있지만, 자기에 내재된 속성 때문에 그렇게 된 부분도 있다고 봐야 한다. 두 가지를 같이 봐야 한다. 그리고 관료 집단도 굉장히 무서운 조직이다. 한국경제를 다루고, 관리 운용하는 기본 정책 노하우를 이들이 다 장악하고 있다. 이런 기반 위에서 내각에 들어온 진보 학자들도 길들인다. 때로는 대통령의 지시조차 사보타주한다. 만약 민주통합당이나 안철수 교수가 집권한다 해도, 아니 안철수 교수 할아버지가 집권한다 해도 이 문제에 봉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민주개혁 정부는 신자유주의의 지배적 사조를 수용했다. 이 부분은 이제는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다. 규제완화, 자유화, 민영화, 개방이 세계를 풍미했고 우리도 그랬다. 경제민주화라기보다 경제자유화를 추구했다. 경제자유화도 단순하지는 않은데, 여기에는 일방적인 규제 완화, 주주자본주의 추구 그리고 공정경쟁 수립 등이 뒤섞여 있었다. 1997년 이후 개혁 정부의 준거 모델은 미국식 주주자본주의였다고 생각된다. 그 결과 서민대중의 개혁 에너지를 동원하기 어렵게 됐다.
그런데, 재벌개혁은 불가피하게 시장을 확대하는 개혁도 내포하고 있다. 이는 시장이 저발전된 상태에서는 시장을 더 키워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정글식 경쟁(자유방임경쟁)은 물론이지만 공정경쟁이라고 해도 시장경쟁을 심화시킨다. 그리고 시장의 확장이 곧 지속가능한 성장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국민들은 정치적 민주화가 이뤄져 살기 좋아지는 줄 알았는데, 말하자면 '밥 먹여 주는 민주주의'가 될 줄 알았는데, 경쟁만 심화되고 살기가 고달파졌다는 걸 알게 된다. 이 과정을 민주화 이행 및 공고화론에서 흔히 전환의 계곡 또는 눈물의 계곡이라고 부른다. 이런 상황에서 개혁정부에서 전형적으로 나오는 처방이 무리한 경기부양이다. 경제의 건강성을 망치는 일인데 그 유혹을 이기기 어렵다. 부동산 거품 띄우기, 금융규제완화, 신용카드 규제완화, 금리 인하 등이 그런 정책들이다. 또 이를 틈타서 재벌의 '경제 살리기'와 규제완화 공세가 벌어진다.
마지막으로, 절차적 민주주의 자체에 내재된 보수성 문제도 있다. 민주화 이후에는 재벌 개혁도 절차를 따라 진행해야 한다. 그러나 이 '민주적 절차'를 지키는 과정에서 당연히 힘세고 돈 많은 세력들의 목소리가 높을 수밖에 없다. 경제적 시장에도, 정치적 시장에도 강자의 목소리가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이 또한 흥미로운 '민주화 역설'의 한 부분이다.
시민운동도 분배 정의와 참여경제 과제를 전면에 제기해야
시민사회 운동의 흐름은 여러 갈래지만, 크게 보면 분배정의와 민주적 참여를 중심에 두는 흐름과 공정한 시장경쟁 또는 절차적 공정성을 중심에 두는 흐름으로 분화되어 왔다. 유종일 교수는 <경제 119>에서 경제민주화의 과제를 크게 공정경쟁, 참여경제, 분배정의라는 세 가지로 요약한 바 있다. 대개 한 가지만 거론하곤 하는데, 요점을 종합적으로 잘 정리했다고 본다. 그런데 우리가 분배정의와 참여경제를 실질적 경제민주화 과제라고 본다면, 공정경쟁은 절차적 경제민주화 과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경제민주화의 이 두 축을 어떻게 잘 가져가느냐, 이게 대단히 중요하다고 보는데, 이를 통합적으로 가져가는 일을 그간 시민운동도 잘한 것 같지는 않다.
