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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명 | 강좌후기 | 글쓴이 | 날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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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꿈투사 워크숍 - 꿈 거울로 참 나를 만나다 | [꿈투사워크숍] 나의 장례식장 | 밤톨 | 2022.5.28 | |
영화 <굿바이> 영상 캡처
타키타 요지로 감독의 <굿바이>(2008)라는 영화가 있다. 영화 속 어린 시절 주인공은 아버지와 ‘돌편지’라는 것을 주고받는다. 사람의 마음은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기에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의 마음과 닮은 돌을 강가에 주워 아들에게 준다. 그러면 마음은 촉감, 무게감. 생김새를 가진다. 그렇게 전달된 편지는 어렴풋이 상대의 마음을 추측하게 한다. 나는 이 ‘돌편지’가 꿈과 같다고 생각한다.
고혜경 선생님은 “꿈은 신이 보낸 연애편지”라고 자주 말씀하신다. 신은 우리를 사랑하는데 그 사랑(내가 건강하고 온전해지길 바라는)을 전달하기 위해 무의식이란 강가에서 꿈이란 도구를 선택한다. 다만 꿈은 상징과 은유로 되어있기에 어찌 도착한 편지를 열어보아도 그 의미를 명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그래서 꿈은 신의 일방적인 짝사랑으로 시작해 ‘연애편지’가 아닌 길거리에서 받은 ‘부동산 전단지’로 취급당한다. 힘겹게 꿈이 전달되었다 하더라도 악몽이라 생각되면 길에 버리고, 길몽이라 여겨지면 복권방 주인에게 가져다준다.
그룹 투사 꿈 작업(Group Projective Dreamwork)은 꿈을 잘 들여다보기 위해 제레미 테일러 선생님이 1960년대에 창안한 방법이다. 한 사람이 가져온 꿈을 듣고 '이 꿈이 내 꿈이라면...’ 하면서 여러 사람이 투사(projection)를 한다. “하나의 꿈을 가지고 작업할 때 각 개인이 가진 다양한 층의 지식과 직관을 동원해 함께 꿈을 이해하려는 작업에 동참한다. 그러면 꿈을 꾼 사람은 훨씬 넓은 범주의 의미를 파악할 가능성이 높아지며, 자연히 꿈의 다층적인 면과 복합적인 의미를 파악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또 “아하! 체험”을 할 기회도 증가하게 된다.”고 선생님은 말한다. 실제로 다양한 시각에 내 꿈은 다채로운 빛을 내기 시작한다. 누군가 던진 말에 내 안에 있는 내가 모르는 누군가 반응해(저 공이야!) 딱! 소리를 내며 홈런을 친다. 그러면 절로 ‘아!’ 소리가 나온다.(이 순간의 느낌은 시커먼 무지의 구름을 빠져나와 새파란 하늘을 바라본 <매트릭스3>의 명장면과 같다)
그렇다면 실제 꿈 투사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나는 작년 가을과 올해 봄에 워크숍을 참여했다. 공교롭게도 맨 처음 내 꿈을 다뤘다. 제목은 <앞다리가 없는 통통한 고양이>였다. 다음은 꿈의 내용이다.
전혀 팔릴 것 같지 않은 이 허무맹랑한 판타지를 나는 사람들 앞에 내놓고 그들의 질문을 기다린다. 누군가 묻는다. “고양이의 앞다리가 잘렸나요?” 생각해보니 다리는 없지만 잘리지는 않고 흐릿했던 기억이 나서 절단은 아니고 흐릿하다고 말하며 대신 없는 것은 확신한다고 말했다. “고양이는 서서 걷나요?” 아니다. 일반 고양이처럼 네 발로 걷는다. 다만 앞발이 흐릿해 없을 뿐이다. “옆의 어린 수컷 고양이는 형제인가요?” 그건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어떻게 먹이를 주고 있나요? 밥그릇에 담아 주나요?” 그냥 두 손으로 건 사료를 담아 땅바닥에 두었다고 말했다. 동시에 속으로 아차! 싶었다.(아하!가 아니다) 고양이에게 밥을 너무 애정없이 주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때문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누군가는 어떤 사람인가요?” 나는 그 사람의 형체가 기억나지 않지만 예전 꿈에도 등장해 이런저런 상황이라고 설명해 주었던 사람이라고 답했다. 구성원들은 자기 꿈으로 만들기 위한(이미지를 선명하기 위해) 질문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한 사람씩 ‘이 꿈이 나의 꿈이라면...’ 말하면서 투사를 시작했다.
투사가 시작되면 각자의 지식과 직관으로 꿈을 풀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것은 꿈을 가져온 나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순전히 ‘자기 고백’이다. 따라서 틀린 것도 없고 굳이 상대방에게 도움이 될 필요도 없다. 그저 각 개인이 가진 역량대로 성찰하면 된다. 그때 나는 솔직히 말해서 ‘이 사람들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나’하고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가 앞발이 없는 고양이가 되기도 하고 어린 수컷 고양이에게서 자기 형제를 보기도 하고 실제 키우는 고양이에 대한 습성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그러는 도중에 내게 ‘아하!’가 왔다. 앞발을 잃은 고양이는 호기심도 인간관계도 잃은 나였음을. 그리고 나는 그런 나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허기만 채우면 된다는 지침으로 애정없이 먹이를 주고, 보기 싫어(‘시선을 돌려’) 괜찮은 척하고 있지 않은가. 내가 나를 내버려 두고 무관심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나고 또 다른 통찰이 올라왔다. 우리 부모님도 사회가 요구하는 경제적 능력을 갖추기 위해 앞발을 잘랐음을. 그래서 사랑이란 이름으로 자식들의 앞발을 자르려고 했다. 이것은 김수영 작가의 책 「멈추지마, 다시 꿈부터 써봐」에서 작가의 부모님이 자식이 외국의 어떤 좋은 회사에 다니든 그저 집 근처 공장에 취직해 남자를 만나 우리 곁에서 아이를 낳고 같이 살았으면 하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과 같다. 자식을 자신의 틀 안에 가두려고 한 것이다. 어쨌든 그런 부모님도 불쌍하다고 느껴져 부모님에게 미안하다고 우는 꿈을 꾸었다. 부모님도 앞발이 없는 것이다.
꿈투사를 하고 나서 무엇이 좋았냐고 내게 묻는다면 몇 가지 짚어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첫째, 질문을 받는 것이 좋다. 꿈에 등장하는 모든 것은 내 안의 어떤 요소이다. 따라서 꿈에 대한 모든 질문은 나에 관한 관심으로 느껴져 나를 기쁘게 한다. ‘와 이렇게 나한테 관심이 있는 사람이 많다니!’ 나에 관한 여러 질문은 내 기억 속 묻혀있던 기쁨과 슬픔을 자극해 내 마음을 활성화한다.
둘째, 상징과 은유로 내 고민을 다루기 쉽다. 심리학적으로 첫 번째 꿈을 다룬다면 [어린 시절 부모님의 유기와 방임으로 애착 형성에 실패해 내가 부족해 부모님이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나는 열등감에 빠져 남의 눈치를 살피며 남들의 칭찬을 받기 위해 모범생이 되고자 노력한다. 열등감은 이성 앞에서는 부끄러움으로 나타나고 배울 점이 있는 사람에게는 시기와 질투로 표현된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 나는 부모님의 곁에 떠나지 못하고 옹졸한 사고방식으로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하지 못한다.]로 분석할 수 있다. 그런데 꿈은 얼굴이 통통한 앞발이 없는 고양이의 상징으로 이 사연을 압축한다. 이 고양이라는 상징은 나에게 설득력이 있다. 왜냐하면 이 상징은 내 안에서 선택된 이미지고 내 감정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내게 고양이는 매우 독립적이고 개와 달리 자신의 기분이 주인보다 더 우선시하는 동물이다. 동시에 다루기 힘들어 중성화하고 집안에 키우는 동물이다.
셋째, 무의식적 행동 양식을 볼 수 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고양이 밥그릇’을 왜 나는 놔두지 못했나? 그 이유는 내가 나에게 친절하지 못해서이다. 무엇보다 나는 내가 돌봐야 하는 0순위인데 끊임없는 인정욕구로 시선이 타인에게 향하고 있었다. 나는 꿈투사 이후로 친구에게 선물할 예쁜 ‘안경 닦이’를 그냥 내가 썼다. 그리고 몇천 원을 아끼기 위해 늘 실망으로 끝내는 가성비를 따지는 소비습관도 고치고 있다.
넷째, 꿈을 가지고 놀 수 있다. 나는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하지만 꿈을 들으면 손짓으로 이미지를 상상해보기도 하고 꿈이 사용하는 기교인 언어유희를 맞추기 위해 여러 단어를 던져보기도 한다. 더욱 나아가 꿈 작업이 끝난 후에도 내 꿈에 나오는 고양이를 가지고 여러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예를 들어 고양이에게 장화를 신기다면 고양이는 두 발로 일어서서 그의 재치로 가망이 없는 이 현실을 놀라운 일들이 가득한 세상으로 바꿀 것이다. 또 좀 더 강인하고 고귀하게 고양이를 돌본다면 <알라딘>에 나오는 쟈스민 공주가 키우는 호랑이로 성장할 것이다. 그러면 그 누구도 나를 만만하게 보지는 못할 것이다.
영화 <알라딘> 티저 영상 캡처
다시 영화 <굿바이>로 돌아가 보자. 영화 속 아버지는 주인공이 어릴 때 바람이 나서 집을 떠난다. 주인공은 그런 아버지를 증오한다. 어찌 돌아온 고향에 그는 어릴 때의 상처와 마주한다. 동시에 아내의 의견을 묻지 않고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자신의 모습이 아버지와 닮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가장 싫어하는 이와 나는 닮은 것이다. 그는 죽음을 다루는 납관사(관에 사람을 넣는 의례를 관장하는 사람)로서 사연이 있는 여러 죽음을 다루며 좋음과 나쁨으로 삶을 가르는 이원론의 무상함을 바라보고 자신의 상처에 담대하게 다가간다. 그 후 죽은 아버지를 마주하며 그가 전해고자 했던 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와 함께 상처 입었던 자신도 관에 넣는다. 영화 제목 <Good & Bye>의 'Good'은 일련의 경험을 통해 상처를 준 그들을 향해 ‘You are good’이 아니라 ‘I am good’라 말할 수 있게 되고 그래서 ‘Bye’로 이 사건을 내가 종지부 찍을 수 있음을 뜻한다. ‘I am good’라 말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꿈투사 워크숍에서 당신은 얻을 수 있다.
가장 보통의 보편적인 당신이 참여하고 연대해 만들 이 둥근 자리는 모험을 떠나기 전 옛 기사들이 치유의 성배를 보았던 원탁이며,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가 절대 반지를 파괴하더라도 남아 있을 진정한 반지며, 일찍이 아기 공룡 둘리가 납치되었던 UFO다. 왜 갑자기 UFO냐고? 패닉의 <UFO> 가사를 보라.
“마지막 달빛으로 뛰어가봐 날아와 머리위로 날아와 검은 하늘을 환히 비치며 솟아 모두 데려갈 빛을 내리리 이제야 그 오랜 미움 분노 모두 다 높이 우리와 함께 날으리”
여신의 달빛으로 당신의 그 오랜 미움과 분노가 사라지는 자리가 여기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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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꿈투사 워크숍 - 꿈 거울로 참 나를 만나다 | [꿈투사워크숍] 잠들면 개봉하는 인생극장 | 봄날~ | 2022.5.26 | |
수요일 오전마다 화면으로 만나는 얼굴과 목소리. 그리고 간밤에 꾼 꿈의 제목으로 “ 안녕하세요, 일주일간 어떻게 지내셨어요~”를 나눈 뒤에 꿈을 통한 연결이 이루어졌습니다.
