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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명 | 강좌후기 | 글쓴이 | 날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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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홍승은 작가와 함께하는 하루 10문장 21일 글쓰기(접수마감) | 나를 돌보는 시간, 매일 10문장 쓰기 | 나비@@ | 2022.6.16 | |
[2021 챌린지] 홍승은 작가와 함께하는 하루 10문장 21일 글쓰기 >> 2021년 1~2월에 참여했던 수업인데, 직접 후기를 올릴 수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어요^^; 작년에 써둔 후기 올려봅니다.
나를 돌보는 시간, 매일 10문장 쓰기
매일 밤 11시에 홍승은 작가님이 글감을 올려주었다. 글감에 대한 안내도 있었는데, 홍은전, 버지니아 울프, 캐럴라인 냅, 이브 앤슬러의 산문과 김소연, 최진영, 허연의 시가 다정하고 때로는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왜 쓸까'라는 첫 번째 글감에서부터 '우리 사라지지 말자'라는 마지막 글감까지 어떤 날에는 따스함이, 다른 날에는 용기가 배어있었다. 홍승은 작가님도 그날의 글감에 맞추어 10문장을 올렸는데, 그의 꾸준함을 보면서 나도 매일 힘을 냈다. 처음에는 그저 잘 써보고 싶은 마음이 제일 컸다. 그런데 나의 힘들고 괴로웠던 상황과 맞물려서 그랬는지, 글감들이 내 안의 고통을 어서 꺼내보라고 속삭였다. 3주 동안 구체적인 상황을 보여주듯 쓰는 연습을 하려고 했는데, 어느새 나는 고통과 슬픔과 차별에 투쟁하는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적고 있었다. 얼마 안 되는 10문장 같았는데 쓰고 나면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어떨 때는 분노가 치밀어올라서 10문장이 훨씬 넘기도 했지만, 번호만 적당히 붙인다면 그건 아무래도 괜찮았다. 적어도 10문장을 써보자는 모임이니까. 주중 5개의 글을 다 쓰고 나면, 주말에는 글을 모아서 조별로 피드백을 했다. 홍승은 작가님이 올려준 피드백 예시를 떠올리며 다른 분들의 글을 읽었다. 마음에 닿는 글의 제목이나 문장을 적고, 왜 그 부분이 좋았는지와 글을 읽은 후 답장하고 싶은 이야기를 남기면 된다고 했다. 조원들과 함께 서로의 글에 대한 따스한 공감과 감사를 나누었다. 21일의 글쓰기 과정이 모두 끝난 이후에, 홍승은 작가님이 개별 피드백을 주었다. 나에게 적어 준 피드백 전문.
글쓰기 수업에서 과제로 냈던 ☘ 행성이 되기까지_나비 시계가 여덟시 반에 다가가면 나는 분주해진다. 우유를 반 컵씩 두 잔에 나눠 따르고 아이들에게 건넨다. 소독기에서 따뜻해진 칫솔 두 개를 꺼내와 치약을 짜서, 하나는 첫째에게 주고 나머지 하나를 들고 둘째의 이를 닦인다. "얘들아, 아홉 시다! 이제 자야지?" 첫째는 복슬복슬한 강아지 인형과 자동차 모형 장난감을, 둘째는 자그마한 공룡 피규어 네댓 개를 들고 안방으로 들어간다. 어두운 방에서 부드러운 자장가를 서너 곡 같이 부르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화 두세 편을 읊어준다. 한 시간 남짓 너무 들뜨지 않는 정도로 놀아주다 보면 어느새 아이들이 잠든다. 안방 구석 화장대 옆에 놓아둔 스탠드를 켜고 반다나 싱의 단편집 《자신이 행성이라 생각한 여자》를 펼쳤다. 책 속의 문장, "이제 알았어, 난 행성이야. 여자, 아내, 어머니 그런 거 말고." 아이들이 잠든 고요한 밤, 나는 어머니임을 잊고 행성이 되었다.
홍승은 작가님은 나뿐만 아니라, 참가한 모든 분들에게 꼼꼼하고 다정한 피드백을 전했다. 글쓴이에 대해 구체적인 칭찬과 상냥한 궁금함을 건네는 그의 피드백들은 글을 놓지 말고 계속 써봐야겠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돌아보면 매일 10문장을 쓰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10문장이었기에 주저 없이 손가락을 키보드에 얹을 수 있었고, 덕분에 10문장이 훌쩍 넘게 내 마음을 돌보아주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하루 10문장 쓰기 수업이 끝난 지 3일이 지났다. 나는 여전히 행성이 되기 위해 저녁 9시만 되면 분주하다. 어제는 아이들을 재우고, 록산 게이의 《헝거》를 마저 읽었다.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되려는 포장 없이, 자기 안의 복잡하고 미묘하게 충돌하는 감정을 솔직하게 적었을 때 얼마나 놀라운 글이 되는지. 록산 게이의 몸과 허기에 대한 사적인 고백은 내 안의 더 깊숙한 이야기를 꺼낼 용기를 준다. "글을 쓸 때, 자꾸 나를 의심하게 만드는 생각들이 있지요. 이건 너무 사적이야. 사소한 이야기야. 이런 게 글이 될까. 오늘은 익숙한 의심을 의심하며 각자의 위치에서 쓰겠습니다. 내 일상과 감각과 감정에 권위를 주며 열 문장 채우기." 홍승은 작가님이 둘째 날 글감의 안내로 적어주었던 이 내용을 떠올리며, 오늘은 혼자, 10문장 시작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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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포퓰리즘 시대, 다시 만나는 세계시민주의 | 어서와 '세계시민주의'는 처음이지? | 알리 | 2022.6.7 | |
저는 대학, 대학원을 다닐 시절 이주노동자 관련 NGO단체에서 인턴 및 자원활동을 했었어요. 그 때 경험들은 제 마음속에 아직 선명히 남아있어요. 너무 열악한 노동환경, 미등록 체류라는 이유 하나로 쇠창살 뒤에 갇힌 미등록이주노동자의 모습, 국내 노동자와 외국 노동자 간의 갈등까지… 시간이 지난 지금도 '세계는 점점 작아지는데 사람사이는 왜 더 멀어지는 걸까' 고민을 품고 살고 있어요. 그래서 <포퓰리즘 시대, 다시 만나는 세계시민주의> 강의가 열린다는 소식을 보자마자, 그동안 고민했던 것들을 이번 강좌를 통해 더 발전시켜 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로 강의를 등록했어요! 하지만 솔직히 이야기하면, 철학 이야기라… 너무 어렵지 않을까 망설이기도 했어요. 저 같이 아무렇게나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세계시민주의+철학에 대한 강의는 작은 도전이었어요. 결론은… 도전하길 잘했습니다!
#첫 걸음 - 강의를 통해 그 동안 뜻을 분명히 하지 않고 써 왔던 ‘세계평화’며 ‘세계시민’ 등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어요.
첫 강의에서 세계평화에 대한 칸트, 한상원 교수님(강사님), 다른 수강생님들의 의견과 제 생각을 종합해 세계평화를 전쟁과 폭력이 없는 상태를 넘어서서 환대와 연대가 있는 상태로 스스로 정의해보았던 게 기억나요. 바람이 크죠? 그리고 이제는 당연히 여기는 국제기구의 탄생 배경을 칸트의 철학을 통해 이해할 수 있어 유익했어요. 앞으로 국제기구의 기능에 어떤 점들을 기대할 수 있을지, 지금은 어느 정도에 와있는지 판단해 볼 수 있는 생각의 틀이 조금은 생긴 것 같아요.
#생각하는 재미- 철학자들의 시선을 빌려 세계시민사회의 바람직한 모습을 가늠해보고, 그 모습을 현재와 견주어 볼 수 있었어요.
한상원 교수님께서 매 강의때 마다 세계시민사회와 관련된 칸트, 마르크스, 칼 슈미트, 발리바르 철학자들의 서로 다른 생각과 주장을 정리하여 비교해주시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이게 마치 네 명의 철학자가 앉아서 토론을 하고 교수님이 마치 사회자인 것 같은 장면처럼 느껴지네요. 개인적으로 발리바르에 대한 마지막 강의가 기억에 남아요. 세계시민권과 세계시민사회를 발전시킬 방법을 고민하는데 있어…(제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발리바르는 경제적이거나 도덕적 것에 치중된 관점에서 벗어나 국가와 국민의 경계를 인정하는 관국민적(transnational) 관점에서 갈등의 실재를 인정하고 세계정치(Cosmopolitics)를 위한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이야기 하잖아요. 발리바르의 철학은 현실적으로 이룰 수 있는 세계시민사회가 어떤 형태를 갖추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의 시작점을 제공해주는 것 같아요.
그 동안 어렴풋이 이러면 좋겠다 하는 생각들이 철학자들의 제안을 양분삼아 자라난 것 같아요. - 우리가 국경을 민주화할 수 있을까? 국가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관계없이 시민들이 동등하고 상호적인 정치적 권리를 가질 수 있을까?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한국사회에서는 이주민과 외국인들에게 어떤 정치적 권리를 가지는 것이 마땅할까? 세계시민으로서 세계정치에 대해 어떤 권리와 의무를 가져야 할까?
#알고 느끼고 있는 것과의 연결 : 세계화=갈등?
세계시민주의 강의를 들으며, 최소집단효과(Minimal group effect)이라는 용어가 머릿속에서 맴돌았어요. 최소집단효과는 임의적인 기준으로 사람들을 나누어도 사람들은 집단을 이루어 집단 갈등을 겪는 사회 현상을 일컫는 사회심리학 용어에요. 이해를 돕기 위해 실험 예시를 소개하면, 한 학급의 아이들에게 수업 중 A와 B의 두 가지 예술품을 보여주고 어느 예술품을 좋아하느냐고 물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학생들이 수업 후에도 선호하는 예술품을 기준으로 집단을 나누고 각 집단을 규정하고 서로에 대한 편견을 키우고 서로를 적대시하게 되는 거에요. 즉, 아주 최소한의 조건만 주어져도 사람들은 편을 갈라 싸운다는 걸 보여주어요. 저는 이 현상이 경계는 허물어 지지만 각자의 편은 뚜렷해지는 현재 상황을 함축하여 보여주는 것 같아요. 세계화를 통해 서로가 더 노출되다 보니, 자연스레 비슷한 문화들은 융합되지만 다름을 차이로 서로를 적으로 규정짓는 일들이 더 빈번하고 강도가 심해지는 것 같아요. 물론 국가와 국민의 관계를 최소집단 조건으로 보는 건 무리가 있지만, 사람들이 실재하는 차이보다 그 차이를 더 크게 지각한다는데는 공통점이 있는 거 같아요.
그리고 사람은 추상적으로 존재하는 집단을 자기 정체성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잖아요. 그래서 세계화가 개인에게는 정체성의 위기를 초래하거나 어떤 집단에 속할 것인지 선택을 강요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 같아요. 요즘의 정치는 그걸 부추겨 이용하는 것 같고요. 외부 세계의 가치가 자기가 속한 집단의 가치와 차이가 크면 개인 내적인 갈등은 물론 집단 간 갈등도 커지고요. 그래서 국가간 분쟁이든 이주민과 원주민의 갈등이든 집단 간 갈등은 해결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것 같아요.
- 미래에는 사람들이 ‘나는 어느 나라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것 처럼 세계시민이라는 정체성을 개인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 세계시민은 우리에게 어떤 정체성으로 인식될 수 있을까요? - 그렇게 된다면 경제적 지위에 따른 국제질서에서 벗어나 국제적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을 만들 수 있을까요?
저의 강의후기에 있는 많은 물음표들을 보면 아시겠지만, 이번 세계시민주의 강의는 생각의 도화선을 연결하고 불을 붙이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강의를 통해 이주노동자 친구들과 함께 했던 활동 기억들이 많이 떠올랐어요. <포퓰리즘 시대, 다시 만나는 세계시민주의> 라는 강의 제목의 마법에 걸린 걸까요. 강의 중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사회적’ 생산에 기여하지만 어떠한 ‘정치적’ 시민권도 누리지 못한다.”라는 말에 공감을 했었는데요. 이 말이 저와 동년배인 이주노동자 친구들과 대구 동성로에서 함께 이주노동자 권익보호를 주장하며 즐겁게 퍼레이드를 한 기억과 다시 만나게 해주었어요. 그 때의 저는 시위활동의 필요성과 내용을 이해하면서도 시위활동을 설명하고 설득하기 위한 ‘말’들을 찾고 싶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는 함께 세계시민의 권리를 찾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었구나’ 하고, 강의에서 배운점들을 통해 그때의 경험들을 다시 표현해봅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소중한 강의를 해주신 한상원 교수님께 감사드리고, 참여연대 운영진분들께도 감사드려요! 이런 강의 더더더 기대해도 될까요? ㅎㅎㅎ 감사와 함께 부담을 드리고 싶어요. 하하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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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포퓰리즘 시대, 다시 만나는 세계시민주의 | 철학자의 눈으로 사유하는 세계평화로의 길 | 뚜룹뚜뚜 | 2022.6.5 | |
지금 우리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세계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인터넷과 뉴미디어의 결합은 실시간으로 다른 국가의 문화와 생활양식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화는 하나의 막을 수 없는 흐름이고, 삶의 일부분이다. 세계가 하나가 되어 평화롭게 인류애를 나누며 살아가는 것! 나는 그것이 바로 세계화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의 국제 정세와 국제사회의 현실은 전혀 평화롭지 못하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우리나라를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외국인에 대한 공공연한 혐오와 폭력을 목격했다. 또한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는 강대국인 러시아가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쟁을 자행하는 행위를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이는 모두 세계평화를 위한 인류애적 불문율과 기존의 국제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이다.