경실련 창립 이래 참여연대를 포함하여 그간 시민단체의 재벌개혁 운동은 공정경쟁 수립 문제를 중심에 두어 왔다. 최근 김상조 교수는 <종횡무진 한국경제>라는 역작을 내놓았는데, 여기서 한국경제를 '신자유주의의 과잉과 구자유주의의 결핍' 상태로 진단하고 있다. 그러면서 후자에 초점을 두고 재벌개혁을 (구)자유주의적 과제로 좁히고 있다. 이에 대한 나의 질문은 '재벌 개혁에서 실질적 경제민주화의 과제, 즉 분배정의와 참여경제는 어디로 갔는가?' 하는 것이다. 재벌 개혁이 경제민주화와 단절되거나 경제민주화 자체가 공정경쟁의 수립 문제로 좁혀진 측면이 있다. 이것은 공정거래법으로 소화가 가능하고 굳이 헌법 119조를 얘기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공정경쟁 측면만 얘기하면 재벌이 그 정점에 자리하고 있는 사회경제적 양극화 체제 아래 서민, 노동자, 취약 중산층 등의 희생이 진행되고 있다는 진실이 희석될 것이다.
이 문제는 단지 내 얘기만은 아니고, 알고 보니 안철수 교수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안 교수는 "우리나라 재벌들은 물론 자신들의 노력도 있었지만 국가적으로 많은 자원을 몰아주고 노동자들이 희생했기 때문에 크게 성장할 수 있었죠. 그런데 재벌들은 모든 걸 제 스스로 이룬 것처럼 행동하면서 이익을 독식하고 사회적 책임을 지지 않았죠"라고 <안철수의 생각>에서 쓰고 있다. 적확한 지적이다. 그런데 오랫동안 참여연대의 재벌개혁운동, 경제민주화 운동은 양극화 체제를 주 타깃으로 삼지 않았고, 공정경쟁시장 수립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빈틈이 이제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운동 '시즌2' 국면에서 반성적으로 점검해야 할 기본적인 문제다. 나는 최근 발족한 '경제민주화와 재벌 개혁 시민연대'도 이런 문제의식을 깔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만, 오해해서는 안 되는데, 나의 지적은 공정경쟁 수립이 우리의 역사적 과제가 아니라는 말이 결코 아니라 어디까지나 반쪽 과제, 경쟁절차의 문제라는 의미다. 재벌 개혁에서 공정경쟁과 분배정의, 또는 절차적 경제민주화와 실질적 경제민주화는 병렬적으로 제기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 경제민주화 다시 말해 파이의 분배와 의사결정 참여에서 이해당사자 참여자본주의 수립과제를 중심에 놓고 거기에 공정경쟁 수립 과제를 결합하는 식으로 통합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민생고에 시달리는 서민 대중을 동원할 수가 없고 지금시기 진보 개혁세력의 최대 과제라 할 '민생연합'을 만들어 낼 수가 없다. 1997년 외환위기와 구조조정 이후 15년, 한국 경제 '97년 체제' 15년의 현 상황에서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하는 역사적 시점에 와 있다, 이것이 나의 생각이다.
또 실패하지 않으려면?
그런 생각에서 볼 때, 장하준 교수의 연구는 그간 공정경쟁이나 소액주주권 중심의 재벌개혁 운동이 갖고 있는 한계를 짚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의미가 크다. 그러나 장 교수는 놀랍게도 신자유주의 지배체제에서 재벌을 빼놓는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재벌이 휘두르고 있는 강대한 힘과 그 사회적 책임이 희석된다. 이렇게 해서, 한국경제 1997년 체제를 보는 대표적인 두 견해(김상조, 장하준)에서 모두 각각 다른 논리구조로 신자유주의 지배 또는 사회경제적 양극화 체제의 정점에 있는 재벌을 그 책임에서 면제시키고 있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민주개혁정부 역시 분배정의와 참여경제를 자기 과제로 삼지 않았다. 절차적 공정경쟁질서 수립과제마저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그래서 비틀거리고 민심이 떠난 것이다. 바로 이 대목에 대해 무겁고 통렬한 자기반성이 있어야 하는데, 정치적 이유가 있겠으나, 그런 자세를 보이고 있지 않다. 그래서 "진보의 실패가 박정희를 부른다"라는 말조차 나오는 것이다.