한 사람의 꿈 이야기를 듣고 나누며 ‘내가 그 꿈을 꾸었다면~’을 상상해서 느낌과 생각을 나누는 피드백 속에서 저는 또 다른 관점과 또 다른 영감을 얻었습니다.
그 영감은 저의 마음을 날마다 새롭게 했습니다.
해외, 경상남도, 충청도, 경기도에…. 사는 모르는 사람들이 만나서 오직 꿈으로 진솔하게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은 아름답고, 가슴이 따끈해집니다.
꿈을 기억해서 기록하고 나면, 꿈이 전하는 말을 듣는다는 것이 들릴 듯 말 듯, 알쏭달쏭하거나 때때로 물음표만을 남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꿈은 보이지 않는 나의 내면의 마음을 보여 주기도 하고 들려주기도 하니, 어찌 귀하지 않을까요?
불변의 진리처럼 나의 마음은 내가 스스로 알아가야 하기에 저는 오늘도 어젯밤 꿈속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시를 느끼는 마음으로 곰곰이, 천천히, 고요해집니다.
꿈 투사 과정을 통해서 알았습니다. 저는, 제가 아는 것 외의 존재라는 것을요. 꿈을 나누고 경청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이리저리 휘둘려 살며 내 안의 사랑을 두고서 평생 사랑을 모를뻔했습니다. 꿈꾸기가 즐거워 잠을 청하는 것이 살짝 두근거립니다.
꿈에 귀 기울이기를 경험하는 귀한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깊이,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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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내 인생의 시의적절한 성교육 ver 2.0 | "당신이 생각하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거예요" | 아탈 | 2022.5.17 | |
성교육 강좌가 있다고 했을 때 그것도 한채윤 선생님의 강좌라고 했을 때 ‘무조건 들어야지!’ 했다. 그런데 1회가 아닌 5회라니!! 좋기도 하면서 부담이 되기도 했다. 일을 마치고 얼른 저녁을 먹고나서 졸면 안되니까 커피한잔을 놓고 노트북앞에 앉았다.
내 인생에서 ‘시의적절한 성교육’은 사실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음... 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요즘이고 성교육은 나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교육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처음 질문부터 ‘성감대’가 어디라고 생각하냐고 하신다. 음 성감대는 여기? 저기? 몇 군데 생각했는데 어머나 우리 몸 전체가 성감대라고 하신다!! 아이구 여태 이걸 몰랐네. 왜 몰랐지? 생각해보니 내 몸인데 교육적으로만 배운대로 생각하며 살았었구나 싶었다.
성을 이야기할 때 행위만을 이야기 했기 때문에 섹스라는 말만 나와도 몸둘바를 모르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물론 나도 그랬었고. ‘생식기는 그냥 생식기일 뿐이야’ 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설명을 듣고 나면 나도 이제 생식기는 그냥 우리 몸의 일부일 뿐이야 라고 더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긴다.
‘성관계’ 라고 할 때 그 대상이 누구인지가 중요하다기 보다는 어떻게 관계를 가지느냐가 중요하고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에 공감이 갔다. 어떤 관계는 옳고 어떤 관계는 그르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 어떤 관계를 가지든 서로의 충분한 의견을 듣는 것, 합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성관계’를 가지고 나면 ‘성관계’를 가지기 전으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말씀에 대해 지금 관계를 고민하는 사람들과도 꼭 같이 얘기해보고 싶다.
가끔, 이런 질문도 해도 되나 싶은 질문들(나도 궁금했던)에 대해서도 정말 정성스럽게 설명해 주시는 한채윤 선생님에게서 사랑을 보았다. ‘당신이 생각하는 모든 것은 이상한 게 아니에요. 그건 너~무 자연스러운 거예요~^^’ 라는 말씀에서, 성이라는 것을 정해진 어떤 틀 속에서만 행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더 자유로울 수 있다고, 듣는 우리에게 사랑을 가득 담은 말과 표정으로 저렇게 진실된 사랑을 전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커피를 준비하고 바른 자세로 앉아서 있기도 했지만 잠깐 쉬는 시간에 잠들었다가 한참 후에 깬 적도 있었는데 어느새 5주가 훌쩍 지나가 버렸다. 이번 강의는 ‘성’에 대해서 단편적으로만 생각했던 것들을 벗어나서 더 많은 질문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한 나에게 참 ‘시의적절한 성교육’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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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관계와 가치의 과학 : 진화하는 시민의 힘 | '관계와 가치의 과학'을 수강하며 느낀 소통의 희열 | Juliana | 2022.5.16 | |
아카데미 '느티나무'의 2022년도 봄학기 인문학교에서 저는 느티나무를 이끄시는 선생님들의 친절한 안내와 대표님의 따스한 소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또한 4주간의 강연에서 교수님들의 진심과 열정을 느끼며 깨달음과 소통의 뿌듯함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제가 느낀 강좌에 대한 소감을 나누어 볼까요?
안녕하세요. 저는 과학을 전공하고 기업체와 대학교에서 나름 열심히 일하며 지내는 평범한 한 사람, 이름은 지영이라고 합니다. 아주 평범하게 그리고 무탈하게 지내온 저의 인생은, 긍정에너지가 넘쳐나는 생기가 가득하였습니다. 어쩌면 온실 속에서 세상 속 어려움과 힘듦은 내 영역이 아닐 것이라는 착각 속에 그저 그렇게 열심히 살아온 '나'였던 것이지요. 헌데, 이런 '나'를 돌아보며 무언가 부족하다라는 반성을 이제서야 하게 되었습니다. 40대의 중반에서야 말이죠. 그리고 후반에 와서야 답을 하나씩 찾아 나서게 되었지요. 과학만을 생각하고 업무적인 실적만을 추구하던 성과중심의 삶에서 무언가 회의가 느껴지게 되었답니다. 이런 회의는 그 계기가 나이, 유학, 결혼 등 사회전반에 걸친 경험치가 많아지면서 세상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불합리함을 느끼게 되면서, 그리고 약자와 강자가 존재하는 세상을 느끼면서, 물질과 권력이 만들고 있는 카르텔의 존재로 인해 얼마나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하나씩 알아가게 되면서부터였습니다. 나 또한 그 카르텔 속에서 즐기고 있었나? 라는 자조섞인 반성을 하기 시작하게 된 것이죠.
과학을 전공하였으나 과학기술이 인간사회에 도움이 되는지, 과학자들의 양심에는 문제가 없는지 등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기 시작하던 저의 40대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고민과 그 답은 내가 찾아 나서야 하고 깨닫고 행동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의지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답은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고 쉽게 알지도 못 할 어려운 과정입니다. 이때부터 저는 부족하나마 인문학과 심리학, 그리고 통계의 중요성과 철학의 가치체계에 아주 조금씩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연결고리를 맺고 선순환이 되어야 세상에 쌓여있는 많은 문제들이 하나씩 풀려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적인 고뇌를 하는 저에 대한 인생의 해답들까지 말이지요.
아카데미 '느티나무'의 인문학교 강좌는 제게 이런 고민과 실천덕목에 대한 해답의 시작을 알리는 제목으로 제게 다가왔습니다. 정인경 교수님의 '과학이 나에게 알려준 삶의 가치에 대하여'와 '팬데믹과 기후위기로 보는 과학기술의 방향성'은 첫 2주간 나누었던 주제였습니다. 제가 아는 한 현대 사회에서의 과학은 소위 성과주의의 표본이며 산업고도화의 측정도구로 이용되면서 이것이 기술패권이라는 권력으로서의 이용가치를 품고 있습니다. 과학을 대하는 저로서는 지금의 현실이 사실 슬프게 느껴집니다. 이러한 시기에 접한 정인경 교수님의 "과학에 대한 가치란, 즉 인간이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도구"라는 주제의 강연은 제게 희열을 느끼게 해 주셨고, 제 마음 속에 맴돌던 무언가 갑갑한 부분들이 확 트이는 것을 느끼도록 길을 터주셨어요. 이제 저는 주저하지 않고 "과학이 인간관계 간의 균형과 이해와 포용,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아름답게 늙어갈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로서의 과학의 가치를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기술패권보다는 인간의 행복과 기회균등의 아름다운 모습들이 과학의 정밀한 계산과 기술로서 어떻게 이루어 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위한 과학자들의 행동이 필요하다는 확신이 들면서, 저도 앞으로 해야할 일들에 대한 그림을 다시금 그릴 수 있게 되었답니다. 주저하던 가치를 교수님의 강연덕분에 발견한 것은 제게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전한 얘기를 듣고 행복에 대한 인간의 풀이를 또 한층 더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행복을 원하는 것 같지만, 실제는 인간이 행복을 원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행복은 목적이기보다는 수단으로 할 때 우리 삶에 변화들이 일어나게 되기때문에 행복에 대한 맹목적인 추구가 아닌 가치 있는 일에 도전함으로써 우리는 '행복'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는 것. 내 삶의 바람직한 변화를 위해서 명심해야 할 대목이라고 느꼈습니다. 스피노자의 뇌부터 시작된 '느낌'과 '감정'을 거쳐 사회적인 뇌에 대한 강연을 통해서 '마음이론'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내 경험을 통해서 상대를 이해하게 되는 인간의 마음, 그리고 오늘의 경험이 내일을 바꾼다는 '구성된 감정이론'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제게는 '존엄'이라는 가치가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즉 "존엄은 인간에게 주어진 인간 뇌의 조직과 기능 방식에 있는 '내적표상'이라고 정의한다." 는 이론을 들어면서 인간은 무엇이 스스로를 존엄하게 만드는지를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 우리들이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살기 위한 중요한 논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인경 선생님의 책 <내 생의 중력에 맞서> (좌), 김범준 선생님의 책 <세상물정의 물리학> (우)
김범준 교수님의 3주와 4주차에 걸친 강의를 통해 사회와 관계에 대한 통찰력을 과학으로 풀어주시는 연구 주제를 함께 나눌 수 있었습니다. 깊이가 있는 주제이지만 쉽고 재미있게 풀어주셔서 즐거운 소통이 있었습니다. 통계물리학을 관계의 과학으로 연구하셔서 "함께하면 달라진다."는 증거를 보여주시는 사례들은 재미있고 공감가는 흥미로운 주제였습니다. '집단지성'과 '함께지성'이라는 연구 사례와 짜장면과 된장찌개를 선택하는 과정을 예시로 들어주셨는데, 결론은 의견소통의 통로를 추가하면 다양한 의견 소통이 가능해지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람들이 소통하는 관계의 구조를 체계적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에 '함께 꿈꾸는 꿈'을 만들어가면서 민주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합의의 가능성이 커지며 좋은 방향으로 변화되는 세상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이것이야 말로 진화가 아닐까요.