도대체 왜 세계는 이렇게 변화하고 있는 걸까? 국적은 달라도 평화라는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가던 그 모습은 대체 어디로 간걸까? 이러한 내면의 물음에 지쳐가고 있을 때 쯤 만난 수업이 바로 ‘포퓰리즘 시대, 다시 만나는 세계시민주의’였다. ‘세계시민’이라는 단어를 보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내가 궁금했던 것들을 세계적인 석학들의 사상을 빌려 정리해 볼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는 총 4강으로 구성되었고, 칸트, 마르크스, 슈미트, 발리바르의 정치철학을 다루었다.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은 철학에 대한 논의다 보니 너무 어렵지 않을까 정말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강의를 진행하신 한상원 교수님께서 핵심을 잘 짚어주시고, 열정적이고 흥미롭게 설명을 해주셨기 때문에 집중해서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수강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강에서는 임마누엘 칸트의 평화에 대한 이상과 그의 사상을 통한 세계 시민주의 개념의 등장을 배울 수 있었다. 칸트는 인간의 도덕적 신념과 이성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국가 간에도 국제법을 통한 사회계약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평화는 자연적인 상태가 아니므로, 영구한 평화를 위해서는 실천적인 노력이 필요하며, 이 바탕에는 모든 인민이 복종하는 세계시민법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세계시민법의 조건 중 외국인을 우호적으로 대하는 ‘환대’를 중요한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는 부르주아 계급이 세계 평화를 만드는데 커다란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하였다. 부르주아 계급의 국제 무역을 통한 무역의 세계화는 타 국민들에 대한 환대와 우호를 만들어 낼 것이고, 이는 곧 세계 평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칸트의 이러한 세계 평화에 대한 구상은 국민국가가 발생하기 이전 시대의 이념적 구상이었다.
한편, 2강에서는 칼 마르크스의 국제 시민주의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마르크스는 칸트와 마찬가지로 부르주아 계급이 주도하는 세계 시장의 확대가 이루어 질 것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세계 시장을 통하여 피억압 대중의 국제적 교류 양식이 창출될 것으로 예측하였다. 칸트의 생각처럼 부르주아 계급이 주도하는 세계 시장 그 자체로 평화가 이룩될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을 하지는 않았으나, 시장을 통하여 대중들 사이의 교류와 연대가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다.
또한 중세 코뮨(자치도시)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코뮨 내의 농노에 대한 자유와 이방인에 대한 환대의 정신을 중요한 가치로 당시의 공산당 운동에 적용하고자 하였다. 그는 국제 관계에서도 사적인 개인들의 관계를 규제하는 도덕적 법칙들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국민국가가 지금과 같은 강력한 형태로 살아남을 것이라 예측하지 못하였다.
3강에서는 현실주의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칼 슈미트의 이론을 배울 수 있었다. 슈미트는 평화로운 인류 공동체라는 관념을 거부하고, 적대 없는 정치라는 자유주의의 관념을 비판하였다. 전쟁의 정당성과 부당함을 구분하는 이분법적인 도덕적 논의가 전쟁의 파괴성을 강화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전쟁에 신학적 혹은 도덕적인 기준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의 논의에 따르면 전쟁에서의 적은 실존적인 적이다. 단지 이질성을 지니는 존재인 타자로서의 적일뿐, 적이 도덕적으로 선한가? 악한가?를 구분할 필요가 없다. 각 지역 특유의 공간적 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전쟁 길들이기’는 오로지 교전상대를 정당한 상대로 인정하는 것으로 가능하다. 따라서 슈미트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국제기구의 실현과 평화로운 세계에 대한 구상을 거부한다.
마지막으로 에티엔 발리바르는 국민국가와 세계 시민주의적 전망을 모두 동시적인 위기에 속한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민족주의가 재등장하고, EU내에서 다른 유럽인 그리고 비유럽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의 문제는 지구적 수준에서의 ‘지구적 디스토피아(global dystopia)’로 귀결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현존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이상적인 세계시민주의의 구상을 거부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세계정치를 통하여 투쟁의 형태로 실천하고 노력하는 관국민적(transnational)관점이 중요하다.
그는 국민국가의 실재성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시민권을 주권의 틀 속에서 사유하는 특권적 지위로서의 시민권에 대한 생각을 버려야한다고 강조한다. 즉, 시민권을 확장하고 타자를 만드는 경계를 민주화해야한다. 경계의 민주화는 경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계약을 구성하는 방향으로 변모하는 것을 의미하며, 정치적 권리를 둘러싼 갈등적 정치의 공간으로서 시민권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강의의 내용은 전공자가 아니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들이 혼재되어 있었다. 그러나 수업을 듣는 내내 이와 같이 수준 높은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 너무 감사하고 즐거웠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수강 전 궁금했던 질문에 대한 부분적인 답을 배울 수 있었던 강의라 기억에 오래오래 남을 강의가 될 것 같다.
수업 마지막에 많은 분들이 고민하신 바와 같이 세계 시민주의의 구상과 실현은 다양한 이유로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하나의 지구 안에서 더불어 살아가야하는 인류공동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인지하고 성찰하게 될 때, 평화를 추구하는 세계 시민주의의 구상이 실현될 기회가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늦은 시간까지 열정적으로 강의해주신 한상원 교수님께 이 자리를 빌려 알차고 좋은 수업을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또한 육아하는 엄마가 몸도 마음도 편하게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좋은 강의를 온라인으로 기획해 주시는 아카데미느티나무에도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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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꿈투사 워크숍 - 꿈 거울로 참 나를 만나다 | 문인가 하였더니 다시 길 | 야시햇살 | 2022.5.30 | |
새벽에 눈을 떴다. 요즘은 새벽, 이 시간쯤에 자주 잠에서 깬다. 다시 눈을 감았으나 쉬이 잠들지 않는다. 꿈은 종종 그랬던 것처럼 눈을 뜨자마자 뽀얀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나 잠에서 깰테니, 너 거기 잠깐만 있어’ 라고 부탁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꿈은 하늘과 땅의 거리보다 더 멀리 가버렸다. 무언가 차곡차곡 서랍 속에 쟁여넣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님 켜켜이 서랍 속 무언가를 꺼내는 것 같기도 한데...아무튼 꿈은 미련 가득한 내 곁을 미련없이 홀연히 떠나 버렸다. 이러다가 문득, 꿈은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세수를 하고 로숀을 바르다가, 옷장 문을 열다가 혹은 출근하다 신호대기 중 건너편에 붙은 광고 플래카드의 ‘OO가구점’ 글자를 무심히 바라보다가 ‘가구?...아하’ 기억이 살아날 때가 있다. 뿌연 안개 속 깜깜한 장막이 걷히고 곧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순간이다. 그럴 땐 마치 잃어버린 내 소중한 보물을 찾은 것처럼 흥분된다.
십여 년 전쯤 부산에서 열린 워크숍에서 고혜경 선생님의 그룹투사 꿈작업 강좌를 접하게 되었다. 열 명 남짓 사람들이 둘러앉아 각자의 꿈을 나누고 원하는 한 사람의 꿈으로 그룹 투사를 하는 과정은 나에게 낯선 광경이었다. 교양과목으로 ‘꿈분석’을 수강한 이후부터는 가끔 꿈을 기록하고 있었던 나로서는 꿈으로 무의식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구체적인 작업이 얼마나 흥분되고 경이롭던지... 그때부터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꿈을 더듬어보며 음미하는 일이었다. 어떤 날은 너무 선명해서 생시같기도 하고, 어떤 날은 기억이 흐릿해 안타깝기도 하고, 가물 가물 기억이 나지 않을 때는 혹시라도 남아있는 어떤 이미지나 느낌을 한 가닥 붙잡고는 음미하며 잠잠히 있어 본다. 그러다가 운 좋게 꿈이 다시 돌아와 주면 얼마나 흥분되는지 모른다. 꿈을 기록하다 보면 등장하는 인물이 나의 무언가와 연결되기도 하고 사물을 통한 직관이 올라오기도, 혹은 동물에게서 나의 숨겨진, 아니 숨기고 싶은 모습을 보기도 한다. 의식세계에서 외면하고 검열하여 내 것이 아니라고 밀쳐두었던 감정이나 욕구들을 적나라하게 보는 순간은 속물같은 내 모습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수치스럽기도 하지만 그 낯선 나를, ‘또 다른 나’로 수용하기까지 겪는 나름의 아픔은, 그런 나를 인정한 후에 내게 주어지는 선물, 존재의 자유로움에 비하면 견딜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이 경이로는 세계를 좀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쯤 고혜경 선생님의 ‘꿈에게 길을 묻다’를 읽고 그룹투사 꿈작업 모임을 해 볼 용기를 내었다. 여러 사람이 함께 투사작업을 하는 것이 혼자보다 훨씬 풍성한 ‘아하’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에 매료되어 용감하게 모임을 시작했다. 그러나 구심점 역할을 내가 제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에 때늦은 후회를 하던 날, 초록색 잎이 풍성한 나무에 빨간 열매 하나가 달려 있는 모습을 담장 너머로 스쳐 지나가며 보는 꿈을 꾸었다. ‘빨간’ 열매는 하루 종일 나와 함께 했고, 모임의 가이드 역할을 잘 해내야 한다는 건 또 다른 나의 페르조나였음을 깨달았고, 굳이 내가 하지 않아도 꿈이 스스로 그 역할을 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후로 모임은 계속 이어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고혜경 선생님의 그룹투사 꿈작업에 참여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램(공지를 보고 신청하려고 하면 이미 마감!!)이 하필이면 내 인생에서 가장 혼란한 시기에 이루어졌다는 것 또한 내게 아주 큰 의미가 있었다. 간절함이 없었다면 이번 봄학기는 포기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언제나 내가 계획한 대로, 결정한 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의 틀(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힘든 시기고 바빠. 새로운 변화가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이 시점에서 또 새로운 공부를 하기는 힘들어. 그러니 다음에 여유있을 때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편한 마음으로 하자. 이번에는 포기하자!!)이 박살나는 경험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 세계에서 눈을 돌려 새로운 세계에 한 발 들이미는 경험은 고통없이는 불가능한 일일테니 말이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 힘들거나 지치거나 혹은 갈피를 잡지 못할 때 ‘오늘 밤 꿈은 나에게 어떤 말을 건넬까’ 생각하면 내가 타인이 되어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래서 다시 궁금해진다. 또 다른 내가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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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꿈투사 워크숍 - 꿈 거울로 참 나를 만나다 | [꿈투사워크숍] 나의 장례식장 | 밤톨 | 2022.5.28 | |
영화 <굿바이> 영상 캡처
타키타 요지로 감독의 <굿바이>(2008)라는 영화가 있다. 영화 속 어린 시절 주인공은 아버지와 ‘돌편지’라는 것을 주고받는다. 사람의 마음은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기에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의 마음과 닮은 돌을 강가에 주워 아들에게 준다. 그러면 마음은 촉감, 무게감. 생김새를 가진다. 그렇게 전달된 편지는 어렴풋이 상대의 마음을 추측하게 한다. 나는 이 ‘돌편지’가 꿈과 같다고 생각한다.
고혜경 선생님은 “꿈은 신이 보낸 연애편지”라고 자주 말씀하신다. 신은 우리를 사랑하는데 그 사랑(내가 건강하고 온전해지길 바라는)을 전달하기 위해 무의식이란 강가에서 꿈이란 도구를 선택한다. 다만 꿈은 상징과 은유로 되어있기에 어찌 도착한 편지를 열어보아도 그 의미를 명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그래서 꿈은 신의 일방적인 짝사랑으로 시작해 ‘연애편지’가 아닌 길거리에서 받은 ‘부동산 전단지’로 취급당한다. 힘겹게 꿈이 전달되었다 하더라도 악몽이라 생각되면 길에 버리고, 길몽이라 여겨지면 복권방 주인에게 가져다준다.