진보개혁 세력이 정권을 잡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줄푸세'가 계속 유효하다면서 경제민주화를 하겠다고 하고, 유신독재가 없었으면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강변하는 구체제세력에게 이 나라를 다시 맡겨서야 되겠나. 그러나 정권 장악은 끝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이다. 재벌 개혁이 또 실패하지 않으려면, 진보개혁세력의 결집, 무엇보다 민생 연합의 수립과 시민사회 진지의 강화,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에 대한 생각을 재정립하는 일, 넓은 의미에서 '전환의 계곡'에 대해 주도면밀한 대처 전략을 준비하는 일 등이 꼭 필요하다.
타협 운운하지만 타협은 정권을 장악하기까지는 물론 정권교체 이후에도 힘과 힘이 부딪히는 과정에서 성립될 것이다. 타협하자고 공허하게 주장만 하면 뭐하나. 재벌과 섣부른, 어설픈 타협을 말하기에 앞서 힘 있게 부딪혀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시민적 힘과 진지를 키우고 저변을 넓게 확대해야 한다. 바로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할 일이다.
참여사회연구소,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프레시안은 8월 28일 부터 총 5회에 걸쳐 아카데미 느티나무 강좌 '재벌 공화국을 넘어'를 엽니다. 한국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전망하면서 재벌개혁은 왜 필요한지, 재벌에 대한 인식과 개혁방향을 둘러싼 논쟁 지점들은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또한 보수 정치세력이 말하고 있는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에 관한 주장의 허구성과 한계는 무엇인지, 재벌독식이 아닌 공생의 경제로 나가기 위한 방안들을 살펴봅니다.
<강좌 순서> 1. 8월 28일 : 수렁에 빠진 한국 경제와 재벌(정태인) 보기>> 2. 9월 4일 : 재벌 개혁, 왜 실패했나(이병천) 3. 9월 11일 : 재벌 지배 구조, 어떻게 바꿀 것인가(이동걸) 4. 9월 18일 : 재벌 퍼주기에서 공생의 경제로(김남근) 5. 9월 25일 : 토크쇼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 2012년의 선택'
일시 : 2012. 8.28 ~ 9. 25 (화) 총 5회 오후 7시 ~ 9시 30분 장소 : 참여연대 느티나무홀 수강비 : 5만원(참여연대 회원 50% 할인) 주관 : 참여사회연구소,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프레시안 후원 : 5.18기념재단, 경제민주화시민연대
A와 B가 있다고 하자. 이 둘이 있는데 하늘에서 만 원이 A에게 떨어졌다. A는 내키는 대로 그 돈의 일부를 B에게 준다고 하자. 얼마든 상관없다. 그 돈을 받고 B가 흡족해서 '예스'라고 하면 끝난다. 하지만 B가 만족하지 못하고 '노'라고 하면 둘 다 돈은 한 푼도 가지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 게임은 '최후통첩'이라 불리는 게임으로 '인간은 이기적이다'라는 경제학 개념을 뒤집어 놓았다.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은 "이 게임이 알려진 이후 수만 번이나 진행됐으나 대부분 A가 B에게 4000원을 주고 B는 이를 받아들이는 걸로 마무리된다"며 "이런 결과는 그간 경제학의 가정이 틀렸다는 걸 증명한다"고 말했다.
주류 경제학에서 말하는 대로라면 A는 B에게 1원을 주고 자신은 9999원을 가져야 한다. 반면, B는 1원을 거부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기 때문에 '예스'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게임에서 이런 결과가 나온 예는 없다. 주류 경제학에선 이익만 고려하지만,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단순히 이익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 원장은 "물론 A가 B에게 2500원 이하를 줄 경우, B는 '노'라고 하기도 한다"며 "아무것도 못 받는다는 걸 알고도 '노'라고 하는 건, '너 죽고 나 죽자' 식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응징을 하겠다는 인간의 심리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간은 불공정하다고 판단하면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응징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 원장은 사람들이 '재벌'에 분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지적했다. 재벌이 한국 경제를 부양하는 건 맞지만, 그 방법에서 공정하지 못한 점이 사람들을 분노케 한다는 이야기다.