'어쩌면 바로 이런 우리들의 소통의 모습이 이 사회 속에서 잘 이뤄지고 시너지가 발휘되면 서로에게 상처주지 않는 관계와 정직한 과학 데이터, 진실한 사회구조를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권위과 권력이 아닌 따스함과 지성의 조화로운 모습, 그리고 서로를 배려하고 아끼는 모습들 속에서는 얼마나 아름다운 관계와 조직이 만들어질까요! 이런 희망을 갖게 되는 흥겨운 시간이었습니다. 과학자들의 연구는 이어질 것이고 깨어있는 지성의 힘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과학연구에 대한 투자는 단지 물질의 발견과 기술개발 자체만으로는 인본적인 발전이 미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김범준 교수님께서 하시는 사회 속 관계들을 통계로 보는 물리학 연구는 앞으로 더욱 활성화되고 연구투자의 비중이 더욱 높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언가를 발견하고 발명하는 과학을 뛰어 넘어서 인간사회의 궁극적인 현상과 문제를 분석하고 바른 방향성을 제시하는 일은 모든 과학자들에게 큰 비전이자 인류가 겪을 어려움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게 하는 연구주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학자들의 양심이 여기서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고, 결국은 과학자들과 인문학자들의 추구하는 방향성이 인간을 위한 궁극적인 바른 가치에 근거하여 나아 갈 때 세상 속의 관계들이 더 아름답게 만들어져 가게 되지 않을까요? 모두가 행복하고 공평하며 살기 좋아지는 세상 말이죠.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물리학자이신 김교수님의 강연에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인간과 사회 그리고 과학기술이 헌신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하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에 매력적인 제목의 수업에 평생 처음 수강해본 과학인문융합 수업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융합학문에 대해 아직도 폐쇄적인 학풍이라는 생각을 일하면서도 느꼈는데요, 이런 학문의 융합적 사고의 시작을 선두적으로 연구와 실천을 먼저 시작해주신 교수님들께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팬데믹의 고통 속에 온라인수업을 활용하였기에 어쩌면 저는 오프라인 강의보다는 원하던 강의에 더 빨리 접할 수 있던 것 같아요. 코로나사태의 아픔 속에서도, 제게는 운명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고통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와 전세계의 정황 속에서 과연 우리 과학자들, 인문학자들 그리고 의식있는 시민들의 고민과 공부와 소통과 나눔이 얼마나 단비같았는지는 함께 해주신 모든 참여자분들이 공감하실 것입니다.
저는 사실 매번 퇴근길에 운전을 하며 들었고, 심지어 코로나 후유증에서 몽롱한 상태로도 들었습니다.하지만, 놓치기 싫어서 꼭 수업에 참여하였습니다. 한 주도 빠질 수 없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많이 아쉬웠습니다.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후속강좌를 개설해 주신다면 이어서 또 듣고 싶습니다. 복습도 좋고 새로운 주제도 좋고, 여튼 다시 뵙고 싶습니다. 제가 아직도 초보수준의 인문학 지식에 머물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제 마무리 인사를 드려야겠네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아카데미 '느티나무'의 22년도 봄인문학교는 따스함의 시간이었습니다. 인간이 행복을 느낄 때는 언제일까요? 바로 이런 따스함을 느낄 때가 아닐까요? 무수한 사회 고민 속에서 지성인들끼리 이렇게 소통이 즐거울 수 있고 따스할 수 있다는 것이, 그것도 우리 사회의 현실적인 주제와 인간의 마음과 심리, 관계에 대한 나눔이 따스할 수 있다니! 정말 놀랍고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또 만나요! 감사합니다.
<관계와 가치의 과학 : 진화하는 시민의 힘> 강좌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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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내 인생의 시의적절한 성교육 ver 2.0 | 성교육 강의를 들었는데 돌봄을 받은 느낌이랄까 | 커리 | 2022.5.11 | |
안녕하세요.
강의 편하게 듣고 싶은 마음에 비디오를 끄고 강의를 들어서 제 이름만 기억이 나실것 같은데 저는 아카데미느티나무와 몇번의 만남으로 낯설지 않네요.^^ 한채윤 님 강의 너무 잘 들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강의가 특별히 인상적이었어요. 강의를 들었는데 돌봄을 받은 느낌이랄까.
어제 그러니까 5월 8일 아이들과 외출을 했다 돌아오는 길에 늘 집으로 가던 길이 아닌 바닷가 올레길로 방향을 틀어 운전을 했답니다. 참 저는 제주에 산답니다. 마을길과 제주밭이 이어지는 좁은 길 맞은편에서 경운기가 오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먼저 지나가길 멀찌감치 섰답니다. 경운기가 점점 다가올수록 운전을 하고 계신 할아버지가 눈에 들어왔고 저를 향해 계속 수신호를 하고 계셨어요. 손짓으로 '나 그 쪽으로 가고 있어~', '그리고 이 쪽 방향으로 틀거야~' 오른쪽 골목으로 가실거라는 그래서 차를 좀 더 뒤로 뺐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마지막 수신호 저를 향해 '고마워~'.
어제는 올레길에서 우연하게 맞닿은 노인의 따뜻한 수어가 저를 간만에 미소짓게 만드는 장면이었다고만 생각했는데 이 장면을 쓰다 보니 눈물이 날 만큼 위안이 되는 순간이었다는 걸 알아차림하게 되네요.
성교육 강의가 그랬습니다. 내가 어느 방향으로 갈거야 안전하게 먼저 안내하면서 내용을 채워주시고 매 강의마다 사전질문을 받아 맞춤형 설명과 의견을 나눠주셨지요. 저 역시 고민고민하다 이런 기회가 또 올것 같지 않아서 질문인지 고민인지도 모를 글을 보냈었는데요. 마지막 강의가 끝나고 나서 첫 느낌은 '돌봄'을 받은 것 같았어요. 글로 표현이 한계가 있을법한 질문이었는데도 잘 들여다보시고 섬세하고 소중하게 다뤄주시고 경험을 나눠주시고 말 속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물론 저의 해석입니다만... 그리고 그 말이 위로와 위안이 됐답니다. 참 매회 강의 끝나고 강의 PPT를 공유해주시는 놀라움도 있었지요.
그리고 두번째 내 인생의 시의적적한 성교육을 듣고 나서 든 생각은 동성이건 이성이건 양성이건 성 구분이 필요하지 않다. '사랑'은 사랑이다. 성체성을 알 필요는 있지만 성체성에 따라 사랑이 차별이 될 이유는 없다가 더 잘 다가왔습니다.
쓰다보니 한가지 더 생각나네요. 마지막 한가지는 관계의 안전함이 전제가 돼야 하는구나. 서로 원하는 것을 얘기하고 확인하고 합의하는 과정인데 이 과정이 되려면 안전한 소통 관계가 전제 돼야 하는구나, 저는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게 '안전한 소통 관계'이거든요.
제 평생 성교육을 제대로 받은 기억이 없고 화제에 따라 주제에 따라 또 아이들을 키우면서 필요하다고 느껴 단편적으로 책을 찾아 보기는 했으나 다섯 강의에 걸쳐 해부학 논리학 관계학을 망라하는 성교육이 도움이 많이 됐고 거기다 돌봄과 위안까지 얻은 게 많은 강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한채윤 님의 온화한 미소도 잊지 못할 것 같네요.
다음 강의 기회가 있다면 성평등 인권교육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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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내 인생의 시의적절한 성교육 ver 2.0 | 나의 몸에 좀 더 당당하게!! | 작은여우 | 2022.5.7 | |
지내다 보면 이런 저런 궁금함이 생기는 것은 다반사인데, 어디에 시원하게 질문하거나 알아보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성과 관련된 주제였던 것 같습니다.
첫날밤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 부모님으로부터 돌아온 말은 “남자가 하는 대로 하면 된다”라는 답을 들었을 뿐 난처함과 그 어떤 것을,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지한체로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정확한 정보와 성교육이 없던 시절 답답함을 안고 시간이 지나, 이제는 자녀(아들, 딸)에게 어떻게 하면 성교육을 해 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시민단체에서 청소년성교육자원활동가 교육을 통해 정보를 얻고 자녀들에게 조금은 덜 어색하게 성과 관련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저의 성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강좌를 들으면서 생각났습니다.
폭력예방교육을 하는 강사로 학생들에게 어떻게 성과 인권에 대해 잘 전달할지 고민을 하며 소속기관에 계시는 선생님 소개로 <내 인생의 시의적절한 성교육> 강좌를 알게 되었는데 소개해 준 선생님은 참여하지 못하고 저만 이렇게 유익한 강의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내 인생의 시의적절한 성교육>은 다시 한 번 현장에서의 나를 돌아보고 난처해하지 않으면서 좀 더 유익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성과 관련하여 무지함과 난처함으로 당황하지 않으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권으로서의 자신의 권리인 성적자기결정권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내 인생의 시의적절한 성교육' 에 많은 분들이 참여하여 나, 너 우리 모두가 즐겁고 안전하고 행복한 성생활을 하는 그런 사회, 수치심을 느끼지 않고 밝히는 사람으로 인식되지 않는, 당당하게 나의 몸을 존중하면서 서로가 존중하는 폭력이 없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더욱 갖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유익하고 꼭 필요한 교육을 마련해 주신 아카데미느티나무와 늘 미소로 저희에게 더 전하고픈 맘으로 매 회기 강의를 해 주신 한채윤 강사님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좀 더 많은 분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래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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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내 인생의 시의적절한 성교육 ver 2.0 | 사랑의 모양은 정확하고 구체적일 거예요 | 채소_ | 2022.5.5 | |
고맙습니다. 저는 덕분에 앞으로 내가 원하는 사랑을 만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자신이 더 생겼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미디어로 왜곡된 시각의 성을 접했어요. 섹스는 나쁜 것으로 인지했어요. 가정에서는 성교육에 소극적이었고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고 위험한 것으로 뭉툭한 가이드를 받았습니다. 더 모호하고 혼란스러운 상태였던 것 같아요. 학교에서 배운 성교육은 콘돔을 끼우는 방법 정도로 조심하라는 등의 적절한 방식은 아니었습니다. 섹스에 관심을 보이면 우우-하는 분위기의 중학교의 분위기도 소극적이게 만든 요인 중 하나였어요. 그래서 부끄러워하는 방식으로 회피해왔습니다.
그렇게 보지 말아야 할 것, 잘 모르는 것이 어쩌면 고고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성인이 되었습니다. 수치심을 핵심적인 감정으로 두고 섹스는 위험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이런 상태로 애인을 사귀었을 때, 섹스를 요청받았을 때 제가 존중받기도 하고, 존중받지 못하기도 하는 상황을 만났습니다. 존중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상태가 되고 나서는 처음엔 그 상황 자체를 파악하지 못했고, 빠져나와서는 제가 어떤 걸 겪었는지 구체적으로 잘 알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무서웠고 숨기고 피해왔던 제가 있네요. (도닥여주고 안아줘야겠습니다. 고생했어. 나야!)
이후 내가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려고 부단히 애썼던 것 같아요. 그것이 지적능력이든 연인으로서의 매력이든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해야만, 연인사이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전하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에 시작한 관계에서도 스킨십을 하려고 하면 움찔하더라고요. 사실 사랑을 하고 받고 싶은 욕구, 스킨십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하질 못했어요. 또 상처받으면 어쩌지,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을 내가 만드는 건 아닐까. 두려움이 더 커서 회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어요. 친밀한 관계, 분위기가 형성되는 걸 차단하거나 단호하게 거부하고요. 이런 관계들은 제가 사랑의 방법도 저를 지키는 방법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서로에게 만족을 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스스로와 좀 더 친해지고 저를 알아가며 회피하던 장면들을 조금이라도 쳐다보고 마주보고 있어요. 그리고 이젠 정확하게 알고 싶어졌습니다. 기본적인 성교육부터 배우고 싶었습니다. 왜곡된 성에 대한 관점 말고 걸음마부터 다시 떼고 싶었어요. 섹스를 잘 하는 방법, 스킨십하고 싶은 내 마음이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싶어서 <내 인생의 시의적절한 성교육>강좌를 신청했는데요. 도리어 저는 사랑의 방법, 내가 하고 싶은 사랑의 모양을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 나는 어떤 사랑을 하고 싶지? 상대방에게 받고 싶은 것은 뭐지? 상대방과 이야기를 많이하고 조금씩 서로 맞춰가고 알아가면 좋겠다. 그 안에 친밀한 관계로 서로가 만족할 수 있고 좋은 섹스도 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이런 의식의 흐름을 그냥 공유해봅니다. 전 이 부분이 특히 좋았거든요.