그룹 투사 꿈 작업(Group Projective Dreamwork)은 꿈을 잘 들여다보기 위해 제레미 테일러 선생님이 1960년대에 창안한 방법이다. 한 사람이 가져온 꿈을 듣고 '이 꿈이 내 꿈이라면...’ 하면서 여러 사람이 투사(projection)를 한다. “하나의 꿈을 가지고 작업할 때 각 개인이 가진 다양한 층의 지식과 직관을 동원해 함께 꿈을 이해하려는 작업에 동참한다. 그러면 꿈을 꾼 사람은 훨씬 넓은 범주의 의미를 파악할 가능성이 높아지며, 자연히 꿈의 다층적인 면과 복합적인 의미를 파악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또 “아하! 체험”을 할 기회도 증가하게 된다.”고 선생님은 말한다. 실제로 다양한 시각에 내 꿈은 다채로운 빛을 내기 시작한다. 누군가 던진 말에 내 안에 있는 내가 모르는 누군가 반응해(저 공이야!) 딱! 소리를 내며 홈런을 친다. 그러면 절로 ‘아!’ 소리가 나온다.(이 순간의 느낌은 시커먼 무지의 구름을 빠져나와 새파란 하늘을 바라본 <매트릭스3>의 명장면과 같다)
그렇다면 실제 꿈 투사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나는 작년 가을과 올해 봄에 워크숍을 참여했다. 공교롭게도 맨 처음 내 꿈을 다뤘다. 제목은 <앞다리가 없는 통통한 고양이>였다. 다음은 꿈의 내용이다.
전혀 팔릴 것 같지 않은 이 허무맹랑한 판타지를 나는 사람들 앞에 내놓고 그들의 질문을 기다린다. 누군가 묻는다. “고양이의 앞다리가 잘렸나요?” 생각해보니 다리는 없지만 잘리지는 않고 흐릿했던 기억이 나서 절단은 아니고 흐릿하다고 말하며 대신 없는 것은 확신한다고 말했다. “고양이는 서서 걷나요?” 아니다. 일반 고양이처럼 네 발로 걷는다. 다만 앞발이 흐릿해 없을 뿐이다. “옆의 어린 수컷 고양이는 형제인가요?” 그건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어떻게 먹이를 주고 있나요? 밥그릇에 담아 주나요?” 그냥 두 손으로 건 사료를 담아 땅바닥에 두었다고 말했다. 동시에 속으로 아차! 싶었다.(아하!가 아니다) 고양이에게 밥을 너무 애정없이 주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때문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누군가는 어떤 사람인가요?” 나는 그 사람의 형체가 기억나지 않지만 예전 꿈에도 등장해 이런저런 상황이라고 설명해 주었던 사람이라고 답했다. 구성원들은 자기 꿈으로 만들기 위한(이미지를 선명하기 위해) 질문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한 사람씩 ‘이 꿈이 나의 꿈이라면...’ 말하면서 투사를 시작했다.
투사가 시작되면 각자의 지식과 직관으로 꿈을 풀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것은 꿈을 가져온 나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순전히 ‘자기 고백’이다. 따라서 틀린 것도 없고 굳이 상대방에게 도움이 될 필요도 없다. 그저 각 개인이 가진 역량대로 성찰하면 된다. 그때 나는 솔직히 말해서 ‘이 사람들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나’하고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가 앞발이 없는 고양이가 되기도 하고 어린 수컷 고양이에게서 자기 형제를 보기도 하고 실제 키우는 고양이에 대한 습성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그러는 도중에 내게 ‘아하!’가 왔다. 앞발을 잃은 고양이는 호기심도 인간관계도 잃은 나였음을. 그리고 나는 그런 나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허기만 채우면 된다는 지침으로 애정없이 먹이를 주고, 보기 싫어(‘시선을 돌려’) 괜찮은 척하고 있지 않은가. 내가 나를 내버려 두고 무관심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나고 또 다른 통찰이 올라왔다. 우리 부모님도 사회가 요구하는 경제적 능력을 갖추기 위해 앞발을 잘랐음을. 그래서 사랑이란 이름으로 자식들의 앞발을 자르려고 했다. 이것은 김수영 작가의 책 「멈추지마, 다시 꿈부터 써봐」에서 작가의 부모님이 자식이 외국의 어떤 좋은 회사에 다니든 그저 집 근처 공장에 취직해 남자를 만나 우리 곁에서 아이를 낳고 같이 살았으면 하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과 같다. 자식을 자신의 틀 안에 가두려고 한 것이다. 어쨌든 그런 부모님도 불쌍하다고 느껴져 부모님에게 미안하다고 우는 꿈을 꾸었다. 부모님도 앞발이 없는 것이다.
꿈투사를 하고 나서 무엇이 좋았냐고 내게 묻는다면 몇 가지 짚어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첫째, 질문을 받는 것이 좋다. 꿈에 등장하는 모든 것은 내 안의 어떤 요소이다. 따라서 꿈에 대한 모든 질문은 나에 관한 관심으로 느껴져 나를 기쁘게 한다. ‘와 이렇게 나한테 관심이 있는 사람이 많다니!’ 나에 관한 여러 질문은 내 기억 속 묻혀있던 기쁨과 슬픔을 자극해 내 마음을 활성화한다.
둘째, 상징과 은유로 내 고민을 다루기 쉽다. 심리학적으로 첫 번째 꿈을 다룬다면 [어린 시절 부모님의 유기와 방임으로 애착 형성에 실패해 내가 부족해 부모님이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나는 열등감에 빠져 남의 눈치를 살피며 남들의 칭찬을 받기 위해 모범생이 되고자 노력한다. 열등감은 이성 앞에서는 부끄러움으로 나타나고 배울 점이 있는 사람에게는 시기와 질투로 표현된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 나는 부모님의 곁에 떠나지 못하고 옹졸한 사고방식으로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하지 못한다.]로 분석할 수 있다. 그런데 꿈은 얼굴이 통통한 앞발이 없는 고양이의 상징으로 이 사연을 압축한다. 이 고양이라는 상징은 나에게 설득력이 있다. 왜냐하면 이 상징은 내 안에서 선택된 이미지고 내 감정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내게 고양이는 매우 독립적이고 개와 달리 자신의 기분이 주인보다 더 우선시하는 동물이다. 동시에 다루기 힘들어 중성화하고 집안에 키우는 동물이다.
셋째, 무의식적 행동 양식을 볼 수 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고양이 밥그릇’을 왜 나는 놔두지 못했나? 그 이유는 내가 나에게 친절하지 못해서이다. 무엇보다 나는 내가 돌봐야 하는 0순위인데 끊임없는 인정욕구로 시선이 타인에게 향하고 있었다. 나는 꿈투사 이후로 친구에게 선물할 예쁜 ‘안경 닦이’를 그냥 내가 썼다. 그리고 몇천 원을 아끼기 위해 늘 실망으로 끝내는 가성비를 따지는 소비습관도 고치고 있다.
넷째, 꿈을 가지고 놀 수 있다. 나는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하지만 꿈을 들으면 손짓으로 이미지를 상상해보기도 하고 꿈이 사용하는 기교인 언어유희를 맞추기 위해 여러 단어를 던져보기도 한다. 더욱 나아가 꿈 작업이 끝난 후에도 내 꿈에 나오는 고양이를 가지고 여러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예를 들어 고양이에게 장화를 신기다면 고양이는 두 발로 일어서서 그의 재치로 가망이 없는 이 현실을 놀라운 일들이 가득한 세상으로 바꿀 것이다. 또 좀 더 강인하고 고귀하게 고양이를 돌본다면 <알라딘>에 나오는 쟈스민 공주가 키우는 호랑이로 성장할 것이다. 그러면 그 누구도 나를 만만하게 보지는 못할 것이다.
영화 <알라딘> 티저 영상 캡처
다시 영화 <굿바이>로 돌아가 보자. 영화 속 아버지는 주인공이 어릴 때 바람이 나서 집을 떠난다. 주인공은 그런 아버지를 증오한다. 어찌 돌아온 고향에 그는 어릴 때의 상처와 마주한다. 동시에 아내의 의견을 묻지 않고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자신의 모습이 아버지와 닮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가장 싫어하는 이와 나는 닮은 것이다. 그는 죽음을 다루는 납관사(관에 사람을 넣는 의례를 관장하는 사람)로서 사연이 있는 여러 죽음을 다루며 좋음과 나쁨으로 삶을 가르는 이원론의 무상함을 바라보고 자신의 상처에 담대하게 다가간다. 그 후 죽은 아버지를 마주하며 그가 전해고자 했던 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와 함께 상처 입었던 자신도 관에 넣는다. 영화 제목 <Good & Bye>의 'Good'은 일련의 경험을 통해 상처를 준 그들을 향해 ‘You are good’이 아니라 ‘I am good’라 말할 수 있게 되고 그래서 ‘Bye’로 이 사건을 내가 종지부 찍을 수 있음을 뜻한다. ‘I am good’라 말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꿈투사 워크숍에서 당신은 얻을 수 있다.
가장 보통의 보편적인 당신이 참여하고 연대해 만들 이 둥근 자리는 모험을 떠나기 전 옛 기사들이 치유의 성배를 보았던 원탁이며,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가 절대 반지를 파괴하더라도 남아 있을 진정한 반지며, 일찍이 아기 공룡 둘리가 납치되었던 UFO다. 왜 갑자기 UFO냐고? 패닉의 <UFO> 가사를 보라.
“마지막 달빛으로 뛰어가봐 날아와 머리위로 날아와 검은 하늘을 환히 비치며 솟아 모두 데려갈 빛을 내리리 이제야 그 오랜 미움 분노 모두 다 높이 우리와 함께 날으리”
여신의 달빛으로 당신의 그 오랜 미움과 분노가 사라지는 자리가 여기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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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꿈투사 워크숍 - 꿈 거울로 참 나를 만나다 | [꿈투사워크숍] 잠들면 개봉하는 인생극장 | 봄날~ | 2022.5.26 | |
수요일 오전마다 화면으로 만나는 얼굴과 목소리. 그리고 간밤에 꾼 꿈의 제목으로 “ 안녕하세요, 일주일간 어떻게 지내셨어요~”를 나눈 뒤에 꿈을 통한 연결이 이루어졌습니다.
한 사람의 꿈 이야기를 듣고 나누며 ‘내가 그 꿈을 꾸었다면~’을 상상해서 느낌과 생각을 나누는 피드백 속에서 저는 또 다른 관점과 또 다른 영감을 얻었습니다.
그 영감은 저의 마음을 날마다 새롭게 했습니다.
해외, 경상남도, 충청도, 경기도에…. 사는 모르는 사람들이 만나서 오직 꿈으로 진솔하게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은 아름답고, 가슴이 따끈해집니다.
꿈을 기억해서 기록하고 나면, 꿈이 전하는 말을 듣는다는 것이 들릴 듯 말 듯, 알쏭달쏭하거나 때때로 물음표만을 남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꿈은 보이지 않는 나의 내면의 마음을 보여 주기도 하고 들려주기도 하니, 어찌 귀하지 않을까요?
불변의 진리처럼 나의 마음은 내가 스스로 알아가야 하기에 저는 오늘도 어젯밤 꿈속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시를 느끼는 마음으로 곰곰이, 천천히, 고요해집니다.
꿈 투사 과정을 통해서 알았습니다. 저는, 제가 아는 것 외의 존재라는 것을요. 꿈을 나누고 경청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이리저리 휘둘려 살며 내 안의 사랑을 두고서 평생 사랑을 모를뻔했습니다. 꿈꾸기가 즐거워 잠을 청하는 것이 살짝 두근거립니다.
꿈에 귀 기울이기를 경험하는 귀한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깊이,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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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내 인생의 시의적절한 성교육 ver 2.0 | "당신이 생각하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거예요" | 아탈 | 2022.5.17 | |
성교육 강좌가 있다고 했을 때 그것도 한채윤 선생님의 강좌라고 했을 때 ‘무조건 들어야지!’ 했다. 그런데 1회가 아닌 5회라니!! 좋기도 하면서 부담이 되기도 했다. 일을 마치고 얼른 저녁을 먹고나서 졸면 안되니까 커피한잔을 놓고 노트북앞에 앉았다.