지난 28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이 '수렁에 빠진 한국 경제와 재벌'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참여사회연구소와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프레시안>이 공동 주관하고 5.18기념재단이 후원하는 '재벌 공화국을 넘어'라는 강좌의 일환이다.
이 자리에서 정 원장은 사람들이 재벌의 착취 구조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는지 등을 이야기했다. 강연 내용을 요약했다.
자기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 보답하고자 하는 게 인간의 본성
지난 10여 년 동안 경제개혁연대 등은 주주이론(shareholder theory·기업의 주인은 주주이므로 임금과 이자, 지대 등을 뺀 나머지는 주주의 몫이라는 이론)에 입각한 소액주주운동으로 재벌의 횡포를 견제했다.
기업총수 등 지배주주가 소액주주를 약탈하는 것(tunnelling)을 막기 위해 주주대표 소송제, 이중 소송제, 사외이사제 등을 도입한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상호출자제한 기업규모의 완화,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금산분리 완화, 지주회사 설립요건 완화를 통해 재벌은 외환위기 이전보다 더 거대한 규모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재벌을 보는 관점은 주주자본이론 보다 이해당사자 이론(stakeholder theory)으로 더 확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칠게 요약하면 기업은 이해당사자 전체가 이익과 위험을 공유함으로써 더 효율적으로 발전할 수 있으며, 따라서 기업은 주주뿐 아니라 이해관계자 전체의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 기업이 파산했을 때 주주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을 받는 노동자, 하청기업(공급기업), 지역주민, 그리고 소비자가 모두 이해관계자이다.
경제학자 조지 에컬로프는 '선물로서의 교환'에 주목했고 행동경제학은 그것이 인간의 상호성에서 유래한다고 생각했다. 쉽게 이야기해서 자기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 보답하고 악의에 대해서는 보복을 하는 게 상호성이다. 이에 자신의 준거임금보다 더 많은 보상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경우 노력을 더 기울여 생산성이 높아지고 결국 투자자에게도 이익일 수 있다. 이는 선물게임, 공공재 게임 등 여러 실험에서 되풀이 확인되고 있다.
예를 들어 직장인이 이직할 경우, 자신이 받는 임금은 어떻게 결정될까. 대략 자신의 경력 등에 비춰 이직하는 곳의 동료와 비교해서 결정한다. 만약 비슷한 경력의 동료보다 임금을 적게 받으면 분노한다. 반면, 그보다 많이 받으면 더 열심히 일한다. 그게 상식이다. 이런 예는 임노동관계에서만 설명되는 게 아니라 다른 경제 관계, 예컨대 하청관계, 소비자 관계 등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
재벌 문제 해결하기 위해선 수탈 구조 깨는 게 필요
물론 이론적으로 그렇다 해서 사회적으로 바로 실현될 수 있는 건 아니다. 현재 재벌 구조는 하청 및 비정규직 노동자를 수탈하는 시스템이다. 기업총수가족과 가신, 지배주주는 나머지 이해당사자를 수탈한다. 그러나 수탈당하는 이해당사자인 1차 공급업체, 소액주주 등도 하청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를 수탈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지금의 재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이런 수탈 구조를 깨뜨리는 게 필요하다. 무엇이 있을까. 기본적으로 수탈당하는 이해당사자들이 먼저 세력화해 착취하는, 즉 재벌과 대등한 교섭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재벌체제 내 정의를 위해서 다른 이해당사자들이 응징 수단을 구비해야 한다. 노동자들의 응징수단은 노조 조직과 파업, 하청기업은 공동 교삽단체 조직 등을 들 수 있겠다.