다른 분이 쓴 강좌 후기를 읽을 때는 잘 몰랐는데요. 한채윤 선생님 강의 들으면 그냥 마음에서 그런 마음이 들어요. 다정하고 정확하게 알려주시거든요. 틀렸다, 절대 안된다는 건 없고 다만 내 몸이기에 고려할 사항,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상상할 수 있도록 얘기해주세요. 강의를 듣는 내가 더 소중하게 느껴지고요.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아직 강의를 듣지 못한 분이 계시다면 꼭 한번 들어보셨으면 좋겠어요. 강의가 끝나고 돌아보기 설문에서도 앞으로 오래오래 강의해주셨으면 좋겠다. 더 많은 사람들이 들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남겼습니다. 저만 듣기 너무 아까워요. 이 좋은 걸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알게 되면 좋겠습니다.
전 강의를 듣기 전보다 들은 후 조금 더 자유롭고 행복하거든요. 앞으로의 제가 더 기대되요. 만날 사람과의 대화, 괜찮고 즐거울 몸과 마음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면서 지내고 싶습니다. 스킬, 철학 이런 것도 다 좋겠지만 내 욕구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하나씩 차근차근 꺼내어볼 수 있도록 함께해주셔서 참 고맙습니다. 그래도 괜찮고 지금도 충분하고 내가 더 좋아지고 그런 느낌이에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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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불평등 시대, 서민들의 경제학 | [불평등 시대, 서민들의 경제학] 후기 | artn | 2022.5.5 | |
<불평등 시대, 서민들의 경제학> 수강 후기
꽂혔다. 아마도 ‘불평등’, ‘서민’ 두 단어 때문일 것이다. ‘경제학’ 단어보다는. “…불평등 시대를 살아가는 서민들의 이야기를 서민의 관점에서 이야기해 봅니다”라는 글귀가 와 닿았다. 같이 우리 얘기를 해보자는 말로 들렸다. 일정별 강의소개도 눈길을 끌었다.
(1강) 세금은 서민에게 공정한가? -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있다고?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일까? (2강) 통계는 서민에게 공정한가? - 국가가 만들어내고 있는 많은 통계들이 서민들을 외면한다고?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일까? …
속삭이듯 건네는 의문문이, 별 생각 없던 나의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1강을 듣고 바로 느꼈다. ‘올출하겠구나’ 그 이유를 정리해보겠다.
1. 이상하게 재미있다 ‘이상하게’가 포인트다. 강사님이 대단한 유머를 날리는 것도, 그렇다고 주제가 재밌는 것도 아닌데, 절대 졸지 않고 듣게 된다(나는 조금만 재미없어도 졸음을 주체하지 못한다). 강사님도 당신 강의가 ‘재미없어서 고민’이라고, 그래서 ‘미안하다’고 자주 말씀하셨는데, 왠지 모르겠으나 강의 자체가 아주 재미있다!(이 현상을 같이 해독하실 분, 다른 강의에서 꼭 만나 얘기해봤으면 좋겠다)
2. 유익하다 1번과 2번은 밀접한 관계일 게다. 유익해서 재미있었을 수 있고, 재미있기 때문에 유익했을 수 있다. 일단, 매 시간 강의 주제, 핵심어, 목표가 분명하고, 꼭 알아야 할 내용은 강사님이 반복적으로 언급해 머릿속에 잘 정리되도록 해준다. 매주 1~2권의 참고도서도 정해져 있다. 수업은 이 참고도서를 중심으로 진행되는데, 저자에 대한 소개부터 저술의 배경, 각 장의 내용까지, 수업 시간 동안 참고도서를 꼼꼼히 해독하고, 관련된 한국의 현실을 사례로 들어 내용 이해를 돕는다. 그렇게 수업을 따라가다 보면, 책 한 권의 내용이 어느새 머릿속에 들어와 있고, 내가 경험하고 있는 현실에도 적용해보게 된다. 평소에 써 본 적 없던 단어들, ‘자본소득’, ‘노동소득’, ‘지대’, ‘언피플’, ‘언머니’, ‘컨시어지’ 이런 단어가 어느새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단어가 되었다.
3. 부담없다 수업 내용도, 참여 과정도 부담 없다. 배경지식이 없어도 된다. 그냥 수업에 참여하기만 하면 된다. 미리 제시된 책을 읽고 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읽지 못했더라도 수업을 따라갈 수 있다. 또 수업이 책의 주요내용을 따라 전개되기 때문에 수업참여는 곧 책 읽기이기도 하다. 그것도 매우 훌륭한 가이드와 함께. 강의 자료도 공유되어서 사후에 찬찬히 책을 읽고 복습할 수 있다. 강사님이 쉬운 언어로 차근차근 설명해주어서 어려운 용어가 나와도 이해에 부담이 없다. 사실 수업 신청할 때 ‘경제학’이라는 말은 좀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수업을 듣고 보니, 결국 경제학은 지금 우리의 현실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 현실에 내던져진 사람들이 이해 못할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배경 ‘지식’이 없어도 참여할 수 있었던 건, 수업 시간에 다루는 모든 내용이 지금 내가 살아가는 현실과, 나의 처지,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처한 현실, 곧 서민이 처한 불평등한 현실을 본 강의에서는 <세금>, <통계>, <토지>, <기술>, <경제학>이라는 키워드로 하나씩 풀어보았다. 이 요소들은 불평등을 만들기도 하고 가리기도 한다. 통계는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고, 부의 막대한 원천인 지대는 제대로 논의도 되지 않으며, 경제학은 가난한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 무엇이 불평등을 조장하는지, 숨겨진 사실은 무엇인지 아는 것부터가 기울어진 운동장을 조금이라도 바꾸기 위한 출발일 것이다. 오로지 최저임금에 맞춰진 노동소득에 의지해 내 집 마련은 꿈도 꾸지 못하고, 미래는 갈수록 불안해지기만 하는 나의 처지를 이해하고 설명할 키워드를 쥐게 된 것이, 개인적으로 이 수업의 가장 큰 수확이다. 나아가 이 키워드를 가지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불평등의 기울기가 조금은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도 품어보았다. 이것이 이 강의의 최대의 미덕이 아닐까.
더 많은 사람들이 강의를 듣고, 함께 이야기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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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웨이스트로 살아간다는 것은... | [제로웨이스트로 살아간다는 것은... 후기] 자원순환은 다 속임수였다 | 기회 | 2021.12.27 | |
0. 제 가방은 무겁습니다. 가방에 텀블러와 개인 수저, 다회용 빨대와 손수건까지 꼬박꼬박 챙겨다시는 한 선생님을 통해 저의 환경에 대한 관심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느덧 저의 가방의 무게도 다양한 다회용기로 무거워졌고, 그 무게는 환경에 대한 더 큰 관심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환경 문제는 제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의 이런 작은 실천들이 너무 작게 느껴지고 이런 실천으로는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무기력감에 빠져있었습니다.
1. 저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 좋았어요! 이 모임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강사님이 저보다 더 한 환경 덕후?셨다는 사실에 너무 반가웠고,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분들이 꽤나 계셨다는 것이 위로가 되었습니다. 저의 실천들이 더 작게 보였던 이유는 저와 같은 실천을 혹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저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저는 큰 힘을 얻은 듯했습니다.
2. “자원순환은 다 속임수에요!” 송현섭 강사님의 강의가 저에게는 두 가지로 정리되었어요~ 먼저는 그간 자원순환 이슈에 대한 다양한 활동들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자원순환은 다 속임수”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 이야기였습니다.
강사님은 정말 존경스러울 정도로 일회용품, 낭비되는 자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말 가치있고 다양한 활동을 하셨고 하고 계신듯합니다. 그 모든 활동과 시도들은 정말 유의미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강사님은 결국에 자원순환은 다 속임수라는 생각을 하게 되셨다고 합니다. 자원순환보다 중요한 것은 애초에 버려질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정확한 워딩은 기억이 안나지만 ‘생산을 저감시키는 것’이 ‘버려지는 쓰레기를 어떻게 재활용 할 것인가’의 문제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3. 자원순환보다 중요한 것 환경이슈가 사회에서 더 커질수록 많은 기업과 단체들이 자원순환이 쓰레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자원순환’이라는 것을 중심에 놓고 다양한 활동을 합니다. 예를 들면, 폐플라스틱을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거나 폐플라스틱을 이용한 새로운 제품을 생산하여 이를 마케팅으로 이용하여 새로운 판매전략을 구상합니다. 그런 활동들도 나름 가치있다고 여겨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강사님께서는 ‘자원순환’보다 ‘플라스틱 생산 저감’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명확하게 말해주셨습니다. 사실 저도 막연하게 자원순환이 가치있는 활동이지만, 무언가 부족하다고 생각은 했는데, 저의 막연한 생각을 명확히 구체화해주셨습니다. 저도 동의했습니다. 사실 애초에 버려질 쓰레기를 생산단계에서부터 최소화하는 것이 버려지는 자원을 재활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니깐요!
4. 나의 소감과 질문 : “나름 개인적 실천을 하지만, 너무 무기력해요. 강사님의 동력은 뭔가요?” 일방적인 강의가 끝나고 참가자들이 함께 둥글게 앉아 질문과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조금 주저하다가 저는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날 것 그대로 공유했습니다.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름 개인적인 차원의 실천을 열심히하고 그것에 저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지만, 너무 무기력하고 나아가 우울한 감정도 드네요. 혹시 강사님이 이 활동들을 하는 동력이 있으신가요?” 사실 질문에 대한 답변보다는 나의 감정을 더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특별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고, 강사님은 ‘저도 마찬가지로 우울하다. 그냥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니깐 하는 것이다’라는 정말 심플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막연하게 생각되어졌던, 자원순환이라는 조금은 빗나간 과녁의 잘못됨을 일깨워주셨고, 나와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것들로도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무거운 제 가방의 무게를 저는 제가 다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가방의 무게는 무겁지만, 마음의 무게는 조금 가벼워진 것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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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클럽 숲] 우리 곁의 동물 발견하기-연결되기 | [독서클럽 숲] 채식의 이유가 바뀌었어요 | 기회 | 2021.12.22 | |
1. 이 모임이 망설여졌던 이유
동물권 이슈에 관심이 생겼지만, 사실 선 듯 공부하거나 더 깊게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고기를 먹는 즐거움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난 더 공부하고 이거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는 나누고 싶지만, 내가 먹는 것을 제한하고 싶지는 않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마음 한켠에 내가 이 책모임을 하고 나면, 비건을 결심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2. 그럼에도 독서클럽 숲에 노크한 마음
동물권 이슈로 나의 관심이 도착한 것은 기후변화에 대한 나의 관심에서 출발하였다. 축산업으로 인한 탄소배출 비율은 우리의 생각보다 아주 높다고 들었다. 또한 축산으로 소비되는 곡물량의 비율이 높아 결국 고기를 생산함으로 인해 전세계 식량의 불공평한 구조가 생겨 굶어 죽는 사람이 생기게 된다는 얘기도 들었다. 결국 채식은 지구를 위해서나 인류 전체를 위해서나 옳은 일이고 실천할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힘을 들여 당장 비건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과 그냥 편하게 내가 먹고 싶은 걸 먹으며 살고 싶은 두 가지 마음이 나에게는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아무도 뭐라고 한 사람은 없는데, 혼자 무거운 마음으로 책 모임에 참여를 하게 되었다. 첫 모임을 시작하며 이런 저린 이야기가 시작할 즈음 진행자 우정님이 채식을 시작하는 것에 있어서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하면 된다는 말이 나의 기억에 남았다. 완전 비건으로 살아가지 않는 것이지, 사실 난 이미 나름의 속도와 방식으로 채식을 하고 있었고 그 말이 나의 무거운 마음을 가볍게 해주었다.
2021년 9월 <독서클럽 숲> 첫 모임에서 글쓴이가 자기 소개를 하고 있다.
3. 지금은 동물을 사랑하는 시대일까?