내 인생에서 ‘시의적절한 성교육’은 사실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음... 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요즘이고 성교육은 나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교육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처음 질문부터 ‘성감대’가 어디라고 생각하냐고 하신다. 음 성감대는 여기? 저기? 몇 군데 생각했는데 어머나 우리 몸 전체가 성감대라고 하신다!! 아이구 여태 이걸 몰랐네. 왜 몰랐지? 생각해보니 내 몸인데 교육적으로만 배운대로 생각하며 살았었구나 싶었다.
성을 이야기할 때 행위만을 이야기 했기 때문에 섹스라는 말만 나와도 몸둘바를 모르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물론 나도 그랬었고. ‘생식기는 그냥 생식기일 뿐이야’ 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설명을 듣고 나면 나도 이제 생식기는 그냥 우리 몸의 일부일 뿐이야 라고 더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긴다.
‘성관계’ 라고 할 때 그 대상이 누구인지가 중요하다기 보다는 어떻게 관계를 가지느냐가 중요하고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에 공감이 갔다. 어떤 관계는 옳고 어떤 관계는 그르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 어떤 관계를 가지든 서로의 충분한 의견을 듣는 것, 합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성관계’를 가지고 나면 ‘성관계’를 가지기 전으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말씀에 대해 지금 관계를 고민하는 사람들과도 꼭 같이 얘기해보고 싶다.
가끔, 이런 질문도 해도 되나 싶은 질문들(나도 궁금했던)에 대해서도 정말 정성스럽게 설명해 주시는 한채윤 선생님에게서 사랑을 보았다. ‘당신이 생각하는 모든 것은 이상한 게 아니에요. 그건 너~무 자연스러운 거예요~^^’ 라는 말씀에서, 성이라는 것을 정해진 어떤 틀 속에서만 행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더 자유로울 수 있다고, 듣는 우리에게 사랑을 가득 담은 말과 표정으로 저렇게 진실된 사랑을 전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커피를 준비하고 바른 자세로 앉아서 있기도 했지만 잠깐 쉬는 시간에 잠들었다가 한참 후에 깬 적도 있었는데 어느새 5주가 훌쩍 지나가 버렸다. 이번 강의는 ‘성’에 대해서 단편적으로만 생각했던 것들을 벗어나서 더 많은 질문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한 나에게 참 ‘시의적절한 성교육’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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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관계와 가치의 과학 : 진화하는 시민의 힘 | '관계와 가치의 과학'을 수강하며 느낀 소통의 희열 | Juliana | 2022.5.16 | |
아카데미 '느티나무'의 2022년도 봄학기 인문학교에서 저는 느티나무를 이끄시는 선생님들의 친절한 안내와 대표님의 따스한 소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또한 4주간의 강연에서 교수님들의 진심과 열정을 느끼며 깨달음과 소통의 뿌듯함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제가 느낀 강좌에 대한 소감을 나누어 볼까요?
안녕하세요. 저는 과학을 전공하고 기업체와 대학교에서 나름 열심히 일하며 지내는 평범한 한 사람, 이름은 지영이라고 합니다. 아주 평범하게 그리고 무탈하게 지내온 저의 인생은, 긍정에너지가 넘쳐나는 생기가 가득하였습니다. 어쩌면 온실 속에서 세상 속 어려움과 힘듦은 내 영역이 아닐 것이라는 착각 속에 그저 그렇게 열심히 살아온 '나'였던 것이지요. 헌데, 이런 '나'를 돌아보며 무언가 부족하다라는 반성을 이제서야 하게 되었습니다. 40대의 중반에서야 말이죠. 그리고 후반에 와서야 답을 하나씩 찾아 나서게 되었지요. 과학만을 생각하고 업무적인 실적만을 추구하던 성과중심의 삶에서 무언가 회의가 느껴지게 되었답니다. 이런 회의는 그 계기가 나이, 유학, 결혼 등 사회전반에 걸친 경험치가 많아지면서 세상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불합리함을 느끼게 되면서, 그리고 약자와 강자가 존재하는 세상을 느끼면서, 물질과 권력이 만들고 있는 카르텔의 존재로 인해 얼마나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하나씩 알아가게 되면서부터였습니다. 나 또한 그 카르텔 속에서 즐기고 있었나? 라는 자조섞인 반성을 하기 시작하게 된 것이죠.
과학을 전공하였으나 과학기술이 인간사회에 도움이 되는지, 과학자들의 양심에는 문제가 없는지 등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기 시작하던 저의 40대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고민과 그 답은 내가 찾아 나서야 하고 깨닫고 행동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의지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답은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고 쉽게 알지도 못 할 어려운 과정입니다. 이때부터 저는 부족하나마 인문학과 심리학, 그리고 통계의 중요성과 철학의 가치체계에 아주 조금씩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연결고리를 맺고 선순환이 되어야 세상에 쌓여있는 많은 문제들이 하나씩 풀려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적인 고뇌를 하는 저에 대한 인생의 해답들까지 말이지요.
아카데미 '느티나무'의 인문학교 강좌는 제게 이런 고민과 실천덕목에 대한 해답의 시작을 알리는 제목으로 제게 다가왔습니다. 정인경 교수님의 '과학이 나에게 알려준 삶의 가치에 대하여'와 '팬데믹과 기후위기로 보는 과학기술의 방향성'은 첫 2주간 나누었던 주제였습니다. 제가 아는 한 현대 사회에서의 과학은 소위 성과주의의 표본이며 산업고도화의 측정도구로 이용되면서 이것이 기술패권이라는 권력으로서의 이용가치를 품고 있습니다. 과학을 대하는 저로서는 지금의 현실이 사실 슬프게 느껴집니다. 이러한 시기에 접한 정인경 교수님의 "과학에 대한 가치란, 즉 인간이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도구"라는 주제의 강연은 제게 희열을 느끼게 해 주셨고, 제 마음 속에 맴돌던 무언가 갑갑한 부분들이 확 트이는 것을 느끼도록 길을 터주셨어요. 이제 저는 주저하지 않고 "과학이 인간관계 간의 균형과 이해와 포용,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아름답게 늙어갈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로서의 과학의 가치를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기술패권보다는 인간의 행복과 기회균등의 아름다운 모습들이 과학의 정밀한 계산과 기술로서 어떻게 이루어 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위한 과학자들의 행동이 필요하다는 확신이 들면서, 저도 앞으로 해야할 일들에 대한 그림을 다시금 그릴 수 있게 되었답니다. 주저하던 가치를 교수님의 강연덕분에 발견한 것은 제게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전한 얘기를 듣고 행복에 대한 인간의 풀이를 또 한층 더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행복을 원하는 것 같지만, 실제는 인간이 행복을 원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행복은 목적이기보다는 수단으로 할 때 우리 삶에 변화들이 일어나게 되기때문에 행복에 대한 맹목적인 추구가 아닌 가치 있는 일에 도전함으로써 우리는 '행복'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는 것. 내 삶의 바람직한 변화를 위해서 명심해야 할 대목이라고 느꼈습니다. 스피노자의 뇌부터 시작된 '느낌'과 '감정'을 거쳐 사회적인 뇌에 대한 강연을 통해서 '마음이론'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내 경험을 통해서 상대를 이해하게 되는 인간의 마음, 그리고 오늘의 경험이 내일을 바꾼다는 '구성된 감정이론'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제게는 '존엄'이라는 가치가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즉 "존엄은 인간에게 주어진 인간 뇌의 조직과 기능 방식에 있는 '내적표상'이라고 정의한다." 는 이론을 들어면서 인간은 무엇이 스스로를 존엄하게 만드는지를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 우리들이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살기 위한 중요한 논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인경 선생님의 책 <내 생의 중력에 맞서> (좌), 김범준 선생님의 책 <세상물정의 물리학> (우)
김범준 교수님의 3주와 4주차에 걸친 강의를 통해 사회와 관계에 대한 통찰력을 과학으로 풀어주시는 연구 주제를 함께 나눌 수 있었습니다. 깊이가 있는 주제이지만 쉽고 재미있게 풀어주셔서 즐거운 소통이 있었습니다. 통계물리학을 관계의 과학으로 연구하셔서 "함께하면 달라진다."는 증거를 보여주시는 사례들은 재미있고 공감가는 흥미로운 주제였습니다. '집단지성'과 '함께지성'이라는 연구 사례와 짜장면과 된장찌개를 선택하는 과정을 예시로 들어주셨는데, 결론은 의견소통의 통로를 추가하면 다양한 의견 소통이 가능해지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람들이 소통하는 관계의 구조를 체계적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에 '함께 꿈꾸는 꿈'을 만들어가면서 민주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합의의 가능성이 커지며 좋은 방향으로 변화되는 세상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이것이야 말로 진화가 아닐까요.
'어쩌면 바로 이런 우리들의 소통의 모습이 이 사회 속에서 잘 이뤄지고 시너지가 발휘되면 서로에게 상처주지 않는 관계와 정직한 과학 데이터, 진실한 사회구조를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권위과 권력이 아닌 따스함과 지성의 조화로운 모습, 그리고 서로를 배려하고 아끼는 모습들 속에서는 얼마나 아름다운 관계와 조직이 만들어질까요! 이런 희망을 갖게 되는 흥겨운 시간이었습니다. 과학자들의 연구는 이어질 것이고 깨어있는 지성의 힘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과학연구에 대한 투자는 단지 물질의 발견과 기술개발 자체만으로는 인본적인 발전이 미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김범준 교수님께서 하시는 사회 속 관계들을 통계로 보는 물리학 연구는 앞으로 더욱 활성화되고 연구투자의 비중이 더욱 높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언가를 발견하고 발명하는 과학을 뛰어 넘어서 인간사회의 궁극적인 현상과 문제를 분석하고 바른 방향성을 제시하는 일은 모든 과학자들에게 큰 비전이자 인류가 겪을 어려움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게 하는 연구주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학자들의 양심이 여기서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고, 결국은 과학자들과 인문학자들의 추구하는 방향성이 인간을 위한 궁극적인 바른 가치에 근거하여 나아 갈 때 세상 속의 관계들이 더 아름답게 만들어져 가게 되지 않을까요? 모두가 행복하고 공평하며 살기 좋아지는 세상 말이죠.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물리학자이신 김교수님의 강연에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인간과 사회 그리고 과학기술이 헌신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하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에 매력적인 제목의 수업에 평생 처음 수강해본 과학인문융합 수업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융합학문에 대해 아직도 폐쇄적인 학풍이라는 생각을 일하면서도 느꼈는데요, 이런 학문의 융합적 사고의 시작을 선두적으로 연구와 실천을 먼저 시작해주신 교수님들께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팬데믹의 고통 속에 온라인수업을 활용하였기에 어쩌면 저는 오프라인 강의보다는 원하던 강의에 더 빨리 접할 수 있던 것 같아요. 코로나사태의 아픔 속에서도, 제게는 운명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고통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와 전세계의 정황 속에서 과연 우리 과학자들, 인문학자들 그리고 의식있는 시민들의 고민과 공부와 소통과 나눔이 얼마나 단비같았는지는 함께 해주신 모든 참여자분들이 공감하실 것입니다.
저는 사실 매번 퇴근길에 운전을 하며 들었고, 심지어 코로나 후유증에서 몽롱한 상태로도 들었습니다.하지만, 놓치기 싫어서 꼭 수업에 참여하였습니다. 한 주도 빠질 수 없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많이 아쉬웠습니다.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후속강좌를 개설해 주신다면 이어서 또 듣고 싶습니다. 복습도 좋고 새로운 주제도 좋고, 여튼 다시 뵙고 싶습니다. 제가 아직도 초보수준의 인문학 지식에 머물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제 마무리 인사를 드려야겠네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아카데미 '느티나무'의 22년도 봄인문학교는 따스함의 시간이었습니다. 인간이 행복을 느낄 때는 언제일까요? 바로 이런 따스함을 느낄 때가 아닐까요? 무수한 사회 고민 속에서 지성인들끼리 이렇게 소통이 즐거울 수 있고 따스할 수 있다는 것이, 그것도 우리 사회의 현실적인 주제와 인간의 마음과 심리, 관계에 대한 나눔이 따스할 수 있다니! 정말 놀랍고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또 만나요! 감사합니다.
<관계와 가치의 과학 : 진화하는 시민의 힘> 강좌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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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내 인생의 시의적절한 성교육 ver 2.0 | 성교육 강의를 들었는데 돌봄을 받은 느낌이랄까 | 커리 | 2022.5.11 | |
안녕하세요.
강의 편하게 듣고 싶은 마음에 비디오를 끄고 강의를 들어서 제 이름만 기억이 나실것 같은데 저는 아카데미느티나무와 몇번의 만남으로 낯설지 않네요.^^ 한채윤 님 강의 너무 잘 들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강의가 특별히 인상적이었어요. 강의를 들었는데 돌봄을 받은 느낌이랄까.