공유 이익의 분배 규칙을 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해 당사자이론의 가장 큰 단점은 구체적 제도 제시가 없다는 점이다. 각 이해당사자가 세력화되어 분배 규칙을 정할 수 있겠지만 현재처럼 세력화가 되지 않았을 경우, 규칙을 도입하는 게 필요하다.
최근 미국 경영학자 프리먼 등이 집대성한 공유자본주의론이 그 규칙이라 하겠다. 이것은 이미 미국에서 효과가 입증됐다. 특히 노동자가 자사 주식을 소유하는 노동자 주식소유 제도는 재벌기업뿐만 아니라 하청계열사에도 적용할 수 있다.
어쩌면 스페인의 몬드라곤이 한국 재벌개혁의 이상적인 모델일지도 모른다. 몬드라곤은 수직적 하청계열, 내부 금융을 모두 가지고 있지만 고유의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노사 간, 노노 간 양극화,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가 나타나지 않으면서도 경제적 효율성을 달성하고 있다. 자본주의 기업에 유리한 제도 환경 속에서도 이런 원칙을 지키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반면, 협동조합 도시인 이탈리아 에밀리아 로마냐의 중소기업 산업지구는 수평적 네트워크 형태지만 자본시장에 의해 통제받는 전문 대기업이다. 그러나 이는 인간 본성이나 현실에 비춰 이상형이라고 할 수 없다.
재벌, 자원 독식하지만, 견제 부재
과거 한국이 발전국가 시대였을 때는 재벌과 경제시스템이 공생관계였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기술발전이나 브랜드 효과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재벌이 정치, 관료, 사법부를 다 장악함으로써 약탈적 기생관계에 들어갔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장하준 교수 등이 간과하는 측면이 있다.
대마불사라는 점에서 시민 역시 재벌의 현실적, 그리고 상상의 공생관계로서 볼모가 됐다. 생태계라는 관점에서 재벌의 폐해는 무엇보다도 대마불사에 의한 시스템 위기의 근원이 된다는 이야기다. 또한, 자원을 독식하고 견제가 부재하다는 문제가 있다.
재벌, 특히 삼성은 사회 전 분야에서 지대추구를 할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을 갖췄다. 의료민영화, 금융시장 자유화(자본시장통합법) 등이 그 예다. 결국, 재벌의 지대추구는 공공성이 강한 분야에 집중될 거다.
재벌은 한국의 모든 요소를 동원한 한국사회의 작품이다. 따라서 국민은 이를 규제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특히 공멸의 위협을 제기히면 강력한 수단을 동원할 수 있다. 이해당사자 각각의 권력화, 공유자본주의론 도입 등이 그 수단이 될 수 있겠다.
참여사회연구소,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프레시안은 8월 28일 부터 총 5회에 걸쳐 아카데미 느티나무 강좌 '재벌 공화국을 넘어'를 엽니다. 한국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전망하면서 재벌개혁은 왜 필요한지, 재벌에 대한 인식과 개혁방향을 둘러싼 논쟁 지점들은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또한 보수 정치세력이 말하고 있는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에 관한 주장의 허구성과 한계는 무엇인지, 재벌독식이 아닌 공생의 경제로 나가기 위한 방안들을 살펴봅니다.
<강좌 순서> 1. 8월 28일 : 수렁에 빠진 한국 경제와 재벌(정태인) 2. 9월 4일 : 재벌 개혁, 왜 실패했나(이병천) 3. 9월 11일 : 재벌 지배 구조, 어떻게 바꿀 것인가(이동걸) 4. 9월 18일 : 재벌 퍼주기에서 공생의 경제로(김남근) 5. 9월 25일 : 토크쇼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 2012년의 선택'
일시 : 2012. 8.28 ~ 9. 25 (화) 총 5회 오후 7시 ~ 9시 30분 장소 : 참여연대 느티나무홀 수강비 : 5만원(참여연대 회원 50% 할인) 주관 : 참여사회연구소,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프레시안 후원 : 5.18기념재단, 경제민주화시민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