사실 우리나라에서 반려동물에 관한 관심과 인식이 많이 바뀌었음을 느낀다. 개나 고양이를 안 좋아하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만큼, 사람들은 반려견, 반려묘를 좋아하고 많이들 키우며 그들과 가족으로 함께 살아간다. 그런데 동시에 우리는 닭이나 돼지를 아주 맛있게 먹는다. 사실 조금 아이러니한 문제이다.
동물과 인간이 그렇게 친구나 가족으로 함께 생을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동물도 고통이나 사랑 따위의 감정을 느끼는 존재이고 그것을 인간과 교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특정 동물들은 인간의 옆에서 사랑을 받고 가족이 되고, 특정 동물들은 인간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축이 되고 ‘고기’가 된다는 것은 사실 이상한 일이다.
4. 개, 고양이 vs 닭, 소, 돼지 뭐가 다를까?
내가 3권의 책을 읽으며 나에게 남았던 것은 우리가 흔히 먹는 ‘고기’들, 예를 들어 소나 돼지, 닭 등의 동물들도 우리가 사랑하는 개나 고양이와 다를 것 없는 감정을 가진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소나 돼지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들은 그들이 개나 고양이처럼 하나 하나 다 각자의 고유한 개성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고 한다. 인간은 동물을 ‘먹을 수 있는/먹지 못하는’ 혹은 ‘사랑스러운/사랑스럽지 않은’ 등의 분류 방식을 가지고 동물을 나눈다. 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동물들은 모두 똑같이 사랑과 고통을 느끼고 각각 고유의 개성을 가진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강아지가 아니라 병아리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치킨이 되어야 하고, 돼지로 태어났으니 돼지고기가 되어야 하고, 암소로 태어났으니 자기 새끼에게 주고 싶은 젖을 ‘우유’라는 이름으로 인간에게 빼앗겨야 하는 것들. 어쩌면 그 동물들은 인간 중심의 분류방식에 의해 감정도 개성도 없는 진짜 ‘고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독서클럽 숲>은 매월 책읽기와 단편영화를 같이 보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5. 이제는 누군가의 고통 위에 나의 행복을 누리고 싶지 않다.
어찌 되었든 육식이라는 것은 감정을 가진 존재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 육식은 사람들에게 가리워진 곳에서 ‘공장식 축산’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큰 규모로 오랫동안 자행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앞서 말했듯 나는 환경 이슈로 시작해서 동물권 이슈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 공장식 축산은 그 결과로 여러 사회문제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폭력’이라는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내가 채식을 하는 이유가 조금은 바뀌었다. 나의 채식은 온실가스를 발생시켜 기후위기를 가속화하고 식량의 빈부 격차를 야기하는 축산업에 대한 보이콧이었다. 이런 이유도 여전히 유효하긴 하지만, 이제 나의 채식은 감정을 가진 존재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게 하겠다라는 마음이다. 그 마음이 사랑, 연민, 긍휼 어떤 단어로 사용되어져도 상관없다. 이제는 누군가의 고통과 희생 위에 나의 즐거움과 행복을 누리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6. 그럼에도 아직 비건은 힘들 것 같다.
나의 채식의 이유는 조금 바뀌었고, 모임을 시작할 때나 끝날 때나 똑같이 나는 완전한 비건이 되는 것이 가장 좋고 그렇게 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한다. 근데 이 사회에서 비건으로 살아가려면 너무 힘들다. 핑계라고 하면 할 말은 없겠지만, 비건으로 살아가기 위해 개인이 현실적으로 지불 해야 하는 (여러 의미의)비용이 있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은 비건으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보다 내가 치러야하는 비용이 크게 느껴진다. 그 비용 때문에 아직은 비건으로 살아가는 것은 못 하겠다. 하지만 나의 속도와 방식으로 나는 채식을 계속할 것이고
이 사회가 비건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치러야 하는 비용들이 더 낮아지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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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국가재정은 시민의 것! 나라 예산 감시학교 | 국가재정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의 벽을 허물어 준 강의 | 뚜룹뚜뚜 | 2021.12.1 | |
<국가 재정은 시민의 것! 나라 예산 감시학교> 인증샷. 아이와 함께 강의에 참여한 뚜룹뚜두
국가 예산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모두가 자연스럽게 알고 있듯이 당연히 ‘국민을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 예산에 대해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를 질문했을 때 당당하게 알고 있는 것을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복잡한 숫자가 난무하는 국가 재정은 특히나 접근하기 어려운 분야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막대한 양의 돈을 다루는 국가의 재정을 경제와 숫자를 잘 다루는 전문가의 영역으로 생각한다.
처음 친구가 참여연대에서 하는 느티나무 아카데미에서 이러한 강좌가 있다며 수강하기를 권했을 때 여러 이유로 주저하였다. 첫 번째는 전술한 바와 같이, 나에게 국가 예산은 전문가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강의를 듣고 난 지금은 이것이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강의를 들었는데도 너무 어려워서 이해가 안되면 어떡하지?’라는 앞선 걱정을 했던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어린 아이를 두고 있기 때문에 강의 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로 인해 다른 수강생들께 피해를 끼칠 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또한 강의를 듣고 난 이후, 나의 앞선 걱정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카데미의 강사님 뿐 아니라 수강하는 수강생들 모두 따뜻한 마음으로 아이와 함께 수업을 듣는 모습을 인정해주고, 지지해 주는 모습에서 많은 배려와 감사를 느낄 수 있었다.
나라예산 감시학교의 수업은 총 4강으로 진행되었다. 1, 2강에서는 이상민 연구위원이 국가의 예산에 대하여 쉽고도 자세하게 강의를 진행해 주었다. 국가와 시장, 그리고 시장체계의 개념과 관계를 설명하면서 왜 국가의 개입이 필요한가를 적절히 설명하였다. 또한 경제학자 다운스의 ‘합리적 무지’의 개념을 소개하며, 일반 국민들이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이 정부를 감시하는 것이 맞다”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과 같은 충격을 받았다. 앞에서도 얘기하였지만 이 강의를 듣는 것에 주저하였던 이유 중 하나가 국가 재정과 같이 어려운 분야는 내가 아닌 전문가가 다루어야 하는 영역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강의에서는 우리가 충분히 예산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하여야 적절한 감시와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예산의 쓰임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또한 국가의 재정을 곳간에 비유하는가, 혹은 펌프에 비유하는가와 같은 프레임에 따라 재정에 대한 이해가 달라진다는 점이 매우 인상깊었다.
3강에서는 이영아 활동가가 국방예산을 돌아보고 과도한 국방예산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옳은 방향인지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였다. 강사님은 지금의 국방비 예산이 현재의 ‘인간을 위한 안보’ 에 쓰이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코로나 팬데믹 위기와 미세먼지, 환경오염과 같은 환경변화는 환경에 대한 관심과 예산을 더욱 필요로 함에도 불구하고, 국가 예산의 측면에서 국방 예산에 비해 소홀히 여겨지는 점을 우리가 주목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매우 공감이 되는 강의였다.
마지막 4강에서는 이경민 사회경제2팀장이 문재인 정부의 복지예산을 코로나 상황과 더불어 사회 양극화, 실업율, 빈곤율, 돌봄공백 등과 같은 이슈를 통해 분석한 것을 토대로 강의를 진행하였다. 이 강의를 통하여 더욱 많은 공공의료센터와 돌봄에 대한 요구가 사회적으로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예산은 오히려 줄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변 어른들이 “아이 키우는데 정부에서 지원도 많이 해 주고 예전보다 애 키우기 참 좋아졌어!”라고 하는 말들에 대해 예전에는 별 생각 없이 웃어 넘겼었다. 그러나 예산에 대한 수업을 듣고 실제 복지에 들어가는 예산 규모가 사회적 변화와 필요성에 비해서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달동안 수업을 들으면서, 내가 얼마나 국가 예산에 대하여 무지했는가를 느끼게 되었다. 말로는 국민을 대표하는 정부와 공직자들이 놀지 말고 열심히 일해야한다고 줄창 떠들면서, 정작 정부정책에 근간이 되는 중요한 예산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고 떠들어댔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이 수업을 듣고 난 이후 신문에 나오는 국가 재정에 관한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레짐작하고 넘기지 않게 되었다. 또한 국가부채가 증가했다는 기사를 볼 때마다 느꼈던 모호한 불편함과 불안감이 강의를 통하여 없어졌다는 점에서 매우 기분이 좋다.
함께 한 수강생들 모두 열정적으로 토론에 임해주셔서 오래간만에 새로운 지적 자극과 생동감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나와 같이 어린 아이가 있는 가정에서도 가벼운 마음으로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시고 좋은 강의를 기획해 주신 아카데미느티나무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 강의가 널리 널리 알려져서 많은 사람들이 듣고, 고민하고, 성찰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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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국가재정은 시민의 것! 나라 예산 감시학교 | 국방예산 줄여 공공병원 설립한다면 | 리갱 | 2021.11.30 | |
<국가 재정은 시민의 것! 나라 예산 감시학교> 강의에 아이와 함께 참여한 리갱.
이제 곧 세 돌 되는 아이의 엄마이자 경력단절 여성입니다. 예전엔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연구원에서 일하기도 했습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키우며 일도 공부도 그만두게 되면서, 일부러 예전에 관심 가졌던 분야는 더 외면하고 지냈습니다. 그러다 정말 오랜만에, 참여연대 뉴스레터를 열어봤는데, <국가재정은 시민의 것! 나라예산 감시학교> 강좌가 눈에 띄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한다니, 혹시 아이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될까 걱정도 앞섰지만, 꼭 들어야겠다는 마음이 올라와 용기 내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강의는 정말 알차고 재밌었습니다. 처음 두 강의는 국가재정에 대해 꼭 알아야 할 내용들이었습니다. 이상민 연구원님께서 맡아주셨는데 두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흥미진진했습니다. 자칫하면 어려운 설명으로 재미없기 쉬운 예산을 누구나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강의해주셨고, 그 덕분인지 다양한 질문들도 많이 쏟아졌습니다.
처음 두 번의 강좌를 들으며 제가 그동안 얼마나 예산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관심이 없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강의 시작 전 간단히 경제 기사가 사실인지 확인하는 시간도 있었는데, 저처럼 경제 기사를 읽으며 나라가 망하지 않을까 그동안 걱정했던 분들, 그리고 그런 기사를 쏟아낸 기자분들이 특히 이상민 연구원님 강좌를 필수로 수강하면 좋겠습니다.
이어지는 강의는 국방예산과 사회복지예산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팬데믹 상황에서도 국방 예산은 놀라울 만큼 증가했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돌봄과 의료 부분 예산의 확충은 크지 않았습니다. 국방 예산 강좌는 코로나19 확진자 수 상위 10개 국가 가운데 5개 국가가 마찬가지로 국방 예산 규모 상위 10개국 안에도 든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며 시작합니다. 이 국가들이 국방 예산에 쏟아부은 예산을 코로나19를 대처하는 데 사용했다면, 상황이 좀 달라지지는 않았을까요? 우리나라 역시 휴전 중이고 코로나19 대처를 다른 국가들에 비해 잘하고 있긴 하지만, 국가 예산을 군비 경쟁 대신 의료 취약 지역의 공공병원 설립에 사용할 수는 없는 것인지 안타까웠습니다.