어제 그러니까 5월 8일 아이들과 외출을 했다 돌아오는 길에 늘 집으로 가던 길이 아닌 바닷가 올레길로 방향을 틀어 운전을 했답니다. 참 저는 제주에 산답니다. 마을길과 제주밭이 이어지는 좁은 길 맞은편에서 경운기가 오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먼저 지나가길 멀찌감치 섰답니다. 경운기가 점점 다가올수록 운전을 하고 계신 할아버지가 눈에 들어왔고 저를 향해 계속 수신호를 하고 계셨어요. 손짓으로 '나 그 쪽으로 가고 있어~', '그리고 이 쪽 방향으로 틀거야~' 오른쪽 골목으로 가실거라는 그래서 차를 좀 더 뒤로 뺐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마지막 수신호 저를 향해 '고마워~'.
어제는 올레길에서 우연하게 맞닿은 노인의 따뜻한 수어가 저를 간만에 미소짓게 만드는 장면이었다고만 생각했는데 이 장면을 쓰다 보니 눈물이 날 만큼 위안이 되는 순간이었다는 걸 알아차림하게 되네요.
성교육 강의가 그랬습니다. 내가 어느 방향으로 갈거야 안전하게 먼저 안내하면서 내용을 채워주시고 매 강의마다 사전질문을 받아 맞춤형 설명과 의견을 나눠주셨지요. 저 역시 고민고민하다 이런 기회가 또 올것 같지 않아서 질문인지 고민인지도 모를 글을 보냈었는데요. 마지막 강의가 끝나고 나서 첫 느낌은 '돌봄'을 받은 것 같았어요. 글로 표현이 한계가 있을법한 질문이었는데도 잘 들여다보시고 섬세하고 소중하게 다뤄주시고 경험을 나눠주시고 말 속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물론 저의 해석입니다만... 그리고 그 말이 위로와 위안이 됐답니다. 참 매회 강의 끝나고 강의 PPT를 공유해주시는 놀라움도 있었지요.
그리고 두번째 내 인생의 시의적적한 성교육을 듣고 나서 든 생각은 동성이건 이성이건 양성이건 성 구분이 필요하지 않다. '사랑'은 사랑이다. 성체성을 알 필요는 있지만 성체성에 따라 사랑이 차별이 될 이유는 없다가 더 잘 다가왔습니다.
쓰다보니 한가지 더 생각나네요. 마지막 한가지는 관계의 안전함이 전제가 돼야 하는구나. 서로 원하는 것을 얘기하고 확인하고 합의하는 과정인데 이 과정이 되려면 안전한 소통 관계가 전제 돼야 하는구나, 저는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게 '안전한 소통 관계'이거든요.
제 평생 성교육을 제대로 받은 기억이 없고 화제에 따라 주제에 따라 또 아이들을 키우면서 필요하다고 느껴 단편적으로 책을 찾아 보기는 했으나 다섯 강의에 걸쳐 해부학 논리학 관계학을 망라하는 성교육이 도움이 많이 됐고 거기다 돌봄과 위안까지 얻은 게 많은 강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한채윤 님의 온화한 미소도 잊지 못할 것 같네요.
다음 강의 기회가 있다면 성평등 인권교육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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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내 인생의 시의적절한 성교육 ver 2.0 | 나의 몸에 좀 더 당당하게!! | 작은여우 | 2022.5.7 | |
지내다 보면 이런 저런 궁금함이 생기는 것은 다반사인데, 어디에 시원하게 질문하거나 알아보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성과 관련된 주제였던 것 같습니다.
첫날밤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 부모님으로부터 돌아온 말은 “남자가 하는 대로 하면 된다”라는 답을 들었을 뿐 난처함과 그 어떤 것을,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지한체로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정확한 정보와 성교육이 없던 시절 답답함을 안고 시간이 지나, 이제는 자녀(아들, 딸)에게 어떻게 하면 성교육을 해 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시민단체에서 청소년성교육자원활동가 교육을 통해 정보를 얻고 자녀들에게 조금은 덜 어색하게 성과 관련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저의 성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강좌를 들으면서 생각났습니다.
폭력예방교육을 하는 강사로 학생들에게 어떻게 성과 인권에 대해 잘 전달할지 고민을 하며 소속기관에 계시는 선생님 소개로 <내 인생의 시의적절한 성교육> 강좌를 알게 되었는데 소개해 준 선생님은 참여하지 못하고 저만 이렇게 유익한 강의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내 인생의 시의적절한 성교육>은 다시 한 번 현장에서의 나를 돌아보고 난처해하지 않으면서 좀 더 유익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성과 관련하여 무지함과 난처함으로 당황하지 않으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권으로서의 자신의 권리인 성적자기결정권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내 인생의 시의적절한 성교육' 에 많은 분들이 참여하여 나, 너 우리 모두가 즐겁고 안전하고 행복한 성생활을 하는 그런 사회, 수치심을 느끼지 않고 밝히는 사람으로 인식되지 않는, 당당하게 나의 몸을 존중하면서 서로가 존중하는 폭력이 없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더욱 갖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유익하고 꼭 필요한 교육을 마련해 주신 아카데미느티나무와 늘 미소로 저희에게 더 전하고픈 맘으로 매 회기 강의를 해 주신 한채윤 강사님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좀 더 많은 분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래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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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내 인생의 시의적절한 성교육 ver 2.0 | 사랑의 모양은 정확하고 구체적일 거예요 | 채소_ | 2022.5.5 | |
고맙습니다. 저는 덕분에 앞으로 내가 원하는 사랑을 만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자신이 더 생겼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미디어로 왜곡된 시각의 성을 접했어요. 섹스는 나쁜 것으로 인지했어요. 가정에서는 성교육에 소극적이었고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고 위험한 것으로 뭉툭한 가이드를 받았습니다. 더 모호하고 혼란스러운 상태였던 것 같아요. 학교에서 배운 성교육은 콘돔을 끼우는 방법 정도로 조심하라는 등의 적절한 방식은 아니었습니다. 섹스에 관심을 보이면 우우-하는 분위기의 중학교의 분위기도 소극적이게 만든 요인 중 하나였어요. 그래서 부끄러워하는 방식으로 회피해왔습니다.
그렇게 보지 말아야 할 것, 잘 모르는 것이 어쩌면 고고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성인이 되었습니다. 수치심을 핵심적인 감정으로 두고 섹스는 위험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이런 상태로 애인을 사귀었을 때, 섹스를 요청받았을 때 제가 존중받기도 하고, 존중받지 못하기도 하는 상황을 만났습니다. 존중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상태가 되고 나서는 처음엔 그 상황 자체를 파악하지 못했고, 빠져나와서는 제가 어떤 걸 겪었는지 구체적으로 잘 알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무서웠고 숨기고 피해왔던 제가 있네요. (도닥여주고 안아줘야겠습니다. 고생했어. 나야!)
이후 내가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려고 부단히 애썼던 것 같아요. 그것이 지적능력이든 연인으로서의 매력이든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해야만, 연인사이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전하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에 시작한 관계에서도 스킨십을 하려고 하면 움찔하더라고요. 사실 사랑을 하고 받고 싶은 욕구, 스킨십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하질 못했어요. 또 상처받으면 어쩌지,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을 내가 만드는 건 아닐까. 두려움이 더 커서 회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어요. 친밀한 관계, 분위기가 형성되는 걸 차단하거나 단호하게 거부하고요. 이런 관계들은 제가 사랑의 방법도 저를 지키는 방법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서로에게 만족을 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스스로와 좀 더 친해지고 저를 알아가며 회피하던 장면들을 조금이라도 쳐다보고 마주보고 있어요. 그리고 이젠 정확하게 알고 싶어졌습니다. 기본적인 성교육부터 배우고 싶었습니다. 왜곡된 성에 대한 관점 말고 걸음마부터 다시 떼고 싶었어요. 섹스를 잘 하는 방법, 스킨십하고 싶은 내 마음이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싶어서 <내 인생의 시의적절한 성교육>강좌를 신청했는데요. 도리어 저는 사랑의 방법, 내가 하고 싶은 사랑의 모양을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 나는 어떤 사랑을 하고 싶지? 상대방에게 받고 싶은 것은 뭐지? 상대방과 이야기를 많이하고 조금씩 서로 맞춰가고 알아가면 좋겠다. 그 안에 친밀한 관계로 서로가 만족할 수 있고 좋은 섹스도 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이런 의식의 흐름을 그냥 공유해봅니다. 전 이 부분이 특히 좋았거든요.
다른 분이 쓴 강좌 후기를 읽을 때는 잘 몰랐는데요. 한채윤 선생님 강의 들으면 그냥 마음에서 그런 마음이 들어요. 다정하고 정확하게 알려주시거든요. 틀렸다, 절대 안된다는 건 없고 다만 내 몸이기에 고려할 사항,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상상할 수 있도록 얘기해주세요. 강의를 듣는 내가 더 소중하게 느껴지고요.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아직 강의를 듣지 못한 분이 계시다면 꼭 한번 들어보셨으면 좋겠어요. 강의가 끝나고 돌아보기 설문에서도 앞으로 오래오래 강의해주셨으면 좋겠다. 더 많은 사람들이 들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남겼습니다. 저만 듣기 너무 아까워요. 이 좋은 걸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알게 되면 좋겠습니다.
전 강의를 듣기 전보다 들은 후 조금 더 자유롭고 행복하거든요. 앞으로의 제가 더 기대되요. 만날 사람과의 대화, 괜찮고 즐거울 몸과 마음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면서 지내고 싶습니다. 스킬, 철학 이런 것도 다 좋겠지만 내 욕구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하나씩 차근차근 꺼내어볼 수 있도록 함께해주셔서 참 고맙습니다. 그래도 괜찮고 지금도 충분하고 내가 더 좋아지고 그런 느낌이에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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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불평등 시대, 서민들의 경제학 | [불평등 시대, 서민들의 경제학] 후기 | artn | 2022.5.5 | |
<불평등 시대, 서민들의 경제학> 수강 후기
꽂혔다. 아마도 ‘불평등’, ‘서민’ 두 단어 때문일 것이다. ‘경제학’ 단어보다는. “…불평등 시대를 살아가는 서민들의 이야기를 서민의 관점에서 이야기해 봅니다”라는 글귀가 와 닿았다. 같이 우리 얘기를 해보자는 말로 들렸다. 일정별 강의소개도 눈길을 끌었다.
(1강) 세금은 서민에게 공정한가? -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있다고?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일까? (2강) 통계는 서민에게 공정한가? - 국가가 만들어내고 있는 많은 통계들이 서민들을 외면한다고?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일까? …
속삭이듯 건네는 의문문이, 별 생각 없던 나의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1강을 듣고 바로 느꼈다. ‘올출하겠구나’ 그 이유를 정리해보겠다.
1. 이상하게 재미있다 ‘이상하게’가 포인트다. 강사님이 대단한 유머를 날리는 것도, 그렇다고 주제가 재밌는 것도 아닌데, 절대 졸지 않고 듣게 된다(나는 조금만 재미없어도 졸음을 주체하지 못한다). 강사님도 당신 강의가 ‘재미없어서 고민’이라고, 그래서 ‘미안하다’고 자주 말씀하셨는데, 왠지 모르겠으나 강의 자체가 아주 재미있다!(이 현상을 같이 해독하실 분, 다른 강의에서 꼭 만나 얘기해봤으면 좋겠다)
2. 유익하다 1번과 2번은 밀접한 관계일 게다. 유익해서 재미있었을 수 있고, 재미있기 때문에 유익했을 수 있다. 일단, 매 시간 강의 주제, 핵심어, 목표가 분명하고, 꼭 알아야 할 내용은 강사님이 반복적으로 언급해 머릿속에 잘 정리되도록 해준다. 매주 1~2권의 참고도서도 정해져 있다. 수업은 이 참고도서를 중심으로 진행되는데, 저자에 대한 소개부터 저술의 배경, 각 장의 내용까지, 수업 시간 동안 참고도서를 꼼꼼히 해독하고, 관련된 한국의 현실을 사례로 들어 내용 이해를 돕는다. 그렇게 수업을 따라가다 보면, 책 한 권의 내용이 어느새 머릿속에 들어와 있고, 내가 경험하고 있는 현실에도 적용해보게 된다. 평소에 써 본 적 없던 단어들, ‘자본소득’, ‘노동소득’, ‘지대’, ‘언피플’, ‘언머니’, ‘컨시어지’ 이런 단어가 어느새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단어가 되었다.
3. 부담없다 수업 내용도, 참여 과정도 부담 없다. 배경지식이 없어도 된다. 그냥 수업에 참여하기만 하면 된다. 미리 제시된 책을 읽고 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읽지 못했더라도 수업을 따라갈 수 있다. 또 수업이 책의 주요내용을 따라 전개되기 때문에 수업참여는 곧 책 읽기이기도 하다. 그것도 매우 훌륭한 가이드와 함께. 강의 자료도 공유되어서 사후에 찬찬히 책을 읽고 복습할 수 있다. 강사님이 쉬운 언어로 차근차근 설명해주어서 어려운 용어가 나와도 이해에 부담이 없다. 사실 수업 신청할 때 ‘경제학’이라는 말은 좀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수업을 듣고 보니, 결국 경제학은 지금 우리의 현실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 현실에 내던져진 사람들이 이해 못할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배경 ‘지식’이 없어도 참여할 수 있었던 건, 수업 시간에 다루는 모든 내용이 지금 내가 살아가는 현실과, 나의 처지,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처한 현실, 곧 서민이 처한 불평등한 현실을 본 강의에서는 <세금>, <통계>, <토지>, <기술>, <경제학>이라는 키워드로 하나씩 풀어보았다. 이 요소들은 불평등을 만들기도 하고 가리기도 한다. 통계는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고, 부의 막대한 원천인 지대는 제대로 논의도 되지 않으며, 경제학은 가난한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 무엇이 불평등을 조장하는지, 숨겨진 사실은 무엇인지 아는 것부터가 기울어진 운동장을 조금이라도 바꾸기 위한 출발일 것이다. 오로지 최저임금에 맞춰진 노동소득에 의지해 내 집 마련은 꿈도 꾸지 못하고, 미래는 갈수록 불안해지기만 하는 나의 처지를 이해하고 설명할 키워드를 쥐게 된 것이, 개인적으로 이 수업의 가장 큰 수확이다. 나아가 이 키워드를 가지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불평등의 기울기가 조금은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도 품어보았다. 이것이 이 강의의 최대의 미덕이 아닐까.
더 많은 사람들이 강의를 듣고, 함께 이야기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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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웨이스트로 살아간다는 것은... | [제로웨이스트로 살아간다는 것은... 후기] 자원순환은 다 속임수였다 | 기회 | 2021.12.27 | |
0. 제 가방은 무겁습니다. 가방에 텀블러와 개인 수저, 다회용 빨대와 손수건까지 꼬박꼬박 챙겨다시는 한 선생님을 통해 저의 환경에 대한 관심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느덧 저의 가방의 무게도 다양한 다회용기로 무거워졌고, 그 무게는 환경에 대한 더 큰 관심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환경 문제는 제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의 이런 작은 실천들이 너무 작게 느껴지고 이런 실천으로는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무기력감에 빠져있었습니다.
1. 저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 좋았어요! 이 모임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강사님이 저보다 더 한 환경 덕후?셨다는 사실에 너무 반가웠고,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분들이 꽤나 계셨다는 것이 위로가 되었습니다. 저의 실천들이 더 작게 보였던 이유는 저와 같은 실천을 혹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저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저는 큰 힘을 얻은 듯했습니다.
2. “자원순환은 다 속임수에요!” 송현섭 강사님의 강의가 저에게는 두 가지로 정리되었어요~ 먼저는 그간 자원순환 이슈에 대한 다양한 활동들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자원순환은 다 속임수”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 이야기였습니다.
강사님은 정말 존경스러울 정도로 일회용품, 낭비되는 자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말 가치있고 다양한 활동을 하셨고 하고 계신듯합니다. 그 모든 활동과 시도들은 정말 유의미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강사님은 결국에 자원순환은 다 속임수라는 생각을 하게 되셨다고 합니다. 자원순환보다 중요한 것은 애초에 버려질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정확한 워딩은 기억이 안나지만 ‘생산을 저감시키는 것’이 ‘버려지는 쓰레기를 어떻게 재활용 할 것인가’의 문제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3. 자원순환보다 중요한 것 환경이슈가 사회에서 더 커질수록 많은 기업과 단체들이 자원순환이 쓰레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자원순환’이라는 것을 중심에 놓고 다양한 활동을 합니다. 예를 들면, 폐플라스틱을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거나 폐플라스틱을 이용한 새로운 제품을 생산하여 이를 마케팅으로 이용하여 새로운 판매전략을 구상합니다. 그런 활동들도 나름 가치있다고 여겨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강사님께서는 ‘자원순환’보다 ‘플라스틱 생산 저감’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명확하게 말해주셨습니다. 사실 저도 막연하게 자원순환이 가치있는 활동이지만, 무언가 부족하다고 생각은 했는데, 저의 막연한 생각을 명확히 구체화해주셨습니다. 저도 동의했습니다. 사실 애초에 버려질 쓰레기를 생산단계에서부터 최소화하는 것이 버려지는 자원을 재활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니깐요!
4. 나의 소감과 질문 : “나름 개인적 실천을 하지만, 너무 무기력해요. 강사님의 동력은 뭔가요?” 일방적인 강의가 끝나고 참가자들이 함께 둥글게 앉아 질문과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조금 주저하다가 저는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날 것 그대로 공유했습니다.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름 개인적인 차원의 실천을 열심히하고 그것에 저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지만, 너무 무기력하고 나아가 우울한 감정도 드네요. 혹시 강사님이 이 활동들을 하는 동력이 있으신가요?” 사실 질문에 대한 답변보다는 나의 감정을 더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특별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고, 강사님은 ‘저도 마찬가지로 우울하다. 그냥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니깐 하는 것이다’라는 정말 심플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막연하게 생각되어졌던, 자원순환이라는 조금은 빗나간 과녁의 잘못됨을 일깨워주셨고, 나와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것들로도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무거운 제 가방의 무게를 저는 제가 다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가방의 무게는 무겁지만, 마음의 무게는 조금 가벼워진 것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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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클럽 숲] 우리 곁의 동물 발견하기-연결되기 | [독서클럽 숲] 채식의 이유가 바뀌었어요 | 기회 | 2021.12.22 | |
1. 이 모임이 망설여졌던 이유
동물권 이슈에 관심이 생겼지만, 사실 선 듯 공부하거나 더 깊게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고기를 먹는 즐거움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난 더 공부하고 이거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는 나누고 싶지만, 내가 먹는 것을 제한하고 싶지는 않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마음 한켠에 내가 이 책모임을 하고 나면, 비건을 결심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2. 그럼에도 독서클럽 숲에 노크한 마음
동물권 이슈로 나의 관심이 도착한 것은 기후변화에 대한 나의 관심에서 출발하였다. 축산업으로 인한 탄소배출 비율은 우리의 생각보다 아주 높다고 들었다. 또한 축산으로 소비되는 곡물량의 비율이 높아 결국 고기를 생산함으로 인해 전세계 식량의 불공평한 구조가 생겨 굶어 죽는 사람이 생기게 된다는 얘기도 들었다. 결국 채식은 지구를 위해서나 인류 전체를 위해서나 옳은 일이고 실천할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힘을 들여 당장 비건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과 그냥 편하게 내가 먹고 싶은 걸 먹으며 살고 싶은 두 가지 마음이 나에게는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아무도 뭐라고 한 사람은 없는데, 혼자 무거운 마음으로 책 모임에 참여를 하게 되었다. 첫 모임을 시작하며 이런 저린 이야기가 시작할 즈음 진행자 우정님이 채식을 시작하는 것에 있어서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하면 된다는 말이 나의 기억에 남았다. 완전 비건으로 살아가지 않는 것이지, 사실 난 이미 나름의 속도와 방식으로 채식을 하고 있었고 그 말이 나의 무거운 마음을 가볍게 해주었다.
2021년 9월 <독서클럽 숲> 첫 모임에서 글쓴이가 자기 소개를 하고 있다.
3. 지금은 동물을 사랑하는 시대일까?
사실 우리나라에서 반려동물에 관한 관심과 인식이 많이 바뀌었음을 느낀다. 개나 고양이를 안 좋아하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만큼, 사람들은 반려견, 반려묘를 좋아하고 많이들 키우며 그들과 가족으로 함께 살아간다. 그런데 동시에 우리는 닭이나 돼지를 아주 맛있게 먹는다. 사실 조금 아이러니한 문제이다.
동물과 인간이 그렇게 친구나 가족으로 함께 생을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동물도 고통이나 사랑 따위의 감정을 느끼는 존재이고 그것을 인간과 교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특정 동물들은 인간의 옆에서 사랑을 받고 가족이 되고, 특정 동물들은 인간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축이 되고 ‘고기’가 된다는 것은 사실 이상한 일이다.
4. 개, 고양이 vs 닭, 소, 돼지 뭐가 다를까?
내가 3권의 책을 읽으며 나에게 남았던 것은 우리가 흔히 먹는 ‘고기’들, 예를 들어 소나 돼지, 닭 등의 동물들도 우리가 사랑하는 개나 고양이와 다를 것 없는 감정을 가진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소나 돼지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들은 그들이 개나 고양이처럼 하나 하나 다 각자의 고유한 개성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고 한다. 인간은 동물을 ‘먹을 수 있는/먹지 못하는’ 혹은 ‘사랑스러운/사랑스럽지 않은’ 등의 분류 방식을 가지고 동물을 나눈다. 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동물들은 모두 똑같이 사랑과 고통을 느끼고 각각 고유의 개성을 가진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강아지가 아니라 병아리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치킨이 되어야 하고, 돼지로 태어났으니 돼지고기가 되어야 하고, 암소로 태어났으니 자기 새끼에게 주고 싶은 젖을 ‘우유’라는 이름으로 인간에게 빼앗겨야 하는 것들. 어쩌면 그 동물들은 인간 중심의 분류방식에 의해 감정도 개성도 없는 진짜 ‘고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독서클럽 숲>은 매월 책읽기와 단편영화를 같이 보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5. 이제는 누군가의 고통 위에 나의 행복을 누리고 싶지 않다.
어찌 되었든 육식이라는 것은 감정을 가진 존재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 육식은 사람들에게 가리워진 곳에서 ‘공장식 축산’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큰 규모로 오랫동안 자행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앞서 말했듯 나는 환경 이슈로 시작해서 동물권 이슈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 공장식 축산은 그 결과로 여러 사회문제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폭력’이라는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내가 채식을 하는 이유가 조금은 바뀌었다. 나의 채식은 온실가스를 발생시켜 기후위기를 가속화하고 식량의 빈부 격차를 야기하는 축산업에 대한 보이콧이었다. 이런 이유도 여전히 유효하긴 하지만, 이제 나의 채식은 감정을 가진 존재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게 하겠다라는 마음이다. 그 마음이 사랑, 연민, 긍휼 어떤 단어로 사용되어져도 상관없다. 이제는 누군가의 고통과 희생 위에 나의 즐거움과 행복을 누리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6. 그럼에도 아직 비건은 힘들 것 같다.
나의 채식의 이유는 조금 바뀌었고, 모임을 시작할 때나 끝날 때나 똑같이 나는 완전한 비건이 되는 것이 가장 좋고 그렇게 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한다. 근데 이 사회에서 비건으로 살아가려면 너무 힘들다. 핑계라고 하면 할 말은 없겠지만, 비건으로 살아가기 위해 개인이 현실적으로 지불 해야 하는 (여러 의미의)비용이 있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은 비건으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보다 내가 치러야하는 비용이 크게 느껴진다. 그 비용 때문에 아직은 비건으로 살아가는 것은 못 하겠다. 하지만 나의 속도와 방식으로 나는 채식을 계속할 것이고
이 사회가 비건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치러야 하는 비용들이 더 낮아지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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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국가재정은 시민의 것! 나라 예산 감시학교 | 국가재정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의 벽을 허물어 준 강의 | 뚜룹뚜뚜 | 2021.12.1 | |
<국가 재정은 시민의 것! 나라 예산 감시학교> 인증샷. 아이와 함께 강의에 참여한 뚜룹뚜두
국가 예산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모두가 자연스럽게 알고 있듯이 당연히 ‘국민을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 예산에 대해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를 질문했을 때 당당하게 알고 있는 것을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복잡한 숫자가 난무하는 국가 재정은 특히나 접근하기 어려운 분야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막대한 양의 돈을 다루는 국가의 재정을 경제와 숫자를 잘 다루는 전문가의 영역으로 생각한다.