지금 아이들이 어른이 될 무렵엔 전쟁을 위한 예산이 모두 함께 상생할 수 있는 사회복지 예산으로 사용되는 세상이 되길 바라며, 좋은 강좌를 열어주신 참여연대에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이번 강의를 들으며 아직 저에게도 좀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이 남아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 아이는 엄마 또 언제 강의 듣냐고 물어보는데, 조만간 다른 강좌도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4주 동안 정말 즐거웠습니다. 특히 어린 아이를 키우는 분들의 참여가 많아 이번 강의가 더 특별하게 기억될 것 같습니다. 예산 감시학교를 준비해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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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클럽 숲] 우리 곁의 동물 발견하기-연결되기 | 고기 없는 손님 맞이 상 차리기 | 개똥이 | 2021.11.26 | |
<독서 클럽 숲 두 번째 이야기 :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새 집으로 이사한지 한 달이 조금 지났다. 코로나 백신도 하나 둘 맞았으니 집에서 소규모로 모시고 밥 한끼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첫 번째 손님은 아이들의 성당 대부님 가족이다. 결혼하여 이제 4살이 되는 귀요미 아들을 둔 예쁜 가족이다. 대체 휴일인 월요일 점심을 하기로 했다.
자…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머릿속이 뒤굴 뒤굴 굴러간다.
육식을 좀 줄여야 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참여연대에서 하는 독서 클럽 <숲>을 신청했다. 1달에 한 권씩 관련 책을 읽고 육식과 채식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고 의견을 나누는 프로그램으로 세 달간 진행된다.
첫번째 책<1389번 귀 인식표를 단 암소>를 읽고 내가 할 수 있는 실천은 우유를 구매하지 않는것. 콩으로 두유를 만들 때 우유와 함께 갈아 먹었는데 이제는 콩과 물로만 두유를 만들어 먹는다. 우유가 들어간 모든 유제품까지 일일이 점검해서 먹지 않겠다고 할 만큼 강력한 의지를 뿜뿜 뿜지는 못하지만 우유 자체를 가급적 이용하지 않도록 하는게 나의 작은 실천이다.
두번째 책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개는 그닥 사랑하지는 않지만 돼지는 먹고 있고 소도 먹고 입고 신고 들고 다닌다. 그러나 두 권의 책을 읽으면 누구나 다 반응이 비슷한가 보다. 고기 먹기가 불편해진다. 먹고 싶지가 않다. 그렇다고 해서 고기 먹는 사람을 이상한 눈으로 보는건 아니다. 왜냐하면 나의 이런 심정이 언제까지 갈까 자신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불편하고 먹기 싫은 이 마음에 주목하련다.
그래서 고민이 시작 된다. 집으로 손님은 청했는데 무엇을 준비 할까. 고기를 빼고 손님상을 준비한다는 것은 초 없는 생일 케익 같달까? 식탁 가운데 넙적한 접시에 고기 요리 하나 떡하니 올려 놓으면 게임 끝인데. 40대 초반의 젊은 부부와 4살 아이를 위해 어떤 음식을 준비해야 할까.
그래. 납작만두를 하자. 대구 명물인 납작만두는 말 그대로 아주 조금의 야채와 당면만이 들어간 납작한 만두로 기름을 두르고 바로 구워 파가 송송 들어간 간장에 찍어 먹는…. 그냥 기름.밀가루 맛이다.
근데 그게 묘하게 맛있다. 납작만두로 유명한 미성당에 택배로 주문할 때 비법 간장까지 같이 주문했다. 고기 요리 대신 납작 만두를 준비하고. 알배기 배추와 부추로 겉절이를 담고. 맛살과 팽이버섯.쪽파를 이용해 전을 굽고. 양상추,파프리카, 어린 새싹, 파인애플, 무화과등으로 샐러드도 준비하고, 멸치육수를 내 두부.팽이버섯 된장국도 준비하고, 선물로 들어온 멍게,명란 젓갈까지.
금방 갓 지은 고슬고슬 밥이랑. 나쁘지 않다.
부산 남자 대부님은 멍게젓갈에 꽂혀 밥을 세 공기나 먹고 와이프는 샐러드 소스가 맛있다며 소스 구입처를 알아가고 4살 귀요미는 늦은 아침을 먹었다며 후식으로 준비한 얼그레이 파운드 케익만 잔뜩 먹었다. 야심차게 준비한 납작만두는 처음 먹어 본다면서 신기해 하고( 마음속으로 이거 뭐지.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나랑 울신랑은 맛나게 먹었다.
“제가 요즘 육식을 좀 줄여 보려고 해요. 그래서 오늘 육식을 빼고 음식을 준비했어요” 라고 말했다.
저는 카페인이 안 들어간 커피를 마셔요. 저는 맥주 보다는 소주가 좋아요 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런 개인의 취향을 인정해주고 존중해 줄줄 아는 서로가 됐음 좋겠다.
사실 좀 많이 귀찮다. 야채는 유통기한도 짧아 자주 사야하고 부지런히 소비해야하고 손질도 많이 해야한다. 어릴 적 항상 뭘 다듬고 씻고 삶고 하던 엄마 생각이 난다. 손은 많이 가는데 막상 상에 올려 놓으면 별거 없는듯 해 보이는 채소 반찬들.
이런 저런 주저리 길다. 결론은 내가 늙었다는 거다. 예전만큼 소화력도 떨어졌고 어릴적 먹던 게 자꾸 생각나는거다. 늙었다. 근데 그게 싫지는 않네.
#우리는왜개는사랑하고돼지는먹고소는신을까 #멜라니조이 #모멘토
#참여연대 #독서클럽숲
독서클럽 숲 참여자들은 책 읽은 소감을 패들렛에 공유하고 생각과 의견을 나누었다.
<독서 클럽 숲 세 번째 이야기 : 동물주의 선언>
#동물주의선언 #코린펠뤼숑 #책공장과더불어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는 사회로 가기 위한 철학적. 실천적 지침서
3개월 동안 미처 내가 생각해 보지 않았던 부분들을 들여다 보고 고민하고 작으나마 행동으로 옮기게 되는 좋은 시간이었다. 그 주제가 무엇이든지 간에 앞으로의 삶에서 꼭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싶다.
이러한 기회들에 언제나 열린 자세를 가진다는 거. 닫아 걸지 않는 것. 고민해 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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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클럽 숲] 우리 곁의 동물 발견하기-연결되기 | [독서클럽 숲] 엄마! 엄마 젖은 왜 안 나와? | 개똥이 | 2021.11.26 | |
독서 클럽 숲 첫번째 이야기: 1389번 귀 인식표를 단 암소
처음 발을 들여 놓기가 어렵지 한 번 들여 놓은 발걸음은 가볍고 즐거워지나 보다. 참여연대에서 하는 편성준 작가의 <재밌는 글쓰기> 강좌를 처음 들을 때만 해도 다 늦은 저녁 시간에 (7시30분-9시30분) 수업을 들으러 외출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심적 부담을 느꼈었던 기억이 난다. 그 6주간의 수업이 인연이 되어 그 곳에서 새롭게 개강하는 강좌들에 대한 정보를 받게 되었다. 다양하고 좋은 프로그램 중에서 책과 관련된 <독서 클럽 숲 : 우리 곁의 동물 발견하기- 연결 되기>가 가장 맘을 끌었다.한 달에 한 번 동물과 육식문화에 관한 책을 읽고 짧은 영상을 보며 생각을 나누는 모임이다. 한 달에 한 번 이기도 하고 저녁 시간의 외출이 이젠 낯설지만은 않아 설레는 맘으로 참가 했다.
근래에 <아무튼 비건 : 김한민>을 시작으로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호프 자런>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 :김탁환> <우리가 날씨다 : 조너선 사프란 포어> 를 읽으면서 먹거리에 대한 고민, 지구 환경에 대한 고민, 나의 몸에 대한 고민들이 점점 많아졌다. 무엇을, 어떻게 먹으며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할지에 대해 예전에 하지 않았던 고민들을 하고 있다. 내가. 그래서 더욱더 이 수업이 듣고 싶다.
독서 클럽 숲 첫번째 이야기: 1389번 귀 인식표를 단 암소(표지 : 알라딘)
9월에 읽고 나누어야 할 책은 <1389번 귀 인식표를 담 암소: 캐스린 길레스피>이다. ‘동물보편 생명권에 대한 성찰적 르포르타주-가축이라는 이름에 갇혀 우유로, 고기로, 가죽으로 소비되어 왔지만 반려동물과 다를 바 없는 생명권을 가진 동물들의 진실을 말하다’ 라고 책 표지 하단에 적혀있다.
이 책 한 권을 다 읽고서 무언가 확 바뀌기를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미처 아니 아무 생각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유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 우유는 젖소가, 젖소니까 그냥 자연스럽게 늘 항상 쭉쭉 생겨나는 거라고 여겼던 나의 무지함을 깨달았다. 더 많은 우유를 짧은 시간안에 생산 하기위해 소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알게 되는 순간 우유 소비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다. 우유로 만든 제품들에 대한 소비에 또다시 고민이 시작된다.
나 뿐만 아니라 모임에 참가한 모두 각자가 가진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책 한권 읽었다고 당장 무엇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고민한다는 좋은 출발을 시작했다. 그 고민들이 하나씩 실천으로 이어질 때 좀 더 나은 나,너가 되지 않을까.
어떤 새로운 결심을 하는 이에게 ‘그래. 잘 해봐라. 얼마나 하나 두고 보자. 네가 그렇지 뭐. 네 까짓 게 뭐라고. 너 하나 한다고 세상이 달라지니. 그것도 유행이냐. 좀 먹고 살만 한가 보지. 배부른 소리하네…..’ 주먹으로 세게 때리는 것 이상의 폭력을 어느 순간 나도 하지 않았나 반성한다.
거창한 목소리보다 내 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내 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 맘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 내가 그 선택의 주체가 될 수 있어서 다행이며 그래서 힘을 내어 본다.
늦은 시간의 귀가지만 단톡방에 띠링띠링 올라오는 아쉬운 인삿말과 방긋방긋 이모티콘이 보잘것 없지만 아주 소중한 보물을 공유하는 이들만의 은밀한 마음같아서 또 힘을 내게 된다.
#1389번귀인식표를단암소 #캐스린길레스피 #생각의길 #독서클럽숲 #참여연대
#우리는왜개는사랑하고돼지는먹고소는신을까 #동물주의선언 #아무튼비건 #나는풍요로웠고지구는달라졌다 #아름다움은지키는것이다 #우리가날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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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연극 워크숍 심화과정] 즉흥극을 이용한 공동 창작 | 왜 우리는 무대를 기다릴까요? | 범컴 | 2021.11.15 | |
마지막 수업_장면발표 포스터
배우, 희곡, 무대, 관객. 코로나19에 무대가 열릴 수 있을까? 연극 수업은 줌으로 하면 안 되는데? 얼마나 모일까? 강좌가 폐강되지는 않을까. 걱정과 고민, 그리고 기대 속에 막이 올랐다.
전문적이지 않은 시민들이 무대에 서기 위해 10회 차 워크숍을 했고, 제비뽑기 식으로 조를 꾸렸다. 논의하고 희곡 쓰고, 음악과 조명, 무대를 고민하며 연기와 동선 그리고 왜 우리는 이 주제로 이 극을 올려야 하는지? 이 극은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고, 우리에게는 관객에게는 무엇을 주기 위한 것인지 고민하다가 시간에 쫓겨 적지 않은(?) 관객을 맞았다.
2021년 10월30일(토). 가을 손바닥 연극 공동창작 장면 발표회. 총 4팀 16명이 달래 연출의 지도, 앨리의 도움(강좌 진행 및 극 음향)으로 극 4개를 올렸다. <당신이 사라졌던 22분>(달현, 쌩콩, 양파, 잭), <빙글빙글>(개굴, 갱, 11월, 에스텔라), <매미소리>(뿌, 소울, 오름 와사비), <We will 樂 you>(진수, 소화, 오리, 바위).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다. 추리물인가, 돌고 도는 일상을 담은 극인가, 지친 여름 속을 건너가는 삶, 즐거움에 대한 건가 싶다가 이 모든 극을 관통하는 것은 희로애락(喜怒哀樂)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본적인 연극을 토대로 극형식적 실험과 참여를 유도하는 극부터 소도구들과 사람을 넘어 강아지, 꽃, 나무, 마음 등을 표현해 내기도 했다. 실수를 했어도 아는 이는 우리들 밖에 없을 법한 딱 한 번의 그래서 다시는 볼 수 없는 극이다. 초연이자 마지막 공연인 셈이다.