처음 친구가 참여연대에서 하는 느티나무 아카데미에서 이러한 강좌가 있다며 수강하기를 권했을 때 여러 이유로 주저하였다. 첫 번째는 전술한 바와 같이, 나에게 국가 예산은 전문가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강의를 듣고 난 지금은 이것이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강의를 들었는데도 너무 어려워서 이해가 안되면 어떡하지?’라는 앞선 걱정을 했던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어린 아이를 두고 있기 때문에 강의 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로 인해 다른 수강생들께 피해를 끼칠 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또한 강의를 듣고 난 이후, 나의 앞선 걱정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카데미의 강사님 뿐 아니라 수강하는 수강생들 모두 따뜻한 마음으로 아이와 함께 수업을 듣는 모습을 인정해주고, 지지해 주는 모습에서 많은 배려와 감사를 느낄 수 있었다.
나라예산 감시학교의 수업은 총 4강으로 진행되었다. 1, 2강에서는 이상민 연구위원이 국가의 예산에 대하여 쉽고도 자세하게 강의를 진행해 주었다. 국가와 시장, 그리고 시장체계의 개념과 관계를 설명하면서 왜 국가의 개입이 필요한가를 적절히 설명하였다. 또한 경제학자 다운스의 ‘합리적 무지’의 개념을 소개하며, 일반 국민들이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이 정부를 감시하는 것이 맞다”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과 같은 충격을 받았다. 앞에서도 얘기하였지만 이 강의를 듣는 것에 주저하였던 이유 중 하나가 국가 재정과 같이 어려운 분야는 내가 아닌 전문가가 다루어야 하는 영역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강의에서는 우리가 충분히 예산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하여야 적절한 감시와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예산의 쓰임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또한 국가의 재정을 곳간에 비유하는가, 혹은 펌프에 비유하는가와 같은 프레임에 따라 재정에 대한 이해가 달라진다는 점이 매우 인상깊었다.
3강에서는 이영아 활동가가 국방예산을 돌아보고 과도한 국방예산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옳은 방향인지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였다. 강사님은 지금의 국방비 예산이 현재의 ‘인간을 위한 안보’ 에 쓰이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코로나 팬데믹 위기와 미세먼지, 환경오염과 같은 환경변화는 환경에 대한 관심과 예산을 더욱 필요로 함에도 불구하고, 국가 예산의 측면에서 국방 예산에 비해 소홀히 여겨지는 점을 우리가 주목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매우 공감이 되는 강의였다.
마지막 4강에서는 이경민 사회경제2팀장이 문재인 정부의 복지예산을 코로나 상황과 더불어 사회 양극화, 실업율, 빈곤율, 돌봄공백 등과 같은 이슈를 통해 분석한 것을 토대로 강의를 진행하였다. 이 강의를 통하여 더욱 많은 공공의료센터와 돌봄에 대한 요구가 사회적으로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예산은 오히려 줄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변 어른들이 “아이 키우는데 정부에서 지원도 많이 해 주고 예전보다 애 키우기 참 좋아졌어!”라고 하는 말들에 대해 예전에는 별 생각 없이 웃어 넘겼었다. 그러나 예산에 대한 수업을 듣고 실제 복지에 들어가는 예산 규모가 사회적 변화와 필요성에 비해서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달동안 수업을 들으면서, 내가 얼마나 국가 예산에 대하여 무지했는가를 느끼게 되었다. 말로는 국민을 대표하는 정부와 공직자들이 놀지 말고 열심히 일해야한다고 줄창 떠들면서, 정작 정부정책에 근간이 되는 중요한 예산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고 떠들어댔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이 수업을 듣고 난 이후 신문에 나오는 국가 재정에 관한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레짐작하고 넘기지 않게 되었다. 또한 국가부채가 증가했다는 기사를 볼 때마다 느꼈던 모호한 불편함과 불안감이 강의를 통하여 없어졌다는 점에서 매우 기분이 좋다.
함께 한 수강생들 모두 열정적으로 토론에 임해주셔서 오래간만에 새로운 지적 자극과 생동감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나와 같이 어린 아이가 있는 가정에서도 가벼운 마음으로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시고 좋은 강의를 기획해 주신 아카데미느티나무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 강의가 널리 널리 알려져서 많은 사람들이 듣고, 고민하고, 성찰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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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국가재정은 시민의 것! 나라 예산 감시학교 | 국방예산 줄여 공공병원 설립한다면 | 리갱 | 2021.11.30 | |
<국가 재정은 시민의 것! 나라 예산 감시학교> 강의에 아이와 함께 참여한 리갱.
이제 곧 세 돌 되는 아이의 엄마이자 경력단절 여성입니다. 예전엔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연구원에서 일하기도 했습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키우며 일도 공부도 그만두게 되면서, 일부러 예전에 관심 가졌던 분야는 더 외면하고 지냈습니다. 그러다 정말 오랜만에, 참여연대 뉴스레터를 열어봤는데, <국가재정은 시민의 것! 나라예산 감시학교> 강좌가 눈에 띄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한다니, 혹시 아이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될까 걱정도 앞섰지만, 꼭 들어야겠다는 마음이 올라와 용기 내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강의는 정말 알차고 재밌었습니다. 처음 두 강의는 국가재정에 대해 꼭 알아야 할 내용들이었습니다. 이상민 연구원님께서 맡아주셨는데 두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흥미진진했습니다. 자칫하면 어려운 설명으로 재미없기 쉬운 예산을 누구나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강의해주셨고, 그 덕분인지 다양한 질문들도 많이 쏟아졌습니다.
처음 두 번의 강좌를 들으며 제가 그동안 얼마나 예산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관심이 없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강의 시작 전 간단히 경제 기사가 사실인지 확인하는 시간도 있었는데, 저처럼 경제 기사를 읽으며 나라가 망하지 않을까 그동안 걱정했던 분들, 그리고 그런 기사를 쏟아낸 기자분들이 특히 이상민 연구원님 강좌를 필수로 수강하면 좋겠습니다.
이어지는 강의는 국방예산과 사회복지예산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팬데믹 상황에서도 국방 예산은 놀라울 만큼 증가했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돌봄과 의료 부분 예산의 확충은 크지 않았습니다. 국방 예산 강좌는 코로나19 확진자 수 상위 10개 국가 가운데 5개 국가가 마찬가지로 국방 예산 규모 상위 10개국 안에도 든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며 시작합니다. 이 국가들이 국방 예산에 쏟아부은 예산을 코로나19를 대처하는 데 사용했다면, 상황이 좀 달라지지는 않았을까요? 우리나라 역시 휴전 중이고 코로나19 대처를 다른 국가들에 비해 잘하고 있긴 하지만, 국가 예산을 군비 경쟁 대신 의료 취약 지역의 공공병원 설립에 사용할 수는 없는 것인지 안타까웠습니다.
지금 아이들이 어른이 될 무렵엔 전쟁을 위한 예산이 모두 함께 상생할 수 있는 사회복지 예산으로 사용되는 세상이 되길 바라며, 좋은 강좌를 열어주신 참여연대에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이번 강의를 들으며 아직 저에게도 좀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이 남아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 아이는 엄마 또 언제 강의 듣냐고 물어보는데, 조만간 다른 강좌도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4주 동안 정말 즐거웠습니다. 특히 어린 아이를 키우는 분들의 참여가 많아 이번 강의가 더 특별하게 기억될 것 같습니다. 예산 감시학교를 준비해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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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클럽 숲] 우리 곁의 동물 발견하기-연결되기 | 고기 없는 손님 맞이 상 차리기 | 개똥이 | 2021.11.26 | |
<독서 클럽 숲 두 번째 이야기 :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새 집으로 이사한지 한 달이 조금 지났다. 코로나 백신도 하나 둘 맞았으니 집에서 소규모로 모시고 밥 한끼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첫 번째 손님은 아이들의 성당 대부님 가족이다. 결혼하여 이제 4살이 되는 귀요미 아들을 둔 예쁜 가족이다. 대체 휴일인 월요일 점심을 하기로 했다.
자…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머릿속이 뒤굴 뒤굴 굴러간다.
육식을 좀 줄여야 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참여연대에서 하는 독서 클럽 <숲>을 신청했다. 1달에 한 권씩 관련 책을 읽고 육식과 채식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고 의견을 나누는 프로그램으로 세 달간 진행된다.
첫번째 책<1389번 귀 인식표를 단 암소>를 읽고 내가 할 수 있는 실천은 우유를 구매하지 않는것. 콩으로 두유를 만들 때 우유와 함께 갈아 먹었는데 이제는 콩과 물로만 두유를 만들어 먹는다. 우유가 들어간 모든 유제품까지 일일이 점검해서 먹지 않겠다고 할 만큼 강력한 의지를 뿜뿜 뿜지는 못하지만 우유 자체를 가급적 이용하지 않도록 하는게 나의 작은 실천이다.
두번째 책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개는 그닥 사랑하지는 않지만 돼지는 먹고 있고 소도 먹고 입고 신고 들고 다닌다. 그러나 두 권의 책을 읽으면 누구나 다 반응이 비슷한가 보다. 고기 먹기가 불편해진다. 먹고 싶지가 않다. 그렇다고 해서 고기 먹는 사람을 이상한 눈으로 보는건 아니다. 왜냐하면 나의 이런 심정이 언제까지 갈까 자신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불편하고 먹기 싫은 이 마음에 주목하련다.
그래서 고민이 시작 된다. 집으로 손님은 청했는데 무엇을 준비 할까. 고기를 빼고 손님상을 준비한다는 것은 초 없는 생일 케익 같달까? 식탁 가운데 넙적한 접시에 고기 요리 하나 떡하니 올려 놓으면 게임 끝인데. 40대 초반의 젊은 부부와 4살 아이를 위해 어떤 음식을 준비해야 할까.
그래. 납작만두를 하자. 대구 명물인 납작만두는 말 그대로 아주 조금의 야채와 당면만이 들어간 납작한 만두로 기름을 두르고 바로 구워 파가 송송 들어간 간장에 찍어 먹는…. 그냥 기름.밀가루 맛이다.
근데 그게 묘하게 맛있다. 납작만두로 유명한 미성당에 택배로 주문할 때 비법 간장까지 같이 주문했다. 고기 요리 대신 납작 만두를 준비하고. 알배기 배추와 부추로 겉절이를 담고. 맛살과 팽이버섯.쪽파를 이용해 전을 굽고. 양상추,파프리카, 어린 새싹, 파인애플, 무화과등으로 샐러드도 준비하고, 멸치육수를 내 두부.팽이버섯 된장국도 준비하고, 선물로 들어온 멍게,명란 젓갈까지.
금방 갓 지은 고슬고슬 밥이랑. 나쁘지 않다.
부산 남자 대부님은 멍게젓갈에 꽂혀 밥을 세 공기나 먹고 와이프는 샐러드 소스가 맛있다며 소스 구입처를 알아가고 4살 귀요미는 늦은 아침을 먹었다며 후식으로 준비한 얼그레이 파운드 케익만 잔뜩 먹었다. 야심차게 준비한 납작만두는 처음 먹어 본다면서 신기해 하고( 마음속으로 이거 뭐지.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나랑 울신랑은 맛나게 먹었다.
“제가 요즘 육식을 좀 줄여 보려고 해요. 그래서 오늘 육식을 빼고 음식을 준비했어요” 라고 말했다.
저는 카페인이 안 들어간 커피를 마셔요. 저는 맥주 보다는 소주가 좋아요 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런 개인의 취향을 인정해주고 존중해 줄줄 아는 서로가 됐음 좋겠다.
사실 좀 많이 귀찮다. 야채는 유통기한도 짧아 자주 사야하고 부지런히 소비해야하고 손질도 많이 해야한다. 어릴 적 항상 뭘 다듬고 씻고 삶고 하던 엄마 생각이 난다. 손은 많이 가는데 막상 상에 올려 놓으면 별거 없는듯 해 보이는 채소 반찬들.
이런 저런 주저리 길다. 결론은 내가 늙었다는 거다. 예전만큼 소화력도 떨어졌고 어릴적 먹던 게 자꾸 생각나는거다. 늙었다. 근데 그게 싫지는 않네.
#우리는왜개는사랑하고돼지는먹고소는신을까 #멜라니조이 #모멘토
#참여연대 #독서클럽숲
독서클럽 숲 참여자들은 책 읽은 소감을 패들렛에 공유하고 생각과 의견을 나누었다.
<독서 클럽 숲 세 번째 이야기 : 동물주의 선언>
#동물주의선언 #코린펠뤼숑 #책공장과더불어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는 사회로 가기 위한 철학적. 실천적 지침서
3개월 동안 미처 내가 생각해 보지 않았던 부분들을 들여다 보고 고민하고 작으나마 행동으로 옮기게 되는 좋은 시간이었다. 그 주제가 무엇이든지 간에 앞으로의 삶에서 꼭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싶다.