우리는 냉엄한 관객의 평가에 직면하고 싶지만, 우리 스스로가 그 평가자가 되었다. 열심히 했으니 박수를 치고 칭찬을 해주는 것이 아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또 다른 질문이 배달됐다. “(________)은 왜 연극을 하는가?” (__________)은 달현, 잭, 양파, 쌩콩이 될 수도 있고, 시민연극단 또는 어떤 단체가 될 수도 있겠다.
①왜 (________)은 연극을 하는가?=잭은 그랬다. 세상에서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았다. 수업이 자신의 이름이 아닌 애칭을 사용해서 마음에 들었다. 사회에서 부여된 이름은 특정한 위치와 성격 또는 역할을 고정해 놓은 측면이 많다. 잭은 고정된 사람이 아닌데 충분히 자유로운 인간이고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스스로 한정지어놓았다. 운명의 수레바퀴를 벗어나지 못하게끔.
②(________)은 왜 연극을 하는가?=그 재미있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도 혼자서 할 수 없지 않은가. 혼자서 하는 일은 재미가 없지 않은가. 극은 서로 교감하면서 에너지를 키워주며 힘을 준다. 상대 배우가 관객이 무대가 힘이 되어 나도 모르는 에너지가 생긴다. 아 살아있구나. 심장이 뛴다. 물론 활자나 영상, 글쓰기 등의 고난위도 작업은 혼자서 스스로를 파고들면서 하면서 자신을 만날 수 있겠지만, 이 또한 언젠가는 도전할 항목으로 남겨둔다.
③(________)은 연극을 왜 하는가?=즐겁다. 욕망이 흘러넘치게 된다. 극은 자신의 다양함을 투영시킬 수 있다. 행동은 극을 이끌어나가는 동력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연극은 마치 무대 위에 놓여 있는 경험이라 할 수도 있지만 이것이 잭의 삶에 끊임없이 연관되어지며 사용되며, 자원이 된다. 한마디로 도랑치고 가재잡고. 이렇게 유용함이 많은데 극을 피하겠는가!
④(________)은 연극을 하는가? 왜?=출퇴근, 저녁의 음주. 하루하루, 일주일, 한 달 두 달, 일년 이년 삼년. 재미있는가? 괜찮은가? 잭 자네는 자네의 일에 만족하는가? 제대로 된 성과를 내고 보상을 받고 보람을 느끼고 있는가? 누구와 무엇을 하고 싶은가? 마음은 외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모진 세상을 혼자 헤쳐 왔다면, 이제 당신 친구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가 보라고. 그 두근거리는 무대가 기다려지지 않는가.
<손바닥 연극 워크숍 심화과정: 즉흥극을 이용한 공동 창작> 강좌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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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과 함께하는 성교육 | [남성과 함께하는 성교육] 이대남에 관하여 | zxvtt7749 | 2021.11.12 | |
대선뉴스마다 '2030표심잡기'가 따라붙는다. 이준석 현상으로 대표되는 이대남들은 지난 보궐선거의 핵심으로 떠오르며 기성세대가 공정을 외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들의 외침을 들여다보면 과연 정말 공정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전통적으로 진보적이라 여겼던 젊은 세대 다수가 보수정당에 표를 주자 놀란 여당은 부랴부랴 군대와 관련된 대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2030남성의 의제임에도 사회는 이들을 2030남성=청년으로 여기며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여성의제에 비교적 친화적이던 정당들 내부에서는 '여성만 편애해 젊은 남성이 떠나갔다'며 편향성을 문제 삼았다. 여성들이 그동안 성착취물과 웹하드 카르텔에 대해 꾸준히 문제제기 해왔음에도 꿈쩍 않던 여론과 정치권은 너나없이 이대남 표심잡기에 몰두하고 있다. 이들의 요구사항이 이대남에 국한되는 문제라고 볼 수도 없음에도 역차별 운운하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적반하장의 행태를 보인다. 문제는 이런 이대남이 우리집에도 산다는 것이다. 한 집에서 자랐어도 성별에 따라 생각이 극명하게 나뉘는 것을 보며 이들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던 차 젊은 남성이 남성성에 대해 얘기한다 하니 수강할 수밖에 없었다.
강좌를 통해 알고 싶었던 점은 남성 또래집단에서 일어나는 일들이었다. 그리고 강좌는 이들이 ‘이대남’으로 균일하게 묶이는 존재들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줬다. 페미니즘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으면서도 무엇이 여성차별인지 구분해낼 줄 아는 동생은 강좌 내용에서 ‘세대별 안티페미 성향이 가장 강하면서 동시에 페미니즘적 가치를 가장 많이 수용한 세대’라는 말과 꼭 들어맞았고, 남성들이 또래 집단에서 페미니즘적 가치를 수용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말할 땐 젠더 모임에서 혼자 난감해하던 남성을 떠올리게 했다.
강의를 들으며 수많은 남성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는데 그들 대다수는 특별히 나쁘거나 착하지도 않은 평범한 사람들로 강의는 남성도 페미니즘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피력했다. 특히 교육 현장에서의 일과 수강생들의 얘기를 들으며 동생이 가끔 빻은 소리를 해대도 전처럼 화 내기보다 질문하기로 했다. 이한 선생님 말은 낯선 사람도 듣는데 동생에겐 설득 한번 못하니 질문할 때를 대비해 공부하는 편이 낫다.
결국 페미니즘은 명칭과 달리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권에 관한 얘기로 사이코패스가 아닌 이상 성별에 관계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다. 남성도 여성만큼 페미니즘이 필요한 존재들로 이들이 변해야만 ‘인권’이라는 가치가 실현될 수 있기에 남성들을 상대로 한 성교육은 중요하고 이번 강좌는 이러한 취지에 딱 맞는다. 다만 참여자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젠더 문제가 여성만의 관심사라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했지만 다음번엔 더 많은 남성이 참여하길 기대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강좌가 꼭 남성들 만을 위한 교육은 아니다. 여성들도 페미니즘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많고 각자 처해있는 상황이 다양한 만큼 들을 가치가 있다.
이대남에 관한 탐구는 앞으로도 필요하고 남녀가 접점을 갖는 이런 자리는 더 많아져야 한다. 선생님이 분위기가 험악해지지 않게 잘 이끌어 나가고 잘못했다고 혼내진 않으니 혹시라도 말 실수할까 봐 걱정되거나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들어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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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첫 사법감시 - 판결문 함께 읽기 | [판결비평]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필요한 건 보다 민주적 대안 | 김승연 | 2021.11.8 | |
우리 사회는 한창 ‘가짜뉴스’로 인해 골머리를 앓았다. 일부의 목적을 위해 생산·가공된 거짓과 그로 인한 피해는 시민들의 진실을 향한 사회적 열망을 키워갔다. 최근 크게 논의됐던 ‘언론중재법’ 역시 진실을 추구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바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우리 법체계에서는 진실을 말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형법 제307조 제1항에 명시된 이른바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형법 제307조 제1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는 사실을 말하는 이의 ‘표현의 자유’에 앞서 사실로 인해 피해받을 이의 ‘인격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항이다. 우리가 이번에 살펴본 판결문은 이러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제기된 위헌확인 소송(2017헌마1113, 2018헌바330(병합))이다.
‘2017헌마1113’의 청구인 이모씨는 2017년 8월 반려견의 치료를 받았다. 이모씨는 자신의 반려견이 부당한 진료를 받아 불필요한 수술을 했고 그로인해 실명 위기까지 겪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에 책이나 정보통신망 등을 통해 반려견을 치료했던 수의사의 실명과 잘못된 치료행위 등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였다. 그 결과 이모씨는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였기에 형사 처벌을 받을 위기에 처했다. 이모씨는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사실적시 명예훼손’ 조항(형법 제307조 제1항)은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고 판단했다. 매체의 다양성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매체가 다양해지며 명예훼손적 표현은 이전보다 빠르고 넓게 퍼져나간다. 특히 온라인상에서 퍼져나간 정보는 완전히 삭제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 한번 명예가 훼손되면 ‘완전한 회복’이 어려운 까닭이다. 명예는 사회에서 개인의 인격을 발현하기 위한 기본조건이기에 중요하고 지켜져야 할 개인의 권리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명예훼손적 표현행위를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제한해야 할 필요성이 더 커지게 됐다고 판단했다.
헌법재판소는 형법 제307조가 보호하는 인격권을 표현의 자유와 견주어 우열을 쉽게 단정할 수 없다고 했으나 최종적으로 ‘인격권’의 손을 들어줬다. 그 판단은 ‘만일 사실적시 명예훼손 조항이 없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우리나라는 민사적 구제방법만으로는 형벌과 같은 예방효과를 확보하기 어려운 현실이므로, 이 조항이 없다면 개인이 숨기고 싶은 사생활의 비밀이 침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형법 제310조에 의하면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명시돼 있으므로 표현의 자유 제한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필자는 이러한 결정이 오히려 우리 사회가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새로운 민사적 구제방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논의로 나아가지 못하고 현실의 한계에 머문 데서 아쉬움을 느꼈다. 형법은 구속으로 신체의 자유를 박탈하고 낙인을 지울 수 있다는 데서 법익 보호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민사적 구제를 통해서 예방효과를 충분히 극대화할 수 있다면 부족한 구제방법을 보충하는 방식이 옳다. 상대의 명예를 침해한 이들에게 예방이 가능할 정도의 큰 책임을 물면 된다. 가령 디즈니의 치밀하고도 고액의 저작권 소송은 그 자체로 저작권을 지키게 만드는 예방책이 됐다. 우리 사회도 변화한 미디어 환경에 걸맞게 보다 강화한 구제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까지 기능은 약했지만, 개선의 여지가 있는 민사적 구제수단이 존재한다. ‘재판관 유남석, 재판관 이석태, 재판관 김기영, 재판관 문형배’의 반대의견에 따르면, 피해자는 형사처벌이 아니더라도 정정 보도와 반론 보도 청구, 손해배상 청구와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을 통해 구제받을 수 있다. 이러한 민사적 구제방법들을 강화해, 형법이 아닌 방식으로 인격권과 표현의 자유를 동시에 보호할 수 있는 방향을 찾는 것이야말로 헌법 정신에 부합하며 민주적인 방식이다.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방향이 ‘사회적 합의를 얻지 못했다’고 언급한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비범죄화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표현의 자유의 무게를 충분히 인식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가 없다’거나 ‘시기상조’라는 식의 답은 문제를 해결해나갈 논의 자체를 막는다. 결정문에 ‘사회적 합의가 없다’는 데에 대한 추가 근거는 없다. 헌법재판소는 결정문으로써 시민들에게 권리에 대해 생각해 볼 논의의 장을 제공한다. 이번 결정문은 ‘표현의 자유’가 갖는 무게에 대해 시민들이 논의해볼 기회를 다시 한번 미뤘다는 데서 한계가 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범죄화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지점인 ‘입막음용 소송’에 대한 언급이 부족하다는 아쉬움도 있다. 헌법재판소는 형법 제310조를 근거로 공적 사안에 대한 감시, 비판을 보장한다고 봤다. 그러나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이므로 악용의 여지가 여전히 존재한다. 공적인 목적으로 인해 위법성이 조각되더라도 형사절차가 진행되면 개인에게는 그 사실만으로 위축이고 압박일 수 있다. 결정문은 앞서 피해자가 민사 소송 과정을 겪으며 마주할 어려움을 결정 근거로 삼았으나, 사실적시 명예훼손 악용 여지에 있어서 소송 과정에 대한 우려는 언급하지 않았다.