이러한 기회들에 언제나 열린 자세를 가진다는 거. 닫아 걸지 않는 것. 고민해 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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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클럽 숲] 우리 곁의 동물 발견하기-연결되기 | [독서클럽 숲] 엄마! 엄마 젖은 왜 안 나와? | 개똥이 | 2021.11.26 | |
독서 클럽 숲 첫번째 이야기: 1389번 귀 인식표를 단 암소
처음 발을 들여 놓기가 어렵지 한 번 들여 놓은 발걸음은 가볍고 즐거워지나 보다. 참여연대에서 하는 편성준 작가의 <재밌는 글쓰기> 강좌를 처음 들을 때만 해도 다 늦은 저녁 시간에 (7시30분-9시30분) 수업을 들으러 외출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심적 부담을 느꼈었던 기억이 난다. 그 6주간의 수업이 인연이 되어 그 곳에서 새롭게 개강하는 강좌들에 대한 정보를 받게 되었다. 다양하고 좋은 프로그램 중에서 책과 관련된 <독서 클럽 숲 : 우리 곁의 동물 발견하기- 연결 되기>가 가장 맘을 끌었다.한 달에 한 번 동물과 육식문화에 관한 책을 읽고 짧은 영상을 보며 생각을 나누는 모임이다. 한 달에 한 번 이기도 하고 저녁 시간의 외출이 이젠 낯설지만은 않아 설레는 맘으로 참가 했다.
근래에 <아무튼 비건 : 김한민>을 시작으로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호프 자런>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 :김탁환> <우리가 날씨다 : 조너선 사프란 포어> 를 읽으면서 먹거리에 대한 고민, 지구 환경에 대한 고민, 나의 몸에 대한 고민들이 점점 많아졌다. 무엇을, 어떻게 먹으며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할지에 대해 예전에 하지 않았던 고민들을 하고 있다. 내가. 그래서 더욱더 이 수업이 듣고 싶다.
독서 클럽 숲 첫번째 이야기: 1389번 귀 인식표를 단 암소(표지 : 알라딘)
9월에 읽고 나누어야 할 책은 <1389번 귀 인식표를 담 암소: 캐스린 길레스피>이다. ‘동물보편 생명권에 대한 성찰적 르포르타주-가축이라는 이름에 갇혀 우유로, 고기로, 가죽으로 소비되어 왔지만 반려동물과 다를 바 없는 생명권을 가진 동물들의 진실을 말하다’ 라고 책 표지 하단에 적혀있다.
이 책 한 권을 다 읽고서 무언가 확 바뀌기를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미처 아니 아무 생각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유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 우유는 젖소가, 젖소니까 그냥 자연스럽게 늘 항상 쭉쭉 생겨나는 거라고 여겼던 나의 무지함을 깨달았다. 더 많은 우유를 짧은 시간안에 생산 하기위해 소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알게 되는 순간 우유 소비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다. 우유로 만든 제품들에 대한 소비에 또다시 고민이 시작된다.
나 뿐만 아니라 모임에 참가한 모두 각자가 가진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책 한권 읽었다고 당장 무엇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고민한다는 좋은 출발을 시작했다. 그 고민들이 하나씩 실천으로 이어질 때 좀 더 나은 나,너가 되지 않을까.
어떤 새로운 결심을 하는 이에게 ‘그래. 잘 해봐라. 얼마나 하나 두고 보자. 네가 그렇지 뭐. 네 까짓 게 뭐라고. 너 하나 한다고 세상이 달라지니. 그것도 유행이냐. 좀 먹고 살만 한가 보지. 배부른 소리하네…..’ 주먹으로 세게 때리는 것 이상의 폭력을 어느 순간 나도 하지 않았나 반성한다.
거창한 목소리보다 내 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내 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 맘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 내가 그 선택의 주체가 될 수 있어서 다행이며 그래서 힘을 내어 본다.
늦은 시간의 귀가지만 단톡방에 띠링띠링 올라오는 아쉬운 인삿말과 방긋방긋 이모티콘이 보잘것 없지만 아주 소중한 보물을 공유하는 이들만의 은밀한 마음같아서 또 힘을 내게 된다.
#1389번귀인식표를단암소 #캐스린길레스피 #생각의길 #독서클럽숲 #참여연대
#우리는왜개는사랑하고돼지는먹고소는신을까 #동물주의선언 #아무튼비건 #나는풍요로웠고지구는달라졌다 #아름다움은지키는것이다 #우리가날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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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연극 워크숍 심화과정] 즉흥극을 이용한 공동 창작 | 왜 우리는 무대를 기다릴까요? | 범컴 | 2021.11.15 | |
마지막 수업_장면발표 포스터
배우, 희곡, 무대, 관객. 코로나19에 무대가 열릴 수 있을까? 연극 수업은 줌으로 하면 안 되는데? 얼마나 모일까? 강좌가 폐강되지는 않을까. 걱정과 고민, 그리고 기대 속에 막이 올랐다.
전문적이지 않은 시민들이 무대에 서기 위해 10회 차 워크숍을 했고, 제비뽑기 식으로 조를 꾸렸다. 논의하고 희곡 쓰고, 음악과 조명, 무대를 고민하며 연기와 동선 그리고 왜 우리는 이 주제로 이 극을 올려야 하는지? 이 극은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고, 우리에게는 관객에게는 무엇을 주기 위한 것인지 고민하다가 시간에 쫓겨 적지 않은(?) 관객을 맞았다.
2021년 10월30일(토). 가을 손바닥 연극 공동창작 장면 발표회. 총 4팀 16명이 달래 연출의 지도, 앨리의 도움(강좌 진행 및 극 음향)으로 극 4개를 올렸다. <당신이 사라졌던 22분>(달현, 쌩콩, 양파, 잭), <빙글빙글>(개굴, 갱, 11월, 에스텔라), <매미소리>(뿌, 소울, 오름 와사비), <We will 樂 you>(진수, 소화, 오리, 바위).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다. 추리물인가, 돌고 도는 일상을 담은 극인가, 지친 여름 속을 건너가는 삶, 즐거움에 대한 건가 싶다가 이 모든 극을 관통하는 것은 희로애락(喜怒哀樂)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본적인 연극을 토대로 극형식적 실험과 참여를 유도하는 극부터 소도구들과 사람을 넘어 강아지, 꽃, 나무, 마음 등을 표현해 내기도 했다. 실수를 했어도 아는 이는 우리들 밖에 없을 법한 딱 한 번의 그래서 다시는 볼 수 없는 극이다. 초연이자 마지막 공연인 셈이다.
우리는 냉엄한 관객의 평가에 직면하고 싶지만, 우리 스스로가 그 평가자가 되었다. 열심히 했으니 박수를 치고 칭찬을 해주는 것이 아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또 다른 질문이 배달됐다. “(________)은 왜 연극을 하는가?” (__________)은 달현, 잭, 양파, 쌩콩이 될 수도 있고, 시민연극단 또는 어떤 단체가 될 수도 있겠다.
①왜 (________)은 연극을 하는가?=잭은 그랬다. 세상에서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았다. 수업이 자신의 이름이 아닌 애칭을 사용해서 마음에 들었다. 사회에서 부여된 이름은 특정한 위치와 성격 또는 역할을 고정해 놓은 측면이 많다. 잭은 고정된 사람이 아닌데 충분히 자유로운 인간이고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스스로 한정지어놓았다. 운명의 수레바퀴를 벗어나지 못하게끔.
②(________)은 왜 연극을 하는가?=그 재미있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도 혼자서 할 수 없지 않은가. 혼자서 하는 일은 재미가 없지 않은가. 극은 서로 교감하면서 에너지를 키워주며 힘을 준다. 상대 배우가 관객이 무대가 힘이 되어 나도 모르는 에너지가 생긴다. 아 살아있구나. 심장이 뛴다. 물론 활자나 영상, 글쓰기 등의 고난위도 작업은 혼자서 스스로를 파고들면서 하면서 자신을 만날 수 있겠지만, 이 또한 언젠가는 도전할 항목으로 남겨둔다.
③(________)은 연극을 왜 하는가?=즐겁다. 욕망이 흘러넘치게 된다. 극은 자신의 다양함을 투영시킬 수 있다. 행동은 극을 이끌어나가는 동력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연극은 마치 무대 위에 놓여 있는 경험이라 할 수도 있지만 이것이 잭의 삶에 끊임없이 연관되어지며 사용되며, 자원이 된다. 한마디로 도랑치고 가재잡고. 이렇게 유용함이 많은데 극을 피하겠는가!
④(________)은 연극을 하는가? 왜?=출퇴근, 저녁의 음주. 하루하루, 일주일, 한 달 두 달, 일년 이년 삼년. 재미있는가? 괜찮은가? 잭 자네는 자네의 일에 만족하는가? 제대로 된 성과를 내고 보상을 받고 보람을 느끼고 있는가? 누구와 무엇을 하고 싶은가? 마음은 외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모진 세상을 혼자 헤쳐 왔다면, 이제 당신 친구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가 보라고. 그 두근거리는 무대가 기다려지지 않는가.
<손바닥 연극 워크숍 심화과정: 즉흥극을 이용한 공동 창작> 강좌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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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과 함께하는 성교육 | [남성과 함께하는 성교육] 이대남에 관하여 | zxvtt7749 | 2021.11.12 | |
대선뉴스마다 '2030표심잡기'가 따라붙는다. 이준석 현상으로 대표되는 이대남들은 지난 보궐선거의 핵심으로 떠오르며 기성세대가 공정을 외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들의 외침을 들여다보면 과연 정말 공정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전통적으로 진보적이라 여겼던 젊은 세대 다수가 보수정당에 표를 주자 놀란 여당은 부랴부랴 군대와 관련된 대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2030남성의 의제임에도 사회는 이들을 2030남성=청년으로 여기며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여성의제에 비교적 친화적이던 정당들 내부에서는 '여성만 편애해 젊은 남성이 떠나갔다'며 편향성을 문제 삼았다. 여성들이 그동안 성착취물과 웹하드 카르텔에 대해 꾸준히 문제제기 해왔음에도 꿈쩍 않던 여론과 정치권은 너나없이 이대남 표심잡기에 몰두하고 있다. 이들의 요구사항이 이대남에 국한되는 문제라고 볼 수도 없음에도 역차별 운운하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적반하장의 행태를 보인다. 문제는 이런 이대남이 우리집에도 산다는 것이다. 한 집에서 자랐어도 성별에 따라 생각이 극명하게 나뉘는 것을 보며 이들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던 차 젊은 남성이 남성성에 대해 얘기한다 하니 수강할 수밖에 없었다.
강좌를 통해 알고 싶었던 점은 남성 또래집단에서 일어나는 일들이었다. 그리고 강좌는 이들이 ‘이대남’으로 균일하게 묶이는 존재들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줬다. 페미니즘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으면서도 무엇이 여성차별인지 구분해낼 줄 아는 동생은 강좌 내용에서 ‘세대별 안티페미 성향이 가장 강하면서 동시에 페미니즘적 가치를 가장 많이 수용한 세대’라는 말과 꼭 들어맞았고, 남성들이 또래 집단에서 페미니즘적 가치를 수용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말할 땐 젠더 모임에서 혼자 난감해하던 남성을 떠올리게 했다.
강의를 들으며 수많은 남성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는데 그들 대다수는 특별히 나쁘거나 착하지도 않은 평범한 사람들로 강의는 남성도 페미니즘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피력했다. 특히 교육 현장에서의 일과 수강생들의 얘기를 들으며 동생이 가끔 빻은 소리를 해대도 전처럼 화 내기보다 질문하기로 했다. 이한 선생님 말은 낯선 사람도 듣는데 동생에겐 설득 한번 못하니 질문할 때를 대비해 공부하는 편이 낫다.
결국 페미니즘은 명칭과 달리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권에 관한 얘기로 사이코패스가 아닌 이상 성별에 관계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다. 남성도 여성만큼 페미니즘이 필요한 존재들로 이들이 변해야만 ‘인권’이라는 가치가 실현될 수 있기에 남성들을 상대로 한 성교육은 중요하고 이번 강좌는 이러한 취지에 딱 맞는다. 다만 참여자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젠더 문제가 여성만의 관심사라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했지만 다음번엔 더 많은 남성이 참여하길 기대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강좌가 꼭 남성들 만을 위한 교육은 아니다. 여성들도 페미니즘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많고 각자 처해있는 상황이 다양한 만큼 들을 가치가 있다.
이대남에 관한 탐구는 앞으로도 필요하고 남녀가 접점을 갖는 이런 자리는 더 많아져야 한다. 선생님이 분위기가 험악해지지 않게 잘 이끌어 나가고 잘못했다고 혼내진 않으니 혹시라도 말 실수할까 봐 걱정되거나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들어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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