매체가 다양해지며 자연스레 시민들의 매체 문해력도 상승했다. 시민들은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는 것에 앞서,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의 무게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은 변화한 매체 환경에서 시민들이 재정립해야 할 의식과 가치관을 지적하고 있다는데 의의가 있다. 그러나, 보다 적극적으로 민주적 방안에 대한 논의로 나아가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있다. 온라인 환경 속 무분별하게 떠도는 정보들에 대해 우리의 인격을 지키면서도 자유로운 발언을 지속해갈 수 있는 안전한 보호장치가 무엇일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글. 김승연 (느티나무아카데미 <내 생애 첫 사법감시 - 판결문 읽기 2021> 강좌 수강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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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과 함께하는 성교육 | 페미니즘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 | 개똥이 | 2021.11.7 | |
'남성의 목소리로 듣는 페미니즘은 과연 어떤 걸까?' '여성인 내가 들어도 되는 건가? 들었는데 반감이 생기거나 괜히 발끈하는 건 아니야?‘ 라는 제목만 보고 들었던 일차원적인 생각들이었습니다.
여성의 목소리로만 페미니즘을 접해봤던 저에겐 생소하면서도 주제가 신선해서 강의를 안 들어볼 수 없었습니다. 왠지 '이번에 안 들으면 나의 역량 강화에 굉장한 손실이 크겠구나...'하는 생각마저 들게했습니다. 이한 강사님께서 말씀하시는 페미니즘은 세상 그 어느 저울보다도 공평하고 공정했습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전혀 기울어짐이 없었고 그저 같은 인간으로써 생각을 공유하고 공감하고 대안 해보자는 시간이었습니다.
강의 시간동안 강제는 없었습니다. 강사님은 참여자의 생각과 의견을 함께 나누자며 질문을 던졌고, '성평등'이란 주제에 맞게 한사람씩 ‘초대’ 해주셨고 초대 받은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을 초대하고 그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을 초대하고... 하지만 그 초대를 누구 하나 거절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이며 카메라와 마이크를 켰습니다.
온라인 강의 방식인 주석 달기를 모두 함께 하고 목소리를 냈습니다. 덕분에 풍성한 나눔과 깊은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두 시간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짧았던가요? 20분, 30분이 지났어도 끝맺음의 시간이 아쉬웠던 우리는 이미 페미니즘으로 하나가 되고 있었습니다.
저에겐 어려웠던 페미니즘을 쉽게 풀어서 이해하도록, 오해하지 않도록 다뤄주셨는데, 기억하며 맞이한 첫 번째, 시간에는 특권과 사회적 차별, 성평등과 경계에 선 남성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단순하게 알고 있던 것 외의 것들을 알게 되었고 확장된 관점과 시각을 갖게 해주셨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두 번째 강의를 맞았는데 페미니즘 활동,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의 이야기 나눔을 통해 본격적인 페미니즘에 빠지도록 우리의 마음과 입을 열게 해 주셨습니다.
기다렸던 세 번째, 강의에서는 성평등하고 안전한 공동체 만들기로 페미니즘의 계보가 이미 존재하는데 그 계보에 우리가 직접 발을 담그어 이어 나갈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적극적인 활동들이 있었습니다.
페미니즘은 어려운 것이 아니었고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어렵게 만들고 어지럽게 만드는지 모르겠습니다. 수학, 영어, 국어처럼 이런 교육이 필수 교과목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공무원 시험 과목에도, 모든 시험에서도 필수 과목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차피 세상은 나 혼자 살 수 없고 다 같이 어우러져 살 수밖에 없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백번 저의 글을 보는 것보다 한번 이한 강사님의 강의를 듣는 것이 낫기에 여기서 후기를 마치려고 합니다.
좋은 강의 기획해주시는 관련자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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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조선후기 여성들의 꿈과 환상 | 꿈과 환상 사이의 간격, 그리고 꿈을 꿀 기회 | -_- | 2021.11.6 | |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지인의 추천으로 듣게 되었는데 지인의 멱살을 잡고 뽀뽀라도 해주고 싶을 만큼 재미있는 이야기가 가득했습니다. (가정이 있는 분이어서 차마…) 다른 지인으로부터도 조선을 하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며 소진형 선생님 이야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선생님이 들려주시는 이야기들이 궁금하던 차에 제목도 제 마음을 잡아끌기에 당장 신청했는데, 어머 이런 대만족. 정말 재미있게 많이 배웠습니다.
첫 강의에서는 조선 후기에 여협(여성 영웅 소설의 주인공들)과 열녀들이 동시에 쏟아져 나왔던, 이 복잡 미묘하고 기이했던 현상을 재미있게 따라다녔고, 두 번째 강의에서는 여성 영웅과 열녀의 서사들 외곽에 있었던 아주 흥미로운 두 작품, <삼한습유>와 <변강쇠전>을 통해 시선의 지평을 더 넓힐 수 있었습니다. 욕망을 수렴하여 실현해 줄 제도적 장치가 없었던 사람들. 그리고 제도적 장치는커녕, 아예 꿈을 꿀 수도 없었던 사람들. 남들이 한 번 부질없이 꾸어보는 꿈에서조차 배제되었던 사람들.
최근에 여성 서사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고 역사에서 의도적으로 지워진, 혹은 사라진 여성들의 이름을 다시 찾아주는 작업들도 활발한데요. 서양에서는 “여성이란 자연의 결점, 혹은 오류”로 인식되었던 중세적 여성관이 “여자는 어느 분야에서도 어떤 위대한 작품을 창조한 적이 없지 않은가”라는 기독교 철학자 드 메스트르의 헛소리가 통념으로 받아들여지던 19세기까지도 당최 고쳐질 줄을 몰랐죠. 조선이라는 시공간도 비슷했던 것 같은데, 소진형 선생님이 알려주시는 그 안에서의 의미 있는 꿈틀거림들이 참 흥미로웠습니다. 이런 부분들이 널리 알려지고 활발히 연구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드라마나 영화로 나와도 좋을 법한 놀라운 소재들의 향연. (남성 몰살의 서사들이라니, 대체 조선 후기의 평안도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단순하게만 생각했던 ‘열녀’라는 단어 안에 그렇게 많은 층위의 놀라운 이야기들이 들어있다는 것도, 납작하게만 알고 있던 변강쇠전 안에 그렇게 풍부한 서사가 들어있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되어 참 좋았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욕망은 존재했다는 점을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었던 점도, 경계에 서 있던 사람들의 역할에 시선을 놓아볼 수 있는 것도 좋았고요. 무엇보다 꿈과 환상이라는 두 단어 사이의 간격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어 주신 점이 특히 좋았습니다. 우리가 꾸는 꿈에는 사실 배제되어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 그리고 꿈이 제도화되지 않으면 환상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점.
“아마 성리학이 예측하지 못한 것이 여성들이었을 것이다. 서양의 민주주의 이론이 그랬듯, 성리학 역시 인간 본성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그들이 예측하지 못한 아주 불편한 존재들(여성들)을 만들어 낸 것이다.”라는 말씀을 강의 후에 재미있게 곱씹어 보고 있습니다. 홍계월과 영혜빙, 김소행 같은 매력적인 이름들을 알게 되어 기쁘고, 그 이름들과 더 만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소진형 선생님 이야기보따리가 엄청 크고 알록달록한 것 같은데 앞으로도 많이 펼쳐 주셨으면 좋겠어요. 좋은 강의 마련해 주신 참여연대 아카데미느티나무에도 감사 인사드립니다.
도덕적으로, 경제적으로 열녀라는 이름이 필요했던 집안 남성들로부터 죽음을 강요받았던 여성들의 숫자를 보며 입이 떡 벌어졌던 순간을 오래 기억하겠습니다.
출처 : 박주 <조선시대의 여성과 유교문화> 박학자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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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연극 워크숍 심화과정] 즉흥극을 이용한 공동 창작 | [손바닥연극] 일상에 균열을 낸다는 것 | 싸늘한와사비 | 2021.11.5 | |
인생의 크고 작은 실패의 순간, 연극과 함께였다. 손바닥연극 워크샵은 단비처럼 만난 10주의 시간이다. 직장에 입사하면서 연극은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직장 스트레스가 심해지는 순간 문득 연극을 떠올렸다.
워크샵은 열여섯 명의 사람들로 이루어졌다. 처음 참여한 사람도 있었고, 이미 자리 잡은 지 오래된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공통점은 서로에게 굉장히 살갑고 예의 바르다는 점이었다. 살가우면서 동시에 예의 바르기가 쉽지 않은데 그게 여기서는 되더라. 워크샵 전에 받았던 몇 가지 규칙을 기억한다. 직업, 나이, 학벌, 사는 곳, 성적 지향 등 사적인 질문은 서로에게 하지 않는다. 이름 대신 닉네임으로 서로를 부르고 반말하지 않는다. 이외에도 보편타당하지만 우리 사회에선 통용되지 않는 규칙들이 더 있었다. 여자나 남자의 화장실이 아닌 ‘모두의 화장실’도 반가웠다. 수차례 워크샵을 거듭하며 다듬었을 규칙이라고 생각하니 참 좋았다. 일상에서 느꼈을 부조리함을 수정하고자 하는 몸짓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워크샵은 규칙에 동의한 사람들이 모인 것이 아닌가. 마음이 따뜻했다. 연극을 하는 이유는 결국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워크샵 각 조는 작품을 만들었다. 작품의 형식은 자유였다. 움직임이어도 되고 영상이어도 되고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도 괜찮았다. 그저 우리가 상상한 것을 발표하는 형식이라면 무엇이든 괜찮았다. 머리를 모았다. 더 좋은 장면은 없을지 토의했고 연출님께 자문을 구했다. 괴롭기도 했다. 이런 말을 하려고 했던 게 아닌데 싶은 순간도 있었고, 그런 순간이 주는 재미와 감동도 있었다. 무엇보다 ‘함께’ 하는 사람이 좋아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그 메시지에 설득되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대화가 오가야 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연극의 틀을 획기적으로 깨지는 못했다. 시간에 쫓기며 최선이 아닌 차선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인생은 늘 그렇지 않나. 무용하다고 생각했던 시간에서 예상치 못한 가치를 발견하고, 그 발견을 시작으로 다음 스텝을 상상하고. 연극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다음 연극을 꿈꾸며 즐거워지는 것은, 연극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재미다. 그건 연극을 해본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 같은 거다.
소위 ‘일반적’인 것에서 멀어질수록 행위의 동기나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압박을 느낀다. 너는 왜 그걸 하고 있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살지 않아? 그냥 평범하게 살 수 없는 거야? 등등. 나를 책임지지 않는 말을 무시하고 싶지만 이따금 그런 말은 씨앗이 되어 마음에 자리 잡는다.
연극이 나에겐 그렇다. 지금껏 연극은 피난처가 되어주었지만 연극과 가까이 할수록 일상과는 거리가 생겼다. 그 괴리감을 이겨내는 날도 있었고 지고 마는 날도 있었다. 즐거우면 된 거 아닌가 싶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즐겁기만 해도 될까 불안함이 엄습했다. 아마 연극은 나에게 계속, 그런 존재이지 않을까.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연극은 정말 나를 망치러 온 구원자 같은 것이 아닐까.
연극에 매달리면서 일상에 균열을 내고, 균열을 보며 반가움을 느끼다가 이내 균열을 메울 방법을 찾아 나서는 과정. 이번이 진짜 마지막 연극이다 생각하지만 막이 내린 후 결국 다음 공연을 기약하고 마는. 멀어졌다가 가까워지는 과정을 반복하며 나는 평생 연극과 함께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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